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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혁명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새로운 혁명은 기술의 혁신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얼마 전 NVIDIA의 수장 젠슨 황은 CES 기조연설에서 인공지능이 가져올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청사진을 우리 앞에 펼쳐주었습니다. 매일매일 등장하는 새로운 혁신이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과연 우리는 과거의 방식대로 살아갈 수 있는가? 100년 전 인류는 유례없는 혁명의 시대를 경험했습니다. 인류는 산업혁명을 지나 정치적 혁명의 시대를 겪었고, 기술이 가져온 혁신의 충격은 지금보다 더 컸습니다. 1923년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이냐? 혁명이냐?”라는 메니페스토를 통해 새로운 혁신의 시대에 건축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르 코르뷔지에의 메니페스토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는 건축을 어떻게 혁명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며, 다른 하나는 건축을 통해 어떻게 혁명을 피할 것인가라는 질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르 코르뷔지에는 기술을 통해 과거의 건축을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건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다른 한편으로 기술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켜 파국을 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르 코르뷔지에는 질문을 던지고 몇 년 후 스스로 그 대답을 제시합니다. 기술이 근본적으로 모든 생산과 산업의 방식을 바꾸고 더 나아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과 삶의 양식을 바꾸고 있는 2025년,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의 조경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르 코르뷔지에가 선언한 첫 번째 건축의 혁명에 대한 선언은 오늘날의 조경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새로움은 기술에 있고, 조경은 새로운 기술과 결합으로써 과거와는 다른 조경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새로운 그래픽 툴을 통해 이전과 비교할 수도 없이 손쉽게 양질의 이미지를 만들며 우리의 생각을 표현하고 되었습니다. 신소재의 발명과 CAD/CAM은 기술은 더욱 정교한 시공을 가능하게 해주었을 뿐 아니라 이전에는 상상 속에서만 가능했던 형태를 구현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조경의 진정한 혁명은 이러한 조경의 기술적 변화에 있지는 않습니다.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잘 활용하는 조경은 도구가 새로워졌을 뿐, 과거의 조경과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인공지능이라는 혁신은 아예 인간과 도구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꿉니다. 우리는 그 근본적인 차이를, 변화를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조경의 주인공은 조경가였습니다. 조경가는 기술을 통해 생각을, 상상을 더 편하고 쉽게 구현해 왔습니다. 컴퓨터는 조경가의 구상을 쉽게 도면으로 만들어주었고, 상상했던 이미지를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현실과 비슷하게 표현해 주었습니다. 지금까지 기술은 조경가의 구상을 현실에 구현해주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이제 그 구도는 바뀌고 있습니다. 생성형 AI는 조경가 대신 조경을 상상하고, 그 상상을 구현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인간이 구상하고 기술이 현실로 구현한다는 고전적인 창작의 공식은 무너졌습니다. 더 이상 창조는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기계의 상상력과 창의력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습니다. 2014년 굿펠로(Ian Goodfellow) 교수가 생성형 모델인 GAN을 제안하면서 인공지능은 이제 이미지를 창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17년 발표된 CAN 모델은 그 어떠한 화가도 흉내 내지 않은 새로운 양식의 그림을 창작합니다. 2018년 예술창작 집단 Obvious이 인공지능으로 만든 초상화 Edmond De Belamy는 뉴욕 크리스트 경매에서 432,500달러에 팔립니다(그림1 참조). 최초로 인공지능이 생성한 작품이 기성 예술계에서 인정받은 것입니다. 당연히 이에 반발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혁신에 시대에 예술의 개념도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인공지능의 작품이 예술 개념의 개념에 부합하는지, 인공지능의 창작을 인정해야 하는지의 시대착오적인 논쟁은 집어치워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이 시점에서 던져야 할 질문은 인공지능을 통해 어떠한 예술을 창조할 것이며, 그 새로운 예술이 근본적으로 기존의 예술과 어떻게 달라지느냐는 것입니다. 조경이 예술이라면 우리는 같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건축은 이미 이에 대한 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볼로얀(Daniel Bolojan)은 가우디의 대작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ília)를 인공지능을 통해 새롭게 해석합니다(그림2). 가우디가 이 작품을 만들 때 숲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볼로얀은 사그라다 파밀리아와 숲의 이미지를 학습시켜 인공지능이 상상한 숲의 성당, 새로운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만들어냅니다. 아나돌(Refik Anadol)은 생명이 없는 사물이 기억을 갖고 꿈을 꿀 수 있느냐는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그림3). 그는 LA 필하모니의 공연장인 디즈니 콘서트홀에 대한 45테라의 이미지와 1,880개의 비디오 파일, 40,000시간에 해당하는 공연 오디오 파일을 학습시켜 건물의 기억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그 기억을 인간의 꿈을 꾸는 구조와 같은 방식의 알고리즘을 통해 디즈니 콘서트홀이 꾸는 꿈을 그 건물 표면에 투영하여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방식의 예술입니다. 동시에 새로운 건축이기도 합니다. 하버드의 학생이었던 귀다(George Guida)는 다양한 인공지능 모델과 생성형 이미지 인공지능을 결합하여 두 명의 세계적인 건축가가 함께 설계한 작품을 제안합니다(그림4). 하디드(Zaha Hadid)와 스카르파(Carlo Scarpa)는 같이 작업한 적도 없을뿐더러, 추구하는 건축의 방향도 전혀 달랐습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두 건축가는 인공지능을 통해 함께 공동 작업을 하게 됩니다. 샤이유(Stanislas Chaillou)는 졸업 작품으로 설계안 대신 ArchiGAN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내놓습니다(그림5). 건축 주거의 평면을 인공지능으로 학습시켜 자동으로 원하는 건축 평면을 설계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이러한 건축의 실험은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건축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조경의 혁신은 어디에 와 있을까요? 아직 건축보다는 더디지만 이러한 혁신이 가져올 근본적인 변화를 조경가들도 인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조경 관련 대학교와 대학원에서도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창작을 위한 실험이 진행 중입니다. LiDAR 장치를 활용하여 사물을 3D 스캔하여 설계에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연구 중이고, AR 기기를 통해 조경 공사를 할 수 있는 기술도 개발되었습니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자동 조경 설계의 방식에 관한 연구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습니다. 새로운 시대에 어떠한 조경이 가능할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제 앞으로의 조경은 과거의 조경과는 전혀 달라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한편, 우리는 르 코르뷔지에가 선언한 두 번째 건축의 혁명을 조경에 투영할 필요가 있습니다. 르 코르뷔지에는 새로운 건축이 시대적 파국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100년의 인류는 기술적 진보를 통해 미래의 찬란한 청사진을 그렸지만, 동시에 전쟁으로 파국으로 치닫는 기술의 미래도 목격했습니다. 지금 우리도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절체절명의 위기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의 위기입니다. 조경은 기후변화가 가시적인 문제로 드러나기 이전부터 이러한 위기에 대응해온 몇 되지 않는 분야입니다. 이제 기후변화의 시대에 조경은 재앙으로 우리를 구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할 것인가, 그리고 정말로 구할 수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던져졌을 때 조경은 확실한 대답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건축이 친환경 냉난방 기술을 통해 에너지 소모를 혁신적으로 줄인 것보다, 도시가 자율주행 차를 활용한 새로운 교통 기반시설을 통해 탄소를 저감하는 양보다, 조경을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을까요? 그들은 말합니다. “그래요. 조경이 나무와 식물을 다루어 온 것은 인정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기후변화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죠? 100년 전에도 공원에는 나무를 심어왔습니다. 100년 뒤에도 조경은 그때와 똑같이 공원에 나무를 심는 것이 고작 아닌가요?” 미국의 LAF(Landscape Architecture Foundation)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기 위해 조경이 얼마나 우리의 지속가능성에 이바지할 수 있는지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프로젝트가 완료된 후 전문가들이 별로 결과의 효과를 파악하는 후행적인 방식은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갈 뿐더러, 조경가의 설계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공간계획의 모든 분야에서 디지털트윈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건축의 에너지 소비는 실시간 측정되어 인공지능이 즉각적으로 이를 제어하고 있습니다. 도시의 교통상황은 실시간으로 파악되어 가장 정체가 적어 탄소 배출을 적게 할 수 있는 경로를 제시합니다. 물론, 조경에서도 이러한 혁신적 기술을 도입한 연구가 진행되고 기술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몇 가지 최근의 연구성과를 접목한 실천의 가능성만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스폰지 시티(Sponge City)는 자연과 조경을 통해 홍수를 방지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중국의 조경 프로젝트입니다. 스폰지 시티의 효과를 InVEST 모델이라는 생태계 서비스 모델을 통해 검증해 보았습니다. 일반적인 학술 연구와는 달리 계획·설계적 요소를 방법론적으로 연구에 도입하였습니다. 스폰지 시티 공원 대신 주거지역으로 개발되었을 때, 그리고 여러 스폰지 시티 공원을 적정한 위치에 추가로 계획했을 때의 효과를 비교해 보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여러 공원이 있는 경우 효과의 총합은 증가하지만, 점점 늘어날수록 증가하는 효과는 줄어드는 흥미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한편, 우리나라의 송산 그린시티 계획을 물순환 도시로 변경하는 계획을 검증해 보았습니다. 물순환 도시에 적합한 6개의 공원 유형을 제시하고 이 공원들이 얼마나 우수를 저류하고 오염을 저감할 수 있는지 토목 수문분석 모델인 SWAT을 통해 분석하였습니다(그림6). 흥미롭게도 그린인프라형 공원을 도입할 경우, 식물의 증산작용으로 인해 기후변화 대응 효과가 일반적인 토목적 대안에 비해 많이 증가하였습니다. 유전자 알고리즘은 메타휴리스틱(Metaheuristic) 알고리즘으로 자연의 진화를 모방한 최적화 모델입니다. 최적화 모델은 인공지능에서 매우 중요한 분야로 알파고 역시 최적화 알고리즘 기반의 인공지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공학에서 널리 이용되는 유전자알고리즘을 도시설계에 적용해 보았습니다. 도시설계는 여러 복잡한 변수들을 고려해야 합니다. 하지만 기후변화에 최적화된 도시 구조는 어떤 모습일까요? 이 대답을 찾기 위해 유전자 알고리즘을 활용하여 우수유출, 오염저감, 탄소흡수와 배출에 최적화된 도시 구조를 도출합니다(그림7). 유전자 알고리즘은 여러 개의 대안을 제시하는데, 수많은 대안의 각자 장점과 단점이 다릅니다. 이러한 계획·설계의 가장 중요한 혁신은 사후에 별도의 효과 검증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모든 대안이 특정한 조건에 맞는 최적화된 대안들이기 때문이죠. 유전자 알고리즘은 다양한 조경 계획과 설계 프로젝트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가장 도시의 온도를 낮출 수 있는 식재 계획, 애견인들과 비애견인들이 공원을 이용할 때 서로 상충하지 않을 수 있는 최적 공간 계획 등 기술을 이해한다면 많은 실천적인 상상이 가능해집니다. 기후변화와 관련된 많은 조경의 연구성과를 실천과 결합할 수 있다면 우리는 당당히 조경이 기후변화의 위기에서 우리를 구할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조경의 혁신과 발전은 왜 더딘 느낌일까요? 조경의 연구가 다른 분야에 비해 형편없고 쓸모가 없어서 그럴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조경 분야의 뛰어난 연구자들은 오히려 조경 분야에서 대접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런 조경과 무관한 연구를 할 거면 다른 분야에 가서 하라고 호통을 칩니다. 목소리가 큰 이들이 애지중지하는 그 조경은 이전 세대가 다 바닥까지 핥아 먹어 빈 꿀단지에 불과합니다. 한편으로, 기존 체제에 안주한 실무자들의 패착 때문에도 조경은 뒤처지고 있습니다. 기성세대는 반문합니다. 학문적 연구의 성과가 현실 조경과 무슨 상관이냐고. 학계에서는 훌륭한 연구이겠지만, 실제의 계획·설계 과정에서 이해하기도 어려운 연구들이 무슨 소용이냐고.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이 연구의 성과와 데이터로 우리는 어떠한 조경을 상상하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학문적 성과는 상상을 위한 재료입니다. 재료가 부실하다면 어떠한 새로운 혁신이 가능하겠습니까? 상상과 혁신을 남들이 떠먹여 주어야 한다면, 이 시대는 과연 그런 전문가를 필요로 할까요? 가장 혁신적인 연구자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조경 분야에서는 인정을 못 받고 조경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연구합니다. 조경의 실천은 정신 차리고 조경의 이론, 그리고 학문과 더 가까워져야 합니다. 주변을 보십시오. 학문적 연구의 성과를 어떻게 빨리, 창의적으로 실천에 적용하는가가 그 분야의 효용과 성과를 결정하고 있습니다. 혁명의 시대에 이론과 실천의 경계는 무너진 지 오래입니다. 오늘날 조경이 봉착한 문제의 탈출구를 밖에서 찾지 마십시오. 물론, 현실이 녹녹한 것은 아닙니다. 조경 관련 법과 제도가 미비하고, 타 분야가 조경의 영역을 침범하고, 인구감소로 인재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꼭 그것 때문에 조경이 힘을 발휘 못 하는 것은 아닙니다. 조경이 더 쓸모가 있고, 더 혁신적으로 변한다면 그런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입니다. 스스로가 바뀌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가, 왜 불리한 조경 주변의 여건을 바꾸어준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혁신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혁신에 기반한 새로운 상상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컴퓨터 프로그래머나 코딩 기술자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100년 전 르 코르뷔지에가 던진 메니스페스토의 결론은 기술을 통한 새로운 건축이었지만 그는 절대로 건축이 과학과 공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우리의 정신은 기능적이고 효율적인 기계보다는 쓸모없다고 생각되는 “시”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건축은 기능과 계산을 초월해 기술 그 너머에 있는 본질적인 것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금의 조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향입니다. 생성형 인공지능은 우리를 어디로 데리고 갈까요? 놀라운 최신 연구 결과들과 분석 기법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얻고자 합니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우리는 지향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조경의 지향은 무엇인가? 당신의 어떤 조경을 하고자 하는가? 그 질문에 대답은 기술이 해주지 못합니다. 기술은 당신의 지향을 넓히고 경험해 보지 못한 상상을 하게 해줍니다. 그러나 주체는 조경가 당신이어야 합니다. 지향을 갖고 있는 조경가인 당신이어야 합니다. 그런 당신의 지향은 무엇입니까? 김영민 /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 김영민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email protected]
- 2025-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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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신체활동 부족, 스트레스, 환경오염, 불규칙한 생활습관 등으로 인한 만성질환은 개인을 넘어 사회적 자본의 심각한 손실로 이어지는 주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비만, 심혈관 질환, 당뇨병, 정신질환 등과 같이 장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지속되는 만성질환의 개념인 비감염성 질환은 의료비 증가와 함께 사회경제적 부담을 심화시키고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전체 사망자의 78.1%가 비감염성 질환으로 인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관련 진료비는 90조 원으로 전체 진료비의 84.5%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은 2030년까지 비감염성 질환으로 인한 전 세계 경제적 부담이 약 47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는 등 만성질환에 의한 문제는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이러한 만성질환은 개인의 일상에서의 생활습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생활 환경에서의 예방과 관리를 통해 만성질환의 위험요소를 줄이고자, 세계보건기구(WHO)는 의료보건분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관련한 교육, 환경, 농업, 금융, 교통 등 다양한 분야 간의 협력을 통한 통합적인 접근 방식을 주문하고 있다. 만성질환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질병부담 증가 문제를 선행적으로 겪고 있는 해외 국가들에서는, 사회적인 정책이자 대안적 보건의료체계 중 하나로 공원녹지를 활용한 대응 방안을 도입하고 있다. 그동안 공원녹지공간 노출에 의한 신체활동 증가와 비만율 개선, 고혈압과 당뇨병 위험 감소, 우울증과 스트레스 및 불안 감소 등 만성질환에 대한 녹지의 효과는 다수의 연구를 통해 입증 되어왔다. 물론 이미 200여 년 전 영국의 노동자 도시 버큰헤드와 미국 뉴욕 맨해튼 한가운데에 공공공원이 도입될 때부터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환경오염과 공중위생의 해법으로 공원녹지는 작동 되어왔다. 그러다 전 세계를 휩쓴 COVID-19로 인해 가시적으로 드러난 건강불평등 악화, 사회적 고립 심화, 정신질환 증가 문제는 공원녹지의 의학적, 공중보건적 가치를 다시금 주목하게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원녹지는 현대 보건의료 시스템과는 여전히 거리를 두고 있으며, 특히 분야 간 칸막이가 뚜렷한 한국에서는 더욱 교류가 미비한 상태이다. 2000년대 들어 해외에서는 공원녹지의 예방적, 치유적 효과를 만성질환 관리 수단으로 보건의료 체계에서 제도화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녹색처방(Green Prescribing)’이다. 녹색처방은 보건의료인이 환자에게 만성질환의 예방과 관리의 목적으로 공원녹지에서의 활동이나 자연환경 체험을 처방의 방식으로 권고하는 것을 말한다. 녹색처방은 일반적인 의료 처방과 유사한 과정으로 의료인과 상담을 통해 환자 맞춤식으로 이루어진다. 처방에서 활용되는 녹지는 대규모 자연녹지뿐만 아니라 도시의 소공원, 개인정원 등 환자가 자연과 쉽게 교감할 수 있는 모든 장소를 포함한다. 경관감상, 명상, 탐조 등 정적인 활동부터 걷기, 뛰기, 아웃도어짐 등의 동적인 활동, 그리고 단체 스포츠, 가드닝, 공원관리 등 신체적 건강을 증진시키고 정신적 안정을 도모하는 활동 외에도 사회적 교류를 활성화할 수 있는 활동이 처방된다. 녹색처방은 여러 국가에서 성공적으로 시행되고 있으며 공공 건강 증진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정책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중 국가 보건의료기관과 공원녹지기관이 긴밀한 협력을 통해 보건의료체계 안에서 운영되는 사례는 영국과 미국이 대표적이다. 영국과 미국 각각 국가보건의료제도와 민간의료보험제도라는 기존 보건의료체계와 연동된 방식으로 녹색처방이 시행되고 있다. 영국에서는 국가 보건의료기관인 NHS(National Health Service)가 주축으로, 환자의 주거지와 가까운 1차 의료기관의 일반의(GP)가 환자에게 공원녹지에서의 활동을 처방한다. 정책적으로 NHS는 ‘녹색 사회적 처방(Green Social Prescribing, GSP)’을 도입하여 정신건강 관리에 중점을 두고 있다. 녹색 사회적 처방은 공공의료기관과 지역의 공원녹지 기관 및 시민단체가 함께하는 체계적인 관리와 지원체계가 마련되어 있으며, 의료인과 공원녹지 전문가 간의 소통과 협력을 더 원활하게 하기 위한 링크워커(Link Worker)라는 전문가가 양성되고 있다. NHS는 COVID-19 이후 녹색 사회적 처방 제도화의 적기로 판단, 7개의 지역을 선정하여 시범사업을 2024년 완료하였다. 이 과정에서 공공녹지를 활용한 다양한 활동이 환자의 정신 건강 개선에 효과가 있음은 물론 의료비 저감에도 기여함을 입증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녹색 사회적 처방은 전국 의료현장과 지역사회로 확대되고 있다. 미국은 연방정부 공원녹지기관 NPS(National Park Service)의 주관하에 공원녹지를 보건 자원으로 활용하는 'Park Rx America' 프로그램을 시작, 공공기관과 비영리단체의 협력과, 민간의료보험회사의 자금적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미국의 녹색처방 Park Rx는 처방전 형태로 제공되는데, 의료인이 처방에 활용하는 전자건강기록(Electronic Health Records, EHR)에 공원녹지의 위치와 특징, 시설, 이용 프로그램 등이 정리된 웹 데이터베이스와 연동되고 있다. 의료인은 시스템을 활용, 환자의 상태에 따라 이용가능한 집 주변 공원을 추천하고, 맞춤형 신체활동을 권장하며, 이후 그 진행 과정을 모니터링한다. 영국과 미국 모두 녹색처방 제도는 국가의 중장기 보건의료는 물론 국토계획의 중장기 로드맵과 연동된다. 조경분야는 제도적 뒷받침속에서 보건의료 전문가들과 협력하여 건강 데이터를 반영한 공원녹지 공간 설계와 활동 프로그램 개발하고 유지 관리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아울러 녹색처방의 제도화로 인해 의료기관 내외부 조경, 치유정원 뿐만 아니라 공공 조경 프로젝트가 확대되고 있으며, 이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녹색처방의 제도적 도입은 조경분야의 역할 확장을 기대하게 한다. 조경은 기존의 경관 및 공간 조성을 넘어 국민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지원하고, 중요한 사회적 인프라인 공간을 디자인하고 운영하는 녹색처방의 중요한 축이 될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녹색처방의 효과에 대한 인식 제고와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며, 특히 보건의료 분야와의 긴밀한 협력 관계를 통해 조경분야의 역할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국내 현실에 맞는 녹색처방의 체계적인 도입과 조경분야의 적극적인 참여는, 건강한 사회 구현이라는 조경분야의 사회적 역할 확대와 산업 성장의 새로운 동력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 정해준 계명대학교 생태조경학과 교수
- 2025-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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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임정우 기자]“분명한 건, 이대로 가면 서울시는 더 뜨거운 도시가 될 거라는 겁니다.”그 어느 때보다 더웠던 여름을 맞이한 올해 서울시는 주택 공급 확대를 이유로 12년 만에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지난 문재인 정부 아래에서 그린벨트 해제가 논란이 되던 중에도 완고하게 보존 입장을 고수했던 서울시이기에 더욱 큰 파장이 일 수 밖에 없다. 이에 ‘2024년 올해의 여성인물’로 선정된 기후강사 민주희 안성지속가능발전협의회 팀장을 만나 서울시의 그린벨트 해제 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민 팀장은 그린벨트를 “서울의 허파”로 비유하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서울시의 약 25%를 차지하는 그린벨트는 도시의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번 해제 정책으로 이러한 허파가 훼손된다면, 서울은 더 뜨거운 도시가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과학적인 근거는 충분했다. 실제로 김희재 중앙대학교 박사가 ‘사이언스온’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그린벨트 지역에서 표면온도가 도시 내부 지역에 비해 평균 1% 감소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는 해제된 그린벨트에 주로 신혼부부와 청년층을 위한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민주희 팀장은 이 정책이 진정으로 주거복지를 위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그린벨트 해제가 주거난 해소라는 명분 아래 진행되고 있지만, 이는 결국 특정 계층이나 개발업자들에게 이익을 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과연 이 정책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그는 특히 강남과 서초 지역에 위치한 서리풀 지구가 금싸라기 땅으로 불리는 점을 지적하며, 이곳에서 공급되는 주택이 진정 서민을 위한 공공주택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했다.그린벨트 해제의 대안으로 민 팀장은 ‘분산형 도시 개발’을 제안했다. “서울과 수도권의 밀도를 줄이고, 주변 지역과의 협력을 통해 인구와 자원을 분산시켜야 합니다. 현재와 같은 밀집형 개발은 환경과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할 뿐입니다.”그는 또한 환경영향평가와 생태계 조사를 철저히 진행할 것을 촉구하며, “서울의 그린벨트는 단순한 개발용지가 아니라, 우리가 지켜야 할 마지막 자연 자산입니다. 이를 보전하는 동시에 주거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민 팀장의 생각은 주거 문제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최근 서울시가 ‘매력정원’을 내세우며 공원 및 인공녹지를 조성하는 한편,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정책의 모순을 꼬집었다.민 팀장은 “한국의 정원은 자연 환경을 보전하며 조화롭게 조성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서울시가 추진하는 정원도시는 기존의 자연녹지를 없애고 인공적인 녹지를 만드는 것에 가깝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는 이미 존재하는 자연적 녹지인 그린벨트가 있는데, 시 차원에서 이를 침범하고 인공녹지를 조성하는 것은 생태계 파괴일 뿐만 아니라 혈세의 낭비이기도 함을 강조했다.“환경계와 조경계가 나아가야할 방향은 인간에게 매력적인 ‘매력정원’이 아닌 생태계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실질’정원이어야 합니다.”민주희 팀장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이번 그린벨트 해제 정책에 앞서 조경계와 환경계 간의 협력이 절실함을 강조했다. 그는 “조경은 편리한 도시 환경을 만들어나가는 작업이기에 우리에게 너무나도 필요한 작업입니다”라며, “그러나 생태적 가치를 지키지 못하는 조경은 결국 장기적으로 인간들에게 불편함을 야기할 것”이라고 말했다.“그린벨트는 서울의 허파입니다.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건 팔이 부러졌다고 허파를 잘라내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민주희 팀장의 말은 그린벨트 해제와 매력정원 정책의 실시를 각각 앞둔 환경계와 조경계에게 깊이 생각해볼 과제를 던져준다. 그의 말처럼, 더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조경계와 환경계 모두의 협력이 필요한 때다.
- 임정우[email protected]
- 2024-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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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뉴욕한국문화원에 한국정원이 조성되었다. 규모는 작았지만 의미는 매우 장대하였다. 우리나라의 문화를 확산하는 한국문화원에 최초로 조성되었기 때문이었고, 세계인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센트럴파크와 하이라인이 있는 도시, 뉴욕이어서 그랬다. 우리나라 최고의 별서정원인 소쇄원을 재해석해서 담았고 한국의 정원을 뉴욕까지 연결한다는 의미에서 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뉴욕한국문화원에 조성된 한국정원의 주제는 ‘애양단(愛陽壇): 태양을 사랑하는 단’___________1,1000㎞였다. 이번 한국정원의 디자인과 시공은 뮴과 황지해 작가가 참여하였다. 입찰 조건으로 인해 누가 참여할지 모르는 과정에서 황지해 작가의 참여는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해외라는 공간과 100일이 채 안 되는 시간, 모든 것이 부족한 환경에서 정원작가의 비중은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황지해작가는 첼시플라워쇼와 같은 해외박람회 참여로 제한된 시간과 공간에서 정원을 조성한 경험이 많았고 무엇보다 정원에 대해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최고의 정원작가가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원디자인부터 시공까지의 과정은 험난했다. 뉴욕한국문화원 빌딩이 준공허가 과정에서 임시사용을 하고 있었고 한국정원이 조성되는 공간이 실내전시실의 외부공간이라 하중 등에 대한 제한조건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미국과 뉴욕주의 법과 제도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엄격하다 보니 정원 디자인은 자고 나면 바뀌어야 했고 이는 조성이 마무리되는 시점까지 계속되었다. 뉴욕한국문화원에 조성된 정원 주제는 소쇄원의 애양단이었다. 정원에 관심있는 사람치고 소쇄원을 잘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된다. 또 관련 전공자라면 한번 쯤은 답사를 다녀온 경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소쇄원에서도 애양단을 주제로 삼은 이유는 무엇일까. 황지해작가는 여러 제한조건을 애양단을 통해 극복하고자 하였으며 공간은 작지만 의미만큼은 뉴욕의 하이라인과 같은 큰 정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하였다. 몇 번의 디자인을 바꾸며 정원 시공이 시작되었다. 작은 공간이라 어디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공간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담장은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했다. 하중을 고려한 구조적인 안정감, 그리고 주변 시설물과 식물과의 조화 등 정원의 중심 소재로서 쌓이는 돌 하나하나를 골라가며 쌓았다. 그리고 담장의 시공에는 세분의 장인이 일주일간 머물며 시공했다. 시공과정에서 담장이 길이도 1.5m 정도 연장했다. 주변 건물과 시설물이 웅장하다보니 담장이 왜소해 보인다는 의견에서였다. 그리고 이후부터는 식물의 배치와 식재, 관수라인과 조명 등의 시설물이 설치되었다. 담장에 쓰인 기와와 정원 속에 배치된 소금독과 젓갈독, 석등과 향로석 등은 전라남도에서 항공으로 운반했다. 마음 같아서야 식물과 담장에 쓰인 돌들도 모두 옮기고 싶었지만 통관절차와 운반비 등 여러 이유에서 한계가 있었다. 한국에서야 흔하디 흔한게 돌이고 풀인데 뉴욕에서는 그 흔한 돌과 풀을 찾기가 어려웠다. 원하는 식물과 재료를 얻는 방법은 발품밖에 없었다. 식물 또한 우리 정원이니 당연히 우리나라 식물을 활용해야 했다. 우리 식물을 찾기도 어려운데 원하는 형태의 식물을 찾는 건 더 어려웠다. 뉴욕은 물론이고 뉴저지, 펜실베니아, 메릴랜드 등 주변 농장을 다 돌며 식물을 사고 운반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도 아무나 식물을 살 수 없다는 사실과 공원에서 잡초를 채취하는 것 또한 불법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지난해 카타르에 이어 뉴욕을 경험하며 해외에서의 일들이 쉽지 않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하지만 모든 일을 수행하는 사람 앞에서는 고개가 숙여진다. 사업을 관리하는 입장에서야 과정을 지켜보며 확인하면 되지만 일을 실행하는 황지해작가 입장에서는 매 순간이 힘겨움의 연속이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고난은 한국정원의 조성이 끝날 무렵 찾아왔다. 시간이 부족하다보니 식물식재와 시설설치가 동시에 진행되었고 식물은 황지해작가가 조명과 관수시설은 미국팀이 설치하였다. 그 과정에서 뉴욕 인근을 헤매며 찾아낸 옥석같은 식물들이 가지가 부러지고 꺾이는 피해가 있었다. 특히 중심이 되는 식물들의 피해는 정원의 전체 디자인에 영향을 미쳤고 재수급과 재배치를 통해 간신히 해결할 수 있었다.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식물을 다루는 손이 엄청나게 중요하다는 것도 실감했다. 그런 우여곡절의 시간을 거쳐 가을의 절정에 애양단을 선보였다. 사실 정원조성 과정부터 지켜보던 뉴욕문화원장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정원에 반해 매일 방문하는 손님을 이끌고 정원을 찾곤 했다. 완성한 정원을 선보인 날도 마찬가지였다. 한국과 미국 등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 정원에서 한국인들은 고국의 정취를 볼 수 있음에 감동했고, 미국인들은 다양한 종류의 식물과 한국전통의 시설물이 어우러진 풍경에 감동했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돌틈의 이끼와 담장 지붕에 심은 잡초를 보며 디테일에 혀를 내둘렀다. 뉴욕의 애양단에는 빌딩으로 둘러싸인 탓에 정오 즈음에만 햇살이 내린다. 지는 석양만큼 짧디짧은 찰나의 햇살이 그렇게 따스할 수 없다. 황지해 작가의 주제처럼 이 고귀한 햇살을 내리는 저 태양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까. 뉴욕문화원의 애양단은 세상 모든 사람이 정오에 따사로운 햇살을 받을 수 있는 곳을 넘어 태양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곳이었다. 찰나의 햇살이었고, 그 맛은 소쇄원에서의 햇살이었다. 정원의 힘을 실감했다. 그리고 그걸 현실화한 작가에게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두 번의 해외정원 조성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지난해 카타르의 한국정원 조성 때는 정신없이 어떻게든 해야겠다는 일념이었다면 이번 뉴욕에서는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정원에 대한 한계도 실감했다. 우리는 정원을 예술작품이라 하고 디자인하고 표현하는 사람을 정원작가라고 칭한다. 그럼 우리 스스로가 얼마나 정원을 예술작품이라 생각하고 이를 표현하는 사람을 작가라고 인정할까. 그럼 뉴욕의 애양단을 만들며 얼마만큼 작품으로 대하고 작가로 인정했을까. 공공기관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사업을 수행하는 사람으로 한계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더 허락하고 인정해 줄 수는 없었을까. 예술작품은 영혼의 고통 속에서 잉태되는 작품이라고 일컫는다. 하지만 작품의 아름다움을 위한 고통이 아닌 사회의 인식과 제도로 인한 고통이라면 너무 소비적이고 야만적이지 않은가. K-팝처럼 K-가든을 만들고 싶다면 이런 제도와 인식 먼저 없애야 하지 않을까. 남수환 /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정원진흥실장
- 남수환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정원진흥실장 [email protected]
- 2024-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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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최근 도쿄를 다녀왔다. 10여 년 만에 다시 방문한 도쿄의 변화는 놀라웠다. “도쿄를 바꾼 빌딩들”은 스카이라인뿐 아니라 시민들의 라이프 스타일도 바꿔 놓고 있었다. 두 가지 변화의 접점에는 민간이 창출하여 운영하는 공원녹지가 있었다. 용적률이 올라간 만큼 공공 기여로 조성된 퍼블릭 스페이스는 넓어졌다. 공공 기여분은 면적 베이스로 먼저 정량 산출한 다음, 정성 평가를 통해 용적률을 추가 허용하는 제도가 작동하고 있었다. 공공기여의 내용과 규모는 민간사업자의 제안을 기본으로 하되, 일률적 기준을 따르지 않고 개별 사업별로 심사를 진행한다. 건물 뒤편 후미진 자투리땅에 퍼블릭 스페이스를 조성하던 관행은 사라졌다. 대신 사업 대상지 노른자위 땅에 퍼블릭 스페이스를 조성한다. 시민과 방문객은 더 자주, 더 자유롭게, 더 여유롭게 공간을 이용하고 있다. 공공 공간의 품격이 높아졌다. 건물의 가치도 함께 상승했다. 도쿄역 광장과 야에스 그랑루프, 마루노우치 나카도오리, 미츠비시 브릭스퀘어, 미드타운 히비야, 아자부다이 힐스 등 도심 곳곳에 민간이 공원녹지를 창출하고 있었다. 고층건물의 사업주, 입주사, 주민, 행정이 함께 지역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타운(에어리어) 매니지먼트는 일반화되어 있다. 걸으면서 경험하는 도쿄는 지루할 새가 없었다. 시부야 미야시타공원, 도쿄에서 가장 번잡하다고 하는 도심 속 3층 건물 상부에 만들어진 공원이다. 1층은 공공주차장이고 2층과 3층은 상가이다. 그 위에 공원을 만들었다. 입체공원이라 부른다. 시부야구와 미쓰이부동산이 민관 합작투자 방식으로 조성했다. 옥상공원임에도 많은 시민들이 스포츠와 여가를 즐기고 있다. 공원 중앙부는 스타벅스가 차지하고 있다. 우에노공원에도 스타벅스, 키타야공원에는 블루보틀이 자리 잡고 있었다. 공원 이용률은 높아졌고 재정부담은 줄었다. 임대료로 공원을 관리하고도 남는다 한다. 도쿄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후타고-타마가와공원에도 스타벅스가 있었다. 지방 도시의 공원에도 흔한 사례라고 한다. 일요일 오후, 젊은 부부들이 유모차를 끌고 산책 나와 커피를 즐기는 공원은 활기찼다. 기업과 자본, 인재가 모여드는 도시가 경쟁력이 높은 도시다. 교통, 주거, 교육, 문화 등 도시 경쟁력을 결정하는 요인은 수도 없이 많다. 퍼블릭 스페이스의 품격과 매력이 도시 경쟁력을 높이고 있는 현장을 오랜만에 방문한 도쿄에서 직관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도시들의 정책 목표를 두 가지로 간추리면 도시경쟁력과 시민행복이다. 많은 도시들에서 해야 할 일은 늘어 가는데 재정 부담이 발목을 잡는다. 국가와 지방의 비정상 재정관계 때문이다. 인구구조와 산업지형이 바뀌면서 재정투입 여력은 더욱 고갈되고 있다. 공원녹지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더 넓은 공원과 녹지를 확보하는 일, 확보한 공원녹지를 잘 계획하고 설계하여 품격이 높은 공간으로 조성하는 일, 조성한 공원을 활기찬 공원으로 관리하고 운영하는 일 모두 도시경쟁력과 시민행복에 직결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도시에서 후순위다. 민간의 자본과 창의 활용, 공공성과 수익성 조화는 필자가 조경학 석박사 학위논문을 준비하던 90년대 초반에도 제기되었던 오래된 의제이다. 용적률 상향과 퍼블릭 스페이스의 공공 기여, 공공 기여분의 정성 평가를 통한 공간의 질 제고, 입체공원제도와 공모설치관리제도(Park-PFI) 같은 도쿄의 사례와 제도를 앞에서 짧게 서술했다. 우리나라는 연구와 토론은 있었으되 결과가 없다. 아직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공원녹지 분야 자체가 넘어야 할 허들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민간부문이 공원을 조성한다고? 도시공원을 건물 옥상에다가? 그만큼 용적률을 높여준다고, 특혜 아닌가? 공원에 스타벅스를 허용해도 되는가? 일본도 초기에 겪었던 시비(是非)이다. 공원시설의 민간위탁제도는 과감한 손질이 필요하다. 민간의 자본과 창의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혁신적인 제도가 필요하다. 시민들의 공감을 끌어내는 일도 중요하다. 성공사례가 절실하다.
- 김성진 수원시정연구원 원장
- 2024-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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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시는 아프고 소설은 힘겹다. 단어, 단어를 밟아갈 때마다 날카로운 언어의 날에 마음이 베인다. 어떠한 낙관과 긍정의 실마리도 찾지 못하고 투명한 칼집이 수없이 그어진 마음은 한없이 불편해진다. 아마도 그 불편함 때문에 누군가는 한강을 미워하고, 누군가는 한강을 흠모하는 것이며, 그래서 큰 상이 주어진 것이리라. 벤야민은 예술의 임무는 세상에 섬광과 같은 번쩍임의 순간을 만들어 환영의 틈을 찢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자본의 신화가 만들어 낸 판타스마고리아(Phantasmagoria)의 환영 속에서 소외와 억압이 마치 존재하지 않는 듯 마취된 몽롱한 상태 속에서 살아간다. 소년은 친구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그 삶이 장례식이 되었지만, 작별하지 못한 애도의 서사는 마무리되지 못했지만, 우리는 그런 일이 전혀 없었던 듯 광주에서 맛집 사진을 SNS에 올리고 제주 여행에 찾아갈 테마 카페를 검색한다. 그래 알고는 있지. 슬픈 일이었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어. 아... 그런데, 나더러 어쩌라고. 그 일이 나랑 무슨 상관인데. 새로운 시대의 신화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어깨를 흔드는 정도로 깨어나지 못한다. 하얀 뼈에 쇳소리가 소리가 날 정도로 언어의 칼을 깊숙이 박아 세상에 균열을 내고 힘겹게 벌려야 비로소 진리의 순간이 보인다. 예술은 상처를 내고 찢는 섬광이고 칼날이다. 그래서 아프고, 힘겹고, 불편하다. “치욕스러운 데가 있다, 먹는다는 것엔.” 한강의 문장처럼 나는 채식주의자를 읽은 이후 한동안 남성인 내가 불편하고 치욕스러운 데가 있었다. 오해하지 말자. 그 불편함은 남녀의 구도로 인함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대한 너무나도 투명한, 그래서 묵직하고 쓰라린 성찰로 인한 것이었다. 그러나 수없이 칼집이 난 상처도 금방 아문다. 아무리 날카로워도 섬광은 순간이다. 우리는 다시 아늑하고, 몽롱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살아가고 사실 그래야 한다. 그러나 예술은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남기고, 흉터는 그 섬광과도 같은 아픔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예술의 흉터는 표식이다. 사람들이 정원을 좋아한다. 식물의 녹색과 꽃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준다고 한다. 공원을 산책하는 것만으로 위로를 받는다고 한다. 집에서 식물을 몇 개 키우는 식집사가 되어야 요새 트랜드를 따라간다고 할 수 있다. 전국 방방곡곡에 정원박람회가 열리고 꽃을 심고 식물을 가꾸느라 온 동네가 분주하다. 그냥 이제 그냥 정원이 아니라 정원 예술이라고 한다. 정원 작가도 눈에 띄게 늘고 덩달아 조경가들도 어깨가 으쓱 올라간다. “그래서 정원은 예술이 되었는가?” 원로들이 조경은 종합과학예술이라고 정의했으니 원래 정원은 예술인가? 헤겔이 『미학강의』에서 예술의 대상을 유형화하면서 정원술을 마지막에 다루었으니 예전부터 정원은 예술인가? 정선생님의 조경이, 정원이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되었으니 이제 정원은 예술인가? 한국 정원 예술은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은 자연 그대로를 담아서 한국적 예술인가? 정원이 예술이면 숲도 예술이고, 산도 예술이고, 자연도 예술인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왜 예술인가? 크아, 산도 물도 참 좋네. 예술이네. 그래서 예술인가? 마음의 위로를 주는 예술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 편안함과 위로는 분주한 세상사를 잊고, 시끄러운 논란거리에 귀를 잠시 닫고, 퇴근 후 따끈한 홍합탕에 소주 한 잔 하고 잠드는 그런 종류의 위로인가? 성수동 카페의 멋진 정원이 주는 위로는, 고급진 한강변 아파트의 녹색 연출이 주는 안락함은, 오성급 호텔과 리조트의 환상 같은 조경의 안락함이 정원이 추구하는 예술인가? 상처가 없는 편안함은, 흉터를 남기지 않는 위로는, 표식 없는 예술은 도대체 상품과 무엇이 다른가? “그래서 정원은 예술인가?” 불편함의 정원들. 20살 언저리 배낭여행에서 만난 베르사유 정원은 사진으로 익숙해진 그 풍경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자전거를 빌려 타고 정원을 돌아다니면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처음 보았을 때 자전거로 15분이면 도달할 것 같던 거리는 실제로 한없이 가야만 했다. 공간이 계속 늘어나는 느낌이었다. 시간과 공간이 왜곡되어 비현실적인 장소에 떨어져 돌아가지 못할 것 같은 공포에 가까운 불안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나중에 정원사 수업에서 그 불편했던 공간감은 조경가 르 노트르의 의도였고 원근법의 착시를 이용한 새로운 조경설계의 수법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르 노트르는 베르사이유 정원에서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공간과 시간을 창조했다. 교토 료안지의 고산수 정원을 처음 방문했을 때 바다를 보았다. 료안지의 조경 내용과 수법은 이미 다 알고 있었고, 그런 사의(寫意)의 정원 같은 것은 별것 아니라는 마음가짐을 품었기 때문에 시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원에 들어서는 순간 고요함의 망망대해가 펼쳐졌다. 그 여름의 료안지는 매우 덥고 관광객들로 북적거렸지만, 순간 청량감과 정적이 지배했다. 불편했다. 이론적으로 왜 그런지는 알고 있다. 그런데 이론을 떠나 실제로 정원이 선(禪)의 깨달음과 같은 순간과 감각을 만들어 낼 수 있음에 섬광 같은 충격이 스쳐갔다. 이사무 노구치의 캘리포니아 시나리오(California Scenario)는 아름답고 불편한 공간이었다. 책에서 이 작품을 보고 솔직히 조악하다고 생각했다. 할프린이나 카일리와 같은 미국 모더니즘 조경가의 작품에 비해 마치 도화지에 여기저기 상관없는 원, 삼각형, 곡선의 도형들을 배치한 구성은 엉성해 보였다. 캘리포니아의 산, 물, 돌, 숲과 같은 풍경을 구현한다는 의도도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정원을 방문했을 때 모든 구성이 완벽했다. 아로요(Arroyo)라는 캘리포니아 특유의 강이 있었고 산이 있었다. 숲이 있고 사막이 그곳에 있었다. 그런데 동시에 캘리포니아에는 실재하지 않는 자연이었다. 존재와 비존재가 예술의 형식을 통해 공존하는 데에서 오는 불편한 감각이 순간적으로 나를 지배하여 알 수 없는 전율이 느껴졌다. 사람들은 우돌프의 자연주의 정원이 자연을 닮아 편안하다고들 한다. 인공적이고 화려한 식재보다 수수하면서도 세련된 그의 식재는 자연의 위로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나는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의 정원이 편안하지 않다. 우돌프의 개인 정원인 후멜로(Hummelo)의 정수는 겨울 정원이다. 한 평론가는 후멜로를 “죽음을 위한 정원”이라고 평하였다. 겨울 맞이하여 꽃대를 자르고 씨앗을 받고 잎을 정리하던 정원의 관습을 버리고 검게 변한 꽃대와 갈색 잎들을 그대로 둔다. 모든 색이 무채색으로 변하는 겨울을 위하여 생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담겨두는 식물로 정원을 구성한다. 후멜로의 겨울 정원은 고전적인 정원의 심상과는 너무나도 달라 불편하다. 하얗게 서리가 맺힌 에키네시아의 꽃대와 사초의 얼어붙은 은빛 물결이 처연(凄然)하게 아름답다. 후멜로의 겨울은 죽음 심상이 죽임이 아님을, 실은 처절한 생의 흔적임을, 곧 다시 부활할 봄을 위한 교향곡이다. “그래서 정원은 예술이 되어야 하는가?” 나는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없다. 편안한 정원, 위로의 정원이 불편한 예술의 정원보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반박할 수 없다. 무겁고 불편한 작품만이 예술이고 사람을 기분 좋은 만드는 즐겁고 유쾌한 작품은 예술이 아니냐는 질문에 아니라고 답할 수는 없다. 조경에서 비싼 돈을 들여 만든 고급 아파트나 호텔의 정원은 상품이고 공원이나 광장 같은 공공장소만이 예술로서 자격을 갖춘 것이냐고 따지면 할 말은 없다. 핫플레이스의 카페의 정원이나 정원박람회에서 하트 손가락 사진을 찍으면 유치한 것이고, 국현의 전시에 정원을 보러 것은 고상한 예술 감상이냐고 핀잔을 주면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다. 당신이 하는 말이 다 맞다고 치고, 그래서, 정원이 그런 예술이 되어야 하냐고 물어보면, 그래야 한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런 정원을 하면 좋겠다.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고, 상처를 내고, 흉터를 남기고, 마음을 헤집어 놓아 그날 밤잠을 설치게 하는, 표식을 새길 수 있는 그런 정원이 있으면 좋겠다. 졸업해서 이제는 나름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학생들과 저녁을 먹으며 한강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렇죠, 선생님 말씀처럼 한강 소설은 읽는 것은 꽤 힘들죠. 이해가 어렵거나 문장이 난해해서가 아니라 책장 넘길 때마다 불편하고, 무겁고, 아파서 그렇죠. 그런데, 저는 그 소설을 다 읽고 난 뒤에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 지더라고요. 뭐랄까. 한참 달리기를 해서 목에서 피 맛이 날 정도로 한도에 다다른 후에 편안해지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저는 한강의 소설이 불편한데, 동시에 많은 위로가 되었어요.” 김영민 /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 김영민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email protected]
- 2024-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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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 씨가 집을 고르는 기준은 두 가지다. 근처에 좋은 카페와 공원이 있는 지이다. 그녀에게 좋은 카페란 분위기나 커피 맛보다는 주인에게 달려있다. 환대하는 주인이 있는 카페이다. 주인의 환대는 자신이 그 동네 주민이라는 소속감을 느끼게 해준다. 금호동에 살 때는 ‘8월 It’s August’를 자주 드나들었다. 담백하고 간결하지만 따뜻한 주인의 취향은 인테리어뿐만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도 그대로 묻어났었다. 수다스럽지 않게 내가 이 동네의 누군가와 연결됐다는 안도감을 줬다. 다른 곳으로 이사 간 뒤에도 가끔 들렸는데 지금은 사라져 아쉽다. 그리고 공원. 그녀 스스로 자신의 집을 선택하게 된 이후로 항상 공원 옆에 살았다. 연희동에 살 때는 근처에 궁동산과 안산이 있었고, 금호동에 살 때는 응봉산을 자주 찾았다. 신촌에 스튜디오가 있을 때는 좀 더 걷더라도 경의선 숲길을 따라 출퇴근을 했었다. 지금은 서울숲 옆에 살고 있다. 집뿐만 아니라 그녀가 운영하는 스튜디오도 서울숲 옆에 있다. 사무실에서 나와 몇 걸음만 걸으면 바로 서울숲의 쪽문이 나온다. 덕분에 그녀의 일상은 서울숲과 함께한다. 서울숲을 한 바퀴 걷거나 뛰면서 혹은 명상을 하며 하루를 시작하기도 하고 그야말로 스위치가 꺼질 때까지 서울숲을 걸으며 하루를 마감하기도 한다. 지하철을 타러 갈 때도, 저녁에 마실 맥주를 사러 편의점에 갈 때도,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갈 때도 웬만하면 서울숲을 경유한다. 어제 저녁에는 친구와 샐러드를 포장해서 서울숲에서 먹고 산책하며 수다를 떨었다. 8월의 늦은 여름이라 습하고 모기도 기승을 부렸지만, 조금은 서늘해진 바람과 여전히 남아 있는 여름의 활기가 버무려진 공원 분위기를 포기할 수 없었다. 최근에는 연못과 커뮤니티센터가 있는 일대를 특히 즐겨 찾지만, 그녀는 서울숲의 모든 곳을 좋아한다. 잔디밭, 연못, 작은 정원, 숲, 습지 그리고 계절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 서울숲의 풍경은 넓고 깊다. 그리고 무엇보다 앉은 곳이 다양해서 좋다. 평상, 벤치, 야외무대 주변의 계단, 돗자리를 깔 수 있는 잔디밭, 덕분에 서울숲은 구경하는 공원이 아닌 머무는 공원이 된다. 사람들은 흩어져 다양한 방식으로 공원의 아늑함을 즐기고 또 모여 함께 공연을 보면서 한나절을, 하루를 보낸다. 시간이 만들어내는 서울숲의 풍경도 좋아한다. 곳곳에 조성된 작은 정원이라든가 요즘 트렌드에 맞춰 새롭게 다듬어진 공간도 매력적이지만, 조금씩 하나의 큰 생태계를 이루며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건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녀는 조경 설계에는 문외한이지만 서울숲이 변화에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맞서지도 않고 넉넉하게 품어내는 모습은 우연이 아니라고 본다. 이는 처음부터 설계가의 큰 그림, 즉 단단한 구조와 슴슴하게 담백한 풍경 속에 내재돼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지원 씨가 공원을 좋아하게 된 계기를 굳이 따져본다면, 강동구의 주공아파트에서 자라면서 녹지와 큰 나무에서 받은 위로 때문일 것이다. 정치외교학을 공부한 이로써 공원의 정치학도 좋아한다. 광장처럼 서로서로 핏대를 세워 목소리를 내는 곳도 필요하지만, 시민들이 오롯이 자신의 방식대로 향유하지만 결국은 함께 어우러지는 공원도 중요하다.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공원은 ‘따로 또 같이’하는 곳이다. ‘따로 또 같이’는 지원 씨의 일에 있어서도 중요한 키워드다. 대학 시절 친구들과 대학생들 각자의 고민거리와 질문을 모아 발행했던 독립출판잡지 ’헤드에이크(Headache)’도, 지금 운영하는 농구클럽인 ‘돌핀스’도 강력한 전체를 이루기 위해서 개인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개인을 더 존중하기 위해서 하나로 모은다. 그녀는 돌핀스를 ‘성별이 무엇이든, 실력이 어떠하든, 자기답게 인정받으면서 운동할 수 있는’ 클럽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녀는 개인으로서, 작업의 일환으로서 미래에 공원을 만들고 싶어한다. 혼자 소유하고 즐기는 정원이 아닌, 각자 즐기면서도 함께 하는 공원.
- 김연금 조경작업소 울 대표
- 2024-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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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찾아온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은 순간 눈물이 울컥할 만큼 감동적이었다. 좋아하는 작가이기 이전에 같은 동네 주민이자 늘 지나는 골목의 독립서점 주인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니. 이젠 노벨상 수상작을 원어로 읽는 사람의 반열에 올랐다며 객쩍은 문화적 자긍심까지 덩달아 들썩였다. 스웨덴 한림원은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칙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며,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연결에 관한 독특한 시각을 가진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 평했고, AP통신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등의 성공과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등 K팝 그룹의 세계적인 명성을 기반으로 한국 문화의 영향력이 커지는 시기에, 아시아인 여성이 최초로 수상’한 점을 성과로 꼽았다. 노벨문학상에 비견하긴 어렵지만 상 이야기라면 조경 분야에서도 최근 감격할 사례가 여럿 있었다. 올해 내내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이 땅의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4.5.~9.22)와 다큐멘터리 영화 ‘땅에 쓰는 시’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정영선 조경가는 작년 말 세계조경가협회(IFLA)로부터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최고의 조경가에게만 수여하는 제프리 젤리코상을 받았다. 우리나라 조경의 살아있는 역사라 불려도 손색없는 정영선 조경가에게 주최 측은 “청계천 복원, 선유도공원과 같은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의 조경 디자인을 개척하고 주도했을 뿐 아니라 서구에서 유래한 생소한 풍경(Landscape) 개념을 한국의 땅에 맞게 풀어냈다”고 수상 이유를 밝혔다. 영국 첼시 플라워쇼에서 3번이나 수상한 황지해 정원작가도 빼놓을 수 없다. 2011년 전통 화장실을 정원으로 승화한 ‘해우소’로 ‘아티즈가든’ 부문 최고상을, 다음 해인 2012년 ‘DMZ:금지된 정원’으로 주요 경쟁부문인 ‘쇼가든’에서 전체 최고상(회장상)을 연이어 받으며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오랜 투병기를 이겨낸 황작가는 10여년 만인 작년 5월 다시금 첼시 플라워쇼 ‘쇼가든’ 부문에서 지리산과 약초건조장을 재해석한 ‘백만년 전으로부터 온 편지’로 금상을 받았는데, 한국의 고유한 자연과 그곳에 녹아든 약초와 치유의 문화를 밀도있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상복이 터졌다는 표현은 서울 양천구 오목공원에 걸맞다. 지난 10월 25일 성수동 코사이어티에서 진행된 ‘2024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대상’ 수상식에서 오목공원을 설계한 박승진 조경가(Design Studio LOCI)와 양천구가 대상(대통령상)을 받았다. 대통령상으로 훈격이 높아진 첫해 대상작으로 리노베이션된 공원이 선택된 건 다소 파격적이다. 이로써 오목공원은 ‘서울시 조경상’ 대상과 ‘대한민국 국토대전’ 한국경관학회장상까지 3관왕이 되었다. 아니, ‘대한민국 고효율·친환경 주거 및 건축기자재 대상’과 ‘대한민국 조경대상’처럼 선정은 되었으되 훈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사한 것까지 합하면 5관왕인 셈. 이러한 과분한 평가는 기존의 것을 존중하면서도, 회랑이라는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하드웨어를 재편함으로써 기후위기 극복과 사회적 소통의 기반을 갖춘 점과 주민의 애정 어린 이용과 혁신적인 콘텐츠라는 소프트웨어가 씨줄과 날줄처럼 잘 엮어진 결과다. 층위와 맥락은 다르겠지만 높은 평가와 큰상을 수상하는데 바탕이 되는 공통점이랄까, 속된 표현처럼 일종의 성공방정식은 무엇일까? 먼저, 고유성이다. 한강 작가의 작품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과 제주 4.3사건 뿐 아니라 한국 여성의 고유한 처지를 날것으로 드러낸다. 정영선 조경가와 황지해 정원작가도 한국에 대한 고유성을 재현하거나 한국이라는 필터로 재조성한 콘텐츠를 통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정영선 조경가가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와 같은 원류를 바탕으로 미나리아재비 같은 소박한 우리 꽃을 발굴하거나, 황지해 정원작가가 지리산을 통째로 런던으로 옮겨오고 싶었다는 기획 등이 대표적이다. 오목공원 또한 리노베이션이라는 작업 특성상 기존 구조와 자연과 이용 패턴까지 충분히 존중하는 태도가 높은 평가의 바탕이 되었다. 두 번째는 새로움이다. 1997년 발표되었던 한강 작가의 단편소설 ‘내 여자의 열매’에서 나무로 변해가는 기혼 여성의 이야기가 ‘채식주의자’로 연결되며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이 벌써 20년 전이다. 정영선 조경가가 설계한 선유도공원(2002)은 우리가 외국 사례로만 배워왔던 산업유산의 리뉴얼을 넘어 한강의 재발견과 자연주의 정원에 이르는 새로운 기준점으로 오래전부터 자리잡았다. 황지해 작가의 해우소, DMZ, 지리산이라는 주제 자체가 주는 새로운 충격파도 컸고, 머무름이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오목공원의 ‘회랑’은 미래공원의 현신으로 회자될 정도다. 세 번째는 치열함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격언처럼 완성도 있는 결과물만이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는다. 한림원의 ‘시적 산문’이란 표현만으로도 한강 작가의 수상은 지극히 공감됐다. 정영선 조경가가 선유도공원 준공행사일까지도 현장에 나와 꽃을 옮겨 심었다거나, 황지해 작가가 첼시 플라워쇼 심사를 받으려 입고 나온 드레스 안쪽으로 손과 손톱이 온통 새카맣더라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완성도에 대한 치열함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기획도 환영받지 못한다. 완벽이란 없겠지만 오목공원 또한 구석구석 세심한 설계와 시공에 대해 많은 전문가가 후한 평가를 내주시는 것은 예의 그 치열함의 결과물이다. 마지막으로 시대성이다.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두 작품 말고도 한강 작가의 작품들은 모든 차별과 배제에 연약한 존재로서 단호히 맞선다. 어쩌면 노벨상 수상 자체가 현 시대정신에 부합한다는 극명한 반증일테니. 여의도 샛강에 대형 주차장을 만들려 한 서울시 직원들 앞에서 김수영 시인의 시 ‘풀’을 낭송하며 끝내 생태공원으로 지켜낸 정영선 조경가의 일화나 DMZ라는 공간에서 정원을 통해 분단의 치유를 꿈꾼 황지해 작가도 마찬가지다. 잦은 비와 긴 여름으로 대표되는 기후위기의 일상을 ‘회랑’이라는 새로운 무기로 맞선 오목공원은 그 자체로 이미 새로운 공공공간의 시대적 상징물이 되었다. 수상 후 따라붙는 질문은 늘 “다음은?”이다. ‘누가 다음에 노벨문학상을 받을까?’, ‘누가 제프리 젤리코상이나 첼시 플라워쇼에 도전할까?’, ‘어떤 공공공간이 3관왕을 달성할까?’ 같은 즉물적 질문들. 이 질문은 고쳐 말할 수 있다. ‘우리만의 것을 새롭고 치열하게 만들어 총체적 위기에 맞설 수 있느냐’라고. 그다음 이어지는 질문은 예의 “그렇다면 우리는?”일 것이다. 우리가 하는 일을 어떻게 성공시킬 수 있을까? 서울시를 예로 들면 ‘서울국제정원박람회는, ‘정원도시 서울’은 어떻게 성공적으로 실현할 수 있을까?’ 같은 질문이다. 다만 분명한 점은 한국 문화의 영향력이 더없이 커진 이 시대에는 우리가 참조할 모델만 있을 뿐 따라 할 모델은 없다는 점이다. 결국 정원도시는 우리 고유의 문화와 자연을 근간으로, 기존 정책을 재평가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입해, 시민과 함께 현장에서 치열하게 기획, 집행함으로써, 현재 우리 도시가 맞닥뜨린 기후위기와 불평등, 저출생과 지방소멸, 차별과 소외의 문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만 실현될 것이다. 이것이 정원도시의 성공방정식이다. 온수진 / 서울시 정원도시국 조경과 조경협력팀장
- 온수진 서울시 정원도시국 조경과 조경협력팀장[email protected]
- 2024-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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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의류의 이용 몇 해 전 화성을 테라포밍 테라포밍(terraforming) 하는 시뮬레이션 게임(서바이빙 마스)이 발매됐다. 지의류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다고 하여 직접 실행해 보았다. 녹화시설을 지으면 맨 처음 심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지의류다. 그 이후에 풀과 덤불 그리고 나무들을 심을 수 있게 구현이 되어있다. 생태계 천이의 개념을 게임에 접목시켜 놓은 것이다. 실제로 지의류는 화성프로젝트에 심도있게 연구되고 있다. 화성 테라포밍 연구의 중요한 부분으로서 화성에 고등식물들이 자라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생태계 초기 생물인 지의류를 주요 생물로 선정하였다. 왜냐하면 지구 밖 우주에서 인간 치사량의 1~2만 배에 달하는 방사능 조건에서도 살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가 바로 지의류이기 때문이다. 극한의 환경에서도 생존가능한 지의류 후보로서 2종을 결정하였는데, 바로 ‘치즈지의(Rhizocarpon geographicum)’와 ‘붉은녹꽃잎지의류(Rusavskia elegans)’이다. 화성과 같은 환경을 조성하여 그 조건에서 잘 살 수 있는지 계속 실험중이고 긍정적인 결과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지의류는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를 진단하는 중요한 생물군이다. 이는 구조적으로 세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는데, 첫째 지의류는 큐티클층이 없어 외부로부터 오염물질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둘째, 뿌리가 없고 있어도 가근(가짜뿌리)만 있어 기물에 지지만 할 뿐 기물이나 땅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다. 곧 대기으로부터만 오염 영향을 받는 것이다. 셋째, 이에 반해 식물은 큐티클층이 존재하여 오염물질을 걸러주므로 대기오염에 어느 정도 견디는 것이다. 또한 뿌리도 땅으로 뻗고 있어 식물은 대기와 토양으로부터의 오염을 같이 받게 된다. 결과적으로 지의류가 대기오염, 환경오염에 훨씬 민감한 생물인 것이다. 미국 등 주요 선진국들이 수십 년간 지의류를 활용하여 환경평가를 지속해 오고 있는 점만 보아도 지의류가 기후변화에 매우 민감한 지표 생물군임을 알 수 있다. 지의류는 민속학적인 측면에서도 오래전부터 이용되어 왔다. 주로 차, 음식, 약재로서 이용되었는데, 한국·중국·일본 등 동아시아에서는 대표적으로 ‘석이(Umbilicaria esculenta)’와 ‘송라(Usnea spp.)’가 귀한 약재로 이용되어 왔다. 또한 다양한 색깔을 내는 염색재료로서 지의류가 기원전 2천년 전부터 중국과 남유럽 크레타섬에서 이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북미 인디언인 나바호족 또한 의복을 지의류로 염색하였고 신발을 만들거나 위생, 치료, 의식용으로 지의류를 사용했다고 기록으로 남아있다. 최근에는 가장 유명한 향수(샤넬 no. 5)의 재료로서 싱그러운 숲내음을 위해 지의류가 사용되었다. 또한 ‘스칸디아 모스’라는, 이끼처럼 보이는 이름이지만 실제로는 지의류의 하나인 ‘깊은산사슴지의(Cladonia stellaris)’를 천연염색한 원예 상품이 판매되고 있다. 지의류와 이끼 위의 ‘스칸디아 모스’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지의류와 이끼는 쉽게 혼동된다. 왜냐하면 바위나 나무에 이웃사촌처럼 같이 살고 있고, 심지어 지의류의 이름이 ‘무슨무슨이끼’라고 명명된 게 흔해 더욱 헷갈리는 것이다. 이를테면, 매화나무이끼, 리트머스이끼, 순록이끼, 꽃이끼, 지도이끼, 갑옷이끼 등인데 사실 이들은 모두 다 지의류이다. 지의류와 이끼는 모두 형태적으로 관속이 없고, 광합성을 하며, 번식방법도 비슷하다. 그러나, 지의류는 이끼와 달리 버섯과 같은 곰팡이계에 속하며, 잎·줄기·뿌리로 나뉘지 않는다. 분포지역도 북극에서 남극, 고산에서 저지대 도시까지 위도·경도·고도에 상관없이 지구 전역에 살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 이병권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백두대간보전실 박사 [email protected]
- 2024-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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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미래를 전망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미래를 전망하는 많은 연구와 책들이 있다. 분명한 것은 미래는 지금과 다를 것이고, 변화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질 것이라는 점이다. 예측이 대체로 맞은 경우도 있었고, 벗어난 경우도 있었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우리의 국토도 많이 변화했고, 앞으로는 더욱 빠른 속도로 변할 것이다. 인류의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 유발 하라리는 인류를 위협하는 3가지 요소로 세계대전과 핵전쟁, 생태계 파괴, 파괴적 기술을 꼽고 있다. 기술발전을 기반으로 경제적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기후위기와 빈부격차 등 어두운 면도 상존한다. 우리나라의 관점에서 미래 변화와 관련 중요한 화두는 기후위기, 첨단기술, 인구구조 등이다. 기후위기로 빈번한 기상이변과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더불어 펜데믹의 증가와 생태계의 교란도 일어날 것이다. 첨단기술은 편리하고 빠른 이동성을 제공하고, 세계의 모든 사람을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초연결 사회를 실현하였다, AI의 출현으로 전통적인 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23년 합계출산율은 0.72이고 올해는 더욱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1980년 21.8세이던 중위연령은 2072년에 63.4세에 다다를 것으로 전망된다. 인구는 줄어들고 노인인구 비중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우리의 국토도 이러한 메가트렌드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우리의 국토가 어떻게 변할까? 궁금한 지점이다. 할 수만 있다면 예측하고 미리 대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들을 종합할 때 다음과 같은 4가지를 예측할 수 있고, 조경 분야도 대비가 필요할 것이다. 첫째, 수도권 집중과 도시의 광역화가 더욱 심화될 것이다. 2019년 기점으로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 인구를 추월하였다. 수도권의 양질의 일자리와 다양한 공공인프라가 집중의 원인이다. 많은 균형발전 정책에도 불구하고 기회를 찾아서, 좋은 서비스를 제공받고자 수도권으로 이동하고 있는 현상을 막지는 못하고 있다. 또한 수도권과 비수도권 도시 모두 생활권과 경제권이 확대되는 광역화도 일어날 것이다. 대표적으로 수도권 광역화로 충남 북부와 강원 동부도 수도권 영향을 받는 지역이 되었다. 도시는 확대되고 농촌은 축소되는 현상에 대비하여 도시-농촌 인접부에 대한 친환경적인 관리, 축소되는 농촌지역의 재자연화, 도시에서의 공원녹지 확대를 통한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요구가 증가할 것이다. 둘째, 지방소멸과 고령화 현상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수도권 집중의 반대급부로 지방 인구는 급속히 줄고 고령인구 비중이 높아질 것이다. 부산, 대구, 광주 등 지방 대도시도 예외가 아니다. 많은 정책과 예산이 투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인정하고 다양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균형발전 정책이 지금까지의 인구 관점에서 삶의 질 관점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방의 도시와 농촌에 거주하는 국민을 위해 기본적 요구를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 중요하다. 의료, 교육, 문화, 복지 등 기본수요를 일정 수준 이상 보장하는 것이다. 여기에 다양한 여가시설, 공원, 정원, 도시숲, 생활인프라가 포함되어야 한다. 조경 분야도 기존의 전통적 영역인 공원녹지와 아파트단지 조경에서 보다 다양한 공간으로 영역을 확대할 기회가 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셋째, 초고속 교통망의 발달이다. 이제 전국 반나절 생활권이 되었다. 고속철도 건설은 국토공간의 변화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국토의 광역화와 더불어 이동성 증가로 국토 구석구석이 힐링의 장소가 되고 있다. 대규모 관광지보다 지금까지 찾지 않던 장소가 인기를 얻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소득이 증가하고 이동수단이 발달할수록 다양한 여가공간과 관광명소를 요구하는 수요가 증가할 것이다. 특히, 가성비와 다양성을 추구하는 최근 젊은 세대의 특성을 고려한 관광과 여가공간의 창출이 중요해질 것이다. 넷째, 기후위기와 이에 대응한 탄소중립 실현이다. 온실가스를 줄이는 노력과 더불어 기후위기로 인한 부정적 영향에 적응하는 것도 중요하다. 산림과 공원녹지를 확충하여 온실가스 흡수원을 늘리는 정책이 필요하고, 이상기후로 인한 재해에 대비하는 것도 필요하다.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계 변화를 최소화 하기 위해 자연환경을 잘 보전하는 제도와 노력도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기존 보호지역을 확대하기는 인구밀도가 높은 우리의 현실에서는 어려운 과제일 수 있다. 동일한 면적의 보호지역에서 더욱 많은 온실가스를 흡수할 수 있는 연구도 필요하고, 훼손된 지역을 보다 빠르게 복원시키는 기술개발도 시급하다. 빅데이터와 AI 등 첨단기술을 활용하여 조경 분야의 새로운 시장 확대를 기대해 본다. 지난 반세기는 효율성과 경제성을 중시하는 성장 사회였다. 앞으로는 사회·문화적으로 기초가 튼튼한 성숙사회로 나가야 한다. 성숙사회가 추구하는 바는 한마디로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다. 환경, 사회적 연대, 삶의 질을 중시하는 것이다. 성숙사회에서는 조경 분야의 기여할 바도 더욱 커질 것이다. 또한 분야 간의 벽이 지금보다는 약해지고, 융복합이 강조될 것이다. 분야 간 협력이 조경 분야 생존전략의 필요조건이라 생각한다. 김명수 / 국토연구원 연구부원장
- 김명수 국토연구원 연구부원장
- 202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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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동에 위치하는 다산공원은 그야말로 동네의 중심이다. 직사각형 4면은 모두 도로로 둘러싸여 있고 각각의 도로는 여러 개의 골목길로 이어진다. 공원 일대는 동대문시장과 가까워 의류 관련 소규모 공장이 골목 중간중간에 있고 오래된 주거지의 역할도 하고 있다. 인접한 중앙시장이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로 자리매김하면서 그 영향이 다산공원까지 이어져, 공원을 둘러싸는 건물에는 카페는 물론 베이글 가게, 햄버거 가게 등 젊은이들이 찾는 가게들도 하나둘씩 들어서고 있다. 덕분에 공원은 항상 다양한 이용자들로 하루 종일 북적거린다. 그 많은 이용자 중에는 매일매일 이곳으로 출근하는 이들이 있다. 77세의 영순 씨와 그녀의 친구들이다. ‘다산 공원 6인방’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그녀들은 전용 의자인 빨갛고 파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낮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낸다. 태양의 위치에 따라서,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서 의자의 위치는 정해진다. 가을에는 해가 잘 드는 파고라 옆에, 여름에는 그늘이 잘 드는 야외무대 옆에 의자를 놓는다. 그녀들은 반려견을 산책시키고 가을에는 은행을 줍기도 하고, 음악을 듣고, 전화통화를 하고, 모여서 이야기 나누고, 과일, 커피, 오징어 같은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자신들의 공원생활을 차곡차곡 채운다. 그녀들의 대화 소재는 최고의 콩나물 요리법부터 자식들에 대한 걱정까지 무궁무진하다. 2018년부터 다산공원에 나오기 시작했다는 영순 씨는 아주 성실한 공원생활자이다. 반려견인 마리와 함께 거의 매일, 가장 빨리 공원으로 나온다. 준비도 철저하다. 오후 친구들의 공원생활이 시작하기 전 먼저 나와 의자가 놓일 장소를 청소하고 의자를 가지런히 놓는다. 오후에 이루어지는 공원관리청의 청소로, 그녀와 친구들의 공원생활이 방해될까 봐 자신이 미리 청소를 해두는 것이다. 다산 공원 6인방 중의 또 다른 한 명인 춘희 씨는 근처 다가구 주택의 반지하에 산다. 경기도 안성에 사는 딸이 같이 살자고 하지만 20대에 정착한 이후 쭈욱 살아온 이곳을 벗어나는 건 그녀로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탄탄하게 구성된 생활 영역과 친구들, 이곳에서 그녀는 자유로우면서도 안정감을 느낀다. 물론 자식한테 부담을 주기 싫은 마음도 독립 거주의 중요 이유이긴 하다. 친구들의 전언에 따르면 춘희 씨는 아주아주 바지런하다. 혼자 살고 허리가 휘어 거동이 쉽지 않지만 하루 세 끼를 대충 때우는 일은 거의 없다. 매일매일 정성들여 된장찌개를 끓이고 생선을 굽는다. 그래서 그녀의 집 입구는 저녁이면 맛있는 냄새로 채워진다. 그리고 다가구 주택에 딸린 작은 화단도 열심히 가꾼다. 잡초를 뽑고, 이쁜 꽃을 심는다. 한쪽에는 호박을 심어 호박잎과 호박을 반찬거리로 삼기도 한다. 그녀의 정원이고 텃밭이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주인공 찬실이는 세 들어 살고 있는 집의 주인 할머니와 함께 콩나물을 다듬다가 할머니한테 하고 싶은 거 없냐고 물어본다. 할머니는 하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다고 하면서 늙으니까 그거 하나 좋다고 한다. 그리고 그 둘의 대화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찬실: 진짜 하고 싶은 일이 하나도 없으세요? 그런 사람이 세상에 있어요? 할머니: 나는 오늘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아. 대신 애써서 해. 찬실: 그러면 오늘 하고 싶었던 거는 콩나물 다듬는 거였겠네요. 할머니: 훗, 알면 됐어. 하고 싶은 게 없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한 것처럼, 하고 싶은 것투성이인 다산공원의 젊은이들에게 영순 씨와 그녀 친구들의 공원생활은 얼핏 무료한 시간 보내기로 보일 수 있다. 그녀들의 일상이 쓸쓸해 보일 수도 있다. 하고 싶은 게 많은 그들에게 오늘은 하고 싶은 것을 향하는 시간의 직선 위에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내일을 위한 날이다. 그러나 영화 속 할머니나, 영순 씨와 그리고 그녀의 친구들에게 오늘은 내일을 위한 날이 아니라 하나의 온전한 점이다. 그리고 그녀들은 그 점을 ‘애써서’ 찍는다. ‘오늘’ 하고 싶은 일인 ‘공원생활’을 위해서 미리 청소하고 의자를 내어놓고 친구들과 나눌 음식을 준비하며 꾹꾹 눌러 일상의 점을 찍는다. 다산공원에서의 점은 초록 점이다.
- 김연금 조경작업소 울 대표
- 2024-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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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최근들어 우리나라에서는 정원도시를 표방하는 도시들이 늘고 있다. 갈수록 고밀화되어 콘크리트정글로 불리는 도시에서 건강하고 아름다운 생활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이 전국적으로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어 이러한 현상을 “정원도시운동”이라 부를만하다. 정원도시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단순히 정원을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정원 관련 다양한 행사들도 많아지고 있다. 정원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을 높이고, 정원 품질을 높이기 위한 정원박람회, 그리고 정원관련 제품 및 공사를 뒷받침하기 위한 정원산업박람회가 전국의 지자체에서 열리고 있다. 이밖에도 꽃박람회, 빗물정원, 치유정원, 도시텃밭 등 다양한 형식의 도시형 정원이 만들어지고 있다. 더불어서 정원산업이 활발해지고 일반인의 관심을 끌면서 정원을 전공으로하는 대학의 학과, 즉 정원문화산업학과, 정원문화콘텐츠학과 등도 만들어지고 있어 정원도시운동을 학문적으로도 뒷받침하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정원도시 조성은 초기에 지자체 주도로 시작되었으나, 조성된 정원의 효율적 관리와 지속성을 위해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정원도시 성공의 필수 조건이 되었다. 이를 위하여 일반시민들을 위한 정원교육, 즉 정원사양성, 정원소재, 정원관리, 정원해설 등의 교육이 활성화되고 있다. 공적 영역에서 정원 만들고 가꾸기도 중요하지만 사적영역 즉 개인의 마당이나 거실, 발코니 등 실내 공간의 녹화도 매우 중요하므로 개인 주거공간에 조성되는 정원 혹은 녹화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 아파트는 발코니를 확장하여 실내공간으로 전환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발코니 고유기능을 되살려 발코니정원을 활성화하는 것도 정원도시 추진의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서울시가 최근 ‘푸른도시여가국’을 ‘정원도시국’으로 명칭 변경하며 정원문화 확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음은 과밀된 서울시를 쾌적한 녹색도시로 시민에게 돌려주려는 의지의 표현이자,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현대 대도시들이 가야 할 올바른 방향으로 보인다. 또한 국가건축정책위원회가 작년부터 ‘공원같은 나라, 정원같은 도시’를 정책기조로 삼고 국토공간정책개발에 노력하고 있음은 정원도시운동이 국가적 차원의 정책과도 부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세계는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각종 산업과 도시건설뿐 아니라 사회 각분야에서 전방위적 탄소배출 감소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도시환경측면에서는 생태적 건강성을 증진시켜야하고 이를 위해서는 녹지를 최대한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정원도시가 추구하는 중요한 목표이다. 정원도시는 일상생활 공간을 녹색이 충만하고 쾌적하게 만들어 도시인들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므로 궁극적으로는 녹색이상도시(Green Utopia)를 지향한다고 할 수 있다. 녹색이상도시는 도시 어느 곳에서나 녹시율(눈높이 시야에 펼처지는 녹지면적 비율) 100%를 목표로 한다. 녹시율 100% 달성을 위해서는 지상녹화는 물론이고 수직정원으로 불리는 벽면녹화, 옥상에 만드는 옥상녹화, 그리고 도로상부를 복개하여 녹화하는 덮개공원 등 입체녹화를 적극 도입하여야 한다. 정원도시 운동은 전방위적 도시녹화운동으로 이어져야 하며, 이는 녹색이상도시로 가는 지름길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래전부터 이상도시·사회 (utopia)에 대한 열망이 이어져 왔는데, 그려진 모습은 시대와 지역이 직면한 고유의 정치·사회적 문제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을 표현하고 있어 그 내용은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기술되고 있다. 서양에서는 토마스모어의 “유토피아(Utopia)”, 토마소 캄파넬라의 “태양의 도시(Civitas Solis)”등이 있으며, 동양에서는 도연명의 “무릉도원(武陵桃源)”, 허균의 “율도국(栗島國)” 등이 있다. 이와 같이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모습의 이상도시가 제안되고 있는 것은 절대 불변의 영원한 이상도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 및 지역 상황에 부합되는 이상도시를 찾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21세기 도시발전의 과제는 과도하게 인공화된 환경을 친자연환경으로 회귀시키는 것, 그리고 비인간화되고 몰개성적 도시사회를 친인간적 사회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21세기에 요구되는 이상도시는 ‘녹색이 충만한 이상적理想的 도시·사회’를 말한다. 우리나라 도시들은 갈수록 개발밀도가 높아져 삭막한 콘크리트 사막으로 바뀌고 있으며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탈자연이 아닌, 친자연 삶터를 21세기의 녹색이상도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증대되고 있는 정원, 그리고 정원도시는 이러한 녹색이상도시에 대한 시대적 필요성과 욕구에 부합되는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 정원도시운동이 전국적으로 더욱 확산되어 녹색이상도시(Green Utopia) 건설에 크게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임승빈 / 환경조경나눔연구원 이사장
- 임승빈 환경조경나눔연구원 이사장[email protected]
- 2024-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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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슈벤데너는 발견을 하고 숨을 헐떡이네 그의 렌즈 아래 지의류는 공생체라는 것을 두 종이 서로 함께 의지하여 하나의 삶을 이루네. 꿈속에서 말하기를, 오! 내 사랑 누렇고 누런 곰팡이 달콤한 당분을 먹여주는 조류 곰팡이 손길에 젖고 햇빛에 초록빛 나는 세포 하나하나 – 모두 바위 위에 뿌리내리네 나도 우리로 만들어졌어. 내 연인은 나를 구속하네 해야할 일 그리고 하지말 일과 함께. 나는 햇살을 수확하여 아침으로 딸기를 그녀에게 가져오네. 그녀는 식탁 그릇에 백일홍 꽃 한송이를 띄우며, 여름 땀 냄새로 나를 흠뻑 적시네 우리가 하나가 아닌 둘이 될 때까지. 마치 지의류처럼 우리는 다르다네. 바위와 물이 다르듯이. 바다가 바닷가와 다르듯이. 손이 손잡음과 다르듯이. -딕 웨스타이머 ‘지의류처럼 나는 사랑으로 만들어졌습니다’ - 지의류의 종류 지의류는 모양도 색깔도 매우 다양하고 사는 곳에 따라 전혀 다른 종류가 나타나기도 한다. 우선, 자라나는 형태, 즉 생육형에 따라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 나무처럼 하늘로 뻗어자라는 ‘수상지의류’, 펼쳐진 잎사귀같은 ‘엽상지의류’, 작은 알갱이나 부스러기가 나무껍질이나 바위표면에 바짝 붙은 ‘가상지의류’이다. 두 번째로 자라는 장소, 즉 생활형에 따라 나무껍질에 사는 ‘수피지의류’, 바위에 붙어있는 ‘암석지의류’, 흙 위에 자라는 ‘토양지의류’, 그리고 특별히 나뭇잎사귀 윗면에 자라는 ‘엽권지의류’이다. 천이(succession)라는 생태학 개념을 지의류에도 적용시켜 본다면, 일반적으로 가상지의류가 먼저 나타나고 이후에 엽상과 수상지의류와 같은 구조적으로 더 발달한 지의류가 나타난다. 또한 암석지의류나 토양지의류가 먼저 생겨나고 이후에 나무와 같은 고등식물들과 함께 수피지의류가 나타나는 현상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생태계 발달단계 초기에 엽상이나 수상지의류 일반종들이 나타나기도 하고 반대로 매우 발달한 숲 속에서만 보이는 가상지의류 특수종들이 있기도 하다. 단편적으로 짐작할 수 없는 자연의 난해하고 복잡한 질서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지의류와 공생 1869년 스위스 식물학자 시몬 슈벤데너는, 지의류는 두 개의 상이한 생물(곰팡이와 조류)로 이루어져 있다는 ‘2생명체가설’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당시 주류 식물학자들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히고, 실제로 화학적 분석법의 하나인 정색반응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유명한 핀란드 식물학자 윌리엄 나일랜더로부터 ‘바보’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심한 조소를 받기까지 했다. 그 후, 1877년 독일 식물학자 알베르트 프랑크는 곰팡이와 조류가 서로 파트너인 관계임을 확인하였고, 이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위대한 용어를 만들었는데 바로 ‘공생(symbiosis)’이다. 즉, 우리가 요즘 생물뿐만이 아니라 일반 사회를 설명할 때에도 흔히 쓰는 ‘공생’이라는 말이 실제로는 지의류라는 생물 구성의 난해함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만든 단어라는 것을, 바로 지의류를 위해 생겨난 신조어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알베르트 프랑크 이후, 안톤 드 베리 등 많은 식물학자들이 ‘공생’이라는 용어를 더 일반화시키고 나아가 슈벤데너의 ‘2생명체가설’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경쟁과 갈등으로만 설명되었던 진화라는 개념이 이들에 의해 협업과 상생으로까지 확대되어 (지의류는 그냥 협업이 아니라 계(kingdom)간 협업이지 않은가!) 19세기까지의 진화적 사고를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최근, 인체 소화기관에 여러 박테리아로 이루어진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 즉 장내 미생물이 사람의 감정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나왔다. 또한 지의류를 포함한 여러 생물 세포 속의 미토콘드리아가 실제로는 외부의 독립된 종이었다가 우연한 계기로 세포 속으로 들어와 기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미토콘드리아가 없는 세포는 2~3개의 에너지(ATP)를 만들 뿐이지만, 미토콘드리아가 세포 속에 있는 경우, 미토콘드리아는 필요한 산소를 공급받으며 세포에 필요한 에너지(ATP)를 30여 개나 생산해 주는 상리공생을 보여주는 것이다. 식물 또한 박테리아(남조류)에서 기원한 엽록소가 식물로 들어가 공생하면서 잎을 발달시켜 광합성이라는 큰 역할을 하게 되고 식물의 뿌리는 뿌리 속 그리고 뿌리를 둘러싼 여러 균근곰팡이들이 돌과 흙 속에서 영양분을 뽑아내 식물에 공급한다. 알베르트 프랑크 이전, “하나의 종은 독립된 개체이다”라는 관념에서 “살아 숨 쉬는 모든 종은 서로 의지하는 공생체이다”라고 인식의 대전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지의류가 바로 그러한 전환으로 가는 비밀의 문인 것이다.
- 이병권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백두대간보전실 박사 [email protected]
- 2024-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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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연재 조경인이그리는 미래 재작년이었던 2022년은 한국에 조경이 도입된지 50년이 된 해였다. 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졌다. 지난 50년 동안의 주요 작품을 회고하며, 건설산업의 한 분야로 자리잡은 조경을 위해 노력해온 조경인들의 헌신과 업적을 서로 축하하고 격려하는 자리가 연신 펼쳐졌다. 조경설계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필자에게도 뜻깊은 한해였다. 아직은 불안하긴 하지만, 창업한지 3년차에 접어들면서 그래도 열명이 넘는 동료들로 이루어진 그럴듯한 디자인오피스로 성장하게 되었고, 병아리같던 신입사원들도 이제 어엿한 경력직이 되어서 손발이 착착 맞아가기 시작하면서 웬만한 프로젝트는 자신있게 풀어나갈 정도가 되었다. 3년의 시간이 축척되고 사업자로서의 경험도 쌓여가면서 자연스럽게 조경설계업의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시작은 무사히 버텨내었지만 앞으로의 시간은 과연 우리에게 장밋빛 미래일 수 있을지, 디자인오피스로서 설계적 역량만 잘 키워나간다면 우린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리고 조직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날 따르는 청년들에게 비전을 제시해줘야한다는 책임감도 들기 시작했다. 협력 중인 엔지니어링회사의 홈페이지를 들어가기 위해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했더니 평균연봉이 6천만원 후반대라는 기업정보가 뜨는 것을 보고 나서는 우리 회사에 다니고 있는 훌륭한 디자이너들의 처우가 비교되어서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끼기도 했다. 직장인에게 꿈의 연봉이라는 1억이 설계사무소 직원에게도 꿈꿀 수 있는 금액이 되려면 과연 나는 무엇을 더 열심히 해야할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우선 지금보다 일을 더 열심히할 자신은 없다는 확신은 있었다. 지난 3년의 시간동안 과거 설계사무소 직원이던 시절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갈아넣고 있었기 때문에 더 갈아넣다가는 남아나는게 없을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는 일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데, 이는 결국 설계 용역비의 단가를 높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마침 2021년에 조경업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조경설계 표준품셈’이 공표되었다. 필자는 재빠르게 엑셀파일에 표준품셈 계산을 위한 서식을 만들고 품셈의 기본면적인 5,000제곱미터를 입력해 보았고, 드디어 그 안에서 조경설계업의 밝은 미래를 발견하게 되었다. 면적마다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가 기존에 받아오던 설계비 대비 2~3배까지 산출되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대단한 품셈이 제정되었다니! 그것도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고시한 법적 기준에 근거한 품셈이기 때문에 반드시 적용해야하는 제도이기에 더욱 반가운 소식이었다. 조경설계 표준품셈이 공표된지 3년 정도가 경과하여 2024년이 되었고, 예상대로라면 조경설계업이 품셈을 기반으로 현실적인 설계대가를 받으며 당당하게 채용공고를 내고있어야 하지만, 체감하는 변화는 전혀 없는 상태이다. 오히려 인건비와 물가는 오르고 설계비는 제자리인 탓에 더 쪼그라든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 사이 회사 이름이 더 알려지게 되어 감사하게도 수주 프로젝트의 개수가 상당히 늘어났지만, 각 지자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정원’열풍은 오히려 사업규모를 더 작게 쪼개는 결과를 초래하여 수익성은 낮아지는듯하다. 조경설계 표준품셈은 실무에 반영되고 있긴하다. 기존의 발주방식이 ‘공사비 요율’에 의한 용역비 산출에 따라 진행되었다면, 이제는 조경설계 표준품셈에 따라 ‘실비정액가산방식’을 통해 산출이 되고 있다. 다만 20~50%의 조정율을 적용하여 마지막에는 결국 예전과 같은 수준의 설계비로 회귀시키고 있기 때문에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조정율은 법적, 논리적 근거가 없이 적용되고 있고 용역사 입장에서는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하고 받아들여야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게는 밝은 미래가 있다. 조경설계 표준품셈은 여전히 법과 제도라는 테두리에서 우리 업계를 뒷받침해줄 든든한 기반이고, 우리는 이를 주장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공공발주사업의 공원녹지분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대지의 조경에도 똑같이 적용하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설계용역 대가 산출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지금이 우리의 가치를 주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의 시기이다. 지난 2023년에는 한국조경가협회가 재창립되어 활동하기 시작했고, 올해는 정영선이라는 브랜드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조경가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좋은 기회의 장이 펼쳐지고 있다. 지난 50년간 그래왔던 것처럼, 모두의 마음을 모아 2021년에 보았던 조경의 밝은 미래가 실제로 눈앞에 펼쳐지길 기대한다. 이남진 / 바이런 대표
- 이남진 바이런 대표
- 2024-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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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낙원이에요. 우리들은 모두 낙원에 살고 있어요. 만일 하느님의 은총으로 내가 더욱 오랫동안 살게 된다면 그때 난 당신의 시중을 들겠어요. 인간이란 누구나 할 것 없이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물론 세상에는 주인과 하인의 관계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죠. 그렇지만 저분들이 내게 베풀어 주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저들을 위해 일하겠어요.”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중에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은 의아해하지 마시라. 지의류라는 생소한 생명체를 소개하는 글에 뜬금없는 제사(題辭)라고, 낙원이니, 하느님의 은총이니, 주인과 하인이니, 서로 베풀고 돕는다는 이야기가 다 무슨 소리냐고 반문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글을 다 읽고 나면 지의류를 생각하며 다시 한 번 제사를 곱씹어 보리라 의심치 않는다. 알았든 몰랐든 간에 우리는 거리에서, 공원에서 그리고 숲 속에서 이끼나 이끼같은 무언가가 가로수나 바위에 피어있는 것을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무껍질이나 바위가 오랜 시간을 지나면서 얼룩이 진 것을 기억하기도 하고, 좀 더 호기심과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백두산같은 고산의 수목한계선 너머 바위 너덜에 마치 페인트를 칠한 것처럼 한 사면 자체가 레몬 빛깔로 펼쳐진 것이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을 지도 모른다. 먼지가 켜켜이 쌓인 얼룩일까? 이끼일까? 아니면 곰팡이일까? 이 알 수 없는 생명체, 바로 지의류에 대해 설명해보고자 한다. 이 글은 해설서까지는 아니더라도 가급적이면 새로운 생명체에 낯설은 여러분의 심기를 최대한 거스르지 않으며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전통을 따라 지의류의 정의를 내려보면, 지의류는 지의균(lichen fungi)과 광합성 파트너로 이루어진 생물이다. 지의균은 지의류를 만드는 곰팡이를 뜻하고 광합성 파트너는 광합성을 하는 조류(algae)나 박테리아(cyanobacteria, 이하 남조류)를 말한다. 지구상에 지금까지 약 15만 종의 곰팡이가 알려져 있고 그 중 약 2만 종의 곰팡이가 지의류이다. 여기서 독자들은 지의류와 곰팡이가 같은 것인가 헷갈릴지 모른다. 조금 어려워질 수 있는 이야긴데, 분류학에 대해 잠깐 설명이 필요하지만 독자의 상식을 더 채워주는 유익이 있을 것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5개의 계(kingdom)로 나뉜다. 그 어떤 생명체도 이 5계에 들어간다는 말이다. 중학교 시절 생물시간에 들었던 ‘종속과목강문계’가 어렴풋이 기억날 것이다. 생물을 분류하는 가장 높은 단계가 ‘계’이고 5계가 바로 동물계, 식물계, 균계, 원생생물계, 원핵생물계이다. 앞의 3계는 익숙하지만, 뒤의 2계는 다소 생소하다. 뒤의 2계 이름은 잊어버려도 좋다. 다만 지의류를 구성하는 광합성자가 뒤의 2계에 속한다는 것만 알고 가자. 앞서, 전통적인 정의로서 지의류는 지의균과 조류 혹은 남조류로 구성된다고 하였다. 지의균은 당연히 균계에 속할 것이고, 조류는 원생생물계, 남조류는 박테리아로서 원핵생물계에 속한다. 그렇다면 지의류는 사실 2가지 혹은 3가지의 다른 계에 속하는 생물들의 결합인 것이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지의류는 버섯과 달리 곰팡이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닌데 곰팡이로 분류를 하는가? ‘현재는 그렇다’가 정답이다. 모든 분류는 인간이 편리하게 이해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지의류를 구성하는 생물 중 조류나 남조류에 비해 지의균이 훨씬 다양하기 때문에 지의균을 따라 분류하면 더 세분하여 이해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지의류의 조류는 약 100 종, 남조류는 약 10여 종 되는데 비해 지의균은 약 2만 종이나 되기 때문이다. 다양성 측면 말고도 지의균을 분류의 기준으로 하는 이유는 또 있다. 관계성 측면에서 볼 때, 지의균은 조류나 남조류가 살 거처를 마련해주고 조류나 남조류는 광합성을 통해 지의균에 양분을 제공하는 주인과 하인의 관계로 보이기 때문이다. 마치 곰팡이가 주인이고, 조류와 남조류는 하인으로서 농사를 짓는 곰팡이농업의 곰팡이농장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인과 하인의 관계가 항상 1대 1인 것은 아니다. 실제 지의류를 절편을 내어 현미경 아래 관찰해 보면, 지의균 1종류에 조류·남조류가 1종류인 경우가 흔하지만, 지의균 1종류에 조류·남조류가 여러 종류이거나, 지의균 여러 종류에 조류·남조류가 1종류인 경우도 있고, 심지어 지의균 여러 종류에 조류·남조류 여러 종류인 경우도 있다. 즉 균류와 광합성자가 1대 1, 1대 다, 다대 1, 혹은 다대 다의 여러 다양한 방식으로 지의류는 살아간다. 서로 돕고 살아가는 인간의 방식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전통적인 지의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최근 전통적인 정의를 뒤흔드는 연구가 나왔다. 지의균과 광합성자에 더해 ‘제 3의 생물’로서 효모가 지의류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이 효모는 지의류 표면에 살면서 지의류가 생산하는 유용한 물질(2차대사산물)과 깊은 관련이 있다. 실제 현미경으로 지의류를 살펴보면 주인인 지의균과 하인인 조류·남조류이외에 잠시 머물러 있는 손님같은 다른 종류의 균들과 조류 혹은 알 수 없는 모양들이 지의류 표면이나 속에 숨어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마치 지의류라는 집의 문앞에서 노숙하거나 집 안에서 잠시 하숙하는 것 같지 않은가! 아직도 다 밝혀내지 못한 지의류를 둘러싼 이 모든 생명체를 생각해 본다면, 지의류는 이제 하나의 생명체가 아니라 거대한 컨소시움을 이루는 하나의 생태계로까지 여겨질 수 있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지의류를 마주 칠 기회가 있다면 보이지 않는 그 모든 생명들과 아울러 살아가는 아주 작지만 거대한 생명체를 보면서 인간사회와 다르지 않다고 곱씹어 보면 좋겠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신의 섭리 혹은 자연의 의지로 태어나 서로 돕고 살아가는 조용한 생물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병권 /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백두대간보전실 박사
- 이병권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백두대간보전실 박사[email protected]
- 2024-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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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도시여가국이 정원도시국으로 바뀌었다. 2013년부터 서울시의 공원녹지의 정책을 총괄했던 푸른도시국은 10년 동안 썼던 이름을 버리고 정원도시국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 이름이 모두의 마음을 만족시키지는 못했던 것 같다. 언론에는 명칭 변경의 과정에 대한 여론 수렴이 부족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하고, 학계와 업계의 원로들이 새로운 이름을 못마땅해하며 항의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정원도시국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은 이들은 정원의 개념이 공원이나 녹지가 다루는 영역을 포괄하기에 너무 제한적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정원도시국이 정원에 틀에 갇혀 도시적인 문제를 다루기보다 장식적으로 여기저기 꽃과 풀만 심게 되어 그 역할이 축소되지는 않을까라는 우려도 있다. 이름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푸른도시국이라는 이름을 붙일 때도 공원녹지의 이름을 버리고 모호한 문학적 수사를 내켜 하지 않았던 이들도 있었다. 푸른도시라는 이름을 버리고 공원녹지국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푸른도시 선언을 한 이후에 푸른도시국으로 돌아간 후에야 자리를 잡은 시행착오의 과정도 있었다. 이름보다 저 중요한 것은 정원도시국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지향할 것인가를 진단하고 고민하는 일일 것이다. 어쨌든 서울의 공원녹지의 미래와 비전은 앞으로 정원도시라는 이름으로 만들어가야 하니까 말이다. 개인적으로 정원이 최선의 대안이었는지 몰라도 푸른도시국의 새로운 이름은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2022년, 여가 관련 부서가 푸른도시국에 들어오면서 푸른도시여가국이라는 임시방편 같은 이름을 갖게 되었다. 2023년, 오세훈 시장은 서울의 새로운 공원녹지의 방향을 담은 정원도시 선언을 발표한다. 이는 서울의 공원녹지 정책에서 천만다행의 일이었다. 오세훈 시장의 취임 직후 발표한 새로운 시정의 비전에 공원·녹지의 역할은 사실상 없었다. 전임 시장과 정치적 철학도, 정책적 비전도 다른 오세훈 시장이 대대적인 부서의 재편을 단행하면서 전임 시장의 선언이 담긴 푸른도시국을 그대로 유지했다면, 이는 공원녹지 분야에 대한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서울의 공원녹지 정책도 변화가 필요했다. 꼭 시장이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제 한국 사회가 경제적으로 성숙해지고, 인구감소와 고령화라는 돌이킬 수 없는 숙명을 받아들여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시점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많은 녹지와 큰 공원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였던 과거 성장기의 양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이제는 질적인 공원·녹지의 변화를 추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전문가의 관점에서 정원이 너무 가볍게 느껴질지 몰라도, 시민들이 공감을 쉽게 이끌어내기 위해서 정원이 주는 일상에 더 가깝고 친근한 느낌은 새로운 이름으로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필요한 것은 가시적 성과이다. 사실 선언은 일종의 포장이다. 선언의 성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 선언은 정책 결정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건축, 토목, 디자인,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정원도시 못지않은 선언과 기획이 있었다. 문제는 서울링과 새로운 세종문화회관, 노들섬과 세운상가의 레노베이션, 용산국제업무지구 등 이미 언론에 발표된 조 단위의 대형 프로젝트들과 비교하면 공원·녹지의 변화는 소소하게만 느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많은 냉소주의자는 정원도시 선언을 곧 잊힐 이벤트 정도로 생각했으며 정원이라는 이름으로 별다른 성과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2023년의 선언 이후 2024년의 푸른도시국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여주었다. 정원도시 선언을 현실화할 첫 단추로 동행·매력정원이라는 다수의 소규모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구마다 26개의 정원을 상반기에 만들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국제라는 타이틀을 달게 된 2024년 서울국제정원박람회는 역대 최단기간 최다 방문객을 유치하였다. 그리고 여러 민간기업을 참여시켜 역대 가장 많은 수의 양질의 정원으로 뚝섬한강공원을 변모시켰다. 이 모든 것이 나무랄 데 없이 완벽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최소한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질적인 변화를 단기간 내에 보여주고 언론과 정책 결정자의 관심을 이끌어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정원도시 선언을 통해 무엇인가 실제적 성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기대치는 높아졌다. 그런데 초기의 성과는 말 그대로 초기의 성과이기 때문에 성공적이었다. 곳곳에 꽃과 풀을 가득 심어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작은 정원들을 만들어 호평받았다고 해서 이런 정책만을 계속 추진한다면 정원도시의 회의론자들의 예언처럼 될지도 모른다. 정원도시국은 여기저기 꽃과 풀이 가득한 사진찍기 명소만 양산하는데 그칠 뿐 도시에 대한 본래의 역할과 비전을 영영 상실할지도 모른다고. 나는 새로운 정원도시국이 이러한 걱정과 우려를 보기 좋게 틀렸다고 말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렇기 위해서는 정원도시국이 명심해야 할 몇 가지 전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양적 패러다임으로의 회귀를 경계하고 질적 패러다임의 정책적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 정원도시가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나의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만들겠다는 정책적 변화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더 많은 녹지, 더 큰 공원, 더 빽빽한 나무라는 보편적인 구호는 무의미하다는 것은 자명해 보인다. 인구감소가 예정되어 있는 서울에서, 더 이상 대형 공원을 지을 땅이 남아 있지 않은 이 도시에서 이제는 양적 팽창의 시대에 간과했던 세세한 질적인 요소들을 챙길 때가 되었다. 정원도시국은 매력동행 정원의 성과에 힘입어 1,000개의 정원을 짓겠다고 한다. 물론 1,000개의 정원이 새로 만들어지면 우리의 삶은 풍부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100만 평, 1000만 그루, 1000개와 같은 목표는 결국 숫자를 채우기 위한 정책으로 변질되는 것을 너무나 자주 보아왔다. 1,000개의 정원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정원을, 어떻게, 어디에, 누구를 위해 만들 것인가라는 정책적 디테일이다. 둘째, 우리가 당면한 더 큰 과제를 다룰 수 있는 새로운 정원의 개념을 추구해야 한다. 사람들은 정원이 예뻐서 좋아한다. 그러나 정원을 만들고 도시에 녹색이 풍부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예뻐서, 기분이 좋아서가 아니다. 설령 사람들이 정원이 예뻐서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서울시의 한 국 전체가 나서서 사진찍기 좋은 포토존을 많이 만들어주는 것이 정책의 궁극적 지향점이 될 수는 없다. 정원도시국의 중요한 선례가 되었던 싱가포르는 2021년 50년 넘게 추진한 “정원 속의 도시(City in Garden)”라는 정책을 버리고 “자연 속의 도시(City in Nature)”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그 이유는 전지구적인 기후변화의 위기 속에서 새로운 공원녹지의 패러다임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뿐만 아니다. 예외 없이 세계의 선도적인 도시들은 이제 모두 기후변화 대응, 지속가능한 개발, 사회적 형평성 등 우리 시대가 당면한 주요한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공원과 녹지를 재규정하고 있다. 정원도시 서울의 정원 역시 사계절 꽃이 만발하여 예쁜 정원이 아니라 더 큰 시대적 소명을 위한 새로운 매체가 되어야 한다. 셋째, 정원의 테두리에 스스로 한정하기보다 기존의 공원과 녹지의 한계를 넘어 도시의 영역으로 역할을 확장해야 한다. 앞서 이야기한 기후변화 대응과 사회적 형평성의 재고와 같은 전세계 모든 도시에 주어진 과제는 공원과 녹지에 더 큰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더 나아가 과거 공원과 녹지의 영역이 아니던 건물과 도로, 기반시설까지 녹색의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서울도 다르지 않다. 서울시는 도심 대개조를 위해 개방형 녹지의 개념을 도입하였다. 녹지는 도시계획의 과정 끝에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요소가 아니라 도시의 구조를 바꾸기 위해 선결적으로 제시되어야 하는 매체가 되었다. 정원도시국은 후속 사업으로 공원 내 건물을 녹화하고, 공공건물에 실내정원을 확대하고, 기존 공원에 식재 특화를 그랜드가든을 제시하겠다고 한다. 이것이 전부라면 공원과 녹지를 넘어 도시를 변화시키기보다 기존의 공원과 녹지의 테두리에서 한 발짝도 못 벗어나는 셈이다. 녹색이 지닌 힘은 생각보다 크다. 정원이라는 개념은 도시를 모두 포괄할 수 있을 정도로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넷째, 정원도시의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과 계획적 로드맵을 마련하여 실현해 나가야 한다. 앞으로 서울에는 1,000개의 매력정원과 기존 공원을 업그레이드할 그랜드가든이 만들어질 예정이다. 그런데 여기저기 많은 정원, 큰 정원을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많은 크고 작은 정원에 어떤 역할을 부여하고 연계하여 도시를 변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구상과 전략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심도 있는 리서치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과 전문가들의 조언과 협력이 필요하다. 단기간 내에 눈에 띄는 성과도 중요하지만, 오랜 기간이 걸릴지라도 도시의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 낼 전략 플랜도 필요하다. 그리고 실현을 위해서는 개별 공간의 조성 뿐 아니라 운영과 유지관리에 대한 전략도 필요하다. 많은 사례들은 식재 특화에만 초점을 맞춘 공공공간은 수많은 재원이 소요되거나 금세 황폐화되어 버린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초기에 주목할만한 성과를 보여준 정원도시는 그 성공을 교훈 삼아 이제는 통합적이고 복합적인 여러 단계의 실질적인 전략과 계획을 마련해야 할 때이다. 김영민 /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 김영민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email protected]
- 2024-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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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정책이란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방책”이라고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정의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정부가 수립하는 정책은 공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결정하고 수행하는 행동방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을 시행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방침과 전략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계획이 정책기본계획이다. 경관법 제6조에는 국토부장관이 아름답고 쾌적한 국토경관을 형성하고 우수한 경관을 발굴·지원·육성하기 위하여 경관정책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시행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경관정책기본계획 수립에 대한 조항은 2007년 경관법 제정 당시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으나 2013년 전부개정(2014년 2월 시행)을 거치면서 정책 기반을 형성하기 위해 도입된 수단으로서 도입되었다. 필자는 운 좋게 2014년 제1차 경관정책기본계획(2015~2019)과 제2차 경관계획기본계획(2020~2024) 수립에 참여하였고, 이제 제3차 경관정책기본계획(2025~2029) 수립 용역을 수행 중에 있다. 동일한 정책계획 수립에 세 번이나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정책연구자로서 매우 영광스럽기도 하지만 그만큼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중 가장 곤욕스러운 일은 “경관법(또는 정책기본계획)이 생기고 경관이 얼마나 좋아졌느냐?” 그리고 경관법이 언제 그 수명을 다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 경관법이 다시 살아나느냐?”하는 질문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제3차 경관정책기본계획 수립 연구를 시작하면서 처음부터 다시 살펴보기로 했다. 경관법 제정 당시부터 전부개정, 그리고 1차 기본계획 수립, 2차 기본계획 수립 등 그간 경관정책이 형성되어 집행되어온 과정을 차근차근 돌아보면서 현재 경관정책은 어떻게 추진되어 왔는지를 되짚어보고 그 성과와 한계를 나름대로 정리하고 있다. 처음 정책기본계획이라는 것을 수립하던 당시에는 제1차 경관정책기본계획의 성격과 방향을 설정하는데 여러 전문가들과 많은 고민을 했던 기억이 난다. 국토에 대한 경관마스터플랜인지 아니면 국토경관 관리를 위한 로드맵인지... 결국 후자로 결론짓고 경관 관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확산하고, 지자체 경관관리 역량과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2개의 정책목표, 3개의 추진전략, 8개의 정책과제, 그리고 61개의 세부사업을 계획하였다. 그리고 국토경관 헌장 제정, 경관행정 우수사례 경진대회 시행, 경관협정 시범사업 추진, 공무원 대상 경관행정 교육프로그램 개발 등 나름의 성과를 냈다. 제2차 경관정책기본계획은, 경관심의 등 경관관리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됨에 따라 제기된 제도의 실효성 문제, 특히 실제 경관 관리가 필요한 상황임에도 그렇지 못한 것을 개선하기 위해 지역 경관관리체계의 실행력 강화에 중점을 두고 3개의 정책목표, 3개의 추진전략, 6개의 정책과제, 그리고 46개의 세부사업을 도출하였다. 추진성과로는, 국토교통부가 비도시지역 경관관리, 경관자원조사, 경관심의 등 제도 개선 관련 연구를 주로 진행한 반면, 본격적으로 경관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지자체 차원에서 경관심의 기준 및 운영 개선, 지역자원조사 실시, 경관협정 사업 시행 등 가시적인 성과를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두 계획을 나란히 놓고 보면 비전은 같으나 계획의 목표와 추진전략에 따라 과제의 성격과 추진성과에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국토경관 관리에 대한 문제, 즉 경관정책 추진의 한계가 지적되고 있다. 필자는 그 원인을 경관이라는 개념의 속성에서 일부 찾고자 한다. ‘경관’이라는 개념은 정책대상으로 정의하기에는 너무나 추상적인 개념이다. 경관이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기준도 주관적이어서 정책이 달성해야 하는 국토경관의 관리에 대해 이해도 개인마다 차이가 크다. 그러다 보니 정책목표 달성 정도, 즉 정책추진의 효과를 측정하기 매우 어렵다. 게다가 경관은 경관법에 의해 컨트롤 할 수 없는 다양한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즉 경관법의 제정사유에는, “자연경관 및 역사·문화경관을 보전하고 도시·농산어촌의 지역특성을 고려한 경관을 형성함으로써 아름답고 쾌적하며 지역특성을 나타내는 국토환경 및 지역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중략)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려는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현재 경관법에 근거한 관리수단 대부분은 도시적 경관을 관리하는데 적합한 것들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국민들이 개선이 필요하다고 인식하는 자연경관이나 농촌(어촌과 산촌 모두 포함)경관, 그리고 역사문화경관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는 것처럼 느낄 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싶다. 뿐만 아니라 경관법 또는 경관관리 수단(정책기본계획 포함)과 전혀 무관한 상황에 의해 경관이 훼손되고 그것이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을 경관법과 경관정책기본계획에서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최근 사회적 여건이 급격하게 바뀌면서 정책 여건도 변하고 있기에 조금은 기대해 본다. 제3차 경관정책기본계획은 올해 안으로 어느 정도 윤곽을 잡아 많은 사람들 앞에 공개될 것이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좋은 의견이 다시 필요한 시점이다. 이상민 /건축공간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이상민 건축공간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2024-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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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가히 정영선 조경가의 해다. 마치 한국조경 50주년이 올해였나 싶을 정도. 지난 식목일에 오픈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전시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와 지난 4월 17일 개봉한 정영선 조경가의 다큐멘터리 “땅에 쓰는 시”는 한여름으로 접어든 현재까지도 장안의 화제다. 수많은 조경 분야 인력들의 땀방울이 대지에 뿌려진 역사가 바탕이 되었겠으되, 이를 대표해 팔순의 할머니 조경가가 AI가 대세인 이 시대의 핫한 아이콘으로 등극하다니, 그 맥락을 따라 읽다 보면 상상 이상으로 흥미롭다. 지난 7월 3일에는 국현 전시와 연계해 “정영선이 만든 땅을 읽다”라는 학술행사도 열렸다. 방대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정영선 조경가의 작품들을 다종다양한 철학과 경험과 시선과 정책으로 예리하게 읽어내는 자리라 무척 풍성했다. 특히 이 자리에서 김아연 서울시립대 교수는 전 국토가 정원이 되어야 한다는 정영선 조경가의 표현과 전국적으로 정원도시라는 슬로건 아래 비슷비슷한 정원이 만들어지는 현실을 대비하며, 정영선 조경가가 이미 수십 년간 공원 등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보여준 정원들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그 순간 십여 년 전 선유도공원 소장 시절이 떠올랐다. 한여름 노루오줌을 주인공으로 다양한 초화류가 어우러지던 ‘시간의 정원’이 눈앞에 펼쳐지며, 선유도공원에서 시도된 다양한 정원들이 갑자기 소환된 것. 당시 설계자인 정영선 조경가를 모셔 정원이나 시설 개선에 대한 자문을 받거나 도시정원사(이후 시민정원사로 확대) 양성 강의를 부탁드리곤 했는데, 오실 때마다 공원 곳곳을 돌며 공간과 정원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주셨기에 가능한 기억이었다. 생각은 선유도공원 조성시 공사 감독을 했던 선배 공무원들이 “경험해 본 적 없던 다양한 정원형 식재 설계를 고집하며 정영선 조경가가 현장에서 손수 심고 옮기고 하는 바람에 준공일을 맞추느라고 무척 마음을 졸였다”던 하소연 섞인 말씀으로까지 이어졌다. 전국적인 정원도시 붐 속에서 도시의 공원과 가로변 같은 공공공간에 짜임새 있는 정원이 무수히 들어서며 주민들께 선명한 인상을 심어주기 시작했다. 하나 선유도공원이 개장한 지 22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정원형 조경(식재) 설계는 공무원에게 부담인데, 다름 아닌 유지관리 때문이다. 아직까지 공공의 녹지관리는 전정기와 예초기가 그 중심이다. 군식된 관목과 초화류를 전정기가 선두에서 거칠게 쳐내면 예초기가 바닥을 사정없이 난도질하고 그 남은 잔해를 블로어(송풍기)로 불어 마대자루에 담는 식이다. 드넓고 산재된 공간에 관리인력은 늘 모자라니, 빠른 시간내 많은 구역을 헤집으며 이동해야만 한다. 이마저도 2~3개월이 지나면 도로 잡초밭이 될 수밖에 없어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란 표현이 적확한 상황. 정원으로 조성된 공간은 관리방식이 전혀 다르다. 지난달 말 자연주의 정원으로 이름 높은 제주 베케정원을 동료 직원들과 함께 방문했을 때 해주신 김봉찬더 가든 대표의 말이 떠올랐다. “잡초는 잘 뽑지 않아요. 힘도 들지만 억지로 뽑아내면 그 땅이 비워지면서 다른 잡초가 싹이 터 올라오죠. 작은 낫으로 잡초 중간을 툭툭 끊어 기세를 잠재워요. 잡초가 주춤하는 그 사이에 우리가 원하는 식물이 햇볕을 받으며 캐노피를 장악하죠” 사실 잡초도 흙을 일구고 표토의 유실을 방지하는 등 생태계의 일원이기에 정원식물이 잘 자리잡는 수준 안에서 지혜롭게 제어하는 것도 필요한데, 분절된 크고 작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해야만 하는 공공에선 선뜻 적용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결국 정원 관리는 전문가의 손길이 필수적이다. 우선은 당초 설계와 시공을 담당했던 가드너가 조성 직후부터 한시적이나마 주기적으로 관리에 참여하는 것이 설계 의도를 지속하는 데 효과적이다. 그 공간을 늘상 관리하는 현장관리팀이 이 과정에 함께 결합하며 자연스럽게 관리의 연속성이 구축되어야 한다. 더불어 현장관리팀의 개별 근로자에겐 지속적인 가드닝 교육과 실습이 오랜 기간을 두고 뒤따라야 하는데, 1년 단위로 채용하는 시스템이 걸림돌이기도 하다. 여기에 한걸음 더 나간다면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직접 가드너 교육과 현장 실습을 받고 계절마다 지역의 정원을 가꾸어 나가는 것이 베스트 오브 베스트다. 주민 가드너의 대표적 사례가 2013년부터 서울시에서 시행중인 ‘시민정원사’ 제도다. 기본 교양교육에 해당하는 시민조경아카데미는 현재까지 2,949명을 배출하였고, 1년 가까운 기간에 걸쳐 180시간의 가드닝 이론 및 실습교육을 받는 시민정원사 양성과정을 모두 마치신 분들도 756명에 이른다. 양성된 시민정원사들은 (사)서울시민정원사회 회원으로, 구청이나 각 공원의 가드닝 자원봉사자로, 기존 정원박람회장의 정원 관리자로, 가드닝 전문강사 등으로 맹활약 중이다. 2024년 뚝섬한강공원에서 개최하고 있는 서울국제정원박람회장에도 주기적으로 정원관리 자원봉사에 참여하며 오롯한 행사 주체의 하나로 자리매김할 정도. 자치구도 시민정원사를 활용한 정원 조성 및 관리에 적극적이다. 서울 양천구의 경우 2021년 7월 서울시에서 기 양성한 시민정원사 중 양천구에 거주하는 21명을 양천구 정원친구(자원봉사자) 1기로 위촉한 뒤, 첫 프로젝트로 신정3동 신정허브원을 조성하며 주민 가드닝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4년차인 현재까지 총 3기 49명의 정원친구가 양천구청역 앞 해누리정원 등 양천구 관내 9개 매력정원 조성, 관리를 자원봉사로 진행하는데, 작년 한 해 92회 1,136시간 동안 활동했을 정도다. 여기에다 그린페스티벌, 반려식물 분갈이 서비스 등 각종 관련 행사에도 적극 참여하고, 이와 병행해 전문가의 특강과 실습 등 역량 강화교육를 주기적으로 받음으로써 자칫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자원봉사 활동을 보완하고 있다. 영등포구에서도 작년부터 다종다양한 정원 조성사업에 시민정원사를 적극 활용하는 등 그 흐름이 확대되는 추세다. 정원도시가 단순히 정원을 많이 만드는 방식으로만 이룩될 수는 없을 것이다. 도시 전체가 계획 단계마다 녹지를 충분히 확보하고 숲과 녹지와 수계를 이어나가는 네트워크를 통해 생물다양성과 보행성을 높여야 한다. 자연지반을 확보하여 비옥하게 관리하는 한편으로, 인공지반을 최대한 자연에 가깝게 만들어 적극 활용해야 한다. 가로와 건축물을 더 정원친화적으로 유도하고 공공에서 가정까지 크고 작은 정원이 빼곡한 그물망처럼 도시를 점령해 나간다면 일견 멀게만 느껴지는 정원도시라는 미래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도시 구성원 모두가 이러한 비전을 함께 공감하고 공유해 나가는 컨센서스다. 그러하기에 좀 더 자주 정원도시를 이야기하고 논쟁해야 한다. 1902년 영국의 사회개혁가인 에베네저 하워드(Ebenezer Howard)가 주창한 정원도시가 지금의 비전과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조경가가 계획하고 정원사가 만들고 가꾸는 정원도시(Garden City)라는 현실적 개념 또한 선언적 수준에서 벗어나 참여와 실천에 방점을 둔 가드닝시티(Gardening City)로, 또다시 모든 시민이 정원사로 활약하는 정원사의 도시(Gardener’s City)로 확장되어야 한다. 체계적 시민교육을 바탕으로 모든 시민이 정원사가 되어 정원과 공원과 도시를 가꾸는 초록한 정원도시를 상상해 본다. 온수진 / 서울시 정원도시국 조경과 조경협력팀장
- 온수진 서울시 정원도시국 조경과 조경협력팀장[email protected]
- 2024-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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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신유정 기자] 아담한 마당의 장미정원부터 웅장한 수목원까지, 보살핌이라는 정원적 삶의 태도를 통해 소중한 삶의 균형감각을 찾아 마음을 산책해 볼 수 있는 책이 발간됐다. 신간 ‘정원의 위로’는 30년 가까이 신문기자 생활을 해 오면서 꽃과 나무, 새소리와 숲의 매력에 푹 빠져 조경학을 공부하는 ‘산림교육전문가’(숲해설가)가로맨틱한 위로, 일의 위로, 폐허의 위로, 시간의 위로, 감각의 위로 등으로 국내 아름다운 정원과 공원을 소개하는 책이다. 저자는 국내·외 많은 정원들을 방문했고, 우리나라에도 해외의 유명 정원들 못지않게 아름다운 정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그동안 방문한 수많은 개인 정원, 서울과 지방 수목원, 대형 국가정원 가운데 감동을 주는 이야기가 녹아 있는 24곳을 선정해 담았다. “제가 요즘 정원들을 다니면서 깨닫는 것은 정원이야말로 문학, 예술, 자연, 산업, 과학, 동 서고금을 망라하는 통섭의 장소라는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마음의 부유물을 걷어내고 나 자신과 고요하게 대화할 수 있는 생명의 공간입니다” 저자는 정원에서 ‘끊임없이 애정을 갖고 지켜보는’ 따듯한 유대감,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은’ 미학적 감수성, 겨울 정원에서 찾아내는 낯선 아름다움, 미완성된 수수한 것들에서 발견하는 충만함, ‘화려하건 조용하건 모든 순간이 아름답다는’ 삶의 감각을 통해 위로와 회복이 있는 나만의 시크릿가든을 찾아 떠난다. 우리를 위로가 되는 공간으로 안내하면서 회복을 제안하기도 하고, 기존의 문법을 뒤엎는 공간을 소개하면서 새로운 도약을 촉구하기도 한다. 정원에서 ‘힘들어도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삶의 태도와 ‘평범한 일상을 감탄으로 채우는’ 힘을 배우며, ‘감탄의 순간들이 삶을 지탱하게 해준다는 것을’ 깨닫는다. 정원 산책은 단순한 여가 활동을 넘어서 삶의 철학과 태도에 대해 숙고하게 해준다. 이 책에는 “올바른 목적에 이르는 길은 그 어느 구간에서든 바르다.” 같은 묵직한 괴테의 문장을 음미하게 하는 ‘여백서원’이 있는가 하면, “인생은 한 길만 있지 않아.”라고 유쾌하게 격려하는 ‘스누피가든’도 있다. 모과 냄새가 향긋한 ‘사유원’은 “세상에 없는 정원을 만들기로 결심한 결과”이며, 호암미술관의 ‘희원’은 영화 ‘땅에 쓰는 시’의 주인공 정영선 조경가의 한국적 미학의 결실이다.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은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기업가적 혁신의 산물이다. 이 밖에 김영하 아보카도나무가 있는 국립세종수목원, 특별한 진념이 서려 있는 순천만국가정원, 목련의 종류가 가장 많은 천리포수목원, 치유가 있는 신구대식물정원, 그리고 홍경택 화가의 옥상정원처럼 예술가들이 쉼을 얻는 공간도 소개한다. 저자 김선미는 그들이 사는 세상을 정성껏 가꾸는 정원사들을 부러워하고 존경한다. 오랫동안 예술과 패션을 사랑하다가 식물과 정원의 매력에 푹 빠졌다. ‘산림교육전문가’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 서울대학교에서 조경학 전공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저서로는 ‘지금, 여기, 프랑스: 혁신, 창업, 교육, 문화, 예술 등 현재 프랑스를 말하다’ 등이 있다.
- 신유정[email protected]
- 2024-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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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얼마 전 한 건축 관련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올해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일본의 야마모토 리켄의 인터뷰 기사다. 그는 한국의 건축 현실을 이렇게 꼬집는다. “한국은 한국 건축가들에게 제대로 설계할 기회를 주지 않아요. 온갖 제약과 규제에 묶여있죠. 한국 건축가들이 불쌍합니다. 자유도가 전혀 없어요. 그러면서 나 같은 외국인에게는 자유롭게 건축할 수 있게 해줍니다. 한국에서 유명한 건축물은 거의 외국인 건축가의 작품이에요. 이상합니다.” 맞다. 참 이상하다. 내심 전부터 스스로 느끼고는 있었지만, 한 발 떨어진 타국 건축가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다니 왠지 검증받은 팩트가 된 느낌이 들었다. 뭔가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한국의 문화 역량은 이미 세계적 수준에 도달한지 오래다. 음악과 미술, 영화는 물론이고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앞에 K자를 달고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데 건축은 대표적인 조형 예술의 한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그 와중에 조경 분야 세계 최고의 상을 정영선 소장님이 수상하신 것은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정부도 유독 건축 분야의 후진성이 께름칙하기는 했는지 몇 년 전 국토부발로 ‘넥스트 프리츠커 프로젝트’라는 사업을 추진한 적이 있다. 이웃나라인 일본은 상이 제정된 1979년 이래 무려 아홉 명의 수상자를 배출했지만, 우리나라는 언제 첫 수상자가 나올지 가늠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이 사업은 해외의 선진 설계기법을 배워오라며 건축가들에게 해외 연수의 기회를 주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사업은 건축계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소위 해외 유학파가 발에 채일 정도로 넘쳐나는 마당에, 해외 선진 설계 기법을 몰라서 우리네 건축 문화가 발전을 못한다는 국토부의 진단은 번지를 잘못 짚어도 한참을 잘못 짚었다는 주장이었다. 말하자면 문제는 설계 능력 부족이 아니라 설계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 불거진 시흥시 문화원 갑질 논란 또한 우리나라 건축 설계 환경의 척박함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간단히 말하자면 발주처인 시흥시가 문화원 건립 사업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사전검토와 심의과정을 받은 다음 사업비는 그대로 둔 채 규모를 제멋대로 키워서 공모전을 내보내고, 당선자가 선정되자 공사비에 맞추어 설계할 것을 요구한 사건이다. 불합리한 공사비 산정을 근거로 발주처에게 증액을 요청하던 건축가는 계약의무 불이행으로 계약해지를 당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6개월 행정처분까지 받아야 했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다른 사례는 얼마든지 많다. 에둘러 찾지 않아도 그냥 공공건축을 한 번이라도 겪어보기만 하면 하나의 온전한 건축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누구든 깨닫게 된다. 당선된 안이 온전하게 지켜질 수 있도록 보호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자문이다 심의다 해서 누구든 자리에 모셔놓으면 설계안을 꼭 뜯어고쳐야만 자기 역할을 충실히 했다고 믿는 선배 건축가들과 교수들 탓에 배가 산으로 가기 일쑤다.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금액을 맞춰 납품하고 나면 임의 변경이 몸에 밴 현장 소장, 감독관들과의 신경전이 기다리고 있다. 건축사(제도적 측면에 대한 내용이라 건축가 대신 건축사라는 직명을 선택했다)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종종 자조 섞인 한탄이 나오기도 한다. 뭘 잘해서 언론에 실리는 경우는 거의 없고, 사고나 논란, 비리와 같은 안 좋은 일이 생겨야만 건축사를 들먹이니, 건축사라는 자격증을 가진 집단 전체가 문제만 일으키는 집단처럼 비춰지고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권한은 제대로 주지 않고 책임만 묻는 꼴이다. 10여 년 전 설계사무소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우리나라의 건축 문화 자체가 빈약하기 때문이라고, 국가의 경제력이 탄탄해졌으니 건축 문화에 대한 인식도 점차 바뀔 거라고 믿었다. 그렇게 되면 건축가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설계가 어떻게 비슷한 공사비를 들이고도 건축물의 가치를 올릴 수 있는지, 원하는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건축가에게 어떤 식으로 요청을 하면 되는지 사람들이 깨달을 거라 생각했다. 글쎄,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의 건축 문화에 대한 인식 자체는 많이 좋아진 것 같다. 안도 타다오나 노먼 포스터의 전시에 엄청나게 많은 인파가 몰리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그런데 야마모토 리켄의 말대로라면 그게 딱 외국 건축가들까지다. 국내 현업 건축가로서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는 것도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제도와 절차는 좀 더 합리적이고 정교하게 바뀌었을지언정,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들의 마인드는 제자리걸음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건축가들의 입장에서 보면 새로운 시도는커녕 말이 되는 건축을 만들어내는 것만을 목표로 삼아도, 예산과 시간의 부족에 더해 건축가로서의 자긍심을 짓밟는 사건의 연속으로 몸과 마음이 다 너덜너덜해지지 않고는 프로젝트를 끝낼 수가 없다. 제목으로 던진 “왜?”라는 질문의 답을 나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건축가, 또는 건축사라는 집단이 균질적이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제도는 균질적인 집단을 가정하고 만들어졌는데 말이다. 또 어쩌면 공공건축을 몇몇 설계사무소들이 불공정한 수단을 통해 독점하고 있던 시절에서 충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 신뢰를 제대로 심어주지 못한 일종의 업보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유야 어쨌든, 에너지의 90% 이상을 설계 자체가 아니라 설계를 지키는 데 써야 하는 지금의 우리네 건축가들은 또 하나의 극한 직업을 몸소 실천하는 중이다. 다만 다른 극한 직업과의 차이가 있다면, 창작자로서의 의지를 버리기만 하면 모든 것이 편해진다는 것. 아마도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인 건축가가 나오기 힘든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한다. 이승환 / 아이디알 건축사사무소 소장
- 이승환 아이디알 건축사사무소 소장
- 2024-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