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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어바니즘의 가능성을 말하다
브랜드 어바니즘의
가능성을 말하다
카페, 쇼핑몰 등 핫플레이스 거리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많다. 이른바 제3의 장소들이 공원과 광장 같은 공공 공간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시민의 휴식을 수용하는 공공 공간의 부재로 생긴 틈을 도시와 시민의 관계를 촘촘하게 연결하며 ‘장소 만들기’를 시도하는 기업 브랜드가 나타나면서 더욱 다변화되고 있다. 이처럼 어떤 브랜드가 공간 브랜딩을 통해 도시의 경관에 깊숙이 개입하고 나아가 도시의 장소를 만들어가는 과정과 현상을 ‘브랜드 어바니즘’이라 부르기도 한다.
브랜드 어바니즘을 기반으로 한 공간은 도시생활자의 일상에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변화를 이끄는 공간 브랜딩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조경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조경의 근본적 가치를 잃지 않는 공간 브랜딩은 무엇이고, 브랜드를 위한 조경은 공공 공간을 대체할 유사공원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번 특집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을 바탕으로 브랜드 어바니즘에 대한 여러 가지 시선을 담았다. 브랜드 어바니즘의 현주소를 살피고 새로운 도시 담론으로서의 가능성을 진단한다. 이번 기획이 브랜드 어바니즘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다양한 해석과 논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작점이 되기를 바란다. 진행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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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가 재구성하는 도시의 장소성 이원제
공간 브랜딩을 위한 조경의 가능성 김희원
메타로깅하는 도시생활자 권정삼
브랜드로서의 조경 그리고 바이오필릭 디자인 유승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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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어바니즘의 가능성을 말하다] 브랜드가 재구성하는 도시의 장소성
우리는 도시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예를 들어 도쿄는 거대한 회색 미로처럼 느껴진다. 3,800만 인구가 밀집한 메트로폴리스, 세계 최대 규모의 대중교통망, 고밀도로 솟은 회색빛 콘크리트 건물로 이루어진 도시 풍경은 도쿄를 일컫는 ‘콘크리트 정글’이라는 표현이 낯설지 않게 한다. 물론 도시 중앙 황거 주변의 정원과 같은 상징적 녹지가 존재하지만, 전체 도시의 색조를 바꾸기엔 역부족이다. 도쿄의 일상은 여전히 회색 건물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도시의 물리적 풍경은 도시생활자의 심리에도 깊이 스며든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연을 그리워하고, 녹지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회복과 치유의 신호가 된다. 바이오필리아(biophilia)라는 용어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연과의 연결은 단지 휴식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한 정서적 생존 전략이다. 현대의 도시생활자는 단순히 공원을 원하기보다 일상의 여정 속에서 자연과 접속할 수 있는 장소를 원한다. 가로수가 내어주는 그늘, 점심시간에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녹음 속 테이블, 퇴근 후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야외 테라스에 조성된 작은 녹지 공간이 더 절실해지는 이유다.
문제는 도시가 이를 허용하지 않는 데 있다. 도심의 밀도는 계속 높아지고, 부동산 개발은 이윤 중심으로 작동하며, 전통적인 의미의 공공 공간은 점차 축소되고 있다. 이러한 틈에서 도시생활자의 ‘자연과 연결되고 싶은 욕망’을 받아들이고 있는 주체는 공공이 아닌 브랜드다. 카페, 호텔, 복합 문화 공간, 라이프스타일 숍 같은 상업 공간에 점차 더 많은 녹지를 담고 있으며, 상업 공간을 설계할 때 더 많은 사회적 상호 작용과 복합적 경험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이제 브랜드는 단순히 상품을 파는 것을 넘어, 도시생활자의 일상과 감정을 조율하는 디자이너이자 프로듀서로서 공간을 기획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최근 ‘브랜드 어바니즘(Brand Urbanism)’이라는 개념으로 정리되고 있다. 이는 브랜드가 도시 공간의 기획 단계부터 참여해, 상업성과 공공성, 기능성과 감성, 자연성과 인공성을 통합한 새로운 유형의 도시 장소를 설계하는 전략이다. 브랜드 어바니즘은 도시의 밀도와 속도, 도시생활자의 욕망과 피로, 그리고 그 안에서 더 나은 삶을 위한 공간적 가능성을 직시하며 작동한다.
특히 도쿄와 같은 초고밀도 도시에서 브랜드 어바니즘은 더 복합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도쿄에서는 지금도 대규모 재개발이 진행 중이다. 이는 도쿄 전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도시 노후화 현상, 특히 쇼와 시대에 형성된 업무 지구의 기능적 한계와 공간적 경직성에 대한 대응이기도 하다. 그만큼 도시생활자의 삶과 일의 방식도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도시계획, 부동산, 브랜드 전략이 동시에 작동하는 이 시점에서 ‘어떤 공간을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은 ‘누구를 위한 도시인가’로 직결된다.
최근 도쿄의 공간 전략은 이를 좀 더 실질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도시생활자는 더 이상 주거와 일로부터 여가가 물리적으로 분리된 삶을 살지 않는다. 도심 곳곳에서는 일, 여가, 생활이 분리되지 않고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 새로운 형태의 공간 전략들이 등장하고 있다. 예컨대 오피스를 벗어나 일시적으로 집중할 수 있는 업무 공간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높지만, 전통적인 사무실은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어렵다. 이에 따라 도심의 호텔이나 오피스 건물 내에는 맞춤형 미팅룸, 라운지, 비즈니스 환대 서비스가 통합된 공간이 분산 배치되며,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최적의 성과를 낼 수 있게 지원하는 도시형 업무 거점 공간이 생겨나고 있다.
이런 흐름은 하이브리드 업무 확산과 맞물려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단일 오피스가 모든 사람에게 모든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며, 제3의 장소가 유연하고 민첩한 공간 전략의 핵심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는 작업자의 선택권뿐 아니라, 공간 자체의 유동성과도 연결된다. 출퇴근 시간에 대한 피로가 커진 지금, 집과 사무실의 중간적 형태로 거리가 가까우면서도 새로운 자극을 주는 작업 공간은 하이브리드 업무를 지원하는 실질적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
또 다른 흐름은 퇴근 후 잠시 들러 재충전할 수 있는 장소에 대한 요구에서 비롯된다. 도심의 터미널이나 유동 인구가 밀집한 상업 거점에 조성되는 ‘몰입형 여가 허브’는 최신 콘텐츠와 소비 경험을 통합해, 바쁜 도시생활자가 짧은 시간 안에 즐거움과 영감을 동시에 얻을 수 있도록 설계된다. 한편 주거지 인근에는 장보기, 세탁, 택배 등 일상적 활동을 하면서 이웃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일상 밀착형 생활 거점’이 제안된다. 이들은 단순한 편의 시설이 아니라, 커뮤니티 중심의 일상 거점으로 기능하며, 통근과 집안일에 소모되는 시간을 줄이고 가족이나 친구,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되찾도록 돕는다.
이렇게 세 가지 전략은 각기 다른 장소와 사용자, 목적에 따라 삶과 일, 여가의 균형을 조율하는 방식으로 도시민의 삶을 재구성하고 있다. 이들은 공공성과 상업성, 일과 여가,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넘나들며 도시생활자의 삶과 일, 그리고 놀이 리듬을 설계하는 공간들이다.
바로 이 접점에서 조경 설계는 브랜드 어바니즘과 전략적 동맹을 맺 는다. 조경은 도시생활자에게 자연을 돌려주는 방식이자, 브랜드 경험 을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매개체다. 조경은 이제 단순히 시각적 장식이 아니라, 도시생활자의 감정을 수용하고, 머무르게 하며, 연결하게 하는 촉진 장치가 된다. 조경이 담긴 테라스, 반쯤 열린 정원, 나무로 둘러싸인 공용 공간은 브랜드가 제공하는 이야기와 정체성을 일상 속에서 끊 임없이 체화하게 만든다.
지금부터 이러한 흐름 속에서 브랜드 어바니즘이 실제 공간에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를 조망해보고자 한다. 시모키타 선로 거리(Shimokita Railroad Street), 하마초 호텔(Hamacho Hotel), 도라노몬 힐스(Toranomon Hills) 의 티마켓(T-Market) 세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조경 공간이 공간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일상성과 공공성을 매개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각 사례는 규모와 맥락, 이용자에 따라 상이하지만, 도시생활자의 감각과 리듬에 깊이 공감하며 설계됐다는 점에서 하나의 흐름을 공유한다.
시모키타 선로 거리
시모키타 선로 거리는 단순한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넘어, 도쿄의 라이 프스타일 변화에 맞춘 새로운 도시 공간 실험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곳은 오다큐(Odakyu) 전철 노선의 지하화로 생긴 유휴 철도 부지를 따라 조성된 선형 공간으로, 공공 공간과 상업, 문화, 주거 공간이 느슨하게 얽히며 살고, 일하고, 놀 수 있는 일상 복합 지대를 구성한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자연을 도시 구조에 끌어들인 공간 조직이다. 기존 도심 재개발이 보여주는 밀도 위주의 개발과 달리, 시모키타 선로 거리는 전체 부지의 26% 이상을 녹지로 확보하며 사람과 자연, 커뮤니티 간의 관계 회복을 시도한다. 수목과 초화류, 수변 요소를 도시의 골격처럼 배치하고, 이 자연 요소를 따라 건축물을 들쭉날쭉하 게 배치해 시각적 틈과 바람길, 채광을 만들어낸다.
그 결과 이곳의 녹지 공간은 도심 속 생태 흐름의 일부가 형성되었고, 실제로 이 지역에서만 관찰되는 조류와 곤충 145종이 기록됐다. 주민들은 이 녹지를 단순한 조망이 아닌 직접 가꾸고 사용하는 커뮤니티 기 반의 공유 자산으로 인식하고 있다. 예컨대 시모키타 원예부 같은 단체는 주민들과 함께 식물을 가꾸고, 아이들과 조경 체험을 진행하며, 녹지 위에서의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
시모키타 선로 거리의 외형은 뉴욕의 하이라인이나 서울의 경의선숲 길처럼 선형 공공 공간의 범주에 해당할 수 있지만, 그 공간 구성과 지 역성과의 관계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하이라인이나 경의선숲길이 주로 산책로(road)로 기능하며 경관 감상과 보행 경험에 집중한 반면, 시모키타 선로거리는 선형 공간을 따라 점점이 배치된 소규모 상업과 문 화, 커뮤니티 시설이 거점으로 작동하며 일상의 접점을 만들어낸다. 다시 말해 이곳은 단순히 걷는 길이 아니라, 다양한 만남과 활동이 일어나는 거리(street)다.
시모키타 선로 거리에서 거리라는 표현은, 이 프로젝트가 단순한 부 동산 수익 개발이 아닌, 지역 주민과의 상생을 전제로 한 마을 만들기 실험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도시 한복판에 조성된 이 선형 복합 공간은 주민들의 생활이 실제로 펼쳐지는 커뮤니티의 장이며, 자연과 사람, 상업과 일상이 맞닿는 느슨한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특히 이러한 공간들이 단순히 구경하고 소비하는 곳이 아닌, 생활자 중심의 유연한 라이프스타일을 수용하는 인프라로 설계됐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업무와 휴식, 지역 커뮤니티 활동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하나의 흐름 안에서 이어지는 구조는 다양한 도시생활자들의 필요에 대응하며 지역 중심의 맞춤형 업무 및 환대 공간이라는 새로운 유형을 제안한다. 카페에서는 일하는 사람과 육아 중인 주민이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이웃들이 함께 자전거를 세워두고 장을 보는 풍경은 소비와 교류 가 중첩되는 일상적 장면을 만든다.
하마초 호텔
하마초 호텔은 단순한 숙박 시설이 아닌, 도심 속에서 지역성과 자연성 을 동시에 회복하려는 실험적인 시도로 등장했다. 이 프로젝트는 도쿄 니혼바시(Nihonbashi) 하마초 일대의 커뮤니티 개발을 위한 핵심 거점으로 기획됐으며, 그린과 크래프트맨십(Green and Craftsmanship)이라는 개념을 중심에 두고 전개됐다. 호텔을 기획한 일본 건축사무소 UDS 디자인은 단순한 부동산 개발이 아닌 지역 재생의 전략적 거점으로서 호텔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이곳을 단기 숙박객은 물론 인근 지역 주민, 장기 체류자, 일하는 사람들 등 다양한 계층을 수용하는 복합 공간으로 구성 했다.
하마초 호텔이 들어선 니혼바시 하마초 지역은 스미다강(Sumida River)에 인접한 비교적 조용한 주거지이며, 인근에는 하마초 공원이 위치해 있다. 하마초 호텔은 이러한 입지적 조건을 적극 수용하며, 인근 공원의 녹지와 연결된 도심 속 자연과의 공존이라는 주제를 전반적인 설계에 반영했다. 호텔의 대상지는 대규모 개발지나 중심 업무 지구의 중심이 아닌, 일상적인 도시 조직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이로 인해 호텔은 ‘목적지’가 아니라 ‘일상과 연결되는 장소’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건축적으로는 다양한 스케일의 녹지를 통해 자연이 스며드는 공간을 지향한다. 도쿄 중심부의 콘크리트 밀집 지역에서 드물게 볼 수 있는 바이오필릭 건축적 접근이 적용됐고, 호텔의 정면과 저층부, 테라스, 로비, 레스토랑 공간에서 객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위에서 식재가 적극적으로 활용 되었다. 단순히 녹색 장식의 차원을 넘어, 이 식재는 호텔 이용자의 시선과 동선을 부드럽게 이끌고, 각 층위 공간 사이의 심리적 경계를 완충하는 조경 장치로 작동한다. 이러한 설계는 자연과 공예, 그리고 인간의 삶이 얽힌 미묘한 균형감을 구현하며, 건물로 들어서는 순간, 마치 도시 속 정글에 들어온 듯한 감각을 제공한다. 이 호텔은 숙박 공간에 그치지 않고 지역성을 드러내는 쇼윈도이자 커뮤니티 플랫폼으로 기능하며, 획 일적인 도심 호텔과 차별화된 경험을 제안한다.
도라노몬 힐스의 티마켓
도라노몬 힐스 스테이션 타워 지하 2층에 조성된 티마켓은 대규모 복합 개발의 일환으로 조성된 오피스 중심지 내에서 도시 일상에 새로운 감 각적 리듬과 생활 밀도를 제안하기 위해 기획됐다. 과거 이 일대는 밀도 높은 고층 업무 시설이 밀집된 곳으로, 정형화된 동선과 단조로운 공간 감각이 지배적이었으며, 일만 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해 왔다.
이러한 도시 맥락을 전환하기 위해 티마켓은 ‘지하철역 입구에 펼쳐 진 실내 정원’이라는 콘셉트로 내부 공간을 실외처럼 느껴지도록 설계 했다. 진입부를 터널형 구조로 연출해 방문자의 심리적 속도와 감각을 조정한다. 특히 조명 설계는 이 공간의 시간성을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만드는 핵심 요소로, 낮에는 자연광을 닮은 밝은 조명으로 개방적이고 활동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저녁에는 점차 어두워지는 조도로 전환 되어 실내임에도 시간대에 따라 분위기가 변하는 ‘도시의 하루’를 체험 할 수 있게 한다. 이는 도심에서 자연의 흐름을 공간 감각으로 재해석한 사례로 실내 환경을 공공 공간처럼 체험하도록 유도한다.
공간 구성은 정형화된 푸드코트가 아니라, 고유한 개성을 가진 상점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시장과 정원이 결합된 공공 공간으로 기획됐다. 제과점, 브루어리, 식자재 상점, 라이프스타일 숍 등이 분절되지 않 고 하나의 도시 단면처럼 연결되어 있고, 음악, 조명, 일러스트 등 다양 한 감각 요소들이 사용자 경험을 층위별로 감싼다. 특히 도라노몬 힐스 오피스에 근무하는 직장인들은 이곳을 단순한 식음 공간으로만이 아니 라, 회의나 원격 업무, 짧은 휴식을 병행할 수 있는 다목적 공간으로 활 용하고 있다.
이처럼 티마켓은 단순한 소비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도시인의 일상 리듬을 다시 조율할 수 있는 도심 속 여유의 장으로 기능하며, 이동 중 머무름과 몰입, 업무와 여가가 느슨하게 연결되는 감각적 접점을 제안 한다. 정원 같은 시장, 도심 속 중정, 음식과 시간의 플랫폼이라는 복합 적 속성이 중첩되며 도시 일상에 새로운 공간적 밀도를 부여하고 있다.
도시는 우리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까
앞서 살펴본 세 가지 사례는 도시생활자의 새로운 리듬, 즉 삶과 일, 여 가가 교차하는 일상 속에서 장소성이 어떻게 새롭게 짜여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도시는 우리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까. 도시에 대한 기억은 단지 시각적인 풍경이 아니라 우리가 일하고 걷고 머무르며 겪는 감각의 총합으로 남는다. 나무 사이로 햇빛이 스며드는 골목을 걸으며, 발코니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잠시 숨을 고르고, 지하 중정의 초록 이 감싸는 공간에서 누리는 풍요로운 순간들 속에서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도심 속 자연을 경험한다. 이제 도쿄는 더 이상 회색의 콘크리트 정글로 기억되지 않는다. 도시생활자의 일상 속에 직조된 초록의 간들은, 도쿄라는 도시를 조금씩 다르게 기억하게 만든다. 그 기억은 점 점, 회색에서 초록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이원제는 상명대학교 커뮤니케이션디자인전공 교수다. 누구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일하며 즐기는지가 라이프스타일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 아래 국내외 다양한 공간과 도시생활자 간의 상호작용을 관찰하며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SPC 그룹, UDS 코리아, SEL 인테리어 디자인, 폴인, 롱블랙의 자문 교수 등으로 활동했다. 최근 맘스터치 브랜드 리뉴얼 및 혁신 매장의 공간 디자인을 진행했다. 저서 및 번역서로 『도시를 바꾸는 공간기획』, 『인간을 위한 도시 만들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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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어바니즘의 가능성을 말하다] 공간 브랜딩을 위한 조경의 가능성
온 공간이 브랜딩으로 시끌벅적하다. 온갖 산업, 기업, 개인이 각자의 탁월함과 고유함을 뽐내기 위해 세상에 없던 정체성과 경험을 만들고 있다. 디자인 산업에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직업이 생겨났다.(각주 1) 세상이 세상에 없던 브랜드만의 경험을 원하니, 특정 디자인 분야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기획자가 필요해진 것이다. 이들은 새로운 경험과 독특한 공간을 기획하기 위해 그래픽, 가구, 건축, 예술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든다. 새로운 수요로 인해 건축 시장의 지형도 바뀌고 있다. 최근 몇년간 건축가들은 카페, 스테이, 리조트를 중심으로 공간적 실험을 거듭해 건축적 경험 자체가 방문의 목적이 되는 새로운 공간 수요를 만들어 냈다.(각주 2) 이 모든 변화에 ‘공간 브랜딩’이 있다. 이는 매번 새로운 경험을 제공해야 했던 브랜드가 공간적 체험에서 발견한 묘수다. 디자이너에게는 분야의 굴레에서 벗어나 더 큰 그림을 그려볼 기회가 됐고, 전문 분야에서는 대중적 공감을 바탕으로 시장의 지형도를 바꿔볼 전환점이 됐다. 공간 브랜딩 현상에 조경을 대입한다면 어떨까. 브랜드의 요청으로 조성된 조경 공간이 많아지고 있는지, 세상에 없던 경험을 위해 새로운 조경적 실험이 이뤄지고 있는지, 이로써 대중의 공감을 얻고 조경에 대한 시장의 수요를 바꿔가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각주 3)
『환경과조경』이 소개하는 프로젝트만 보아도 기업 브랜드와 조경가의 협업은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각주 4) 실내 조경에 조형, 미디어, 시각 디자인을 연결하는 새로운 작업도 눈에 띈다. 이렇게 만들어진 브랜드 팝업 및 플래그십 공간, 기획 전시를 디자인 업계에서 오히려 더 주목한다. 이런 경향이 나타나는 이유는 패션, F&B, 모빌리티 등 다양한 분야의 브랜드가 자연을 비즈니스 모델로, 사회적 기여로, 예술적 영감으로, 공학적 아이디어로, 새로운 체험의 무대로 주목하고 이를 그들의 정체성이자 새로운 경험으로 드러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이 세상에 없던 자연의 경험을 브랜딩하고 싶을 때 총괄기획자로 조경가를 떠올리는 건 어렵다. 주거 브랜드 안에서 다양한 조경적 실험이 이루어진 공동주택 시장만 해도 실내외 조경이라는 물리적 범위가 주어지지 않는 한 총괄 기획을 하는 분야가 조경이 아니다. 조경가에게는 넓은 잔디밭, 숲, 화려한 광장만을 기대할 뿐이다. 발주처에게 조경적 경험이란 자연에 둘러싸여 있거나 공원, 정원 등 경관을 연출할 수 있는 공간이 주어질 때 이뤄지는 물리적 체험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발주처의 평범한 기대는 ‘고객의 시선에서 볼 때’라는 말과 함께 조경의 새롭고 비범한 제안을 거부하는 근거가 되곤 한다. 공간 브랜딩 시대에 건축과 조경 모두 새로운 요청을 받고 있다. 건축은 비교적 자유도가 높은 여건을 쟁취했으나, 조경은 스스로 만들어온 이미지의 굴레에 갇혀있다. 그 굴레에서 벗어나 대중적 공감을 얻어 새로운 조경적 경험을 원하는 시장을 만드는 것도 틀림없이 조경의 일이다.
필자는 건설사 브랜드와 상품을 관리하는 부서에 근무하며 조경으로 쌓아 올린 시야를 브랜딩으로 넓혀야 했다. 롯데건설 조경 브랜드 ‘그린바이그루브(Green×Groove)’의 탄생을 함께하고 롯데캐슬과 르엘의 전략을 고민하면서 브랜드 성장이 직업적 과제가 됐다. 브랜드 디렉터와 함께 고민하고 전문 에이전시와 구상하고 조경가와 협업하며 공간 브랜딩이 조경 디자인과 유사하다는 걸 깨달았다. 비슷한 지점은 다음과 같다.
형태 만들기보다 본질적인 경험을 설계하기 위해 태도와 원칙을 수립하는 디자인. 마감재 선정보다 정체성을 극대화할 매체를 경험의 요소로 구성하는 디자인. 한 장면의 이미지에 집중하기보다 차곡차곡 중첩되는 경험의 잔상을 일관된 여정과 감성으로 구상하는 디자인. 눈에 띄는 이름을 찾기보다 고객과 공간을 연결할 서사를 구축하는 디자인. 벌써 여러 조경 공간이 떠오르지 않는가. 이는 조경도 이용자 경험을 디자인 해 온 분야로서 탄탄한 역량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조경과 브랜드 분야 간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 간극을 줄이기 위한 핵심은 조경 공간 또는 경관을 디자인하는 행위와 브랜드의 고객 경험을 디자인하는 행위의 차이를 아는 것이다. 이 글은 필자가 브랜드를 익혀가는 과정 속에서 썼던 업무 일지에서 시작됐다.(각주 5) 실무자로서 아직 날카로운 의견보다 두리뭉실한 질문이 많지만, 공간 브랜딩을 함께 고민하는 조경가들이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적는다. 지금까지 브랜드 산업에서 조경 분야의 현주소를 살펴보았다면, 이제 공간 브랜딩을 상위 개념인 브랜드 경험과 함께 정의하고, 실무적 고민을 녹여 앞으로 조경 분야에서 함께 시도해 볼만한 과제를 제안하고자 한다.
*환경과조경445호(2025년 5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월간 디자인 편집부, “크레이티브 디렉터가 뭐길래”, 『월간 디자인』 2024년 6월호.
2. 김정은, “여가 문화의 변화와 한국 건축 시장의 다양화 과정”, 『SPACE』 2024년 8월호.
3. 다음의 문장이 질문의 시작점이 됐다. “최근 여가 수요와 결합한 카페와 스테이, 리조트 등은 높은 건축적 완성도를 필요로 하지 않던 사각지대에 건축가들을 끌어들이고, 건축가들은 상대적으로 자유도가 높은 이러한 영역에서 실험을 거듭하며 다시 공간의 수요와 시장의 지형도를 바꾼다.” 김정은, 위의 글.
4. 현대자동차 영남권 연수원(오피스박김), 아모레퍼시픽 뷰티파크(조경설계 서안, 디자인 스튜디오loci), 어퍼하우스 남산 전시관(디자인 스튜디오 loci), 2024 노들섬 초청전시 물의정원(수무), 기아비트360 가든(HLD) 등이 있다.
5. 이 글은 김아연 교수가 운영하는 웹진 「월간 테라」 2024년 10월호에 기고했던 “브랜드 탐구일지 1부”에서 시작된 원고다. 브랜드에 대한 개괄적인 이론적 고찰은 「월간 테라」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희원은 서울시립대학교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원 조경설계연구실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조경을 둘러싼 세계에 관심이 많은 탐구자로, 현재 롯데건설 디자인연구소에서 조경 설계 및 브랜드 전략을 담당하며 조경과 브랜딩을 탐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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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어바니즘의 가능성을 말하다] 메타로깅하는 도시생활자
오프닝 노트
“서울의 대량 교통수단인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잠실역에 내리면 우리는 소비 자본주의의 화신으로 보이는 롯데월드 속에 ‘빨려’ 들어가게 된다. 잠실역에서 내려 본 사람이라면 다 알다시피 역에서 롯데월드로 들어가는 입구가 가장 넓고 화려하기 때문에 현대 소비 생활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욕망 구조에 매여 있는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곳으로 흡입되어 버린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지만 여기서는 모든 길이 롯데월드로 통하게 되어 있다.”(각주 1)
오늘날 우리는 모든 것이 브랜드화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상품과 서비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과 나도 하나의 객체로서 브랜드가 되는 시대. 도시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도시생활자가 경험하는 공간의 감각과 감흥까지도 이제는 브랜딩과 마케팅 전략의 언어로 조직되고 유통되며 포장되고 소비된다. 물론 이 현상은 긍정성뿐만 아니라 부정성 역시 내포하고 있다. 브랜드는 도시에 스며들어 부산스럽고도 은밀하게 “도시생활자의 고객화”를 추동하기 때문에 도시 공간은 자칫 BX(Brand Experience)와 UX(User Experience)가 무의식적으로, 수시로, 파편적으로, 수동적으로 경험되는 브랜드 범벅의 장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믹스의 공간을 대하는 포용과 경계의 유연한 자세가 동시에 요구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 글은 특정 기업과 브랜드를 통해 도시재생과 활성화를 도모하는 ‘브랜드 어바니즘(Brand Urbanism)’ 또는 대형 쇼핑 공간과 도시 구조의 관계를 모색하는 ‘몰 어바니즘(Mall Urbanism)’, ‘리테일 어바니즘(Retail Urbanism)’ 등을 논하기에 앞서, 브랜드의 집대성 공간이라 할 수 있는 오프라인 리테일의 조경 변천을 살펴보고, 그 속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유사공원의 가치를 탐색하고자 한다.
유사공원 선언
“도시 생활은 점점 더 전통적인 도시 지도의 경계 밖에서 이루어진다. 주차장, 패스트푸드점, 쇼핑몰 ― 이 공간들은 공공 공간으로 계획된 것은 아니지만, 공적 삶을 위한 장소로서 자주 점유된다.”(각주 2)
나는 꿈을 꿨다. 그 꿈은 또 다른 꿈을 꾸고 있었고, 그 안에서 나는 반가운 사람들을 만났다. 우리는 공원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니, 정확히는 공원이 아닌데 공원처럼 느껴지는 장소들에 대해. 대형 쇼핑몰의 중정, 백화점 옥상, 상업 가로 등은 제도적으로는 ‘공원’이 아니지만, 사람들은 그곳에 모이고 쉬고 멈추고 관계를 맺고 있었다. “삼촌, 여긴 공원이 아니잖아.” 조카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순간 나에게는 그곳들이 충분히 공원 같았다. 나는 그 공간들을 ‘유사공원(parklike space)’이라 부르기로 했다.(각주 3) 이런 생각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그런 공간의 원형은 17세기 코번트 가든(Covent Garden Piazza)(1630)이나 블룸즈버리 광장(Bloomsbury Square)(1661)과 같은 플라자 가든에서부터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낸다. 도시 한가운데서 자연과 사람, 사회적 관계를 불러일으키는 조경적 장치들. 그것은 이미 그 시절부터 공원이라는 제도 이전에 그 바깥에서 피어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유사공원의 성립 조건은 “몰링하는 도시생활자”(각주 4)에서 언급한 것처럼 물리적, 구조적, 구성적, 제도적, 미적 유사성뿐만 아니라 감각(감흥)적 공공성을 매개로 한 커머닝(communing), 즉 공적 교류와 사회적 관계 형성 가능성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유사공원 담론은 명백한 대상지의 디자인 재생과 그에 파생하는 미적 함의를 다루는 포스트 인더스트리얼 공원화 담론이나 기타 레거시 어바니즘 담론과는 달리, 명백하지 않은 장소를 도시생활자의 관계 형성 관점과 미적 감흥(감각)의 관점으로 바라본다는 측면에서 독특한 도시미학적 정체성과 위상을 갖는다. 그것은 “서둘러 정의내리기”보다는 “천천히 질문하기”에 가깝고, 온전히 도시생활자의 입장에서 도시를 바라보는 미완의 사유 구조이자 개방형 담론의 틀이다.(각주 5)
나는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공원이 아닌 공원들, 제도 바깥의 조경적 실천과 조각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왜 우리는 공원이라는 제도와 관계없이 공원의 감각을 일상에서 마주하고 재구성하고 있을까? 쇼핑 공간의 조경은 분명 오프라인 리테일의 대형화와 체류 시간 증대 전략의 흐름 속에서, 장식적 조경으로부터 관계 중심의 조경으로 변모하고 있다. 대형 쇼핑몰, 백화점, 아울렛 등의 공간이 어떻게 공원의 감각적 공공성을 대체하거나 확장해왔는지 살피는 과정은 “공원이 아닌 곳에서의 공원성”과 “공원에서의 공원성” 모두를 주목하게 한다. 그것은 쇼핑 공간에서의 유사공원성을 비평적으로 바라보며, 그 안에서 조경이 할 수 있는 질문과 실천의 틈을 찾으려는 시도다. 도시생활자의 감각이 앞으로 조경, 쇼핑 공간, 어바니즘 사이의 유연한 관계를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을까? 꿈에서 보 고픈 사람들을 만나다니, 오늘은 분명 운수 좋은 날이다. 허나 현실을 자각할수록 꿈의 장면들은 희미해진다. 내일이 오기 전에 소멸되는 조각들을 메타로그(metalogue)로 맞춰본다.
*환경과조경445호(2025년 5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정정호·강내희, 『포스트모더니즘론』, 도서출판 터, 1989, pp.13~14.
2. Margaret Crawford, Everyday Urbanism , Revised and Expanded Edition, John Kaliski and Michael Speaks, eds., Monacelli Press, 2008, pp.22~23.
3. 대형화된 쇼핑 공간에서의 몰링 감흥과 도시공원적 면모를 포착하며 유사공원 재해석을 통해 쇼핑-도시-조경 간 유연한 관계 맺음 가능성에 주목한 비평은 다음을 참조할 것. 권정삼, “몰링하는 도시생활자: 공동공간 쇼핑안내서”, 『환경과조경』, 2025년 2월호, pp.116~124.
4. 위의 글
5. 유사공원 담론의 핵심 주제인 “비-공원 공간의 감각(감흥)적 공간 경험과 공공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적 공간을 사회적 기술이 훈련되는 장소로 바라본 리처드 세넷(Richard Sennett, TheFall of Public Man , Vintage, 1978), 걷기를 통한 도시생활자의 감각적 실천을 강조한 미셸 드 세르토(Michel de Certeau, The Practice of Everyday Life , UC Press, 1984), 제도적이고 추상적인 공간에 대항하는 주체적 공간에 주목한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 The Production of Space , Blackwell, 1974), 일상적 장소와 상업 공간에서 발생하는 공공성에 주목하며 비계획된 도시 공간의 공공성 회복을 주장한 마거릿 크로퍼드(Margaret Crawford, Everyday Urbanism , Monacelli Press, 1999), 도시의 잉여 공간과 폐허에서 나타나는 심미적 가능성을 조명한 매튜 갠디(Matthew Gandy, “Marginalia: Aesthetics, Ecology, and Urban Wastelands”, Annals of the AAG 103, 2013) 등의 도시·조경 논의를 부분적으로 참조할 수 있다.
권정삼은 롯데백화점 디자인센터에서 조경 프로젝트의 기획과 디렉팅을 맡고 있다. 특정 시공간에서 일어나는 대중적 감흥,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디자인 요소, 그로 인해 형성되는 사회적 혜택에 주목하며, 조경 디자인의 언어를 보편적 디자인과 일상의 언어로 확장하는 실무, 글쓰기, 영상, 사진을 추구한다. 오늘도 기획서-설계 도서-시공 현장 사이에서 감각과 개념 사이의 언어들을 찾고 짓고 보살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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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어바니즘의 가능성을 말하다] 브랜드로서의 조경 그리고 바이오필릭 디자인
당신이 좋은 사람인 줄은 알겠어요
“이제는 좋은 친구로 남길 바래요.” 민망한 말이다. 내가 어디가 어때서. 이만하면, 뭐 빠지는 거 없잖아. 두루두루 원만하고 딱히 흠 잡을 것도 없는데 말이지. 그런데 이 양반, 모르긴 몰라도 뚜렷한 특징이 없을 수는 있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을 떠나 뭔가 특별한 매력이 있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남다른 매력, 그것이 브랜드라 생각한다. 나음보다 다름의 시대다. 나아지려는 노력은 그동안 충분히 했다. 파리바게트에서 케이크를 사지 않고 다른 데는 없나 하고 생각하는 이유는 케이크 맛이 어떤지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카페며 리조트며 그것이 무엇인지도 알고 가본 바다. 이제는 다름으로 승부를 걸어야 하는 시대, 브랜드의 떠오름은 당연하다.(각주 1)
경험의 합, 공간일 때의 브랜드
어떤 사람과 지내면 그 사람의 성품, 성격, 스타일, 버릇들을 통해 그 사람의 사람됨을 알게 된다. 그것의 그것됨, 그것을 브랜드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공간에서 브랜드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미국 유학을 위해 비자를 받으러 광화문의 미국대사관에 간 기억이 난다. 창살, 펜스, 무뚝뚝한 영어 폰트, 한국 표준보다 약간 높은 문고리의 위치, 화장실의 변기, 천장의 등 모두 미국 조달 품목들만 사용했다. 그때는 ‘여기 참 미국스럽다’ 생각했다. 돈을 뽑으려고 현금 인출기를 찾았는데, 모니터엔 뱅크 오브 아메리카(Bank of America)라고 적혀 있었다. 요즘 말로 UX의 정점이다. ‘이곳은 한국 한복판에 있지만 그냥 그대로 미국 영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할 만큼 압도적으로 미국 느낌이 들었다. 그 시간 그곳에서의 경험의 합이 미국이란 브랜드의 한 단면을 충실하게 나타냈다. ‘공간에서 경험한 것의 총합=브랜드’라는 관점에서 미국 대사관은 성공한 공간 브랜드다.
요즘 공간 디자인들은 ‘그곳에서의 시간을 어떤 경험으로 채울까’를 생각하는 방법으로 바뀌었다. 소위 말하는 ‘몰입의 공간 경험’이라는 말도 결국은 그것을 압축적으로 완성하기 위해 만들어낸 기법이다. 미장센(mise-en-scene)보다는 미장아빔(mise-en-abyme)을 내세운다. 공간은 마치 게임처럼 어떤 세계관을 만들고 그것을 어떻게 하나의 맥락 안에서 전달하느냐가 중요하다. ‘여기는 이런 곳이구나’라는 맥락은 애트모스피어(atmosphere)의 완성이다. 내가 아는 공간 브랜딩에 대한 관점이다.
브랜딩과 조경에 대한 원고를 의뢰 받고 막상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슬프다’였다. 연약한 사회적 토대에서 요즘 중요하다고 하는 브랜딩에 기대어 보고 싶은 마음에 동감하는 동시에 여전히 아쉬웠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기획하는 어떤 브랜딩에 이번에도 조경은 그 부분을 돕는 것에 그칠 것 같기에, 브랜드의 시대에도 결국 여전히 종속 변수일 것 같아서.
분명히 브랜딩의 시대는 기회의 시대다. 개성이 확실할수록 누구나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조경은 무엇일까. 조경은 조경이다. 타 분야와 다투거나 비교하지 말고 나를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발 딛고 서면 된다. 가지고 있는 좋은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 된다. 자기 안에서 무언가를 가지고 나와 그것에서 군더더기를 덜어 내어 날카롭고 선명하게 만들면 된다. 날카로운 칼로 세상에 나타나는 모든 브랜드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조경은 무엇이 다르냐
오랫동안 수없이 말하지만 조경은 살아 있는 재료들로 디자인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애정하던 건축을 놓고 조경을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매료된 점이다. 이만큼 다른 게 어디 있나, 이 세상 어디에 이런 직업이 있나. 세상 유일무이라는 점에서 조경은 이미 브랜드다―네이밍 관점에선 아쉽다―. 하면 할수록 이것을 넘고 싶은 마음이 든 이유는 언어가 품은 범위가 좁기 때문이다. 세상에 인식되고 있는 조경造景은 풍경이나 경치(景)(볕 경)를 조작하고 조형한다(造)(지을 조)는 의미를 가진다. 이 단어가 만든 좁은 프레임에서 나와서 부수적인 것들을 모두 걷어내보자. 무엇이 남는가. 살아 있는 것이다. 조경가는 살아 있는 것을 가지고 디자인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내린 조경의 정의다. 그렇기에 그 대상은 식물뿐 아니라 사람, 온도, 습도, 대기, 소리, 냄새 등이 될 수 있다. “살아 있는 것을 디자인합니다. 라이브스케이프.” 이것이 우리의 일을 다르게 정의할 만한 문장이라 생각해 회사의 캐치프레이즈와 이름에 담았다.
*환경과조경445호(2025년 5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조수용·홍성태의 『나음보다 다름』(북스톤, 2015)을 간단하게 재구성했다. 관련한 인사이트를 구한다면 이 도서를 읽어보길 적극 추천한다.
유승종은 국민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마쳤다. 희림건축에서 5년간 일하고 조경에 대한 애정을 품고 유펜(UPenn)으로 유학을 갔다. 한국말로도 쉽지 않은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을 머리에 넣었지만, 사실은 피터 워커의 테너 파운틴을 좋아하고 월터 드 마리아의 라이트닝 필드를 숭배한다. 모두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생태 디자인을 ‘살아 있는 것들이 티 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 정의한다. 자연의 형상뿐 아니라 현상이 여러 감각을 통해 인지되게 하는 작업으로 프로젝트를 만들어간다.관련 특허 기술과 UX 기법들을 공간에 적용하고 있으며, 그 결과로 IF 디자인 어워드, 대한민국 조경대상 우수상, 공공디자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건축과 조경을 넘나들며’라는 흔하고 뻔한 말을 구체적인 결과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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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정원을 읽다
Re-reading the Garden Phenomenon
“다시, 정원을 말하다” 특집(『환경과조경』 2014년 4월호)으로 정원을 다룬 지 10년 남짓 지난 지금, 우리 사회에서 정원에 대한 온도가 크게 달라졌다. 이런 분위기는 정원의 전통적 개념에 비춰볼 때 매우 특이하고 일면 모순적인 현상이다.
정원의 본질에 반反하는 ‘만들어진 정원 문화’의 지속가능성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지만, 오늘날 정원의 체감도가 높아진 점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민간과 공공 가릴 것 없는 공격적 사업 추진으로 정원이 양적으로 증가했고 사회적 인기 아이템이 된 것이다. 도시 비전의 단골 소재로 정원이 등장하고, 여러 지자체는 일상에 지친 도시민의 몸과 마음을 보듬겠다며 정원박람회를 앞다퉈 개최하고 있다. 국가정원 지정을 목표로 정원의 이름을 빌린 대형 공원이 계획되는가 하면, 민간정원, 공동체정원 등 시민들이 직접 정원을 만들어 가꾸도록 유도하는 사업도 한창이다. 그야말로 정원 열풍이다.
하지만 홍수처럼 넘쳐나는 정원 사업이 어떤 결과를 내고 있는지에 대한 토론과 숙의는 충분하지 않다. 정원박람회의 성과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행사장에 다녀와 SNS 피드를 장식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점적 녹지인 정원이 공원과 선형 녹지와는 어떤 면에서 다른지 면밀하게 살피고, 정원을 가꾸는 일이 신체와 정신 건강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알아보는 연구와 데이터 구축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2025년이 산림청 법정 계획인 ‘제2차 정원진흥기본계획’이 마무리되는 해인 만큼, 이번 호에는 조경의 시선으로 정원 과열 현상을 반추하는 시간을 마련한다. 정원 사업의 범람과 함께 조경계에 일어난 일련의 변화를 되돌아보고 그러한 변화가 정원에 대한 대중의 시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반성적으로 진단하며 미래의 방향을 제언한다. 진행 박희성,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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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을 국가가 만든다고? 박희성
정원의 귀환, 그 10년 뒤 황주영
정원박람회가 만드는 정원 문화 권진욱
정원 붐이 만든 조경 설계 패러다임의 변화 최재혁
정원 활동에서 커뮤니티의 힘 정홍가
그린워싱 이미지로 소비되는 정원 조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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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정원을 읽다] 정원을 국가가 만든다고?
정원의 본질을 알고 있는 전공자들에게는 ‘정원을 국가에서 제도화하여 주관한다’는 상황 자체가 정원의 본질과 개념에 얼마나 모순된 일인지 알고도 남는다. 개인 정원(garden)이 공공의 영역(public garden)으로 확장되는 역사의 궤적을 토대로 본다고 해도, 정원을 제도권에 두고 정책과 사업으로 관리하는 하향식(top-down) 정원 관리는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다.
2015년, 산림청은 ‘수목원의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에 정원을 넣어 ‘수목원‧정원의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수목원정원법)’로 개정하고 본격적인 정원 사업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리고 ‘수목원정원법’ 제정 10년에 즈음한 지금, 산림청은 5년마다 수립되는 법정 계획(정원진흥기본계획)을 토대로, 정원 인프라 확충, 전문가 양성, 정원 산업 진흥, 정원 문화 확산의 네 분야에 대한 사업을 추진 중이다. 정원 사업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반응도 뜨겁다. 2025년 3월을 기점으로, 무려 92개의 지방자치단체가 정원 문화 조성 및 육성에 관한 자치법규를 제정했으며 정원 조성 및 운영을 담당하는 부서를 신설하거나 재편했다.
이제는 산림청 주도의 정원 사업이 정원의 전통적인 개념과 역사를 역행한다고 해서 마냥 불만을 표출하거나 등한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심각한 환경 문제에서 우리를 구원해 줄 것만 같은 정원의 이미지가 여전하면서도 지자체장들의 열렬한 구애까지 등에 업고 있는 한, 산림청의 제도와 정책은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이 어쩌면, 조경가들이 더욱 목소리를 내 산림청의 정책을 지원하고 사업의 방향을 유도해야 하는 때인지도 모른다.
지금의 정원 정책과 정원 사업이 향후 시의적절하고 유효한 성과로 평가받게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산림청 정원 사업의 시작 배경을 토대로 앞으로 풀어야 할 주요 난제를 점검해 본다.(각주 1) 국제정원박람회로 촉발된 산림청 정원 사업 산림청 주도의 정원 사업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처음에는 2013년의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있다. 그런데 순천시는 정원박람회를 단지 도시 경쟁력을 위한 수단으로 간주했지, 정원 혹은 정원박람회 자체에 관심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1990년대부터 순천시의 순천만 보존과 동천東川 개발은 서로 첨예하게 맞섰다. 2000년대에 이르러 순천만이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되고 람사르 협약에 등록되면서, 생태적 가치와 위상이 날로 강화됐다. 이에 반해, 시역市域은 광양, 여수 등의 주변 도시와 비교될 정도로 위축되어 도시 경쟁력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순천시 행정가들은 보존과 개발 양단의 답안을 모두 포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즉, ‘대한민국 생태수도’라는 콘셉트를 내세우고 보존과 개발의 매개로서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개최 추진’을 정책으로 결정한 것이다.(각주 2)
2009년 2월 25일에는 산림청이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추진을 위한 주무부처로 확정된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순천시는 국제 행사 추진에 필요한 절차를 담당해 줄 중앙의 주무부처를 찾았지만, 대부분의 부처는 법률과 제도의 미비를 핑계로 수락을 기피했고 오직 산림청만 적극적으로 검토했다고 한다. 이후 산림청은 순천시 중앙정부(기획재정부)로부터 국제 행사로 승인받도록 협조하는 등 정원박람회 개최지로 최종 확정될 때까지 역할을 했다. 201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성공을 거둔 이후, 2014년부터 산림청은 본격적인 정원 사업을 시작하는데, 그 출발은 법적·제도적 기반 구축이었다.
수목원과 평행한, 배타적인 정원
산림청이 정원 법제를 선제적으로 구축한 것은 정원 사업의 안정적인 운영과 관리를 위한 탁월한 선택이었지만, 기수립된 ‘수목원법’의 법 체제에 정원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재편한 것이 큰 패착이었다. 정원을 수목원과 같은 단순명료한 시설로 간주하면서 법제 전반에 정원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문제를 고질적으로 안고 가게 된 것이다. 법제상의 이러한 문제는 정원의 구분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2015년 처음 개정된 ‘수목원정원법’은 정원을 수목원 분류 체계에 그대로 대응해 적용시켰다. 정원을 국립수목원, 공립수목원, 사립수목원, 학교수목원의 분류에 맞춰 국가정원, 지방정원, 민간정원, 공동체정원으로 구분하고 보니, 운영 주체만 강조될 뿐 정원의 기능을 충분히 담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를 드러냈다. 2021년 산림청은 생활정원과 주제 정원(교육‧치유‧실습‧모델정원)을 추가하는 법 개정을 진행했지만, 정원의 식물 자원을 활용한 치유 기능을 강조하고 생활권에서 국민이 정원 가꾸기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정원 진흥에만 목표를 두었기 때문에 법제상 정원 구분은 여전히 불완전했다. 조성 주체와 조성 목적에 따른 구분이 대등하게 나열되는 새로운 문제를 낳았고, 정원의 조성 주체와 조성 목적이 서로 연관될 수 있는 여지―예컨대, 민간정원이면서 교육정원일 수 있고, 공동체정원이면서 치유정원일 수 있다―가 충분하므로 정원의 구분 자체에 모순이 생겨 버렸다.
‘수목원정원법’ 제2조 “정원”이란 식물, 토석, 시설물(조형물을 포함한다) 등을 전시·배치하거나 재배·가꾸기 등을 통하여 지속적인 관리가 이루어지는 공간(시설과 그 토지를 포함한다)을 말한다. 다만,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 제2조에 따른 문화유산, ‘자연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에 따른 자연유산, ‘자연공원법’에 따른 자연공원,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도시공원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공간은 제외한다.
정원은 본래 시설(내지 공간)과 행위(조성, 가꾸기, 재배, 휴식 등)의 두 속성을 함께 가지는데, 현행 법제에는 시설(내지 공간)로서의 정원만 한정하고 있다. 이러한 정의는 타법과의 정합성 문제로 정원 진흥에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조경진흥법’의 ‘조경’이나 ‘산림휴양법’의 ‘산림문화·휴양’, ‘도시농업법’의 ‘도시농업’, ‘경관법’의 ‘경관’처럼, ‘정원의 행위’를 시설(내지 공간)과 함께 정의 내림으로써 정원의 기능을 온전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국토 전반에 적용되는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하 국토계획법)’에서 ‘수목원정원법’의 정원을 별도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도시계획상에서 정원을 고려해야 할 근거가 없으므로, 정원은 언제든지 다른 공간으로 대체되거나 용도 폐기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정원은 도시계획법상의 다른 공간과의 관계가 불분명해서, 도시계획에 적용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한계가 있다.
정원이 본래의 특성을 발휘하여 국토 환경에 유효한 역할을 하려면, 법제 간의 배타적 관계를 허물고 개념 간의 이해와 조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국토계획법’은 ‘수목원정원법’의 목적과 취지를 공감하며 정원 개념을 명시하고 법제상의 정원을 도시계획의 지목으로 인정할 것인지 검토해 볼 수 있다. ‘수목원정원법’은 ‘도시숲법’상의 도시숲, 생활숲 개념을 포함시키되 정원을 상위 개념으로 조정하는 것을 고려할 수도 있다. 정원을 상위 개념으로 조정하는 데는 정원의 가치와 목적을 추가하는 것까지 생각해 볼 수 있다.
*환경과조경444호(2025년 4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본문에서 다루는 ‘수목원정원법’ 관련 내용 일부는 2023년 공동연구원으로 참여한 산림청의 ‘정원진흥법재정비’의 성과 내용에 기초한 것이다.
2. 순천만에 국제정원박람회를 개최하겠다는 아이디어는 공무원 최덕림(2003년 순천시 관광진흥과장, 2023년 순천만국가정원박람회 총감독)이 우연히 『고정희의 독일 정원 이야기: 정원박람회가 만든 녹색도시를 가다』를 접하게 되면서 힌트를 얻었다고 알려져 있다.
박희성은 대구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한중 문인정원과 자연미의 관계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역사 연구자들과 학제간 연구를 수행하면서 근현대 조경으로 연구의 범위를 확장했다. 대표 저서로 『원림, 경계없는 자연』이 있으며, 최근에는 도시 공원과 근대 정원 아카이빙, 유네스코 세계유산 제도와 운영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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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정원을 읽다] 정원의 귀환, 그 10년 뒤
정원을 말하다
10여 년 전 『환경과조경』 특집의 제목 ‘다시, 정원을 말하다’는 2012년 출간된 『정원을 말하다-인간의 조건에 대한 탐구』(로버트 포그 해리슨, 조경진‧황주영‧김정은 공역, 나무도시, 2012)를 차용한 것이다. 번역서의 제목을 정하며 이런 저런 논의를 했고, 원제 ‘Gardens: An Essay on the Human Condition’을 조금 바꾸되 의미를 잘 전달할 수 있는 동사로 ‘말하다’가 좋을 것 같다고 의견이 모였다. 평은 좋았지만 판매 성적은 그리 좋지 못했고, 판권 계약이 종료됐다. 우리만 좋다고 생각한 책이었을까 하는 초조함이 있었지만―이 기회를 빌려 당시 나무도시 대표였던 남기준 편집장에게 다시 한번 감사와 송구한 마음을 전한다― 조금 일찍 나온 책이었다는 걸 얼마 뒤 확인할 수 있었다. 절판 이후 도리어 책을 찾는 이들이 나타났고 온라인 서점의 중고 책 가격이 어마어마하게 올랐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번 특집호 원고 청탁을 받고 옛 글을 다시 꺼내 보았다(“정원의 귀환에 대한 단상들”, 『환경과조경』 2014년 4월호). 당시에도 10여 년 전의 일을 회고하며 글을 시작했는데, 대학원에서 정원의 역사를 공부하겠다고 했을 때 필자를 지도한 미술사학과와 조경학과 교수들이 앞으로의 내 생계를 염려해주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 글을 쓰던 2014년에는 그 걱정이 기우였나 싶게 정원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정원박람회와 정원 가꾸기 열풍이 불었고, 정원 잡지와 출판물이 증가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정원 조성 붐이 일었고,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열렸던 순천만정원이 국가정원으로 지정되려던 참이었다. 그해가 끝나기 전 한국조경학회 정원학연구센터는 두 번의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또 10년이 지났다. 강산이 두 번 변하는 동안 정원과 관련된 현상들은 스무 번도 넘게 변한 것 같다. 국가정원과 지방정원, 민간정원이라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제도와 진흥계획, 관련 법규가 생겼다. 여러 지자체도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있다. 그리고 서른 곳 넘는 지자체가 ‘정원도시’를 선언했다. 개인적으로도 정원과 관련된 연구 용역과 대중 강연, 글쓰기와 번역을 꽤 했다. 이러한 상황만 보면 우리는 이미 정원 속에 살고 있다. 정말 그런가. 2025년 대한민국이라는 시공간에 등장한 ‘정원’은 내가 배우고 익히고 이제는 가르치기까지 하는 정원과 동의어일까? 정원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까? 아니면 정원이란 이름으로 무언가를 기만하고 있는가? 이미 여러 번 제기된 질문이지만 정답은 없고, 그럴듯한 답안을 만들었다 싶으면 다른 질문이 생겨난다. 복잡하게 얽힌 현상을 모두 살펴볼 수는 없지만 무엇이 강조되는지, 이를 조경사 연구자로서 어떻게 볼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정원과 가든과 공원과 파크
그간 해온 ‘정원’과 관련된 일들을 되짚어 보면 자아 분열이 일어날 것 같다. 분명 모두 정원을 다루는데 정원사와 미학 관련 수업 시간에 논하는 ‘정원’과 연구 용역에서 다루는 ‘정원’과 해외 저자의 책을 우리말로 옮길 때의 ‘정원’은 모두 같으면서도 달랐다. 정원이 아우르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고 어물쩍 넘어가지만, 이렇게 개념이 뭉뚝해도 되는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더 많다. 도대체 ‘정원’은 무엇일까. 조경학에서 정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각주 1) 울타리 등으로 주변을 둘러싸 경계를 두른 물리적 형태가 첫 번째 특징이고, 그 울타리 안쪽에 있는 귀한 것을 실용적인 것(식량, 약초 등) 혹은 즐거움을 위한 것(여가, 과시, 앎의 즐거움, 명상과 종교 등)으로 나눠 두 번째와 세 번째 특징으로 삼았다. 가든(garden)이라는 단어 자체가 울타리(gher-)와 즐거움(-oden/eden)이 결합된 말이고, 울타리 안에 소중히 간직하는 것은 바뀌어 왔지만 언제나 낙원, 당대의 이상향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는 곳이 정원이었다.
한편 동아시아에서 사용하는 ‘정원’이라는 단어는 두 가지 장소를 담고 있다. 한자 정庭은 건물과 문 사이, 혹은 건물과 건물 사이의 뜰을 말하고, 원(園)은 동산, 과실수를 심은 곳을 칭한다. 이런 옥외 공간과 서구에서 들여온 가든이 정확히 일치하는 것 같지 않다.(각주 2) 이 수많은 정원을 섬세하게 분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영어처럼 관사, 대소문자로 구분할 수 있다면 미학적 논의가 조금 수월했을지도 모르겠다.(각주 3) 조경과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landscape architecture)가 동의어인지에 대한 학문적 논의가 있었는데, 사실 그에 앞서 정원의 정의부터 좀 더 세심하게 봤어야 했나. 그나저나 공공성을 앞세워 랜드스케이프 가든(landscape garden)(ing)을 떠나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에서 출발해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landscape urbanism)으로 나아가던 조경은 왜 다시 정원으로 돌아오는 걸까.
‘공원’이라는 말은 어떠한가. 근대 이전을 배경으로 하는 서양 문학 번역서를 읽다가 ‘공원’이라는 말을 보면 불편하다. 귀족 연인들의 밀회의 장소 혹은 요란한 사냥의 장소로 우리가 아는 공원은 부적절할 테니 말이다. 이는 파크(park)를 번역한 말인데, 도시공원이 생기기 전 이곳은 개인이 소유한 방대한 숲, 수렵지를 가리켰다. 산업화에 이어 도시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던 19세기 후반, 영국 왕실이 소유한 런던 일대의 파크를 대중에게 개방하면서 현대의 공원 문화가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사유지 파크, 때로는 가든이 공공 녹지가 되었고 파크라는 말에 담긴 의미가 확장됐다. 서구의 퍼블릭 파크(public park) 혹은 퍼블릭 가든(public garden)이 서구화를 꾀하던 일본에서 공(공 정)원(公園)으로 번역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공원이라는 말은 큰 고민 없이, 원래의 문화적 함의가 온전히 담기지 못한 채 한국에 이식되어 “국가나 지방 공공 단체가 공중의 보건‧휴양‧놀이 따위를 위하여 마련한 정원, 유원지, 동산 등의 사회 시설”(각주 4)이 되었다.
우리는 서구에서 수입한 개념과 전통적 관념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정원과 가든, 공원과 파크를, 심지어는 관련 법률도 다른 정원과 도시공원을 큰 고민 없이 섞어 쓰고 있다. 서울에는 2014년의 글에서 언급했던 “주민을 참여시켜 동네의 방치된 자투리땅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통해 마을이라는 공동체를 만든다는” ‘한평공원’ 대신 ‘매력‧동행가든’이 등장했고, 열린송현 녹지광장은 ‘정원형 공원’(각주 5)으로 조성되었다. 그리고 순천만국가정원의 면적은 한평공원 1억 개를 합한 것보다 넓다. 이제 공공 녹지에서 공원과 정원의 구분은 의미 없는 것일까? 아니,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지만 학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개념 설정 아니었던가. 이 명칭들과 혼란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는 여전히 고민이고, 지금은 그저 잘 기록해둘 뿐이다. 저 정원과 가든은 어떤 가치를 담고 있는가?
제3의 자연
10여 년 전 정원 열풍의 화두로 도시농업적 정원 가꾸기의 유행을 꼽았다. 좀 더 많은 사람이 몸소 정원을 가꾸고, 작게나마 생산의 기쁨을 즐기며 정원에 친숙해지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던 시기였다. 이후 코로나19 범유행기를 겪으며 정원 가꾸기는 전 세계적 유행이 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정원 문화가 좀 더 일상 속에 자리 잡게 되었다. 그 사이 우리의 관심은 상추 재배를 지나 정원(을 가꾸는 일)이 주는 기쁨을 알고 정원을 가꾸는 기술뿐 아니라 정원이 담고 있는 의미의 탐색으로 나아간 것 같다.
이러한 변화는 2025년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작가정원의 주제로 ‘세번째 자연’이 제안된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는 예술로서의 정원이 시작되었다고 하는 르네상스 시대 인문학자들의 서간에서 등장한 표현으로, 조경사학자 헌트(John Dixon Hunt) 등의 연구를 통해 다시 우리에게 알려졌다. 원생 자연 혹은 신들의 영역으로 유추되는 제1의 자연과 인간이 고안하고 가꾼 문화 경관인 제2의 자연을 넘어 자연과 예술이 결합된 제3의 자연, 즉 정원이 생겨났다는 것이 요지다. 이 세 자연은 순차적으로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어느 하나가 우월한 것도 아니며 단지 공간을 인식하는 방식의 하나다. 헌트는 세 자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는 우리가 환경과 맺은 관계를 반영하며, 이 관계와 복잡성을 되살리는 과정에서 정원이 지닌 풍부한 의미를 환기하고 가치를 재인식한다고 본다.(각주 6)
우리 시대의 정원을 고민하는 것을 목표로 ‘열린 정원’을 주제로 삼은 2013년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이후 공모전에서 정원의 근원적 의미를 다루는 것은 오래간만이기에 무척 반가웠다. 더구나 “주체로서의 인간이 서 있는 문화라는 토대”와 “인간의 타자로서 주체를 성립하게 하는 자연의 경계”에 있어 온 정원이라는 인식 하에 이러한 “자연과 인간의 경계에 있는 정원의 속성을 표현한 주제”는 정원의 본질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듯하다. 하지만 “과도한 조형적 시설물 설치를 지양”한 “주변 환경과 어울리는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식재’ 위주의 자연주의 정원”을 권고하는 보도 자료를 보며, 올해 서울시의 ‘추구미’를 지레짐작하게 된다.(각주 7)
아크, 환경을 회복시키는 다정한 행동
대규모 도시공원과 정원만이 할 수 있는 역할과 가치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100개, 1,000개의 소정원 조성을 통해 더 많은 이가 일상에서 정원을 누릴 때의 효과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고, 이는 비인간 생명체에게도 마찬가지다. 생태 전문가들의 연구를 통해 입증되고 정책에도 반영되고 있는 이런 작은 공간들을 아일랜드의 정원 디자이너 메리 레이놀즈(Mary Reynolds)는 ‘아크(Ark)’ 조성을 통해 가꾸고 있다. 영화 ‘플라워쇼(Dare to be Wild)’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한 레이놀즈는 첼시 플라워쇼 역대 최연소 금메달 수상이라는 영광을 뒤로 하고, 큐 왕립식물원(Kew Royal Botanic Garden)을 포함한 대도시 공간을 야생 정원으로 조성했고, 나아가 땅을 돌보는 작업을 하고 있다. 레이놀즈가 설립한 아크(각주 8)는 창틀, 주택 단지의 경계, 고립된 작은 땅 조각 같은 우리 주변의 작은 자연을 지키고 재야생화한다. 이를 통해 작은 공간들이 서로 연결되고, 결과적으로 생태계가 되살아난다. 조각(patch)-통로(corridor)-바탕(matrix)이라는 경관생태학의 기본 원리가 그의 정원에서는 ‘환경을 회복시키는 다정한 행동(Acts of Restorative Kindness)’, 이 시대의 방주(Ark)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돌봄에 정원의 본질이 있다. 정원은 그저 보기 좋게 치장한, ‘인스타그래머블’한 녹지 공간이 아니고, 사시사철 꽃이 만발한 곳은 더더욱 아니다. 정원은 모두를 환대하는 장소가 되어야 하고, 나아가 우리가 감각을 회복하고 균형을 잡게 해주는 곳이어야 한다. 『정원을 말하다』에서 해리슨은 인간의 조건이 돌봄이고, 정원이 이를 가꾸는 장임을 역설했다. 그러면서 돌봄과 걱정이라는 뜻을 모두 담고 있는 케어(care)의 어원이 된 쿠라 여신의 신화를 인용했는데, 그가 흙을 빚어 인간을 만들었기에 우리에게는 돌보고 염려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정원을 가꿀 때 가장 잘 발현된다. 끊임없이 돌보고 염려하고, 시간의 흐름과 자신의 작은 존재를 깨닫고, 지구 전체로 돌봄과 염려의 관계를 확장하는 것이다. 모두가 실제로 정원을 가꾸지 않더라도, 정원으로 은유되는 우리가 사는 세계를 가꾸어야 하는 시대에 이러한 정원사의 정신은 더더욱 절실하다.
다시 정원을 말하려면
삼청동 일대 미술관들을 부지런히 다니던 시절, 별다른 안내문 없이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던 기무사와 인근 부지를 지날 때면 괜히 긴장되곤 했다. 토박이 주민에게 용산공원 부지 못지않게 복잡한 이곳의 역사를 듣기도 했지만, 여전히 담장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모 기업의 한옥호텔이 지어질 뻔한 곳이 복잡한 과정을 통해 공원으로 조성된다는 소식이 2020년에 들려왔다. 그때 본 이미지는 질 클레망(Gilles Clement)의 책에서 봤던 ‘제3의 경관(Le Tiers paysage)’을 떠올리게 했다. 오랜 기간 방치되어 황무지처럼 보이지만 생물 다양성 측면에서는 더욱 풍요로운 곳이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있다니. 핏 아우돌프(Piet Oudolf)가 기존 식생을 면밀히 파악해 식재한 하이라인만큼이나 멋진 생태적 공원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했지만, 몇 년 후 공개된 열린송현 녹지광장에는 인공적으로 조성된 ‘야생화 군락지’가 펼쳐졌다. 원래 있던 식생, 수십 년 동안 방치된 땅에서 나타난 천이는 어디로 간 걸까. 이전의 공원보다 시설이 줄어 탁 트인 녹지를 도심 한복판에서 볼 수 있다지만 이 열린송현 녹지광장은 터의 기억은 물론이거니와 끝내주는 ‘움직이는 정원(jardins en mouvement)’, 진정한 자연주의 정원이 될 기회를 영영 잃었다. 그리고 그 이름만큼이나 정체성이 모호한, 야생의 시뮬라크르만 남았다.
그리고 리노베이션을 마친 오목공원을 떠올렸다. 한때는 신도시였던 곳에 조성된 공원에 쌓인 시간의 켜를 존중해 “없애야 하는 뚜렷한 이유가 없다면 남기는”(각주 9)설계는 정교하면서도 다정하다. 수도원의 클로이스터 같기도 한 회랑과 중정은 아늑하고, 마음대로 옮길 수 있는 의자와 테이블만으로도 대접받는 기분이 들었다. 시간대에 따라, 행사에 따라, 공원 내 위치에 따라 다양한 상황이 펼쳐지고 어색하지 않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필자가 사는 동네에서 멀다는 것뿐. 오늘날 서울시를 포함한 여러 지자체에서 선포한 ‘정원도시’의 이상은 필자에게는 너무 거창하고 막연하다. 정원과 도시 중 어느 쪽에 방점이 있는 걸까. 하지만 오목공원에서, 공원이라고 부르지만 오늘날 도시에서 모두가 누리는, 그리고 누려야 하는 정원의 모습을 보았다. 이곳에서 우리는 다시 정원을, 도시 정원을, 정원도시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각주 정리
1. 황기원, “정원의 원형 시론”, 『환경논총』 20, 1987, pp.85~97.
2. 그래서인지 『조경개념사전』에서도 이를 “정원(전통적 의미)”, “정원(현대적 의미)”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김순기 외, 『조경개념사전』, 집, 2023.
3. 18세기 영국에서는 단순히 정원 일을 하는 이를 가드너(gardener), 명확한 의도를 지니고 정원을 설계하는 이를 가드니스트(gardenist)로 구분하기도 했다. 최근 살펴본 일본의 미학자이자 정원사 야마우치 도모키(山內朋樹)의 논고에서도 숙고를 바탕으로 정원을 설계하고 조성하는 니와시(庭師)와 원예적으로 정원을 가꾸는 가드너를 분리해 칭했고(『庭のかたちが生まれるとき』, フイルムア-ト社, 2023), 미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페너의 연구에서도 일반적인 정원과 구분되는 미학적 논의의 대상이 되는 정원을 더 가든(The Garden)으로 표기했다(David Fenner·Ethan Fenner, The Art and Philosophy of the Garden , Oxford University Press, 2024).
4.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
5. 김기훈, “송현동 부지 ‘정원형 공원’ 본격 조성…도심 문화관광공간으로”, 「연합뉴스」 2024년 9월 27
일.
6. 황주영, “정원, 제3의 자연”, 『환경과조경』 2018년 8월호, pp.118~119.
7. 차윤정, “보라매공원에 펼쳐질 ‘세 번째 자연’… 2025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작가정원 국제공모”, 서울
특별시 보도자료, 2024년 11월 15일.
8. 아크 홈페이지(wearetheark.org)
9. 김선미, “도시의 라운지로 변신한 오목공원 회랑의 마법”, 「동아일보」 2024년 2월 11일.
황주영은 이화여자대학교와 서울대학교에서 미술과 조경의 역사를 공부했고, 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 박사후연수를 마쳤다. 미술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사적 관점에서 정원과 공원, 도시를 보는 일을 좋아하고, 이와 관련된 강의와 집필, 번역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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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정원을 읽다] 정원박람회로 정원 문화 만들기
신 유토피아를 위한 정원박람회
정원박람회에 대해 AI 검색 엔진은 이렇게 대답한다. “정원박람회는 도시 정원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지역을 활성화하기 위해 개최되는 축제입니다.” 이러한 답변을 내놓게 된 이유에 궁금증을 가지며 추론을 시작했다.
먼저 우리는 왜 도시, 정원, 박람회를 관계 지을까. 물론 정원박람회가 열리는 공간적 배경을 도시만으로 한정 지을 수는 없지만, 이때의 도시는 인간의 삶과 생활 그리고 인간을 중심으로 한 모든 활동의 장을 의미하는 구체성을 내재한 개념으로 이해하면 좋을 듯하다. 다음으로 우리가 희망하는 도시의 경관에서 근거를 찾아보자. 16세기 초 토마스 모어(Thomas More)가 이야기한 가상의 섬나라 유토피아의 목판 지도가 떠오른다. 유토피아(utopia)는 ‘ou(없다)+toppos(대지)’의 조합으로 설명된다.(각주 1)이곳은 유토푸스(utopos)가 세운 나라이며 유토푸스는 ‘아무 지위가 없는 사람’을 뜻한다. 말 그대로 경제, 정치, 종교 등의 현실로부터 자유로운 이상향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편 모어의 목판 지도에서 발견되는 흥미로움은 이상향을 추구하는 유토피아의 경관이다. 도시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에 따르면, “도시의 모습과 유토피아의 모습은 오랫동안 서로 뒤섞여 왔다.”(각주 2) 유토피아들은 자연과 어우러진 도시 형태로 묘사됐다. 유토피아의 도시는 인간의 삶이 이루어지는 장소에 대한 은유이며 자연은 동경에 대한 지표로서 문화적 보편성을 표현하고 있다.
모어로부터 시작된 관념적 유토피아의 의미는 아일랜드 문인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를 통해 현실로 귀환된다. 그는 “유토피아를 포함하지 않은 세계 지도는 쳐다볼 가치조차 없다. 유토피아는 인류가 언제나 도달하고 싶어 하는 단 하나의 나라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각주 3) 즉 오스카 와일드의 유토피아에 대한 경관이 바람wish을 의미한다면, 우리는 진보하는 유토피아를 위한 희망 경관(hope landscape)을 추구하는 것이며, 우주선 지구호(각주 4)의 탑승자들은 그 목적과 실행을 위한 매체로 정원박람회를 사용하는 것이다.
정원박람회의 시작과 박람회 의미에 대한 재고
박람회는 일반 대중을 위한 교육과 미래상을 보여주기 위한 전시라는 의미를 가진다. 국제박람회에 관한 협약5에서 주요 단어를 추출해 보면, 인류의 노력, 성취된 발전의 모습, 미래에 대한 전망, 인류 계몽, 경제 및 사회적 발전, 세계인의 축제 등이 주요 골격을 이룬다. 정원박람회는 여기에 정원을 더해 이해하면 될 것이다.
우리가 유독 최초라는 사건과 사물에 집착하는 것은 원류로부터 근원을 파악하고 변화된 흐름과 경향을 파악하며 나아가 미래를 예측하기 위함이다. 정원박람회의 역사적 기원을 보면 정원박람회가 세계의 만국박람회보다 앞선다. 인류는 이미 부족 또는 왕조 국가 때부터 정원을 통해 부와 권력을 상징하고 전시한 것이다.(각주 6) 오늘날과 유사한 정원박람회의 효시로 벨기에(1809년), 영국(1827년), 독일(1869년) 등에서 개최된 행사들이 회자되고 있는데, 그중 아르데코(Art Deco)라는 사조를 낳은 1925년 파리 국제장식산업미술박람회에서 박람회 역사상 처음으로 정원을 주제로 한 전시 공간이 등장했다. 일련의 주제 정원이 조성되었다는 점은 요즘 한국의 정원박람회가 지향하는 목적에 견주어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 최초의 정원박람회는 2010년 시흥시 옥구공원에서 개최된 경기정원문화박람회다. 물론 1991년 고양꽃박람회를 최초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명칭과 목적에 비추어 보자면 시흥시가 먼저다. 무려 15년 전이지만, 당시 정원박람회의 슬로건과 목적은 충분히 정련되어 있었다.
‘도시, 정원을 꿈꾸다’라는 슬로건으로 단순한 정원박람회가 아니라 ‘문화’를 정원에 더하고자 했고, 최신 정원 디자인의 경향을 보는 것에서 벗어나 주민 참여를 통해 만드는 도시 공공 공간 가꿈 문화와 커뮤니티 디자인을 시도했다. 관련 기사(“2010 경기정원문화박람회”, 『환경과조경』 2010년 11월호)는 이 박람회의 가장 큰 특징으로 주민 참여로 완성된 공공 정원, 기업의 나눔 문화 실천의 장, 지역 축제를 통한 공원 리모델링 등을 꼽았다. 2024년 한국에서 개최된 정원박람회는 약 15개인데, 각 정원박람회의 취지와 목적이 10년 전에 비해 어떤 변화와 발전적 차별성이 있었는지 회고해 본다. 혹시 우리도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전병을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환경과조경444호(2025년 4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www.britannica.com/topic/Utopia-by-More
2. 데이비드 하비, 최병두 외 역, 『희망의 공간』, 한울, 2001.
3. 오스카 와일드, 박명숙 역, 『오스카리아나』, 민음사, 2016.
4. 벅민스터 풀러, 마리 오 역, 『우주선 지구호 사용설명서』, 앨피, 2007.
5. 기획재정부(www.moef.go.kr/sisa/dictionary)
6. 이양주 외, 『경기정원문화박람회 발전방안 연구』, 경기연구원, 2021.
권진욱은 영남대학교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 학위를 취득했고, 프랑스 낭시국립건축학교에서 DESS 학위, 파리-발드센느 국립건축학교에서 DPLG 학위를 취득한 프랑스 공인 건축사다. 계원예술대학교에서 정원과 관련한 과목들을 가르쳤고, 현재 영남대학교 조경학과에서 설계와 디자인 이론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환경과 관련한 디자인의 영역은 통섭적이며 총체적 시각으로 상호 교감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자연 순응적 디자인 해법으로부터 유연성을 담은 인간의 공간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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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정원을 읽다] 정원 붐이 만든 조경 설계 패러다임의 변화
한국에서 정원 붐이 일어난 지도 10년 이상이 지났다. 지난해 서울시 조경 부서 명칭이 푸른도시여가국에서 정원도시국으로 바뀌는 등 ‘정원’이라는 키워드가 조경계 전면에 부상한 만큼 정원 붐이 조경 설계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짧은 지면에서 이 주제를 넓고 깊게 다루는 데는 한계가 있어 관심 있게 바라본 세 가지 현상에 대한 나름의 관점을 소개한다. 우선 정원 붐이 어떻게 일어났고 그 결과 동시대 조경 생태계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정원 붐이 조경 설계 업계에 끼친 구체적 영향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최근 유행하는 자연주의 정원 설계 패러다임이 갖는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논의한다.
정원의 부활과 조경 생태계의 변화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정원 붐을 잘 이해하려면 조경 설계의 사조 변화를 통시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디자인적 관점에서 볼 때 20세기 초는 건축과 조경 모두 모더니즘의 시대로 기존의 양식주의가 부정되고 기능성과 기하학적 단순미가 강조됐다. 이 시대 조경가들(각주 1)의 작품을 보면 기하학적인 질서가 공간을 지배하고 재료의 양식적 표현은 극도로 절제된 것을 볼 수 있다. 1977년 찰스 젠크스(Charles Jencks)가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언어』를 통해 포스트모던이라는 말을 유행시킨 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본격적으로 포스트모던의 흐름이 시작됐다.(각주 2) 이 시기의 조경가들(각주 3)의 작품은 기하학적 질서에서 탈피하고 기능보다는 장소성, 문화적 맥락, 감성적 조형을 특징으로 한다. 이런 포스트모던의 흐름 속에서 디자이너들은 기존에는 양식주의로 치부하던 수공예적 디테일에 다시 높은 가치를 부여했다. 첼시 플라워쇼가 1980년대 이르러 본격적으로 부흥하고, 1990년대에 쇼몽 가든쇼가 시작하게 된 배경에는 이런 시대적 변화가 있었다. 이 시점부터 정원 작가들(각주 4)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정원 작품에서 다양한 수공예적 디테일을 선보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양보다는 한발 늦게, 201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정원박람회에서 정원 작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각주 5) 국내외 정원 작가들은 작품을 통해 섬세한 식재 표현과 수공예적 정원 연출 기법을 선보여 왔으며 대중들의 관심을 받았다.
이후 전통적으로 조경가의 업역이라 여겨졌던 일상적 외부 공간 설계와 관련된 프로젝트까지 정원 작가들이 수행하며(각주 6) 조경 생태계에도 자연스럽게 변화의 움직임이 생겼다. 2010년 이후 정원박람회의 부흥과 함께 오래된 수목원 리노베이션, 신규 수목원 조성, 민간 정원 등 정원 관련 프로젝트들이 조경계 전반에 양적으로 확산됐다.(각주 7) 또한 국내외 우수한 정원들을 경험한 대중이 많아지고 정원과 식물을 바라보는 시민의 눈높이가 높아지며, 조경가 역시 자연스럽게 식재 설계에 이전보다 더 많은 관심을 두게 되었다. 조경가 중 일부는 식재 설계 역량을 키우고자 정원 분야에 진출해서 정원 작가로서 활동하기도 한다. 연차가 짧은 젊은 조경가 중 역량 강화를 위해 설계사무소를 잠시 떠나 민간 식물원의 정원사 양성 과정을 수료한 뒤 조경 설계 분야에 재취업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이처럼 스스로 식재에 대한 소양을 키우는 조경가가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근대적 의미의 조경가8로서 본연의 정체성을 유지하되 식재 설계에 전문성이 있는 정원 작가나 원예가와 협업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물론 이와 같은 흐름이 과거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최근 이런 협업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환경과조경444호(2025년 4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대표적으로 개럿 에크보(Garrett Eckbo)나 댄 카일리(Dan Kiley)와 같은 모더니즘 조경가들이 활동했다.
2. 쿠마 켄고, 『약한건축』, 디자인하우스, 2010, p.111.
3. 포스트모던 시대를 연 대표적인 조경가로 찰스 젠크스, 캐서린 구스타프슨(Kathryn Gustafson),마사 슈워츠(Marha Schwartz)가 있다.
4. 1990년대 존 브룩스(John Brookes), 베스 샤토(Beth Chatto), 핏 아우돌프(Piet Oudolf)와 같은 정원 작가들이 등장했다. 2000년대에는 톰 스튜어트 스미스(Tom Stuart-Smith), 앤디 스터전(Andy Sturgeon) 같은 작가들이 활약했다.
5. 대표적 정원 작가인 황지해는 첼시 플라워쇼에서 ‘해우소’(2011) 아티즌 가든 부문 금메달, ‘침묵의 시간: 비무장지대 금지된 정원’(2012)으로 쇼가든 부문 금메달을 수상했다.
6.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은 정원드림 프로젝트, 생활밀착형 숲(정원) 조성 사업 등을 통해 정원 작가에게 일상 공간에 정원을 설계할 기회를 제공했다.
7. 포천 국립수목원, 수원수목원 같은 오래된 수목원 리노베이션과 함께 서울수목원, 세종수목원, 백두대간수목원 같은 신규 국립수목원 조성 프로젝트가 이어졌다. 산림청은 생활밀착형 정원 사업을 지속적으로 시행 중이다. 최근 화성시는 보타닉가든 화성 사업의 일환으로 동부권 공공정원화 설계공모를 진행했다. 이처럼 정원이 주제가 되는 설계 프로젝트가 전례 없이 늘고 있다.
최재혁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조경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KnL환경디자인스튜디오에서 정원 및 조경 설계 실무를 익혔다. 2017년 오픈니스 스튜디오(Openness Studio)를 개소해 생태적 관점을 바탕으로 정원, 공공예술 분야에서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조직위원,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서울시립대학교 정원 및 공원 설계 수업에 출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