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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몰링하는 도시생활자-공동공간 쇼핑안내서 제16회 조경비평상 가작
    “나는 우리가 여전히 가로와 광장이 공공을 위한 영역이라는 생각에만 집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공공을 위한 영역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어요.(각주 1)쇼핑은 인류 공공 활동의 마지막 남은 형식일 것입니다.”(각주 2) 1. 몰링하는 도시생활자 나는 아침 청소와 빨래를 마치고 대형 쇼핑몰을 산책하고 있다.(각주 3) 아쿠아리움 주변은 학생들로 북적인다. 연차를 쓴 오늘, 딱히 별다른 목적은 없다. 그저 어슬렁거리다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실 생각이다. 우연히 괜찮은 카디건을 발견하면 입어볼 수도 있겠다. 몸뚱이에 외제들로 가득한 나 자신이 혐오스러워 국산 브랜드 한두 곳을 둘러보긴 할 건데 오늘 지갑을 열 생각은 없다. 어제부터 열린 팝업에서 러닝 장갑이나 양말 색깔이 마음에 들면 와이프 선물로 살 수도 있겠다. 이따 영화를 볼지 스파에 갈지는 고민 중이다. 강아지 터깅 장난감과 바질페스토는 사갈까 싶다. 근데 귀찮으면 밥만 먹고 집에 가서 쪽잠이나 자려 한다. 나는 이따 쇼핑하긴 할 건데 쇼핑하지 않을 수도 있고 지금 쇼핑하고 있는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각주 4) 이러한 오프라인 리테일 공간에서의 산책과 점유, 방랑과 배회를 몰링(malling)이라 부른다.(각주 5) 바깥은 지금 미세먼지가 많기도 하고 날씨 예보는 고장 난 오락기처럼 오락가락한다. 사오월과 구시월을 지나 그래픽·사인의 남루함을 드러내는 주변 공원에는 촌스러움이 싹트고 지루함이 개화한다. 공원의 맥락을 무시한 채 뜬금없이 등장하는 땡땡 정원들. “왜 공원 안에 정원이 있는지 모르겠다, 제대로 된 건축도 없고 공원도 엉망인데 별 요상한 정원들만 많다”는 동네 아주머니들의 철학적 대화는 꽃 사진을 찍는 아저씨들의 조리개 너머로 개똥처럼 사라진다. 제각각의 그래픽·사인으로 난장을 이루는 여느 핫플 거리들은 공황장애 초기 증세를 유발한다. 그렇다고 파시즘이 점령한 마을처럼 색채가 획일화되고 경직된 기획 공간을 걷기에는 시간이 아깝다. 세금으로 충당한 재원을 이렇게 썼다는 전시 행정의 비루함. 힘들게 모은 돈으로 자녀를 통제하려는 엄마 아빠의 욕심과 오버랩된다. 찰나의 영감보다는 특유의 비장함과 모종의 살기로 뒤덮인 거리. 따분함과 씁쓸함을 배가시킨다. 공원 게이트 주변에 걸린 정치 편향적 현수막들과 공사 준공을 뽐내는 전시 행정의 파편들. 다수의 광장, 거리, 공원 등의 공공 공간들은 검소하면서도 누추하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럽다. “공공 영역은 사라지고 공공 공간만 남았다”는 누군가의 도시 진단이 떠오른다.(각주 6) 그사이 마주치는 몇몇 상인들의 태도는 부담스러운 비즈니스적 환대감 또는 저급한 불친절함 그 어딘가의 좌표에 널부러져 있다. 반면 대형 쇼핑몰은 과거의 잡스러움과 호객 무드를 탈피한 지 오래다. 편집숍, 박람회장, 미술관의 큐레이터 무드로 고객을 느슨하게 환대한다. “어서오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는 이제 불필요한 화법이다. 똘망똘망한 눈빛과 연출성 웃음보다는 되려 차분하고 시크한 눈빛의 담담함이 덜 부담스럽고 더 전문적으로 느껴진다. 대형 쇼핑몰은 고객이 상품과 교감할 시간, 선물 거리를 고민할 시간, 브랜드 가치를 경험할 시간, 그 경험 자체를 공유할 시간, 어슬렁거림과 익명성을 누릴 시간이 모두에게 고결한 시간들로 인정되는 고립 영토다. 이곳에선 서로의 취향과 영역이 오롯이 존중된다. 상품이 진열되고 간택되는 “셀링 공간”은 브랜드 고유의 가치가 전개되는 “쇼룸”의 형식으로 전환되었기에(각주 7) 상품 앞에, 아니 쇼룸과 몰이라는 이 영토 안에서 익명의 이웃들이 평등해지는(듯한) 순간을 마주하는 것이다.(각주 8) 대형 쇼핑몰에서는 전체 공간을 아우르는 일관된 무드의 그래픽·사인이 공간의 레이아웃을 잡는다. 그 안에서 여러 테넌트들이 각자의 개성을 전개한다. 주차장, 식품, F&B, 코스메틱, 여성 패션, 럭셔리, 컨템, 남성 패션, 스포츠, 리빙, 식당가, 문화센터, 옥상정원들이 각 층에 고루 배치되어 있다. 이색적인 팝업스토어와 보이드 VM, 유명 아티스트의 수준 높은 전시회와 테니스 클래스, 시네마와 스파, 셀렉숍 콘셉트의 서점과 특색 있는 카페들, 적당한 온도의 에어컨디셔닝과 깨끗한 화장실, 편리한 ESC와 무장애를 위한 E/V는 덤이다. 적재적소에 전략적으로 배치된 벤치들과 고감도로 연출된 화분과 화단이 인공적인 환경에 환대감을 선사한다. 보타닉·바이오필릭 개념의 대형 쇼핑몰 디자인은 유행이 많이 지났지만 여전히 유효한 디자인 옵션 중 하나가 되었다.(각주 9) 유리 천장은 높이 뚫려 은은한 햇빛이 들어오고 고감도로 디자인된 적당한 크기와 색감의 그래픽·사인이 공간에 안정감을 더한다. 매장 주변의 보행 폭원은 4m에서 12m까지 널찍해서 마주 오는 사람들이 있다 해도 둘이 걷다 하나가 없어질 리없다. ESC는 MD 구성에 따라 1ㆍ2층을 연결하기도 하고 2ㆍ4층을 과감하게 연결하기도 한다. 벤야민이 19세기 파리의 아케이드에서 목격한 쇼핑공간의 스케일을 몇십 배 넘어서는 이곳엔 콜하스가 예견했던 대형 건축의 특성들이 충만하다. 대형 쇼핑몰 건축 파사드와 내부의 디자인 연계는 모호하고(건축내ㆍ외부의 분리), 내부 공간들은 서로 다른 취향의 디자인 콘셉트로 가득하며(내부와 내부의 분리), 내부 공간의 테넌트와 팝업은 끊임없이 변모하고(단절과 연계의 지속적 변화), 고객들은 전후방 구분 없이 각 층과 각 방향에서 쇄도한다(전이감의 해체).(각주 10) 2. 라지(large)-쇼핑몰과 유사공(共)원 대형화된 쇼핑 공간에서의 몰링은 여느 도시공원 산책과 유사하다. 동선 디자인에는 픽처레스크의 유려한 곡선 DNA가 담겨있다. 더 많은 양의 브랜드를 보행자에게 인식시키려는 쿨한 상업적 시뮬라크르다. 대형 쇼핑몰은 누구나 자유롭게 입장할 수 있으며 유니버설 디자인의 수준은 펫 라운지까지 이르렀다. 케빈린치가 제시했던 도시 이미지의 다섯 가지 요소도 이곳에서 유효하다. 에지는 고객 사이드 동선·직원 후방 동선으로, 패스는 메인 동선으로, 디스트릭트는 각 테넌트의 매장들로, 노드는 트래픽 교차점과 결절부(VP) 공간으로, 랜드마크는 곳곳의 대형 보이드와 VM·팝업 공간으로 완벽히 치환된다. 이러한 구조적 특성은 도시생활자에게 다른 행성 소 도시에 온 듯한(낯설지만 익숙한) 기분을 선사한다. 장축 200~400m에 단축 100~150m를 선회하는 대형 쇼핑몰은 거대한 공원과도 같다. 어느 조경 비평가도 모 기자에게 야구장을 파크(park)라고 하지 않았던가.(각주 11) “도시가 공원이고 공원이 곧 도시”라는 20여 년 전 다운스뷰 파크에서의 문장이 지금도 유효하다면, “도시가 대형 쇼핑몰이고 대형 쇼핑몰이 곧 도시”라는 은유 역시 가능해 보인다. 대형 쇼핑몰의 독특한 몰링 경험을 극대화하는 것은 “라지(large)”가 선사하는 규모감이다.(각주 12) 국내 오프라인 대형 리테일의 경우 교외형 아울렛은 2007년(여주 신세계아울렛), 도심형 대형 백화점은 2009년(부산 신세계백화점), 도심형 복합쇼핑몰은 2014년(잠실 롯데월드몰)부터 본격적으로 출현하기 시작했다. 특히 도심형 대형 백화점과 쇼핑몰의 경우 건축물 외부 녹지와 외부 주차장을 제외한 1층의 건축(영업) 면적만 따지더라도 근린생활권 근린공원 1만㎡와 도보권 근린공원 3만㎡ 이상의 규모를 충분히 상회한다. 1층 몰링에 약 15분(약 1km)이 소요된다고 가정하면, 지하 1층~지상 5층 몰링에만 약 1시간 30분(6km)이 소요된다. 또한 대형 쇼핑몰은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제3조와 시행규칙 별표1에서 규정한 공원시설(조경시설, 휴양시설, 유희시설, 운동시설, 교양시설, 편익시설, 공원관리시설, 도시농업시설, 그밖의 시설) 대부분을 포함한다. 설치하기에 어색한 시설은 “9. 그 밖의 시설” 중 “가. 장사시설”, “라. 보훈회관”, “마. 무인동력비행장치 조종연습장” 등 세 가지 종류에 불과하다.(각주 13) 법규적으로도 이 둘은 모두 국계법이 정한 “기반시설”이다. ‘국계법’ 시행령 제2조(기반시설)에서 규정한 일곱 가지 종류의 기반시설 중 공원은 공간시설에, 대형 쇼핑몰은 유통·공급시설에 해당한다. 모두 ‘도시·군계획시설의 결정·구조 및 설치기준에 관한 규칙’ 제2조(도시·군계획시설결정의 범위)에 따라 도시·군관리계획결정을 받아야 하는 도시계획시설이다.(각주 14)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형 쇼핑몰은 동선의 형태와 공간의 구조, 근린공원·문화공원의 규모감을 바탕으로 대부분의 공원시설을 수용하며 주어진 시간 내에 누구나 자유로운 출입이 가능하다. 구경하고 관찰하고 구매하고 사진을 찍고 기다리는 활동,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멍을 때리는 활동, 브랜드 팝업이나 대규모 이벤트에 참여하는 활동도 가능한 멀티플레이어다. 심지어 야구장, 극장, 공연장처럼 입장료를 징수하지도 않고 좌석에 차등을 두지도 않으니 그 유사도가 대단히 높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공원(公園)은 사(私)적인 장소의 반대 개념으로서 국가나 사회에 관계된 “공적인(public) 장소”를 의미하므로, 대형 쇼핑몰을 유사공원이라 부르기에는 무리일 수도 있다. 그것은 공원의 아류 또는 공원의 가면을 쓴 상업적 페이크 공원(fake park)에 불과한 것 아닐까? 그러나 이 지점에서 우리가 몰링 경험이 선사하는 공동의 감각에 다시 한번 주목하는 순간, 유사공원의 가능성이 개화한다. 이 접근은 유사공원의 성립 조건을 공(公)과 사(私)라는 소유 개념에 두는 것이 아니라, 공공(公共)공간에서의 두 번째 공(共), 즉 커먼즈(커머닝)의 공간 경험에 주목하는 미학적 접근이다. 이에 따라 대형 쇼핑몰은 단순히 공원과 닮아 보인다는 의미의 유사공원(類似公園)일 뿐만 아니라 유사공원(類似共園), 즉 공과 사의 구분 없이 둘 또는 그 이상의 것에 관계하는 “공동(통)적인 것(commons)”을 경험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제 유사공원은 엄연히 새로운 버전의 스핀오프 시리즈로 거듭난다. 이 세계관에서 대형 쇼핑몰, 야구장, 공항, 가로, 환승센터, 역사, 박물관, 대형병원 등은 모두 유사공원의 지표인 “공동공간 커머닝(감각)”이라는 속성을 득하게 됨으로써 유사공(公)원의 위상, 아니 유사공(共)원이 된다.(각주 15) *환경과조경442호(2025년 2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렘 콜하스, 봉일범 역, 『렘 콜하스: 학생들과의 대화』, 엠지에이치엔드맥그로우한, 2000, p.45. 2. Rem Koolhaas, Chuihua Judy Chung, Jeffrey Inaba, Sze Tsung Leong(eds), Project on the city Ⅱ Harvard Design School Guide to Shopping , Cologne: Taschen, 2002, p.1. “Shopping is arguably the last remaining form of public activity”라는 선언은 렘 콜하스와 하버드 GSD의 도시연구서 시리즈 중 쇼핑과 도시의 관계를 다룬 두 번째 연구서 서문의 첫 문장이다. 이 연구서는 네 명의 저자가 작성한 약 800여 페이지의 에세이 모음집이며, 첫 번째 연구서 『Great Leap Forward』는 부동산의 세계화를 다룬다. 3. 이 글에 등장하는 대형 쇼핑몰은 비좁은 공간의 중소형 백화점이 아니라, 판매자와 잠재 고객 간의 거리가 최소 7m 이상 떨어져 서로의 시선이 희미하게 캐치되는 쇼핑 공간, 세미-프라이버시 확보라는 익명성의 규율을 암묵적으로 준수하는 쇼핑 공간을 의미한다. 이 기준은 ‘유통산업발전법’ 제2조 제3호에서 규정하는 대규모 점포(대형마트, 전문점, 백화점, 쇼핑센터, 복합쇼핑몰)의 규모 3천제곱미터 이상의 매장 면적을 훨씬 상회한다. 롯데월드몰(잠실), 더현대서울(여의도), 스타필드(하남, 고양), 타임빌라스(수원), 롯데백화점(동탄), 롯데프리미엄아울렛(의왕, 동부산), 현대백화점(판교), 현대프리미엄아울렛(김포, 남양주), 신세계백화점(대전, 대구), 롯데몰 웨스트레이크(하노이) 등 백화점·아울렛·복합쇼핑몰 일체를 일컫는다. 4. 쇼핑의 개념은 구매하는 쇼핑, 구경하는 쇼핑을 거쳐 브랜드 고유의 가치를 오감으로 경험하는 개념, 그 경험을 익명의 이웃과 공유하는 개념으로 확장해왔다. 즉 물질 소비가 브랜드의 경험가치 소비로 전환된 것이다.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은 “쇼핑이 물질에 국한되지 않고 심리적인 것이 되는 양상은 마르크스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쇼핑을 “돈과는 상관없는 하나의 공연”으로 보았다. 렘 콜하스, 프레드릭 제임슨, 임경규 역, 『정크스페이스ㅣ미래도시』, 문학과지성사, 2020, pp.92~93. 5. 대형 쇼핑몰의 몰링은 독특한 유형의 공동(커머닝) 감각을 선사한다. 커먼즈 연구가 데이비드 볼리어(David Bollier)에 따르면 커머닝이란 공유된 자원을 관리하는 체제들을 창출하는 데 필요한 상호 지원, 갈등, 협상, 소통 그리고 실험의 행동들을 의미한다. 이 글은 “커먼즈가 기본적으로 물질적 욕구와 정서의 공유 전반을 포괄한다”는 그의 주장에 주목함으로써 공동공간에서의 공동 경험, 즉 “커머닝 감각”이라는 용어를 제시하였다. 또한 커먼즈와 커머닝이 “단순한 공유(sharing)의 의미일 뿐만 아니라 나눔과 참여의 의미를 갖는다”는 한디디의 유연한 해석은 이 글이 몰링의 의미에 대한 전반적 기조를 형성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커머닝과 커먼즈의 유의미한 담론은 다음을 참조할 것. 데이비드 볼리어, ‘Commoning as a Transformative Social Paradigm(사회변형 패러다임으로서의 커머닝)’, The Next System Project, thenextsystem.org/newsystemsreader; 데이비드 볼리어, 배수현 역, 『공유인으로 사고하라』, 갈무리, 2015; 한디디, 『커먼즈란 무엇인가』, 빨간소금, 2024. 6. “공공성과 공공 영역은 사라지고 물리적인 공공 공간들만 남았다”는 그의 기조는 여러 에세이에서 일관되게 드러난다. 4번 책, pp.31~44. 7. 롯데백화점 본점 ‘탬버린즈’, 잠실 롯데월드몰 ‘아더에러’, 하남 스타필드 ‘젠틀몬스터’ 사례처럼 비교적 작은 공간에서도 브랜드의 가치는 전개된다. 무신사 스탠다드와 같은 단독 매장들도 대형화가 되면서 피팅룸 역시 사이즈를 확인하는 엄숙한 밀폐 공간이 아니라 피팅의 과정을 즐기는 유희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8. 상품 앞에 평등하다는 말은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고가의 명품들이 중산층에게 박탈감을 선사하고 불평등을 조장한다는 주장도 있었으나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일례로 조던 신상의 획득은 클릭을 누가 더 먼저하고 오픈런을 누가 더 먼저하느냐에 달려있게 되었다. 9. 의왕 롯데프리미엄아울렛과 여의도 더현대서울 모두 2021년에 오픈했다. 보타닉·바이오필릭 쇼핑 공간 콘셉트는 1851년 영국 만국박람회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 글의 3장에서 다시 한번 언급할 예정이다. 10. 대형 건축의 특성들은 국내에 번역된 그의 여러 책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되기는 하나 그중 가장 친절한 설명은 1번 책을 참조할 것. 11. 최근 야구장과 대형 쇼핑몰이 하나로 연결된 세계 최초의 돔품몰(인천 청라) 청사진이 공개됐다. 유사공원(야구장, 대형 쇼핑몰)의 기묘한 동거를 주제로 삼자대면을 한다면 그 기자의 표정이 어떨지 궁금하다. 12. 1956년 미국 최초의 몰, 미네소타주 사우스테일 쇼핑 센터의 규모는 보통 사람들이 도심에서 세 블록 정도를 걷는다는 원칙에 근거하여 그 거리에 해당하는 1,000피트가 평균 길이가 되었다. 설혜심, 『소비의 역사』, 휴머니스트, 2017, p.351. 13. 제도적으로 대형 쇼핑몰은 건축법에서 규정하는 다수의 시설을 대거 포함한다. 특히 ‘도시·군계획시설의 결정·구조 및 설치기준에 관한 규칙’ 제84조(시장의 구조 및 설치기준)와 ‘건축법’ 시행령 별표1(용도별 건축물의 종류)에서 정한 방대한 종류의 편익시설을 참조할 것. 14. 세부적으로 대형 쇼핑몰은 ‘유통산업발전법’ 제2조(정의)에 따른 대규모 점포(대형마트, 전문점, 백화점, 쇼핑센터, 복합쇼핑몰)에 해당하며 ‘건축법’ 시행령 제3조의5(용도별 건축물의 종류)에 따라 판매시설 중 소매시장에 해당한다. 15. 물론 유사공원 중 민간 자산의 경우 커머닝의 종류가 상대적으로 단조롭고 예측되며 특정 조직의 규율에 의해 통제된다는 점에서 커머닝의 한계가 존재한다. 쇼핑 공간에 우수고객 등급별 차등 서비스가 존재한다는 측면에서 유사공원 정의가 비약으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우수고객제도라는 보상 마케팅은 고립 영토의 자체 규율이라는 점과 그 내용이 공개되어 있다는 점에서 유사공원으로서의 결격 사유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권정삼은 씨토포스와 도화엔지니어링에서 도시·조경 디자인과 인허가 컨설팅을 담당했다. 현재는 롯데백화점 디자인센터 비주얼 부문에서 국내외 다양한 공간 디자인 빌드 파트너사와 협업하며 오프라인 리테일(백화점, 쇼핑몰, 아울렛)의 실내외 조경 디자인 프로젝팅, 프로듀싱, 디렉팅을 총괄하고 있다.
    • 권정삼
  • 2024 조경비평상 심사평
    월간 『환경과조경』이 주최한 ‘2024 조경비평상’에는 여섯 편의 원고가 접수됐다. 지난 1월 15일 본지 세미나실에서 배정한 편집주간, 남기준 편집장, 박승진 편집위원이 열띤 토론을 벌인 끝에 권정삼의 ‘몰링하는 도시생활자’를 가작으로 선정했다. 비평은 대상과 현상을 탐구하거나 조사한 결과를 적는 논문이나 보고서가 아니다. 에세이와도 다르다. 비판적 읽기와 쓰기를 넘나드는 비평은 대상과 현상의 의미를 해석하고 가치를 평가해야 하며, 주장과 논리를 뒷받침하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비평은 창작보다 더 어려운 글쓰기 방식이라고 볼 수도 있다. 게다가 조경비평은 조경 행위의 결과물인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공간 또는 문화 현상을 기술, 해석, 평가하는 작업이므로 쉽지 않은 글쓰기 장르다. 논거를 충실히 갖춘 글보다 한 번에 읽히는 글과 이미지가 사랑받는 시대에 여섯 편의 평문이 접수되어 반가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다수의 출품작이 비평의 필요충분한 형식을 갖추지 못했고, 동시대 조경에 의제를 던지거나 기성 담론에 균열을 내는 참신한 주제를 제시하지는 못했다는 점이 아쉬웠다. 그럼에도 응모자 모두 조경비평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확인한 바, 다음 ‘조경비평상’의 문을 다시 두드릴 것을 권한다. 가작으로 뽑은 ‘몰링하는 도시생활자’는 경쾌한 글쓰기 스타일이 돋보이는 글이었다. 대형 쇼핑몰에서 도시공원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는 참신한 발상을 논리적으로 끌어갔다는 점에서 가작으로 선정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한층 더 압축적으로 논지를 전해 독해의 밀도를 높였다면 어땠을지 궁금하지만, 역으로 길게 풀어쓰는 형식 자체가 장점으로 읽히기도 했다. 출품자 권정삼의 말처럼 대형화된 쇼핑 공간은 일종의 공공 영역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몰링’ 행위는 도시공원에서 경험하는 산책과 유사한 면이 있다. “도시가 대형 쇼핑몰이고 대형 쇼핑몰이 곧 도시”라는 주장, 대형 쇼핑몰이 “유사공원의 지표인 공동공간 커머닝(감각)이라는 속성을 득하게 됨으로써 유사공公원의 위상, 아니 유사공(共)원이 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수상을 축하하며, 이번 글쓰기에서 보여준 잠재력이 앞으로의 비평 활동에서 더욱 정련되어가기를 기대한다. 가작 수상작과 함께 최종 토론에 오른 제출작 ‘서사의 발견’은 글의 탄탄한 구조가 돋보이는 평문이었다. 조경에 서사를 담아야 한다는 주장을 세 가지 예를 통해 제시한 점이 안정적이었지만, 조경과 서사를 잇고 엮는 논지가 결론에 다다르지 못했다는 데 심사 의견이 모였다. 응모자 모두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내년에는 작가론, 작품론을 비롯해 다양한 평문이 도착하기를 기대한다.
  • [기웃거리는 편집자] 바람 따라 보낸 하루
    일요일 아침, 단잠을 깨우는 알람 소리가 울린다. 힘겹게 눈을 떠 잠을 깨우는 녀석이 누구인지 확인해 보면 매주 보던 알림이다. “지난주 스크린 타임은 12% 증가하였으며 하루 평균 기록은 4시간 25분입니다.” 울릴 때마다 알람 소리를 꺼두어야지 생각하지만 다시 잠을 청하기 위해 당장 울리는 알람 소리 끄기에만 급급해 설정을 바꾼다는 걸 까먹어 매주 만난다. 메시지를 볼 때마다 조금은 반성하게 된다. 증가만 하는 스크린 타임 기록, 줄어드는 일은 손에 꼽힌다. 하루 24시간을 기준으로 8시간을 잠을 자고 8시간을 회사에서 지내니 16시간을 빼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8시간. 8시간 중 절반은 핸드폰을 보고 있다는 소리다. 스마트폰 없이는 못 사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하지만, 계산한 시간을 보니 하루 중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이 얼마 없는 것 같다. 특히 밥 친구로 OTT나 유튜브를 보는 습관이 스크린 타임을 늘리는 데 일조하고 있다. 밥 먹으며 보는 몇 가지 유튜브 채널이 있는데, 이 중 업로드되면 바로 찾아가 보는 채널이 있다. 유재석이 진행하는 ‘핑계고’다. 유재석이 게스트들과 함께 떠들어 제끼는(이 채널에서 ‘수다를 떤다’는 단어를 ‘떠들어 제낀다’라고 표현한다) 영상으로, 라디오처럼 즐길 수 있어 밥 먹을 때 잘 챙겨 본다. 배우 황정민이 핑계고에 출현해 채널명을 실수로 ‘풍향고’라고 잘못 말해 시작된 스핀오프 시리즈는 내게 색다른 계획을 세우게 했다. 유재석이 풍향고에 ‘바람 따라 떠나는 여행’이라는 설명을 덧붙이면서 정식으로 풍향고가 만들어졌고 유재석, 황정민, 지석진, 양세찬이 함께 베트남으로 떠났다. 베트남으로 떠나면서 조건을 덧붙였는데, ‘애플리케이션 없이 떠나는 여행’이다. 사전에 비행기 표만 예약하고 숙소, 이동 수단, 환전, 음식점 등은 현지에서 해결하는 것이다. 애플리케이션 없이 베트남에서 고군분투하는 출연진의 모습이 웃기면서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어딜 가든 휴대폰을 안 챙긴 적이 없으니 애플리케이션을 쓰지 않고 여행을 간다는 걸 상상한 적이 없다. 애플리케이션 없이 해외여행은 무리인 것 같아 당일치기로 가까운 곳을 다녀오는 걸로 도전했다. 목적지는 경기도 양평의 어느 대형 카페. 첫 장소만 정하고 다음 장소는 도착하면 고르기로 했다. 출발 전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수도권만 확대되어 있고 명소가 표기된 종이 지도를 구하는 게 힘들었다. 서점에서 파는 국내 여행 책을 뒤져 원하는 지도를 찾았고, 종이 한 장 들고 떠났다. 최대한 경로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더 집중해서 지도와 표지판을 봤다. 무사히 도착한 카페에서 마신 커피는 더 달달했고, 통창으로 본 남한강의 풍경은 시원하게 뻥 뚫린 기분을 느끼게 했다. 다음 목적지는 딸기 체험 농장. 처음에는 양평의 대표 명소 두물머리를 가려고 했는데, 카페 오다 본 ‘달달한 딸기도 따고 케이크도 먹고’라는 광고 문구가 생각나 농장으로 가게 됐다. 가지고 온 지도에는 표기되어 있지 않아 기억을 더듬어 왔던 길로 되돌아가며 도착했다. 이미 예약이 다 차 있어서 취소 표가 나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조금 고민됐지만 하자고 마음먹었으니 기다리기로 했고, 다행히 자리가 났다. 딸기 따고, 딴 딸기로 케이크도 만드는 꽤나 알찬 체험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기 시작해 근처에 보이는 한정식 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여행을 마무리했다. 글로 읽을 땐 큰 탈 없이 다닌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경로 이탈도 많이 하고 목적지 하나 정하는 것도 오래 걸렸다. 카페에서 그냥 집에 갈까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찼지만 이왕 시작한 아날로그를 즐겨 보기로 했다. 어딘가에 앉으면 SNS 게시물을 보는 게 루틴이 되었는데 할 게 없으니 주위를 더 둘러보게 됐다. 특히 동행자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애플리케이션 없이 잘 다녀올 수 있을까 걱정 반, 뭔가 더 재미있을 거 같은 설렘 반으로 바람 따라 떠난 여행은 스스로 쌓아둔 장벽을 무너뜨리게 했다. 뭐든 해낼 수 있는 무모한 자신감을 불어넣어줬다. 새해 버프까지 더해진 자신감은 을사년도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을 갖게 했다
  •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결국 편지를 읽어 줄 주인을 찾는 일이지 않을까
    정기구독자 수 그래프의 기울기를 들여다보는 시기다. 가슴에 잡지 더미를 쌓아놓은 것처럼 답답해진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압박감. 그래서 떠올린 게 활자라도 내 안에 채우자는 생각이었다. 두꺼운 책은 부담스러웠다. 그렇다면 한손에 쏙 들어오는 127×191mm 판형에, 331g의 가벼운 무게의 책이 좋겠다. 15년간 잡지를 만들어온 베테랑 편집자이자 『보스토크 매거진』 편집자인 박지수의 『잡지 만드는 법』(유유, 2023).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가볍게 휙휙 넘겨 보겠다는 게 얼마나 건방진 생각이었는지 읽다 멈추기를 반복해야 했다. “잡지의 이름에는 뜻과 소리뿐만 아니라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제호가 지닌 모양‧시각성이다. 아무리 뜻과 소리가 좋은 제호라도 표지에서 시각적으로 구현되기 어려운 형태라면 곤란하다.”(『잡지 만드는 법』 28쪽, 이하 책 제목 생략) 친구 Y가 내게 왜 잘 만든 로고를 활용하지 않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표지에 환경과조경의 텍스트 로고 laK를 크게 넣어 디자인 요소로 사용하던 때의 일이라 고개를 갸웃거리니 설명이 이어졌다. 환경과조경이라는 제호는 올드하고 딱딱한 느낌이 강한데, 이 로고는 힙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라크’라고 부르면 안 되냐는 말에 공식 제호가 있는데 굳이 혼란을 줄 필요는 없다고 답했었다. 환경과조경이라는 이름을 먼저 알리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답이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Y의 말이 가끔 생각난다. 은밀히 라크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아지도록 유도해 보라고, 어떤 이름이건 더 많은 사람에게 불리면 좋은 거 아니냐던 그 말이.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킬 것. 표지를 고를 때 가장 유념하는 부분이다.”(157쪽) 눈치 챘는지 모르겠지만 독특한 형태의 도면을 표지에 두려고 노력하고 있다. 시선을 빼앗는 공원의 전경 등 풍경 사진도 좋지만, 조경설계를 다루는 전문지라는 특징을 단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이미지가 도면이라는 데 편집자들이 동의했기 때문이다. 더 감성적이고 화려한 사진으로 표지를 장식할 수 있는 정원, 여행, 라이프스타일 잡지 사이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너무 의미에 무게를 두고 즉각적인 반응을 간과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스러울 때가 있다. “포맷과 폼이 고정되면 단순히 형식만 일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에 맞춰 내용이 규격화된다. …… 그렇게 되면 독자에게 편안함과 익숙함을 제공했던 포맷과 폼이 어느 순간 지루함과 정체감으로 다가가기도 한다.”(39쪽) 고백하자면, 2022년 새롭게 시도한 지면을 편집할 때 갑갑함을 자주 느꼈다. 잡지 서두에 배치된 이 꼭지는 프로젝트의 설명글과 더불어 조경가의 인터뷰를 함께 담았는데, 지질을 달리해 촉각적으로도 구분되도록 기획됐다. 접지 제본 방식 특성상 프로젝트의 성격이나 규모에 상관없이 늘 16쪽으로 편집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이 지면에 소개할지 말지 고민이 되는 프로젝트가 생기기도 했다. 종이 위에서 여러 번 멈춰 섰지만, 가장 오래 걸음을 옮기지 못한 곳은 『보스토크 매거진』의 독자 상상도(23쪽)가 그려진 지면이었다. 사진에 관심있는 다양한 영역의 독자 800~1,000명을 중심으로, 사진, 디자인, 미술, 영화, 문학이라는 키워드가 있다. 키워드에서 가지처럼 뻗은 긴 텍스트는 이미지에 관심 있는 디자이너‧학생, 사진 찍는 문인들, 광학기기 이미지에 관심 있는 이들 같이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환경과조경』의 독자 상상도를 그려보려다 다섯 가지 키워드를 떠올리는 데도 실패했을 때는 귓가가 화끈해졌다. 박지수는 이따금 병에 편지를 넣어 바다에 띄우는 일을 떠올린다고 한다. “그 편지는 파도를 헤치고 어딘가에 가닿을 수 있을까, 그 여정은 편지를 띄운 주인을 찾는 일이 아니라, 결국 편지를 읽어 줄 주인을 찾는 일이지 않을까. 어쩌면 갑자기 사라지는 것보다, 온전한 주인이 될 수 없는 것보다 더 외로운 건, 끝내 어느 누군가에게 가닿지 못하는 일, 그것이 무서워 더 이상 바다로 나서지 않는 일인지 모른다고 생각해 본다.”(206쪽) 막연해서 채워 넣지 못했던 2025년 목표에 한 가지 문장은 적을 수 있게 됐다. 편지를 읽어 줄 주인의 모습을 좀 더 구체적으로 묘사해보기. 잡지를 기획할 때 편지를 읽는 그들의 얼굴과 표정을 상상해보기.
  • [PRODUCT] 옥상과 인공지반 녹화를 위한 GR-엣지 하이퍼 경계 자재 이상의 다목적 녹화 자재
    초박형, 경량형에 국한됐던 옥상녹화는 최근 생태면적률 가중치 변화에 따라 혼합형, 중량형 등을 통해 높은 수준의 녹지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을 고려해 한국그린인프라연구소는 GR-엣지 하이퍼로 색다른 녹화 공간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GR-엣지 하이퍼는 알루미늄 소재의 규격화된 중공형 패널을 조립해 녹지 경계를 만드는 조경 자재다. 각 패널을 조립하듯 쌓아 올려 높낮이를 조절하며, 간편한 설치 방식으로 연장 시공할 수 있다. 설계 형태에 따라 직선은 물론 패널의 밴딩을 통해 곡선 시공까지 가능하다. 세련된 색상으로 도장 마감해 분위기 있는 공간을 연출하고 필요에 따라 원하는 색상으로 변경할 수 있다. 일정 간격마다 견고하게 설치한 서포트는 배부름 현상을 방지하고 구조적 안정성을 높인다. 패널 상단을 곡선 형태로 마감해 이용자의 안전을 도모했다. 넓고 긴 녹지 공간을 포함해 소규모 점형 녹지 공간도 수월하게 만들 수 있다. 조립 방식으로 완성되는 제품이라 플랜터형 공간 구성에도 적합하다. 원하는 공간에 손쉽게 설치할 수 있어 포켓 정원, 한뼘 정원과 모바일 정원 등을 만드는 데 최적화된 제품이다. 응용 방식에 따라 도시 농업에 활용할 텃밭 플랜터로 사용하는 등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다. GR-엣지 하이퍼는 녹지 공간의 경계를 구성하는 단순 자재를 넘어서 다양한 형태와 높이의 녹지 조성에 필요한 필수 자재가 되었고, 나아가 다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조경 자재로 거듭나고 있다. TEL.02-587-9444 WEB. www.greeninfra.co.kr
  • ASLA Best Books of 2024 ‘2024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10권의 조경 서적
    자연, 설계, 그리고 기후변화에 이르기까지, 조경가에게 새로운 정보와 영감을 주는 올해의 신간 도서를 만나보자. 2024년 미국조경가협회ASLA가 선정한 10권의 최고의 책을 살펴보자. 1. 조경가가 사랑하는 30그루의 나무 Ron Henderson, 30 Trees: And Why Landscape Architects Love Them , Birkhauser, 2023 전 세계 30인의 조경가가 좋아하는 나무와 이에 얽힌 개인적인 이야기, 나무의 역사를 함께 소개한다. 책 속에서 나무 소개에 나선 조경가들은 나무가 설계 프로젝트에서 어떻게 사용됐는지, 무엇을 연상시키는지 설명한다. 일리노이 공과대학 조경학 교수이자 ASLA의 멤버인 론 헨더슨(Ron Henderson)이 편집을 맡았고 조경가들이 엄선한 나무에 대한 식물학적 설명을 곁들였다. 조경가로는 섀넌 니콜(Shannon Nichol), 로리 올린(Laurie Olin), 마리오 슈예트난(Mario Schjetnan), 게리 힐더브랜드(Gary Hilderbrand), 엘리자베스 모솝(Elizabeth Mossop) 등 ASLA 멤버들이 함께 참여했다. 2. 아프리카 선조들의 정원: 국제 아프리카계 미국인 박물관의 역사와 기억 Walter Hood, Dr. Tonya M. Matthews, Bernard E. Powers Jr., The African Ancestors Garden: History and Memory at the International African American Museum, The Monacelli Press, 2024 저자 월터 후드(Walter Hood)는 조경가이자 예술가다. 그는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찰스턴(Charleston) 시에 위치한 국제 아프리카계 미국인 박물관(IAAM)의 강렬한 풍경이 어떻게 설계됐는지를 아름다운 삽화와 함께 소개한다. 이 박물관은 미국에 노예로 도착한 아프리카인 대부분이 처음 발을 내디뎠던 개즈던스 부두(Gasden’s Wharf)에 건립됐다. 아프리카의 민속 식물로 구성된 정원과 인피니티 풀을 갖춘 박물관의 정경은 “같은 공간에 이처럼 서로 다른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며, 과거를 발굴하고 기리는 동시에 새로운 대화와 축하를 위한 공간을 보여준다. 3. 브루클린 브리지 공원: 마이클 반 발켄버그 어소시에이츠 Michael Van Valkenburgh, Elijah Chilton, Amanda Hesser, Julie Bargmann, Brooklyn Bridge Park: Michael Van Valkenburgh Associates, The Monacelli Press, 2024 마이클 반 발켄버그(Michael Van Valkenburgh)는 브루클린 해안가에 버려졌던 여섯 개의 선박 부두가 어떻게 한 세대 만에 시민들이 많이 찾는 85에이커의 공원이자 뉴욕에서 가장 거대한 공공 공간이 될 수 있었는지를 쉽게 풀어 소개한다. 브루클린 브리지 공원(Brooklyn Birdge Park)은 바비큐장뿐 아니라 운동장, 놀이터 등을 갖추어 누구나 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또한 생태적 식재와 기후변화에 대한 회복탄력성을 갖춘 공원의 모델이기도 하다. 커피 테이블에 앉아 편하게 볼 수 있도록 여유롭게 편집된 이 책에는 250개의 실감나는 도판과 조경설계를 담당했던 줄리 바그만(Julie Bargmann)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책을 읽고 난 뒤 당신이 실천할 수 있는 행동을 꼽는다면, 브루클린에 가는 것이 아닐까. 4. 불의 디자인: 불의 시대에 대한 저항과 공동의 창조, 그리고 후퇴 Emily Schlickman, Brett Milligan, Design by Fire: Resistance, Co-Creation, and Retreat in the Pyrocene, Routledge, 2024 우리는 인류가 불을 활용하는 지질학적 시대, 파이루신(Pyrocene)의 시대에 살고 있다. 책의 저자인 에밀리 슐릭만(Emily Schlickman)과 브렛 밀리건(Brett Miligan)은 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불을 이용한 27가지 설계 전략에 대해 소개한다. “변화무쌍한 야생 지대, 그리고 야생과 도시의 경계는 디자인이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역”이다. 특히 이 책은 북미 서부와 지중해 유역, 남아프리카 케이프, 칠레 중부, 호주 일부 지역 등 지중해성 기후를 공유하는 전 세계 다섯 곳의 화재 취약 지역에 주목했다. 여러 과학자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 발생하는 산불은 더 이상 각 지역의 국지적 재해가 아니며, 더 큰 지구환경적 시스템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5. 빛을 먹는 포식자: 보이지 않는 식물 지성의 세계를 통해 지구의 생명체를 새롭게 이해하는 법 Zoë Schlanger, The Light Eaters: How the Unseen World of Plant Intelligence Offers a New Understanding of Life on Earth , Harper, 2024 “식물이 되려면 굉장한 생물학적 창의성이 필요하다. 식물은 한 곳에 뿌리를 내린다는 약점을 극복하고 생존하고 번성하기 위해 독창적인 생존 전략을 채택해 왔다.” 최근 과학자들은 식물도 의사소통을 하고 동족을 인식하며 사회적으로 행동하고, 소리를 듣고 몸체를 변형시켜 주변 환경에 적응하며, 수명 주기에 대한 유용한 정보와 기억을 저장하고 동물을 속이는 트릭을 사용하는 등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더 애틀랜틱The Atlantic』의 환경과학 전문 기자이자 저자인 조에 슐랭거(Zoë Schlanger)는 최근 식물학 분야의 연구 성과를 종합해, 식물이 어떻게 소통하고 감지하고 학습하며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지 설명한다 6. 환경 디자이너를 위한 현장 스케치 Chip Sullivan, Field Sketching for Environmental Designers , Routledge, 2024 이 책은 조경과 도시설계 드로잉을 연습하고자 하는 이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자극하기 위한 입문서다. UC 버클리의 조경학과 교수이자 저자인 칩 설리번(Chip Sullivan)은 이 스케치 안내서는 “단순히 관찰한 것의 모방을 넘어, 풍경이 지닌 의미와 영혼을 찾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로 한다고 소개한다. 초보자뿐 아니라 숙련된 설계자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넘치는 영감과 실용적인 팁을 통해 스케치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다음 산책 때는 이 책을 손에 들고 나가보자. 7. 노구치의 정원: 풍경이 만들어낸 조각 Marc Trieb, Noguchi’s Gardens: Landscape as Sculpture , ORO Editions, 2024 이사무 노구치(Isamu Noguchi)는 아카리 조명(Akari Light)과 공공 예술로 유명한 일본의 현대 예술가다. 한편으로는 “공간을 주요 수단으로 삼아” 조각의 풍경을 만들었던 조경가라고도 볼 수 있다. 조경사학자이자 UC 버클리의 명예 교수로서 많은 책을 집필해 온 마크 트라이브(Marc Trieb)는 노구치의 초기 설계안인 놀이터와 기념비 프로젝트부터 사후 완공된 일본 삿포로의 대형 공원까지, 실현되지 못한 설계안을 포함해 노구치의 다양한 조각 프로젝트가 실제 풍경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 설명하고 비평한다.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희귀한 사진도 함께 제공했다. 8. 고운 모래, 모래, 진흙: 파내기와 쌓기, 우리가 공사 중인 세계 Rob Holmes, Gena Wirth, Brett Milligan, Silt Sand Slurry: Dredging, Sediment, and the World We Are Making , Applied Research + Design, 2024 퇴적물, 즉 쌓인 토사는 어디에 있고, 왜 쌓이며, 어떻게 미국 해안가의 미래에서 중심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해저에서 퇴적물을 파내 컨테이너선을 위한 수중 고속도로를 만들기도 하고, 홍수를 조절하기 위해 강 유역에서 토사를 퍼내기도 한다. 이러한 인위적 활동은 매년 자연적인 지질 활동보다 더 많은 퇴적물을 이동 시키고 있음에도, “현재와 미래의 삶의 조건을 형성하는” 지구 표면 퇴적물의 재구성에 대한 논의는 거의 진행된 바 없다. 책의 공동 저자인 로브 홈즈(Rob Holmes)와 브렛 밀리건(Brett Miligan), 제나 워스(Gena Wirth)는 “퇴적물을 지능적이고 민주적이며 공평하게 설계하자”는 강력한 행동 촉구문을 함께 작성하기도 했다. 이 책은 지각 단위의 규모에서 현대 생활의 인프라로 기능하는 퇴적물에 대한 조사 결과서이며, 풍부한 시각적 자료를 제공한다. 9. 미래 사색: 변화를 탐색하고 회복력을 키우며, 우리에게 필요한 도시를 함께 만들기 위한 설계 전략 Johanna Hof fman, Speculative Futures: Design Approaches to Navigate Change, Foster Resilience, and Co-Create the Cities We Need, North Atlantic Books, 2024 요한나 호프만(Johanna Hoffman)은 UC 버클리에서 조경학을 전공한 예술가이자 도시학자로, “새롭고 잠재력 있는 세계”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지역 공동체와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세계 만들기 world-making 방식은 “현존하는 세계를 넘어 언젠가 올 수 있는 미래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호프만은 “예술, 영화, 소설, 산업 디자인” 등 창의적 분야의 종사자들이 “사색을 통해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자극하고 상상하고 꿈꾸는 법”에서 설계 전략의 영감을 얻었다. 이 책은 지역 공동체가 큰 꿈을 꾸고 비전을 현실로 만들어 나가기 위한 새로운 참여 디자인 전략을 제시한다. 10. 왓 이프: 우리가 제대로 한다면? 기후 미래의 비전 Ayana Elizabeth Johnson, What If We Get It Right?: Visions of Climate Futures , One Books, 2024 실존적 위기를 맞닥뜨렸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용감한 일을 꼽는다면, 아마도 그 반대의 일을 상상하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은 ASLA 2022 조경 컨퍼런스의 기조강연자였던 아야나 엘리자베스 존슨(Ayana Elizabeth Johnson) 박사의 베스트셀러 『우리가 구할 수 있는 모든 것: 기후 위기에 대한 진실과 용기, 해결책』의 후속작이다. 책에서 존슨 박사는 조경가 케이트 오프(Kate Off), 기후 연구자 빌 맥키벤(Bill McKibben, MoMA의 큐레이터 파울라 안토넬리(Paola Antonelli) 등 각 분야의 선구적 연구자와 함께 더 건강하고 공평한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에 대한 대화 내용을 도발적이고 유쾌하게 그려낸다.
  • 부산 첫 민간정원, F1963 정원
    부산시 수영구에 있는 F1963 정원이 부산시 제1호 민간정원으로 선정·등록됐다. ‘수목원·정원의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정원’은 식물, 토석, 시설물 등을 전시·배치하거나 재배·가꾸기 등을 통해 지속적인 관리가 이뤄지는 공간이다. 그중 ‘민간정원’은 법인·단체 또는 개인이 조성·운영하는 정원을 말한다. F1963 정원은 복합문화공간 F1963의 야외 정원이다. F1963은 본래 고려제강의 모태인 수영공장이 있던 곳으로 1963년부터 2008년까지 45년 동안 와이어를 생산해왔다. 2008년 이후에는 고려제강 창고로 사용되다가 2016년 복합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되어 부산비엔날레 특별 전시장으로 활용됐다. 공장이 처음 지어진 연도인 1963과 공장을 의미하는 영단어 팩토리(factory)의 첫 철자에서 따와 F1963이라 명명됐다. 야외 정원은 2016년 건축 리모델링과 함께 구상되어 2021년까지 5년여에 걸쳐 단계적으로 조성됐다. 건축 후 잔여 부지에 조경을 하는 관행적 형태를 벗어나 건축과 조경의 조화를 꾀하며 함께 설계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환경과조경441호(2025년 1월호)수록본 일부
  • 제27회 올해의 조경인· 제7회 젊은 조경가 시상식
    지난 12월 6일 그룹한빌딩 그룹한갤러리에서 본지가 주최한 ‘제27회 올해의 조경인·제7회 젊은 조경가 시상식’이 개최됐다. ‘제27회 올해의 조경인’에는 심왕섭 이사장(환경조경발전재단)이, 제7회 젊은 조경가에는 원종호 소장(제이더블유랜드스케이프)이 선정됐다. 심왕섭 이사장은 환경조경발전재단의 위상과 역할 강화에 기여했다. 특히 환경부 외에 재단 주무관청에 국토교통부를 추가해 2개 부처로 확대하고, 재단 정관의 목적 및 사업에 ‘공원녹지법(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조경진흥법’과 관련된 사업을 추가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2023년 환경조경발전재단이 공식 조경지원센터로 지정된 이후 조경수 거래가격 조사공표 방안 연구, 2024년 제14회 대한민국 조경대상 주관, 조경지원센터 비전 발표를 추진하는 등 조경 분야의 핵심 사업을 추진하며 조경 전문 싱크탱크 기반 조성을 위해 노력했다. 조경지원센터 간담회 등을 추진해 조경인의 소통을 도모했으며, 2022년에는 한국조경 50년 기념행사를 추진해 조경계의 산관학이 모이는 자리를 마련했다. 심 이사장은 “46년간 조경 분야에 몸 담으며 조경인으로서 사명감을 갖고 일해 왔다. 앞으로도 후배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에 집중하겠다”라고 하며 수상 소감을 전했다. *환경과조경441호(2025년 1월호)수록본 일부
  • [기웃거리는 편집자] 낮달을 기다리며
    등산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진경산수화 같은 풍경의 산을 완상하는 건 좋지만, 정상을 정복하는 등산은 별로다. 하지만 만약 극한의 한계를 극복하는 알피니스트처럼 등산을 해야 한다면 한라산에 오르고 싶다. 특히 비바람이 몰아치는 한라산 정상에 가고 싶다. 이러한 로망은 순전히 한 드라마 때문이다. 한때 즐겨 보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2005) 속 남녀 주인공이 우여곡절 끝에 재회하는 장소가 바로 비바람과 안개로 가득한 한라산 정상이었다. 그들의 재회보다 안개와 비바람이 몰아치는 역동적인 풍경이 이상하게 끌렸다. 나아가 그런 풍경을 볼 수 있는 극한의 등산을 마친 후 목욕탕에 가서 묵은 때를 벗겨내고 사발면의 뜨끈한 국물을 후루룩 마시면 어떨지 궁금했다. 눈물 젖은 빵이란 진부한 표현 대신 한라산 정복 후 먹는 사발면이란 비유를 머리 대신 몸에 새기고 싶은 작은 욕심이라고 할까. 어떤 비유를 찾는 목적의 등산을 꿈꾸는 나처럼 다른 목적으로 등산을 하는 이가 있다. 그는 등산전문지 『월간 산』 에디터 윤성중으로 얼마 전 『등산 시렁』(2024)이란 책을 펴냈다. 등산 시렁은 그가 월간 산에 연재하던 꼭지의 제목으로, 제목만 보면 무슨 내용인지 감이 잘 안 잡히는데 콘셉트는 이렇다. 산에 가서 등산만 하고 오는 건 싫은 남자의 등산 중 딴짓. 실제로 딴짓을 하며 어떻게 등산을 즐길 수 있는지 몸소 보여준다. 역경과 한계를 극복해 나가는 진지한 등산가들이 나오는 등산 잡지의 전형적 문법에서 벗어난 기발한 발상과 저자의 고유한 엉뚱함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는 취재를 위한 등산을 할 뿐, 단순히 순수한 재미나 휴식을 위한 여가 활동으로 하는 등산을 하지 않는다. 등산 자체를 위한 등산을 하지 않지만, 등산 중 기발한 딴짓은 누구보다 다양하게 시도한다. 등산을 싫어하는 이들을 설득해 등산 시렁 산악회를 만들어 함께 산에 오르고, 산 정상에서 책 낭독회나 사생대회를 개최하고, 복학생인 척하면서 대학생 산악부 선발 면접에 참가하는 등 등산을 매개로 한 재미있는 일을 벌인다. 또한 에디터로서 기자 정신과 전문성도 두루 갖추고 있다. 사라질 위기에 처한 산속 약수터를 찾아다니고, 아웃도어 오프라인 매장에서 직접 일일 직원 체험을 하며 아웃도어 시장의 현실을 들여다 본다. 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을 가로지르는 47km의 능선과 도로를 하루 안에 주파하는 일명 불수사도복 종주를 위해 밤낮으로 달리기 훈련을 하는 등 등산 전문가로서 성장하기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그는 책 서문에서 등산이 진짜 좋은지, 왜 좋은지가 여전히 궁금하고, 연재와 등산을 통해 자신을 점점 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결국 그의 도구는 딴짓이었지만 결국 등산의 본질을 탐구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이우성 시인은 추천사를 통해 그의 비범한 태도와 자질에 대해서 평범함 속에 깃든 천재성이라고평가했다. 문득 이번 특집의 주인공 원종호 소장이 떠올랐다. 정욱주 교수의 표현(66쪽)처럼 그 역시 평범함을 가장한 비범함이란 단어가 잘 어울린다. 그는 무엇을 더하는 것보다 덜어내는 조경설계를 추구하며, 자신의 작업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조경가로서 정진했다. 물론 내가 그를 정확히 안다고 말할 수 없다. 다만 그의 작품과 에세이 원고를 통해 본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직선처럼 조경을 향한 자신만의 단정하고 분명한 메시지를 갖고 있었고, 이제껏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설계를 향한 고유한 시선과 명징한 감각을 오랫동안 다듬어 온 조경가였다. 보이지 않는 조경가로서 보이지 않는 조경을 추구하며 자신만의 조경에 대해 깊게 탐구하고 정확하게 구현하고자 노력했다. 주변 동료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들과 함께 우리만의 공간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특집에서 그를 부르는 여러 명칭이 등장했는데, 내가 부르고 싶은 이름은 낮달이다. 그가 추구하는 조경설계가 평소 잘 보이지는 않지만, 맑은 날 그 존재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낮달과 닮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가 설계로 그려내는 보이지 않는 낮달을 더 보고 싶다. 나아가 현재 낮달처럼 어디선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스케치를 그리고 있을 미래의 조경가들에게 응원과 지지를 보낸다.
  •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여의도공원을 그렇게 멋대로 밟고 다닌 건 처음이었다. 살기 위한 걸음이었다. 잔디를 가로지르고, 철책을 무시하고, 녹지와 길의 경계를 가르는 울타리 위에 올라서고, 잎이 다 떨어진 화살나무의 앙상한 가지에 패딩이 뜯기지 않도록 우스꽝스럽게 걸었다. 인파에 가려 발밑이 보이지 않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앞 사람이 “요 앞에 턱 있어요. 조심하세요!” 하면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지난해 초 끊어졌던 인대를 떠올리며 더욱 조심조심 걷는 수밖에. 국회의사당 초록 지붕을 표적 삼아 걸으며 ‘광장’이라는 공간이 얼마나 절실해졌는지 모른다. 친구 K는 모이기에는 역시 광화문광장만 한 곳이 없다고 말했다. 모이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 발에 걸리는 턱이 없는 공간, 차량이 덮칠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 원한다면 행진을 할 수 있는 공간, 고개만 돌리면 내 주변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함께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공간이 광장이라는 걸 몸소 깨달았다. 그래도 여의도공원은 평지 공원이라 다행이었다. 어느 SNS에서 봤는데, 부산에는 주로 서면에 모인단다. 파도타기를 하면 조금 이어지던 물결이 금세 갈래갈래 나뉜 골목으로 흩어져버리고, 오르막길이 많아 행진을 하다보면 숨이 차서 구호와 노래 소리가 점점 잦아든다고 그랬다. 그래서 광장이 없는 도시들의 안부가 궁금했다. 인터넷이 먹통이 됐던 기억을 떠올리며 LED 화면과 통신사 이동기지국 차량이 가까이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바닥에 앉아 노래하고 구호를 외치고 연단에 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가끔은 집중할 수 없었다. 핫팩을 주무르고 보온병의 물을 마시려다가 화장실이 가고 싶어질까 봐 관두었다. 예고 없이 불어오는 바람은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다. 마음을 빼앗은 건 한 야구 팀 유니폼을 입고 무대에 오른 시민의 발언이었다. 그는 자신을 “앞선 세대가 쟁취한 민주주의의 드넓고 푸른 하늘 아래에서 태어난 세대, 여러분이 일구어낸 생존이라는 결실”이며 “그래서 삶을 꿈꾸게 된 세대”이고 “절박함이 아닌 사랑으로 연대하는 세대”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곳에 서게 된 이유를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에 빗대어 말했다. “무너진 민주주의의 질서를 바로잡는 일에 무승부가 있을 수 있습니까? 콜드게임이 있을 수 있습니까? 우천 취소, 강설 취소가 있을 수 있습니까? 스포츠 팬 여러분! 우리는 국가대표처럼 끝까지 맞설 것입니다. 게이머 여러분! 우리는 정의의 엔딩을 위해 몇 번이든 리트(리트라이)할 것입니다! 오타쿠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최애인 것처럼 민주주의를 수호할 것입니다. 빠순이 여러분! 우리는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보려고 밤새워 기다렸듯, 찬란한 민주주의의 태양이 다시 뜨기를 기다릴 것입니다. 우리는 다 함께, 여기에서, 독재의 담장을 넘어 홈런을 칠 것입니다! 맞습니까? 야구 팬 여러분, 스 트라이크를 세 번 놓친 타자에게 네 번째 기회가 있습니까? 우리는 이 광장에서 꽉 찬 직구를 던질 것입니다.” 세상은 넓고 우리의 시선이 닿는 곳은 그리 넓지 못하다. 세상은 자신이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관심이 없지만 들여다보려고 노력하는 것,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는 것들로 구성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각기 다른 세상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 세상의 넓이는 나의 인식이 미치는 범위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사랑하는 것들이 늘어갈수록 내가 구축하는 세상의 크기는 점점 커지게 된다. 무언가를 깊이 사랑해본 사람들의 세계는 깊어질 수밖에 없다. 발 딛고 선 세계가 끔찍해지더라도 그곳을 떠나기보다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는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지난해 12월 7일, 한강은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강연에서 물었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그 물음을 들었을 때, 광장에서 들었던 그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고 싶어 하는 그의 이야기를. 세계가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워지는 만큼, 그 세계를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이 온전히 머무를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늘어나리라 믿는다. 나는 전보다 더 광장을 사랑하게 됐다. 그 너른 광장의 크기만큼 나의 세계도 넓어졌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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