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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2025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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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이매거진 가격 16,000
잡지 가격 22,000

기사리스트

[에디토리얼] 코펜하겐, 조금 덜 익명적이고 때때로 연결되는 관계의 도시
2025년 1월은 한 해를 새로 시작하는 설렘과 들뜬 기분이 전혀 없는 달이었다. 세간에 떠도는 ‘계엄성 수면 장애’나 ‘내란성 집중력 저하’ 같은 신조어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시절, 2월호를 여는 이 지면을 마감 직전까지 도통 채울 수 없었다. 편집부 기자들과 표지 후보안을 놓고 토론을 벌여 최종 선택을 하고 난 뒤, 에디토리얼 글감이 전혀 안 떠오른다고 한참 투정을 부렸다. 금민수 기자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넌지시 말했다. “관계도시 어떠세요?” 연말에 나온 신간 『관계도시』(돌베개, 2024)를 다뤄보라는 뜻이었다. 어, 금 기자는 출간 한 달이 채 안 된 책을 내가 이미 읽은 걸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어느 소셜미디어에 ‘이달의 책’으로 추천한 걸 본 걸까? 아무튼 체한 것처럼 꽉 막혔던 마음이 갑자기 뚫렸다. 그래, 답이 없을 땐 책이지. 그래, 책에 도저히 집중할 수 없는 요즘, 모처럼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다 읽은 책을 그냥 넘길 순 없지. 사나흘씩 세 번 방문한 게 전부지만, 다양성이 공존하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도시의 대명사 코펜하겐은 언젠가 꼭 살아보고 싶은 도시로 내 버킷 리스트에 진하게 적혀 있다. 하지만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의 눈으로는 쉽게 풀기 어려운 의문이 하나둘 아니었다. 도시 대부분이 고밀한 저층 공동주택 일색인데 어떻게 세련된 도시 경관이 가능한 걸까? 도심 한복판의 강가에서 자유롭게 수영과 일광욕을 즐기는 풍경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산업 시설이 점유했던 항구와 수변이 어떻게 시민들의 여유로운 여가 공간으로 변신할 수 있었을까? 도심에 주차장이 거의 없고 우버조차 없는 도시가 이 시대에 정말 가능한 걸까? 시민 50퍼센트가 자전거로 등하교하고 출퇴근하는 모빌리티 혁명이 어떻게 성공했을까? 미니스커트에 하이힐을 신거나 더블 재킷에 로퍼를 신고 자전거로 출근하는 게 낯선 풍경이 아닌 비결은 무엇일까? 일간지 주말판 한구석에 실린 『관계도시』의 출간 소식을 발견하고 서점으로 바로 뛰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도시의 겉모습만 경험했던 여행자의 궁금증이 단번에 해소됐다. 코펜하겐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건축가 박희찬이 쓴 『관계도시』는 정보 중심의 도시 안내서도 아니고, 이론 위주의 도시설계 해설서도 아니다. 이 책은 코펜하겐의 도시 정체성과 매력이 다른 도시와 ‘어떻게’ 다른지 보여주기보다는 ‘왜’ 다른지 드러내면서 독자의 시선을 붙잡는다. 저자가 찾아낸 ‘왜’의 핵심은 책 제목에 강하게 박혀 있는 단어, ‘관계’다. 이 관계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이자 사람과 집단의 관계이며, 사람과 이념의 관계이자 사람과 도시의 관계다. 복합적일 수밖에 없는 그러한 관계의 성격을 명쾌하게 요약하는 말은 아마도 책의 부제인 “조금 덜 익명적이고 때때로 연결되는”일 테다. 즉 저자는 코펜하겐을 관통하는 도시성의 핵심을 ‘익명의 도시에서 조금은 덜 외롭고 모르는 타인과 이따금 연대하며 공동체의 삶에도 참여하는 일상의 관계’라고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가 도시의 일상과 주거 문화에 깊이 배어 있는데, 그 분위기를 대변하는 단어가 책의 첫 챕터에 나오는 ‘휘게(hygge)’다. 휘게는 덴마크어 중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말이라고 한다. 휘게에 해당하는 말을 찾자면 편안함(coziness) 정도겠지만 그것보다는 훨씬 더 복합적인 뜻이다. 공간의 분위기는 물론 개인과 개인의 관계, 사람과 공간의 관계를 구성하는 핵심 개념인 휘게는 덴마크 특유의 가구 디자인, 건축, 도시, 경관을 관통한다. 코펜하겐 특유의 공동주택 문화와 경관은 “조금 덜 익명적이고 때때로 연결되는 관계”와 ‘휘게’의 공간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상생주의와 사회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협동조합주택과 사회주택, 오랜 전통을 가진 저층형 공동주택인 레케후스(rækkehus)(줄 지어 있는 집), 다용도 중정을 공유하는 집합주택 등에 관한 저자의 밀도 있는 설명과 섬세한 해석이 ‘관계도시’ 코펜하겐의 소속감과 유대감을 이해하게 해준다. 사회적 소수자들이 불법적으로 점유한 자율 도시 ‘크리스티아나’의 존재가 어떻게 사회적 합의를 거쳐 허용되었는지, 도시 확장 계획인 ‘핑거플랜’이 어떻게 도시에 자연을 제공하고 시민의 행복지수를 높였는지 등 정독해야 할 부분이 차고 넘치지만, 스포일러를 염려해 소개를 아껴둔다. 단 하나의 문장만 뽑으라는 어려운 숙제가 주어진다면, 나의 선택은 책 표지 사진의 캡션이라 할 만한 다음 문장이다. “코펜하겐 하버는 사람들이 여름철 휘게를 함께 누리는 거대한 ‘공동의 거실’이다”(84쪽). 본지가 주최한 2024년 ‘조경비평상’의 가작 수상작 “몰링하는 도시생활자”를 이번 호 지면에 싣는다. 기록을 뒤져보니 수상자 권정삼은 2007년 조경비평상에 평문을 제출한 적이 있다. 17년 만에 다시 조경비평가의 등용문에 도전한 수상자에게 축하와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풍경 감각] 그곳의 풍경은 어떤가요
#1 하얗게 언 창문을 연다. 투명한 공기 너머로 북한산이 보인다. 뾰족 솟은 화강암 꼭대기에는 눈이 남아 있고 그 아래로 겨울 숲이 구불거리며 도시로 내려온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 걸으면 산책하는 기분으로 정상에 도착할 수 있지 않을까? 창가에 기대어 생각하지만 길을 나서지 않는다. 저 멀리 작은 계곡마다 드리워진 그림자가 크고 깊기 때문이다. #2 여름엔 하늘이 낮아진다. 구름이 인수봉과 백운대를 가릴 정도로 내려오곤 한다. 산꼭대기에 부딪친 습한 바람이 새 구름을 피워 내거나 작은 구름 조각이 골짜기 틈에 끼어 머무르는 날도 있다. 저 구름 속을 걷고 있을 누군가를 상상해본다. 그곳에서 보는 풍경은 어떤가요? 여기의 나에겐 구름인데 그곳의 당신에게는 안개로 보이겠군요. 모든 것이 뿌옇겠지만 조금만 더 오르면 정상이니 힘을 내길. 그리고 돌아와 알려 줄래요? 당신이 지나온 것이 구름인지, 안개인지 말이에요.
시안 중심문화업무지구
고대 중국의 수도 중국 중부 산시(Shanxi) 지방의 수도인 시안(Xi’an)은 사원, 역사적 랜드마크, 보행자와 자전거를 탄 방문객이 많이 찾는 성곽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진시황의 무덤을 위해 만든 2,000년 역사의 테라코타 군대(병마용)가 바로 고대 수도인 시안의 유산이다. 8천 구 이상의 진흙 조각상을 보러 매해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시안을 방문한다. 하지만 이 병마용은 오늘날까지 시안에 이어지고 있는 도예 문화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8백만 명 이상이 거주하고 있는 시안의 고대 유적지와 북적거리는 도심은 모든 관광객이 방문하고 싶어 하는 장소다. 한편 역사적 성곽 밖 지역은 중국의 빠른 도시화를 보여준다. 고층 거주지가 엇비슷한 형태로 펼쳐지고, 거대한 도로가 중심부로부터 뻗어나가며 끝이 없을 것 같은 그리드를 형성한다. 도심 밖 새로운 지구를 설계하는 시안 중심문화업무지구(이하 시안 지구) 프로젝트를 맡은 헤더윅은 자문했다. 이처럼 외곽에 놓인 지역을 방문할 가치가 있는 장소로 만들 수 있을까. 평범한 과제와 특이한 접근 방식 시안 지구 프로젝트는 2020년 초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나타났을 무렵 시작됐다. 시안 지구를 대상으로 한 공모에 세 개 회사가 초청됐고, 헤더윅 스튜디오는 평범한 공모 과제에 상업 시설을 곁들인 대규모 쇼핑 시설과 복합 활용 고층 빌딩이라는 독특한 접근법을 제시했다. 유리벽과 강철로 구성된 거대 덩어리를 만드는 대신, 장소 특정적이고 인간 중심적 스케일의 도시 지구로서, 문화, 사회, 상업의 중심지인 쇼핑몰의 개념을 제고하고자 했다. 특히 대규모 산업화와 저렴한 건설을 추구하는 시대에 공예, 돌봄, 장기적 고찰에 뿌리를 둔가치가 여전히 유효할 수 있을지 고심했다. 155,000㎡ 규모의 대상지에는 몇 가지 난제가 있었다.새로 건설되는 공간에 둘러싸여 있어 장소 정체성을 부여하는 어떤 역사적 요소도 대상지에 남아 있지 않았다. 동쪽의 시안 천단天壇 유적, 서쪽의 산시 TV 송신 탑 사이에 위치한, 옛것과 새로운 것의 중간에 놓인 땅이기도 했다. 이 도시적 위치의 중요성을 인지한 그룹 리더인 맷 캐시(Mat Cash)는 “두 개의 축이 만나며 서로 다른 방향성이 한데 모아지는 어떤 순간, 그 중심의 필요성이 야기됐다”고 설명했다. 헤더윅 스튜디오 팀은 클라이언트와 2년간 소통하며 언어와 거리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시안과 동떨어진 곳에서 대상지의 복잡한 역사를 연구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설계 팀은 2023년 처음으로 시안 지구 대상지를 방문했는데, 이때 시안 북동부의 화산에 올라 본 풍경으로 인해 설계 방향을 극적으로 틀게됐다. 프로젝트 리더인 루이스 사크리스탄 무르가(Luis Sacristán Murga)는 이때의 경험은 설계에 지형을 통합시키는 방향으로 계획을 변화시켰고, 시안 지구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시안 트리(Xi’an Tree)의 공중 경관에 영감을 주었다고 말했다. 2024년 12월 공개된 시안 지구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완공의 전 과정을 4년 안에 해내야 하는 초고속 프로젝트였다. 시안 지구를 안정적으로 완성할 수 있었던 건 3천여 명의 건설 노동자의 노력 덕분이다. 설계 팀은 시안 지구를 발견과 탐험의 장소로 상상하며 보행을 위한 거리, 정원, 테라스를 구상했다. 완전히 새로우면서도 시각적으로 복잡하고 심지어 부분적으로는 거칠게 보이길 바랐다. 무엇보다 시안 지구를 시안 시와 공명하며 역사를 기념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들고, 좀 더 부드럽고 풍요로우며 독특한 방식의 중국 도시 개발의 모델이 되기를 바랐다. 도시, 거리, 문 맷 캐시는 방문하고 싶고 의미 있는 시안 지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도시에서 생겨나는 어떤 정신, 다양성, 질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설계 팀은 다양한 스케일에서 시각적 복잡성, 내구성, 인간 중심의 접근 방식이 어떻게 도시와 거리, 문의 높이에서 설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 탐구해 새로운 시안 지구에 필요한 요소를 갖추려 했다. 인간 중심 스케일의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완전히 다른 접근법이 필요했다. 거대 블록을 쪼개 사회적 교류가 벌어지는 작은 공간을 만들고, 불필요하게 넓은 유리 평면을 줄이고, 부드럽고 마감이 완벽하며 질감이 살아 있는 소재를 더해 손을 뻗어 만져보고 싶게 만들었다. 일반적인 복합 쇼핑몰은 타워 상단의 사무 공간이나 아파트로 연결되는 공공시설을 갖고 있다. 이러한 두 개 블록 덩어리는 설계하기 용이할 수 있으나 정체성의 차원에서 이점이 없고 아름답지도 않다. 시안 지구에도 공공 가로와 타워가 있다. 87,760㎡의 사무 공간, 110,000㎡의 아파트, 35,000㎡의 호텔이 있지만 서로 구분하기 어렵다. 쇼핑 시설의 계단식 옥상은 24m에 달하는 높이를 자랑하며 공중 테라스, 정원, 광장으로 이어지는 분리된 건물들의 군락을 형성한 것처럼 보인다. 흙색 세라믹 타일로 덮인 78개의 기둥과 휘어진 빔beam은 중국의 전통적인 네스팅 테이블(nesting table)과 사원을 연상시킨다. 지구 경계부에는 좀 더 낮은 높이의 지붕이 중앙을 향해 솟아오르며 사람들의 시선을 시안 트리를 향해 돌린다. 시안 지구는 고대 그리스 같은 공간으로 변한다. 서로 보고 보이는 상업적이며 사회적인 공간이다. 건축과 경관을 통합했다. 상업 시설의 옥상은 정원으로 변모하고, 유리벽은 외부 공간을 실내로 끌어들인다. 시안의 가로수에서 영감을 받아 시안 지구 전체를 엮을 수 있는 식재 계획을 세웠다. 상업 시설의 다섯 개 층 사이를 연결하는 포장된 테라스와 선큰 정원은 만남, 휴식, 일광욕을 즐길 수 있는 공간과 그늘을 제공한다. 이 경관은 도시로 연장되어 주변 거리로 확장된다. 도시 스케일에서 시안 지구는 서양의 도시계획에서 그 리드를 활용하기 훨씬 이전에 등장한 시안의 독특한 그리드 체계를 활용한다. 일반적으로 평면형 그리드가 도로와 블록을 구성하는 데 반해, 시안 지구의 그리드는 수직으로 올라가며 삼차원 도시 시스템을 구획하고 복잡한 도형에 논리를 만들어낸다. 모든 설계에서 너무 평범한 건 피하려 했다. 동일한 포장 패턴을 계속 사용하기보다 길을 알려줄 수 있고 문 화적 함의가 있는 방식으로 패턴을 만들었다. 한 건물 앞 공간을 은행잎 형태의 패턴으로 포장했는데, 이 패 턴은 1,400년 역사의 고관음선사(Guanyin Temple) 앞뜰 의 은행나무를 상징하는 것으로 장수, 인내, 희망, 평화를 의미한다. 작은 요소에도 주목했다. 도예 장인이 만든 세라믹 타 일로 건물 외벽을 장식하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덮었다. 휘어지는 난간의 끄트머리는 한손에 잡히는 구 형태로 부풀어 오른다. 이러한 작은 디테일은 기억에 남는 장 소의 촉감과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한다. 수직 정원 식물원이자 조각 작품인 시안 트리는 공공 공간의 중 심이자 사회적 자원이다. 지하층에서부터 높이 57m에 이르는 시안 트리는 지구 중심의 만남의 장소로 방문객을 맞이하고 도시를 기념한다. 시안은 4,000마일 에 달하는 길인 실크로드의 동쪽 끝에 있던 도시로 장거리 여행을 시작하고 끝내는 지점이었다. 시안 트리의 가지처럼 뻗어 나온 구조물을 걸어 오르는 경험은 실크로드의 미니어처 위를 걷는 기분을 자아내며 고대 유통로에서 시안이 담당했던 역할을 상기시킨다. 시안 트리에는 꽃잎이라 불리는 다이아몬드 형태의 길 이 6~7m의 테라스가 중앙 기둥을 휘감아 올라간다. 이 꽃잎은 터키에서 중국 동부까지 실크로드를 따라 거쳐 가는 일곱 종류의 생물 군계를 의미한다. 방문객 은 온대 스텝지대에서 시작해 알파인 툰드라, 산간 수 림, 온대 아한대 숲, 건조한 관목숲을 통과하는 돌계단을 걸어 다양한 색채와 질감을 경험하고 건조한 스텝 지대에 도달해 시안 지구와 그 너머의 도시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내부 나선형 계단과 엘리베이터는 유통, 생태, 공동체를 상징하는 이 연속적 정원을 다양한 방식으로 즐길 기회를 제공한다. 미래 유산을 빚다 시안 지구 프로젝트는 현대 공예의 정수를 보여준다. 컴퓨터 렌더링을 물리적으로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일반적인 건물과 달리, 수 세대에 걸쳐 시안의 명성을 쌓은 장인정신의 공예 과정을 드러낼 수 있는 불완전함을 표현하고자 했다. 손수 제작한 오브제는 아름다울 뿐 아니라 고유한 형태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맷 캐시는 “산업화가 가져온 효율성과 완벽함은 종종 인간성의 감각을 상실시킨다. 우리는 모두 다른 결함을 갖고 있기에 불완전함에 공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라믹은 시안의 문화적 맥락을 보여줄 뿐 아니라 시각적 복합성, 삼차원적 질감, 더 나은 방문객 경험을 제공해 시안 지구에 인간미를 더한다. 건물 표면을 뒤덮기 위해 30,000㎡의 세라믹 타일 시공 계획을 세웠는데, 기계로 만든 표준 규격의 타일로는 불가능했다. 시안의 장인들의 솜씨가 필요했고, 거대한 복합 쇼핑몰을 타일 공예품으로 덮는 설계에 클라이언트가 동의할지도 미지수였다. 하지만 클라이언트가 도전에 응했으며, 실제 크기로 구조와 자재 조립 목업을 만드는 데도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하지만 소규모 작업을 주로 하 는 장인들은 시안 지구 프로젝트에 필요한 많은 양의 타일을 만들어낼 시설을 갖추지 못한 상황이었다. 한편 대규모 제작소는 동일한 형태의 결함 없는 타일을 만드는 데 특화되어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설계 팀은 일 년 반에 걸쳐 실험, 협력, 제작, 재제작 과정을 진행했다. 장인들의 작업량을 늘리고, 대규모 제작소가 공예 개념을 수용할 수 있는 균형점을 찾고자 했다. 세리믹 공장 답사를 하며 상호반복적 배움이 이루어졌다. 2,000여 번의 실험을 거 치는 동안 제작소 직원들은 설계안이 담은 의도를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이 현장 중심적 과정은 특수한 자재 실험으로 이어졌고, 그중 하나가 일대일 스케일의 프로토타입 제작이었다. 최종적으로 휘어지고 골이 진, 100,000m 길이의 타 일이 완성됐다. 3~9층으로 바른 유약은 갈색과 크림색 이 회오리치는 매력적인 타일의 표면을 만들어냈다. 한 번의 시도 vs. 프로토타입 시안 지구 프로젝트를 다른 맥락의 대상지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클라이언트의 대담함과 예산은 헤더윅 스튜디오가 이처럼 독특한 프로젝트를 실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냈다. 시안 지구는 하나의 현재진행형인 연구로 발전했으며, 다른 중국 도시도 따라할 수 있는 새 로운 제작 방식과 설계 방법을 이끌어냈다. 시안 지구 프로젝트의 진정한 의미는 공예의 가치와 인간 중심적 스케일의 사고 방식에 있다. 이 원칙은 다 른 대상지에도 적용할 수 있다. 루이스 사크리스탄 무르가는 돌봄과 연민의 마음가짐은 “도시를 공예로 손수 만든 마을로 설계하는 새로운 방식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성공적 프로젝트는 어떤 건물의 맥락과 함께 작업하는 데서 오는 것이지 사전에 형성된 생각을 얹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열린 마음으로 도전하면 대상지와 이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이 가장 좋은 아이디 어로 당신을 이끌 것이다. 글 Heatherwick Studio Design Heatherwick Studio Design Director Thomas Heatherwick Group Leader Mat Cash Project Leader Luis Sacristan Murga, Simon Winters, Angel Tenorio Project Manager Consuelo Manna, Jimmy Hung, Technical Design Leader Nick Ling, Maura Ambrosiano Collaborator 10 Design(architects), GP Architects(towers A&B), Lacime(towers C&D), KPF (original masterplan and towers) Consultant Arup(facade engineering), RBS(structure engineering), WSP(MEP engineering), Surbana Jurong(structure tree engineering), CFT(facade tree engineering), WTD(landscape), Landworks(landscape), Speirs+Major(lighting), MIR(visualisation), Devisual (visualisation), Slashcube(visualisation), Robotics Plus(engineering) Local Design Institute JZFZ(overall LDI), KTF(facade LDI), Sky Design(interior LDI), Green(landscape LDI), HDA(lighting LDI) Ceramic Manufacturer HEDE(north podium), TOB(south podium), Yi Design(lift buttons) Client China Resources Land Location Xi’an, China Area 155,000㎡ Completion 2024. 12. Photograph Zhu Qingyan, Raquel Diniz 헤더윅 스튜디오(Heatherwick Studio)는 250여 명의 건축가, 디자이너, 메이커, 엔지니어, 조경가로 구성된 팀으로, 모두를 위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런던과 상하이에 있는 공동 워크숍과 디자인 스튜디오를 기반으로 건물, 공간, 마스터플랜, 오브제, 기반 시설을 만든다. 우리 주변의 건물과 장소를 근본적으로 더 즐겁고 매력적인 곳으로 탈바꿈시켜 인간적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
윌밍턴 워터프런트 프롬나드
태평양의 아름다운 자연과 이어져 있었던 로스앤젤레스의 윌밍턴(Wilmington) 지역은 로스앤젤레스 항구의 확장으로 인해 해안에서 서서히 분리됐다. 로스앤젤레스 항만청은 북미에서 가장 분주한 컨테이너 항구이자 인근 지역의 주요 경제 원천인 이곳의 커뮤니티를 확대하고자 노력해왔다. 이 점을 고려해 윌밍턴을 지역의 매력 요소이자 경제적 원동력으로 만드는 데 전념했다. 로스앤젤레스 항만청과 직원, 지역 사회, 관련 기관과 협력해 윌밍턴 지역과 항만 사이에 자연스러운 완충 지대를 만들었다. 윌밍턴 지역의 히스패닉계 주민들이 자연에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과 산업과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담은 마스터플랜을 개발했다. 윌밍턴 워터프런트 공원, 아발론 북쪽 스트리트스케이프, 윌밍턴 워터프런트 프롬나드의 세 공공 공간이 마련됐다. 마스터플랜 항만청은 두 단계로 나누어 마스터플랜을 실행했다. 첫 단계는 2011년에 개장한 윌밍턴 워터프런트 공원이다. 유휴 부지를 해안으로 평행하게 뻗은 30에이커 규모의 공원으로 탈바꿈시켜 지역 사회와 항만 사이 완충 지대 역할을 하도록 했다. 두 번째 단계는 공원과 지역 사회를 바다와 연결하는 것이다. L자 형태의 신규 개발 부지로 산업 지구, 아발론(Avalon) 거리와 새로운 워터프런트 프롬나드를 연결했다. 공원 구성 항구의 영향으로부터 윌밍턴 워터프런트 공원을 보호하기 위해 평평한 기존 지형을 4.88m 들어 올려 견고한 조형 지형을 조성했다. 이곳은 그늘이 드리우는 완만한 잔디 경사로와 다목적 운동장을 하나로 통합한다. 들어 올린 지형 위에 만든 엘 파세오 프롬나드El Paseo Promenade는 벤치, 전시 정원, 캘리포니아 해안 철도 선로와 연결된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종의 순환로로 기능한다. 향후 아발론 북쪽 지구의 보행자 통로가 대상지와 연결되면 방문객들은 산업 항구 부지를 지나 윌밍턴 워터프런트 프롬나드의 랜딩에 도착하게 되는데, 이곳은 조형 지형 꼭대기에서 LA 항구의 시원한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입구가 된다. 흙으로 만든 돔 아래 화장실과 서비스 시설들을 교묘하게 배치했다. 공원 앞쪽에 있는 광활한 잔디밭을 가로질러 무대 역할을 하는 산책로를 걸어가면 오닉스를 깎아 만든 거친 돌로 된 계단식 좌석을 만나는데, 이곳에 앉아 물과 만나는 항구의 탁 트인 풍경을 즐길 수 있다. *환경과조경442호(2025년 2월호)수록본 일부 글 Sasaki Lead Landscape Architect Sasaki(Zachary Chrisco, Philip Dugdale) Local Landscape Architect Studio-MLA Client Port of Los Angeles Location Los Angeles, California, United States Area 10ac Completion 2024 Photograph Millicent Harvey, Barrett Doherty 사사키(Sasaki)는 도시설계, 건축, 토목 공학과의 협업을 통한 다학제간 디자인을 추구하며 전 세계의 대규모 국제 사무소, 문화 지구, 고등 교육을 위한 캠퍼스, 소규모 사무 공간을 설계해왔다. 다양한 스케일의 설계 경험을 바탕으로 대상지의 문제점을 다차원적으로 분석해 넓은 스펙트럼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유연한 도시설계와 균형 잡힌 프로그램, 역동적인 공공 영역 등을 아우르는 마스터플랜을 제시한다.
프롬나드 사뮈엘 드 샹플랭
프롬나드 사뮈엘 드 샹플랭(Promenade Samuel-De Champlain)(이하 사뮈엘)은 황량했던 2.5㎞ 길이의 고속도로와 철도 노선을 세인트로렌스강(St. Lawrence River)을 따라 펼쳐진 중요한 문화 거점으로 만드는 프로젝트다. 1단계 이후 15년 만에 완공된 3단계에서는 이전과 동일한 디자인 언어를 그대로 유지하되 차별화된 방문객 편의 시설을 만들어야 했다. 한때 이곳은 지역 주민에게 넘어설 수 없는 장벽이었다. 하지만 고속도로가 일반 도로로 바뀌고 철도 노선이 이전된 뒤 강변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15만㎡ 규모의 부지가 확보됐다. 설계 목표는 지역 주민에게 강을 되돌려주는 것이었다. 사뮈엘은 캐나다 퀘벡 주정부가 주도하는 수도 유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사회적 사명감을 설계의 원동력으로 삼고, 마스터플랜부터 건축과 조경, 가구와 신호 체계까지 모든 디자인 요소에 종합적이고 다학제적 방식으로 접근했다. 강의 회복 우선 세인트로렌스강의 존재감을 강화하고자 했다. 대상지의 본질을 포착하고, 이 지역의 역사적 상징성과 고유한 해안 생태계를 드러냈다. 디자인 영감은 목재 무역과 조선업을 기반으로 했던 대상지의 역사에서 얻었다. 19세기 초 기업가들의 창의적 발상을 디자인에 반영하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간결하고 강력한 디자인 언어로 표현하고자 했다. 특히 산업 유산의 관점에서 귀중한 자원인 목재를 통해 여러 세대에 걸쳐 부둣가 잔해와 더미가 형성했던 기존 해안선 경관을 떠올리게 하고자 했다. 이 프로젝트의 마지막 단계는 지난 세기 이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었던 플라주 뒤 푸롱(Plage du Foulon)을 연상시키는 해변을 개발하는 것으로 매력적인 휴게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두 개의 볼륨 주요 편의 시설인 파빌리온 데즈 베노르(Pavillon des Baigneurs)는 볼륨감 있는 두 개의 직사각형이 길쭉하게 놓인 형태다. 하나는 해변 장벽에서 뻗어나가는 화강암 구조물로, 다른 하나는 화강암 기단 위에 놓인 목재 구조물인 파노라마 전망대로 독특한 볼륨감을 선사 한다. 전망대 내부에는 고성능 난간 유리를 전략적으로 활용해 실내외 공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활기찬 해변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했다. 흰색 목재 중심의 실내 인테리어로 따뜻한 해안가 분위기를 연출하고, 캔틸레버 목재 구조물의 돌출부는 수변 공간의 문지방으로서 1층 해변 스낵바와 테라스를 장식하는 예술적 디자인 요소가 된다. 강변의 휴양지 사뮈엘은 건축가가 어떻게 사회에 기여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나이, 개인적 배경,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오가며 즐길 수 있는 개방형 공간은 시민을 위한 새로운 안식처가 된다. 미러폰드와 수영장은 강과 조화를 이루며 파빌리온에서 해변으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연결을 만들어낸다. 인피니트 풀의 무한한 수평선은 이용자들에게 마치 강물 속에서 헤엄치고 산책하는 듯한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해변 장벽과 바다 라임 잔디(sea lyme grass) 군락을 따라 만 들어진 모래 해변은 물길과 조화를 꾀하는 강변의 휴양지 같은 경관을 연출한다. 해안 산책로 해변을 따라 다양한 기능과 분위기가 있는 산책로가 펼쳐진다. 서쪽 방향 산책로에서는 자연적 지형에 융화되며 고유한 해안 경관을 드러내는 해안 초원을 연상시키는 정원을 가로질러 갈 수 있다. 파빌리온 드 라 코 트(Pavillon de la Côte)와 프롱트낙 키(Frontenac Quay)에는 현대적 감성을 담아냈다. 동쪽 부둣가 산책로는 기존 습지를 강조하며 드넓은 녹색 평원으로 마무리된다. 이 평원에는 파빌리온 드 라 부알(Pavillon de la Voile), 스포츠 시설, 피크닉 플랫폼, 강변 진입로 등 다양한 공간이 어우러진다. 지역 생태계와 공공 공간 대상지 지역의 생물 다양성을 회복하기 위해 교목 1,055그루, 관목 2만8,950그루, 자생종 초화류 11만 7,000본 등 다양한 식물을 심었다. 생미셸(Saint-Michel) 습지를 활성화해 지역의 동식물군에 반드시 필요한 생태계를 보존하고자 했다. 다학제적 노력의 결과물이 잘 반영된 사뮈엘은 개장 후 방문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번 프로젝트 는 공중 보건, 기후변화 대응, 생태학, 생물 다양성 등 을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완성도 높은 공간을 통해 구 현하고, 이용자에게 유의미하고 흥미로운 경험을 제공 한다는 공공의 목표를 달성하며 공공 공간의 위상을 높이고 좋은 공공 공간의 필요성을 역설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글 Daoust Lestage Lizotte Stecker Lead Designer(Architect, Urban Design, Landscape Architect)Daoust Lestage Lizotte Stecker, Réal Lestage, Eric Lizotte, Caroline Beaulieu, Lucie Bibeau, Grégory Taillon, David Gilbert, Mélissa Simard, Luca Fortin, Maria Benech Landscape Architect Consortium Daoust Lestage Lizotte Stecker, Option aménagement et Williams Asselin Ackaoui Collaboration Project Manager: Société Québécoise des Infrastructures(SQI) Partner: Ministère des Transports et de la Mobilité Durable Engineering: AtkinsRéalis, WSP, Tetra Tech Process Engineering: François Ménard Construction Manager: Pomerleau Contractor: Construction BML(Station de la Côte, Station de la Voile et Boulevard), Construction Deric(Station de la Plage, Mirror of Water and The Swimming Area), Construction Citadelle(Pavillon de la Côte et Pavillon de la Voile), Bauvais & Verret(Pavillon des Baigneurs) Client Commission de la Capitale Nationale du Québec(CCNQ) Location Québec, Canada Area 150,000㎡ Completion 2023 Photograph Adrien Williams, Stéphane Groleau, Maxime Brouillet, Nicole Grenier, Radio-Canada/Erik Chouinard 도스트 레스타주 리조트 슈테커(Daoust Lestage Lizotte Stecker)는 1988년 설립되어 건축, 조경, 도시설계를 다루는 다학제 디자인 그룹이다. 디자인 관습의 한계를 극복하고, 도시설계, 건축, 조경, 인테리어 등 다양한 분야의 경계를 허무는 디자인을 선보인다. 대상지와 주변 환경의 본질적 특성을 주의 깊게 살피고, 명확한 현대적 디자인 언어를 통해 과거의 흔적을 드러내는 방식을 추구한다. 간결함을 강조하는 디자인을 통해 도시와 건축의 관점에서 유의미하고 완성도 높은 공간을 설계하며 소규모 지역 단위부터 국제적 규모까지 다양한 범위에서 활동하고 있다.
부첸뷔엘 공원
2017년 스위스 취리히 국제공항 인근 부첸뷔엘(Butzenbüel) 언덕을 재설계하기 위해 더 파크(The Park) 공모전이 개최됐다. 스튜디오 풀칸의 설계안이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공원은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Yamanotork Riken)이 설계한 18만 평 규모의 비즈니스 센터인 서클 단지와 함께 2020년 개장되어 고속도로, 공항, 서클 사이에 위치한 휴양지이자 평화로운 안식처 역할을 하고 있다. 대상지는 역동적 인프라로 둘러싸여 있으며 자연과 유사한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언덕에는 자연과 인공 경관의 역사적 층위가 쌓여 있다. 원래 이곳은 1960년대 고속도로를 만들며 나온 굴착토가 쌓인 빙하 퇴적물이었다. 1970년대에 인공 숲, 초원, 습지가 조성되면서 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이곳을 자연 보호, 여가 활동, 산림 활용 등 언뜻 보기에 서로 상충하는 요구 조건을 충족시키고 시너지 효과를 내는 설계를 통해 탈바꿈시키고자 했다. 상징적 경관 조각품 부첸뷔엘 공원은 그 자체로 상징적 경관 조각품이며, 서클 단지의 요구 사항에 부응하고 자연과 숲을 보존하고 있다. 주로 대상지에서 찾은 재료를 사용했는데, 한 예로 퇴적물 속 자갈을 산책로와 벽에 활용했다. 디자인 콘셉트와 두 가지 주요 개입 하늘, 숲, 빙하 퇴적물, 지형이라는 대상지의 네 가지 층위를 설계에 반영했다. 숲 개간: 나무들을 지름 200m의 타원형 공원 주변으 로 둘러 트리 링을 만들었다. 트리 링은 상징 공간이자 고요한 공간을 조성한다. 이곳은 언덕을 공원의 랜드 마크로 바꿔주는 ‘천상의 아레나’로 기능한다. 산과 고원: 언덕의 수직적 층위를 강조했다. 언덕 아래에는 스위스 빙하 퇴적물이 있고, 그 위에는 스위스 숲이 있다. 빙하 퇴적물을 활용해 추상적 조형물을 만들었다. 이 조형물은 하늘과 날씨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스카이 플랫폼과 함께 산의 정상 구역을 형성한다. 서클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스카이 플랫폼에 갈 수 있다. 공원은 숲 순환 산책로, 스카이 순환 산책로, 파빌리온, 거울 연못으로 구성된다. 빛을 반사하는 거울 연못은 공원의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추가 설계 순환 산책로: 두 개의 주요 동선인 숲 순환 산책로와 스카이 순환 산책로를 조성했다. 두 산책로는 기존 빙퇴석 자갈로 만들었다. 숲 산책로는 공원 입구와 공원을 연결하고 다채로운 숲을 관통한다. 스카이 산책로는 개간지와 고원으로 이어진다. 장소와 용도: 자연에 대한 경험을 방해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시설물만 설치하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 게 했다. 작은 고원에 숲 파빌리온을 설치해 조용하게 휴식할 수 있도록 했다. 케이블카는 경사면의 기슭과 스카이 산책로를 연결하고, 대상지를 가로질러 빙퇴석 벽을 볼 수 있게 한다. 자연과 숲 보호 숲 보호를 핵심 설계 목표로 삼아 휴양과 자연 보호 기능을 결합했다. 목표 지향적 유지·관리를 통해 밀도, 수종 구성과 분위기가 다른 여러 구역을 만들고자 했다. 공원은 재설계를 통해 숲과 자연을 보호할 뿐 아니라 방문객의 요구를 충족하는 다목적 여가 활동 공간이 되어줄 것이다. 글 Studio Vulkan Landscape Architecture Studio Vulkan Landschaftsarchitektur with Robin Winogrond Ecology Oeplan Forest BauSatz Objects Winfried Schneider Produkt Design Furniture Inch Furniture with Luis Bischoff Client Zurich Airport AG Location Zurich Airport, Switzerland Area 1,131㎡ Realisation 2017~2021 Competion 2021 Photograph Daniela Valentini 스튜디오 풀칸(Studio Vulkan)은 2014년 조경설계사무소 슈바잉 루버 출라우프(Schweingruber Zulauf)와 로빈 비노그론트(Robin Winogrond)를 합병해 만든 회사다. 취리히와 뮌헨에 본사를 두고 10개국에서 온 40명의 전문가가 조경 팀을 이끌고 있다. 조경, 도시설계, 도시계획, 예술, 전통에 대한 전문 지식과 스위스, 독일, 미국 등 여러 나라의 문화를 바탕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한다.
힐티 캠퍼스
줄리아니 횡거 아키텍트(Giuliani Hönger Architects)와 협업해 리히텐슈타인의 샨(Schaan)에 위치한 전동공구기업 힐티Hilti 본사 건물을 전통적인 산업 부지에서 혁신과 지식의 캠퍼스로 탈바꿈시켰다. 캠퍼스의 오픈스페이스는 만남의 장소로 기능하는 동시에 자연 전이 공간 역할을 한다. 조경설계의 콘셉트는 라인 계곡(Rhine Valley)과 쓰리 시스터즈 마시프(Three Sisters Massif) 산맥의 경관에서 영감을 얻었고, 남동쪽 숲은 공간의 배경 역할을 한다. 그린 파사드 주차장 프로젝트 첫 단계(2017)는 복층 주차장을 조성해 대상지 내 주차 공간을 줄이고, 다양한 조경 공간을 갖춘 캠퍼스를 만드는 것이었다. 공원을 마주하고 있는 주차장 건물 입면을 덮은 10m 높이의 키 큰 덩굴 식물은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색과 꽃을 통해 방문객에게 계절감을 선사한다. 녹화된 입면은 공원을 위한 인상적인 배경을 만들며, 공원의 북쪽 끝을 알리는 안내판 역할을 한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어진 통경축은 대상지 너머 인접한 자연 경관까지 확장되며 주변 자연 경관과 통합된다. 공원과 퍼걸러 생태와 디자인적 요구 사항과 더불어 설계의 핵심 콘셉트는 공원과 안뜰에 직원과 방문객을 위한 새로운 공간을 제안하는 것이었다. 야외 활동의 기회를 만들어내며 기존의 업무 공간을 보완하고자 했다. 울타리와 풍성한 교목 군락으로 구성한 다양한 크기의 장소에서 담소와 회의, 팀 행사를 진행할 수 있다. 힐티 캠퍼스에서 가장 중요한 오픈스페이스는 퍼걸러다. 오픈스페이스 콘셉트에서 독립적 요소로 기능하는 퍼걸러는 주차장 계단에서 캠퍼스를 가로지르며 오피스 노르드(Office Nord) 건물의 아케이드까지 이어지는 산책로 역할을 한다. 이 퍼걸러는 대상지 내 다른 건물 입면과 맞닿지 않고 북쪽 오피스 건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다양한 녹색과 노란색의 몰딩 유리를 퍼걸러의 콘크리트 지붕 원형 개구부에 설치했다. 원뿔형 채광창은 태양의 위치와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빛의 반사 효과를 더욱 극대화한다. 퍼걸러는 캠퍼스 공원의 연출 요소 중 하나로 다양한 공간적 확장을 통해 공간을 연결하며 휴식과 만남의 장소 역할을 한다. 공원 중앙에 위치한 퍼걸러 끝 지점은 파빌리온처럼 이용할 수 있다. 특히 소규모 행사 장소나 북쪽 오피스 건물 이용자들을 위한 야외 다이닝 공간으로 활용 가능하다. 탁 트인 초원 너머 외딴 나무, 숲과 숲 경계 구역은 이용자의 시선에서 보면 경계선이 모호하다. 힐티 캠퍼스는 이러한 주변 자연 경관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퍼걸러는 주변의 식재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시퀀스와 어우러진 매력적인 전망을 선사한다. 숲 근처에는 서어나무, 물푸레나무, 참나무, 소나무, 단풍나무 군락이 있고, 대상지 동쪽에는 계수나무, 체리나무, 호두나무뿐 아니라 피나무, 아이언우드, 뽕나무, 사과나무와 같은 과실수와 조경수를 볼 수 있다. 공원의 넓은 잔디밭과 다양한 수종의 나무, 다간형 수목은 충분한 야외 활동 공간을 제공한다. *환경과조경442호(2025년 2월호)수록본 일부 글 Vogt Landschaftsarchitekten Landscape Architect Vogt Landschaftsarchitekten Architect Giuliani Hönger Architects Client Hilti Location Schaan, Liechtenstein Area 28,900㎡ Design 2016~2023 Completion 2023 Photograph Vogt Landschaftsarchitekten 보그트(Vogt Landschaftsarchitekten)는 2000년 취리히에 설립한 조경설계사무소로 베를린, 런던, 파리 등 여러 도시에서 활동하고 있다. 광범위한 분야와 사무소 간의 물리적 거리라는 한계 속에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공통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며 끊임없이 성장 중이다. 특히 유럽의 도시 경관을 위한 새로운 접근법을 만들고 도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밀도 높은 담론을 마련하며, 새로운 도시 담론을 이끌어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담론을 토대로 조경가로서 지리학자와 식물학자의 시선을 유지하고자 노력한다. 그 결과를 다양한 프로젝트와 전시, 출판을 통해 실현하고 있다.
[우먼스케이프] 신라 선덕여왕
두 번째 이야기: 신라 선덕여왕(각주 1) 사실 모험하는 기분이었다. 한국 여인들의 이야기도 함께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가장 먼저 떠올린 인물이 선덕여왕이었다. 아마도 인상 깊게 본 드라마 ‘선덕여왕’(2009)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 드라마를 보기 전 선덕여왕에 대한 내 지식은 첨성대와 향기 없는 모란꽃 이야기가 전부였다. 그러다 선덕여왕 드라마를 보면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었다. 뭐야, 저게 다 신라의 이야기라고? 에이, 설마. 그러면서도 작가의 상상력을 부추긴 근거가 있을 것이므로 검색해 가며 봤다. 그때부터 틈날 때마다 한국사 공부를 다시 하고 있는데, 내 지식이 얼마나 허술했는지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그간 열심히 탐구하고 연구해 온 역사학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조사 중 정기호 교수(성균관대학교 조경학과 퇴임)가 쓴 첨성대에 관한 논문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경주 선도산에서 비롯해 동서로 뻗는 축과 동지 일출선이 교차하는 지점에 첨성대가 있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석굴암과 경주의 축조물들은 극히 계획적으로 앉혀졌으며, 특히 첨성대는 국가 체계 수립 과정에서 왕도 건설의 의도적인 축 설정과 관계되어 있다고 해석했다.(각주 2) 첨단의 도시계획이다. 정기호 교수를 통해 선덕여왕 이야기의 진정한 실마리를 찾았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신라의 왕도 건설은 언제 시작됐고 어떤 이념 하에 계획됐으며 선덕여왕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질문의 가닥이 잡혀갔다. 암탉이 울었다? 그리고 펼쳐 든 책이 하필 박영규의 『한 권으로 읽는 신라왕조실록』이었다.(각주 3) 알다시피 신라의 사기 원본은 존재하지 않는다. 박영규는 『삼국사기』 등을 토대로 『조선왕조실록』처럼 신라왕조의 이야기를 한 권으로 엮어 펴냈다. 그중 제27대 “선덕왕실록”을 펼쳐 읽기 시작했는데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객관적 서술 사이사이에 저자의 주관적 해석이 내비쳤다. 선덕여왕을 시름시름 앓기나 하던 무능한 여왕으로 묘사했다. 우선 “국제 사회에서 따돌림 당하는 선덕왕과 신라 내정의 혼란”이라고 부제를 붙인 것부터 수상쩍었다. 국제 사회에서 따돌림당했다는 것은 오랜 적대 관계였던 백제의 젊은 의자왕이 막강한 기세로 공격해 여러 성을 빼앗겼고 고구려와의 협상도 순조롭지 않았던 것을 말하는 듯했다. 백제의 침공도, 고구려와의 관계도 선덕여왕이 여자였다는 사실과는 무관했다. 그럼에도 당태종이 “너희들 은 여자를 왕으로 모셔 이웃 나라로부터 경멸당하고 있다”고 시비를 걸어 온 것에 박영규라는 21세기의 인물이 “저도 같은 심정이에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감히 우리의 왕을 두고 도발을 서슴지 않은 당태종을 비판하고 꾸짖어야 마땅했다. 천사백 년 전에 죽은 당태종이 아직도 무서웠거나 아니면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의 견해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일 수도 있다. 김부식은 사료(각주 4)에 바탕을 두고 삼국사기를 매우 객관적으로 집필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선덕(여)왕 편에서도 그는 학자의 객관성을 지켜 “선덕왕이 즉위했다.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하였다. 왕이 죽고 아들이 없자 나라 사람들이 덕만을 왕으로 세우고 성조황고聖祖皇姑라는 칭호를 올렸다” 등 여러 고서의 내용을 착실히 옮겨 적었다. 선덕여왕이 즉위 16년 되던 해에 승하했다는 것까지 다 쓰고 나서 마지막에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신라의 여왕에 대한 사론’이라는 단락을 첨부해 이렇게 말했다. “신라는 여자를 받들어 세워서 왕위에 있게 하였으니 진실로 어지러운 세상의 일이요,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 하겠다. 서경에는 암탉이 새벽을 알린다고 하였고, 역경에는 파리한 돼지가 껑충껑충 뛰려 한다고 하였으니, 그것이 경계하지 않을 만한 일이겠는가!”(각주 5) 암탉도 모자라서 돼지까지 등장시켰다. 심해도 정말 심했다. 이쯤 되면 유교적 사고 때문이라 하기도 어렵다. 여자 남자를 떠나 국왕을 이런 식으로 디스(디스리스펙트의 준말)한 것은 유학의 가르침에도 분명 어긋난다. 그런데 신라의 여왕 세 명 중에서 유독 선덕여왕만 비판했다. 세 여왕 중 맏이니 대표로 욕을 먹으라는 뜻이었는지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궁금해진다. 세 여왕 중에서 선덕여왕만 여러 사료에 심심찮게 등장한다. 그런 점으로 미루어 보아 선덕여왕이 그저 여자 임금, 암탉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니었을까? 성조황고라는 칭호까지 받은 선덕여왕의 치세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면 혹시라도 고려에 여왕이 나타날까 봐 두려웠을까? 21세기의 작가 박영규는 선덕여왕이 자신의 죽음이 가까워진 것을 알고 무덤 자리를 정했다고 설명하며 그것도 “좋게만 볼 일은 아니”라고 했다.(각주 6) “아니 왜?” 읽다가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소리다. 박영규는 왜 좋게만 볼 일은 아닌지 이유는 말하지 않는다. 다만 9층 목탑 건립 등 무리한 공사를 강행한 것은 반정 세력에게 빌미만 제공한 꼴이어서 선덕여왕을 결코 좋게 평가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꽤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말하는 반정 세력, 즉 비담파가 반역을 꾀한 이유가 무리한 건설 프로젝트나 도탄에 빠진 민생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여자 임금이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어서”라고 했다는데,(각주 7) 그렇다면 선덕여왕 즉위 직후에 반정을 도모하지 않고 왜 16년 동안 잘 있다가 여왕 재위 마지막 해에 반란을 일으켰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왕이 후사를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후사가 없던 선덕여왕이 자신이 곧 죽을 것을 예견하고 사촌 여동생 승만(진덕여왕)에게 왕위를 계승하겠다는 유지를 내렸을 것이다. 그때 상대등이었던 비담은 자신이 왕이 될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보고 은근히 기대했을 것이며 그것이 틀어지자 반란을 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여자 임금”은 이미 운명을 다 한 선덕여왕이 아니라 진덕여왕을 말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타당할 것이다. 선덕여왕의 치세에는 이의가 없었으나 다음 왕은 내가 해야겠다는 의도였을 것이며, 김유신, 김춘추 등 여왕파와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 이때 김유신이 반란을 진압했다고 하는데, 여러 정황으로 보아 당시 선덕여왕은 김춘추, 김유신과 안정적인 삼각구도를 이루며 통치했고 신라의 미래를 길게 내다봤던 것 같다. 황룡사 9층 목탑을 비롯해 분황사, 영묘사 등 많은 사찰을 건립했는데 이는 왕의 불심이 너무나도 두터운 나머지 무리한 사찰 건설로 민생을 도탄에 빠뜨린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보다는 신라만의 독특한 호국신앙에 근거한 장기적인 왕도 건설의 청사진이 있었으며(각주 8) 여왕은 실천의 주축을 이루었다. 왕도 건설의 청사진이란 곧 ‘불국토’의 구현이었다. 정원도시, 생태도시 등을 표방하는 것이 21세기적 도시설계의 이념이라면, 7세기 신라에는 불국토의 구현이라는 뚜렷한 이념이 있었다. 거대 담론이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선덕여왕 즉위 시점의 주변 정세를 보면 사실 사면초가와 같아 호국이 절대적 과제였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같은 민족이 아니라 서로 타국으로 이해하여 영토 분쟁이 끊이지 않았었다. 당과의 관계도 복잡했고 백제와 친한 일본도 신라의 해안을 수시로 범했다. 아직은 세력이 작았던 신라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군사력을 기르고 한편으로는 줄타기 식의 아슬아슬한 외교 정책에 의존해야 했다. 선덕여왕은 김춘추에게 외교를, 김유신에게 군사를 맡겼다. 그리고 자신은 나라의 정신적이고 영적인, 즉 종교적 지도자의 역할을 온 힘으로 맡아냈다. 신라인들이 과연 선덕여왕이 갑옷을 입고 전장에 뛰어들어 외세의 침입을 몸소 막는 것을 바랐을까? 아닐 것이다. 21세기의 관점에서 고대사를 바라볼 때 간과하기 쉬운 부분인데, 당시에는 정치, 외교, 군사 외에도 종교가 국가적 핵심 사안이었다. 고대의 왕이 제사장 혹은 무왕에서 비롯됐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왕에게는 호국의 책임이 있었다. 선덕여왕은 불교적 호국의 상징적 존재였다. 신라인들이 호국을 오로지 군사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종교에 더 크게 기댔다는 사실은 수많은 능과 사찰과 불탑의 존재, 그와 관련된 많은 설화가 입증한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첨성대다. 첨성대에 올라 춤추고 노래한 조선의 시인들 첨성대는 천문을 관찰하는 곳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천문대치고는 그 형태가 기이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내가 고민할 일은 아니라 여겼다. 그런데 알고 보니 첨성대의 기능에 대해 적어도 네 가지 해석이 존재한다. 기능에 관한 확실한 역사적 기록이 전해지지 않으므로 여러 각도에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우선, 별을 관찰하는 천문대였다는 설이 주도한다.(각주 9)그러나 천문을 관찰하 기에는 여러모로 불편하게 설계됐다는 의견도 대두되었다.(각주 10)그러므로 다른 기능도 있을 것이라 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저 별을 관찰하는 곳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별자리를 형상화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각주 11)즉 천상열차분야지도 등의 별자리 지도를 땅에 투영해 주요 시설을 각 별 자리에 배치했는데, 그 중심에 첨성대를 앉혔다는 해석이다. 정기호의 교차축 이론에 천문의 관점에서 새로운 레이어를 얹은 것이다. 고대의 천문 의존도를 고려해 볼 때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그런가 하면 젠더적 해석도 있다. 호리병 같은 형태와 상부에 얹은 사각형의 틀이 우물을 닮았고 그것은 여성성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신라의 “토착적 여신신앙에 뿌리를 둔 성스런 건축물이기도 하다”는 주장이다.(각주 12)즉, 첨성대는 선덕여왕을 직접적으로 상징한다는 논지다. 같은 여성으로 서 여성을 성적 특성에 제한하는 것은 자승자박이라 마땅치 않은 해석이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첨성대가 ‘도리천’으로 가는 통로라는 기상천외한 설이다.(각주 13)불교의 세계관을 보면 우주의 중심에 수미산이 있는데 그 위의 하늘을 일컬어 도리천이라고 한다. 그런데 선덕여왕 자신이 바로 그 도리천에 자신을 장사 지내라고 지시한 바 있다는 이야기가 『삼국유사』를 통해 전해진다. 선덕여왕이 아무 병도 없는데 “짐이 모년 모월, 모일에 죽을 것이니 도리천에 장사 지내라고 지시했다. 신하들이 도리천이 어딘지 몰라 물으니, 왕이 말하기를 낭산 남쪽이라고 했다.”(각주 14)지금 선덕여왕 능이 바로 그곳에 자리 잡고 있다. 여왕의 혼이 49일 만에 능에서 일어나 첨 성대를 올라 눈에 보이지 않는 계단을 밟고 도리천으로 승천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첨성대는 수미산이 되는 셈이다. 여왕은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었을까? 고대 그리스 신화가 부럽지 않은 멋진 이야기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이야기가 세월을 이기고 조선 중후기까지 면면히 전해져 내려왔다는 사 실이다. 서거정(1420~1488), 김세렴(1593~1646), 조수삼(1762~1849), 김매순(1776~1849) 등 조선의 여러 시인이 첨성대에 다녀와서 지은 시들이 남아 전해진다. 예를 들어 서거정은 첨성대 아래에서 신라 시대의 춤과 노래로 선덕여왕의 영혼을 위로했더니 도리천을 갔다 오는 꿈을 꾸었다는 글을 남겼다. 19세기 중엽에는 조수삼이 첨성대 계단을 오르면 계단이 끝나면서 허공의 층계가 이어진다는 내용의 시를 지었다.(각주 15)어떻게 된 일인가. 이들은 모두 유학자였지만 동시에 시인으로 명성이 높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하나같이 첨성대가 하늘로 가는 길이라 노래하고 있다. 네 시인의 연혁을 보 면 각각 다른 시대를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서로 동무해서 같이 놀러 갔다가 취기에 지은 시가 아니다. 서거정과 김매순 사이에 삼백 년 이상의 세월이 놓여 있다. 그런데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첨성대 축조의 의미가 정말 그러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적어도 19세기 중엽까지 하늘로 가는 계단이라는 첨성대의 의미가 전승됐다는 뜻이다. 그 뒤 시대적 격변 속에서 잊혔다가 여 러 사람의 끈질긴 탐구로 다시 발견되었다.(각주 16) 불국토를 건설하기 위해 태어난 선덕여왕 그렇다면 선덕여왕이 누구였기에 그를 위해 하늘로 가는 통로를 만들어 주었을까? 이제 안함이라는 고승이 등장할 차례다. 선덕여왕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법사는 지장도, 원광도 아니고 안함이었던 것 같다.(각주 17)다소 비밀에 싸인 것 같은 이 인물은 진평왕 대에 중국에서 신라로 밀교를 가지고 들어왔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이 점이 중요한데, 딸인 덕만이 왕위를 계승해야 할 근거를 제시 했다. 즉, 덕만이 사실은 길상천녀의 화신이라고 설명한 것이다. 길상천녀는 복덕을 주는 여신으로 아름다운 얼굴에 하늘의 옷을 입고 보관을 썼으며 왼손에 여의주를 받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 여신이 신라에 불국토를 건설하기 위해 덕만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것이다. 첨성대 축 조 역시 안함이 발원했다고 한다. 여왕으로서의 임무를 완수하고 다시 하늘로 돌아갈 수 있도록 통로를 마련해 준 셈이다. 믿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이야기다. 안함은 상당히 신통한 도사였다고 전해지는데, 기왕 반쯤 신화에 발을 담근 김에 이야기를 계속 따라가 보자. 신라 불국토 건설의 이념이 안함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신라의 지도층에서 지지하 지 않았다면 구현될 수 없었을 것이다. 불국토가 원래 신라 땅에 있었다고 하는데 “에이 뭔 소리” 라고 할 귀족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중심에 선덕여왕을 세운 것은 신의 한수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길상천녀라니 자신의 신화를 만든 것은 고대 이집트의 핫셉수트 여왕과 같지만 남장을 할 필요는 없었다. 안함은 선덕여왕 재위 8년에 입적했다. 구름을 타고 서쪽 하늘로 유유히 사라졌다고 한다. 어 쨌거나 신라인들은 여왕을 길상천녀로 알고 나라를 지켜줄 거라 철석같이 믿었을 것이고, 여왕은 불국토 청사진에 따라 분황사와 영묘사를 세우고 황룡사 구층목탑을 완성했다. 자신의 무덤 자 리를 정하고 그 아래 사천왕사 설립을 지시한 뒤 세상을 떠났다. 후대의 문무왕이 선덕여왕의 뜻에 따라 사천왕사를 지었다고 하며 자신을 동해 대왕암에 장사를 지내라는 유지를 남겼다. 옥녀 봉에 위치한 김유신 장군의 무덤도 같은 축선상에 있다. 결국 선덕여왕, 김유신, 김춘추, 문무왕 모두 불국토 건설 계획을 공유하고 이를 빈틈없이 구현해 나간 하나의 팀이었던 것으로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이런 결속력과 깊은 신뢰에서 나당전쟁에서 이길 힘을 얻었을 지도 모르겠다. 사실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인 까닭에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나당전쟁에서 이겼으니 망정이 지 까딱하면 나라 전체가 먹혀버렸을 수 있어 지금 생각해도 아슬아슬하다. 신라가 이긴 것이 요행이었을까 아니면 천운이었을까.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하늘의 별자리에 따라 주요 시설을 세운다거나 불국토의 건설 같은 것이 무척 생소할 수 있다. 처음 불국토설을 들었을 때 피식 웃었었음을 고백한다. 도시계획과 조경의 이념은 크게 달라졌으나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는 국토 보호의 염원은 예나 지금 이나 다르지 않다. 빛 공해로 인해 밤을 상실한 현대인으로서는 당시 신라의 밤하늘에 별이 어느 정도 총총하게 빛났었는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어두워지면 바로 머리 위 하늘에 천상열차분야지도가 그려졌을 것이다. 매일 밤 손에 잡힐 듯, 쏟아져 내릴 듯 가까이에서 빛나는 그 별자리들은 그 시대의 일상이었다. 그들의 운행에 따라 절기가 바뀌고 오곡이 무르익고 사람이 나고 죽는다는 믿음은 너무 당연했다. 게다가 별자리는 지금 지적측량기만큼이나 정확하게 방위를 알려줬다. 그러므로 경주의 유적지들이 별자리의 재현이라는 사실은 전혀 허황하지 않다. 올해도 동지 새벽에 대왕암에 떠오르는 해가 선덕여왕릉을 지나 첨성대 위로 쏟아지고 옥녀봉 에 있는 김유신묘에 이를 것이다. 빛은 거기서 머물다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더 나아가 태백을 달 려 백두산까지 가지 않을까? 옛 호국의 영웅들은 아직도 서로를 신뢰하며 묵묵히 한반도를 지키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작금의 나라 형편을 보면 그들의 혼을 불러 기도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다. 부디 이 땅의 지도자들로 다시 태어나 주소서. **각주 정리 1. 『삼국사기』 등 역사서에는 선덕왕으로 나타나지만, 모든 이들이 선덕여왕이라 부르기 때문에 그에 따르기로 한다. 2. 정기호, “경관에 개재된 내용과 형식의 해석: 석굴암 조영을 통하여 본 석굴형식과 신라의 동향문화성을 중심으로”, 『한국조경학회지』 19(2), 1991, pp.23~31. 3. 박영규, 『한 권으로 읽는 신라왕조실록』, 웅진지식하우스, 2001. 4. 김부식이 참고했다는 고서 대부분이 분실되고 없다는데 어떤 경위로 사라졌는지에 대해선 아무도 모르는 듯하다. 5. 김부식,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5권, 선덕왕, 신라의 여왕에 대한 사론. 한국 고대 사료 DB db.history.go.kr/ancient/level.do?levelId=sg_005r_0020_0480 6. 3번 책, p.293. 7. 김부식,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5권, 신라본기, 선덕왕 본기. 한국 고대 사료 DB db.history.go.kr/ancient/level.do?levelId=sg_005r_0020_0010 8. 이에 관해서는 정기호 교수가 집중적으로 연구한 바 있다. 9.천문학자 박상범은 첨성대를 현존 세계 최고의 천문대라 정의했 다. 박상범,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 김영사, 2002, p.79. 10.1960년대 중반 전상운이 최초로 첨성대가 천문 관측에 적당한 구 조가 아니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서금석, “천문대로서의 첨성대 이 설에 관한 재론”, 『한국고대사연구』 86, 2017, p.152. 11.‘첨성대 별기’, 울산MBC 다큐멘터리, 2009. 12.김명숙, “첨성대, 여신 상이자 신전”, 『한국여성학』 32(3), 2016, p.139. 13.장활식, “첨성대 축조 발원자”, 『신라문화』 49, 2017, p.57. 14.일연, 『삼국유사』, 권1 제1기이, 선덕왕 지기삼사. 15.13번 글. 16.부산대학교 장활식 교수는 십 수 년을 첨성대 연구에 바쳤으며 건 축가, 사학자, 천문학자와는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 새로운 사실을 많이 확인해냈다. 17.국사편찬위원회, 『해동고승전』, 권 제2 유통1-2 , 석안함 편. db.history.go.kr/id/hg_002r_0060_0040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 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 『신의 정원, 나의 천국』, 『고정희의 바로크 정원 이야기』, 『고정희의 독일 정원 이야기』, 『100장면으로 읽는 조경의 역사』를 펴냈고, 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어제의 대화, 오늘의 재구성] 박희성
냉정한 사람, 피가 차가운 사람, 쌀쌀 맞은 사람, 냉소적인 사람. 우리는 어떤 대상과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온도에 비유할 때 차가움을 꺼내오곤 한다. 연구자라는 사람을 온도에 빗대야 한다면 차가운 쪽에 가까울 거라 생각했다. 연구 대상을 왜곡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치밀하게 분석하고 멋대로 상상하며 결론 내리지 않으려면, 잘 벼린 칼날 같은 태도가 필요할 것 같았으니까. 박희성과 이야기를 나누며, 내 예상보다 그가 앞으로 누벼야 할 이론의 바다가 훨씬 넓다는 걸 알게 됐다. 길고 긴 항해 내내 차가울 수 있을 리 없다. 그래서 미지근함에 대해 생각했다. 열정으로 시작해 결코 차게 식지 않는 사람,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적당한 온기를 보온병처럼 유지할 수 있는 사람. 긴 여정에도 지치지 않고 포기를 생각하지 않는 그 적정한 온도에 대해서. 어제는 뭐했나요? 밀린 논문을 썼어요. 학기 중에는 강의를 비롯해 다양한 일이 동시에 벌어지는데, 전 멀티플레이어가 아니라 한번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지 못해요. 조금 미뤄오다 이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밀린 논문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연구교수(이하 교수)에게 논문은 일종의 과제 같은 존재인가 봐요. 논문을 쓰는 이유는 다양하죠. 승진이 목적인 사람도 있고 개인적인 연구 욕심이 있는 사람도 있고요. 전 생산물이 없는 연구자는 본분을 잊은 거라 생각하거든요. 자기반성을 섞어 조금이라도 쓰려고 하고 있습니다. 또 생업이 있다 보니 순수하게 학자로서 공부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에요. 연구비 펀딩을 받은 경우, 페이퍼 형태의 최종 제출물을 만들어야 할 때도 있어요. 지금 쓰고 있는 논문도 그런 과제 중 하나이고요. ‘연구자’ 하면 제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어요. 이른 아침 일어나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그런 이상적인 모습이요. 실제로 규칙적이고 부지런한 생활을 하나요. 반성하게 되네요. 저 역시 그런 이상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스타일이에요. 전 오히려 밤에 집중이 잘되는 스타일이라 늦게까지 책상에 앉아 있는 편입니다. 스트레칭을 꾸준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커피는 자주 마셔요. 인터뷰를 준비하며 환경과조경 홈페이지에 박희성을 검색해봤어요. 촘촘하진 않더라도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대략적으로 그려보기 좋은 아카이브거든요. 그런데 뜻밖의 결과에 눈이 갔어요.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옥외공간 조성 설계공모’, ‘한국도로공사 본사 이전사옥 건립 설계경기’, ‘사상광장로 명품가로공원 조성 기본계획 현상설계공모’ 참가자 명단에 교수님 이름이 있더군요. 처음부터 교수님을 연구자로서 만났기에, 설계에 참여한 적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이 중 두 개 공모는 우리엔디자인펌 연구소장으로서 함께한 공모더군요. 2000년대 초 조경설계사무소가 기업부설연구소를 많이 열었었어요. 설계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려는 의도이기도 했고, 정부에서 세제 혜택을 주기도 했죠. 강연주 소장(우리엔디자인펌)은 연구 집단과의 교류에도 관심이 많았고, 기존 설계 방식에서 벗어나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역량을 다지겠다는 의지가 있는 분이었어요. 2006년 우리엔디자인펌 조경설계연구소가 만들어졌고, 기존 조직이 연구소와 설계소로 나누어졌죠(“설계사무소 소장으로 산다는 것, 그 냉정과 열정 사이”, 『환경과조경』 2016년 5월호 참고). 그즈음이 당ㆍ송대 산수원림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직후로, 조경에서 멀어지는 것 같다는 고민을 하고 있던 참이었어요. 미학을 기반으로 한 연구를 하다 보니 점점 조경의 범주 바깥으로 밀려나는 기분이었죠. 기회가 되면 조경설계를 알아보고 싶었는데, 마침 우리엔디자인펌의 조경설계연구소가 제게 기회를 줬어요. 1년 반 정도 머물렀으니 긴시간은 아니었지만 많은 설계공모에 참여할 수 있었고 알찬 시간을 보냈어요. 조경 연구자가 되면 할 수 있는 일이 연구원, 교수뿐인가 하는 아쉬움이 있었거든요. 연구자는 설계공모에서 어떤 역할을 하나요. 조경설계연구소에 들어간다고 하니 주변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했었어요. 연구자가 설계에 참여한다고 해서 프랙티스를 기반으로 하는 교수처럼 될 수는 없다는 이야기였죠. 1~2년 정도의 시간으로 설계가가 되지도 못할뿐더러, 저의 부족함은 채울 순 있어도 연구자의 커리어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 거라는 조언도 있었고요. 맞는 말이었어요. 당연히 제가 선을 그리고 도면을 만드는 설계를 할 거라고 예상하진 않았어요. 대신 설계의 큰 콘셉트를 만드는 일을 했죠. 대상지를 분석해 공간 설계를 끌고 나갈 기본 방향을 만들고, 틀이 갖춰지면 작은 세부 요소를 구체화하고 보고서를 마무리하는 일을 했습니다. 연구자로서 공부해온 이론들이 큰 도움이 됐어요. 제가 제안한 콘셉트가 설계에 반영되는 걸 보며 공간을 바라보는 맥락과 해석하는 방식이 조경의 관점에서 동떨어져 있지 않았다는 걸 확인할 수도 있었습니다. 안심했어요. 설계공모뿐 아니라 일반 연구 용역도 진행했고, 관광 같은 다른 분야와 협업하는 구조를 만들기도 했어요. 다른 직원이 연구소가 세워지기 전보다 설계하며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졌다는 이야기를 해주어서 안심했습니다. 우리엔디자인펌을 떠나서는 바로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로 자리를 옮겼어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입사한 지 일 년 반쯤 지나니 생각이 복잡해지더라고요. 과연 이곳에 발붙일 수 있을지, 또 회사 경영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보통의 직장인들이 다 할 법한 고민들이었어요. 때마침 서울학연구소에서 조경을 전공한 연구자를 찾는다는 소식이 들려왔어요. 사실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연구를 진행하는지는 모르고 들어왔는데, 완전히 새로운 판이더라고요. 조경학과에 입학했을 당시에는 어떤 미래를 꿈꿨었나요. 자신에게 연구자의 소질이 있다는 걸 언제 깨달았는지 궁금합니다. 참 오래된 이야기네요. 큰 뜻을 가지고 연구를 시작하게 된 건 아닙니다. 학부 졸업 시기가 다가오니까 막막했어요. 4년 동안 열심히 공부는 했는데 조경에 대해 뭘 아나 싶고, 졸업작품을 만들면서는 사람이 실제 사용할 공간이 될 선을 이렇게 가벼운 고민만으로 그려도 되나 망설여졌어요. 조경설계를 하려면 내가 어떤 공간을 지향하는지 조금의 가닥이라도 잡은 상태여야 제 역할을 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이대로 무작정 취업하게 된다면 또렷한 지향점 없이 흘러갈 테고 그래서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결심했죠. 돌이켜보니 이상한데, 당시 설계를 잘하기 위해서는 이론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서울대학교 조경미학연구실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막상 연구에 발을 들이니 이론 분야는 바다와 같이 넓고, 디자인 감각이 뛰어난 사람도 워낙 많더라고요. 어떤 일을 할 때 제가 더 즐거운지 생각해봤더니 책을 볼 때 마음이 더 편안하더라고요. 그렇게 연구자의 길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석사논문 주제가 ‘한중 정원과 문인, 자연미’였죠. 지금까지도 동아시아 조경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있고요. 긴 시간 하나의 분야를 계속 연구하면 지치지는 않나요. 점점 진전하는 느낌으로 연구하고 있어요. 이 연구를 마치고 보니 저 부분을 더 연구해야겠구나 하는 식으로요. 지루할 틈이 없어요. 조경이라는 학문 자체가 하나의 색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고 다방면을 살펴야 하거든요. 학위 논문을 쓸 때 절 고민에 빠트린 건 조경이 순수 학문이 아니라 실천적 학문이라는 점이었어요. 그에 반해 전 미학, 즉 이론을 공부했으니 어디까지 발을 담가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예컨대 정약용의 자연관을 공부하고 싶으면 그 사람의 학문 세계와 시학, 시대의 사회적 분위기를 알아야 하죠. 그런데 마냥 이론만 들여다보고 있을 순 없어요. 조경은 실체가 있는 공간이니까요. 이론에서 빠져나와 공간을 구체화해야 하는 지점이 있는데, 이론과 공간 사이를 잘 드나드는 기준을 세우는 게 참 어려웠어요. 어떤 공간을 만든 사람의 특징을 개인 성향으로 볼 것인지, 사회문화적 영향과 당시의 철학, 경제적인 부분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지도 고민해야 하죠. 덕분에 다양한 사료를 살펴야 하고 다양한 연구 방식을 써야 하죠. 지루하고 지난한 연구의 나날을 이런 변주로 극복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많은 주제 중 하필 동아시아 정원에 관심 갖게 된 이유가 있다면요. 학부 시절 안계복 교수님(대구가톨릭대학교)의 동양조경사 수업을 굉장히 재미있게 들었어요. 당시 동양 조경을 공부할 수 있는 교재가 적었는데, 윤국병의 『조경사』(일조각, 1978)라는 오래된 활자본 책이 있어요. 체감 상 내용의 30퍼센트 이상 한자로 쓰여 있었죠. 보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는 책인데, 시험공부를 한다고 한자를 일일이 다 찾아보며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나요. 지금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로 열심이었죠. 동서양의 조경사를 다 아우르는 책이었고 정말 잘 쓴 책이었어요. 그때부터 이미 동아시아 정원에 대한 관심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대학원에 입학해 서양 미학 공부도 했지만 짧은 학습 시간 때문인지 내용에 충분히 공감이 되지는 않더라고요. 공부를 하면 하겠지만 체화하기는 쉽지 않겠다 싶었죠. 오래 연구할 주제라면 단순한 호기심으로 접근하기보다 내가 끝까지 견뎌낼 수 있는 대상을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조경 연구자의 일에 대해 “짧게는 몇 백 년, 길게는 천 여 년 전 사람들의 생각을 읽고 공간을 상상하는 일”(“언제나 지금만 같길 바라”, 2021년 4월호)이라 표현했었죠. 자료 분석과 연구의 차이가 있다면, 논거를 바탕으로 상상력을 더하느냐의 여부인것 같아요. 그 상상력의 정도가 중요할 텐데 어떤 기준으로 접근하나요. 상상보다는 가설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궁금증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상정하고 연구를 시작하기도 하고, 공부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나의 주장과 색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 선배와 선생님이 항상 내 것이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면 오류에 빠질 수 있다고 말해줬어요. 무조건 내가 맞다는 생각을 경계하려고 노력합니다. 내가 펼친 상상에 대한 객관적 증거를 제시할 수 있는지, 견강부회해서 편견에 휩싸여 대상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 되묻는 훈련을 많이 하려했어요. 제가 연구하는 시대는 크게 전근대 사회와 서구 문명과 교류가 이루어졌던 근현대로 나뉘어요. 전근대 시기의 연구는 미의 인식, 즉 공간을 어떻게 인식하며 아름다움을 느꼈으며 무엇을 추구했는지,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등을 살펴 동아시아 문인의 보편적인 미의식을 탐구하고자 합니다. 글이라는 사료를 통해 인물의 성정과 사고 체계를 짐작하고, 이를 기반으로 어떤 공간에서 무엇을 지향했는지 추론이 가능하죠. 하지만 공간의 생김새나 정원의 조성 방법 등을 정확하게 아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죠. 반면 근현대 시기는 좀 더 과학적인 가설을 세워 상상해볼 수 있죠. 실체가 있고 자료도 많아서 객관적으로 논증할 수 있거든요. 근현대는 지금의 우리가 있게 한 근간이기도 해서 나름의 의미가 있습니다. 연구는 지식에 대한 탐구를 기반으로 그 대상을 치밀하고 깊이 있게 조사하는 일이고, 그 점 때문에 자칫 지루할 것 같다는 인상을 남겨요. 하지만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잖아요. 지금껏 연구를 진행해오면서 머리가 번뜩하며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 있었나요. 당연히 있습니다. 예컨대 가설이 좀처럼 참인지 진짜인지 증명되지 않고, 어렴풋이 답은 알 거 같지만 명확한 증거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 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사진이든, 회화든, 글이든 사료가 등장하며 의문점이 단숨에 풀릴 때가 있어요. 해결의 열쇠가 갑작스러운 등장 같지만, 대부분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 끝에 보상처럼 따라와 준 것 같아요. 연구자는 스스로 세운 가설이 증명되는 순간의 짜릿한 감동을 잊을 수 없는데, 연구를 지속하는 것도 그 때문이기도 합니다. 요즘 느끼는 건데 시대는 끊임없이 변해도 인간의 본성 자체는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아요. 제가 연구하는 시대의 사람들이 했던 생각과 고민, 그리고 성숙해가는 과정이 지금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더라고요. 우리와 똑같이 꽃 보며 즐거워하고 새로운 계절을 맞으며 설레어했던 모습을 발견하면 시공간을 뛰어넘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학생들에게도 그 시절이 결코 별천지가 아님을 강조합니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타인의 삶처럼 가르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공감대를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모던스케이프’(2022년 1월호~2023년 12월호) 연재를 통해 철도와 가로 같은 인프라에서 출발해 가로, 공원, 정원, 옥상에 이르기까지 근현대 도시 풍경을 이루는 다양한 요소에 대한 관심을 확인했어요. 원림, 양화소록, 장안성 등 본래 연구하던 시대와는 훌쩍 떨어진 근현대로 연구 분야를 확장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전근대 시기의 미학과 자연관만 계속 공부하다 보니 막연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하고 싶은 연구만 계속할 게 아니라 연구자로서 동시대 조경도 다뤄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고요. 동아시아 정원이 마이너한 연구 분야라 외로웠던 점도 한몫을 한 것 같네요. 때마침 서울학연구소로 자리를 옮기고 보니, 조경 연구자는 저 혼자였고 건축과 역사전공을 한 연구자가 대부분이었어요. 서울학연구소가 학제간 연구를 지향하는 집단이라 다른 분야의 연구자와 함께할 기회가 생겼죠.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어요. 미학과 철학을 다뤄온 제 입장에서 건축과 역사 분야의 연구법은 과학적이고 철저한 논증을 기반으로 한 명징함 그 자체였어요. 흥미로워서 온갖 세미나에 참석하고 그들이 사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법들을 공부했죠. 이곳에 몸담은 김에 새로운 연구를 해볼 기회가 찾아왔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순히 새로운 방법론만 습득할 게 아니라 연구 대상 자체를 확장하려고 보니 조경 분야가 근현대를 그저 암흑기로 치부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도시사적으로 많은 일이 벌어졌던 시기고, 다른 분야에서는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거든요. 그 빈칸을 채워보자 하는 마음으로 근현대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다학제 연구라는 개념이 제겐 좀 모호하게 느껴져요. 실제로 쉽지 않은 연구 방법이에요. 연구자끼리 모이면 서로 뇌 구조가 다르다는 농담을 자주해요. 처음에는 갈등도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며 서로 연구를 전개하는 방법과 훈련 받아온 연구 방법 자체가 너무 다르다는 걸 인정하게 됐어요. 우선 큰 주제가 있으면 계속해서 토론을 해요. 예를 들어 한양도성이 주제라면, 각자 한양도성을 어떤 관점으로 보는지 이야기하는 거죠. 구조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고, 도성을 만드는 인물과 제도에 집중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러다 보면 결코 접점이 없을 것 같은 이야기가 만나는 순간이 있죠. 상관없을 것 같은 이야기 사이에 연결고리가 생기고 맥락이 읽히게 되면 환경과 사람 사이에 다양한 인과 관계가 가설로 만들어집니다. 연구 결과를 텍스트에 의지해 설명하던 인문계 연구자는 지도나 도면 하나로 표현하면 훨씬 설득력이 있다는 걸 깨닫기도 하고요. 현상을 시각화하면 텍스트로는 볼 수 없던 경향을 포착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공계 연구자는 글의 행간을 읽는 훈련을 통해 보이지 않던 현상을 파악하는 경험을 합니다. 사료의 수집이나 활용법, 자료를 객관적으로 해독하는 기술도 배웁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받고 사고력을 확장하는 게 학제간 연구의 장점이죠. 연구하며 다양한 사료를 볼 텐데, 마음을 빼앗기는 사료 유형이 있을 것 같아요. 시각적 자료, 일본식으로 표현하자면 비문헌 자료가 아무래도 매력적이죠. 본인이 세운 가설에 몰입하다 보면 문헌 자료를 곡해할 여지가 많아요. 즉 비약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조경처럼 공간을 다루고 실체를 보여줄 필요가 있는 학문에서는 회화, 사진, 엽서, 지도 같은 시각 자료가 왜곡이 덜한 정보를 제공하죠. 단순해 보이지만 이런 시각 자료에는 상상 이상의 많은 정보가 들어있는데, 자칫하면 중요한 정보를 놓치기 십상이에요.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만 보려는 경향이 있어서, 전혀 보이지 않던 정보가 나중에 갑자기 보이는 경우도 많거든요. 따라서 넓고 깊게 반복적으로 살펴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회화 중에서도 특히 동아시아의 회화는 관념을 표현한 부분이 많고, 원근법을 생략하고 재구성하는 경우가 많아서 사실과 다를 거라는 인식이 많아요. 그런데 경험한 바로는 회화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스케일이 왜곡되거나 함축적으로 표현된 경우가 많지만, 중요한 정보는 모두 담겨 있어요. 알리고자 하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담겠다는 의지가 느껴지죠. 들여다보고 있으면 작자의 의도가 하나하나 읽혀서 너무 재미있어요. 옛 사료를 많이 접하는 연구자의 경우 특정 물건을 수집하기도 하던데요. 열정적인 연구자들은 이베이 같은 경매 사이트에서 사료를 사 모으기도 하는데 저는 평범한 편입니다. 원체 제공되는 자료가 많은 시대잖아요. 학위논문을 쓸 당시만 해도 자료 수집이 쉽지 않아서 자료 확보 능력이 연구 능력으로 간주되기도 했는데, 요즘은 그 시절의 노력이 허무할 정도로 다양한 자료가 공개되어 있죠. 그래서 오히려 수집보다는 그 자료를 어떤 실로 꿸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모두에게 제공된 백 가지 정보 중 어떤 현상을 골라 어떤 물음에 답할지 틀을 짜는 게 연구자의 역량이죠. 참, 학위 논문을 쓰던 시절 중국 조경사 연구를 위해 칭화대학교와 베이징대학교를 다녔었죠. 그곳의 생활은 어땠나요. 정약용 선생과 다산초당원을 주제로 논문을 쓴 이후에도, 한국정원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질문이 절 따라다녔어요. 사실 정약용은 매너리즘에 빠진 당시의 성리학을 비판하고 조선이 주체가 되어 유학을 바로 세우려고 했던 학자이니, 공부하고 나면 또렷하진 않아도 어느 정도 물음에 대한 답을 낼 수 있을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정약용도 지금의 성리학은 너무 왜곡되었으니 원시 유학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공맹 사상으로 회귀하더라고요. 결국 한국정원의 고유성은 중국에 귀속될 수밖에 없는 건가 고민하다 보니 중국을 공부하면 한국과 차별되는 지점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떠오른 거죠. 치기 어린 마음으로 덤벼든 겁니다. 걱정이 많았지만 운이 좋게도 중국에서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았어요. 말도 잘 못하는 애가 중국 정원을 공부하겠다고 와 있으니 교수와 동기들이 어여삐 여겨 준 거죠. 개인적으로 중국이라는 대륙에 얼마나 많은 정원 이론이 연구되고 있을지 기대했는데, 의외로 제가 한국에서 책으로 접한 내용들 이상의 새로운 것은 없었습니다. 제가 있었을 당시에는 그들도 우리만큼 자신들의 정원에 대해 잘 모르더군요. 문화대혁명 이후 학문 체계가 중화사상의 프레임에 갇혀 있는 상황이었어요. 우리 게 최고라는 생각 아래에서 다양한 관점과 해석이 나올 리 없죠. 오히려 바깥에서 여러 가지 시선으로 해석한 연구의 다양성이 더 풍부했고 흥미진진했어요. 대신 현장을 직접 답사하면서 얻은 게 많습니다. 정원이나 자연환경을 묘사한 회화 작품을 보면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거든요. 예컨대 왕유라는 당나라 시인이 노모를 모시려고 만든 망천별업이라는 거대한 정원이 있어요. 수레바퀴 망(輞) 에 내 천川을 쓰는데, 해석하면 물이 수레바퀴가 지나간 것처럼 휘돌아가는 모양으로 흐르는 장소가 별업의 배경이 되어야 하는 거죠. 그림에도 그렇게 묘사되어 있는데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실제로 찾아가보니 회화에서 보던 모습이 그대로 펼쳐져 있더라고요. 천년이 훌쩍 지난 곳이니 거의 남아있는 게 없었지만, 회화에 묘사된 자연의 분위기와 스케일을 충분히 실감할 수 있었어요. 한번은 백거이의 여산초당으로 알려진 곳을 찾아갔는데, 글과 경관이 너무 안 맞아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죠. 의아했지만 그곳에서는 모두 맞다고 하니 달리 확인할 방법이 없었어요. 오히려 다른 장소에 들렀다가 그곳 매표소 직원에게 지나가는 식으로 물어봤는데, 마침 지나던 내국인이 제 질문을 듣고는 본인이 알고 있다며 장소를 알려주었어요. 얼결에 얻은 정보라 확신은 없었지만, 알려진 장소가 잘못되었다는 생각만큼은 확실했기에 믿고 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중에 산길을 한참 올라갔더니, 백거이 시문에 묘사된 북향로봉 아래에 자리 잡은 여산초당이 거짓말처럼 드러났어요. 어두워지고 있어서 사진을 충분히 찍을 수 없는 아쉬움이 컸지만, 그때 느꼈던 전율과 감동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비로소 글쓴이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어요. 지금은 제대로 된 곳으로 안내가 되고 있을지 모르겠네요. 당‧송대 산수원림 연구를 마쳤을 때 한 인터뷰에서 “중국과 한국 정원의 상관관계를 연구하고 싶다”(“禪과 정원조성 관계 연구한 ‘공학박사’ 박희성씨”, 「불교신문」 2006년 9월 6일)고 말했죠. 이후 진전이 있었나요. 나름대로 해야 할 연구들을 정리해두기는 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하지는 못했습니다. 하고 싶은 공부만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요. 그래도 실천한 것 중 하나는 강희안의 『양화소록』과 명말청초의 문인 문진형이 쓴 『장물지』를 분석해 초화류를 감상하는 방법과 그 지향점이 어떻게 다른지 미학적 측면에서 살펴본 연구예요. 사실 강희안과 문진형은 동시대 사람이 아니어서 비교가 가능할까 하는 고민이 있었지만, 두 인물은 각각 중국과 한국을 대표하는 문인이기 때문에 식물에 대한 태도와 감성의 차이는 확연히 다른 것을 확인했어요.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 다시 연구를 재개하고 싶습니다. 한국정원의 정체성 확립은 조경 분야의 오랜 과제입니다. 정원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있어야 한국정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이어갈 수 있고요. 국가공원과 더불어 국가정원이 지정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한국정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여요. 학생들에게 한국정원을 가르쳐야 하는 때가 오면, 우선 우리는 한국의 정원을 잘 알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말을 먼저 합니다. 지금 우리가 한국정원이라고 부르는 대부분은 조선에 국한되어 있어요. 조선은 관념적 사고를 추구하는 사회였고, 조형적 창작물을 만들기보다 인간으로서 도리를 다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국가였죠. 이러한 조선이 단일 왕조로 무려 500여 년을 지속했어요. 규범과 질서를 강조하던 국가였기 때문에 다른 정원이 끼어들 여건도 아니었죠. 여러 연구자가 이야기하는 조선의 수려한 산수가 특별한 정원술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된데 영향을 미쳤다는 말에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조선은 사회적‧경제적 여건 때문에 고도로 훈련된 정원 기술자를 필요로 하지 않았어요.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그게 조선의 색이었을 뿐이에요. 하지만 현재 실체가 남아 있는 건 대부분은 조선의 정원이고 북한 소재의 역사정원은 전혀 경험할 수 없는 상황이죠. 훨씬 더 화려하고 정교할 거라고 짐작되는 고려, 백제, 신라의 정원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조선의 정원에만 매달려 있어야 하는 상황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중국의 3대 누정 중 하나인 등왕각에 간 적이 있어요. 당나라 때 만든 거대한 누정이 온전히 보전되어 있는 게 신기했는데, 내부에 엘리베이터가 있더라고요. 여러 층에 마련된 사료를 보며 기존의 등왕각은 이미 불에 타 소실됐고 여러 차례 다시 지어졌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주목해야 할 점은 기존의 등왕각을 재현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송나라 때는 송나라 양식으로, 명나라 때는 명나라 양식으로 지었더라고요. 그 시대의 가장 최고의 누각이 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당시의 건축술로 최선을 다해 재설계한 거죠. 대신 과거의 누정이 어떠했는지 기록하고요. 시대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유산은 철저하게 고증해 보존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전통을 토대로 자유로운 해석과 실험을 시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한국성을 실험함에 있어, 실패와 망작에도 너그러울 필요가 있어요. 전통을 경직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현재에도 진행 중이라는 유연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변하지 않는 전통이 있겠지만 삶의 방식과 태도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바뀌기 마련입니다. 시대성은 동시대의 취미와 실천이 잘 축적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니, 많은 시도와 실험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흐트러짐 없는 모방보다 자유로운 재해석의 실험을 시도해야 후손들이 이 시대의 정원을 보며 한국의 정원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산림청이 진행한 K-가든 사업에 참여한 이유도 한국정원을 재해석하는 방향을 좀 더 유연하게 정립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어요. 건축의 경우, 1960~1970년대에 거푸집을 정교하게 만들어 콘크리트로 목조 건물의 형상을 만드는 실험을 했었어요. 어린이 놀이터의 많은 놀이 기구도 콘크리트를 부어 만들던 시대였죠. 세종문화회관은 한옥의 기능과 구조, 형식을 근대 건축술로 재해석한 작품인데, 오늘날 재해석의 모범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 실험을 계속했다면 지금쯤 한옥을 현대화하는 많은 기술이 만들어졌을 겁니다. 이제는 정교한 거푸집을 만드는 기술자를 찾기 힘들어졌죠. 우리에게는 식민지 트라우마가 있어요. 우리가 많은 것을 박탈당한 것도 사실이지만, 식민지와 무관하게 동아시아에 서구의 문물이 들어와 기존의 문화와 서로 충돌하고 결합하기도 했던 역동적인 시기이기도 하거든요. 우리가 변화를 주도한 주체가 아니었고 수동적으로 문물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지만, 우리가 스스로 변화를 받아들여 내재화하는 시도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이 시대를 암흑기, 공백기로만 보지 않고 근대로의 전이 과정으로 바라보면, 미처 보지 못했던 선조들의 고민과 태도를 읽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객관적 시선에서 바라보고 숨은 가치들을 찾아낼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조선은 정원을 가꾸려는 마음과 정원을 즐기고 싶은 욕망은 있었지만 고도의 정원술은 없었던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구릉 많은 지형을 어떻게 이용할지, 배수 체계를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할지, 주어진 자연 요소를 어떻게 극대화해 감상할지 등을 고민했다는 건 알 수 있지만, 정원 콘셉트를 잡고 자연과 인공 사이에서 정원을 어떻게 창출할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자신의 취향을 마음껏 드러내어 누릴 수 없던 조선의 경직된 분위기는 정교하게 정원을 즐기고 가꾸는 행위를 용납할 수 없었어요. 노골적으로 자신의 의지를 마음껏 드러낼 수 없던 시대였기 때문에, 곰곰이, 여러 번 살펴볼 때 비로소 의도가 읽히는 전략을 취했던 것이죠. 그렇기에 조선의 정원이 뒤떨어진다고 치부할 수는 없고 조선이라는 시대를 알고 공간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국정원의 우월성을 이야기하기보다, 시대의 배경과 맥락 속에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도시경관연구회 보라’ 활동을 이어가고 있죠. 홈페이지를 보니 “따로 또 같이 활동하는 조경학 전공자 중심의 자율 연구 집단. 도시, 경관, 역사, 이론의 키워드에 관심을 둔 조경 전공 연구자들이 함께 모여 공부하고 토론하는 장이다”라고 소개되어 있어요. 자율 연구 집단은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내나요. 보라는 조경 연구자들이 모여 만든 연구 집단입니다. 연구는 설계와 달라서 홀로 작업하는 내성이 필요합니다. 박사학위논문을 쓰면서부터는 오랜 시간을 고독하게 지내야 하는데, 학위 수여의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허탈감과 고독함이 크게 다가오죠. 연구자라면 당연히 감내해야 할 감정이지만 가끔 그 현실을 자각하며 복합적인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프로젝트를 통해 연대할 수도 있지만 기회가 많지 않죠. 마침 비슷한 생각을 하는 박사들이 여럿 있다는 사실을 이런저런 기회로 알게 되었고 함께 도모할 일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모였어요. 연구의 바탕과 관심 분야가 제각각이라 걱정했는데, 조경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서인지 서로 의견도 주고받고 흥미로운 많은 대화가 오가는 자리를 정기적으로 가지게 됐습니다. 연구의 길을 잃었을 때나 혹은 연구의 의지를 상실할 때면 서로 용기를 주고 의지를 다지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새로운 시각이 열리기도 해요. 공동 프로젝트로 진행한 서울시 도시공원 아카이브 프로젝트는 조경계에 아카이브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알리게 된 성과까지 덤으로 얻은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지금은 각자의 연구를 지속하면서 어떤 프로젝트를 새롭게 시작해 볼지 구상 중입니다. 일부러 느슨하게 이어가는 활동이기도 해요. 마음 맞는 연구자들의 사교 모임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책무가 주어지는 순간부터 부담스러워질 테고, 서로가 가진 일의 양을 비교하는 등 미묘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요. 우선 크든 작든 이 활동이 끊이지 않도록 이어가자는 암묵적인 규약 내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풀다보니 참 여러 주제에 관심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는 걸 실감했어요. 자칫하면 중심을 잃을 정도로요. 지금 박희성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가장 큰 질문은 무엇인가요. 황기원 교수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은 늘 학자는 자기만족을 위해서만 공부해서는 안 되고, 후학을 양성하고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라고 말씀하셨어요. 요즘 들어 그 말을 자주 되새깁니다. 우선 동아시아 국가의 정원술을 우월의 관점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시선으로 알릴 수 있는 기회를 꾸준하게 가지려고 합니다. 결국은 한국정원의 고유성을 알리고 가치 발굴, 보존 관리, 활용을 하는 이야기로 귀결되지 않을까 싶어요. 근대 주택정원 연구도 이어가고 싶어요. 대다수의 근대 정원이 개인 소유라 방문이 어렵고 공간의 변형이 많아 어려움이 있는데, 동서양 문화의 교류와 혼종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의미 있을 것 같습니다. 현대 한국조경의 흐름과도 연결 지점이 있을 것 같고요. 최근에는 김정화 교수(네바다주립대학교)의 제안으로 길지혜 박사와 함께 잔디 경관을 들여다보고 있어요. 공원에서 흔히 보게 된 잔디밭이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어떻게 근대의 대표 경관으로 인식되었는지 살피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무덤에서나 볼 수 있던 잔디의 경관이 어떻게 근대 정원과 공원에 꼭 두어야 하는 필수 공간으로 변화했는지 궁금하더라고요. 미국과의 연결고리가 확인되어서, 잔디의 교류와 전파의 과정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또 한국의 들잔디가 미국에 수출되며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함께 연구할 예정입니다. 전근대, 근대를 막론하고 한국에 국한된 연구를 하기보다 교류와 영향을 함께 보려는 태도를 견지하려 해요. 마지막으로 한국조경학회 학술부회장을 맡았는데, 앞으로 어떤 일을 해나갈지 궁금합니다. 다양한 학술 주제를 발굴해 내용을 공유하고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려 합니다. 조경이 다루어야 하는 과제가 참 많아요. 나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주제도 조경 분야 안에 있다면 사실 나와 연동되어 있는 경우가 대다수거든요. 조경인이라면 공감대를 형성해 함께 고민해야 할 다양한 주제를 다룰 계획입니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참여를 견인해 일찍부터 조경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어요. 『환경과조경』 400호 돌아보기의 한 꼭지를 맡게 되어(“언제나 지금만 같길 바라”) 과월호를 통해 1세대 조경가의 활동을 한꺼번에 들여다 볼 기회가 있었어요. 그분들이 제도적, 환경적으로 지금보다 더 열악한 여건에서 조경의 역할과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치열하게 고민했다는 걸 다시 깨달았죠. 그렇게 마련된 토대 위에서 우리는 너무 안주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더군요. 그 토대를 더 단단히 다지고 새로운 길을 열 수 있도록 힘써야 하는데, 자신의 몫을 다하는 데만 충실한 면이 있어요. 조경이라는 분야가 어떤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할지 논의하는 자리도 부족했고요. 오히려 원론적인 이야기를 꺼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경관에 대해, 도시 외부 공간에 대해, 역사 유산의 주변부 관리와 운영에 대해 조경이 정말 잘 해내고 있는지 이야기하고, 변화하는 시대와 관계망 속에서 조경이라는 분야를 어떻게 이끌고 나갈지 토론의 장을 만드는 역할을 학술분과가 해냈으면 합니다. 물론 여러 사람의 협조가 필요할 거예요. 조경학회의 다른 분과를 비롯해 아이디어가 있다면 언제든 함께 협력해 세미나를 꾸려보고 싶어요. 이 자리를 빌려 많은 관심과 의견을 부탁드린다는 말을 전합니다.
[밀레니얼의 도시공원 이야기] 거칠고 거친 1960년대, 재생의 물살 속으로
공원도 꼬까옷이 필요해 ‘좋은 공원’을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수많은 조경인에게 묻고 싶다. 무엇이 좋은 공원을 만드는가? 좋은 공원이 되기 위한 조건에는 무엇이 포함될까? 변화된 사회에 걸맞게 새롭게 단장한 공원이 속속들이 등장하는 가운데 ―물론 필연적이다― 공원은 어떤 ‘꼬까옷’으로 단장해야 할까?(각주 1) 조경사 강의 중 1960년대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지고 제스처가 커진다.(각주 2) 1960년대는 환경, 우주 개발, 세계 정세, 금융, 도시계획 등 온갖 분야에서 새로운 일들이 연달아 일어난 시기였고,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를 만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하나씩 뽑자면 끝이 없겠지만 환경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던 당시 조경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는 (주로 선진국을 중심으로) 이안 맥하그(Ian McHarg)를 필두로 한 생태적 지역계획 방법론과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의 그리니치 빌리지 마을 보존 운동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에피소드 1. 그리니치 빌리지의 그와 그녀 시민 참여, 장소 만들기, 도시재생, 지역다움 보존 등 재개발의 반대 선상에 놓인 분야의 교과서 격인 제인 제이콥스의 책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The Death and Life of Great American Cities)』(1961)은 제이콥스를 인문 도시계획 분야의 일약 스타로 만들어 주었고, 1960년대 초 그리니치 빌리지를 둘러싼 그(로버트 모세스, 당시 75세)와 그녀(제인 제이콥스, 당시 48세)로 대표되는 ‘도시 개발 대 마을 보존’의 대결이 불거졌다.(각주 3) 사실 제이콥스가 좀 더 중요한 역할을 한 건 1961년 맨해튼 웨스트 빌리지 아파트 개발 사업으로, 실제로 고층 빌딩이 아닌 낮은 층수의 인간적 스케일(human scale)로 건설이 진행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미디어에, 그리고 이후 학계에 한층 더 큰 여파를 낳게 된 건 그리니치 빌리지(Greenich Village), 특히 워싱턴 스퀘어 공원을 가로지르는 로어 맨해튼 고속도로(LOMEX) 계획이었다. 도시에 (현재) 살고 있는 거주민을 우선할 것인가, 아니면 (미래) 도시 발전을 위해 일정 부분 거주민의 희생이 있더라도 교통을 우선할 것인가?(각주 4) 뉴욕시 공원 운영위원장, 로버트 모세스 조경가의 인식 속 로버트 모세스(Robert Moses)의 평판이 바닥을 찍게 된 계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겠다. 하나는 대중교통 등한시, 웨스트사이드 고속도로와 허드슨 브리지 등의 교통 개편, 슬럼을 없애고 커뮤니티를 해체한 대대적인 재개발로 뉴욕시의 구조를 압축적으로 변화시킨 일이다. 다른 하나는 로버트 카로(Robert Caro)의 퓰리처 수상에 빛나는 모세스 전기, 『위대한 브로커(The Power Broker)』(1974)로 인한 것으로, 오늘날 도시계획 관료로서 모세스의 생각과 실천을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데 가장 강력한 계기로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비판에도 불구하고 모세스가 뉴욕의 도시공원과 공공 공간 활성화에 미친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을 테다. 1934년 1월 18일, 뉴욕시 공원국은 “다섯 개로 나뉘어 운영되던 자치구별 공원 운영위원회를 하나로 통합하고, 이에 따라 한 명의 운영위원장이 뉴욕시 전체의 공원을 다루게 되었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한 명의 위원장’은 뉴욕주 공원위원회의 대표이기도 했던 로버트 모세스였다. (뉴욕시 보직을 수락하기 전 모세스는 뉴욕시 자치구별 운영위원회를 하나로 통합할 것을 조건으로 달았다.) 당시 뉴 욕시장이었던 라 과디아(La Guardia)는 진보주의적 입장에서 공학적이고 효율적인 도시 운영(각주 5)의 가능성을 중요하게 보고 있었고, 이에 따라 뉴욕시 대표적 진보주의자였던 모세스가 뉴욕주와 뉴욕시의 공원녹지계획을 모두 진두지휘하게 된 것이다. 이 시기 발행된 뉴욕시 공원국 보도자료를 살펴보면 모세스가 추구한 공간 효율성 증대와 활성화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대중교통보다 자동차를 중시했으며, 도로를 따라 여러 파크웨이를 조성했다. 흔히 ‘벨트 파크웨이(Belt Parkway)’라고 불리는 이 파크웨이들은 반세기 전 옴스테드가 주장한 ‘공원의 연장선이자 도로’로서의 파크웨이가 아니라, 뉴욕시의 여러 자치구를 연결하는 새로운 고속도로 옆 버퍼 공간으로서 녹지대를 의미했다. 즉 도로로서 파크웨이의 의미가 사라지고 효율적이고 편안한 자동차 운행을 위한 장식이자 분리대로서 파크웨이의 기능적 측면이 강조된것이다. *환경과조경442호(2025년 2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오랜 기간 조경의 장식적 활용에 대해 부정적 견해가 많았다. 다만 ‘장식’의 개념을 새롭게 재정리하자는 의견도 무시할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 Anita Berrizbeitia, “Design: On the (Continuing) Uses of the Arbitrary”, A Cultural History of Gardens in the Modern Age , John Dixon Hunt, ed., New York: Bloomsbury Publishing, 2016. 2. 은사인 배정한 교수(서울대학교)의 조경 이론 수업도 1969년에 방점을 찍고 있다. 권위자 이름을 빌려 의견에 무게를 실어본다. 3. 이 내용을 바탕으로 다양한 공연도 제작된 바 있다. ‘불도저: 로버트 모세스를 위한 노래’, 모세스의 삶을 바탕으로 한 ‘직선에 미친 사람(Straight Line Crazy)’, 로버트 모세스와 제인 제이콥스의 갈등을 중심으로 한 오페라(!) ‘놀라운 질서(A Marvelous Order)’ 등 이다. 4. 봄, 가을에는 전자로, 여름, 겨울에는 후자로 기울어진다. 기상청에 물어보자. 5. 20세기 초중반 정치적 차원에서 미국 북동부의 진보주의란 효율적이고 과학적인 논리에 따라 도시를 운영하는 것을 의미했다고 볼 수 있다. 신명진은 뉴욕대학교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뒤 서울대학교 대학원 생태조경학과와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석사와 박사를 마친 문어발 도시 연구자다. 현재 예술, 경험, 진정성 등 손에 잡히지 않는 도시의 차원에 관심을 두고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의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도시경관 매거진 『ULC』의 편집진이기도 하며, 종종 갤러리와 미술관을 오가며 온갖 세상만사에 관심을 두고 있다. @jin.everywhere
몰링하는 도시생활자-공동공간 쇼핑안내서
“나는 우리가 여전히 가로와 광장이 공공을 위한 영역이라는 생각에만 집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공공을 위한 영역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어요.(각주 1)쇼핑은 인류 공공 활동의 마지막 남은 형식일 것입니다.”(각주 2) 1. 몰링하는 도시생활자 나는 아침 청소와 빨래를 마치고 대형 쇼핑몰을 산책하고 있다.(각주 3) 아쿠아리움 주변은 학생들로 북적인다. 연차를 쓴 오늘, 딱히 별다른 목적은 없다. 그저 어슬렁거리다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실 생각이다. 우연히 괜찮은 카디건을 발견하면 입어볼 수도 있겠다. 몸뚱이에 외제들로 가득한 나 자신이 혐오스러워 국산 브랜드 한두 곳을 둘러보긴 할 건데 오늘 지갑을 열 생각은 없다. 어제부터 열린 팝업에서 러닝 장갑이나 양말 색깔이 마음에 들면 와이프 선물로 살 수도 있겠다. 이따 영화를 볼지 스파에 갈지는 고민 중이다. 강아지 터깅 장난감과 바질페스토는 사갈까 싶다. 근데 귀찮으면 밥만 먹고 집에 가서 쪽잠이나 자려 한다. 나는 이따 쇼핑하긴 할 건데 쇼핑하지 않을 수도 있고 지금 쇼핑하고 있는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각주 4) 이러한 오프라인 리테일 공간에서의 산책과 점유, 방랑과 배회를 몰링(malling)이라 부른다.(각주 5) 바깥은 지금 미세먼지가 많기도 하고 날씨 예보는 고장 난 오락기처럼 오락가락한다. 사오월과 구시월을 지나 그래픽·사인의 남루함을 드러내는 주변 공원에는 촌스러움이 싹트고 지루함이 개화한다. 공원의 맥락을 무시한 채 뜬금없이 등장하는 땡땡 정원들. “왜 공원 안에 정원이 있는지 모르겠다, 제대로 된 건축도 없고 공원도 엉망인데 별 요상한 정원들만 많다”는 동네 아주머니들의 철학적 대화는 꽃 사진을 찍는 아저씨들의 조리개 너머로 개똥처럼 사라진다. 제각각의 그래픽·사인으로 난장을 이루는 여느 핫플 거리들은 공황장애 초기 증세를 유발한다. 그렇다고 파시즘이 점령한 마을처럼 색채가 획일화되고 경직된 기획 공간을 걷기에는 시간이 아깝다. 세금으로 충당한 재원을 이렇게 썼다는 전시 행정의 비루함. 힘들게 모은 돈으로 자녀를 통제하려는 엄마 아빠의 욕심과 오버랩된다. 찰나의 영감보다는 특유의 비장함과 모종의 살기로 뒤덮인 거리. 따분함과 씁쓸함을 배가시킨다. 공원 게이트 주변에 걸린 정치 편향적 현수막들과 공사 준공을 뽐내는 전시 행정의 파편들. 다수의 광장, 거리, 공원 등의 공공 공간들은 검소하면서도 누추하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럽다. “공공 영역은 사라지고 공공 공간만 남았다”는 누군가의 도시 진단이 떠오른다.(각주 6) 그사이 마주치는 몇몇 상인들의 태도는 부담스러운 비즈니스적 환대감 또는 저급한 불친절함 그 어딘가의 좌표에 널부러져 있다. 반면 대형 쇼핑몰은 과거의 잡스러움과 호객 무드를 탈피한 지 오래다. 편집숍, 박람회장, 미술관의 큐레이터 무드로 고객을 느슨하게 환대한다. “어서오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는 이제 불필요한 화법이다. 똘망똘망한 눈빛과 연출성 웃음보다는 되려 차분하고 시크한 눈빛의 담담함이 덜 부담스럽고 더 전문적으로 느껴진다. 대형 쇼핑몰은 고객이 상품과 교감할 시간, 선물 거리를 고민할 시간, 브랜드 가치를 경험할 시간, 그 경험 자체를 공유할 시간, 어슬렁거림과 익명성을 누릴 시간이 모두에게 고결한 시간들로 인정되는 고립 영토다. 이곳에선 서로의 취향과 영역이 오롯이 존중된다. 상품이 진열되고 간택되는 “셀링 공간”은 브랜드 고유의 가치가 전개되는 “쇼룸”의 형식으로 전환되었기에(각주 7) 상품 앞에, 아니 쇼룸과 몰이라는 이 영토 안에서 익명의 이웃들이 평등해지는(듯한) 순간을 마주하는 것이다.(각주 8) 대형 쇼핑몰에서는 전체 공간을 아우르는 일관된 무드의 그래픽·사인이 공간의 레이아웃을 잡는다. 그 안에서 여러 테넌트들이 각자의 개성을 전개한다. 주차장, 식품, F&B, 코스메틱, 여성 패션, 럭셔리, 컨템, 남성 패션, 스포츠, 리빙, 식당가, 문화센터, 옥상정원들이 각 층에 고루 배치되어 있다. 이색적인 팝업스토어와 보이드 VM, 유명 아티스트의 수준 높은 전시회와 테니스 클래스, 시네마와 스파, 셀렉숍 콘셉트의 서점과 특색 있는 카페들, 적당한 온도의 에어컨디셔닝과 깨끗한 화장실, 편리한 ESC와 무장애를 위한 E/V는 덤이다. 적재적소에 전략적으로 배치된 벤치들과 고감도로 연출된 화분과 화단이 인공적인 환경에 환대감을 선사한다. 보타닉·바이오필릭 개념의 대형 쇼핑몰 디자인은 유행이 많이 지났지만 여전히 유효한 디자인 옵션 중 하나가 되었다.(각주 9) 유리 천장은 높이 뚫려 은은한 햇빛이 들어오고 고감도로 디자인된 적당한 크기와 색감의 그래픽·사인이 공간에 안정감을 더한다. 매장 주변의 보행 폭원은 4m에서 12m까지 널찍해서 마주 오는 사람들이 있다 해도 둘이 걷다 하나가 없어질 리없다. ESC는 MD 구성에 따라 1ㆍ2층을 연결하기도 하고 2ㆍ4층을 과감하게 연결하기도 한다. 벤야민이 19세기 파리의 아케이드에서 목격한 쇼핑공간의 스케일을 몇십 배 넘어서는 이곳엔 콜하스가 예견했던 대형 건축의 특성들이 충만하다. 대형 쇼핑몰 건축 파사드와 내부의 디자인 연계는 모호하고(건축내ㆍ외부의 분리), 내부 공간들은 서로 다른 취향의 디자인 콘셉트로 가득하며(내부와 내부의 분리), 내부 공간의 테넌트와 팝업은 끊임없이 변모하고(단절과 연계의 지속적 변화), 고객들은 전후방 구분 없이 각 층과 각 방향에서 쇄도한다(전이감의 해체).(각주 10) 2. 라지(large)-쇼핑몰과 유사공(共)원 대형화된 쇼핑 공간에서의 몰링은 여느 도시공원 산책과 유사하다. 동선 디자인에는 픽처레스크의 유려한 곡선 DNA가 담겨있다. 더 많은 양의 브랜드를 보행자에게 인식시키려는 쿨한 상업적 시뮬라크르다. 대형 쇼핑몰은 누구나 자유롭게 입장할 수 있으며 유니버설 디자인의 수준은 펫 라운지까지 이르렀다. 케빈린치가 제시했던 도시 이미지의 다섯 가지 요소도 이곳에서 유효하다. 에지는 고객 사이드 동선·직원 후방 동선으로, 패스는 메인 동선으로, 디스트릭트는 각 테넌트의 매장들로, 노드는 트래픽 교차점과 결절부(VP) 공간으로, 랜드마크는 곳곳의 대형 보이드와 VM·팝업 공간으로 완벽히 치환된다. 이러한 구조적 특성은 도시생활자에게 다른 행성 소 도시에 온 듯한(낯설지만 익숙한) 기분을 선사한다. 장축 200~400m에 단축 100~150m를 선회하는 대형 쇼핑몰은 거대한 공원과도 같다. 어느 조경 비평가도 모 기자에게 야구장을 파크(park)라고 하지 않았던가.(각주 11) “도시가 공원이고 공원이 곧 도시”라는 20여 년 전 다운스뷰 파크에서의 문장이 지금도 유효하다면, “도시가 대형 쇼핑몰이고 대형 쇼핑몰이 곧 도시”라는 은유 역시 가능해 보인다. 대형 쇼핑몰의 독특한 몰링 경험을 극대화하는 것은 “라지(large)”가 선사하는 규모감이다.(각주 12) 국내 오프라인 대형 리테일의 경우 교외형 아울렛은 2007년(여주 신세계아울렛), 도심형 대형 백화점은 2009년(부산 신세계백화점), 도심형 복합쇼핑몰은 2014년(잠실 롯데월드몰)부터 본격적으로 출현하기 시작했다. 특히 도심형 대형 백화점과 쇼핑몰의 경우 건축물 외부 녹지와 외부 주차장을 제외한 1층의 건축(영업) 면적만 따지더라도 근린생활권 근린공원 1만㎡와 도보권 근린공원 3만㎡ 이상의 규모를 충분히 상회한다. 1층 몰링에 약 15분(약 1km)이 소요된다고 가정하면, 지하 1층~지상 5층 몰링에만 약 1시간 30분(6km)이 소요된다. 또한 대형 쇼핑몰은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제3조와 시행규칙 별표1에서 규정한 공원시설(조경시설, 휴양시설, 유희시설, 운동시설, 교양시설, 편익시설, 공원관리시설, 도시농업시설, 그밖의 시설) 대부분을 포함한다. 설치하기에 어색한 시설은 “9. 그 밖의 시설” 중 “가. 장사시설”, “라. 보훈회관”, “마. 무인동력비행장치 조종연습장” 등 세 가지 종류에 불과하다.(각주 13) 법규적으로도 이 둘은 모두 국계법이 정한 “기반시설”이다. ‘국계법’ 시행령 제2조(기반시설)에서 규정한 일곱 가지 종류의 기반시설 중 공원은 공간시설에, 대형 쇼핑몰은 유통·공급시설에 해당한다. 모두 ‘도시·군계획시설의 결정·구조 및 설치기준에 관한 규칙’ 제2조(도시·군계획시설결정의 범위)에 따라 도시·군관리계획결정을 받아야 하는 도시계획시설이다.(각주 14)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형 쇼핑몰은 동선의 형태와 공간의 구조, 근린공원·문화공원의 규모감을 바탕으로 대부분의 공원시설을 수용하며 주어진 시간 내에 누구나 자유로운 출입이 가능하다. 구경하고 관찰하고 구매하고 사진을 찍고 기다리는 활동,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멍을 때리는 활동, 브랜드 팝업이나 대규모 이벤트에 참여하는 활동도 가능한 멀티플레이어다. 심지어 야구장, 극장, 공연장처럼 입장료를 징수하지도 않고 좌석에 차등을 두지도 않으니 그 유사도가 대단히 높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공원(公園)은 사(私)적인 장소의 반대 개념으로서 국가나 사회에 관계된 “공적인(public) 장소”를 의미하므로, 대형 쇼핑몰을 유사공원이라 부르기에는 무리일 수도 있다. 그것은 공원의 아류 또는 공원의 가면을 쓴 상업적 페이크 공원(fake park)에 불과한 것 아닐까? 그러나 이 지점에서 우리가 몰링 경험이 선사하는 공동의 감각에 다시 한번 주목하는 순간, 유사공원의 가능성이 개화한다. 이 접근은 유사공원의 성립 조건을 공(公)과 사(私)라는 소유 개념에 두는 것이 아니라, 공공(公共)공간에서의 두 번째 공(共), 즉 커먼즈(커머닝)의 공간 경험에 주목하는 미학적 접근이다. 이에 따라 대형 쇼핑몰은 단순히 공원과 닮아 보인다는 의미의 유사공원(類似公園)일 뿐만 아니라 유사공원(類似共園), 즉 공과 사의 구분 없이 둘 또는 그 이상의 것에 관계하는 “공동(통)적인 것(commons)”을 경험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제 유사공원은 엄연히 새로운 버전의 스핀오프 시리즈로 거듭난다. 이 세계관에서 대형 쇼핑몰, 야구장, 공항, 가로, 환승센터, 역사, 박물관, 대형병원 등은 모두 유사공원의 지표인 “공동공간 커머닝(감각)”이라는 속성을 득하게 됨으로써 유사공(公)원의 위상, 아니 유사공(共)원이 된다.(각주 15) *환경과조경442호(2025년 2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렘 콜하스, 봉일범 역, 『렘 콜하스: 학생들과의 대화』, 엠지에이치엔드맥그로우한, 2000, p.45. 2. Rem Koolhaas, Chuihua Judy Chung, Jeffrey Inaba, Sze Tsung Leong(eds), Project on the city Ⅱ Harvard Design School Guide to Shopping , Cologne: Taschen, 2002, p.1. “Shopping is arguably the last remaining form of public activity”라는 선언은 렘 콜하스와 하버드 GSD의 도시연구서 시리즈 중 쇼핑과 도시의 관계를 다룬 두 번째 연구서 서문의 첫 문장이다. 이 연구서는 네 명의 저자가 작성한 약 800여 페이지의 에세이 모음집이며, 첫 번째 연구서 『Great Leap Forward』는 부동산의 세계화를 다룬다. 3. 이 글에 등장하는 대형 쇼핑몰은 비좁은 공간의 중소형 백화점이 아니라, 판매자와 잠재 고객 간의 거리가 최소 7m 이상 떨어져 서로의 시선이 희미하게 캐치되는 쇼핑 공간, 세미-프라이버시 확보라는 익명성의 규율을 암묵적으로 준수하는 쇼핑 공간을 의미한다. 이 기준은 ‘유통산업발전법’ 제2조 제3호에서 규정하는 대규모 점포(대형마트, 전문점, 백화점, 쇼핑센터, 복합쇼핑몰)의 규모 3천제곱미터 이상의 매장 면적을 훨씬 상회한다. 롯데월드몰(잠실), 더현대서울(여의도), 스타필드(하남, 고양), 타임빌라스(수원), 롯데백화점(동탄), 롯데프리미엄아울렛(의왕, 동부산), 현대백화점(판교), 현대프리미엄아울렛(김포, 남양주), 신세계백화점(대전, 대구), 롯데몰 웨스트레이크(하노이) 등 백화점·아울렛·복합쇼핑몰 일체를 일컫는다. 4. 쇼핑의 개념은 구매하는 쇼핑, 구경하는 쇼핑을 거쳐 브랜드 고유의 가치를 오감으로 경험하는 개념, 그 경험을 익명의 이웃과 공유하는 개념으로 확장해왔다. 즉 물질 소비가 브랜드의 경험가치 소비로 전환된 것이다.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은 “쇼핑이 물질에 국한되지 않고 심리적인 것이 되는 양상은 마르크스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쇼핑을 “돈과는 상관없는 하나의 공연”으로 보았다. 렘 콜하스, 프레드릭 제임슨, 임경규 역, 『정크스페이스ㅣ미래도시』, 문학과지성사, 2020, pp.92~93. 5. 대형 쇼핑몰의 몰링은 독특한 유형의 공동(커머닝) 감각을 선사한다. 커먼즈 연구가 데이비드 볼리어(David Bollier)에 따르면 커머닝이란 공유된 자원을 관리하는 체제들을 창출하는 데 필요한 상호 지원, 갈등, 협상, 소통 그리고 실험의 행동들을 의미한다. 이 글은 “커먼즈가 기본적으로 물질적 욕구와 정서의 공유 전반을 포괄한다”는 그의 주장에 주목함으로써 공동공간에서의 공동 경험, 즉 “커머닝 감각”이라는 용어를 제시하였다. 또한 커먼즈와 커머닝이 “단순한 공유(sharing)의 의미일 뿐만 아니라 나눔과 참여의 의미를 갖는다”는 한디디의 유연한 해석은 이 글이 몰링의 의미에 대한 전반적 기조를 형성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커머닝과 커먼즈의 유의미한 담론은 다음을 참조할 것. 데이비드 볼리어, ‘Commoning as a Transformative Social Paradigm(사회변형 패러다임으로서의 커머닝)’, The Next System Project, thenextsystem.org/newsystemsreader; 데이비드 볼리어, 배수현 역, 『공유인으로 사고하라』, 갈무리, 2015; 한디디, 『커먼즈란 무엇인가』, 빨간소금, 2024. 6. “공공성과 공공 영역은 사라지고 물리적인 공공 공간들만 남았다”는 그의 기조는 여러 에세이에서 일관되게 드러난다. 4번 책, pp.31~44. 7. 롯데백화점 본점 ‘탬버린즈’, 잠실 롯데월드몰 ‘아더에러’, 하남 스타필드 ‘젠틀몬스터’ 사례처럼 비교적 작은 공간에서도 브랜드의 가치는 전개된다. 무신사 스탠다드와 같은 단독 매장들도 대형화가 되면서 피팅룸 역시 사이즈를 확인하는 엄숙한 밀폐 공간이 아니라 피팅의 과정을 즐기는 유희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8. 상품 앞에 평등하다는 말은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고가의 명품들이 중산층에게 박탈감을 선사하고 불평등을 조장한다는 주장도 있었으나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일례로 조던 신상의 획득은 클릭을 누가 더 먼저하고 오픈런을 누가 더 먼저하느냐에 달려있게 되었다. 9. 의왕 롯데프리미엄아울렛과 여의도 더현대서울 모두 2021년에 오픈했다. 보타닉·바이오필릭 쇼핑 공간 콘셉트는 1851년 영국 만국박람회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 글의 3장에서 다시 한번 언급할 예정이다. 10. 대형 건축의 특성들은 국내에 번역된 그의 여러 책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되기는 하나 그중 가장 친절한 설명은 1번 책을 참조할 것. 11. 최근 야구장과 대형 쇼핑몰이 하나로 연결된 세계 최초의 돔품몰(인천 청라) 청사진이 공개됐다. 유사공원(야구장, 대형 쇼핑몰)의 기묘한 동거를 주제로 삼자대면을 한다면 그 기자의 표정이 어떨지 궁금하다. 12. 1956년 미국 최초의 몰, 미네소타주 사우스테일 쇼핑 센터의 규모는 보통 사람들이 도심에서 세 블록 정도를 걷는다는 원칙에 근거하여 그 거리에 해당하는 1,000피트가 평균 길이가 되었다. 설혜심, 『소비의 역사』, 휴머니스트, 2017, p.351. 13. 제도적으로 대형 쇼핑몰은 건축법에서 규정하는 다수의 시설을 대거 포함한다. 특히 ‘도시·군계획시설의 결정·구조 및 설치기준에 관한 규칙’ 제84조(시장의 구조 및 설치기준)와 ‘건축법’ 시행령 별표1(용도별 건축물의 종류)에서 정한 방대한 종류의 편익시설을 참조할 것. 14. 세부적으로 대형 쇼핑몰은 ‘유통산업발전법’ 제2조(정의)에 따른 대규모 점포(대형마트, 전문점, 백화점, 쇼핑센터, 복합쇼핑몰)에 해당하며 ‘건축법’ 시행령 제3조의5(용도별 건축물의 종류)에 따라 판매시설 중 소매시장에 해당한다. 15. 물론 유사공원 중 민간 자산의 경우 커머닝의 종류가 상대적으로 단조롭고 예측되며 특정 조직의 규율에 의해 통제된다는 점에서 커머닝의 한계가 존재한다. 쇼핑 공간에 우수고객 등급별 차등 서비스가 존재한다는 측면에서 유사공원 정의가 비약으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우수고객제도라는 보상 마케팅은 고립 영토의 자체 규율이라는 점과 그 내용이 공개되어 있다는 점에서 유사공원으로서의 결격 사유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권정삼은 씨토포스와 도화엔지니어링에서 도시·조경 디자인과 인허가 컨설팅을 담당했다. 현재는 롯데백화점 디자인센터 비주얼 부문에서 국내외 다양한 공간 디자인 빌드 파트너사와 협업하며 오프라인 리테일(백화점, 쇼핑몰, 아울렛)의 실내외 조경 디자인 프로젝팅, 프로듀싱, 디렉팅을 총괄하고 있다.
2024 조경비평상 심사평
월간 『환경과조경』이 주최한 ‘2024 조경비평상’에는 여섯 편의 원고가 접수됐다. 지난 1월 15일 본지 세미나실에서 배정한 편집주간, 남기준 편집장, 박승진 편집위원이 열띤 토론을 벌인 끝에 권정삼의 ‘몰링하는 도시생활자’를 가작으로 선정했다. 비평은 대상과 현상을 탐구하거나 조사한 결과를 적는 논문이나 보고서가 아니다. 에세이와도 다르다. 비판적 읽기와 쓰기를 넘나드는 비평은 대상과 현상의 의미를 해석하고 가치를 평가해야 하며, 주장과 논리를 뒷받침하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비평은 창작보다 더 어려운 글쓰기 방식이라고 볼 수도 있다. 게다가 조경비평은 조경 행위의 결과물인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공간 또는 문화 현상을 기술, 해석, 평가하는 작업이므로 쉽지 않은 글쓰기 장르다. 논거를 충실히 갖춘 글보다 한 번에 읽히는 글과 이미지가 사랑받는 시대에 여섯 편의 평문이 접수되어 반가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다수의 출품작이 비평의 필요충분한 형식을 갖추지 못했고, 동시대 조경에 의제를 던지거나 기성 담론에 균열을 내는 참신한 주제를 제시하지는 못했다는 점이 아쉬웠다. 그럼에도 응모자 모두 조경비평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확인한 바, 다음 ‘조경비평상’의 문을 다시 두드릴 것을 권한다. 가작으로 뽑은 ‘몰링하는 도시생활자’는 경쾌한 글쓰기 스타일이 돋보이는 글이었다. 대형 쇼핑몰에서 도시공원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는 참신한 발상을 논리적으로 끌어갔다는 점에서 가작으로 선정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한층 더 압축적으로 논지를 전해 독해의 밀도를 높였다면 어땠을지 궁금하지만, 역으로 길게 풀어쓰는 형식 자체가 장점으로 읽히기도 했다. 출품자 권정삼의 말처럼 대형화된 쇼핑 공간은 일종의 공공 영역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몰링’ 행위는 도시공원에서 경험하는 산책과 유사한 면이 있다. “도시가 대형 쇼핑몰이고 대형 쇼핑몰이 곧 도시”라는 주장, 대형 쇼핑몰이 “유사공원의 지표인 공동공간 커머닝(감각)이라는 속성을 득하게 됨으로써 유사공公원의 위상, 아니 유사공(共)원이 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수상을 축하하며, 이번 글쓰기에서 보여준 잠재력이 앞으로의 비평 활동에서 더욱 정련되어가기를 기대한다. 가작 수상작과 함께 최종 토론에 오른 제출작 ‘서사의 발견’은 글의 탄탄한 구조가 돋보이는 평문이었다. 조경에 서사를 담아야 한다는 주장을 세 가지 예를 통해 제시한 점이 안정적이었지만, 조경과 서사를 잇고 엮는 논지가 결론에 다다르지 못했다는 데 심사 의견이 모였다. 응모자 모두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내년에는 작가론, 작품론을 비롯해 다양한 평문이 도착하기를 기대한다.
[기웃거리는 편집자] 바람 따라 보낸 하루
일요일 아침, 단잠을 깨우는 알람 소리가 울린다. 힘겹게 눈을 떠 잠을 깨우는 녀석이 누구인지 확인해 보면 매주 보던 알림이다. “지난주 스크린 타임은 12% 증가하였으며 하루 평균 기록은 4시간 25분입니다.” 울릴 때마다 알람 소리를 꺼두어야지 생각하지만 다시 잠을 청하기 위해 당장 울리는 알람 소리 끄기에만 급급해 설정을 바꾼다는 걸 까먹어 매주 만난다. 메시지를 볼 때마다 조금은 반성하게 된다. 증가만 하는 스크린 타임 기록, 줄어드는 일은 손에 꼽힌다. 하루 24시간을 기준으로 8시간을 잠을 자고 8시간을 회사에서 지내니 16시간을 빼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8시간. 8시간 중 절반은 핸드폰을 보고 있다는 소리다. 스마트폰 없이는 못 사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하지만, 계산한 시간을 보니 하루 중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이 얼마 없는 것 같다. 특히 밥 친구로 OTT나 유튜브를 보는 습관이 스크린 타임을 늘리는 데 일조하고 있다. 밥 먹으며 보는 몇 가지 유튜브 채널이 있는데, 이 중 업로드되면 바로 찾아가 보는 채널이 있다. 유재석이 진행하는 ‘핑계고’다. 유재석이 게스트들과 함께 떠들어 제끼는(이 채널에서 ‘수다를 떤다’는 단어를 ‘떠들어 제낀다’라고 표현한다) 영상으로, 라디오처럼 즐길 수 있어 밥 먹을 때 잘 챙겨 본다. 배우 황정민이 핑계고에 출현해 채널명을 실수로 ‘풍향고’라고 잘못 말해 시작된 스핀오프 시리즈는 내게 색다른 계획을 세우게 했다. 유재석이 풍향고에 ‘바람 따라 떠나는 여행’이라는 설명을 덧붙이면서 정식으로 풍향고가 만들어졌고 유재석, 황정민, 지석진, 양세찬이 함께 베트남으로 떠났다. 베트남으로 떠나면서 조건을 덧붙였는데, ‘애플리케이션 없이 떠나는 여행’이다. 사전에 비행기 표만 예약하고 숙소, 이동 수단, 환전, 음식점 등은 현지에서 해결하는 것이다. 애플리케이션 없이 베트남에서 고군분투하는 출연진의 모습이 웃기면서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어딜 가든 휴대폰을 안 챙긴 적이 없으니 애플리케이션을 쓰지 않고 여행을 간다는 걸 상상한 적이 없다. 애플리케이션 없이 해외여행은 무리인 것 같아 당일치기로 가까운 곳을 다녀오는 걸로 도전했다. 목적지는 경기도 양평의 어느 대형 카페. 첫 장소만 정하고 다음 장소는 도착하면 고르기로 했다. 출발 전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수도권만 확대되어 있고 명소가 표기된 종이 지도를 구하는 게 힘들었다. 서점에서 파는 국내 여행 책을 뒤져 원하는 지도를 찾았고, 종이 한 장 들고 떠났다. 최대한 경로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더 집중해서 지도와 표지판을 봤다. 무사히 도착한 카페에서 마신 커피는 더 달달했고, 통창으로 본 남한강의 풍경은 시원하게 뻥 뚫린 기분을 느끼게 했다. 다음 목적지는 딸기 체험 농장. 처음에는 양평의 대표 명소 두물머리를 가려고 했는데, 카페 오다 본 ‘달달한 딸기도 따고 케이크도 먹고’라는 광고 문구가 생각나 농장으로 가게 됐다. 가지고 온 지도에는 표기되어 있지 않아 기억을 더듬어 왔던 길로 되돌아가며 도착했다. 이미 예약이 다 차 있어서 취소 표가 나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조금 고민됐지만 하자고 마음먹었으니 기다리기로 했고, 다행히 자리가 났다. 딸기 따고, 딴 딸기로 케이크도 만드는 꽤나 알찬 체험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기 시작해 근처에 보이는 한정식 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여행을 마무리했다. 글로 읽을 땐 큰 탈 없이 다닌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경로 이탈도 많이 하고 목적지 하나 정하는 것도 오래 걸렸다. 카페에서 그냥 집에 갈까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찼지만 이왕 시작한 아날로그를 즐겨 보기로 했다. 어딘가에 앉으면 SNS 게시물을 보는 게 루틴이 되었는데 할 게 없으니 주위를 더 둘러보게 됐다. 특히 동행자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애플리케이션 없이 잘 다녀올 수 있을까 걱정 반, 뭔가 더 재미있을 거 같은 설렘 반으로 바람 따라 떠난 여행은 스스로 쌓아둔 장벽을 무너뜨리게 했다. 뭐든 해낼 수 있는 무모한 자신감을 불어넣어줬다. 새해 버프까지 더해진 자신감은 을사년도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을 갖게 했다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결국 편지를 읽어 줄 주인을 찾는 일이지 않을까
정기구독자 수 그래프의 기울기를 들여다보는 시기다. 가슴에 잡지 더미를 쌓아놓은 것처럼 답답해진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압박감. 그래서 떠올린 게 활자라도 내 안에 채우자는 생각이었다. 두꺼운 책은 부담스러웠다. 그렇다면 한손에 쏙 들어오는 127×191mm 판형에, 331g의 가벼운 무게의 책이 좋겠다. 15년간 잡지를 만들어온 베테랑 편집자이자 『보스토크 매거진』 편집자인 박지수의 『잡지 만드는 법』(유유, 2023).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가볍게 휙휙 넘겨 보겠다는 게 얼마나 건방진 생각이었는지 읽다 멈추기를 반복해야 했다. “잡지의 이름에는 뜻과 소리뿐만 아니라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제호가 지닌 모양‧시각성이다. 아무리 뜻과 소리가 좋은 제호라도 표지에서 시각적으로 구현되기 어려운 형태라면 곤란하다.”(『잡지 만드는 법』 28쪽, 이하 책 제목 생략) 친구 Y가 내게 왜 잘 만든 로고를 활용하지 않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표지에 환경과조경의 텍스트 로고 laK를 크게 넣어 디자인 요소로 사용하던 때의 일이라 고개를 갸웃거리니 설명이 이어졌다. 환경과조경이라는 제호는 올드하고 딱딱한 느낌이 강한데, 이 로고는 힙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라크’라고 부르면 안 되냐는 말에 공식 제호가 있는데 굳이 혼란을 줄 필요는 없다고 답했었다. 환경과조경이라는 이름을 먼저 알리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답이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Y의 말이 가끔 생각난다. 은밀히 라크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아지도록 유도해 보라고, 어떤 이름이건 더 많은 사람에게 불리면 좋은 거 아니냐던 그 말이.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킬 것. 표지를 고를 때 가장 유념하는 부분이다.”(157쪽) 눈치 챘는지 모르겠지만 독특한 형태의 도면을 표지에 두려고 노력하고 있다. 시선을 빼앗는 공원의 전경 등 풍경 사진도 좋지만, 조경설계를 다루는 전문지라는 특징을 단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이미지가 도면이라는 데 편집자들이 동의했기 때문이다. 더 감성적이고 화려한 사진으로 표지를 장식할 수 있는 정원, 여행, 라이프스타일 잡지 사이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너무 의미에 무게를 두고 즉각적인 반응을 간과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스러울 때가 있다. “포맷과 폼이 고정되면 단순히 형식만 일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에 맞춰 내용이 규격화된다. …… 그렇게 되면 독자에게 편안함과 익숙함을 제공했던 포맷과 폼이 어느 순간 지루함과 정체감으로 다가가기도 한다.”(39쪽) 고백하자면, 2022년 새롭게 시도한 지면을 편집할 때 갑갑함을 자주 느꼈다. 잡지 서두에 배치된 이 꼭지는 프로젝트의 설명글과 더불어 조경가의 인터뷰를 함께 담았는데, 지질을 달리해 촉각적으로도 구분되도록 기획됐다. 접지 제본 방식 특성상 프로젝트의 성격이나 규모에 상관없이 늘 16쪽으로 편집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이 지면에 소개할지 말지 고민이 되는 프로젝트가 생기기도 했다. 종이 위에서 여러 번 멈춰 섰지만, 가장 오래 걸음을 옮기지 못한 곳은 『보스토크 매거진』의 독자 상상도(23쪽)가 그려진 지면이었다. 사진에 관심있는 다양한 영역의 독자 800~1,000명을 중심으로, 사진, 디자인, 미술, 영화, 문학이라는 키워드가 있다. 키워드에서 가지처럼 뻗은 긴 텍스트는 이미지에 관심 있는 디자이너‧학생, 사진 찍는 문인들, 광학기기 이미지에 관심 있는 이들 같이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환경과조경』의 독자 상상도를 그려보려다 다섯 가지 키워드를 떠올리는 데도 실패했을 때는 귓가가 화끈해졌다. 박지수는 이따금 병에 편지를 넣어 바다에 띄우는 일을 떠올린다고 한다. “그 편지는 파도를 헤치고 어딘가에 가닿을 수 있을까, 그 여정은 편지를 띄운 주인을 찾는 일이 아니라, 결국 편지를 읽어 줄 주인을 찾는 일이지 않을까. 어쩌면 갑자기 사라지는 것보다, 온전한 주인이 될 수 없는 것보다 더 외로운 건, 끝내 어느 누군가에게 가닿지 못하는 일, 그것이 무서워 더 이상 바다로 나서지 않는 일인지 모른다고 생각해 본다.”(206쪽) 막연해서 채워 넣지 못했던 2025년 목표에 한 가지 문장은 적을 수 있게 됐다. 편지를 읽어 줄 주인의 모습을 좀 더 구체적으로 묘사해보기. 잡지를 기획할 때 편지를 읽는 그들의 얼굴과 표정을 상상해보기.
[PRODUCT] 옥상과 인공지반 녹화를 위한 GR-엣지 하이퍼
초박형, 경량형에 국한됐던 옥상녹화는 최근 생태면적률 가중치 변화에 따라 혼합형, 중량형 등을 통해 높은 수준의 녹지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을 고려해 한국그린인프라연구소는 GR-엣지 하이퍼로 색다른 녹화 공간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GR-엣지 하이퍼는 알루미늄 소재의 규격화된 중공형 패널을 조립해 녹지 경계를 만드는 조경 자재다. 각 패널을 조립하듯 쌓아 올려 높낮이를 조절하며, 간편한 설치 방식으로 연장 시공할 수 있다. 설계 형태에 따라 직선은 물론 패널의 밴딩을 통해 곡선 시공까지 가능하다. 세련된 색상으로 도장 마감해 분위기 있는 공간을 연출하고 필요에 따라 원하는 색상으로 변경할 수 있다. 일정 간격마다 견고하게 설치한 서포트는 배부름 현상을 방지하고 구조적 안정성을 높인다. 패널 상단을 곡선 형태로 마감해 이용자의 안전을 도모했다. 넓고 긴 녹지 공간을 포함해 소규모 점형 녹지 공간도 수월하게 만들 수 있다. 조립 방식으로 완성되는 제품이라 플랜터형 공간 구성에도 적합하다. 원하는 공간에 손쉽게 설치할 수 있어 포켓 정원, 한뼘 정원과 모바일 정원 등을 만드는 데 최적화된 제품이다. 응용 방식에 따라 도시 농업에 활용할 텃밭 플랜터로 사용하는 등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다. GR-엣지 하이퍼는 녹지 공간의 경계를 구성하는 단순 자재를 넘어서 다양한 형태와 높이의 녹지 조성에 필요한 필수 자재가 되었고, 나아가 다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조경 자재로 거듭나고 있다. TEL.02-587-9444 WEB. www.greeninfr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