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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 네트워크와 도시 네트워크: 갈등에서 공존으로
박근수·김소은·이세연·김아영, ASLA 학생 어워드 우수상 수상
지난 9월 박근수·김소은·이세연·김아영(가천대학교 도시계획·조경학부 조경학전공, 지도교수 곽윤신)이 ‘철새 네트워크와 도시 네트워크: 갈등에서 공존으로(Migratory Bird Networks & Urban Networks: From Conflict to Coexistence)’로 2024년 ASLA 학생 어워드 분석 및 계획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ASLA 학생 어워드는 미국조경가협회(American Society of Landscape Architects)가 주관하는 공모전으로, 매년 조경 및 도시계획 분야에서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작품을 선정해 상을 수여하고 있다. 시상식은 2024년 10월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ASLA 컨퍼런스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수상작은 인천시 연수구의 철새 서식지와 도시 확장 문제를 해결하고,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도시 환경을 제안했다. 철새 이동 경로와 도시 네트워크의 갈등을 해결하고 공존을 모색하는 혁신적 접근법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심사위원회는 주제에 대한 논리적 접근 방식과 생태학에 대한 높은 이해를 우수한 점으로 꼽았다. 수상작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한다.
*환경과조경438호(2024년 10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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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향한 그리움을 자아내는 숲, 세컨포레스트
성수동, 8월 31일~9월 7일
성수동의 생태가 바뀐 지 오래다. 전에는 지역 고유의 카페와 음식점, 공방이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에 밀려나고 심지어는 주거지가 상업지로 변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을 걱정했다면, 이제 성수동은 팝업 스토어의 격전지가 되었다. 길가 부동산에서 팝업 전용 공간을 임대한다는 문구를 손쉽게 볼 수 있다. 새로 들어서고 곧 사라지는 팝업 스토어로 인해 성수동 거리 풍경은 일주일 단위로 달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팝업 스토어는 이제 단순히 제품을 선보이는 공간이 아니다. 소비자의 호기심을 일으키고 만족시키는 다양한 경험을 제공해 브랜드의 이미지를 제공하고, 고객과 브랜드의 상호 작용이 일어나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디지털로 만나는 자연
지난 8월 31일, 성수동 연무장길에서 열린 ‘세컨포레스트’는 독특하게도 가상의 자연을 만나볼 수 있는 팝업 스토어다. 두나무와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이 주최한 이 전시는 산림청의 한 사업에 뿌리를 두고 있다. 2022년부터 산림청과 두나무는 가상 나무 심기, 숲 가꾸기 및 멸종 위기 식물 보전을 위한 NFT 발행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숲과 정원을 가꿔왔다. 한 예로, 두나무는 메타버스 플랫폼인 세컨블록(2ndblock)에 가상의 숲을 마련했다. 이 숲에서 참가자들은 자연에 대한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산림 복원 관련 미션을 수행하며 나무 심기 활동을 했고, 이곳에 심긴 나무는 산불 피해지인 경북 울진 지역에 실제로 식재됐다.
여러 감각이 제한되는 디지털 세상 속 자연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두나무는 이러한 숲과 정원은 시간, 장소, 장애 등 상황에 관계없이 누구나 휴식과 위로, 치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한다고 설명한다. 신체가 불편해 병상에 누워 있는 환자도, 바쁜 일상에 쫓겨 자연을 찾을 수 없는 사람도 자연이 주는 치유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 세컨포레스트는 이 같은 자연의 힘을 맛볼 수 있는 전시다. 디지털 자연에 푹 빠져들 수 있도록 미디어 파사드 형식의 가상 숲, 정원, 자연 요소 등이 마련됐다.
*환경과조경438호(2024년 10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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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웃거리는 편집자] 지구 위험 경보, 지속 발령 중
1999년, 2012년. 이 해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1999년은 한 세기를 끝낸다고 분주했다(어려서 명확한 기억은 없지만 커서 본 뉴스나 드라마를 통해 그 분위기를 알았다). 2012년은 런던올림픽으로 응원 열기가 가득했다. 오심으로 분노를 샀던 한 경기가 기억난다. ‘멈춘 1초’의 펜싱 경기다. 신아람은 개인전 4강에서 브리타 하이데만(독일)을 상대로 승기를 잡았으나, 마지막 1초가 오랫동안 지나지 않으면서 끝내 패배해 국민들이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밤낮 바꿔가며 올림픽을 보고 선수들과 같이 환호하고 화낸 해였다.
이 두 해가 더 강렬하게 기억에 남은 건 누군가 지구 멸망을 예언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는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온다”며 1999년을 지구 종말의 해로 예언했다. 그는 히틀러 출현,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일본 원자 폭탄 투하, 1963년 케네디 미국 대통령 암살 등을 예언했다고 주장(각주 1)한 사람이기에 많은 이의 공포를 불러 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한 세기가 끝나는 해라 각종 종말론과 가설이 극성했다. 이로 인해 사기, 살인 등의 다양한 사건‧사고가 일어났다. 하지만 흉흉했던 분위기를 뒤로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무사히 2000년, 21세기를 맞이했다.
잠잠하던 종말론은 2012년에 다시 들끓었다. 2012년 12월 21일까지 표기된 고대 마야인의 달력과 “2012년 지구는 종말을 맞이한다”는 글귀는 지구 종말론을 다시 부상시켰다. 특히 2009년에 개봉한 영화 ‘2012’는 이 가설을 더 믿게 했다. 영화는 고대 마야 문명에서부터 회자되어 온 인류 멸망의 해인 2012년을 배경으로 한다. 전세계 곳곳에서 지진, 화산 폭발, 거대한 해일 등 각종 자연재해가 발생하고 있는 지구의 모습을 보여준다. 대망의 2012년, 런던올림픽과 싸이의 강남스타일 말춤 열풍에 휩싸여 지구 종말을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우연히 다시 보게 된 영화(2012년이라 이 영화가 방영됐던 것 같다) 덕에 지구 종말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학생이었던 나에겐 2012년의 종말론은 공포감보단 억울함을 안겼다. 공부만 하다 죽을 순 없다. 종말 전에 무얼 해야 기똥찰까 고민하며 (그래도 살고 싶었는지) 비상시 행동 요령을 습득하기도 했다. 다양한 망상을 안겼던 2012년도 안전하게 잘 지나갔다.
지구 종말하면 영화처럼 진도 10 이상의 지진이 발생하고, 100m 이상의 해일이 육지로 밀어닥친 풍경을 떠올린다. 소설 『달의 아이』(포레스트북스, 2023)는 지구 멸망의 원인이 기후 말고 우주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했다. 어린 딸의 생일날 밤에 벌어진 사건으로 소설은 전개된다. 슈퍼문을 보기 위해 산책을 나간 부부와 딸은 어떤 힘에 의해 몸이 뜨기 시작한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아이가 먼저 하늘로 떠오른다. 엄마는 두둥실 떠 있는 딸을 잡기 위해 손을 뻗지만 아이의 손이 닿지 않고, 아이는 계속해서 떠오르며 밤하늘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허망한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는데, 한발 늦게 온 긴급 재난 문자. “관측 이래 달의 크기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평상시보다 1.27배 큰 상태이니,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시민분들은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시길 바랍니다.” 달의 크기가 커지면서 중력이 약해져 일정 무게 이하의 것들이 우주로 올라간 것이다. 달이 점차 커져 이 세상 모든 것이 떠오르게 해 인류가 멸망한다는 것이 이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종말 원인. 우주로 간 아이의 생사도 궁금했지만, 소설이 진행될수록 뜨는 범위가 어린 아이에서 초등학생까지 넓어지는 걸 보니 무서워졌다. 언젠가 나도 달의 힘에 못 이겨 몸이 뜨고 우주로 날아가겠지? 우주에서는 얼마나 살아남을수 있을까?
아침저녁으로 싸늘한 기운이 느껴진다는 처서와 보름달에 소원을 비는 추석이 지났지만, 폭염 경보 재난 문자가 아침마다 날라 온다. 최장 기간 폭염이다. 누군가의 예언, 과거의 글귀가 아니라 지구가 직접 자기가 많이 위험하다는 걸 기나긴 무더위로 알려주고 있는 것 같다. 말로만 지구를 구하자고 할 때가 아니라 이제 진짜로 더 큰 기후 위기가 오기 전에, 달이 더 커지기 전에 지구의 아픔을 보살펴 줘야할 때다.
**각주 정리
1. 이광표, ‘노스트라다무스 ‘1999년 지구종말’ 예언’, 「동아일보」 2009년 9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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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아무튼 너무 심심하니까 세상이 다 자세히 보이는 거야
대부분의 물건과 공간이 막 만들어졌을 때 가장 윤이 나는 반면, 조경의 진짜 모습을 보려면 기다림이 필요하다. 식물 때문이다. 채 자라지 못한 그라스가 맨땅을 다 가릴 정도로 풍성해질 때까지, 앙상해서 쓸쓸해 보이기까지 하는 나무들이 잎을 틔우고 줄기를 단단하게 키울 때까지. 그래서인지 갓 태어난 조경 공간, 특히 식물이 두드러지는 곳에서는 허전함을 느끼기도 한다. 식물이 주인공인 정원에서는 그 영향이 더 커진다.
2024 서울국제정원박람회(이하 정원박람회)의 본행사가 끝나고 상설전시가 진행 중이다. 뚝섬한강공원에 갈 때면 그 사이 확연히 달라진 정원의 모습에 놀라곤 한다. 궁금했다. 과연 심사위원들은 정원이 이렇게 변할 거라는 걸 알았을까. 정원의 만듦새를 평가해야 한다면 그 시기는 언제가 되어야 적절할까.
정원박람회 작가정원 설계안들이 발표되었을때 눈길을 사로잡은 작품이 하나 있었다. 아슈라 풀 아자드(Md Ashraful Azad)의 ‘심심해지다 | 명상하다 | 고마워하다(Be Bored|Meditate|Appreciate)’(2024년 6월호 78~81쪽)가 그것. 맥락을 알 수 없는 형용사와 동사의 나열이 궁금해 들여다봤는데 내용이 흥미로웠다. “우리는 항상 디지털 기기에 사로잡힌 채 지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심심할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심심함은 정신 건강에 필수적입니다. …… 정원을 통해 이러한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습니다. 앉으면 스크린이 시야를 가리며 나뭇잎, 하늘 또는 땅만 볼 수 있게 설계했습니다. 땅에는 검정개관중만을 식재합니다. 여러 식물로 이루어진 정원에서는 각각의 식물에 집중하기 어려워 모두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하나의 식물로 구성된 정원을 만들고 그에 대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특정 식물의 아름다움을 더 잘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습니다.”
아자드는 적당히 심심한 공간에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명상하게 하고 이로써 고마움을 느끼게 한다는 목표를 단순하지만 명쾌한 형태의 정원으로 이루려 했다. 정원 바깥의 것들을 잊게 만드는 띠 형태의 스크린이 타원형의 영역을 형성하고, 내부에는 곡선형 벤치를 놓는다. 동그란 디딤돌이 벤치에 이르는 길을 안내하고, 나머지 땅에는 한 종류의 식물만이 심긴다. 망망대해 위 쪽배에 탄 것처럼 벤치에 앉아, 파도처럼 일렁이는 식물의 바다에 발을 담근 내 모습을 상상했다. 아직까지 그런 정원을 만나본 적이 없기에 기대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조성 과정에서 검정개관중이 수크령 ‘하멜른’으로 바뀌었지만, 주제를 뒤흔들 만한 변화는 아니었다. 중요한 건 하나의 식물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었으니까. 일반적으로 검정개관중보다 크게 자라는 하멜른이 더 인상적인 풍경을 만들 것 같아서 오히려 좋았다. 부푼 마음을 끌어안고 정원을 찾았을 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초록으로 넘실거리는 풍경은커녕 뙤약볕에 노출된 땅이 이글이글 끓고 있었다. 하멜른이 충분히 자라기에는 정원 조성 기간이 턱도 없이 짧다는 걸 잊고 있었다. 허옇게 드러난 맨땅에 괜히 내가 머쓱했다.
하지만 9월 중순 방문한 아자드의 정원은 그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벤치가 잠긴 것처럼 보일 정도로 하멜른이 풍성하게 자랐다. 벤치에 앉았을 때의 시야만 가리도록 스크린을 공중에 띄워 설치했기에 그 아래로 넘실거리는 하멜른을 본 사람들은 호기심을 못 이기고 빨려 들어가듯이 정원에 들어선다. 아무도 없는 틈을 타 벤치에 앉았다. 기분 좋은 따분함에 젖어 그 감각을 즐겼다. 아자드의 농간에 놀아나는 것 같았지만 정말 자꾸만 하멜른을 뜯어보게 됐다. 지루함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너무 심심해서 세상이 자세히 보였고, 그러다 보니 시를 쓰게 됐다(각주 1)는 김용택 시인이 아자드와 마주하는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그간의 정원박람회가 지나온 도시와 공원의 정원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안부가 궁금해졌다.
**각주 정리
1. 김용택의 에세이 “심심해서 그랬어”(『심심한 날의 오후 다섯 시』, 예담, 2014)의 한 구절에서 제목을 따왔다. “심심해서 그랬어. 공부를 하다가 일을 하다가 이렇게 마루에 혼자 앉아 있으면 너무 심심한 거야. 봐라, 시골이 참 심심하지. 나무도 강물도 하늘도 구름도 풀잎들도 다 심심해 보이지. …… 아무튼 너무 심심하니까 세상이 다 자세히 보이는 거야. 자세히 보니까 생각이 일어났다. 그 생각들이 내 마음의 곡식 같아서 버리기가 아까운 거야. 그래서 그냥 글로 옮겨 써봤어. 그랬더니 시가 되었어. 어느 날 내가 시를 쓰고 있어서 나도 놀랐다니까. 정말 심심해서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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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 수직 벽과 석가산의 새로운 조화, 듀얼 석가산
정형의 수직 벽과 자연스러운 석가산의 하모니
일반적인 석가산은 기암괴석과 식물이 어우러진 소규모 산의 형태를 담아낸다. 조경 시설물 브랜드 ‘미담’은 자연과 조화를 꾀하며 석가산의 전형에서 벗어난 현대적인 석가산을 만들고 있다. 특히 듀얼 석가산은 두 가지의 상반된 디자인을 조화롭게 결합해 특별한 경관을 선사한다.
듀얼 석가산은 자연스러운 석가산과 정형화된 수직 벽으로 구성된다. 정형적 디자인의 수직 벽은 인공적인 구조물로서 고정된 형태와 기하학적인 규칙성을 보여주며, 자연의 석가산은 불규칙하고 유기적인 형태를 띤다. 이를 통해 정형적 디자인이 주는 형태미와 자연적인 아름다움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게 한다.
디테일도 남다르다. 수직 벽에 사용된 판재는 정형화된 판재가 아닌 석재의 자연면을 강조한다. 채석장에서 석재를 채굴하여 재단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자연면만을 가공한 판재를 활용해 일반 판재에서 느끼지 못하는 자연스러움을 선사한다. 단조로운 구성을 피하기 위해서 수직 벽 높낮이를 다르게 했다.
자연과의 조화도 꾀했다. 수직 벽과 어우러지는 식재 포켓 공간을 통해 자칫 외벽의 회색빛으로 인해 삭막해질 수 있는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고자 했다. 약 6m 높이에서 떨어지는 폭포와 단을 형성하고 있는 폰드를 통해 역동적인 자연 경관을 연출했다. 수직 벽 뒷면의 석가산에는 크기가 다양한 기암괴석을 자연스럽게 배치하고 그 사이 공간마다 아기자기한 식물을 심어 생동감 있는 자연 경관을 감상할 수 있게 했다. 다양한 형태의 폭포는 수직 벽과 또 다른 자연의 쾌적함을 제공한다. 다채로운 매력을 가진 듀얼 석가산은 앞으로 또 하나의 새로운 시그니처 시설물로 거듭날 것이다. TEL. 02-6951-1041 WEB. www.mi-d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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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영화 같은 장면을 기록하다
이경준 사진전: 원 스텝 어웨이
“도시 모습과 사람들이 어우러져서 만들어내는 그런 모습들을 프레임 안에 담는 작업을 해오고 있고요. 제가 경험하면서 느낀 것이나, 제 마음을 움직이는 순간들을 사진에 담아내고 있습니다.”(각주 1) 도시 관찰자이자 일상을 하나의 패턴으로 포착하는 창작자 이경준의 시선으로 살펴본 뉴욕과 서울의 일상 속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그라운드시소 센트럴의 개관작인 ‘이경준 사진전: 원 스텝 어웨이(One Step Away)’에서 그 시선을 엿볼 수 있다. 전시는 익숙한 도시 풍경을 멀찍이 포착해 낯설고도 아름다운 장면들로 담아내는 이경준의 작품 세계를 소개한다.
전시는 작가가 주로 생활해 온 서울과 뉴욕을 배경으로 곳곳의 일상을 담은 250여 점으로 구성된다. 회색 도시가 황금빛으로 물드는 순간부터 사람들이 점, 선, 면으로 연결되는 순간, 싱그러운 녹음과 함께 휴식하는 순간까지. 네 개 챕터를 통해 누구에게나 익숙한 도시의 공간들이 이어진다. 바쁘게 혹은 단조롭게 반복되는 도시 풍경이지만, 한 걸음 멀리서 바라본 불완전하지만 아름다운 우리의 삶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를 하나의 유기체이자 패턴으로 포착하다
물리치료사이자 프리랜서 포토그래퍼인 이경준은 2018년부터 뉴욕에서 살아왔다. 그가 처음 사진기를 든 건 고등학생 때다.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가족, 친구, 일상을 담기 시작하다가 대학생이되면서 본격적으로 사진을 공부했다. 새로운 환경과 학업에 지쳐 힘든 시기를 보내던 그는 우연한 기회로 사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높은 곳에서 바라본 도심 속 풍경에 위로를 받았다. 위에서 바라본 도시 모습에서 새로움을 느끼면서 작업의 영감을 얻기 시작했다. 건물의 기하학적 구도와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빛의 색감, 사람들의 섬세한 움직임. 한 걸음 멀리서 바라본 세상은 거대한 유기체 같았다. 이러한 시선의 전환은 청년 이경준의 단조롭던 삶에 새로운 자극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이경준은 높은 곳에서 그리고 멀리서 바라본 도시 속 풍경을 담아내는 자신만의 시그니처를 만들었다. 도로 위 차선, 건널목, 표지판, 신호등 그리고 그 사이를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패턴을 포착하는 이경준의 스타일은 세계적 기업과 브랜드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뮤지션 구원찬, 죠지와의 앨범 표지 작업,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 헬무트 랭(Helmut Lang)과의 컬래버레이션 등 국내외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게 활동하고 있다.
*환경과조경437호(2024년 9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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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 미디어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환경과조경, 한국조경신문과 인수 합병
환경과조경은 ‘주간 한국조경신문’과 함께 조경 미디어의 새로운 지평을 연다. 지난 8월 1일부터 환경과조경은 주간 한국조경신문을 인수 합병해 신문을 발행하고 있다. 한국조경신문은 2008년 창간된 주간 조경 전문 매체다. 그간 조경인의 권익과 조경 분야의 소통 및 정보 공유를 위해 노력해 왔다. 하지만 국내 언론 지형의 빠른 변화 속에서, 16년간 두 차례의 휴간과 복간을 거듭하며 경영상 어려움을 겪어 왔다.
그동안 한국조경신문을 이끌었던 김부식 회장(한국조경신문)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힘을 잃지 않은 건 많은 조경인의 지지와 격려 덕분이었다고 말하며 그간의 소회를 밝혔다. 아울러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된 것에 대해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혁신하지 않으면 소멸되는 오늘의 현실에서, 4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지닌 환경과조경과의 합병을 통해 다양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조경의 가치와 품격을 한층 더 높여가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환경과조경437호(2024년 9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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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웃거리는 편집자] 미스터 코모레비
미스터 토일렛(toilet). 짐작컨대 이름만 들으면 중세 프랑스 왕실 소속 관리로서 아프리카 대륙 여행 중 지역 원주민의 생활 습관에서 영감을 얻어 현대 화장실의 시초가 되는 건물을 만들어 화장실을 뜻하는 영어 토일렛(toilet)의 유래가 된 사람처럼 보이지만, 전혀 아니다. 물론 화장실과 연관이 없는 건 아니다. 대체 그는 누구이며, 어쩌다 저런 별명을 얻게 된 것일까.
그는 고故 심재덕 수원시장으로 화장실 문화 운동에 평생 헌신하며 한국 공중화장실의 수준을 높인 인물이다. 평소 더러운 화장실에 대한 관광객들의 불만에 마음이 쓰였던 심 시장은 2002 한‧일 월드컵 개최를 준비하며 공중화장실 환경 개선을 도모하는 캠페인을 적극 추진했다. 당시 이 캠페인은 전국적으로 확산되며, 한국 공중화장실 역사의 큰 전환점이 됐다. 2007년 그는 암 투병 와중에도 세계화장실협회(World Toilet Association)(WTA)를 발족시켜 화장실 문화 개선 운동에 앞장설 정도로 진심을 다했다. 음악이 들리거나, 향기가 나고, 작은 그림과 좋은 문구가 걸려 있는 공중화장실을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건 깨끗하고 아름다운 화장실 만들기에 진심이었던 그의 노력이 빚어낸 결과물이다.(각주 1)
시간이 흘러 미스터 토일렛만큼 화장실에 진심인 프로젝트가 탄생했다. 2020 도쿄올림픽‧패럴림픽을 배경으로 추진된 더 도쿄 토일렛(The Tokyo Toilet)(이하 도쿄 토일렛) 프 로젝트는 어둡고, 더럽고, 냄새나고, 무섭다는 인식이 지배적인 공중화장실 공간을 개선하기 위해 추진됐다.(각주 2) 안도 다다오 등 유명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모여 17개의 화장실 리노베이션을 진행했다. 들어가서 문을 잠그면 불투명해지는 특수 제작 유리로 만든 화장실, 수도꼭지를 다양한 높이에 배치해 남녀노소,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손을 씻을 수 있게 만든 화장실 등 저마다 개성을 드러낸다. 공식 홈페이지도 독특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3D 뷰를 통해 화장실 외부부터 내부까지 구석구석 둘러볼 수 있게 했다. 화장실 변기를 구경하는 게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지만, 궁금하다면 둘러봐도 좋을 것 같다.
이 흥미로운 프로젝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시도를 선보였다. 도쿄 토일렛을 소개하기 위한 영화를 제작했는데, 그 영화가 바로 최근 개봉한 ‘퍼펙트 데이즈(Perfect Days)’다. 영화는 도쿄의 화장실을 묵묵히 쓸고 닦는 중년 청소부의 평범한 일상을 담아낸다. 주인공 히라야마는 자판기 캔커피로 하루를 시작하며, 그날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팝송을 들으며 출근하고, 때때로 필름카메라로 코모레비(木漏れ日)(각주 3)를 담아내고, 저녁엔 단골 가게에 들러 식사를 하고,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다 까무룩 잠든다. 소소한 일상의 편린을 통해 반복된 일상에서 발견하는 작은 기쁨을 차곡차곡 쌓아간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사실 메시지보다 영화를 담아낸 형식이 좋았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를 선택한 점이 새롭게 다가왔다. 보통 이런 공간 프로젝트는 다큐로 만들어 설계를 맡은 스타 건축가의 서사를 쫓아가거나, 비슷한 사례를 모아 하나의 메시지를 던지는 형태로 빠지기 쉬운데 이 프로젝트는 이러한 전형적인 방식에서 벗어났다. 대신 상상력 한 스푼을 더해 어쩌면 어딘가 존재할지도 모르는 누군가의 삶 속에서 중요한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는 도쿄 토일렛을 은근하게 보여준다.
미스터 토일렛과 도쿄 토일렛 이야기의 공통점은 바로 태도다. 외면 받는 것을 외면하지 않고, 함부로 대하는 것을 함부로 대하지 않은 것. 박보나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들의 태도가 도시의 새로운 내용과 형식을 만들어 냈다고 할까. 이번 호에 소개한 프로젝트에서도 그런 태도가 읽힌다. 탄소 저감을 위해서 목재 트러스를 활용한 하이라인-모이니한 커넥터(30쪽), 민관 협력을 토대로 저비용과 친환경이란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브지리풋 스트리트 공원(58쪽)을 설계한 조경가들은 기후 위기 시대의 과제를 외면하지 않고 도시의 새로운 내용과 형식을 만들어 냈다. 그래서 이들에게 미스터 코모레비란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코모레비처럼 반짝이는 태도를 가진 이에게 주는 나만의 작은 헌사이자 훈장이라고 할까.
**각주 정리
1. 최혜경, “심재덕 씨의 뒷간 라이프”, 『행복이 가득한 집』 2008년 3월호.
2. 최은화, “모두를 위한 공중화장실: 더 도쿄 토일릿”, 『공간』 2020년 11월호.
3.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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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응원한다, 내를 그리고 느그를
여름밤을 참 좋아했다. 해가 지면 천천히 식는 공기, 서서히 어두워지는 하늘은 여름 저녁에만 느낄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요즘 같아선 그 풍경이 다 미화로 만든 거짓 기억인가 싶다. 더운 데다 습도까지 높아 새벽녘이 되어도 온몸이 축축하다. 그래도 또 여름을 그리워할 게 분명하다. 내게 여름은 무언가 낭만적이고 아득한 존재다. 여름 같은 대상이 또 있는데, 바로 학생들이 주인공인 영화다. 언제까지 남의 삶을 나의 청춘인양 여기며 먹먹해 할지 모르겠지만, 교복을 입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여학생들의 이야기를 보면 가슴이 둥둥 울린다. ‘스윙걸즈’와 ‘훌라 걸스’가 그랬고, ‘땐뽀걸즈’(각주 1)와 닮은 ‘빅토리’가 그랬다.
배경은 1999년, 경상남도 거제. 나의 고등학생 시절을 떠올리면 생활 반경과 생각의 너비가 딱 발 닿는 곳까지밖에 이르지 못했는데, 필선은 거기서부터 나와 참 다른 사람이었다. 힙합을 너무 사랑해서 발 디딘 곳 모두를 무대로 삼는 필선은 단짝 미나에게 말한다. “거제가 좁다”고. 가뜩이나 좁은데 춤을 출 곳마저 없다. 일 년 전 사고를 일으켜 정학을 당하고 댄스 동아리 해체를 당했기 때문이다. 그런 둘 앞에 세현이 나타난다. 그가 전학 오기 전 서울에서 치어리딩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자 묘책이 떠오른다. 만년 꼴찌 축구부를 응원한다는 명목으로 치어리딩 팀을 꾸려 연습실을 확보하자!
꽤 많이 본 익숙한 문법이었기에 자연스레 다음 장면이 상상됐다. 힙합을 추고 싶은 필선과 세현의 갈등과 화해, 처음에는 응원부를 무시하지만 점점 그 효과를 보는 축구부, 축구부의 승리에 기뻐하는 치어리딩 팀, 그런 내용 아니겠나. 그런데 어라? 필선이 벌써 치어 댄스를 춰야 한다는 걸 납득하고 세현과 화해한다. 응원부 ‘밀레니얼 걸즈’가 벌써 그럴듯한 치어리딩을 해낸다. 축구부의 모습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다.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스크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다가 깨달았다. 어떤 춤이냐가 문제가 아니다. 이들에게 춤은 투쟁이다. 자신이 오롯이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자리를 얻어내는 싸움.
치어리딩할 때 밀레니얼 걸즈는 가정 속에서의 역할에서 벗어나 춤에만 집중한다. 어떻게 하면 더 정확한 동작을 하고 동선에 맞춰 움직일 수 있는지 연습하고 다투고 소리 지르고 뛰고 웃는다. 그 순간만큼은 어떤 외부 요소도 끼어들 수 없다. 여동생들을 돌보며 짜장면 집 장사를 돕던 장녀도, 틈틈이 다림질을 해야 하는 세탁소의 딸도, 태권도장 일은 돕지만 여자라서 태권도는 배울 수 없는 딸도 사라진다. 그 한가운데 선, 축구부 에이스의 동생이 아닌 세현이 제 이름으로 반짝반짝 빛난다. 거제 조선소에서 벌어지는 시위를 응원하는 장면이 낯설어서 좋았다. ‘땐뽀걸즈’와 ‘빌리 엘리어트’를 떠올리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거제에서 자랐다면 누구든 한번쯤 일자리로 생각해보는 이곳에서 밀레니얼 걸즈는 하늘을 향해 쭉쭉 뻗는 팔과 바닥을 세게 구르는 발동작으로 시위대를 응원한다.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안쓰럽지만 애써 웃어 보이는 표정을 짓는 대신, 다른 곳에서 했던 그대로의 치어리딩을 펼친다. 그렇게 밀레니얼 걸즈는 응원을 전하는 사람을 넘어, 조선소의 투쟁자와 같은 위치에서 연대를 펼치는 완전한 투쟁자가 된다.
이 과정을 지켜보면 밀레니얼 걸즈가 치어리딩 내내 지어보이는 미소에서 무해한 상냥함 대신 앞으로 강하게 치고 나아가려는 결연함을 읽게 된다. 그들이 춤을 추며 응원하는 행위를 좋아하는 이유도 알게 된다. 혹 깨닫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봐 필선이 말한다. “응원한다, 내를 그리고 느그를.” 현실이 영화 같을 순 없다는 걸 충분히 안다. 게다가 빅토리는 축구부의 경기 결과 외에는 영화 속 투쟁자들이 승리를 쟁취해냈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웃으며 엔딩 크레디트를 볼 수 있는 이유는 승리의 형태가 다양하다는 사실도 알기 때문이다. 박범수 감독이 승리의 정의가 꼭 고루할 필요가 있냐며 빅토리는 “그 개개의 의미 있는 승리가 모여 전보다 조금 더 나아지는 이야기”(각주 2)라고 말했듯이. 처서가 지나니 이른 아침이면 열기가 덜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사계절 중 두 번째 계절이 저문다. 온 계절이 다 흐르기 전에 남들은 이해하지 못해도 나만의 “까리한” 승리가 모여 전보다 나은 일 년이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중얼거려본다.
**각주 정리
1. 땐뽀걸즈의 내용이 궁금하다면 다음을 참고. 김정은, “땐뽀걸즈, 버티는 청춘에 관하여”, 『환경과조경』, 2017년 11월호, p.143.
2. 김영재, “제목이 ‘빅토리’인 이유 “승리의 정의 꼭 고루할 필요 있나요?”, 파이낸셜투데이 2024년 8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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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 모두를 위한 무장애 퍼걸러와 야외 테이블
차별의 문턱을 낮추는 열린 휴게 공간
우리 사회는 장애와 비장애인이 서로의 다름을 의식하고 배려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공존을 꾀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공간에서 장애 유무가 차별의 요소로 작용할 때가 있다.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으며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생활 공간을 만드는 조경 시설물 브랜드 ‘미담’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를 허물고, 다양한 사용자가 무장애 환경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쉼터를 만들고 있다.
이러한 쉼터를 통해 장애인뿐만 아니라 보호자도 편리하고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활동 공간을 마련했다. BF 퍼걸러와 BF 야외 테이블은 휠체어의 크기에 맞춘 곡선형 디자인을 통해 휠체어 이용자의 활동 반경을 확보한다. 스툴이나 일반 벤치를 배치해 보호자, 또는 이웃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이러한 무장애 휴식 공간은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모두에게 평등하게 쉴 권리를 보장한다.
기능성뿐 아니라 시각적 요소를 고려한 디자인을 시도했다. 돋보일 수 있는 강한 색상으로 주변 공간과 차별화를 꾀하기보다는 모두가 평등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란 의미를 담아 주변과 어우러지는 색을 활용했다. 이를 통해 모두는 같은 존재라는 걸 인식시키고, 차별 없이 어울리며 쉴 수 있는 공간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차갑게 느껴질 수 있는 철재 프레임에 목재를 더해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실용적인 수납을 위해 테이블 옆에는 가방 걸이를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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