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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토리얼] 2021년을 되돌아보며
    옆 방 동료와 화상으로 회의를 하고 온라인으로 설계 스튜디오 리뷰를 하고 마스크로 얼굴을 덮은 채 공원을 산책하는 초현실적 상황이 이제는 전혀 어색하지 않다. 편하고 익숙하기까지 하다. 감염 도시의 역설적 풍경이 어느새 친숙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이번 겨울이 코로나 시대의 마지막 계절이기를 소망하면서 2021년 한 해의 『환경과조경』을 다시 펼쳐본다. 본지가 주최한 ‘제3회 젊은 조경가’ 수상자 최영준 특집으로 1월호를 꾸렸다. 중국과 미국, 한국을 넘나들며 다국적 조경설계사무소 랩디에이치Lab D+H를 이끌고 있는 최영준. “디자인을 통해 희망과 사회적 책무를 구현”하는 그의 젊은 조경 정신을 특집 지면에서 만날 수 있었다. 같은 호에 올린 ‘춘천 시민공원 마스터플랜 설계공모’ 수상작들은 동시대 한국 조경의 생생한 단면을 보여주었다. 2월호에는 『LA+』의 실험적 기획인 ‘생물체 설계공모’, 한국전쟁의 민간인 희생자를 기억하는 ‘진실과 화해의 숲 설계공모’, 신도시의 조경 네트워크를 짜는 ‘행정중심복합도시 5-1생활권 조경 설계공모’를 동시에 실었다. 서로 다른 성격의 세 가지 공모전은 조경의 넓은 스펙트럼을 새삼 확인하게 해주었다. 어린이놀이터 프로젝트 13개를 3월호에 모았다. 서울의 초등학교에 놓인 신상 놀이터부터 저 멀리 터키 이스탄불과 스웨덴 스톡홀름의 어린이공원에 이르기까지, 틀에 박힌 놀이터 디자인의 전형을 깨는 갖가지 아이디어를 만날 수 있었다. 6월호에 실은 ‘서울국제정원박람회’의 도시재생형 정원들은 일회성 전시와 장식을 넘어 코로나에 지친 시민들에게 안온한 위로의 공간을 제공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8월호는 1982년 7월 창간한 『환경과조경』의 통권 400호였다. 1월호부터 7월호까지 편집부는 한국 현대 조경의 성장사를 기록하고 저장하며 조경 설계와 이론의 쟁점을 발굴하고 그 지평을 확장해온 『환경과조경』의 발자취를 다각도로 되짚는 특집 지면들을 기획했다. 1월(393호)부터 7월호(399호)에 걸쳐 실은 ‘『환경과조경』 400호 돌아보기’에서는 편집자 김모아, 남기준, 배정한, 윤정훈과 편집위원 박승진, 박희성, 최영준, 최혜영이 옛 『환경과조경』을 50권씩 나눠 맡아 재독하고 재조명했다. 4월호에는 그동안의 표지와 책등을 한데 모은 특집 ‘표지 탐구, 책등 탐방’을 구성했다. 5월호 특집 ‘편집자들’에는 본지를 거쳐 간 추억 속의 편집자들을 초대해 그들이 엮었던 옛 기사와 꼭지를 당시의 시각으로 다시 살폈다. 6월호에 올린 ‘읽는 행위를 설계하는 법’에서는 『환경과조경』의 편집 디자인 변천사를 다뤘다. 7월호 지면에는 독자 대상 설문 ‘다시 읽고 싶은 연재는?’의 결과에 편집부의 기획을 보태 옛 연재 여덟 꼭지를 재구성한 ‘연재,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꾸렸다. 통권 400호(2021년 8월호)에는 『환경과조경』 400권의 목차를 모두 모았다. 39년 역사를 세로지르는 총목차는 그 자체만으로도 한국 현대 조경의 궤적을 담은 아카이브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9월호에서 많은 독자의 시선을 붙잡은 건 ‘416 생명안전공원 국제설계공모’ 수상작들일 것이다. 세월호 7년, 함께 실은 평문이 질문하듯, 모두의 기억은 모두의 공간이 될 수 있을까. 10월호에는 서울공예박물관(오피스박김), 블랙메도우, 메도우카펫, 가든카펫(이상 김아연), 일분일초(안마당더랩), 어반 포레스트 가든(김봉찬+신준호), 나의 정원(정영선), EV6 언플러그드 그라운드 성수(HLD) 등 모처럼 국내 조경가들의 다양한 근작과 전시를 담을 수 있었다. 11월호에는 제18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수상작들과 ‘오목공원 리모델링 지명 설계공모’ 초청작들을 실었고, 최근의 주목할 만한 완공작인 마포새빛문화숲(이화원)과 남산예장공원(호원)의 면모를 꼼꼼히 짚었다. 이번 12월호에는 본지가 한국조경학회, 한국조경설계업협의회와 함께 진행한 설문조사 ‘한국 조경 50’의 결과를 담았다. 303명의 전문가가 뽑은 한국 현대 조경의 대표작, 지난 50년의 성과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50년을 설계하는 기획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이번 호에는 매년 본지가 주최하는 ‘올해의 조경인’과 ‘젊은 조경가’ 선정 결과를 싣는다. 제24회 올해의 조경인으로는 한국경관학회 회장을 맡아 조경계획의 확장에 힘써온 주신하 교수(서울여대), 제4회 젊은 조경가로는 다양한 조경설계 프로젝트와 실험적 기획을 가로지르며 활동해온 조용준 소장(CA조경)이 선정됐다. 다가오는 2022년은 한국 조경의 중요한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한국조경학회가 설립 50주년을 맞는다. 7월에는 『환경과조경』이 창간 40주년을 맞는다. 8월 말에는 광주에서 세계조경가대회IFLA World Congress가 열린다. 창간 40주년을 준비하며 『환경과조경』은 독자 여러분의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고 더 치열하게 토론하면서 조경 저널리즘의 새 좌표를 찾아 나설 것이다
  • [칼럼] 50년, 반세기 조경
    2022년 새해에는 한국조경학회가 탄생 50주년을 맞는다. 1972년 봄꽃이 기지개를 필 무렵, 대대적인 국토 개발을 이끌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청와대에서 조경에 관한 첫 세미나가 개최됐고 7월에는 건설부에 공원녹지과가 신설됐다. 그해 겨울에 서울대와 영남대에서 조경학과가 설치 인가를 받았다. 같은 해 12월 29일, 한국조경학회 창립총회가 개최되면서 한국에 ‘조경’의 탄생을 알렸다. 그로부터 어언 50년 세월이 흘러 내년에는 사람의 나이로 치면 지천명知天命, 하늘의 명을 깨닫는다는 나이에 이르렀다. 반세기 동안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 발전과 함께 조경 산업 또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고, 그 중심에는 늘 조경학회의 헌신적 노력이 있었다. 학회는 본연의 임무인 학술 관련 사업으로 학회지 및 학술지를 발간하고, 한‧중‧일 국제 조경전문가 회의, 세계조경가대회IFLA 참여 등 국제 교류를 통한 학문적 정보 교환에도 앞장서 왔다. 학생들을 위한 조경디자인캠프와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을 매년 개최하고 조경 업계의 발전을 위해 대한민국 조경문화대상 행사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산림조합법 개정 반대 투쟁’(1988년)과 ‘건설산업기본법 개정 반대 투쟁’(1997년)처럼 조경 분야가 위기에 직면할 때면 업계와 함께 분야의 권익을 위해 선두에 나섰다. 기후 위기와 포스트 팬데믹이라는 새로운 시대적 과제 앞에서 조경학회도 새로운 비전과 목표를 세우고 있다. 새로운 50년을 준비하는 조경학회의 힘찬 발걸음에 응원을 보낸다. 이제 미래의 50년을 목표로 반세기에 접어든 한국 조경의 과거를 차분히 뒤돌아보고 새로운 변화에 선도적으로 대응할 전략을 세우고 발전을 위한 전기를 마련해야 할 때다. 먼저, 조경계에 이렇다 할 구심점이 없는 상황에서 단일의 대표 단체인 조경학회에서 파생되어 나간 여러 관련 학회와 협회 등 많은 단체 사이의 협력과 연대가 절실히 필요하다. 하지만 시대적 변화에 발맞춰 과거 권위적 형태의 중앙집권적 단일 조직은 지양해야 한다. 분야의 다양한 요구를 하나의 목소리로 대변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중앙 조직의 결정을 모든 단체에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상명하달 방식의 운영은 더 이상 설자리가 없다. 여러 단체의 다양성과 독립성을 존중하면서 조경 분야 전체의 단결된 목소리가 필요할 때는 함께 연합해 힘을 모으는, 공감 능력을 극대화한 ‘느슨한 연대’를 추구해야 한다. 지난 2017년 3월 3일, 조경의 날 기념식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공식 출범했다가 총재 사퇴 후 결국 해체 수순을 밟은 ‘대한환경조경단체총연합’의 뼈아픈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둘째, 조경 분야에도 이제 세대교체가 필요하다. 급변하는 시대에 대응해 미래 성장을 위한 혁신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략적 변화를 꾀하기 위해서는 젊은 조직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조경 분야의 여러 단체와 조직은 대개 학연, 지연에 얽매여 나이나 학번 순으로 수장을 결정해왔다. 몇몇 단체는 여전히 원로나 고문의 입김이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조경 원로 1세대를 존경하고 그 공로에 감사하지만, 보수적인 한국의 정치판에서도 30대 정당 대표가 나오는 현실을 볼 때 조경계는 세대교체가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연공서열보단 능력과 성과주의에 바탕을 둔 세대교체 바람이 변화에 대한 열망과 미래 세대의 역동성을 담아내는 용광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내년 8월 광주에서 열리는 세계조경가협회IFLA 한국총회를 계기로 모든 조경인이 힘을 모아 분야의 성장을 위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는 IFLA가 주관하는 글로벌 조경인들의 대표 행사다. 2022년에는 개최국 한국으로 전 세계 조경가들이 모이게 된다. 세계조경가협회는 전 세계 77개국 2만5천여명이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는 글로벌 조직으로, 1948년 영국에서 설립된 이후 현재는 유럽, 아시아‧태평양, 아메리카, 아프리카, 중동 5개 지회가 활동하고 있다. 한국은 1981년 협회에 가입해 1992년 IFLA 총회를 서울, 경주, 무주에서 개최한 바 있다. 당시 국내 조경계가 일치단결하여 대회를 잘 준비한 결과 34개국 305명의 외국 정회원 참석자를 포함해 총 1천 3백여 명의 참가자에게 한국의 조경을 알리고 국제적 위상을 드높였으며 한국 조경의 도약의 계기가 되었다. 학회, 협회 등으로 구성된 IFLA 조직위원회가 얼마 남지 않은 대회 준비를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하고 있지만, 손길이 부족하고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다. 범조경계 차원의 많은 관심과 아낌없는 협력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조경 분야도 여러 대선 캠프에 조경 정책을 제안할 수 있도록 테스크포스팀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최근 여러 난관에 봉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조경 단체는 여전히 적절한 대응을 위한 구심점을 찾지 못하고 있고, 분야 전체 생태계가 침체에 빠질 위기에 처해있다. 유일한 희망인 ‘조경진흥법’조차 실효적 사업을 거의 담지 못한 상태다. 타성에 젖은 조경계가 현실에 안주하면서 자초한 측면이 크다. 이제라도 더 적극적으로 정책을 개발하고 조경 분야의 목소리를 제도에 담아내려면 내년 대선이 좋은 기회일 수 있다. 국토교통부, 환경부, 문화체육관광부, 산림청 등으로 분산된 조경 관련 사업을 아우르고, 나아가 통일 한국의 전 국토를 우리 손으로 푸르게 가꿀 수 있는 강력한 녹색 정부 부처를 만들어보자. 백년대계를 바라보고 함께 큰 그림을 그려보자. 이번이 기회다. 열 살 터울인 국내 유일의 조경 전문지 『환경과조경』은 2022년 새해에 창간 40돌을 맞는다. 그동안 한국 현대 조경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조경 분야 대표 언론으로서 중추적 역할을 수행해 왔다고 자부하는 본지는, 2014년 1월 대대적 리뉴얼과 함께 조경 언론으로서의 정체성과 독립성을 기반으로 ‘조경 문화 발전소’를 꿈꿔 왔다. 급변하는 인터넷 정보화 시대의 물결에 발맞추어 ‘e-환경과조경’을 오픈했고, 전국 조경학과 학생들이 참가하는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을 주관했다. 조경 분야 발전에 공헌한 분의 업적을 기리고 미래의 조경을 이끌어갈 새로운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 ‘올해의 조경인상’과 ‘젊은 조경가상’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서울정원박람회’와 ‘LH가든쇼’를 진행해 정원 문화 확산과 정원 산업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제 창간 40년을 맞이하여 『환경과조경』은 한국 조경의 또 다른 50년을 준비하며 미래를 향한 좌표를 설정하고, 변화의 시대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 나갈 것이다.
  • [풍경 감각] 흐르지 않는 물길
    교실 한구석에서 내가 선물했던 그림을 주운 적이 있다.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친구들이 자기도 그려달라고 졸랐기에, 스프링 연습장 한 장을 북 뜯어 건네곤 했다. 그렇게 준 그림 하나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구겨져 있었다. 누구에게 준 것인지, 무엇을 주제로 한 것인지 잊었을 정도로 특별한 그림은 아니었다. 그러나 구겨진 종이의 주름과 여기저기 검게 번진 얼룩은 여전히 기억 속에서 선명하다. 작업실 근처 백화점의 아케이드를 걸을 때마다 그 주름과 얼룩이 떠오른다. 아케이드가 완공되었을 때, 그곳엔 LED 화면으로 만든 시냇물이 흘렀다. 픽셀로 이루어진 네모난 물결이 반짝였고 사람들은 픽셀 수련 잎 아래로 헤엄치는 픽셀 금붕어를 따라 픽셀 물길 위를 걸었다. 예쁜 풍경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픽셀 물길 표면은 작은 흠집이 생겨 뿌예졌고 전원이 꺼져 있는 날이 많아지는가 싶더니, 결국 검은 시트지에 뒤덮이고 말았다. 이제 아케이드에는 특별 기획 행사 부스들이 계절마다 번갈아 들어선다. 주름 혹은 얼룩 같기도 한 그 검은 시트지 위로. 픽셀 시냇물을 설계한 사람의 발걸음이 이곳을 향하지 않길 바란다. 그가 그려낸 시냇물을 폭 덮어버린 시트지가 그의 기억에도 선명히 남을 것 같아서. 아무도 없는 늦은 밤, 이제는 그 어떤 픽셀도 흐르지 않는 물길을 따라 조용히 걸어본다. 연습장 북 뜯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환경과조경404호(2021년 12월호)수록본 일부 조현진은 조경학을 전공한 일러스트레이터다. 2017년과 2018년 서울정원박람회, 국립수목원 연구 간행물 『고택과 어우러진 삶이 담긴 정원』, 정동극장 공연 ‘궁:장녹수전’ 등의 일러스트를 작업했고, 식물학 그림책 『식물 문답』을 출판했다. 홍릉 근처 작은 방에서 식물을 키우고 그림을 그린다.
  • [나의 미개봉작 상영기] 조경업개론
    업과 학 나누자는 것도 합쳐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직업적으로 다를 뿐인데 사고방식 자체가 나뉘어 그 안에만 머물고, 주어진 역할에 성실히 임한 나머지 각자의 가능성이 확장되지 못하거나 직위가 여러 가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세태가 아쉬울 뿐이다. 학자와 업자는 따로 있지 않다. 모두 자신이 맡은 업을 할 뿐이고 배우며 살아간다. 모든 일은 신성하다. 공공을 대상으로 하는 조경 일은 더 그렇다. 약 2천 년 전에 비트루비우스가 쓴 『건축십서』 제1서 제1장에는 이런 글이 있다. “지식은 이론과 실제의 소산인바, 실제란 조형 의도에 따라 필요한 재료를 써서 작품을 완성하는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실기의 적용 방식이고, 이론이란 완성된 작품을 비례 원칙에 따라 증명해주고 설명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학문에 입각하지 않고 단지 손으로만 숙련되려고 노력하는 건축가는 그 수고에 합당할 만큼 명예로운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지만, 이론과 학문에만 의존하는 사람은 근본이 아닌 환상만을 좇는 결과가 된다. 그러나 양쪽을 다 겸비한 이는 훌륭하게 무장한 군인과 같이 그 목적을 이루어 응분의 권위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모리스 히키모건, 오덕성 역, 2011). 이 글을 소개하는 목적은 훌륭한 전문가가 되기 위함도, 응분의 권위를 차지하기 위함도 아니다. 세계가 나눈 기준에 맞추다 각자의 가능성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자, 조경을 하며 맞닥뜨리는 현상을 다각도로 인지하고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고 연구하며 실험하는 학자적 업자가 되길 바라는 스스로의 다짐이자 목표이기도 하다. 논리와 직관, 기술과 감각 흔히 논리와 직관을 구분하여 생각한다. 하지만 논리와 직관은 다르지 않다. 직관을 설명하는 것이 논리다. 설계 작업은 논리와 직관을 넘나들며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형태에 담는 작업이다. 논리와 직관, 기술과 감각을 나누어 생각해선 안 된다. 논리란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 보편적 상식과 지식으로 풀어헤쳐 설명하는 것이고, 직관은 경험과 기술을 통찰하는 수준 높은 정신적 산물이다. 누구에게나 직관은 있다. 기술은 논리와 직관에 따른 결과물을 표현하는 방법이고, 감각은 주관을 가진 주체가 세계를 느끼는 오감의 상태다. 직관적 설계와 논리적 설계,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없다. 조사‧분석‧연구 등 논리적 방법론을 통해 만든 계획이 직관적 디자인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없다. 높은 직관에는 설명하기 힘든 논리가 내포되어 있을 수 있다. 공모 작업은 결과물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조사 분석을 기초로 한 논리를 계획안에 담는 작업이다. 하지만 직관을 먼저 내세우고 직관을 설명하기 위한 탄탄한 근거를 내놓는 것 또한 좋은 조경 계획을 만드는 방법이다. 아인슈타인의 많은 이론은 본인의 감각과 직관을 사고 실험으로 수없이 검증하고 그것을 본인 이외의 세계와 소통하고 알리기 위해 수학‧물리학 등의 기술을 사용해 논리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환경과조경404호(2021년 12월호)수록본 일부 김지환은 영남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씨토포스와 스튜디오엘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으며, 현재는 조경작업장 라디오의 대표다. 스스로를 작업반장, 설계공이라 칭하듯 설계와 시공 사이의 중재자(신호등) 역할의 중요성을 인지해 그 관계의 매커니즘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사회적 대기업을 만들어 도시 내 모든 디자인을 손대고 싶어 하는 야망과 유명 건축가와 조경가의 작업을 보며 절망과 환호를 즐기는 이상주의적 성향이 자신의 작품 세계를 더욱 견고하게 한다고 믿는다. 때론 못다 한 말을 해시태그로 덧붙이기도한다. #라디오에이스 #정원작가 #은근히낯가려요 #조경뚱
  • [숲자락 식재 탐험기] 숲자락을 정원에 적용하기
    “난 풀떼기는 잘 모르겠어. 네가 알아서 해.” 조경설계사무소에 다니는 3년 차 L양은 온갖 참고 자료를 뒤져 간신히 식재계획도 지피ㆍ초화 리스트를 작성했다. 꽃의 색깔, 성장 높이, 개화 시기에 대한 정보를 토대로 식물들을 고르느라 고생했는데 다시 이것을 조합하고 배치해야 한다니. 요즘 유행하는 피트 아우돌프 식의 도면 표현 기법을 흉내 내보고도 싶지만 쉽지 않다. 결국 종전에 선배가 작성한 도면을 토대로 늘 해오던 식의 블록 식재를 그린다. 앞선 연재를 통해 식재 디자인의 새로운 흐름을 이해하고, 서식처 기반 식재 디자인에 필요한 요소(생육 환경, 생장 방식 등)를 중심으로 식물을 어떻게 관찰 기록하고 정보를 축적해나가야 하는지 살펴보았다. 이제 어떤가. 식재 디자인에 대한 자신감이 조금은 상승했을까. 여전히 낯선 식자재를 모아 두고 어떤 형태로 다듬어야 할지, 구워야 할지 아니면 튀겨야 할지, 어떤 순서로 솥 안에 넣어야 할지 주저하는 초보 요리사의 마음은 아닌가. 필자들을 비롯해 이 글을 읽는 다수의 숙련된 조경가에게 개개의 식물 특성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식물을 ‘생태적이면서도 아름다운 하나의 군락’으로 디자인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일 듯싶다.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지난달에 소개한 숲자락에 서식하는 자생 여러해살이풀을 실제로 어떻게 조합해 디자인에 적용하면 좋을지 소개할 차례다. 자연에서 식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토대로 식물 공동체를 구성 배치하는 방법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방법에 따라 식물탐험대가 직접 숲자락 식물들을 배치해본 사례를 제시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환경과조경404호(2021년 12월호)수록본 일부 식물탐험대는 2021년 봄,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의 식물적용학 수강생 42명이 결성한 그룹이다. 강보경, 김은정, 김장훈, 노진선, 오세훈, 이양희, 정은하 등 42명의 대원을 대표하는 일곱 명의 집필진은 정원·조경 분야의 실무자와 학계, 수목원·식물원의 연구자 등 다채로운 경력을 가진 이들이다. 숲자락의 단면을 정원에 도입하기 위해 떠난 흥미롭고 유익한 탐험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 [북 스케이프] 권력을 위한 앎, 플리니우스 『박물지』
    ‘아는 것이 힘이다.’ 압축 근대화 시기 대한민국에서 교육 받은 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격언이다. 사실 앎을 통해 무지함에서 벗어나고 미지의 영역을 정복해 나가는 계몽은 근대의 특징 중 하나이며 진보의 토대를 이룬다. 하지만 17세기 초 프랜시스 베이컨이 이 말을 하기 전에도 여러 이가 지식의 확장과 축적을 통해 세상을 통제하려 했다. 『동물지Historia Animalium』에서 수백 종에 이르는 동물과 물고기의 생리와 내외부 기관, 생태 등을 기록한 아리스토텔레스가 처음으로 지식 권력을 추구했다. 하지만 『박물지Historia Naturalis』를 통해 곤충부터 우주에 이르는 방대한 분야를 아우른 플리니우스Gaius Plinius Secundus Major의 작업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환경과조경404호(2021년 12월호)수록본 일부 - 각주1. 『박물지』도 여러 판본이 전해지는데, 라틴어 원전과 영어 번역이 병기된 하버드 로엡 고전 총서(Loeb Classical Library)가 가장 널리 쓰인다(Pliny, H. Rackham, Pliny: Natural History vol 1-10, Harvard University Press, 1938). 국내에는 『플리니우스 박물지』(서경주 역, 노마드, 2021)가 있으나 정원과 관련해 참조할 만한 식물학과 농업, 원예학 부분은 수록되어 있지 않다. 각주 2. 플리니우스의 생애에 대해서는 고증이 잘된 만화는 『플리니우스 1-5』(이재화 역, D&C미디어, 2017~2019)이며 원서는 11권까지 출간되었다. 황주영은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 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 박사후 연수를 마쳤다. 미술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사적 관점에서 정원과 공원, 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 이와 관련된 강의와 집필, 번역을 한다. 그러는 동안 수많은 책을 사거나 빌렸고 그중 아주 일부를 읽었다.
  • [에디토리얼] COP26과 IFLA 기후행동공약
    지구 온난화의 영향이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코로나 팬데믹 뉴스에 가려 눈길을 끌지 못했지만, 올여름 지구촌 곳곳이 폭염과 홍수로 몸살을 앓았다. 한여름에도 냉방기가 필요 없는 미국 북서부를 사상 최악의 폭염이 강타했다. 시애틀 기온이 섭씨 40도까지 오른 건 1894년 관측 이래 처음, 그야말로 ‘잠 못 이루는 밤’이 이어졌다. 남부 유럽은 용광로처럼 끓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소도시 플로리디아는 49도를 찍었다. 폭염은 시민의 삶을 위협하고 유례없는 가뭄 피해를 낳았다. 북부 유럽에선 물난리가 났다. 폭우와 홍수로 180명 넘게 사망한 독일, 그 피해는 처참했다. 지난 8월 9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는 기후변화가 인류의 존망을 결정할 정도로 심각하다고 진단한 보고서를 공개했다. 올해부터 2040년 사이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에 견줘 1.5도 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IPCC는 2018년 보고서에서는 1.5도 상승하는 때를 2030~2052년으로 예측했는데, 이번에 10년가량 예측을 당긴 것이다. 온난화 안정의 전제 조건이 탄소중립이라고 강조한 이번 2021년 IPCC 보고서는 10월 31일부터 11월 12일까지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릴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 총회COP26의 과학적 근거로 쓰일 예정이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UN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은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가스 방출을 제한해 지구 온난화를 방지하기 위해 세계 각국이 동의한 협약이다. 1992년 6월 리우 회의에서 채택돼 1994년 3월 발효됐으며, 1995년부터 매년 당사국 총회COP(Conference of the Parties)가 개최되고 있다. 2015년 열린 COP21에서는 2020년 이후의 신기후체제 수립을 위한 최종 합의문인 ‘파리협정’이 채택됐다. “지구 평균 온도 상승 폭을 2도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1.5도 이하로 제한하고자 노력한다”는 파리협정으로는 온난화를 막기에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계속 제기됐다. 그래서 유엔기후변화협약 196개국과 유럽연합이 한자리에 모여 획기적인 기후변화 대응 방안을 논의할 이번 COP26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각국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중간 목표인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를 COP26 개최 이전에 제출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지난 9월 19일, 세계조경가협회IFLA는 COP26 개최에 발맞춰 ‘기후행동공약IFLA Climate Action Commitment’을 발표했다. 전 세계 77개 나라 7만 명 넘는 조경가들이 지구 온난화를 섭씨 1.5도로 제한하기 위해 행동에 나선 셈이다. IFLA는 “기후 위기 해결의 열쇠는 탄소 배출량 감소, 인간 사회의 회복탄력성과 전환, 자연환경의 지속가능성에 있다”고 선언하면서, 기후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조경의 전문 역량을 다음과 같이 재확인했다. “조경가는 지구촌 환경과 사회의 파멸을 예방할 고유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 조경가는 전문적인 계획, 설계, 관리를 통해 글로벌 생태계를 보호·개선하고, 인간의 건강과 웰빙과 행복을 촉진하며, 온난화에 몸살 앓는 환경을 냉각시키고 대기 중 탄소를 감소시킬 수 있다.……자연 기반 해법, 기술 혁신, 전략적 사고를 바탕으로 창의적 전문성을 갖춘 조경은 도시에 최대한 많은 숲을 조성해 탄소를 제거하고 생물 다양성을 구축하며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이상 고온으로부터 도시를 보호한다. 조경가는 도시 환경뿐 아니라 글로벌, 광역, 지역, 휴먼 스케일 등 모든 규모의 생태계 기능을 보호, 강화, 향상시키며……기후변화에 대응할 회복탄력적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다. 조경가는 자연과 연결되고자 하는 인간의 강한 열망을 충족시켜준다.” 또한 IFLA는 탄소중립을 위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달성을 위해 전 세계 조경가의 전환적 협력과 행동을 촉구하면서 여섯 가지 방향을 약속했다. 1.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UN SDGs의 증진: IFLA에 가입한 77개국 조경가들은 지구촌 생태계를 보호하고 복구하는 노력을 가속화할 것이다. 2. 2040년까지 전 세계 탄소 배출 넷제로net zero 달성: 조경가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에서 발생하는 작동 탄소와 체화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경관 고유의 수용력을 활용해 이산화탄소를 감소시키며, 청정·복합 운송 시스템을 지원할 것이다. 3. 살기 좋은 도시와 커뮤니티의 수용력과 회복력 강화: 조경가는 그린 인프라 접근법을 통해 도시 열섬 효과를 완화하고 화재, 가뭄, 홍수 위험을 줄이는 데 힘쓸 것이다. 4. 기후 정의와 사회 복지 옹호: 조경가는 공정과 평등, 식량 안보, 청정 수질과 행복을 위한 모두의 권리를 증진시킬 것이다. 5. 문화 지식 체계의 학습: 조경가는 기후변화 영향을 완화하는 작업을 지속하기 위해 토착 문화의 토지 관리 지식을 존중하고 적용할 것이다. 6. 기후 리더십의 발휘: 조경가는 기후 위기 대응을 선도할 위치에 있다. 조경가는 기후 긍정적 설계climate positive design를 위해 관련 분야 전문가와 지속적 협력을 이어갈 것이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과학자와 정치가의 목소리를 통해 지구 온난화와 기후변화가 가져올 위험에 대해 들었고,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두려움이 좋은 방향의 실천을 인도하는 것은 아니다. 위기감을 자극하는 경고가 계속되면 우리는 무감각해지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대중에게 두려움을 강요하는 과학의 경고와 정치의 훈계보다는 조경의 실질적이고 지혜로운 실행이 필요한 시대, IFLA의 기후행동공약은 한국 조경계의 실천 좌표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 3월호부터 두 달에 한 번씩 이어온 인터뷰 “사람과 사람을 잇는 사람들”을 이번 호로 맺는다. 조경가 조성빈, 김연금(조경작업소 울)의 수고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풍경 감각] 풍경의 이름
    #1 이름은 붙였어? 오래도록 갖고 싶었던 카메라를 들고 나선 날, 친구가 물었다. 소중한 카메라이니 이름을 붙여야 한단다.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게 이상하고 부끄러운 일 같았지만, 친구의 진지한 얼굴을 보니 놀리고 싶어졌다. 그럼 메라라고 할까? 그 이후로 ‘메라’를 볼 때마다 사뭇 진지했던 친구의 표정이 떠올라 웃음 짓는다. #2 오랜만에 ‘메라’로 기록한 사진들을 살피니, 강아지가 뛰노는 풀밭이 보인다. 까만 눈, 분홍색 코가 박힌 하얀 진돗개. 뭐라고 부르든 달려오는 모습이 귀엽고 또 괜히 놀려주고 싶은 마음에 ‘곰탱이’라고 이름 지은, 나의 첫 강아지. 무지개다리를 건넌 뒤 좀 더 고운 이름으로 부를 걸 하고 후회했지만, 덕분에 나는 곰탱이라는 말을 하얗고 보송하게 기억한다. #3 설계 회사에서 지었던 공간 이름 몇 개를 떠올려 본다. 커피 앤 티 가든, 느티나무 쉼터, 매화나무 언덕, 어울림 마당, 다함께 정원, 진입 광장. 일정에 쫓겨 급하게 정한 이름이 많다. 머리를 싸맸지만 마땅한 이름을 떠올리지 못해 택한 차선책도 많다. 설계 도서에 적지 못하더라도 메라나 곰탱이 같은 이름으로 불러 볼 걸. 미소가 떠오르는 이름, 하얗고 보송한 이름을 소중한 풍경에 붙여 볼 걸. *환경과조경403호(2021년 11월호)수록본 일부 조현진은 조경학을 전공한 일러스트레이터다. 2017년과 2018년 서울정원박람회, 국립수목원 연구 간행물 『고택과 어우러진 삶이 담긴 정원』, 정동극장 공연 ‘궁:장녹수전’ 등의 일러스트를 작업했고, 식물학 그림책 『식물 문답』을 출판했다. 홍릉 근처 작은 방에서 식물을 키우고 그림을 그린다.
  • [나의 미개봉작 상영기] 조경N잡러
    조경? 조경학을 전공한 나는 이러저러한 연유로 ‘조경은 종합예술과학’이라고 학교에서 배웠다. 2009년 졸업 후, 10년 갓 넘게 조경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지금의 나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의 가치 판단’이라는 짧은 문구로 조경을 정의 내리고 다양한 활동을 하고 싶어 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접하고 최근까지도 의문이었던 ‘종합예술과학’이란 단어에 나름의 답을 내렸다. 이 정의가 어려운 이유는 하나하나 정의 내리기 어려운 종합, 예술, 과학이라는 말을 나열해 놓았기 때문이 아닐까? 종합과 예술과 과학이라는 단어를 나누어 생각하고 그것의 합이 조경이라고 단순화해 보았다. 종합은 무엇일까. 짧은 단어 조합을 좋아하는 나는 ‘인간 행위의 단편적인 것들의 합’이라고 답을 내려 본다. 예술은 무엇일까. 라디오 홈페이지(www.ladio.kr)에 적시한 것처럼 ‘복잡다단한 인간사’가 아닐까. 그렇다면 과학은 무엇인가. 과학관리학 박사 변재규의 『과학의 지평』에는 “과학은 인간과 인간의 행위를 포함하는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제반 현상을 관찰하고 법칙적으로 기술하는” 일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즉 과학 또한 인간 활동과 우리 주변을 둘러싼 것들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수많은 조경인을 혼란에 빠트린 종합예술과학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바로 인간과 그 삶이다. 그렇다면 조경은 무엇인가. 이과 출신인 나는 단순한 등식을 세워 조경을 제멋대로 정의해 본다. 인간 행위와 그 삶=종합예술과학=조경. 그렇다. 조경은 너의 삶 안에 있는 것이다. 과한 정의라 해도 좋다. 쉽게 이해될 수만 있다면. 그리고 이 등식을 따르면 조경학 또한 인문학이라고 어디 가서 이야기하기도 좋다. N잡러? N. 정해지지 않은 어떤 만큼의 수. 양자역학적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단어다. 무언가를 여러 사람이 나누어 계산할 때 쓰는, 공평함의 대명사이기도 한 N은 ‘N분의 1하자’라는 관용어로 익숙하다. 이 N에 투잡·쓰리잡의 잡job, 그 잡에 사람을 뜻하는 ~er을 붙인 잡러를 결합해, 마침내 다양한 직업이 있는 사람이라는 뜻의 콩글리시 ‘N잡러’가 된다. 그렇다. ‘조경’과 ‘N잡러’의 정의를 구구절절 내린 이유는 조경 내 다양한 세부 분야의 작업을 하는 내 모습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조경N잡러. 하고 싶은 조경 일을 하기 위해 하기 탐탁치 않은 조경 일 또한 성장의 발판, 수줍음 많은 이의 최대한의 영업이라 생각하고 임하는 사람. (잘은 모르지만) 조경이라는 것의 가치를 조경을 처음 접하거나 알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부족한 실력이지만) 어떻게든 알리기 위해 설계 일이 아니더라도 임하는 사람. 또는 같은 조경 일을 하고 있는 이에게도 스스로가 생각하는 조경 이상의 조경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많은 모임에 참여하며 망상에 가까운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그런 사람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를 ‘조경N잡러’라고 칭하고 두 번째 연재의 제목으로까지 삼은 이유는 외부 공간 기획, 조경설계, 수량 산출·내역, 자문·컨설팅, 공모, 디자인 감리, 대민 활동, 민원 중재, 강의, 농공고 선생님들의 선생, 정원 작가, 강변북로 수목 조사자, 현장 식재 및 소운반 인부 등 다양한 모습으로 활동하고 있고, 수많은 어려움에 봉착하고 해결하며 크디큰 기쁨을 얻는다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미개봉) 작업 또한 의미가 있으며, 그것이 밥벌이가 된다면 스티브 잡스 같은 인물이 아니더라도 어디서 ‘나 조경하오’라고 당당히 말해도 된다고 알리기 위함이다. ‘조경이 뭐야?’라는 질문을 누군가 한다면 ‘넌 조경도 모르니?’라고 반문하여 조경을 스스로 알게 하자. *환경과조경403호(2021년 11월호)수록본 일부 김지환은 영남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씨토포스와 스튜디오엘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으며 현재는 조경작업장 라디오의 대표다.스스로를 작업반장,설계공이라 칭하듯 설계와 시공 사이의 중재자(신호등)역할의 중요성을 인지해 그 관계의 매커니즘을 이해하려 노력한다.사회적 대기업을 만들어 도시 내 모든 디자인을 손대고 싶어 하는 야망과 유명 건축가와 조경가의 작업을 보며 절망과 환호를 즐기는 이상주의적 성향이 자신의 작품 세계를 더욱 견고하게 한다고 믿는다.때론 못다 한 말을 해시태그로 덧붙이기도 한다. #라디오에이스#정원작가#은근히낯가려요#조경뚱
  • [사람과 사람을 잇는 사람들] 교도소 담장 바깥으로 관계를 잇는 조경
    어느덧 마지막 글이다. 최대한 다양한 이들과 다양한 커뮤니티 디자인 이야기로 연재를 꾸리려 했다. 그런 면에서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교Iowa State University 조경학과 줄리스티븐스Julie Stevens 교수는 마지막 인터뷰이로 아주 적합하다. 스티븐스는 여성이자 어머니로서 조금 독특한 커뮤니티 안에서 사람과 사람의 연결을 고민해왔다. 그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시기에 아이오와 여성 교도소 프로젝트도 시작됐다. 이 프로젝트는 8년간 학부 스튜디오 주제로 다루어지며 여성이자 수감자라는 특수 취약 계층을 이야기했다. 가장 최근 진행한 여성 교도소 프로젝트는 2018년에 지은 방문자를 위한 정원 프로젝트다. 교도소 외부 공간에 벤치, 플랜터, 미끄럼틀, 정글짐을 놓아 동네에 있는 어린이공원 같은 공간을 마련했다. 수감자들은 순환하는 산책로에서 방문자와 짧은 산책을 즐길 수 있고, 어린 자녀들은 세발자전거를 탈 수도 있다. 사시나무 잎사귀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공간을 채우고, 낮은 목재 펜스를 두른 정원은 교도소 안 공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교도소라는 비일상적 공간에 가장 일상적 공간을 선물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아이오와 주립대학교 조경학과의 부교수로 일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자연과 만들기를 좋아해 조경의 길에 접어들었고, 조경학과 학부생일 때 여러 좋은 스승의 학문적 에너지에 매료되어 교직으로 오게 되었다. 대학에서 디자인/빌드 스튜디오를 운영한다고 들었다. 여성 교도소ICIW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는데, 처음 인연을 맺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ICIW가 대상지에 새로운 건물을 계획할 때였다. 단계별로 진행될 예정이었는데, 1단계에 약 6,800만 불(한화 약 800억 원), 2단계에 2,200만 불(약 260억 원)의 예산이 잡혀 있었다. 당시 교소도 디렉터는 넓은 대지에 수감자의 치유를 돕는 외부 공간을 조성하고 싶어 했다. 작은 마을 끝자락에 위치한 지방 교도소라 도시 안의 시설과는 다르게 외부공간이 매우 넓다. 디렉터는 이 외부 공간의 잠재성을 높게 보았고, 함께할 이를 찾는 과정에서 아이오와 주립대학교에 연락을 해왔다. 그리고 내가 스튜디오 프로젝트로 이 공간 설계를 맡게 되었다. 아주 초기부터 계획에 관여하게 된 셈인데, 시작은 어떠했나. 2011년도 봄 학기 스튜디오를 통해 여러 아이디어가 담긴 마스터플랜을 제안했다. 사실 교도소 쪽에서는 우리의 역할을 딱 그 정도로만 생각하기도 했다. 한 학기 동안 다양한 구상안을 그려주는 정도 말이다. 교도소 측은 조경이라는 행위를 통해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냥 보통 교도소보다 조금 더 아름다운 공간이 만들어지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우리가 환경심리학 이론이나 치유 정원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면서 교도소 측도 조경의 역할을 좀 더 폭넓게 생각하게 됐다. 마지막으로 교도소와 진행한 프로젝트는 2018년에 완공됐다. 8년 동안 네 개의 규모 있는 정원을 조성했는데,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많은 일을 했다고 자부한다. 정원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제일 처음 만든 정원은 디자인/빌드 스튜디오 초반에 진행한 마스터플랜 수업에서 비롯됐다. 교도소 행정관과 대화하며 어느 공간을 먼저 공사할지 결정했다. 그 과정을 통해 진행하게 된 첫 프로젝트는 야외 교실로, 상담사들이 건물 안이 아닌 바깥에서도 수업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공간이다. 교도소 건물에는 대부분 창이 없어 수감자들이 긴 시간 동안 형광등 아래에서 바깥 풍경을 보지 못하고 지낸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시작한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일대일 상담 수업을 진행할 공간과 대규모 강의나 졸업식 같은 행사를 진행할 수 있는 원형 극장을 조성했다. 학습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공간이 탁 트여 있고 아름다운 식물과 충분한 좌석을 갖추고 있어 수감자들의 마당으로 여겨진다.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가장 많은 휴식 시간을 보낸다. 이듬해 여름에는 교도소 직원을 위한 휴게 공간을 조성했다. 이어진 세 번째 프로젝트에서는 장애인이 거주하는 간호동에 치유 정원을 만들었다. 급성과 아급성 정신 질환을 앓는 이들이 머무는 공간이기에 자살을 예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또 다른 한 해에는 교도소의 텃밭 정비에 힘썼다. 건물 확장 공사가 진행되며 많은 텃밭이 철거되거나 훼손된 상태였다. 이를 재정비하면서 동시에 면적을 더 확보했다. 공사로 굳어진 토양을 회복시키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2018년에 지은 방문자를 위한 정원은 가장 애착이 가는 프로젝트다. 어린이 정원이라 부르기도 한다. 수감자를 방문하는 가족이나 자녀와의 연대를 키워주고자 마련한 공간으로, 방문자를 위한 정원에서만큼은 수감자가 아닌 엄마나 언니, 이모, 할머니, 친구라는 정체성을 되찾을 수 있기 바랐다. *환경과조경 403호(2021년 11월호)수록본 일부 줄리 스티븐스(Julie Stevens)는 아이오와 주립대학교 조경학과 부교수로, 디자인/빌드 커뮤니티 서비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2011년부터8년간 학생들과 함께 아이오와 여성 교도소에 조성한 다양한 치유 공간은 미국조경가협회(ASLA) 사회봉사 부문에서 최우수상을받았다. 스티븐스는 ASLA의 ‘환경 정의를 위한 전문가 네트워크(Environmental Justice Professional Practice Network)’의창립자로, 모든 이가 평등하게 건강한 환경을 누릴 수 있도록 환경정의의 이슈를 조경 교육, 연구, 실무 분야에 접목하고 있다.환경 정의란 세대 간, 국가 간, 계층 간 환경 배분의 형평성을 실현하자는 개념이다. 자연환경은 공익성이 강하므로 환경에서 오는 다양한 이익을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누리게 하고 환경 파괴를 줄여건강한 자연을 후손에게 물려주려는 취지다. 조성빈은 유년 시절을 미국과 한국의 다양한 도시에서 보냈고,공간과 도시에 매료되어 한국과 노르웨이에서 건축과 조경을 공부했다.늘 경계에 있는 사람으로 살아와 깊이는 부족해도 본질에 관심이 많고,관계에서든 공간에서든 진정성을 추구한다.조경설계 서안을 거쳐 조경작업소 울에서 놀이터와 커뮤니티 디자인을 하고 있다. 김연금은 서울 옥수동에서 태어나 살고 있고, 2009년부터 옥수동 옆 약수동에서 조경작업소 울을 운영하고 있다.『텍스트로 만나는 조경』,『커뮤니티디자인을 하다』,『소통으로 장소만들기』,『우연한 풍경은 없다』등 다양한 집필 작업을 해왔다. 2020년에는 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인 이규목 교수를 비롯해 여덟 명의 조경가의 글을 엮어『이어 쓰는 조경학개론』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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