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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토리얼] 프레시킬스 보고서를 다시 펼치며
    이번 호 표지 그림에서 20여 년 전의 강렬한 기억을 다시 호출한 독자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2001년 12월, 50년 넘게 뉴욕 맨해튼의 욕망과 배설물을 받아낸 거대한 쓰레기 산, 센트럴파크 세 배 면적의 초대형 매립지를 공원으로 전환하는 장기 계획의 밑그림이 발표됐다. 22년이 흐른 지난해 10월, 2036년 완공을 목표로 단계별로 조성되고 있는 ‘프레시킬스 공원’ 중 북부 공원 1단계 구역의 문이 열렸다. 세상의 모든 게 변할 것만 같았던 21세기의 새벽, 전 세계 조경계는 두 가지 이유로 프레시킬스 쓰레기 매립지 공원화(Fresh Kills: Landfill to Park) 설계공모에 열광했다. 무엇보다도 프레시킬스 공모전은 도시 곳곳에 버려진 광대한 규모의 탈산업 부지(post-industrial sites)를 경관으로 치유해 재생시키는 설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을 담론의 영역에서 실천의 장으로 이동시킨 결정적 계기였다. 이 공모전이 조경가들에게 끼친 다른 하나의 영향은 당선작 ‘라이프스케이프(Lifescape)’의 실험적 설계 태도와 방법이다. 매립된 쓰레기, 야생 동물 서식지, 식생 천이, 수문 체계 등 서로 충돌하는 이질적 조건을 다이어그램으로 조정하고 완결적 마스터플랜 대신 과정 중심적 단계별 계획(phasing)으로 설계를 조율해 나간 필드 오퍼레이션스FO의 방식은 이제 하나의 교본으로 자리 잡았다. 20년 넘게 흐른 지금, 프레시킬스 공원은 또 다른 세 번째 이유로 조경가들의 주목을 초대한다. 인류세(Anthropocene)와 기후 위기를 맞은 도시에서 공원의 역할이 무엇인지, 공원과 도시 재야생화(rewilding)의 함수 관계를 질문하게 한다. “도시의 경계선은 한자리에 오랫동안 머무르지 않는다”(어니스트 로슨). 1790년 3만 3천 명이던 뉴욕시의 인구는 1900년 348만 명으로 급증했다.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던 맨해튼의 습지와 원지형은 완전히 사라졌다. 맨해튼의 욕망을 마주 보고 있는 스태튼 아일랜드는 수천 년 전 빙하가 녹은 물이 자갈과 모래를 퇴적시키면서 형성됐다. 이 섬 동부의 높은 모래 언덕은 빗물을 프레시킬스의 낮은 습지대로 흘려보냈다. 프레시킬스는 네덜란드에서 온 초기 정착민들이 ‘신선한 개울’이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빙하 토양, 독특한 배수 패턴, 특별한 미기후가 결합된 프레시킬스에는 비정상에 가까울 정도로 풍부한 생태적 다양성이 만들어졌고 철새들의 목적지가 되었다. 뉴욕의 탐욕은 이 거대한 미개발지를 허락하지 않았다. 저돌적인 성장주의 도시계획가 로버트 모지스는 1940년대까지 손상되지 않고 남은 생태학적 보물창고 프레시킬스에 맨해튼의 쓰레기를 채우기로 결정했다. 1948년 쓰레기 매립이 시작됐다. 1955년이 되자 이미 프레시킬스는 세계에서 가장 큰 매립지로 바뀌었다. 매일 쓰레기 3만 톤이 폐기됐고, 평평한 염수 습지는 높이 70미터의 쓰레기 산맥으로 변했다. 『어반 정글』(매일경제신문사, 2023)의 저자 벤 윌슨은 “프레시킬스는 도시가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악몽 같은 유적이 되었다”고 일갈한다. “도시는 맹렬한 식욕으로 자연을 삼키고 오염과 폐기물을 배설해서 강과 습지를 오염시키고 자연 서식지를 독성 매립지로 바꾼다.” 2001년 3월 마지막 폐기물을 실은 바지선이 도착했다. 공원화 설계공모 당선작이 발표된 12월 프레시킬스의 문이 닫힐 예정이었지만, 비극적인 9‧11 테러로 붕괴된 세계무역센터의 잔해를 받아내느라 2002년 3월에야 폐쇄됐다. 장기간의 공원 설계와 조성이 진행되는 동안 이미 프레시킬스는 새로운 변화를 겪으며 놀라운 잠재력을 드러내고 있다. 50년 넘는 세월을 거치며 매립지로 쓰였지만 매립 가능한 최대 면적은 프레시킬스 전체의 45퍼센트였다. 비옥한 습지 생태계는 사라졌지만, 역설적이게도 매립지 운영은 나머지 55%의 땅을 도시 개발로부터 피해 가게 했다. 살아남은 습지, 간석지, 초원, 삼림 지대와 함께 유독성 쓰레기 더미 위에는 새로운 생태계가 등장하고 있다. 지하 깊은 곳에서는 미생물들이 반세기 동안 쌓인 쓰레기를 메탄으로 바꾼다. 지하의 가스와 침출수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추출되어 인근 지역의 전력원으로 쓰인다. 1억 5천만 톤의 쓰레기가 지표면 아래에서 서서히 분해되는 동안 악명 높은 쓰레기 산은 새로 정착하는 야생 생물의 안식처로, 뉴욕 시민을 환대하는 공원으로 계속 변해갈 것이다. 지난 20여 년간 프레시킬스에 새로 덮인 풀밭에는 새로운 미생물, 식물, 곤충, 조류, 포유동물이 거주하기 시작했다. 새 개척자들에 의해 복구되고 있는 프레시킬스는 생물 다양성이 풍부하고 역동적인 자연의 과정이 살아 있는 땅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러한 재야생화는 완전한 방치의 결과가 아니다. 랜드스케이프가 아닌 ‘라이프스케이프’를 목표로 한 혁신적 조경설계, 마스터플랜이 아니라 과정적 계획으로 만들어가는 설계가 재야생화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다음 일은 인간의 설계와 조절 범위를 벗어난다. 앞으로 오랜 세월 동안 광대한 프레시킬스는 공원의 새 거주자인 비인간 생명체들에 의해 복구되어갈 것이다. 벤 윌슨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작업은 대부분 인간이 아니라 자연이 할 것이다.” 도시 재야생화의 거대한 실험실인 프레시킬스는 인류세의 공원이 지향해야 할 좌표를 제시해준다. 이번 호에 담은 북부 공원 1단계 구역은 프레시킬스 공원 전체 면적 2,315에이커의 1/100에 못 미치는 21에이커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재야생화된 매립지의 생태적, 문화적, 경관적 잠재력을 어렵지 않게 엿볼 수 있다. 기사와 함께 프레시킬스 공원화 계획 보고서를 구해 일독해보시기를 권한다. 보고서의 첫 문장을 옮긴다. “라이프스케이프는 장소이자 과정이다(Lifescape is both a place and a process).”
  • [풍경 감각] 단칸방에 나무를 심는 방법
    지난여름 진행한 북토크에서 정원이 생긴다면 어떤 식물을 심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다. 식물원에 다닐 때마다 “나중에 정원이 생기면, 이 친구와 저 친구는 꼭 키울 거야!”라는 말을 했었고, 분명 마음 속 위시 리스트에는 식물 이름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런데 오래된 지층 속 화석처럼 굳어버린 걸까. 하나 꺼내 보이기가 쉽지 않았다. “늘 정원을 꿈꿨는데, 막상 심을 수 있다고 하니 식물 하나가 바로 떠오르지 않네요.” 조금 뜸을 들이다가 간신히 수련과 연꽃을 떠올렸다. 언젠가 베란다에 작은 크기의 원예종을 아기 욕조만한 그릇에 심은 적이 있는데 꽃을 단 한 송이밖에 구경하지 못했다고, 정원이 생긴다면 당장 연못을 파고 수생 식물을 실컷 심겠다고 했다. 그때 한 말은 분명 진심이었고 정정하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걸 안다. 그런데 대답을 바꾸고 싶다. 수련과 연꽃 대신, 오래 전에 그린 ‘단칸방에 나무를 심는 방법’이라는 그림으로. 그림은 시방서나 실시설계 도면이 아니다. 그러니 저 푸른 단칸방 안에 그림 같은 대온실 하나 짓고 사랑스런 기화요초를 그려 넣어도 된다. 그러나 그림 속 작은 방은 텅 비어 있고 나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나는 이것이 아주 정확한 답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 [제도가 만든 도시] 도시의 역사, 문화유산
    현대 도시에서 오래된 건축물과 다리, 담장, 무덤 등의 건조물은 역사문화유산으로서 ‘제도’에 의해 보호받고 존재한다. 유형의 문화유산은 문학이나, 음악, 공예 등 무형유산처럼 기록과 재현을 통해 그 원형을 지키는 것이 아닌, 유일무이하며 장소와 결합된 물리적 실체로서 그 자체가 원형이다.(각주 1) 또한 문화유산은 현재 도시 안에 공존하며 도시를 이루는 구성 요소 중 하나다. 이런 특성 때문에 문화유산이 보호받고 존재하는 제도적 방식에 의해 문화유산은 ‘과거’에 박제되고 주변의 ‘현재’ 도시 공간의 필요와 충돌한다.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많은 노력과 고민을 통해 이룬 바를 부정하거나 문화유산 보호에 반대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전 시대의 요구와 기술, 문화로부터 만들어진 건조물이 시대를 가로질러 원형으로 보호받고 존재하기 위해 유산이 박제되고, 또 현재와 갈등을 겪는 것은 불가피하고 심지어 필요하다. 이 글에서는 도시의 역사를 보여주는 유형의 유산이 현재 도시 공간에서 존재하는 방식을 살펴보고 그 한계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생각해본다. 논의의 전제로서 몇 가지 짚자면, 우리는 왜 여러 제도를 통해 공식적으로 문화유산을 보존할까? 로버트 파우저(Robert Fouser)는 『도시는 왜 역사를 보존하는가』에서 아주 오래 전부터 이전 시대 역사 유적을 보존하려는 공적인 행위를 해왔고, 이 행위에는 전혀 순수할 수 없는 의도가 있다고 설명한다. 로마의 첫 번째 황제 아우구스투스 같은 권력자에 의해서건, 일정 시민 집단에 의해서건, 문화유산의 보존과 복원 노력에는 정통성 과시, 사회적 통합, 정체성 강화, 우월성 증명 같은 정치적 목적이 분명히 담겨 있다. 그리고 이런 목적을 가진 역사 보존은 현재도 계속된다. 문화유산 보존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당연히 역사를 정치적으로 선택해 보존하는 과정이 수반된다. 궁성이 민가와 마을보다 먼저 보존의 대상이 되고, 한 장소에 누적된 여러 시간 중 특정 시간으로 복원한다. 이전 시대에 만든 것을 최대한 원형 그대로 지켜 그것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미래의 기회를 열어 두려는 것이 문화유산 보존의 순수한 인류학적 목적이라면, 선택적 보존은 그런 기회를 미리 편집하는 것이다. 물론 그 편집도 우리 시대가 만드는 역사일수 있다. 문화유산 보존의 당위성은 경제적 가치로 증명되기도 한다. 문화유산은 간접적으로 도시의 매력을 높이는 요소로 여겨진다. 또한 중산층 중심의 소비주의 하에서 문화유산을 점점 더 관광이라는 신산업을 위한 ‘자원’으로 여기며 그 보존과 활용에 대한 사회적 동의가 커지고 있다. 문화유산이 주민의 현실적인 삶을 불편하게 만드는 대신 지역에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논리다. 그럼에도 역사문화유산을 보존하고 나아가 유산을 둘러싼 포괄적 역사문화 환경을 조성하는 것과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공간적 필요를 동시에 달성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 팽팽한 밀고 당기기에서 역사유산의 보존이 우선되거나 반대로 개발 압력 등 현대의 공간적 수요가 우위에 있을 때 어떤 도시적 상황이 나타날까. 복원은 원형의 회복일까 역사문화유산을 현재 기능하는 도시 공간보다 우위에 두는 가장 강한 방식은 유산의 원형을 위해 이미 들어선 건물과 시설을 없애거나 변형하는 복원이다. 최근 사례로는 2022년에 마무리된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사업’을 들 수 있다. 이전 광화문광장은 2009년 세종로의 가운데 녹지대를 넓혀 만들어졌으나 넓은 세종로 가운데 섬처럼 위치한 탓에 일상적인 공공 공간으로서 한계가 있었다. 결국 광장 조성 10년 만에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광장을 넓혀 광장이 도시 가로와 연결되도록 하자는 결정이 이루어진다. 물론 이는 도시 공간적으로도 큰 변화고, 보행 환경의 개선과 더불어 그간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이고 상징적 의미가 강했던 광장이라는 도시 시설을 일상의 공공 공간으로 만드는 시도다. 이번 새로운 광화문광장의 또 다른 큰 변화는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앞 월대를 복원하기 위해 광화문 전면 사직로-율곡로의 도로 선형을 바꾼 것이다.(그림 2) 월대의 복원과 현 도심의 교통 흐름, 그리고 비용을 두고 여러 대안이 검토됐고 찬반 논쟁도 이어졌다. 그런데 월대의 복원이 그 공간의 원형을 회복하는 것일까. 조선시대 경복궁 앞 육조거리인 광화문광장이 경복궁이라는 권력의 정점으로 들어가는 막다른 공간이었다면, 현재 경복궁은 시대의 뒤편으로 물러나 도시의 배경이 되었고 그곳은 현재 사통팔달의 한복판이다. 광화문 일대가 작동하는 공간의 구조가 이미 달라진 것이다. 물론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방향을 정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결과적으로 원형을 복원해야 한다는 당위가 관철된 것이다. 하지만 월대 복원의 원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조선시대 경복궁 광화문 앞 육조거리에 월대라는 개별 요소를 복원한다고 그 공간의 도시적 의미가 복원되지 않는다. 자동차 도로가 휘감은 월대에서 과거 그 공간의 구조가 의도한 권위와 위엄을 느낄 수 있는가. 왕정이 아닌 지금, 월대가 아니라 그 무엇을 복원해도 그것은 진정한 원형이 아니라는 비현실적이고 편협한 주장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월대를 복원한 것은 왕궁 전면의 공간 구성 요소를 보여준다는 의미가 있다. 다만 문제는 이미 당시의 사회와 분리되어 남은 유적을 보전함에 있어서 종종 원형이라는 것을 물리적인 개별 요소의 합과 등가처럼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기준에서 실행되는 복원의 결과물은 힘이 약할 수밖에 없다. *환경과조경437호(2024년 9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물론 문화유산이 전쟁이나 화마로 부서지거나 소실된 경우 복원을 하며, 원형 확인은 복원의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수원화성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크게 훼손됐으나, 조선 정조 당시 화성의 건설 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화성성역의궤』에 기초해 복원할 수 있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 당시에도 수원화성 상당 부분이 현대에 복원된 것이나 원형을 명확히 고증할 수 있는 기록이 있다는 점이 중요하게 평가됐다. 유영수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로재와 기오헌에서 건축 실무를 경험했다.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에서 도시디자인과 사회과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돌아와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며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병행했다. 현재는 인천대학교 도시건축학부에서 법, 제도, 현대 도시설계 이론, 스튜디오를 가르치고 있다. 건축과 도시를 아우르는 스케일에서 개별적인 공간 현상과 법제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고, 계획과 디자인의 역할을 확장하기 위한 이론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 [어떤 디자인 오피스] 인터조경기술사사무소 자연과 인간, 그 사이의 조율
    비브르 앙상블 10~12년차 설계사무소 실장, 부소장으로 근무할 때는 오히려 겁이 없었다. 설계사무소를 대표한다는 생각보다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컸다. 건축과의 협업에서도 투쟁을 불사하듯 설계안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고 무리한 요구에는 거침없이 노(no)를 외치며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13년 차가 되었을 때 인터조경기술사사무소(이하 인터)대표가 됐다. 12년 차와 13년 차, 그 일 년 사이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소장이자 사무실 운영을 책임지는 대표는 전혀 다른 고민과 의무 그리고 책임감을 갖게 했고 설계뿐만 아니라 직원, 협력사 등 모든 관계에 대해 다시금 뒤돌아보게 했다. 설계사무소 운영과 설계 철학은 결코 다른 것이 아니었고 결국 하나의 줄기에서 나오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비브르 앙상블(vivre ensemble)은 동거라는 뜻도 있지만 더 넓게는 ‘함께 살아가기’라는 뜻의 불어로 인터를 맡아 운영하면서 카카오톡 프로필에 ‘살고, 살게 하라’는 글과 함께 항상 써놓는 문구이기도 하다. 첫 전공이 불어불문학이라 불어가 친숙하기도 하지만 대표가 된 그해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 연설에 영향을 받기도 했다. 사무실 운영을 시작하면서 여러가지 고민이 있었던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문장이 나에게 찾아왔다. 실무진으로서 10여 년은 업무를 배우기에 바빴고 대표가 되고 나서는 직원이 아닌 대표의 삶을 살아내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 조경설계를 어떻게 할 것인지, 점점 더 많은 관계를 맺게 되는 조경 관련 분야를 포함한 타 분야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구축할지 고민했었다. 대표로서 직원들의 삶과 전문인으로서의 발전도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직원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마음으로 임했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사무실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적었고 대부분 다른 이와 함께해야 하는 일들이었다. 각종 시설물을 비롯한 조경 관련 업체부터 건축, 토목, 전기 등 건설 관련 분야와의 협업은 매 순간, 매일 일어나는 일이었다. 협업에 대한 나의 생각과 태도가 그대로 직원들에게 전해지기 때문에 그들과의 관계 설정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이때 나를 바꾸게 했던 문장이 바로 ‘살고 살게 하라’였다.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 프로젝트를 완성해 가며 서로 도울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 가고 싶었다. 지금도 그렇게 일하면서 잃지 않으려는 생각이 함께 살아가기다. 나도 살아가고 다른 이들도 살게 하는 마음으로 함께 살아가는 것, 조경설계를 잘하기 전에 그렇게 함께 잘 살아가는 관계를 쌓고 싶었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더 좋은 설계를 할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진다고 본다. 내게 설계는 함께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자 목적이라서 조경설계란 업을 매개로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에 보람과 감사한 마음을 느낀다. 지금까지 해왔던 프로젝트를 되돌아봐도 조경설계는 공공이든 민간이든, 그 사업의 주체가 누구든지 어쩔 수 없이 공공의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하는 작업이, 우리가 만들어 낸 설계 결과물이 자연의 주인인 지구에 또 하나의 쓰레기 더미를 만들어 내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가늠하고 조율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세 개의 정원과 자연 사람과 사람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비브르 앙상블은 자연과의 관계에서도 적용된다. 살아 있는 식물, 땅, 자연을 대상으로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공간을 디자인하면서 공존할 방안을 모색하거나 자연과 인간 그 사이의 거리를 조율하는 것이 조경설계가 아닐까. 우연히 참여하게 된 몇 번의 정원설계 프로젝트는 이러한 생각을 가다듬고 정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조경설계를 하더라도 그 설계의 주체가 되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다. 발주처의 의견, 각종 심의 및 인허가 과정을 거치면서 설계의 주인은 계속 바뀌며 설계자가 그 프로젝트의 손과 발로만 전락하면 초기에 품었던 콘셉트에 대한 설계자의 의지는 수차례 꺾이기 마련이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적으로 겪으면서 그렇게 꿈이었던 설계사무소 운영에 대한 회의를 느낄 정도였다. 이런 생각이 들 때쯤 한 것이 정원설계와 시공 작업이었다. 우연히 접한 정원박람회 공모전에 앞뒤 재지 않고 참여한 적이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사무실 운영 2년 차, 실무 15년 차였던 2014년에 참가한 제3회 경기정원문화박람회 작가정원이었고, 두번째는 사무실 운영 10년 차, 실무 24년 차였던 작년에 참가한 2023 서울정원박람회 작가정원이었다. 오로지 대상지 현황, 주제, 콘셉트만으로 설계되고 시공될 수 있는 디자인에 대한 단순한 욕망이 10여 년 주기로 꿈틀거리는 걸까. 감사하게도 그런 설계와 시공의 기회를 통해 정원과 조경과의 관계를 재조명하고 가장 근본적인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도 돌아볼 수 있었다. 다음 세 작업을 통해서 자연과 인간의 조율된 거리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자연과 일상의 만남 제3회 경기정원문화박람회 작가정원 공모전은 2014년 7월에 열렸고 시공 및 관련 행사는 1년 뒤에 진행됐다. 2014년은 온 국민이 세월호 침몰 사고로 슬픔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였을까. 하루아침에 평범한 일상이 사라진 우리에게 주어진 공모전의 주제는 ‘일상’이었다. 아침에 눈을 떠 등교하고 출근하고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일상이 얼마나 중요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지 정원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고 그 정원 속의 자연은 우리를 감싸안아 주면서 괜찮다고 위로해 주는 존재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렇게 일상의 한편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시처럼 다가와 머물러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러한 마음이 담긴 모델정원 ‘일상이 시가 되다’(2015)에 자연을 상징하는 동서남북의 녹지와 함께 중앙에 삼각형의 셸터와 수경 시설을 배치했다. 사실 설계와 시공이 분리된 작업만 계속하다 보니 모든 디테일 하나하나를 돋보기로 보듯이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의 주제로 일관되게 디자인과 시공을 함께 했던 경험은 조경설계에서 토양과 식재, 자연이라는 개념에 대한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지식으로 아는 것을 넘어서 몸으로 체득한 결과였다. 한 발짝 들어가 자연을 만나는 방법 우리의 작품 중 이렇게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공간이 또 있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인기 있는 장소가 있는데, 바로 한국도로공사 전주수목원 풍경쉼터(2017)다. 전주수목원이라고 검색하면 제일 많이 등장하는 이미지의 주인공이 바로 연못가에 있는 한국적으로 해석한 정자인데, 줄을 서서 사진을 찍을 정도로 이곳을 배경으로 한 인물 사진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제는 이곳을 벤치마킹한 정자가 다른 공원에서도 많이 보인다. 수목원 안에 조성되는 포켓쉼터였기 때문에 수목원의 근본적인 자연성, 방향성을 해치지 않는 최소한의 개입을 통해 이용자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자연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설계 목표였다. 수생식물원, 죽림원, 수국원 등 수목원 내의 다양한 자연 안으로 들어가 그 일부가 되는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다. 기존 식생을 이식하거나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의 모습을 살리기 위해 최소한의 시설물만 설치했다. 조금 먼발치에서 만나는 자연과의 조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자연과 정원의 공존, 하늘 파빌리온 모든 설계가 그렇듯이 해답은 대상지에서 찾을 수 있었다. 2023 서울정원박람회 작가정원 참여를 결정했던 건 매력적인 대상지 덕분이었고, 하늘공원이 가진 강력한 경관, 자연의 힘으로 인해 콘셉트도 비교적 쉽게 정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하늘과 바람, 풀뿐인 하늘공원에 자연을 함께 공유하고 공존할 수 있는 정원을 품은 ‘하늘 파빌리온’(2023)을 제안했다. 파빌리온은 드넓은 억새 초지의 장엄함을 색다르게 경험할 수 있는 경관의 틀이 되고, 때로는 거친 자연으로 상징되는 억새와 그에 대응하는 연약한 질감의 초화로 이루어진 정원을 품어주는 또 다른 틀의 역할도 한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자연 속의 정원이라는 주제를 깊이 있게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남거나 사라지거나 숫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인터의 설계 프로젝트는 어림잡아도 1년에 적게는 10여 개, 많게는 20여 개 내외가 진행되어 전체 프로젝트 수는 300개가 훌쩍 넘는다. 300여 개가 모두 설계가 완료되어 시공될 리는 만무하지만 아쉽게도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그리 많지도 않다. 현상설계에서 출발해 순조롭게 시공까지 마무리된 프로젝트부터, 실시설계까지 납품하고도 사업이 불발된 프로젝트, 또는 종이로만 남아 두고두고 사례로만 참조하는 프로젝트까지 그 시작과 끝이 각기 다르다. 그러나 설계를 하다보니 남아 있다고 반드시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종이로만 있다고 의미가 없는 것도 결코 아니다. 새로운 시도, 시공 단계까지 유지된 콘셉트 아이디어 등 살아남았거나 사라진 작업이 있다. 그중 디자인적으로 의미있는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대구 이시아폴리스 패션스트리트 때론 자연을 완전히 배제한 채 디자인하는 경우도 있다. 대구 이시아폴리스 패션스트리트(롯데아울렛) 조경설계가 그런 경우였다. 드라이한 대상지의 현황 및 상업 공간의 시각적 차폐에 대한 우려로 인해 녹지는 일부분에 불과했고 자연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레인 드롭(rain drop)이라는 콘셉트로 전체 바닥 포장을 패턴화했고, 시설물까지 원형 디자인으로 통일했다. 조경 디자인 콘셉트 그대로 시공, 준공된 것에 큰 의미가 있었다. 세종시 대우 푸르지오 P3 지구 공동주택 프로젝트 중 가장 큰 규모였고 무엇보다도 현상설계부터 시공 단계까지 대규모 아파트 설계에서는 쉽지 않게 현상설계에서 했던 조경 콘셉트가 유지됐다. 자연과 도시의 관계를 단지 내부로 끌어들여 디자인했다. 카카오 데이터센터 준공한 지 1년이 안 된 최근 프로젝트로 첨단 시설이 들어서는 건축물이지만 한양대학교 안산캠퍼스 내에 위치해 있어 무엇보다도 외부 공간에 대한 이용자들의 배려가 필요했다. 킵 온 딥 인 네이처(keep on deep in nature)라는 주제로 자연의 본질,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재현해 원초적 자연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 미래 기술과 함께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지속가능한 숲 조성, 비정형적 공간 구획이 특징이다. 대지에 자연이 스며들듯 공간에 녹음이 스며들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아난티 펜트하우스 가평 아난티 펜트하우스의 주변 설계를 통해 건축물에 의해 둘러싸인 경계를 허물고 건축을 넘나드는 자연을 표현했다. 절제된 자연의 모습이 아닌 태고의 자연의 모습을 더해 살아있는 자연 그대로를 느낄 수 있는 리조트를 꿈꿨다. 이때의 설계 콘셉트와 평면, 스케치의 분위기 등은 지속적으로 소환해서 비슷한 결의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꺼내 보곤 한다. 파주운정3 GTX 문화공원 설계공모 사무실 운영 관점에서 보면 지금까지 설계공모에 굳이 참여하지 않아서 다행스러운 점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수동적인 계약 시스템에 따른 편향된 프로젝트에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고, 새로운 대상지에 대한 목마름과 계획안에 대한 탐구가 회사 내부적으로 필요했다. 파주 운정역 GTX 상부에 조성하는 공원의 콘셉트를 통해 과거의 오래된 유산에서 미래 공원의 의미를 찾으려 했고, 건축, 조형물 디자인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디자인을 모색했다. 비록 낙선으로 끝났지만 올여름 한 차례 휘몰아친 설계공모 덕분에 우리는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다. 실패했으나 실패는 없었다. 앞으로 관심 있는 설계공모 대상지가 있다면 지속적으로 참여할 생각이다. 공모에 함께 해준 인터의 모든 직원과 백순철·홍수연 소장(레드트리), 임근풍 소장(AIM 건축)에게 감사한 마음 뿐이다. 인터조경기술사사무소는 2000년에 人터조경기술사사무소로 출발했다. 1대 대표인 선우성에 이어 2013년부터 김수연 대표가 이끌고 있는 25년 차 조경설계사무소다. 좋은 생각과 함께하는 좋은 경험을 토대로 사람(人)과 터를 위한 디자인을 하려고 한다. 현란한 디자인보다는 자연과 어우러진 편안한 디자인을 추구한다. 정원, 공원, 오피스, 공동주택, 병원, 리조트 등 공공과 민간 영역을 아우르며 박준영, 최아람, 정구영, 김태현, 박준기, 서현호와 함께 다양한 조경 디자인을 탐색하고 있다.
  • [밀레니얼의 도시공원 이야기] 이름을 붙이지 않을 용기
    도시공원은 실험이다 세계적 화학 회사 듀퐁(DuPont)의 어느 랩에서 한 실수가 나일론이라는 혁신으로 이어졌다는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는 ‘실험 중에 일어난 의도치 않은 기적’의 대명사가 됐다.(각주 1) 요즘이야 실험 노트를 꼼꼼하게 적는 게 일반화되었다고 하지만, 이렇게 시스템이 정착하기까지 오만 가지 실수들이 존재했을 테고 그중 어떤 것들이 의도 밖의 성공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이런 혁신의 전제는 체계도, 천재성도 아닌, 수많은 실험의 반복(iteration)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시공간적 한계와 예산의 조건으로 도시공원 혹은 도시 공간에서 다양한 실험이 쉴 새 없이 이어지기란 어렵다. 준공까지 많은 자원이 요구되는 도시계획과 조경 분야의 특성상 일정한 수준의 성공이 보장되지 않으면 실험대에 오르기조차 쉽지 않다. 동시에 조경은 필연적으로 과정 중심적이다. 조경의 주요 요소―교목, 관목, 지표면의 생물, 수공간, 시설, 그 안의 사람들―가 서로 연계되는 과정을 통해 조성된다는 설계 이론적 차원의 과정 중심성만을 말하는 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접근 가능한 공간을 직접 분석하고, 설계하고, 조성하고, 재조성하는 책임을 지고 있기에 매 순간 목적과 이용의 변화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즉 실험을 표방하고 작업을 하기는 쉽지 않지만 사실 거의 모든 단계가 아주 조심스러운 공간적 실험이기도 하다. 달리 말하자면, 1980년대부터 이어진 도시공원 조성 과정은 국가 주도로 진행된 ‘도시 오픈스페이스 실험’ 그 자체다. 에피소드 1. 땅, 불, 바람, 물, 마음 공해와 싸우고 자연을 살리는 다섯 가지 힘이 모여 나오는 캡틴 플래닛.(각주 2) 얼마 전 영등포구에서 진행한 수변 공공 디자인 해커톤 ‘소셜 픽션, 수변 픽션’ 시민 참여 프로그램의 퍼실리테이터를 맡아 수변 문화와 도시 경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도시 경관, 공공 설치, 커뮤니티 디자인, 문화 프로그램, 미디어 아트의 다섯 분과(시민 참여를 표방한 팀플이다)가 수변 문화를 실험하고 확장하는 다양한 주제를 다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공공성’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이번에 다룬 다섯 가지 주제만으로도 이렇게 의견이 팽팽하게 갈리는데, 실제 공공 문화를 이루고 있는 수십, 수백의 얽히고설킨 요소들을 어떻게 같이 굴러가게 만들 것인가. 최소 다섯 가지 초능력이 모여야 캡틴 플래닛이 튀어나온다. 지구를 지키고 자연을 살리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하는 건가 싶다. 적어도 이렇게 다섯 개 분과가 모여서 서로 의견을 교환한 뒤 박수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캡틴 플래닛’이 나와서 뭔가를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팀플, 진심으로 히어로를 찾게 되는 순간이다. *환경과조경437호(2024년 9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해당 실수가 처음 벌어진 것은 아니라고 한다. 다만 이 실수를 혁신으로 인지한 것이 듀퐁의 기지. 2. 생소한 단어의 나열이라면 꼭 구글링을 해보길 권한다. ‘출동! 지구특공대(Captain Planet and the Planeteers)’는 1990년대 제작 방영된 미국 애니메이션으로, 한국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꾸준히 방영됐다. 다섯 대륙에서 모인 다섯 주인공이 공해 빌런들과 전투를 벌이다가 각자가 지닌 초능력 반지를 통해 슈퍼 히어로 캡틴 플래닛을 불러낸다는 설정. 몇 년 전부터 배우이자 환경운동가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회사를 중심으로 실사 영화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는데, 구체적인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다.
  • [에디토리얼]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친환경 파리 올림픽
    이번 8월호 배송이 끝날 때쯤 적지 않은 독자들은 밤낮을 바꿔가며 올림픽 경기 중계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을 것 같다. 2024년 파리 올림픽(7월 26일~8월 11일)과 패럴림픽(8월 28일~9월 8일)의 가장 중요한 슬로건은 ‘친환경 올림픽’이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의 절반 수준으로 탄소 배출량을 감축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건축, 도시, 조경계가 가장 눈여겨볼 점은 100년 만에 파리에서 다시 열리는 올림픽이지만 신축 경기장이 거의 없다는 것. 경기장의 95%가 기존 시설 재활용이거나 임시 건물이다. 신축 건물은 선수촌과 수영 센터 정도다. 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파리 북부 생드니 지역에 저탄소 기술로 새로 지은 이 건물들은 올림픽이 끝나면 청년층과 스타트업이 입주하는 주상복합 건물로 쓰이면서 도시 재생에 활용될 예정이다. 파리 시내와 인근 지역의 랜드마크와 명소 10여 곳이 임시 경기장으로 탈바꿈했다.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 상드마르스 광장이 비치발리볼과 장애인 축구 경기장으로 변신했다. 도시의 척추인 샹젤리제 거리에서는 사이클 경기가, 도시의 혈관인 센 강에서는 남녀 철인3종 수영 경기가 펼쳐진다. 1900년 만국박람회의 전시장이었던 그랑팔레는 태권도와 펜싱 경기장으로 쓴다. 서양 조경사의 정점인 베르사유 궁원에서는 근대5종과 승마 경기가 열린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잠들어 있는 앵발리드 광장은 양궁과 육상 종목에 쓰인다. 프랑스 대혁명의 역사가 깊게 쌓인 도심 한복판 콩코르드 광장에서는 이번에 정식 종목으로 처음 채택된 브레이크댄스를 비롯해 스케이트보드, 3대3 농구 등 역동적인 경기가 펼쳐진다. 소장 욕구를 샘솟게 하는 파리 올림픽 공식 포스터(일러스트레이터 위고 가토니 작)는 도시의 광장과 공원을 올림픽 경기장으로 재활용한 파리발 도시 혁신을 생생히 보여준다. 파리 올림픽의 에어컨 퇴출은 개막 몇 달 전부터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선수촌에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았다. 대신 건물을 효율적으로 배치해 공기 순환을 촉진하고 차가운 지하수를 이용해 냉각 시스템을 가동하는 방식을 택했다. 폭염에 따른 경기력 저하를 우려한 일부 국가의 반발로, 결국 파리올림픽조직위원회는 각국이 필요한 경우 자체 비용으로 휴대용 에어컨을 주문할 수 있다고 한발 물러섰다.하지만 건설, 교통과 운송, 식음, 운영 등 여러 방면에서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친환경 올림픽이라는 목표가 구체적으로 실천되었다. 새로 지은 건물 옥상에는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대회 운영에 필요한 전력은 풍력과 태양광으로 만든 재생 에너지로만 충당한다. 플라스틱 사용을 철저히 제한한다. 경기장에 페트병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고, 선수와 관중 모두 재사용 가능한 병과 컵을 써야 한다.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프랑스산 식재료를 80% 이상 사용하며, 반경 250㎞ 안에서 기른 제철 식재료의 비율을 25% 이상으로 유지한다. 대부분의 경기장이 반경 10㎞ 이내에 있고 선수촌에서 30분이 걸리지 않기 때문에 대중교통으로 충분히 접근할 수 있다. 참가 선수와 입장권을 소지한 관중은 지하철을 비롯한 모든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친환경 올림픽’의 기치를 내건 파리 올림픽은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혁신적 도시 실험의 현장인 셈이다. 이번 호 특집 “정영선을 읽는 시선들”은 지난 7월 3일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전시(국립현대미술관 서울, 4월 5일~9월 22일) 연계 학술행사로 열린 ‘정영선이 만든 땅을 읽다’의 발제와 대담 내용을 다시 엮은 것이다. 많은 독자의 시선을 오래 붙잡는 지면이 되기를, 그리고 ‘2024년 정영선 현상’에 대한 토론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 [풍경 감각] 아침에는 파스타를 생각한다
    모닝콜이 울리고 있다. 눈을 감고 돌아눕는다. 해야 할 일 목록이 머릿속에서 차락 펼쳐지지만 일어나고 싶지 않다. 써야 하는 글과 그려야 하는 그림. 잘하고 싶은데 쉽게 풀리지 않아 걱정이네. 이제 수영장에 갈 시간인데, 그냥 오늘만 쉴까. 화분에 물을 줄 때가 되었던가. 조금만 이따가 확인해 봐도 별일 없겠지. 그러고 보니 베란다에서 꽃구경한 지도 꽤 되었네. 즐거운 일 뭐 없나? 파스타를 떠올린다. 오늘은 어떤 파스타를 만들까. 꼬불꼬불 뭉쳐 있는 페투치네나 소면처럼 가느다란 엔젤헤어를 쓰는 레시피를 찾아볼까. 레몬과 생크림이 떨어졌으니 마트에 다녀와야겠구나. 선드라이 토마토랑 안초비를 넣으면 요리가 근사해진다고 하던데. 마트 간 김에 구경하자. 오늘은 어제보다 맛있으면 좋겠다. 가장 맛있는 레시피는 기억해 뒀다가 친구들이 작업실에 놀러 오면 만들어 줘야지. 아니다. 좋아하는 파스타가 뭐냐고 메시지를 보내야겠다.
  • [브렉시트 이후 아일랜드 북서부 풍경] 도시-지역을 위한 지도책
    ‘도시-지역을 위한 지도책(Atlas For a City-Region)’은 2020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속에서 아일랜드 공화국과 북아일랜드 사이 초국경지역의 미래와 그 형태, 한계 등을 조사한 후원 연구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세 가지 질문을 바탕으로 진행됐다. 첫째, 초국경지역이 아일랜드 북서부 지역에 존재하는가? 둘째, 만약 존재한다면 어떻게 지도에 그릴 것인가? 셋째, 인구 이동과 기후 변화의 장기적 영향, 그리고 브렉시트의 영향을 고려했을 때 향후 200년 그 지역은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 18개월에 걸친 연구 프로젝트는 하버드 디자인 대학원GSD의 비평적 조경 디자인 연구소가 중심이 되어 진행했다. 같은 주제의 디자인 스튜디오와 세미나도 병행됐다. 초국경지역의 증거들은 일상적으로 초국경적 활동이 관측되는 아일랜드 북서부 지역의 농장과 마을, 공동체에서 현지 조사를 통해 수집됐다. 또한 우리는 지역의 미래 형태를 알려줄 수 있는 요소인 풍경 속 땅 무늬를 관찰했다. 현지 조사의 결론 중 하나는 새로운 국경을 그리는 것이 아닌 국경을 넘나드는 일상적 흐름(벡터)을 포함하는 지도를 그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국경을 선이 아니라 풍경으로 이해하면 아일랜드 북서부 지역의 잠재력을 제한하고 있는 이분법을 넘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글(2024년 6월호)에서는 아일랜드 북서부에 초국경지역이 존재하는지를 다뤘다. 이를 위해 현지 조사를 기반으로 초국경지역의 존재 증거를 15권의 책으로 정리했고, 이 증거들은 지도에는 없지만 국경을 넘나드는 다양한 이해관계로 묶인 공간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번 글에서는 나머지 두 질문을 다룬다. 초국경지역을 어떻게 지도에 그릴 수 있을까? 향후 200년간 그 지역은 어떻게 발전할까? *환경과조경436호(2024년 8월호)수록본 일부 게럿 도허티(Gareth Doherty)는 하버드 GSD 조경학과 교수이며, 아직 공식적으로 기록되지 않은 조경의 내러티브와 그 실체를 탐구하고 풀어낸다. 그는 경관 현지 조사(landscape fieldwork)라고 부르는 현장 중심 연구 방법을 통해 복합 경관에서 사람과 환경을 핵심 요소로 다룬다. 이 연재의 번역을 맡은 강준호는 하버드 GSD를 졸업한 뒤 도허티의 비평적 조경 디자인 연구소(Critical Landscapes Design Lab)에서 연구원으로 일했고, 현재 건축가와 정원사로 일하며 조경과 건축의 접점을 찾고 있다.
  • 구름 먹고 바람 마시던 곳, 소쇄원
    관념의 힘 2006년 베를린에 서울정원이 들어선 이후 한국 정원을 설명해 달라는 요청을 심심치 않게 받는다. 유럽 정원은 물론이고 중국 정원, 일본 정원과도 다르면서 더 이해하고 싶다고 한다. 단지 그 이유뿐만 아니라 서양 조경과 정원을 연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것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고, 양 문화권의 근본적인 차이에 대한 사유가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가장 크게 다가오는 차이점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막강한 관념의 힘과 유럽인들의 실증적 본능이다. 유럽인은 무엇이든 눈으로 보아야 하고, 만지고 느껴야 비로소 그 ‘존재’를 믿는다. 자연에 있는 것은 모조리 가져다 식물원이나 정원에 심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영국의 저명한 정원 디자이너이자 저술가인 페넬로페 홉하우스(Penelope Hobhouse)는 매일 들어가 일해야 하지 않는 정원은 정원이 아니라고 못 박았다. 그들에게 베를린 서울정원 툇마루에 앉아 빈 마당이나 먼 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시키기는 불가능하다. 이따금 이들의 실물(實物) 집착증이 짜증스러울 때가 있다. 한국 정원엔 어떤 나무가 자라고 어떤 꽃이 피는지 잔뜩 궁금해하는 청중에게 다소 도발적으로 “사유(思惟)만으로도 정원이 성립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 적도 있다. 그때 물음표로 가득한 청중의 표정을 보니 조금 미안했다. 그래서 윤선도의 오우가를 들려주며 물, 돌, 소나무, 대나무 그리고 달빛이면 족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리고 한국의 정원 개념에는 성리학이나 도가적 자연관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유럽 정원처럼 식물, 시설물, 조형물을 채우고 배합하고 조합하는 것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예상한 대로 만족스럽지 않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런 식의 대화를 하다 보면 같은 지구상에 살지만 서로 얼마나 다른지 재삼 확인하게 된다. *환경과조경436호(2024년 8월호)수록본 일부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 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 『신의 정원, 나의 천국』, 『고정희의 바로크 정원 이야기』, 『고정희의 독일 정원 이야기』, 『100장면으로 읽는 조경의 역사』를 지었고, 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 [어떤 디자인 오피스] MDL 자연의 표현과 확장
    젊은이의 패기 호기로운 시작 작년 이맘때쯤 PWP(Peter Walker and Partners)의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피터 워커의 생일을 축하하는 사진을 보았다. 나이를 찾아보니 1932년생 91세, 오랜 세월을 버티며 조경 현업에서 여전히 일하고 있는 그와 비교하면 아직 엠디엘은 걸음마를 뗀 수준의 어린아이일 뿐이다. 조경가 정영선의 전시를 보고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살짝 소원해졌던 조경과의 관계에 다시 불꽃이 튄다. 앞으로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도 많다. 회사를 시작했던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펜을, 마우스를, 호미를 든다. 엠디엘은 겁 없는 20대의 패기로 무장한 1인 기업으로 시작했다. 당시 정부의 창업 지원과 1인 기업 열풍이 불면서 하늘을 찌를 듯한 자존감이 생겨났다. 설계안을 가지고 그 누구라도 설득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당당히 조경가 세 글자를 명함에 새기고, 인도 허왕후 기념공원 설계공모(2016)에 출품하면서 조경계에 본격적인 발걸음을 내디뎠다. 조경계 선배들과 경쟁해서 3등의 성적을 거두면서 어깨가 더 올라갔다. 건방지게도 이 정도면 경쟁할 만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지금 돌아보면 민망하지만, 스물다섯 살의 호기로움이 조경가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된 계기를 마련해주었으니 그걸로 부끄러움은 덮을 수 있지 않을까. 느슨한 네트워크, 함께라면 두렵지 않아 어린 나이에 겁 없이 회사를 차린 후폭풍일까. 경험 부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인허가, 대관 업무 등 경험과 대처 능력이 필요한 영역에서의 부족함은 쉽게 메꾸기 어려운 부분이다. 호기롭게 회사를 차렸는데 선배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당시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뜻이 있으면 길이 보인다고 했던가. 대학원 시절부터 봐왔던 스튜디오테라의 네트워크 구조에 영감을 받아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이들과 뭉치면 답이 나올 것 같았다. 현재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고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느슨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 조경작업소 이룸(계획), 수수플랜(설계), 드오르(정원), 시대조경(공간), 스튜디오테라(협력), 경남종합조경(시공)이 함께하며 서로의 부족함과 빈틈을 채워 나간다. 따로 또 같이 뭉쳤다 흩어지며 주어진 공간에 다양한 시도를 해나간다. 하고 싶은 게 너무나도 많아 조경을 하고 있지만, 설계와 시공으로 업역을 한정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스스로를 자연을 표현하는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하고 세상만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새로운 사업과 기술, 방향에 대해 언제나 고민하고 쉽게 수용하는 자세를 취한다. 늘 조경의 업역이 교육, 계획, 설계, 시공, 재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조경 분야의 확장, 자연을 표현하는 새로운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한다. 2016년 창업진흥원 프로그램으로 식물 재배기 사업을 구상한 적이 있다. 비록 실체화에는 실패했지만, 다양한 분야로의 진출을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조경설계 바깥의 분야로도 세계관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한정된 공간과 재료를 다루는 조경 분야의 한계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엠디엘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일을 도모하는 중이다. 그중 하나는 식물 구독 서비스인 ‘더초록’과 한국판 랜드진(Landezine) 조경 플랫폼 ‘엘에이-베이스(La-base)’다. 신기술 도입에도 적극적이다. 조경 분야에서는 아직 생소한 라이다LiDAR 센서, 360도 카메라를 이용한 맵핑을 통해 대상지를 보는 다양한 방법을 도입하고, AR과 VR을 활용해 설계안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등 신기술의 도입에 힘쓰고 있다. 설계자가 재미있으면 클라이언트도 재미있다 우리가 설계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재미와 즐거움이다. 대상지를 머릿속으로 체험하고 상상하며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는 즐거움은 설계자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경험이 아닐까. 계획안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누가 더 재미있는 공간을 상상하는지 신입부터 소장까지 경쟁한다. 설계안을 그리고 있는 직원 뒤로 가서 꼰대처럼 묻기도 한다. ‘너는 이 공간이 재미있니?’ 계획하는 사람이 공간을 계획하면서 재미를 느낀다면 그 안은 그 누가 봐도 즐겁고 재미있는 공간이 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즐거운 과정에서 즐거운 결과물이 나오고, 이는 프레젠테이션 과정에서 더 강력한 설득력을 갖출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의 설계안은 지금도 즐거움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불나방 정신 수많은 공모, 우리만의 것을 한다. 회사의 시작이 공모이기도 했고, 이름난 설계사무소가 아니다 보니 일을 수주할 수 있는 방법은 공모가 가장 적합했다. 이름을 가리고 어떤 설계안이 가장 대상지에 부합하는지 가려내는 설계공모는 쟁쟁한 선배들과 계급장 떼고 붙을 수 있는 기회이기에, 빛을 보면 환각에 이끌려 불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정말 수많은 공모와 제안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생산 작업이 고되기도 하지만 우리의 즐거운 생각을 대중에게 보여 줄 수 있다는 점만으로 늘 설레고 즐겁다. 잠실한강공원 자연형 물놀이장 설계공모 잠실한강공원 자연형 물놀이장 설계공모는 엠디엘 설계안의 방향성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단순하고 명료한 공간이 주는 묵직함, 한강에 필요한 스케일과 공간감에 대해 고민했다. 자연과 인공의 레이어가 공존하는 환경의 조성에 관해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고자 했다. 기술사사무소 이수, 스튜디오테라와 함께 큰 이견 없이 협업을 진행하며 앞으로 더 발전시킬 수 있는설계안의 높은 가능성을 보았다. 여울공원 전시온실(식물원) 건립사업 설계공모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디자인 원칙을 바탕으로 제이와이아키텍츠(JYA-RCHITECTS) 건축사사무소, 요앞 건축사사무소와 협업했다. 공간의 구조가 자연스러운 대류를 발생시키고 그에 따른 온도와 습도가 형성되는 것을 계획의 방향성으로 잡았다. 공간적 흐름에 따라 만들어지는 환경에 맞춰 식생대를 조성한 온실을 제안했다. 동부간선도로 지하차도 상부공간 기획 디자인 공모 동부간선도로 지하화 공간 상부 공원에 서울 아레나 파크를 제안했다. 크고 작은 공간, 운동, 놀이, 문화, 정원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수용하는 아레나들이 모여 공원을 형성하는 코딩에 의한 공원 조성 해법을 제시하고자 했다. 2등에 그쳤지만 그 가능성을 타 공원에도 적용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직원들과 함께 계획하면서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우리의 프로젝트 청량리 4구역 가로공원 청량리 4구역 기부채납 공원 중 가로공원 부분의 제안 공모 당선으로 작업한 작품이다. 청량리에 새롭게 조성되는 랜드마크인 65층 주상복합아파트의 앞마당 같은 공간으로, 하루의 일조량이 낮은 대상지 특성을 설계안에 녹여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처음에 제안한 캐노피 워크와 일부 시설이 BF 심의로 인해 삭제됐고 인허가 과정도 순탄치 않았지만 곧 개방을 앞두고 있다. 공간와디즈 크라우드 펀딩의 대표 주자인 와디즈의 첫 오프라인 스토어 외부 공간 설계를 맡아 진행했다. 성수동의 옛 건물 마당 공간을 법정 주차 공간, 다양하게 교류하는 커뮤니케이션 장소, 활동적 체험형 행사가 가능한 공간으로 풀어냈다. 현재는 누적 방문객 30만 명이 넘는 성수동의 핫플레이스로, 제품 및 콘텐츠 홍보 행사, 팝업의 성지가 됐다. 영도 마리노 오토캠핑장 차를 타고 지나가면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으로 유명한 부산항대교. 그 교각 하부의 유휴 공간을 활용해 도시와 바다의 경관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캠핑장을 조성했다. 초기의 원형 순환 동선과 캠프 사이트에 변화가 있어 아쉽지만 부산 시민은 물론 인근 지역 주민에게 한번쯤 가봐야 하는 캠핑장으로 소개되고 있어 뿌듯하다. 부경대학교 백경광장 부경대학교는 숲과 보행로, 차량 통행로로 이용되던 학교의 유휴 공간을 보행 전용 광장 겸 휴식과 소통, 지역 축제를 위한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 넓은 광장을 원하는 학교의 의지와 소나무 숲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절충해 설계안을 만들었다. 봉래산 헬기장 실외정원 우리가 설계한 프로젝트 중 최초로 상을 받은 공간이다. 부산 영도구의 봉래산 헬기장을 정원화하는 프로젝트로, 영도구 천혜의 바다 경관과 봉래산의 숲 경관을 아울러 경험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산지라는 공간적 특성 때문에 계획에 어려움을 겪던 직원들이 데크 상세도를 그리며 김수희의 ‘멍에’를 하루 종일 틀었던 즐거운 기억이 남아 있다. 성장과 확장 엠디엘은 이제 10년 차를 바라보고 있다. 하다가 망하면 취업한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했던 회사지만 이제는 망하거나 약해지면 안 되는 이유가 가득하다. 피터 워커를 보면 아직 우리에게는 60년에 가까운 시간이 남아 있거나 무한한 시간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 기간 동안 어떻게 성장하고 확장하며 세계관을 구축해 나갈지 궁금해진다. 자연을 표현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으니 땅을 벗어나 우주의 공간으로 자연을 확장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연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도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기대를 품어본다. 엠디엘(MDL)은 조경을 포함한 세상만사에 관심을 둔 젊은 친구들이 모인 집단이다. 설계자가 계획하는 과정이 즐거우면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도 즐거운 마음으로 이용한다고 믿는다. 자연 앞에서 겸손과 존중의 자세를 유지하고 하나하나 배워 나가며, 우리에게 주어진 공간에선 유행이나 시대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혁신적인 것을 산출하고 도입하며 자연을 표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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