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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AI시대 조경가의 미래, 인공지능과의 대화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의 고금리 기조와 이스라엘-하마스 사태 등 대외 여건의 불확실성이 반영되면서 국제통화기금과 한국개발연구원이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1.5%에서 1.4%로 하향했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 또한 2.2%로 종전보다 0.1% 낮춰 잡는 등 한국의 경제 저성장이 가시화되고 있다. 건설 경기 또한 선행 지표인 건설 수주(-13.6%)와 주택 착공(-63.6%)이 큰 폭으로 감소세를 지속하며 우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국내 건설시장의 향방에 큰 영향을 받고 있는 조경계의 전망도 녹록치 않다.
대부분 소규모 영세 사업자인 조경설계사무소들도 몇 년 전부터 설계대가는 오르지 않고 늘어난 임금과 줄어든 근무 시간으로 인해 한계에 직면해 있다. 더구나 인공지능(AI) 시스템은 일반 작업에서 인간과 경쟁할 수 있는 수준으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건축계는 이미 AI를 다방면에서 활발히 응용하고 있고, 조경 분야에서도 이제 모른 척 할 수 없는 중요한 이슈로 회자되고 있다.
컴퓨터가 도면을 그려줄 수 있다는 소식에 신기해 했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오토캐드 시대를 넘어 미래에는 AI가 조경가의 일을 대신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를 느낀다. 도구와 수단에 불과했던 컴퓨터의 영향력이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AI가 조경설계의 전반 과정을 수행한다면 조경가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까. 대화형AI 서비스인 챗GPT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았다.
AI가 조경설계 업무를 할 수 있을까.
다양한 기술과 알고리즘을 활용해 AI는 일부 조경설계 작업을 자동화하고 지원할 수 있습니다. 아래는 잠재적 기능과 이점에 대한 몇 가지 예시입니다.
1. 데이터 분석과 예측: AI는 지리 데이터, 기후 조건, 토양 특성 등 다양한 정보를 분석하여 어떤 식물이 특정 지역에서 가장 적합한지 예측할 수 있습니다.
2. 자동화된 디자인 생성: AI는 조경 디자인을 자동으로 생성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의 목표와 제약 조건을 고려해 여러 디자인 옵션을 제시하고, 심지어는 디자인을 최적화할 수 있습니다.
3. 환경 모의실험: AI는 조경 디자인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모의실험을 통해 예측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생태학적 효과를 최소화하거나 지속가능한 옵션을 식별할 수 있습니다.
4. 자원 최적화: AI는 특정 지역의 기후와 토양 조건을 고려하여 물, 비료, 및 에너지 사용을 최적화하는 조경 계획을 수립할 수 있습니다.
5. 시각화 및 가상 현실 활용: AI는 디자인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가상 현실을 통해 디자인을 실제 환경에서 체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6. 지속가능성 측면 강화: AI는 지속가능한 디자인 옵션을 식별하고, 재생 가능 에너지 및 자원 효율성을 고려해 조경설계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주의할 점도 있습니다. AI는 전문 지식 없이는 사용자의 목표와 제약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으며, 인간의 창의성과 지역적인 특수성을 반영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따라서 AI가 조경설계를 지원하는 경우에도 전문가의 감독과 협력이 중요할 것입니다. 또한, AI의 사용은 윤리적인 측면과 환경적 영향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AI가 조경설계를 한다면 조경 전문가는 어떤 일을 해야 하나.
다음은 AI가 조경설계를 수행할 때 조경 전문가가 수행해야 할 역할에 대한 몇 가지 예시입니다.
1. 데이터 입력 및 초기 설정: 조경 전문가는 AI에게 필요한 초기 데이터를 제공하고, 프로젝트의 목표, 제약 사항, 사용자의 요구 사항 등을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2. 알고리즘 튜닝 및 교육: AI 모델의 학습을 지원하고, 모델의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알고리즘을 조정하거나 추가적인 훈련 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3. 디자인 가이던스 제시: AI가 생성한 디자인 결과물에 대한 전문적 평가를 제공하고, 사용자의 취향, 지역적 특성, 환경적 영향 등을 고려하여 디자인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4. 환경적 고려 사항 추가: AI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디자인을 생성하므로, 전문가는 더 깊은 환경적 고려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특정 식물의 성장 특성, 지형 특이성 등을 고려하여 디자인을 최적화할 수 있습니다.
5. 사용자 상호 작용 및 피드백 수집: AI가 생성한 디자인을 사용자와 상호 작용하여 피드백을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조정하여 보다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6. 지속가능성 및 생태학적 평가: 전문가는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AI 결과물을 평가하고, 생태학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추가 지침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7. 지역적 특수성 및 문화적 고려: 지역의 문화, 역사, 풍경 등을 고려하여 디자인을 지원하고, 지역 특수성을 반영할 수 있습니다.
8. 윤리적 측면 감독: AI가 생성한 결과물이 윤리적인 측면에서 적절한지 감독하고, 필요한 윤리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조경 전문가의 역할은 AI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전문적인 통찰력과 창의성을 통해 디자인을 보다 풍부하게 만드는 데 있습니다. 협력적 방식으로 AI와 조경 전문가가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하면, 높은 수준의 조경설계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조경설계가는 변화하는 AI시대에 대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다양한 전략과 준비 과제를 고려할 수 있습니다.
1. AI 기술 이해: AI 관련 기술 동향을 파악하고, 조경설계 분야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이해합니다. AI의 기본 원리와 작동 방식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를 쌓아둡니다.
2. 자동화된 도구 활용 능력 향상: 자동화된 도구 및 소프트웨어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웁니다. 3D 모델링, 가상현실, 시뮬레이션 등의 도구를 습득합니다.
3. 데이터 기반 의사 결정 강화: 데이터에 기반을 둔 의사 결정 능력을 향상시켜 AI의 결과를 더욱 효과적으로 평가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합니다.
4. 창의성 및 디자인 감각 강화: 창의성과 독창적인 디자인 감각을 강화해 인간적인 감성과 차별성을 부여하고, AI 결과물을 보완합니다.
5. 지속가능성과 환경 고려: 지속가능한 디자인 및 환경 고려 사항을 강조하고, AI의 결과물이 지속가능한지를 평가해 생태학적 영향을 최소화합니다.
6. 소통 및 협업 능력 강화: 다양한 전문가와의 소통과 협업 능력을 강화하여, 효과적인 팀워크를 구축하고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내도록 합니다.
7. 업무의 다양화와 전문화: 자동화가 가능한 부분을 이해하고, 특화된 분야에 집중해 전문성을 발전시킵니다.
8. 윤리적 고려와 책임: AI의 결과물이 지닐 수 있는 윤리적 문제에 대해 인식하고, 설계 과정에서 윤리적 책임을 다하도록 합니다.
9. 지속적인 학습과 업무 평가 : 지속적인 학습 습관을 기르고, 자신의 업무와 결과물을 지속적으로 평가해 개선의 여지를 찾아나가도록 합니다.
10. 비기술적 역량 강화: 소통 능력, 문제 해결 능력, 리더십 등과 같은 비기술적 역량도 향상시켜 프로젝트를 더욱 효과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11. 커뮤니티 참여 및 지식 공유: 조경설계 커뮤니티에 참여하고, 지식을 공유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경험을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챗GPT는 단 몇 초 안에 일련번호까지 달아서 답변을 해주었다. 놀라운 속도는 물론 논리적이고 정돈된 답변 내용에 말문이 막힌다. ‘인공지능이 과연 인간처럼 조경설계를 할 수 있을까?’란 의문에 대해 우리는 여전히 인간만이 가지는 고유의 감각과 감수성, 창의성의 영역에서 분명히 인공지능을 능가하리라 자신한다. 하지만 작품을 판정할 때 이러한 영역은 완벽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질 수 없는 주관적 의견일 수 있다. 언젠가는 무수한 통계와 축적된 데이터로 무장한 AI의 작품이 더 선호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조경설계 과정은 수많은 전문가의 협업과 의사소통, 클라이언트와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거쳐 탄생하는 창조 작업으로, 문제 해결 과정에서 AI가 해낼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설계 과정에 동반되는 수많은 작업을 AI가 해결하고 조경가는 좀 더 창의적인 디자인과 소통에 집중할 수 있어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제 눈앞으로 다가온 인공지능의 세상에서 조경가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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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감각] 산타 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
“산타 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라고 하기에 궁금했다. 받고 싶은 선물을 산타 할아버지가 어떻게 알아내는지. 그래서 실험하기로 했다. 부모님이 귀띔을 해주는 것 같으니, 갖고 싶은 것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했다. 엄마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올수록 무엇을 받고 싶은지 자꾸 물었다. 걱정스러운 얼굴을 보니 부모님이 산타의 스파이인 게 확실했다. 그래서 산타 할아버지는 이미 다 알고 있을 거라며 씨익 웃기만 했다.
크리스마스 날 아침, 책상 위에 생전 처음 보는 물건이 있었다. 우리집 산타는 머리맡이 아니라 책상 위에 선물을 두고 갔다. ‘다이아몬드’라는 보드게임이었는데 엄마는 산타가 주고 간 것이라고 했다. 이런 물건을 바란 적이 없다고 하자, 산타 할아버지가 이번에는 잘못 고른 것 같다고, 다음엔 산타에게 미리 연락할 테니까 갖고 싶은 선물을 엄마한테만 살짝 말해달라고 했다. 부모님이 스파이일 거라는 추측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다음부터는 갖고 싶은 것을 꼭 말했고, 크리스마스 아침에 원하던 선물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런 성탄절을 서너 번 거치면서 부모님이 산타일 거란 의심이 싹텄지만 실험은 하지 않았다. 대신 초등학생이 되어서도 산타를 믿는 어린이가 되기로 했다. 선물을 놓칠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열한 살 즈음인가. 이번에는 내가 진실을 알고 있다는 걸 산타에게 들켰고, 선물은 끝났다.
실험을 했던 크리스마스에 원래 받고 싶었던 선물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렸지만, 그해 산타가 잘 못 주고 간 다이아몬드 게임은 선명하다. 책꽂이에 버리듯 꽂아 넣었더니 엄마는 선물이니까 한번 해봐야 한다고 했다. 생각보다 재미있었지만 엄청 좋아하지는 않아서 종종 친구들이 놀러 오면 꺼내서 한 판씩 했다. 그리고 슬쩍 이야기를 꺼냈다. “너, 산타 할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고 있니?” 나는 아무래도 나쁜 애였던 것 같고, 산타도 이 점만큼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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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대화, 오늘의 재구성] 조현진
여리고 애틋한 아름다움에 대한 기록
대학교 2학년 시절, 대학 동기인 조현진이 동네 골목 구석구석을 들여다보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시선의 끝이 향한 곳은 담벼락을 따라 놓인 각양각색의 화분들이었는데, 알고 보니 주변 경관 속 미적 요소를 분석하는 과제를 하는 중이었다. 조현진은 화분의 개수와 형태, 그 속에 심긴 식물의 종류를 기록했다. 평범한 화분도 있었지만 본래의 용도에서 벗어나 식물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된 물건들도 모조리 적혔다. 빨간 고무대야, 귀퉁이가 깨진 욕조와 항아리, 우유팩까지. 그 주제가 참 독특해서 과연 교수님을 설득할 수 있을까 궁금했는데, 과제는 무사히 마무리되었고 좋은 학점까지 받았다. “마스터플랜 없이 만들어진 정원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보통은 어떤 조경가가 그은 선을 따라 공간이 조성되지만, 화분들이 만든 그 풍경은 실제 머무르는 주민들이 식물을 심고 싶다는 마음을 따라 천천히 완성된 결과물이에요. 사실 그곳의 생활환경이 쾌적하지는 않았는데, 고추나 깻잎 같은 작물을 길러먹고 주민들이 계속해서 주변 환경을 가꾸어 나가는 모습과 마음이 애틋해 아름답다고 느꼈어요.”
그린다는 건 어떤 순간을 포착해 영원으로 남기는 일이기도 하다. 조현진은 그 순간을 ‘마음이 머무는 자리’라고 이야기했다. 그 자리의 형태를 짐작해보고 싶어서 그간의 ‘풍경 감각’(14쪽)을 읽으며 몇몇 표현과 단어를 건져 올렸다. 우연, 잠시, 어슴푸레, 멀어지는 것, 사라지는 것, 돌아오지 않는 것, 존재할 수 없는 풍경, 산들거리는, 햐얗고 보송한, 상상하지 못하는 풍경, 환상, 뿌리, 보잘것없어 보이는, 조곤조곤, 발걸음을 붙잡아주길 바라는 마음.
어제는 뭐했나요?
마지막 라디오 방송을 마치고 왔습니다. 그간 MBC 라디오 ‘세상을 여는 아침’에 격주 목요일마다 게스트로 출연해 식물 이야기를 하는 코너를 진행했어요. 1년하고도 8개월 정도의 시간 동안 함께해서인지 좀 허전하네요. LH가 발간하는 소책자에 수록될 그림의 스케치를 하는 중인데, 정원 공간에 심긴 식물을 소개하는 지면에 실릴 세밀화 작업이에요. 12월에 코엑스에서 개최되는 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에서 선보일 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식물 세밀화’가 단순히 식물을 상세하게 그리는 작업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관찰과 연구에초점을 맞춘 그림을 식물 세밀화라고 부르더라고요.
넓은 의미로는 식물을 상세하게 그린 그림을 뜻할 수도 있지만, 좁게는 식물 한 종의 분류학적 특징을 정확하게 그려낸 그림을 식물 세밀화라고 불러요. 그래서 누군가에게 절 소개할 때 식물 세밀화가라는 표현은 쓰지 않아요. 식물을 소재로 삼지만 연구보다는 ‘덕질’하는 마음으로 관찰하고 그리거든요. 식물학적으로 중요한 식물 종의 특징도 바르게 다루려고 하지만, 이파리가 떨어진 자리에 나는 자국처럼 제가 식물에서 흥미롭다고 느낀 부분, 예쁘고 귀엽다고 느낀 부분이 잘 보이게 그리려고 해요. 사람들이 식물에 관심을 갖게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린다는 점이 표현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식물 소재로 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태니컬 아티스트라 불러요. 그런데 저는 식물뿐 아니라 다른 소재를 그리기도 하고, ‘풍경 감각’ 같은 에세이를 쓰기도 해서 일러스트레이터라고 주로 소개합니다.
대부분이 대학 전공을 선택할 때 성적에 맞추거나 진학하면무엇을 배우는지 구체적으로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브런치(brunch.co.kr/magazine/we-are-tree)에 연재한 글을 보니 어렸을 적부터 식물에 애정이 깊었더라고요. 그 애정이 바탕이 되어 조경학과를 선택했나요.
식물이 좋아서 조경학과를 선택한 게 맞지만 성적에 맞춰 입학한 게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죠. 한 가지 이유로 어떤 일을 선택하지는 않으니까요. 어릴 적 꿈은 화가였고, 중학생 때부터는 식물학자를 꿈꿨어요.
좋아하는 식물의 계통이 한국에서 자생하는 초본 종류였거든요. 공부해보니 정작 한국에서 심어 가꾸는 화초는 외국에서 들여와 개량한 것이 많더라고요. 자생 식물을 연구하고 정원 식물로 쓸 수 있게 개발하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입시 준비를 하다 보니 수험 공부도 이렇게 힘든데 연구를 평생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더라고요. 그러던 차에 조경이라는 분야를 발견했어요. 사실 입학 당시만 해도 ‘조경’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차를 타고 교외에 나가면 볼 수 있는 ‘○○조경’이라는 간판을 단 조경수 농장이었어요. 그래서 막연히 조경은 정원을 만드는 일이겠거니 생각했죠. 조경을 배워서 내가 좋아하는 자생 식물을 듬뿍 심은 정원을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입학했는데, 조경은 정원보다 훨씬 큰 영역을 다루는 학문이더라고요. 식물을 소재로서 공부하지만, 식물보다 사람의 이용을 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는 설계도 많았고요. 예상과는 달랐지만 재미있는 학문이었습니다.
조경학과 하면 식물을 주로 공부하고 잘 알 거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식물과 관련된 수업량이 설계보다는 적고, 특히 초본이나 화훼류를 다루는 경우가 드물죠. 수목학 수업을 어떻게 느꼈는지 궁금해요. 식물을 공부하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중학교 때 만난 선생님이 환경운동가였는데, 늘 꽃만 들여다보는 저에게 “지금은 꽃과 풀만 좋아하지만 계속 관심을 갖다보면 나무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될 거야”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당시에는 과연 관심을 갖게 될까 의구심이 들었어요. 꽃과 초본을 좋아했던 이유가 여린 느낌에서 오는 아름다움 때문이었거든요. 그런데 대학에서 수목학 수업을 들으며 나무 공부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어요. 초본의 경우 보통 구별하는 포인트가 꽃에 있거든요. 그런데 나무는 꽃이 너무 높은 곳에 달려 있거나 작아서 눈에 잘 띄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도대체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 궁금했는데, 수피, 잎맥, 잎 끝의 모양, 잎이 나는 방식, 줄기의 생김새 같이 섬세한 부분으로 구별할 수 있더라고요. 대상의 스케일은 커졌는데 오히려 작은 부분에 집중해야 구분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또 초본은 종류도 많고 이를 구분하는 방식에 대한 학자들의 의견이 정말 분분해요. 물론 수목 공부도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초본에 비해 좀 명쾌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초본보다는 종수가 적어서 그런지 공부하는 만큼 지식이 금방 쌓이는 기분이고요.
혼자 공부할 때는 식물을 감으로 구분했었는데, 수목학 수업을 통해 교수님과 명확한 근거를 통해 수목을 구분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어요. 한 교수님은 도감에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동정(생물의 분류학상의 소속이나 명칭을 바르게 정하는 일) 포인트를 만들어보라고 했는데, 이 조언이 큰 도움이 됐어요. 나만의 구분 방법을 만들어 내니 식물과 굉장히 친해진 기분이 들더라고요.
학교 다니며 가장 재미있게 들은 수업이나 흥미롭게 한 과제가 있다면요.
1학년 때 들었던 ‘미술의 이해’라는 교양 수업이 떠올라요. 강의를 들을
때마다 교수님이 그림을 사랑한다는 감정이 절절히 느껴졌거든요. 스크린에 자료를 띄울 때마다 “너무 예쁘죠” 하고 말을 건네는 표정을 보면
덩달아 행복해졌어요. 교수님이 강조했던 게 그림을 억지로 외우려고 하지 말라는 거였어요. 수업에서 만난 그림을 광고나 미술관에서 마주치고 알아보는 것만으로도 그림이 좋아지게 될 거라고 했죠. 이 수업 덕분에 그림이 더욱 좋아졌어요. 식물을 이야기할 때마다 이 교수님을 떠올립니다. 식물의 이름과 학명, 특징을 다 알려주고 나서, 그 교수님처럼
모든 것을 꼭 외워야 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해요. 이 식물을 누구와 함께 봤는지, 그날의 날씨는 어땠는지를 기억해도 좋다고 말해요. 그런 기억이 모여 사람들이 식물을 좋아하게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정원 설계 수업도 기억나요. 가상의 클라이언트를 정해 그를 위한 정원을 설계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정원 파워블로거를 클라이언트로
삼았어요. 아파트 베란다에 자신만의 정원을 꾸리던 사람이 주택 정원을 갖게 되면 어떨까 상상하며 정원을 설계했지만 교수님이 탐탁지 않아했죠. 무엇이 문제일까 고민하다 블로그의 게시물들을 다시 찬찬히
읽어 내려갔어요. 블로거의 본업은 교사이고 남편은 직장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고 딸이 하나 있는데, 가족이 다 모이는 시간이 적은 게 아쉽다는 글이 눈에 띄었어요. 정원에 가족이 모두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그 주변을 화단으로 둘렀어요. 화단은 블로거가 가족과 함께 원하는 식물을 심어 꾸려나갈 수 있도록 비워두었죠. 그제야 교수님에게 좋은 피드백을 들을 수 있었어요. 그때 조경가는 정원을 만드는 게 아니라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공간을 만드는 사람이고, 정원은 집 주인이 직접
꾸미고 가꿔나가는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조경설계를 할 때도 일종의 그림을 그리죠. 인상 깊었던 드로
잉 방법이나 표현 기법이 있나요. 도면에 그리는 식물 심벌이
설계 내용을 전달하기에 적절한 표현 기법이라고 생각하는지도 궁금해요.
사실 설계사무소를 다닌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아 식물 심벌이 시공에 적절한 표현 방법인지는 깊게 고민해보지 못했어요. 식물 심벌의 형태는
늘 흥미롭게 느껴졌어요. 정해진 표현법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 형태를 보면 그린 사람이 느낀 식물의 특성을 알 수 있거든요. 황매화 관
목을 그 꽃의 색을 따라 노란색으로 표현한다든지, 침엽수를 나타내는
심벌은 잎의 특성을 따 강조하는 말풍선 모양처럼 끝을 뾰족하게 그린
다든지 하는 점이 재미있어요. 소나무처럼 기우뚱하게 기울어 자라는
나무는 감자처럼 조금 찌그러진 원으로 그리고요. 늘 눈높이에서 바라
보는 나무들을 하늘에서 바라보는 시점으로 관찰해 표현한다는 점이
독특했어요.
졸업 직후에는 조경설계사무소를 다녔죠. 처음 맡았던 일 기억하나요.
막내로서 처음 맡았던 일은 제주도에 있는 한 호텔에 돌을 배치하는 일이었어요. 구획마다 다른 인공지반 제한 하중을 고려하면서 리듬감이
느껴지도록 경관석을 놓았죠.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맛본 건 어
린이대공원 안의 작은 정원을 만드는 일이었어요. 선배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보고용 파워포인트도 만들고 도면도 정리하며 책임감을
갖고 임했던 프로젝트에요. 그중 카페 앞에 ‘커피 앤 티가든’이라는 정
원을 꾸렸던 게 기억나요. 공간 이름처럼 커피나무와 차나무, 그리고 세이지처럼 향기가 나는 허브류를 심었어요. 방문객들이 음료의 원재료를 보면서 마시길 바랐거든요. 커피와 차, 그리고 허브티는 우리가 일상
적으로 마시지만 그것의 원재료가 식물이라는 사실을 곧잘 잊게 되니까요. 내한성이 나쁜 수목은 화분에 심어 두고 겨우내 어린이대공원 온실에 옮겨두었다가 날이 풀리면 다시 꺼내오도록 했어요. 야외 테이블 가운데 홈을 파서 허브를 심은 화분을 쭉 놓을 수 있게 했는데, 그 테이블
이 마음에 들었어요. 식물이 바닥에 심겨 있으면 한 덩이로 보이지만 눈
높이에 놓으면 자연스럽게 눈 맞춤을 하면서 자세히 들여다보게 만들
수 있거든요. 처음으로 맡은 프로젝트인 만큼 시공이 끝나 현장에 가니
뿌듯하기는 했는데, 첫 사회생활이기도 했고 당시 야근을 많이 했던 터라 기쁨이 그 피로를 이기지 못했던 모양이에요. 그때부터 조경설계를
내가 오래 할 수 있을지 고민했던 것 같아요.
흔히 글쟁이, 그림쟁이는 굶어 죽기 딱 좋다는 말을 하잖아
요. 일러스트레이터로 전향을 택했을 때 두렵지 않았나요. 전
공이 미술이 아니라 기반이 부족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고요.
잘 몰라서 용감했던 것 같아요. 그냥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현실감 없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그래서인지 일을 막 시작할 때도 막막했고, 지금도 어려워요. 당시 가지고 있던 그림이라고는 도면 스케치가 전부라서, 조급한 마음에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기도 했어요. 미술을 전공한
사람과 비교했을 때 무엇이 제 장점이 될 수 있을지도 명확하지 않았거든요. 다행히도 그맘때 일러스트 관련 공모가 많이 열렸어요. 네이버가
크리에이터를 위해 만든 플랫폼인 ‘그라폴리오’와 ‘밴드 오브 노들’(노들
꿈섬 운영계획·시설구상 2차 공모 당선팀)이 진행한 공모전이 눈에 띄었죠. 자연, 음악, 노들섬을 주제로 사계절을 보여주는 그림을 모집하고 있었는데,
조경을 전공해서인지 친근하게 느껴졌어요.
봄꽃의 왈츠(봄), 달맞이꽃
이 핀 여름밤(여름), 가을날의 기억(가을), 조용한 기다림(겨울)을 그려 제출
했고 당선되어 ‘2017 노들섬 캘린더’로 제작됐어요. 그 뒤로 조금씩 외주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개인 작업도 틈틈이 했어요. 식물을
좋아하니 식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죠. 식물에 관심 없는 사람의 눈길을 끌어올 수 있도록 식물을 영업해보겠다는 마음가짐이었어요. 열심히 하다 보니 『식물 문답』(눌와, 2021) 독립 출판까지 이어졌고, 라디오 게스트 출연 문의가 들어오기도 했고요.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시작한 일이 아니었는데, 돌이켜보니 참 운이 좋은 편이네요.
보통 작업을 하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나요. 이제 곧
겨울인데, 식물을 관찰하며 그리는 일을 많이 하면 계절의 영향도 받을 것 같아요.
세밀화 작업은 식물 크기에 따라서 다르지만 생김새가 복잡하면 한 달
이 넘게 걸리기도 해요. 보통 아무리 빠르게 작업해도 이틀 정도는 소요
되고요. 식물을 주로 그리니 온 계절의 영향을 받아요. 꽃 핀 걸 그려야
하는데 관찰을 할 수 없으면 난감하죠. 작업하기 가장 좋은 계절은 봄이에요. 여름도 좋지만 벌레도 많고 땀이 너무 많이 나서 힘들어요. 평소에 수목원에 자주 다녀요. 되도록 실물을 관찰해 정확한 모습을 그리
려고 하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을 대비해 사진 촬영을 많이 해두고 필요
할 때 꺼내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죠. 그런데 이것도 쉽지 않아요.
올해에는 여러 종의 쑥 꽃을 비교해 그리고 싶어서 계속 홍릉수목원에 갔
어요. 갈 때마다 꽃봉오리만 있고 조금만 있으면 필 것 같은데 그대로더
라고요. 그런데 잠깐 바빠서 며칠 가지 못했더니 야속하게도 그새 꽃이
폈다가 진 흔적만 남아있었어요. 그래도 사진보다는 실물을 보고 정확
한 모습을 그리고 싶어요. 이제 겨울이라 그간 쓰지 못한 글들을 쓰고
내년에 준비하고 있는 신간에 수록할 그림 작업을 시작하려고 해요.
어떤 것을 마주하거나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그리고 싶다는
의지가 발동하나요.
일상생활을 하다보면 마음이 가는 순간이 있어요. 막연한 표현일 수 있겠지만 마음이 머무는 자리 같은 게 있다고 말하곤 해요.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먼저 한다기보다 신경이 쓰이고 계속 생각이 나는 장면이 있어요. 그럼 왜 계속 떠오를까 고민하기 시작하고, 그때 느낀 감정이 무엇인지 골몰하면서 역으로 그 이유를 추적해 나가는 편이에요. 그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거라 봐도 될 것 같아요.
일러스트를 그릴 때 가장 선호하는 재료는 무엇인가요. 디지털 툴보다 손 드로잉을 선호하는 이유도 궁금합니다.
연필, 샤프를 제일 좋아해요. 수작업을 고집하는 이유는 디테일이 풍부하기 때문이고요. 디지털 툴에 좋은 브러시가 많기는 하지만, 수작업을
할 때 흑연이 종이에 남기는 풍부한 질감을 따라잡지는 못해요. 다양한
소재 중에서도 연필과 샤프를 가장 선호하는 이유는, 안심이 되는 재료이기 때문이에요. 과슈, 수채 물감, 색연필도 수정은 가능하지만 자유롭지는 않아요. 연필이나 샤프는 손쉽게 고칠 수 있어요. “잘못 그려도 괜
찮아”라고 얘기해주는 도구인 것 같아서 편안해요. 아슬아슬한 줄타기
를 하는 작업보다 넉넉하다는 기분이 들고, 작업할 때 느낀 이 여유로움
이 그림을 보는 사람에게 가닿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어요.
흑백이라는 점도 주요하게 작용해요. 하늘을 보면 색이 시시각각으
로 바뀌잖아요. 나무 이파리도 빛을 받고 있을 때랑 해가 닿지 않는 곳
에 있을 때 색이 크게 다르고요. 색이 주는 아름다움도 있지만 순간적
이고 고정되어 있지 않아서, 발 디딜 곳 없는 막연한 신기루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요. 색이 구체적이고 만져지지 않는 느낌이라면 형태는 그에
비해 변화가 덜해요.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이 달라 보이기는 하지만, 그
변화마저도 색만큼 다이내믹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형태를 자꾸 쫓게
되더라고요. 특히 단단한 형태를 묘사할 때 느껴지는 안정감을 좋아해요. 연필과 샤프는 흑과 백으로 형태에만 집중하기 좋고, 그 형태를 구체적으로 세밀하게 묘사할 수 있는 재료에요.
채도가 높지 않은 부드러운 색을 주로 사용하는 것 같아요.
앞선 답변과 연결되는데 색이 강하면 형태와 연필 질감이 묻히게 되거든요. 그래서 연한 색을 사용하게 돼요. 기본적인 색만 깔아서 형태와
질감에 많이 집중하도록 만들어요. 생각보다 우리가 어떤 사물의 형태를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장미로 예를 들어볼게요. 우리는 모두
장미를 알고 있죠. 긴 줄기 끝에 여러 꽃잎이 둥글게 겹친 모습으로요.
그렇지만 그 모습을 오랫동안 들여다본 적은 없을 거예요. 다 똑같아 보이는 장미의 꽃잎은 안쪽으로 갈수록 더 작고 구겨진 형태에요. 그리고
직립하는 줄기에 항아리 모양 꽃 한 송이를 매다는 것은 꽃다발용 장미의 특징일 뿐, 덩굴로 자라는 것이나 평평한 꽃을 피우는 품종, 여러 송
이를 뭉치로 올리는 종류도 있죠. 가시의 크기, 밀도도 다르고요. 그래서 식물 세밀화를 그릴 땐 형태를 제대로 묘사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되죠. 그런데 요즘은 채도 높은 색을 쓰면서도 형태와 질감을 잘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어요. 너무 옅은 색을 쓰다 보니 오히려 본래 식
물의 특징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그림으로 감상하는 즐거움이 부족하다고 느껴져서요. 한 장의 그림 안에 흑백의 식물과 색을 입힌 식물의 모습을 모두 담는 등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있어요.
인물과 동물을 그릴 때 얼굴을 생략하거나 뒷모습을 그리는
경우가 많아요. 이유가 있나요.
얼굴은 너무 구체적인 감정을 전달해서 빼려고 하는 편이에요. 또 얼굴을 그리는 순간 사람들이 생김새를 보게 되고 그에 대한 평가가 뒤따르
게 되더라고요. 감정이나 생김새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순간 그림에
대한 해석이 너무 좁아지게 돼요. 표정보다는 그림 전체의 분위기나 은유를 읽어줬으면 하는 마음에 얼굴을 생략하거나 가리고 있어요. 2023년 11월호 ‘풍경 감각’ 글인 ‘11월 저녁’도 얼굴 위에 구름을 올려두었는
데, 표정을 다 그린 후 구름으로 덮은 거예요.
유리병, 손과 손 사이의 틈, 큐브 같이 어떤 프레임 안에 식물
이나 풍경, 오브제를 담아 그리는 표현 방식도 즐겨 사용하는
것 같아요.
프레임을 넘나드는 느낌이 좋아요. 프레임을 사용했을 때 공간 자체가
깊어지기도 하고요. 나무를 그릴 때 캔버스에 꽉 채워서 그릴 수도 있지
만, 프레임을 두고 그 안에 나무를 그리면 공간감이 생기고 어떤 맥락이
생기기도 해요. 해석의 깊이가 깊어지고, 사람들이 프레임 속 대상에 집중하게 되는 효과도 있고요.
롤 모델이 있나요. 꼭 그림이 아니어도 분야와 상관없이 좋아
하는 아티스트,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 음악이나 영화가 있다
면 소개해주세요.
그때그때 하고 싶은 일들을 쫓아가는 편이라서 특별한 롤 모델은 없어요. 영화, 소설, 음악을 비롯해서 여러 분야의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그
사람들의 걸어온 발자취를 따라갈 수는 없으니까요.
세밀화 수업도 진행하고 있죠. 주로 어떤 사람들이 오나요.
그리는 일과 가르치는 일은 전혀 다를 텐데, 어떻게 느꼈는지
궁금합니다.
무료 강의에는 정의 내리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사람이 오는 편이고, 유료 수업에는 그림에 진지하게 관심이 있는 분들이 많이 와요. 선생님도
꽤 많이 수강하는데, 아이들과 함께 그림 그리기 수업을 하면 좋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가르치는 일은 그리는 일과 또 다른 재미가 있어요.
대부분의 사람이 식물과 그림 둘 중 하나에 관심이 있는데, 식물을 잘
몰라서 혹은 식물을 잘 묘사할 자신이 없어서 그리기를 주저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기술을 가르치기보다는 주로 응원을 하다가 돌아오곤
합니다. 그리는 건 연필을 잡고 선을 긋기 시작하면 그만이에요. 하지만
연필을 잡고 선을 그을 수 있도록 기운을 북돋아주는 건 쉽지 않죠. 수강생들의 그림을 보면 각자 식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는 게 느껴져요. 어떤 사람은 꽃을, 어떤 사람은 이파리를, 어떤 사람은 줄기의 디테일을 봐요. 세부적인 묘사보다 식물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리듬감에
집중하는 사람도 있어요. 서투르더라도 열심히 관찰해서 그리면 각자
의 시선과 개성이 담긴 그림이 완성돼요. 사실 처음에는 식물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이를 확실하게 묘사하는 방법을 가르치려 했었는데, 3시간
남짓한 수업 시간에 전부 담기에는 턱없이 방대한 내용이더라고요.
블로그, 브런치, 그라폴리오, 트위터, 인스타그램까지 다양한
매체를 운영하고 있어요. 가장 애정을 쏟고 있는 매체는 무엇인가요.
블로그는 최근에 관리를 하지 못한 상태라 조금 머쓱하네요. 인스타그램(@jo.hnjn)에 게시물을 많이 올리고 있는데 팔로워 수가 생각보다 중요
하더라고요. 그 수가 영향력을 의미하기도 하니까요. 작품이 마음에 들
더라도 팔로워 수가 적다는 이유로 작업을 맡기지 않는 걸 본 적도 있어
요. 소통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생업을 이어나가기 위해 SNS를 열심히
운영하려고 합니다. 또 전시를 따로 열지 않는 이상 제 그림을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창구이기도 해요. 댓글 수나 좋아요 수에 연연해하지 않아야 하는데, 막상 그 수가 적으면 ‘내가 뭘 잘못했나’ 하고 올린 글을 다
시 읽어보기도 해요. 제일 애정을 갖는 매체는 인스타그램과 브런치에요. 인스타그램이 이미지 위주의 매체라면 브런치는 텍스트를 보여주기
에 가장 좋아요. 한동안 글을 올리지 못했는데 겨울이 되었으니 다시 좀
활성화를 해볼 계획입니다.
어제까지 라디오 방송을 하고 왔다고 했죠. 처음에 어떻게 연락이 닿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식물 문답』을 바탕으로 한 전시를 라디오 PD님이 보러왔었다고 해요.
책 내용 중 재미있는 꼭지의 글과 그림을 함께 전시했는데, 『식물 문답』
의 주요 내용이 “화투의 ‘똥’은 어떤 식물일까?” “라일락꽃을 먹는 이유
는 왜일까?”처럼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 다
루고 있거든요. 마침 식물 기르는 것이 트렌드가 되고 있던 때였는데, 이
런 이야기를 하는 작가라면 게스트로 섭외해도 라디오 청취자들이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겠구나 생각했다고 하더라고요.
새벽 5시에 시작해 7시에 끝나는 라디오라 새벽일을 하거나
출근길에 오른 사람이 많이 들을 것 같아요. 이들이 듣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이야깃거리를 어떻게 선정했나요.
처음에는 제가 좋아하는 식물을 소개하려는 욕심이 있었어요. 그런데
PD님과 작가님이 식물 고르는 기준이 저와 다르더라고요. 두 분이 은방
울꽃은 어떻겠냐고 제안해준 적이 있어요. 알고 보니 그 즈음에 한 연예
인이 결혼할 때 은방울꽃으로 만든 부케를 들고 나와서 화제가 됐더라
고요. 또, 계절마다 주목받는 왕벚나무나 코스모스 같은 식물도 말해줬
고요. 내가 잘 알고 있는 식물도 좋지만, 무엇보다 대중이 관심을 가지
고 있는 화제를 더 중요시해야 하더라고요.
이야기의 깊이도 조절할 필요가 있었어요. 처음에는 식물에 대해 더 긴
설명이 필요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지루하다는 청취자 피드백을 받았어요. 그 뒤로는 하루 일과의 시작을 준비하며 가볍게 들을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고민하기 시작했죠. 말의 속도도 조금 높이고 무엇보다 구구절절한 느낌이 들지 않도록 대본을 거듭 수정했어요. 식물에 대해서는
말이 자꾸 많아져서 초고를 쓰면 1시간 넘는 분량이 나오기 일쑤였거든
요. 신청곡과 광고가 송출되는 시간을 빼면 저에게 주어진 시간은 15분
남짓이니 계속 고쳐 쓰며 분량을 절반 정도로 줄였죠. 전문 용어를 쓰기보다는 더 알아듣기 쉬운 표현과 단어로 바꾸었고요.
풍경 감각에서 ‘손들어 볼까요?’(2022년 6월호)를 인상 깊게 읽었어요. 관엽식물을 위해 보일러를 틀고 가습기를 틀고 서큘
레이터를 틀고 전등을 달다가 문득 “도시가스를 때고 화석
연료로 생산한 에너지를 아낌없이 쓸수록 아름답게 자라나는 식물들. 어느새 이 풍경을 좋아할 자신이 없어졌다”고 했죠.
식물을 키우는 건 몸과 마음을 돌보는 좋은 취미이지만,
정원을 꾸릴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고 식물을 가꾸는
일이 꼭 건강한 지구를 만드는 일과 이어지는 것 같진 않아요. 브런치에 연재하는 글에 “안타까운 일이지만 식물을 기
르기 좋은 집은, 가난을 벗어날 확률이 낮은 그림 작가인 나
에겐 없을 것이다”(‘식물을 기르기 좋은 집에 살 수 있을까?’ 중)라는 말을 쓰기도 했고요.식물을 키우는 일이 생산적이고 친환경적으로 보이는데, 직접 키워보면
소비적인 활동이고 자연환경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부분이 많다는
걸 알게 돼요.
식물 재배에 사용하는 흙만 해도 그냥 자연에서 가져올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바깥의 흙은 벌레 알과 오염 물질 때문에 실내
정원에는 적당하지 않죠. 그래서 코코피트, 피트모스, 펄라이트, 제오
라이트 같은 여러 재료를 섞어 인공 배양토를 만드는데, 이중에는 해외에서 수입해서 쓰는 것도 많아요. 환경에 이롭지 않겠죠. 질문처럼 관엽
식물은 잘 기르기 위해 화석 에너지를 써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과장된 부분이 있지만, 집안에 들인 식물을 잘 키우기 위해 야외에 있는 식물을 기후변화에 시달리게 만드는 일일 수 있어요.
좋아하는 식물을 키우는 일이 지구 어딘가에서 자라나는 다른 식물을 죽어가게 만드는 데
일조를 한다고 볼 수도 있죠. 과연 이게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올바르게 취미를 즐기는 방식인지 의문이 들더라고요. 그렇다고 식물을
키우지 말라고 강요하는 게 옳은 건 아니에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소비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걸 택하려 노력하면 어떨까 생각해요.
해가 부족하면 내음성이 강한 식물을 고르고, 높은 습도를 유지하기 어렵다면 촉촉한 공기를 좋아하는 안스리움과 고사리류를 피하는 방법
이 있겠죠. 병해충 관리를 위해서 농약을 써야 하는 순간이 있어요. 하지만 가능하다면 친환경 농약을 택해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수 있고요. 식물을 기르는 올바른 방법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에요. 식물을 좋아한다면 자신이 식물을 기르는 방식에 대해 한 번쯤은
고민하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죠.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나요. 많은 작가가 본명 대신 작가명
을 쓰기도 하는데, 만약 작가명을 쓴다면 뭐라 짓고 싶나요.
뚜렷한 방향성은 없어요. 그냥 그때그때 하고 싶은 일을 해내가려고 해
요. 일단 눈앞에 놓인 과제를 잘 해결해나가고, 하나하나 쌓아가다 보면
그게 제 캐릭터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사실 이름이 평범한 편이라 작가명을 만들면 어떻겠냐는 조언을 많이 받았어요. 작품이 아무리 좋아도 대중이 이름을 잊는다면, 클라이언트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딱히 절 표
현해줄 다른 이름을 찾지 못했어요. 정작 식물을 너무 좋아해서 그 이름을 정확하게 부르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입장에서, 작가명을 쓴다는 게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제 특성과 이미지는 ‘조현진’
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잘 드러날 것 같아요.
고수리 작가가 쓴 『마음 쓰는 밤』(창비, 2022)이라는 에세이집이 있어요. 특이해서 썩 좋아하지 않던 자신의 이름을 사랑하게 된 일화를 담은 글이
있는데, 거기서 본 문장이 위로로 다가왔어요. “내 이름이 좋아진 건 작가로 일하면서부터였다. …… 때론 다른 이름들에 숨어버릴 수 있는 조
용한 이름들, 그렇지만 아는 사람들만 알아볼 수 있는 활짝 핀 이름들,
흔한 이름들 가운데 나만 알아볼 수 있는 승현, 민경, 다혜가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특별했다. 다른 꽃들과 비슷하지만 나만 알고 있는 하나의
꽃을 기억하는 마음이랄까. 그런 마음으로 우리 집 아이들 이름도 평범하고 흔하게 지었다.” 작가의 말처럼 저의 이름도 어디에나 있지만, 만나면 반갑고 정겨웠으면 좋겠습니다. 때때로 익명성에 숨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또 조현진이라는 이름이 중성적이라 좋기도 해요. 몇몇 분들이 막연히 절 여자일거라고 짐작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한 클라이언트는 전화
통화까지 나누었는데도 현장에서 절 찾지 못한 경우도 있어요. 여자라고 생각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생각하면 마냥 흐릿한 이름인 것 같진 않아요. 여자인줄 알았는데 남자였던 작가라고 기억에 남을 테니까요.
조현진은 조경학을 전공한 일러스트레이터다. 2017년과 2018년 서울정원박람회, 국립수목원 연구간행물 『고택과 어우러진 삶이 담긴 정원』, 세밀화도감 『오산천 자연 도감』 등의 그림을 그렸고, MBC FM4U ‘세상을 여는 아침 안주희입니다’와 교통방송 ‘아침엔 TBS’에서 식물 코너를 맡았다. 『식물 문답』을 출간했으며, 북한산 자락의 작은 방에서 식물을 키우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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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디자인 오피스] JWL
고민은 깊게 생각은 명료하게 결과는 아름답게
작동하는 공간을 고민하다
Just Working Landscape
많은 사람이 우리의 정식 명칭 JWL이 무슨 뜻인지 궁금해한다. 이번 기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밝히자면 JWL은 ‘Just Working Landscape’의 약어다. 번역하자면 ‘놓아두면 알아서 작동하는 공간’ 정도일 것이다. 자칫 가벼워 보일 수도 있는 이 세 단어의 조합에 우리가 지향하는 공간에 대한 생각이 잘 담겨 있다.
보는 사람의 눈을 단번에 매혹시키는 화려한 조형 언어나 깊은 지적 탐구를 통해 도출한 형이상학적 설계 개념은 우리의 작업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특별히 설계한 것이 없어 보인다거나 너무 뻔한 혹은 소극적 디자인이라는 평을 들을 때가 있다.
그러한 평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다소 심심해 보이거나 크게 도드라지지 않는 디자인을 행하는 이유는, 그러한 디자인 행위가 결국 땅과 함께하며 가장 오래 갈 디자인이라는 굳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조경가의 디자인 행위는 본질적으로 땅과 사람의 속성을 잘 이해하여, 최적의 동적 평형 상태를 찾아 스스로 작동할 토대를 만드는 일이라고 믿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깊은 맛을 자아내는 좋은 술처럼, 우리가 만드는 공간도 잘 늙고(well-aging), 잘 숙성된(well-matured) 곳이 되길 바라며 오늘도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하고 있다. (원종호 소장)
JWL과 함께 한 2년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어느덧 벌써 2년 차 사원이 됐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JWL은 어떤 회사냐는 질문을 여러 번 받았었는데, 이번을 계기로 우리의 일상을 공유해 보고자 한다.
처음 입사했을 때 일반적인 설계사무소와는 다른 업무 수행 방식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JWL은 사원 때 부터 PM을 맡아 프로젝트를 진행해 나간다. 그렇다고 모두가 서로에게 무관심한 채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스럽게 서로의 업무를 파악하는 네트워크가 형성돼 혼자만의 힘으로 벅찬 순간이 올 때는 도움을 주고받기도 하며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다.
설계사무소답게 현장에 대한 이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대상지의 초기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답사를 자주 나가는 편이다. 비록 야생의 상태일지라도. 답사를 통해 얻은 자료들은 적절히 설계에 녹아들어 좀 더 합리적인 설계안이 만들어지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종종 시공까지 이어지는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높은 완성도를 위해 직접 발품을 파는 등 사무실 밖에서의 노력도 아끼지 않는다. 시공 현장에서도 많은 걸 배울 수 있다. 내가 설계한 시설물이 어떤 공정으로 진행되는지 확인할 수 있고, 직접 식재하면서 식물의 특성을 배울 수 있어 다음 프로젝트에서 식재 계획을 진행할 때 한번 더 고민하고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상당히 자유로운 사내 분위기다. 그래서 업무를 진행할 때도 모르거나 배우고 싶은 부분에 대해 자유롭게 얘기를 나누는 편이다. 비슷한 나이대가 모여서 그런지 취미나 취향도 많이 겹친다. 퇴근 후 다 같이 클라이밍을 가거나 평소 가고 싶던 곳을 공유해 같이 소소하게 답사를 다녀오기도 한다. 이외에도 미식가의 회식, 운동 지원금, 해피아워, 생일파티 등의 소소한 복지가 더해져 지금과 같은 분위기의 JWL이 만들어진 것 같다. (이정화 사원)
본질을 고민하는 설계
구조화된 사고
‘주 대리, 이제 이 정도는 할 수 있지?’라는 말과 함께 600만 평에 달하는 기업도시 도면이 책상 위에 놓였다. 너무 거대한 땅이다 보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갈피조차 잡지 못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땅의 잠재 가치를 발굴하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드러내주는 방식으로 점차 진행하다 보니 결국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우리만의 답을 찾아나갈 수 있었다.
이런 일을 할 때마다 우리는 겉으론 디자인으로 설득하는 사람들이지만, 본질은 구조화된 사고로 설득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난무하는 정보를 간명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엮어내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을 온몸으로 겪게 해준 이 프로젝트는 가장 힘들었지만 가장 사랑하는, 애증의 프로젝트로 남을 것이다. (주민수 팀장)
본질에 닿기 위한 한걸음
최근 가장 깊게 발을 담그고 있는 프로젝트는 서초역 인근에 건축 예정인 한 공연장이다. 처음 맡아보는 중형 프로젝트인 데다 주변에 엮여 있는 이슈들이 많은 탓에 애꿎은 트레이싱지 낭비를 셀 수 없이 많이 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낭비는 진행 중이다.
다양하게 변모하고 있는 한국의 문화예술을 담는 공연장,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어떤 경험을 기대할까. 건물의 모퉁이에 난 언덕길을 오르며 느낄 수 있는 기분 좋은 감상은 무엇인가. 그리고 단편적으로 존재하는 각각의 조경 공간이 가져야 할 적정한 역할과 그 안에 담는 본질적 이야기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고민하면 할수록 머릿속 질문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프로젝트가 잘 마무리되고 나의 수많은 질문이 어렴풋이 해결된 어느 날 지금을 돌이켜보면, 조경가로서 한 걸음을 견고히 할 수 있었던 시간으로 기억될 수 있길 바란다. (박지현 사원)
여덟 명의 어벤져스
저녁 있는 삶
우리 회사의 장점 중 하나인 저녁 있는 삶이 나에게 다양한 취미를 경험하게 해 준 것 같다. 보통 직장인이라면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야근 때문에 한 가지 취미를 가지기도 힘든데, 입사 때부터 지금까지 퇴근 후 스무 가지 이상의 다양한 취미를 가졌다.
이런 활동이 가능했던 건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방법이 다른 설계사무소와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원부터 소장까지 개개인이 각자 프로젝트를 도맡아서 진행하기 때문에 스스로 기민하게 프로젝트 일정을 관리하고 조율한다.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일정이 몰려 야근하는 일이 발생하면 나머지 팀원들은 하던 일을 잠시 중단하고 어벤져스가 되어 그 팀원을 돕는다. 이러한 방법 때문에 팀원 대부분은 저녁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요즘 퇴근 후 운동하는 재미에 빠져 있는데, 내년에는 첫 바디 프로필 촬영까지 계획하고 있다. 이러한 목표를 갖게 해준 JWL에 고마움을 표하며 오늘도 헬스장으로 간다. (박태영 대리)
배우면서 채워나가는 설계
6월 전체 회의에서 팀장님이 A 아파트 실시도면 납품에 대한 추가 인력을 요청했다. 당시 뭣도 모르던 나는 바로 팀장님을 찾아가 프로젝트 참여 의사를 밝혔다.
처음 도면 목록을 봤을 땐 ‘이걸 언제 다 하지?’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래도 기본 도면부터 차근차근 진행하다 보니 상세 도면 순서가 되었다. 상세도 경험은 많이 없었기에 시작할 땐 막막함이 가득했다. 그래도 지금까지 배웠던 것을 적용하며 도면을 작성했다. 도면을 작성하면서 헷갈리는 부분이 생기면 주변 대리님에게 물어보며 디테일한 내용들을 채워 나갔다. 작성한 뒤에는 팀장님과 소장님의 검토를 받으면서 모르던 부분들을 배우고 내 도면에서 부족한 설명을 채워나갈 수 있었다.
처음에는 막막하기만 했던 작업이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해결되는 것을 느끼며, 다시 한번 팀워크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도 더 열심히 공부해 다른 팀원들에게 도움이 되어야겠다. (이정화 사원)
자연과 우리의 시선이 마주할 때
자연이 주는 울림
작년 가을부터 JWL과 함께하게 되었다.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경주시 일대의 산을 답사하게 되었다. 회사 구성원 모두 GPS 기반의 산악인 앱을 익숙하게 사용하는 것이 의아했다. 하지만 몇 번 답사를 하면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정 교수님은 언제나 사람의 손발이 닿지 않는 곳을 향한다. 이번엔 가시덤불과 발이 푹 빠지는 늪지대였다. 그 이후 직원들 사이에서 ‘황천길’이라고 불리게 된다. 답사 막바지쯤 공간을 압도하는 아름드리나무가 우거진 숲을 만났는데, 거친 숲길에서 겪었던 고생이 희미해질 만큼 큰 울림을 준 장소였다. 우리는 대지가 제공하는 순간들 속에서 아름다운 장면을 발견하는 눈과, 그 장면의 가치를 전달하는 목소리에 힘이 있는 설계사무소다. 현재 맡은 프로젝트에서도 대상지 답사 중 얻은 인사이트와 숲의 흐름을 대상지까지 연결하는 것을 주 전략으로 삼았다. 과정 중에 매끄럽지 않은 경험도 있지만, 이곳이라면 그 끝에 마주할 결과물에 대한 믿음이 있다. 앞으로 JWL과 함께 쌓아갈 자연과의 협업이 기대된다. (김제인 대리)
자연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베트남의 광역 부지를 계획하는 마스터플랜 프로젝트 덕분에 해외 출장을 가게 되어 우리 회사 엄청나잖아? 라는 고취에 빠진 것도 잠시, 미개발된 베트남 오지에서 정글의 법칙을 찍었다. 하지만 고군분투해 조사한 자료가 쓰이는 것을 보며 뿌듯했다. 실내에 앉아 컴퓨터로 자료를 조작하는 일에만 익숙하던 내가 부지를 직접 탐방하고 이색적인 자연환경을 공부한 좋은 기회였다.
조경설계는 조사와 설계가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실무에서는 현장에서 발로 뛰는 일보다는 사무실에서 단축키 두드리는 업무의 비중이 늘게 된다. 우리 회사에서는 기회가 될 때마다 원형에 가까운 자연을 답사하러 가곤 하는데, 시원한 바람을 쐬며 무성한 풀내음을 맡다 보면 아름다운 자연에 우리의 시선이 닿는 순간을 기대하게 되고 내가 이 일을 선택한 이유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정은혜 사원)
제이더블유랜드스케이프(JWL)는 다양한 오픈스페이스의 계획·설계를 수행하는 디자인 오피스다. 대상지의 다양한 환경 조건을 세심하게 살피며 대지의 잠재력을 만개시키는 설계를 지향한다. 간결하고 심미적인 설계 언어를 통해 대상지의 공간적 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동시대의 격조 있는 문화적 산물로 인식될 수 있도록 합리적인 경관 배치와 감각적인 공간 연출을 동시에 추구한다. 이용자 모두의 다양한 요구에 절묘하게 부합하도록 작동하는 장소 구현을 중요한 임무로 삼고 있다. www.jwlandscape.net, instagram(@jwlandscape_of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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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스케이프] 도시를 보살피는 위생 경관
통계청 기록에 따르면, 한국의 상수도 보급률은 2021년을 기준으로 97.7%다. 1960년대의 보급률이 22%였다고 하니, 반세기만에 실로 놀라운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상수도上水道(waterworks)는 하수도나 공업용 수도와 구별할 때 부르는 용어이며, 일반적으로는 ‘수도’라 칭한다. ‘수도법’에서는 수도를 ‘관로管路, 그 밖의 공작물을 사용하여 원수原水나 정수淨水를 공급하는 시설의 전부’라 정의한다. 보건 위생과 소화消火를 목적으로 한 급수 설비 체계를 97.7% 갖췄다고 함은, 한국 대부분 지역에 깨끗한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90%에 이르는 도시화율과도 비례한다.
도시의 상수도 시설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양질의 식음수 공급이 우선되어야 하므로 정수장 설비 마련은 필수다. 열약한 환경에 놓인 근대기의 도시민에게 맑은 물을 생산, 공급하는 시설은 도시 공원보다 더 절실할 수 있는 중요 기반 시설이었다.
전통적으로는 우물을 파서 물을 끌어 올려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형편이 좋은 집에서는 개인 우물을 파기도 했지만, 대체로 마을마다 공동 우물을 파서 주민이 함께 이용하고 관리했다. 여름이면 충분한 비가 내렸고 계곡과 하천이 발달한 곳에 취락지가 있었기 때문에 식음수와 생활용수를 취하는 일이 비교적 손쉬웠다. 전국에 분포한 화강암반은 좋은 여과지가 되어 양질의 지하수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상하수도 분리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개항장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인구가 집중 증가하는 19세기에 이르자 식음수의 부족 문제와 수질 문제가 표면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한다.
근대식 상수도 시스템은 하천수를 끌어와 침전과 여과의 정수 과정을 거친 뒤 동력을 이용해 배수지로 송수하고 배수관을 통해 급수하는 것이다. 이보다 간단하게는 차집관로를 설치해 물을 자연 여과하여 집수정에 모았다가 배수지로 송수하고 배수관을 통해 급수하는 방식도 있다.
...(중략)...
2년 간의 ‘모던스케이프’ 연재는 근대 도시의 가장 큰 근간인 ‘교통’으로 시작해 ‘위생 경관’에서 끝을 맺게 됐다. 개인적으로는 단편적인 근대 경관의 소재를 동서와 고금으로 확장해 볼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소득이다. 독자들이 100여 년 전 이 땅의 모던스케이프를 상상하고 이해하는 데 이 지면이 조금이나마 도움 되었길 바란다. 더불어, 암흑기이자 단절기로만 단정해왔던 20세기 전후 시기가 사실은 지금을 자리할 수 있게 한 토대였음을 공감하는 기회가 되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환경과조경428호(2023년 12월호)수록본 일부
참고문헌
부산 중앙공원 홈페이지 www.bisco.or.kr/jungangpark
이연경, “도시위생의 수호자, 상수도”, 『도시를 보호하라』, 2021, pp.74~167.
김백영, “일제하 서울의 도시위생 문제와 공간정치: 상하수도 우물의 관계를 중심으로”, 『사총』 68, 2009, pp.191~226.
김재호, “식수문화의 변화과정: 우물에서 상수도까지” 『한국민속학』 47, 2008, pp.235~265.
통계청 www.kostat.go.kr/ansk/
그림 출처
그림 1. www.visitbus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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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조경 교육의 다음 50년을 위해
조경 교육의 다음 50년을 설계할 시점이다. 교육인증이 조경 교육의 전문성을 키우고 조경 실무의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2023년 8월호 에디토리얼에서 예고한 대로 이번 달 특집의 주제는 조경학 교육인증이다. 다면적 토론과 숙의를 초대하는 난제의 첫걸음을 떼기 위해, 이번 지면에서는 주로 인증의 필요성을 논의하고 주요 사례를 검토한다.
특집을 여는 글 “조경학 교육인증 논의를 시작하는 첫 질문”에서 김아연 교수(서울시립대)는 인증의 필요성을 다각도로 짚는다. 그의 진단처럼 “‘지금의 조경 교육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50년 역사를 축적해온 조경 교육이 “전적으로 교수 개인의 역량에 내맡겨져 있”는 당혹스러운 현실은 조경(학)의 전문성에 의구심을 갖게 한다. “조경 전문가(의) …… 기술과 지식이 무엇인지 규명하고 이를 검증하는 시스템의 부재로 해마다 …… 쏟아지는 졸업자들의 자질을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 자질의 일관성은 한 분야의 전문성을 증명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러한 일관성은 전문가를 배출하는 일관성 있는 교육에 근거한다.”
김아연 교수는 조경학 교육인증 논의의 “지속성을 담보하고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질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은 곧 “기성세대로서 우리는 어떤 미래를 물려줄 것인가”라는 질문에 성실히 응답하는 데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어지는 글 “설계 교육의 정도는 무엇인가”에서 최영준 교수(서울대)는 조경학 교육인증제의 “실현 여부에 대해 누구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 조경설계 교육에 대해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몽타주가 정해진 답 없이 흐릿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그리고 설계 교육의 위상을 “교육인증제를 기회로 바로잡고 전국의 모든 학과‧전공들이 정도正道로 삼을 만한 설계 교육의 정도正度”를 논의한다. 그는 “교육인증제를 통해 조경학과 교과 과정에서 학습한 지식과 기술을 토대로 동시대의 문제를 스스로 정의하고 그 해결책을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하는 통합적 틀을 제공하는 설계 과목의 쇄신이 이루어진다면, 조경학도 모두가 자기 브랜드를 갖는 조경 전문가로 성장해 나가는 큰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김정화 교수(네바다주립대)는 글 제목처럼 “미국 조경학 교육인증제의 현황과 시사점”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에서 직접 경험한 재인증 과정을 공유한다. 그가 상세하고 깊이 있게 소개하는 바와 같이, 미국의 조경 교육인증 주체는 조경인증위원회LAAB이며, 인증제의 목적은 “조경 학위 프로그램의 교육 품질을 평가하고 지지하며 발전시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교육과 직능의 밀접한 연결이 핵심으로, 학생들이 조경 직능에서 요구되는 지식과 기술을 갖출 수 있도록 조경 분야의 고품질 교육을 보장하는 데 있다.” 그는 전공 및 학위명, 학위 과정 기간과 요건, 정보 공개 온라인 플랫폼, 교수진 규모와 임용 상태, 소속 대학의 인증 여부, 관리자, 인증 지속을 위한 의무 사항 등 미국 조경학 교육인증제의 인증 기준을 소개한다. 또한 인증 신청. 자체 평가, 방문 평가, 평가 검토와 의견 수렴 과정, 인증 결과 공표로 이어지는 인증 절차를 설명한다.
김정화 교수는 교육인증의 효과와 의미를 1)인증제를 통한 조경 교육의 핵심 가치 공유, 2)통합적 데이터 구축, 3)확장과 네트워크 등 세 가지로 제시하며, 인증제는 “매우 체계적이면서도 동시에 느슨한 구석도 지닐 필요가 있”으며 “인증 체계와 과정에서 인증을 받으려는 주체의 역할과 권한이 중요하다”는 시사점을 끌어낸다.
김영민 교수(서울시립대)의 글 “IFLA APR의 조경 교육 방향과 기준”은 지난 2018년 세계조경가협회 아시아태평양지회가 마련한 ‘교육 정책과 기준, 그리고 인증 과정’의 틀과 내용을 소개한다. 교육 프로그램의 목표와 목적, 행정과 운영, 전문 교과, 교육 성과(10가지 세부 분야), 전문 성과, 시설‧장비‧정보 자원, 대외 활동 등으로 구성된 조경 교육 기준은 한국 조경 교육의 기본적 틀을 재정비하는 데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김영민 교수가 말하듯, 한국 조경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같은 조경학과이지만 대학에서 서로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며 논의도 없다는 점”일 것이다. IFLA APR의 교육 지침이 우리가 당장“현실적으로 적용할 지침이 아니더라도 이 지침의 높은 기준과 정교한 조경 교육에 관한 규정은 우리의 교육을 뒤돌아보고 점검해 볼 ……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그의 주장처럼, “교육의 효과는 현실적이어야 하지만 교육의 지향점과 목표는 이상적이어야 한다. …… 한국 조경계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출발점은 분명 교육에 있다.”
이번 특집 지면이 조경학 교육인증제 논의의 기초 자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앞으로도 본지는 교육인증에 관한 다양한 목소리를 담고 더 심도 있는 조사와 연구, 토론을 공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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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감각] 11월 저녁
수능을 며칠 앞둔 날을 기억한다. 3년간 공부에 매달렸지만 성적은 목표에 비해 한참 부족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그저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먹고 잠들며 수능 시간에 맞춰 모의고사를 풀었다. 점수를 더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평소의 점수라도 받기 위해서 이제껏 쌓아온 리듬을 이어가는 것뿐이었다.
그날도 그랬다. 수능 시간표에 맞춰 하루 종일 모의고사를 풀었고, 늘 틀리던 것을 틀렸고 늘 맞히던 걸 맞혔다. 채점한 시험지를 추슬러 가방에 넣고 저녁을 먹으러 급식실로 향했다. 급식실은 운동장 건너편에 있어서 조금 걸어야 했다. 항상 같은 시간에 똑같이 저녁을 먹으러 가는, 늘 같았던 익숙한 길. 11월이 되자 해가 무척 짧아져 이른 저녁인데도 한밤중처럼 새카맸다. 문득 그 어둠이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11월을 처음 겪는 것처럼.
올해도 11월이 돌아왔다. 멋지고 대단한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엔 늦었다. 다만 앞선 계절에 벌여 놓은 일을 올해 안에 마무리하기 위해 그저 묵묵히 일을 이어가야 하는 시간이다. 해가 짧아졌고, 아직 하루를 마무리하지 못한 시간에 이른 밤이 찾아온다. 이제 이 어둠이 더 이상 낯설지는 않지만, 여전히 너무 빨리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고 태양이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는 계절이 벌써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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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가 만든 도시] 다양성 그리고 통일성
‘다양성’은 도시가 도시일 수 있는 중요한 속성으로 많은 도시 연구자가 지속적으로 들여다 본 주제다. 물론 도시의 인구학적 다양성, 그에 기인한 사회문화적 다양성, 도시 경제를 구성하는 산업적 다양성 등 연구자마다 초점을 두고 들여다보는 다양성의 차원도 ‘다양’하다. 그러나 에드워드 글레이저(Edward Glaeser)의 주장(각주 1)으로 종합하자면, 도시의 다양성은 포괄적 의미에서 도시가 사회 그리고 개인에게 제공하는 ‘기회의 폭’이라고 해석할 수 있으며, 도시의 번영을 가져오는 ‘도시적’ 자원이다. 그렇다면 도시에서 공간 환경 차원의 다양성은 어떤 가치와 의미를 가질까? 제도는 도시 공간의 다양성에 어떻게 관여하고 있을까? 이번 글에서는 통일성과 짝을 지어 도시 공간의 다양성을 다룬다.
공간적 다양성의 의미
도시 공간의 다양성, 즉 도시 건조 환경을 구성하는 개별 요소들과 그 집합적 양태의 다양성 또한 마찬가지다. 일차적으로는 다양한 공간 환경은 다양한 도시민의 다양한 도시 활동을 가져올 수 있다. 1960년대 뉴욕 맨해튼과 교외 단독주택지를 비교한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의 주장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단독주택 필지 하나 없이 공동주택 100%에 아파트 단지 상가가 아니면 대형 상가, 쇼핑몰이 전부인 송도 신도시와 저층 주거지와 소규모 아파트 단지가 혼재하고 전철역 앞엔 대형 상가와 골목 시장이 나란히 공존하는 봉천동에서 가능한 공간 경험과 도시 활동의 폭이 같을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체감한다(그림 1).
또한 도시 활동과 공간 환경은 일대일로 대응되는 관계가 아니다. 같은 활동이라도 다른 공간 환경에서 일어난다면 다른 경험이 될 수 있다. 연남동 맛집을 찾는 것과 광화문이나 여의도의 대형 업무 시설 저층부 상업 공간에 있는 분점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개인에게, 그리고 사회적으로 같은 의미일 수 없다. 따라서 공간 환경적 다양성은 한 도시의 문화를 더 두텁게 만들고, 개인이 누리는 경험은 다채로워진다.
공간 환경의 다양성은 그 자체로 사회적 다양성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도시 공간은 결국 누군가의 필요를 담고 욕망을 투사하는 장치다. 케빈 린치(Kevin Lynch)는 잘 작동하는 도시 공간의 조건으로 시민들 각각의 공간에 대한 주체성이 보장되는 것, 즉 도시 공간의 구성과 활용 방식을 알고 있고 능동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인식하는 것을 꼽는다.(각주 2) 따라서 공간 환경의 다양성은 해당 사회가 다양한 구성원의 요구를 수용하고 선택을 허용하는 정도를 드러낸다. 이때 개인은 자신의 삶을 위해 도시 공간을 주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도시 공동의 자원인 공간의 활용은 극대화될 수 있다.
통일성이 있어야 하는 다양성
왜 다양성을 통일성과 함께 생각해야 할까. 일견 통일성과 다양성이라는 특성을 양립하기 어려운, 상호 대립하는 속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적어도 공간 환경의 인지에서 통일성의 가치가 작동하는 방식, 다양성의 가치가 작동하는 방식을 고려한다면 이 두 속성은 오히려 양립해야만 서로를 강화하고 드러내는 역설적 관계다.
예를 들어 첫 연재에도 나왔던 에익심플레(Exiample)라 불리는 바르셀로나의 격자형 신시가지는 크기와 높이가 일정하고 정사각형을 모치기 한 형태의 블록이 시가지 구역의 전체 형상에 관계없이 기계적으로 배열되어 전체 도시 경관을 지배한다. 하지만 동시에 각 블록은 오히려 다양한 변이를 보여준다. 모퉁이의 입면, 가로에서 보이는 중정의 형태, 블록을 구성하는 건물의 분절 등 어느 하나도 같지 않다. 통일된 외곽선 안에서 시가지가 만들어진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개별적인 선택들이 누적된 결과라 하겠다. 그리고 그 과정은 어떤 것을 지키고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에 관한 바르셀로나의 합의이기도 하다.
일데폰스 세르다(Ildefons Cerda)의 계획안에서 보듯 블록 내 건물의 배치까지 완전히 통일된 모습으로 지어지고 그 모습이 시간이 지나도 강력한 통제로 고정되었다면 지금처럼 역동적이고 사람들의 삶이 느껴지는 흥미로운 도시 경관은 아니었을 것이다(그림 2). 이때 격자형 조직의 강력한 통일성은 각 블록의 차이, 즉 다양성을 인지하는 기준점이 되며 다양성은 통일성을 배경으로 부각된다.
반대로 다양성을 구성하는 통일성도 있다. 예를 들어 좁은 골목길 철공소 사이사이에 힙한 식당들이 위치한 문래동, 도시형 한옥이 밀집한 북촌, 한강변으로 판상형 아파트들이 도열한 압구정동, 원룸 골목이 즐비한 신림동 고시촌 등은 각 지역 내 필지와 도로, 건축물 등 물리적 요소와 그 배열의 유사성이 높고, 이와 결합된 특유의 공간 활동이 밀집하여 반복된다. 도시 안에서 구분되는 영역들은 이러한 내적 통일성이 강할수록 더 분명하게 드러나고,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갖는 장소들 각각은 그 도시 전체의 다양성을 구성한다.
이렇게 통일성이 있어야 다양성이 드러나는 역설은 하나의 공간 대상에 통일성과 다양성은 중첩되어 작동하되 통일성과 다양성이 인지되는 공간 범위는 다르기 때문이다.3 따라서 통일성과 다양성은 양자가 동일선상의 양끝을 향하는 속성이 아니다.
*환경과조경427호(2023년 11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에드워드 글레이저, 이진원 역, 『도시의 승리』, 해냄, 2011.
2. 현실적으로 모두가 광장의 형태와 시설물을 바꾸는 등 직접적으로 행동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도시 공간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며 그것을 반영하는 시스템이 있다는 것이고, 이를 구성원이 신뢰한다는 것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시위는 우리에게 그러한 시스템도, 신뢰도 없다는 증거일 것이다. Kevin Lynch, Larice, Macdonald ed., “Dimensions of Performance”, The Urban Design Reader , Routledge, 2007.
3. 김세훈은 『도시에서 도시를 찾다』(2017)에서 ‘지역 내 다양성’과 다른 ‘지역 간 다양성’으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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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디자인 오피스] CA조경기술사사무소
시간과 사람, 도시 사이를 연결하는 장소를 디자인하다
우리의 시간들
CA의 흔적들
2003년 12월 1일 혹독하게 추운 날, 13명의 사람들이 강남 어느 건물 4층에 모였다. 일부는 학교를 바로 졸업하거나 가르치는 일을 하다 오고, 일부는 다른 설계사무소에서, 또 일부는 설계와 전혀 관계없는 회사에 다니다 왔다. CA조경기술사사무소(CA Landscape Design Office)(이하 CA)의 처음은 일반적인 설계사무실의 고루한 루틴보다는 새로운 설계 접근을 원하는 진보적 사고의 사람들 13명으로 시작됐다. 그로부터 CA는 한국의 조경 분야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선도적이며, 때로는 실험적인 접근을 주저하지 않는 최고의 조경설계사무소의 하나로 성장해 왔다.
우리가 추구하는 독창성은 펜타 철학(Penta Philosophy)이란 기치 아래 철학이 뚜렷하고 소신 있는 설계 전략으로 발전하고 응용되어 왔다. CA는 건축이나 토목 등 인접 분야와 수동적이 아닌 대등하고 수평적인 소통의 설계를 통해 결과적으로 더 강하고 좋은 설계를 하는 스튜디오로 알려져 있다. 상당수의 저명한 건축설계사무소 및 스튜디오와 협업을 했거나 현재 하고 있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CA가 이룬 성과는 매우 많다. 몇 개만 열거해 보면, 청계천 복원의 총괄 조경가 수행, 건축설계사무소 KPF와 같이 작업한 세운상가 국제설계공모(2006) 당선, 무주 태권도공원 턴키설계공모(2007) 당선, 건축가 마크 맥Marc Mac과 같이 작업한 판교 월든힐스 아파트 단지 국제설계공모(2008) 당선, 진천 국가대표 제2선수촌 턴키설계공모(2010), 새로운 광화문광장 국제설계공모(2019) 당선 등 다 언급하기가 쉽지 않다. 공동주택에 집중하는 한국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 주거 프로젝트에서도 탁월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2017년 완공된 반포 아크로리버파크는 현재까지 한국 아파트 조경 중 가장 잘된 설계라는 평을 듣고 있다. 보다 참신하고, 보다 창의적이며, 보다 뜨거운 열정으로 프로젝트를 보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7,250일차 진양교)
플러스 알파를 묻다
2003년 12월 1일 CA가 시작되는 날은 겨울이었지만, 개성 넘치는 13명의 열정이 함께 모여 있어서 그런지 그리 춥진 않았다. 보다 진지하고 치열했으며, 때론 고단하면서 즐거웠던 나날들이 어느덧 7,250일을 길고도 짧게 채워왔다. 이제는 플러스 알파를 고민해 본다. 대상지에 어울리는 그럴듯한 이름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것보다, 또한 이제는 희미해진 장소성을 억지로 캐내고 만들어 내는 작업보다, 오늘날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유용한 행태를 담아내는 공간의 본질을 바탕으로 더 절제되고, 더 낯선 환경을 연출하는 것이 디자인이라 생각한다. (7,250일차 정문정)
CA의 어제와 오늘
2003년 창립 멤버로 시작했고, 잠시 해외에 머물다 다시 돌아왔다. 내 기억 속의 CA는 한마디로 정의내리기 어려운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멋진 CA의 모습도 있었지만, 부족했던 CA의 모습도 많았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그 이야기를 몇몇 경험자들이 아닌 모두에게 들어보고 싶었다. 그런 생각으로 준비했다. 지금의 CA는 어떤 모습일까. (5,060일차 조용준)
CA 어게인
개인적인 일로 두 번 CA를 떠났다가 지금은 세 번째 CA에서 지내고 있다. 그 때문인지 간혹 이런 질문을 받는다. 왜 다시 CA냐 묻는다면 답은 간단하다. CA에 있을 때 편안하고 하는 일에 자부심과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CA가 나라는 사람을 잘 알고 감사하게도 기회를 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 바탕에는 늘 사람이 있었다. 각자의 자리를 무게감 있게 지키며 언제나 밝은 얼굴로 맞이해주는 곳, 그 안에서 깊이 있는 디자인 탐구와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한, 사람이 중심이 되는 그런 곳이다. (3,676일차 소진)
치열한 고민의 시간
2021년 여름 래미안 원베일리 수주전에 뛰어들어 당선되었다. 설계 기간 동안 시행사와 발주처를 설득하기 위해 팀원들과 공간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하면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던 기억이 난다. 최근 준공된 모습을 보니 설계하면서 고민했던 시간과 노력을 보상받은 것 같아 뿌듯했다. 설계에서부터 시공까지 모든 과정을 경험하며 결과물을 볼 수 있어서 이번 프로젝트가 더 인상 깊다. (1,910일차 권범영)
즐거운 일상
즐거운 일이 매일 있다.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옆자리 동료와의 수다도, 적지 않은 시간 함께하며 남은 사진 속 순간들도, 다 즐겁다. 그렇지만 가장 즐거운 순간은 나 자신이 제대로 쓰임 받고 있다고 느낄 때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그 결과로 우리 팀과 회사가 성장하는 데 기여했다고 느낄 때, 행복감이 찾아온다. (1,619일차 이주영)
공간의 감동
몇 년을 노력한 새로운 광화문광장 프로젝트가 끝나고, 처음으로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현장으로 갔다. 아내에게는 많은 에피소드와 현장 뒷이야기들을 풀어놓았고, 갓 돌이 지난 아이와 물놀이를 하며 그동안 못했던 아빠 노릇을 했다. 설계자로서 많은 사람들이 공간을 즐기는 모습을 보는 감동이 있었지만, 그중 한 가족이 되어 느낀 경험이 지금까지 소중하게 자리 잡
았다. (1,587일차 강인화)
CA가 CA했다
다양한 특수부대가 서로 미션으로 경합하는 강철부대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거기에 나오는 말 중 특정 부대가 미션 수행을 잘 했을 때, “UDT가 UDT”했다는 말을 한다. 4년간 몸담으며 느낀 건 “CA는 언제나 CA”한다. 그만큼 믿을 만하고 잘한다는 이야기다. (1,380일차 엄성현)
새로운 휴식 시간
어느날 회사에 화분이 늘어난 것을 계기로 각 소별로 한 명씩 나를 포함한 총 세 명의 인원이 화분에 물을 주는 담당을 맡게 되어 새로운 식물 커뮤니티가 생겼다. 식물 키우는 걸 좋아하는 두 명의 친구와 함께 키우다보니 일주일에 한 번 오는 이 시간이 적당한 취미 생활이자 그 주의 새로운 휴식 시간으로 좋은 기억을 남긴다. (1,343일차 정윤석)
사람의 힘, 살아갈 힘
‘딱 3년만 배우고 돌아가자!’는 굳은 결심으로 상경한 지 어언 4년차. 대리로 입사해 막내 팀장이 된 지금. 체력적, 정신적으로 힘든 날들도 있었지만 동료를 넘어 가족 같은 팀원들 덕분에 힘들지 않게 흘려 보낼 수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허물없이 저마다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며 언제든 발 벗고 나서서 나의 일처럼 마음을 써주는 열정 가득한 곳. 내가 오늘도 제자리를 지킬 수 있는 힘이다. (1,313일차 박상희)
점심의 산책
긴 점심시간은 CA의 장점이다. 개인적으로는 점심시간이 길어 산책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여름에는 시원한 느티나무 길을 왕복하고, 남은 계절에는 재개발 예정인 뚝섬과 성수동 일대를 걷는다. (1,125일차 이상민)
CA와의 시작
잠시 쉬는 동안 CA란 회사의 가치관이 궁금했고, 새로운 택지 현장이, 새로운 사람과 조경을 위한 배움이 그리웠다. 그래서 CA에서 입사 제안이 왔을 때, 고민 없이 이민 가방을 준비하고 그렇게 3년간 주말 가족이 되었다. 입사 무렵 태어난 아기가 벌써 내년이면 4세가 되고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렇게 엄마로서, 조경가로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1,081일차 박주희)
그해 여름
약 3년의 시간을 돌이켜 보면, 첫 설계였던 광화문광장이 시공되면서 힘든 순간들에 대한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해 여름 KT 현장 식재 공사를 진행하며 느낀 노동의 만족감도 좋은 추억이다. 그리고 가을, 새만금 실시설계 도면을 작성했다. 완성될 그날이 기대된다. (1,006일차 이지현)
팀워크와 커뮤니케이션
1시간 30분이라는 긴 점심시간은 업무 중 나누지 못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팀워크와 커뮤니케이션에 큰 도움이 된다. 또한 성수동의 다양한 카페 선택지는 매일매일 새로운 공간에서 딱딱하지 않은 즐겁고 편안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다. (1,005일차 장시영)
고뇌와 성취 사이
CA에 다니는 것이 솔직히 쉽지는 않다. 자신이 가진 최선의 것을 쥐어짜내 최고를 만들고, 이를 평가 받는다. 또한 생각보다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나를 마주하는 날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성된 프로젝트를 마주할 때, 심지어 그 결과가 좋을 때 밀려오는 성취감은 모든 고통을 잊게 한다. (886일차 신원재)
우리의 작업 방식
좋은 사람들과의 다양한 협업이 즐겁다. 인천계양, 고양창릉 같은 대규모의 택지 설계공모는 새로 공모팀을 꾸려 작업했는데, 팀원들과 아이디어를 나누며 같은 호흡으로 달린 기억이 있다. 덕분에 결과와 상관없이 과정까지 즐길 수 있었다. (660일차 오혜지)
디자이너에게 CA는
3D 모델링부터 렌더링까지 모형과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한 툴과 기술들, 챗 GPT, 미드저니mid journey와 같은 생성형 AI까지 CA는 뒤쳐지지 않고 발전하며 더욱 창의적이고 멋진 디자인을 위해 새로운 시도를 계속한다. CA는 열정을 가진 디자이너들에게 다양한 배움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도전의 장인 것 같다. (542일차 김병철)
디테일과 열정
입사 후 현재까지 본 결과물들은 항상 완성도가 높고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이는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 놓치지 않는 작업자들의 열정과 집착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처음에는 “이런 것까지 신경 쓴다고?”라고 생각했지만 결과를 보면 그 집착이 전체적 완성도를 높여준다는 걸 이제 안다. (461일차 홍병석)
입사 후 변화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과감한 시도를 격려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유롭고 참신한 피드백을 해주는 팀원들과 함께 일하며, 일상 속 다양한 것에 대한 관심이 더욱 많아졌다. 그래서 여행을 다니며, 새로운 영감을 얻고 메인 콘셉트부터 사소한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으려 한다. (439일차 김성일)
입사 전과 입사 후
입사 전 소문으로 듣던 CA는 야근 많고 선임들이 무서운, 그렇지만 크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해 볼 수 있는 회사였다. 실제 입사 후 직접 느낀 CA는 크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해 볼 수 있는 회사는 맞지만 야근 많고 선임들이 무서운 회사와는 거리가 멀다. 불필요한 야근을 줄이고 합리적으로 일하며, 때마다 각자의 생일을 챙기고 계절별로 다 같이 소풍을 가는 충분했다. 언젠가 나도 나의 디자인이 담긴 공간을 바라보고 더 자부심 있는 조경가가 되고 싶다. (219일차 조혜진)
새로운 시작
여태껏 경험했던 프로젝트와 달리, CA의 다양한 프로젝트와 열린 아이디어 회의 그리고 완성 후 잘 만들어진 공간이 담긴 사진들은 지쳤던 내게 다시 설계를 시작할 수 있는 큰 원동력이 됐다. 잠깐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진행한 강릉 디오션 259 복합개발사업의 외부 공간 설계는 CA 입사 계기가 되었다. (66일차 이지원)
이직할 결심
조경설계를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다. 이 일을 하면서 지금까지 세상에 기여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 질문에 명쾌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미지근하게 살다가 죽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조경 시류를 이끄는 그 한복판에서 일하고 싶었다. 올여름, 나는 CA의 새 식구가 되었다. (65일차 이설화)
26일차 신입이 본 CA
CA 합격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첫 사회생활이 조금 두렵기도 했다. 9월 11일, 두근두근 떨리는 CA 첫 출근 날! 회사는 생각했던 딱딱한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고, 경직된 나에게 모두 밝게 인사해 주었다. 많은 질문에도 차근차근 알려주시고, 화목한 팀 분위기에 입사 일주일 만에 적응했다. (26일차 노영현)
편안한 분위기
여러 가지 장점이 있지만 가장 좋은 점은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라 생각한다. 처음 입사했을 때도 예상보다 훨씬 편안한 분위기라 놀랐고, 덕분에 아이디어 회의나 질문이 있을 때도 편안하게 의견을 제시하고 피드백 받을 수 있다. (34일차 김예준)
최고의 무대
CA는 조경가에게 최고의 무대라고 생각한다. 대학생 시절부터 CA의 프로젝트들을 보며 설계가로 자라고 싶었다. 열심히 했던 학창 시절의 결과물로 CA에 들어왔다. 설계에 진심인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 감사하고 앞으로 설계 능력을 향상시켜 팀에 좋은 영향력을 미치고 싶다. (35일차 김진원)
2004년 설립된 CA조경기술사사무소는 작은 공간의 설계부터 도시 스케일의 계획에 이르는 국내외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창의적인 생각으로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며, 공공을 위한 의미 있는 장소를 만들고자 한다. www.cadesig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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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스케이프] 미화된 전통, 또 하나의 경관
광화문 월대(月臺)가 2023년 10월 15일 대중에게 공개됐다. 월대 복원 논의는 1990년부터 추진된 경복궁 복원 사업과 궤를 같이했다. 어느 학예사의 눈썰미로 동구릉 구석에 쌓여 있던 부재가 월대의 것임을 알게 되었고, 호암미술관 희원(熙園)에 있던 서수상(瑞獸像)을 기증받은 운까지 따라, 복원의 진정성 측면에서 큰 힘을 실을 수 있게 되었다. 월대 앞 공간은 경관적으로만 보면 나쁘지 않다. 기존에는 사직로가 광화문에 맞닿아 있어 궁궐 주변이 옹색했다면, 지금은 남북으로 48.7m, 동서로 29.7m에 달하는 월대 덕분에 궁궐 정문 주변에 여유 공간이 확보됐다. 광화문 좌우에 있다가 월대 앞으로 옮겨진 해치상은 어도 앞머리를 장식한 서수와 소맷돌, 월대 좌우의 동자주 등 과 함께 조선 정궁의 정 남문으로서 광화문의 위엄과 품격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광화문 월대 복원의 필요성이나 고증의 정확성 등 근원적인 문제를 비판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예부터 월대는 궁궐 전각 앞에 두는 것이지, 광화문처럼 문 앞에 두는 시설은 아니었다. 예외적으로, 1431년 음력 3월 29일, 예조판서가 중국 사신들이 출입하는 광화문 주변이 누추하고 관리들의 하마처(下馬處)가 마땅치 않음을 이유로 광화문에 월대를 조성할 것을 건의한 바 있었지만, 세종은 바쁜 농사철에 백성들을 동원할 수는 없다며 불허했다. 그리고 수백 년이 지나도록 광화문 앞에는 월대가 없었다.
우리가 옛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는 월대는 1866년 음력 3월 3일(고종 3년)에 완공된 것으로,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 사업과 맞물려 있다. 대원군이 경복궁 중건 사업을 추진한 데는 왕의 권위와 위엄을 회복하기 위한 이유가 있었고 광화문의 월대 조성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광화문 월대가 위상을 지킬 수 있었던 시간은 길어야 30년 정도였다.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을 정궁으로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이번 복원 사업은 월대의 수명만큼이나 오래 걸렸다. 1923년 부설된 전차 선로만 아니었다면 불필요했을 일련의 논의는 도로망 변경에 따른 교통 문제까지 더하여 당분간은 현재진행형일 것이다. 하지만 월대는 경복궁의 온전한 시설로 자리매김하여 종국에는 국가 권위의 계승을 상징하는 요소로 안착할 것이다.
*환경과조경427호(2023년 11월호)수록본 일부
참고문헌
신형준, “光化門 ‘月臺’ 복원자료 찾았다”, 「조선일보」 1996년 8월 9일.
노주석, “광화문 월대는 여전히 미완성”, 「파이낸셜뉴스」 2023년 10월 25일.
박종인, “광화문 월대는 없었다: 가짜역사와 시민 편의”, 「조선일보」 2023년 5월 30일.
그림 출처
그림 1. 박세희, “‘왕건의 상징’ 48m×29m 공간…궁궐행사·백성소통 ‘다중 역할’”, 「문화일보」 2023년 5월 2일.
그림 2. 임소정, “100년 만에 다시 걷는 역사의 길…광화문 월대·현판 오늘 공개”, 「MBC 뉴스」 2023년 10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