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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경감각] 작은 잎사귀는 너른 평원이 되고
    그냥 풀을 그린 그림, 그 이상의 의미는 없는 거죠? 북 페어에서 받은 질문이다. 식물 세밀화는 풀을 그린 그림이 맞고, 그림은 보이는 것이 전부이며, 각자의 감상법이 있기 마련이므로 “보이는 그대로니 천천히 감상해보시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듣자마자 그는 다른 부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풀, 그 잎사귀 한 장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작은 세계가 펼쳐진다. 작은 잎사귀는 너른 평원이 되고, 그 사이를 물길 같은 잎맥이 가로지른다. 울퉁불퉁한 산맥 사이로 하얀 협곡이 구불거리거나, 평행한 녹색 이랑이 끝없이 이어진다. 식물 세밀화는 이런 풍경을 보여주는 그림이라 생각한다. 식물을 매개체로 어떤 의미나 심상을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그림을 그린다. 작은 식물의 세계가 작아만 보이지 않도록 캔버스의 크기를 키우고 확대 비율을 높인다. 털, 턱잎, 수술과 암술, 꽃받침, 줄기의 단면처럼 전체 모습에서 보여주기 어려운 작은 디테일도 따로 담는다. 이 작은 풍경들이 누군가의 발걸음을 붙잡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 [어떤 디자인 오피스] 조경그룹 이작 장소와 시간의 힘을 믿는 창작 공동체
    이번 작업(this work)을 줄여서 말하면 이작이다. 말 그대로 이번 작업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스튜디오 이름을 지었다. 생생한 설계실 현장의 치열함과 진지함, 즐거움과 고단함. 이 모든 단어가 성남시 분당에 있는 우리의 구성원 이자커스(eejaacers)에게서 들리는 숨소리의 표정들이다. 늘 현재진행형이다. 2008년 탄천이 흐르는 작은 오피스에 둥지를 틀었다. 지치지 않고 열다섯 해를 천천히 산책하며 산에 올라가듯 지나왔다. 동네도 떠나지 않고 잘 지키고 있다. 함께하는 동행들도 서서히 늘어나서 그런지, 요즘은 산책 같은 작업이 더 재미있고 즐겁다. ‘이작’이라는 한자어의 말장난을 통해 우리를 설명해 본다. 아마도 보편적인 얘기로 끝날지 모르겠지만, 조경그룹 이작이 추구하는 지향점이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異作, 다를 이 모든 디자인 오피스가 그렇겠지만 개인적으로 다름에 대한 강박감이 있다. 태생적으로 디자인은 ‘다르게 하기’와 같은 뜻이라고 본다. 접근 방식이거나 태도이거나, 혹은 도구이거나 결과물이거나, 그중 하나라도 다르면 그때부터 안테나가 쫑긋 선다. 소위 안달이 난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다름의 오리지널리티는 결과일 수도 있지만 과정이기도 함을 늘 명심하려고 노력한다. 理作, 다스릴 이 질서에 대한 이야기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나아가 감각과 무감각의 영역에서 세상의 순리를 따르고 현상에 귀 기울인다. 우리가 하는 모든 작업이 자연과 문화의 순환 고리 안에서 잘 작동하기를 기대한다. 거스름이 없다. 시간과 진화에 열려 있다. 지속가능하다. 이런 문장들이 떠오른다. 창의적 발상이 자연의 이치와 손잡을 때 비로소 우리의 작업은 순전한 날개를 달게 된다. 利作, 이로울 이 윤리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과 자연에 해가 되지 않는 이로움을 지향한다. 대부분의 작업을 공공의 영역에서 진행하는 우리에겐 특히 중요한 문제다. 공간을 통해 공공에 전달될 ‘경험의 기회’는 곧 혜택과 복지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무엇이 이롭고 이롭지 않은가에 대한 판단의 문제는 삶의 질과 연결된다. 그 최전선에서 일하는 공급자 그룹의 어딘가에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때로는 두렵다. 以作, 써 이 이렇든 저렇든 결론은 결국 작업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작업물로 세상과 연결된다는 사실이 좋다. ‘만든다’라는 범주는 도면에서부터 완성작까지 모두를 아우르며 우리가 추구하는 의미 영역 안에 있다. 페이퍼워크는 전문가 집단과, 완성작은 일반인들과 나눌 수 있으니 좋다. 작업물로써(以作) 전달하는 조경가의 언어가 비로소 세상에 낯을 내밀기까지, 너무도 고단한 프로세스가 있다. 그래서 설계는 과정의 마술이다. 육체적, 사회적으로 힘들다. 우리는 오늘도 짓고, 만들고, 작업한다. 지난 몇 년간 완공된 프로젝트들을 살펴보면서 고민했던 흔적과 남겨진 것들, 혹은 사라진 것들을 정리해본다. 군포송정 중앙공원 도시공원 설계공모 첫 당선작이다. 아파트 단지와 공원의 공적 관계를 사적 관계 영역으로 재해석한 작업이다. 뒤뜰만이 가지고 있는 정서와 기억을 공공의 공간에서 구현하고 탐색해보려 했다. 가끔 슬리퍼를 신고 뒷마당에 나온 것 같은 이웃들을 공원에서 만나게 된다. 절반 이상의 성공이라고 자평한다. 한국적 정서의 마당을 대표적인 도시 공간인 아파트로 옮겨 보려 했다. 공간의 서정성을 투박한 물성, 단정한 구획, 친근한 단차, 그리고 계절과 자연 현상을 감지하는 식물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다. 용산 고가 하부도로 정원 서울시 공공 프로젝트로 진행한 도시 인프라 개선 작업이었다. 고가 하부의 죽은 공간 살리기를 주제로 빗물과 수 순환, 습도와 식물의 기법과 적용, 공공 공간의 미적 기준 제고,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등을 고민했다. 치장과 단장의 디자인 방향을 완전히 배제하고, 도시 구조물과 식물로만 밀도 있게 조직한 정원 구조체를 제안했다. 엔지니어링 기술과 조경의 협업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던 프로젝트로 기억한다. 아쉽게도 정원 구조체는 몇 년 후 철거되고 보도블록 포장과 오토바이 주차 금지 펜스만 있는 다리 밑 공지가 되어버렸다. 진도 쏠비치 리조트 예술의 섬 나오시마를 다녀온 뒤 한참 동안 우리 마음속에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그러던 차 잔잔한 바닷가, 전라남도 진도에 있는 리조트 설계를 맡게 됐다. ‘마음과 영혼에 접속하는 정원’을 주제로 해안가 산책로를 따라 정원을 배치하는 작업을 했다. 개개인의 작업물을 독려하고 비평하고 수정하고 도와가며 조성했다. 조형적 탐구, 관점과 차원의 전환, 낯설게 전달하기, 내적 움직임의 실체 등 깊숙이 들어가서 작업한 짧지 않은 시간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결과적으로 상업적 리조트와 충돌하는 상황이었지만 곳곳에 고민의 흔적들로서 소울 가든(Soul Garden)들이 자리하게 되었다. 개입한다는 것의 의미와 어떻게, 얼마나, 어디서 멈춰야 할지를 배웠다. 성남 은행동 소공원 옹기종기 모인 다가구 주택이 즐비한 산동네에 위치한 공원이었다. 경사가 가파른 지형을 생활 언덕으로 바꾸려고 했다. 가장 친근하고 알차게 사용할 수 있도록 멀리 보이는 산자락과 대조를 이루는 도시 언덕을 화강암으로 테트리스 쌓듯이 조성했다. 테트리스 언덕의 활용도는 기대 이상이었다. 치맥(치킨+맥주) 하기, 나물 말리기, 태양초 널기, 생활 품앗이, 낮잠 자기 등 동네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채우는 생활 언덕의 일상은 다채로웠다. 화강암 언덕은 도시의 산자락을 은유하는 동시에 경사지 구조체로도 요긴한 장치였다. 동탄 신리천 교각 하부 공공 디자인 동탄 신도시 신리천을 따라 다섯 개 다리 밑 공간을 공공 디자인하는 작업이었다. 하천을 따라 북측은 갤러리와 같은 공공 미술 벤치로, 남측은 친근한 마을 카페로 변신시켰다. 색깔과 틈, 빛과 장소 브랜딩을 탐구하며 황폐한 교각 하부를 ‘얌전한 화려함’이 살아나도록 하는 갤러리 벤치 공원으로 조성했다. 따뜻한 감성의 브리지 카페는 주민들에게 쉽고 친근하게 접근하려는 시도였다. 수변을 따라 매일 산책하는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활력을 불어넣는 장소가 되기를 기대한다. 의정부 고산지구 공원 지역성으로 시작해서 지역성으로 마무리한 작업이다. 신도시의 4개 공원과 녹지를 설계했다. 기억과 유산이 풍부한 산야의 공간을 도시 속에서 새롭게 정리해갔다. 산으로 깊숙이 파고드는 들판과 물줄기를 핵심 장치로 가장 지역성이 잘 드러나는 공원이 되기를 기대하며 작업했다. 도시를 뚝딱뚝딱 순식간에 만드는 한국의 조급한 방식 때문에 사라지는 것들이 많다. 남겨야 할 것, 기억해야 할 것, 지켜야 할 것, 알아야 할 것들은 지역 박물관에 가면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공원을 통해 온몸으로 공간을 느끼고 도시의 기억을 경험하고 읽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해당 지역 곳곳을 누비며 멍 때리기와 파헤치기를 한 덕분에 술술 풀어나갈 수 있었다. 지역성은 옛 풍경의 내적 질서를 발견하고 새롭게 정리해 만드는 공원의 중요한 주제어다. 대구 복현자이 공동주택 아파트 놀이터 공간의 주인공을 바꾸고 싶은 생각에서 시작했다. 공터에 이것저것 매달 조합 놀이대를 포기하고 중앙에 놀이마루를 제안했다. 원형 놀이마루에서는 자유로운 놀이가 생겨난다. 마을 사랑방으로 활용되고, 때로는 아이들이 뒹굴뒹굴 나뒹구는 툇마루로 변신한다. 벤치의 높이가 주는 심리적 친근함과 만만함을 동그란 잔디마루 위에 재구성했다. 놀이터의 주인공은 놀이 기구가 아니라 마루다. 놀이터의 핵심은 놀이가 아니라 모임이다. 원형마루에서 아이와 부모가 함께한다. 둘러앉고 마주앉고 드러눕고 나뒹군다. 별다른 놀이가 필요할까. 우리는 장소와 시간의 힘을 믿고 탐구하는 디자인 스튜디오다. 공간을 통해 대화를 시도하는 도시의 화자(storyteller)들이 모여 즐겁게 작업한다. 주거 단지 정원부터 도시의 공공 공간까지 예민하고 깐깐한 조경가들이 참여한다. 트렌드에 얽매이기보다는 상상력이 이끄는 객관화된 낯선 공간의 실체를 만드는 데 집중한다. 조경 공간으로 말하고 소통하면서 외롭지 않은 조경가가 되기 위해, 오늘도 의도적으로 외로워진다. 장소성과 브랜딩, 공공 디자인과 지역성에 관심이 많다. 최근에는 바우하우스 포스터를 수집해볼까 생각 중이다. [email protected] 조경그룹 이작(eejaac landscape architects)은 행복한 조경가를 꿈꾸는 이들의 창작 공동체다. 장소의 힘에 대한 믿음은 작업의 시작점이자 동력이다. 문제의식은 잠재력을 찾고, 잠재력은 상상을 이끌고, 상상은 사람을 생각한다. 넘치는 상상력과 논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사람을 위한 공간을 찾는 생각의 무한궤도, 그 어느 지점에서 오늘도 팽팽하게 산다.
  • [모던스케이프] 관광의 목적
    바야흐로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 돌아왔다. 피서와 달리 여행에는 방문과 경험이라는 적극적인 행위가 따른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험과 도전이 수반되는 여행, 벅차오르는 감동도 있지만 때로는 예기치 못한 고통스러움을 마주해야 할 때도 있다. 여행에 해당하는 travel의 어원은 travail(고통, 고난) 아니던가. 그에 반해 눈으로 보고 안다는 뜻으로 새겨진 관광(觀光)은 주체의 시선이 더 강조되는 단어다. 눈으로 확인하고 참관하며 견학하는 의미가 담긴 관광을 이야기할 때 17~18세기 영국에서 크게 유행한 그랜드 투어(Grand Tour)를 빼놓을 수 없다. 외딴 섬 영국에서는 사회가 안정되자 상류층 자제들을 대륙으로 보내 세련된 취향과 외국어를 학습하게 했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견문을 넓히고 지식을 확장하는 목적을 가진 그랜드 투어는 근대적 의미의 관광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 중반 영국인 토머스 쿡(Thomas Cook, 1808~1892)은 570명의 관광객을 모집하여 영국 레스터(Leicester)에서 러프버러(Loughborough)까지 이동하는 기차 여행을 시도했고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때부터 관광은 서서히 오늘날 통용되는 보편적 개념으로 자리 매김했고, 관광의 목적 또한 교양을 학습하는 것을 넘어 위락과 휴식, 기분 전환 등 즐거운 경험을 누리는 데까지 확장됐다. 새로운 경험을 통해 선진 취향을 학습하고자 했던 그랜드 투어가 계몽주의적 측면에서 근대적이라면, 토머스 쿡의 기차 여행은 자본주의 시대에 급부상한 시민 계층을 여행객으로 흡수하고 산업혁명의 상징인 기차를 여행의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근대적이다. 그런데 관광의 대중화에는 각종 매체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컸다. 쿡이 그 시절에 수백 명의 여행객을 모집할 수 있었던 것도 광고라는 방식을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급성장한 사진술과 인쇄술, 출판 기술 등 새로운 기술이 관광이라는 아이템과 엮이면서 엽서와 지도, 브로슈어 등 다양한 관광 안내물이 쏟아져 나왔고, 이러한 인쇄물은 다시금 관광의 대중화를 촉발하는 역할을 했다. 한반도에 근대 관광이 정착하게 된 양상은 표면적으로 서구와 닮았다. 개항 이후 왕족과 외교관 등의 관료들이 가장 먼저 해외 여행의 특권을 누렸고, 점차 선진 문물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식인 계층을 중심으로 여행이 확산되었다. *환경과조경414호(2022년 10월호)수록본 일부 참고문헌 국사편찬위원회, 『여행과 관광으로 본 근대』, 두산동아 한국문화사 시리즈 22, 2008. 김선정, “관광 안내도로 본 근대 도시 경성: 1920~30년대 도해 이미지를 중심으로”, 『한국문화연구』 33, 2017, pp.33~62. 한경수, “한국의 근대 전환기 관광(1880~1940)”, 『관광학연구』 29(2), 2005, pp.443~464. 阪野祐介·김윤환, “식민지도시 부산을 그린 요시다 하츠사부로(吉田初三郞)의 조감도(鳥瞰圖)와 타소표상(他所表象)”, 『문화역사지리』 33(2), 2021, pp.49~68.
  • [에디토리얼] 50×15, 한국 조경 50년을 읽는 열다섯 가지 시선
    2년 가까이 매달렸던 책 한 권의 편집을 마무리하고 조금 전 인쇄소로 최종본 파일을 넘겼다. 이번 달 잡지가 독자 여러분에게 도착할 때쯤 신간 『한국 조경 50년을 읽는 열다섯 가지 시선』(도서출판 한숲, 2022)도 펼쳐볼 수 있다. 1972년 한국조경학회 창립을 기점으로 잡는다면, 한국 현대 조경은 이제 50년의 역사를 넘어서고 있다. 『한국 조경 50년을 읽는 열다섯 가지 시선』은 역동하는 한국 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도시와 경관, 지역과 환경, 삶과 문화의 틀과 꼴을 직조해온 조경 50년사의 주요 담론과 작품을 ‘기록’하고 ‘해석’한다.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2020년 여름, 한국조경학회는 ‘한국조경50 편집위원회’를 구성해 책의 방향과 구성을 기획하기 시작했다.1 필자 섭외와 원고 집필, 편집 과정에 2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고,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re:public landscape’의 이름으로 ‘다시, 조경의 공공성’을 소환해 토론의 장을 펼치는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IFLA World Congress 2022’ 개막에 맞춰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한국 조경 50년을 읽는 열다섯 가지 시선』 출간의 목적은 한국 조경의 ‘다음 50년’을 설계하는발판을 마련하는 데 있다. 미래를 전망하고 예비하기 위해서는 과거와 현재의 성과와 한계를 다각도로 되짚고 다시 촘촘히 읽어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 지점에 한국 조경 50년의 이야기와 성과를 ‘기록’하고 ‘해석’하고자 하는 책의 의도가 자리한다. 열다섯 가지 서로 다른 시선으로 지난 50년을 탐사하는 이 책은 중성적 아카이브나 백서보다는 해석적 비평서에 가깝다. 책의 1부와 2부는 한국 조경 50년이 남긴 지형과 풍경에 대한 해석이자 비평이다. 이명준(이론과 미학), 최영준(설계공모), 임한솔(전통의 재현), 고정희(식재 디자인), 최정민(시대성과 정체성), 박희성(개발 시대)의 글 여섯 편으로 구성한 1부는 50년을 가로지르는 큰 흐름과 이슈를 조감의 형식으로 해석한다. 2부는 주요 단면에 대한 클로즈업이다. 김아연(생태 공원), 이유직(선형 공원), 서영애(이전적지 공원화), 김영민(아파트 조경), 김정은(사이와 경계), 김연금(맥락), 김한배(사회적 예술), 박승진(시민 사회), 남기준(텍스트)의 글 아홉 편을 엮은 2부는 한국 조경의 궤적 위에 펼쳐진 주요 주제를 포착하고 해석한다. 책의 3부는 한국 조경 50년이 낳은 주요 작품을 기록하는 데 방점을 둔 기획으로, 설문조사 결과를 통해 선정한 ‘한국 현대 조경 50’ 작품의 정보를 정리해 싣는다. 2021년 4월 19일부터 5월 21일까지 한국조경학회 회원, 한국조경설계업협의회 회원, 조경 설계 전문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303명의 전문가가 참여했다.2 지난 50년의 작품 경향과 시대상이 담긴 대표작 50선에서 한국 조경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보고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다. 한국 조경 50년사의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과제는 해석적 비평에 무게중심을 둔 이번 책의 범위를 벗어난다. 그동안 『현대한국조경작품집 1963-1992』(도서출판 조경, 1992), 『한국의 조경 1972-2002: 한국조경학회 창립 30주년 기념집』(한국조경학회 편, 2002), 『Park_Scape: 한국의 공원』(도서출판 조경, 2006), 『한국조경의 도입과 발전 그리고 비전: 한국조경백서 1972-2008』(환경조경발전재단 편, 2008), 『한국조경학회 창립 40주년 기념집』(한국조경학회 편, 2012), 『환경과조경』 통권 400호(2021년 8월호)를 비롯한 여러 기록물이 백서, 자료집, 작품집 등의 형식으로 출간되었지만, 종합과 체계라는 기준에서 보자면 아쉬운 면이 적지 않다. 여기저기 흩어져 소실되고 있는 방대한 자료와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정리하는 범 조경계 차원의 기획 프로젝트가 절실한 시점이다[email protected] 1. 편집고문 조경진, 편집위원장 배정한, 편집위원 김아연·남기준·박희성, 편집간사 임한솔 2. 50개 선정작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정보는 『환경과조경』 통권 404호(2021년 12월호)에서 볼 수 있다.
  • [풍경 감각] 때론 잊는 일도 도움이 된다
    2022년 5월 24일, 미국의 롭 초등학교에서 학생 19명과 교사 2명이 사망한 총기 참사가 일어났다. 참사 이후 미국 정부는 사건이 일어난 학교 건물을 부수기로 결정했다. 건물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니었지만, 사람들의 트라우마를 자극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비단 롭 초등학교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미국에서는 총격 사건으로 많은 사람이 희생당한 학교를 부수거나, 이전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개조하는 것이 보통이다.911 메모리얼 파크,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을 떠올렸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부수고 지우는 게 아니라, 기억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나.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추모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마치 이미 결론이 난 것처럼 생각을 하다가 조금 놀랐다. 이런 딱딱한 생각이 돌보지 못하는 귀퉁이들이 떠올라서. 총성이 울리던 교실과 괴한을 피해 달아나던 복도에서, 그리고 빈 책상과 총탄 자국이 남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예전과 같은 날들을 보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때론 부수고, 지워버리고, 그래서 잊어버리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 조현진은 조경학을 전공한 일러스트레이터다. 2017년과 2018년 서울정원박람회, 국립수목원 연구 간행물 『고택과 어우러진 삶이 담긴 정원』, 정동극장 공연 ‘궁:장녹수전’ 등의 일러스트를 작업했고, 식물학 그림책 『식물 문답』을 출판했다. 홍릉 근처 작은 방에서 식물을 키우고 그림을 그린다.
  • [어떤 디자인 오피스] 안팎 재미를 찾고 경계를 허무는 토털 디자인
    맨땅에 헤딩을 해보자 독립하는 많은 디자이너는 “왜 잘 다니던 회사에서 나와 홀로서기를 하려 하는가?”에대한 고민을 해봤을 것이다. 금전, 업무 환경 및 범위, 나의 디자인 등 다양한 조건을 고민한 끝에 디자인 오피스를 연다. 안팎의 두 소장에게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해보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운이 따라줘서 좋은 설계사무소를 다니면서 중요한 공공프로젝트에서 트렌디한 상업 시설까지 오랜 기간 좋은 공간을 만나왔다. 즉 독립한다는것은 양질의 프로젝트를 당분간 만나지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안정적으로 나오던 월급,체계적인 업무 환경, 좋은 동료 등 많은 것을 포기하고 우리는 맨땅에 헤딩하기로 했다.하고 싶은 것을 다 해 보기 위해서. 이런 생각을 토대로 만든 안팎은 기획, 제안, 디자인, 설계, 공사, 프로젝트 운영, 소품 제작 등 디자이너로서 개입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수용한다. 이것은 안팎이 가진 색깔이자 앞으로 나아갈 길이다. 시공을 통해 안팎을 만난 사람들은 “안팎에서 설계도 하나요?”라고 묻고, 설계를 통해서 안팎을 만난 사람들은 “안팎에서 시공도 하고 있나요?”라고 묻는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두 소장도 안팎의정체성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디자인만 하다가, 디자인한 공간을 직접 공사하니 너무나 신나고 재미있다.나무를 자르고, 돌을 놓고, 레미콘을 타설하고, 용접을 하고, 직접 꽃과 나무를 심는다.꽃꽂이와 소품 제작을 통해 조금 더 색다른 공간을 만들어보기도 한다. 그 과정을 통해서 서서히 드러나는 우리의 디자인은 때로는 모자라고 때로는 과하기도 하다. 하지만설계와 시공의 연속된 프로세스 안에서 발생하는 빠른 피드백은 그 부족함과 넘침을신속하게 채워주고 덜어내 준다. 디자인-보고 자료-도면-내역-납품의 과정에 시공이 들어오니 지루했던 루틴에 활기와 재미가 생겼다. 대상지를 바라보는 방식과 디자인 방법에도 변화가 생겼다. 물론 직장인 시절 시공 경험이 전무했던 두 소장의 삶은 이전보다스펙터클해졌다. 이처럼 넓은 범위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안팎은 디자인을 기본으로 하는 집단이라는 점이다. 모두가 바라는 그것이 우리의 설계 철학? 안팎의 두 소장인 반형진과 정주영은 서울대학교에서 처음 만났다. 조경설계 서안에서잠시 같이 일하다가 서로 각자의 삶을 살았고, 2019년에 함께 일을 시작했다. 둘의 디자인에 영향을 미친 사람들이 겹치기도 하지만, 이 둘은 삶, 디자인 등 많은 부분에서 취향이 다르다. 대부분의 디자인 오피스들이 디자인 지향점, 혹은 설계 철학을 가지는것처럼 우리 역시 지향하는 디자인이 있다. 두 소장이 선호하는 디자인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안팎이 지향하는 바가 한 지점으로 모인다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다. 좀 더 넓게 생각해보면 두 소장뿐 아니라안팎의 직원들, 또 모든 디자인 사무실의 취향은 산개되어 있지만 지향점은 한 곳을 향하지 않을까? 아마도 안팎이 바라보고 있는 그 지점을 모든 디자이너가 바라보고 있을것이라는 건방진 생각까지 하게 됐다. 물론 그곳으로 향하는 과정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아주 형태적인 디자인을 선호한다든지, 자연을 복제하는 수준의 경관 구성을 선호한다든지, 트렌드를 선도하거나 따르는 힙한 디자인을 추구한다든지.안팎은 그 과정과 스타일에 얽매이지 않고자 한다. 각각의 프로젝트에서 가장 적합한 과정을 따를 수 있는 경험과 능력을 갖추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시공을 곁들이다보니 현장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개인 클라이언트를 대하다 보니 우리는 작가와 디자이너 사이를 오가며 줄타기를 아주 훌륭하게 소화해내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깨닫게 됐다. 그래서 대상지와 현장 상황과 클라이언트의 의도를 거스르지 않고 좋은과정을 통해 우리가 추구하는 지향점으로 향해야 한다. 물론 어떨 때는 떼를 쓰거나 징징대기도 한다. 우리도 다른 모든 디자인 사무실들이 추구하는 그것을 함께 추구하기때문에. 개갑장터 순교성지의 마스터플래너 조경가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은 조경을 계획하거나 설계한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그동안의 조경은 공공 프로젝트와 대형 상업 프로젝트, 아파트에 기생하였고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근래 일어난 정원 붐은 조경이 우리의 삶에 스며들 좋은 기회다. 보고 자료를 만들고 모델을 만들고 왕복 8시간이 걸리는 멀고 먼 고창에 세번을 방문해 건축주를 설득해냈다. 조경 설계라는 것을 처음 들어보고, 나무 몇 그루심으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신축 수도원 주변을 정원으로 만들고자 했던 건축주는조경 설계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외부 공간 전체를 안팎에 일임하였다.이미 부지 정지와 건축 공사가 진행된 상황이라 여러 문제점이 많았지만 마스터플래너로서 대상지 전체를 다룰 수 있었다. 덕분에 부대 토목 공사까지 떠맡게 됐다. 많은 조경 공사는 건축 공사의 끝 무렵에 시작한다. 조경 공사는 전체 건설 공사의꽃이자 공사장의 문을 닫고 나오는 마지막 공종이다. 조경 공사가 마무리되면 먼지가가득하던 커다란 공사장은 아름다운 외부 공간을 가진 곳으로 변하고 준공 검사 절차를 밟아 공간 활용이 시작된다. 마지막에 있는 공정으로 인해 조경 공사가 시작되기 전만들어진 구조물들은 조경 공사의 큰 난관이 되고, 심할 경우 디자인 의도를 구현하지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건물 역시 외부 공간에 설치되는 큰 구조물이라고 생각한다면 결국 조경가는 대상지 전체의 마스터플래너로 적극 활동해야 한다. 개갑장터순교성지 수도원 정원 공사에 뒤늦게 참여해 대상지 레벨이나 건물의 위치, 형태 등에 대한 결정에는 의견을 내지 못했다. 다행히 부대 토목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 함께 논의하면서 맨홀, 트렌치, 정화조, 수전 등 이설하기 힘든 구조물들의 위치를 조정하고 우리의 디자인 의도를 잘 구현할 수 있었다. 만약 조경 공사만 진행하게 되었다면 갑자기 만난 구조물들을 피하기 위한 방책을 세우느라 현장에서 골치 아팠을 것이다. 이는 공사에서만 해당하는 상황은 아니다. 낙선에 그쳐 매우 안타까운 프로젝트였지만 안면도 지방정원 및 가든 센터 현상설계공모에서 우리는 대상지 전체에 대한 계획과 함께 건축물의 위치와 규모, 외형까지 적극적으로 제안‧협력하여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안팎은 다양한 공종들과 유기적으로 협력하며 마스터플래너로서 프로젝트에 기여하는 것이 매우 즐겁다. 앞으로도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조경만의 영역에 한정된작업을 수행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안팎의 두 소장도 독립했다 우리는 조경설계사무소에 취업하는 대다수 친구의 최종 목표가 독립이라고 믿는다. 안팎을 거쳐 가는 직원들이 좋은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이름을 가졌으면 한다. 물론 독립하고 자신의 브랜드를 갖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성장이 필수다. 이 과정에서 생긴 부산물이 안팎을 성장하게 할 것이다. 한 가지에 집중해서 그 분야의 숙련자가 되는 방법도 있지만 안팎의 욕심과 함께 이것저것 해보면서 여러 경험을 쌓고, 그중 자신이 원하는 부분을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안팎에서는 본인이 설계한 것은 직접 시공하는 것을 권장한다. 설계에서 시작하여 시공 현장을 넘나드는 넓은 업무범위는 다양한 경험을 쌓을 기회일 수도, 업무의 질과 양 측면에서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디자인한 공간을 자기 손으로 만들어 보는 과정은 본인의 디자인에자부심을 갖게 만들고, 일이 아닌 업으로의 조경 전반에 재미와 활력을 부여할 수 있다. 좋은 방향으로만 말하고 있지만 재미와 활력, 흥미 등 온갖 긍정적인 이야기들은 소장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어느새 직원들과의 세대 격차가 조금씩생기게 된 소장들이지만 안팎 구성원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존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현재의 안팎 구성원을 비롯해 앞으로 거쳐 갈 많은 사람이 업으로서, 또 너무가볍지만은 않은 재미로 조경을 대할 수 있는 밑바탕으로서의 안팎이 되었으면 한다. 어쨌든 안팎에서는 직원들의 최종 목표가 독립인 친구들도,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고 그 다이내믹한 과정을 실천할 친구들도 모두 소중하다.조경가로서 다룰 수 있는 공간의 영역을 한정하지 말자그동안 봤던 디자인 오피스들은 각자의 특화된 프로젝트 종류들이 있었다. 아파트만디자인하는 친구들, 대형 현상설계 위주인 친구들, 공원을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친구들, 작은 정원을 디자인하는 친구 등 각자의 특화된 영역이 있다. 욕심이 많은두 소장이 함께 만든 안팎의 프로젝트는 작은 정원에서 대형 공공 공간, 개인 주택에서상업 시설까지 매우 다양하다. 사실 규모와 공간의 성격을 넘나드는 작업을 동시에 진행한다는 게 마냥 쉬운 일은 아니다. 요구 사항, 디자인 접근 방법, 발주처를 설득하는방법 등이 매우 다르므로 스위치를 이리저리 옮겨줘야 한다. 정신이 없음에도 불구하고안팎은 더 많은 영역에 진출하고 싶다. 상업 시설의 공간 장식, 실내외를 포함한 토털공간 디자인 회사로 성장하는 것을 꿈꾸고 있으며, 조경이 가지는 공공성이라는 핵심성격 덕분인지 미래 도시 공간의 운영, 유지·관리 등에도 관심이 있다. 아직은 조심스레 관심을 가지는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본격적인 발걸음을 위해 고민하고 있다. 조경학과를 졸업한 사람들은 학교에서 기획, 디자인, 설계, 운영 관리 등 폭넓은 커리큘럼을통해 다양한 것들을 배우고 연습해 왔다고 본다. 우리가 배웠던, 경험했던 모든 것들을안팎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시도해 보고 싶다. 안팎의 소장들은 관성에 따른 삶을 살아가는 것은 매우 달콤하지만 금세 지루해진다고 굳건히 믿는다. *** 안팎(ANPARK)은 공간을 다루는 토털 디자인 오피스로 성장하는 것을 꿈꾼다. 디자인을 함에 있어 공간의 규모와 성격에 차등을두지 않으며, 디자인에서 시공까지 이어지는 연속적인 프로세스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덕분에 416 생명안전공원, 서울대공원동물원 정문 광장 등 규모 있고 공공성이 강한 공간부터 개인 정원, 수도원 정원 등 작고 사적인 공간까지 다양한 공간들을 다루며,현상설계와 실시설계, 시공 등 디자인 프로세스 곳곳에서 업무를 즐겁게 수행하고 있다.
  • [모던스케이프] 동물원의 탄생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 우영우 덕분에 난데없이 고래가 세간에소환됐다. 센 강에 흘러들어왔다가 고향과 영원히 이별한 벨루가 소식과 인간에게 끝까지 길들지 않고 고향인 제주 앞바다로 방류된 남방큰돌고래 태산이가 최근 죽음을맞이했다는 얘기까지, 이러저러한 고래들의 사연을 접하면서 인간이 동물을 대하는이기적인 태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개나 고양이처럼 오랫동안 인간과 함께 살면서 가축으로 진화한 동물도 있지만, 대부분 동물은 야생에 있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그러나 인간은 애완이든 식용이든 동물을 끊임없이 곁에 두려 했는데, 이런 욕망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공간이 ‘정원’이고‘동물원zoological garden’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유囿라고 하여 금수를 키우는 곳을 아예 구별했다. 앵무새와 원앙등 진귀한 새를 기르는 것은 물론이고 거위나 사슴, 학 등을 곁에 두기도 했다. 학은고고한 생김새와 긴 수명 때문에 예부터 신선과 함께 사는 동물이라 여겼고 속세를떠난 은자隱者들이 특별히 사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옛 기록에서도 선비들이 학을 애완용으로 정원에서 길렀다는 사실이 종종 확인된다. 유럽으로 가면 그 양상이 좀 더 야만적이고 노골적이다. 우선 동물 수집은 동아시아와 마찬가지로 이른 시기부터 확인되는데, 이집트의 아시리아제국을 시작으로 바빌로니아, 그리스, 로마 등 고대 사회에서부터 있었다고 알려진다. 로마제국은 알렉산더 대왕이나 네로 황제는 물론 귀족들까지도 진귀한 동물을 모았으며, 트라야누스 황제는약 1만 1천여 마리의 동물을 수집했다. 8세기 프랑크 왕국의 카를 대제도 거대한 동물원을 소유하고 있었고, 13세기 영국의 헨리 1세도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레데릭 2세로부터 받은 표범 한 마리를 사자와 낙타 등과 함께 우드스톡에 있는 자신의 궁에 동물원을 만들어 관상했다. 우드스톡의 동물원은 이후에 런던탑을 거쳐 19세기 리젠트 공원에 조성된 런던 동물원으로 이어진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이 동물을 수집하는 일은 정치와 권력의 힘이 작동되는 인류의 도시 문명사와 궤를 같이할 만큼 오래된 일이다. 과거에는 동물원이 왕권과 부를상징하며 조공이나 전리품으로 획득한 동물을 정원에 모아 두고 보고 즐기는 데 쓰였다면, 제국주의가 팽배해진 19세기에 이르면 아프리카는 물론 남미 등 식민 국가의동물을 무작위로 포획해 동물원을 채우게 됨에 따라 동물원에는 식민지 정복에 대한상징이 두텁게 드리우기 시작한다. 근대적 시각으로 보면, 동물원은 자연을 정복한 인간의 우월감이 드러나는 공간이며미개한 동물과는 다른 문명화된 인간의 존재를 찬양하는 공간이었다. 또 세상에 대한인간의 호기심과 탐구심이 빛나는 장소이기도 했다. 한편, 동물원은 동물 분류와 서술방식의 발전을 견인했을 뿐만 아니라 동물의 해부학적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동물 보존 박물관을 만드는 계기 또한 마련했다. 세계의 유명한 자연사박물관들도 이러한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동물원은 방문객에게 자극적이고 직관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것으로 진화했고 대중을 위한 공공의 오락 장소로 발전했다. 과거의 계획 공원에는 대부분 동물원이 설계됐고, 동물원은 점차 도시 근대화를 상징하는 하나의 시설로 자리매김했다. (후략) *환경과조경413호(2022년 9월호)수록본 일부 참고문헌 김정은, “일제강점기 창경원의 이미지와 유원지 문화”, 『한국조경학회지』 43(6), 2015, pp.1~15. 김해경 외, “전통조경요소로써 도입된 학(鶴)과 원림문화”, 『한국전통조경학회지』 30(3), 2012,pp.57~67. 니겔 로스펠스, 『동물원의 탄생』, 이한중 역, 지호, 2003. 서태정, “대한제국기 일제의 동물원 설립과 그 성격”, 『한국근대사연구』 68, 2015, pp.7~42. 오창영, 『韓國動物園八十年史(昌慶苑編)』, 서울특별시, 1993. 우동선, “창경원과 우에노 공원, 그리고 메이지의 공간 지배”, 『궁궐의 눈물, 백 년의 침묵』, 효형출판,2009, pp.202~237. 한국전통조경학회 편, 『동양조경문화사』, 문운당, 2011. *** 박희성은 대구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한중 문인정원과 자연미의 관계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역사 연구자들과 학제간 연구를 수행하면서 근현대 조경으로 연구의 범위를 확장했다. 대표 저서로 『원림, 경계없는 자연』이 있으며, 최근에는 도시 공원과 근대 정원 아카이빙, 세계유산 제도와 운영에 관한 일을 하고 있다.
  • [에디토리얼] 조경사 자격제 신설을 위한 첫걸음을 떼며
    ‘한국조경헌장’(한국조경학회 제정, 2013년)은 “아름답고 유용하고 건강한 환경을 형성하기 위해 인문적‧과학적 지식을 응용하여 토지와 경관을 계획, 설계, 조성, 관리하는 문화적 행위”라고 조경을 정의한다. 하지만 전문 직능profession으로서 조경가의 직무와 역할을 적확하게 규정하는 법적 장치와 자격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 조경의 태동기인 1970년대부터 이미 기술사법에 따른 조경‘기술사’와 조경‘기사’ 자격이 시행되어왔지만, 조경(가)을 기술(자)의 틀에 가두는 기술사-기사 자격제는 조경설계의 업역을 제한하고 조경가의 위상을 불안정하게 방치했다. 건축의 ‘건축사’에 해당하는 적절한 자격 (또는 면허) 제도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어쩌면 한국 조경계는 지난 50년을 허비했다고 볼 수도 있다. 전문 직능으로서의 조경과 학문 분과로서의 조경학이 이 땅에 도입된 지 50년, 비로소 조경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대중적 수요가 증가하고 일상의 조경 문화가 풍요로워지고 있지만 정작 조경계는 위기를 호소하는 역설적 상황에 처했다. 새로운 자격 제도를 통해 한국 조경의 난맥을 풀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줄여 말하자면, 건축의 건축사처럼 조경에도 조경사가 필요하다는 것. 물론 ‘조경사’가 자격과 면허를 갖춘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에 해당하는 명칭으로 적합한지에 대해서는 여러 다른 견해가 있겠지만, 그건 다른 논제다. 새로운 조경사 자격제는 조경의 전문성과 위상 재정립, 조경설계 업역의 보장과 확장, 합리적 설계 대가 실현, 조경설계 인력 양성, 대학 조경 교육의 정상화 등에 촉매로 작용하면서 한국 조경의 다음 50년을 이끄는 중요한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때마침 지난 5월 13일 국토교통부가 고시한 ‘제2차 조경진흥기본계획’에 자격제 관련 내용이 들어가 ‘조경사’ 신설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번 계획의 추진 전략 중 하나인 ‘조경의 질 제고를 위한 조경 산업 기반 강화’ 항목에 ‘조경설계 자격 및 면허 제도’가 포함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새로운 자격 제도를 모색하는 토론의 첫걸음을 떼고자 이번 호 특집 “조경설계 자격제의 문제와 대안”을 꾸렸다. 이상수(스튜디오201 소장)는 조경설계 스타트업의 장벽, 엔지니어링사업자 면허의 현황과 실태, 조경기술사사무소 자격 취득의 난맥 등에 초점을 두고 현행 자격 제도의 한계와 문제를 짚는다. 안세헌(가원조경 대표)은 조경설계업 시장의 난제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자격제 도입의 필요성과 추진 방향을 살핀다. 이윤주(엘피스케이프 소장)는 영국과 독일의 조경사 제도에 대한 정보를 소개하는데, 특히 현지의 조경사 인터뷰를 바탕으로 조경사 취득 절차를 상세하게 다룬다. 이해인(HLD 소장)은 미국의 조경사 제도를 명칭, 자격, 평가, 권한, 관리 등 다각적 측면에서 분석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과 미국의 제도를 비교함으로써 현행 한국 조경설계 자격 제도의 문제점을 도출하고 개선점을 제시한다. 이남진(바이런 소장)은 조경사 자격 신설을 위한 관련 법규를 살피고 ‘건축사법’과 같은 위상을 갖는 별도의 법령을 제정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특히 건축사법의 구조를 참고하여 총칙, 조경사의 자격, 조경사 자격시험, 조경사의 업무, 조경사무소, 조경사협회로 구성된 (가칭)‘조경사법’의 체계와 내용을 제안한다. 본지 발행인 박명권이 사회를 맡고 김선미(건화엔지니어링 부사장), 김태경(강릉원주대 교수), 서영애(기술사사무소 이수 대표), 이영주(국토교통부 사무관), 이정섭(국토교통부 주무관)이 참여한 좌담회에서는 조경사 제도의 필요성, 명칭과 위상, 조경설계사무소의 지속가능한 운영, 설계비와 계약서, 정책적 지원, 사회적 공감대 형성 등 조경사 신설과 관련된 다양한 의견이 펼쳐졌다. 새로운 자격 제도의 필요성은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되곤 했지만 단발성 논의에 그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조경사 자격제에 대한 조경계 내부의 공감뿐 아니라 정부의 정책적 환경이 형성되고 있는 최근 상황을 어영부영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조경계 내부의 공감과 사회적 동의를 얻기 위해서는 제도의 체계와 내용을 뒷받침할 데이터 축적과 기초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한국조경협회와 한국조경설계업협의회는 물론 한국조경학회가 함께 참여하는 기획‧연구팀을 가동할 필요가 있다. 아쉽게도 이번 특집에 포함하지 못했지만, 조경사 자격제와 하나로 연동될 (가칭)‘조경교육인증제’에 대한 연구와 공론화도 필수적이다. 전문 교육은 전문 자격의 필요조건이다. [email protected]
  • [풍경 감각] 창밖 풍경이 환해지고 있다
    말하는 게 늘 부담스러웠다. 말투가 ‘여자 같다’며 놀림받은 어린 시절 기억을 떨쳐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씩씩하게 말을 잘하는 아이였다면 ‘여자 같다’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게 놀릴 만한 이유인지를 따졌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우습게도 이런 일들을 오랫동안 잊지 못해서, 발표를 최대한 피했고 꼭 해야 할 경우엔 훌륭하게 발표하는 것보다 사람들의 표정을 보지 않는 데 큰 노력을 들였다. 남들 앞에서 목소리 내기를 꺼려 왔음에도 라디오 출연 섭외를 승낙한 건 오래 전 친구가 했던 말 때문이었다. 언젠가 그 친구와 택시를 탄 적이 있다. 내가 행선지를 이야기했더니 택시 기사가 대뜸 사내자식 목소리가 계집애 같다며 웃었다. 인사보다도 먼저 훅 들어온 말에 제대로 항변도 못했는데 친구가 두둔해주었다. 다정하고 친절한 거라고. 그래서 좋은 거라고. (이 글에 쓰기 민망할 정도로) 칭찬을 쏟아내자 택시 기사는 당황했고, 난 조금 어리둥절했던 것 같다. 격주 목요일 새벽마다 라디오 방송을 하러 간다. 스튜디오에 앉은 뒤 PD가 이제 시작한다는 사인을 보내면 ‘목소리를 한 톤 낮춰 볼까?’ 생각하다가 그냥 평소처럼 DJ에게 인사를 건넨다. “2주 만에 뵈어요. 잘 지내셨죠?” 그 친구가 떠오르는 사연을 방송작가가 프롬프터에 띄워 줄 때도 있다. ‘조곤조곤 친절하게 설명해 주셔서 좋아요.’ 문득 거리 어딘가를 달리고 있을 그 택시에도 이 목소리가 가닿고 있을지 궁금하다. 창밖 풍경이 환해지고 있다.
  • [어떤 디자인 오피스] 얼라이브어스 얼라이브어스, 어셈블!
    디자인 ‘그룹’으로서의 지향 얼라이브어스ALIVEUS라는 사무실명은 구성원 그 누구의 이름도 지칭하지 않는다. 회사라는 것이 누군가의 소유물이 아닐 것, 같은 이름 아래의 디자인 작업이 다음 세대까지 연속될 것, 내부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수평적 관계를 유지할 것을 바라는 의도다. 설계 지향점과 취향을 공유한 집단으로서의 의미가 지속되길 바라며, 동시에 개개인의 삶을 마모시키지 않으면서 성취감과 만족도, 성장력을 높이려 한다. 완성도 있는 옴니버스가 탄탄한 개별 플롯으로부터 연유하는 것처럼, 결국 좋은 집단은 좋은 개인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런 의미에서 구성원 몇몇이 바라보는 각자의 시선으로 글을 채워보려 한다. 우리가 만들어 가는 공간 강한솔(이하 강)서플러스글로벌 용인클러스터는 사옥과 공장이 결합된 단지다. 직선적 조형을 통해 단지의 입체적 인상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클라이언트의 지지를 등에 업고 평소 해보고 싶었던 요소를 적극 시도했다. 플랜터와 다단형 구조물에 많은 공을 들였다. 반면 시공사와의 관계에서는 난점을 경험했다. 공간 배치와 자재 선정, 지정 소재의 반입 여부 등 여러 지점에서 감리권이 부재한 상황이 어려움을 만들었다. 많은 조경가가 디자인 빌드를 지향하는 데는 이유가 있나 보다. 알투마마 스타디움(Al Thumama Stadium)이 드디어 완공됐다. 3년여의 시간, 다양한 주체 사이에서의 균형 유지 등 난이도가 상당했던 프로젝트지만 월드컵이라는 전 세계적 이벤트에 설계가로 참여한 묘한 감정이 배어 있다. 의미 있는 여행 목적지가 하나 추가됐다. 권예린(이하 권) 카페 겸 레스토랑 모쿠슈라(MOCHUISLE) 2호점 시공을 준비하는 중이다. 파주에 위치한 4층 규모의 대형 카페로, 외부 공간을 설계하면서 공간 경험의 시퀀스와 건축의 조화를 오래 고민했다. 주로 차량으로 방문하는 위치임을 고려해 도로와 맞닿은 전면부는 화려한 식재가 반기도록 구성했고, 테라스와 실내에서는 식재 영역이 배경이 되어 아늑하고 풍성한 공간이 되도록 설계했다. 실제 공간으로 잘 구현되도록 세세한 부분들을 다듬어가는 중이고, 건축 및 인테리어와 소통하며 더 많은 고민을 녹여내고 있다. 머릿속의 설계가 실재하는 공간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지 매순간 느끼고, 완성될 공간에 대한 더 큰 책임감과 기대를 갖게 된다. 김연정(이하 연) 입사한 지 반년 남짓 시간을 보낸 신입이 바라본 얼라이브어스가 만들어 온, 만들어 갈 공간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각 공간이 가진 이슈에 어떤 대안을 내놓아야 할까, 클라이언트의 의견은 어떻게 반영해야 할까, 사람들은 이 공간을 어떻게 이용할까, 어떤 시점에서 바라볼까 등 수없이 고민하고 질문한다. 결정된 디자인에 공간을 향해 던졌던 질문의 답들이 가득 채워져 있으면 뿌듯함을 느낀다. 김태경(이하 태) 제주 롯데호텔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는 오래전부터 기회만 주어진다면 꼭 해보리라고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많은 디자인을 풀어낸 뜻깊은 프로젝트였다. 제주도 곶자왈에서 느껴지는 야생성, 깊이, 밀도, 색채, 경험의 흐름 등 추상적 공간감을 재해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다량의 곡간형 대교목 나뭇가지들이 겹쳐져 공간의 깊이를 만들어 내고, 관목과 지피의 수종 변화로 점점 깊어지는 숲을 표현했으며, 공간을 거닐다 보면 작은 정자들을 만나도록 구성했다. 부산 롯데호텔 수영장은 조경가로서 매우 도전적인 콘셉트로 출발했다. 호텔의 야외 수영장을 산책하는 정원 공간으로 해석했다. 수영장 자체는 물 속 산책로가 되었고, 수영장 주변 공간은 정원 산책로로 연출했다. 생소하고 시도해보지 않은 콘셉트의 수영장이었지만, 발주처와 운영사, 시공사 모두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었기에 가능한 프로젝트였다. 두 프로젝트 모두 올해 완공과 개장을 앞두고 있어 기대감과 두려움 속에서 한 해를 보내는 중이다. 이향지(이하 향) 한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판교에 N기업의 신사옥 설계를 진행 중이다. 사옥 디자인은 기업이 지향하는 철학과 가치를 드러내는 매개체이며, 기업과 지역 사회가 함께 공존하는 모습을 주민들에게 보여 줄 수 있는 수단이다. 기업이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것과 현재 진행형의 변모를 드러내야 하고 기업의 미래를 나타내는 요소로 무장해야 한다. 애플, 구글, 아마존 등과 같은 세계적인 기업도 스타 디자이너들을 앞세워 그 지역의 랜드마크 건축물로 전 세계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이번 프로젝트도 판교의 새로운 랜드마크를 기대하며 국내외 대형 설계 사무소들과 함께 협업하는 중이다. 실험적이나 기능적이고, 아름답지만 친환경적이며, 추상적이면서도 견고한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함께 질문하고 답을 찾는 과정에 있다. 장기간 긴 호흡으로 진행해야 하는 프로젝트이기에 세상에 공개되기까지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지만, 이 프로젝트를 끝낼 시점에는 수없이 던진 심도 있는 질문에 대한 답에 가까워진 조경가가 되어있길.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 강 내가 가진 모든 관계 중 어쩌면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는 사람들과의 소통이 즐겁다. 얼라이브어스가 내게 주는 매우 큰 행운이다. 업무 관계에서의 전문성은 당연하고,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호감과 신뢰 역시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러면서도 서로에게 그어놓은 암묵적인 선을 민감하게 파악해야 하며, 놓인 그 선의 위치가 인원마다 모두 다르다는 것을 항상 인지해야 한다. 인원수가 늘어감에 따라 전원이 만족하는 상황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도 조심한다. 모든 것이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모든 개인이 중요하다. 현재를 대처하고 미리 걱정은 말자. 권 파티션 없는 공간에서 매일 책상을 넘어 가벼운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 실없는 농담으로 그칠 때가 대부분이지만 이런 가벼움이 디자인 그룹으로서의 정체성이자 설계의 방식이 되기도 한다. 디자인 미팅에 모두가 참여하고 편안하게 짧은 아이디어와 단편적인 생각을 던지는 과정에서 설계의 중요한 지점을 찾아 나간다. 혼자 고심하는 것만이 집요한 디자인의 과정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지만, 옆 사람이 툭툭 내뱉는 한마디로 다른 차원의 고민을 하게 되고 가려진 것들을 보게 되면서 새로운 방식을 믿게 되었다. 독립적이고 내향적인 사람이지만 얼라이브어스와 함께하는 여정에서 일과 생활 전반에 걸친 ‘어스(us)’의 힘을 배워가고 있다. 연 공간을 설계하는 사람은 자신의 주변 공간부터 잘 만들어야 한다. 물리적인 공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내 주변 환경에 가치를 잘 부여하는 일들을 포함한다. 서울의 한 작은 사무실에서 함께 만들어 가는, 우리가 생활하는 이 공간은 좋은 시너지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생활하는 곳이 가진 특유의 분위기는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프로젝트에 나비효과를 일으켜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확신한다. 태 재미가 없었으면 디자인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재미가 없었으면 창업을 하지 않았을 것이며, 재미가 없었으면 지금의 사람들과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의 회사 생활에 재미가 없어진다면 언제든 조경 디자인 분야를 떠나 제2의 꿈을 찾아 떠날 생각이다. 그렇지만 현재는 동네 친구를 만나서 노는 것보다도, 그 어떠한 취미 활동보다도 디자인하는 과정이 제일 재미있다. 회사 사람들과 농담하고 노는 것이 제일 재미있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여기 회사에 있다. 나의 재미를 위해 고단한 사회생활을 해주는 모든 이에게 무한한 감사를 전한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난 너무 재미있는 걸. 아, 이 막연한 글 다 썼으니 이제 놀아보자. 향 좋아하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하고 싶다는 것, 그 바람은 그저 낭만적이고 추상적인 허상일까 걱정하던 때도 있었다. 이제는 소년 만화 ‘원피스’의 주인공 루피가 “너, 내 동료가 돼라” 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나 가능할 것 같던 그 이상이 우리가 함께하는 이 공간에서 ‘살아있다(alive)’고 느낀다. 의식적으로 선택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함께 노력하면서도, 균형 있는 관계를 유지하고 공동의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을 배운다. 이는 구성원 모두가 소통과 관계를 우선시하고 성취와 상실, 성공과 실패, 이기주의와 희생, 질투와 존중, 다름과 인정과 같은 끊임없는 경험의 축적 속에서, 거듭되는 좌절이 있겠지만 겸손함과 우정을 쌓으며 우리가 함께하는 이 공간을 의미 있는 시간으로 채우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 그룹의 이름처럼. 건강한 ‘그룹’으로의 지향 글을 쓰는 것은 소중한 기회다. 우리를 보여줄 수 있는 방편이기도 하지만, 일상에 무뎌져 흘려보내는 생각과 감정을 잡아두고 살펴볼 수 있기에 더욱 그렇다. 이번 글은 개별 인원들의 사고들로 엮은 그룹으로서의 판단을 공유할 수 있었기에 특별한 가치가 있다. 모두의 이야기를 텍스트로 담아낸 것은 아니지만 과정에서 나눴던 대화들 역시 같은 비중으로 남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결국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글을 통해 조금은 더 명료하게 보게 된 각 입장 사이의 균형감이 관건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늘어날 수 있는 내부적 시선과 새로운 외부와의 관계를 고려하면 더욱 더 그럴 수도 있다. 그룹으로서의 고유한 분위기와 디자이너로서의 시선을 잃지 않으려 할것이다. 여러모로 총괄적 시나리오와 각 장면의 미학적 미장센 모두 필수적이다[email protected] 얼라이브어스(ALIVEUS)는 현대 도시를 만들어가는 건축, 조경, 도시재생, 문화 기획에 기반을 둔 디자이너 그룹이다. 평등한 커뮤니케이션과 유연한 관계를 바탕으로 이상적인 학제간 디자인을 추구하며, 이러한 방식이 도시의 다양한 문맥에 더 좋은 디자인 솔루션을 제시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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