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 [풍경 감각] 적당한 거리
    자주 다니던 수목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식물은 복수초 같았다.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지정된 진노랑상사화, 흰 꽃을 피우는 희귀한 진달래, 종을 정의할 때 기준으로 삼는 기준표본목문배나무 등 특별한 사연과 가치를 가진 식물들이 많지만, 몰려든 사람들이 줄까지 서서 구경하는 건 복수초가 유일했다. 복수초 주변에는 사람의 접근을 막는 울타리가 있다. 꽃 필 무렵의 복수초는 키가 한 뼘도 채 되지 않는다. 그래서 바닥에 뒹구는 낙엽 틈에 꽃이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꽃을 보기 위해 쪼그려 앉은 채 울타리 창살 틈으로 팔을 뻗고, 카메라 배율을 최대한 높여 사진을 찍는다. 꽃이 작고 울타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휴대폰 카메라에 자세히 담기지 않는다. 괜히 이 울타리가 답답하고 성가시다. 울타리는 복수초를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복수초는 해가 바뀌면 가장 먼저 피는 꽃이라 겨우내 꽃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앞다퉈 찾는다. 그런데 복수초는 크기가 작아 꽃이 노랗게 피기 전에는 눈에 띄지 않는다. 게다가 해가 없으면 꽃잎을 닫아버리기에 꽃을 보러온 이들의 발길에 꺾이고 밟힌 꽃봉오리가 여럿이었을 것이다. 울타리 속에는 이전보다 더 많은 복수초가 피어난다. 가까이 보고 싶고 울타리는 답답하지만, 멀리서 복수초를 본다. 노란 꽃잎이 햇빛에 반짝인다.
  • [어떤 디자인 오피스] HEA 합리적이고 세심하며 감각적인 자연을 만들다
    우리의 오피스 문화 HEA에이치이에이는 디자인과 삶이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건강한 관계를 지향한다. HEA에서 좌충우돌 성장하고 있는 네 명의 팀장이 네 개의 주제로 회사와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담아 소개한다. 최고 수준의 복지와 자유로운 분위기 HEA는 디자이너의 창의성과 유연한 사고를 위해 자유로운 회사 분위기를 조성하고 최고 수준의 복지를 보장한다. 회사 측이 연차 사용을 적극 장려해 개인 일정에 맞게 자유롭게 휴가를 붙여 쓰는 건 물론이고, 급한 일이 없는 경우 눈치 보지 않고 반차를 내고 퇴근할 수 있다. 또한 1시간 단위로 유연 근무제를 적용해 각자의 생활 패턴과 일정에 맞춰 자신만의 근무 시간을 정할 수 있다. 직원들이 회사에 의견을 건의하는 것도 매우 자유롭다. 개진된 의견을 진지하게 수렴할 준비가 된 수평적인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이러한 여러 복지 혜택뿐만 아니라 격주 금요일마다 1시간씩 일찍 퇴근하는 패밀리데이, 한 달에 한 번 팀별로 답사를 하는 문화데이, 그리고 직원들의 건강 관리를 위한 운동비 지원 등이 있다. 사무실에 오면 들리는 최신 음악과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는 HEA의 창의적이고 편안한 업무 공간 분위기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라운지에서 부드러운 분위기의 재즈와 팝송을 들으며 격의 없는 일상 대화부터 시작해, 업무 시간에도 좀 더 수평적인 분위기의 회의를 이어갈 수 있다. 원하는 노래가 있다면 누구든 스피커로 들을 수 있다. 이처럼 사람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필요한 마찰을 최소화하고, 오로지 창의성과 유연한 사고를 위해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있도록 여러 방면에서 노력하고 있다. (한지수 팀장) 답사의 즐거움, 문화데이 좋은 설계를 하려면 두 눈으로 직접 좋은 공간들을 보고 체험해보면서 익히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설계사무소 직원들은 평일에 햇빛이 있을 때 좋은 공간, 요새 뜨는 ‘핫플’을 방문하는 게 쉽지 않다. 주말에도 갈 수 있지만 사진을 찍을 수 없을 정도로 인구 밀도가 높기 때문에 여유롭게 한 공간을 보고 오지는 못한다. 이러한 상황을 보완하기 위해 한 달에 한 번 팀별로 답사를 가는 날인 문화데이를 만들어 실천 중이다. 아파트, 상업 시설, 리조트, 카페, 아울렛, 미술관, 특색 있는 동네 등 팀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영감을 줄 수 있는 다양한 공간에 방문했다. 각 동네의 고유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음식, 디저트를 먹으며 근황이나 일하면서 힘들었던 점들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예쁜 공간을 눈에 담을 수 있어 여러모로 유익하다. 특히 혼자 방문하거나 조경에 관심 없는 친구들과 가면 충분히 공간을 즐기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는데, 조경하는 사람들과 함께 가면 여유롭게 공간을 익히고 디테일한 부분도 눈에 담을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문화데이 후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 공간을 주변 지인에게 성향과 상황에 맞게 추천해주는데, 그 공간이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공간으로 인식될 때 즐겁다. 이번 달에도 어떤 지역으로 갈지, 어떤 사례를 보아야 할지, 어떤 음식을 먹을지 기대감에 부풀어 장소를 검색하고 있다. (염혜리 팀장) 머물고 싶은 오피스 최근 논현동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서초동 사무실에 이어 HEA의 네 번째 공간이다. 논현역 도보 3분 거리, 초역세권에 아담한 소공원이 인접해 숲세권, 팍세권(파크+세권)까지 갖추었다. 무려 6개월간 발품을 팔아 물색한 공간으로 커다란 통창으로 들어오는 주변 풍경마저 완벽하다. 사무실 인테리어는 강지호 건축가(아틀리에 오)가 맡았다. 강지호 건축가의 열정과 노력으로 기능적이면서도 감각적인 사무실이 완성됐다. 사무실은 크게 업무 공간과 회의 공간, 휴게 공간으로 구분된다. 채광이 가장 좋은 위치에 업무 공간이 있다. 직원들의 편의를 우선으로 고려한 두 대표의 배려다. 대표실은 일명 골방이라 불리는 가장 구석진 자리에 있다. 직원들에게 내어준 자리보다는 못하지만, 이곳 역시 채광이 좋다. 업무 공간에는 6인 체제인 3개의 소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흰색을 기본으로 잡고 모노톤을 가미해 화사하고 안락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두 개의 문을 통해 테라스로 나갈 수 있어 때때로 리프레시 시간을 갖기에도 좋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중요 사안을 결정하는 회의실은 글라스월과 시크한 블랙 가구를 배치해 전체적으로 현대적인 인상을 풍긴다. 회의실 맞은편으로는 일명 ‘H바’라고 불리는 우드톤의 라운지가 자리한다. 긴 바 테이블과 널찍한 소파, 여기에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까지 더해져 멋진 카페를 연상케 한다. 이번 사무실 인테리어를 하면서 가장 많은 공을 들인 장소로 다양한 어메니티가 갖춰져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다. 사무실은 편안함을 주는 공간이어야 한다. 물론 영감도 불어넣어 줘야 한다. 시간을 보내고 싶은 곳이어야 아이디어가 샘솟을 것이다. 일에 집중할 수 있고 온전한 휴식을 만끽하는 근사한 오피스를 만들어준 아뜰리에 오와 경영진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김라희 팀장) 한 달의 꿈같은 휴식 HEA에는 3년간 근무를 하면 한 달간의 유급 휴가와 이에 붙여서 사용할 수 있는 한 달간의 무급 휴가가 주어진다. 장기간 휴식을 갖기 쉽지 않은 직장인으로서는 그동안 가고 싶었던 곳에 가서 버킷리스트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생기는 셈이다. 연차와는 별개로 주어진 한 달의 휴가를 받고 떠나는 날, 웃으면서 회사 동료들에게 ‘잘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하며 오세아니아 대자연의 품으로 떠났다. 돌이켜보면, 첫 일주일 정도는 평소 휴가를 떠난 기분으로 주어진 휴식 시간에 많은 것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던 것 같다. 주어진 시간에 더 많이, 더 잘 쉬고 싶다는 생각에 쉬는 것도 빡빡한 일정 속에서 전투적으로 임했다. 하지만 2주차에 접어들면서 일을 규칙적으로 하다보면 생기는 몸의 리듬감이 점차 사라졌다. 그때부터 조금 더 편안한 기분으로 휴가를 즐길 수 있었고, 마지막 4주차가 되니 연예인이 활동을 하지 않는 비수기에 느낄 법한 적당한 게으른 일상 속 묘한 긴장감을 느꼈다. 장기 휴가만이 줄 수 있는 과하다 싶을 정도의 넘치는 여유로움을 만끽하며,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여행 기간 동안의 사진들을 차근차근 넘겨봤다. 휴가를 가기 전후로 많은 지인으로부터 축하를 받으며, 다른 업계에서도 이렇게 한 달씩 비울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회사가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회사에 더욱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됐다. 특히 자리를 비운 동안 진행하던 업무를 아무런 불평불만 없이 맡아준 팀 동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백충석 팀장) 새로운 생각, 새로운 시도 HEA는 자연을 다루는 창의적인 생각을 가진 디자이너를 위한 그룹이다. HEA에서는 새로운 생각이 새로운 변화를 가져온다고 믿으며 새로운 시도를 주저하지 않고 즐기는 편이다. 고리타분한 회식을 거부하고 용산 미군기지 내 드래곤호텔 회식, 한강 요트파티 등 새로운 장소에서의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는 회식 문화와 인공지능 프로그램 챗GPT, 달리2DALL·E 2와 같이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기술을 접했을 때 적극적으로 탐구하고 즐기는 행위는 HEA에서 매우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백종현 대표) 우리의 프로젝트 HEA에서 하루하루 누적되어 쌓이는 새로운 시도와 경험은 직간접적으로 우리의 디자인과 설계 과정을 보다 풍부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HEA를 대표하는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조치원문화정원 첫 준공작(2019)으로 EMA건축사사무소와 함께 협업해 설계한 복합문화공간이다. 기능을 잃은 기존 정수장을 지역 사회를 위한 다양한 문화 활동을 지원하는 장소로 탈바꿈하는 프로젝트로, 기존 숲과 방치된 정수장의 건물들을 존중하는 세심한 복원과 재생의 설계 과정을 거쳐 완성됐다. HEA 초기 멤버 이수 소장(현 한화건설 과장)이 설계와 현장 디자인 감리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 2019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대상, 2019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대상을 수상했다. 대유평공원 우리의 최장기 프로젝트다. KT&G의 오래된 연초제조창 공장 부지를 복합 개발하는 프로젝트로 대형 쇼핑몰(스타필드 수원), 공동주택(화서역 파크푸르지오, 화서역 푸르지오브리시엘)이 새롭게 들어서게 되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공원의 설계를 6년째 진행하고 있다. 주변의 학교, 교회, 주거단지, 먹자골목으로부터의 수많은 민원과 발주처, 수원시로부터의 다양한 요구사항들을 해결하며 2021년 11월, 1단계가 준공되어 시민에게 개방됐다. 2022년 제12회 대한민국 조경대상 국토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성문안 컨트리클럽 성문안 컨트리클럽(이하 성문안 CC)은 국내 최대 규모의 오크밸리 리조트 내 새롭게 조성된 전장 6,662m의 18홀 프리미엄 퍼블릭 골프 코스로, 웅장한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려 홀마다 매력적인 경관을 구현한 프로젝트다. 우리는 코스 전반의 조경 특화설계와 현장 디자인 감리를 수행했다. 2021년 5월부터 2022년 7월 개장 전까지 1주 또는 2주에 한 번씩 현장을 방문해 돌 하나, 나무 하나의 모양과 위치까지 세심하게 신경 쓴 프로젝트다.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HEA 구성원 대부분이 한 번씩은 현장을 경험했고 대자연과 새로 만들어지는 자연의 과정을 만끽하며 소중한 추억을 많이 쌓았다. 가든랩스의 이안숙 소장(@garden_traveler)과 협업해 현장에서 많은 것을 깨달으며 배웠다. 제주 스타빌 천혜의 자연 제주도 한라산 600고지 근방에 위치한 프리미엄 글램핑 리조트 스타빌의 조경 리뉴얼 설계를 오픈니스 스튜디오와 협업해 진행했다. 미리내길을 콘셉트로 하는 스타빌 자연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동시에 새롭게 확장되는 영역의 설계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보고 자료를 매주 만들어내는 숨 가쁜 일정을 소화했다. HEA 심재연 소장의 감각적 설계가 큰 역할을 한 스타빌 프로젝트는 2021년에서 2022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리조트가 잠시 휴장하는 사이 공사가 진행되어 2022년 4월 리뉴얼 오픈했다. 글빛누리공원 HEA의 첫 공원 프로젝트로 2020년 준공됐다. 당시 인턴이었던 김지학(현 오픈니스 스튜디오 팀장), 염혜리(현 HEA 팀장)와의 밤샘 작업 끝에 만든 보고용 모델은 결국 쓰이지 못했지만, 방치된 논밭의 경관을 재해석한 중앙의 초지 경관과 도서관의 공원으로의 확장 등 초기 콘셉트가 대부분 그대로 시공까지 이어지게 되어 좋은 평가를 받았다. HEA가 한층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된 프로젝트다. 2021년 제11회 대한민국 조경대상 농림축산식품부장관상을 수상했다. HEA(에이치이에이)는 도시 공간의 자연을 다루며 창의적 아이디어를 가진 디자이너를 위한 그룹이다. 자연과 도시 라이프의 새로운 조화를 꿈꾸고, 자연의 가치를 토대로 지속가능한 사회적 영향을 추구하며, 도시 자연의 핵심 가치를 공유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
  • [모던스케이프] 효창공원 단상
    유네스코(UNESCO)는 2011년 제36차 총회에서 ‘역사도시경관에 관한 유네스코 권고안(UNESCO Recommendation on the Historic Urban Landscape)’을 채택하고 사회와 문화의 가치가 도시 경관을 의미 있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임을 공론화했다. 경관을 다루는 조경 분야에서는 새삼스러울 것 없는 당연한 말이지만, 미래 세대에 계승해야 할 유산(heritage)의 범주에 ‘도시 경관’이 등장했다는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유산에 내재한 무형의 가치, 즉 시간이 만들어낸 인간과 환경의 맥락을 존중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큰 변화다. 도시 유산은 생성과 변화가 뒤따르기 마련으로, 이를 속성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한 이 권고안은 도시에서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중첩된 경관’에 주목하게 한다. 서울 효창공원(이하 효창공원)은 이러한 동향을 보여주는 하나의 특별한 사례다. 우리의 오래된 공원 대부분이 그렇듯 효창공원도 처음부터 공원은 아니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효창공원의 시작은 원묘(園墓)다. 효창孝昌은 조선 제22대 왕 정조의 원자인 문효세자 묘소의 명칭이며, 효창묘는 1870년(고종 7년) 12월에 원(園)으로 승격됐다. 무덤은 1944년 10월 9일 고양시 원당동 서삼릉 경내로 이장되기 전까지 당시 경기도 고양군 율목동(현 서울시 용산구 청파동 효창공원 일대)에 있었다. 식민지기에 들어서면서 묘역 일대는 근대의 성격이 간섭되기 시작했고 다른 곳과 달리 여러 시설의 층위가 중첩되어 진화했다. 첫 번째는 식민지기에 지정된 공원으로서의 층위다. 효창원은 송림을 배경으로 한 원유회(園遊會)를 시작으로, 1921년부터 1924년까지 골프장으로 사용됐다. 한국 묘역의 특징인 비산비야(非山非野)의 구릉과 상대적으로 양호한 산림, 열린 경관 등의 환경은 코스 설계에 장점이 되었을 것이다. 이밖에도 이곳은 도성으로의 진입과 외부로의 진출입이 편하고 당시 개발로 인해 급부상하는 용산, 영등포 지역과도 인접해 있었기 때문에, 골프장이 아닌 무엇이 들어서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장소였다. 참고문헌 노형석, “왕실묘 → 골프장 → 유원지 → 독립투사 묘지 ‘영욕의 232년’”, 「한겨레」 2018년 5월 31일. 박희성, “효창공원 성역화 사업의 비판적 고찰”, 건축역사학회 추계학술발표대회 특별세션, 2019. 이연경, 『효창공원의 연혁과 공간적 변화』, 서울특별시, 2018. 『조선총독부관보』 제3945호, 1940년 3월 12일. 효창독립100년 메모리얼 프로젝트 www.hyochangpark.com 서울역사아카이브 museum.seoul.go.kr 서울기록원 archives.seoul.go.kr 그림 출처 그림 1. 『朝鮮』, 朝鮮總督府, 1925 그림 2. 「한겨례」 2018년 5월 31일. 그림 3. 구글 지도 www.google.co.kr/maps/?hl=ko *환경과조경420호(2023년 4월호)수록본 일부
  • 세종호수공원
    세종호수공원의 탄생과정 2013년 5월. 세종호수공원이 완공되었다. 2009년 3월 턴키설계를 시작하여 기본설계4개월, 실시설계 6개월 그리고 3년간 공사를 했으니, 꼬박 4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세종호수공원은 행정중심복합도시의 탄생과 맥을 같이 한다. 고 노무현 대통령시절 ‘행정중심의 녹색도시’라는 슬로건 아래 열린 도시개념 국제공모전 당선작 중 안드레 스페레아 오르테가(Andres Perea Ortega)의 “천 개의 도시(The City of Thousand Cities)”안이 도시의 큰 틀과 중심행정타운, 중앙녹지공간 개념의 바탕이 되었다. 이후 정부청사가 위치하는 중심행정타운은 “Flat city/Link city/Zero city” 라는 제목으로 도시의 수평적 구조와 유연한 관계를 강조한 미국의 발모리 어소시에이트(Balmori Associates)와 해안건축의 마스터플랜이 당선되었으며 이 때 처음으로 세종호수공원과 중심행정타운의 뼈대가 잡혔다. 이후 중앙녹지공간에 대한 국제현상공모에서 해인조경의 “오래된 미래Ancient Futures” 안이 당선되면서 중심행정타운과 중앙녹지공간을 매개하는 공간인 세종호수공원의 기본계획이 수립되었다. 2009년에는 ‘중심행정타운 블루그린네트워크 조성사업’ 턴키 결과 조경설계 서안과 계룡건설이 설계와 시공을 맡게 되었는데, 이는 중심행정타운 내 호수공원과 실개천 그리고 근린공원과 녹지를 아우르는 설계였다. 특히 이 사업은 LH에서 발주한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조경관련 턴키설계였는데, 준공이 된 현시점에서 그 과정의 장단점은 한 번쯤 되짚어봐야 할 중요한 사안일 것이다. 디자인 철학과 호수의 구조 세종호수공원에는 이 도시를 구상했던 많은 이들의 철학이 담겨 있다. 특히 도시의 중앙부를 비워두며 환상형의 민주적이며 기능이 분산된 위계가 없는 도시를 구상한 오르테가의 철학과 발모리의 마스터플랜에 담긴 수평적 구조의 시민친화적인 평평한 도시구조의 철학은 도시와 유연한 관계를 맺기 위한 바탕이 되었다. 특히 호수공원과 중앙녹지공간을 녹색의 공간으로 비워두고, 그 주변으로 도시상징문화시설도시건축박물관, 국가기록박물관, 도서관, 행정지원 및 컨벤션센터, 대통령기록관 등을 환상형으로 배치하는 세종시의 ‘도시상징프로젝트’는 호수의 구조를 잡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Landscape Architecture _ SEO-AHN TOTAL LANDSCAPE Landscape Construction _ Kyeryong Construction Industrial co., ltd + Samsung Everland inc + Samsung C&T Corporation Client _ LH(Korea land & housing Corporation) Location _ Sejong-ri, Yeongi-myeon, Sejong-si, Korea Landscape Area _ 615,183m2(Lake _ 322,800m2~326,600m2) Competition _ 2009. 7. 14. Completion _ 2013. 5. Photograhp _ Park, Sang Baek Editor _ Kim, Jeoung Eun Translator _ Hwang, Ju Young
  • [에디토리얼] 오슬로의 추억
    노르웨이 오슬로에 거점을 둔 글로벌 디자인 그룹 스뇌헤타(Snøhetta)의 최근 조경 작업들로 이번 호 특집을 엮었다. 스뇌헤타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조경가 이슬의 메일을 처음 받은 게 지난해 7월이니, 기획과 편집에 여덟 달 가까운 공을 들인 셈이다. 스뇌헤타 네 글자만 믿고 곧바로 특집호 편집을 결정한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우선, 스뇌헤타 특유의 수평적 작업 문화가 디자인 과정과 작품 생산으로 연결되는 지점을 조명하고 싶었다. 부산 오페라하우스 설계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스뇌헤타의 공동 대표 셰틸 토르센(Kjetil Thorsen)이 한 잡지와 가진 인터뷰의 인상적인 구절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스뇌헤타를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 하나를 꼽아달라는 질문에 그는 “민주적”이라고 답했다(월간 『디자인』 2018년 9월호). 스뇌헤타 뉴욕 오피스를 취재한 어느 기자는 작업 공간을 가로지르는 아주 긴 대형 테이블을 자세히 관찰해 묘사하며 그들의 작업 태도를 “투명성, 다양성, 교차성”이라고 표현했다(『Metropolis』 2015년 11월 10일). 이번 특집 지면 곳곳에서 볼 수 있듯, 스뇌헤타가 생산한 작품들의 핵심 개념인 대화와 관계, 맥락과 문지방(threshold)은, 시니어와 주니어 디자이너가 평등하게 발언하며 교류하고 건축가, 조경가, 인테리어 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이너가 고유 영역을 허물며 협력하는 그들의 작업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스뇌헤타의 제안 메일에 가슴이 뛴 더 큰 이유는 실은 오슬로 오페라하우스의 추억 때문이었다. 2019년 9월, 피오르와 뭉크의 도시 오슬로에서 열린 세계조경가협회IFLA 학술대회에 참가했다. 매일 비가 내려 뭉크의 ‘절규’보다 더 우울했던 첫 방문 때와 달리, 두 번째 여행에서 만난 오슬로는 맑은 공기, 깨끗한 바다, 아름다운 언덕이 절묘한 비율로 혼합된 녹색 도시 그 자체였다. 낙후한 구도심 항만에서 활기찬 워터프런트로 탈바꿈한 비외르비카(Bjørvika) 지역의 문화적 앵커가 오슬로 국립 오페라하우스다. 배를 타고 다가가며 보거나 해변을 산책하며 멀리서 보면, 오페라하우스의 형태가 바다에 떠다니는 거대한 빙산이 육지에 얹혀 있는 모습임을 누구나 직감할 수 있다. 스뇌헤타는 순백의 대리석과 화강석 판을 힘찬 수평선과 사선으로 엮어 북구와 노르웨이 자연의 아이콘인 빙산의 형상을 재현했다. 직설적이고 직관적인 형태 재현의 강렬함보다 더 감동적이었던 건 완만한 경사의 외부 공간이 바다로, 건물 지붕으로 바로 연결되는 경험의 흐름이었다. 맥락을 존중하고 경계와 관계를 넘나드는 스뇌헤타 디자인의 특징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고급 공연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마치 뒷산에 오르거나 공원을 산책하듯 부담 없이 걷다 보면 오페라하우스 지붕 위에 오를 수 있다. 도심의 낭만적인 경관과 협만의 피오르 풍경을 한눈에 품고 내려다볼 수 있다. IFLA 행사 마지막 날, 오페라하우스 지붕에 몸을 눕히고 오슬로의 장엄한 석양을 마음에 눌러 담았다. 곧 코로나19 시대가 닥쳤고, 오슬로는 나의 마지막 해외여행 도시로 남게 되었다. 스뇌헤타로부터 날아온 메일에 가슴이 쿵쾅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최종 교정을 보며 남기준 편집장은 “이번 호는 정기구독 외에 서점에서도 많이 팔릴 것 같다”는 전망을 했다. 25년 잡지 경력의 편집자 말이 틀릴 리 없을 테다. 비교적 잘 알려진 타임스퀘어와 킹 압둘아지즈 세계문화센터는 물론이고 라스코 Ⅳ, 맥스 Ⅳ, 오르드룹가드 미술관, 트라엘비코센, 페르스펙티벤베그 등의 근작에서 스뇌헤타의 조경을 관통하는 적응과 경계의 디자인을 직관적으로 만날 수 있다. 참, 조경가 이슬의 열정적인 협력이 없었다면 이번 스뇌헤타 특집을 꾸리는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화여대와 서울대에서 환경디자인과 조경을 전공하고 네덜란드 델프트 공대에서 도시설계‧계획을 전공한 그는 MVRDV를 거쳐 2019년부터 스뇌헤타 인스부르크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있다.
  • [풍경 감각] 풍경 도둑
    나의 산책 코스는 동네 아파트 단지였다. 곳곳의 작은 쪽문을 통해 들어서면 산수유 길, 조팝나무 길 같은 산책로가 있었고, 이 길들은 크고 작은 정원과 어린이 놀이터, 연못과 인공 실개천, 광장, 테니스장으로 연결되었다. 꽃 사진 찍는 사람들과 재잘거리는 아이들, 비 오는 날의 개구리 소리, 우비 입힌 강아지와 산책하는 우비 입은 사람. 무해하고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지난 봄부터 발길을 끊었다. 산수유가 지고 조팝나무 꽃이 하얗게 필 무렵 아파트 단지 외곽에 진회색 울타리가 들어섰다. 누구나 드나들던 쪽문에는 입주자 카드나 비밀번호가 없으면 열리지 않는 문이 설치됐다. 낯선 인기척에 잠 못 이루는 이가 있었던 걸까. 소음, 보안, 그리고 코로나19……,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짐작 가는 원인은 여럿이다. 여전히 경비원이 상주하는 정문과 배달 차량 출입로는 열려 있지만 풍경을 도둑질하는 기분이라 들어갈 수 없다. 닫힌 문 앞에는 손수레를 끄는 할머니들이 서성이곤 했다.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러 시장에 다니던 분들인데, 입주자가 지나갈 때 열린 틈으로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나는 이제 먼 곳으로 작업실을 옮긴다. 내가 다른 산책 코스를 만드는 동안, 그 아파트의 문은 계속 잠겨 있을까? 할머니들은 계속 기다릴까? 아니면 장본 것을 끌고 빙돌아 집으로 돌아갈까? 봄이 오면 진회색 울타리 안에 노란 산수유와 하얀 조팝나무 꽃이 필 것이다.
  • [제도가 만든 도시] 제도의 한계: 제도는 효율적인가?
    지난 첫 연재에서는 제도를 정당화하는 가치인 ‘공공의 이익’이 어떤 한계를 지니는지 살펴보았다. 이번 글에서는 제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적 측면에서 제도의 형식과 실행 방식이 가지는 한계를 우리 도시의 여러 사례를 통해 짚어 보려고 한다. 제도는 효율적인가? 형식의 경직성 어떤 도시 제도의 구체적인 내용이 의도한 바를 실현하는 여러 방안 중 가장 적절하여 그 적용의 강제가 납득되는 경우, 그 제도가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의 공간 이슈는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확언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좁은 길에서는 보도와 차도를 구분해 디자인하는 게 보행자에게 더 안전할까, 반대로 경계를 뚜렷하지 않도록 만들어 자동차의 서행을 유도하는 게 더 안전할까? 산을 가리고 늘어선 아파트 높이를 계단식으로 만들면 도시 경관이 나아질까? 작은 부정형 필지, 좁은 골목길은 없어져야 할까? 도시 제도는 이런 질문들에 확정적인 형식으로 존재한다. ◯◯◯ 지침, ◯◯◯에 관한 규정, 표준 ◯◯◯ 등은 보편적으로 최소의 수준을 보장할 수는 있지만, 제도가 최적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에런벤–조셉(Eran Ben-Joseph)이 말하는 바처럼 경직된 기준에 근거를 더하는 노력보다는 궁극적으로 제도가 목적하는 가치를 실현하는 다른 대안들을 허용할 수 있어야 한다.1 그렇다면 제도의 유연성과 포용성을 저해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여기서는 다양하고 복잡다단한 도시 공간을 다루는 제도가 취하고 있는 형식에서 오는 한계를 들여다보려고 한다. 단속적 제도 공간 vs. 연속적 현실 공간 모든 도시 공간 제도의 작동 형식은 제도가 적용되는 대상을 정의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도시기본계획, 공원녹지기본계획, 지구단위계획 등 소위 ‘구역계’라든가 용도지역·용도지구·용도구역 등은 도시 공간 안에 확정적 구획을 그려 해당 제도가 적용되는 범위를 구분 짓는다. 또한 2층 이상 건축물에 적용되는 내진 설계나 대지 면적 200m2 이상일 때 확보해야 하는 대지 안의 조경과 같이 각종 법규는 확정적 숫자를 기준으로 적용 범위를 설정한다. 이러한 공간적 범위와 양적 범위를 가르는 선과 수치는 실제의 연속적 도시 공간이나 연속적 공간 현상 속에서는 실체가 없으며 임의적이다. 물론 도시 제도뿐 아니라 모든 제도는 그 적용 대상을 명확히 하지 않는다면 매번 적용의 당위를 다퉈야 한다. 제도라는 사회적 장치를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연속적 공간과 이를 임의적으로 구분하려는 도시 제도의 본질적 차이가 도시 공간에 야기하는 파열과 부조리가 있다는 점만큼은 인정할 필요가 있다. 연속적 공간을 불연속적으로 다루는 가장 대표적인 방식은 도로를 기준으로 구획하는 것이다. 물론 도로는 공간을 구획하는 경계로서 근거가 단순하고 인지와 운영이 용이하다. 그러나 고속도로가 아닌 이상 도시의 일반적인 도로는 도시 가로로 활성화되어 있을수록 사람들이 양측을 빈번하게 오가고 도로 양측의 기능적·공간적 특성이 해당 도시 가로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이때 도로는 그 지역의 중심이지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경계라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편의 상 도로를 구획의 경계로 삼기 때문에 실제 도시 공간의 인식적 구분과 제도의 운영이 어긋나게 된다. 자주 거론되는 예로 서울시의 강남대로는 두 행정구역(서초구, 강남구)의 경계이자 두 지구단위계획구역(서초로 구역, 테헤란로 제2지구 구역)의 경계다. 따라서 강남대로 양측은 두 지자체의 도시 공간 관련 조례부터 도시설계 지침, 가로의 경관 디자인까지 각각 다르게 적용된다(그림 2). 예전에 일했던 사무실 앞 성북로는 왕복 2차선의 좁은 도로인데, 한편은 제1종 일반주거지역이어서 술을 팔 수 있는 일반 음식점이 가능했고 반대편은 제1종 전용주거지역이어서 불가능했다. 도로를 기준으로 용도지역을 가르다 보면 이런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환경과조경419호(2023년 3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1. Eran Ben-Joseph, The Code of the City: Standards and the Hidden Language of Place Making , Cambridge: The MIT Press, 2005. 유영수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로재와 기오헌에서 건축 실무를 경험했다.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에서 도시 디자인 및 사회과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돌아와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며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병행했다. 현재는 인천대학교 도시건축학부에서 법, 제도, 현대 도시 설계 이론, 스튜디오를 가르치고 있다. 건축과 도시를 아우르는 스케일에서 개별적인 공간 현상과 법제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고, 계획과 디자인의 역할을 확장하기 위한 이론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 유영수
  • [모던스케이프] 죽음이 이르는 곳
    죽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험하게 될 일이지만 이를 대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특히 장례 문화는 종교와 사상, 신분, 환경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형성되기 때문에 문명권마다 특징적인 고유의 장례 형식이 있다. 씨족사회의 전통을 가진 한국은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선산을 두고 후손들이 정성껏 가계 묘를 관리하는 게 오랜 관습이었다. 비공식적으로 음택 풍수의 이치를 따져 길吉한 묫자리를 찾아 몰래 매장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반면 비천한 신분이나 무연고자처럼 개인 묘지를 가지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혹여 질병이나 자살 등 불경한 이유로 사망했다면 사정은 더 나빴다. 시신은 집장지集葬地라고 부르는 매장처에서 표식도 제대로 없이 처리됐는데, 사람들은 이곳을 북망산北邙山이라고도 불렀다. 집장지는 지금으로 치면 공동묘지 같은 시설이다. 서울은 예로부터 인구가 많은 탓에 도성 주변에 집장지가 여럿 있었다. 우리에게 익히 잘 알려진 곳은 한양 도성 동남쪽의 광희문 밖 집장지다. 광희문의 별칭이 ‘시구문屍柩門(시체가 나가는 문)’이었을 정도니, 이곳 분위기는 문물 교류, 송별 연회 등 활기 넘치고 번잡했던 사대문 주변과 사뭇 달랐을 것이다. 도성 밖 집장지와 산자락 여기저기에 자리 잡은 묫자리가 문제로 떠오른 건 식민지기에 이르러서다. 서울시만 하더라도 1910년대에 이미 도성 주변에 19개소의 집장지가 있었다고 조사된 바 있다. 이들 외에도 이 산 저 산에 산소가 많이 있었을 터인데, 근대 도시로 전환하는 데 있어 마구 없애기도 뭣한 애매한 장애물이 아닐 수 없었다. 국유 임야를 개인이 사유화해 묫자리로 쓰고 권리를 행사하는 방식도 문제였다. 국가 토지를 관리하는 총독부, 경성부와 가족묘를 지키려는 이들의 대립은 첨예해졌고, 결국 전통적인 한반도의 장례 문화는 여러 면에서 위기를 맞게 된다. 1912년 조선총독부는 ‘묘지·화장장·매장 및 화장 취체 규칙’을 공포하고 주요 도시부터 묘지를 정비하기 시작한다. 묘지 정리의 명분은 위생과 미관이었다. 다만 조선인의 오랜 관습을 건드릴 때 발생할 수 있는 격렬한 저항과 분쟁을 고려하여 천천히 진행했다. 1914년 경성부에서는 경성부 일대의 19개소 집장지를 미아리, 신당리, 아현리, 이태원리, 신사리(응암동), 수철리(금호동) 여섯 곳으로 정리하고 공동묘지라는 이름으로 공식 운영하기 시작한다. 기존 집장지 등에 있던 묘지는 이장이나 화장하는 방식으로 정리하고, 새로 운영하게 된 공동묘지에서는 화장과 매장의 원칙을 정하여 묘지 구획, 묘지 사용료 등의 규칙을 갖추었다. *환경과조경419호(2023년 3월호)수록본 일부 참고문헌 이향아, “공동묘지, 식민지 경성을 잉태하다: 식민지 경성 공동묘지의 정치경제학”, 『한국공간환경학회 추계학술대회』, 2014, pp.347~357. 다카무라 료헤이, “공동묘지를 통해서 본 식민지시대 서울: 1910년대를 중심으로”, 『서울학연구』 15, 2000, pp.131~165. 이의성, 『근대도시계획과정에서 나타난 공동묘지의 탄생과 소멸: 서울 사례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21 유홍준, “망우리 별곡”, 「중앙일보」 2022년 5월 12일. 정재정, “망우역사문화공원과 근현대사 탐방”, 「서울신문」 2022년 11월 30일. “이태원공동묘지 이장공사 착수”, 「동아일보」 1936년 4월 9일. “무연분묘삼만기 망우리로 이장”, 「조선일보」 1936년 10월 10일. 망우역사문화공원 manguripark.or.kr 박희성은 대구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한중 문인정원과 자연미의 관계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역사 연구자들과 학제간 연구를 수행하면서 근현대 조경으로 연구의 범위를 확장했다. 대표 저서로 『원림, 경계없는 자연』이 있으며, 최근에는 도시 공원과 근대 정원 아카이빙, 세계유산 제도와 운영에 관한 일을 하고 있다.
  • [에디토리얼] 인류세의 조경, 작은 실천을 향한 첫걸음 12
    겨울이 매년 더 추워지고 있다. 추워도 너무 춥다. 한반도의 겨울에 한파가 찾아오는 건 계절 변화에 따른 일반적 현상이지만 전 지구적 기후변화의 여파로 겨울 추위가 갈수록 심해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구 온난화로 녹은 해빙과 한반도 주변 해수 온도 상승으로 인해 북극 한파가 남하하기 좋은 조건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구 온난화, 기후변화, 해수면 상승, 생물 다양성 감소, 물 부족, 자원과 에너지 고갈 등 서로 연결된 복합적 난제가 지구와 인류의 운명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2020년 여름, 역사상 최고를 기록한 미국 캘리포니아의 이상 기온은 한국 면적의 20퍼센트에 달하는 땅을 불태웠다. 2021년 중국 허난성에는 1,000년 만에 최대량의 폭우가 쏟아졌다. 기후 재난과 더불어 코로나19 팬데믹은 과도하게 커진 인류의 힘과 감당할 수 없는 욕망으로 인해 지구 시스템의 균형이 붕괴되었다는 점을 실감하게 했다.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드러내고 있는 지구 환경의 다층적 변화와 균열은 지난 1만 년의 홀로세(Holocene)가 끝나고 이른바 ‘인류세’라고 지칭되는 새로운 지질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알린다. ‘인류(anthropos)’와 지질학의 시대 구분 ‘세(-cene)’를 합친 말 ‘인류세(Anthropocene)’는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파울 크뤼천(Paul Crutzen)이 2000년에 제안한 이후 이 시대의 새로운 화두가 됐다. 인류세는 인간이 지구 환경을 바꾸는 지질학적 힘이 된 시대, 다시 말해 지구 역사에서 과거 어떤 시대보다 지구 시스템에 미치는 인간의 영향력이 지배적인 시대 상황을 뜻한다. 지질학을 비롯한 지구과학에서 제기된 인류세 논의는 생태주의 환경 운동, 탄소 저감을 위한 지구공학, 환경 정책과 정치학, 탈탄소 경제학, 포스트휴머니즘과 탈인간중심주의, 신유물론, 마르크스 생태학, 인류세 페미니즘, 생태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의제로 확산되고 있다. 인류세는 인류가 이룬 문명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역사적 상찬이 아니라, 지표면 형태의 변화, 종 다양성 감소, 기후변화 등 동시다발적 위기 상태가 낳은 지구 행성과 인간 삶의 절멸 상황에 대한 경고다. 지구의 여섯 번째 대멸종이 다가오고 있다는 어두운 전망이 속속 나온다. 하지만 인류세가 인류의 종말을 목도하는 시대가 될 수도 있다는 섬뜩한 경고가 이어지는데도 우리는 구체적인 행동과실천에 선뜻 나서지 않는다. 인류세 위기의 규모가 인간의 지각 범위를 뛰어넘기 때문에 인식과 실감이 어렵다는 게 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 내가 죽고 난 뒤 먼 미래에 닥칠 일이라고 여긴다. 인류세의 위험은 치명적이지만 비가시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과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 사이에 큰 인지적 부조화가 있는 것이다. 행동과 실천을 가로막는 또 다른 이유는 어차피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비관과 회의에 있다. 마치 타조가 평야에서 맹수나 사냥꾼을 만나면 모래에 머리를 파묻어버리는 것처럼 우리는 인류세의 위기를 외면하거나 회피하곤 한다. 이러한 인지 부조화와 회피의 문제를 넘어서려면 인류세 위기에 대한 일상적 관심을 촉발하고 공감하게 할 이야기와 상상력이 필요하다. 과학적 연구와 기술적 해법, 정책적 수단만으로는 행동과 실천을 끌어내기 힘들다. 엄청난 양의 빅데이터와 계산, 과학적 관찰과 모델링을 통한 사실 확인과 예측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새로운 상상력으로, 구체적인 공감의 서사로 번역할 수 있어야 피부에 와닿는다. 바로 이 지점에 인류세를 사는 조경가의 작은 역할이 자리한다. 이번 호 ‘어떤 디자인 오피스’ 스튜디오테라(대표 김아연) 편에서 인류세와 조경을 연결하는 소중한 접점을, 작지만 의미 있는 실천의 첫걸음을 만날 수 있다. 본문에서 따와 다시 싣는다. “팬데믹과 기후위기를 온몸으로 겪고 있는 지금, 다양한 정책적, 전문가적 해결 방안이 모색되고 있는데, 이런 해결책들은 행정가, 정치인, 기업인, 전문가들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우리는 자연을 대하는 대중의 태도가 바뀌어야 비로소 이러한 정책들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중 하나가 일상에서 자연을 더 잘 이해하고 자연에서 감동을 받고, 그래서 나와 자연을 이어주는 계기들을 계속 만들어가는 일일 것이다. 여기에 조경이라는 예술이 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이 있다. 자연이 가지는 본연의 예술성을 드러내는 일 혹은 자연을 예술적으로 체험하는 일이 궁극적으로는 인류가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서서히 변화시키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조경과 예술은 지구를 살리는 실천으로 만날 수 있고, 그 실천에 우리는 동참하고 있다”(113쪽).
  • [풍경감각]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해도 될까?
    어떤 영화를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밀양’이나 ‘올드보이’, ‘이터널 선샤인’ 같은 명작을 나열하지만, 사실 가장 즐겨 보는 건 아무래도 로맨틱 코미디(이하 로코)다. 좋은 작품으로 평가받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나 ‘러브 액츄얼리’는 물론, 왓챠 평점 기준 2점대(왓챠는 5점이 만점이다) 작품까지도 로코라면 무조건 챙겨보는 시절이 있었다. 단지 연애를 하고 싶어서 보았던 건 아니었다. 오늘보다 내일이, 내일보다는 모레가 훨씬 더 구릴 것이라는 확신이 있던 시기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코 속 등장인물들은 서로 오해하고 티격태격하면서 위기에 봉착하지만, 어떤 작품에서든 결말에 이르면 문제는 풀리고 모두가 행복한 얼굴로 웃는다. 대략 두 시간 동안 펼쳐지는 뻔한 스토리와 허술한 대본, 어색한 연기는 모두 선물과도 같았다.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서양미술사』 서론에서 이야기한다. 어떤 그림을 좋아하는 데에 잘못된 이유란 없고, 그 이유가 무엇이든 우리가 보고 있는 그림을 즐기게 해준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거라고. 영화도, 그리고 다른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예전 같지는 않지만 여전히 설레는 마음으로 해피엔딩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