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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디자인 오피스] 조경설계 디원 시간의 감각으로 빚는 감동의 디자인
    설계 철학 그리고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꽃 사이를 벌이 드나들고. 아기들 공원에서 뛰놀 때. 가슴 두근거린다. 모든 것 공경스러워 눈 가늘어진다”. 얼마 전 작고한 김지하 시인의 연작시 중 ‘새봄’의 여섯 번째 시다. ‘꽃’과 ‘벌’ 그리고 ‘아기들’을 시적 언어로 삼아 자연과 함께 공존하는 세상을 꿈꾸는 시인의 소망을 엿볼 수 있는데, 우리의 궁극적인 설계 지향점과 많이 닮았다. 자연의 생태계가 작동되게 하고 그곳에서 사람이 어우러지고 또 그저 바라보며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울림이 생기는 장소를 만들 수만 있다면, 우리가 가치를 두고 소임을 다하고 있는 것에 안도해도 될 것 같다. 우리 설계의 이상향은 마지막 시구처럼 공경스러워 눈이 가늘어질 정도의 감동이 장소에 대한 기억으로 남아 그 추억을 만날 기대 또는 경험하고 싶은 분위기, 아니면 알 수 없는 이유로 나도 모르게 다시 발걸음하고 싶은 곳을 남기는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욕심이 큰 것 같지만 진심 어린 소박한 꿈이다. 그렇다면 그런 장소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첫째, 땅을 잘 들여다봐야 한다. 눈에 보이는 부분뿐만 아니라 잠재된 물리적 특징과 무형의 흔적들까지도 허투루 다루지 않는다. 세심하게 설계로 풀어가는 단초로써 그 땅의 기억과 에너지의 흐름으로 이어지게 한다. 둘째,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한다. 프로젝트에 따라 대상지를 이용할 다수의 객관성 확보가 전제되어야 하며, 소수 또는 개인의 니즈와 취향, 기존의 라이프스타일을 세심하게 고려해야 할 수도 있다. 어떤 공간이든 사람에 근거한 프로그램, 기능, 심미적인 부분을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 셋째, 시간의 감각을 읽어야 한다. 이 감각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시점으로서의 시간이다. 시류에 맞는 삶의 패턴과 사람들의 욕구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다른 하나는 시간의 양, 기간이 만드는 변화다. 시간에 따른 변화를 예측해 설계하고, 시간의 변화에도 설계의 본질이 유지되도록 고민해야 한다. 물론 다년간의 설계 경험으로 예측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시간의 예술로 의외의 효과를 얻거나 반대의 경우를 맞닥뜨리기도 한다. 특히 살아있는 식물을 비중 있게 다루는 분야이기에 항상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항상 부족하단 생각에 늘 진지하게 인식하고 담아내려 하고 있다. 흥미롭게 진행한 프로젝트, 공동 주택과 수목원 최근 가장 흥미롭게 진행한 프로젝트를 생각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우리가 잘 해오고 보람 있게 느끼는 점,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일까에 생각이 미쳤다. 우리 작업의 대부분은 주거 프로젝트다. 도시의 일상에서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 바로 집이다. 특별한 이벤트가 아닌 매일의 일상을 마주하는 곳이기에 그 가치와 무게를 더욱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 특히 도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이용자의 욕구 충족을 위한 프로그램, 삶의 질을 높이고 커뮤니티 활성화를 유도하는 환경을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한다. 빠른 발전으로 생활 환경이 첨단화됐더라도 사람들의 자연에 대한 갈망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모두 도심 외곽의 정원 있는 집에서 살 수는 없기 때문에 공동 주택의 조경은 필수 불가결한 존재로 좀 더 비중 있고 규모 있게 다뤄져야 한다. 서초그랑자이: 강남의 하이엔드 단지지만 이웃에게 열려 있는 따뜻한 단지를 추구했다. 서초그랑자이는 서초 무지개 아파트를 재건축한 현장으로 2015년 건설사의 수주 경쟁을 위한 프로젝트였다. 우리는 조경 디자인을 맡았고, 수주 성공 후 특화설계까지 진행하면서 완공까지 6년여 동안 함께했다. 수주를 위해 공격적인 전략이 필요했고, 건설사가 과감하게 동 1개를 비우는 결정을 한 덕분에 도심에서 보기 힘든 넓은 오픈스페이스를 확보할 수 있었다. 조경, 건축, 외관, 인테리어 모든 공종이 함께 새로운 아이디어를 과감하게 시도하고 다수의 공간을 모델링으로 완성해가며 짧은 시간 내에 프로그램뿐 아니라 시각적인 디자인을 밀도 높게 스터디해서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만들어야 했다. 프로젝트 성격상 시간적 압박감은 있었지만 공종 간 경계를 넘나들며 유연하게 함께 고민했다. 덕분에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고 심미적인 디자인 능력을 키우는 기회가 됐다. 실시설계를 진행하면서 오픈스페이스의 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커뮤니티 반대편에 외곽을 둘러싸는 구조의 스카이 워크를 계획했다. 이로써 단조로울 수 있는 평지의 대상지를 입체적으로 만들고 이용자에게 보다 풍부한 경험을 선사했다. 비 오는 날은 회랑을 거닐고, 맑고 쾌적한 날에는 자연스럽게 지상 3m 높이의 스카이 워크에 걸어 올라가 푸른 오픈스페이스를 산책하며 여유를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으로 2021 서울 유니버설디자인 대상에서 광장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는데, 사적 공간의 공적 사용을 위한 디자인 해결 노력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외부인 누구나 공공 보행 통로를 통해 중앙 오픈스페이스를 즐길 수 있도록 했고, 또 다른 곳에서 경험할 수 없는 다양한 시선의 산책과 전망을 유모차를 탄 아이와 보호자, 휠체어를 탄 장애인, 노인들도 부담 없이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했다. 다 함께 누릴 수 있는 결과물이라서 만족감이 컸던 프로젝트였다. 안산그랑시티자이: 안산그랑시티자이는 1, 2단지를 이어서 현상설계를 통해 특화설계로 진행한 프로젝트다. 6,600세대의 대규모 단지이기 때문에 커뮤니티의 활성화와 산업 중심의 구도심에서 벗어나 보다 쾌적한 생활을 위해 이주할 주민들의 욕구를 단지 자체에서 충족시키는 것이 중요한 설계 방향이었다. 마침 사회 이슈였던 소확행과 삶의 질에 대한 욕구를 북유럽의 휘게(hygge)라이프의 지향점으로 녹여내 여유로운 삶이 일상이 되는 리조트 같은 단지를 조성하고자 했다. 거점 커뮤니티 개별 동들과 정원들이 하나의 단위를 이루어 소단위 커뮤니티를 만들고, 단위 공간을 확장해 단지 전체에 소속감과 연대감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도록 했다. 이웃과 함께하는 여유로운 삶을 녹여내기 위해 조성한 생활 가로, 캠핑장, 텃밭 등이 형식적 구색 맞춤이 아니라 입주민이 실질적으로 이용하고 활발히 즐기는 프로그램이 될 수 있도록 고민했다. 입주 몇 개월 뒤 현장을 답사했는데, 숲 속 휴게 공간에서 차를 나눠 마시던 몇몇의 주민이 우리에게 무엇을 하는지 물으며 차를 나눠줄 테니 마치고 들르라며 말을 건넸다. 잠깐 스치는 여유로움이 우리에게도 전이됐다. 낯선 이에게 말을 건네는 여유와 담소가 있는 숲 속 작은 공간들이 참 아늑해 보였다. 청계 센트럴포레: 현장 일정과 발맞춰 완성도를 높인 단지다. 청계 센트럴포레는 DL이앤씨의 특화설계로 진행했으며, 프로젝트 시작 5개월 만에 조경 공사를 시작해야 하는 프로젝트라 첫 미팅을 현장에서 하며 숨 가쁘게 진행했다. 대규모 단지는 아니었지만, 단지 순환 동선을 따라 만나는 각각의 정원을 다양한 시설물과 식재 패턴으로 디자인해 매번 새로운 정원을 만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촉박한 일정 중 현장 상황의 이해, 미술 장식품을 공간 디자인으로 연계시키기 위한 협의 및 위치 조정, 입주 예정자 및 현장 의견을 조율하며 작업해 나갔다. 공간을 모델링하며 눈높이에서 보이는 공간감과 조형감을 고려해 수경 시설의 높이와 단의 조형, 티하우스의 방향과 위치, 가벽의 높이 등을 결정했다. 현장에 방문해서 문제의 소지는 없는지 확인하고 결정해 바로 도면화하는 과정을 거쳤다. 거의 공사 시점과 맞물려 설계를 진행하다 보니 시설 및 구조물 등 하드웨어 부분을 현장에 적용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대부분 그렇듯이 식재는 수급 상황과 현장 여건의 영향을 받는 부분이라 지속적으로 의견을 교환했고, 대목들만 어느 정도 위치 시킨 상태에서 현장 검수 요청을 받아 현장에서 협의하며 대체와 보완 수종을 검토했다. 필요에 따라서는 좀 더 자세한 식재 보완 자료를 작성하기도 했다. 가능한 여건 내에서 설계 의도를 최대한 완성도 있게 구현한다는 시공사와의 공감대가 형성되었기에 촉박한 일정임에도 불구하고 디테일까지 완성도 있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국립세종수목원 수목원은 유전 자원 보존과 자원화를 촉진하며 학술적 가치가 있는 곳이다. 관람하고 휴식하는 위락지의 기능도 큰데, 국립세종수목원은 도심의 공원형 수목원을 지향할뿐 아니라 도시의 그린 인프라 역할도 수행해야 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기본설계까지 진행된 상태에서 각 테마에 맞는 정원별 특화설계를 중점적으로 진행했다. 각 테마 정원에 대한 주제, 이용성 및 도입할 전시 수종의 분류 의도 등을 고려해 공간 디자인뿐 아니라 시설, 구조물 디자인까지 발주처와 매주 협의해 상세 도면을 작성해 나갔다. 특히 어린이 정원은 일반 공원이나 놀이터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차별화된 체험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 지형을 이용한 모험 공간을 만들고, 아이들 키 높이에 맞춰 하천의 흐름을 모사하여 물의 변화를 놀이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수목 울타리로 만든 미로 놀이 등 다양한 놀이 요소를 접목한 정원을 조성하고자 했다. 웰컴 공간인 방문자 센터는 수목원 얼굴에 해당하는 공간인 만큼 경관뿐 아니라 가치 있는 수목 선정이 중요했다. 적절한 수량 확보가 가능한 이색 수종 선정을 위해 식물 재배원에서 직접 수목을 조사하며 고민한 과정은 값진 경험이 되었다. 프로젝트가 마무리될 무렵 입구 상징 조형물 작업이 완료됐는데, 금속 선재의 작품이다 보니 존재감을 부각할 보완 작업이 필요했다. 조형 마운딩을 제안하여 작품의 콘셉트와 규모가 더 잘 드러나도록 만들었다. 거의 2년 동안 많은 피드백과 촉박한 일정에 지치고 힘들기도 했지만, 노력한 만큼 얻은 것도 많았다. 설계사무소를 운영하며 중요시 여기는 것 설계사무소의 실체가 무엇일까? 디원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공간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고 디자인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결과물, 그 결과물이 하나씩 쌓여가면서 디원이라는 설계사무소의 실체가 만들어지고 있다. 설계사무소 운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디원이라는 실체를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 하나의 생물과 같이 시간과 함께 진화하며 만들어온 우리만의 개체 특성으로 설계의 대상지와 시류에 유연하게 반응하며, 구성원들도 개인적 성장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설계의 본질을 지키면서도 구성원들이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는 가치를 지속적으로 찾는 것이 중요한 숙제일 것이다. 디원의 설계사무소로서의 본질과 정체성은 현장에서 구현되어야 한다. 때로는 페이퍼 워크에서 멈추기도 하고, 다양한 이유로 다른 분야를 넘나들면서 다른 색이 가미되고 명도와 채도가 조절되기도 하지만, 설계 의도가 반영된 색상의 본질을 유지하기 위해 열정을 낼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설계 과정에서 의견을 나누고 다시 객관화하는 과정을 통해 최선의 디자인을 구현하고 적극적으로 다양한 상황을 조율하며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까지도 설계이기에, 그 과정을 가치 있게 생각하고 즐기는 문화가 존재하는 설계사무소가 되고자 한다. 앞으로 한번은 꼭 해보고 싶은 일 IT, 예술, 공연 등 다양한 전문 분야와 협업하여 새로운 조경 트렌드를 제시하고 싶다. 예를 들어 요즘 이슈인 메타버스 개념을 공간에 접목하는 것이다. 현실 세계의 확장 및 가상 세계와의 교류를 통해 새로운 공간 창출 및 기능을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다수의 특화 프로젝트를 하면서 시설물의 조형적 효과와 공간 분위기를 극대화하는 식재의 역할에 관심이 많았는데. 국립세종수목원 프로젝트에서 생소하고 다양한 식재 수종을 접하면서 어렴풋이 식물, 그 자체를 주 프로그램으로 한 다양한 정원 디자인을 해보고 싶어졌다. 다년간 디자인 경험이 농축된 감각적인 공공 치유 정원도 만들고 싶다. 도시의 건조한 일상 중 마치 카페에 들러 차 한잔하듯이 자연의 생명력을 밀도 높게 음미하며 일상의 치유를 감당하는 미니 정원을 거리의 중간에 배치하는 시리즈물로 생각해봤다. 확장되는 도시가 자연의 생명력으로 채워지고 사람에게 그 에너지가 전이되는 선순환을 희망해본다. [email protected] 조경설계 디원(D.ONE)은 일상을 즐기는 사람들의 삶을 디자인한다. 단순한 설계를 뛰어넘어 재미있는 상상과 독창성이 있는 공간을 디자인하며, 보기에 아름다울 뿐 아니라 이용하기에 편리한 실용적인 외부 공간을 설계한다. 화려함이나 세련된 기교, 상징적 가치만으로 치장하지 않고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구현하며, 일상의 모든 환경을 이루는 요소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도록 한다.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생명력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05년 1월 17일에 시작하여 17년이 지난 현재 17명이 함께 하고 있다.
    • 최철호
  • [모던스케이프] 혼다 세이로쿠의 도시공원 계획
    일찍이 근대화를 받아들인 일본은 서구 사회에 대한 흠모와 동경이 유별났다. 많은 지식인이 유럽으로 건너가 선진 서구 사회를 경험하고 운영 노하우를 습득했으며 귀국해서는 각자의 분야와 위치에서 근대화를 견인했다. 메이지 시대 일본 도시는 ‘진보한’ 근대 도시로의 도약을 목표로 하는 도시부흥계획을 구상했다. 간토 대지진 이후 도쿄의 재건 사업을 이끈 고토 신페이(後藤新平), 오사카 시장을 역임하며 오사카를 오늘날의 상업 도시로 키운 세키 하지메(關一), 유럽 각지를 돌며 근대 도시계획의 법제와 정책을 공부해 자국의 도시계획 제도를 수립한 이케다 히로시(池田宏) 등은 근대 도시를 실천한 대표적인 테크노크라트 1세대 주역이다. 도쿄 역사 설계로 잘 알려진 건축가 다쓰노 긴고(辰野金吾)와 오사카에서 주로 활동한 가타오카 야스시片岡安 등은 붉은 벽돌과 흰 화강암을 결합한 영국풍 건축물을 일본에 소개했다. 조경 분야의 주역으로는 혼다 세이로쿠本多靜六(1866~1952)를 꼽을 수 있는데, 그는 경제학과 임학을 기반으로 국토 전반의 녹지 경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대표적 공원 전문가다. 혼다 세이로쿠(이하 혼다 박사)는 일본 최초의 근대 도시공원인 도쿄 히비야 공원(日比谷公園, 1903년 개장)을 설계하고 국립공원을 지정하는 등 조경학과 임학에 큰 기틀을 마련했다. 도쿄제국대학 교수 시절, 일본 전역에 수많은 도시공원을 조성해 ‘공원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꾸준한 연구와 글쓰기를 통한 자기 계발, 안정된 자산 관리와 퇴직 후 사회 환원 등 인생을 성실하고 계획적으로 운영해서, 일반인에게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삶을 실천한 자산가이자 처세에 모범이 되는 인물로 더 유명하다.1 혼다 박사를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그의 이력에 한반도에서 활동한 사실이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서울 남산의 ‘경성부 남산공원 설계안’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경성부가 서울 남산을 대공원으로 만들 계획을 세웠고, 혼다 박사에게 구체적인 안을 요청했다. 그는 1916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제자 다무라 쓰요시(田村剛)와 함께 남산을 현장 조사하고 1917년 3월 ‘경성부 남산공원 설계안’2을 발표했다. 혼다 박사의 남산공원 설계안에는 남산이 공원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 몇 가지 주요 방향이 제시되어 있다. 첫째, 산림 황폐로 훼손된 남산을 사방공사 등으로 안정화한 후 식재 등의 조경 설비를 적절히 진행할 것, 둘째, 공원 도로와 시설을 남산의 환경 조건에 맞게 배치해 고유한 남산의 풍경을 십분 이용할 수 있어야 할 것, 셋째, 남산공원에 도입할 시설에 맞는 운영 방법을 취해 공원 관리에 힘쓸 것 등이다. *환경과조경411호(2022년 7월호)수록본 일부 참고문헌 京城府, 『京城府南山公園設計案』, 1917. 서울역사편찬원, 『국역 경성부사 제3권』, 2014. 渋谷克美, “国ソウル「南山公園」と本多静六-公園設計にみる本多静六の国際感覚”, 『本多静六 通信』 17, 2008, pp.5~9. 손용훈·서영애, “1917년 경성부 남산공원설계안의 삼림공원 개념에 관한 연구”, 『한국전통조경학회지』 30(4), 2012, pp.23~31. 그림 출처 그림 1. newscast.jp/ 그림 2~3. 京城府, 1917, 京城府南山公園設計案. 박희성은 대구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한중 문인정원과 자연미의 관계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역사 연구자들과 학제간 연구를 수행하면서 근현대 조경으로 연구의 범위를 확장했다. 대표 저서로 『원림, 경계없는 자연』이 있으며, 최근에는 도시 공원과 근대 정원 아카이빙, 세계유산 제도와 운영에 관한 일을 하고 있다.
  • [에디토리얼] 공원의 보존과 재생, 로렌스 핼프린을 추억하며
    도시공원의 보존과 재생 이슈를 다룬 이번 특집 원고의 교정에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렸다. 마음 한구석에 묻어둔 추억의 모더니스트 조경가 로렌스 핼프린(Lawrence Halprin)을 다시 만났기 때문이다. 길지혜의 글 “도시공원의 보존, 변화와 연속성 사이”와 심지수의 글 “공원을 공원답게”에 등장하는 시애틀 ‘프리웨이 공원’의 설계자 핼프린을 처음 만난 건 대학원생 시절이었다. 학교 도서관 서가에서 무심코 뽑아 든 그의 작품집 속 흑백 사진 한 장에 가슴이 뛰었다. 포틀랜드 도심 ‘러브조이 플라자(Lovejoy Plaza)’ 개장일(1970년 6월 23일)의 한 장면. 시에라 산맥의 풍경을 거친 콘크리트 물성으로 재해석해 빚어낸 폭포와 계단 그리고 얕은 연못, 그곳을 가득 메운 청년 세대의 힘찬 기운과 활력. 러브조이 플라자는 1960년대의 저항 문화와 신사회 운동을 도시 한복판으로 불러낸 공감각의 무대였다. 노트 한구석에 이렇게 적었다. “로렌스 핼프린, 공감각적 공간 안무가.” 핼프린에 깊이 빠진 나는 그의 작품들을 여러 편의 글에 인용했다. 어느 논문을 다시 들춰보니, 무려, 이런 말까지 쏟아냈다. “환경과 신체의 대화를 시도한 핼프린의 실험은 자연의 역동적 경험과 도시의 일상 문화를 결합시킨 러브조이 플라자에서 절정에 이른다. 그것은 멀리서 눈으로 관조하는 장식적 폭포가 아니다. 사람들은 폭포에 기어오르거나 폭포 아래 연못에 들어가 자연과 삶의 생동을 공감각적으로 경험한다. 그의 작업은 우리를 경관의 구경꾼에서 환경의 참여자로 되돌려 놓는다.” 문제는 나의 신체로 직접 경험해보지 않았다는 점. 책으로 연애를 배우면 늘 자신 없는 법이다. 핼프린의 작업에 뭔가 빚진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몇 해 전 연구년을 보낼 도시로 시애틀을 택한 데에는 핼프린에 대한 부채 의식을 떨치고 싶은 마음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 도심 고속도로 상부에 공원을 덮어 단절의 문제를 해소한 시애틀의 프리웨이 공원, 그리고 그 형태 디자인의 원형을 실험하며 도시재생의 해법을 제시한 포틀랜드의 러브조이 플라자를 눈과 귀, 손과 발로 체험하며 핼프린이 꾀한 공감각적 장소감의 현재성에 참여할 수 있었다. 핼프린은 러브조이 플라자, 켈러 공원(Keller Fountain Park), 페티그로브 공원(Pettygrove Park) 등으로 구성된 ‘포틀랜드 오픈스페이스 시퀀스’를 1963년부터 1971년에 걸쳐 설계했다. 도심 쇠퇴와 경제 불황을 겪던 포틀랜드의 도시 문제를 선형 공간으로 치유하고자 하는 시도였다. 구도심 한가운데 여덟 블록을 보행로, 공원, 광장, 숲으로 신경망처럼 잇고 엮은 선형 오픈스페이스는 도시 공공 공간의 미학적 혁신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도시재생과 지역 경제 활성화의 촉매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러한 평가는 포틀랜드 오픈스페이스 시퀀스를 재해석한 책 『혁명이 시작된 곳(Where the Revolution Began)』(2009)의 제목에 단적으로 담겨 있다. 건축 비평가 아다 루이스 허스터블은 켈러 공원을 “르네상스 이후 가장 중요한 도시 공간 중 하나”라고 평했다. 미국 북서부 특유의 겨울비가 내리던 날, 떨리는 마음을 누르며 포틀랜드 오픈스페이스 시퀀스를 걸었다. 음습한 날씨와 원형 복원 공사 탓에 인적이 드물었지만, 시에라 산맥의 절벽과 계곡 풍경을 입체 그리드로 추상화한 콘크리트 조형 경관의 힘은 오래전 기억 속 사진 그대로였다. 산의 형세와 산맥의 형태, 물의 흐름과 퇴적을 재해석한 러브조이 플라자와 켈러 공원의 경관 위로 흑백 사진 속 청년들의 역동적 몸짓이 자연스레 겹쳐졌다. 2001년, 핼프린이 남긴 공원 유산을 보존하고 유지하기 위해 ‘로렌스 핼프린 경관 컨서번시’가 구성됐다. 이 단체의 노력으로 포틀랜드 오픈스페이스 시퀀스는 2013년 3월, 도시공원으로서는 드물게 ‘국가사적지’에 등재됐다. 50년 넘는 풍화의 상흔을 치유하고 원형대로 복원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돼 2019년에 마무리됐다. 복원과 보존을 위한 이러한 노력은 이번 호에 소개하는 시애틀 프리웨이 공원에도 영향을 미쳤다. 고속도로 덮개 공원의 새 장을 연 프리웨이 공원은 도시의 변화와 함께 위험의 상징으로 퇴락해갔다. 콘크리트 폭포와 분수 일부를 철거하는 리모델링 계획이 세워졌으나 핼프린 컨서번시와 문화경관재단이 맞서 원형 유지와 개선 사이의 접점을 찾았다. 프리웨이 공원도 2019년 말, 국가사적지로 등록되기에 이른다. 최근 국내에서도 파리공원을 비롯한 20세기 후반의 도시공원들을 고쳐 쓰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복원과 변경, 보존과 재생의 충돌이라는 난제를 마주한 지금, 로렌스 핼프린의 유산을 둘러싼 그간의 쟁점을 꼼꼼히 살펴볼 만할 것이다. [email protected]
  • [풍경 감각] 손들어 볼까요?
    “예쁘지만 환경 파괴적인 디자인과 박색이지만 친환경적인 물건. 둘 중 하나를 고른다면? 손들어 볼까요?” 오래전 수업에서 교수가 던졌던 질문이다. 우리는 조금 웅성거리다가 절반쯤은 예쁜 것, 나머지는 친환경적인 것에 표를 던졌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무언가를 파괴하며 만든 것이라면 좋아할 자신이 없는데……. 그렇다고 못생긴 물건을 내 방에 두어야 한다면 쓸쓸한 걸……. 둘 사이에서 쓸데없이 오래 고민하다가 나는 어느 쪽에도 손을 들지 못했다. 그동안 욕심껏 모았던 관엽 식물들을 정리한 건 그 질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열대 지역이 원산지인 이 식물들은 무척 아름답지만 요구하는 게 많았다. 추위에 약하니 보일러를 틀어야 했다. 공기가 건조하면 잎이 노랗게 마르니 가습기를, 과습 피해와 곰팡이를 막으려면 서큘레이터를 돌려야 했다. 웃자라는 식물에는 생장용 전등도 달았다. 도시가스를 때고 화석 연료로 생산한 에너지를 아낌없이 쓸수록 아름답게 자라나는 식물들. 어느새 이 풍경을 좋아할 자신이 없어졌다. 이제 내 방 안에 온실(2021년 9월호)은 없다. 남은 식물은 별다른 요구 없이도 잘 자라는 10종 남짓이다. 앞으로 식물방에 따로 보일러를 틀지 않을 생각이다. 식물 전구는 중고 마켓에 팔고, 서큘레이터와 가습기는 작업실에서 쓰기로 했다. 50개쯤 되던 화분이 쓸쓸히 사라진 자리를 보니, 즐기는 것이 미덕인 취미에 또 쓸데없이 오래 고민하고 있는건가 싶다.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친환경적이기는 어려운 일. 여전히 어느 쪽으로도 손을 들지 못한 채 우물쭈물하고 있다.
  • [어떤 디자인 오피스] 엘피스케이프 모두를 위한 모두에 의한
    엘피스케이프(이하 LP)는 디자이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워라밸을 중요하게 여긴다. 연장 근무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완성도 높은 설계를 지향하기에 공모전이나 프로젝트 마감 때의 연장 근무는 피할 수 없다. 2018년 11월 20일 LP를 열기 전 박경의·이윤주 대표는 해외 저명 조경가가 운영하는 회사(Rainer Schmidt, Martha Schwartz)에서 수년간의 실무 경험을 쌓았다. 디자인에 대한 열정과 프로젝트에 대한 애정으로 연장 근무를 참 많이 했었다. 사실 비자에 발목이 잡혀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도 이유 중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아웃을 겪지 않았던 것은 보장된 휴식(주말, 공휴일, 연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특히 설계 관련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주말을 100% 보장하는 데는 운영상의 위험이 따른다. 관행이란 게 참 무섭다. 자칫 열심히 일하지 않거나 대응이 잘 되지 않는 회사로 낙인찍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디자이너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교육과 함께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또한 차별화된 설계사무소를 지향하며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우수한 설계 능력을 갖추기 위해 매진하고 있다. 아울러 꿈과 열정을 가진 인재들의 열정이 소진되지 않도록 힘쓰고 있다. 이러한 우리의 이야기를 소속 디자이너들의 시선으로 담아봤다. LP의 정체성은? SHR 무심한 듯 보이지만 서로를 잘 챙기고 소통이 원활하다. 자율적이지만 모두 책임감이 강하다. SHP 공격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적극적인 제스처를 갖는 디자인을 지향하며 설계 방법과 아이디어에서도 제약이 없고 자유로운 방식을 추구한다. DHL 각 프로젝트에 ‘모두의 의견이 중요하다’는 모토가 스며들어 있다. HYK 시설물 디자인부터 정원, 공원, 도시재생, 도시계획 등 조경의 경계를 넘는 다양한 시도를 통한 확장을 보여준다. DCJ 해외 사례의 국내 도입이라 생각한다. 외국에서 다년간 경험을 쌓은 대표를 필두로 국내에서 볼 수 없었던 특이한 디자인을 과감하게 이용한다. YSC 모두가 자유롭게 상상력을 표현할 수 있는 곳이다. HSK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하고 다채로운 시점으로 조경 공간을 구성한다. 다른 설계 사무소와 차별화된 LP만의 작업 방식은? HSK 직급에 상관없이 모두 디자인을 제안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다. SHR 다 함께 디자인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공유하며,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하나의 결과물을 발전시킨다. SHP 유연한 인력 활용이 장점이다. 프로젝트의 성격, 일정, 개인의 역량에 따라 프로젝트와 팀에 고정된 직원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유연하고 순발력 있게 직원들의 역량을 활용한다. 다양한 분야 전공자들과 함께하는 작업 방식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디자인 철학, 정체성이 가장 잘 드러난다고 생각하거나 가장 흥미롭게 진행한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위례 근린공원 1호(수변) SHR 부분 특화로 시작됐지만 결국 대부분의 공원을 다시 디자인하게 됐다. 공사 중에 진행한 프로젝트의 특수성 때문에 현장과 계속 소통하며 설계를 진행했고, 덕분에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범일동 주상복합아파트 HKN 계획 초기에 결정한 콘셉트를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도 유지해 나가려고 노력하는 점이 좋았다. YSC 자유로운 디자인을 할 수 있었고, 입사 이후 처음 참여한 프로젝트이기에 의미가 더욱 크다. DJK 일반 판상형 아파트와는 다른 주상복합아파트 설계라 더 흥미가 생겼고, 주변 분석을 통한 콘셉트와 디자인이 제일 잘 녹아 있는 프로젝트였다. DHL 손 스케치로 시작되었고 현재 라이노를 이용해 3D 베이스 기반으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다. 자연과 비정형을 설계에 적용해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용산공원 기본설계 및 조성계획안 변경 HYK 대한민국 1호 국가 공원 조성에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HKN 국내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대규모 공원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최초 공모 당선안의 콘셉트를 놓치지 않고 끌고 가는 과정에서 많은 걸 배운다. 모두가 사랑하는 공원으로 거듭나길 바라고 있다. 금천 폭포공원 명소화 사업 SHP 조형미를 강조해야 했던 프로젝트라 여러 가지 디자인을 시도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하나의 아이템으로 단편적인 활용도를 갖던 폭포 공원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계획하고 그것을 실제로 구현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DCJ 프로젝트에 많은 디자이너가 참여했고, 국내에서 볼 수 없었던 다양하고 특이한 디자인이 많이 적용됐다. 구미 공동주택 기본 및 실시설계 DHL 처음으로 프로젝트 전반부터 참여할 기회를 가지게 됐고, 심의에도 참여했는데 건축 심의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알 수 있어 좋았다. 반포 주택재건축 정비사업 대안설계 DCJ 학생 때부터 꿈꿔왔던 아파트 설계 프로젝트였고 그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특화 설계라서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었다. 오목공원 맞춤형 리모델링 지명 설계공모 YSC 합리적인 공간 구성과 LP만의 자유로운 선으로 디자인한 공모전이었다. HSK LP만의 다양한 접근 방식으로 여러 디자인과 시도가 담긴 공간이다. HYK 설계 전 과정에 걸쳐 LP가 추구하는 논리적 접근 방식을 통한 콘셉트 도출, 전략에 기반한 공간 구상과 예술적 형태의 조형물 및 공간 등이 가장 잘 드러난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조경을 시작하면서 나만의 추억이 쌓여 있는 익숙한 공간을 설계해보는게 막연한 꿈이었는데, 비록 당선은 안됐지만 오랫동안 살았던 동네의 익숙한 공원을 설계해보며 꿈에 한 걸음 다가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대치동 복합시설 기본설계 SHR 작은 규모지만 재미있는 요소들을 밀도 있게 담아 LP의 색깔을 잘 드러냈다. 넓은들어린이공원 리모델링 사업 DCJ 주민과 아이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해서 뿌듯했다. 개인적으로는 서울시 창의놀이터 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라고 본다. 2021 서울국제정원박람회 YJL 적은 예산 내에서 작가의 의도를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느라 고생을 많이 했지만 해외 설계사무소와의 협업을 통해 국내에서는 접하기 힘든 대가의 작품을 서울시민들이 경험할 기회를 만드는 데 일조해 감회가 새로웠다. 해외 프로젝트 SRM 한국과 다른 기후, 자연, 문화를 가진 나라를 이해하고 국내에서는 쉽게 시도하지 못하는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과정이 새롭고 흥미로웠다. YSC 보다 자유롭고 창의적인 디자인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었다. 국내 프로젝트와 달리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환경과 문화를 접하며 공간을 디자인한 뜻깊은 경험이었다. HSK 조경의 역할과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현재의 나는 정해진 틀에서만 생각하고 있다고 느끼게 한 프로젝트였다. SHP 국내에서 접하기 어려운 스케일의 공간과 콘셉트의 프로젝트를 경험할 수 있었다. 우리가 앞으로 맞이할 미래의 조경설계 분야를 미리 엿볼 수 있었다. 앞으로 한 번은 꼭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와 그 이유는? HKN 가상 세계 혹은 우주 어딘가의 조경. 언젠가 일반적으로 상상하지 않는 새로운 공간 계획에 참여해 보고 싶다. SHR 광역 스케일의 도시설계. 내가 생각하는 도시를 만든다는 점에서 흥미로울 것 같다. DCJ 서울시가 주최하는 다양한 공모 사업. 과거 한강변 공모전 등 아픈 경험도 있고 이를 딛고 일어서 발전하기 위해서는 서울시 공모 프로젝트에 당선되는 것이 필요하다. HSK 해외 프로젝트. 국내와 다른 생태 환경, 역사 등을 해석해보고,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던 접근 방식으로 해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다. HYK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등 대형 미술관 프로젝트. 평소 미술관에 가는 걸 좋아하는데 미술관 내부의 경험이 외부 공간까지 이어지는 공간을 설계해보고 싶다. DJK 꽃이 가득한 주택 정원. 클라이언트와 직접 긴밀하게 소통해 더 큰 만족감을 전하고 싶다. 큰 프로젝트와는 다른 접근 방법을 시도해 정원 공간을 조성해보고 싶다. 조경가로서 추구하는 방향과 LP의 지향점을 디자인 관점에서 비교할 때, 같은 점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HKN공간에서 새로운 경험을 추구한다는 점이 같다. 개인적으로는 정적이고 미니멀한 공간 디자인도 좋아하는 편이다. SHR 같고 다른 점은 잘 모르겠다. 항상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SHP 분야 구분 없이 적극적이고 다양한 시도를 통해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것은 조경가로서 추구하는 방향과 일치한다. 다만 공간의 디테일에 있어 선호하는 색깔, 재료, 질감 등은 개인적인 취향과 일부 차이가 있다. DHL 자연의 요소들을 활용하는 점은 같다. 다른 점으로, 형태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설계로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을 보면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덕분에 아이디어 제안이나 기본, 실시설계 단계를 거쳐 가며 디자인 접근과 풀이 방법이 다양해질 수 있었다. YJL 대상지의 특성을 반영해 맥락을 이어오는 공간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지향점이 같다. YSC 사람들 사이에서 조화롭게 녹아들 수 있는 자연을 조성하는 일이 곧 조경이라고 줄곧 생각해왔고, 우리는 최대한 주변 환경과 균형을 이룰 수 있는 디자인을 지향한다. HYK 자연과 예술적 형태의 인공 요소들이 어우러지는 공간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지향점이 같다. DJK 창의적인 생각과 새로운 시각으로 시대와 함께 변화하는 조경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점에서 같다. 엘피스케이프(LPSCAPE)는 맥락 분석과 이해를 근거로 한 해석을 통해 부지의 고유성을 찾아내고, 재해석을 통해 고유성을 극대화하여 그 장소만의 상징적 가치와 특별함을 만들어낸다. 차별성을 가지되 주변 환경과 균형을 이루며 조화될 수 있는 디자인을 강조한다.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프로젝트 경험을 바탕으로 조경 디자인의 경계를 넘어 융복합 시대에 순응하며 확장된 조경 디자인과 함께 미래 사회에 대응하는 공간을 구현하고자 한다.
    • 박경의·이윤주
  • [모던스케이프] 제국시대의 경마
    인상파 회화의 감상 포인트는 빛을 고려한 화사한 색감과 생동감 있는 붓 터치에 있지만, 화폭에 담긴 사람들과 풍경을 보는 재미도 특별하다. 빛을 쫓는 데 진심이었던 인상파 화가들은 실내에서 그림을 그리는 대신 이젤을 들고 야외로 뛰쳐나갔고, 화폭에는 마치 사진을 찍듯 포착한 순간의 장면이 담겼다. 그들의 그림에는 일출과 일몰의 장관,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풍경 등 오묘하고도 역동적인 자연 경관의 모습도 있지만, 증기 기관차가 들어오는 기차역, 거대한 배들이 들어선 항구, 군중이 가득한 공원 등 과거에는 볼 수 없던 도시의 풍경도 종종 등장한다.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1832~1883), 에드가 드가Edgar De Gas(1834~1917) 등이 즐겨 그린 파리 볼로뉴 숲의 롱샹 경마장l’hipodrome de longchamp도 과거에는 볼 수 없던 낯선 근대의 풍경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경마가 더 이상 왕족과 귀족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근대적이다. 고대 그리스, 로마제국 시대부터 시작된 경마는 유럽에서 왕족이나 귀족 자신들이 소유한 마필(馬匹)의 능력을 견주는 데 주로 이용됐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 이후 경마가 하나의 오락으로 여겨지면서 경마장은 부르주아 시민 계급이 모이는 사교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제국주의 시대가 열린 나폴레옹 1세 때는 군사력에 직결되는 마종 개량이나 혈통 보전, 마필 산업 육성 등이 중요했기 때문에, 전쟁에 투입될 빠르고 힘 좋은 말을 선별하는 것이 경마의 최우선 목적이었다. 그러나 경마는 박진감 넘치는 속도감에 경쟁이라는 흥미진진함이 직관적으로 드러나는 것이어서 경마장은 유희 시설로 더할 나위가 없었다. 크고 중요한 경주가 열릴 때면, 사람들은 잔뜩 꾸민 화려한 모습에 부푼 기대감과 설렘을 안고 경마장을 찾았고 이곳은 패션과 유행을 선도하는 문화 중심지가 됐다. 유럽에서 진화한 경마장의 이중적 기능, 즉 군마 개량과 위락 기능을 적절히 수용한 곳은 일본이다. 일본은 11세기부터 제전경마(祭典競馬)라고 하여, 궁중 의례나 종교 의식을 할 때 말과 함께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서구식 경마는 이런 전통과는 무관하게 오직 위락을 목적으로 도입됐다. 경마를 도입한 주체가 거류지의 외국인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첫 서구식 경마는 1862년 봄 요코하마의 명승지 슈칸벤텐사(洲干弁天社) 뒤 서쪽 해안 매립지에 있던 무사의 마장에 환형의 트랙과 경주를 위한 정식 프로그램을 도입하면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곳은 오직 거류 외국인이 즐기기 위한 곳이었다. 내국인을 위한 경마장은 1866년부터 1867년까지 요코하마 네기시(根岸)에 조성된 것이 시초다. 막부에 의해 계획·준공된 서구식 경마장인 ‘네기시경마장’을 시작으로, 관영 종묘 회사인 미타육종장(三田育種場)의 미타경마, 우에노공원의 시노바즈노이케(不忍池) 호안에서 실시된 공동 경마 등 전국의 마산지(馬産地)마다 다양한 경마장이 속속 생겨났다. 그러나 서양 경마를 도입한 직후만 하더라도 일본에서는 경마장을 단순한 위락 시설로 보았기 때문에, 마산지마다 다양한 경기를 개최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인기는 많지 않아 대부분 흥행에 실패하여 경영난을 겪었다. 참고문헌 한국마사회, 『한국경마60년사』, 1984. 山崎有恒, “近代日本の植民地と競馬場”, 『第85回 學術大會 韓國日本硏究團體 第1回 國際學術大會』, 2012, pp.222~225. 박희성, “신설리경마장 건설과 1920-30년대 동대문 밖 도시개발”, 『서울학연구소 심포지엄 발표자료』, 2018. "대규모의, 8만 9천 평 되는, 경성에 大競馬場, 기본금은 60만 원으로, 경마장은 청량리나 의정부?”, 「매일신보」 1910년 6월 18일. *환경과조경410호(2022년 6월호)수록본 일부 박희성은 대구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한중 문인정원과 자연미의 관계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역사 연구자들과 학제간 연구를 수행하면서 근현대 조경으로 연구의 범위를 확장했다. 대표 저서로 『원림, 경계없는 자연』이 있으며, 최근에는 도시 공원과 근대 정원 아카이빙, 세계유산 제도와 운영에 관한 일을 하고 있다.
  • [에디토리얼] 중국 현대 조경의 진격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기대가 부풀고 있는 봄의 절정, 5월의 특집 지면을 중국 조경설계사무소 Z+T 스튜디오의 근작들로 엮었다. Z+T를 이끄는 조경가 장둥(Zhang Dong)을 처음 만난 건 2019년 1월이었다. 『빅 아시안 북(The Big Asian Book of Landscape Architecture)』(Jovis, 2021) 출판 기획 워크숍을 위해 베이징에 모인 서울의 오피스박김, 상하이의 Z+T, 상하이‧서울‧선전의 랩디에이치(Lab D+H)(본지 2019년 6월호 특집), 도쿄의 오버랩(Overlap), 싱가포르의 샐러드 드레싱(Salad Dressing), 방콕의 SCHMA 등 아시아 여러 나라의 젊은 조경가들은 최근의 혁신적 작업들을 공유했을 뿐 아니라, 식민지 근대화와 파행적 도시화의 유산, 전통에 대한 강박과 피로, 서구에서 수입한 조경 직능의 불안정성과 조경가 간 세대 갈등, 신자유주의 글로벌 경제 체제가 낳은 해외 스타 조경가들과의 경쟁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동시대 중국 조경에 투런스케이프(Turenscape)의 위쿵젠(Yu Kongjian)만 대입하는 게 고작이었던 나에게 베이징 워크숍에서 목격한 조경가들의 작업은 신선한 충격 그 이상이었다. 특히 랩디에이치와 Z+T 스튜디오의 근작들은 중국 조경에 대한 나의 막연한 선입견을 무너뜨렸다. 지체된 근대화와 광속의 도시화를 겪은 중국의 공공 경관과 상업 공간을 급속도로 채운 건 관 주도 조경과 도시설계의 엉성한 졸작이거나 다국적 대형 설계사무소의 무성의한 복제품뿐일 것이라는 편견을 그 자리에서 바로 버렸다. 중국 조경의 변신은 조경 교육의 변화와 긴밀한 함수 관계를 맺고 있다. 1952년 베이징 임업대에서 시작된 조경 프로그램은 1970년대 말 덩샤오핑의 ‘4대 근대화’ 선언과 개방 정책의 여파로 세를 확장했다. 1980년대 후반에는 개설 조경학과 수가 60개에 달했으나 주로 전통적인 원림과 농업 기반 정원술 위주의 커리큘럼을 제공하는 수준이었다. 1990년대 후반에는 대부분이 폐과되어 베이징 임업대, 난징 임업대, 상하이 농대 세 학교에서만 조경 교육의 명맥이 유지되는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세기의 전환기를 앞둔 시점에 귀국한 위쿵젠, 왕샹얼웅(Wang Xiangrong), 후제(Hu Jie) 등 1세대 해외파 조경 인력이 베이징대, 칭화대, 상하이 퉁지(Tongji)대 등에 새로운 조경 프로그램을 열면서 다시 전환점을 맞는다. 뿐만 아니라 21세기의 첫 10년간 급속도로 진행된 도시화와 그에 따른 환경 문제, 베이징 올림픽과 상하이 엑스포 개최, 국가유산 보존, 전국생태보안계획 등과 맞물려 조경 교육의 양적 성장과 질적 진화가 동시에 일어났다. 2011년에 이르면 대학과 대학원 조경 프로그램이 70여 개로 늘었고, 2013년에는 약 180개로 폭증한다. 이제 중국에서 전문 직능으로서 조경가의 위상은 그 어느 국가나 문화권보다 높다. 중국 출신 조경 인력은 자국을 넘어 구미권 글로벌 조경설계사무소들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1990년대 말 이후 중국에서 새로운 조경 교육을 받은 세대의 적지 않은 수는 해외에서 학업과실무를 경험하거나 중국 내에서 자국 특유의 어바니즘에 기반한 실천적 경험을 쌓아가며 선배 세대의 한계를 넘어섰다. ‘빅 아시안 북’ 워크숍에서 만난 젊은 조경가들은 유학을 통해 체득한 서구식 조경을 그대로 이식하고 국가 주도 대형 공공 프로젝트를 통해 급성장한 중국 현대 조경 1세대들과 달리, 동시대 도시성의 회복과 재생, 경관의 재료와 물성, 디자인의 매체와 디테일, 새로운 도시 라이프스타일과 미감에 접근하며 디자인 해법을 생산하고 있었다. 최근 중국 조경의 아방가르드를 한눈에 조감하고자 한다면 『뉴호라이즌스(New Horizons: Eight Perspectives on Chinese Landscape Architecture Today)』(Birkäuser, 2020)를 일독할만하다. Z+T 스튜디오, WISTO, 인스팅트 패브리케이션(Instinct Fabrication), 랩디에이치, YIYU, 모상(Moshang),클로버 네이처 스쿨(Clover Nature School), 푸잉빈(Fu Yingbin) 등 여덟 팀의 다채로운 작업을 접할 수 있다. 베이징 워크숍에서 Z+T의 장둥 소장이 스크린에 투사한 한 장의 사진이 아직도 생생하다. 비 온 뒤 질척거리는 도시 변두리 물웅덩이의 아스라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지만 실은 콘크리트로 섬세하게 조각된 친수 공간의 풍경(‘클라우드 파라다이스’, 2017). 랩디에이치의 최영준 소장이 진행한 이번 호 인터뷰에 실은 사진 속 그 장면은, 전통의 무게와 개발 시대의 속도전을 경쾌하게 넘어서고 있는 동시대 중국 조경의 담백한 한 단면일지도 모르겠다. 브라운필드, 대형 공원, 도심 상업 공간, 유치원 정원을 넘나드는 Z+T 특집 지면이 중국 조경의 현재를 가늠할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초가을, 광주에서 열릴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IFLA 2022 World Congress)에 참가해 Z+T 스튜디오의 강연에 귀 기울여보시길 권한다. [email protected]
  • [풍경 감각] 내달리는 결승점
    한국이 첫 엔데믹 국가가 될 수 있다는 소식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반가운 마음으로 이 글이 실린 『환경과조경』이 출간될 즈음의 풍경을 상상해본다. 벤치와 퍼걸러를 두른 진입 금지 테이프가 사라지고, 우리는 마스크 없는 서로의 맨얼굴을 마주하고 있지 않을까? 너무 성급하게 행복 회로를 돌리고 있는 걸까? 한 달 사이에 새로운 변이가 유행한다거나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이 다시 강화되어 엔데믹이 기약 없이 미뤄질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줄어들 기미가 보일때 갑자기 확 늘어났던 코로나19 일일 확진자 수와 느슨해질 때마다 바짝 조이곤 했던 사적 모임 제한처럼. 섣불리 끝을 말하기엔 이른 시점이지만, 긴 달리기에서 결승점이 (아주 아주) 어렴풋하게 보이는 기분이다. 라디오 뉴스 꼭지 다음으로 옥상달빛의 노래 ‘달리기’가 이어진다. “단 한 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 끝난 뒤엔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것.”
  • [모던스케이프] 어린이의 탄생
    민족, 사회, 시민, 문명, 자유, 가족 등 지금은 마땅하다고 알고 있는 개념 중에는 근대기에 처음 등장한 것이 생각보다 많다. 대체로 서구의 전근대 체제가 붕괴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질서가 구축되면서 만들어진 개념들인데, ‘어린이’도 그중 하나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시기의 서구 사회에서 어린이는 그리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상류층 가정에서조차 어린이는 최소한의 관심만 받았고(당시 유아 사망률이 매우 높았던 점이 이유였다고 한다) 서민 가정의 아이들은 일찌감치 도제 수업에 뛰어들어 부모의 직업을 이어받는 장인이 되거나 계산에 밝은 숙련된 상인으로 컸다. 또 공장에서 기계를 돌리려면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는데 아동의 노동은 성인보다 손쉽게 취할 수 있었다. 그 바람에 가난한 하층민 아이들의 노동이 착취되거나 그들에게 학대가 자행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즉 근대 초기만 하더라도 어린이를 가족의 끈끈한 유대감 속에 두기보다는 철저하게 소외하거나 노동의 수단으로 여기는 상황이 보편적이었다. 근대 계몽주의자들이 강조했던 ‘교육’은 이러한 어린이의 이미지에 반전을 가져왔다. 계몽주의의 대표 주자인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는 자연의 본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아동의 천성을 강조하면서 이에 맞는 교육관을 주장했다. 루소에게 어린이는 어른과 명확하게 다른 존재였다. 그는 냉혹한 현실에 내던져진 어린이의 고달픈 삶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변화는 상류층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들은 백지장처럼 무해한 어린이가 본성이 건강한 인간으로 성장하려면 학습의 경험이 필요하며 따뜻한 가정 환경과 책임감 있는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때마침 활황이었던 소비 문화가 아동을 주제로 한 문학과 회화를 유행시켰고 서커스, 인형 쇼, 동물원 등 어린이에게 매력적일 만한 아이템들을 만들어냈다. 문학은 아동을 작고 귀엽고 지극히 사랑스러운 낭만의 이미지로 묘사하고 어린이들의 세계를 공상과 동경의 장소로 예찬했다. ‘천진난만한’ 어린이는 회화에도 등장했는데, 이 또한 전에는 없던 일이다. 이전에는 그림의 주인공이 어린이라면 가문의 후계자거나 예견된 지위와 부를 드러낼 목적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근엄한 표정과 움직임이 없는 경직된 자세를 취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나비, 꽃, 애완동물 등 여러 소재를 끌어들여 아이의 순수하고 순진한 이미지를 극대화하고자 하는 쪽으로 변했다. 참고문헌 김정은, “일제강점기 창경원의 이미지와 유원지 문화”, 『한국조경학회지』 43(6), 2015, pp.1~15. 박훈, “근대일본의 ‘어린이’관의 형성”, 『동아연구』 49, 2005, pp.35~162. 이영석, “근대 영국사회와 아동 노동”, 『영국 연구』 43, 2020, pp.1~20. 이인영, 『한국 근대 아동잡지의 ‘어린이’ 이미지 연구 – 『어린이』와 『소년』을 중심으로』, 2014,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朝鮮博覽會京城協贊會 編, 『(朝鮮博覽會)京城協贊會報報告書』, 1930, 京城: 朝鮮博覽會京城協贊會. 그림 출처 그림 1. 조선박람회경성협찬회, 『(朝鮮博覽會)京城協贊會報報告書)』, 1930 그림 2와 3. 조선총독부, 『조선박람회기념사진첩』, 1930 *환경과조경409호(2022년 5월호)수록본 일부
  • [에디토리얼] 해피 버스데이, 미스터 옴스테드
    1822년 4월 26일, 센트럴파크의 설계자이자 현대 조경의 창립자인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가 미국 코네티컷 주 하트포드에서 태어났다. 옴스테드 탄생 200주년을 맞아 미국 전역에서는 다채로운 기념행사와 강연회가 줄을 잇고 있으며, 옴스테드의 도시 철학과 공원관을 재해석함으로써 동시대 도시의 기후위기와 팬데믹, 공간적 불평등에 처방전을 구하는 학술대회들도 연이어 열리고 있다. 옴스테드의 생애와 업적을 갈무리한 다양한 아카이브도 구축되어 이제 클릭 몇 번이면 그가 남긴 글과 도면을 누구나 직접 만날 수 있다. 『환경과조경』은 이미 2년 전부터 2022년 4월호를 옴스테드 특집호로 엮는 구상에 들어갔다. 하지만 지속되는 코로나19의 여파로 한국조경학회와 연계한 옴스테드 세미나, 해외 기관과 공동 주관하는 전시회,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IFLA 2022) 옴스테드 세션 등 초기의 여러 계획을 발전시키지 못한 채 2022년 봄을 맞고 말았다. 채 두 달이 남지 않은 시점에 이번 특집 ‘옴스테드 200’을 다시 기획할 수밖에 없었지만, 참여 필자들의 헌신적인 수고로 그나마 옴스테드의 삶과 업적, 공원관, 저작과 작품, 기록물을 폭넓게 아우르는 지면을 꾸릴 수 있게 됐다. 옴스테드 관련 한국어 논문을 출간한 경험이 있는 연구자들을 급히 섭외했는데, 마감 시간이 촉박했음에도 모두 흔쾌히 집필을 수락해주었다. 오랜 기간 옴스테드 공원 철학의 형성 배경을 연구해온 조경진(서울대 교수)은 이번 원고를 통해 그의 책과 글에 담긴 공원관을 재해석하고 그 의의와 한계를 되짚었다. 옴스테드의 공원 복지 개념을 주제로 논문을 출판한 바 있는 김민주(환경과조경 출판‧기획팀)는 이번 특집에서 옴스테드가 남긴 글과 공공 프로젝트, 그리고 그를 다룬 주요 저작을 꼼꼼히 목록화했다. 옴스테드의 파크웨이와 19세기 북미의 어바니즘을 다룬 여러 편의 글과 논문을 발표해온 신명진(서울대 박사과정)은 옴스테드가 계획한 일련의 선형 공원을 도시 그린 인프라의 선례로 재평가하고 현대적 의미를 탐색했다. 조경사 연구자 두 명도 기꺼이 특집에 참여해주었다. 임한솔(ULC 에디터)은 옴스테드의 성장 과정, 두 번의 여행과 작가·저널리스트로서의 활동, 센트럴파크 감독관 시절과 공모전 당선, 위생위원회 사무국장 경력, 전업 조경가로서의 다각적 실천 등 생애 전반과 업적을 살폈다. 김정화(막스플랑크예술사연구소 4A_Lab 연구원)는 미국의회도서관의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 페이퍼’와 ‘옴스테드 어소시에이츠 레코드’, 페어스테드의 ‘옴스테드 아카이브’ 등 관련 아카이브를 면밀하게 소개하면서 각 아카이브의 배경과 구조적 특징, 최근의 변화와 움직임까지 개괄했다. 편집부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기자는 촌각을 다투는 시간의 한계 속에서 옴스테드 재단, 센트럴파크 컨서번시 등 관련 기관과 계속 접촉하며 다양한 문건을 협조받았고 특히 많은 시각 자료의 저작권 문제를 해결했다. 월간지의 특성상 조금 더 충분한 준비 기간을 확보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지만, 그 명성에 비해 한국어로 정리된 옴스테드 관련 자료가 매우 부족한 현실을 고려하면 이번 호 특집이 여러 독자들에게, 나아가 향후의 국내 옴스테드 연구자들에게 적어도 입문 가이드 역할은 할 수 있으리라 자평해 본다. 1903년 8월 28일,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는 매사추세츠 주 웨이벌리에서 81세를 일기로 작고했다. 특집을 꾸리며 여러 자료와 기록을 분주히 들추다 당시의 부고 기사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의 사망 다음 날 「뉴욕 타임스」에 실린 장문의 부고를 겨우 찾아낼 수 있었다. “센트럴파크와 프로스펙트 공원뿐 아니라 미국 여러 도시의 뛰어난 공간들을 디자인한 위대한 조경가”로 시작하는 부고 기사는, 그를 다룬 후대의 그 어떤 전기들보다 생생한 목소리로 옴스테드에 대한 당대의 평가를 담고 있었다.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의 광풍 속에서 도시 위생과 시민 건강을 위해 미국 전역의 여러 도시에 대형 공원과 공원 녹지 시스템을 정착시킨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 그는 도시 혁신의 비전을 지향하는 조경가(landscape architect) 직명을 창안하고 조경(landscape architecture) 직능을 창설한 선구자였을 뿐 아니라 도시 사상가이자 사회 개혁가였다. 옴스테드 탄생 200주년을 맞은 2022년, 기후변화와 팬데믹에 신음하는 지구촌 곳곳의 조경가들에게 도시와 공원, 사회와 공공 공간이 맺는 함수 관계를 다시 조회해야 할 과제가 주어졌다. 해피 버스데이, 미스터 옴스테드[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