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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간잇기] 묵묵히 한곳을 지켜온 사람들
    그는 늘 용산에 있었다 용산전자상가에서 각종 전자 제품의 부품 도급을 맡고 있는 박종승 사장은 적산 가옥이 즐비한 1960년대 용산 만초천 근방 골목의 어느 집에서 태어났다. 동네 형들을 따라 만초천에서 물장구치며 놀던 희미한 기억에서 시작되는 그의 추억은 늘 용산에 머물러 있다. 개구쟁이 유년 시절과 말썽쟁이 학창 시절을 거쳐 첫사랑, 첫 사업, 신혼집, 첫 아들 모두 용산과 함께했다. “용산에서의 기억 중 가장 인상 깊은 에피소드가 있나요?” 질문을 받자 그의 입가에 천진한 미소가 번진다. “있고말고요. 아주 많죠. 제 인생은 용산전자상가 터가 변해온 역사와 궤적을 같이 하는 거나 마찬가지에요.” 얼마 남지 않은 머리숱처럼 옅어진 기억이라도 또렷이 떠오르는 게 있다. 지금의 용산전자상가 자리에 만초천이 흐르고 바로 옆에 청과물 시장이 있었을 때, 어머니 치맛자락을 잡고 장보러 다닌 게 어린 시절 기억의 시작이다. 김장철이면 배추를 몇백 포기씩 사다 이웃 아주머니들과 친척 어른들이 골목길에 자리잡고 모여 온 동네가 며칠 동안 시끌벅적했다. 그는 골목과 청과물시장을 부지런히 오가며 심부름을 했다. 어느 이웃집 아주머니 앞에 서건 입을 아, 하고 벌리면 육즙이 좌르르 흐르는 삶은 돼지고기를 싼 갓 만든 겉절이가 입안으로 들어왔다. 심부름값으로 최고였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인생 최고의 맛으로 남아 있다. 용산은 조선 시대부터 전국의 물자가 들어오고 나가는 서울의 주요 관문이었다. 일제 식민지기에는 일본인 거류지로 쓰여 적산 가옥이 많이 들어섰다. 용산전자상가 앞 한강을 향해 곧게 뻗은 도로에 있던 만초천은 지형을 따라 용산나루로 굽이굽이 흐르며 한반도와 만주를 연결하는 물류의 출발지로 역할했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청과물시장은 전국에서 올라온 싱싱한 채소와 과일을 사고파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다.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 준비를 위한 도시정비계획의 일환으로 청과물 시장은 1983년 송파구 가락동으로 확장 이전했다. 1987년, 상인들이 삶의 터전을 옮겨 빈 자리에 당시로선 신산업인 컴퓨터와 각종 전자 제품을 취급하는 용산전자상가가 들어섰다. 1990년대의 메카, 용산전자상가 1990년대 전자 산업 유통의 중심지 용산전자상가는 크게 나진상가, 선인상가, 원효상가, 전자랜드, 터미널상가(현 서울드래곤시티 호텔)로 구분된다. 현재 약 21만m2의 부지에 4,000여개 점포가 있는 국내 최대의 전자상가다.1 조성 초기인 1980년대 후반에는 아시아 최고의 전자상가로 불렸으며, 이후 조립형 컴퓨터, 게임, 조명, 음향, 영상, 전자 제품 관련 각종 부품과 소프트웨어를 망라하는 도소매 및 유통 관련 업종이 30여 년 간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가전 및 전자 제품 업종의 중심은 세운상가와 청계천변 상가였다. 1980년대 후반, 신산업으로 떠오른 퍼스널 컴퓨터PC에 관심이 많고 컴퓨터 조립 기술을 습득한 젊은 상인들, 전산원 같은 전문 교육 기관에서 소프트웨어 기술을 배운 청년들이 새로운 기회의 땅 용산에 둥지를 틀었다. 최고 전성기였던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소위 잘 나가던 용산전자상가는 조립 PC와 부품을 사려는 사람들과 새 전자 제품을 구매하려는 얼리어답터들의 핫 플레이스였다. 그러나 발 디딜 틈 없던 호황기에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바가지를 씌우는 일부 상인들이 나타났고, 용팔이(용산+팔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기며 부정적 인식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는 용산전자상가 전체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소비자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어 다수의 성실한 상인들도 큰 타격을 입었다. 잘못 걸리면 바가지 쓴다는 주변 사람들의 평을 듣고 필자도 컴퓨터 좀 만질 줄 안다는 선배들과 팀을 이뤄 용산전자상가에 갔던 기억이 난다. 고품질의 다양한 전자 제품을 성능과 가격을 비교하며 살 수 있는 곳이 흔치 않았기에, 제품 비교 전시장으로 손색없는 용산전자상가에 사람들이 모일 수밖에 없었다. 늘 번영할 것 같던 용산전자상가는 2000년대 후반 이후 빠르게 변화하는 전자 산업의 생태계를 따라가지 못했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뜸해지기 시작했다.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하나둘 빈 점포가 늘어났다. 젊고 패기 넘치던 청년 상인들은 어느덧 머리 희끗한 중년의 아저씨들이 되었다.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산업으로의 구조 전환에 성공하지 못해 쇠퇴한 용산전자상가를 다시 일으키려는 노력이 30년 넘게 한자리를 지켜온 토박이 상인들을 중심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중략)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서준원은 열다섯 살부터 대학 졸업 후까지 뉴욕에서 약10년간 생활했다.파슨스 디자인 스쿨(Parsons School of Design)인테리어디자인학과에서 다양한 주거 공간에 대해 공부했고,한국인의 생활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치고 박사를 수료했다. SOM뉴욕 지사, HLW한국 지사, GS건설,한옥문화원,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등에서 약16년간 실내외 공간을 아우르는 디자이너이자 공간 연구자로 활동했다.한국인의 참다운 생활 환경을 위한 디자인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품고 다양성이 공존하는 도시 공간 연구를 위해 곳곳을 누비며‘공간 속 시간의 켜’를 발굴하는 작업을 긴 호흡으로 해오고 있다.
  • [북 스케이프] 정원도시 에도
    이달에 있을 공원 아카이브 전시 자료를 뒤지다 보니 어느새 가을이다. 이렇게 많나 싶을 정도로 곳곳에서 나오는 남산공원 자료 중 선인장 조형물 하나가 연구진의 흥미를 끈다. 남산식물원 조성 초기 거대한 선인장 조형물이 입구를 장식했는데, 상세한 도면과 지침까지 발견된 것이다. 남산식물원에는 유독 선인장이 많았는데 식물원의 철학보다는 기증자의 취향이 반영된 결과다. 1971년 재일교포 김용진은 자신이 수집한 208종 1만7,800본의 선인장과 분재, 철쭉 등을 기증했고, 이는 그대로 남산식물원 2~4호관의 컬렉션이 되었다.1 그런데 왜 선인장이었을까? 김용진이 선인장을 수집하던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의 일본, 이른바 전후 쇼와 시대에 선인장이 크게 유행했다. 원예업자 와타나베 에이지(渡邊英次)가 접목 선인장을 만드는 데 성공한 이래, 선인장은 일본의 주력 원예 산업으로 발달했다. 한국은 1970년대 접목 선인장을 도입했고 이어 1980년대 세계 1위의 선인장 재배 국가가 되었다.2 남산식물원의 선인장 컬렉션, 그리고 집에 있던 『월간 원예』에 자주 등장하던 알록달록한 선인장에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이 있었다. 쇼와 시대의 선인장 유행이 전후 부흥기 사람들의 변덕이려니 생각했다. 독특하고 희귀한 것을 수집해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것은 보편적인 욕망이니 말이다. 그런데 찾아보니 선인장은 꽤 오래전 일본에 전파되었다. 선인장은 일본어로 ‘사보텐(サボテン)’이라고 하는데, 이는 ‘비누’라는 뜻의 포르투갈어 ‘사방(sabao)’에서 유래한다. 에도 초기의 철학자이자 식물학자인 가이바라 에키켄(貝原益軒)의 책 『야마토 혼조(大和本草)』(1709)에서 처음 언급되었고, “기름때를 잘 씻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에도 시대에는 『본초강목本草綱目』을 토대로 한 『야마토 혼조』 외에도 여러 이론서가 출판되었다. 식물 자체를 다루는 책뿐 아니라 정원과 명승지를 안내하는 도서도 있었다. 18세기 초의 에도(오늘날의 도쿄)는 동시대 런던과 파리를 능가하는 대도시였다. 또 정원이 많기로 유명했는데, 이 넓고 깊은 원예 취미와 정원 문화는 어떻게 형성된 걸까? 이나가키 히데히로稲垣栄洋의 『식물도시 에도의 탄생』에서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3 ...(중략) 각주 정리 1. 방용식, “남산식물원 ‘역사로 남았다’”, 「시정일보」 2006년 10월 29일. 2. 박필만 외, “어서와! 선인장은 처음이지?”, 『RDA 인터레벵』 175호. 3. 이나가키 히데히로 저, 조홍민 역, 『식물도시 에도의 탄생』, 글항아리, 2017.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황주영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불문학과 영문학을 공부하고,미술사학과에서 풍경화와 정원에 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박사후 연수를 마쳤다. 미술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문화사적 관점에서 정원과 공원, 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이와 관련된 강의와 집필, 번역을 한다.그러는 동안 수많은 책을 사거나 빌렸고, 그중 아주 일부를 읽었다.
  • [에디토리얼] 젊은 잡지가 온다
    창간 50년을 눈앞에 둔『 샘터』가 작년 말 폐간된다는 소식은 종이 잡지 시대의 폐막을 알리는 부고였다. 독자들의 지원으로 가까스로 수명을 연장하게 됐지만 한때 50만 부를 찍었던 ‘평범한 사람들의 교양지’의 전성기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시대의 지성을 이끌고 전문 지식의 최전선을 걸어온 전문지들도 거의 대부분 명멸과 부침을 거듭하다 이미 기억의 뒤안길로 퇴장했다. 1966년 같은 해에 창간된 계간 『창작과 비평』과 월간 『공간(Space)』 정도가 아직 발행되고 있는 오래된 전문지로 꼽힌다. 종이 잡지가 웹진의 힘을 당해내기 힘든 현실인 건 분명하다. 온오프라인 할 것 없이 이미지 위주의 가벼운 ‘스낵 콘텐츠’가 대세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특별한 영역의 마니아층을 대상으로 하거나 손에 잡히는 아날로그 감성을 앞세운 고급 종이 잡지들이 속속 창간되고 있기도 하다. 정기 간행물 등록 통계를 보면, 2000년의 등록 잡지는 6천 개 남짓한데 2019년에는 2만 개에 가깝다. 요즘 뜨고 있는 젊은 잡지들의 지형은 크게 세 가지 갈래다. 독자들의 요구에 맞춰 콘텐츠를 구성하는 큐레이션 잡지, 한 권에 특정 주제나 아이템 하나만 깊게 다루는 테마 잡지, 고유한 편집 원칙과 디자인 취향을 지키며 잡지 스타일을 심화해 나가는 독립 잡지. 서울에서 태어나 밴쿠버에서 자란 로사 박이 디자이너 리치 스테이플턴을 만나 2012년 영국에서 창간한,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미학을 살린 디자인 중심 여행 잡지『시리얼(Cereal)』은 전 세계 힙스터들을 매료시켰다. 2015년부터는 한국어판도 나오기 시작했다. 모든 호가 매진이며 중고 과월호는 온라인에서 두세 배 가격으로 거래된다. ‘킨포크 스타일’, ‘킨포크 라이프’, ‘킨포크스럽다’는 말을 유행시키며 하나의 문화 현상을 만들어낸『킨포크Kinfolk』는 2011년 미국 포틀랜드에서 창간된 라이프스타일 독립 잡지다. 처음엔 지역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한 해에 네 번, 500부 정도 발행하는 소규모 잡지였지만 지금은 한국어를 비롯한 70여 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고 있다. 바쁘고 지친 삶을 사는 현대인에게 자연 친화적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며 웰빙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출판 전문가들은 국내 테마형 독립 잡지의 붐을 이끈 주역으로 『매거진 B』를 꼽는다. ‘브랜드 다큐멘터리 매거진’을 지향하는 『매거진 B(Magazine B)』는 한 호에 한 가지 브랜드만 심층 탐구하는 전략으로 기성의 주류 잡지와 차별을 꾀했다. 프라이탁, 파타고니아, 이케아, 구글, 넷플릭스, 뉴발란스, 블루보틀 등 MZ세대에게 친숙한 브랜드를 다루면서 여러 번 읽어도 질리지 않는 잡지 이미지를 굳혔다. 매호 2만 부 넘게 팔리고 있으며, 레고, 라이카, 무인양품 등을 다룬 호는 4쇄 이상 찍었다고 한다. 라이프스타일이나 디자인 쪽의 감각적인 독립 잡지뿐만 아니라 새로운 형식의 인문 잡지들도 앞다퉈 창간되면서 핵심 독자층의 관심을 끌어내고 있다. 인문 잡지 『한편』은 ‘책보다 짧고 논문보다 쉬운 『한편』을 통해 지금 이곳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기쁨을 저자와 독자가 함께 나눈다’는 모토를 지향한다. 문학지 『악스트(Axt)』, 문예지 『문학3』, 과학 잡지 『에피(Epi)』, 사진 잡지 『보스토크(Vostok)』, 철학 잡지 『뉴필로소퍼(New Philosopher)』 등 최근 창간한 종이 매체들은 잡지의 시대가 끝난 게 아니라 잡지가 젊어졌음을 보여준다. 2년 뒤면 마흔 살이 되는 1982년생 『환경과조경』의 새로운 좌표를 궁리하며 요즘 아날로그 잡지들이 뿜어내는 ‘잡지스러움’의 매력 포인트를 짚어보다가, 막 배달된 따끈따끈한 새 조경 잡지를 펼쳤다. ‘새로운 기억, 연출된 과거’라는 부제를 단 『유엘씨(ULC; Urban Landscape Catalogue)』 창간호. 아직 기성 조경(학)계 바깥에 있는 예비 연구자와 학자, 비평가들이 편집과 집필을 나눠 맡은 『유엘씨』는, “도시라는 쇼케이스에 담긴 건축과 조경을 상품으로 상정하고, 이를 소비할 도시민에게 그 기능과 특징, 디자인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잘 만든 카탈로그”를 지향한다. 창간호 발행 비용은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한 127명의 후원으로 충당했다고 한다. 조경 이론과 비평, 도시 에세이와 경관 영상, 레트로 도시 문화를 다룬 집담을 엮어 만든 창간호에 이어, 올 연말에는 ‘판데믹 도시 기록: 서울의 일상과 오픈스페이스 탐독’이라는 제목을 단 다음 호를 펴낸다고 한다. 『유엘씨』의 촘촘한 지면과 행간을 탐독하다가 잠시 시간 여행을 했다. “조경의 대안적 담론 공간”을 선언하며 창간했던『로커스(Locus)』 창간호(1998)의 서문을 다시 꺼내 읽었다. “조경의 실천과 소통함으로써 … 이론의 복권을 지향한” 그들은 이미 오래 전에 기성의 다리를 건넜다. 젊은 잡지『유엘씨』가『 환경과조경』이 놓치고 있는 지점과 조경 담론의 틈새를 잘 발견해 지속가능한 독립 잡지로 성장해가길 응원한다.
  • [비트로 상상하기, 픽셀로 그리기] 그래스호퍼 연대기 Ⅲ
    나쁜 피 살충제가 개발되기 전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메뚜기 떼는 언제나 저항할 수 없는 재앙의 상징으로 묘사됐다. 그야말로 나쁜 피. 모든 의미를 잿더미로 만드는 무력과 무의미의 상징. 뉘앙스만 다를 뿐 사람들이 말하는 진심은 늘 순간적이고 상대적이어서 익숙해지면 모든 게 한없이 옅어졌다. 마치 이별을 말하는 데 소질이 없는 연인이 지난날의 의미를 돌아볼 때 밀려오는 짜증을 감출 수 없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이 무거운 연작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련이 얼마나 남았는지 그래스호퍼의 의미를 말해야 하는 변하지 않을 꿈에 갇혀버렸다. 네가 대체 뭐라고 ‘그래스호퍼의 쓸모’에 대해 말하고 있나. 내가 대체 뭐라고 ‘파라메트릭의 비밀’을 밝히려 하나. 서로 거짓말들을 소리 내서 반복할 뿐 역병이 지나간 자리에 메마른 기억만 남기고 있다. 나쁜 꿈 생태계를 교란한다는 말은 정말 이기적인 표현일 것이다. 누가 누구를 교란하나.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언제나 생존과 번식을 위해 의미 없는 것들에 환상을 부여하며 동등하게 경쟁해왔다. 교란당한다고 생각하는 쪽이 나쁜 꿈을 꾸는 것이다. 그래서 경쟁자들을 죽이기 위해 숨 막히는 이유를 지어내는 것이다. 나는 벌써 두 달이나 거짓말을 해왔다. 오늘, 아니 어쩌면 어제 죽었을지도 모르는 많은 생명체에게 오직 내가 돋보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그래스호퍼에 대한 연극을 한 것이다. 이제 슬픈 막을 내린다. 아무래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나쁜 꿈에서 말없이 깨어난다. 단지 미련이 남을 뿐이다. 오늘 같은 날은 앞으로 오지 않을 것이기에 이미 끝난 것을 알면서도 붙잡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아무렇게나 얘기할 것이다. 목록도, 목적도, 고통 뒤에 감춰둔 거짓도 없이 생각나는 대로 모두를 교란할 것이다. 삶을 간단하게 하는 데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사형 선고를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겠지만, 지면의 마지막까지 그래스호퍼로 할 수 있는 것들의 목록을 또 얘기할 것이다. BIG 서펜타인 파빌리온(유선형 디자인+매크로 디자인+커브 어트랙터) 하이드 파크의 서펜타인 갤러리는 매년 영향력 있는 건축가를 초청해 파빌리온 디자인을 의뢰하는 서펜타인 파빌리온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2000년 자하 하디드를 시작으로 2002년 토요 이토, 2006년 렘 콜하스, 2008년 프랭크 게리 등 스타 건축가들의 자유로운 디자인과 동시대 건축의 트렌드를 즐길 수 있는 행사다. 그림 1은 BIG의 비야케 잉겔스가 2016년에 디자인한 파빌리온을 그래스호퍼로 모델링한 것이다. 인터뷰에서 그는 ‘투명과 불투명’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했지만, 그래스호퍼 키드의 관점에서 보면 그저 온전한 파라메트릭 디자인이다. ...(중략) *환경과조경389호(2020년 9월호)수록본 일부 나성진은 서울대학교와 하버드GSD에서 조경을 전공했다.한국의 디자인 엘,뉴욕의 발모리 어소시에이츠(Balmori Associates)와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CFO)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고, West 8의 로테르담과 서울 지사를 오가며 용산공원 기본설계를 수행했다.한국,미국,유럽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귀국 후 파트너들과 함께 얼라이브어스(ALIVEUS)라는 대안적 그룹을 열었다.
  • [공간잇기] 담장 안 사람들의 이야기
    용산은 제 고향이에요 오클라호마 주에서 태어난 금발 머리 푸른 눈의 조는 거리낌없이 용산을 자신의 고향이라고 말한다. 자신도 그렇게 말한 게 짐짓 놀라운 듯 살짝 상기된 표정이다. 의아한 마음에 묻는다. “조는 미국에서 태어났고 한국에는 초등학교 때 와서 고등학교 때까지 8년만 살았는데 왜 용산을 고향이라고 생각하나요?” 엄마 리사와 아빠 브라이언도 딸의 답변을 궁금해한다. “정체성이 형성되던 중요한 시기인 십대를 한국에서 보냈어요. 한국의 생활과 문화가 제 DNA 깊숙이 자리잡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용산 미8군부대 안에 있는 초, 중,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평생 함께할 소중한 친구들을 만나 학창 시절을 보냈고 이를 간직한 공간들이 기억에 남아있어요. 그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며 성인이 됐어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계신 오클라호마도 좋지만, 제게 더 의미 있는 곳은 학창 시절 추억이 담긴 여기, 용산이에요.” 조의 어머니인 리사 홀(Lisa Hall)은 용산 미8군 기지 안에 있는 서울미국인초등학교(Seoul American Elementary School)(SAES) 교사였다. 지난해 한국 부임 8년째를 맞은 리사는 특별 수업 교사로서 전 학년(유치원생부터 5학년까지) 학생들의 창의성을 키워주는 역할을 담당했었다. 조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엄마를 따라 한국에 온 뒤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기지 내 학교에서 공부했다. 미국 소재의 대학생이 되어 더 이상 한국에 살지 않지만, 길에서 한국말을 하는 사람들이 지나가기만 해도 고향에 온 듯 마음이 포근해진다고 했다. 담장 너머 금단의 땅 한국인에게 애환의 공간이자 금지된 땅인 용산 기지에는 역사적 아픔이 깊게 서려있다. 1882년 청과 불평등 통상조약이 체결되어 용산에 청군이 상주한 것을 시작으로 1905년 을사늑약 이후 대한제국 점령을 목적으로 일본 군대가 주둔했다. 1945년광복 후에는 미국이 일본의 군사 시설을 접수해 사령부로 사용했으며 한국전쟁을 거치며 정착한 뒤에는 미국 제8군이 2019년 말까지 주둔했다. 이곳은 한양으로의 진입부이자 한강과 맞닿은 군사 물자 수송의 허브로서, 외국 군대가 주둔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땅이었다. 국운이 쇠퇴하던 조선 시대 말기 및 대한제국 때부터 일제 식민지기와 현재에 이르기까지 외세 침략과 간섭의 전초 기지였던 용산은 아픈 손가락이었다. 이 역사적인 땅은 한 세기를 돌고 돌아 용산공원으로 재탄생하여 우리 품으로 돌아오게 될 예정이다. 리사와의 인연이 닿은 것은 서울미국인초등학교가 문을 닫기 전 마지막 한 학기를 남겨두고서였다. 주한미군의 용산 기지 반환 절차가 공식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기지에 담긴 역사·문화유산을 기록하자는 취지로 모인 ‘용산레거시(Yongsan Legacy)’라는 전문가 그룹을 통해 만남이 성사됐다. 리사는 첫 만남부터 학교에 대한 아쉽고 복잡한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용산 기지가 한국 땅인 것을 잊은 적이 없어요. 오랫동안 잘 빌려 썼고, 당연히 한국에 다시 돌려줘야죠. 그런데 사용하는 동안 이 땅에 정이 굉장히 많이 들었어요. 우리의 많은 이야기가 이곳에 녹아 있죠.” 그는 간절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지난 60년간 우리 학교를 거쳐 간 수많은 학생과 선생님, 학부모들이 아주 특별한 의미와 추억을 지닌 곳이기도 해요.” 몇 개월 후 학교가 문을 닫고 공원화가 시작되면 학교 건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거라며 안타까워했다. 리사는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용산 기지는 군인들만 있던 곳이 아니라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의 삶의 터전이었다는 흔적을 남기고 한국인들과 소통하고 공유하고 싶어요.” 십 년 뒤 혹은 이십 년 뒤 다시 한국을 찾은 제자들이 유년의 추억이 담긴 이 땅의 역사와 이야기를 오래도록 기억하게 해주고 싶다는 눈빛이 간절했다. 게이티드 커뮤니티, 용산 기지 한 세기 넘게 들어갈 수 없던 높은 담장 안 금단의 땅에서도 누군가의 평범한 일상은 이어지고 있었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는 “공간은 인간의 친구”라고 했다. 사람은 공간 없이는 삶을 이어갈 수 없고, 공간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군부대로만 보였던 용산 기지가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보낸 삶의 터전이라는 관점이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베일에 싸인 시간 동안 어떤 사람들이 누구와 함께 어떤 일상을 누리며 어떤 이야기를 품고 살아왔는지, 흔적이 모두 사라지기 전에 하나라도 기록해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사는 곳, 평범한 일상 공간으로서 용산 기지, 그곳이 궁금해졌다. ...(중략) *환경과조경389호(2020년 9월호)수록본 일부 서준원은 열다섯 살부터 대학 졸업 후까지 뉴욕에서 약10년간 생활했다.파슨스 디자인 스쿨(Parsons School of Design)인테리어디자인학과에서 다양한 주거 공간에 대해 공부했고,한국인의 생활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치고 박사를 수료했다. SOM뉴욕 지사, HLW한국 지사, GS건설,한옥문화원,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등에서 약16년간 실내외 공간을 아우르는 디자이너이자 공간 연구자로 활동했다.한국인의 참다운 생활 환경을 위한 디자인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품고 다양성이 공존하는 도시 공간 연구를 위해 곳곳을 누비며‘공간 속 시간의 켜’를 발굴하는 작업을 긴 호흡으로 해오고 있다.
  • [북 스케이프] 르네상스 정원의 시원, 힙네로토마키아 폴리필리
    정원을 설명할 때마다 정원은 인류가 꿈꿔온 이상향을 표현하는 곳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 이상향은 시기와 지역, 종교와 문화 등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을 하며, 이를 뒷받침하는 문헌도 여럿이다. 가령 르네상스 정원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흔히 『데카메론(Decameron)』을 예로 든다(4월호 참조). 그런데 정원 이론서에는 『힙네로토마키아 폴리필리(Hypnerotomachia Poliphili)』라는 복잡하고 낯선 이름의 문헌이 더 자주 등장한다. 제목과 삽화 한두 점은 꼭 나오고 상세히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중요하다고 하니 대충 넘어가기도 찝찝하다. 검색해보면 아름다운 이미지가 쏟아지나 연구는 많지 않다. 원전이 당시 속어로 분류됐던 이탈리아어와 라틴어, 여러 고대 언어가 뒤죽박죽 섞인 이른바 ‘마카로니(macaroni)’ 문학이라 해독이 어려운 탓일까. 출판된 지 500년이 지난 1999년에야 영어 완역본이 출간됐다.1 고전이란 “누구나 읽었으면 하지만, 아무도 읽고 싶지 않은 것”이라는 마크 트웨인의 정의에 가장 부합하는 책이 아닐까. 그러나 박사 과정 중 순전히 호기심과 호기로 『힙네로토마키아 폴리필리』를 학기 과제로 택했고, 아무도 연구하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2 『힙네로토마키아 폴리필리』는 15세기 후반 이탈리아에서 출판된 소설이다. 님프 폴리아를 연모하는 주인공 폴리필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다 간신히 잠이 든다. 꿈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폴리아와 사랑이 이루어지는 듯하나 입맞춤을 하는 순간 꿈에서 깨어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제목, ‘힙네로토마키아’는 힙노스hypnos(잠), 에로스eros(사랑), 마케mache(투쟁)라는 세 개의 그리스어 단어가 합쳐진 말, 즉 주인공이자 화자인 폴리필로가 꿈속에서 겪는 사랑의 여정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줄거리도 단순하고 플롯도 엉성한 연애 소설이 어떻게 르네상스 정원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까? ...(중략) 각주 정리 1. 1499년 당시 유럽 최고의 인문학 출판사 중 하나인 알두스 마누티우스(Aldus Manutius)에서 처음 출판됐고, 1592년에 영국에서 『The Strife of Love in a Dream(꿈에서의 사랑의 투쟁)』이라는 축약된 해적판 번역본이 출간됐다. 프랑스에서는 1546년 『Le Songe de Poliphile(폴리필로의 꿈)』이라는 번역본이 새로 제작한 판화와 함께 발간됐다. 이는 『Le Songe de Poliphile』(Paris: Imprimerie nationale, 1994)로 복간됐고, 『Hypnerotomachia Poliphili: The Strife of Love in a Dream』(Thames & Hudson, 1999)가 최초의 영어 완역본이다. 2. 황주영, “16.17세기 이탈리아 프랑스 정원과 『힙네로토마키아 폴리필리』”, 『미술사학보』 36, 2011, pp.179~214. *환경과조경389호(2020년 9월호)수록본 일부 황주영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불문학과 영문학을 공부하고,미술사학과에서 풍경화와 정원에 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박사후 연수를 마쳤다. 미술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문화사적 관점에서 정원과 공원, 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이와 관련된 강의와 집필, 번역을 한다.그러는 동안 수많은 책을 사거나 빌렸고, 그중 아주 일부를 읽었다.
  • 살아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한겨레」 토요일 판의 작은 지면에 4주에 한 번 칼럼을 싣고 있다. 조금 더 많이 읽히기 바라는 마음에 쑥스러움을 누르고 페이스북에 공유하곤 하는데, ‘브릭웰(Brickwell)’을 다룬 6월 27일 자 칼럼 “함께 쓰는 도시의 우물”에는 평소보다 많은 ‘좋아요’가 달렸다. 글의 마지막 문장처럼, 깊은 우물 밑 잔잔한 수면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장마철 오후를 보냈다는 문자 메시지를 여러 통 받았다. 건축가 강예린·이치훈SoA과 조경가 박승진loci이 설계한 경복궁 옆 고즈넉한 통의동 골목의 브릭웰. 편안하면서도 묵직하고 튀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건물의 지상층이 뻥 뚫려 있다. 안으로 몇 걸음 들어서면 식물도감을 펼친 듯 밀도 있는 숲. 우물처럼 깊은 원통형 숲 아트리움 위로 고개를 들면 초현실적인 하늘 풍경. 이방인을 환대하는 이 ‘공공의 정원’을 통과하면 서촌의 오랜 기억을 담은 백송터로 연결된다. 브릭웰은 개인이 소유한 장소지만 누구나 들어가 산책하고 앉아 쉴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공간사회학적 의미가 감각적 체험과 미학적 참여를 짓누르지 않는다. “살아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는 조경론을 과장과 과잉 없이 구현해온 박승진의 안목과 솜씨 덕분일 것이다. 이달에는 ‘브릭웰 정원’과 함께 박승진의 근작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 ‘어퍼하우스 남산 전시관’을 묶어 특집 지면을 꾸린다. 세 작업은 여러 지면에 소개된 박승진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이라는 현상 혹은 대상에 대한 그의 성찰과 실험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나무 몇 그루, 철마다 번갈아 꽃을 피우는 꽃나무와 작은 풀들이면 족하다. 여기에 더해 나비를 보고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고마운 일이다”(27쪽)라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사실 브릭웰이나 어퍼하우스 남산은 모두 “공간적 한계, 여기에 자연의 일부를 이식한다는 역설”(42쪽)이며 그런 역설이 낳는 “부조화를 할 수 있는 한 가득 채우는”(47쪽) 비평적 작업이기도 하다. 프로젝트가 끝나도 장소는 늘 자란다. 그의 말처럼 “계절은 늘 흐르고 식물들도 변신을 거듭하면서 성장하고 번성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자연은 놀랍고 늘 경이롭다”(39쪽). 자연을 묻고 답하는 박승진의 다양한 형식의 글들에는 이론과 실천이 교차한다. ‘그래서 조경은 결국 무엇인가’라는 학부생들의 도전적 질문에 횡설수설하는 날이면, 도시의 온갖 소란과 소음에 지치는 날이면, 나는 박승진의 글을 꺼낸다. 우연히 펼친 아무 쪽이나 읽더라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뒤엉킨 생각이 정리된다. 활자 사이사이로 그의 작업들이 겹쳐 떠오른다. 내가 가장 즐겨 읽는 박승진의 글은 남기준이 편집한『 텍스트로 만나는 조경』(나무도시, 2007)의 한 챕터인 “조경의 영원한 로망, 자연”인데, 그중에서도 “살아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는 제목을 단 부분은 다시 읽어도 언제나 새롭다. “생명이 있는 것은 멈추지 않으며, 자연은 그 멈추지 않는 존재들로 가득하다. 푸른 하늘을 무리지어 나는 새들이 지나간 자리에 별들의 운행이 시작된다. 해가 뜨고 달이 지는 사이 식물들은 피어나기와 움츠리기를 반복한다. 물은 높은 곳에서 바다를 향해 흐르고 그 긴 여정 동안 대지를 적시고 꽃들을 피어나게 만들며, 목마른 존재들의 갈증을 풀어준다. 땅은 모은 것을 받아들인다. 날아온 풀씨를 품어 생명으로 피어나게 하고, 나무들을 곧추세워 자라게 하며, 양분을 아낌없이 내줌으로 그것들이 단단한 결실을 맺게 해준다. 땅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온갖 미물微物들의 보금자리며, 거만한 인간들에게도 영원한 안식처가 된다. 풀과 나무들은 물과 땅과 해와 더불어 자라남으로 움직이는 모든 존재들의 양식이 되어준다. 꽃을 피워 우리들의 가슴을 매혹케도 하며, 그 충만한 몸체를 내어줌으로 생명이 쉬어갈 거처를 허락하기도 한다. 낮이 가고 밤이 오듯, 자연은 곧 움직임의 결과다. 창세 이후 단 한 번도 지구는 태양과 더불어 운행을 멈춘 적이 없다. 봄비가 내리고, 개구리가 깨어나며, 이삭이 달리고 이슬이 맺히는 절기적 자연 현상은 바로 이 우주적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니, 아무리 작은 생명체 속에서도 온 우주의 기운이 미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다음 문단에서 박승진은 조경을 이렇게 정의한다. “조경은 바로 이러한 우주적 움직임과 관계에 대해 주목하는 작업이다. … 조경은 자연과 더불어 시간을 엮어내는 일이라는 점에서 여타의 디자인과 다른 본질적인 차별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는 아름다운 글을 이렇게 맺는다. “동시대 조경이 자연에서 희망을 찾는다면, 우리는 이 소중한 일을, 경관을 조화롭게 만드는 일, 곧 조경調景이라고 불러도 좋지 않겠는가.” 이번 달 특집에서 우리는 박승진의 조경造景 아닌 조경調景을 만날 수 있다.
  • [풍경 감각] 있지도 않은 풍경은 아름답고
    “아름답다”고 말하면 친구들은 의아한 표정을 짓곤 했다. 일상에서 잘 쓰지 않는 표현이기도 하고, 어디가 어떻게 아름다운지 되묻는 말에 설득력 있는 대답을 못했기 때문일 듯하다. 그렇지만 이 글에서는 아름답다고 하고 싶다. 있지도 않은 어떤 풍경1에 대해. 조경학과에 다니는 동안 꽤 여러 번 말도 안 되는 설계를 했다. 모래 유실로 사라진 해수욕장을 대신할 인공 구조물을 바다 위에 띄우거나, 쪽방촌 주민들이 잠시 햇볕을 쬐고 구름을 구경하도록 공터에 주변 건물보다 높은 공중 데크를 디자인했다. 부루마블 게임을 한 뒤 게임판 위에 세워진 건물대로 공간을 만들겠다고도 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88호(2020년8월호)수록본 일부 1. 이번 글과 그림은 이제니의 시집 『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의 도움을 받았다.
  • [비트로 상상하기, 픽셀로 그리기] 그래스호퍼 연대기 Ⅱ
    변신 Ⅱ 카프카의 ‘변신’은 다양한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로 변한 것이 아니라 주인공 스스로가 변했다고 믿는 정신 착란 상태였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그레고르가 경제력을 잃자 나태해져 있던 가족들이 지금까지의 고마움은 잊고 갑자기 벌레 보듯 그를 바라보게 된 거라는 해석도 있다. 변신은 물론이거니와 ‘학술원에의 보고’와 ‘시골의사’ 등 그의 다른 단편들에서도 카프카는 아무것도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물론 살면서 마주하는 모든 것들을 우리는 언제나 꽤 아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결국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처럼, 그런 방식이 그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위대한 표현 방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스호퍼 연대기를 시작하고 나서 나 또한 실존적 모순에 빠지고 말았다. 내가 그래스호퍼를 알기 때문에 연재를 하는 것인지, 그래스호퍼에 대해 말해야 하기 때문에 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그래스호퍼를 잘 안다고 추켜세워 주는 것을 사람들은 현대적인 유머처럼 즐기고 있는 것인지. 20대 이후에는 늘 결국 아무것도 의미 없을 거라는 근본적 허무를 가슴에 품고 살았다. 그러면서도 이 연재를 시작한 뒤 온갖 그래스호퍼 영상을 밤마다 보고 있는 나 자신이 이해가 안 간다. 이건 내가 아니다.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뿐 어느 시점에선가 정말 벌레로 변해버린 걸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의 그 시선들이 사실은 진짜 나를 바라보고 있던 건지 도 모른다. 목록 Ⅱ 그래스호퍼로 할 수 있는 것들의 목록을 계속 나열해보겠다. 하지만 한 달쯤 지나 생각해보니 사실 그게 맞는 목록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스호퍼에 그래놀라와 요거트를 타서 단백질이 풍부한 저칼로리 디저트를 만든다고 한들 누가 뭐라고 할까. 그런 고민을 결국 떨쳐내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그래스호퍼를 잘 알기 때문에 연재를 하는 사람인지, 잘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잘 알아야 하는 건지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취하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것들이 언제나 인생을 망치지만. 지난 연대기에서는 그래프 매퍼로 로프트를 하는 예시를 들어 파라메트릭 모델링을 진행하는 기초 구조를 설명했다. 이번에는 그 스크립트를 몇 단계 발전시켜 하나의 프로젝트 모델을 완성해보겠다. 그림 1은 스크립트의 전체 구조다. 00_Loft Base가 모델링의 기본 서피스를 구축하는 섹션이고, 여기에 논리 구조별로 01_Tween Surface, 02_Wood Generator, 03_Fish-Wave Maker 섹션을 단계적으로 구축해 모델을 발전시켰다. 1번부터 설명해보겠다. 트윈 서피스 트윈 서피스(Tween Surface)(그림 2)는 트윈 커브(Tween Curves)라는 명령을 사용해 두 개의 입력 커브 사이에 연속성을 갖는 새로운 면을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선을 내가 그리는 것이 아니라 알고리즘을 통해 생성한다는 거고,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곡면의 연속성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라이노의 모든 커브 관련 명령어는 커브를 구성하는 정보들을 재구성해 새로운 결과 커브를 구축한다. 트윈 커브는 2개의 입력 커브 사이에 몇 개의 중간 커브를 만들지에 대한 정보를 입력하면 A에서 B로 향하여 형태와 곡률의 연속성을 유지하며 점진적으로 변하는 커브들을 만든다. 나는 우선 A와 B 사이의 가상의 면을 7개로 나누는 참조 값을 대입해(레인지, Range 사용) 6개의 중간 커브를 만들었다. 그리고 입력 커브들을 포함 0에서 7번까지 총 8개의 커브를 0에서 6번, 1에서 7번의 두 그룹으로 나누고(시프트, Shift 사용) 그래프트Graft를 사용해 데이터 구조를 맞춘 뒤 로프트로 7개의 기본 서피스를 만들었다. ...(중략)... *환경과조경388호(2020년 8월호)수록본 일부 나성진은 서울대학교와 하버드GSD에서 조경을 전공했다.한국의 디자인 엘,뉴욕의 발모리 어소시에이츠(Balmori Associates)와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CFO)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고, West 8의 로테르담과 서울 지사를 오가며 용산공원 기본설계를 수행했다.한국,미국,유럽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귀국 후 파트너들과 함께 얼라이브어스(ALIVEUS)라는 대안적 그룹을 열었다.
  • [공간잇기] 흐릿한 고향 땅, 이야기 지층을 찾아서
    내 고향이니까 다시 돌아왔죠 멀리 북한 땅까지 한눈에 보이는 소이산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철원평야는 과거 철원 시가지가 있던 곳이자 사방이 탁 트인 넓은 평원이다. 한국전쟁 때 피난 갔다 고향 땅이 그리워 다시 돌아왔다는 1928년생 임희순 할아버지는 더 이상 번성했던 구철원의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없다. 한국전쟁을 겪으며 송두리째 사라진 고향은 이제 기억에만 존재해 이따금 꺼내 볼 뿐이다. 철원에서만 15대를 이어온 임 씨 집성촌에서 태어난 임 할아버지는 “철원은 대대로 땅이 비옥하고 좋아 쌀농사가 잘되서 어릴 적 가난하고 없이 살아도 흰 쌀밥만큼은 배부르게 먹었다”고 회상한다. 피난 가서 처음 보리밥을 접해 기름진 고향 땅이 더욱 그리웠다는 그는 친척이자 이웃이던 동네 사람들과 마당에 모여 쌀로 온갖 음식을 만들어 먹던 기억을 풀어놓는다. 마당의 모습, 가족 구성원, 멀리 보이던 석양과 초가집에 대해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이야기하며 마치 그날 그때로 되돌아간 듯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철원역에 있는 쌀 저장 창고에 쌀 포대를 실어 나르던 일본군 트럭을 뒤따라 쫓던 기억부터, 학창 시절 철원역에서 금강산전기철도 타고 금강산으로 소풍을 갔던 추억, 해질녘 한달음에 뛰어올라 바라보던 숨 막히게 아름다운 철원평야와 시가지 풍경이 아직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에 선하다. 모두 사라진 지 오래지만 할아버지에게는 절대로 잊히지 않는 애틋하고 번성했던 고향의 일상 풍경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일상의 장소, 철원평야 일상이란 매일 반복되는 생활을 의미한다. 개인과 역사, 사회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과의 상호 관계성을 탐구하는 일상사 연구의 거장 알프 뤼트케는 역사 속 이름 없는 대다수 사람의 삶은 고난 속에서 일궈낸 생존의 역사이며 ‘역사 속의 일상들(historische altage)’이라 했다. 또한 역사학자 세르토(M. de Certeau)는 역사가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흔적을 마을과 같은 일상의 장소에서 찾는다고 했다. 일상에 대한 탐구는 단순하거나 단편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고, 개인이 영향 받고 관계 맺는 생활 속 모든 대상과의 유기적 상호 관계를 세밀히 관찰해야 한다. 임 할아버지의 경험과 기억 속에 존재하는 고향의 마당, 골목, 평야, 석양의 모습은 유년 시절 일상의 장소에 관한 기억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소회가 담긴 이야기 속 철원역, 일본군, 쌀 저장 창고와 철원평야는 묵직한 역사의 흔적이기도 하다. 거시적인 역사의 흐름에 영향을 받은 개인의 소소한 이야기가 하나둘 모여 고향 땅의 흔적을 찾아주고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의 지층을 드러내는 중요 단서가 된다. 일상의 장소란 우리 주변의 평범한 환경이자, 자연적이고 문화적인 대물림 속에서 사람들과 관계 맺고 교류하며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환경을 말한다. 개인이 애착을 갖는 일상의 장소에 대한 경험과 기억을 수집하고 이를 역사·문화적 맥락에 놓는 일은 평범한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비무장지대DMZ 접경 지역인 철원은 정치적, 지리적 특성이 마을 주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대표적 장소다. 남북이 번갈아 통치했던 수복 지구라는 특성과 1953년 정전협정 같은 사건은 철원의 역사·문화적 환경 조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굴곡진 역사의 철원평야를 터전으로 삼은 주민들의 일상이 녹아든 사라진 장소, 그곳에 얽힌 평범한 이웃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피할 수 없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 처절한 일상은 자유와 목숨을 담보로 한 것이었다. ...(중략)... *환경과조경388호(2020년 8월호)수록본 일부 서준원은 열다섯 살부터 대학 졸업 후까지 뉴욕에서 약10년간 생활했다.파슨스 디자인 스쿨(Parsons School of Design)인테리어디자인학과에서 다양한 주거 공간에 대해 공부했고,한국인의 생활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치고 박사를 수료했다. SOM뉴욕 지사, HLW한국 지사, GS건설,한옥문화원,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등에서 약16년간 실내외 공간을 아우르는 디자이너이자 공간 연구자로 활동했다.한국인의 참다운 생활 환경을 위한 디자인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품고 다양성이 공존하는 도시 공간 연구를 위해 곳곳을 누비며‘공간 속 시간의 켜’를 발굴하는 작업을 긴 호흡으로 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