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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스케이프] 반지의 제왕 속 나무수염이 전하는 이야기 2
톨킨(J. R. R. Tolkien)의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에 등장하는 엔트 족(the Ents)은 여러모로 흥미롭다. 그들은 자족적이고 어느 편에도 관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루만에 의해 자신들의 삶이 위협받자 전투에 참여하기로 한다. 참전을 결정하기 위해 엔트들의 회의인 엔트뭇이 열리고, 호빗 메리와 피핀이 이를 목격한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호빗과 달리 엔트의 형상과 색깔, 크기는 각각의 나무만큼이나 다르다. 수염이 나고 옹이가 많아 울퉁불퉁한 매우 늙은 엔트도 있고 팔다리가 미끈하고 건장한 엔트도 있지만, 어린 나무 같은 모습의 젊은 엔팅(Enting)은 없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엔트 족의 남성형이다.
참전을 결정하고 나무수염은 종족이 너무 적음을 유감스러워한다. 병 같은 것으로 죽은 것이 아니고 단지 오랫동안 엔트의 자식이라고 해야 할 엔팅이 없었기 때문이다. 엔트들은 엔트 부인(Entwives)을 잃었다고 한다. 그런데 엔트 부인들은 죽은 것이 아니고 영영 사라졌다.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무수염의 말에 따르면 세상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었고 숲도 광막한 야생이었을 무렵, 엔트와 엔트 부인들은 함께였으나 마음은 같은 방향으로 자라지 않았다. 엔트는 거대한 나무와 야생의 숲, 높은 언덕을 사랑했고, 지나가는 길에 나무들이 떨어뜨려 준 과일만 먹었다. 하지만 엔트 부인들은 작고 연약한 나무와 숲 너머 양지바른 언덕에 마음을 쏟았고, 수풀 사이의 자두나 봄에 꽃을 피우는 야생 사과, 버찌 그리고 여름 물가에 피는 초록색 풀과 가을 들판에 씨를 퍼뜨리는 잡초를 보았다. 질서와 풍요, 평화를 원한 엔트 부인들은 식물이 자신들의 명령에 따라 성장하고 열매 맺고 잎을 피우기를 원했다. 그래서 엔트 부인들은 정원을 만들기 시작했다.1 ...(중략)
각주 1. 이러한 신화적인 최초의 정원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화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질 클레망, 이재형 역, 『정원으로 가는 길』, 홍시, 2012.
*환경과조경386호(2020년6월호)수록본 일부
황주영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불문학과 영문학을 공부하고,같은 대학 미술사학과에서 풍경화와 정원에 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이후 서울대학교 대학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 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 박사후 연수를 마쳤다.미술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사적 관점에서 정원과 공원,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 이와 관련된 강의와 집필,번역을 한다.생계를 위한 독서를 하기 전에는 다양한 판타지 소설을 탐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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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코로나 이후의 도시 공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전 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한 지 넉 달을 넘어서고 있다. 바이러스에 움츠린 흉흉한 도시의 봄, 코로나 이후의 사회와 도시에 대한 전망이 줄을 잇고 있다. 빌 게이츠 같은 스타 기업가, 슬라보이 지제크 같은 인기 지식인은 물론이고 너도나도 유행처럼 예언을 쏟아내고 있다. 그들은 세계화의 붕괴와 신자유주의 체제의 파탄을 예견하면서 도시와 사회는 코로나 이전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고 이제 ‘뉴노멀’을 준비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일면 귀 기울일 만하지만, 최근의 언론 매체를 휩쓸고 있는 경고성 예측들은 지나치게 요란한 경우도 적지 않다. 섣부른 예상이나 주장을 보태기보다는, 유사한 위험이 다시 닥쳐올 때 도시가 탄력적으로 대처할 회복력을 갖출 수 있도록 기초 시스템을 보강하고 사회적 인프라를 확충하는 게 우리의 과제일 것이다.
재난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도시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에서 위험과 고립을 넘어서는 연결망으로서 공원의 가능성에 기대를 건다. 공원은 위기와 재난을 극복하는 관계와 소통의 장소, 곧 희망의 ‘사회적 인프라’라는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세계 전역의 도시에서 공원의 존재감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구글이 발표한 ‘지역 사회 동선 보고서(Covid-19 Community Mobility Reports)’에 따르면, 사회적 거리 두기가 본격화된 뒤 거의 모든 도시에서 공원 방문이 증가했다. 감염의 공포에서 탈출할 수 있는 도시 내의 유일한 장소가 그나마 공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국내외 여러 매체들도 공원의 역할을 재조명하고 있다. 3월 19일 자「뉴욕타임스」는 “뉴요커가 집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곳, 공원이 희망이다”라는 기사에서 위안과 안전감을 찾아 센트럴파크에 몰린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상황이 심각한 유럽의 몇몇 도시에선 공원마저 폐쇄됐지만, 전문가들은 사회적 거리를 지킨다면 공원은 신체와 정신 건강의 위기를 치유하는 공간적 백신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19세기의 급속한 산업화가 낳은 도시 인구의 폭증과 과밀, 빈부 격차와 노동자의 여가 문제, 위생 악화와 전염병 유행을 치료하는 공간적 해독제로 투입된 게 도시공원이다. 옴스테드는 공원을 통해 열악한 도시 위생을 개선하고 시민의 건강을 회복시킬 수 있다는 비전을 펼쳤다. 오랫동안 잊혔던 공원의 이 고전적 효능이 새롭게 재발견되고 있다.
이 어려운 시기를 통과하면서 조경(학)계는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떤 사회적 기여를 할 수 있을까. 도시에서 공원이 중요하다는 누구나 아는 사실만 독백하고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도시 분야는 이미 ‘코로나 이후의 도시’를 주제로 다양한 온라인 세미나와 웨비나(webinar)(웹+세미나)를 열고 있다. 구글 창에 corona, pandemic, city 정도만 넣고 검색해보면 집단 지성의 힘을 곧바로 실감할 수 있다. 예컨대 뉴욕 컬럼비아 대학 도시계획 전공 대학원생들이 한 달 만에 만들어낸 오픈 소스 “팬데믹 어바니즘: 코로나 시대의 실천(Pandemic Urbanism: Praxis in the Time of Covid-19)”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도 유튜브 도시TV를 통해 ‘도시와 감염병’(3월 31일), ‘Covid-19 이후의 도시 정책’(4월 21일)을 기획해 공론의 장을 열었다. 도시공원동맹(City Parks Alliance)은 지역 사회를 코로나 위기로부터 구하는 공원,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위한 전략적 공원 프로그램, 2020년 여름 이후를 위한 공원 계획 등을 다룬 세 차례의 웨비나를 개최했다. 온라인 조경 네트워크 Land8은 공원과 코로나 바이러스를 주제로, 줌(Zoom)을 통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온라인 세미나를 4월 20일부터 나흘간 진행했다.
우리 조경계도 조경가, 교수, 학생 가릴 것 없이 ‘코로나 이후의 공원’ 설계와 문화를 논의하기 시작해야 한다. 공원이 중요하다는 뻔한 당위론만 붙잡고 있을 때가 아니다. 도시의 위기를 구한 공원의 선례를 역사적으로 검토하고, 도시의 회복탄력성을 기르는 데 어떤 공원이 필요한지, 멀리 있는 큰 공원 하나가 더 중요한지 가까이 있는 작은 공원 여러 개가 더 필요한지, 감염과 재난에 강한 공원 설계는 무엇일지 다각적 주제를 발굴하고 토론해야 한다. 모이지 않아도 된다. 많은 예산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온라인 세미나, 웨비나, 아이디어 공모, VDF(Virtual Design Festival)등 간편하고 참신한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이달에는 오피스박김의 최근작과 에세이, 이명준 교수의 비평을 엮어 특집으로 올린다.지난 15년간, 오피스박김의 박윤진과 김정윤 소장은 도시 환경의 난맥과 사회적 쟁점이 얽힌 프로젝트에 ‘산수전략’과 ‘대체 자연’ 같은 전략적 설계 해법을 대입하면서 글로벌 조경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시스템으로부터 자유로운 경관의 형태’를 실험하며 진화해온 그들의 작업은, 이번 특집 지면에서 볼 수 있듯 또 한 번의 변신을 꿈꾸고 있다. 그들이 이론적 실천과 실천적 이론을 가로지르며 탐사 중인 ‘새로운 황야(new wilderness)’는 어쩌면 코로나 팬데믹 이후의 조경이 지향해야 할 좌표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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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로 상상하기, 픽셀로 그리기] 투영법과 초점 거리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
누구에게나 사랑한다고 손꼽아 말할 수 있는 게 무엇이라도 있을 것이다.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에겐 환경 운동일 것이다. 그리고 J. D. 샐린저(Jerome David Salinger)라면 사냥 모자를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일관되게 세상의 위선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여 왔는지 주장할 것이다. 전혜린이 세코날을 먹고 자살하지 않았다면, 글쎄 헤르만 헤세를 얘기했을까?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이라면 싸구려 재규어 기타를 들어 보이며 물질에 초탈한 영웅의 초상화를 능숙하게 그려냈을 것이다. 나라면? 내가 얼마나 아름다운 설계 드로잉들을 사랑하는지에 대해 밤새도록 이야기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도 슬픈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설계 이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젊은 조경가들 사이에서는 요새 어느 회사가 더 잘나가는지 토론하며 술잔을 기울이는 게 유행이 됐다. 그리고 학생들은 주로 설계를 너무 잘하고 싶다고 말하거나 아니면 이제는 설계를 그만두고 싶다고 말한다.
아마 술자리에서 루미온과 브이레이 중 무엇이 더 훌륭한지에 대한 백 번째 논의를 하거나 최근 유튜브의 오유 그래픽스(OU Graphics)채널에 올라온 죽이는 엑소노메트릭 다이어그램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다. 어쩌면 예전부터 모든 게 그래왔던 것 같기도 하다.
조경가에게 미디어
그래서 친구가 없다거나 많다거나 뭐 그런 얘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억울한 부분이 있다. 왜냐하면 이제야 생각해보면 사실 ‘조경’이라는 분야가 산업 디자인 중 유독 미디어에 소홀한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폴리곤(polygon)과 넙스(nurbs)의 차이점에 대해 심각하게 토론하거나 픽사(Pixar)가 ‘제리의 게임’에서 서브디비전 모델링을 최초로 사용해 시그라프(SIGGRAPH)기술상을 탔다는 얘기 같은 걸 지금까지 누구와도 나눠본 경험이 없다.
이건 정말 슬픈 일이다. 예를 들면 나는 절제된 볼록한 형태의 구조를 만들 때는 케이트너리 커브(catenary curve)를 쓰면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에 대해 열 번 말할 때, 한 번쯤은 커브의 차수(degree)간의 차이에 대해 말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제로는 업무 시간에 라이노와 스케치업을 주로 쓰면서 회의만 시작했다 하면 지난주에 했던 콘셉트 얘기를 다섯 번째 반복하는 게 슬프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사랑하는 루미온의 그래픽이 모든 설계 드로잉들을 먹어 치우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공모전에서는 대놓고 스케치업과 루미온을 쓰라며 설계에 있어 미디어의 다양성과 개성은 중요한 게 아니라고 강요한다.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만화 ‘배가본드’의 무사시는 오직 검술에만 몰두해 인생의 허무를 깨달았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가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건 ‘문체’라며 미디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우리는 종일 컴퓨터로 설계하면서도 정작 디지털 미디어를 부차적인 표현 수단 정도로만 생각한다. 원근법 이미지와 정투영법 도면의 역할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논의하지 않으면서, 루미온으로 비슷한 이미지들을 10분 만에 20장 렌더링해서 패널의 2/3를 채우는 것은 너무도 대량 생산적이다(디자이너가 대량 생산을 하다니). 만약 100명의 사람이 앞으로도 루미온을 쓸 생각이라면 나는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거다. 언젠가 아무도 루미온을 사용하지 않게 되면 그때 루미온을 쓸 거다. ...(중략)
*환경과조경385호(2020년5월호)수록본 일부
나성진은 서울대학교와 하버드 GSD에서 조경을 전공했다. 한국의 디자인 엘, 뉴욕의 발모리 어소시에이츠(Balmori Associates)와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CFO)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고, West 8의 로테르담과 서울 지사를 오가며 용산공원 기본설계를 수행했다. 한국, 미국, 유럽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귀국 후 파트너들과 함께 얼라이브어스(ALIVEUS)라는 대안적 그룹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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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잇기] 학생들과 함께 읽은 동네 이야기
아저씨, 사진 찾으러 왔어요
세 평 남짓한 작은 한옥 사진관에 여고생들의 왁자한 목소리가 가득하다. “경자야 너는 잘 나왔는데 나는 못나게 나온 것 같아.” “영애야 무슨 소리니. 네가 훨씬 예쁘게 나왔는 걸. 아저씨가 너만 잘 찍어 주셨나 보다.” “얘는 참. 우리 이 옆에 떡볶이 먹으러 갈까? 숙희랑 명진이도 그리로 온다고 했어.” 사진관 주인이었던 주희돈 할아버지 귓가에는 학생들이 사진을 찾아가며 까르르 웃던 소리가 5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맴도는 듯하다.
1960년대 초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종로구 재동에 있던 ‘명광사’는 창덕여자고등학교 맞은편에 자리한 사진관이었다. 입학식, 졸업식, 체육 대회 등 굵직한 행사 사진뿐 아니라 각종 증명사진과 추억이 담긴 사진의 인화를 도맡았다. 안국역 사거리에서 가회동으로 올라가는 방향에 있던 창덕여고 자리에는 현재 헌법재판소가 있다. 함경북도 길주가 고향인 주희돈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때 서울로 혈혈단신 피난온 뒤 계동에 60여 년간 살고 있다. 고향을 떠나 고단했던 젊은 시절, 사진 기술을 가진 인생의 단짝 정옥선 할머니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재동에 명광사를 차려 동네 사람들과 서로 의지하며 정겹게 한 세월을 살았다.
“대박이다. 헌법재판소가 창덕여고였다구요?” “할아버지 그럼 명광사 한옥 건물은 지금 어디 있어요?” 계동 중앙고등학교 1학년 선재와 혜조는 어디서도 들을 수 없었던 할아버지의 인생 이야기가 아주 흥미로운 듯 큰 소리로 질문한다. “있긴 어디 있어. 지금은 다 없어지고 다른 건물이 들어섰지.” 아이들은 이내 흥분을 가라앉히고 준비해온 질문과 동네 지도를 바탕으로 할아버지가 겪었던 동네 이야기를 하나씩 수집하고 기록하기 시작했다.
동네 어귀의 우물터
“우리 동네 어귀의 오랜 우물터에 얽힌 이야기를 각자의 방식으로 조사해 오세요.” 20여 년 전 한국에서 획일화된 교육을 받다 중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가서 받은 첫 역사 수업의 과제였다. 유명한 문화유산도, 미국의 눈부신 개발상을 담은 멋진 건물도 아닌, 그저 동네 어귀에 오랫동안 자리해온 우물터였다. 비석도 없고 관리도 잘 되어 있지 않았으며, 물을 깃는 원형의 넓은 구멍은 널빤지로 단단히 못질 되어 있었다. 누가 봐도 사용하지 않은 지 꽤 오래된 우물임을 알 수 있는, 볼품없고 허름한 곳이었다. 역사 공부는 당연히 암기식으로 교과서를 달달 외우는 것이라고 배웠던 나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영어를 잘 못 알아들어서 과제를 제대로 이해 못 한 건 아닌지 의심하며 과제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하던 기억이 또렷하다. 한 주 뒤, 같은 반 열두 명의 친구들의 과제 발표는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떠오를 만큼 신선한 충격이었다. ...(중략)
*환경과조경385호(2020년5월호)수록본 일부
서준원은 열다섯 살부터 대학 졸업 후까지 뉴욕에서 약 10년간 생활했다. 파슨스 디자인 스쿨(Parsons School of Design) 인테리어디자인학과에서 다양한 생활 공간에 대해 공부했고, 한국인의 주거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다. SOM 뉴욕 지사, HLW 한국 지사, GS건설, 한옥문화원,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등에서 약 16년간 실내외 공간을 아우르는 디자이너이자 공간 연구자로 활동했다. 한국인의 참다운 주거 환경을 위한 디자인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품고, 다양성이 공존하는 도시공간 연구를 위해 곳곳을 누비며 ‘공간 속 시간의 켜’를 발굴하는 작업을 긴 호흡으로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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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스케이프] 반지의 제왕 속 나무수염이 전하는 이야기 1
“이는 이미 대규모 살생을 초래했고 수백만 명 이상을 조기 사망케 하겠다고 위협하는 비상 사태다. 그 영향은 점차 확산되어 경제 전체를 불안정하게 하고 자원과 인프라가 부족한 빈곤 국가를 압도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니라 기후 위기다.”1 팬데믹(pandemic)의 주요 원인으로 기후 변화가 언급되고 이기후 변화 너머에는 인류세(Anthropocene)가 있다. 인간이 지구에 가하는 압박이 너무나 극심해져 지구가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자연의 복수라고 하는 오래된 레토릭(rhetoric)이 다시 등장하지만,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는 톨킨(J. R. R. Tolkien)의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에 숨어 있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동명의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터라 절대적인 힘을 지닌 반지를 둘러싼 사건들이 잘 알려져 있지만, 원작 소설에서는 또 다른 이야기들을 볼 수 있다.2 우선은 정원사 샘와이즈 갬지가 있다. 순박하고 정직한 그는 이야기 속에서 거의 유일하게 절대반지의 유혹에 휘둘리지 않고 충실하게 프로도를 끝까지 수행한다. 심지어는 반지의 유혹을 받았을 때에도 정복한 곳에 꽃과 수목의 동산을 만드는 환상을 볼 정도로 뼛속까지 정원사인 인물이다. 전쟁이 끝난 후 폐허가 된 고향을 복구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으니, ‘돌보는 이’라는 정원사의 덕목을 그대로 체화한 인물이다. ...(중략)
*환경과조경385호(2020년5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Owen Jones, “Why don’t we treat the climate crisis with the same urgency as
coronavirus?”, The Guardian 2020년 3월 5일.
2. 『반지의 제왕』은 여러 출판사에서 번역되었다. 먼저 김번·김보원·이미애의 공역본인 『반지전쟁』(예문, 1991년과 1998년)이 출판되었고, 이후 톨킨의 번역 원칙에 따라 제목을 수정한 『반지의 제왕』(씨앗을뿌리는사람, 2002년)이 출판되었다. 이 연재에서는 2002년 출판본을 참고한다. 이외에 한기찬이 번역한 『반지의 제왕』(황금가지, 2001년), 일본어 중역본인 강영운
번역의 『완역 반지제왕』(동서문화사, 2002년)이 있다. 모두 절판 되었으나 중고 서점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황주영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불문학과 영문학을 공부하고, 같은 대학 미술사학과에서 풍경화와 정원에 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서울대학교 대학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 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 박사후 연수를 마쳤다. 미술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사적 관점에서 정원과 공원, 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 이와 관련된 강의와 집필, 번역을 한다. 생계를 위한 독서를 하기 전에는 다양한 판타지 소설을 탐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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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밀레니얼의 슬기로운 도시생활
“청바지 입고서 회사에 가도 깔끔하기만 하면 괜찮을 텐데, 여름 교복이 반바지라면 깔끔하고 시원해 괜찮을 텐데.” 1997년을 강타한 DJ DOC의 노래 ‘DOC와 춤을’을 기억하는가. X세대 악동들이 꿈꾼 일탈은 불과 20년 만에 평범한 일상이 됐다. 이제 양복 입고 넥타이 매는 사람은 정치인밖에 없다. 아니면 목사. 밀레니얼의 존재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s)는 X세대의 다음이라는 의미로 Y세대, 정보기술IT에 친숙하다는 뜻에서 ‘테크세대’라고 불리기도 한다.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는 밀레니얼의 습속을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별명이다. 세대의 경계선에 대해선 의견이 조금씩 다른데, 2018년「 뉴욕타임스」는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의 연구를 인용해 1981년에서 1996년 사이에 태어난 인구를 밀레니얼 세대라고 정의했다. 밀레니얼의 큰언니 81년생은 올해 불혹이고, 막내 96년생은 취업난에 고민하는 스물다섯이다. 이들은 자라면서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가 급성장하는 시기를 겪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IT와 모바일이 이미 발달한 1997년 이후에 출생한 세대와는 구별된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밀레니얼은 2018년 기준 세계 인구의 4분의 1인 18억 명에 달한다. 2020년에는 전 세계 노동 인구의 35% 이상을 차지하고 소비력에서도 X세대를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나금융연구소는 2025년이 되면 국내 핵심 노동 인구의 83%가 밀레니얼 세대일 것이라고 예측한다. 밀레니얼은 도시를 어떻게 바꿔나가고 있는가.
이달의 특집 ‘밀레니얼이 만드는 도시’는 밀레니얼 세대가 도시를 사용하는 방식, 도시를 경험하는 기준, 도시를 제작하는 풍경을 두루 진단한다.『도시의 재구성』(이데아, 2017)의 저자 음성원(도시건축 전문 작가)은 이번 특집에서 이전 세대와 뚜렷이 다른 디지털 네이티브의 성향을 살펴보고 그들이 선호하는 도시 공간의 특징을 조감한다. 입소문과 언론 기사에 의존하던 도시생활과 장소 정보의 유통 경로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로 대체되면서 훨씬 빠르고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이런 경향은 밀레니얼이 장소를 소비하는 행태에 영향을 미친다. 사진으로 공유할 만한 가치가 ‘핫플레이스’를 만드는 핵심 열쇠다. 규격화된 아파트에서 자란 밀레니얼 세대는 오래된 골목길에서 이국적 매력을 느낀다. ‘~로수길’과 ‘~리단길’의 레트로 열풍은 비일상의 신기함을 찾는 밀레니얼의 취향을 단적으로 반영한다.
이아연(셰어하우스 우주 부대표)은 소유보다 경험이 중요한 밀레니얼의 생활 방식에 주목한다. 부모 세대보다 가난하게 살 운명을 역사상 처음 타고났다는 밀레니얼은, 주거 공간을 자산으로 소유하는 것을 포기하고 즐기기 위한 서비스 품목으로 보기 시작했다. 셰어하우스와 코리빙을 비롯한 다양한 공유 주거, 여행자처럼 옮겨 다니는 단기 임대 등 이전과 다른 형식의 유연한 주거 공간이 곳곳에 들어서고 있는 이유다. 소유에서 해방된 선택과 경험, 혼자 살고 혼자 일하는 밀레니얼이 도시를 살아가는 방식이다.
『흔들리는 서울의 골목길』(파람북, 2019)로 주목받고 있는 경신원(도시와 커뮤니티 연구소 대표)은 특집 지면을 통해 재생과 내몰림의 갈림길에 선 밀레니얼 세대의 도시 문제를 짚는다. 베이비부머와 X세대를 넘어 최대 소비 계층으로 떠오른 밀레니얼은 독립 서점, 부티크 호텔, 예약제 원 테이블 식당 등 비주류적 생산과 소비를 유행시켰고, ‘내 스타일’의 사업을 꾸리며 도시 공간과 문화를 재편하고 있다. 특히 이들의 글로벌 감각과 아날로그 감성은 외면과 방치의 상징이던 강북의 골목길을 핫플레이스로 변모시켰다. 그러나, 경신원이 예리하게 진단하듯, 밀레니얼 소상공인들은 젠트리피케이션에 의한 내몰림을 당하고 있고 그들이 활성화시킨 골목길 상권도 정체와 쇠퇴의 경로를 차례로 밟고 있다.
도시와 밀레니얼의 함수 관계를 짚어보는 것에 더해, 이번 특집은 도시의 기획과 운영, 제작과 재생을 횡단하며 도시 비즈니스의 새로운 지평을 꿈꾸고 있는 밀레니얼 그룹들을 소개한다. RTBP, 공유를위한창조, 어반베이스캠프, 더웨이브컴퍼니, 천안청년들, 빌드, 어반하이브리드. 이들이 전하는 생생한 이야기에서 밀레니얼이 바꿔나가고 있는 도시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특집을 기획한 윤정훈 기자는 이들 그룹의 원조격인 ‘어반플레이’의 홍주석 대표를 인터뷰했다. 회사 이름처럼 어반플레이Urbanplay는 정책에 의한 재생(regeneration)보다는 사람에 의한 재생(play)이 도시재생의 출발점이어야 한다고 여기며, “콘텐츠 중심의 동네 라이프 스타일 서비스 구축을 통해 지속가능한 도시를 실현”하고자 한다.
카페를 만들고 복합 문화 공간을 운영하고 축제를 기획하고 전시회를 열고 동네 잡지를 발행하며 지역 상인들과 함께 콘텐츠를 만들면서 도시를 동분서주 종횡무진하는 어반플레이의 작업 성과를 힐끗 본 뒤 “어, 재미는 있어 보이는데 좀 정신없지 않아? 얼마나 가겠어, 이래 가지고 도시가 나아질까?”라고 단정한다면, 당신은 도시의 변화에 둔감하거나 변화를 두려워하는 꼰대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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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로 상상하기, 픽셀로 그리기] 루미온과 어른의 사정
루미온(Lumion)은 정말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프로그램이다. 1998년의 레이던(Leiden)이었던가. 네덜란드의 두 청년이 새로운 3D 그래픽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회사를 창업했을 때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기억들이 헤비메탈과 스타크래프트 외에는 아무 관심도 없던 고등학생의 내가 실제로 겪은 일인지, 후에 설계에 몸담게 된 나의 이중 자아가 만들어낸 과대망상의 편린인지 잘 구분되지 않는다. 그래도 루미온은 내게 마치 호머 심슨의 도넛처럼 도파민 가득한 그런 존재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브이레이(V-ray)는 오랫동안 나를 괴롭힌 프로그램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에게 가르쳐야만 하는 어른의 사정을 투영하는 정말이지 대단한 골칫덩어리다. 어른의 사정이란 이런 일들이다. 공허의 심연에서 뭐라도 꺼내 15주의 커리큘럼을 채워야 하는데, 루미온을 설명하고 나면 불과 30분밖에 지나지 않는다. 무대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러도 루미온을 설명하며 한 시간을 넘기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고나면 왠지 민망해져 낯을 좀 가리다 수업을 일찍 마치게 된다. 아마도 학생들은 일찍 마친 수업을 반기다가도 이내 캠퍼스를 방황하며 내 전문성을 의심하게 될 것이다.
결국은 다시는 입에 올리기도 싫은 브이레이를 또 장황하게 설명하게 된다. 복잡한 용어를 잔뜩 사용하며 코 묻은 애들 사탕 뺏는 격이다. 별 볼 일 없는 내 자아를 감추며 시간을 때우기에도 이만한 프로그램이 없다. 하지만 예민한 학생들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거짓말이 쌓이면 윤곽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저 모른 척하고 싶을 뿐이지.
로컬 일루미네이션과 글로벌 일루미네이션
자, 렌더링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실시간 렌더링과 오프라인 렌더링. 실시간 렌더링은 말 그대로 루미온이나 트윈모션(Twinmotion)처럼 리얼타임(real-time)(실시간)으로 돌아가는 독립 프로그램이다. 오프라인 렌더링은 스틸 컷(still cu)t, 즉 정지 화면을 구현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렌더링 버튼을 누르고 점심을 먹고 오면 되는 브이레이 같은 것들 말이다. 당연히 실시간 렌더링은 직관적이고 빠르지만 퀄리티가 좀 애매하고, 오프라인 렌더링은 퀄리티는 좋지만 시스템이 복잡하고 오래 걸린다. 따라서 루미온과 브이레이 중 어느 것이 더 훌륭한지에 대한 논의는 정말 최고로 신나는 화젯거리다. 이 주제에 대해서라면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의 음악을 들으며 밤새라도 술을 마실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정작 술집에 가면 갑자기 화제를 돌려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에 더 열을 올린다. 진심으로 무언가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조금은 슬픈 일이다.
그림 1은 로컬 일루미네이션(local illumination)(LI)의 예시다. 그림 2는 브이레이를 사용한 글로벌 일루미네이션(global illumination)(GI)의 예다. 렌더링 프로그램을 구분하는 요소는 크게 조도 시스템, 재질, 소스의 세 가지로 볼 수 있는데,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단연 ‘조도 시스템’이다. 루미온은 실시간 작업 시 주 조도 시스템으로 로컬 일루미네이션을 사용하며, 렌더링 단계에서 여러 필터를 활용해 그 단조로움을 보완한다(그림 3). 그래서 대체 로컬이니 글로벌이니 하는 게 뭐냐고? 이제 어른의 사정이 이어진다. 아주 장황하게. ...(중략)...
*환경과조경384호(2020년4월호)수록본 일부
나성진은 서울대학교와 하버드GSD에서 조경을 전공했다.한국의 디자인 엘,뉴욕의 발모리 어소시에이츠(Balmori Associates)와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CFO)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고, West 8의 로테르담과 서울 지사를 오가며 용산공원 기본설계를 수행했다.한국,미국,유럽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귀국 후 파트너들과 함께 얼라이브어스(ALIVEUS)라는 대안적 그룹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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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잇기] 숨겨진 시간의 이야기
무심히 변해가는 도시
우리는 유럽의 어느 나라를 여행할 때면 부러워하곤 한다. 유럽의 도시는 옛 멋을 간직하면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삶의 이야기를 덧입혀 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건축가 유현준은 역사가 깊은 도시들은 마치 여러 장의 트레이싱지 그림이 쌓여 있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1역사가 깊은 도시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상호 관계를 조절하며 누적된 시간을 고스란히 드러내 깊은 멋을 더한다. 삶의 흔적을 시대에 맞게 쌓아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우리 도시는 어떨까. 대한민국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안타깝게도 우리가 사는 도시에 담긴 이야기와 의미에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평범한 일상이 시간이 지나 추억이 되고 그 이야기가 쌓여 특별한 곳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며 사는 듯하다. 흔히 한국의 도시가 유럽의 유서 깊은 도시에 비해 건축적으로 아름답지 못한 이유를 오래된 건축물이 없어서라고 설명한다. 서울은 5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오랜 시간을 거쳐 수많은 트레이싱지에 시대의 켜를 남기며 지금의 모습으로 변해온,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아 숨 쉬던 역사 도시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의 역사를 부정하듯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가 담긴 고즈넉한 골목길을 송두리째 없애며 개발하고 있다.
골목은 ‘땅에 새겨진 문양’이라는 의미의 지문(地紋)혹은 ‘땅의 이야기’라는 뜻의 지문(地文)이라고 했다.2건축가 승효상의 이 말처럼, 골목은 우리 윗세대가 긴 세월 삶을 가꿔온 터전이 있는 곳을 의미하지, 그 땅을 갈아엎은 뒤 새로 지어 올려 장소성이 해체된 아파트 단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도시계획가이자 사회운동가인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는 “오래된 건물의 경제적 가치는 시간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 무엇으로도 대체가 불가능하다”며, “활기 있는 도시가 과거로부터 물려받아 흐르는 세월 속에서 유지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3오래된 공간의 잠재력은 사회·역사적 맥락뿐 아니라 소시민들의 삶의 터전으로 기능할 때 비로소 그 가치를 발휘하게 된다. 공간 속에 새겨진 수많은 시간의 이야기들이 모여 도시의 다양한 지층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도시에 대한 거창한 물음은 차치하더라도, 우리는 우리가 사는 동네, 부모 혹은 조부모가 살았던 동네, 아니 자신이 태어난 곳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는 도시 공간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의 켜를 흔적도 없이 파괴하고 또 새로 남기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
삶의 흔적
몇 년 전 동네 연구를 하던 중 만난 한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강렬하게 남아 있다. 재개발이 추진되던 그 동네는 야트막한 언덕에 위치한 오래된 마을이었다. 주민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며 할머니의 일상을 몇 주간 함께하며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는 다세대 빌라에 살고 있었고, 그 빌라가 작은 마당 딸린 주택일 때부터 40년 넘게 같은 터에 거주해온 지역 원주민이었다. 시골에서 시집와 처음 살게 된 서울 집에서 악착같이 돈을 모아 자식 셋을 모두 공부시켜 출가시켰다는 자부심이 컸다. 집 앞 골목 한 귀퉁이의 한 평 남짓한 땅에 상추와 깻잎 농사를 지어 이웃과 나눠 먹는 것이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었다. 그런데 살아온 집과 동네에 대한 애정이 많은 것과 달리 할머니는 재개발을 강하게 원하고 있었다. 의문이 든 나는 며칠간 할머니의 일상을 관찰하며 몇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84호(2020년4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유현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을유문화사, 2015, p.146.
2. 승효상, 『지문: 땅 위에 새겨진 자연과 삶의 기록들』, 열화당, 2009, p.79.
3. 제인 제이콥스, 유강은 역,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그린비, 2010, p.272.
서준원은 열다섯 살부터 대학 졸업 후까지 뉴욕에서 약 10년간 생활했다. 파슨스 디자인 스쿨(Parsons School of Design)인테리어디자인학과에서 다양한 생활 공간에 대해 공부했고, 한국인의 주거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다. SOM 뉴욕 지사, HLW 한국 지사, GS건설, 한옥문화원,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등에서 실내외 공간을 아우르는 디자이너이자 공간 연구자로 활동했다. 한국인의 참다운 주거 환경을 위한 디자인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품고, 다양성이 공존하는 도시공간 연구를 위해 곳곳을 누비며 ‘공간 속 시간의 켜’를 발굴하는 작업을 긴 호흡으로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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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스케이프] 이타심의 정원, 데카메론
“인간의 척도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닌”1재앙이 닥친 듯한 2020년 초, 일상이 멈췄다. 원인도 치료법도 모를뿐더러 언제 어떻게 옮을까 무섭고, 나도 모르게 전파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감염의 공포는 모두를 멀어지게 만든다. 사람들은 과학이든 종교든 믿고 의지할 곳을 찾거나 비방을 일삼고 괴담에 휩쓸려 어리석은 짓을 한다.
한편에서는 전염병을 다룬 문학 작품에서 위로를 찾는다. 실제 사건에 바탕을 두고 있든, 허구의 사건이든 작가들은 참담한 상황 속에서의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흑사병이 창궐한 도시를 배경으로 한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페스트(La Peste)』가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지만, 책 속 194X년 알제리의 오랑에 앞서 이를 겪은 1348년 이탈리아의 피렌체를 보자.
『데카메론(Decameron)』2은 이탈리아의 작가 조반니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가 1450년부터 1453년 사이에 집필한 책으로, 몇 년 전의 재난을 회고하는 형식이다. 우선 피렌체에서 페스트가 절정에 달했을 때 일곱 명의 여자와 세 명의 남자가 도시를 잠시 벗어나 인근 빌라에 가게 된 연유가 소개되고, 이어 이들이 열흘 동안 지내며 돌아가면서 나누는 백 개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여기에서 그리스어로 ‘10일 동안의 이야기’라는 뜻을 담은 제목이 유래했다.3
각양각색의 인간 군상을 담은 백 개의 이야기도 흥미로우나,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인 정원을 눈여겨보자. ...(중략)...
*환경과조경384호(2020년4월호)수록본 일부
황주영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불문학과 영문학을 공부하고,같은 대학 미술사학과에서 풍경화와 정원에 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서울대학교 대학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 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 박사후 연수를 마쳤다.미술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사적 관점에서 정원과 공원,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 이와 관련된 강의와 집필,번역을 한다.그러는 동안 수많은 책을 사거나 빌렸고,그중 아주 일부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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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아날로그의 반격
디지털 라이프의 한계와 그 바깥에 실재하는 아날로그 세계의 견고한 미래를 구슬 꿰듯 엮어 설명하는 데이비드 색스(David Sax)의 책『 아날로그의 반격』(어크로스, 2017)은, 종이 잡지의 운명을 걱정하는 잡지 편집자들에게 작은 희망을 준다. “디지털 경험에는 잉크 냄새도, 바스락바스락 책장을 넘기는 소리도, 손가락에 느껴지는 종이의 촉감도 없다. 이런 것들은 기사를 소비하는 방법과 아무런 관계도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아이패드로 읽는다면 모든 기사가 똑같아 보이고 똑같게 느껴진다. 그러나 인쇄된 페이지에서 인쇄된 페이지로 넘어갈 때는 그런 정보의 과잉을 느끼지 못한다”(215쪽). 아주 최근까지만 해도 잡지는 이제 온라인으로만 존재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잡지나 인쇄물처럼 디지털화가 가능한 사물들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듯했다. 그러나 색스가 촘촘히 관찰하고 있듯이, 새로운 옷을 입은 아날로그가 디지털 시대의 일상에 반격을 가하고 있는 현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레코드판과 필름 카메라가 다시 유행하고 투박한 몰스킨 노트가 히트 상품으로 부상했다. 놀랍게도 새로 창간해 성공한 종이 잡지들도 적지 않다.
지난 2월 6일, 리뉴얼 3기 신임 편집위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환경과조경』의 새 ‘절친’이 된 김충호 교수(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박승진 소장(디자인 스튜디오 loci), 박희성 교수(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 오현주 소장(안마당더랩), 최영준 소장(Lab D+H), 최혜영 교수(성균관대 건설환경공학부)는 『환경과조경』이 전문지로서 지향해야 할 비전과 아날로그 종이 잡지로서 갖춰야 할 매력에 대해 열띤 토론을 펼쳤다.
『환경과조경』을 비롯한 거의 모든 건축, 조경, 디자인 잡지가 겪고 있는 위기의 원인은 똑같다. 더 이상 잡지를 사지 않는다는 것. 정기구독자가 줄지 않으면 다행이다. 랜드진(Landzine)같은 디지털 잡지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 웬만한 근작들의 도면과 사진을 거의 실시간으로, 게다가 ‘공짜로’ 볼 수 있는 시대. 공들여 편집한 온라인 잡지 형식이 아니더라도 핀터레스트(Pinterest)처럼 이용자가 스크랩하고 싶은 이미지를 포스팅하고 다른 이용자와 공유하는 소셜 미디어들이 디자인 잡지의 역할을 대신한다. 디자이너가 자신의 최근 작품을 가장 쉽게 전파하려면 적절한 해시태그를 달아 인스타그램(Instagram)에 올리면 그만이다. 『환경과조경』은 과연 얼마나 더 지속될 수 있을까.
전문지로서의 지향점에 대해서는 편집위원들의 의견이 조경 경계의 확장과 해체 대對 조경 영역의 심화와 내실화로 갈렸지만, 종이 잡지로서의 매력에 대한 견해는 대체로 일치했다.『 환경과조경』의 경쟁 상대는 랜드진, 핀터레스트, 인스타그램이 아니라는 것. 데이비드 색스가 말하듯, 이미 영구적인 현실이 된 것 같던 디지털 라이프가 아날로그의 반격에 의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비용이 큰 아날로그에 다시금 관심과 투자가 집중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과거에 대한 향수 때문이라는 답은 오판일 가능성이 크다. 디지털 네이티브들에게 모니터 속의 디지털 잡지는 도달해야 할 목표도, 신기한 물건도 아닌, 일상의 기본값에 불과하다『. 환경과조경』이 포착해야 할 지점은 아날로그가 주는 ‘진짜’의 욕망과 즐거움이라는 게 편집회의의 잠정적인 결론이었다. 더불어 편집위원들은 머지않은 미래, 2022년 7월이면 창간 40주년을 맞는 『환경과조경』이 하나의 조경 잡지를 넘어 한국 조경의 어제를 저장하고 오늘을 기록하는 생생한 아카이브archive임을 일깨워주었다. 아카이브로서『 환경과조경』의 역할은 발굴과 저장, 기록과 해석을 가로지르며 당대의 조경가와 작품에 조경사적 위치를 부여해주는 일일 것이다. 마침 이번 달의 특집 지면은 “공원 아카이브, 기억과 기록 사이”이다. 서울의 공원 아카이브를 구축해온 자발적 연구 집단 ‘도시경관연구회 보라BoLA’의 글 일곱 편과 유청오 작가의 사진으로 꾸린 이번 기획이 조경 아카이브의 비전과 역할, 그 동향과 향방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번 달에는 알릴 소식이 유달리 많다. 아쉽게도, 2015년 3월부터 무려 5년간 이어온 주신하 교수의 인기 연재 ‘이미지 스케이프’가 이번 호 60회를 마지막으로 마무리된다. 눈 밝은 독자들은 짐작하셨겠지만, 그간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표지에 그의 드론 사진을 담았다. 조경가 김창한의 ‘도면으로 말하기, 디테일로 짓기’도 3회 연재를 마친다. 도시공간 연구자 서준원의 꼭지 ‘공간잇기’가 이달부터 시작된다. 사라져가는 공간과 삶의 흔적을 재발견하고 기록하는 과정을 펼쳐낼 새 지면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마지막으로, 곽예지나 기자가 『환경과조경』 편집부의 내일을 이끌 새 식구로 합류했다는 소식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