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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스케이프] 모자이크 스케이프
    이번 사진은 어떻게 할까? 늘 원고를 쓸 때마다 하는 고민이지만, 이번 사진은 좀 더 특별한 느낌이 드네요. ‘이미지 스케이프’는 2015년 3월 ‘이미지로 만나는 조경’이라는 이름으로 『에코스케이프Ecoscape』에서 처음 시작했습니다. 습관처럼 SNS에 사진과 글을 올리던 제 모습을 본 남기준 편집장이 연재를 제안했는데, 사진 한 장과 관련된 짧은 글을 쓰면 된다는 이야기를 별 고민 없이 덜컥 수락한 게 지금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연재하는 게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채 몇 달이 안 걸리더군요. 시작할 때에는 한 3년쯤 지나면 사진과 글이 어느 정도 쌓일 테니 그걸로 개인적인 기념 책자라도 만들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당연히 연재도 그때쯤 마무리할 생각이었고요. 그런데 습관이란 게 역시 무섭습니다. 3년이 지나고도 계속 다음 달에는 무슨 사진으로 글을 쓰지 하는 고민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흘러 이번 글이 5년을 꽉 채운 60번째입니다. 뭔가 완결된 느낌을 주는 숫자 60. 그래서 이번에는 그동안 ‘이미지 스케이프’에 소개했던 사진들을 모아 보고 싶었습니다. 그럴듯한 모자이크가 될 것 같았거든요. 이미지 모자이크 기법을 활용해서 작은 이미지들을 모아 큰 이미지를 만들면 좀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연재된 사진만으로는 큰 이미지를 만들기에 부족해서, 그동안 찍었던 사진들을 좀 더 추가했습니다. 잘 안 보일 수도 있는데, 실눈(?)을 뜨고 좀 뒤로 물러서서 보면 철원역에서 금강산으로 향하는 철도를 찍는 제 모습이 살짝 보일 겁니다. 아쉬운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네요. 저는 이번 사진과 글로 연재를 마무리합니다. 그동안 사진과 글을 통해 독자 여러분과 소통할 수 있어서 무척 즐거웠습니다. 막상 연재를 마치려고 하니 섭섭하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하네요. ‘이미지 스케이프’를 통해 잠시나마 휴식과 위안을 가진 적이 있다면 그걸로 충분히 만족합니다. 그동안 부족한 사진과 글에 관심 가져 주신 독자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같은 학과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가원조경, 도시건축 소도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실무를 담당했고,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경 계획과 경관 계획에 학문적 관심을 두고 있다.
  • [도면으로 말하기, 디테일로 짓기] 파이프라인
    투박하고 빈티지한 분위기의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유행하며, 카페와 요식업계 실내 디자인의 트렌드로 떠올랐다. 보기 좋지 않다는 이유로 숨겨졌던 설비들이 외부로 노출되면서 디자인 요소로의 활용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중 하나로 다양한 시설의 뼈대를 이루지만 마감에 가려져 드러나지 않았던 철재 파이프를 활용한 시설을 소개한다. 서울시 동작구 대방동에 위치한 제비어린이공원의 파이프 조형물이다. 조형물은 여섯 개 구간으로 구분되며, 각 구간은 위치에 따라 다양한 기능을 담는다. 아치구간은 공원 후면 진입부에 자리하는데, 철망설치구간의 좌측과 더불어 동선을 가로지르는 입구 역할을 한다. 파이프가 땅 밑으로 연결된 듯한 느낌이 들도록 구조물 끝점을 나란히 배치했다. 아치구간과 게이트구간은 안전사고를 고려해 어린이가 쉽게 매달릴 수 없는 높이와 두께로 설계했다. 철망설치구간은 녹지 안에 위치하는데, 반투과식 철망을 파이프 사이사이에 설치해 뒤편의 놀이터와 시각적·심리적 분리를 꾀했다. 파이프와 나란히 놓은 안개분수는 관수에 활용될 뿐 아니라 폭염 시 놀이터 주변의 온도를 낮춘다.소리설치구간은 놀이 시설로 진입하는 동선 중 가장 넓은 곳에 있다. 바람이 불면 스테인리스 각관에 스테인리스 파이프가 부딪쳐 소리가 나는데, 각기 다른 길이의 파이프가 다양한 높낮이의 음을 낸다. 벤치구간에는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세 겹의 파이프를 나란히 배치했다. 한여름 열에 의한 화상을 입지 않도록 파이프를 목재로 감싸 디자인의 연속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휴게 시설로 충분히 기능하게 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83호(2020년 3월호)수록본 일부 김창한은 서울시립대학교를 졸업했다. 기술사사무소 렛(LET)을거쳐 조경그룹 이작에서 실시설계 내역실을 이끌고 있다. 작은 교량하부 공간부터 도시 기반 시설까지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현재는 실시설계 디테일 제작과 내역 실무에 집중하고 있다. 주요작업으로는 신한은행 진천연수원, 제비어울림공원, 충북혁신도시,의정부고산지구, 진주 영천강 천변 특화설계 등이 있다.
  • [비트로 상상하기, 픽셀로 그리기] 초연결 사회
    초연결 사회의 도래 2015년, 아름답지만은 않았던 뉴욕 생활을 마천루 위에 남기고 조금은 우울한 마음으로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이듬해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87킬로그램에 육박하는 인생 최고 몸무게를 빚어내고야 말았다. 키 175센티미터 성인 남자의 표준 몸무게가 67킬로그램이라고 하니 대략 20킬로그램이나 초과해버린 셈이다. 아마도 마저 청산되지 않은 유학 생활의 감정의 잔재와 용산공원 진행자로서 겪는 상투적 무력감들 그리고 한국 음식에 대한 오랜 갈증이 뒤섞여 폭식과 과도기적 알코올 중독으로 폭발했던 것 같다. 2018년, 무거운 생활을 청산하고자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예상처럼 세 달도 못가 그만뒀다면 여전히 과체중인 미래 생명체로 핫도그를 손에 쥐고 강남대로를 활보하고 있겠지만, 유튜브의 발달과 자기 성장에 대한 내 특유의 ‘덕력’이 결합되면서 20킬로그램을 모두 덜어내고 주 4~5회 운동 습관을 2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이참에 운동 생활의 비술을 한껏 적어보겠다. 나의 매일 운동 네트워크는 다음과 같다. 유튜브(운동 학습 미디어)-짐gym(트레이닝 장소)-핏빗fitbit(운동량 기록 스마트워치)-짐데이gymday(운동의 반복 횟수와 무게를 기록하는 앱)-팻시크릿fatsecret(먹는 음식의 칼로리와 영양소를 기록하는 앱)-인바디 체중계(체중 및 체성분 분석)-서적(운동과 식이 요법에 관한 전문 서적들). 이 장황한 과정을 컴퓨테이셔널 디자인의 콘셉트에 맞춰 다시 각색해보면 아마 다음과 같을 거다. 유튜브 (온라인 교육)-짐(오프라인 플랫폼)-핏빗(사물인터넷 웨어러블 디바이스IOT Wearable Device)-짐데이, 팻시크릿(빅데이터 애플리케이션)-인바디 체중계(사물인터넷 스마트 디바이스)-서적(오프라인 교육). 이렇게 나는 꽤나 건전한 하루하루를 남몰래 보내고 있다. 하지만 모든 과정이 스마트 기기와 클라우드를 통해 가볍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는 않는다. 자, ‘초연결 사회’가 바로 눈앞에 도래했다. 초연결 네트워크의 사회(2차 정보 혁명) 그림 1은 삼정KPMG 경제연구원이 사회 패러다임 변화의 요점을 표로 정리한 자료다. 무슨 또 새로운 정보화 사회냐고, 휴대폰 영업소에서 가입을 재촉하는 5G가 귀찮기만 할 수도 있지만, 5G는 단지 비싸기만 한 요금제가 아니다. 4G보다 최대 1,000배 빠른 통신망이며 모바일 사회에서 초연결 사회로 넘어가는 가장 기본적인 시스템이다. 여러 기업이 2020년부터 본격적인 통신망의 세대교체를 계획하고 있으며, 5G 인프라가 안정되는 순간 상호 연결 교육connected learning, 원격 의료 서비스, 지능형 교통 시스템, 사물인터넷IoT(각종 사물에 센서와 통신 기능을 내장하여 인터넷에 연결하는 기술) 기반의 생활 등 그야말로 새로운 속도의 2차 정보 혁명 사회가 시작될 것이다. ...(중략)... *환경과조경383호(2020년 3월호)수록본 일부 나성진은 서울대학교와 하버드GSD에서 조경을 전공했다.한국의 디자인 엘,뉴욕의 발모리 어소시에이츠(Balmori Associates)와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CFO)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고, West 8의 로테르담과 서울 지사를 오가며 용산공원 기본설계를 수행했다.한국,미국,유럽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귀국 후 파트너들과 함께 얼라이브어스(ALIVEUS)라는 대안적 그룹을 열었다.
  • [공간잇기] 일상 속 공간의 가치와 기록
    여러분의 ‘고향’은 어디인가요? 마을과 동네에 관심 있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도시재생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면 가장 먼저 이 질문을 던진다. “여러분이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곳이 어딘가요?”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선뜻 답을 하지 못한다. 사전적으로 고향은 태어나서 자란 곳 혹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이라고 통용된다. 그런데 사람들이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본인이 태어난 지명을 이야기하면 간단한 것 아닌가. 나는 다시 질문한다. 내가 태어난 곳이 고향인가요? 아니면 학창 시절을 보내거나 결혼한 곳? 내 아이를 낳은 곳? 아니면 지금 사는 곳? 그것도 아니면 지금 나의 직장이 있는 곳인가요? 질문 공세를 마구 이어가면 사람들은 더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입가에 아리송한 미소를 머금는다. 무언가 말하고 싶어 입을 꿈틀거리는 사람도 있지만, 선뜻 한 번에 입을 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서대문이요. 제가 1970년대에 서울에 올라온 뒤부터 지금까지 자리잡고 자식 키우고 산 곳이에요.” “계동이 제 고향 같죠. 스무 살에 시골에서 시집와서 얼마 전까지 시어머니 모시고 자식 뒷바라지하며 남편과 참 악착같이 살아 낸 곳이에요.” “용산이요. 집은 경제적 상황 때문에 참 많이 옮겼는데, 제 가게는 30년 동안 죽 용산에 있어요. 예전엔 일 년 중 명절 당일 하루씩 딱 이틀만 놀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나갔으니까요.” “반포동 아파트요. 1980년대 후반에 거기서 태어나 지금까지 한 번도 다른 곳에 살아 본 적이 없어요.” 어떤 동네, 어떤 세대, 어떤 경제적·사회적 배경을 가진 사람인가에 따라 모두 다른 대답을 하기 시작한다. 장소도 이유도 제각각이다. 20세기 독일의 철학자 오토프리드리히 볼노(Otto Friedrich Bollnow)는 “인간과 공간의 관계는 태생적으로 상호 의존적이며 인간의 삶은 근원적으로 인간과 공간의 관계 속에 존재하며 떨어질 수 없는 관계”라고 정의했다.1인간은 태어나서 숨 쉬는 순간부터 삶을 마감할 때까지 모든 생애 전반을 공간들 속에서 관계 맺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비슷한 시기 프랑스의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는 “집은 우리의 첫 번째 우주다. 집은 인간이 존재하는 최초의 세계다”라고 말했다.2집은 사람들에게 고향으로서의 의미가 있고, 낯선 외부로부터의 안도감과 평화를 주는 곳이라는 의미다. 사람들은 본인이 태어난 곳을 고향이라 생각하기도 하지만, 태어난 곳이 아니더라도 정서적 애착 관계에 있는 특정한 장소를 고향으로 부르기도 한다. 볼노는 인간은 태곳적 내밀한 행복이 있는 곳이자 모든 생명의 근원인 ‘고향’을 찾아 회귀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고도 했다. 자신이 태어난 곳의 외형이 어떻게 변하건 상관없이 감정적 교류를 한 공간(집 혹은 마을)은 개인 혹은 한 가족의 소중한 추억이 있는 고향이 될수 있는 것이다. 파란 대문 집의 기억 “하얗게 부서지는 햇살 아래 각양각색의 대문들이 길고 긴 골목 양쪽으로 쭉 늘어서 있다. 나의 눈높이는 대문 높이의 중간 즈음으로 맞춰져 있고, 쭉 뻗은 골목 끝자락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간다. 골목의 끝 왼쪽의 파란 대문 집 앞에 다다르자 익숙한 듯 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선다. 밝은 햇살에 눈이 부시다. 파란 문 안쪽 정면엔 넓디넓은 초록색 잔디 마당이 펼쳐져 있고, 오른쪽엔 위풍당당한 이층 저택이 있다. 쭉 뻗은 잔디 마당 한편엔 백 년은 된 듯 보이는 아름드리나무 한 그루가 햇살 아래 당당한 위용을 뽐내고 있다. 잔디 마당에서 놀던 사람들이 밝은 표정으로 내게 달려온다. 마당과 저택 사이에서 내가 올라타고도 남을 것 같은 큰 개가 나를 향해 마구 짖는다. ‘플란다스의 개’만큼이나 크다. 저택 거실에 엎드려 바라보는 마당의 풍경은 푸르고 또 생기롭다.” 성장하면서 이따금 머릿속에 떠오르던 어떤 장면에 대한 묘사다. 꿈인지 실제인지 알 수는 없지만, 확실한 건 골목과 마당과 집의 순차적·장소적 연결성과 그 형태가 선명하다는 것, 마당의 따스한 햇볕과 온기, 파란 대문과 잔디 마당의 색감이 강렬했다는 것이다. 이 기억이 무엇에 근거했는지 알 길이 없었지만 이 장면이 떠오를 때면 마냥 가슴이 따뜻해져 슬며시 미소를 짓곤 했다. 성장한 후 가족들과 함께 어릴 적 살던 집에 관해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내가 태어나 돌이 되기 전까지 10개월 정도밖에 살지 않았다는 서울시 광진구 구의동의 ‘파란 대문 집’은 내가 ‘태어난 고향’이다. 지금은 다세대 빌라가 지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그곳을 언니들은 생생하게 기억했다. 언니들은 신나서 각자 마당과 골목에서 뛰어놀던 기억을 꺼내기 시작했다. 나도 이따금씩 떠올렸던 그 장면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골목의 모습, 파란 대문을 열면 나타나는 잔디 마당과 나무, 오른쪽의 대저택…. 이 같은 기억이 구의동 집에 대한 묘사라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부모님과 언니들은 강남의 아파트로 이사 가서 돌잔치를 한 내가 그 집을 기억해 낼 리 없다며 무시했다. 내 기억이 맞는 것인지 확실한 증거가 없었다. 언니들 어렸을 때 사진을 보고 내 기억으로 착각한 것이 아닐까. 나조차도 내 기억일 리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물었다. “그런데 그때 거기 ‘플란다스의 개’만큼 엄청나게 큰 개가 있지 않았어요? 그 개가 정말 무서웠던 감정이 떠오르는데….” 어머니가 깜짝 놀라며 말씀하셨다. “엄청 큰 개? 설마 쫑이 말하는 거니? 걔는 (팔뚝의 반을 가리키며) 요만한 새끼 똥개였단다.” 우리는 모두 너무 놀라 몇 초 동안 서로 바라보기만 하다 박장대소할 수밖에 없었다. ...(중략)... **각주 정리 1.오토 프리드리히 볼노, 이기숙 역, 『인간과 공간』, 에코리브르,2011, pp.23, 172~173. 2.가스통 바슐라르, 곽광수 역, 『공간의 시학』, 동문선, 2003, p.77. *환경과조경382호(2020년2월호)수록본 일부 서준원은 열다섯 살부터 대학 졸업 후까지 뉴욕에서 약 10년간 생활했다. 파슨스 디자인 스쿨(Parsons School of Design)인테리어디자인학과에서 다양한 생활 공간에 대해 공부했고, 한국인의 주거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다. SOM 뉴욕 지사, HLW 한국 지사, GS건설, 한옥문화원,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등에서 실내외 공간을 아우르는 디자이너이자 공간 연구자로 활동했다. 한국인의 참다운 주거 환경을 위한 디자인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품고, 다양성이 공존하는 도시공간 연구를 위해 곳곳을 누비며 ‘공간 속 시간의 켜’를 발굴하는 작업을 긴 호흡으로 해오고 있다.
  • [북 스케이프] 르 노트르 전기, 에리크 오르세나의 『행복한 사람 앙드레 르 노트르의 초상』
    몇 년 전 개봉한 앙드레 르 노트르Andre Le Notre가 중심 인물로 등장하는 영화를 보고 크게 실망한 적이 있다. ‘블루밍 러브(Blooming Love)’(원제 A Little Chaos, 2014)라는 제목부터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을 뿐더러, 허구의 인물인 여성 조원가와의 개연성 없는 연애 플롯plot을 전개하기 위해 역사적 사건의 내용과 순서를 뒤섞었기 때문이다.1 많은 이들이 서양 정원의 양식이나 역사적 흐름은 몰라도 베르사유 궁의 정원과 루이 14세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다. 프랑스 형식주의 정원 양식의 백미, 절대 왕정의 상징, 강력한 축선을 바탕으로 한 공간의 전개, 태양왕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도상 등이 베르사유 정원을 수식하는 말로 널리 쓰인다. 르 노트르는 프랑스 형식주의 정원, 혹은 절대 왕정을 제유하는 베르사유 정원의 조원가로 명성이 높고 연구도 활발하지만, 그의 생애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말년에 자신의 정원 조성 비법을 모은 책을 낸 다른 조원가들과 달리 르 노트르는 저서를 남기지 않았다. 책은 커녕 그가 작성한 도면이나 문서, 심지어는 개인적 기록도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에리크 오르세나(Erik Orsenna)2가 쓴 전기 『행복한 사람 앙드레 르 노트르의 초상(Portrait d’un homme heureux Andre Le Notre)』3은 흥미롭다. 그는 단편적 기록으로만 남아 있는 르 노트르의 생애를 방대한 문화사적 지식을 바탕으로 연결하고 그 사이를 상상력으로 채워 넣었다. “그대는 행복한 사람이오, 르 노트르”라는 루이 14세의 말에서 따온 듯한 제목의 이 책은 르 노트르가 조성한 정원을 분석하는 대신, 모든 것을 다 가진 절대 군주가 인정할 정도로 행복한 이의 면목을 초상화 그리듯 살핀다. ...(중략)... 각주 1. 가령 영화에서 여주인공 사빈 드 바라(Sabine de Barra)가 조성한 베르사유의 무도회장 총림(Bosquet de la Salle du Bal)은 1680년에서 1683년 사이에 조성되었다. 영화와는 달리 당시 르 노트르는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황주영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불문학과 영문학을 공부하고,같은 대학 미술사학과에서 풍경화와 정원에 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서울대학교 대학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 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 박사후 연수를 마쳤다.미술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사적 관점에서 정원과 공원,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 이와 관련된 강의와 집필,번역을 한다.그러는 동안 수많은 책을 사거나 빌렸고,그중 아주 일부를 읽었다.
  • [에디토리얼] 공원, 도시의 사회적 접착제
    지구 곳곳에 점점이 퍼져 있는 고밀 복합체 도시에는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거주하고 있지만, 도시는 여전히 가난과 불결과 위험의 대명사이자 고립과 불평등의 온실이며 반反자연의 상징이다.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경제, 편리한 정보 기술, 풍성한 문화를 누리게 된 도시들도 갖가지 위기 담론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기후 변화와 환경 위기, 인구 고령화와 1인 가구 급증, 빈부 격차와 양극화, 경기 침체와 도시 쇠퇴가 뒤엉킨 난맥의 도시, 더 이상 계획가의 지혜와 엔지니어의 기술만으로는 해법을 찾을 수 없다. 20세기 후반을 기점으로 도시의 공간과 장소가 사회과학계 전반의 연구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생산과 소비, 노동과 문화를 비롯한 모든 인간 행동과 그것이 낳는 정치·사회적 문제는 도시 공간에서 구성된다는 점이 새롭게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지리학과 인류학은 물론 경제학과 사회학의 시선이 도시를 향하고 있다. 지난 연말에는 당대를 대표하는 도시사회학자 리처드 세넷(Richard Sennett)과 에릭 클라이넨버그(Eric Klinenberg)의 최근 저작이 잇따라 번역 출간되었다. 리처드 세넷의『 짓기와 거주하기』(김영사, 2019)는 삶을 향상시키는 기술의 가치를 다룬『 장인』과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적 협력 방식을 도모한『투게더』를 잇는, 그의 ‘호모 파베르’ 프로젝트 3부작의 완결판이다. 철학과 사회학뿐 아니라 건축, 조경, 도시계획, 문학, 예술을 겹겹이 넘나드는 이 책의 키워드를 단 하나로 간추리자면 아마도 ‘열린’일 것이다. 세넷이 지향하는 열린 도시는 구성원들이 서로를 배제하지 않고 포용하고 배려하며 정보의 소통과 교류가 이뤄지는 윤리적 도시다. 열린 도시는 이상한 것, 궁금한 것, 미지의 것을 수용하는 도시이며, 이런 도시에 참여해 여럿 중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면 “의미의 명료함보다는 의미의 풍부함”을 누릴 수 있다. 책 제목이 암시하듯, 세넷이 말하는 도시의 열린 관계는 짓기(building)와 거주하기(dwelling)가 균형을 찾을 때 가능하다. 짓기와 거주하기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프랑스어 빌(ville)과 시테(cite)를 빌려온다. 빌은 “물리적 장소로서의 도시”이고, 시테는 “지각, 행동, 신념으로 편집된 정신적 도시”다. 세넷은 도시를 짓는 방식(빌)과 도시에서 거주하는 방식(시테)이 불일치하는 것은 도시의 본질적 속성임을 파악하고, 빌과 시테의 접점을 찾아 나가는 전문가와 거주자의 노력들을 탐사한다. 세넷은 “우리를 바보로 만들” “닫힌 스마트 시티”의 전형으로 인천의 송도 신도시를 꼽는다. 그는 송도가 르코르뷔지에의 “부아쟁 계획에 무성한 나무와 부드러운 곡선을 추가한 버전”에 불과하며 스마트 시티를 내세워 데이터의 중앙 통제를 이룩한 “무미건조하고 무기력한 유령 도시”라고 비판한다. 세넷은 책 곳곳에서 공원이 빌과 시테를 연결하는 매개체일 수 있음을 내비친다. 이를테면 옴스테드의 센트럴 파크를 “사회적 포용이 물리적으로 설계될 수도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제안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빌에 치우친 옴스테드의 공원 비전에는 “시테를 이루는 특징적인 재료, 즉 군중에 대한 성찰”이 빠져 있다며 공원의 잠재력을 전폭 지지하지는 않는다. 세넷에 비해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도시의 고립과 불평등을 넘어서는 연결망으로서 공원의 가능성에 더 큰 기대를 건다. 전작『 폭염사회』를 통해 700명의 목숨을 앗아간 시카고 폭염 사태를 자연재해가 아닌 사회 비극의 측면에서 해석함으로써 찬사를 받은 클라이넨버그는, 신간『도시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웅진지식하우스, 2019)를 통해 도시에서의 고립과 양극화, 불평등과 분열은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를 어떻게 계획하느냐에 달린 문제라고 주장한다. 그가 전 세계의 다양한 도시와 지역 사회를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도시의 위기와 재난을 극복하는 힘은 공동의 장소, 즉 필수적인 관계와 소통이 형성되는 장소를 만드는 데 달려 있다. 찾아가고 머물며 집단과 계급의 경계를 넘어 관계를 맺고 공동체를 강화하는 공간, 즉 “사회적 인프라스트럭처”를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클라이넨버그가 말하는 사회적 인프라스트럭처는 “사람들이 교류하는 방식을 결정짓는 물리적 공간 및 조직”이며 “사회적 자본이 발달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하는 물리적 환경”이다. 도서관과 서점, 학교와 놀이터, 수영장과 체육 시설은 물론 공원이야말로 도시의 건전한 유대 관계를 형성하는 사회적 인프라다. 공원처럼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꾸준하게 모여 즐거운 활동을 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것, 그것이 곧 위기의 도시를 회복시켜 열린 도시의 연결 사회를 지향하는 희망의 전략이다. 허리케인 샌디가 남긴 재난을 교훈 삼아 회복탄력적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진행된 국제 설계공모전 ‘리빌드 바이 디자인(Rebuild By Design)’(본지 2014년 8월호 참조)의 책임 연구자이기도 했던 클라이넨버그는, 이 선제적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도시의 사례들을 통해 다목적 다기능의 공원이 도시의 “사회적 접착제(social glue)”로 작동할 수 있음을 밝힌다. 책의 원제 “모든 이들을 위한 궁전(Palaces for the People)”에 생략된 주어는 단연코 공원일 것이다.
  • [도면으로 말하기, 디테일로 짓기] 조형물
    미술 장식품과 같은 조형물은 조경 공간의 분위기를 크게 좌우하지만 선정 과정에 조경가의 의지를 반영하기는 어렵다. 미술 장식품이 시공 이후에나 공간 설계와 어울리는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설계하는 시점에는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광명역 자이타워에 설치한 조형물은 설계자의 의도에 부합하게 배치해 예측 불가능성을 최소화하고 조형물을 조경 설계의 중요 요소로 받아들인 결과물이다. 현상설계 당시에는 미술 장식품을 제안하는 정도의 계획안을 작성했지만, 미술 장식품의 선정 과정에 참여하기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조경 시설물을 직접 설계하기로 했다. 커다란 수전 형태의 장식품을 수경 시설과 결합한다는 기존의 의도를 충족하고자 했다. 먼저 현장에서 제작하기 어려운 장식적 요소를 최소화했다. 매끄러운 표면과 내구성을 고려해 배관용 스테인리스 강관에 분체 도장을 하는 안을 채택했으며, 강관의 곡선 가공 시 주름이 잡히는 현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소 곡면 가공 반경을 설정했다. 작은 수전을 크게 확대한 형태로 구현하는 조형물인 만큼 세밀한 부분까지 표현해야 했다. 핸들의 움푹 팬 부분을 묘사하기 위해 스테인리스 강관을 이중으로 설치하는 등 진짜로 작동하는 수전은 아니지만 실제와 근접한 형태로 제작했는데, 이를 위한 디테일을 도면에 충분히 표현해 현장에서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했다. 강관의 특성상 마감 면이 없는 양측 면에 스테인리스 강판을 추가해 마감 처리를 했다. 이를 도면에 지시선을 이용해 표현함으로써 현장에서 시공이 누락되지 않도록 했다. 이 조형물의 또 다른 용도는 물을 담는 수경 시설로, 그릇 형태의 수반이 필요했다. 수전과 어울리는 개수대 형태의 수반을 만들기로 했다. 조형물과의 일관성을 위해 스테인리스 강판으로 수반을 제작했다. 크게 제작된 수전과의 비례를 고려해 두께 1cm의 강판을 사용했으며, 두께감을 표현하기 위해 강판 측면부에 평면과는 다른 색상의 도장을 적용했다. 조형물과의 완결성을 위해 자칫 혐오감을 줄 수 있는 수경 설비들을 별도의 피트pit(일종의 구덩이) 공간으로 분리했다. 시설물의 파손 위험을 줄이고 녹지에 주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조형물 후면의 보도 포장 구간을 펌프 피트 위치로 활용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82호(2020년2월호)수록본 일부 김창한은 서울시립대학교를 졸업했다. 기술사사무소 렛(LET)을거쳐 조경그룹 이작에서 실시설계 내역실을 이끌고 있다. 작은 교량하부 공간부터 도시 기반 시설까지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현재는 실시설계 디테일 제작과 내역 실무에 집중하고 있다. 주요작업으로는 신한은행 진천연수원, 제비어울림공원, 충북혁신도시,의정부고산지구, 진주 영천강 천변 특화설계 등이 있다.
  • [비트로 상상하기, 픽셀로 그리기] 빅 브라더와 오토데스크의 미래
    조경의 자기 정의 그래서 도대체 2020년의 우리는 1858년의 센트럴 파크에서 얼마나 멀리 왔지? 조지 오웰이 1948년에 빅 브라더의 미래를 예측한 1984년도 벌써 한참이나 지났는데. 아니면 이제는 2009년의 하이라인이 픽처레스크를 우월하게 대체하는 새로운 도시 자연의 몽타주가 되었나? 아이러니하지만 대중 매체에서 자본주의의 위험을 가장 많이 경고했던 때는 그야말로 돈이 넘쳐흐르던 거품 경제 시대였다. 조경학과 학생들은 대학에 입학하고 나면 왠지 ‘조경은 나무 심는 것이 아니다’라는 자기 정의를 반복한다. 1990년대의 많은 작가 역시 조경의 인문학적 가치를 대변하기 위해 ‘조경은 도시의 무엇이다’라는 철학적 정의들을 반복하고 소모했다. 정말이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도시 자연 플랫폼의 구축 하물며 내게도 조경에 대한 자기 정의가 아무래도 필요할 것 같다. 컴퓨테이셔널 디자인을 다루는 연재 전반에 걸친 사상적 근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위키피디아에 디자인 프로그램들에 관한 서술을 나열하는 것 같은 지루한 연재가 될 것이다. 참으로 주관적이고 단순한 정의일 테지만 왠지 충분히 따분할 정도로 길게 서술해야만 할 것 같다. 정말 아이러니하다. 대개 7만 년 전의 인지혁명, 1만2천 년 전의 농업혁명, 그리고 5백 년 전의 과학 혁명을 인류의 근대 문명을 만든 3대 혁명이라고 말한다. 요약하면, 인류가 곡물을 먹는 정주 생활을 시작한 뒤 코페르니쿠스나 뉴턴 같은 사람들이 역사의 스타로 등장하고 나서야 비로소 도시다운 도시가 완성됐다는 의미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바로 그 때문에 도시 자연(urban landscape)이 다시 필요하게 됐다. 자연 선택과 먹이 사슬의 순리를 거부하고 많은 종에게 고통과 멸종을 선사한 뒤 인공적 도시를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을 너무나 배제했기 때문에. 하지만 아무리 도시가 더 나은 안락과 안전을 보장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오랜 유전자는 여전히 자연을 삶의 터전으로 원하고 있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인위적 자연(fake nature)을 다시 만들 수밖에 없는 거다. 하지만 어떻게? 처음에는 별 요량이 없으니 그저 있는 그대로를 모방한 픽처레스크 스타일로 만들었겠지. 그렇게 영웅 센트럴 파크가 탄생했다. 여기서 멈췄다면 조금 시시해도 모두에게 행복한 결론으로 끝났을지도 모르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돈이 될 만한 것들을 학문이나 예술로 포장해서 상품화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현대 조경은 바로 이 가짜 자연(fake nature)을 도시에 만들기 위한 ‘플랫폼’을 구축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주관적이지만 간단하지 않나?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landscape architecture)라는 복합 명사를 그럭저럭 잘 해석하고 있지 않나? 그리고 그 플랫폼을 다양한 방식으로 디자인하며 새로운 스타가 될 기회를 남몰래 노리고 있는 거다(그림 1, 2). 하이라인이 조경의 플랫폼을 흙에서 산업 유산으로 옮겨왔던 것처럼. 하버드 GSD가 학생들에게 해수면 상승을 막는 탄력적인 플랫폼(그림 3)을 만들라며 그래스호퍼(Grasshopper)로 괴롭히는 것처럼 말이지. 결론적으로 그래서 정말이지 무슨 말을 하고 싶냐면, 배치도(layout)가 아니라 건축(architecture)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거다. ...(중략)... *환경과조경382호(2020년2월호)수록본 일부 나성진은 서울대학교와 하버드 GSD에서 조경을 전공했다. 한국의 디자인 엘, 뉴욕의 발모리 어소시에이츠(Balmori Associates)와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CFO)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고, West 8의 로테르담과 서울 지사를 오가며 용산공원 기본설계를 수행했다. 한국, 미국, 유럽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귀국 후 파트너들과 함께 얼라이브어스(ALIVEUS)라는 대안적 그룹을 열었다.
  • [이미지 스케이프] 빛 자국
    299,792,458m/sec(=299,792.458km/sec)어떻게 측정했는지는 잘 이해되지 않지만,저 복잡해 보이는 숫자는 물리학자들이 말하는 빛의 속도입니다.과학자들이 말하는 숫자는 너무 크거나 반대로 너무 작아서 실감이 나지 않을 때가 많지요.지구의 적도 둘레가 약4만km라고 하니까 저 속도면1초 동안에 빛이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돌 수 있는 셈입니다.이것도 실감이 안 나죠?서울부터 부산까지 직선거리가 약325km이니까1초에460번쯤 왕복할 수 있는 속도입니다.이렇게 해도 실감이 나지 않긴 마찬가지군요.그래도 사진에서 보이는 쭉 뻗은 붉은 빛은 정말 서울과 부산을1초에 한460번쯤 왔다갔다 할 기세죠? 철원군 동송읍 양지리. 군사분계선과 불과 4~5km 남짓, 그리고 DMZ와는 불과 몇백 미터 떨어진 접경 지역의 밤은 도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둡습니다. 이번 사진은 이런 짙게 드리운 어둠을 뚫고 지나가는 자동차 후미등의 궤적입니다. ‘물경’ 2초 동안 열린 셔터 막 사이로 들어온 빛을 한 화면에 담은 결과지요. 사진은 움직이는 대상을 한 장면으로 포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셔터 막이 열리는 순간 들어온 빛을 화면으로 기록하니까요. ...(중략)... *환경과조경382호(2020년2월호)수록본 일부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같은 학과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토문엔지니어링,가원조경,도시건축 소도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실무를 담당했고,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조경 계획과 경관 계획에 학문적 관심을 두고 있다.
  • [북 스케이프] 교과서의 교과서, 마리 루이제 고트하인의 『정원 예술사』
    방학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다음 학기 서양조경사 강의계획서를 올리라는 연락이 왔다. 작년 파일을 열어 날짜를 수정하고, 교재와 참고 문헌에 업데이트할 사항을 확인한다. 매번 하는 일이지만 주 교재를 고르는 일이 항상 고민이다. ‘교과서’ 한 권으로 게으른 수업을 하면 편하련만, 성에 차는 한국어 책이 없기 때문이다.1 영문 교재를 쓰자니 학생들 반응이 신경 쓰인다. 강의 평가 점수에 다음 학기 강의 개설 여부가 달린 시간 강사가 택할 수 있는 길은 아니다. 가뜩이나 학습량 많다는 원망을 듣는 마당에. 영미권에서 출판되고 주요 도서관에 소장된 책들을 출판 연도순으로 참고 문헌 목록에 넣는다. 제프리 젤리코(Geoffrey Jellicoe)와 수잔 젤리코(Susan Jellicoe)의 『경관 변천사(The Landscape of Man)』(1964)2와 노먼 뉴턴(Norman Newton)의 『디자인 온 더 랜드(Design on the Land)』(1971)가 상단에 있다. 이 두 책 사이에 이안 맥하그(Ian McHarg)의 『디자인 위드 네이처(Design with Nature)』(1969)가 있다는 게 의미심장하다. 이어 몇십 년의 공백기가 있고 1990년 즈음부터 조경사, 엄밀하게는 정원의 역사를 다룬 책들이 연이어 나온다. 1980년대 말의 이른바 ‘정원의 부활’을 체감하는 순간이다. 조경 이론서의 계보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체계적인 논의와 방법론을 기준으로 보면 정원 이론서는 17세기~18세기 초 프랑스에서 등장했다. 이어 정원의 역사를 비중 있게 다루거나 정원의 역사만을 다룬 이론서가 19세기 말~20세기 초 서유럽에서 나왔고, 오늘날 대부분의 서양조경사 책의 구성과 내용은 이를 바탕으로 한다. ...(중략)... *환경과조경382호(2020년2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한국어로 된 대표적인 서양조경사 교재로는 다음이 있다. 정영선, 『서양조경사』, 누리에,1979(절판); 한국조경학회, 『서양조경사』, 문운당, 2005. 40년이 넘는 시간차에도 불구하고, 두책의 구성과 (1950년대까지 다룬) 시간적 범위는 유사하다. 후자의 경우 여러 번 개정했음에도20세기 후반 조경의 다양한 양상 및 동시대 현상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고, 복수의 저자가 다루는내용의 양과 깊이가 천차만별이라는 점, 외래어 표기 오류가 다수 있다는 게 아쉽다. 2. 번역서로는 나상기의 번역본(기문당, 1982)과 누리에 편집부의 번역본(누리에, 1996)이 있으나모두 절판됐다. 황주영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불문학과 영문학을 공부하고, 같은 대학 미술사학과에서 풍경화와 정원에 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대학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 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 박사후 연수를 마쳤다. 미술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사적 관점에서 정원과 공원, 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 이와 관련된 강의와 집필, 번역을 한다. 그러는 동안 수많은 책을 사거나 빌렸고, 그중 아주 일부를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