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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평: 광장의 정치화를 모독한다
    나는 광장에 서는 것을 기피한다. 체질적으로 광장이 내 몸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내게 광장은 여러모로 불편하다. 광장은 크고 작은 행위를 담아내는 무대이며 동시에 객석을 포함하는 극장이다. 그럴 때 광장은 존재 의의를 찾는다. 그 안에는 여러 유형의 인간이 존재하기 마련인데, 어울리기로는 광대가 대표적이다. 더욱이 크라운(crown)을 머리에 얹은 광대가 있으면 광장은 더욱 빛난다. 광대와 광장이라니. 나는 지금 언어의 유희로 광장을 모독하려 든다. 오늘날 우리에게 광장은 진정성의 기표다. 민주 공화국임을 상징하는 신성한 곳이다. 더 이상의 신성 모독은 죄악이다. 고로 광장을 거부하는 것은 죄악이다. 나는 죄인이다. 광장의 시작은 한 인간의 작은 신체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자신이 광장의 시작점이라는 생각을 갖지는 못한다. 하나둘 신체들이 접촉하면서 만들어지는 물리적 광장 이전의 세포cell들은 언젠간 완성형으로 만나게 될 광장이란 이름의 바디body가 얼마나 위대한 장소가 되어 자신들을 선동하는 장치가 될 것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런 사실을 일찌감치 간파한 정치가 대부분은 위대한 광장의 빛나는 광대임을 자임한다. 광장에서의 소통이 민주 사회의 역군임을 보증받는 일이기에 그곳에서는 정치적 노선의 다름을 불문하고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광대의 옷을 몸에 걸친다. 그리하여 우리가 아는 광장은 로마 시대 권력자들이 발가벗고 정치하던 대목욕탕과 같이 입바른 소리와 몸에 맞지 않는 위선의 행동으로 빨갛게 노랗게 파랗게 물들여졌다가 이내 썰물이 빠져나간 것처럼 텅빈다. 그래서 광장은 주조색이 없다. 그때그때 물들여지고 이내 지워짐을 반복한다. 광대가 아무리 많아도 광장을 지배하지 못하는 이유다. 광대의 진정성은 말하기를 멈추고 몸짓으로 말을 전한다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가 광장에서 만난 수없이 많은 인파의 손에 들린 촛불과 팻말과 태극기는 각자가 시위하는 이유를 담아냄으로써 광대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것이 구호에서 몸싸움으로 번지면서 어느덧 광장은 광대의 손을 떠나 전투사들의 격전이 벌어지는 투기장으로 변한다. 누구도 이러한 광장에서 진정성을 찾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기억하고 싶은 축제의 광장 이면에는 늘상 일그러진 풍경의 광장이 자리하고 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1호(2019년 3월호) 수록본 일부 전진삼은 종합 예술지 『공간』 편집장, 건축 정론지를 표방한 『건축인 포아(POAR)』 창간인 겸 초대 편집인 주간을 거쳐 현재 격월간 『와이드AR』의 발행인 겸 편집인이다. 건축 비평서 『건축의 발견』, 『건축의 불꽃』, 『조리개 속의 도시, 인천』, 『건축의 마사지』 등을 썼고, 구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를 반대하는 건축과 미술, 고고학 전문가들의 생각을 모은 『건축은 없다?』, 『건축인 30대의 꿈』, 『건축 사이로 넘나들다』 등 30여 책의 공저자로 함께했다.
  • 비평: 광무11년 7월 31일 한성, 모든 일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대체 광화문광장을 생각할 때 밀려오는 난감함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장소 부정합성에 따른 무기력증을 동반한 직업병에서 기인한 것인지, 소실된 장소가 주는 망각과 삶의 표피의 간극에서 발생한 상실감을 동반한 우울증인지 가늠할 수 없어 스스로에게 몇 가지 사소한 질문을 놓는다. 대한민국 헌법은 이렇게 시작한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헌법이 말로 규정한 대한민국이라는 실체에 대한 정의라면 멀리 청와대와 정부청사,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세종문화회관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작동케 하는 정부와 문화가 있는 공간적 실체다. 광화문광장은 그 중심에 있다. 그것이 설령 조선 시대 오백 년의 역사적 공간과 중첩을 이룬다 하더라도 그렇다. 그러나 지금의 광장 또 앞으로의 광장 어디에 임시 정부의 법통과 4·19의 기억이 있는가. 조선조 오백 년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의 역사로서 남아 있으면 아니 되는가. 이순신장군상이 가진 불순한 의도를 알면서 굳이 세종대왕을 앉히고, 월대를 넓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 그 모든 것이 정치적 이유 때문이라면 이해하겠다. 광장은 원래 정치적 공간이다. 그들의 정치야 여전히 밀실에서 이루어지지만 인민2의 정치는 광장에서 이루어진다. 촛불이 그랬고, 명박산성이 그랬고, 6·10이 그랬고, 4·19가 그랬다. 그러나 그러한 일들은 광장이 아니었을 때도 이루어졌다. 그러니까 민주주의가 광장에서만 가능하다는 논거는 성립할 수 없고, 민주주의는 어디서고, 어느 때고 작동 가능한 것이 되어야 한다. 다시 얘기하자. 광장은 정치적 공간이나 광장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굳이 광장을 만들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서 문제가 광장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묻게 된다. 광장 안의 문제라고 하면 광장의 형식과 기술적 해결이 문제가 될 것이고, 광장 밖의 문제라면 광장의 존재 이유와 인민의 합의가 아닐까. 광장 안의 문제는 경관이나 프로그램, 교통 같은 기술적 문제를 떠나서, 기본적으로 광장은 그릇과 같아야 한다. 거기에 정치가 담기든, 축구공이 담기든, 노란 종이배가 담기든, 성조기가 담기든, 광장은 그 모두를 담는다. 내용이 정치냐 문화냐의 차이가 있을 뿐 광장 자체가 어느 한 시대의 정치색을 가질 수 없다. 그것은 촛불도 마찬가지다. 내용물이 흘러 쏟아지지 않게 그릇을 만들면 될 일이지 그릇에 광어회를 그려 넣거나 감자탕을 그려 넣고 배불리 드시라고 얘기하는 경우는 없다. 그러니 광장은, 그 형태나 형식은 광장 밖의 문제를 공간으로 풀어 수용하나 광장 밖의 문제에 갇혀 넘어서지 못한다. ...(중략) 각주 정리 1. “하지만 1907년 고종이 강제퇴위 당한 직후 일본의 압력으로 설치된 성벽처리위원회에 의해 숭례문 좌우 성벽이 철거되면서 도성은….”, “내각령 제1호, <성벽처리위원회에 관한 안건> 제1조 성벽처리위원회는 내부, 탁지부, 군부 세 대신의 지휘 감독을 받아서 성벽을 헐어 철거하는 일과 그 밖에도 이와 관련한 일체 사업을 처리한다. …제5조 본 영은 반포일부터 시행한다. 광무11년 7월 30일 내각총리대신 훈2등 이완용”, 서울역사박물관 편, 『서울 한양도성』, 서울역사박물관, 2015, p.54 중. 2. 1919년 4월 11일 제정된 임시정부법령 제1호 ‘대한민국 임시헌장’에서 사용한 용어다. * 환경과조경 371호(2019년 3월호) 수록본 일부 이수학은 성균관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이원조경에서 4년 동안 일했다. 프랑스 라빌레뜨 건축학교와 고등사회과학대학원이 공동 개설한 ‘정원·경관·지역’ 데으아(D.E.A.) 학위를 받았고, 2003년부터 아뜰리에나무를 꾸리고 있다. www.ateliernamoo.xyz
  • 비평: 새광장의 주인, 동상의 주인
    최인훈이 소설 ‘광장’을 통해 말하듯 우리의 존재 양태는 밀실만으로, 또는 광장만으로 충족되지는 않는다. 물론 ‘광장’에서 밀실과 광장의 개념은 사회주의, 자유주의와 같은 이념 추구와도 관계가 있겠지만, 굳이 이념적 입장이 아니어도 밀실을 개인주의적 삶, 광장을 사회적 삶과 발언의 비유적 표현이라 볼 때 역시 그러하다. 실은 머리로는 광장을 추구하지만 몸으로는 여전히 밀실을 추구하는 사람, 건물로 둘러싸인 커다란 공터나 폭발적 에너지로 넘쳐나는 군중 사이에 있는 것에 왠지 모를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인 나는,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가 그리는 휴먼 스케일의 도시 내 커뮤니티를 추구하면 했지 그다지 광장을 즐기는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광장을 중히 여기고 그 존재 방식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밀실이든 광장이든 어떤 것이 필요할 때 그것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고, 어느 한쪽의 존재가 없다면 이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광화문광장의 조각상을 둘러싼 논쟁은 조각과 출신인 나에게 관심이 가는 논제일 수밖에 없었다. 광장을 광장이게 하는 요소는 단순하지만은 않다. 그저 물리적으로 너른 공간을 확보한다 해서 그것이 광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광장의 의미는 사람들이 그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완성된다. 광장은 실재적, 물리적, 일상적 공간이면서 상징적 공간이고, 비워진 공간이면서 동시에 활동으로 채워지는 공간, 그리고 이를 위한 적당한 밀도의 물리적 요소가 필요한 공간이다. 같은 광장이라도 어떻게 디자인하고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것은 아고라가 되기도, 또는 반대로 제의적 공간이나 전체주의적 권력의 전시장이 되기도 한다. 10년 전 광화문 세종로에 광장이라 불리는 어정쩡한 공간이 생겼을 때, 그것은 우리에게 다소 생소하기도 했을뿐더러 그 형태나 내부 밀도를 생성하는 요소들의 배치 역시 광장이라 하기엔 애매하기 짝이 없었다. 어쩌면 군부 정권의 직선적 힘과 미학을 전시했던 쭉 뻗은 대로와 동상이 있던 공간에 사멸한 광장을 되살린다는 상징적 의미에 주안점을 둔 시도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일이 지나면서 시민의 활동에 따라 아고라로서 광화문광장의 역할은 점점 더 커졌으며, 그만큼 공간에 대한 새로운 요구도 생겨났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1호(2019년 3월호) 수록본 일부 진나래는 조각과 사회학을 전공했으며, 사회와 예술, 도시, 인류학과 기술·문화 등에서 발생하는 타자성과 윤리의 문제에 흥미를 느낀다. 2012년 ‘일시합의기업 ETC(Enterprise of Temporary Consensus)’를 공동 설립하여 활동한 바 있다. 현재 학업과 작업을 병행하며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2017년 2월부터 12월까지 『환경과조경』에 “예술이 도시와 관계하는 열한 가지 방식”을 연재한 바 있다.
  • 비평: 광화문 광장에 대한 논의, 이제 시작이다
    당선작이 현재의 공간에서 많은 진전을 이룬 디자인인 것은 분명하다. “세계 최대의 중앙분리대”라고 조롱받던 공간이 광화문의 월대나 해태상 같은 요소를 재현하면서 광장의 역사성을 회복·강조하고, 차도 한가운데 위치했던 광장이 서쪽 보행 공간과 온전하게 합쳐지면서 시민들이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공간으로 변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남는 질문이 있다. 이 광장이 왜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느냐다. 그 질문에 대한 분명한 답이 있냐는 점에서 보면, 이번 설계안도 과거의 시도와 거의 다르지 않다. 즉 ‘수도 서울이 자랑할 수 있는 번듯한 광장을 가져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시민들이 왜 그 장소를 필요로 하느냐’는 근본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노력에 앞서버린 느낌이다. 횡단보도나 지하도를 통해서만 갈 수 있는 ‘접근성의 부족’은 광화문광장이 가진 중요한 문제지만,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현재 광화문광장은 그 존재 이유가 규정되지 않은 공간이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는 시민과 관광객이 광장을 이용하는 모습을 조금만 관찰해봐도 알 수 있다. 대개 횡단보도를 건너 광장에 도착한 후 분수대나 세종대왕상 앞에서, 혹은 경복궁 너머 북악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몇 장 찍은 후에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가장 전형적인 광장 이용 패턴이다. 그 밖에 노조나 관이 하는 성격이 짙은 행사에서 대형 스피커 탑과 무대, 간이 의자들을 광장에 늘어놓는 정도가 현재 광장의 용도다. 즉 대규모 집회가 아니면 일반 시민들은 광장에 머물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광화문 앞 세종로의 탄생, 서울 도심의 전통적 구조와 역할에서 찾을 수 있다. 서울 도심에서 사람의 흐름, 상업 공간의 배치는 종로, 청계천, 을지로 등에서 볼 수 있듯 동서의 축으로 이루어진다. 그에 비하면 남북으로 흐르는 도심 도로들은 빈약하고 보행량이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화문 앞 세종로 공간이 대형으로 조성된 이유는 그곳이 바로 왕이 행차하는 권력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즉 경복궁에서 출발하는 권력의 투사가 이루어지는 공간이지, 백성 혹은 시민이 이용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공간이다. 물론 지금 경복궁은 권력의 공간이 아닌 역사적 유물이 되었고, 청와대가 인근에 있다고 해도 광화문 앞 도로를 권력의 과시용으로 사용하는 시절은 지났다. 하지만 세종로는 여전히 정부청사와 미국대사관, 세종문화회관 등 힘 있는 건물들이 들어선 공간일 뿐 시민들이 즐겨 찾는 시설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시민들은 그 자리에 아름다운 광장이 하나 있다고 해서 찾아가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굳이 간다고 해도 그곳에 들렀다는 증명사진 한 장 찍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어 자리를 뜨게 되는 것이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1호(2019년 3월호) 수록본 일부 박상현은 사회학과 미술사를 전공하고,현재 미디어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메디아티(mediati)에서 콘텐츠랩장으로 일하고 있다.「서울신문」등의 매체에 미디어와 테크놀로지,미국 정치에 관한 글을 쓰며『영국에서 사흘 프랑스에서 나흘』,『아날로그의 반격』등을 번역했다.
  • [이미지 스케이프] 수평에 대하여
    풍경 사진을 찍을 때면 다른 대상보다 좀 더 신경 쓰는 것이 있습니다. 수평을 맞춰 구도를 잡는 일이지요. 예를 들면 바다, 호수, 길, 건물, 구조물 등으로 만들어지는 선을 정확하게 수평으로 맞춘다는 뜻입니다. 안정감 있는 사진을 얻기 위해서는 가급적 수평을 맞추는 것이 안전(?)합니다. 요즘 카메라에는 뷰파인더에 보조선이 보이거나 수평계가 내장된 경우가 있어서 촬영할 때 수평을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래도 막상 모니터로 확인해 보면 수평이 안 맞는 경우가 상당히 많죠. 후보정을 통해 수평을 맞출 수는 있지만, 꽤나 성가신 작업입니다. 그래서 찍을 때 최대한 수평을 맞추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건축 사진을 찍는 분들이 수직선에 강박을 갖는 것처럼 조경 전공자들은 수평선에 꽤 많은 신경을 쓰는 것 같습니다. “내가 찍은 사진 중에 수평 구도가 강조된 사진이 얼마나 될까”, “나중에 이런 사진들을 옆으로 쭉 늘여 붙여보면 재미있겠다.” 그래서 이번 호에는 수평선이 강조된 사진들을 모아 편집해 보았습니다. 이미 ‘이미지 스케이프’에 소개한사진 중에도 꽤 많더군요. ...(중략) * 환경과조경 371호(2019년 3월호) 수록본 일부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같은 학과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가원조경, 도시건축 소도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실무를 담당했고,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경 계획과 경관 계획에 학문적 관심을 두고 있다.
  • [당신의 사물들] 노트북과 데이터
    학부 졸업 직전, 데이터 관리에 대한 특강을 들었다. 강의의 핵심은 좋은 자료를 보유하고 있더라도 정리해두지 않으면 추후 활용할 확률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이후 나름 데이터 관리에 신경을 썼지만, 그것에 일정 시간을 투자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대학원 진학을 위해 노트북이 필요했고, 유럽 사람들은 모두 맥북을 쓴다는 뜬소문을 따라 충동적으로 맥북을 구입했다. 2D와 3D 소프트웨어를 함께 써야 하는 조경 설계의 특성상 맥북은 윈도즈 운영 체제 기반의 컴퓨터보다 불편한 점이 많았지만, 맥 운영 체제가 동기화 기능으로 기본 응용 프로그램을 활용해 데이터를 관리하기에 훨씬 쉽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화 ‘서치’(2017)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 남겨진 데이터를 통해 실종된 딸의 흔적을 추적하는 내용이다. 현대 사회에서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이야기를 신선한 구성으로 보여주었는데, 특히 맥 운영 체제에 익숙한 사람들은 영화의 화면 구성이 더욱 반가웠을 것이다. 영화를 보며 현대인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데이터를 웹에서 만들어 내고, 이렇게 생성된 정보는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끊임없이 인터넷과 동기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렇게 모인 데이터 그룹은 한 사람 또는 어떤 사물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1호(2019년 3월호) 수록본 일부 윤일빈은 서울시립대학교와 에식스 대학교(University of Essex)에서 조경을 공부했으며, 디자인 스튜디오 loci, 길레스피에스(Gillespies)에서 실무 경력을 쌓았다. 한국, 영국, 사우디아라비아, 두바이, 중국, 홍콩 등 다양한 나라의 프로젝트를 경험했으며, 2018년 11월부터 삼성물산 조경사업팀 디자인그룹에 근무 중이다.
  • [그리는, 조경] 측정하는 드로잉
    조경 드로잉은 언제부터 그려졌을까. 먼저 조경 드로잉의 범위를 정할 필요가 있다. 정원, 공원, 자연을 그린 모든 그림을 조경 드로잉이라고 한다면 화가가 그린 풍경화도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러한 이미지는 존재하는 경관을 모사한 그림일 뿐 조경 드로잉은 아니다. 조경 드로잉은 설계가가 경관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생산한 경관과 관련한 이미지를 말한다. 초기 아이디어 구상 과정에서 빠른 속도로 그리는 스케치, 대상지를 분석하면서 생산하는 다이어그램, 공모전 출품을 위해 만든 컴퓨터 이미지, 공사를 위한 시공 도면, 조성 후에 자신의 작품을 다시 그린 이미지 등 설계 과정에서 만들어진 모든 시각화 작업을 조경 드로잉으로 볼 수 있다. 그럼 언제부터 조경가가 설계 과정에서 이미지를 생산하기 시작했을까. 조경이라는 전문 분야가 만들어진 것이 19세기 중반 이후이므로, 그 이전의 정원이나 공원을 설계한 전문가를 엄격히 말해 조경가라 부를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지난 연재『( 환경과조경』 2019년 2월호, “나무를 그리는 방법, 드로잉의 혼성화”, pp.98~103 참조)에서 소개한 바 있는 이집트 정원 그림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가 조경이라고 부르는 작업의 역사는 인류 문명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다만 이집트 정원 그림은 설계가가 그린 것인지 그 여부를 알 수 없기에 조경 드로잉이라 할 수는 없다. 조경 연구자들은 조경 드로잉, 즉 조경가가 경관 설계 과정에서 그린 드로잉이 16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됐다고 추정한다. 이때의 드로잉은 당시 이탈리아 정원의 질서 정연함을 시각화하기 적합한 평면도 형식으로 그려졌다. 그것은 설계가의 머릿속에 디자인된 경관을 자로 측정해 표현한, 조경 드로잉의 두 가지 특성인 과학적 도구성과 예술적 상상성 중에서 전자의 특성이 강조된 시각화 방식이었다. 메디치 정원 드로잉 16세기 중엽에 조성된 이탈리아 메디치Medici 정원 중 하나인 빌라 디 카스텔로(Villa di Castello)의 정원 상세 평면도는 현존하는 최초의 정원 드로잉 중 하나로 여겨진다(그림 1). 이 드로잉은 정원을 설계한 니콜로 페리콜리(Niccolo Pericoli)(1500~1550), 트리볼로(Tribolo)라고도 불린 이탈리아 조각가이자 화가가 그렸다고 추정된다.1 설계가의 머릿속에 있는 정원을 그대로 평면도로 옮긴 듯한 이 드로잉에는 생울타리의 외곽선이 정교하게 직선으로 그려져 있다. 정원이 조성될 대상지는 평면에서 구획되고 그 내부에 식재가 가지런히 채워지게 된다. 빌라 카스텔로는 현재 남아 있는 이탈리아 정원 중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1404~1472)의 조형 질서를 가장 충실하게 구현한다. 그러한 조형 질서는 화가 주스토 우텐스(Giusto Utens)(?~1609)의 그림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그림 2). 남북 방향의 직선 축이 화폭 중앙을 지배하고 축을 따라 건축물과 정원이 좌우 대칭으로 펼쳐지며, 격자형 길의 군데군데 분수대, 퍼걸러, 조각상 등이 놓여 있다.2...(중략) * 환경과조경 371호(2019년 3월호) 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Raffaella Fabiani Giannetto, Medici Gardens: From Making to Design, Philadelphia: University of Pennsylvania Press, 2008, pp.257~258. 2. 빌라 카스텔로 정원 설계의 전반적 설명은 다음을 참조할 것. D. R. Edward Wright, “Some Medici Gardens of the Florentine Renaissance: An Essay in Post-Aesthetic Interpretation”, in The Italian Garden: Art, Design and Culture, John Dixon Hunt, ed.,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6, pp.34~59. 이명준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경 설계와 계획, 역사와 이론, 비평에 두루 관심을 가지고 있다. 박사 논문에서는 조경 드로잉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현대 조경 설계 실무와 교육에서 디지털 드로잉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했고, 현재는 조경 설계에서 산업 폐허의 활용 양상, 조경 아카이브 구축, 20세기 전후의 한국 조경사를 깊숙이 들여다보고 있다. ‘조경비평 봄’과 ‘조경연구회 보라(BoLA)’의 회원으로도 활동한다.
  • [도면으로 말하기, 디테일로 짓기] 컨벤셔널 콜라주
    알 수는 없지만 가정은 할 수 있다. 램 콜하스(Rem Koolhaas)는 디자인의 명료성을 잃지 않기 위해 다이어그램 단계에서 설계를 종료했다. 다이애나 발모리(Diana Balmori)는 회화적 설계에 우아함을 불어넣고자 자신이 19세기 화가가 되는 자기 최면을 걸었다. 디제이 섀도(DJ Shadow)는 턴테이블 플레이어만의 독창성을 만들기 위해 아날로그 악기를 완전히 배제하고 샘플링만으로 음악을 만들었다. 이런 자조적인 재해석의 사념들이 해 질 무렵의 그림자보다 길어지면, 작가는 창작을 위한 배경으로 스스로 제한된 설정을 구축한다고 결론 낼 수 있다. 정의할 수 없지만 가정은 할 수 있다. 1. 콘셉트, 2. 프로그램과 레이아웃, 3. 디자인, 4. 디테일의 단계가 지난 세기 동안 북미와 유럽의 건축계가 합의해 온 가장 효율적인 불패의 설계 프로세스라고 한다면, 이 같은 전형적 워크 프로세스는 비전형적 배경 설정과 대립한다. 음악이라면 싱커페이션(당김음)과 스케일(음계)의 관계에 해당된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 상충되는 두 방식을 자신만의 해석을 통해 적절히 조합하고 재구성하여 새로운 악보를 준비해야 한다. 새로운 세대를 위한 새로운 설계의 전주곡으로서. 유니버설 가든(Universal Garden)은 우주적 이미지 표현과 유니버설 디자인 시스템의 구축을 목표로 진행되는 프로젝트다. 우주의 이미지를 직설적으로 표현하지는 않되 보편적으로 감응이 가능한, 언어적으로 모순되어 보이지만 디자인적으로는 상응하는 복합적 이미지를 구축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콘셉트’ 단계를 핵심 프로세스인 동시에 제한 요소로 설정하고, 사이트의 최소한의 물리적 맥락만을 반영한 뒤 우주적 일러스트 아트워크를 그리는 일에만 집중했다. 그리고는 일러스트 단계에서 설계를 종료시켜버렸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1호(2019년 3월호) 수록본 일부 나성진은 서울대학교와 하버드 GSD에서 조경을 전공했다. 졸업 후 한국의 디자인엘, 뉴욕의 발모리어소시에이츠(Balmori Associates)와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CFO)에서 실무 경험을 쌓고, West 8 로테르담과 서울 지사를 오가며 용산공원 기본 설계를 수행했다. 한국, 미국, 유럽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귀국 후 파트너들과 함께 얼라이브어스(ALIVEUS)라는 대안적 그룹을 시작했다.
  • [공간의 탄생, 1968~2018] 한국 도시화의 일상적 현황, 밀도의 향연
    무엇이 우리를 도시로 이끄는가? 지난 연재에서는 한국 도시화 50년의 거시적 현황을 ‘쏠림 현상’으로 규정했으며, 이와 같은 현상의 원동력으로서 지난 50년 동안 끊임없이 지속된 정부 주도의 도시화와 대규모 물리적 개발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번 연재에서는 한국 도시화 50년의 일상적 현황을 살펴본다. 이를 위해, 내 삶의 그리고 우리 일상의 도시화 속으로 들어가 보고자 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1946년생 동갑내기지만, 예전부터 내 어린 눈으로 보아도 여러모로 다른 분들이었다. 어머니는 맏딸로서 학교 교사인 외할아버지의 임지를 따라 충남의 여러 지역에서 사셨는데, 대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전의 조폐공사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셨다. 반면 아버지는 농사일하시는 할아버지의 장자로서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줄곧 충남 홍성에서 지내고, 이후 대전에서 대학을 나오셨다. 그런 두 분이 1972년에 중매로 만나서 결혼을 하고, 곧이어 물리 교사였던 아버지의 첫 부임지 서산여고 근처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1974년에 할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되어 아버지는 홍성의 갈산중학교로 전근하게 되었고, 어머니는 이에 따라 아버지의 고향 집에서 시집살이를 시작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지금도 가끔 대전에서 직장을 다니며 고급 양장점에서 옷을 맞춰입던 본인이 8남매의 맏며느리가 되어 시골에서 생활할 때의 이야기를 하시곤 한다. 우리 가족 이외에도 집안에는 농사일하는 머슴이 두세 명 있었으며, 마을 전체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밤이 무척 어두웠고, 아픈 할아버지를 위해 무당이 굿을 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이모들은 언니의 갑작스러운 시골살이에 놀라서 아버지에게언니를 그만 고생시키라는 항의의 편지를 쓰기도 했다고 한다. 1977년에 할아버지는 결국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대전의 학교로 전근을 하게 되어 어머니는 시댁과 농촌이라는 공간적 질곡을 떠나 다시 도시로 돌아오게 되셨다. 이와 같은 가족 역사 때문인지 우리 누나는 서산에서, 형은 홍성에서, 나는 대전에서 태어났다. 나는 농촌에 대해 목가적이며 낭만적인 정서를 가지고 있는 편이다. 그리고 인류 역사상 농촌이 도시보다 오랜 시간 적응하며 진화되었기 때문에, 도시보다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공간이라는 막연한 생각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편견과는 달리 우리의 언어 속에서 농촌과 관련된 단어들은 순박함과 평화로움을 넘어서 세련되지 못하고 어리숙한 이미지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농촌은 도시에 비해 발전되지 못한 지역으로, 농촌 사람들은 촌놈, 촌뜨기, 시골뜨기 등으로 비하되기도 한다. 농촌에 대한 이러한 이미지는 사실 우리 언어에서만 보여지는 일은 아니다. 영어에서도 농촌과 농촌 사람에 어원을 두고 있는 boorish(거친), churlish(무례한), loutish(투박한) 등의 단어들은 긍정적이기보다는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를 전달한다. 그래서일까, 오늘날에는 강남의 값비싼 집에서나 살듯한 연예인들이 농촌에 가서 잠을 자고 생활을 하는 TV 예능 프로그램이 많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에게 농촌은 TV 예능의 인기 촬영 장소인 섬, 오지, 정글처럼 문명이 닿지 않는 외딴곳으로 여겨지는지도 모르겠다. 과연 무엇이 우리를 지금껏 도시로 이끌었을까? 이제 한국 도시화 50년의 일상적 현황을 ‘밀도의 향연’으로 규정하고, 이를 이끈 시대적 이념, 정치적 의제, 개인적 욕망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주거를 위한 기계? 정치를 위한 도구! 욕망의 매개물 도시의 본질에 대해서는 다양한 학문적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도시는 본질적으로 주변 배후지에 대한 공간적 중심지라는 특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도시는 정치 권력, 경제적 부, 사회적 영향력, 문화적 혜택 등이 집적되어 있는 공간적 중심지다. 따라서 개인이 도시로 이동한다는 것은 주변에서 중심으로 편입되는 것을 의미하고, 사회가 도시를 개선한다는 것은 기존의 중심지를 강화하는 것을 의미하며, 국가가 도시를 개발한다는 것은 새로운 중심지를 형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약하자면, 도시에 대한 어떤 공간적 행위도 주변과 중심의 관계에 영향을 주는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리적 공간 계획 분야에서 개별 건축을 넘어서 집합적 도시 문제와 이슈를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한 것은 산업 혁명 이후의 일이다. 도시의 주체가 권력자로부터 일반 시민으로, 도시의 주요한 건축물이 궁궐이나 관공서 등으로부터 일반인을 위한 주택으로까지 확대되기 시작한 것은 서구에서조차 20세기 이후에야 가능했다. 이와 같은 변화의 선봉에 스위스 태생의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1887~1965)가 있었다. 그는 근대 건축의 형태와 공간을 제시한 대표적 거장으로서 기술의 발전과 사회적 요구 및 시대의 미학에 부응하지 못하는 기존의 건축과 도시를 질타하며, 새로운 건축과 도시를 제안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1호(2019년 3월호) 수록본 일부 김충호는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도시설계 전공 교수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워싱턴 대학교 도시설계·계획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우설계와 해안건축에서 실무 건축가로 일했으며, 미국의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와 워싱턴 대학교, 중국의 쓰촨 대학교, 한국의 건축도시공간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분야의 교육과 연구를 했다. 인간, 사회, 자연에 대한 건축, 도시, 디자인의 새로운 해석과 현실적 대안을 꿈꾸고 있다.
  • [시네마 스케이프] 칠드런 오브 맨 정말 사과나무를 심을까?
    가슴에 품고 있는 몇 편의 영화가 있다. 숙제하듯 보느니 언젠가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 보려고 남겨둔 영화들이다. ‘칠드런 오브 맨(Children of Men)’(2006)도 그중 하나였다. 많은 호평과 그 유명한 후반부 롱 테이크 장면에 대해 익히 들었지만, 눈과 귀를 꼭꼭 닫고 때를 기다렸다. 알폰소 쿠아론(Alfonso Cuaron) 감독이 넷플릭스의 지원을 받아 제작한 ‘로마Roma’(2018)를 보고 원고를 쓰려던 참이었다. ‘로마’는 우리가 아는 그 로마가 아니라 감독이 어렸을 때 살았던 멕시코시티의 지역 이름이다. ‘로마’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해 감독의 전작들을 보기로 했다. 개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그래비티(Gravity)’(2013)는 스킵하고, 오래전에 본 영화들을 다시 찾아 봤다. 야한 영화로만 기억나는 ‘이투마마(Y Tu Mama Tambien)’(2001)에서는 내부자의 시선으로 그린 멕시코의 원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분수대 키스, 단 하나의 이미지로만 기억하던 ‘위대한 유산(Great Expectations)’(1998). 기네스 펠트로의 아찔한 초록색 원피스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리고, 드디어, 마침내, ‘칠드런 오브 맨’을 봤다. ‘로마’는 잠시 잊기로 한다. ‘칠드런 오브 맨’은 2006년에 제작되었으나 한국에서는 10년이 지난 뒤에야 개봉됐다. 영화의 배경은 2027년, 18년째 원인 모를 불임 현상으로 인류는 100년 안에 종말을 고할 예정이다. 전 세계 도시들이 테러로 함락되고 런던이 마지막 보루로 남은 상황이다. 아들을 잃고 무기력하게 살고 있는 테오(클라이브 오웬 분)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현 인류 중 가장 어린 18세 소년이 사고로 사망했다는 뉴스를 본다. 난민 정책에 항거하는 단체의 리더인 전처가 20년 만에 테오 앞에 나타나 한 소녀를 부탁한다. 놀랍게도 그 소녀는 기적적으로 임신한 상태다. 영화는 테오가 인류의 마지막 희망을 ‘미래호’라는 배에 태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정을 담고 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1호(2019년 3월호) 수록본 일부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한동안 유튜브에 몰두하다 ‘로마’를 보기 위해 가입한 넷플릭스에 빠져 지내고 있다. 내일을 위해 잠을 청할 것인가 연이어 다음 편을 볼 것인가 머뭇거리기에는 자동 재생으로 넘어가는 몇 초가 너무 짧다. 멈추려면 행동해야 한다. 중독은 쉽고, 남는 건 불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