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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면으로 말하기, 디테일로 짓기] 액랜드 스트리트
양화 한강공원의 실시설계를 맡게 되었을 때 너무나 설레고 흥분되었다. 내가 긋는 캐드 선 하나하나가 그대로 실현될 것이라 상상하니 의욕이 불타올라 밤늦은 줄 모르고 도면 작업에 몰두하기도 했다. 다섯 단계의 선 두께, 흑색과 회색 사이 선의 진하기를 조절해 가며 온갖 치수로 빼곡하게 채워 완성한 도면 한 장은 그저 아름다웠다. 모든 요소의 크기와 간격, 곡률을 도면에 정의했으니 이제 그대로 짓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잘못될 여지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시공이 시작되자 수많은 질문이 날아들었다. 도면대로 시공할 수 없는 온갖 이유와 한시가 급하니 당장 대안을 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우려와 함께 현장에 도착해 목격한 것은 그렇게 시공되지 말았어야 할, 그러나 돌이킬 수 없이 대상지에 새겨진 상처들이었다. 현장에서 즉흥적 결정에 의해 디테일이 바뀌고 있었고, 한껏 공을 들인 자식 같은 설계 도면들은 휴지 조각이 되어 있었다. 어차피 시공이 끝나고 나면 아무도 보지 않을 도면인데 아무려면 어떠랴, 스스로를 쓸쓸히 위로했다. 호주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몇 개 프로젝트를 통해 비슷한 패턴을 경험하고 나니 의문이 끓어올랐다. 왜 우리는 도면을 만드는 데 엄청난 시간과 공을 들이는가? 왜 시공자는 우리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안 하는가? ...(중략)...
* 환경과조경 378호(2019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이홍인은 호주 공인 조경가(RLA)다.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쳤다. 한국의 오피스박김, 호주의 맥그리거 콕샐(McGregor Coxall)에서 실무 경험을 쌓고, 현재 하셀(Hassell) 멜버른 오피스에서 BIM 모델링, 컴퓨테이셔널 디자인, 가상 현실 등 신기술을 조경 실무에 응용하는 직책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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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는, 조경] 현실처럼 보이는 드로잉
미국조경가협회ASLA는 몇 년 전부터 최우수 작품상ASLA Professional Award of Excellence 수상작을 가상 현실VR 영상으로 제작해 유튜브에 서비스하고 있다(그림 1). 공원 주요 구역의 풍경과 방문객의 활동을 담고 디자이너의 설계 설명을 내레이션으로 입혔다. 휴대폰이나 컴퓨터로 유튜브에 접속하면 2차원의 360도 동영상을, 가상 현실 헤드셋을 이용하면 3차원의 360도 동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상하좌우로 자유롭게 마우스를 움직이거나 헤드셋을 쓰고 고개를 돌려가며 공원을 실제로 누비는 것처럼 경험할 수 있다. 가상 현실이 디자인 과정의 도구로 활용된 것은 아니지만 대중과 소통하는 중요한 테크놀로지로 활용되고 있다.
가상 현실이라는 기술도 놀랍지만 풍경을 입체로 체험하기 위한 노력이 19세기에 이미 나타났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그림 2는 뉴욕의 센트럴파크가 조성된 지 십여 년 남짓 되었을 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입체경(stereoscope)사진이다. 두 장의 비슷한 사진이 나란히 놓여 있는데, 가상 현실 헤드셋과 비슷하게 생긴 입체경을 통해 보면 3차원 이미지로 보인다.1 입체경, 가상 현실, 3D 영화를 비롯한 입체 시각화는 우리의 두 눈이 떨어져 있는 만큼 조금씩 다른 것을 보는, 소위 양안 시차를 인위적으로 조작해 만들어낸 지각 방식이다.
사실처럼 그리기
시각 이미지를 이용해 현실과 유사한 경험을 만들고자 하는 욕구는 조경 드로잉에서도 발견된다. 19세기 중후반 조경가는 당대의 최신 기술인 사진을 현장 조사 도구로 활용했고(『환경과조경』 2019년 5월호 참조), 사진이 발명되기 이전에는 풍경화 같은 투시도를 그려 대상지에 대한 비전을 사실처럼 그리곤 했다(『환경과조경』 2019년 4월호 참조). 조경의 최종 목적이 현실 세계의 경관을 디자인하는 것인 만큼 사실적으로(realistic)그려 현실처럼 보여주고자 하는 태도는 어쩌면 당연한, 조경 드로잉의 기본적 역할일지도 모르겠다. 2000년을 전후로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와 같은 그래픽 소프트웨어의 상용화에 힘입어 현실처럼 보이는 드로잉을 보다 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손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찍은 사진을 재료로 합성하면서 조경 드로잉은 실제를 그린 것처럼 인식될 수 있다(그림 3).
이러한 이미지는 현실 세계를 사실처럼 그린 것일까. 대상과 관련하자면, 그렇지 않다. 드로잉은 디자인된 이후의 세계를 그리기에, 엄밀히 말해 현실이 아니라 디자이너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가상의 세계를 다룬다. 방법과 관련해도 그렇지 않다. 사진을 합성해 만든 조경 드로잉은 정확히 말해 포토 리얼리즘(photo-realism), 즉 미래의 경관을 촬영한 ‘사진처럼’ 보이도록 제작된 이미지다. 쉽게 이야기해서 우리에게 사실처럼 보이는 그래픽 이미지는 현실의 경험이 아니라 그것을 찍은 사진, 그것을 보정한 작품 사진처럼 연출된 것이다(그림 4).2...(중략)...
*환경과조경378호(2019년10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풍경을 입체로 보는 시각 체제의 국내 도입과 관련해서 다음을 참조. Myeong-Jun Lee & Jeong-Hann Pae, “Nature as Spectacle: Photographic Representations of Nature in Early Twentieth-Century Korea”, History of Photography 39(4), 2015, pp.390~404; 이명준, “일제 식민지기 풍경 사진의 속내”, 『환경과조경』 2017년 10월호, pp.32~37.
2. 미디어 이론가 레프 마노비치의 말을 빌리면, “컴퓨터 그래픽이 (거의) 성취해 온 것은 리얼리즘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포토리얼리즘인데, 포토리얼리즘은 우리의 현실에 대한 인식적이고 신체적인 경험이 아니라 오직 사진적 이미지를 모방하는 능력이다.” Lev Manovich, The Language of New Media, Cambridge, MA: MIT Press, 2001, p.200.
이명준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경 설계와 계획, 역사와 이론, 비평에 두루 관심을 가지고 있다. 박사 학위 논문에서는 조경 드로잉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현대 조경 설계 실무와 교육에서 디지털 드로잉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했고, 현재는 조경 설계에서 산업 폐허의 활용 양상, 조경 아카이브 구축, 20세기 전후의 한국 조경사를 깊숙이 들여다보고 있다. ‘조경비평 봄’과 ‘조경연구회 보라(BoLA)’의 회원으로도 활동한다.
자료출처
그림 1. https://www.youtube.com/watch?v=nQ2geeXMThI
그림 2.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Outdoor_Life_and_Sport_in_Central_Park_N.Y,_from_Robert_N._Dennis_collection_of_stereoscopic_views.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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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탄생, 1968~2018] 오늘날 공간의 탄생, 도시의 도시화
원도심을 살려라
지난달에는 한국 도시화 50년의 네 번째 공간 사례로 자연의 도시화를 4대강 자전거 길과 코리아 둘레길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오늘날 도시의 도시화를 살펴본다. 이를 위해 도시와 도시의 도시화에 대한 개념적 이해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도시(都市, city)는 구체적으로 일정한 지역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이 되는, 사람이 많이 사는 지역을 의미한다.1 본래 도시라는 단어 자체가 정치 중심지인 도읍(都邑)과 경제 중심지인 시장(市場)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시의 도시화는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도시는 이미 중심지인데, 어떻게 도시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일까? 이것은 현재의 도시가 과거 중심지로서의 역할 또는 위상과는 다른 처지에 놓여 있음을 의미한다. 무엇이 도시를 도시화가 필요한 상태에 이르게 했을까? 그리고 도시는 어떻게 도시화될 수 있을까?
오늘날 도시의 도시화는 도심(都心, downtown), 즉 도시의 중심부에서 주로 일어나고 있다. 흥미롭게도 한국의 도시화는 원도심, 구도심, 신도심, 부도심 등 다양한 도시의 중심부를 형성시켰다. 하나의 도시에 도심이 여러 개 존재하며, 오래된 도심과 새로운 도심이 만들어진 것은 도시의 실제 중심부가 이동하면서 나타난 결과다. 하지만 오랜 역사를 간직한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 등에서 도시의 중심부가 전면적으로 이동하는 일은 흔치 않다. 한국의 도시화는 정부 주도의 대규모 물리적 개발을 통해 급속히 일어났기 때문에, 도시의 중심부가 이동한 사례는 오히려 흔한 일이었다. 이를테면 서울의 강남은 1970년대에 개발되기 시작해 신도심으로서 위상이 높아졌지만, 기존의 사대문 안 도심은 구도심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그나마 서울 도심의 위상 변화는 상황이 좋은 경우다. 지방 대부분의 대도시와 수많은 중소 도시는 1980~1990년대 근교의 도시화, 2000년대 지방의 도시화 시기에 도시의 중심부 이동을 경험했다.
자연스럽게 구도심 쇠퇴와 신도심 성장 구도가 만들어졌으며, 이들 사이에 더 이상 묵과하기 힘든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격차가 존재하게 되었다. 이런 고질적 문제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 후보는 대선을 정확히 한 달 앞둔 시점에 원도심을 살리는 도시재생 뉴딜을 핵심 정책 공약으로 천명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바로 도시재생 뉴딜 사업을 추진해 구도심을 살리고 더욱 쾌적한 주거 환경을 만들겠다. 그동안 도시재생 사업에는 연간 1,500억 원 정도가 투입됐다.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공공 기관 주도로 정비하거나 매입 또는 장기 임차하면 연간 5만 호의 공공 임대 주택을 마련할 수 있다. 매입이나 임차를 할 때 고령층 소유자에게는 생활비에 상응하는 수준의 임대료를 지원할 것이다. 낡은 주택을 직접 개량하는 집주인은 주택도시기금에서 무이자 대출을 지원받을 수 있다. 전문 기관은 10조 원대 도시재생 사업으로 매년 39만 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2
이번 연재에서는 오늘날 도시의 도시화를 도시재생 뉴딜과 스마트시티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도시재생 뉴딜, 스마트시티의 시작과 경과
도시재생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진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도시재생 이전에 도시 쇠퇴의 문제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학술적 연구와 정책적 대응이 10여 년 이상 지속되어 왔다.3 도시재생사업단은 국가 R&D 연구의 일환으로 2006년부터 2014년까지 도시 쇠퇴의 문제에 경제·사회·문화·환경 등 종합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며, 도시재생 관련 정책·제도 및 환경·에너지, 건설 기술 등을 제고시키기 위해 노력했다.4
이에 따라 2013년 6월 ‘도시재생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약칭 도시재생특별법)이 제정되어 도시재생 사업 추진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 뿐만 아니라 도시 쇠퇴의 진단 및 도시재생전략계획의 수립 등을 위해 도시재생 종합정보체계를 활용하게 됐다. 도시재생 사업은 도시재생특별법의 테두리 내에서 도시재생전략계획과 도시재생활성화계획을 통해 추진되고 있으며, 도시재생 지원체계와 도시재생 종합정보체계는 도시재생 사업과 관련된 법적, 제도적, 실무적 의사 결정과 사업 수행을 지원한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는 도시 쇠퇴가 일자리 감소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문제를 인식하고, 도시재생과 뉴딜을 결합한 도시재생 뉴딜을 일자리 창출의 파급 효과가 큰 거점을 중심으로 추진하고 있다.5 하지만, 도시재생 뉴딜 역시 도시재생 사업의 연속성 상에서 표1과 표2에서 보는 것과 같이 기존 사업과 대동소이하게 사업 유형의 변화만을 보이며 추진되는 중이다.
스마트시티는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지만, 정의가 수백여 가지에 이를 정도로 다양해 여러 개념이 혼재되어 사용되고 있다.6 스마트시티라는 용어는 2010년 이후에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특히 중국이나 인도 등 아시아를 중심으로 많이 사용된다.7 본질적으로 스마트시티는 정보 통신 기술과 도시 건설 및 관리를 융합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전 세계의 스마트시티는 크게 세 단계에 걸쳐 진화되어 왔으며, 한국의 스마트시티 역시 유사한 역사적 경과를 거쳐 형성되었다....(중략)...
* 환경과조경 378호(2019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도시”, 표준국어대사전, 2019년 9월 10일 접속
(https://ko.dict.naver.com/#/entry/koko/d581735c667a43aab3d0897efab33924).
2. 정희완, “문재인 매년 10조 투입해 도시재생 뉴딜 추진”, 「경향신문」 2017년 4월 9일.
3. 임현성·김충호, “도시쇠퇴의 공간적 실태분석 및 정책개선방향 고찰: 부산시 부산진구의 사례를 중심으로”, 『국토계획』 240호, 2019, pp.186~187.
4. 도시재생사업단, 『도시재생 R&D 종합성과집』, 2014.
5. “내 삶을 바꾸는 도시재생 뉴딜 로드맵”, 국토교통부, 2019년 9월 10일 접속
(http://www.molit.go.kr/USR/NEWS/m_71/dtl.jsp?id=95080559).
6. “스마트시티”, 정책위키, 2019년 9월 10일 접속
(http://www.korea.kr/special/policyCurationView.do?newsId=148863564).
7. Cocchia, Annalisa, “Smart and Digital City: A Systematic Literature Review”, Smart City, 2014.
김충호는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도시설계 전공 교수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워싱턴 대학교 도시설계·계획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우설계와 해안건축에서 실무 건축가로 일했으며, 미국의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와 워싱턴 대학교, 중국의 쓰촨 대학교, 한국의 건축도시공간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분야의 교육과 연구를 했다. 인간, 사회, 자연에 대한 건축, 도시, 디자인의 새로운 해석과 현실적 대안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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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스케이프] 하늘을 낚다
태풍과 며칠째 계속되는 가을 장마 끝에 만난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여름에 계속밀리던 가을이 오랜만에 승기를 잡은 듯합니다.청명한 가을 하늘은 언제 봐도 기분 좋은 그림입니다.학생들과 공모전 대상지 답사를 위해 길음동에 들렀습니다.대상지와 바로 붙어 있는 재정비촉진지구.재정비를 촉진하는 곳이라는 뜻 같은데,원래 있던 집들을 정비하는 대신 높은 공사 가림막과 커다란 크레인이 버티고 있네요.아마도 아파트를 짓고 있겠지요.아파트 거주 인구가50%를 넘었다고 합니다.그렇게 아파트가 많이 있는 데도 계속 짓고 있는 걸 보면 정말 신기합니다.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말이 실감 나는 대목이지요.여기서 살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그들은 나중에 이곳에 대한 기억과 이야기를 어떻게 추억할까?어릴 적 살던 동네는 지금 어떻게 됐을까?...(중략)...
* 환경과조경 378호(2019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같은 학과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가원조경, 도시건축 소도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실무를 담당했고,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경 계획과 경관 계획에 학문적 관심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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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옛 잡지를 다시 펼치며
시험 전날 굳이 책상을 정리하고 소설책을 펼치던 버릇처럼, 마감 때만 되면 책장 한구석에서 과월호 몇 권을 무작정 꺼내 드는 습관이 생겼다. 명분은 마감 압박감 해소인데 자칫 대책 없는 추억팔이로 흐르곤 한다. 몇 시간 후면 최종 교정본을 인쇄소로 넘겨야 하지만 그만 과월호 보관용 서가로 발걸음을 옮기고 말았다. 오늘은 이번 호 기준 5년 간격으로 옛 잡지를 소환했다. 불과 일곱 권의『환경과조경』 과월호로 무려 35년의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 물론 묵은 먼지와 책벌레가 선사하는 온몸 가려움증을 감수해야 한다.
딱 5년 전인 2014년 9월호(317호), 마치 석 달 전 잡지처럼 기획과 편집 과정이 또렷이 떠오른다. ‘거버너스 아일랜드’(West 8)를 필두로 여섯 개의 근작이 밀도 있게 배치돼 있다. 편집부 전원이 참여한 ‘활자산책’은 파주 시대의 마지막 여름을 뜨겁게 달군 기획 특집이었다. 당시 편집부의 막내 양다빈 기자는 설계사무소를 두 번째 직장으로 택했고, 조한결 기자는 대학원에 진학해 예술 이론과 테크놀로지를 공부하고 있다. 우성백 인턴기자는 공기업에 취업했고, 김정은 편집팀장은 2018년 늦은 봄, 건축 전문지 『Space』의 편집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리뉴얼 첫해의 열정과 땀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2014년 9월호를 한참 뒤적이다 최근의『환경과조경』이 놓치고 있는 지점을 새삼 발견한다.
공교롭게도 2009년 9월호(257호)의 대표작은 최근 재조성 논란으로 시끄러운 ‘광화문광장’이다. 그해 8월 1일 완공된 ‘오세훈 표’ 광화문광장을 다룬 지면과 비평 집담회가 실렸다. 그 밖의 근작 중에는 ‘송도 중앙공원’과 ‘광진교 걷고 싶은 다리’가 눈에 띈다. 당시의 인기 연재물 ‘스튜디오 101’(정욱주+김아연)을 10년 만에 다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남기준 편집장이 야심 차게 이어가던 조경가 인터뷰 코너, 257호의 인터뷰이는 이수학 소장이다. 시인 허수경을 매개로 절절하게 이어지는 푸릇한 대화가 귓전을 때린다.
15년 전인 2004년 9월호(197호)를 펼치면 몇 가지 편집 실험이 한눈에 들어온다. 국영문 병기가 가장 큰 특징이고, 잡지 앞쪽에 ‘피플’ 꼭지를 마련해 필자뿐만 아니라 여러 프로젝트의 관계자들을 전면에 등장시킨 시도가 이채롭다. 근작 지면을 넘기다 ‘서초동 아크로비스타’에 시선이 꽂혔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의 비극적 현장에 무심하게 새로 솟은 최고급 주상 복합 단지다. 15년 전 잡지 책값은 12,000원.
1999년 9월호(137호)에서는 제도권 바깥 고급 조경설계 시장의 절대 강자였던 이교원(이원조경 대표)의 회고록 마지막 회를 볼 수 있다. “이제 조경이 무엇인지 그 맛을 느낄 듯 말 듯한데 … 벌써 인생의 노을은 저만치 다가섰구나”라는 회한으로 글이 마무리된다. 특집은 ‘조각공원의 새로운 가능성.’ 그때나 지금이나 새로운 가능성은 참 만만한 제목이다. 남기준 편집장의 이름 뒤에 ‘기자’가 붙어 있다. 그의 신입 시절, 벌써 20년 전이다.
1994년 9월호(77호)는 디자인과 콘텐츠 둘 다 지금과 매우 다르다. 1990년대까지 『환경과조경』은 작품과 설계 프로젝트 중심의 디자인 전문지라기보다는 뉴스, 기고, 이슈별 특집이 섞인 종합지 성격이 강했다. 그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77호에는 인도네시아, 사이판, 방글라데시 등 해외 시장 진출에 대한 기획 기사가 배치돼 있다.
1989년은『환경과조경』이 아직 격월간으로 발간되던 때다. 이 해의 9-10월호(31호)는 ‘건설업법 어떻게 달라졌나’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를 싣고 있다. 당시 건설업법 개정에 반대해 학부 3학년이던 본지 박명권 발행인이 전조련(전국조경학과학생연합)을 창립해 국회 앞에서 시위를 이끌던 장면이 떠오른다.
1984년 가을호는 제호부터 다르다. 1982년 7월 창간된 계간『 조경』의 통권 7호. 창간 주역들의 열정과 분투가 지면에서 그대로 읽힌다. 한국 조경 원로들의 35년 전 모습을 모처럼 다시 만날 수 있다. 표지에 적힌 책값은 3,500원이다.
35년이 흐른 2019년 9월호(377호), 이번 달에는 그룹한, 이수, 자연감각, CA, JWL, KnL 등 국내 조경설계사무소의 근작들로 프로젝트 지면을 구성했다. 대형 공원, 광장, 오피스 건물, 호텔 정원, 모델하우스 정원 등 다양한 스케일의 작업에서 한국 조경의 현재를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김기천 소장(그룹한)의 연재 ‘도면으로 말하기, 디테일로 짓기’는 이달로 막을 내린다. 세 달의 수고에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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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면으로 말하기, 디테일로 짓기] 스카이데크
길이 150m의 스카이데크
제시한 도면은 그룹한이 설계하고 2016년 준공한 시흥 배곧생명공원의 스카이데크(skydeck)상세도다. 공원 초입부터 중심 공간인 해수연못까지 거닐며 주변 바다 경관을 감상할 수 있도록 길이 150m, 2층 구조의 스카이데크를 설계했다. 대상지가 매립지여서 나무를 많이 심을 수 없었기에, 스카이데크 하부를 휴게 공간으로 계획해 부족한 그늘을 제공했다.
공모전 단계(시흥군자배곧신도시 개발사업 조경설계공모)에서 제안한 시설물 디자인을 바탕으로 구조 전문가와의 협의를 거쳤다. 기초 형식을 비롯한 배근, 골조, 자재 규격과 공법 등 세부 요소를 결정해 도면에 풀어냈다. H형강으로 기본 뼈대를 만들고 구조용 각관으로 세부적 틀을 잡았다. 주요 마감재는 목재(멀바우)를 기본으로 하되 기둥에 석재(개비온)를 적용했으며, 스카이데크를 수평적으로 가로지르는 난간은 유리로 만들어 다양한 물성의 조화를 추구했다.
매립지의 대형 구조물
배곧생명공원은 바닷가 매립지에 조성된 공원으로, 지반 침하와 바람 등 해양 환경을 고려해 설계됐다. 성토된 매립지의 지반은 연약하기 때문에 일정 기간 안정기를 거쳐도 계속 침하 현상이 발생한다. 대형 구조물을 설치하기에 매우 불리한 조건이다. 기초 공법으로 자중과 지내력을 활용하는 매트 기초를 적용했다. 부등 침하와 풍력의 영향을 분산하고자 구간마다 신축이음(expansion joint)을 두었다. 2층 유리 난간이 받는 풍력과 상부 구조물의 하중, 사람들의 이동에 따른 활동 하중 등을 고려해 기초의 두께와 배근, 기둥 간격 등의 제원을 결정했다....(중략)...
*환경과조경377호(2019년9월호)수록본 일부
김기천은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후 그룹한에 입사하여 현재 전략디자인본부를 이끌고 있다. 조경 이론과 담론이 왕성하던 2000년대 초부터 여러 설계 이슈에 그룹한의 고민들을 담아내며 다양한 유형의 공공 오픈스페이스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최근에는 프로젝트의 스케일을 다양화하며 설계가의 고민을 공간에 구현하는 접근 방식에 관심이 많다. 주요 작업으로는 서울대공원 재조성 국제 설계공모, 시흥 배곧생명공원, 영천 렛츠런파크, 양평 현대 연수원 블룸비스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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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는, 조경] 경관을 새롭게 상상하기
색종이, 사진, 헝겊 같은 여러 재료의 조각을 한데 조립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기법을 콜라주collage라고 한다. 사진이 재료가 된 경우 포토몽타주photomontage라고도 부른다.1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재료를 자유롭게 조립해보면 스케치로는 그려내기 힘든 경관의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기초 디자인 교육에 종종 콜라주와 몽타주(이하 콜라주)가 포함되는 이유는 디자인하고 있는 경관의 겉모습을 사실처럼 그리기보다 다소 느슨하게, 말하자면 구상과 비구상 사이를 오가며 핵심 아이디어와 경관의 분위기를 상상해보기 위해서다.
콜라주 기법으로 여러 드로잉을 그려낼 수 있지만 투시도의 형식을 빌릴 때가 많다. 지금은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로 대표되는 그래픽 소프트웨어를 통해 투시도가 제작된다. 소프트웨어가 제공하는 다양한 식물과 인물 재료, 기존의 사진 재료 등을 조립해 작품 사진처럼 보이는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소프트웨어가 상용화되기 전에는 손으로 투시도를 그렸다. 이 연재에서 계속 살펴보았듯, 윌리엄 켄트처럼 한 가지 색으로 스케치하거나 험프리 렙턴과 프레드릭 로 옴스테드처럼 공들여 색을 입히기도 했다. 지금부터 설명하겠지만, 콜라주 기법으로 투시도를 그리기도 했다.
콜라주된 경관
1980~1990년대의 조경가들은 콜라주를 통해 경관을 새롭게 시각화하고자 했다. 새로운 방식은 새로운 인식을 동반했다. 조경이 그간 디자인해 온 아르카디아적arcadian 자연, 즉 18세기 풍경화식 정원과 19세기 중반 옴스테드의 센트럴파크가 구현했던 목가적이고 전원적인 자연을 벗어나 도시 경관을 포함하는 인공적 자연을 긍정하기 시이브 브뤼니에Yves Brunier(1962~1991)가 로테르담의 뮤지엄파크Museumpark를 설계하면서 선보인 콜라주는 사진, 과슈, 오일 파스텔, 잉크, 은박지, 와이어 메시 등 혼합 매체로 제작됐다. 사과나무 수피가 하얗게 채색되어 인공 자연처럼 보이는 게 인상적이다(그림 1과 2).2 아드리안 회저Adriaan Gueze(1960~)의 초기 작업인 로테르담 쇼부르흐플라인Schouwburgplein의 콜라주는 광장과 도시의 모습을 과장, 왜곡, 병치해 그려낸 투시도로, 광장이 지닌 도시적 맥락과 역동성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그림 3). 조경 설계가 더 이상 인간의 손때가 묻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자연을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도시의 맥락을 고려한 인공 자연을 만드는 실천이라 여기는 그의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3...(중략)...
*환경과조경377호(2019년9월호)수록본 일부
1. 콜라주는 풀칠하다, 붙이다, 조립하다의 뜻을 지닌 프랑스어collage에서, 몽타주는 조립하다를 뜻하는 프랑스어monter에서 유래했다(https://www.oxfordlearnersdictionaries.com/).
2. 이 프로젝트를 함께한 렘 콜하스는 브뤼니에가 “자연을 짓밟거나(rape) 자연의 속성을 벗겨내 표현의 대상으로 바꾸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고 회상한다. Odile Fillion, “A Conversation with Rem Koolhaas”, Yves Brunier: Landscape Architect , Michel Jacques, ed., Basel: Birkhauser, 1996, pp.89~90.
3. Adriaan Geuze, “Introduction”, West 8 , Luca Molinari, ed., Milano: Skira Architecture Library, 2000, pp.9, 10, 12.
이명준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받았다. 조경 설계와 계획, 역사와 이론, 비평에 두루 관심을가지고 있다. 박사 학위 논문에서는 조경 드로잉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현대 조경 설계 실무와 교육에서 디지털 드로잉이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했고, 현재는 조경 설계에서 산업 폐허의 활용 양상, 조경 아카이브 구축, 20세기 전후의 한국 조경사를 깊숙이 들여다보고 있다. ‘조경비평 봄’과 ‘조경연구회보라(BoLA)’의 회원으로도 활동한다.
자료출처
그림 1. Charles Waldheim and Andrea Hansen, eds., Composite Landscapes:Photomontage and Landscape Architecture, Charles Waldheim andAndrea Hansen, eds., Ostfildern: Hatje Cantz Verlag, 2014, p.159.
그림 2. 같은 책,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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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탄생, 1968~2018] 2010년대 공간의 탄생, 자연의 도시화
길을 만들어라
지난 달에는 한국 도시화 50년의 세 번째 공간 사례로 지방의 도시화를 행정중심복합도시와 혁신도시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네 번째 사례로 2010년대 자연의 도시화를 살펴본다. 이를 위해 자연과 자연의 도시화에 대한 개념적 이해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자연自然, nature은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거나 우주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모든 존재나 상태를 뜻한다.1다시 말해 자연은 사람의 힘, 즉 인공으로 조성된 건조 환경과 대비되는 공간, 환경 또는 영역이라 정의할 수 있다. 이 같은 관점에서 자연의 도시화는 사람이 인위적으로 개입하지 않았거나 설령 개입을 했더라도 그 정도가 크지 않았던 공간, 환경 또는 영역에서 일어나는 도시화라 할 수 있다.
2010년대 자연의 도시화는 역설적으로 당시 자연 이외의 지역이 도시화가 더 진전되기 어려울 만큼 충분히 성숙되어 있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1970년대 농촌의 도시화, 1980~1990년대 근교의 도시화, 2000년대 지방의 도시화로 인해, 2010년을 전후로 도시화가 진행될 수 있는 인공적 영역이 남아있지 않았다. 더욱이 당시에는 세계적으로 자원 고갈, 기후 변화, 지속 가능 개발, 녹색 성장 등 인간과 자연의 미래 지향적 관계 설정에 대한 논의가 뜨거웠다. 같은 맥락에서 흥미롭게도 과거 현대건설의 사장이었으며 서울시장으로서 청계천 복원 사업을 진두지휘한 장본인이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이명박 정부(2008~2013)는 대통령 선거에서 한반도 대운하 건설, 747공약(연평균 7% 성장, 1인당 소득 4만 불, 세계 7대 강국 진입) 등 대규모 토목 사업 및 고도 경제 개발을 핵심 공약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대통령 당선 이후, 2008년 세계 경제 위기 속에서 한반도 대운하 건설은 경제적·생태적 관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리하여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건국 60주년 광복절 경축사 연설에서 저탄소 녹색 성장을 국정의 비전이자 핵심 기조로 천명했다. 한반도 대운하 건설은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변모해 임기 중에 추진됐다.
“본 의원은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는 운하를 건설할 것을 제의하는 것입니다. 낙동강과 한강, 540km 강을 준설하고 두 강의 가운데를 조령의 해발 140m 고지에 20.5km의 터널을 하여 연결하게 되면 경부운하가 건설이 될 것입니다. 이제 수문과 적당한 댐을 설치하게 되면 수위를 조절하여 5,000톤의 바지선이 부산을 거쳐 인천까지 갈 수가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나 기술적으로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2
“저는 신년연설을 통해 ‘전국 곳곳을 자전거 길로 연결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이 마무리되는 2012년이면 한강·금강·영산강·낙동강 물줄기를 따라 약 2,000km에 이르는 자전거길이 만들어집니다. 그때가 되면 목포에 사는 젊은이가 영산강을 출발해 금강을 거쳐 서울에 오고, 서울에서 출발한 청소년들이 강바람을 가르며 한강과 낙동강을 거쳐서 부산까지 갈 수가 있습니다. 자전거를 통해 동·서와 중·남부가 통해서 사람들도 동서남북으로 다 통하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3
13년의 세월을 사이에 둔 이명박 대통령의 두 발언을 보면서, 한반도에 물길 대신 자전거길이 만들어졌다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우리에게 길이란 과연 무엇이며, 2010년대에 왜 그토록 길을 만들고자 했는가....(중략)...
*환경과조경377호(2019년9월호)수록본 일부
1. “자연”, 표준국어대사전, 2019년 8월 10일 접속(https://ko.dict.naver.com/#/entry/koko/c413f4f2bd48406eb455
361de527dca0).
2. 1996년 7월 18일에 열린 국회 제8회차 본 회의 이명박 의원의 발언 일부. 『이명박정부 국정백서: 2008.2~2013.2. 7, 녹색뉴딜 4대강 살리기와 지역상생:국토』, 문화체육관광부, 2013, p.65.
3. 이명박, “제13차 라디오 연설, 4대강 따라 열리는 자전거길”, 2009, 대통령기록연구실, 2019년 8월 10일 접속(http://pa.go.kr/research/contents/speech/index.jsp).
김충호는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도시설계 전공 교수다.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워싱턴대학교 도시설계·계획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우설계와 해안건축에서 실무 건축가로 일했으며, 미국의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와 워싱턴 대학교, 중국의 쓰촨 대학교, 한국의 건축도시공간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분야의 교육과 연구를 했다. 인간, 사회, 자연에 대한 건축, 도시, 디자인의 새로운 해석과 현실적 대안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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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스케이프] 버드 아이 뷰
창가? 복도?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나요. 고속버스나 기차, 비행기를 탈 때 한 번쯤은 고민합니다. 꼭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같은 선택. 가방을 짐칸에 올리거나 화장실 가기엔 복도 쪽이 더 편하긴 한데, 저는 창밖 풍경을 보는 걸 좋아해서 주로 창가를 선택합니다. 날이 좋으면 좋은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비가 오면 비 오는 대로 다 보는 맛이 있거든요. 운이 좋은 날에는 멋진 일몰이나 무지개도 볼 수 있습니다.
드론으로 찍은 거예요? 요즘 경관자원조사 드론 사진을 SNS에 계속 올렸더니 이번 사진에도 이런 댓글이 달렸더군요. 이 글을 읽는 분 중에도 드론 사진이라 생각한 분이 있을 겁니다. 좀 허무하긴 하지만 이번 사진은 비행기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그러니까 좀 큰 새(?)의 눈으로 본 풍경인 셈입니다. 아마 드론으로는 이런 높이에서까지 찍기 어려울 거예요....(중략)...
*환경과조경377호(2019년9월호)수록본 일부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같은 학과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가원조경, 도시건축 소도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실무를 담당했고,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경 계획과 경관 계획에 학문적 관심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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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맥하그의 유산
1969년은 현대 조경사의 분수령이다. 분야의 혁신과 영역의 확장을 이끈 새로운 조경 전도사이안 맥하그Ian L. McHarg(1920~2011)가『디자인 위드 네이처(Design with Nature)』를 출간한 1969년을 기점으로 조경 이론과 실천은 변화의 함수를 그려나가기 시작한다.
출간 50주년을 맞은 2019년, 미국 조경학계는『디자인 위드 네이처』를 재조명하고 맥하그가 현대 조경에 남긴 유산을 재평가하는 작업으로 분주하다.
책의 산실인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 맥하그 센터(The McHarg Center)가 설립되어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전시회를 기획했다. 지난 6월에는 대규모 컨퍼런스가 열렸고, 오는 10월에는 그의 거대한 그늘 속에서 성장과 탈주를 거듭해 온 이론가와 조경가들이 모여 함께 집필한 책, 『디자인 위드 네이처 나우(Design with Nature Now)』가 우리 앞에 놓일 예정이다.
학과 도서실 책장 한구석에서『디자인 위드 네이처』 초판본을 꺼내 다시 펼쳐본다. 50년이 흐른 지금, 이 책이 제시한 철학과 방법론은 이제 선택지가 아닌 당위이고 변수가 아닌 상수다. 자연환경의 여러 요소와 시스템을 면밀히 조사·분석하고 그 결과를 중첩해 적지를 찾아내는 방법은 오늘날의 계획에서는 당연한 절차지만 1960년대에는 가히 혁명적인 것이었다. 자연과 싸워 자연을 이겨내는 역사를 일구어 온 인간이 비로소 그 결과에 대해 반성하고 미래의 어두운 그림자를 알아채기 시작한 1960년대 말, 맥하그의 생태 계획은 환경 문제에 대한 자각과 새로운 인식을 낳은 시대정신과 맥과 결을 같이 하는,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발상이었던 셈이다.
맥하그를 기점으로 조경은 변신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그 동력은 생태학이라는 이름의 과학이었다. 맥하그는 생태학의 힘을 빌려 조경과 조경 교육을 과학화했다. 뿐만 아니라 조경이 단지 왕후장상이나 자본가의 정원 뒤치다꺼리를 넘어 환경 문제의 해소에 기여함으로써 사회적 역할을 행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실험했다. 조경 전문업의 영토를 확장하고 조경만의 전문 기술로 광역 계획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모더니즘 시대에 정체된 조경의 탈출구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맥하그식 생태 계획은 조경에서 포스트모던한 사고의 등장을 알리는 징후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맥하그의 접근 방법이 환경결정론, 즉 또 다른 형태의 인간-자연 이원론이라는 부정적 평가는 이미 그의 전성기에도 팽배했다. 도구주의적 자연관을 극복하고자 한 시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연과 인간 문화의 역동적 접점을 소홀히 여겼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맥하그의 유산은 조경의 과학-예술 이분법을 심화시킨 혐의를 피하기 어렵다. 폭넓은 생태학의 가능성을 경직된 과학 일변도로 몰아감으로써 생태학에 담긴 상상력이나 창조성과 같은 측면을 위축시켰다는 것이다. 조경의 과학화는 디자인의 침체를 낳았고, 조사, 분석, 설계의 일방향 프로세스는 형태의 디자인과 결코 교점을 갖기 어려웠다.
『디자인 위드 네이처』는 조경의 지향과 방법론을 바꾼 이론이자 동시에 사회적 영향력을 탑재한 실천이었다. 맥하그의 유산은 오늘의 토론을 초대한다. 현대 조경을 화장술의 굴레로부터 해방시킨 진보의 토양인가, 현대 조경의 진행 방향을 뒤흔든 이단인가. 평가는 엇갈리지만, 적어도『디자인 위드 네이처』가 현대 조경 이론사의 서막을 열었다는 점만큼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도시의 시스템을 경관으로 매개하는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landscape urbanism)의 배경에도,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회복탄력적(resilient)설계의 이면에도 맥하그가 자리하고 있다.
‘1969년 이후의 조경이론’이라는 제목으로 10년 넘게 이어가고 있는 대학원 세미나에서 한 박사과정 학생이 제출한 글의 마지막 문단을 옮긴다. “변화하는 동시대 조경에 맥하그는 언제나 새로운 문제를 던진다. 우리에게 맥하그는 거대한 그림자다. 숲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가 아닌, 한 발짝씩 앞서 걸어가는 족적처럼 안심을 주는 그림자다. 강렬한 햇빛에 반사되어 쳐다보기도 힘든 정오의 땅 위에, 옅은 그림자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하나의 길을 제시하지 않는가. 한 발자국 걸어 나갈 방향을 잡아준다는 점에서 맥하그의 생태적 조경관은 오래된 이정표와 같다. 이 이정표의 올바른 사용법은 우리가 계속 고민할 문제일 것이다”(신명진).
이번 호에는 뢰번 가톨릭 대학, 런던 대학, 글레스고 대학, 텍사스 대학 등 최근의 캠퍼스 프로젝트를 모아 싣는다. 대학 캠퍼스와 도시 공간의 함수 관계가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