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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스케이프] 플로리다 프로젝트
허상의 공간
언뜻 보면 아름답다.눈부신 햇볕이 내리쬐는 곳,아이들의 왁자지껄 웃는 소리와 함께 야자수에 둘러싸인 낭만적 외관의 건물이 즐비하다.오렌지 월드와 거대한 마법사 조형물을 얹은 선물 가게와 아이스크림 모양의 가게도 있다.여섯 살 주인공 무니가 사는 곳은‘매직캐슬’이고 친구인 젠시는 로켓 모양의 입간판이 서 있는‘퓨처랜드’에 산다.조금 더 들여다보면 어딘가 이상하다.관광객이 잠시 묵는 모텔에서 아이들은 엄마와 장기 투숙 중이다.홈리스와 다름없는 하층 계급이 모여 사는 매직캐슬은 방값이 없어 쫓겨나는 사람들의 고함과 술 취한 사람들의 소동으로 조용할 날이 없다.복도 난간에는 이불이 널려 있고 쓰레기가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다.이곳은 어디인가.
월트 디즈니가1955년 캘리포니아에 개장한 디즈니랜드는 테마파크의 선배격인 코니아일랜드나 드림랜드와 다른 개념으로 기획되었다.쾌락과 일탈의 장소가 아니라 어린이 위주의 건전한 가족 문화가 실현되는 공간을 추구한 것이다. 1966년에 올랜도에 세운 두 번째 디즈니랜드 계획은 주변 지역이 포함된 도시계획 차원으로 확대된다.정원도시운동(Garden City Movement)에서 영감을 받은 계획으로,현대 도시에서 체험할 수 있는 모든 요소가 완벽하게 작동하도록 기획되었다.도심을 중심으로 그린벨트와 공업 단지가 모노레일로 연결되는 방사형의 구조다.이 신도시 개발은 엄청난 예산과 디즈니의 죽음으로 실현되지 못했지만,대신1971년에 매직킹덤이 세워지면서 전 세계인이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곳이 되었다. ...(중략)...
*환경과조경368호(2018년12월호)수록본 일부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올해 가을에는 단풍이 유난히 아름다웠다.적당한 강수량으로 나무의 영양 상태가 좋은 데다 일교차가 큰 날이 예년에 비해 많아서라고 한다.며칠 전 하루 종일 내린 비로 찬란했던 나뭇잎이 다 떨어지며 이제 겨울임을 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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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광화문광장 설계공모에 참가하는 조경가들에게
지난 8월부터 한 일간지에 3주마다 칼럼을 쓰게 됐다. 전국의 불특정 독자를 상대하는 지면이라 글감 택하기가 쉽지 않다. 나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 없는, 10년도 안 된 광화문광장을 1,0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뜯어고치는 프로젝트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걸로 첫 글의 주제를 잡았다. 대중 일간지라는 부담 때문에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고, 힘이 과하면 스트라이크를 못 던지는 법. ‘시민의 일상과 조화된 보행 중심 공간화’와 ‘잃어버린 역사성의 회복’이라는 서울시 논리의 맹점을 꼬집은 후, 서울역 고가 공원화 못지않은 속도로 전개될 이 사업의 과정을 경계하는 다음 문단으로 글을 마무리했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점은 이 사업의 속도다. ‘토건시대’를 연상시키는 속도전으로 진행할 일이 아니다. 서울시는 7월 말에 전문가와 시민 150명이 참여하는 시민위원회를 출범시키고 토론회를 열었다. 초대장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광화문시대를 여는 새로운 광화문광장을 조성함에 따라 … 광화문시민위원회를 구성하여 논의를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논의를 다시 시작한다면서 동시에 8월 말 설계공모, 내년 말 설계 종료, 2021년 5월 완공이라는 과속 주행 스케줄이 정해져 있다. 이 프로젝트가 전시성 포퓰리즘 공간 정치의 산물이 아니라면, 밀실에서 광장으로 나와 진정한 광화문시대를 여는 과정의 첫걸음이라면, 광화문광장의 온전한 미래를 다음 세대가 선택할 수 있도록 긴 호흡으로 ‘논의를 다시 시작’하기 바란다”(배정한, “광화문시대를 연다?”, 「한겨레」 2018년 8월 11일).
당연히 볼이었다. 10월 12일, “역사성과 장소성을 살린 시민중심 대한민국 대표공간 조성을 목표”(공모 지침서 초대의 글)로 하는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설계공모’가 공고됐다. 가까운 조경가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공모에 참가한다고 한다. 건축가들도 예외는 아니다. 최적의 드림팀을 꾸리느라 거의 모든 세대의 조경가와 건축가가 동분서주하고 있다. 몇몇 조경가(L)와의 대화 몇 토막을 추려서 옮긴다.
J. 광화문광장, 할 건가? 한다면,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L.당연히 한다. 어떤 안을 내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지침서에 적힌 ‘10가지 이슈와 과제’는 사실 ‘아무 말 대잔치’나 ‘뻔한 말 대방출’처럼 읽힌다. 진지하지만 지극히 낭만적인 말들이다. 그 과제들을 조금 더 고급진 어휘로 바꿔 보고서에 다시 적고 패널에는 한두 가지 강한 아이디어를 세련된 CG로 산뜻하게 담을 생각이다.
J. ‘보행 중심 공간화’는 결국 현재의 광장을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붙여 확장하는, 이른바 ‘편측 광장’화다. ‘잃어버린 역사성의 회복’은 광화문 앞 월대와 해태상의 제자리 찾기에 다름 아니다. 어길 수 없는 정답이다. 이 두 문제가 현재의 광장, 즉 밀실에 유폐된 진실을 시민의 힘으로 밝혀낸 촛불의 광장을 지금 당장 고쳐야 하는 합리적 이유일까.
L. 시급히 고칠 이유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바꾸면 광화문광장이 더 나아질 것 같기는 하다. 과장된 표현이긴 하지만 “세계 최대의 중앙분리대”라는 비판에 일리가 있지 않은가.
J.물론 현재의 광장 구조, 형태, 디테일이 만족스러운 건 아니다. 10년 전에 많은 전문가의 의견처럼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붙여 광장을 만들었다면 시민의 일상과 더 넓은 접면을 가지고 문화적 시너지를 발휘하면서 보다 쾌적한 보행 환경을 갖출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선은 필요할 때 차도를 막아서 유연하게 쓰고 주변의 빈 공간들을 잘 엮어서 써도 되지 않나. 당장 뜯어고칠 당위성은 없는 것 아닌가.
L.동감이다. 바꿀 거면 확실하게 바꾸는 게 맞다. 기왕이면 입체적 교통 계획을 세워 세종로 전체를 보행 광장으로 완성하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하지만 그런 그랜드 플랜에는 오랜 시간에 걸친 연구와 실험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선 단기 처방을 하자는 게 이번 프로젝트 아닐까.
J.단기 처방 후 또 새로 수술을 해야 할까. 역사성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는 역사와 전통 이야기만 나오면 왜 언제나 전근대의 조선만을 원형으로 설정하는 것일까.
L.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몇십 년간 세종로와 광화문 일대에서 펼쳐진 철거와 복원 행위의 대부분은 조선 왕조의 공간적 흔적을 단편적으로 소환하는 형식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현대사의 수많은 사건과 의미가 적층된, 살아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J. 그렇다. 4·19 혁명과 1987년 민주 항쟁도, 붉은 악마의 월드컵 군무도, 촛불로 타오른 시민 혁명의 기억도 조선의 왕궁이나 육조거리, 월대나 해태상 못지않게 중요하다.
L. 그 지점에서 참가작들의 아이디어가 다양하게 분기될 것 같다.
J.왜 이 공모가 나왔다고 생각하는가. “광화문광장을 둘러싼 수많은 논쟁이 있습니다”라는 공모 지침서 첫 문장처럼 실제로 우리는 광화문광장을 문제라고 생각할까. 시민들도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을까.
L. 우문이다. 이 시대 도시·건축 정책을 이끄는 키맨들의 문제의식과 열망이 낳은 프로젝트다. 어느 정도는 순수한 열망이라고 본다.
J. 그 순수한 열망이 왜 이렇게 급하게 실험되어야 하는가. 연구와 토론, 참여와 소통이 필요하지 않나.
L.물론 2021년 5월 완공이라는 데드라인은 지극히 정치적이다. 그러나 키맨들은 자신의 열망을 실현할 수 있는 정치·사회적 환경이라고 판단하니까 과속하는 것 아니겠나.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는 생각.
J.그렇다면 왜 이 땅의 대다수 조경가와 건축가도 이 과속 주행에 동참해야 하는가.
L.잘 모르겠다. 그러나 뭔가 전문가로서 사명감 같은 걸 느낀다. 공모전 사이트가 가장 상징성 있는 서울의 대표 공간 아닌가. 내 설계 능력과 지식을 이곳에 펼쳐봐야 한다는 사명감이랄까. ‘서울로 7017’의 재판이 되는 걸 막아야겠다는 의무감 비슷한 것도 느낀다. 아무튼 정치는 정치고, 일은 일이다. 그들이 노 저을 때 우리도 노 저어야 한다.
J.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건 좋지만, 그러다 쓸데없이 팔뚝만 굵어질 수도 있지 않나.
2017년 1월호부터 격월로 연재된 ‘정원 탐독’이 이번 호로 막을 내린다. 오경아 필자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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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스케이프] 그거 아세요?
“그거 아세요? 크로스레일 플레이스의 옥상 정원에는 이곳의 모든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깊이 1m의 흙을 깔아 두었습니다. 일 년 내내 식물에게 물과 액체 양분을 자동 관수 시스템을 통해 공급합니다. 이 옥상 정원은 캐너리 워프와 계약한 질스피스 조경설계 사무소가 설계했고, 식재는 블레이크다운 조경이 맡았습니다. 현재 이 옥상 정원은 알렉 버처가 이끄는 캐너리 워프 조경 관리팀이 관리하고 있습니다. 주말에는 알렉이 가이드 투어도 이끌 예정입니다.”
지난 여름 한국경관학회 해외 답사 프로그램으로 영국을 다녀왔습니다. 외국 답사를 가면 참 신기한 게 많지요. 자동차도 반대로 다니는 영국, 이번 답사에서도 그런 느낌을 많이 받고 왔습니다. 정말 그림 같았던 풍경화식 정원 스투어헤드(Stourhead)도 직접 보고, 바로크 정원에서 풍경화식으로 변신했던 채스워스 하우스(Chatsworth House)를 산책하기도 했습니다. 전통적인농촌 마을에서 새롭게 변신한 바이버리(Bibury)와 버턴온더워터(Burton-on-the-water)같은 곳도 둘러보고, 피크 디스트릭트(Peak District)국립공원에서 영국 특유의드넓은 구릉지에 감동하기도 했습니다. 책이나 인터넷으로 보는 느낌과 달리, 답사에서는 직접 대상과 교감할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 느낄 수 없는 다른 문화나 큰 스케일의 경관을 해외 답사에서 만나게 되면, 새삼 아직 내가 모르는 세상이 정말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그야말로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습니다.
규모가 큰 대상에서만 감동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아주 사소한 배려가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올 때도 많으니까요. 오히려 그런 세밀한 감동이 더 오래 남고, 더 깊이 전해질 때도 있습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7호(2018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같은 학과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가원조경, 도시건축 소도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실무를 담당한 바 있으며,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경 계획과 경관 계획에 학문적 관심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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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설계하는 법] 전개
이번 연재에서는 프로젝트의 ‘전개’를 다룬다. 먼저 경험, 감각, 스토리텔링을 중심으로 한 프로젝트를 소개한 뒤, 대상지의 역사와 지역의 대표 경관 및 기능을 형태적으로 풀어 내는 전개를 이야기하기로 한다.
수목원, 업 클로즈 앤드 퍼스널(Up Close and Personal)1
지난 연재에서 다룬 바와 같이, 여주관광단지 오림 수목원(이하 오림 수목원)설계 당시 개개인의 고립이 심화되고 형식적 관계만 남은 현대 사회에서의 수목원의 역할을 고민했고, ‘자연과의 교감’을 핵심에 두었다. 수목원이 힐링 요법이나 체험 프로그램 위주의 공간을 넘기를 바랐다. 사소한 바람, 냄새, 온도, 거미줄, 나뭇잎이 사각거리는 소리 등을 통해 지극히 개인적으로 느끼는 감각과 그로 인한 울림이 있는, 기억에 남는 장소이기를 원했다. 그래서 ‘감각’이 중요했다. 시각적 자극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장식적 수목원과는 달라야 했다. 물리적 계획과 형태적 특성은 덜 중요했다.
오림 수목원 설계는 큰 스케일에서는 다른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분석을 토대로 발전시켰지만, 공간의 세부적 구현과 이를 전달하는 과정에서는 직관적, 감각적, 감성적 요소를 사용했다. 오감이라는 감각의 종류보다는 경험의 시퀀스에 따라 ‘맞이하기, 홀리기, 탐험하기, 배우기, 보상 받기’라는 기승전결식의 프로그램, 다양한 동선과 이동 속도의 리듬, 건축물을 활용한 문지방 효과 등이 공간 구조의 뼈대를 이룬다. 경험적 스케일에서는 구체적 상상력이 설계를 전개했다. 그중 특히 흥미로웠던 ‘조향사의 숲’과 ‘밀리건의 숲’을 소개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7호(2018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HLD는 이호영과 이해인이 설립한 조경설계사무소로, 광범위한 분석과 접근 방법을 통해 대상지의 공간적 가치를 향상시키고 그 장소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인문·사회적으로 긍정적 변화를 끼칠 수 있는 핵심적 해법을 제공한다. 이호영은 고려대학교에서 원예학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과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을 전공했으며, 조경설계 서안, 미국 에이컴(AECOM), 오피스 ma(office ma)에서 조경과 도시설계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해인은 서울대학교와 UC 버클리(UC Berkeley)에서 도시계획을 공부하고 하버드 GSD에서 조경 설계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에이컴과 파퓰러스(POPULOUS)의 샌프란시스코 지사에서 다양한 조경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www.hldgrou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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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 박진 어반비즈서울 대표
달콤한 공존
자연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종종 사람들이 발견하기 힘든 스케일에 존재한다. 크고 화려하진 않지만 오늘도 묵묵히 예쁜 꽃을 피우고 있는 자연이 바로 우리 곁에 있다. 봄날, 회양목에 달린 작은 꽃들을 보았는가? 본래의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이 사정없이 깎이고 사람들의 발길질에 상처 입은 채 길거리의 먼지와 차의 매연을 뒤집어쓰고 있지만, 아무도 예쁘다, 멋있다, 알아주지 않는 회양목의 꽃은 꿀벌에게 소중한 식사를 제공해 주는 고마운 존재다.
그런 회양목에게 조용히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사람들, 도시의 작은 것들을 놓치지 않는 감수성을 지닌 사람들이 있다. 박진 대표가 2013년에 설립한, 도시에서 벌을 키우는 기업 ‘어반비즈서울’이다. 만드는 꿀의 양은 적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만드는 상품은 도시의 작은 것들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배려의 문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 양봉을 통해 벌을 따라가다 보니 무심코 지나치던 자연이 보였다. 벌꿀은 벌이 꿀을 생산하는 시기에 따라 겉보기뿐 아니라 맛도 변한다. 개화하는 꽃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벌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꽃을 관찰하게 된다. 자연에 눈이 갈 수밖에 없다.
도시에서 생산된 꿀은 오염되어 있을 거라고 짐작할 법하지만, 검사 결과는 선입견과 다르게 나왔다. 오히려 살충제나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아 안전하다. 과수원 근처에서 키우는 벌들은 농약 때문에 죽기도 한다. 토요일 오전에 모인 도시 양봉 교육생들은 임산부부터 퇴직자까지 무척 다양했다. 새로운 취미를 찾는 사람들,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부터, 그저 자연이 좋고 환경에 관심을 둔 사람들, 부업이나 창업을 생각하는 사람들까지…. 수업은 열띤 질문과 의견 교환으로 활기가 넘쳤다.
계절은 이미 가을로 접어들고, 거리에는 낙엽이 나뒹굴었다. 혜화동의 벌꿀 카페 아뻬 서울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어반비즈서울의 양봉가들을 조용히 읊조리고 있었다.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7호(2018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저서 『시티오브뉴욕』을 펴냈고,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다.UNKNP.com의 공동 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와 대구,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가졌다.울산 원도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일했으며,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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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탐독] 정원, 지금 우리는 어디에
식물이 없는 정원
료안지(龍安寺)라는 일본 정원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다소 논란이 있었다. 만들어진 시기와 정원을 디자인한 사람에 대해서 이견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료안지는 대략 15세기 즈음에 조성된 정원으로, 일본의 선불교 사상.여기에서 비롯한 디자인을 젠 스타일이라고 한다.에 바탕을 두고 만든 돌과 자갈 위주의 이른바 ‘가래 산세이’(마른 정원)의 가장 오래된 형태다. 문제는 이 정원의 담장 안에는 이끼 정도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식물이 없다는 점이다. 돌과 자갈로만 구성되어 식물을 키우지 않는 이 공간을 정원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정원 전문가들은 식물이 없다 할지라도 인간의 주거 공간 안에 조성된, 자연의 물성과 인간의 예술 행위가 공존하는 공간을 정원으로 인정하고 있다. 사찰 정원이 그 안에 식물을 담지 않았던 것은 정신 수련이라는 목적 때문이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버려서 마음속에 그 무엇도 담지 않으려고 한 수행이 결국 화려한 꽃을 피우는 식물을 담장 밖으로 보낸 셈이다.
생존을 담은 정원
역사학자들은 서양 정원의 모태를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파라다이스 정원’으로 본다. 그렇다면 식물이 자라기 힘든 지역인 메소포타미아의 사막에서 정원을 만들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사막의 삶에서는 물을 끌어오는 일이 가장 중요했고, 그 물을 해결하는 데 정원이라는 공간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만들어낸 십자 형태의 물길을 이용한 사분원(Char-bagh)도 결국 이 필연적 생존과 깊은 연관이 있다. 이 형태는 이집트와 고대 로마의 정원을 거쳐 훗날 서유럽 깊숙이 전파되면서 15~16세기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정원과 17세기 프랑스의 바로크 정원으로까지 이어진다. 마치 거대한 카펫을 펼친 듯 패턴을 수놓은 17세기 파르테르(parterre)정원의 등장은 서양 정원의 정형적 형태미의 꽃이다. 왜 이토록 형태와 패턴이 중요했을까. 페르시안 카펫에서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유목 생활을 해야 했던 이들에게는 정착의 삶이 없었다. 계속 이동하는 삶 속에서도 꿈꾼 아름다운 정원은 정착의 상징이다. 그래서 카펫에 화려한 정원을 수놓기 시작했다. 수많은 식물의 꽃을 그려 넣었고, 급기야는 정원의 평면도가 그 안에 자리 잡기도 했다. 정원의 꿈이 타일로 만들어져 벽에 붙고 카펫에 새겨졌으며, 그 안에서 다양한 패턴과 형태가 생겨났다. 그래서 정원은 이루고자 하는 꿈이었고 생존이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7호(2018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오경아는 방송 작가 출신으로 현재는 가든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영국 에식스 대학교 리틀 칼리지에서 조경학 석사를 마쳤고, 박사 과정 중에 있다. 『정원생활자』, 『시골의 발견』, 『가든 디자인의 발견』, 『정원의 발견』,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외 다수의 저서가 있고, 현재 신문, 잡지 등의 매체에 정원을 인문학적으로 바라보는 칼럼을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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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스케이프] 공작
갑자기 이리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백주대낮에 남북한 지도자가 손을 꼭 잡고 군사분계선을 왔다 갔다 하질 않나, 지상파에서 평양 시내 모습을 거리낌 없이 보여주질 않나. 지난해만 해도 상상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 틈을 타고 북한에 대한 포럼이나 전시회 등이 봇물 터지듯 열리고 있다. 몇 개월 앞을 예측할 수 없으니 북한 관련 행사를 기획하기 부담스럽다는 하소연도 들린다.
얼마 전부터는 구글 어스가 평양의 지도와 3차원 뷰를 제공하고 있다. 저 아파트엔 어떤 사람이 살고 있을까. 저녁 반찬으로 무얼 먹을까. 휴일에는 어디서 시간을 보낼까. 그들은 이미 다양한 경로로 남한에 대해 알고 있다는데 오히려 우리는 제대로 아는 바가 없다. 대통령이 금단의 땅으로 향한 며칠 동안 실시간으로 평양의 경관을 볼 수 있었고, 북한 주민들의 인터뷰를 들었다.
영화 ‘공작’은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대북 첩보 활동을 펼친 공작원의 이야기다. 북한의 핵 개발로 위기가 고조되던 1990년대 초반 상황을 다루고 있다. 핵 시설의 정보를 얻기 위해 사업가로 위장한 박석영(황정민 분)은 베이징에서 북한의 리명운(이성민 분)과 접촉한다. 북한에서 촬영할 구실을 마련하기 위해 남북 합작 광고를 제안하고 평양에 가서 최고 지도자를 만나기에 이른다. 친숙한 첩보 장르지만 익숙한 총질이나 액션 신은 등장하지 않는다. 서로 속내를 숨긴 채 대화로만 긴장감을 팽팽하게 유지한다. 건조하고 차갑게 그리던 전반부 분위기와는 달리 신파에 가까운 뜨거움으로 전환된 후반부가 다소 아쉽게 느껴지지만, 재현된 공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드는 영화다.
1990년대 공간의 재현은 물리적 요소를 사실과 비슷하게 만드는 것을 기본으로 하지만, 창작자의 이데올로기와 세계관이 투영될 수밖에 없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 데다 특수한 시대의 폐쇄적 공간을 다루기에 기대가 됐다. 화려한 액션 신보다 인물과 상황에 집중하는 영화 스타일에 비춰 볼 때 공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영화의 주요 무대인 베이징의 특급 호텔과 야시장, 평양시 전경과 김정일 별장, 영변 구룡강 장마당 등을 재현하기 위해 분위기가 유사한 곳을 찾거나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세트를 제작했다고 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7호(2018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내 아버지의 고향은 군사 분계선에서 멀지 않은 장단이다. 내 아이보다 어린 나이에 형의 손을 잡고 떠나온 후 눈을 감을 때까지 헤어진 부모를 영영 만나지 못했다. 고향의 뒷산이 빤히 보이는 전망대에 올라 울곤 했다는 그의 청년기 에피소드가 더 아프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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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그들이 설계하는 법, 2014~2018
간단한 퀴즈 하나. 2014년 리뉴얼 이후 가장 오래 이어가고 있는 『환경과조경』의 연재 꼭지는 무엇일까요? 많은 독자가 쉽게 정답을 맞히셨을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이 설계하는 법’입니다. 청명한 가을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출간된 이번 10월호에는 ‘그들이 설계하는 법’의 마지막 주자가 연재를 시작합니다. HLD의 이호영, 이해인 소장입니다. 열독률이 가장 높았던 연재물 중 하나인 ‘그들이 설계하는 법’은 이호영+이해인 소장 편을 끝으로 올 12월호에 5년간의 긴 항해를 마칩니다.
리뉴얼 첫해인 2014년 1월부터 세 달간 ‘그들이 설계하는 법’의 첫 주자를 맡아 준 조경가는 디자인 스튜디오 로사이의 박승진(309~311호) 소장이었습니다. 이어서 스튜디오 101(연재 당시 지드앤파트너스)의 김현민(312~314호), 스튜디오 테라/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의 김아연(315~317호), 수퍼매스 스튜디오의 차태욱(318~319호) 소장이 ‘그들이 설계하는 법’에 동참해 자신의 설계 태도와 작업 방식에 대한 다채롭고 폭넓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2015년에는 오피스박김의 박윤진+김정윤(321~323호), 디자인 로직의 오형석(324~326호), 쿠토노톡의 조리나(327~329호), 조경작업소 울의 김연금(330~332호) 소장이 특유의 개성 넘치는 작업을 선보이며 그 이면 의 사연을 공개했습니다.
네 명의 조경가가 2016년의 ‘그들이 설계하는 법’을 이어갔습니다. 오피스 오브 어반 터레인즈/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의 서예례(333~335호), 가원조경설계사무소의 안세헌(336호), CA조경기술사사무소/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원의 진양교(339~341호), 조경설계사무소 엘의 박준서(342~344호) 소장이 그간의 설계 작업을 통해 전개해 온 실험과 도전의 시선을 보여주었습니다. 2017년에는 아뜰리에나무의 이수학(345~347호), 세계수프로젝트/자연감각의 백종현(348~350호), 스튜디오 MRDO의 전진현(351~353호), 조경디자인 린의 이재연(354~356호) 소장이 작업 과정에서 연마해 온 고유의 사고와 접근 방법을 지면에 담았습니다.
5년째인 올해에는 랩 D+H의 최영준(357~359호), 조경설계 호원의 김호윤(361~362호), 스튜디오 오픈니스의 최재혁(363~365호) 소장이 설계를 대하는 다양한 태도와 관점을 펼치며 토론의 장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호부터 세 달간 이어질 HLD 이호영+이해인(366~368호) 소장의 연재를 끝으로 ‘그들이 설계하는 법’은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편집자이지만 동시에 한 명의 독자로서, 벌써 아쉬운 마음 가득합니다. 모처럼 과월호 수십 권을 쌓아놓고 스무 명 넘는 조경가가 5년간 쏟아낸 다층다각의 이야기를 다시 펼쳐봅니다. 누구에게 원고를 청탁할 것인가를 두고 벌였던 편집부 내의 격론, 섭외 과정의 삼고초려와 많은 에피소드, 교정과 교열 과정에서 진행된 필자들과의 긴장감 넘치는 토론, 여러 독자의 흥미진진한 피드백이 시간 여행을 하듯 다시 떠오릅니다. 한 달에 한 편만 읽다가 스무 명 조경가의 설계하는 법을 모아서 한 번에 읽으니 그야말로 ‘시너지 효과’라는 말의 뜻을 실감하게 됩니다. 편집자의 ‘근자감’일까요? 내년에는 더 잘 추스르고 다듬어서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볼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편집자로서 자평하자면, ‘그들이 설계하는 법’의 가장 큰 성과는 동시대 한국의 조경가들이 자신의 작업 과정과 산물 그리고 그 이면의 생각에 대해 직접 글을 쓰고 독자와 소통할 장을 열었다는 점입니다. 5년간 참여한 조경가 중 몇몇은 평소에 다양한 지면에 다채로운 형식의 글을 발표해 온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글을 통해 독자와 대화한경우가 드뭅니다. ‘그들이 설계하는 법’ 연재는 그들 스스로 설계 사유와 작업 성과의 일면을 정리하는 기회이자, 동료 조경가와 학생들에게 자극과 토론의 소재를 낳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자신의 글로 자신의 설계 여정을 기록한 것 자체만으로도 조경가 개인은 물론 한국 현대 조경은 의미 있는 아카이빙을 한 셈입니다.
‘그들이 설계하는 법’에 부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의미는, 이 지면이 지금 이곳에서 성장하고 있는 젊은 조경가들을 적어도 조경계 내부에 적극적으로 노출시키는 장이었다는 점입니다. 5년간 지면을 이어간 스무 명 필자 중 50대 이상의 중견 조경가가 일곱 명이었지만, 나머지 다수는 30대와 40대의 소장 조경가였습니다. 자신의 오피스를 열고 독립한 지 1~2년 남짓한 신예 조경가에게도 원고를부탁했습니다. 변화의 촉매가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거창한 변화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한국 현대 조경의 역사가 45년을 넘어서고 있지만, 아직, 지금 이곳에서는 조경가를 찾기 쉽지 않습니다. 분야 형성의 초창기와 성장기를 겪으며 많은 선배 조경가들이 분투해 왔음에도 한국의 조경은 전문 직능으로서도, 학문 분과로서도 뚜렷한 정체성을 세우지 못한 형편입니다. 영역을 빼앗기고 있다는 불안감과 영토를 넓혀야 한다는 피로감, 이 이중의 집단 우울증을 겪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보편적으로 승인하는 전문가professional로서의 조경가, 늦었지만 우선 조경계 내부에서라도 스스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들이 설계하는 법’이 의 미 있는 변화의 계기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2014년 1월, “조경 문화 발전소”를 꿈꾸며 새 출발을 선언한 『환경과조경』은 지난 5년간 “한국 조경의 문화적 성숙을 이끄는 공론장”, “조경 담론과 비평을 생산하고 나누는 사회적 소통장”, “세계적 동시대성과 지역성을 수용하고 발굴하는 전진 기지”를 지향해 왔습니다. ‘그들이 설계하는 법’은 『환경과조경』의 새 비전을 실험하고 구체화하는 가장 전략적인 지면이었습니다. 바쁜 시간을 쪼개 자료를 갈무리하고 원고를 보내 준 ‘그들’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즐겨 읽고 다양한 피드백을 보내 준 여러 독자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원고를 꼭 받고 싶었으나 끝내 고사한 그들, 그리고 마땅히 초대해야 했으나 이른바 ‘균형론’이나 ‘안배론’에 귀 기울이느라 순서를 미루고만 많은 그들은 내년에 새롭게 문을 열 후속 지면을 통해 초대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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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설계하는 법] 시작
다 시작이 어렵다. 프로젝트도, 회사도, 연재도.
3년 전 이호영과 이해인이 시작한 뒤, HLD는 2018년 10월 송영민, 박상현, 송주익, 이진선, 신영재, 김주환이 합류한 여덟 명의 그룹으로 성장했다. 3개월간 연재할 ‘그들이 설계하는 법’은 이 여덟 명 모두의 설계 이야기를 담고 있다.
타임라인
프로젝트에 제약이 많은 것이 꼭 나쁜 일은 아니다. 안되는 걸 배제하고 문제를 해결하다 보면, 꼭 새로운 것을 하려던 게 아니더라도 대상지 고유의 설계가 나오기도 한다. 그렇지 않은 프로젝트는 도통 시작하기가 어렵다. 무엇도 될 수 있다 보니 뭘 해도 근본 없이 느껴진다. 또는 이미 직관적으로 결론을 낸 것이라도 다시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할 때가 있다. 발주처뿐만 아니라 설계안을 함께 결정하는 팀 또는 스스로에게도 그런 논리를 피력해야 할 때가 있다. 막막한 순간이다.
이럴 때 HLD가 자주 찾는 돌파구 중 하나가 타임라인(timeline)이다. 타임라인은 시간 순서로 사건을 나열한 표 또는 그림이다. 연표라고도 하지만 더 넓은 의미가 함축된 탓에 그냥 타임라인이라고 번역한다. 타임라인을 설계에 활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새로운 시도에 개연성을 부여해 주기 때문이다. 다음 연재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설계의 독창성은 대상지의 장소성에서 가장 강력하게 기인한다. 우리가 왜 이런 설계를 하는지 당위성을 부여하고 개연성을 보태는 것은, 시대별로 왜 각기 다른 일이 일어났는지 그 역학을 이해하고 어떤 변화 추이가 있었는지 알아낸 뒤 이를 현재에 대입하는 과정이다. 이런 통시적(diachronic)추론을 하는 도구가 타임라인이다.
Ecology as Industry 산업으로서의 생태’1의 타임라인을
예로 들어보자. 이 타임라인은 해수면 상승에 따라 바
다 밑으로 가라앉을 위기를 마주한 네덜란드의 강 하구 도시를 향해 그동안 의존해 온 공학적 해법에서 탈
피하고 에너지원과 무역 방식을 바꾸라고 말한다. 앞으로 도시 개발을 어떤 방향으로 할까 물었을 뿐인데,
네덜란드의 정체성과도 같은 공학적 방법을 버리라니
황당하리만큼 과격한 주장이다.
이런 주장이 가능한 것은 두 개의 타임라인 덕분이
다. 첫 번째 ‘Landscape of the Delta History
강 하구 경관의 역사’는 선사 시대부터 현재까지의 네덜란
드 역사를 개간, 농업, 경제, 예술, 인물, 지리 등 다양
한 각도에서 살펴 강 하구 지역의 경관이 이 모든 요
소와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두 번째는
‘Engineering and De-Engineering 공학적 방식과 탈
공학적 방식’ 그래프로, 제방을 쌓는 것과 지반 침하의 관
계, 에너지 소비와 항구의 비대화, 통수 단면 감소의
관계를 연관 지어 보여 준다. 둑을 쌓고 그 안의 이탄
을 채취하고 물을 빼내는 기존 방식은 지반 침하를 일으켜 안 그래도 낮은 땅을 더 가라앉게 만든다. 결국
더 길고 높은 둑이 필요해진다.
한편 무역으로 점차 비
대해지는 로테르담 항구의 성장을 위해 강 하구에 퇴
적되는 모래가 끊임없이 준설되는데, 이는 하구 지역의 1차 홍수 방어선을 없애는 것과 같다. 이 거대한 항
구 대부분은 오일 탱크가 차지하고 있다. 화석 연료는
유한하고 환경 오염과 기후 변화를 가속한다. 이곳은
해수면 상승뿐 아니라 집중 호우와 도시화로 인한 투수 면적 감소로 강 범람의 위협도 받고 있으니, 화석연료의 이용과 유통을 위해 치르는 이 모든 수고로움에 의문이 제기된다. 이러한 내용을 지반 침하의 기작
을 설명하는 그래프에 중첩하고 모래의 퇴적을 새로운 변수로 넣어 지금까지의 추이를 반전시킬 수 있는
액션—항구와 댐을 부수고 인공 섬을 만들어 삼각주 지형을 회복하는
것—을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늘 하던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할 때, 타임라인은 순발력 있게 논리와 직관을 함께
활용하는 방식으로 유용하다. 물리적 설계의 범주를
벗어나 국제 경제나 무역과 같이 설계와 다소 무관하
다고 여겨지는 부분까지 함께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도 의미가 있다. HLD가 프로젝트에 타임라인을 활용했
던 몇 가지 경우를 소개하고자 한다.
통영 도시재생
통영 타임라인은 ‘통영 폐조선소 도시재생 마스터플랜
국제공모’2
참가의향서의 첫 페이지에 넣었던 것으로
공모 지침에 대해 우리가 이해한 바를 시각적으로 압축한 것이다. 타임라인의 목표는 우리가 대상지를 충
분히 관심 있게 들여다보았다는 것을 전달하는 것이
절반, 설계 해법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 절반 정도였다.
타임라인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앞의 사례만큼 강한
상호 관계를 드러내지는 않는다. 통영 워터프런트 경관을 구성했던 주요 이미지 조각들이 엉겨 붙어 있고
조선소의 영역이 길게 펼쳐져 이를 떠받치고 있는데,
선의 두께가 마치 조선소와 함께한 통영 워터프런트의 흥망성쇠 같다. 과거와 미래에 조금씩 등장하는 물을 제외하고는 모두 흑백으로 표현해 마치 모두 과거의 영화이고 여기에 큰 기대를 거는 건 늦은 일인 듯
한 인상을 준다.
배경으로 배치한 네 개의 지도는 통영
과 항구의 관계를 함축적으로 보여 주고 도시와 항구의 위기가 분리될 수 없음을 드러낸다. 여기까지가 역사를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 중립적인 타임라인
이라면, 그 옆 통계 자료의 높이 치솟는 인구수와 불안해져 가는 인구 피라미드, 다양한 수치는 위기감을
증폭시킨다. 폐조선소 부지를 설계 대상지로만 보는
눈에서 벗어나 이곳에 살거나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 종합적 도시재생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방향성을 내포한다.
타임라인은 방대한 자료 조사와 분석, 시간 순서라는
객관적 요소를 기반으로 하지만, 인과 관계를 추출하
고 가중치를 주는 과정에서 통찰력과 주관적 해석이
관여하고, 전달 과정에서는 주로 시각적 표현이 직관적 이해에 영향을 준다는 점이 흥미롭다.
벅민스터 풀러Buckminster Fuller의 차트처럼 아주 간결
한 정보와 표현법을 가지고도 현 시대의 역동성과 진보의 기운을 전달할 수 있다. 역사상 최고의 통계적
그래픽이라고 칭송받기도 하는 샤를 조제프 미나르
Charles Joseph Minard의 ‘나폴레옹 러시아 행군 지도’
타임라인3
은 적절히 추상화된 꺾인 직선, 진격과 후퇴
선의 대조, 돌아오는 출발선에서는 정확히 같은 두께
였지만 점차 내려가는 기온과 함께 얇아지는 생존자의
띠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한니발의 포에니 전쟁 통계
지도보다 지리적 정보를 많이 생략 또는 왜곡하고 있음에도 더 강한 전달력을 갖는다.
정보를 추출하고 가중치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조사를
소홀히 하거나 논증을 게을리하면, 주관이 개입해 논리적 비약으로 이어질 수 있는 단점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타임라인은 분명 어느 설계에서나 만병통치약처럼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다. 쓸모가 있다 하더라도 제대로 완성하기 위해서는 찾아내고 검증할 것이
많아 늘 시간에 쫓기는 설계 작업에서 차분히 타임라인을 만드는 것은 사치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설계
초반 작업부터 분야를 아우르는 협업을 통해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듯한 분석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타임라인이 제시하는 방향의 개연성만 택할
뿐, 그 외의 타당성은 공시적synchronic 측면에서 대상지를 이해하고 설계를 풀어 나가야 한다.
노들섬
‘노들꿈섬 공간·시설조성(3차) 설계공모’4
의 경우 운영
프로그램과 운영 주체가 정해진 뒤에 공간 설계공모
가 진행되었다. 따라서 섬 상단부는 지침의 요구 사항
을 어떻게 수용하느냐의 문제인 반면, 섬의 하단부에
는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었다.
노들섬 타임라인에서는 이촌 지구가 너른 모래사장일
때부터 교량 건설을 위한 중지도가 되고, 이후 타원형
의 길쭉한 섬으로 변형되고 남겨진 뒤 새로운 공공 공
간으로서의 쓰임을 고민하게 된 오늘날까지의 변천사
를 ‘땅과 물의 관계’와 이에 따른 ‘공공의 이익’이라는
두 측면에 집중하여 조명했다. 치수와 교통 측면만 강
조하다가 사라지게 된 모래톱 경관을 복원하기 위해
섬 하단부의 단단한 경계를 허물어 노들섬의 문화적,
생태적, 기능적 관계가 유연해져야 한다는 점을 암시
했다.
마스터플랜에서 섬의 상단부에는 동쪽의 노들숲 보전
지역과 서쪽의 음악 관련 운영 프로그램이 대조적으로
양측에 자리한다. 도시적 파사드 너머로는 잔디 마당
이 있어 하단부의 생태 공원으로 연결된다. 유속이 느려지는 섬의 후미에 자리한 생태 공원은 기존의 콘크
리트 호안 일부를 깨고 물이 드나들 수 있는 자연 습지로 조성한다. 유속을 느리게 하는 구조물을 설치해
밤섬처럼 자연 습지 뒤로 모래톱의 성장을 유도한다.
섬 가장자리를 빙 둘러 연결하는 프롬나드는 북서쪽의
자연 호안 영역과 남동쪽 호안의 도시적 영역을 하나로 엮어 준다.
타임라인에서 제시한 땅과 물의 관계는 마스터플랜뿐
아니라 보고서 전반에 별다른 설명 없이 사용한 1950년대 미 군정 지도 중첩 이미지에서도 반복적으로 드러난다. 특히 원래 모래사장이던 수심이 얕은 곳을 중
심으로 얼어붙은 한강 사진은 절묘하게 옛 지도의 모래사장과 겹쳐진다. 보고서를 마치며 이 사진에 설계
제안을 합성해 우리의 제안이 임의적이지 않음을 보여
주는 에필로그 이미지로 사용했다.
창원 대상공원
타임라인을 늘 프로젝트 초반에 만드는 것은 아니다.
창원 대상공원의 타임라인은 마스터플랜이 정리되어
갈 때쯤 공모전 제출을 위해 프로젝트 제목과 부제를
정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창원 도심 내 산지형 녹
지인 대상공원의 비전을 설명하기 위해, 뉴욕의 센트
럴 파크를 연상시켜 즉각적인 이해를 돕는 ‘센트럴 힐
Central Hill’을 제목으로 잡았지만 실제 우리 설계 개념
을 설명하는 제목은 ‘인프라스트럭처로서의 공원Park
as Infrastructure’이었다. 이 자체가 생소한 개념은 아니
지만 왜 인프라스트럭처여야 하는지, 여기서 이야기하
는 인프라스트럭처가 무엇인지에 대한 명쾌한 설명이
도입부에 필요했다.
인프라스트럭처라고 하면 도로나 상하수도와 같은 기
반 시설이 먼저 떠오르지만, 넓은 의미에서 인프라스
트럭처란 사회나 어떤 조직의 운영을 위해 필요한 기
본적인 물리적·조직적 구조를 말한다. 대상공원은 도시 개발 과정에서 언덕 지형 덕분에 어쩔 수 없이 남겨진 잉여 공간이었지만, 개발이 진행됨에 따라 언덕 바로 밑까지 들이차게 된 다양한 프로그램은 이곳이 단순히 도심 내 녹색 허파나 뒷산 산책로일 뿐만 아니라
더 많은 가치를 지니기를 요구한다. 숲은 단순히 배경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농업·여가·교육·예
술을 적극적으로 담아냄으로써 창원 시민의 삶의 중심이 된다.
숲 고유의 순기능을 보전하면서도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도시와 맞닿은 곳마다 그곳의
토지 이용, 지형, 동선의 특징을 반영한 접점을 만들
필요가 있다. 대상공원은 프로그램 연계, 물리적 연결,
경험의 연결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연결고리를 만들며 도시의 인프라스트럭처가 된다.
아래의 타임라인은 주어진 대상지의 형태 외에 어떠한
물리적 형태도 직접적으로 암시하고 있지 않다. 집라
인을 탄 사람이나 날아가는 새의 이미지가 개념적이고감성적인 것임에 반해, 이와 같은 통찰에서 파생되어
나온 프로그램, 물리적 연결, 경험 동선은 대상지에 실
재하는 맥락에 기반을 둔 것이고 마스터플랜에 그대로
드러난다.
타임라인만큼 심오하지는 않더라도, 관습적 설계에서
벗어나 ‘그다음은 뭐?’라는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프
로젝트를 시작할 때 사례 연구를 통한 트렌드 분석을
많이 한다. 참고 이미지를 찾거나 스케일 비교를 하는
것 외에, 사례를 시간 순서로 엮어 그 변천 과정을 추
론하거나, 유형별로 분류해 제3의 유형을 찾아내거나,
오늘날의 현안이 무엇인지 찾아낸다.
A기업 R&D 센터
중국의 건설 자재 제조 기업인 야샤YASHA의 본사를
설계할 때는 발주자의 요구 사항이 구체적이지 않아
앞으로 한 발 내딛기가 어려웠다가, 효과적으로 사례
를 유형별로 분류한 덕에 빠르게 진전된 적이 있다. 기업 본사 캠퍼스 디자인의 기능은 여러 가지다. 그중 특히 기업의 가치를 외부에 표현하는 방식을 유형별로
정리했다. 기업이 추구하는 바(예: 로레알의 아름다움)를 상
징하거나 기업 브랜드 이미지의 가장 강력한 요소(아디
다스의 세 개의 띠, 신발 끈)를 ‘부서 간 협력’이라는 기업의
운영 방침과 연계해서 동선으로 활용한 사례 등 은유,
환유, 상징 등 다양한 기법이 있다. IBM과 같은 IT 기업의 경우 회로에서 연상되는 모습이 표착되기도 하는데, 두 사례 모두 형태 자체보다는 그런 형태가 가
진 특성을 자기 나름의 목적—선 체계 개선, 사회적 공간 형성
등—에 맞게 활용한 점이 재미있다.
5년이 흐른 뒤, 위의 다양한 유형은 모두 이전 방식을
보여 주는 사례가 되었다. 기존 사례에서는 ‘상징’이나
‘브랜드 표현’이 중요했다면, 2018년에 제안하는 본사
캠퍼스의 디자인에서는 인튜잇이나 구글 캠퍼스 비전에서 엿볼 수 있는 것처럼 기업들이 자기 만족적으로
홈페이지에 걸어둔 기업 정신이 아니라 기업 구성원이
만든 하나의 공동체 또는 사회로서의 기업 문화를 드
러내거나 양성하려고 한다. 또 로고를 드러내기보다는
임직원에게 주어지는 혜택을 늘리고 드러내는 데 중점
을 두고 있다. 임직원에게 제공하는 복지의 종류와 수
준에 따라 회사가 얼마나 미래 지향적이고 진취적인지
드러나기 때문일 것이다.
A 기업 R&D 센터를 디자인하면서 이러한 트렌드를
설계 목표의 중심에 뒀다. 라이언 뮬리닉스Ryan Mullenix와 존 메디나John Medina는 설계가 어떻게 사람의 생물학적·경험적 측면에 영향을 주어 이용자의 편
안함과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지 논하면서, 미래의 오피스에서 조직과 구성원의 건강을 위해 꼭 필요
한 점을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1. 조용히 하기-브레인스토밍을 제외하고keep it down-unless
brainstorming, 2. 녹음 증가go green, 3. 시각적 휴식
제공seek visual relief, 4. 움직이기get a move on, 5. 생각하며 먹기eat to think. HLD는 이를 다시 1. 자연으로의 접근성access to nature, 2. 선택의 유연함과 결정력flexibility & control, 3. 생산적 놀이positive distraction,
4. 건강과 복지health & wellbeing, 5. 시각적 휴식visual
relief으로 재정의해서 A 기업 R&D 센터의 다양한 오픈스페이스에 적용했다.
여주관광단지 수목원
수목원을 어떻게 설계할까 하는 고민도 시대별로 변하는 사회적 요구, 기능, 형태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했다. 구체적인 기획 없이 나온 공간 설계공모에서 하나
마나 한 지역적 맥락 분석과 숙제하듯 채워내는 현황
분석은 대폭 줄였다. 제안서 분량의 2% 정도밖에 차지하지 않지만 기존에 있던 수목원과는 다른 방향을 제시하겠다는 운을 띄우기는 충분했다. 제안서의 첫머리
에 쓴 글을 소개한다.
역사적 고찰: 이탈리아의 약초 정원에서 기원하는 수목원은 사회적으로 중시되는 가치에 따라 그 기능을
달리했고 형태 또한 이에 따라 변화해 왔다. 17세기에는 세계 각국을 탐험하며 획득한 이국적 수종 수집 및
보관을 위한 공간이었고, 주로 초본류를 위한 정원이나 온실 중심이었다. 식물분류학을 중심으로 숲과 식
물에 대한 과학적 연구 및 식물 종 다양성 보존의 기능이 강화되면서 학명이나 종, 속에 따른 배치가 시도되었다. 18세기 이후에는 대중이 이용하는 오픈스
페이스로서의 기능이 강화되어 플레저 가든pleasure
garden 기능을 중심으로 전 세계적으로 공원 형태의
수목원이 많이 조성되었다. 현대에는 생태 및 지속 가
능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시 수목원의 연구
기능이 중시되고 특히 교육 및 전시 프로그램이 강화
되면서 이를 위한 건축물이 강조되었다. 오늘날 수목
원에는 이런 다양한 기능을 고루 담되 차별화를 위해다양화를 시도하고 있다. 내일의 수목원은 어떤 가치,
어떤 기능을 담아야 할까?
수목원을 단순히 성공적인 관광지로 계획하는 것을
넘어 시대적으로 사회에 필요한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점을 말하고자 했다. 다음은 장 줄리앙Jean Jullien의
삽화와 함께 소통 없이 점점 고립되어가는 개인주의
사회에서 자연과의 교감이 중요하다는 점, 그리고 늘
보던 ‘힐링 산업’ 팔기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 내용이다.
현대 사회 진단: 어느 사회나 점점 개인화되는 경향을 우려했지만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 사회는 IT 기술 발달로 인해 전에 없던 속도로 개인화가 진행 중이다. 각자 고립되어 소통하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개인이 도구화되기 쉽고, 필요에 의해서만 서로 의존하는 사회에서는 개인이 느끼는 외로움이 커질 수밖에 없다. 공동체가 와해된 사회에서는 외로움 같은 스트레스를 해결하기 위한 힐링이 해법이 되기보다는 산업이 되고, 갖가지 힐링 상품은 곧 유행에 따라 식상해
진다. 이제 지친 도시민에게 자연을 가까이 가져다 주는 것이 해결책이 되던 시대는 지났다. 오지로의 여행도 쉬워진 요즘에는 자연에의 접근성이나 자연 환경의
퀄리티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연이 주는 감성과 감각을 느끼고 잘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연이
중요하다는 교육이나 캠페인도, 형형색색의 꽃과 조명도 충분하지 않다. 자연과의 교감이 어렵지 않고 더 재미있을 수는 없을까?
체험한다면서 이것저것 번거롭게 하는 유행도 곧 지나
갈 것이다. A 기업 R&D 센터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디자인을 통해 감성적, 감각적 측면에서 유의미한 변
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상상력: 타임라인이 논리적 형태를 빌린 직관이라면
그 반대 선상에 스토리텔링이라는 감성적이고 감각적
인 접근이 있다. ‘감각을 일깨우는 수목원’이라 하여
자칫 미각, 후각, 시각, 청각, 촉각을 하나씩 활용한다
는 클리셰로 빠지기 쉬운데, 이는 숲에서 열리는 요가
클래스, 수목원에서 재배한 블루베리 잼만큼 따분한
이야기 아닌가. 그래서 여주관광단지 수목원 제안에서
는 논리적 전개보다는 개인적 경험, 사소한 관찰, 상세
한 상상력을 대폭 활용했다.숲 속 디스틸러distillery
에서 나만의 레이블을 만들고, 밀리건의 집에 들어가
뱀의 껍질을 엿볼 수 있는 ‘오림’의 이야기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는 ‘전개’를 다룰 다음 연재에서 이야기하려
한다(첫 회).
각주
1.
이해인·박경탁·신수민 공동 작업, ‘Ecology as Industry’,
Delta Competition 우승작, 2010.
2.
HLD·이노션·SWA(SF office)·일신건축·평화엔지니어링·
삼일회계법인·이재경(홍익대학교) 공동 작업, 통영 폐조선소 도시재생
마스터플랜 국제공모 참가의향서, 2018.
3.
대니얼 로젠버그(Daniel Rosenberg)·앤서니 그래프턴
(Anthony Grafton), 김형규 역, 『시간 지도의 탄생: 고대에서
현대까지 연표의 진화와 역사』, 현실문화연구, 2013.
4.
HLD·일신건축·유은정·정승영·Mingyu Yin 공동 작업,
‘Nodeul, un-plugged’, 노들꿈섬 공간·시설조성(3차) 설계공모
가작, 2016.
HLD는 이호영과 이해인이 설립한 조경설계사무소로, 광범위한 분석과 접근 방법을 통해 대상지의 공간적 가치를 향상시키고 그 장소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인문·사회적으로 긍정적 변화를 끼칠 수 있는 핵심적 해법을 제공한다. 이호영은 고려대학교에서 원예학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과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을 전공했으며, 조경설계서안, 미국 에이컴(AECOM), 오피스 ma(office ma)에서 조경과 도시설계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해인은 서울대학교와 UC 버클리(UC Berkeley)에서 도시계획을 공부하고 하버드 GSD에서 조경 설계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에이컴과 파퓰러스(POPULOUS)의 샌프란시스코 지사에서 다양한 조경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www.hldgrou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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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 미래의 공원
강성칠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감사실장
수도권매립지는 세계에서 가장 큰 폐기물 처리 시설이다. 향후 공원화 사업이 완료되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초대형 오픈스페이스가 탄생하게 된다. 매립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최초의 사례로는 대구수목원이 있지만, 수도권매립지는 상상력의 한계를 넘어선다. 청라, 영종, 김포 신도시에 둘러싸인 이 어마어마한 땅은 오픈스페이스를 통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다.
차를 타고 돌아본 수도권매립지의 얼굴은 참 다양했다. 느긋한 오후를 즐기는 골퍼, 산책 나온 시민, 수영장 주차장의 차, 분주하게 식물을 다듬고 있는 정원사, 황량한 황톳빛 차폐막을 뚫고 선 가스 배출관, 아스라이 보이는 청라 신도시의 초고층 건물, 드문드문 흩어진 서해의 섬들. 무엇보다도 문명과 물질과 욕망의 역사가 농축된 이곳이 생태적으로 가장 온전한 보석이라는 아이러니가 초현실주의적 아름다움을 내뿜고 있었다. 인간의 역사를 되돌려가는 자연의 힘이 느껴졌다.
강성칠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감사실장(전 문화조경사업처장)은 자연의 힘을 실험하고 있는 조경가다. “수도권매립지 간척 후 생태계 변화 및 생태적 특성을 고려한 관리 방안 연구”라는 조경학 박사 논문을 쓰기도 했다. 조경을 단순히 흉물을 가리고 치장하는 녹화 업무로 한정하지 않고, 문화의 축이자 생태계의 프로세스로 전망하는 전문가가 수도권매립지의 재생을 이끌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대부분의 조경인에게 수도권매립지는 아직 낯선 땅이다. 그가 바친 젊음, 프런티어로서의 모험심과 기술인으로서의 경륜, 미래지향적 비전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커다란 녹색의 감흥과 곧 다가올 창조적 재생의 기회를 영영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6호(2018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 저서 『시티오브뉴욕』을 펴냈고,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와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가졌다. 울산 원도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일했으며,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