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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원 탐독] 여성과 정원
    지금으로서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 있겠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 문명에서 정원 문화는 귀족과 남성의 전유물 이었다. 정원 문화 속에서 여성의 역할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활동이 밖으로 드러나지 못했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국의 에드워드 시대(Edwardian Era)(1890~1914) 에 이르면 정원에서 여성의 바람이 거세게 일어난다. 이 시기를 주도한 여성으로는 정원 디자이너 거트루드 지킬(Gertrude Jekyll)(1843~1932), 정원 역사 이론가 얼리샤 애머스트(Alicia Amherst)(1865~1941), 정열적인 원예 재배사 엘런 윌모트(Ellen Willmott)(1858~1934), 그리고 여성 정원사를 위한 대학을 설립한 교육자 프랜시스 울슬리(Frances Wolseley)(1892~1936) 등이 있다. 이들은 당시 서로 친분으로 엮여 있었고, 서로에게 각자의 방식으로 영향을 주면서 이전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정원 문화를 만들어 갔다. 이들이 일으킨 정원 문화는 정원사의 큰 축을 바꾸었다. 이론, 학문, 원예, 디자인 분야에서 동시다발적 협업이 이뤄지면서 부와 취미의 상징으로만 여겨지던 정원을 그 시대의 핵심적 문화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영향은 영국에 그치지 않고 미국과 호주로 건너가 20세기와 21세기에 걸쳐 세계적으로 ‘가드닝 문화’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된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도 불고 있는 정원과 가드닝에 대한 관심은 결코 느닷없이 불어 닥친 유행이 아니다. 그렇다면 여성에 의해 선도된 정원 문화는 그 이전의 시대와 어떻게 달랐고, 어떤 변화를 일으켰을까. 또 앞으로 어떤 길을 찾아갈 것인가. 이 쉽지 않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어쩌면 우리보다 한 세기 전에 태어나 정원을 위해 산 여성들의 삶을 통해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중략)... * 환경과조경 363호(2018년 7월호) 수록본 일부 오경아는 방송 작가 출신으로 현재는 가든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영국 에식스 대학교(The University of Essex) 리틀 칼리지(Writtle College)에서 조경학 석사를 마쳤고, 박사 과정 중에 있다. 『정원생활자』, 『시골의 발견』, 『가든 디자인의 발견』, 『정원의 발견』,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외 다수의 저서가 있고, 현재 신문, 잡지 등의 매체에 정원을 인문학적으로 바라보는 칼럼을 집필 중이다.
  • [시네마 스케이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그해 여름, 눈부신 찰나의 순간
    몇 해 전 여름, 이탈리아 정원 답사 여행 중 투스카니 지방의 언덕 위 작은 호텔에 묵을 때였다. 올리브 나무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고, 야외에 차려진 아침 식탁에는 방금 딴 살구가 나왔다. 일행들이 답사를 나간 동안 호텔에서 빌려주는 자전거를 타고 시골길을 둘러보기로 했다. 포플러 나무 사이로 바람을 가르며 시원하게 언덕길을 내려 왔다. 짧은 행복도 잠시, ‘아뿔싸, 저 언덕을 다시 올라가야 하는구나.’ 내려갈 때와 달리 땀을 비 오듯 쏟으며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 데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무더위 때문에 일행들도 일찌감치 숙소로 돌아와 수영장에서 한가로운 오후를 보냈다. 사서 고생한 반나절이었지만 자전거, 녹음, 수영장, 살구 그리고 한여름 햇볕의 기억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보다 문득 그해 여름이 생각났다. 1983년 이탈리아 북부 어디쯤이라는 자막과 함께 아름다운 시골의 별장 풍광이 펼쳐진다. 17세의 엘리오(티모시 샬라메 분)가 여름을 보내는 곳이다. 교수인 엘리오의 아버지는 해마다 젊은 연구원을 초청해 방학을 함께 보낸다. 그해 여름, 고고학을 전공하는 올리버(아미 해머 분)가 별장에 도착한다. 자동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2층에서 엘리오가 내려다보는 것으로 시작해 기차에 탄 올리버가 플랫폼에 서 있는 엘리오를 차마 내려다보지 못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영화는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고 헤어지는 감정을 촘촘히 따라간다. 그 흔한 삼각관계도 없이, 주변의 반대도 없이 그들의 시선과 감각에 집중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3호(2018년 7월호) 수록본 일부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동네 친구 C의 소설이 영화화되기로 결정되어 작가가 직접 시나리오 작업을 하는 중이다. 텍스트를 시각화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어렵고 또 다른 상상력을 요구하는 일인 것 같다. 어떤 영화로 만들어질지 기대된다. 옆에서 무책임하게 참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 [에디토리얼] 모처럼 미세 먼지 없는 청명한 하늘 밑에서 교정을 보다가
    잡지 편집자는 기획, 자료 조사, 취재, 필자 섭외, 지면 구성, 사진 선택, 디자인 협의 등 다양한 일을 하지만, 원고의 교정과 교열도 편집자의 빼놓을 수없는 역할이다. 오자와 탈자를 바로잡는 것은 기본이고,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문장을 다듬어야 한다. 필자가 잘못 알고 있는 지식을 발견해 수정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필자 특유의 어조와 언어적 습관을 유지해야 한다. 『환경과조경』은 편집된 지면을 인쇄소로 넘기기 전에 세 단계의 교정과 교열 과정을 거친다. 필자뿐 아니라 편집자도 늘 까다로워하는 띄어쓰기와 맞춤법 몇 가지를 정리해 본다. 먼저, 알쏭달쏭한 띄어쓰기 규칙 몇 가지를 살펴보자. 사실 띄어쓰기의 원칙은 간단하다. 조사만 그 앞말에 붙여 쓰고, 나머지는 모두 띄어 쓰면 된다.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아래의 몇 가지 사항만 조심하면 실수를 줄일 수 있다. 첫째, ‘처럼, 부터, 까지, 밖에, 같이, 조차, 마저, 에서, 보다, 치고, ㄴ (는) 커녕, 에서부터, 조차도, 야말 로, 마저도’도 조사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나는 그리는 것 보다 현장 일이 좋다’라고 쓰는 사람이 적지 않다. 여기서 ‘보다’는 독립성이 없는 조사이므로 앞말에 붙여야 한다. 둘째, 의존 명사는 띄어 쓴다. ‘공모에서 떨어질 수밖에’ (수=의존 명사, 밖에=조사) 의 띄어쓰기를 틀리는 사례는 많지 않지만, ‘공모에 참여하는 데 필요한’ (데=의존 명사) 은 대부분 틀린다. ‘그루, 켤레, 채, 쪽, 년, 가지, 분, 이, 바, 따위, 등, 따름, 터, 때문’도 의존 명사이므로 띄어 써야 한다. ‘지’는 ‘공모에 당선된 지 오래됐다’의 경우처럼 경과한 시간을 나타낼 때만 의존 명사다. ‘대로, 만큼, 뿐’의 띄어쓰기에 실패하는 사례는 아주 흔하다. 체언 (명사, 대명사 등) 다음에 오면 조사이므로 붙여 쓰지만 (설계대로 하는 시공, 건축뿐 아니라 조경), 용언 (동사, 형용사 등) 다음에 오면 의존 명사이므로 띄어 쓴다 (설계한 대로 시공하자. 조경할 뿐 아니라 건축하는) . 셋째, 복합 명사는 띄어 쓰는 게 원칙이지만, ‘자아도취’처럼 사전에 한 단어로 등재된 경우는 붙여 쓰는 등 여러 가지 예외가 허용되기 때문에 오히려 어렵다. 전문 용어도 단어별로 띄어 쓰는 게 원칙이지만, 도시설계, 도시계획, 도시재생, 지속 가능성, 설계공모처럼 자주 쓰는 용어는 붙여 쓰는 경우가 많다. 복합 명사로 된 전문 용어는 『환경과조경』 편집자들끼리 격론을 벌이는 단골 메뉴다. 조경설계를 붙일지 말지, 생태 복원을 띌지 말지는 옴스테드 앞에 붙는 이름을 프레드릭과 프레더릭 중 무엇으로 표기해야 하는지 못지않은 편집부의 쟁점이다. 무엇보다 한 편의 글과 책 전체에서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성명 이외의 고유 명사도 단어별로 띄어 쓰는 게 원칙이지만, ‘조경 대학교’보다는 ‘조경대학교’로 표기하는 게 관례다. 다만, ‘랜드 대학교’처럼 외래어와 우리말이 결합한 경우는 띄어 쓴다. 외래어와 붙는 우리말의 띄어쓰기는 좀 복잡하다. 『환경과조경』은 국립국어 원의 한글 맞춤법과 여러 출판사의 편집 규정집 등을 참고해 고딕식, 메디치가, 히피족, 가톨릭교, 바벨탑 등은 붙여 쓴다. 지명이나 그에 준하는 고유 명사일 경우, 외래어는 띄어 쓰고, 우리말은 붙여 쓴다 (카리브 해, 라인 강, 에베레스트 산, 윈저 궁, 라빌레트 공원, 남해, 한강, 창덕궁, 선유도공원) . 그렇지만 동, 서, 남, 북, 중앙 등이 외래어 지명과 어울려 쓰일 때는 붙인다(남아메리카, 중앙아시아) . 넷째, 보조 용언은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하되, 경우에 따라 붙여 씀도 허용한다. 다만, 글 전체에서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좋다. ‘마감 때의 철야를 참아 내다’와 ‘건축주의 갑질을 이겨내다’처럼 보조 용언 ‘내다’의 띄어쓰기를 이랬다저랬다 하면 글이 시각적으로 산만해진다. ‘설계의 한계를 넘어보자’ 와 ‘소장의 무능력을 뛰어 넘고 싶다’의 경우도 보조 용언 (보다, 싶다) 띄어쓰기를 통일해야 글에 신뢰감이 생긴다. 내친김에 누구나 늘 헷갈리는 맞춤법 몇 가지도 짚어 보자. 분명히 국어 시간에 배웠건만 매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몇 개 안 되니까 외우면 되지만, 헷갈릴 때는 사전을 찾아보는 게 가장 깔끔한 방법이다. 우선, ‘로서’와 ‘로써’. 지위나 신분 또는 자격일 경우 ‘로서’를 쓰고, 도구, 방법, 수단이면 ‘로써’를 쓴다. ‘조경가로서 해야 할 일’이고, ‘단면으로써 표현할 수 없는 설계 개념’이다. ‘로써’가 맞는지 확신이 없을 때는 그 자리에 ‘~을 가지고’나 ‘~을 이용해’ 를 넣어 의미가 통하는지 확인해 보면 된다. ‘든’과 ‘던’도 언제나 헷갈린다. 선택이면 ‘든’을 쓰고, 과거의 경우에는 ‘던’을 쓴다. ‘이번 설계에 참여 하든지 말든지 결정을 해’가 맞고, ‘어제 하던 프로 젝트 회의를 이어서 하자’가 맞다. ‘채’와 ‘체’도 늘 아리송한데, 동시 동작일 경우 ‘채’를 쓰고 (한 손에 도면을 든 채 프레젠테이션을) , 꾸밈을 나타낼 때는 ‘체’ (=척)를 쓴다 (시공 결함을 보고도 못 본 체) . ‘이’와 ‘히’는 외우는 게 차라리 편하다. ‘깨끗이’가 맞고, ‘솔직히, 열심히, 가만히’가 맞다. 직업을 가리키는 경우는 ‘장이’, 특정 성격이나 인물을 지칭할 때는 ‘쟁이’를 쓴다 (미장이, 멋쟁이) . ‘아무튼, 하여튼, 굳이, 일찍이, 요컨대, 갖은, 됐다’도 흔히 틀린다. ‘안 되다’와 ‘안되다’를 혼동하는 경우도 많다. ‘안 되다’는 ‘아니 되다’의 준말이고 (그렇게 설계하면 안 돼) , ‘안되다’는 불쌍하다는 뜻이다 (그 소장님 참 안됐다) . 한자어는 음과 의미를 정확히 알고 쓰는지 확인하는 게 바람직하다. ‘역할’ 대신 ‘역활’이라고 쓰는 사람이 많고, ‘지향(指向)’과 ‘지양(止揚)’을 혼동하는 실수도 잦다. ‘재고’(再考=다시 생각해 보다) 를 써야 할 자리에 ‘제고’(提高=드높이다) 라고 쓰는 것도 빈번한 오류다. 셀 수 있는 명사나 대명사 뒤에 붙어 복수의 뜻을 나타내는 접미사 ‘들’은 신중하게 쓸 필요가 있다. 복수형 명사 앞에 복수를 암시하는 말이 이미 있으면, 단수형으로 처리하는 게 산뜻한 느낌을 준다. 모든 조경인들보다는 모든 조경인, 많은 대안들 보다는 많은 대안, 몇몇 시민들보다는 몇몇 시민이라고 쓰면 문장에 경쾌한 맛이 생긴다. 이제, 독자 여러분이 빨간 펜을 들고 이번 6월호를 이 잡듯 교정해 보실 차례다. 조경학을 전공한 윤정훈 기자가 『환경과조경』 편집부에 합류했고, 단행본 편집자로 활약할 신동훈 씨도 새 식구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지면 곳곳에 스며들 신인들의 신선한 감각, 기대해 주시길.
  • [그들이 설계하는 법] 리모델링
    설계 대상을 대하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행위는 항상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과 부딪친다. 나 또한 새로운 것을 찾고자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그런데 다른 분야의 설계 대상과 조경 설계의 대상인 ‘대지’는 너무나 다르지 않은가. 조경의 설계 대상은 오래전부터 있던, 있었으나 조금은 변화된 모습으로 존재하는 환경의 산물이다. 그렇기에 어떤 단편적인 목적만으로 설계를 진행했을 때 결과물에 대한 해석의 스펙트럼이 아주 넓을 수 있다. 물론 택지 개발이나 공동 주택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많은 부분이 구획되고 제한되어 본래의 풍경을 찾는 일이 무의미할 수 있으나, 그런 대지도 본래의 모습을 간직한 환경의 산물인 경우가 많다. 무조건 보존하자는 것은 아니다. 재현과 재생이라는 설계 용어를 가져다 쓰는 것과도 조금 다르다. 조경의 설계 대상으로 주어진 환경의 산물은 그 자체를 콘텍스트로 보아야 한다. 그 위에 새로운 기능적 해법을 제시하고 합리적 시스템을 안착시켜야 한다. 존재하지 않았던 게 아니다. 죽어 있는 것도 아니 다. 다 허물고 다시 만들기에는 그간의 시간이 만들어 놓은 게 너무나 많다. 고도 성장기에 진행된 프로젝트라면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한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재생이라는 사회·정치적 이슈가 모든 설계 분야에 가이드라인 없는 방향성을 강제하고 있다. 조경 설계에서 재생이라는 관점은 무엇인가? 무엇을 재생하라는 것인가? 재생과 관련된 학문적 이론에 무게를 둔질문은 아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에 바탕을 둔, 재생이라는 용어 자체에 대한 반감이다. 재생, 재현, 복원, 보존 같은 다양한 설계 용어가 있지만, 내가 대지를 설계 대상으로 다루는 태도를 설명하기에 이 용어 들은 뭔가 단편적으로 치우친 느낌이다. 오히려 리모델링(remodeling) 이 내 태도를 잘 표현해 주는 것 같다. 리모델링의 관점이 내가 설계 대상을 대하고 설계하는 방법에 더 부합한다. 나는 모든 작업을 진행할 때 대지 고유의 독자성과 공간 규모에 접합되는 콘텍스트를 중요시 여기며, 설계 대상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려 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2호(2018년 6월호) 수록본 일부 김호윤은 기술사사무소 아텍과 삼성에버랜드 디자인 그룹에서 조경가 로서 영업, 설계, 공사의 관계를 조율하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현재는 조경설계 호원(Landscape Design Office HOWON)을 설립·운영하고 있으며, 바른 설계 집단을 구성하고자 기본을 중시한 설계를 추구하고 있다.
  • [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 김미진 성심당 이사 이렇게 멋진 대전
    세종시 출장을 다녀오는 KTX 안. 대전역에서 열차에 오르는 사람들 손마다 들린 봉투가 눈에 띄었다. “나의 도시, 나의 성심당. 1956년 대한민국 대전.” 확신에 찬 폰트로 쓴, 멋진 카피였다. 단 아홉 자로 한 도시의 대표가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캐나다 토론토의 도시계획가, 제니퍼 키스맷(Jennifer Keesmaat)이 주창한 ‘My City’ 캠페인이 떠올랐다. 무엇보다 대전이라는 도시를 앞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나에게 대전이란 매번 통과하기만 하는, 그야말로 ‘안물안궁’ 지루한 도시였기 때문이다. 이런 밋밋하고 재미없는 도시에도 누군가는 지극히 애정을 가지고 있구나, 신기할 따름이었다. 특히 1인칭 ‘나’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했다. 거기에는 분명 엄청난 자신감과 자부심이 담겨 있었고, 일상적 쇼핑백으로는 생각하기 어려운 비전이 제시되어 있었다. 내용물에 대한 힌트가 전혀 없던 나는 마침 봉투 꾸러미를 서너 개나 들고 옆에 앉은 사람에게 뭘 그리 많이 사 가는지 말을 건넸다. “아, 튀김소보로 모르세요? 성심당이라고 대전의 유명한 빵집이에요.” 빵집이 도시를 거론하다니, 대단한 기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심당과 대전 원도심의 관계에서 떠오르는 사례가 있다. 하이라인을 통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맨해튼의 미트패킹(Meatpacking) 지구는 꽤나 예전부터 뉴욕 사람들 사이에서는 가장 핫한 동네였다. 1990년대까지 육류 창고와 낡은 아파트, 성소수자들이 찾는 스트립바 등이 즐비한 어두운 지역이었던 미트패킹. 그 부활을 주도한 씨앗이 무엇인가에 대해 후대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대체로 인정하는 것이 플로렌트라는 작은 식당이다. 플로렌트 모렐레(Florent Morellet)라는 프랑스 이민자 출신의 오너가 1985년 오래된 식당을 인수해 운영한 겉보기에 평범한 다이너였지만, 원래 걸려 있던 ‘R&L Restaurant’이라는 낡은 간판을 그대로 쓰는 방식부터 당시로서는 기존의 관념을 뒤집는 범상치 않은 가게였다. 플로렌트는 곧 깨어 있는 뉴요커라면 누구나 가봐야 할 성지가 되었는데, 독특한 문화적 색깔을 가진 커뮤니티 공간의 상징이었고, 삭막한 도시에서 모든 인종과 성별과 젠더의 사람들이 자유와 해방감을 만끽하는 문화의 분화구였다. 유명 할리우드 배우들과 명망 있는 워싱턴 정치가들이 좁은 탁자에서 오믈렛을 먹고 있는 장면이 상징하는 것처럼, 플로렌트는 하나의 식당이 도시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지역을 부흥시키는 데 얼마나 큰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성심당은 출발부터 도시와 깊은 연관이 있다. 당시 전혀 상권이 없던 은행동 일대를 개척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이후 60년간 같은 자리를 지켜오면서 성심당은 제과업계의 상식을 뒤집는 이노베이션을 통해 위기를 헤쳐 왔다. 최초의 베이커리 식당, 최초의 포장 빙수, 초대형 상품인 튀김소보로와 부추빵,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을 실천하는 독특한 EoC(Economy of Communion) 경영 철학이 든든한 양분이 됐다. 그러나 성심당이 여느 훌륭한 기업과 다른 점은, 한 도시가 일어서고, 성장하고, 늙어가는 모든 과정을 거대한 나무처럼 뿌리 내린 채 묵묵히 지켜봐 왔다는 점이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2호(2018년 6월호) 수록본 일부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 저서 『시티오브뉴욕』을 펴냈고,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와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가졌다. 울산 원도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일했으며,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 [명사의 정원 생활] 찰스 왕세자의 정원 정서를 순화하고 지도자로서 비전을 실현하는 장
    찰스 왕세자, 금수저 몽상가 혹은 시대를 앞선 환경 영웅 히스 로열 하이니스 프린스 찰스 필립 아더 조지(His Royal Highness Prince Charles Philip Arthur George)라는 긴 공식 이름을 가진 찰스 왕세자는 영국 역사상 최고의 군주로 칭송되는 엘리자베스 2세와 필립 공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왕위 계승 1위의 왕세자이지만 최장수 여왕으로 재임 중인 어머니에 가려져 66년째 왕위 계승을 기다리고 있는 ‘잊혀진 왕자’다. 또한 보수적인 영국 사회에서, 그것도 왕위를 계승할 왕세자로서, 일찍부터 영국 주류 사회와는 다소 떨어진 언행으로 언론에 자주 오르내린 인물이기도 하다. 남달리 예민하고 생각이 깊은 그는 젊었을 때부터 현대 문명이 외면하거나 간과하는 것들을 찾아내 예리하게 비판 하고 대안을 제시해 왔다. 그의 관심과 활동은 지속가능한 환경과 음식, 농업과 정원, 어린이 교육, 청년 미래, 예술, 전통문화, 공동체, 건축, 자선 등 다방면에 걸쳐 있는데, 그가 현재 대표나 후원자로 깊이 간여하고 있는 자선 단체만 400개가 넘는다. 기후 변화, 열대 우림 파괴, 탄소 배출, 지속가능성 등 전 지구적 환경 문제에서부터 전통과 지역 공동체 가치 보전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변화를 주창하며 앞장서 실천해 온 그는 무수한 찬사와 비난의 표적이 되곤 했다. 종종 ‘금수저’에 걸맞지 않은 언행이 적잖은 파문을 일으키곤 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의 필요를 자연과 조화시키면서 인간과 공동체적 가치를 모든 정책의 바탕에 두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은 시간이 지날수록 공감과 지지를 얻고 있다. ‘가장 진보적이고 급진적인 휴머니스트’, ‘유기농과 지속가능 농업의 챔피언’ 혹은 ‘환경 영웅’ 등의 호칭은 그가 철없고 순진한 몽상가를 넘어서 앞선 비전으로 행동하는 지도자로 자리 잡고 있음을 알리는 징표라 할 수 있다. 정원가 찰스 왕세자 2001년 첼시 플라워 쇼 수상자 명단에 깜짝 인물이 등장했다. 이슬람식 정원을 출품한 찰스가 은메달 수상자로 선정된 것이다. 이듬해에도 찰스는 약초 사용을 촉진하는 정원 설계로 은메달을 받는 등 수차례 정원 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그는 자주 고백한 대로 어릴 적에 할머니가 길러준 정원 일의 즐거움을 자신의 관심과 소질로 발전시켜 실천해 왔고, 그 경험을 토대로 정원에 관한 책을 다수 저술하기도 했다. 정원 일은 올해로 칠순을 맞은 그가 그림 그리기와 함께 평생 즐긴 대표적 취미이면서 공적 활동으로까지 확산시키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가 일정 기간 이상 살았거나 직접 조영하며 즐긴 정원으로, 그의 정원관에 얼마간 영향을 끼친 것으로 추정되는 대표적 정원들은 다음과 같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2호(2018년 6월호) 수록본 일부 성종상은 서울대학교에서 조경을 공부한 이래 줄곧 조경가의 길을 걷고 있으며, 지금은 대학에서 조경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선유 도공원 계획 및 설계, 용산공원 기본구상,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 마스터플랜, 천리포수목원 입구정원 설계 등이 있다. 최근에는 한국 풍토 속 장소와 풍경의 의미를 읽어내고 그것을 토대로 풍요롭고 건강한 삶을 위한 조건으로서 조경 공간이 지닌 가능성과 효용을 실현하려 애쓰고 있다.
  • [이미지 스케이프] 페이퍼 플라워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다들 그런 경험 한두 번씩은 있으시지요? 정교하게 만든 밀랍 인형이나 음식 모형을 보고 속았다는 느낌이 든 적 말입니다. ‘히든싱어’에서 원조 가수가 떨어지는 모습을 재미있게 본 적도 있으신가요? ‘매트릭스’가 보여준 진짜 세계와 가짜 매트릭스의 모호함도 정말 매력적이었죠. 꽤 진지한 생각을 하게 해 준 영화였습니다. 과연 진짜라는 건 무엇일까요? 공격적 마케팅으로 많은 관객을 모으고 있는 대림미술관에서 작년 말부터 ‘Paper, Present: 너를 위한 선물’이라는 전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모든 작품을 종이로 만든 게 특징입니다. 종이를 접어 만든 다양한 조형물, 칼로 종이를 파내 기하학적 무늬를 만든 작품, 종이를 붙여 만든 가구와 장난감, 심지어 종이로 만든 정원까지 그야말로 종이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는 전시입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종이로 만든 등나무였습니다. 바로 이번 달 사진의 주인공이지요. ‘꽃잎에 스며든 설렘’. 전시장 한 공간을 가득 메운 이 작품은스페인 출신의 건축가와 디자이너로 구성된 완다 바르셀로나 Wanda Barcelona 디자인 스튜디오의 작품입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2호(2018년 6월호) 수록본 일부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같은 학과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가원조경, 도시건축 소도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실무를 담당한 바 있으며,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경계획과 경관계획에 학문적 관심을 두고 있다.
  • [시네마 스케이프]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헬로! 마블 유니버스
    마블 시리즈에 열광하는 이들은 몇 년 전부터 2018년을 기다려 왔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는 마블 스튜디오의 10주년 기념작이다. 마블 코믹스의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지난 10년간 18편의 영화가 개봉되었다. 마블 스튜디오는 2028년까지 상영할 영화 계획을 이미 마쳤다고 전했다. 10대와 20대 지인의 강력 추천으로 몇 년 전부터 마블의 작품을 접하게 되었는데, 최근에 개봉한 영화를 보기 전에 봐야 할 리스트 까지 알려주는 바람에 숙제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이달의 영화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를 선택한 이유는 이 전무후무한 기획과 문화 현상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기 위해서다. 한번 반하기는 쉽지만 그것을 이어가기는 어렵다. 어떤 시대인가. 문화 트렌드가 바뀌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대체 이 마블의 열광적인 팬덤이 어떻게 10년 동안 지속가능했을까. 사랑에 빠졌다고 하기엔 미지근하고, 외면하고 지나가기엔 목덜미가 뜨끈하다. 발을 살짝 걸친 관찰자의 시선으로 마블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2008년 ‘아이언맨’을 시작으로 마블 스튜디오는 한 해 두세 편씩 꾸준히 영화를 선보였다. 히어로들은 제각각 독특한 정체성을 갖는다. 아이언 슈트를 장착한 부자, 헐크로 변하는 과학자, 무술에 능한 러시아 스파이, 70년간 냉동되었던 군인, 시공간을 넘나드는 의사 등, 인간이면서도 특별한 능력을 지닌 자부터 토르나 로키와 같이 신적인 존재, 우주를 무대로 활약하는 무리까지 ...(중략)... * 환경과조경 362호(2018년 6월호) 수록본 일부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2014년부터 ‘시네마 스케이프’를 연재하면서 히어 로물을 다루게 될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보고 싶던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 거의 없었다. 있더라도 심야나 새벽에, 그것도 하루 한두 번 상영한다. 어제오늘 일이 아닌 스크린 독과점 문제, 다양하게 영화를 즐길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일까.
  • [에디토리얼] 따로 또 같이
    이번 5월호 특집 ‘따로 또 같이, 느슨한 연대를 실천하다’는 어쩌면 『환경과조경』 역사상 가장 빠르고 쉽게, 아주 우연히 기획되어 일사천리로 진행된 특집일 것 같다. 원래는 이 지면에 최근의 디자인 테크놀로지 변화상을 심도 있게 다룰 계획이었다. 조사, 취재, 독서, 토론을 반복하다 벽에 부딪힌 편집부는 디지털 조경계의 ‘최강 덕후’ 나성진 소장을 초대해 조언을 구하던 중 급기야 항로를 돌렸다. 테크놀로지 특집을 위해선 조금 더 공부가 필요함을 깨달았고, 오히려 대안적 연대를 꿈꾸며 새롭게 문패를 내건 그의 오피스 ‘얼라이브어스’의 지향점과 운영 방식에 호기심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얼라이브어스의 경우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식의 연대를 실험하는 대안 그룹이 젊은 조경인들 사이에서 최근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급박하게 진행된 취재와 섭외에도 불구하고 꽃길사이, 빅바이스몰, 얼라이브어스, 자연감각, 정원사친구들, 조경이상, 팀 동산바치, 하루.순, 이렇게 여덟 그룹이 이번 기획에 흔쾌히 동승해 주었다. 이 그룹들의 성격, 지향, 구성 형식에서 공통분모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기존의 회사, 기성의 학/협회와 결을 달리하고, 지연이나 학연에 바탕을 둔 집단주의를 경계하며, ‘뭉쳐야 산다’는 구호를 불편해하면서 ‘따로 또 같이’ 연대하는 형태를 모색한다는 점에서는 교집합이 적지 않다. 대안 매체를 꿈꾸고 있는 팟캐스트 ‘꽃길사이’는 13회에 걸친 인터뷰를 방송하며 점차 청취자 수를 늘려가고 있는 프로젝트 그룹이다. 조경, 건축, 도시설계, 커뮤니티 디자인 등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이들이 연대한 ‘빅바이스몰’은 ‘노들꿈섬 운영 공모’와 ‘공원산책’ 시리즈로 이미 이름을 알린 바 있다. “각자 자신이 설정한 비전에 따라 움직이며, 그룹에 개인을 맞추고자 하지 않는다. 각자의 동선은 평행할 수도 있고, 교차할 수도 있다. 상황에 맞게 협력의 방식을 정하고 함께한다”는 빅바이스몰의 연대 방식은 느슨하지만 동시에 관계 지향적이다. 조경과 건축의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에 기반을 두고 학제간 디자인을 실천하고자 하는 ‘얼라이브어스’는 프로젝트 그룹보다는 단일 설계사무소에 가깝지만, 구성원 대부분이 독립 소장인 독특한 파트너십을 실험한다. 세 오피스가 프로젝트에 따라 연합하는 그룹 ‘자연감각’의 활동 영역은 전통적인 조경이다. 그러나 좁은 의미의 설계뿐 아니라 기획, 시공, 운영과 관리, 제품과 서비스 기획으로 범위를 넓혀 단기 성장과 이윤을 추구하는 동시에 지속 가능한 사업 모델을 탐색하고 있다. 기획, 설계, 시공을 나누지 않고 정원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하는 ‘정원사친구들’은 정원박람회 출품을 계기로 결성되었지만 전시는 물론 민간과 공공 프로젝트로도 무대를 넓혀 왔다. 이들은 “둘 이상만 모이면 정원사친구들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일반적인 회사가 더 잘 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는다.” 2015년과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YAP 프로젝트의 조경을 맡으며 힘을 모은 ‘팀 동산바치’는 말 그대로 프로젝트 그룹이다. 서로 다른 경험과 노하우를 합쳐 단일 오피스가 풀기 힘든 일을 해결하고자 한다. 조경, 도시설계, 건축 분야 소장 연구자들의 연합체인 ‘하루.순’은 분야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도시 문화 콘텐츠를 기획·운영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다른 그룹들과 달리 별도의 공간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특징인데, 지난해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열렸던 ‘돈의문박물관마을’의 한 건물에 온실 ‘하루’와 문화실험실 ‘순’을 운영하며 시민 참여형 소통 플랫폼을 제공한다. ‘조경이상’은 비즈니스의 색채가 전혀 없는 모임이라는 점에서 앞의 그룹들과 다르다. 뜻을 함께 하는 30, 40대 조경가들이 모여 조경의 현실을 새로운 시선으로 진단하고 조경의 잠재적 역량을 실현할 수 있는 실천적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모임 내부의 탐색기를 끝내고 지난 3월부터 전국 ‘순회 특강 시리즈’로 활동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이번 지면을 끝내 고사한 그룹으로는 ‘조경모색’이 있다. 이대영(스튜디오 엘), 이상기(조경설계사무소 온), 이진형(조경설계 서안), 장재삼(지드앤파트너스) 소장으로 구성된 이 그룹은 2016년 자신들의 현재를 스스로 읽고 타인과 공유하고자 그룹 이름과 같은 제목의 전시회를 개최했고, 올해는 ‘경청 시간’이라는 강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3월부터 홀수 달에 열리고 있는 ‘경청 시간’은 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청년들을 강연자로 초대한다. 이 ‘따로 또 같이’ 그룹들에 앞서 『봄, 조경 사회 디자인』(2006)을 출간하며 활동을 시작한 ‘조경비평 봄’은 『봄, 디자인 경쟁시대의 조경』(2008), 『공원을 읽다』(2010), 『용산공원』(2013)을 연이어 발표하며 단행본 출판을 통해 지속가능한 비평 환경을 마련하는 데 힘을 쏟았지만, 지난 몇 년간은 소식이 뜸하다. 조경비평 봄이 지향했던 “조경 비평의 실천 환경 구축, 조경 담론의 생산 기지 조성, 조경 이론과 실천의 연결, 조경과 사회의 상호 개입을 위한 네트워크 조직, 조경 비평의 유통과 저장을 위한 매체 실험”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비평의 생산뿐 아니라 소통을 가능하게 할 새로운 플랫폼이 요청되는 상황이다. 느슨한 연대의 첫 걸음을 내딛기 시작한 이달 특집의 그룹들이 ‘따로 또 같이’ 조경계를 북적이게 하는 다양한 플랫폼이 되기를 기대한다. 플랫폼은 어떤 시스템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토대나 기반 모듈이기도 하지만, 본래는 기차역의 승강장이다. 플랫폼은 많은 사람이 모이고 흩어지는 곳이다. 편하게 모이고 즐겁게 흩어질 수 있어야 정체되지 않는다. 그래야 건강한 플랫폼이다. 5월호와 6월호의 ‘그들이 설계하는 법’에는 김호윤 소장(조경설계 호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독자 여러분의 큰 기대와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김정은 편집팀장이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환경과조경』을 떠나 『SPACE』의 편집장으로 자리를 옮긴다는 아쉬운 소식을 전한다. 『건축인(POAR)』, 『공간(SPACE)』, 『와이드』를 거쳐 2013년 9월 『환경과조경』에 참여한 김정은 박사는 2013년 10월호(306호)부터 2018년 5월호(361호)까지 총 56권의 잡지를 만들며 『환경과조경』의 지면 혁신을 이끌고 문화적 지평을 넓혀 왔다. 그의 기획력과 편집 능력으로 가득한 쉰다섯 권의 과월호를 다시 펼쳐본다. 아쉬움과 막막함을 가슴 깊이 묻으며 그의 새로운 도전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더 다채로운 형식으로 조경의 경계를 폭넓게 넘나들며 『환경과조경』은 물론 독자 여러분과 연대할 것이라 기대한다. 따로 또 같이.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이미지 스케이프] 벚꽃 편지지
    비 오는 날 가장 운치 있는 장소는 어디일까요? 여러분은 어디를 추천하시겠습니까? 정답이 있는 건 아니겠지만, 저라면 자동차 앞 좌석을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유리창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와 함께 듣는 음악은 정말 운치 있지요. 음악이 더해진 비 오는 창밖 풍경은 한 편의 영화가 됩니다. 특히 앞자리는 창에 맺힌 빗방울을 통해 하늘을 볼 수 있어 더욱 매력적입니다. 가끔 윈도 브러시를 작동시키면 하늘에 그려진 그림을 지우고 새 그림을 그리는 느낌도 듭니다. 비 올 때 한 번쯤 여유를 갖고(이게 중요한 포인트!) 시도해 보시길. 작년 이맘때쯤, 비 오는 봄날이었습니다. 차를 세워둔 연구실 뒤편 길에는 벚꽃이 한창이었는데, 낮 동안 내린 봄비로 꽃잎이 다 떨어져 버렸습니다. 덕분에 차는 꽃잎으로 단장을 한 상태였죠. 아주 예뻤습니다. 앞자리에 앉으니 하늘을 배경으로 한 꽃잎들이 더욱 예뻐 보였습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1호(2018년 5월호) 수록본 일부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동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 도시건축 소도 등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분야의 실무를 담당한 바 있으며, 신구대학 환경조경과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로 조경 계획 및 경관 계획 분야에 학문적 관심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