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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네마 스케이프] 집의 시간들 아카이브의 가치
    ‘집의 시간들’은 1980년에 지어진 후 재건축을 위해 2018년 철거와 이주가 진행된 둔촌주공아파트의 기록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제목이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 143개 동5,930세대의 대단지 아파트를 다룬 영화지만 제목은 ‘아파트’가 아니고 ‘집’이다. 켜켜이 쌓인 시간과 집단의 기억을 기록하는 아카이브로서 삶과 집이 어떻게 관계 맺는지 생각하게 해 주는 영화다. 첫 장면, 어느 집의 거실이다. “집은 우리에게 가족이다. 이사를 자주 했더라면 돈을 더 벌었겠지만, 한집에 오래 살면서 아이들이 안정적으로 컸다는 것에 만족한다.” 인터뷰가 흐르는 동안 거실 전경을 오래 비추던 카메라가 집안의 구석구석에 멈춘다. 색이 서로 다른 무거운 소파, 액자, 벽시계, 가족사진, 전화기, 신발장, 하회탈, 약이 놓여 있는 선반 등 집 안의 사물들을 사진첩 넘기듯 천천히 보여준다. 차례로 여러 집이 소개되고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같은 형식으로 들려준다.인터뷰이의 얼굴이나 정보를 알려주는 자막은 보여주지 않는다. 정보가 차단되니 말 하는 사람이 묘사하는 공간에 집중하게 된다. 마치 집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주인을 보여주진 않지만 침대 바로 옆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베란다에 화분이 얼마나 있는지, 책장에 어떤 책이 꽂혀있는지 보면서 그 집에 사는 사람을 상상할 수 있다. 어느 집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사물들을 이렇게 오래 들여다본 적이 있었던가. ...(중략)... * 환경과조경 369호(2019년 1월호) 수록본 일부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이제 새해에 지킬 세 가지 다짐 같은 건 안 해야겠다. 2018년 첫날 결심한 자기 전 핸드폰 안 보기, 운동하기, 일기 쓰기 중 단 한 가지도 안 지켰다.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해 안 지켰다. 2019년 새해엔 이 중 한 가지를 시작이라도 해봐야겠다. 어떤 게 제일 쉬울지는 천천히 생각해 봐야지.
  • [에디토리얼] 2018년의 『환경과조경』
    잡지의 시계는 한 달 빨리 흐른다. 12월호를 만드는 11월이 되면 한 해를 되돌아보는 차분함과 새해를 맞이하는 설렘이 묘한 흥분감을 발산하며 동거한다. 편집실 창밖의 차디찬 겨울 풍경을 배경으로 과월호 열한 권을 쌓아두고 혼자만의 기념사진을 찍었다. 다시 펼쳐보는 잡지 곳곳에서 지난 계절과 시간의 이야기가 다시 고개를 든다. 그러고 보니 이제 리뉴얼 5년이고, 어쩌다 보니 60번째 에디토리얼이다. 2018년 1월호는 신생 오피스임에도 저력 있는 작업을 발표해 오고 있는 HLD(소장 이호영·이해인)의 근작 ‘기아 비트 360 가든’과 ‘인 더 포레스트’로 문을 열었다. 함께 실은 허대영 소장(조경설계 힘)의 비평은 HLD의 “풍부한 형태 재현의 가능성, 독창적 개념의 도입, 설계/시공 자체의 내러티브 축적, 클라이언트-설계/감리자-시공자를 매개하는 폭넓은 타협의 기술”에 주목하며 “조경 설계의 최전선에 서 있는” 그들의 역할을 조명했다. 2월호 특집 ‘옥상다반사’는 도시의 낭만을 느끼고 자연을 만나는 ‘힙’한 장소로 주목받고 있는 옥상을 탐사했다. 도시의 삶을 직조하는 물리적 토대로서의 옥상, 그리고 옥상을 무대로 펼쳐지는 생활의 풍경에 주목하고 그 가능성을 살펴본 특집 원고 뒤에는 최근의 다양한 옥상 프로젝트를 함께 실었다. 한 권의 잡지를 한 권의 단행본 책처럼 편집하고자 하는 장기 계획을 실험해 본 셈이다. 이 특집에는 명조 계열의 큰 활자를 썼는데, 5년 전 리뉴얼 이후 처음 변화를 시도한 편집 디자인이었다. 스웨덴을 대표하는 조경가이자 유럽 조경계의 지성으로 이름난 토르비에른 안데르손(Thorbjorn Andersson)의 근작 세 점과 에세이가 3월호의 중심 역할을 했다. 북유럽 디자인 특유의 검박하고 섬세한 디테일, 단순과 절제의 미학, 실용적 기능성을 도시 공간에 구현하는 방식을 만날 수 있었다. 혁신적 그린 테크놀로지를 바탕으로 도시의 실내외 경관을 바꾸고 있는 아모리 갈롱(Amaury Gallon)의 작품들도 같은 호에 소개되었는데, 이 게재가 인연이 되어 그는 10월에 열린 서울정원박람회에서 설치 작업을 선보이게 되었다. 4월호는 전권에 걸쳐 지면을 호주의 조경설계사무소 TCL(Taylor Cullity Lethlean)의 작업, 에세이, 인터뷰에 할애했다. 독일의 토포텍1(Topotek1)(2015년 2월호),프랑스의 아장스 테르(Agence Ter)(2016년 11월호)이후 세 번째 조경가/설계사무소 특집이었다. 대규모 정원과 수목원부터, 습지, 도시 광장, 부두와 항만, 탈산업 경관, 워터프런트, 공항에 이르는 TCL의 다양한 설계 작업에서 조경, 건축, 도시설계를 가로지르는 다층의 지혜와 다각의 디자인 문법을 목격할 수 있었고, 많은 독자의 피드백이 뒤따랐다. 어느 조경가는 “너무 질투심이 나서 책장을 끝까지 넘길 수 없었다”는 후문을 전하기도 했다. 5월호 특집 ‘따로 또 같이, 느슨한 연대를 실천하다’는 가장 의미 있는 후속 담론을 생산한 ‘올해의 기획’이었다고 편집부는 자평하고 있다. 기존의 회사나 기성의 학/협회와 결을 달리하고 지연이나 학연에 바탕을 둔 집단주의를 경계하며 ‘뭉쳐야 산다’는 구호를 불편해하면서 ‘따로 또 같이’ 연대하는 형태를 모색하는 대안 그룹들을 초대한 이 특집에, 꽃길사이, 빅바이스몰, 얼라이브어스, 자연감각, 정원사친구들, 조경이상, 팀 동산바치, 하루·순이 동승해 주었다. 5월호를 끝으로 김정은 편집팀장이 『SPACE』의 편집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따로 또 같이’는 2013년 10월호(306호)부터 2018년 5월호(361호)까지 총 56권의 잡지를 만들며 『환경과조경』의 혁신을 이끌고 문화적 지평을 넓혀 온 그의 마지막 작품인 셈이다. 6월호부터 김정은 편집팀장의 역할을 김모아 기자가 맡게 되었고, 윤정훈 기자가 편집부에 새로 승선했다. 김 기자는 첫 코다CODA “이사 왔습니다”를 통해 “이제 보고, 먹고, 듣는 모든 것에서 글감을 찾아야” 한다며 각오를 다졌다. 7월호에는 오랫동안 결과를 기다려 온 ‘리질리언트 바이 디자인(Resilient by Design)’ 공모전의 결과를 담았다. 4년 전의 ‘리빌드 바이 디자인’과 올해의 ‘리질리언트 바이 디자인’을 거치며 회복탄력성(resilience)은 이제 생태학 연구의 주제를 넘어 동시대 조경이 정면으로 마주해야 할 본격적인 설계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새 공간으로 편집실을 옮긴 후의 첫 작업인 8월호에서는 올해 수많은 건축상과 조경상을 휩쓴 화제작 ‘아모레퍼시픽 본사 신사옥’을 심층적으로 다뤘다. 초고층 거대 건축의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고 속이 텅 빈 건축을 지향한, 개방형 공유 공간을 존중한 소통과 연대의 건축 철학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5층, 11층, 17층에 과감하게 배치한 세개의 공중 정원은 이 건물의 백미다. 조경가 박승진의 단순하면서도 섬세하고 정갈하면서도 강한 디자인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상상의 한계 그 이상으로 다가오는 서울의 도시 풍경을 맞이한다. 다채로운 행사로 분주했던 가을. 9월호, 10월호, 11월호에는 ‘72시간 도시생생 프로젝트’,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 2018’, ‘한강예술공원’ 프로젝트, ‘2018 서울정원박람회’, ‘제15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등이 적지 않은 지면에 배치됐다. 다소 분주해 보이는 이 지면들이 의미 있는 프로젝트들을 혹시 가리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올해 『환경과조경』 지면에서 다시 읽어볼 만한 작품 리스트를 작성한다면, 10월호의 ‘폴드 차일드후드’(Gilles Brusset 설계)와 ‘에르 강 재자연화’(Atelier Descombes Rampini 설계), 11월호의 ‘서림연가’(안마당더랩 설계)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설계공모’가 공고되기 전에 광장 재조성의 부당함을 토론하는 기획을 완성하지 못한 점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특집 기획의 생명은 타이밍이라는 교훈을 잊지 않기로 한다. 조경 문화 발전소 『환경과조경』을 매달 반겨주신 독자 여러분에게 깊이 감사드리며, 내년에도 도시·환경·문화 담론과 조경 설계를 가로지르는 건강한 소통의 장으로 여러분 곁에 다가갈 것을 약속드린다. 이렇게 2018년을 마감한다.
  • [칼럼] 조경계의 고르디아스 매듭
    소아시아의 고대 국가 프리기아(Phrygia)의 왕 고르디아스는 자신의 전차에 아주 복잡한 매듭을 묶어두고 그 매듭을 푸는 자가 훗날 아시아를 정복하게되리라는 예언을 했다. 많은 사람이 매듭을 풀기 위해 애썼지만 아무도 복잡하게 묶인 매듭을 풀지 못했다. 페르시아를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이 이 소문을 듣고 달려왔다. 그는 칼을 꺼내 전차에 묶인 매듭을 단숨에 잘라 버렸다. 그렇게 매듭은 전차에서 풀리게 되었고, 고르디아스의 예언처럼 훗날 알렉산더는 동방을 정복했다. 난해하고 복잡한 일 앞에서 우리는 차근차근 하나씩 풀어나가는 정공법만을 고집하곤 한다. 그러나 풀리지 않는 매듭을 칼로 잘라 버린 알렉산더처럼 때로는 근본부터 뒤집는 발상의 전환이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되기도 한다. 올 한 해도 조경계는 대내외적으로 많은 시련을 겪었다. 산림청은 나무의사 제도를 도입하면서 조경 업체들이 해 온 방제 사업에 제동을 걸었다. 정원 품셈 개발로 정원을 획일화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또 수목원, 정원, 도시림, 생활림 등을 설계·감리하는 산림기술용역업에 ‘녹지조경업’을 신설해 산림 분야가 조경에 진출하는 길을 열었다. 조경 기술자도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상호 간의 문을 여는 듯 했지만, ‘산림휴양업’ 등에서 조경이 산림 분야에 진입하는 데는 여전히 제약을 두어 “말로만 상생”을 이어간다는 비난을 받았다. 자연휴양림을 공원 시설로 추가하는 국토교통부의 ‘공원녹지법 시행규칙’ 개정안에 대한 논란도 컸다. 현행법에서 자연휴양림은 산림 사업으로 분류돼 산림사업법인만 조성할 수 있다. 따라서 도시 공원 조성은 엄연히 조경의 업역임에도 도시 공원 내에 조성되는 자연휴양림에 조경 업체가 참여할 수 없게 된다. 조경의 권익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 국토교통부 녹색도시과에 조경계가 불만을 가지는 이유다. 환경부도 도시생태 복원사업 대상지에 도시 공원과 녹지를 추가하는 ‘자연환경보전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지만, 조경 업계는 전통적으로 조경 공사업의 영역인 도시 공원에 도시생태 복원사업이 진입하는 것에 반대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환경부와 산림청이 각각 자연마당, 생태놀이터 등 도시생태 복원사업과 도시숲 및 정원 사업 대상지를 도시 공원으로 확대하는 전략으로 조경계에 타격을 주고 있다면, 건축 분야는 최근 서울시가 발주하는 외부 공간 설계에 건축가를 대거 투입시키면서 조경 설계 업체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서울로 7017’의 연계 사업인 이른바 ‘서울로 2단계 연결길 조성 사업’에 조경가가 아닌 공공 건축가 일색의 ‘골목건축가’ 방식을 도입하면서 조경 업계에 실망을 안겼다. 또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을 위한 국제 설계공모’에서는 당연히 조경 설계의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광장 디자인에 도시, 건축, 도로, 교통 등의 분야에도 동일한 참가 자격을 부여했다. 뿐만아니라 일곱 명의 심사위원회에 단 두 명의 조경가만을 참여시켜 이번에도 역시 ‘그들’을 위한 잔치에 조경을 들러리 세우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했다. 한국은 2018년 현재 전국의 54개 대학에 조경학과(유사 학과 포함)가 설치된 상태다. 우리보다 국토가 훨씬 넓은 미국과 중국과 비교할 때 대단히 많은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다. 외형적 수치만 본다면 굉장한 수준이지만 조경계 내부를 들여다보면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조경학과를 졸업하는 학생 대다수는 조경 분야로 진출하기를 주저하고 있다. 설계, 시공, 자재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조경 업체가 불황을 겪고 있다. 조경 업계가 과거의 성장을 이어가고 새로운 비전을 가지려면 학회가 중심이 되어 교수들은 선구적인 연구 개발로 기틀을 다지고, 관련 단체들은 분야의 안정적인 미래를 위한 제도적틀을 마련해야 하며, 업계는 우수한 인재가 조경업을 계승할 수 있도록 후학들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최근 우리 분야 안팎의 여러 난관에 대한 조경 단체들의 대응은 여전히 구심점을 찾지 못해 조경 분야 전체의 생태계가 심각한 침체에 빠질 위기에 처해 있다. 타성에 젖은 조경 업계가 현실에 안주하면서 자초한 측면이 크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조경 분야의 목소리를 대변할 중앙 부처가 없다는 데 있다. 현재 조경 단체들의 소속 주관 부서를 보자. 우선 한국조경학회, 한국경관학회, 한국조경협회, 대한건설협회 조경위원회, 대한전문건설협회 조경식재·시설물설치공사업협의회, 그리고 새로 창립한 대한환경조경단체총연합은 국토교통부 소속이다. 한국전통조경학회와 한국정원디자인 학회는 문화체육관광부 소속이며, 환경부 소속으로는 환경조경발전재단과 한국생태복원협회가 있다. 놀이시설·조경자재협회는 산업통상자원부 소속이고, 한국조경수협회는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기관인 산림청 소속이다. 매년 여러 조경 단체의 행사에 참석해 본 사람이라면 각기 다른 행사인데도 놀라울 정도로 매번 똑같은 사람들이 참석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조경은 확실히 보호해 줄 ‘아비’를 갖지 못하고 정부 부처 여기저기에서 서얼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국토교통부가 그래도 ‘아비’라고 철석같이 믿으며 보살펴 달라고 애원하지만 돌아오는 건 언제나 쉰밥 몇알과 풀떼기가 고작이었다. 기존의 틀과 방식으로는 이제 위기를 극복할 가능성이 낮다. 고착된 사고의 틀과 고정 관념을 깨고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존의 판을 바꾸는 일이다. 국토교통부의 일개 녹색도시과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는 조경을 넘어 산림청과 환경부, 그리고 여러 부처에 흩어져 있는 관련 사업을 모두 아우르고 나아가 통일 한국의 전 국토를 우리 손으로 푸르게 가꿀 수 있는 강력한 녹색 정부 부처가 필요하다. 이름을 생각해 보았다. 국토녹색처? 국토환경부는 어떤가. 산림청보다 한 단계 높은 장관급의 중앙부서. 아무리 열심히 발버둥 쳐도 넘지 못할 장벽에 갇힌 조경의 미래를 위해 이제는 우리 스스로가 새 판을 짜야 한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걸 모두가 너무나 잘 알지만 복잡한 일을 목전에 두고 지나치게 좌고우면하면 오히려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많다. 이른바 장고 끝에 악수를 두는 격이다. 너무 단순해서 당연히 접어 둔 방법이 복잡한 일을 가장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묘수가 될 수도 있다.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단숨에 잘라버린 알렉산더 대왕처럼 조경계도 이제 과감한 결단을 내릴 용기가 필요한 때다.
  • [이미지 스케이프] 전지적 작가 시점
    “전지적 작가 시점이란 말 그대로 작가가 전지전능한 신과 같은 존재로서 모든 등장인물의 심리와 감정, 생각 따위를 꿰뚫고 있으며, 캐릭터의 등장과 출입, 상황의 파악 따위가 비교적 용이하다.” 요즘 당진시를 매주 방문하고 있습니다. 경관 자원 조사 일을 하고 있거든요.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당진시가 경관 계획에 앞서 경관 자원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평소 경관 자원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저로서는 매우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경관 계획을 여러 차례 진행해 보았습니다만 이번에는 자원 조사만 진행하다 보니 이전보다 훨씬 더 상세하게 조사하고있습니다. 각 자원에 대한 조사 양식을 새로 만들어 현장에서 조사원들과 함께 경관 자원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새로운 기술도 최대한 활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GPS 좌표를 사진에 기록한다거나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드론 촬영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 드론 촬영입니다. 제가 아직 초보거든요. 처음엔 드론 촬영 경험이 있는 분과 같이 했는데, 조사할 대상이 많아지다 보니 제가 직접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큰 드론으로는 연습하기 어려울 것 같아 장난감 같은 초보용을 추천받아 집에서 날려 봤습니다. 두 개의 스틱으로 드론을 조정하는 게 쉬운 듯 어려운 듯. 초보는 그야말로 좌충우돌입니다. 벽에 부딪히고 날개 잃어버리기를 수차례. 첫 드론을 어항에 빠뜨리고 다시 구입한 후에야 겨우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그러고는 바로 실전 투입. 이게 현재 제 상황입니다. 그래서 요즘 현장에서는 잔뜩 긴장하면서 조심스레 드론을 띄우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촬영한 영상을 보고 있자니 눈높이에서는 보이지 않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더군요. 하늘에서 본 땅의 모습은 전혀 다른 느낌입니다. 문자 그대로 다른 ‘시각’을 보여주거든요. ...(중략)... * 환경과조경 368호(2018년 12월호) 수록본 일부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같은 학과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가원조경, 도시건축 소도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실무를 담당한 바 있으며,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 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경 계획과 경관 계획에 학문적 관심을 두고 있다.
  • [그들이 설계하는 법] 구체화
    설계를 마치고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지어지는 프로젝트가 있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다. HLD는 3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대전 K 주택, 기아 비트 360 가든, YISS, CJ 해슬리 나인브릿지 클럽하우스 외부 공간, 한강의 옛 기억을 담은 미술관, 홍대복합역사 애경숲길, 리버파빌리온-온더리버 플로팅가든 등 7개의 프로젝트를 완공했고, 현재 두 개 프로젝트가 조만간 착공될 예정이다. 행운이기도 하지만, 지어진 프로젝트를 이렇게 글에 순서대로 나열하는 것만으로 통증을 느낄 만큼 우리의 실시 설계(+설계자 감리)는 늘 험난하고 고통스럽기도 하다. 연재의 마지막 회인 이번 글에서는 포장, 정지, 시설물, 설치 네 장으로 나누어 HLD 설계의 마지막 단계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포장(paving) 부산항(북항)재개발 사업 블록 중 하나인 ‘SIB(Stay-in-Blue)프로젝트’에서는 콘셉트의 유려한 곡선이 나누는 단계적 패턴을 표현하기 위해 200 × 800mm의 포장 모듈을 바탕에 깔고 30mm의 띠를 활용했다. 콘셉트를 가장 잘 구현할 포장 모듈의 규격을 효과적으로 스터디하고, 색상 혼합을 테스트하기 위해 그래스호퍼1를 이용했다. 파라메트릭 알고리즘 없이도 스터디할 수 있는 정도의 패턴이긴 하지만, 제한된 시간과 늘 다투다 보니 이렇게 컴퓨터의 힘을 빌려 빠르게 시각적 판단을 할 수 있는 툴이 몇 개 있으면 조금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다. 규칙 안에 무작위성(randomness)을 삽입하고 싶을 때도 유용하다. SIB 프로젝트에서는 총 3가지 톤의 색상을 사용했는데(포천석, 고흥석, 마천석 계열의 석재), 존마다 이 3색의 비율을 달리해 명암을 총 4단계로 구분했다. 각 존에는 색상의 비율만 지정되어 있고 개별 모듈의 배열은 무작위다. 비슷한 방식의 포장 패턴을 활용한 프로젝트로 중국 센젠의 ‘차이나 머천트 사이노트랜스 로지스틱스 센터’가 있다. 공간별로 명암(색상의 혼합 정도)을 달리하는 패턴을 적용했다. 여기서 포장재는 돌이 아니라 입자의 크기와 혼합을 달리해서 만든 PC 콘크리트다. 한국 프로젝트에서는 짧은 공기 때문에 PC 콘크리트 포장재를 적용해 볼 기회가 없었으나, PC 콘크리트는 여러 측면에서 석재 포장의 좋은 대안이다. 한국의 경우 예산과 조달의 제약 때문에 대규모 외부 공간 포장에 쓸 수 있는 석재의 종류가 매우 제한적인 데 비해, PC 콘크리트는 색상 표현, 모듈 규격, 비례에서 더 자유로운 장점이 있다. ...(중략)... 각주 1.라이노의 플러그인으로 알고리즘을 이용한 비주얼 프로그램 툴이다. * 환경과조경 368호(2018년 12월호) 수록본 일부 HLD는 이호영과 이해인이 설립한 조경설계사무소로, 광범위한 분석과 접근 방법을 통해 대상지의 공간적 가치를 향상시키고 그 장소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인문·사회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핵심적 해법을 제공한다. 이호영은 고려대학교에서 원예학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과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을 전공했으며, 조경설계 서안, 미국 에이컴(AECOM), 오피스 ma(office ma)에서 조경과 도시설계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해인은 서울대학교와 UC 버클리(UC Berkeley)에서 도시계획을 공부하고 하버드 GSD에서 조경 설계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에이컴과 파퓰러스(POPULOUS)의 샌프란시스코 지사에서 다양한 조경 프로젝트를 수행했다.www.hldgroup.net
  • [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 정현 조각가
    조각가 정현(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교수)이 사용하는 재료는 어디선가 열심히 일하던 것들이다. 철도 침목, 석탄, 아스콘, 잡석, 철거된 한옥의 부자재, 주물 공장에서 버려진 철근, 육교 철거 중 나온 구조물, 제철소에서 쓰이던 18톤짜리 파쇄공 등 그는 사람의 편리를 위해 복무해 온 물질에 대한 애니미즘적 연민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것의 아름다움을 말한다. 그에게 작품은 곧 몸의 근면함과 노동이다. 시간은 물질 위에서 질감으로 결정을 맺는다. 그래서 단순한 표면이 아니라 과거에 있었던 일이 쌓인 것이고, 정확하지 않지만 이를 통해 그간의 처지를 짐작할 수 있다. 물질과의 공감이 틀 수 있는 자리가 생긴다. 가장 간단한 선으로, 가장 적은 조립으로, 가장 적은 간섭을 통한 그의 작품은 역설적이지만 무척 한국적이다. 시간이 곧 사람이라면, 우리 시대의 시간이 응축된 그의 작품은 매우 우리스럽다. 재생된 문명이 화두인 요즘, 어떻게 시간을 온전히 수용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결코 간단치 않다. 시간은 대체 불가능하며, 장식의 요소로 드러내는 데 그친다면 이는 슬픈 일이다. 깊이는 디테일에서 나온다. 별거 아닌 것들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 필요하다. 정현의 팔레루아얄(Jardin du Palais-Royal)전시는 문명의 가장 밑바닥 에 있던 것들을 역사상 가장 정제된 문명의 공간인 바로크 정원에 우뚝 세운 사건이었다. 위엄을 뿜어내는 칠엽수의 볼륨 사이에서 그것은 부서지고 찢겨지고 매일 매일의 고난에 찌든 인간의 모습, 우리의 시간이었다. ‘서 있는 사람’의 디테일은 그가 만든 것이 아니다. 적어도 십수 년간 세상에 노출되면서 인간의 활동으로 생겨난 것이다. 의도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늘 누군가를 흠집 내고 무너뜨리며 살아간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잘 들여다보기, 그리고 발견하기. 그 행위는 그것, 언제나 사물과 나 자신에서 시작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8호(2018년 12월호) 수록본 일부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 저서 『시티오브뉴욕』을 펴냈고,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와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가졌다. 울산 원도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일했으며,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 [명사의 정원생활] 정조의 정원 정치·학문·예술의 방편이자 통합 현장
    조선 최고의 문예왕 정조 조선 제22대 왕 정조(이름 이산李., 1752~1800)는 조선 후기 문예 부흥과 개혁, 대통합을 이룬 군주로 알려져 있다. 열한 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을 목격했고, 이후 할아버지 영조의 강력한 지지에도 불구하고 죄인의 아들로서 왕위에 오르기까지 험난한 과정을 겪었다. 하지만 25세에 왕이 된 후에는 타고난 영민함, 성실성, 바른 의지로 정치, 경제, 문예 등 국가 전반의 개혁을 추진해 나갔다. 각별한 애민사상으로 민생을 안정시켰고 당파와 신분을 초월해 인재를 등용함으로써 학풍을 쇄신하고 학문을 크게 진작시켰다. 정약용을 비롯해 서유구,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이 정조가 발굴하고 육성한 신진 학자로 개혁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 중용된 이들이다. 정조는 신하는 물론 백성과도 적극적으로 소통함으로써 유교적 이상 사회인 ‘대동 사회’를 실현하고자 애썼다. 개인적 염원과 국가적 통치 차원에서 전격 추진한 화성 건설은 개혁의 완결판으로 평가된다. 화성은 군사용 성벽이면서도 빼어난 건축미를 자랑한다. “아름답게 지은 성은 적에게 두려움을 준다”고 한 정조의 말에서 그의 심미안을 넘어선 창의적 역발상, 시대를 앞선 참신한 예지를 엿볼 수 있다. 축성 과정에서 실사구시實事求是에 입각한 신기술을 구사한 점, 그리고 위민 사상에 직결된 노동력 활용 등에서 우리는 정조의 개혁적 사고를 독해할 수 있다. 국영 농장인 둔전屯田과 농업 용수 확보를 위한 저수지 설치, 백성의 소득 증대를 위한 뽕나무·잣나무·밤나무 식재, 그리고 하천 제방 및 가로의 버드나무·소나무·느티나무 식재 등은 자족성과 친환경성, 그리고 경관까지 고려한 그의 선구적 비전과 철학의 산물이기도 하다. 정조, 정원가로 읽기 정원가의 정의를 직접적 정원 조성 행위 여부로 규정한다면 정조를 정원가로 선뜻 간주하기는 어렵다. 그가 정원을 직접 조성했다는 증거를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필자가 정조를 정원가로 읽고자 하는 것은 그가 남달리 정원의 효용을 발견하고 활용했다는 사실에 연유한다. 그가 즐긴 대표적 정원은 창덕궁 후원이다. 후원 조성에 공을 많이 들인 왕으로는 세조, 인조, 숙종 등을 들 수 있지만, 왕조의 대표 격 정원으로 후원을 가장 잘 활용한 이는 단연 정조라고 할 수 있다. 재위 24년 동안 주로 창덕궁에 머물렀던 정조는 완상, 유식, 성찰 등 개인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자신이 꿈꾼 개혁과 치세를 위한 방편으로 궁궐과 후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팽팽한 정치적 긴장감을 풀어내고 유유자적하면서 휴식과 명상을 취하기에 후원은 최적의 장소였다.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기성 당파와의 갈등에 시달릴 때마다 정조는 아름다운 후원을 찾아 마음을 달래고 개혁의 꿈을 다지곤 했을 것이다. 정조는 혼자만 정원을 잘 즐기는 데 머물지 않았다. 기회가 될 때마다 아끼는 신하들을 초대해 후원 곳곳을 직접 안내하며 함께 유람하기도 했다. 후원뿐만 아니라 세심대와 같은 한양의 명소를 찾아가 신하들과 시를 주고받기도 했을 만큼 정조는 정원과 풍치 즐기기를 좋아했다. 군신창화君臣唱和, 곧 임금과 신화가 노래를 주고받는 문학적 즐김을 통해 문예를 고취시키며 신하와의 정치적 유대감을 형성해 나갔다. 3월과 9월 두 차례 규장각 전원에게 휴가를 주어 정자에서 풍류놀이와 독서를 하도록 했다. 학문을 독려하되 정원이나 자연 속 유식遊息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여럿이 함께 나눔으로써 정원의 참맛을 제대로 즐긴, 진정한 정원가였던 셈이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8호(2018년 12월호) 수록본 일부 성종상은 서울대학교에서 조경을 공부한 이래 줄곧 조경가의 길을 걷고 있으며, 지금은 대학에서 조경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선유도공원 계획 및 설계, 용산공원 기본구상,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 마스터플랜, 천리포수목원 입구정원 설계 등이 있다. 최근에는 한국 풍토 속 장소와 풍경의 의미를 읽어내고 그것을 토대로 풍요롭고 건강한 삶을 위한 조건으로서 조경 공간이 지닌 가능성과 효용을 실현하려 애쓰고 있다.
  • [시네마 스케이프] 플로리다 프로젝트 허상의 공간
    언뜻 보면 아름답다.눈부신 햇볕이 내리쬐는 곳,아이들의 왁자지껄 웃는 소리와 함께 야자수에 둘러싸인 낭만적 외관의 건물이 즐비하다.오렌지 월드와 거대한 마법사 조형물을 얹은 선물 가게와 아이스크림 모양의 가게도 있다.여섯 살 주인공 무니가 사는 곳은‘매직캐슬’이고 친구인 젠시는 로켓 모양의 입간판이 서 있는‘퓨처랜드’에 산다.조금 더 들여다보면 어딘가 이상하다.관광객이 잠시 묵는 모텔에서 아이들은 엄마와 장기 투숙 중이다.홈리스와 다름없는 하층 계급이 모여 사는 매직캐슬은 방값이 없어 쫓겨나는 사람들의 고함과 술 취한 사람들의 소동으로 조용할 날이 없다.복도 난간에는 이불이 널려 있고 쓰레기가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다.이곳은 어디인가. 월트 디즈니가1955년 캘리포니아에 개장한 디즈니랜드는 테마파크의 선배격인 코니아일랜드나 드림랜드와 다른 개념으로 기획되었다.쾌락과 일탈의 장소가 아니라 어린이 위주의 건전한 가족 문화가 실현되는 공간을 추구한 것이다. 1966년에 올랜도에 세운 두 번째 디즈니랜드 계획은 주변 지역이 포함된 도시계획 차원으로 확대된다.정원도시운동(Garden City Movement)에서 영감을 받은 계획으로,현대 도시에서 체험할 수 있는 모든 요소가 완벽하게 작동하도록 기획되었다.도심을 중심으로 그린벨트와 공업 단지가 모노레일로 연결되는 방사형의 구조다.이 신도시 개발은 엄청난 예산과 디즈니의 죽음으로 실현되지 못했지만,대신1971년에 매직킹덤이 세워지면서 전 세계인이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곳이 되었다. ...(중략)... *환경과조경368호(2018년12월호)수록본 일부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올해 가을에는 단풍이 유난히 아름다웠다.적당한 강수량으로 나무의 영양 상태가 좋은 데다 일교차가 큰 날이 예년에 비해 많아서라고 한다.며칠 전 하루 종일 내린 비로 찬란했던 나뭇잎이 다 떨어지며 이제 겨울임을 알려왔다.
  • [에디토리얼] 광화문광장 설계공모에 참가하는 조경가들에게
    지난 8월부터 한 일간지에 3주마다 칼럼을 쓰게 됐다. 전국의 불특정 독자를 상대하는 지면이라 글감 택하기가 쉽지 않다. 나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 없는, 10년도 안 된 광화문광장을 1,0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뜯어고치는 프로젝트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걸로 첫 글의 주제를 잡았다. 대중 일간지라는 부담 때문에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고, 힘이 과하면 스트라이크를 못 던지는 법. ‘시민의 일상과 조화된 보행 중심 공간화’와 ‘잃어버린 역사성의 회복’이라는 서울시 논리의 맹점을 꼬집은 후, 서울역 고가 공원화 못지않은 속도로 전개될 이 사업의 과정을 경계하는 다음 문단으로 글을 마무리했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점은 이 사업의 속도다. ‘토건시대’를 연상시키는 속도전으로 진행할 일이 아니다. 서울시는 7월 말에 전문가와 시민 150명이 참여하는 시민위원회를 출범시키고 토론회를 열었다. 초대장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광화문시대를 여는 새로운 광화문광장을 조성함에 따라 … 광화문시민위원회를 구성하여 논의를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논의를 다시 시작한다면서 동시에 8월 말 설계공모, 내년 말 설계 종료, 2021년 5월 완공이라는 과속 주행 스케줄이 정해져 있다. 이 프로젝트가 전시성 포퓰리즘 공간 정치의 산물이 아니라면, 밀실에서 광장으로 나와 진정한 광화문시대를 여는 과정의 첫걸음이라면, 광화문광장의 온전한 미래를 다음 세대가 선택할 수 있도록 긴 호흡으로 ‘논의를 다시 시작’하기 바란다”(배정한, “광화문시대를 연다?”, 「한겨레」 2018년 8월 11일). 당연히 볼이었다. 10월 12일, “역사성과 장소성을 살린 시민중심 대한민국 대표공간 조성을 목표”(공모 지침서 초대의 글)로 하는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설계공모’가 공고됐다. 가까운 조경가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공모에 참가한다고 한다. 건축가들도 예외는 아니다. 최적의 드림팀을 꾸리느라 거의 모든 세대의 조경가와 건축가가 동분서주하고 있다. 몇몇 조경가(L)와의 대화 몇 토막을 추려서 옮긴다. J. 광화문광장, 할 건가? 한다면,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L.당연히 한다. 어떤 안을 내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지침서에 적힌 ‘10가지 이슈와 과제’는 사실 ‘아무 말 대잔치’나 ‘뻔한 말 대방출’처럼 읽힌다. 진지하지만 지극히 낭만적인 말들이다. 그 과제들을 조금 더 고급진 어휘로 바꿔 보고서에 다시 적고 패널에는 한두 가지 강한 아이디어를 세련된 CG로 산뜻하게 담을 생각이다. J. ‘보행 중심 공간화’는 결국 현재의 광장을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붙여 확장하는, 이른바 ‘편측 광장’화다. ‘잃어버린 역사성의 회복’은 광화문 앞 월대와 해태상의 제자리 찾기에 다름 아니다. 어길 수 없는 정답이다. 이 두 문제가 현재의 광장, 즉 밀실에 유폐된 진실을 시민의 힘으로 밝혀낸 촛불의 광장을 지금 당장 고쳐야 하는 합리적 이유일까. L. 시급히 고칠 이유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바꾸면 광화문광장이 더 나아질 것 같기는 하다. 과장된 표현이긴 하지만 “세계 최대의 중앙분리대”라는 비판에 일리가 있지 않은가. J.물론 현재의 광장 구조, 형태, 디테일이 만족스러운 건 아니다. 10년 전에 많은 전문가의 의견처럼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붙여 광장을 만들었다면 시민의 일상과 더 넓은 접면을 가지고 문화적 시너지를 발휘하면서 보다 쾌적한 보행 환경을 갖출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선은 필요할 때 차도를 막아서 유연하게 쓰고 주변의 빈 공간들을 잘 엮어서 써도 되지 않나. 당장 뜯어고칠 당위성은 없는 것 아닌가. L.동감이다. 바꿀 거면 확실하게 바꾸는 게 맞다. 기왕이면 입체적 교통 계획을 세워 세종로 전체를 보행 광장으로 완성하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하지만 그런 그랜드 플랜에는 오랜 시간에 걸친 연구와 실험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선 단기 처방을 하자는 게 이번 프로젝트 아닐까. J.단기 처방 후 또 새로 수술을 해야 할까. 역사성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는 역사와 전통 이야기만 나오면 왜 언제나 전근대의 조선만을 원형으로 설정하는 것일까. L.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몇십 년간 세종로와 광화문 일대에서 펼쳐진 철거와 복원 행위의 대부분은 조선 왕조의 공간적 흔적을 단편적으로 소환하는 형식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현대사의 수많은 사건과 의미가 적층된, 살아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J. 그렇다. 4·19 혁명과 1987년 민주 항쟁도, 붉은 악마의 월드컵 군무도, 촛불로 타오른 시민 혁명의 기억도 조선의 왕궁이나 육조거리, 월대나 해태상 못지않게 중요하다. L. 그 지점에서 참가작들의 아이디어가 다양하게 분기될 것 같다. J.왜 이 공모가 나왔다고 생각하는가. “광화문광장을 둘러싼 수많은 논쟁이 있습니다”라는 공모 지침서 첫 문장처럼 실제로 우리는 광화문광장을 문제라고 생각할까. 시민들도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을까. L. 우문이다. 이 시대 도시·건축 정책을 이끄는 키맨들의 문제의식과 열망이 낳은 프로젝트다. 어느 정도는 순수한 열망이라고 본다. J. 그 순수한 열망이 왜 이렇게 급하게 실험되어야 하는가. 연구와 토론, 참여와 소통이 필요하지 않나. L.물론 2021년 5월 완공이라는 데드라인은 지극히 정치적이다. 그러나 키맨들은 자신의 열망을 실현할 수 있는 정치·사회적 환경이라고 판단하니까 과속하는 것 아니겠나.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는 생각. J.그렇다면 왜 이 땅의 대다수 조경가와 건축가도 이 과속 주행에 동참해야 하는가. L.잘 모르겠다. 그러나 뭔가 전문가로서 사명감 같은 걸 느낀다. 공모전 사이트가 가장 상징성 있는 서울의 대표 공간 아닌가. 내 설계 능력과 지식을 이곳에 펼쳐봐야 한다는 사명감이랄까. ‘서울로 7017’의 재판이 되는 걸 막아야겠다는 의무감 비슷한 것도 느낀다. 아무튼 정치는 정치고, 일은 일이다. 그들이 노 저을 때 우리도 노 저어야 한다. J.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건 좋지만, 그러다 쓸데없이 팔뚝만 굵어질 수도 있지 않나. 2017년 1월호부터 격월로 연재된 ‘정원 탐독’이 이번 호로 막을 내린다. 오경아 필자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린다.
  • [이미지 스케이프] 그거 아세요?
    “그거 아세요? 크로스레일 플레이스의 옥상 정원에는 이곳의 모든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깊이 1m의 흙을 깔아 두었습니다. 일 년 내내 식물에게 물과 액체 양분을 자동 관수 시스템을 통해 공급합니다. 이 옥상 정원은 캐너리 워프와 계약한 질스피스 조경설계 사무소가 설계했고, 식재는 블레이크다운 조경이 맡았습니다. 현재 이 옥상 정원은 알렉 버처가 이끄는 캐너리 워프 조경 관리팀이 관리하고 있습니다. 주말에는 알렉이 가이드 투어도 이끌 예정입니다.” 지난 여름 한국경관학회 해외 답사 프로그램으로 영국을 다녀왔습니다. 외국 답사를 가면 참 신기한 게 많지요. 자동차도 반대로 다니는 영국, 이번 답사에서도 그런 느낌을 많이 받고 왔습니다. 정말 그림 같았던 풍경화식 정원 스투어헤드(Stourhead)도 직접 보고, 바로크 정원에서 풍경화식으로 변신했던 채스워스 하우스(Chatsworth House)를 산책하기도 했습니다. 전통적인농촌 마을에서 새롭게 변신한 바이버리(Bibury)와 버턴온더워터(Burton-on-the-water)같은 곳도 둘러보고, 피크 디스트릭트(Peak District)국립공원에서 영국 특유의드넓은 구릉지에 감동하기도 했습니다. 책이나 인터넷으로 보는 느낌과 달리, 답사에서는 직접 대상과 교감할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 느낄 수 없는 다른 문화나 큰 스케일의 경관을 해외 답사에서 만나게 되면, 새삼 아직 내가 모르는 세상이 정말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그야말로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습니다. 규모가 큰 대상에서만 감동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아주 사소한 배려가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올 때도 많으니까요. 오히려 그런 세밀한 감동이 더 오래 남고, 더 깊이 전해질 때도 있습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7호(2018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같은 학과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가원조경, 도시건축 소도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실무를 담당한 바 있으며,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경 계획과 경관 계획에 학문적 관심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