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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 스케이프] 캉디드와 정원과 “알 이즈 웰”
    한 해를 마무리하며 살짝 의기소침해질 때면 영화 ‘세 얼간이(Three Idiots)’(2011)를 본다. 긴가민가한 인도식 영어와 전혀 못 알아듣는 힌디어 사이에서도 “알 이즈 웰(All is well)”만큼은 잘 들린다. 주인공 란초는 큰 문제에 부딪쳤을 때 가슴에 손을 얹고 “알 이즈 웰”을 되뇌면 이를 해결해 나갈 용기를 얻는다고 한다. 그를 보고 있자면 볼테르(Voltaire)의 소설 속 인물 캉디드(Candide)가 생각난다. 학부 시절 프랑스 문학 수업을 들으며 이해에 앞서 일단 시험을 위해 외우고 봤던 구절들이 있다. 가령 카뮈의 『이방인』에서 어떤 이유로 뫼르소가 살인을 했는지, 사르트르의 『구토』에서 로캉탱은 왜 구역질을 해대는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르셀은 마들렌 한 조각에 뭐 그렇게 호들갑인지, 그리고 볼테르의 『캉디드』에서 “하지만 우리의 정원을 가꾸어야 합니다(Mais il faut cultiver notre jardin)”1라는 마지막 문장은 무슨 뜻인지 등이 그 예다. 정원에 대한 강연을 마무리할 때 인용하면 상당히 있어 보이는 구절이지만 캉디드가 이 말을 하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다. 그는 베스트팔렌 지방에 있는 툰더 덴트롱크 남작의 성에서 남작 누이의 사생아로 태어났고, 그곳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이라고 믿었다. 타고난 성품이 유순하고 해맑았고(캉디드는 프랑스어로 순박하다는 뜻이다), 또 가정 교사 팡글로스가 그렇다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팡글로스는 자기도 잘 모르는 철학적 내용을 말하는 인물인데, 이는 라이프니츠의 낙관주의와 예정 조화설을 패러디한 것이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고, 이 세상은 (신이 만들었으니) 수많은 가능한 세계 중 가장 최선이라는 것이 팡글로스의 주장이다. 맞는 말 같지만 코는 안경을 걸치기 위해 만들어졌기에 사람들은 안경을 쓰고, 돼지는 잡아먹히기 위해 태어났기에 사람들은 일 년 내내 돼지고기를 먹는다는 그의 논지는 공허하다. ...(중략) *환경과조경392호(2020년 12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캉디드』의 번역서는 여러 출판사에서 간행되었다. 대부분 성이나 저택에 속한 정원 외부에 있는 사냥터, 숲, 초지를 지칭하는 프랑스어 parc를 ‘공원’이라고 번역했으나, 이형식이 번역한 펭귄클래식 본에는 ‘파르크’라고 표기되어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조경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고, 배경이 베스트팔렌임을 고려하여 독일어 발음으로 적었다고 한다. jardin은 역자에 따라 정원, 혹은 밭으로 번역되었다. 2. www.etymonline.com/word/optimism 황주영은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 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 박사후 연수를 마쳤다.미술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사적 관점에서정원과 공원, 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이와 관련된 강의와 집필, 번역을 한다. 그러는 동안수많은 책을 사거나 빌렸고, 그중 아주 일부를 읽었다.
  • [에디토리얼] 기록과 저장의 힘, 조경 아카이브의 가능성
    먼지 쌓인 창고에 방치된 공공 기록물과 개인의 책상 서랍 속에 묻힌 자료를 발굴해 서울의 공원 이야기와 역사를 다시 쓴다. 국내에선 처음이라 할 수 있는 공원 아카이브 전시, ‘우리의 공원’이 개최됐다. 도시경관연구회 보라BoLA가 시정협치 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서울의 공원 아카이브 구축 프로젝트의 성과물 중 하나다. 첫 전시로 10월 13일부터 25일까지 서울식물원에서 ‘공공의 기억을 재생하다, 남산식물원’이 열렸다. 해방 후 조성된 서울 최초의 공공 식물원인 남산식물원의 조성 및 철거 과정 기록과 시민의 기억을 모아 엮은 이 전시는, 전문적 아카이브와 대중적 전시의 교집합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서울숲 이야기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시민의 숲을 기록하다, 서울숲’은 시민과 함께 성장해온 서울숲의 시간을 식물, 정원, 사람, 순간의 시선으로 되돌아본다(10월 27일부터 11월 8일까지). ‘공원의 기록을 발굴하다, 남산공원과 월드컵공원’은 11월 10일부터 내년 5월까지 온라인 전시로 열린다(서울의 산과 공원 홈페이지와 서울기록원 홈페이지). 서울의 공원 아카이브 구축과 ‘우리의 공원’ 전시를 이끌고 있는 도시경관연구회 보라는 2018년에 자발적으로 조직된 조경 연구자 집단으로, ‘2019 공원학개론’을 주관하면서 조경 아카이브의 지평을 개척하고 그 가능성을 탐색한 바 있다. 『환경과조경』은 도시경관연구회 보라를 플랫폼 삼아 활동 중인 연구자 일곱 명을 초대해 특집 지면 ‘공원 아카이브, 기억과 기록 사이’를 구성한 바 있다(2020년 3월호). 이 특집이 전하듯, 조경 아카이브는 도시와 경관이라는 “대상이나 사건의 진위를 보여주는 가장 일차적인 자료”이자 그 기록물의 저장소다. “기록은 기록하는 자의 산물이다. 자의든 타의든 순수하게 객관적으로 기술하기 어렵고 기록물을 완벽하게 수집하는 것 또한 불가하므로 기록의 불완전함과 왜곡을 피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기록이 의미 있는 이유는 항상 존재한다. 기록의 집적물인 아카이브는 우리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고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진정성에 기반을 둔 두터운 스토리텔링을 구축할 수 있는 토대이며, 과거와 미래와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로서도 힘을 갖는다”(박희성, 서울시립대학교 연구교수). 이러한 기록과 저장의 힘을 실험하는 첫 시도였다는 점에서 이번 아카이브 전시 ‘우리의 공원’은 의미를 획득한다. 서울기록원, 중부공원녹지사업소, 서울시 통합기록관리시스템에 흩어져 있는 방대한 공공 기록물, 그리고 시민 공모를 통해 수집한 민간 자료를 바탕으로 공원에 용해된 도시의 삶과 문화를 다시 직조해낸 것이다. 클릭 한 번으로 1857년의 보고서와 도면에 접근할 수 있는 뉴욕 공원휴양국의 센트럴파크 아카이브나 24,000점이 넘는 옴스테드의 글, 도면, 사진, 서신, 전기를 디지털로 구축한 미국 의회도서관의 옴스테드 아카이브에 비하면 초보적 단계지만, 도시경관연구회 보라의 노력이 수집과 소장을 넘어 공유와 소통을 지향하는 조경 아카이브 연구로 계속 확장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2022년은 한국 제도권 조경 직능(profession)과 학제(discipline)가 5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다. 마침 같은 해 가을에는 광주에서 세계조경가협회IFLA 총회와 학술대회가 열리기도 한다. 2022년은 한국 조경을 둘러싼 불안과 피로를 교정하고 조경의 미래를 다시 설계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조경의 시선으로 도시와 경관을 둘러싼 글로벌 이슈를 토론하고 새로운 비전을 세우는 무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학회가 중심이 되어 한국 조경의지난 50년을 촘촘히 기록하고 꼼꼼히 저장하는 체계적인 아카이브 작업에 나서야 한다. 지속 가능한 공유와 소통은 기록과 저장의 진정성에 달려 있다. 한국 조경이 쉰 살이 되는 해에 『환경과조경』은 창간 40주년을 맞는다. 2021년 8월호는 통권 400호이기도 하다. 1982년 7월부터 단 한 차례의 결호도 없이 달려온 『환경과조경』은, ‘한국 조경의 문화적 성숙을 이끄는 공론장’, ‘조경 담론과 비평을 생산하고 나누는 사회적 소통장’, ‘동시대 세계 조경의 보편성과 지역성을 수용하고 발굴하는 전진기지’라는 세 가지 비전을 지향해 왔다. 곧 통권 400호를 맞이하는 『환경과조경』은 매달 정보를 전하고 담론을 나누는 한 권의 전문 잡지일 뿐 아니라 한국 조경의 최전선의 충실한 아카이브라는 역할을 새롭게 설정한다. 한국 조경의 다음 50년을 설계하기 위한 필요조건은 곧 지난 50년의 성과와 한계를 충실히 기록하고 저장하는 일이라는 점을 새삼 깨닫는다.
  • [풍경 감각] 먼지 우주
    방 안에서 모든 일을 해야 하는 요즘이다. 영화는 넷플릭스, 여행은 유튜브, 회의는 줌 서비스를 이용하고, 인터넷으로 장을 본다. 그런데 풍경을 감각하는 일은 밖을 나가지 않고서야 힘들다.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내 것이라며 창밖 후지산을 호젓하게 누리는 소설가(야마자키 나오코라, 『햇볕이 아깝잖아요』)처럼 풍경을 내다보면 되지 않냐 물을 수 있겠지만, 작업실 주변 가득한 신축 아파트 단지를 내 것으로 생각하기는 어렵다. 작업실 안에서 어떤 풍경을 발견할 순 없을까? 해답을 준 것은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였다...(중략) *환경과조경391호(2020년 11월호)수록본 일부
  • [비트로 상상하기, 픽셀로 그리기] 파라메트릭 플랜팅 Ⅱ
    수련 Ⅱ 수련은 겨울이 지나서도 계속됐어. 디자이너라면 커피숍에서 우아하게 스케치나 할 줄 알았지. 부모님은 제발 그만하고 공무원 시험이나 보라고 말하셨어. 그런데 괜한 자존심을 지키려다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지. 이미 내 편은 아무도 남지 않았고, 통장 잔고 바라보며 후회해봤자 마음만 답답해졌어. 정원박람회 때는 그래도 작가 소리도 들었던 것 같은데. 뭐 다들 진지하지는 않았겠지만, 사람들은 내가 작가였다는 사실을 정말 착실하게 잊어버렸어. 마치 서로 굳은 약속이라도 한 듯 말이야.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은 결국 내가 ‘포레스트 팩’을 쓰게 만들었지. 분명 혼자 들떠서 미래를 기대하던 때가 있었는데. 항상 이런 식이지. 자발적 동기가 전개되는 과정이라는 건. 결국에는 변질되고 말아. 감상적인 생각에 근거도 없이 뭐든 할 수 있다고 믿지. 고독 나는 고독한 시간에 고립됐어. 참고서도 없이 포레스트 팩을 써야 했지. 세상은 수학 참고서 같은 뻔한 책은 셀 수 없이 찍어대면서 왜 스캐터 프로그램에는 관심이 없는 걸까. 아무도 가지 않은 길 따위를 갈 생각은 없었어. 다 현대 철학이 만들어낸 허구잖아. 20대에 지겹도록 속았다고. 그렇지만 수련은 역시 고독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아무렴 수련은 고통스러워야지. 물론 이것도 1990년대 대중문화가 만든 낭만이라는 걸 알지만 그렇다고 편하게 지낸다고 실력이 늘지는 않겠지. 그래서 렌더링 시간에 배운 도면들을 복습하기 시작했어. 요즘 유행한다는 핏 아우돌프(Piet Oudolf의) 도면들도 찾아봤지. 무턱대고 포레스트 팩의 프로세스와 전통적인 작업 구조를 비교하기 시작했어. 몹쓸 버릇이 도지고 말았지. 이러면 사람들은 또 나를 한심하게 쳐다볼 텐데. 참고서만 있었어도 평범하게 살 수 있었을 거야. 정말 슬픈 일이지. 설계 이야기는 안 하고 또 푸념만 잔뜩 늘어놨네. 이제는 정말 포레스트 팩 얘기를 할 거야. 그렇다고 핏 아우돌프가 나에게 DM을 보내진 않겠지만 말이야. 진정한 식재 설계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어. 진정한 식재 설계란 뭘까. 심지어 침대에 누워 닌텐도를 하면서도 고민했지. 그리고 작가 자격을 잃은 내가 뭔가 정리된 얘기를 해도 되는지 망설였어. 세상은 서로에게 권위를 부여하고, 인가된 권위만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런다고 답이 나올 리 없고 비굴하게 죽기는 싫어서 그냥 말하기로 했어. 슬픈 일이지. 나는 진정한 식재 설계는 ‘이미지의 연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됐어. 좀 갑작스럽긴 하지만 작가마다 특정 이미지가 있고 그 이미지를 계속 반복하더라고. 핏 아우돌프는 자기 스타일 설계를 백 번 반복하고 안드레아 코크란(Andrea Cochran)은 샌프란시스코 스타일을 백 번 반복하는 거지. 그래서 식재 설계에선 맥락이 중요한 거 아닌가 생각하게 됐어. 그제야 복잡한 생각을 떨쳐내고 순수하게 미학적 관점에서 내용을 정리할 수 있었지. 물론 어디까지나 포레스트 팩으로 할 수 있는 내 세계 안에서 말이야. 이제 수련의 결과를 소개해야겠네. 아직 미완성이지만 진정한 파라메트릭 식재 설계에 대해 말이야. ...(중략) *환경과조경391호(2020년 11월호)수록본 일부 나성진은 서울대학교와 하버드GSD에서 조경을 전공했다.한국의 디자인 엘,뉴욕의 발모리 어소시에이츠(Balmori Associates)와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CFO)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고, West 8의 로테르담과 서울 지사를 오가며 용산공원 기본설계를 수행했다.한국,미국,유럽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귀국 후 파트너들과 함께 얼라이브어스(ALIVEUS)라는 대안적 그룹을 열었다.
  • [공간잇기] 가족을 통해 바라본 서울 시간 여행기
    할머니, 옛날이야기 해주세요 어린 시절 큰댁에 가면 뜨뜻한 아랫목이 있는 할머니 방에 사촌들과 모여 앉아 “옛날 할머니 어릴 적에”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할머니의 젊은 시절 경험에 바탕을 둔 이야기였다. “열여섯 살 되던 해 집안끼리 혼사가 정해졌는데, 글쎄 어느 날 학교에 갔더니 교실 문밖에 어떤 신사 한 분이 나를 찾는다고 반 친구들이 까르르 웃으며 난리였지. 나가보니 네 증조할아버지가 ‘내가 네 시아비 될 사람이다. 얼굴 한 번 보러 왔다’고 그러는데, 친구들 앞에서 얼굴이 어찌나 화끈거리고 창피하던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구.” 할머니는 덕성고녀(현 덕성여고)에 다니던 시절을 말할 때마다 얼굴이 발갛게 피어오르며 수줍은 십 대 소녀가 됐다. 듣고 또 들은 이야기지만 그런 할머니를 보는 게 재미있어, 턱 받치고 바닥에 엎드려 또 이야기해 달라 조르곤 했다. 옛이야기를 듣는 일은 어머니와 함께한 어린 시절에도 흔했다. 어머니는 시내에 볼일을 보러 갈 때면 나를 꼭 데리고 다녔다. 내 손을 잡고 새로운 장소를 갈 때마다 그곳에 얽힌 본인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시장에도 자주 갔는데, 종로 조계사 근처를 지날 때면 “여기가 엄마가 나온 고등학교가 있던 곳이야”라며 번쩍이는 고층 건물 쪽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어디요?” 학교라고는 흔적도 찾을 수 없는, 눈 비비고 봐도 빼곡한 고층 건물뿐인 풍경에서 어머니가 무엇을 보는지 알 수 없었다. 학교는 강남으로 이전해 흔적이 없어진 지 오래라고 했다. “이 큰 길에 엄마가 등하교 때 타던 전차가 있었어. 엄마랑 엄마 단짝 친구 명희 아줌마랑 맨날 타고 다니면서 집에 갈 때 저기서 내려 시장 구경도 했단다.” 전차가 다니던 길이라니! TV 시대극, 아니 박물관에서만 보던 그 전차가 다녔다니 신기했다. 그런데, 불과 몇십 년만에 어떻게 이렇게 흔적 하나 없이 모두 사라진 걸까? 마음 한편에 숙제처럼 자리잡은 작은 의문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이야기 속 장소 할머니와 어머니의 이야기 속에는 서울의 낯선 옛 풍경, 동네, 골목길, 이웃과 마당, 젊은 시절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어린 시절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내 기억에 없는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가 늘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서울이라는 공간 속 시간의 켜와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화두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나의 관심을 끌기 시작해, 성인이 될 때까지 더욱 깊숙이 뿌리내렸다. 사람은 수많은 공간에서 다양한 이웃과 관계 맺으며 다양한 공동체에 속해 살아간다. 개인이 처한 사회적, 경제적 상황에 따라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 맺기는 다른 양상을 띠게 된다. 정치적, 행정적 상황은 개인의 삶의 터전에 큰 영향을 주어 공동체 내에서 형성된 관계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2014년부터 꾸준히 공간, 시간, 사람을 연구하고 이를 문화·예술의 형태로 발표한 공간잇기 활동은, 유년시절의 경험에서 비롯된 공간 철학에 바탕을 둔 도시에 대한 진지한 탐구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2019년, 한 문화예술재단의 후원을 계기로 시작한 연구 전시를 통해 연구 활동에 깊이를 더하고 내연을 확장할 수 있었다.1 연구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은 시작부터 난감했다. 그동안은 지역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그 다음에 지도, 그림, 사진, 이야기 글, 영상, 전시, 출판 등 내용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발표 방식을 택했다. 그런데 이번엔 전시를 위한 연구를 해야 하는, 기존의 틀을 뒤집는 도전이었다. 재단은 그간 진행해온 공간잇기 연구의 확장 선에서 연구 철학이 잘 보이는 도시 공간 연구를 자유롭게 ‘연구 전시’하면 된다고 설득하며 내게 ‘연구 작가’라는 타이틀을 붙여줬다. 주제를 찾는 데만 해도 오랫동안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나만의 그곳, 서울 대상지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서울로 정했다. 5대째 서울 토박이인 가족들이 살아온 각기 다른 서울의 시간과 공간을 연구하기로 했다. 서울이라는 대도시 속 소시민들의 미시적 생활사를 연구하기에 이만큼 라포(rapport)가 형성된 대상은 또 없었다. 도시 공간 연구자이자 도시 구성원으로서 가족들이 공유하는 구체적이고 실재적인 이야기에 집중하고, 서사 속 마을의 모습과 공동체의 이야기를 발라내 서울의 공간을 새롭게 바라보고자 했다. 가족 중 누구와 어떤 시대, 어느 동네의 이야기를 풀어갈지 고민했다. 사회적, 경제적, 도시계획적 배경을 바탕으로 어떤 집에서 어떤 생활을 하며 살았는지에 중점을 두고 부모, 형제, 일가친척, 위로는 조부모와 증조부모에 이르기까지 친외가에 대한 기본 조사를 진행했다. 가족 구성원을 섭외해 여러 차례 공간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고 사료 조사와 함께 그들이 살던 동네를 답사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91호(2020년 11월호)수록본 일부 서준원은 열다섯 살부터 대학 졸업 후까지 뉴욕에서 약10년간 생활했다.파슨스 디자인 스쿨(Parsons School of Design)인테리어디자인학과에서 다양한 주거 공간에 대해 공부했고,한국인의 생활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치고 박사를 수료했다. SOM뉴욕 지사, HLW한국 지사, GS건설,한옥문화원,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등에서 약16년간 실내외 공간을 아우르는 디자이너이자 공간 연구자로 활동했다.한국인의 참다운 생활 환경을 위한 디자인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품고 다양성이 공존하는 도시 공간 연구를 위해 곳곳을 누비며‘공간 속 시간의 켜’를 발굴하는 작업을 긴 호흡으로 해오고 있다.
  • [북 스케이프] 기억과 기록 사이, 핀치콘티니가의 정원
    어떤 정원은 인물이나 사건을 기리는 장소가 된다. 이는 대개 실재하는 공간이지만 은유나 상징으로도 그 역할을 충분히 한다. 많은 경우 정원은 즐거움을 위한 곳이지만 어떤 때는 은둔과 회피의 장 혹은 기억과 각성의 매개체가 된다. 이탈리아의 소설가 조르조 바사니(Giorgio Bassani)의 자전적 소설 『핀치콘티니가의 정원Ⅱ (giardino dei Finzi-Contini)』(1962)에 나오는 정원은 앞서 말한 정원의 특징을 모두 지닌다.1 소설은 반유대주의적 인종법이 통과되고 파시즘의 광풍이 몰아치기 시작한 1938년의 이탈리아 페라라(Ferrara)를 배경으로 한다. 유대인 차별이 점차 심화되던 때 페라라의 부유한 유대인 가문 핀치콘티니의 몰락과 이에 대한 회상이 주요 내용이다. 소설의 화자 조르조(작가와 이름이 같다)는 유대인 문학도로,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어두운 시대”라고 표현한 이 시기 집단주의의 광기 속에서 상처받고 모욕받는다. 유대인들이 사회에서 배제되는 시기에도 핀치콘티니 가문의 정원은 낙원과 같다.2 세상은 유대인들에게 문을 닫는데, 오랫동안 닫혔던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이 유대인들을 위해 열린다. 테니스 클럽 입장이 금지되면 친구들을 정원으로 초대해 테니스를 치고 피크닉을 즐긴다. 오후의 산책도 너른 정원에서 하면 그만이다. 공공 도서관에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쫓겨난 조르조는 그보다 더 훌륭한 핀치콘티니 저택의 도서관에서 졸업 논문을 쓴다.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은 외부 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자족적 세계다. 이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은 조르조에게 완전하고 안온한 세계와 미콜 핀치콘티니라는 다다를 수 없는 연인을 동시에 은유한다. 핀치콘티니 가문의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담장 안에서 보호를 받으며 자랐다. 개인 교습을 받고, 시험을 치러 오거나 시너고그(유대교 회당)에 갈 때만 다른 아이들을 만나는 미콜은 그 자체가 닫힌 정원이다. 소년 시절, 미콜은 조르조에게 담장 안으로 들어오라고 권하지만 조르조는 갈 수 없었다. 10여 년 후에야 핀치콘티니의 정원에 들어가 점차 미콜과 가까워지지만 결국 그녀의 마음을 얻지는 못했다. 조르조에게 핀치콘티니가의 정원, 그리고 미콜이라는 정원은 끝끝내 다다르지 못한 이상이다. ...(중략) *환경과조경391호(2020년 11월호)수록본 일부 황주영은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 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 박사후 연수를 마쳤다.미술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사적 관점에서정원과 공원, 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이와 관련된 강의와 집필, 번역을 한다. 그러는 동안수많은 책을 사거나 빌렸고, 그중 아주 일부를 읽었다.
  • [에디토리얼] 팬데믹 이후의 도시 풍경
    바이러스와 동거하는 2020년의 공원, 발 디딜 틈이 없다. 바삭한 바람과 예리한 햇살이 공원에 가을을 채우기 시작하자 공원은 주말은 말할 것 없고 평일 낮과 밤에도 대만원이다. 마스크로 코와 입을 싸맨 인파가 줄지어 걷는 초현실적인 공원 풍경은 훗날 역사 교과서의 한 쪽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도시의 일상생활에서 공원 이용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는 현상은 여러 데이터로도 입증된다. 구글의 ‘코로나19 지역사회 이동성 보고서’가 단골로 인용되는 자료였는데, 얼마 전 발간된 ‘카카오 모빌리티 리포트 2020’에도 흥미로운 대목이 많다. 카카오내비에 쌓인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든 모빌리티 인덱스에 따르면, 사회적 거리두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월 말 이후 주요 목적지별 방문 순위에 큰 변화가 생겼다. 예를 들어 주말 톱100 관심 지점POI에 을왕리해수욕장(25위), 소래포구종합어시장(34위), 두물머리(36위), 속초관광수산시장(39위), 여의도한강공원(48위), 광교호수공원(56) 등 야외 관광지와 대형 공원들이 새로 포함된 것이다. 이처럼 코로나19 팬데믹은 도시의 일상과 여가는 물론 이동의 패턴까지 변화시키며 공간 구조와 형태를 재편해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390호의 특집 지면 ‘포스트 코로나, 도시의 안녕을 묻다’를 통해 『환경과조경』은 팬데믹과 함께 벌어지고 있는 일상생활, 작업 환경, 공원, 도시의 변화를 두루 짚어보고 다가올 미래의 양상을 조심스럽게 전망해보고자 했다. 조경가, 조경학자, 도시설계가, 도시기획자, 도시학자, 부동산학자, 교통학자, 경영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필자 열아홉 명을 초대했다. 전속 포토그래퍼 유청오는 팬데믹 시대의 공원 풍경을 사진으로 전한다. ‘코로나 일상 탐구’로 묶은 지면에서 최지수, 김진환, 정해준, 김연금, 서웊숲컨서번시, 서영애는 짧은 글과 한두 장의 이미지를 통해 재택근무가 가져온 일상의 변화, 뉴노멀이 된 온라인 강의, 설계 방식의 시행착오, 공원 풍경과 사용의 변화상을 담아냈다. ‘뉴노멀 시티스케이프’라는 꼭지로 엮은 지면에는 박승진, 이홍인, 조용준, 엘피스케이프, 오현주, 이해인, 홍주석, 민성훈이 참여해 팬데믹 이후의 도시 공간을 전망하거나 상상했다. 민성훈이 전망하듯, 뉴노멀 도시에서 용도의 “경계를 허무는 빅블러big blur의 결과가 지금보다 다양성과 효율성이 높은 상태일지, 반대로 어지럽고 불편한 상태일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변화의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점이다.” 박승진의 의견처럼, “도시 녹색 공간의 확충이 팬데믹의 즉효 약이 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시민들의 지친 심신을 위로하고, 앞으로 우리가 함께 걸어가야 할 길이 어느 길인지, 그리고 이 시대가 추구해야 할 정책 목표의 지향점이 어디를 향해야 할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실천 전략임은 분명”할 것이다. 조금 더 긴 분량의 에세이 지면은 김충호, 김세훈, 황기연, 신명진, 모종린이 맡았다. 김충호는 코로나 시대의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도시의 안녕hello’을 위해 노력해야 할지 아니면 ‘도시에게 안녕(goodbye)’을 고해야 할지 물으며,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한 시대의 도시에서 중요한 것은 사회생태적 리질리언스(resilience)라는 의견을 피력한다. 김세훈은 올해 4월부터 빅데이터를 분석해 직접 진행하고 있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대중교통과 생활 인구 연구의 일부를 공유한다. 감염 공포의 지속이 여러 형태의 ‘도시 격차(urban divide)’를 키울 것이라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황기연은 ‘컴팩트 시티, 언택트 시티, 그린 시티’라는 세 가지 시나리오별로 미래의 도시 교통 과제를 전망한다. 신명진은 공원과 공중 보건의 함수 관계를 역사적으로 짚어본 뒤 포스트 코로나 도시에서 ‘재난의 완충 지대로 재조명되고 있는 공원의 가치’를 논의한다. 모종린은 ‘동네 중심의 일상’을 강조하면서 코로나19와 공존하고 환경과 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해 필요한 도시 모델은 ‘생활권 도시’임을 역설한다. 이미 지난 봄부터 코로나 이후의 도시와 건축, 공간 문화에 대한 갖가지 예측이 넘쳐났고, 도시는 코로나 이전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진단이 번져나갔다.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고 이제는 ‘뉴노멀’을 준비해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하는 면도 적지 않지만, 유행에 편승한 ‘질러보기’식, ‘아니면 말고’식 주장들이 감염의 두려움 못지않은 피로감을 우리에게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편집부는 이번 특집이 피로하다 못해 어느덧 지루하기까지 한 포스트 코로나 전망을 하나 더 보태는 기획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자기 검열 기준으로 삼고자 했다. 석 달 넘게 지면을 기획하고 공들여 필자들을 섭외한 김모아 기자와 윤정훈 기자가 특집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번 특집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좀 더 담담히 바라보게 하고, 소란 가운데 놓치는 중요한 것들을 알게 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 [풍경 감각] 마스크를 쓴 시인
    시 낭독회엔 좀처럼 발걸음이 향하지 않았다. 코로나19 탓도 있지만 혼자 읽어야 더 깊게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보기로 마음먹은 건 시인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서였다. 낭독회는 시집 출간을 기념해 시인과 시를 좋아하는 이들 그리고 동료 시인 몇 명이 모여 소리 내 시를 읽고 해설해주는 식으로 진행됐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을수록 짐작과 많이 달랐다. 그는 다른 우주의 존재 같았는데 내 작업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고, ‘걷어찼다’는 표현은 은유가 아니라 진짜 발차기였다(의외로 격투기를 오랫동안 했다고). 오래도록 가져갈 수밖에 없는 상처에 관한 대목을 읽는 그의 목소리는 살짝 떨리기도 했다. 아픔을 드러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 그 경험을 그대로 적을 수 없었던 걸까. 집에 계신 아흔 넘은 할머니를 떠올리면 지나치는 사람들이 마스크로 코와 입을 잘 가렸는지 확인하게 된다. 그러다 그 시인이 생각난다. 지나간 이 중에, 그가 있지 않았을까. 마스크보다, 마스크 밖으로 드러낸 것과 감춘 것을 살펴야 하지 않았을까. 왠지 코로나19가 만든 마스크 풍경이, 조금은 달라 보이는 듯하다.
  • [비트로 상상하기, 픽셀로 그리기] 파라메트릭 플랜팅 I
    수련 나는 식재(planting)를 디자인 교육으로 배워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정말 웃긴 일, 지독하게 웃긴 일이야. 몇 년 전 사무실을 시작하고 태경이에게 처음 배웠다. 뭐 사실 배운 건 아니지. 그가 가르쳐준 적은 없으니까. 어깨너머로 배우고 렌더링해주면서 배우고(그림 1), 매일 아침 아이스 라테를 책상 위에 준비해놔야 했어. 주말에는 청계산을 등반해 폭포수를 맞으며 학명을 암기하곤 했지. 정말 웃긴 일이야,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과 배우지 않는다는 것은. 지독하게 슬픈 사실이지. 인과의 측면에서 이보다 선행된 원인을 굳이 밝히자면, 이제 와서 다 무슨 소용이겠냐 만은, 수련 생활을 시작하기 전 실수로 배운 포레스트 팩(Forest Pack)이 결정적 빌미를 제공하고 만 거야. 알 수 없는 일이지, 내일의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게 될지는. 사실 지나고 보면 단 하루도 예측할 수 없었던 건데, 사람의 뇌라는 게 늘 편향된 착각을 만드니까. 교육받은 습관에 따라 논리적인 미래를 그리고, 다음날이 되면 기대가 어김없이 무너지지. 그래도 뭐 또 괜찮아지잖아. 무려 망각의 동물이니까. 정말 그럴듯한 핑계지. 어제까지만 해도 논리를 말하다가 마음대로 안 되니까 망각이라니. 핑계가 없으면 살 수 없다는 사실만이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인 거야. 굳이 아이스 라테일 필요는 없는 거잖아. 실수 그래서 실수를 하고 만 거야. 하지만 실수를 하려고 실수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 실수는 원하지 않은 미래의 다른 표현일 뿐이야. 포레스트 팩을 배우기로 결심한 건 단지 유치한 영웅 심리였어. 당시 아는 사람이 별로 없더라고. 그러니까 나중에 잘난 척을 실컷 할 수 있겠다 싶었지. 충분하지 않아? 사람들은 다 그래서 무언가를 하잖아. 그 외의 복잡한 얘기는 다 거짓말이야. 사람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 하지만 그 미래가 청계산으로 이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서로의 이해관계가, 각자의 호승심이, 어제의 바람과 오늘의 썩은 사과가 교차된 미래를 만든 것뿐이야. 통제할 수 없지. 바꿀 수도 없고. 식재를 렌더링 플러그인에서 시작해 배울 줄 누가 알았겠어. 그렇다고 세상이 달라지진 않았어. 나도 달라지지 않았고, 태경이도 여전하지. 모두가 환상과 망각 사이에서 전전긍긍할 뿐이지. 그렇지만 얘기해야 할 거야, 포레스트 팩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고 도망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 그럴 수 있다면 마음을 왜 먹겠어. 잘 안 되는 거겠지. 얘기하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정신적 결핍에 오갈 데가 없겠지. 다 털어놔야겠어. 망설인다고 누가 이해해 주는 것도 아니잖아. 맥스 생태계 포레스트 팩(그림 2, 3)이 뭐 그렇다고 대단한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조금 다른 영역이라고 봐야 돼. 건축 프로그램이 아니거든. 뭐 그렇다고 할 수는 있지만, 지금까지 말해온 브이레이나 루미온 같은 것들과는 분명히 결이 다르지. 나도 여기서부터 조금 너무 나갔다는 느낌이 들긴 했어. 그런데 나란 인간은 어쩔 수 없어. 그만큼의 결핍이 무언가의 과장으로 이어진 걸 테니까. 인과율이지. 그래서 왜 또 이렇게 질질 끌고 있는 거냐면 3ds맥스 시장의 맥락에 대해 먼저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야. 나는 이제 맥락의 노예가 되고 말았어. 설계 교육의 부작용이지. 맥락이 없으면 아마 치킨도 먹을 수 없을 거야. 건축계가 캐드, 스케치업, 라이노, 브이레이와 루미온, 그래스호퍼, 레빗 등의 미디어와 함께 발전해왔다면, 3ds맥스와 마야Maya는 게임과 애니메이션, CG 영화의 세계에 있었어. 이 둘은 근본적으로 다른 관점에서 미디어를 상대해왔지. 건축에서는 어디까지나 중간 과정으로, 맥스의 세계에서는 최종 결과물로 말이지. 그리고 이 차이가 완전히 다른 시장 구조와 프로그램의 개발 방향을 만들어온 거야. 단적으로 건축에서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대해 그렇게 진지할 필요가 없었어. 요즘에는 좀 달라지고 있긴 하지만, 복합 학문이고 배워야 할 것도 많고 인문학과 시공 결과물 사이에 어색하게 껴 있었지. 하지만 맥스의 세계에서는 컴퓨터 그 자체가 전부잖아? 그래픽과 애니메이션이 최종 판매 제품이라고. 따라서 처음부터 제대로 프로그램 교육을 받지. 아마추어를 위한 프로그램은 필요가 없어. 개발자들이 대중적인 플랫폼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극단적인 전문성만 추구하면 돼. 그래서 어렵지, 복잡하고. 소위 말해 프로페셔널 생태계만 존재하는 거야...(중략) *환경과조경390호(2020년 10월호)수록본 일부 나성진은 서울대학교와 하버드GSD에서 조경을 전공했다.한국의 디자인 엘,뉴욕의 발모리 어소시에이츠(Balmori Associates)와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CFO)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고, West 8의 로테르담과 서울 지사를 오가며 용산공원 기본설계를 수행했다.한국,미국,유럽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귀국 후 파트너들과 함께 얼라이브어스(ALIVEUS)라는 대안적 그룹을 열었다.
  • [공간잇기] 묵묵히 한곳을 지켜온 사람들
    그는 늘 용산에 있었다 용산전자상가에서 각종 전자 제품의 부품 도급을 맡고 있는 박종승 사장은 적산 가옥이 즐비한 1960년대 용산 만초천 근방 골목의 어느 집에서 태어났다. 동네 형들을 따라 만초천에서 물장구치며 놀던 희미한 기억에서 시작되는 그의 추억은 늘 용산에 머물러 있다. 개구쟁이 유년 시절과 말썽쟁이 학창 시절을 거쳐 첫사랑, 첫 사업, 신혼집, 첫 아들 모두 용산과 함께했다. “용산에서의 기억 중 가장 인상 깊은 에피소드가 있나요?” 질문을 받자 그의 입가에 천진한 미소가 번진다. “있고말고요. 아주 많죠. 제 인생은 용산전자상가 터가 변해온 역사와 궤적을 같이 하는 거나 마찬가지에요.” 얼마 남지 않은 머리숱처럼 옅어진 기억이라도 또렷이 떠오르는 게 있다. 지금의 용산전자상가 자리에 만초천이 흐르고 바로 옆에 청과물 시장이 있었을 때, 어머니 치맛자락을 잡고 장보러 다닌 게 어린 시절 기억의 시작이다. 김장철이면 배추를 몇백 포기씩 사다 이웃 아주머니들과 친척 어른들이 골목길에 자리잡고 모여 온 동네가 며칠 동안 시끌벅적했다. 그는 골목과 청과물시장을 부지런히 오가며 심부름을 했다. 어느 이웃집 아주머니 앞에 서건 입을 아, 하고 벌리면 육즙이 좌르르 흐르는 삶은 돼지고기를 싼 갓 만든 겉절이가 입안으로 들어왔다. 심부름값으로 최고였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인생 최고의 맛으로 남아 있다. 용산은 조선 시대부터 전국의 물자가 들어오고 나가는 서울의 주요 관문이었다. 일제 식민지기에는 일본인 거류지로 쓰여 적산 가옥이 많이 들어섰다. 용산전자상가 앞 한강을 향해 곧게 뻗은 도로에 있던 만초천은 지형을 따라 용산나루로 굽이굽이 흐르며 한반도와 만주를 연결하는 물류의 출발지로 역할했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청과물시장은 전국에서 올라온 싱싱한 채소와 과일을 사고파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다.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 준비를 위한 도시정비계획의 일환으로 청과물 시장은 1983년 송파구 가락동으로 확장 이전했다. 1987년, 상인들이 삶의 터전을 옮겨 빈 자리에 당시로선 신산업인 컴퓨터와 각종 전자 제품을 취급하는 용산전자상가가 들어섰다. 1990년대의 메카, 용산전자상가 1990년대 전자 산업 유통의 중심지 용산전자상가는 크게 나진상가, 선인상가, 원효상가, 전자랜드, 터미널상가(현 서울드래곤시티 호텔)로 구분된다. 현재 약 21만m2의 부지에 4,000여개 점포가 있는 국내 최대의 전자상가다.1 조성 초기인 1980년대 후반에는 아시아 최고의 전자상가로 불렸으며, 이후 조립형 컴퓨터, 게임, 조명, 음향, 영상, 전자 제품 관련 각종 부품과 소프트웨어를 망라하는 도소매 및 유통 관련 업종이 30여 년 간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가전 및 전자 제품 업종의 중심은 세운상가와 청계천변 상가였다. 1980년대 후반, 신산업으로 떠오른 퍼스널 컴퓨터PC에 관심이 많고 컴퓨터 조립 기술을 습득한 젊은 상인들, 전산원 같은 전문 교육 기관에서 소프트웨어 기술을 배운 청년들이 새로운 기회의 땅 용산에 둥지를 틀었다. 최고 전성기였던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소위 잘 나가던 용산전자상가는 조립 PC와 부품을 사려는 사람들과 새 전자 제품을 구매하려는 얼리어답터들의 핫 플레이스였다. 그러나 발 디딜 틈 없던 호황기에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바가지를 씌우는 일부 상인들이 나타났고, 용팔이(용산+팔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기며 부정적 인식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는 용산전자상가 전체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소비자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어 다수의 성실한 상인들도 큰 타격을 입었다. 잘못 걸리면 바가지 쓴다는 주변 사람들의 평을 듣고 필자도 컴퓨터 좀 만질 줄 안다는 선배들과 팀을 이뤄 용산전자상가에 갔던 기억이 난다. 고품질의 다양한 전자 제품을 성능과 가격을 비교하며 살 수 있는 곳이 흔치 않았기에, 제품 비교 전시장으로 손색없는 용산전자상가에 사람들이 모일 수밖에 없었다. 늘 번영할 것 같던 용산전자상가는 2000년대 후반 이후 빠르게 변화하는 전자 산업의 생태계를 따라가지 못했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뜸해지기 시작했다.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하나둘 빈 점포가 늘어났다. 젊고 패기 넘치던 청년 상인들은 어느덧 머리 희끗한 중년의 아저씨들이 되었다.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산업으로의 구조 전환에 성공하지 못해 쇠퇴한 용산전자상가를 다시 일으키려는 노력이 30년 넘게 한자리를 지켜온 토박이 상인들을 중심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중략) * 환경과조경 390호(2020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서준원은 열다섯 살부터 대학 졸업 후까지 뉴욕에서 약10년간 생활했다.파슨스 디자인 스쿨(Parsons School of Design)인테리어디자인학과에서 다양한 주거 공간에 대해 공부했고,한국인의 생활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치고 박사를 수료했다. SOM뉴욕 지사, HLW한국 지사, GS건설,한옥문화원,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등에서 약16년간 실내외 공간을 아우르는 디자이너이자 공간 연구자로 활동했다.한국인의 참다운 생활 환경을 위한 디자인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품고 다양성이 공존하는 도시 공간 연구를 위해 곳곳을 누비며‘공간 속 시간의 켜’를 발굴하는 작업을 긴 호흡으로 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