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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디자인 오피스] 라이브스케이프
    플래시백 우연히 한 사진을 본다. 한 무리의 바위들 사이에서 나오는 물안개가 땅과 바위를 적시고 있다. 사람들은 바위에 걸터앉거나 기대어 눕기도 한다. 젖고 싶으면 더 들어가면 된다. 사람과 자연이 경계 없이 함께 비벼져 있는 풍경. 살아있는 자연의 현상과 그에 반응하는 사람의 어우러짐이었다. 피터 워커(Peter Walker)의 테너 파운틴(Tanner Fountain)이다. 건축하는 사람들이 수공간을 디자인하면 십중팔구는 수조의 윤곽을 그리며 시작한다. 이렇게 되면 그것이 곡선이냐, 직선이냐가 중요해진다. 그러나 이곳은 물의 소리, 습기와 같이 살아있는 것이 주인공이다. 2002년 월드컵 응원의 열기가 뜨거운 여름, 미국에 도착해 조경을 공부하고 실무를 경험했다. 2008년, 예전에 다녔던 건축사사무소 대표의 요청으로 귀국해 조경 디자인 부서를 맡았다. 자연은 살아있다 원 없이 많은 프로젝트를 하던 시절에도 테너 파운틴이 줄곧 떠올랐다. 이따금 살아있는 자연의 성질을 이용한 디자인을 시도했고 몇 개의 설계공모에서 당선됐지만 현실화하지는 못했다. 다만 ‘자연은 살아있다’는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었다. 작은 틈에도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오랫동안 품은 마음이 있었기에 회사의 이름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2012년 여름 라이브스케이프를 열었다. 명쾌하고 생생하게 설계의 설은 혀 설舌이라는 설이 있다. 말이 앞선다는 뜻이다. 사실은 다른 사람들이 느끼게 하는 게 중요할 뿐 디자이너 본인이 먼저 느끼게 되면 안 된다. 명쾌하고 생생한 것을 추구한다. 첫 작업인 복실이를 만들 때부터 그랬다. 러버콘을 뒤집어 연결해 보니 우연히도 커다란 스피커 같은 모양이었다. ‘소리를 형상화 했어요’라고 말할 것 같았고, ‘정말 소리를 내는 장치로 만들어 버리자’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권병준(사운드 아티스트)과 함께 광화문 앞에 복실이 1호를 만들어 냈다. 이듬해 2014 캐나다 국제 가든 페스티벌에 초청된 복실이 2호에서는 아예 어쿠스틱 악기를 만들었다. 흙으로 작은 동산을 만들고 러버콘을 뒤집어 그 위에 심었다. 개중의 몇 개는 절반을 자른 후 북 판과 기다란 쇠 스프링을 붙였다. 조금씩 흔들리면서 생기는 진동이 쇠 스프링을 흔들고 그것은 다시 북 판을 진동하게 해 러버콘의 몸체를 울림통으로 사용하여 증폭된다. 사람이 앉거나 만지면 우우웅 하는 큰 바람 소리가 난다. 설명이 아닌 와우 설명보단 이해, 이해보다는 감탄을 원하며 콘셉트가 무엇이건 그것을 명료하게 하는 것에 관심을 둔다. 가령 한 프로젝트에서 클라이언트가 중정에 멋있는 나무 하나를 심어 달라고 했다. 그렇게 해도 자연과 사람이 하나가 된다고 할 수 있겠지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자연에서 좋았던 순간을 떠올리도록 하고 싶다. 산속에서 땀 흘린 뒤 마시는 한 모금의 상쾌함. 이 경험을 가져오고 싶었다. 산이라면 발바닥의 감각이 다를 것이다. 최대한 넓고 큰 돌을 바닥에 깔고, 사람이 다녀야 하는 곳은 작은 돌들을 채워 넣고 그렇지 않은 곳은 풀로 채웠다. 이런 풍경이 내외부를 오가며 관통한다. 발은 분명 산에 있는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자연과 사람이 한자리에 비벼진 풍경이다. 사무실 개소 후 초반부터 스스로 작아도 공사에 직접 관여가 가능한 현장을 만들고자 했다. 오랫동안 그림에 익숙해진 디자이너에게 현장의 피드백은 큰 도움이 된다. 한 프로젝트에서 건축주가 숲을 옮겨 온 것처럼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건축주의 바람으로 만든 작은 정원에 최대한 거친 자연의 모습을 담고자 했다. 주차장조차 평소에는 정원이 되도록 하고, 담장을 따라 설계된 트렌치를 레인 가든으로 변경해 건물과 자연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게 했다. 소재와 설계를 매칭하는 작업 역시도 큰 매력이다. 알펜시아의 레지던스를 위한 작업에서는 데크를 벌려 그 사이로 그라스를 식재했다. 골프장의 넓은 경관이 거실 바로 앞까지 닿아있는 듯한 풍경을 완성했다. ‘조’성한 ‘경’치였다. 과연 이게 다일까. 계속 이렇게 하면 되는 건가. 장르를 넘나들며 미디어 아티스트와 함께 실험적 악기를 만들며 그들의 작업과 기술들을 접했다. 비슷한 시점에 공간 기획사와 많은 일을 했다. 자연은 여러 분야와 소통하기 좋은 소재다. 공급자로서만 생각하던 습관을 수요자의 관점으로 의식적으로 넓힐 수 있었다. 자연을 주제로 하되 다양한 장르를 연합하는 우리의 정체성은 이즈음부터 만들어졌다. 기획, 디자인 그리고 운영으로 이어지는 선형적 프로세스에서 하나의 전문 분야보다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전체적인 관점에서 프로젝트를 이끈다. 몇 년 전부터 건축, 인테리어, 조경, 사이니지를 아우르는 디렉터의 포지션에서 수행하는 프로젝트가 생겨나고 있다. 융합을 통한 전체적인 접근을 도모하지만 그 중심은 언제나 자연인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이니스프리 정밀 텃밭 이니스프리의 뉴욕 플래그십 공간 조성에 참여한 인연으로 아모레퍼시픽 사옥 2층 주스 매장의 작은 공간을 만들게 됐다. 디자인보다는 시스템 개발에 가까웠다. 착즙 주스를 파는 곳이다 보니 원재료가 자라는 모습을 전시하는 작은 텃밭을 만들고자 했다. 텃밭상자 위에 얇은 두께의 선반을 두고, 그 내부에 LED, 환기 팬, 관수 장치를 설치했다. 일반적인 스마트팜처럼 식물의 뿌리 쪽에서 수분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비가 내리듯 30분에 한 번씩 작은 물방울을 후드득 떨어뜨리고 싶었다. 물방울은 식물 성장 LED의 조명을 받아 반짝이며 이따금 수십 개의 작은 팬이 환기를 위해 바람이 분다.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은 바람에 흔들리고 비를 맞는 야외를 보고 간다. 새로운 영역으로 한 걸음 내딛는 기회였고, 이를 발판으로 바이오필릭 공간 디자인 프로젝트들이 연결되며 성장할 수 있었다. 낮에는 꽃집 밤에는 현상설계 직접 작은 공간을 운영하면서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어 연남동에 작은 꽃집을 열었다. 꽃집의 정체는 마당 한편의 작은 텃밭에서 키운 작물로 마치 넷플릭스 시리즈 ‘셰프의 테이블’에 나올법한 아우라의 샤브샤브 채소 모듬 같은 꽃다발을 만들어 파는 집이었다. 이름은 초식草式이라 지었다. 풀의 방법이란 뜻이다. 대박은커녕 1년 만에 문을 닫았다. 디자이너와 운영자는 처절하게 다른 것이다. 그 대신 나의 디자인은 그리는 디자인에서 공감하는 디자인으로 변화하게 된다. 당시 참여했던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 리모델링 국제지명초청 설계공모에서 내외부를 자연으로 특화하는 해법으로 수많은 산책로를 만들고 자연을 걷는 경험이 경기장 내부까지 계속 이어지게 계획했다. 더 낮게, 더 가까이, 더 천천히란 문장이 떠올랐다. 치열한 경쟁을 이제는 내려놓자는 의미였다. 용 한 마리가 힘 있게 배치도를 가로지르는 선을 뽑아내는 것이 아니어도 된다는 자신감은 흙에 손을 담그고 자연을 즐기며 지내본 시간이 바탕이 된 믿음이다. 공공 디자인 영역에서 서울시 디자인 정책과와 함께 공공 디자인 프로젝트 ‘마음풀(Maumpool)’을 진행했다. 취학 연령 인구들이 감소하면서 교실은 남아돈다. 아이들의 게임, 핸드폰 중독은 사회 문제로 발전한다. 유휴 교실을 활용해 다양한 감각으로 자연을 경험하는 콘텐츠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원예 활동을 염두에 두고 실제로 학교 상담 프로그램인 위클래스(Wee class)와 대학생들을 연결하는 운영위원회도 구성했다. 함께 용역을 수행한 커뮤니티 디자인 전문회사 마이너스플러스백(Miners+100)에서 참여형 워크숍을 주도했고 그 내용을 디자인에 반영하고자 했다. 안 쓰는 교실에 자연을 담는 것. 취지는 좋은데 궁금했다. 이렇게 하면 정말 힐링은 되는걸까. 워크숍 설문 조사를 보면 아이들의 반응은 ‘매우 강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로 드러난다. 이용자 중심의 디자인을 취지로 하지만 사실 이용자는 그조차도 싫어한다. 작은 교실, 작은 책상에서 종일 버티고 있어야 하니 그럴 만도 하다. 학교의 억압적인 공간의 문제도 해결해야 했다. 크리스티안 미쿤다(Christian Mikunda)가 주장하는 제3의 공간 이론처럼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무목적의 공간을 떠올렸다. 되도록 편하고 자연스럽게 자연을 경험하도록 했다. 운동장의 수돗가를 모티브로 한 대형 싱크대를 배치했다. 한쪽에는 물이 조금씩 떨어지는 고장난 수도를 만들었다. 물이 천천히 흘러가면서 수조에 머물면 모판의 흙이 젖고 상자의 온실 효과로 학기 초에 아이들과 함께 만든 씨드페이퍼에서 떼어낸 씨앗들이 발아한다. 자라면 창턱과 숲에 옮겨 심을 수 있다. 숲에는 직선으로 나가는 초음파에 음원을 태우는 초지향성 스피커라는 것을 설치했다. 새소리, 물소리 등 각각의 채널을 하나의 믹서에서 조절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 연결했다. 각도와 출력을 조정해 공간 안에서 초음파를 반사되게 하면 마치 새가 주위에서 지저귀는 듯하다. 이니스프리 프로젝트에서 활용한 빗물 관수 장치를 이번엔 교실 천장에 설치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빗소리를 들으며 우두커니 앉아 있거나, 사이를 걸으며 함께 다양한 자연의 현상과 감각을 즐길 수 있다. 마음풀은 이후에도 서울시와 5년 동안 5개의 공간을 만들며 지속 사업으로 고도화 돼 갔다.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상을 받았으며 디자인 서울 비전 2.0의 추진 과제 중 하나로 선정됐다. 사람의 정원, 자연의 정원 IFLA 한국 유치를 기념하는 정원이었다. 손 닿지 않는 자연의 세계와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작은 생명들, 그리고 이를 생각하는 사람에 대한 작업이었다. 지금의 시대, 땅과 자연을 생각하는 청지기로서의 해야 할 일을 정리해 봤다. 우리의 일은 살아있는 것들의 세계를 펼치는 일이다. 울타리 안에서 관조적 공간을 조성하는 것이 아닌, 울타리를 넘어 생명 창조의 가능성을 담고자 했다. 살아있는 모든 세계의 일원으로서, 지금 우리 시대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러한 가능성을 확장하는 일이다. 추상적인 ‘관념’을 실체적 ‘형상’으로 땅 위에 세우는 일은 디자이너의 본령이다. 대상지 안에 그릴 수 있는 가장 큰 원을 그렸다. 원의 안쪽은 자연의 정원이며 사람은 들어가지 못한다. 바깥은 사람의 정원으로 설정했다. 울타리는 바위로 하고 둘레를 따라 안개를 뿜는 링을 만들었다.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는 울타리 너머는 그들이 주인이다. 우리가 숲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자연의 친구들이 주인이 되어 스스로 살아가는 수많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래되어 쓰러진 나무에서 피어나는 버섯, 숨어서 조용히 자라고 있는 우산이끼들, 애벌레가 겨울을 버티고 나온 자국 속에서 싹트는 작은 식물들, 사람의 접근이 제한된 상태에서 자연이 그들의 시간 속에서 깊어간다. 자연의 정원은 지형이 복잡하다. 오랫동안 그늘을 드리우는 곳, 물이 천천히 빠지는 습지, 종일 따스한 햇볕을 받는 곳도 있다.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다양한 환경을 만들었다. 안개구유라고 이름을 붙인 원형의 링을 경계에 두고 사람의 정원 한 편에는 유목을 식재했다. 번식을 위해 강제 가지치기를 당했던 나무와 작은 풀들에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가면 안개구유가 작동하여 자연의 정원을 적신다. 안개를 자주 맞는 쓰러진 고목에는 어디선가 날아온 목이버섯이 자리를 잡는다. 작은 먹이를 찾는 벌레들이 나타날지 모른다. 자연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손닿지 못하는 자연을 깊어지게 한다. 오래 전 달 표면의 ‘고요의 바다’라는 곳에 달 착륙선이 내려갈 때 사람들이 느꼈던,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감을 상상했었다. 우리가 만든 이 작은 세상도 지구인에게 중계되면 좋겠다. 동시에 평소에 관심을 두며 좋아했던 아티스트의 작업이 떠오른다. 즐겨보던 NASA의 유튜브도, 순식간의 일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 생각의 서랍들을 모으고 정리하며 이야기를 더하는 것을 좋아한다. 조성한 후 시간이 꽤 지난 시점, 실제로 온갖 생물들이 들어오고 있다. 어느새 알에서 나온 아기청개구리. 번식기를 맞아 수초 사이를 오가는 왕잠자리. 작은 벌들과 초대하지 않은 물피. 강아지풀도 자리 잡고 있다. 우리가 심은 여러 풀에 꽂혀 새롭게 호박벌. 사향제비나비도 가족이 되어가는 것 같다고 한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보존하고 있는 DMZ처럼 우리의 한가운데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는 자연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디자이너가 자라는 곳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어떤 방법이 있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좋은 방법은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다. 디자이너로 하루씩 살다 보면 어느새 디자이너가 되어있을 것이다. 회사는 그렇게 디자이너가 자라는 곳이다. 우리의 일이란 게 자기 안의 우물을 길어 올리는 것이다. 인사이트는 누가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내면의 관점이기에 인사이트다. 스스로 질문하고 대답을 찾는 것, 내 우물이 인사이트 가득한 초정리 암반수로 채워지게 하는 걸 지속하면 어느새 취미가 성과가 된다. 자신만의 인사이트로 채워진 우물을 젊은 시절부터 만들기 바라며 라이브 사이트라는 답사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좋은 곳을 다니며 사진을 보아선 알 수 없는, 직접 머물러 야만 알아챌 수 있는 맥락을 발견하길 바란다. 핀터레스트에서 수백 장의 사진을 모아 놓아도 그것들을 꿰뚫는 이야기를 세우는 것이 중요한 시대이므로. 디자인할 때는 빨리 날리듯 그려내면서 손과 머리가 함께 주거니받거니 찾아가는 과정을 중요시하기에 회의에서는 재미있는 날것의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인절미를 얹는데 대신 어깨가 나란히 되도록 이빨을 맞추고…” 같은, 형태와 함께 이해되는 느낌적 느낌의 문장들이다. 디자인 과정에서 민주적이지 못하는 경우는 어쩔 수 없다. 정보와 경험의 무게가 기울어져 있기에, 그러나 도대체 며느리도 모른다는 디자이너의 블랙박스의 내부, 찰나의 순간에 벌어지는 일들을 날것 그대로 구성원들과 함께 공유하는 것을 중요시 한다. 라이브스케이프는 12년이 됐다. 바이오필릭 공간 기획, 조경설계, 건축설계, 공공 디자인, 서비스 디자인, 인테리어 디자인 및 시공을 한다. 디자인연구소 OZLAB에서는 자연을 경험하는 무선 리모컨을 만든다. 많은 영역에 관심을 두며 일하지만 중심은 여전하다. 자연이다. “살아있는 것을 디자인합니다.” 그저 표현을 위한 수사가 아니다. 디자이너로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다.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우리는 어떤 길로 들어가고 있다. 라이브스케이프(LIVESCAPE)는 건축과 조경을 기반으로 한 융합 디자인을 추구한다. 아이디어 기획부터 손에 만져지는 실체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아우르며 작은 실내 정원부터 대규모 마스터플랜까지 다양한 스케일에서 환경과 예술이 결합하는 창의적 지점을 다룬다. 오랜 기간 축적한 전문성과 인접 분야와의 협업을 통해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자연을 담은 공간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고자 한다.
  • [밀레니얼의 도시공원 이야기] 새로운 도시의 정체성을 찾아
    지겹고 신비로운 아이콘, 옴스테드 ‘밀레니얼의 도시공원 이야기’라는 제목이 무색할 정도로 3개월째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 이야기 만 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털어놓지 못한 내용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의 개인사부터 성장 과정, 공원과 도시에 대한 글까지 옴스테드의 열정은 논문 수 편이 나올 정도로 복잡하고 흥미롭다. 무엇보다 이 흥미로움을 돋우는 건 21세기―요즘 많이 쓰는 말로는 인류세―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19세기 중반을 살았던 사람의 견해와 사고방식, 인생의 목적과 정체성이 신기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칸트 미학의 용어를 적용하자면, 옴스테드의 삶과 정신이 우리의 일상으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기에 무관심성(disinterestedness)이라는 미적 대상의 조건을 충족한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에피소드 1. 정체성 감사하게도 지난 몇 년간 ‘외국어를 얼추 잘하는 박사과정’으로 해외 조경가나 설계가의 통역을 맡거나 해외 학술대회 발표를 통해 중간자의 위치에서 한국을 조망할 기회가 종종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다. 용산공원을 비롯한 이전 적지에 관한 구두 발표 후에 웬일로 질문이 나왔다. “공원 설계안을 설명하면서 정체성 이야기를 왜 그렇게 많이 하는 건가요?” “공원의 정체성이 굉장히 첨예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대체 왜죠?” “지금 전부 설명해 드리긴 힘들 것 같은데요. 세션 끝나고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19세기 말 시작된 한국의 식민지 역사와 그 이후 냉전과 한국 전쟁을 겪으며 생겨난 현대 한국인의 국가관과 사회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이 자 리에서 대답하려면 그냥 논문을 하나 새로 쓰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아니, 아예 박사학위를 하나 더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한영사전에 입력하면 identity라고 바로 나오는 정체성. 우리가 오픈스페이스를 설계하고 설명하며 쉽게 쓰고 있는 ‘공간 정체성’은 직역하면 spatial identity가 되는데, 이처럼 모호한 단어가 또 없다(자연이나 본질로 번역되는 nature, 경관부터 현황까지 모조리 아우르는 landscape 수준의 모호함이다). 다시 말해, 우리 안에서는 충분히 설명되므로 굳이 그 의미를 따지지 않고 외부에서 사용할 때는 어디서부터 그 의미를 설명할지 머리 아픈 단어란 거다. 우리는 왜 도시에서, 공간에서 정체성을 논하게 되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학자가 의견을 제시해왔다. 하지만 개인의 힘으로 좌지우지되지 않는, 그 자체로 유기적 생명력을 지닌 도시를 삶과 일상으로 삼은 사람들에게 그 정체성을 찾는 여정이 자아실현의 차원에서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환경과조경431호(2024년 3월호)수록본 일부 *그림 출처 그림 2. Detroit Publishing Company 컬렉션, 미국 국회도서관 신명진은 뉴욕대학교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뒤 서울대학교 대학원 생태조경학과와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석사와 박사를 마친 문어발 도시 연구자다. 현재 예술, 경험, 진정성 등 손에 잡히지 않는 도시의 차원에 관심을 두고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의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도시경관 매거진 『ULC』의 편집진이기도 하며, 종종 갤러리와 미술관을 오가며 온갖 세상만사에 관심을 두고 있다. @jin.everywhere
  • [PRODUCT] 도시의 빗물을 머금은 지하형 빗물정원 ‘G-Hbox 침투저류모듈’을 활용한 물순환 회복
    언제부턴가 비는 무더위를 해소하는 반가운 존재가 아니라 일상을 위협하는 걱정거리로 인식되고 있다. 계절성, 국지성, 게릴라성 집중 호우에 꼼짝없이 당하는 여름을 보내는 횟수가 늘어나는 추세다. 불투수층으로 가득한 도시에 전에 없던 강우에 대비할 수 있는 기후 적응 공간이 필요한 시점이다. LID 기반의 조경 공간 특화를 통해 도시 물순환을 제고하는 한국그린인프라연구소는 도시에 맞춤형으로 적용할 수 있는 지하형 빗물정원을 선보이고 있다. 지하형 빗물정원은 건습지 형태의 기존 빗물 정원과 다르게 하부에 담수가 되는 저류 공간을 만들어 최소한의 면적에서 빗물 관리 효율성을 최대한 높일 수 있다. 도시 하부 특성을 고려해 제작된 ‘G-Hbox 침투저류모듈’로 유효한 공극을 확보해 면적 대비빗물 관리 용량을 최대로 높일 수 있다. 도로변 띠녹지와 가로수 주변 하부 공간은 훌륭한 지하형 빗물정원 조성지가 된다. 저류된 빗물이 상부 식생대에 저면 관수돼 생태적인 방식으로 재이용할 수 있다. 기존 도시 생태계를 구성하는 식생대와 유기적으로 상생할 수 있는 우수한 생태 공간을 조성한다. 식물을 통한 빗물의 증발산은 미기후 조절, 열섬 저감, 미세먼지 완화 등 쾌적하고 건강한 도시 환경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 지하형 빗물정원은 도시의 그린 네트워크를 건강하게 지속시키는 기술로서 빗물의 효과적인 발생원 관리, 분산형 관리를 가능하게 하고 이를 통한 블루 네트워크 형성의 초석이 되고 있다. TEL. 02-587-9444 WEB. www.greeninfra.co.kr
  • [에디토리얼] 마감 날 읽은 식물 책 세 권
    원래는 이달 특집에 참여한 조경가 필자들과 똑같이 ‘나의 식물에게’를 주제로 에디토리얼을 써볼 생각이었다. 공간을 만드는 조경가에게 식물은 어떤 존재일까. 그들에게 던진 이 질문에 조경계의 소문난 ‘식물맹’인 나도 한번 응답해보리라. 그러나 진심과 고심을 담아 눌러쓴 그들의 이야기를 밑줄 쳐가며 곱씹다 보니 마감이 눈앞이다. 예컨대 허대영 소장(조경설계 힘)의 이런 문장들. “식물은, 특히 나무는 살아갈 자리를 정한 설계자보다도 이 땅에 더 오래 살아남을 존재이기도 하다.” “조경설계는 식물의 삶과 죽음, 그리고 공감하는 사람의 마음까지 염두에 두어야 하며, 이렇게 아름다움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 조경 일의 속 깊은 본질”이다. 금요일 퇴근 시간, 마침내 김모아 기자의 메시지가 왔다. ‘월요일 오전까지 주시면 됩니다.’ 정확하게 번역하면 이런 뜻이다. ‘아무리 늦어도 월요일 아침에는 제가 꼭 볼 수 있게 보내주셔야 해요. 주말에 파이팅!’ 급하거나 불안해지면 책에 기대는 버릇이 발동한다. 책장 구석구석을 침착하게 뒤져 나름 정성껏 식물 책 세 권을 골라 주말을 보냈다. 먼저 펼친 책은 파란색 무광 표지가 매혹적인 고다 아야(幸田文)의 『나무』(달팽이출판, 2017). 말년의 노작가가 십 년 넘게 일본 열도의 북쪽 홋카이도에서 남쪽 야쿠시마까지 전국의 나무를 찾아다니며 체험하고 성찰한 기록을 엮은 유작이다. 첫 장 ‘가문비나무의 생사윤회’를 쓴 때는 1971년 1월이고, 마지막 장 ‘포플러’는 1984년 6월의 글이다. 우리는 나무의 무엇을 알고 있을까. 나무를 안다는 건 과연 무슨 의미일까. 저자는 쓰러져 죽은 가문비나무 위에 새로운 가문비나무가 자라나는 현장을 목격하며 “생사의 경계, 윤회의 무참함”을 사유한다. 도심 한복판에 홀로 선 거목을 보며 나무가 거쳐 온 삶의 순간들을 읽어낸다. 나무를 만나 살피고 듣고 느끼며 빚어낸 진솔한 문장들이 나무를 안다는 건 나무의 삶을 나무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임을 깨닫게 해준다. 따뜻한 책 『나무』에 이어 고른 『오산천 자연도감』(디자인 스튜디오 loci, 2022)은 온기뿐만 아니라 현장성과 생동감이 느껴지는 책이다. 아모레퍼시픽이 지원하고 박승진 소장의 디자인 스튜디오 loci가 진행한 프로젝트의 성과물인 이 책은, 경기도 오산천에 서식하는 식물 112종과 조류, 어류, 곤충류, 포유류 등 동물 31종을 섬세하게 조사하고 관찰해 정성스레 담아낸 도감이다. 책 앞부분에는 서해에서 배가 올라오던 옛 오산천이 오염으로 몸살을 앓게 된 사연, 그리고 생명을 품은 건강한 하천으로 거듭난 이야기도 담겨 있다. 본지에 ‘풍경 감각’ 꼭지를 연재하고 있는 조현진 일러스트레이터가 생태 조사와 해설 글, 식물과 동물 도감의 세밀화를 맡았다. 오산천의 숨겨진 가치를 쉽게 전달해주는 세 장의 그림 지도도 흥미로운데, ‘오산천 자연 탐사 지도’에는 천변을 산책하며 비인간 생명체들을 관찰할 수 있는 28개 지점이 꼼꼼히 표현되어 있다. ‘오산천 정원 지도’는 2015년부터 2021년까지 시민들이 참여해 조성한 120개 정원의 위치를 보여준다. 1년 넘는 식생 조사를 바탕으로 작성한 ‘오산천 식생 지도’는 버드나무류와 물억새 군락지를 비롯해 관심을 더 기울여야 할 식물들의 위치를 알려준다. 마지막 책은 조금 어렵다. ‘식물 존재에 관한 두 철학자의 대화’라는 부제를 단 『식물의 사유』(알렙, 2020)는 식물성에 대한 사유에 기반해 인간과 식물의 창조적 만남을 확장하는 시도를 펼친다. 32편의 서신 교환으로 구성한 이 책에서 루스 이리가레(Luce Irigary)와 마이클 마더(Michael Marder)는 ‘식물 존재’를 통해 자연과 문화, 물질과 정신, 감각성과 초월성, 주체와 타자, 여성과 남성, 비인간과 인간 등 서구 근대 정신을 지배해온 이분법과 동일성의 교의를 넘어서고자 한다. 그들은 왜 자연과 생명이 처한 위기 진단과 대안 모색의 중심에 식물을 위치시키는 것일까. 인간 중심주의가 지구 행성의 존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생태계 위기의 원인이라는 반성이 일면서 동물과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 동시대 담론의 뜨거운 주제로 떠올랐지만, 식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식물은 의지와 주체성을 지니지 못한 가장 미발달된 생명체이며 생산의 원자재나 바이오 연료 정도로 치부되어왔을 뿐, 인간이 그 일부를 이루는 생명의 토대로 이해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의 식물을 호명하지 못하고 식물 책들에 기대 지면을 채운 데 대한 변명 삼아, 마이클 마더가 전하는 나무 이야기 한 부분을 옮긴다. “한 그루 나무가 다양한 성장의 총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여럿으로 갈라지면서 얽히는 나무의 몸통, 가지를 덮고 있는 이끼와 담쟁이, 가지 위를 기어오르는 다람쥐, 가지 위에 집을 짓고 있는 새들, 뿌리와 뿌리 근처에 살고 있는 미생물 등등 하나의 성장의 공동체로서 나무는 식물적일 뿐 아니라 원소들과 식물 형태들과 종들이 만나는 장소이자 생물의 왕국입니다. 나무는 그 위아래에 살고 있는 모든 존재들과 함께, 또 그것이 살고 있는 장소와 함께 자기 자신을 우리의 시각과 사유에 건네줍니다. 또한 나무는 분류를 알지 못하는 자연의 낯선 영역으로 열린 창문이 될 수 있습니다”(『식물의 사유』, 231쪽). 그가 뉴욕의 좁고 누추한 아파트 뒷마당에서 만난 한 그루 나무는 “더불어 자라는 공동체의 표상”이었다.
  • [풍경 감각] 정원 계획
    갑작스레 알보 몬스테라가 생겼다. 평소 관심을 두었던 식물이기에 길러보겠냐는 친구의 말에 가벼운 마음으로 좋다고 했다. 그런데 작업실에 나타난 친구의 손에는 길이가 1m는 족히 넘는, 친구네 정원 한 켠을 몇 년간 지키던 녀석이 들려 있었다. 요즘 무척 바빠진 탓에 잘 보살펴주지 못한다며 내가 길러주면 좋겠다고 했다. 몬스테라는 줄기 한 마디를 심어 새 포기로 키워낼 수 있으니 다시 여력이 될 때 조금 잘라 달라고만 부탁했다. 친구가 돌아간 뒤 뜻밖의 새 식구를 살펴보았다. 흰 물감이 튄 것 같은 불규칙한 무늬와 시원하게 갈라지고 구멍 뚫린 잎사귀. 친구는 꽤 어렵게 이 몬스테라를 데려왔다. 무늬가 좋은 새싹을 골라 심고 잎 한 장, 뿌리 한 가닥 나올 때마다 SNS에 사진을 올렸다. 돌돌 말려 올라온 뒤 하루하루 조금씩 펼쳐지는 새 잎을 기다리고, 잎사귀마다 뚫린 구멍과 찢어진 갈래를 헤아렸다. 시들할 땐 식물 카페에 도움을 구했고, 잎 끝에 맺힌 물방울마저 기록하곤 했다. 아쉽지만 작업실 공간이 넉넉하지 않아 친구의 몬스테라를 여러 마디로 나누었다. 모종이 필요하지 않을 땐 잘라낸 것들을 그냥 버리지만, 친구의 몬스테라는 모두 모아 물병에 꽂아 두었다. 뿌리가 내리고 싹이 트면 내가 기를 것 하나와 친구에게 돌려줄 것 하나를 골라야지. 그리고 다른 것들은 잎사귀 한 장 한 장 헤아려줄 사람을 찾아 건네야겠다. 우리 집 정원에는 당분간 어린 몬스테라가 가득할 것이다.
  • [어제의 대화, 오늘의 재구성] 김동훈 정원을 탐구하는 천착의 깊이
    『순수의 시대』를 쓴 이디스 워튼(Edith Wharton)이 정원에도 조예가 깊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몇이나 될까. 워튼이 쓴 『이탈리아 빌라와 그 정원(Italian Villas and Their Gardens)』은 잡지사의 의뢰를 받아 수개월 동안 이탈리아 현지를 눈으로 읽고 발로 걸으며 취재해 쓴 정원 안내서다. 출간된 지 120년이 지난 지금도 이탈리아 정원뿐 아니라 서양 정원에 관한 고전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 책이, 지난 2023년 11월 한국 최초로 완역됐다. 번역가는 헌법재판소에서 헌법연구관 겸 공보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동훈. 두 가지 의문이 들었다. 법률가가 정원 서적을 번역했다니, 보통 정원하면 꽃이 화려한 영국 정원에 관심을 둘 법한데 비교적 단조롭게 보일 수 있는 이탈리아 정원이라니. 의문을 품고 인터뷰 장소인 헌법재판소 공보관실에 들어섰다. 책장 위 줄지어 선 토기 골동품과 벽을 빼곡히 채운 (로마의 풍경을 담은 걸로 추정되는) 사진과 태피스트리가 눈에 띄었다. 책장 한 칸은 이탈리아를 비롯해 로마에 관한 책이, 냉장고 옆면은 해외여행을 다니며 모은 게 분명한 마그넷이 빼곡했다. 무언가에 관심이 생기면 그에 대한 역사, 예술, 문화를 깊게 탐구하는 사람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정원이 궁금하다면 무작정 식물을 사 심기보다는 정원의 뿌리를 파헤치고 이해하기를 원하는 사람. 어쭙잖은 짐작이었는데 빗나가지 않았다. “프랑스식 정원의 아버지가 이탈리아 정원이고, 영국식 정원은 프랑스식 정원에 대응하며 만들어졌죠. 결국 영국식 정원을 이해하려면 프랑스식 정원을 알아야 하고, 프랑스식 정원을 알려면 이탈리아식 정원을 알아야 해요. 이를 모르는 채로 정원을 탐구하려다 보니 자꾸 멈칫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이 책을 만나는 순간 그 관계가 명쾌하게 이해됐어요.” 어제는 뭐했나요? 출근해서 여러 가지 업무를 했어요. 아마 자세한 얘기는 재미없을 겁니다. 퇴근 후에는 가족들과 늦은 저녁을 같이 먹고, 아이들과 살금살금 배구-탁구 게임을 했어요. 두 가지 종류의 귤을 먹으며 맛을 비교하고, 제주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고요. 헌법연구관, 공보관이라는 직업을 낯설어하는 독자가 많을 거예요. 평소에 어떤 일을 하나요. 같은 법조계에 있어도 헌법연구관이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일 겁니다. 헌법연구관은 헌법재판소에 사건이 들어오면 헌법적 쟁점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판결문 초안을 쓰는 일을 합니다. 재판을 하는 헌법재판관을 뒤에서 보조하는 일을 하는 것이죠. 본래 헌법 연구관인데 지금은 공보관 보직을 맡고 있습니다. 공보관은 대언론 관계 일을 합니다. 헌재 결정이 나올 때 국민에게 그 내용과 취지가 잘 알려질 수 있도록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기자에게 설명하는 역할이 제일 큽니다. 그밖에도 헌재 관련 이슈가 있을 때 언론 대응을 하죠. 다른 기관에서는 이런 역할을 하는 사람을 보통 대변인이라고 부릅니다. 정원 가꾸기를 취미로 삼고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깊게 연구하는 일은 드물죠. 줄곧 법과 관련된 일만 해온 사람이 『이탈리아의 빌라와 그 정원』(글항아리, 2023)을 번역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신기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정원에 언제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나요. 어렸을 때 주말마다 시골 할머니 댁에 갔어요. 냇가에서 놀고 농사일을 거들었는데, 그때부터 전원에 대한 사랑이 있었나 봐요. 결혼 후에는 꽤 큰 규모의 텃밭을 만들었어요. 처음에는 농사일만 하다가 점점 아름답게 꾸미고 싶은 욕구가 생겨서 텃밭 한편에 정원을 꾸렸죠. 몇 년 전에는 50년도 더 된 할머니 댁을 새로 짓게 됐는데, 그곳에 집과 정원을 나름대로 설계하고 직접 만들게 됐어요. 저뿐 아니라 가족 모두의 추억이 많은 곳이라 가능하면 집의 원 형태를 유지하고 옛 나무도 살리려 했습니다. 여의치 않으면 같은 자리에 같은 수종의 나무를 심었고요. 그 과정에서 정원에 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꽃나무를 적당히 심으면 예쁘기야 하겠지만 나만의 특색이 있는 정원을 만들고 싶었죠. 법을 전공해 업으로 삼고 있지만 직업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잖아요. 일하는 틈틈이 여러 분야의 책을 읽고 여행도 하며 여러 취미를 즐겼는데, 그중 제게 지속적으로 즐거움을 준 게 정원이었어요. 로마대학의 방문학자 시절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로마대학은 어떤 이유로 선택하게 됐나요. 연구 주제도 궁금합니다. 어릴 적부터 그리스와 로마에 대한 사랑이 컸어요. 그리스 로마의 자유롭고 당당한 사람들의 생각과 활동이 아주 인상 깊었어요. 헌법학 박사 논문 주제가 ‘한국 헌법과 공화주의’였는데, 공화주의는 그리스와 로마에서 비롯했어요. 돌이켜 생각해보니 가장 관심 있는 분야와 관련한 내용으로 논문 주제를 정하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유학을 갈 때도 아무도 가지 않는 이탈리아를 선택했어요. 보통 법과 관련해 유학을 떠나면 미국이나 독일을 가거든요. 그 결과로 ‘이탈리아의 헌법과 헌법재판제도’라는 논문을 쓰게 됐습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위대한 로마법의 후예라는 자부심이 엄청나요. 흔히 이탈리아 하면 예술, 관광, 패션의 나라라고 생각하지만, 법학에서도 상당한 수준의 국가입니다. 이탈리아 건축과 정원은 어떤 식으로 공부했나요. 무언가를연구하러 간 곳에서 또 다른 분야를 깊숙이 탐구하는 게 대단하게 느껴져요. 어디에서 원동력을 얻나요. 특별한 방법은 없었고, 관련 책을 폭넓게 깊이 읽었습니다. 이탈리아는 건축과 정원에 관심이 많은 나라이기에 관련 자료가 아주 풍부했습니다. 길가다 마주치는 서점에 들어가도 정원을 주제로 한 책이 가득했고, 아름답고 세련되기까지 해서 보기만 해도 좋았죠. 값이 비싸더라도 예쁜 책을 소장할 수 있다는 기쁨이 더 커서 구매를 망설이지 않았어요. 유럽에서 아름다운 책을 많이 본 경험 때문인지 『이탈리아의 빌라와 그 정원』 번역서도 가능한 아름답게 만들어 소장 욕구를 돋우는 책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다행히 출판사의 의견도 같았고요. 정원을 좋아하니 공부도 즐거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누가 시켜서 하거나 직업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관심으로 공부하는 것이었으니까요. 건축과 정원도 전체 사회의 한 부분이고 결국 사회 현상이 반영됩니다. 그래서 이탈리아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면 자연스럽게 건축과 정원 공부에 도움이 됐습니다. 이탈리아식 정원은 중세를 탈피해 새 시대를 연 르네상스의 정신적‧물질적 산물입니다. 르네상스에 대해 이해하면 이탈리아 르네상스 정원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죠. 그러면 정원을 볼 때 단순한 감각적 아름다움을 넘어 지적 아름다움까지 느끼게 돼요. 저는 이탈리아 정원하면, 회백색의 건물과 진초록 수벽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사실 저도 처음에 이탈리아 정원이 무엇인지 잘 몰랐습니다. 서양 정원의 양대 산맥이 프랑스식 정원과 영국식 정원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탈리아식 정원은 어디에 자리매김하면 되는 것인지, 또 이탈리아식과 프랑스식이 비슷해 보이는데 뭐가 다른 건지 몰랐죠. 그런데 『이탈리아의 빌라와 그 정원』의 원서를 읽으며 이탈리아 정원이 무엇인지 깨닫게 됐죠. 말씀한 것처럼 오래된 회백색 건물에 잘 깎은 초록 나무가 어우러진 모습이 이탈리아 정원의 이미지예요. 그 단순한 이미지 속에 엄청난 것들이 숨어 있습니다. 책에서 이디스 워튼은 이탈리아 정원은 대리석과 물, 상록 식물이라는 간단한 세 요소로 구성되어 있는데 어떻게 그런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지 미스터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받은 감동과 깨달음을 설명하며 독자들과 나누고자 했던 것이죠. 정원은 태생적으로 건축과 밀접한 연관을 맺을 수밖에 없는 존재죠. 건축 양식과 주거 방식에 따라 변화해 왔으니까요.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의 정원을 어떻게 느끼는지 궁금해요. 한국 사람도 이제 아름다움에 관심이 많이 생긴 것 같아요. 흔히 옛날에는 먹고 살기 급급해 정원 가꿀 여유가 없었다는 말을 하잖아요. 자투리땅이 있으면 채소를 키우고 콩을 심어야지 정원을 가꿀 상황은 아니었던 겁니다. 그래서 한국에는 정원이 별로 없어요. 서민은 물론이고 형편이 넉넉한 집이나 양반집에도 정원이 별로 없었는데, 그 이유를 세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첫째, 이탈리아 부유층이 빌라를 지을 만큼의 부富가 우리에겐 없었어요. 둘째는 유교적 금욕주의입니다. 조선시대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왕이 창경궁 우물에서 흘러나오는 물길을 구리로 된 수로로 만들려고 하자 신하들이 반대합니다. 왕이 검소한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 백성들이 사치에 빠진다는 거였죠. 즉 아름답게 꾸미고 즐기는 것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거부감이 있었어요. 현대에 들어 많이 약해졌지만, 여전히 마음 속 깊은 곳에 금욕주의가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셋째로, 과거 조선은 도시화가 안 된 국가였으며 자연과 전원을 가까이 두고 있었기에 정원의 필요성을 덜 느낀 것 같습니다. 한국의 자연이 상당히 아름다운 편이기에 굳이 정원을 가꿀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 같아요. 이런 과거와 현재 상황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나아갈 길이 보일 거예요. 옮긴이 해제에 썼듯이, 저는 우리 정원이 ‘한국 정원’ 또는 ‘한국식 정원’으로 재탄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람이 한국 땅에 만들었다고 다 한국 정원이 아닙니다. 정체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예컨대, 전원주택 마당에 까는 초록 잔디밭은 과연 우리 정원의 모습일까요? 아파트 단지에 흔히 보이는 가지런하고 둥글게 깎아 놓은 철쭉이나 회양목은 우리의 것일까요? 전통 정원에 없던 요소이니 배척하자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적어도 그런 요소의 뿌리가 무엇인지 알아야 활용할 때도 우리의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언젠가 누가 봐도 한국적이면서 누군가에게 확연히 아름다운 한국식 정원이 탄생하기를 기대합니다. 수많은 책 중 『이탈리아의 빌라와 그 정원』을 번역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가 있나요? 유학 시절 이 책을 우연히 알게 됐어요. 다른 정원 서적에서 이 책이 종종 언급되기에 원서를 구해 읽었는데, 첫 문장을 보는 순간 바로 이거다 싶었습니다. “이탈리아 정원에는 꽃이 없다고 하면 과장이리라.” 대가만이 쓸 수 있는 첫 문장이었어요. 이탈리아 정원을 여러 곳 다니며 이상하게 느낀 점을 한방에 명쾌하게 해결해주는 문장이었습니다. 보통 유럽의 정원을 상상할 때 푸른 잔디밭이 드넓게 펼쳐지고 장미와 수선화가 만발한 장면을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그런 정원은 프랑스, 영국, 독일 등 북부 유럽의 것입니다. 제가 이탈리아에서 본 정원은 달랐어요. 잔디밭도 잘 없고, 꽃도 별로 없고, 한여름엔 얼마나 덥고 건조한지 나무가 다 말라죽을 것처럼 보였거든요. 당황했어요. 처음에는 제가 못 본 무언가가 숨어있는 건가, 다른 계절에 찾아오면 다르려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보니 이탈리아 정원에는 꽃이 없고 초록으로만 구상하는 게 기본이더라고요. 처음엔 번역까지 할 작정은 아니었는데, 나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아까운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한국 독자에게도 알리면 우리 정원 문화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했죠. “우아한 문체와 절제된 감상, 그리고 공정한 평가”를 이 책의 강점으로 뽑았어요. 번역 작업이 굉장히 까다로웠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책을 꼭 번역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이기도 해요. 정원에 관한 웬만한 책은 모두 읽었지만 정원에 대한 감상과 평가를 적절한 비율로 다룬 책을 보진 못했거든요. 정원 설명서는 무미건조한 해설만 있기 마련이고, 정원 에세이에는 저자의 감상이 지나치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았어요.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정원을 모두 넘나들면서 통찰력을 보여주는 서술을 하는 책도 드물었고요. 반면 이 책은 우아한 문체와 격조 높은 감성을 보여줍니다. 저자만의 개인적이고 가벼운 감성이 아닌 거죠. 이탈리아에 오래 머물며 살아온 사람만이 아는 애정도 살포시 깃들어 있었고요. 20세기 초를 전후한 구미 상류층만이 쓸 수 있는 내용도 많았습니다. 그만큼 마음의 부담이 컸습니다. 원전의 격을 훼손하지 않아야 하는데 제가 그 정도의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고민했고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주석도 직접 달고 직접 찍은 사진도 넣었고요. 책의 모든 주석을 직접 달려면, 건축 양식, 주거 방식, 역사, 언어학까지 전부 파헤쳐야 했을 것 같더라고요. 이디스 워튼이 대작가이자 정원 전문가이기에 책 자체가 서양 문화, 건축, 정원에 대한 상당히 높은 수준의 지식을 이미 전제로 하고 있어요. 책을 풍요롭게 읽기 위해서는 주석이 반드시 필요했죠. 사실 책에 실린 주석은 준비한 내용의 3분의 2가량에 불과합니다. 출판사와 역자 주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오래 의견을 주고받았어요. 주석을 모두 달면 책이 너무 번잡해지고 원전을 훼손하는 느낌이 들 테고, 주석을 너무 줄이면 책을 이해하기 어려워지죠. 그 타협점이 지금의 형태입니다. 한 단락, 한 단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며칠씩 공부해야 할 때도 있었어요. 뉴턴이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이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했죠. 이처럼 독자들이 홀로 공부하느라 고생하지 않고 일단 먼저 공부를 시작한 제 어깨 위에 서서 더 멀리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번역 작업을 할 때 가장 유의했던 점과 그 과정에서 느낀 매력이 있다면요. 1904년 출간되어 저작권이 오래 전에 소멸된 이 책을 왜 아무도 번역하지 않았는지 궁금했는데, 번역을 하다 보니 그 이유를 알게 됐어요. 영어를 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이탈리아어도 어느 정도 알아야 하고, 이탈리아 정원들을 직접 가보고 또 정원을 직접 가꾸어본 경험이 있어야 제대로 번역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가보지 못한 정원에 관한 내용을 번역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묘사와 서술을 대충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정확히 번역하는 건 다른 차원의 일이었습니다. 다행히 인터넷 시대이기에 구글 지도를 수없이 돌려보며 책에 묘사된 장면을 확인했지요. 역자 스스로 이해하지 못한 글은 생명력을 잃습니다. 물론 제가 원서의 깊이와 맛을 얼마나 잘 살렸는지 모르겠고 가끔 부끄럽기도 합니다. 번역을 하며 그리스 로마 고전을 줄기차게 번역해온 천병희 선생의 말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왜 그렇게 고집스럽게 번역을 하냐는 물음에 그는 번역도 창작 못지않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아무리 외국어를 잘해도 우리말로 읽는 것이 열 배는 더 효율적이라고 답했어요. 번역은 새로운 문물을 가장 쉽고 직접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창구입니다. 충실한 번역이 있을 때 이를 바탕으로 고유의 문화도 꽃피울 수 있습니다. 저는 애매한 창작 논문 한 편보다 충실한 논문 번역 한 편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국은 번역의 가치를 상당히 저평가하고 교수의 실적으로도 인정해주지 않죠. 번역을 통해 더 실력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번역의 가치가 더 인정받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번역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건 다른 언어에요. 조경가 사이에서는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landscape architecture)’의 번역어로 ‘조경’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져왔어요. 책을 보니, 김동훈님은 조경가라는 단어를 기본으로 쓰되, 경관 건축가, 경관 정원가, 정원 건축가라는 단어를 적절히 섞어 사용했더라고요. 원칙적으로는 조경, 조경가란 단어를 채택했습니다.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는 번역어이기 때문이죠. 필요한 경우에는 경관 건축가, 경관 정원가, 정원 건축가라는 말을 썼고요. 조경造景이라는 말을 그대로 풀면 경관을 만든다는 것인데, 의미와 간결성 측면에서 보면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의 최선의 번역어 같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흔히 조경가를 단순한 정원 관리사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죠. 조경이 대지를 다루고 설계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거나 조경을 대체할 더 나은 용어가 나오기 전까지는 아쉬운 대로 쓸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오렌지나무 화분이 가득 놓인 이탈리아식 정원과 집, 빌라 카스텔로 사진을 인상 깊게 봤어요. 화분은 정원을 꾸릴 만한 땅이 없는 사람이 식물을 기르기 위해 사용하는 일종의 도구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거대한 화분을 꽤 큰 규모의 땅에 열 맞춰 놓으니 그럴듯해 보이더라고요. 이탈리아 정원을 상징하는 나무가 여럿 있지만 그중에서도 오렌지나무나 레몬나무는 이탈리아와 지중해를 떠올리게 만들죠. 그런데 오렌지나무는 따뜻한 곳에서만 살 수 있기 때문에, 나폴리 같은 이탈리아 남부라면 모를까 피렌체 같은 중북부에서는 겨울에 노지에서 살지 못합니다. 그래서 화분에 심어 봄이 되면 밖에 내놓았다가 늦가을이 되면 다시 레몬 하우스에 넣어 월동을 하게 하죠. 노지에서 자란 오렌지나무와 화분에 심은 오렌지나무의 느낌이 참 달라요. 화분을 활용한다는 발상 자체도 훌륭하고, 열 맞춰 질서정연하게 늘어놓은 것도 이탈리아인의 절묘한 감각인 것이죠. 게다가 이탈리아 토분의 질감과 색, 모양이 오렌지나무와 아주 잘 어울리죠. 토분의 경우 모두 수작업으로 만들었어요. 모두 조금씩 달라 변화가 보이면서도 가지런히 놓음으로써 전체적으로는 조화와 질서를 이루죠. 한 아름 크기의 큰 토분은 수십만 원이 넘습니다. 이탈리아 정원이 아름다운 이유 중 하나가 작은 소품에도 신경을 쓴다는 점이죠. 책에 소개된 정원 중 하나의 정원만 추천해야 한다면 어떤 정원을 뽑고 싶은가요. 빌라 란테(바냐이아)와 빌라 파르네세(카프라롤라)가 제일 인상 깊었어요. 로마 북쪽으로 고대 로마의 길을 따라 난 현대의 2차선 도로를 달리면 한 시간 만에 도착하는 곳인데, 빌라는 작은 마을 뒤편에 있습니다. 정원과 더불어 이탈리아의 숨은 매력인 소도시의 분위기도 잘 느낄 수 있는 곳이죠. “아 이게 이탈리아의 느낌이구나!” 하게 되는 곳입니다. 코모 호수의 빌라 발비아넬로도 좋았습니다. 코모 호수는 밀라노에서 차로 한 시간이면 가는 곳인데, 당일치기 하지 말고 꼭 2박 정도는 여유롭게 묵으며 아름다운 호수와 정원을 구경하길 바랍니다. 알프스 자락의 호수라 여름에는 아주 시원하고 쾌적한데, 아름다운 마을과 정원을 배를 타고 하나씩 찾아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이탈리아에 정원 문화가 발달한 만큼 관련한 법령이 있나요. 정원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법령이 상당히 발달되어 있고, 특히 경관에 관한 여러 법령이 자세하고 체계적입니다. 더구나 이탈리아 헌법은 “국가는 경관을 보호한다”는 조항을 명시적으로 두고 있죠. 정원은 혼자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정원은 주거와 함께하기에 인근에 마을이 있기 마련이고, 정원이 아름다우려면 짝을 이루는 주변의 경관이 아름답게 보존되어야 합니다. 정원이 아름다워도 눈을 들어 멀리 봤을 때 이를 해치는 경관이 있다면 정원의 가치가 확연히 낮아집니다. 한국도 2007년 ‘경관법’을 제정했지만 큰 실효성이 없는 상태입니다. 경관에 대한 인식이 더 높아지기를 바랍니다. 참고로 국제역사정원위원회가 1981년에 만든 ‘역사 정원에 관한 헌장(플로렌스 헌장)’이 있습니다. 서양 정원의 발원지라 할 수 있는 피렌체에서 만들어졌죠. 역사와 정원의 특질이 잘 보존된 정원을 ‘역사 정원’이라 부르고, 이를 보존하고 복원하는 방법이 상세하게 쓰여 있어요. 우리도 앞으로 정원을 복원해야 한다면 꼭 참고하면 좋겠습니다. 영화나 소설에서 아름다운 정원을 만난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탈리아 피렌체를 배경으로 한 영화 ‘전망 좋은 방’(1989)에 당시의 정원을 아주 아름답게 묘사한 부분이 나옵니다. 마음 가볍게 천천히 음미하면 정말 낙원 같은 정원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또 영상미의 절정을 보여주는 영화 ‘그레이트 뷰티’(2014)에서 스치듯 나오는 정원들이 긴 잔상을 남긴 기억이 있어요. “가장 행복한 삶은 ‘낮엔 밭에서 일하고, 저녁엔 책을 읽는 삶’이라고 생각한다”는 소개 문구가 굉장히 낭만적이에요.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는지 궁금해요. 정원과 관련해 또 다른 도전을 해보고 싶지는 않나요. 마키아벨리는 정계에서 강제로 은퇴당한 뒤 자신의 시골 별장에 머물렀는데, 낮에는 잡다한 일을 하고 시골 사람들과 어울리다가 저녁이 되면 정복으로 갈아입고 책상에 앉아 옛 위인들과 마주했다고 해요. 그게 참 멋지게 느껴졌어요. 텃밭에서 가벼운 채소들은 다 키워봤고, 다음에 석류나무를 심어보고 싶어요. 어릴 적 마당 있는 집에 살았을 때 봤던 석류나무의 아름다운 꽃과 이파리, 몽글몽글 풍요롭게 맺히는 빨간 열매가 지금도 눈에 선하거든요. 더구나 석류는 페르시아에서 왔다지요. 그 옛날 페르시아에서 태어나 중국을 거쳐 한국에 자리 잡은 수목이라는 점이 참 매력적입니다. 몇 번 심어 봤는데 겨울이 지나면서 다 죽더라고요. 또 정말 꿈같은 이야기지만, 제 할아버지가 그랬듯 논에서 벼를 직접 키워보고 싶습니다. 내손으로 벼를 키워 밥을 지어먹어 보고 싶어요. 일과가 끝난 저녁에는 동서고금의 고전을 한 권 한 권 읽어나가고요. 논어, 한비자, 장자부터 아리스토텔레스, 단테까지 천천히 읽고 싶어요. 언젠가는 토스카나의 메디치 빌라에 관한 책을 쓰고 싶어요. 이미 메디치 가문에 관한 글이 많지만, 그들이 위대한 업적을 어떻게 만들어 나갔는지 알기 위해선 좀 더 내밀하게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피렌체라는 도시에서의 공적, 사적 활동과 시골 별장에서의 휴식이 적절히 조화를 이뤄 그런 업적을 만들어낼 수 있던 게 아닌가 짐작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즈음이면 한국 정원에 대한 연구가 어느 정도 이루어져 있지 않을까요. 정립된 이론을 바탕으로 멋진 한국식 정원을 직접 만들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 [어떤 디자인 오피스] 조경설계호원 삶과 장소에 자연의 평온을 담다
    자연의 평온 2023년 12월의 어느 날 사원 개별 면담 중 한 선임 디자이너가 물었다. “설계를 잘하고 싶은데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쉬운 물음이지만 쉽게 답하지 못했다. 일은 잘하고 못하고를 판단할 수 있겠지만, 설계를 잘하고 못하고의 판단 척도는 무엇인가. 근본적인 의문이 생겼다. 설계를 잘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우리의 디자인에 대해서 잘하고 못하고를 구분 지을 수 있을까. 목적 지향적인 단순한 가치를 오피스의 이상으로 두면 한계에 직면할 수 있다는 걸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에 모든 물음에 쉽게 답할 수 없었다. 대지의 선물 9년 전, 조경설계호원(HOWON)(이하 호원)은 호수(湖)와 동산(園)을 담은 자연의 평온한 공간 조성이라는 다소 진부한 이름으로 시작했다. 오랜 시간 동안 인간과 함께 한 자연 공간,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 놓은 장소 사이에서 많은 영역을 차지했던 자연의 물과 녹음의 동산은 우리의 삶을 조금이나마 평온하게 하는 대지의 선물일 것이다. 호원은 이렇듯 세상의 선물과 같은 존재로 미약하나마 존재하려 한다. 한 개인의 시작에서 우리의 시작으로 변한 지는 오래됐다. 오피스의 이름은 이름일 뿐, 그냥 불리기 편한 이름이면 그뿐이다. 허울 좋은 이름 대신 그 안에 담긴 선물처럼 본질을 추구하는 집단이 되고 싶다. 잘하고 못하고를 조경설계의 잣대로 들이대는 게 불편하지만 우리는 잘하며, 잘하고자 한다. 공공의 가치를 구현하다 설계사무소의 철학은 한 개인의 산물이 될 수 없다. 다양한 사고의 흐름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집단의 대상지 해석은 그 대상이 요구하는 시대의 흐름과 장소가 가지는 정체성에서 출발한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최종적으로 결과물에 대한 가치 발견과 평가로서 공공 가치에 우리의 작업이 필요했는지, 장소에 대한 해석을 잘했는지 생각해 본다. 시대적 흐름에 맞추어 조경이 가지는 공공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는 지금 우리는 다양한 공공 프로젝트에 참여를 시도하며, 성과를 보이고 있다. 남산예장공원 2015년 호원 창립과 함께해 온 중요한 프로젝트다. 조경설계사무소로서 무한한 자긍심의 공간이기도 한 예장공원은 호원의 처음과도 같은 장소로 우리가 바라보는 공공 도시 공간에 대한 해석 방법을 잡아가는 시작이었다. 청주 충혼탑 추모공원 마스터플랜 국내 600여 개가 넘는 충혼탑의 엄숙한 추모 공간을 일상의 시민 공간으로 환원하고 추모의 기념적 공간과 도시의 상징 공간으로 장소의 가치를 재해석했다. 2023년 3월 공모에 당선됐으며 이제 설계 막바지를 바라보고 있다. 부산유엔평화공원 화합의 뜰 부산유엔평화공원 화합의 뜰은 메모리얼 공간의 정면성을 확보하며 공원의 사회적 공공 가치 구현을 위한 도시 인프라로서 기능을 수반하는 중첩의 공간으로 계획했다. 2023년 공모에 당선되어 설계의 끝을 바라보고 있다. 포기하지 않는 열정 우리는 모든 조경의 영역에서 활동한다. 다양한 공모에서 낙선의 쓴맛을 보고 있다. 당선안과 낙선안에 대한 해석과 가치를 논하자면 어려울 것이다. 낙선안에 우리가 부족했던 점이 보이기도 하며, 다른 사람과의 대상지 해석의 차이를 되새겨 보기도 한다. 사무실의 모든 구성원이 공모에 참여한다. 오피스 운영 차원에서 보면 비효율적인 측면이 있는 것을 인정한다. 공모 운영에 적합한 구성원이 한 팀이 되어 진행하는 것이 보편적 방법일 수 있지만, 설계를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물론 미흡한 부분으로 인한 문제가 수시로 발생한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의 조직에서 집단 지성이 형성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며 즐겁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모든 공모에 참여한다. 현장에서 시작하는 디자인 설계는 현장의 모습을 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무수히 많은 현장의 조건과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하는 협의 과정이 조성될 공간의 잠재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동주택 프로젝트에서부터 경험하기 어려운 골프 코스 경관 설계와 클럽하우스 등에서 수시로 진행되는 현장 답사를 통해 디자인과 시공의 간극을 좁히며, 조경가의 생각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요소임을 피부로 접하며 깨닫고 있다. DMC SK 스카이 뷰 아이파크 공동주택 조경은 조경가의 능력과 의지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킨다. 각종 규제와 많은 전문가 및 관계자의 다양한 의견은 디자인의 한계를 만들 수 있으나,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해석을 만들기도 한다. 이해 관계자를 설득하는 일련의 과정에는 어떠한 프로젝트와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문제 해결 능력이 필요하다. 자칫 편향된 설계의 방향을 보일 수 있는 설계 대상인 공동주택은 조경가를 훈련시키는 최고의 수단이자 대상이다. 덕평 H1 클럽하우스 실시설계를 참여한 클럽하우스 진입 공간의 경관 구역이다. 레저 및 여가 공간 설계는 디자이너의 눈높이를 크게 변화시키는 기회가 된다. 단정한 디자인, 세심한 디테일, 재료의 통일성, 시퀀스의 변화 등 다양한 툴을 이용한 시뮬레이션이 클라이언트 설득과 대상지 해석에 도움을 주었다. 여주 루트 52 코스 및 클럽하우스 골프 코스 경관 설계와 클럽하우스 조경설계를 진행했다. 토목 공사의 공정률이 어느 정도 진행된 대지의 모습을 보며 조경이 이 세상에 필요한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미래를 함께 바라보며 호원의 구성원은 설계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다. 프로젝트 수행에서 업무의 편중이 발생하는 것이 국내 설계사무소의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공모, 계획, 실시설계, 각종 제안서, 시각화 작업 등 설계의 세부 업무에 모든 구성원이 자신의 디자인 역량을 시험해 볼 수 있고 도전과 협력이라는 가치를 기반으로 팀 조합이 자유로운 그룹 구조를 지향하고 있다. 우리는 독특한 조직 구조를 가지고 있다. 대표 소장 외 경력 15년 이상의 수석 디자이너 4명, 경력 3년 이상의 선임 디자이너 4명, 주임 디자이너로 이뤄진 원통형 구조다. 얼핏 보면 고인물이 모여 원통형 구조가 됐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처음부터 의도된 디자인 그룹의 조직 구성이다. 10명 이상의 국내 설계사무소 운영 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과 디자인 인력과 규모의 확장성을 언제든 확보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구성했다. 탄탄한 수석 디자이너 4명의 디자인 역량과 경험치는 프로젝트의 안정적 진행과 전문 기술을 담아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개별 디자이너와 일대일 그룹 구성으로 발전된 도제식 설계 교육을 운영한다. 설계사무소의 객관적 디자인 역량을 수치화하는 것은 불가능할 수 있으나, 의사 결정의 객관성과 미래의 가치를 함께 바라볼 수 있도록 체계적인 운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운영과 관련해 동료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이를 통해 회사의 지속적인 노력에 모든 구성원 또한 함께하고 있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유연한 경계 그룹별 성과 경쟁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그룹 간 경계가 유연하게 구축되어 있어, 정보를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다. 유연한 일정 조율은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을 제공하게 되고, 팀원들이 스트레스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게 된다. (곽민호 주임 디자이너) 우리의 프로젝트 우리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결과물에는 구성원 모두의 고민과 노력이 들어있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책임 디자이너를 정해 놓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각 프로젝트 담당자는 최상의 결과물을 위해 수시로 의논하고 대화한다. 그렇기에 너희 팀, 나의 팀이 아닌 우리의 프로젝트다. (김재욱 수석 디자이너) 전문적인 배움 프로젝트 진행이 안정적이고 전문적이라 느껴지는 까닭은 네 명의 수석 덕분이다. 사원 입장에서는 수석과 거의 일 대 일 팀 구성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덕분에 알음알음이 아니라, 제대로 배울 수밖에 없다. 옆에서 보고 듣는 간접적인 배움도 많지만, OJT 같은 직원 교육 프로그램이나 질문과 답이 오가는 시간에서 여느 사설 강의와 과외 못지않은 배움을 얻을 수 있다. (임모니카 선임 디자이너) 모두의 발전 나 자신을 위한 것뿐만 아니라 모두를 위해 노력한다. 경력 디자이너로서 신입 디자이너가 업무 역량 및 경험의 부족으로 힘들어할 때 내가 가진 노하우를 알려줌으로써 모두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프로젝트가 이 사회에 이바지하기를 기원한다. (차윤철 수석 디자이너) 주도적인 디자이너 호원의 사람들은 평범하지만 살아있다. 디자인 그룹에서 디자이너에게 기대하는 무한한 능력은 개개인의 역량과 잠재력에 기대어 운영될 수는 없다. 프로젝트 운영 외에 각자의 주도적 참여를 다양한 방향성을 가지고 이끌어 내고자 한다. 월간 세미나와 문화데이, 필드 트립, 리프레시 투어는 프로젝트 업무 외에 조경가의 다양한 사고와 경험을 위해 시행하고 있다. 수석 디자이너가 하는 톱다운 방식의 도제식 교육 외에 모든 구성원이 참여해 강의와 개별 사내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 수동적 태도를 지양하는 우리의 방식이다. 월간 세미나 월간 세미나를 통해 조경설계의 프로젝트 진행 외 필요한 부분을 회사 구성원 각자의 시선으로 공부하고 정리해 그룹 모두에게 강의하고 있다. 강의 후 서로 의견을 나누고 그 내용을 정리해본다. 길지 않은 이 시간이 조경이란 일을 하며 부족했던 부분이나 잘 알지 못했던 내용을 조금 더 편하게 알 수 있도록 도와준다. 직급 제한 없이 모두가 강사라는 이름을 달고 진행하는 세미나가 우리를 조금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가게 해준다. (김승인 수석 디자이너) 서로의 발전을 위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누구나 자신의 무기를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장점은 빛을 발하지만, 그 빛 뒤에 가려진 약점들이 더 많다. 매달 월간 세미나를 통해 본인의 장점과 약점을 공유하며 강의를 하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배우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프로그램 관련 세미나에서부터 재료, 시공 디테일, 식물 소재, 더 나아가 조경 트렌드와 미래의 조경 상에 대한 세미나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한자리에 모여 나누며 서로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김서하 선임 디자이너) 효율적 업무와 워라밸 네 개로 나누어진 팀은 각각 효율적인 일정 관리를 통해 합리적인 업무와 협업을 이루어 낸다. 더불어 유연근무제, 야근 사전 결제 시스템 도입은 실질적인 직원들의 워라밸 향상에 기여하며, 전반적인 직무 만족도를 높일 뿐 아니라 회사 내 탄력적이고 협력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김소라 선임 디자이너) 일과 삶을 공유하다 회사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곳이다. 일해서 돈 버는 곳. 하지만 일하고 돈만 버는 회사는 미래가 없으며 함께 바라볼 비전이 없으면 발걸음에서 점점 힘이 빠지기 마련이다. 일하며 발전하고 놀며 삶을 공유하는 재밌고 편한 회사가 좋다. 그래서 업무 시간은 너무나도 바쁘지만 리프레시데이와 문화데이, 필드트립을 진행할 때는 열심히 놀며 배운다. 매달 행사가 있는 셈이다. 모든 행사에는 구성원들이 하고 싶었던 것을 하거나 가고 싶었던 곳에 간다. 좋은 장소를 보며 즐기며 경험한다. (홍지송 수석 디자이너) 조경설계호원(HOWON)은 사회적 공공 가치 구현을 위한 디자인을 추구한다. 이를 위해 모든 과정에서 도전과 협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상적 디자인 스튜디오를 구성하고자 조직의 체계와 운영을 중시한다. 디자인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모든 활동을 섭렵하며 미래 지향적 디자인 오피스로 발돋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밀레니얼의 도시공원 이야기] 1857년 뉴욕, 어떤 30대
    에피소드 1 1857년, 35세(각주 1) 6월, 여름으로 넘어가는 문턱에 서서: 결국 잡지사가 문을 닫는다. 온갖 분야를 다 해보는 대책 없는 아들이 사업을 하겠다고 나서도 흔쾌히 지원해준 아버지께 죄송할 따름이다. 미국 사회에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하겠다고 나선 출판사가 사업적으로 문제가 있었다는 점은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실용주의에 미친 신사들(practical man) 속에서 실용성 아닌 의미를 찾는 이들의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어쩔 수 있는가. 이제 다른 일을 찾아봐야지. 저번에 보니 시에서 추진하는 공원의 감독관을 찾고 있다고 하던데. 9월, 성공했다: 여름에 넣었던 감독관 지원 서류가 통과했다는 소식. 당파 싸움에 휘말리지 않고 공원에 집중할 수 있는 공화당의 인재임을 어필한 게 효과적이었다. 의원들의 의견을 모으기 위해 도움을 주신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분들께 감사하다. 이제야 좀 안정적인 직업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일까. 걱정은 중요한 일에 손을 보탠다는 흥분감에 따라오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843에이커의 땅에 공화당과 민주당의 의견을 수렴해 뉴욕에 걸맞은 공원을 만드는 일이다. 수백의 사람들이 관리하는 일이다. 지금부터 할 일이 태산이다. 10월, 새로운 기회: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난 다우닝 씨의 동료였던 캘버트 복스(Calvert Vaux) 씨의 연락을 받았다. 공원 설계 공모에 함께 나가보지 않겠냐고 한다. 어쩌면 1851년 런던에서 마주쳤던 그 그림 같은(picturesque) 공공 공원(public park)을 미국 땅에서 실현할 기회일지 모른다. 이 부지의 전체 지형을 조사했던 빅엘(Viele) 씨가 설계한다고 들었을 때는 나도 함께할 여지가 있을까 싶었지만, 딱히 말이 없는 것을 보아하니 복스 씨와 같이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감독관으로 있으면서 느낀 게 많다. 뉴욕 시민들은 미처 모르겠지만 이 공원은 우리의 가장 큰 유산이 될 것이 분명하다. 100년, 200년 뒤 뉴욕의 가장 중요한 장소, 뉴욕 시민들의 허파이자 정신적 지주가 될 것이다. 지난 세기 프라이스가 “픽처레스크에 대한 에세이”(1794)에서 말한 ‘그림 같은’ 경관에 관한 이야기와 기록은 영국에서 시작했을지 몰라도 그 이상에 가장 근접하게 존재하는 것은 분명히 19세기 미국 땅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11월, 결국: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우리 가족의 자랑스러운 존, 내 사랑하는 동생이 끝내 영원히 눈을 감았다. 행복했던 뉴헤이븐의 나날들이여! 기억 속 젊음이 충만한 우리가 계속해서 살아가길. 1858년 4월, 드디어: 공모에 당선됐다는 소식이다. 감독관에서 책임 건축가로 승진했다. 33번째, 마지막으로 공모작을 접수했었는데, 지금 보니 다들 공원을 뭐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앞으로 계속해서 확장될 이 찬란한 대도시에 공원을 만든다는 대업을 자신의 허영을 채우기 위한 기회로 삼은 게 분명하다. 이런 허영 덩어리들이 만드는 공원이 아닌, 미국인의 영혼을 달래주는 진정한 의미의 ‘공공의 공원(public park)’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2024년으로 빨리 감기 166년 전 중앙공원, 즉 센트럴파크가 처음 생겼다. 공원이라는 개념이 처음 생겼다고 할 수는 없 겠지만, 센트럴파크가 오늘날 한국 곳곳에 널리 조성된 ‘중앙공원’이라는 녹지 유형을 안착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음을 부인하기란 쉽지 않다. 이후 연재에서도 언급하겠지만, 한국의 도시민치 고 각 시군의 중앙공원을 안 가본 사람이 있을까. 참고로 한국의 도시화율은 8할이 넘는다. (각주 2) 공원에 주목하기 위해서는 먼저 분석가의 사고적 환기가 필요하다. 중앙공원이 빠르게 도시의 한 귀퉁이를 차지한 것처럼, 공원의 속성은 우리의 일상 배경으로 너무 쉽게 치고 들어왔다. 지난 달 글에 짧게 적었지만, 필자가 센트럴파크를 흥미로운 대상으로 인지한 것 역시 뉴욕살이 만 6년 이 지난 시점이었다. 조경을 전공하기 전이라고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이렇게 신기하고 재미있는 대형 주제를 왜 놓치고 살았는지 과거의 나 자신에게 되묻고 싶은 심정이다. 달리 말하자면, 그만 큼 옴스테드가 치밀하게 공원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한창 공원 공사가 진행 중이던 1859년에 그 려진 지형도에서 옴스테드의 집착에 가까운 면이 쉽게 포착된다. 온갖 공을 들여 식재를 하느라 공원 조성 예산을 훌쩍 넘겨버리는 바람에 위원회와 끝없는 마찰이 있었다는 것 역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언제나 그곳에 있었던 것인 마냥, 한 번의 의심조차 용납하지 않겠다는 마냥. 그렇다고 해서 옴스테드가 마냥 영국식 픽처레스크 정원을 미국에 옮겨오는 데 그쳤다면, 센트 럴파크 ‘공모전’에 당선될 수 없었을 것이다. 옴스테드와 복스의 설계안, ‘그린스워(Greensward)’는 어마어마한 토목 공사를 바탕으로 지어졌을 뿐 아니라 센트럴파크 공원위원회가 1857년 공모전 을 개최하며 내건 여덟 가지 필수 조건을 맞춘 결과다. 여덟 조건은 다음과 같다.(각주 3) 첫째, 공원법에 따라 정해진 약 1,500,000불의 공원 조성비에 대한 구체적 지출 계획 둘째, 59번가와 106번가 사이 동쪽과 서쪽을 연결하며 공원을 가로지르는 4개 이상의 도로 셋째, 20~40에이커 사이 규모의 연병장과 관객들이 편히 관람할 수 있는 편의시설 넷째, 각각 3~10에이커 규모의 놀이터 3개 다섯째, 전시, 콘서트 등 행사를 열 수 있는 건물을 위한 부지 여섯째, 대규모 분소 1개소와 전망대를 위한 부지 일곱째, 2~3에이커 규모의 화훼 정원을 위한 부지와 그것에 대한 설계 여덟째, 물이 흐르는 공간을 남겨두어 겨울에 스케이트를 탈 수 있게 만들 것 특히 흥미로운 지점은 온갖 ‘도로’의 얽힘이다. 21세기 현재의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도 ‘교통’ 과 ‘체증’에는 한없이 민감하지 않는가. 마차가 대규모 보급되어 속도를 즐기는 방법을 깨우치고 있었던 옴스테드의 시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숲속 산책로를 그대로 떠다 만든 듯 거미줄처 럼 얽혀 있는 램블스(Rambles)의 보행로 네트워크와 그것을 둘러싼 마차로(Carriage Road)를 보면, 센트럴파크에서 (적어도 옴스테드가 바라봤을 때)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은 단연코 산책과 드라이브였다. 그리고 시야에서는 보이지 않도록 지형을 뚫고 만든 횡단로(Transverse Road)는 분명 공원 조성으로 인해 맨해튼의 동서가 나뉘는 사태를 걱정하고 있던 공원위원회의 마음에 쏙 들었을 것이다. 19세기 북미에서 옴스테드, 약간의 살 붙이기 사실 옴스테드의 ‘동화 같음’은 그의 정치사회적 사상과 태도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정말 많은 것―자기 자신뿐 아니라 가족의 희생도―을 희생하고 바친 사람이다. 이런 점은 그의 미국에 대한 애정과 민주주의에 대한 글에서 엿볼 수 있다. 사실 공원에 대한 수많은 글의 시작은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간다. 노예 제도에 대한 그의 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미의 19세기는 쳇바퀴 돌아가듯 새로운 문물과 발견이 연이어 이어지는 시기였다. 1840년 대에 텔레그램이 생겨났고, 1820년대 말부터 동부를 중심으로 시작된 철도 건설에 박차가 가해 져 1850년대에는 이미 9,000km 이상의 철로가 깔려 있었다. 철로가 깔리면서 산업이 급격히 발 전했고 남부와 북부의 갈등도 점차 커져 결국 남북전쟁(1861~1865)으로 이어졌다. 남북전쟁이 발발한 원인인 노예 제도에 대한 첨예한 대립은 옴스테드의 공원론에서 남다른 위치를 차지한다. 아직은 공원의 ‘공’ 자도 모르던 시절, 옴스테드는 남부를 여행하며 「뉴욕타임스」 에 이른바 ‘노예주(Slave States)’에 대한 글을 기고했다. 그는 노예 제도에 반대했지만, 동시에 남부가 반대하는 북부의 자본주의적 이기심과 도덕적 해이를 경계하기도 했다. “이처럼 저질스럽고 물질적이고 이기적인 목표를 지닌 정치가와 (남부의 가장 훌륭한 신사조차도 여기 포 함된다) 저질스럽고 편협하며 당에 종속된 물질적인 사람들로 (북부에서 흔히 보인다) 우리의 민주주의 국가관이 대체 어떤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 될 것이란 말인가 ……. 우리에게는 어렵고 낮은 계층에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높일 수 있도록 더욱 직접적으로 지원할 기관이 필요하다. 우리의 교육관은 확장되어야 하며 이런 비참하고 그저 평범 할 뿐인 교육 기관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포괄해야 한다. 힘들고 약한 자들을 그저 내버려 둘 수 만은 없다.”(각주 4) 옴스테드는 정부가 나서서 노예 제도를 근절시킬 것이 아니라 교육과 계몽을 통해 각 지주가 직접 노예를 해방해야 한다고 외쳤다. 즉, 개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되 올바른 해방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민주주의적 이상주의자를 그대로 본뜬 것 같은 사람이 공원의 아버지라 불리는 옴스테드이니, 우리가 무의식중에 공원을 무언가 ‘좋은 것’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에피소드 2 2024년 서울, 여기 30대 “뭐지?” 싶을 제목을 5초만 참고 넘어가 보자. 필자는 고등학교 2학년 수업 시간에 ‘나의 인생 그 래프 그리기’ 과제를 한 적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기억이 거의 그렇듯 완전히 잊고 지냈다.몇 년전 분가를 핑계로 대대적인 짐 정리를 하다 이 그래프가 굴러 나왔다. 세상에나, 모든 것이 기억났다. 혹독한 청소년기를 보내서인지 냉소를 달고 살던 고등학생 필자는 10분 만에 뚝딱뚝딱 단순하 디 단순한 그래프를 완성했었다. (물론 혹독함은 나보다는 부모님에게 해당하는 표현일 것이다. 지면을 빌려 당시 부모 님의 고생에 고개를 숙인다) 만 18세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24세에는 취직을 하며, 35세에는 박사학위 를 받고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한다고 적었다. 70대 이후로는 ‘17세의 내가 결코 알지 못하는 단계니 적지 않겠다’라며 패기 넘치는 설명과 함께 수업 시간에 발표했었다. 자잘하게 삶의 크고 작은 목표 지점을 표시해가는 친구들을 보며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다 바뀔 걸 뭘 저렇게 귀찮게 하나하나 적고 앉았을까’하고 뚱하게 앉아 시간을 때운 기억도 난다. 박사 논문을 본격적으로 쓰 기 직전 ‘발굴된’ 이 그래프는 놀랍게도 내 인생이, 적어도 지금까지는, 어이없을 정도로 일관적으 로 진행되고 있음을 잘도 보여줬다. 말 그대로 18세에는 대학을 마쳤고, 24세에는 첫 직장에 들 어갔으며, 35세에는 박사학위를 받고 말았으니 점쟁이조차 혀를 내두를 계획 중심의 인간이 여기 있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 내게 존경하는 인물을 묻는다면 주저 없이 옴스테드가 튀어 나올 테다. 그는 조경의 아버지라서? 아니다. 그가 그린 인프라를 사실상 시작했기 때문에? 절대 아니다. 그 가 지금의 내 나이, 35세에 센트럴파크의 조경가가 됐기 때문이다. (물론 19세기 중반에 35세라는 나이는 지금의 헛-35세와는 결이 다르다. 1850년대 북미의 평균 수명이 35.1세였는데, 영유아 사망률이 워낙 높은 시기라고 해도 결코 젊 은 나이라고만 보기 힘들다)(각주 5)박사학위를 연구 분야의 ‘자격증’이라고 부른다면, 필자는 이제야 막 자격 증을 따냈으니 앞으로 갈 길만 구만리다. 옴스테드가 35세에 비로소 ‘자격’을 획득했다는 사실은 20~30대 대부분을 연구실에서 보내며 (물론 매우 즐겁게 보냈다) 연구자 자격을 따기 위해 노력한, 그리 고 노력하고 있는 나와 내 동료들에게 약간의 편안함을 준다. 당장 내년의 커리어를 고민하는 모 든 밀레니얼에게 똑같이 다가오는 사실 아닐까. 이것이 어른을 위한 동화가 아니면 무엇일까. 다만, 독자들을 위한 옴스테드의 경고문 다만,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또 옴스테드가 쓴 다른 글을 읽으며 경탄을 금치 못하는 모두들, 경 계하시길. 그가 조경가이기 전에 작가였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옴스테드가 직접 쓴 1차 사료를 읽고 있노라면 그 유려한 문장에서 연상되는 꿈 빛 같은 민주주의 사상에 쉽게 빠져들게 되기 마련이다. 옴스테드가 뉴욕 시민의 미래를 위해 센트럴파크를 계획했다는 데 이견은 없다. 하지만 그 속 에는 엘리트주의적 속성, 교육과 계몽을 통해 바람직한 사고를 지닌 미국의 시민을 키워야 한다는 의지, 우수한 리더십을 통해 도시에서 시민의 행동을 제어하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는 믿음이 존재하고 있다. 엘리트주의자의 전형 같은 모습이다. 실제 센트럴파크 조성 이후 공원에서 의 수많은 ‘규정’이 만들어졌던 것이 이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랬기 때문에 이후 명상을 위한 센트럴파크가 아닌 화려하고 풀어지기 좋은 놀이공원 코니 아일랜드(Coney Island)가 훨씬 더 많은 인기를 누릴 수 있었겠지. 앞으로 몇 회에 걸쳐 옴스테드의 1차 사료가 여러 차례 등장할 예정이다. 날카롭고 뼈를 치는 비판적 사고 회로를 최대한 돌려 소개해드리니, 이 글을 읽는 분들 역시 예리하게 뒤통수를 노리 는 갈매기의 눈빛으로, 비판적으로 읽어주기를 바란다 *각주 정리 각주 1.혹시나 하는 마음에 짚고 넘어간다. 옴스테드 아카이브 내용을 바탕으로 필자가 상상력을 보탰다. 19세기 북미 신사인 옴스테드는 이렇게 경박한 말투를 쓰지 않았다. 각주 2. 국가통계포털 KOSIS “도시화율”, 2022년 9월 업데이트. kosis. kr/index/index.do. 각주 3. 센트럴파크 공원위원회, “Document No. 8, Friday, September 11, 1857”, Documents of the Board of Commissioners of the Central Park, for the Year ending April 30, 1858(1858년 4월 30일로 끝나는 회계 연도에 대한 센트럴파크 공원위원회 의 결 문서집), New York: New York City Central Park Board of Commissioners. 각주 4. Frederick Law Olmsted, “Letter to Charles Loring Brace”, in The Papers of Frederick Law Olmsted: Volume 2. Slaver y and the South, 1852~1857, Charles Capen McLaughlin and Charles E. Beveridge, eds., Baltimore: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81, p.234. 괄호는 옴스테드가 적은 그대로 옮겼다. 각주 5. Human Mortality Database, 2023. www.mortality.org/ Home/Index 신명진은 뉴욕대학교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뒤 서울대학교 대학원 생태조경학과와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석사와 박사를 마친 문어발 도시 연구자다. 현재 예술, 경험, 진정성 등 손에 잡히지 않는 도시의 차원에 관심을 두고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의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도시경관 매거진 『ULC』의 편집진이기도 하며, 종종 갤러리와 미술관을 오가며 온갖 세상만사에 관심을 두고 있다. @jin.everywhere
  • [에디토리얼] 열한 번째 1월호
    제가 쓰는 121번째 에디토리얼입니다. 편집주간이라는 과분한 역할을 맡은 지 작년 연말 호로 10년을 넘어선 것이죠. 이번 『환경과조경』이 2014년 리뉴얼 이후 열한 번째 1월호인 셈입니다. 매년 1월호를 마감하는 시점이 되면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합니다. 새해의 편집 방향을 세우고 새 콘텐츠를 기획하며 새로운 각오를 다지기도 하지만, 안개 자욱한 풍경 속을 걷는 막막한 느낌에 휩싸이기도 하죠. 그럴 때면 늘 샛노란 표지의 309호(2014년 1월호)를 펼칩니다. 박명권 발행인 체제로 옷을 갈아입고 『환경과조경』의 새로운 시작을 선언한 309호. 2024년을 열며 혁신의 열망 가득한 10년 전 잡지를 다시 꺼내 읽습니다. 『환경과조경』은 “조경에대한 사회적 관심과 대중적 수요가 증가하고 일상 속의 조경 문화는 풍요로워졌는데도 정작 제도권 조경은 위기인 역설적 풍경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며, “조경 저널리즘의 지향과 좌표를 설정함으로써 부유하는 한국 조경을 교정해야 한다”는 10년 전 다짐을 다시 불러냅니다. 새 발행인과 편집진, 리뉴얼 T/F팀이 4개월간의 리뉴얼 프로젝트를 통해 세운 그때 그 지향과 좌표는 지금도 유효합니다. “『환경과조경』은 ‘조경 문화 발전소’를 꿈꾼다. ‘한국 조경의 문화적 성숙을 이끄는 공론장’, ‘조경 담론과 비평을 생산하고 나누는 사회적 소통장’, ‘동시대 세계 조경의 보편성과 지역성을 수용하고 발굴하는 전진기지’, 이 세 가지 비전을 지향한다.” “새로운 『환경과조경』은 ‘매달 첫날을 기다리게 하는 잡지, 받자마자 소중한 두 시간을 빼앗는 잡지, 한 달에 세 번은 다시 펼쳐보는 잡지, 과월호도 다시 뒤적이게 하는 잡지’가 되기 위해 매호, 늘, 새로운 출발점에 설 것이다.” 309호 에디토리얼의 마지막 문단입니다. 10년이 흘렀지만, 2024년의 모든 호 모두 그런 내용과 형식을 갖춘 잡지가 될 수 있도록 매달 힘써보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풍성한 피드백을 초대합니다. 2024년의 문을 여는 이번 호는 본지가 주최한 ‘제6회 젊은 조경가’ 수상자 김영민(서울시립대 조경학과 교수) 특집호입니다. 한국 조경계에서는 매우 드물게 교수와 실무 조경가를 겸업하고 있는 김영민은 설계와 이론을 병행해온 이채로운 이력의 소유자이기도 합니다. 이번 특집에는 그의 에세이 ‘모순지도’와 작품들, 김모아 기자의 인터뷰, 동료 김아연 교수와 이남진 소장의 글을 담았습니다. 여기저기 흩어진 김영민의 조경 작업과 조경에 대한 생각을 그러모아 한눈에 조감하는 기회가 되기를, 또 그의 작업을 더 조밀한 비평의 장으로 불러내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호부터 새 연재물 ‘밀레니얼의 도시공원 이야기’를 올립니다. 환경과조경 주최 ‘2016 조경비평상’ 수상자이자 본지 지면의 번역자로 활동해온 신명진 박사(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가 매달 다채로운 공원 담론을 펼쳐갈 것입니다.
  • [풍경 감각] 새해 목표
    새로운 해가 돌아왔다. 달력을 걸고 올해 목표를 꾸린다. 우선 반쯤 써 둔 신간 원고를 완성할 것이다. 생각해 둔 차기작도 투고해야지. 재미있는 프로젝트 의뢰가 들어오면 좋겠고, 늘 미뤄두었던 두껍고 어려운 책도 완독하고 싶다. 수영은 연수반으로 올라갈 정도로 실력이 늘었으면 하고, 멍하니 유튜브 쇼츠와 인스타그램 릴스를 보며 시간을 보내지 않기로 다짐한다. 새로운 일 년이라는 시간이 두둑한 지갑처럼 든든해서, 정말 해낼 수 있는 목표와 실패할 게 뻔하지만 어쩐지 할 수 있다고 믿게 되는 희망사항의 경계가 흐려진다. 무엇이든 정말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얼었던 땅이 풀리고 젖은 흙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지갑을 채웠던 이 기분도 모두 써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올해도 또다시 같은 돌부리에 걸려 무릎이 깨지며 조금씩 낡아갈 것이다. 여태까지 보내온 수많은 새해들처럼. 희망에 부풀어 적었던 올해 목표들을 모두 지워버리고, 대신 한 줄을 적는다. 비슷하게 좋고 나빴던 여러 해 동안 곁에 있어 준 친구들을 닮아보자고. 지겹도록 같은 돌부리에 또다시 넘어진 친구를 울지 말라고 다그치거나 빨리 일어나라고 잡아서 끌지 않기로. 대신 그저 같은 자리에 털썩 앉아 같은 풍경을 바라볼 것. 친구들이 여러 번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 또한 신년 기분에 취해 적은 희망사항일지도 모르지만 올해는 다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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