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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레니얼의 도시공원 이야기] 공원의 주인이 누구요?
    에피소드 1. 주인 의식 “토크쇼의 주인이 누구요?!” 2007년 무한도전 멤버였던 개그맨 박명수가 ‘거성쇼’를 진행하며 카메라를 향해 삿대질과 함께 던진 명언(?)이다. 이 정도만 설명해도 머릿속에 다음 대사가 떠오른다면 당신은 바로 GOAT(Greatest of All Times). (한국에서 밀레니얼을 정의한다면 아마도 ‘MBC 무한도전과 청춘을 함께한 사람들’이지 않을까? 미국에서 밀레니얼을 이야기할 때 포켓몬스터(각주 1)나 서브컬처계에서 특히 유명한 프릭스 앤 긱스(Freaks and Geeks)(각주 2)를 언급하는 것과 비슷할 것 같다) 박명수의 그 발언 직후 MC 역할을 맡았던 개그맨 유재석이 말한다. “시청자 여러분들 아닙니까, 시청자 여러분들.” 당시에는 ‘역시 국민 MC 유재석. 그래, 무한도전은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필자가 요즘 트렌드를 따라가는지 박명수의 발언이 신경 쓰인다. 학부 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며 수없이 들었던 ‘주인 의식을 가지고’ 일하라는 잔소리가 떠오른다. 하지만 어디 ‘남의 업장’을 내 것처럼 생각하기 쉬운가. 필자가 기억하는 첫 ‘주인 의식’은 손안의 작은 세계. 게임보이 ‘포켓몬스터 블루’였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가지고 놀던 다마고치와 비교는 어불성설. 포켓몬스터(이하 포켓몬)는 가상의 ‘세계’를 여행하며 포켓몬을 키우는 방식인데, 그뿐 아니라 대전을 통해 내 포켓몬의 우월함을 스스로 증명하고 결국 나 자신이 위대한 트레이너임을 확인하는, 일종의 안전지대 내 자아실현의 일환이었다. 유치원 시절 공룡 이름을 외우고 다니 듯 초기 150종의 포켓몬 이름과 특징을 외우는 것으로 필자의 미국 현지화가 진행됐다.(각주 3) 비록 가상일지라도 내가 가장 좋은 트레이너,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관리자가 되겠다는 일종의 사명감 아니었을까. 공원의 주인을 찾아 공원의 주인은 누구일까. 공원 조성을 공공 예산으로 했다고 가정할 때, 세금을 낸 시민 전체, 향유의 주체가 될 주변 거주민, 점유하는 노숙자들, 번식과 생식하는 다양한 비인간 생물체와 시야에 포착되지 않는 미생물 등등. 조성부터 이용, 점유에 이르기까지 한 공원의 삶(life of a park)에서공원의 이해 당사자는 수없이 많을 것이며 그중 많은 이가 공원의 주인 노릇을 자처한다. 비록 원래의 의도와 다르다고 해도 말이다. 최근 들어 공원 조성부터 관리까지 빼놓을 수 없는 안건이 ‘공원 거버넌스’다. 조성 단계의 시민 참여부터 지속적인 공론화, 주민 참여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공원에서 주민과 시민, 더 넓게는 국민까지 아우르려는 노력은 결국 공원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노력의 한 축을 이룬다. 공공 공간의 지속가능성은 공공의 관심에 달려있다고 전제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 많은 이해관계자가 얼마나 개인적 이득을 넘어 공원 자체를 가장 아름답게 키우고 싶어 하는지다. 즉 사명감이다. 비록 간접적일지라도 공원에 대해 주인 의식을 지닌 사람들, 사명을 가지고 참여하고자 사방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을 ‘발굴’하고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 *환경과조경432호(2024년 4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케이블 채널 카툰 네트워크(Cartoon Network)에서 1997년 4월 포켓몬의 미국 더빙판을 방영하기 시작했다. 2. 처음 들어본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한 시즌만 하고 사라졌는데, 1990년대 미국의 평범한 인물들의 일상을 드라마화했다. 3. 현재 9세대까지 나와 총 1,024종으로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이젠 더 이상 외우지 못한다.
  • 수성국제비엔날레 국제지명 설계공모 당선작 수성못 수상공연장·수성못 브리지(스카이워크) 조성 국제지명 설계공모
    올해 10월 수성국제비엔날레가 ‘관계성의 들판–자연을 담고 문화를 누리다’를 주제로 열린다. 가상의 전시 주제가 아닌 구체적인 실천의 판으로서 들판에 주목하고, 영역의 경계선을 지운 채 인간과 비인간의 간격을 넘어서는 다원적인 관계를 구축한다. 그 관계의 첫 맺음으로서 건축과 조경의 결합을 통해 영역 간의 경계를 허물고 진정한 공간이 가진 예술성을 찾고자 한다. 이번 비엔날레는 건축·조경 전문가로 구성된 조직위원회(위원장 권종욱), 예술감독(건축감독 최춘웅, 조경감독 김영민)과 신창훈 수성구 총괄건축가 등이 참여해 실제 장소에 구현될 참여 작품 전시와 공공 건축물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안한다. 대구시 수성구 일대에서 열리는 첫 비엔날레로 단순히 아이디어 전시에 그치지 않고, 국내외 건축가와 조경가를 초청한 국제지명 설계공모의 당선작을 통해 실제로 구현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대구 조경, 건축의 완성도를 높여 인구 감소와도시 소멸에 대응하고, 나아가 도시 경쟁력을 확보하고자 한다. 지난 3월 25일 수성국제비엔날레의 다양한 대상지 중 하나인 수성못을 중심으로 한 두 곳(수성못 수상공연장, 수성못 브리지)의 국제지명 설계공모 당선작을 선정했다. 수성못 수상공연장에는 페르난도 메니스(Fernando Menis), 오피스박김, 매스스터디스(Mass Studies), JCDA(James Carpenter Design Associates)가 참여했다. 수성못 브리지(스카이워크)는 West 8, 준야 이시가미 어소시에이츠(junya. ishigami+associates), 디림건축사사무소가 참여했다. 국내외 유명 건축가와 교수 7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는 오피스박김과 준야 이시가미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환경과조경432호(2024년 4월호)수록본 일부
  • 38살 가락시장 정수탑의 재탄생 2023 가락시장 정수탑 공공미술 작품공모 당선작
    지은 지 38년, 작동을 멈춘 지 20년이 된 가락시장 사거리의 깔대기 모양 정수탑이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서울 5대 생활권역에 예술 명소를 만드는 ‘디자인서울 2.0–권역별 공공미술’ 사업의 첫 사례다. 1986년 축조된 가락시장 정수탑은 높이 32m 규모의 거대 구조체로 가락시장에 물을 공급하던 지하수 저장용 고가 수조였다. 하지만 2004년 물 공급 방식이 바뀌면서 폐쇄돼 20여 년 동안 가동을 멈춘 상태다. 현재 서울에 남은 유일한 급수탑으로 2009년 디자인 개선 뒤 보존되어 왔다. 2022년 10월 서울시는 2023 가락시장 정수탑 공공미술 작품공모를 개최했다. 공모는 ‘물의 생명력’을 주제로, 정수탑의 본래 기능에 착안해 예술을 통해 물의 생명력을 일깨우는 동시에 30년 이상 한 자리를 지켜 온 정수탑을 다시금 지역에 생기를 불어넣는 예술 통로로 구현하고자 했다. 여섯 개 출품작 중 네드 칸(Ned Kahn)의 ‘비의 장막(Rain Veil)’이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환경과조경432호(2024년 4월호)수록본 일부
  • [기웃거리는 편집자] 반복되는 일상 벗어나기
    한 해의 계획을 세우는 기간이 3번 있다는 속설이 있다. 신정, 구정 그리고 새 학기. 신정은 1이라는 숫자가 말해주듯 새로운 한 해가 시작하는 날로 앞으로의 1년을 어떻게 보낼지 계획을 세울 수 있고, 구정은 음력 1월 1일이니 어찌 보면 진짜 새해가 시작되는 날이라고 할 수 있다. 설 연휴 동안 게으름을 피운 며칠은 없던 셈 치며 마음을 다잡는다. 그리고 학기가 시작하는 3월,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는 날이니 학생들은 이때야말로 제대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할 수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새해 카운트다운을 한 뒤 메모장을 열어 올해 목표를 적어 내려갔다. 출근길 엘리베이터가 층마다 서는 걸 보니 주변 학교들이 개학했다. 2월까지만 해도 1층까지 바로 내려왔는데, 자기 몸보다 큰 가방을 멘 학생부터 교복을 입은 학생까지 동행자가 많아졌다. 책가방을 멘 지가 까마득해 개학은 잊은 존재였는데, 등교하는 학생들을 보니 나에게도 새 학기 바람이 불어온다. 1월 1일에 정한 목표를 더 열심히 실행할 수 있는 힘이 생긴 듯하다. 계획은 참 얄미운 마법사(?) 같다. “갓생(신을 의미하는 ‘갓(god)’과 삶을 의미하는 ‘생(生)’을 조합한 단어로 부지런한 삶을 뜻한다)을 살려면 어서 계획을 세워야지”라고 속삭이며 수첩을 열게 만들어놓고 정작 실행하려면 왜 꾸준하게 하지 못하게 막는 거냐고. 결국 지우지 못한 리스트를 보며 나를 채찍질할 게 뻔한데. 올해는 마법사의 꼬임에 넘어가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여러 방식을 찾아봤다. 새로 발견한 방식은 ‘만다라트 기법’으로, 세계적 야구 선수 오타니 쇼헤이가 자신의 만다라트 표를 공개한 후 유명해졌다. 만다라트(mandalart)는 본질의 깨달음(manda)+성취(la)+기술(art)의 합성어로 목적을 달성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가장 큰 목표를 세우고 이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을 확산해 나가는 형태다. 작성법은 9칸의 사각형을 가로 3개, 세로 3개로 배치해 아홉개를 만든다. 중앙의 가장 큰 사각형에는 핵심이자 최종 목표를 적는다. 그 주변에 세부 목표 8개를 적는데, 다음으로 뻗어나가는 칸에는 구체적인 실천 과제를 쓰면 된다. 목표를 이뤄나가기 위해 필요한 사항을 쉽게 정리해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오타니가 작성한 만다라트 표를 보면 왜 성공했는지 알 수 있다(오타니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 간략히 설명하자면, 오타니는 투수와 타자를 동시에 겸한다. 세계적 축구 선수 리오넬 메시가 축구 경기에 나와 전반전에 미친 듯 골을 넣고, 후반전에는 골키퍼로 나와 모든 공을 다 막아내는 것보다 더 대단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각주 1)). 오타니의 세부 목표 중 이것도 목표가 될 수 있구나라며 신기해했던 게 있다. 바로 ‘운’이다. 운을 가지기 위해 세부 사항으로 쓰레기 줍기, 물건 소중히 쓰기, 긍정적 사고, 책 읽기, 심판을 대하는 태도 등을 적었다. 운칠기삼(일의 성패는 70%의 운과 30%의 재주 혹은 노력에 좌우된다는 뜻이다)이란 단어가 있듯 이 세상일에는 노력과 함께 운도 보태져야 한다. 오타니는 자서전(각주 2)에서 “쓰레기를 줍는 일은 지나간 사람이 떨어트린 행운을 줍는 일이다”라며 성공엔 실력뿐 아니라 운이 더해져야 하고, 운을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타고난 재능뿐 아니라 피땀이 담긴 훈련과 연습 그리고 자신이 만든 운까지 더해져 지금의 오타니가 탄생한 것이 아닐까. 오타니처럼 8가지 목표와 그에 대한 56가지 세부 사항을 세우는 건 나를 압박하는 것 같아서 반을 나눠서(정확한 반은 아니지만) 4가지 핵심 목표와 그에 대한 16가지 세부 사항을 적었다. 나의 만다라트 표 정중앙에 적은 목표는 ‘반복되는 일상 벗어나기’다. 직장인들에겐 3, 6, 9 법칙이 있는데, 3개월, 6개월, 9개월 혹은 3년, 6년, 9년마다 직장 생활에 위기가 찾아온다는 의미다. 3년 차가 된 요즘 매일 똑같은 일상에 노잼 시기가 찾아온 듯하다. 그래서 소소하지만 색다른 이벤트를 만들어 현생(현재의 생활)을 번아웃 없이 잘 살아보자는 의미로 목표를 정했다. 2024년 1분기가 지나고 있는 지금까지의 달성정도를 보면 나쁘지 않다. 구체적이면서 세부적인 실행 방법까지 적어서 그런지 잘 진행 중이다. 꽤 많은 세부 사항을 지울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을 안고 오늘도 운동 센터로 퇴근한다. **각주 정리 1. 권윤택, “한국 야구에서 ‘오타니 쇼헤이’같은 선수가 나올 수 없는 이유 (Part-1)”, 「더케이경제」 2024년 1월 22일. 2. 오타니 쇼헤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오타니 쇼헤이의 120가지 사고(不可能を可能にする大谷翔平の120の思考)』, 피아(ぴあ), 2017.
  •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우리가 외로움을 느낄지라도,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소셜 네트워크가 세상과 연결은커녕 나를 외딴섬으로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압박감에 짓눌려 생각했다. 자기 PR의 시대 SNS는 필수입니다 같은 말들이 여기저기 떠다니는 세상, 이력서에 블로그 주소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계정을 적는 칸이 생기기까지 한다. 이제 SNS는 단순히 일상을 공유하는 매체라기보다는, 내가 얼마나 멋진 관점과 좋은 취향을 가지고 있으며 닮고 싶은 삶을 살고 있는지 보여주는 수단이 되어가고 있다. 썩 전시할 만한 거리가 없는 난 그렇게 점점 섬이 되어 간다. 인스타그램을 좀 굴려볼까 했었다. 페이스북은 글을 많이 써야 할 것 같아 부담스러웠다. 손가락을 가볍게 밀고 누르며 볼 수 있는 만큼, 내 서투른 글이 공유되어 이리저리 떠돌아다닌다고 생각하면 겁이 났다. 글 대신 이미지가 피드를 장악하는 인스타그램은 보잘것없는 내 글 솜씨와 얕은 생각을 잘 가려줄 것 같다는 건방진 생각도 있었더랬다. 매달 누구보다 빨리 좋은 조경을 찾는 게 내 일인 만큼 취재 간 김에 사진 한두 장 찍으면 될 일 아닌가. 촬영 실력은 없지만 공간 자체의 가치가 사진을 치장해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솟았다. 하지만 근거 없는 자신감은 쉽게 무너지기 마련, 난 번번이 패배했다. 그것도 내 두 눈에!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도저히 사진으로 옮겨올 수 없었다. 가장 막막해지는 순간은 내 몸보다 훨씬 큰 스케일의 장소를 마주할 때였다. 세종중앙공원(2020년 12월호)의 장남들광장 한복판에 섰을 때의 감각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떤 수직적 요소도 없이 전월산까지 펼쳐지는 낮은 경관은 꼭 땅과 숲이 산을 향해 빠르게 내달리는 것 같은 속도감마저 느끼게 했지만, 내 카메라 프레임에 담기는 순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잔디밭이 되어버렸다. 어디에서 시작해 어디에서 끝나는지 알 수 없어 그 크기를 실감할 수도 없는 초록 네모. 높은 건물에 올라 내려다보듯 찍으면 공간감을 전할 수야 있겠지만, 낮고 넓게 펼쳐진 긴 땅이 주는 강렬함과 일탈이라도 저지른 것 같은 해방감은 알려줄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유청오를 인터뷰할 때 그 방법부터 묻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 감각을 찍는 방법 말이다. 유청오가 선택한 방법은 사람을 함께 담는 거였다. 결국 조경이란 사람의 이용을 염두에 둔 공간이기에. 여의치 않을 땐 사람이 있다고 상상하며 찍는다. 아직도 알 듯 말 듯 아리송하지만, 이 말은 즉 비어있더라도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게 만든다는 게 아닐까. 딱 떠오르는 사진이 있었다. 그리스의 비주얼 아티스트인 아리스토텔레스 루파니스(Aristotle Roufanis)는 밤중의 도심 풍경을 통해서 도시 거주자의 삶과 외로움을 찍는다. 어론 투게더(Alone Together) 작업을 위해 그는 고층 건물이나 언덕에 장비를 설치한 뒤 한순간을 포착하기 위한 기다림을 시작한다. 거대한 도심에 작은 불빛들이 별처럼 남기를, 익명의 아파트 커튼 뒤 비치는 인영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인내하다 셔터를 누른다. 그렇게 사진이 멈춰놓은 장면은 내가 모르는 이들의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들며 움직이는 영상으로 변모한다. 모든 불이 다 꺼진 밤, 고요한 도시에서 저 사람은 왜 잠들지 못했을까, 무슨 일 때문에 이른 시간에 깨어났을까. 궁금해하다보면 자연스레 나의 기억을 소환하게 된다. 그 순간 사진 속 도시와 인물은 내가 사는 동네의 어둠 속에서 홀로 잠들지 못하고 있는 내가 되고, 밤하늘에 홀로 남겨진 별처럼 흠뻑 외로워진다. 어론 투게더는 런던에서 외국인으로 살았던 루파니스의 경험에서 비롯된 작품이다. 그는 사진에서 외로움을 크게 증폭시켜 다루지만 결코 그 외로움을 부정하지 않는다. “도시가 커질수록, 사람들은 더 외롭다고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외로움을 느낄지라도,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각주 1) 그래서 루파니스는 창문 하나가 아닌 도심 전체의 풍경을 담아 거대한 사진으로 뽑는 것일 테다. 밤에 잠 못 들고 있는 이가 나혼자만이 아님을, 멀리서 바라보면 오히려 난 하늘을 밝히는 새벽별 중 하나이며, 그 별을 향해 셔터를 누르고 있는 이가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한동안 들고 다니지 않은 미러리스 카메라를 다시 꺼내고 싶어졌다. 아직 발견되지 않아 외로워하는 조경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날도 따뜻해졌으니 설레는 마음으로 카메라 먼지를 훌훌 털어내야지. **각주 정리 1. 어반 스페이스: 도시를 만드는 풍경들, 『보스토크』 40호, 2023, p.3.
  • [PRODUCT] 모험심을 키우는 서핑고래 조합놀이대 사계절 내내 즐길 수 있는 물놀이터
    시원한 여름뿐 아니라 사계절 내내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물놀이터가 있다면 어떨까. 비엔지BnG의 서핑고래 조합놀이대는 어린이들이 물놀이 등 다양한 형태의 놀이를 통해 모험심을 키울 수 있는 복합 놀이 시설이다. 더운 여름에 버킷과 분수 등을 활용해 물놀이를 하고, 나머지 계절에는 일반 놀이터처럼 놀이를 즐길 수 있다. 바다에서 서핑하는 고래를 연상시키는 놀이터를 만들었다. 외부 패널 등은 고래의 묵직한 무게감을 드러내며, 전체적으로 물결을 힘차게 가르며 나아가는 고래 형태를 직관적으로 표현해 아이들의 흥미를 유도한다. 또한 바다의 색을 상징하는 파란색을 주요 색상으로 사용했다. 물결을 표현한 하늘색과 회색이 더해져 시원한 느낌을 연출한다. 외부적 요인으로부터 안전한 놀이 시설을 만들고자 했다. 내부 공간 데크의 단차를 최소화한 넓은 동선과 그늘을 제공하는 돔 형태의 지붕 구조로 우천 등 날씨의 영향을 덜 받을 수 있게 했다. 또한 놀이를 즐기는 아이들을 쉽게 지켜볼 수 있도록 개방감 있는 디자인을 선보였다. 친환경 자재와 도료를 사용하고, 알루미늄과 스테인리스 스틸을 구조물의 주요 재료로 활용해 부식으로 인한 사고나 유지·관리 비용을 줄였다. 또한 패널의 곡선 처리와 볼트 캡 마감 처리는 아이들이 안심하고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형성한다. TEL. 031-708-0693 WEB. www.toryi.com
  • 차이와 모순 ‘제6회 젊은 조경가 김영민’ 토크쇼
    지난 2월 1일, 그룹한 갤러리에서 제6회 젊은 조경가 김영민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의 토크쇼 ‘차이와 모순’이 개최됐다. 토크쇼는 유튜브 생중계와 더불어 청중과 함께한 오프라인으로 진행됐고, 1부 강연, 2부 Q&A 순으로 이뤄졌다. 토크쇼 제목에 얽힌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했다. “질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2004) 제목을 오마주해 ‘차이와 모순’으로 정했다. 한 상점은 어떤 창이라도 뚫을 수 없는 방패를, 맞은편 상점은 어떤 방패든 뚫을 수 있는 창을 판매하는데, 그 창으로 방패를 뚫어보는 실험을 해보는 이야기를 들으며 이질적인 상황에 양립할 수 있는 설계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강연에서 설계를 하면서 마주쳤던 ‘모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며 그의 다양한 프로젝트와 설계 철학, 설계 방법론에 대해 설명했다. 김영민은 SWA Group에서 6년간 다양한 조경설계와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그는 SWG Group 근무 당시 참여한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를 개념을 가지고 설계한 첫 작품으로 뽑았다. “서울 안의 미국이란 특징을 가진 용산 기지에 대한 설계를 ‘강도强度’라는 개념을 통해 풀어나갔다. 생태적 강도와 도시적 강도로 나눠 대상지를 바라보면서 기존 공간 구획 방법을 탈피할 수 있었다”며 개념 성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환경과조경431호(2024년 3월호)수록본 일부
  • [기웃거리는 편집자] 환대, 위로 그리고 무목적의 시간
    한창 스타크래프트가 선풍적 인기를 끌던 시절, 내 또래 친구들은 학원과 PC방을 오가며 교과서 속 이순신보다 프로게이머 임요환을 숭상했다. 나도 그 대열에 잠시 합류했으나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게임엔 소질이나 흥미가 없었고, 학원 수업도 재미없어서 꾸벅꾸벅 졸기 바빴다. 다만 틈날 때 산이나 들판, 개천을 누비며 꽃과 나무를 보는 건 좋아했다. 꽃과 나무에 흥미 이상의 꿈과 실행력을 가졌다면 아마 지금쯤 어떤 디자인 오피스 원고 한 귀퉁이를 쓰고 있는 조경가가 됐을지도. 꽃과 나무에 흥미를 갖게 된 건 주변 환경의 영향이 컸다. 새벽에 나가서, 저녁에 들어오는 고된 하루 속에서도 엄마는 틈날 때마다 집 앞 화단을 열심히 꾸려나갔다. 우리집 밥상에 늘 오르내리던 깻잎과 청양고추, 호박 등 식재료부터 봉선화, 라일락, 맨드라미, 코스모스 등까지 다양한 꽃과 식물이 화단을 채웠다. 특히 봄의 화단이 좋았다. 집 앞에 아름답게 흩날리는 아카시아 꽃비를 맞으며 들어온 적막한 집에 퍼지고 있는 라일락 향은 친절한 식당 종업원이 ‘어서 오세요’라고 활기차게 인사하는 것처럼 나를 반겼다. 라일락 덕분에 ‘환대’의 의미를 어렴풋이 배웠다. 꽃이 환대를 알려줬다면, 나무는 위로를 알려줬다. 당시 우리 학교에는 개교부터 함께해 온 약 백년 가까운 수령의 느티나무 몇 그루가 심긴 쉼터가 있었다. 그 쉼터는 학교와 도로 사이의 단차가 있는 공간에 놓인 일종의 완충 녹지였다. 삐그덕거리는 철문을 열고, 계단을 저벅저벅 내려가 회양목 울타리가 둘러싸인 쉼터에 가면 울창한 느티나무 숲이 그늘을 내주고 있었다. 바둑돌처럼 군데군데 놓인 돌 벤치에 누워서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가지와 초록으로 뒤덮인 온 세상을 더 청량하게 만드는 시원한 바람과 누구라도 한없이 품어줄 것 같은 큰 그늘 안에서 불안, 걱정, 시름은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사라졌다. 위로는 말로 전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느티나무를 통해 ‘말 없는 위로’가 무엇인지 알게 됐다. 나의 삶에 작은 영향을 미쳤던 꽃과 나무를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새로운 역사를 만든 사람도 있는데, 바로 조선시대 화가 강희안이다. 그는 시와 그림에 능하고 재상의 재목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명예와 부에는 관심이 없었고, 소박한 삶을 지향했다. 출근 시간이나 부모님의 안부를 묻는 때를 제외하면 꽃과 나무를 키우는 일로 시간을 대부분 보냈다. 그는 매화가 피면 그 옆에서 시를 짓고, 국화가 피면 술을 마시고, 가을엔 수레를 타고 단풍 구경을 다녔다.(각주 1) 이렇게 꽃과 나무를 돌보다가 탄생한 것이 바로 한국 최초의 원예서적 『양화소록』이다. 『양화소록』은 그가 꽃과 나무를 기르면서 알게 된 특성과 재배법, 품종 등을 자세히 담아낸 일종의 개론서인 동시에 그의 삶과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식물의 천성과 본성을 다르게 하면 죽듯이, 인간도 자신의 본성과 천성에 맞게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또한 옮겨 심을 때 굵은 뿌리가 끊기면 쓰러지고 마는 노송에 빗대 옛법을 함부로 뜯어고치는 조변석개朝變夕改를 지적했다.(각주 2) 요새 그의 삶에서 영감을 얻어 분재를 키우고 있다. 곧게 뻗은 수형의 나무로 시작하려고 했는데 처음부터 관리가 어려운 걸 하면 쉽게 포기할 것 같아서, 아주 작은 풀 한 포기로 시작하고 있다. 물가에서 잘 자라는 석창포인데, 귀엽고 작아서 아주 매력적이다. 매일 아침 물을 주거나 노란 잎을 솎아내며, 그 작은 친구가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걸 지켜보며 나름의 보람과 재미를 느낀다. 특별히 무언가를 하려고 애쓰지 않은 채 그냥 좋아하는 걸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바라볼 수 있는 그 시간이 내게 참 소중하다. 유승종 소장의 표현(112쪽)을 빌리자면 무목적의 시간이라고 할까. 내 삶의 가까운 반경 안에 있는 분재를 다듬고 보살피듯 나의 일상과 마음을 살펴보면서 차곡차곡 무목적의 시간을 쌓아나가고 싶다. 그렇게 내게 환대와 위로를 전했던 꽃과 나무를 닮아가는 삶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각주 정리 1. 강희안, 이종무 역, 『양화소록』, 아키넷, 2012. 2. 조상인, “흐르는 물에 빠져든 선비...속세 벗고 삶의 순리 만끽하다”, 「서울경제」 2017년 9월 15일.
  •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행동에 대한 촉구이자 장벽을 허물기 위한 초대이며 더 포용적인 미래를 위한 약속입니다
    기립성 저혈압이 있다면, 계단을 오르내리기 전 심호흡을 하기를 권한다. 사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니까. 출 근 중 잠깐 어지러워 몸을 휘청거렸을 뿐이었다. 발목이 밖으로 꺾이고 눈앞이 허옇게 번쩍였다. 고통도 잠깐 내가 선 곳은 잠시라도 멈추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지하철 환승 계단, 출근하는 직장인의 행렬 속이었다. 빠져나오는 것이 우선이었다. 벽에 붙어 자리에 쪼그려 앉았을 때야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발목이 내 주먹보다 더 크게 부어있었다. 재택근무. 누구나 한번쯤 달콤한 일상을 상상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출근 준비로 정신없을 시간에 여유롭게 스트레칭을 하고, 지옥철에 시달리는 대신 갓 내린 커피 향을 즐기며 내 방 책상에 앉는 나의 모습을. 인대 파열 수술을 마친 내겐 터무니없이 허황된 일이었다. 목발을 짚고 한가로운 생활? 물 한 모금 마시고 싶을 때도 가족들의 눈치를 봐야 했다(걷는 것도 벅찬데 손에 컵을 들고 움직일 수 있을리가!). 가장 간절했던 건 건식 화장실이었다. 깁스는 분말 석고를 묻혀 보관해 둔 붕대로 만든다. 따뜻한 물에 담가 보호해야 하는 부위 주변에 둘러 모양을 잡으면 그대로 빠르게 굳는다. 한번 굳으면 재사용할 수 없고, 물이 닿으면 곰팡이가 증식한다. 우리 집 화장실은 샤워 공간과 변기가 놓인 공간이 분리되지 않은 형태인 데다가 바닥에 보일러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 덕분에 온 가족이 시간 맞춰 씻으면, 엄마와 동생이 번갈아 가며 화장실 바닥의 물기를 닦았다.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모두가이동할지도는 기부 플랫폼 카카오같이 가치에서 진행하는 사업 중 하나로, 이동 약자를 위한 지도를 만드는 프로젝트다. …… 설계공모 지침과 설계 설명문에서 배리어 프리라는 단어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게 되었는데,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보며 내 일상 속 장소가 얼마나 이동 약자에게 친화적인지 확인해보고 싶었다.”(2023년 6월호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지난해 늘어놓은 건방진 소리를 보니 쓴웃음이 났다. 그런데 더 주제넘게도 고작해야 목발을 2주 사용하는 내가, 행동반경이 집-병원이 전부인 내가, 이동 약자의 마음에 공감하고 있다는 거다. 내 걸음을 편하게 만들어줬던 시설들은 사실 나의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자동문, 엘리베이터와 닫힘 버튼이 작동하지 않는 시스템, 램프, 이음매 없이 매끈한 도로는 누군가의 삶을 위한 것이었다. ‘발목이 다 나을 때까지’라는 행복한 시한부를 가진 내가 아닌, 누군가의 평생을 위한 것들. 때때로 프로젝트 지면에서 유니버설 디자인, 배리어 프리 디자인을 했다는 문장들을 살릴지 말지 고민했다. 휠체어가 오를 수 있도록 길의 경사를 조정하고 모든 턱을 없앴다거나 엘리베이터를 통해 수직 동선을 마련했다는 말이, 벽면을 녹화해 건물의 친환경성을 높였다는 말처럼 허무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도로를 새로 포장하게 된다면, 어떤 이유로 엘리베이터를 운영하지 못하게(또는 않게) 된다면, 모두 없던 것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대부분의 디자인이 앞선 내용에 그친다는 점도 한몫했다. 막 만들어졌을 때만 유효함을 보장하는, 오로지 이동 약자만을 편리하게 하는 디자인, 딱 거기까지였다. 아쉬움에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우연히 배리어 프리 디자인 설계공모가 열리는 걸 알게 됐다. 아르커즈(Arcause)가 주최하는 ‘유디타 그랜트 포 배리어 프리 디자인(UDita Grants for Barrier-free Design҆). 유니버설 디자인 개념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구현해 실질적으로 적용 가능한 배리어 프리 디자인을 발굴하려는 공모는 참여를 고민하는 이에게 말한다. 이 프로젝트는 “행동에 대한 촉구이자 장벽을 허물기 위한 초대이며 더 포용적인 미래를 위한 약속입니다.” 이어 지침서는 유치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반드시 해봐야 할 말들을 던진다. “휠체어 바퀴가 요철과 장애물을 만날 때마다 흔들린다고 상상해 보세요.” “눈을 감고 촉각과 청각에만 의존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자폐증이 있는 사람에게 공원은 감각의 지뢰밭입니다.” “당신은 공감하고 있나요, 동정하고 있나요.” 작은 아이디어라도 수용하는 공모라 조경과 거리가 있을 수 있지만, 나처럼 그 결과가 궁금해진 사람을 위해 홈페이지 주소(ethosempowers.com/arcause/arcauseuditagrants2023)를 남긴다. 참고로 결과 발표 예정일은 2024년 8월!
  • 수변활력거점 조성사업 제안공모 당선작 동대문구 중랑천·영등포구 안양천 수변활력거점 조성사업 제안공모
    2022년부터 서울시는 도시 곳곳에 흐르는 소하천과 실개천의 수변 공간을 새롭게 조성해 수세권을 중심으로 한 서울형 수변감성도시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지역의 특성을 담은 보행로, 쉼터, 놀이 공간 등 시민들에게 곳곳에 흐르는 물길을 따라 여유와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지속적으로 마련해 나갈 예정이다. 2025년까지 총 30개소, 1개 자치구 당 1개소 이상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상반기에 이어 2023년 10월 20일 2개 천변(안양천, 중랑천)의 수변활력거점 조성 사업 제안공모가 개최됐다. 두 차례의 심사를 거쳐 12월 1일 당선작이 발표됐다. 두 개의 당선작을 간략히 소개한다. 안양천, HLD 안양천은 한강의 제1지류로 경기도를 거쳐 영등포구 등 서울시 서남권역의 도심을 지나가는 주요 하천이다. 안양천 하류 오목교~목동교 구간은 철새보호구역으로 지정될 만큼 생물 다양성이 풍부한 생태 하천이다. 이러한 생태적 경관은 대상지까지 이어지며 수려한 풍경을 선사한다. 대상지 인근은 서부간선도로 등 하천변 기반 시설로 인해 가로막혀 있지만 다수의 주거 단지가 자리 잡고 있다. 지하철, 육교 등을 활용한 보행 접근성이 좋아서 산책하는 지역 주민이 많다. 우수한 경관, 생태성 등 하천의 가치를 최대한 보존하고 산책하는 시민에게 자연 친화적인 휴식 공간을 마련해 수변의 활성화를 도모해야 했다. *환경과조경430호(2024년 2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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