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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폴리 Ⅴ, 순환폴리
Gwangju Folly Ⅴ, Re:Folly
순환폴리, 연결된 세계의 집 짓기_배형민
순환 자원_편집부
숨쉬는 폴리_조남호
이코한옥_어셈블+BC 아키텍츠+아틀리에 루마
옻칠 집_이토 도요
에어 폴리_바래
광주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조형물을 마주치게 된다. 이 용도를 알 수 없는 작은 건축물은 쓰임새를 다한 뒤 방치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쩌면 이곳에서 내가 모르는 이벤트가 펼쳐질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심기도 한다. 무표정한 도시의 평범한 일상 공간에 새로운 이야기를 입히는 이것의 정체는 ‘광주폴리’다.
폴리는 서양의 정원에 짓던 장식용 건축물에서 유래했다. 본래도 비를 피하거나 잠깐 휴식하며 머무르는 정도로 쓰이는 실용성이 없는 공간이었지만, 건축가 베르나르 추미(Bernard Tschumi)가 라빌레트 공원에서 색다른 시도를 하며 폴리는 새로운 역할을 갖게 된다. 추미는 라빌레트 공원 전역에 120m 간격으로 35개의 폴리를 배치했다. 기능과는 무관한 다양한 형태의 폴리는 자율적인 오브제로 배치되어 기존 건축의 형식을 해체했다. 이후 폴리는 실용적이지 않아도 문화·예술적 특성을 지닌 공공 시설물이라는 의미를 획득했고, 세계 곳곳의 도시와 공원에 폴리가 세워지기 시작했다.
광주폴리는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일환으로 시작된 프로젝트다. 광주폴리 Ⅰ은 역사적 복원을 주제로, 낙후된 도심에 활력을 불어넣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2년 뒤, 광주폴리 Ⅱ는 광주비엔날레에서 독자적으로 추진하는 도시재생 프로젝트로 바뀌었다. 광주폴리는 공공 공간이 가진 공간·정치적 질서를 탐구했고(2013), 새로운 대중성을 만들고자 ‘맛과 멋’이라는 보편적인 개념에 집중했으며(2017), ‘광주다움’을 주제로 광주 톨게이트를 탈바꿈시켰다(2020).
광주 전역에 설치된 30여 개의 폴리는 회색 도시에 다양한 색과 활기를 입힐 것이라 기대됐다. 하지만 쓸모가 불분명한 폴리가 갖는 단점도 있다. 아무도 폴리가 지닌 잠재력을 발굴하려 들지 않으면 폴리는 그저 덩그러니 선 조형물에 불과하게 된다. 방치되어 낡아가는 폴리는 안전문제를 일으키기도 했고 시민 사회와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박양우 대표이사(광주비엔날레)는 “광주폴리는 그간 홍보와 활용 측면보다는 만들어가는 과정에 집중해왔다. 그 결과 국제적 주목을 받았고 해외에서 폴리를 보러 찾아오는 사람은 많은 반면, 광주 시민에게는 인지도가 낮은 편이다. 폴리의 활용도를 높이고 지역 시민이 찾는 명소로 만들기 위해, 제5차 광주폴리의 주제를 정하는 데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 답을 찾고자 배형민 감독(제5차 광주폴리,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은 도시 속 폴리의 역할이 무엇인지 골몰했다. 그는 “누정은 과거 한국의 커뮤니티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예술에 대해 논했고 사회에 대해 깊이 토론했다”며 광주폴리가 한국 전통 건축물인 누정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새로운 형태의 누정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오가야 할까. 광주폴리는 그 주제로 문명사적 과제인 기후변화를 제시했다. “광주폴리의 쓰임과 기후변화라는 맥락에서 ‘순환’이라는 주제를 떠올렸다. 에너지 절약 차원의 수동적인 제스처가 아니라 자원 차원에서 시작해 건축을 짓는 일 자체에서 순환의 원리를 모색했다.”
순환폴리에서 가장 눈을 끈 건 폴리 조성을 넘어 R&D를 함께 진행했다는 점이다. 디자인, 재료, 공법, 시민 활동을 창조적인 순환 과정으로 구현하는 이번 프로젝트에는 재료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했다. 광주와 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다양한 영역의 연구자, 장인, 기업의 협업 시스템을 구축했다. 전문가뿐 아니라 시민을 대상으로 한 워크숍도 진행했다. 배형민은 “광주폴리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프로젝트다. 건축과 공예, 디자인의 미래를 제시했고 시대의 과제에 부응했다는 측면에서 굉장히 자랑스럽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의 여정은 광주비엔날레가 펼친 도록 두 권에 담겨 있다. 『자원과 과정』, 『사람과 장소』라는 제목에서 순환폴리가 중요하게 여긴 가치가 무엇인지 읽어낼 수 있다. 그 지난한 발걸음을 모두 담을 순 없지만 도록 내용의 일부를 요약해 소개한다.
진행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 자료제공 광주비엔날레재단
주최 광주광역시
주관 광주비엔날레재단
총감독 배형민(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건축생산 큐레이터 윤정원(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도시 큐레이터 강동영(건축사사무소 라움 대표), 이영미(집합도시 대표)
공예·디자인 큐레이터 차정욱(아넥스 공동대표)
시민프로그램 큐레이터 이혜원(대진대학교 미술만화게임학부 교수)
미디어 큐레이터 김그린(아넥스 공동대표)
주제 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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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폴리 Ⅴ, 순환폴리] 순환폴리, 연결된 세계의 집짓기
기후변화의 시대, 건축의 역할은 무엇인가? 시민과 함께 기후위기를 풀어가는 건축은 어떤 모습일까? 2022년 봄에서 2024년 가을까지, 2년 6개월 동안 제5차 광주폴리의 총감독으로 제기한 질문들이다. ‘순환폴리’의 기치를 내걸며 구현된 네 개 프로젝트는 그 해답을 ‘순환경제’에서 찾았다. 자원의 탐사와 발굴, 연구 개발, 디자인, 공법, 시민 활동 모두 창조적이고 실험적인 순환 과정으로 구현됐다.
지금 세계 곳곳의 크고 작은 기관, 기업, 정부, 연구자, 디자이너가 모든 분야에서 순환의 세계를 향해 매진하고 있다. 건설과 재료 산업의 경우 탈시멘트, 탈플라스틱 아젠다를 중심으로 순환 자원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다만, 대부분이 실험실의 성과로 한정되어 있다. 순환폴리가 특별한 것은 친환경 자원, 재활용 건축에 대한 탐색이 연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용되는 도시 공간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일상 건축 환경을 이루는 새로운 자재와 공법의 성능을 모니터링해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기획이며 순환의 건축이 실용적이고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 200년간 선형적인 경제 사회 체제가 지배했다. 에너지, 쓰레기,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대량 생산이 소비를 거쳐 대량 폐기로 직행한다. 환경에 대한 악영향과 관계없이 우리의 의식주는 이윤의 논리로 결정되었다. 환경 파괴와 탄소 배출의 피해를 사회 전체가 떠안았던 시대의 논리다. 그 결과 지구적 스케일에서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고 기후변화라는 문명사적 위기를 직면하고 있다. 지역 농수산업의 부산물이 쓰레기로 버려지고 있는 동안, 같은 재료를 확보하기 위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수입하고 산수가 파괴된다.
이런 생산-소비-폐기의 경로가 방대한 산업 체제로 고착되어 “신진대사의 균열”이라는 현대 문명의 위기를 초래했다. 견고하게 굳어진 산업들이 바뀌어야 하기에 순환 체제로의 전환은 연구와 실험, 탐색과 시행착오를 거칠 수밖에 없다. 기후변화의 시대에는 사물을 만드는 방법, 사물에 대한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전환의 과정은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모든 것을 버려야 하는 것도 아니다. 화석 연료에서 벗어나 재생 에너지로 전환하듯이 집을 짓는 방식, 도시 공간을 만드는 방식을 바꿔 나가야 한다.
지역의 협업 순환
이런 순환폴리의 정신에 따라 다양한 배경의 건축팀을 선정했다. 영국의 어셈블(Assemble), 벨기에의 BC 아키텍츠(Architects), 남프랑스의 아틀리에 루마(Atelier Luma)로 구성된 팀, 일본의 이토 도요Ito Toyo, 그리고 한국팀은 전진홍과 최윤희가 이끄는 바래, 조남호가 이끄는 솔토지빈건축사사무소, 모두 네 개 팀을 선정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재료와 구법에 실험적인 자세로 접근하는 건축가들이다.
어셈블, BC, 아틀리에 루마는 참여형 디자인, 순환 시공, 재활용 자재, 지역 생태 자원의 연구를 선도하는 유럽의 젊은 조직이다. 광주 구도심의 폐가를 리노베이션해 동네의 쉼터, 친환경 사회적 기업의 사무 공간 ‘이코한옥(Eco Hannok)’을 만들었다. 이토 도요는 순환폴리에 참여하는 가장 원로이자 널리 존경받는 세계적인 건축가다. 긴 시간 건축의 공공적 가치를 실천해온 이토 도요는 옻칠을 구조재로 활용하는 초유의 과감한 프로젝트를 구현했다. 바래는 한국에서 가장 실험적인 작업을 하는 건축팀이다. 소품, 가구, 대형 실내 공간을 풍선 구조로 구현해온 바래는 해조류 바이오 플라스틱으로 ‘에어 폴리(Air Folly)’를 만들었다. 25년간 목조를 현대 건축으로 탐구해온 조남호는 기존의 야외 공연장을 더 편하게 쓸 수 있도록 야외무대와 다용도 문화 공간, ‘숨쉬는 폴리’를 만들었다.
이미 산업화된 목재이든 새로 개발한 옻칠 판, 미역 바이오 플라스틱, 생석회 벽돌 등이든 순환폴리에 사용된 모든 재료는 근대 산업과 생산 체계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숨쉬는 폴리의 실내에만 사용한 장성 편백나무는 왜 구조 부재로 사용하지 못했는가? 미역 채취 과정에서 쓰레기가 되는 미역 줄기는 훌륭한 건축 원료인데 왜 널리 쓰이지 않는가? 남해 일대에서 넘쳐나는 굴 껍데기로 만든 벽돌이 왜 시멘트 벽돌보다 열 배 비싼가?
나무는 친환경 재료라는 일반적 인식이 있지만 한국은 거의 모든 구조 목재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탄소 중립 정책이 강화되면서 목재를 점점 많이 써야하는 상황에서 숨쉬는 폴리는 목재의 미래. 한국의 산림 정책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순환의 건축을 이루기 위해서 산업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디자인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묻는다. 순환폴리는 정답을 제공하기보다 질문을 던지며 담론을 생산한다. 결과만큼 과정이 중요하기에 과정의 기록에 정성을 쏟았다.
과정의 핵심은 언제나 협업이다. 개인적인 역량이 아무리 탁월하더라도 순환경제로의 이행은 여러 분야가 함께 해야 한다. 이토 도요가 ‘옻칠 집’의 건축가로 나서지만 이토 사무실의 디자인팀은 물론 도키 겐지(Toki Kenji) 교수 (미야기대학)가 리드하는 옻칠 장인, 도쿄예술대학 교수이자 일본 에이럽(Arup) 디렉터인 가나다 미쓰히로(Kanada Mitsuhiro)의 구조 컨설팅의 역할은 필수적이었다.
이코한옥의 어셈블, BC, 아틀리에 루마는 각기 디자이너, 과학자, 엔지니어들이 포진된 다학제 융합 조직이다. 여기에 건축생산 큐레이터 윤정원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순환 건설 전문가 김형기 교수(조선대학교), 그리고 재료 수급, 가공, 제작을 하는 여러 회사, 시공 현장에 새로운 자재를 구현하는 장인들의 열정적인 조력이 없었다면 이코한옥은 구현될 수 없었다.
숨쉬는 폴리는 조남호와 솔토지빈 사무실은 물론 한국의 독보적인 목조 건축 컨설턴트인 수피아건축과 환경 디자인 컨설턴트인 이병호 박사가 협력했다. 바래는 해조류 바이오 플라스틱 연구자와 생산 기업들과 긴밀하게 협업하여 에어 폴리를 구현했다. 이러한 협업 체계 속에서 전문성을 가진 큐레이터진이 다양한 역할을 했다.
순환폴리: 커뮤니티의 누정
폴리라는 말은 서구에서 ‘바보 같은 짓’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18세기 이후 정원에 세워진 장식적인 구조물을 뜻하게 되었다. 20세기로 이어지는 서양의 전통에서는 건축의 독자적인 가치를 확인하는 작은 파빌리온으로 인식되어 왔다. 기능이 없는 구조물을 애써 지어 어리석다는 뜻보다는 기능이 없기에 오히려 가치 있는 건축의 예술성을 강조해왔던 것이 건축의 폴리다. 하지만 기후위기의 상황에서 예술성이 실험적인 건축의 명분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총감독으로서 일관된 입장이었다.
순환폴리는 서양 폴리의 유산보다는 한국의 전통에서 영감을 얻었다. 우리는 서양의 폴리와 유사하지만 아주 다른 문화 양식을 갖고 있다. 바로 한국의 누정(樓亭)이다. 누정 역시 정원의 작은 건축물이고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기 위한 장소다. 하지만 서양의 폴리가 귀족의 폐쇄적인 공간 속에서 보기 위한 대상이었다면 한국의 누정은 사용되는 커뮤니티의 공간이었다. 순환폴리는 조형물이 아니라 커뮤니티의 활동을 담는 공간이다. 작은 도심의 건축이지만 특별한 공간이며 민주 사회의 의제를 논하는 장소다.
모든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건축은 홀로 동떨어진 세계가 아니다. 건물이 사용하는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른 형태로 바뀌어 세상 속에 존재한다. 건축이 수용하는 사람의 활동도 마찬가지다. 순환폴리는 기후변화와 환경을 주제로 하는 시민 프로그램을 운영하지만 언제든 다른 활동을 수용할 수 있다. 새로 구현되는 순환폴리들은 아시아문화전당 주위의 기존 폴리와 연결하여 시민들의 활동으로 연결된 광주폴리 둘레길을 조성한다. 이렇게 순환폴리는 시간을 두고 시민들을 연결시키는 역할을 한다. “어느 사람이든 그 자체로 외딴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한 부분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여는 존 던(John Donne)의 말이다. 모든 생명체와 사물이 연결되어 있듯이 집도 외딴 섬이 아니다. 기후변화의 시대에 순환폴리는 우리 모두 의식주의 고리로 엮인 공동체임을 확인한다.
배형민은 건축역사가이자 비평가이며 큐레이터다. 생각과 글, 이미지 공간, 설치 등을 엮어 대중과 소통하고 다양한 사람과 협업하는 전시 기획의 재미에 푹 빠져있다. 2008년, 2014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큐레이터로 참여해 2014년에는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총감독, 광주디자인 비엔날레 수석 큐레이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협력 감독, 삼성미술관 플라토 초대 큐레이터 등 전시 현장에서 활동해왔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환경대학원에서 학·석사, MIT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다. 『한국건축개념사전』을 공동 저술·편집했고, 『포트폴리오와 다이어그램(The Portfolio and the Diagram)』, 『감각의 단면』, 『아모레퍼시픽의 건축』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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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폴리 Ⅴ, 순환폴리] 순환 자원
Circulation Resource
순환자원지도
순환 자원에는 지역의 자연 자원, 폐자원, 공예 기술 등 인적 자원, 가공 및 제작이 가능한 기업과 연구 시설의 인프라 자원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된다. 한국은 유럽이나 미국보다 지역 범위가 국소적일 수밖에 없으며 기술 및 인프라 확보가 지역 안에서만 이루어지기 어렵다. 순환폴리의 지역을 정의하는 데 자연소재 및 폐자원 등은 광주를 중심으로 약 100km 이내 범위, 전남 및 전북 일부를 중심으로 살폈다. 2차 가공 및 건축 재료 공급을 위한 연구 제조 시설은 네트워킹과 협력 의지에 따라 주체들이 설정됐다. 자원은 가능한 한 지역 기반으로 하되 지식, 연구, 디자인 역량은 국내외를 넓게 포섭한다는 것이 순환폴리의 정신이자 방법론이다.
미역
이코한옥과 에어 폴리팀은 호남 일대 답사와 프로젝트 리서치를 하며 미역이란 자원에 주목했다. 완도와 고흥의 해조류 양식장과 가공 공장을 방문해 미역, 다시마, 김의 채취, 가공, 유통 현장을 탐사했고, 이는 해조류를 프로젝트의 주재료로 삼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두 팀 모두 바다에 버려지는 미역 줄기를 수거하는 기업과 협업해 해조류를 원료로 한 바이오 플라스틱, 내장재 패널, 기와 유약, 한지, 미장재를 개발해 폴리에 사용했다.
패각
수산물 중 패각류는 채취, 가공, 유통 과정에서 폐기물이 유난히 많이 발생한다. 그래서 패각 재활용은 건강한 땅과 바다를 보호하는 자원 순환의 핵심이다. 패각에서 추출되는 석회는 쓰임새가 다양하다. 지금도 시멘트의 필수 재료로 쓰이지만, 국내에서는 대부분 석회암 산지에서 자연을 훼손하며 생산된다. 서구에서는 고대부터 사용해 온 건축 재료지만, 강한 초기 강도와 반 투수성을 요구하는 현대의 기준에 반한다. 이코한옥팀은 패각류 석회를 벽돌, 미장, 유약 등의 재료로 다양하게 활용했다.
밀
국내산 밀 부산물 재활용에 관심을 두고 지역 생산자와 협업을 도모했다. 하지만 수확 시기에 맞추어 밀 부산물을 수거, 보전할 수 있는 방도를 찾지 못해 밀을 활용한 자재 개발은 무산됐다. 이코한옥팀은 밀 대신 왕겨를 지붕과 벽의 단열재로, 볏단을 벽체 틀로 사용하는 전통적인 방법을 택했다. 해충이나 부패 방지를 위해 왕겨를 태워 훈탄을 만드는데, 볏짚에 비해 변형이 덜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코한옥 조성 시 천연 안료와 배합 촉진제 등 훈탄의 기능적 가능성을 살펴볼 수 있는 재료 실험을 시도했다.
옻칠
옻칠은 옻나무에서 채취한 수액으로 만든 천연 수지다. 중국 대륙과 히말라야 지역, 한반도와 일본이 주요 산지지만, 실용적으로 옻칠을 채취하는 지역은 한정된다. 과거 옻나무가 국내에 산재했으나 현재 국산 옻칠은 원주에서만 채취된다. 국산 옻칠은 문화재 보수 등 극히 한정적인 곳에만 쓰인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현재 고급 옻칠을 포함해 대부분의 옻칠 제품은 중국산과 동남아산 옻칠을 원료로 사용한다.
*환경과조경440호(2024년 12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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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폴리 Ⅴ, 순환폴리] 숨쉬는 폴리
Breathing Folly
지속가능성의 의미
전 세계가 경험하고 있는 기후 재난은 우리의 삶이 근대적 질서에 더 이상 머물 수 없는 새로운 세계라는 걸 비극적으로 확인해 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코로나19 팬데믹도 근본적인 전환의 한 양상이었다. 역사적으로 전염병은 위기이자 기회였다. 14세기 유럽인들은 서유럽의 흑사병 이후 신을 향한 기도보다 위생 검역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는 신권에서 왕권으로 변화되는 권력 이동의 계기가 됐고, 인본주의 르네상스의 토양이 됐다고 한다. 21세기 인류는 과학, 의학이 발전된 환경에서 코로나와 같은 전염병에 잘 대처한 듯이 보이지만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과 마찬가지로 근본적으로 미약하다.
기후변화가 문명사적 위기임에 틀림없지만 기회일 수 있을까. 건축은 기후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탄소 배출량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건설 분야에서 ‘지속가능성’은 해묵은 주제라고 할 수 있다. 건축의 대응은 생산의 근원을 그대로 둔 채 재생 에너지 기술을 덧대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재생 에너지를 위한 노력을 무의미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윤리적 차원을 포함한 건축 생산의 근원적인 변화를 전제하지 않는다면 입버릇처럼 말하는 지속가능성은 기술적 도구에 의존하는 수단에 머물 수밖에 없다. 단열과 밀폐에 의해 단절된 공간에 에어컨, 열 교환 시스템을 설치한 패시브하우스는 인간을 ‘사이존재’가 아닌 환경과의 교감을 상실한 고립된 객체로 전제하는 것이다.
생태환경미학
숨쉬는 폴리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실천으로 친환경 소재를 활용하고 광주폴리를 하나로 연결하는 의미를 담았다. 외피의 성능과 인상, 공기의 흐름을 만드는 공간의 형태, 설비 시스템 등 그동안 조남호 소장이 다른 프로젝트에서 시도했던 숨쉬는 건축의 형식을 세부 기술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생태환경미학의 건축에 다가가는 하나의 분명한 발걸음이었다. 특히 목재라는 소재는 기후변화의 주범인 탄소를 저장할 수 있으며 구축되는 시스템에 따라 건축물의 수명이 다한 후에도 계속해서 사용될 수 있어 탄소 배출량이 매우 적다.
*환경과조경440호(2024년 12월호)수록본 일부
건축 솔토지빈건축사사무소(조남호)
친환경 컨설턴트 이병호(한국부동산원)
시공 제작 수피아건축
태양광 패널 고호솔라
위치 광주시 동구 동명동 92-9
솔토지빈건축사사무소는 조남호 대표가 이끄는 건축사사무소다. 역사의 선례로부터 지혜를 얻고, 새로운 건축을 만들어 가는 조직으로서 공동의 지향점과 구성원 각자의 고유성을 존중하는 집단으로 정착해가고 있다. 생태환경미학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숨쉬는 폴리를 구상하고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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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폴리 Ⅴ, 순환폴리] 이코한옥
Eco Hanok
건물은 고립된 섬이 아니다
광주 도심, 버려진 한옥과 동네 마당을 복구해 작지만 특별한 공간을 지역 친환경 자원으로 만들고자 했다. 1965년 지어져 폐가가 된 한옥을 리노베이션했다. 구성 재료의 추출, 가공, 제작 과정에서 세 가지 생태적 원칙을 따랐다. 첫째, 폐기물이나 저평가된 자원을 건축 자재로 사용해 채취, 가공, 사용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한다. 둘째, 토착 지식과 현대 기술을 결합해 저에너지, 저비용으로 품질을 극대화한다. 셋째, 전문 지식, 노동, 자원, 지역의 네트워크 속에서 건축 생산의 역할을 설정한다. 건물은 고립된 섬이 아니다. 어떤 건축물도 그 주변과 지역의 맥락에서 분리될 수 없다. 아무리 신중하게 기획한 프로젝트라도 환경 파괴 문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한옥 리노베이션
너무 낡아 개보수가 불가능한 작은 문간채는 해체했다. 그 잔해에서 다시 쓸 수 있는 요소를 분리해 본채 개보수에 활용했다. 부서진 얇은 콘크리트 포장은 일부 걷어내 식물이 뿌리내릴 수 있는 흙바닥으로 되돌렸다. 각종 폐자재를 재활용해 새 자재의 사용을 줄였다. 지역의 사회적 기업이 입주할 공간과 상시 개방된 정원으로 한옥을 리노베이션했다.
한옥 도편수가 건물 상태를 조사한 결과, 목재가 흰개미 피해로 손상된 것을 발견했다. 지붕, 벽체, 바닥을 우선 걷어내고, 3D 스캔을 기반으로 목재 요소의 크기와 위치를 정확히 파악했다. 낡은 지붕을 걷어내면서 수십 년간 짊어지고 있던 하중이 사라지자 부재들이 조금씩 느슨해졌다. 새 기와를 얹고 적정한 하중을 가해 부재의 수직, 수평을 다시 맞췄다. 취약한 부분을 보강해 한옥 목구조의 안정을 되찾았다.
목구조에 경량 흙 채움 공사를 하고 시멘트로 마감했다. 불규칙한 집의 형태와 전통 기술을 현대적으로 적용한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시스템화한 패널 마감재 사용은 지양했다. 지붕 단열재로는 한옥에 흔히 쓰는 흙 혼합물 대신 왕겨를 태워 만든 훈탄을 사용했다. 내외부 벽 마감에 쓴 회반죽은 유럽에서 제작한 샘플과 테스트 패널을 바탕으로 현장과 주변 지역 재료를 활용해 개발한 것이다.
마당과 담
땅을 정리해 아래 흙을 드러낸 뒤, 걷어낸 단단한 포장재는 재사용을 위해 보관했다. 한편의 정원에는 유지·관리가 편하고 회복력이 좋은 식물을 심었다. 시간이 지나면 식물이 무성하게 자라고 잘 다듬으면 단정한 정원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화단 가장자리는 부분적으로 수리하고 즉흥적으로 고치기도 했다. 어찌 보면 구멍난 옷을 기우는 작업처럼 보이겠지만 아름다운 방식이었다. 지역의 커뮤니티 공간이 되는 곳이라는 점을 고려해 설계했고, 최소한의 작업으로 최대 효과를 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대지와 골목 사이에 새로 세운 담은 한옥과 마당을 에워싸인 느낌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장식적 스크린 역할을 하는 담은 집의 경계를 명확히 하면서도 주변의 단단하고 폐쇄적인 풍경과 대비된다. 담의 재료는 패각 석회와 흙을 혼합해 만든 블록이다.
재료 연구와 개발
한국을 처음 방문한 2022년, 흙 건축, 밀 생산, 시장 상인, 양식 해조류, 전통 옻칠 공예와 관련된 단체와 전문가를 찾고 워크숍을 진행했다. 더불어 지역 산업의 기술과 공예 지식을 결합해 밀짚, 조개껍데기, 건조된 해초 등 지역 자원을 건축 자재로 가공하는 방법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패각 석회와 골재 혼합물을 시멘트 블록 제작 기계를 사용해 블록으로 만들고, 열과 압축력만으로 해초 패널을 제작하고, 현장에서 발생한 흙을 전통적인 도자기 타일에 바르는 유약으로 만들었다.
지역 자원 조사, 네트워크 구축, 프로토타이핑(prototyping), 재료 실험을 거쳐 최종 생산과 현장 적용이 이루어졌다. 다양한 배경과 전문 지식을 가진 전문가가 이 과정을 함께했다. 패각류와 해조류의 경우, 프랑스에서도 재료 연구가 진행됐다. 대륙과 해양을 넘나드는 자재, 학습, 지식 교류로 이코한옥을 완성했다.
2023년 11월 패각류와 폐골재를 배합해 야외 벤치를 만드는 워크숍을 진행했다. 기존 창고를 철거하며 나온 콘크리트, 시멘트 벽돌, 기와, 지붕의 흙, 폐목재를 마당 한편에 차곡차곡 모아 두었다. 워크숍에서 조선대학교와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으로 구성된 팀과 함께 콘크리트 덩어리와 시멘트 벽돌을 망치로 깨 골재로 만들었다. 생석회를 일정 시간 물과 반응시켜 만든 핫라임과 모래알 크기로 분쇄한 굴 패각을 혼합했다. 벤치의 판을 만드는 작업은 다짐 흙벽과 유사하게 거푸집에 혼합물을 넣어 손다짐 달구로 다진다. 굴패각과 현장에서 수집한 재료가 문양으로 벤치의 문양처럼 켜켜이 드러났다. 워크숍은 재료 실험이자 지역 사회와 소통하는 플랫폼의 역할을 했다.
이코한옥의 의미
이코한옥은 전통 지식과 현대 도구를 결합하는 방식의 유용성과 지혜를 보여주면서, 전통 공예 기술로 소규모 유지·보수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자원과 물질의 흐름을 지역 산업과 연결해 기존의 풍경, 기계 장치, 인프라를 토대로 새로운 경제 가치를 창출한다. 새로운 기술과 자재가 기성 건축 문화를 어떻게 바꿀지 막연히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건설 산업에 종사해온 사람들이 보유한 기술과 경험을 최대한 활용한다.
실험실(개발)에서 공장(반복)으로, 그리고 현장(최종 실행)에 이르기까지 수평적 지식과 문화 양식, 즉 세심하고 회복 가능한 생태적 생산 방식을 중시했다. 이러한 방법론은 지역의 문화적, 물질적 자원을 깊이 이해하는 여러 협력자에게 의존한다. 공동의 접근과 이해는 작은 프로젝트가 더 큰 가능성을 내포할 수 있게 해주었고, 지역의 산업·생산자·시공자가 수용할 수 있는 가치를 만들어냈다. 정리 김모아
순환폴리의 조경
순환폴리에서는 광주폴리 둘레길과 함께 폴리 대상지의 조경설계를 중요하게 여겼다. 과거 폴리 프로젝트의 오브젝트적 성격을 넘어, 폴리가 도시 조직의 일부가 되어 시민들에게 활용되게 하고자 함이다. 이를 위해 Vnh와 안팎은 ‘이코한옥’과 ‘옻칠 집’의 조경설계 및 시공, 시민 참여 조경 프로그램의 기획과 운영을 담당했다.
공공의 마당
한옥만의 사적 마당이 아닌 공공의 마당이자 정원을 제공하고자 했다. 버려진 한옥이 단일 입구를 통해 오가는 구조였다면, 이제는 담장의 일부를 터 동네 안쪽의 좁은 골목과 연결함으로써 통과할 수 있는 구조로 전환되어 동네 골목 커뮤니티의 일부가 되었다. 인접한 골목을 걸으면서부터 정원의 식재들을 엿볼 수 있고, 작지만 풍요로운 마당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된다. 마당에는 작가와의 협업으로 만든 화덕과 우물이 배치되어 있다. 마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코한옥의 툇마루에 앉아 조경을 즐기기도 하고, 우물에서 손을 씻는 등 이 공간에 잠시 참여했다 지나간다.
순환 재료 시스템과 디자인
재생과 순환이라는 프로젝트 주제에 어떻게 동조할 수 있을 것인가에서 설계를 시작했다. 이코한옥의 건축은 광주와 호남 지역 등 광역적 순환 자원의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했다. Vnh은 조경에서 두 가지 방식으로 대상지 내에서의 순환 재료, 순환 자원 시스템을 구현했다. 이를 통해 대상지의 맥락과 자원의 생명력을 연장하고자 했다.
흔적을 존중하는 디자인: 버려진 한옥의 마당에서 대상지의 시간을 기억하고 정체성을 보존할 수 있는 흔적이 무엇일지 고민했고, 마당 콘크리트 바닥의 일부를 존치하기로 했다. 콘크리트는 오래되어 낡고 얼룩진 질감, 오염, 크고 작은 균열을 갖고 있었다. 틈새로 잡초가 자라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단단한 바닥을 이루고 있어 사람들이 모이는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문간방, 화단, 정화조 및 파이프 등 폐한옥을 재건축하며 반드시 철거되어야 하는 부분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충격으로 콘크리트는 파손된다. 철거 중 기존 균열을 따라 자연스럽게 깨어진 콘크리트의 형태를 그대로 따랐다. 마당 중심에 위치한 이 콘크리트는 이코한옥을 방문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밟는 곳이며 새로운 플랫폼이 되었다.
재료의 수집과 새로운 적용: 한옥과 대상지에서 나온 각종 재료를 수집해 새로운 방식으로 배치하고 활용했다. 외부에서 새롭게 반입하는 재료를 최소화했고, 실제로 각 조경 요소를 매개하는 잡석 포장 외에는 새 재료를 도입하지 않았다. 일종의 재활용이자 자급자족의 방식이다.
틈틈이 현장을 탐색하며 활용할 수 있는 재료를 수집했다. 한옥 철거 과정에서 나온 재료에는 바닥 콘크리트와 구들장, 화단의 조경석이 있었다. 구들장은 마당의 디딤석으로 재활용했다. 전통 난방 방식인 구들장에 사용된 판석들은 그 형태와 크기가 디딤석으로 쓰기에 매우 적절했다. 과거 건축 내부에서 마감재 안에 가려져 있던 재료가, 이코한옥에서는 마당으로 옮겨지고 노출되어 사람들이 직접 만질 수 있는 요소로 적용됐다. 화단 경계석으로사용됐던 다양한 크기의 돌은 마당과 골목을 이어주는 계단으로 재탄생했다.
한옥 건축 중 여분으로 남거나 파손되어 사용하지 못한 재료는 기와, 꼬막 패각류, 라임벽돌이 있었다. 독특한 색감과 질감, 곡선의 모듈을 평면적 패턴으로 배치하거나 입면적으로 쌓아올려서 사용했다. 암키와는 마당의 중요 요소인 화덕과 우물을 강조하는 악센트 포장재로 사용했다. 표면에 노출된 기와 단면을 이용해 다양한 패턴 조합을 실험해 결정했다. 기와 패널 사이의 채움재로 꼬막 패각을 썼다. 건축이 개발한 라임벽돌에 사용한 꼬막 패각과 같은 것으로, 파쇄되기 전에 가져와 둥글고 거친 입자와 질감을 느낄 수 있게 활용했다. 또한 기존 담장의 콘크리트 기초 때문에 식재 토심 확보가 어려워 단이 있는 화단을 만들어야 했는데, 상대적으로 반경이 작고 높은 수키와를 쌓아올려 마당의 수직적, 입면적 조경 요소로서 배치했다. 따뜻하고 색다른 색감과 질감을 가진 기와를 다양하게 사용함으로써 조경의 조형적 아름다움을 구현할 뿐 아니라 건물과의 재료 연계성을 강화할 수 있었다.
이코한옥 조경의 설계와 공사에서 가장 큰 특징은 ‘불확실성’이었다. 콘크리트 플랫폼의 형태나 구들장 및 조경석의 형태, 크기, 개수는 책상에서의 예상 도면과 일치하지 않았다. 재료의 양도 한정되어 있었다. 예측해 치수화하기 적합하지 않은 부분이 많기에, 현장에서 다양한 테스트와 시행착오가 이루어졌다. 도면의 형식으로 캐드가 아닌 스케치를 선택한 이유도 이러한 불확실성에 즉각적이고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불확실성은 오히려 설계에 대한 신선한 감각과 역동성을 깨우는 즐거움을 주었다.
시민들의 참여, 조경 식재를 통한 도시재생 워크숍
수집해 재배치한 조경 요소들은 디자인 콘셉트의 특성상 다양한 재료를 마당에 콜라주한 것 같은 모습을 연출한다. 이러한 여러 요소를 하나로 아우르는 것이 식재의 역할이다. 키가 큰 사초류에 들꽃 같은 초화류를 더해 자연스러운 색감이 섞인, 소박하지만 풍요로운 정원을 조성하고자 했다. 기존 마당에 동백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는데, 이를 그대로 두어 새로운 입구에서 사람들을 맞이하는 요소로 사용했다.
식재는 시민들이 식물을 직접 심고 가꾸며 공간 조성에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좋은 매개체다. 공공 마당의 역할을 정원 조성의 과정에서부터 부여하고자 대중과 전문가를 대상으로 2회의 시민 참여 조경 워크숍을 기획해 실행했다.
일반 시민 대상 워크숍의 전반부는 ‘흔적을 통한 조경설계와 도시재생’을 주제로 진행됐다. 현대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폐기물을 활용한 조경 프로젝트와 이코한옥의 조경설계의 목표와 진행 과정을 소개했다. 후반부에는 이코한옥 현장에서 식물 심기 체험을 진행했다.
전문가 대상 워크숍은 근 미래에 조경가로 성장해 지역 조경 문화를 이끌어갈 조경 전공 학생들을 초대했다. 조경 식재에 대한 전문 지식을 교육하고 그 내용을 몸소 체험해볼 수 있도록 식재 현장 실습을 진행했다.
워크숍은 아이 동반 참가자 등 다양한 성격의 시민들에게 지역 사회와 도시재생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내가 함께 만든 공공의 자원’은 시민들의 주인의식을 높이고 프로젝트의 공공성을 확장시켰다.
완공 후 세 달이 지난 지금, 현장을 방문할 때마다 동네 주민들의 소소한 참여의 흔적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지난번에는 우리가 심지 않은 새로운 꽃을 발견했고, 어디선가 무의 씨앗이 날아와 자라고 있다. 이곳이 지속적으로 그리고 역동적으로 사람들과 관계 맺는 공공의 마당이자 정원이 되기를 기대한다. 글 신다영 진행 김모아 디자인 팽선민
건축과 R&D 어셈블+BC 아키텍츠+아틀리에 루마
R&D 윤정원(건축생산 큐레이터, 서울시립대학교), 김형기(조선대학교 건설재료연구실), 서울시립대학교 TAD Lab
제작 지원 드림라임, 클레이맥스, 고령기와, 세진플러스, 홍익휴먼스
시공과 설계 지원 스튜가하우스+어반소사이어티+송련재+일신공예사+현진건축+한옥사랑
조경 이상훈(전남대학교)+신다영(Vnh)+안팎
공예 김시월공예연구소, 장지방, 가라지가게, 스튜디오 오유경
3D 스캔&모델링 테크캡슐
위치 광주시 동구 동명동 209-106
어셈블(Assemble)은 런던을 기반으로 건축, 예술, 디자인 분야를 넘나들며 활동한다. 기존 자원을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인프라로 활용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고 그에 맞는 조직을 세우기도 한다. 제임스 비닝(James Binning)과 마크 게비건(Mark Gavigan)이 참여했다.
BC 아키텍츠(BC Architects)는 건축, 연구, 재료 혁신의 교차점에서 활동하는 하이브리드 조직으로, 벨기에를 기반으로 지역 자원과 공예를 현대적 설계 관행에 통합하는 데 집중한다. 로렌스 베케만(Laurens Bekemans)과 요한 우베르(Yohann Hubert)가 건축 서사와 설계 실행을 이끌었다.
아틀리에 루마(Atelier LUMA)는 생태 지역적 접근법을 개척한 팀이다. 특정 지역을 구성하는 문화적, 환경적 층위를 조사·분석하고, 디자인을 통해 저평가된 자원에 새 용도를 부여한다. 농부와 건축가, 장인과 대학 실험실 사이를 전에 없던 방식으로 연결하기도 한다. 다니엘 벨(Daniel Bell), 헤나 버니(Henna Burney), 산드라 레부엘타 알베로(Sandra Revuelta Albero)가 함께했다.
Vnh는 현시대와 근 미래에 필요한 도시의 공공 영역과 조경설계를 탐구하는 조경설계사무소다. 뉴욕에서 12년간 필드 오퍼레이션스(Field Operations)에서 도시, 건축, 조경 기반의 폭넓은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력을 바탕으로 신다영 대표와 이상훈 디렉터가 2024년에 설립했다. 대규모 도시설계 프로젝트부터섬세한 디테일을 요구하는 소규모 디자인까지 다양한 작업을 수행한다. 땅 본연이 주는 자원과 영감을바탕으로 사람을 위한 생기 있는 공간을 디자인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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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폴리 Ⅴ, 순환폴리] 옻칠 집
Urushi Shell
옻칠, 자연 소재의 재평가
옻칠은 한반도, 중국, 일본에서 오랫동안 쓰여 온 전통 자연 재료다. 일본에서 우루시urushi라고 불리는 옻칠은 옻나무 수액에서 추출해 내구성이 뛰어난 천연 도료이자 접착제다. 그릇, 냄비, 활, 농어업 기구 등 다양한 용도로 쓰여 온 옻칠은 생산 가공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으며 산림 자원의 업사이클링에 기여한다.
애정의 건축
옻의 전통 기술을 보존하는 데 장인 정신도 중요하지만, 옻을 현시대의 우수한 재료와 기술로서 인식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현대 기술과 융합해 현대 생활에 맞게 옻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자연 옻을 가구와 인테리어 제품, 옻칠 집의 셸처럼 건축 구조 재료로 사용함으로써 옻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고, 전통적인 장인 정신을 뛰어넘어 일본 특유의 제조 능력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자 한다.
고대 불상에서 영감을 받은 옻칠 집은 세계 최초로 옻을 구조적 건축 재료로 활용했다. UV 및 수분 저항, 구조적 형태 제작 능력에 대한 철저한 연구바탕으로 자연 재료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계획, 설계, 건축, 운영, 개조, 철거에 이르는 모든 단계에서 환경을 고려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발전할 것이다. 근대 이전에는 고장난 물건을 버리기보다 수리해서 오랫동안 유용하게 사용했다. 옻칠이 햇빛에 노출되어 차츰 퇴색될 때 적절한 유지·보수가 필요하다. 옻칠 집은 만드는 과정에 공예를 만드는 것 같은 정성이 들어간 만큼 관리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면 처음 모습 그대로 수십 년 동안 지속될 수 있다. 옻칠 집은 지역과 시민의 애정을 전제로 하는 건축 작업이자 미래 세대를 위한 유산이다.
*환경과조경440호(2024년 12월호)수록본 일부
건축 이토 도요 건축사무소
디자인 협업 가나다 미쓰히로, 도키 겐지, 도쿄예술대학, 미야기대학
구조 가나다 미쓰히로, 도쿄예술대학, 에이럽
생산 캐탈리스트, 고 시젠 고보, 스튜디오 아르케
옻칠 도키 겐지, 미야기대학+사토 가즈아, 시젠코보
조경 Vnh+안팎
진행 리쉬이야기
협업 아사히 빌딩월, 테이진, 쯔쭈미 아사키치 우루시
위치 광주시 동구 동명동 38-7
1941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토 도요(Ito Toyo)는 도쿄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기쿠타케 기요노리 건축사무소에서 일한 후 1971년에 어반 로봇을 세웠고, 이후 1979년 도요 이토 & 어소시에이츠를 설립했다. 세계를 무대로 새로운 건축의 최전선에서 혁신적이면서도 편안한 공간을 실현하는 건축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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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폴리 Ⅴ, 순환폴리] 에어 폴리
Air Folly
에어 폴리는 산업 부산물과 해양 폐기물을 활용해 생태계의 선순환을 이뤄가기 위한 재활용 건축물이자 비닐하우스를 재해석한 것이다. 해조류를 기반으로 한 환경 친화적 생분해성 비닐로 건축 구조물을 제작했다. 바다 쓰레기가 되었을 미역 줄기로 만든 해조류 필름은 쓸모를 다한 후 토양 또는 해양 생태계에 쉽게 흡수될 수 있어 폐비닐 대체재로 쓰일 수 있다. 해조류 원단 사이 공기층을 만들어 내구성이 있도록 구조적으로 보완하면 가구, 제품, 의류로 쓰임을 확장할 수 있다.
조립, 해체, 이동이 자유로운 모듈 방식의 공간 구조는 재생의 관점에서도 중요하다. 이 같은 순환 시스템을 통해 재료를 버리지 않고 다른 쓰임으로 연결할 수 있다. 유동적인 현대의 삶을 반영하는 공간과 구조는 바래가 지속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에어 폴리의 제작, 사용, 분해 과정을 통해 토양과 바다에서 도심의 식탁과 공간으로, 그 후 다시 땅과 물로 돌아가는 해조류 비닐의 새로운 생애주기를 살펴본다.
해조 필름
전라남도 고흥 미역 양식장 인근에 있는 비닐 공장에서 농업용 멀칭 비닐 해조류 컴파운드를 기반으로 생분해성 해조 비닐의 두께, 폭, 색상을 테스트했다. 이곳은 종량제 봉투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필름을 넓은 폭으로 대량 생산할 수는 있지만 필름 두께와 표면 균일도에 문제가 있었다. 정성오 교수에게 농업에 사용되는 멀칭 필름에 대해 자문을 받아 두께를 조정했다. 에어 폴리에 사용하는 필름은 옷의 원단에 사용하는 멀칭 필름 두께보다 더 두꺼워야 공기를 가두고 어느 정도 힘을 견딜 수 있다.
*환경과조경440호(2024년 12월호)수록본 일부
건축과 R&D 바래(전진홍+최윤희)
협력 기획 이경미
디자인 권서현, 이인애, 장성하, 조예진, 허해인
자문 박문길, 정성오
제작 정광우, 함지연
영상 스튜디오딥로드
패션 배여리
그래픽 김민재
프로그램 정림건축문화재단(건축학교)
설치 홍민희
식물 이주연
특별감사 강나래, 강지성, 곽소연, 곽성현, 김인환, 박동준, 얄루, 유명제, 이재선, 장미현, 장승환, 정진욱, 카밀라최, 황현진, 대학생건축과 연합회, 라인시스템
위치 광주시 동구 동계로 16-15 쿡폴리 콩집
바래는 전진홍과 최윤희가 2014년에 설립한 건축 스튜디오다. 역동적인 도시 환경과 시간에 조응하는 사물의 생산과 순환에 관심을 두고 리서치 기반의 건축 작업을 한다. 재료 분류 수집 로봇에서부터 키네틱 파빌리온, 장소 조건에 적응하며 형태를 달리하는 입체 미디어 설치 등 다양한 작업을 해왔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2015),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2017),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2018)에서 작업을 선보였다. 건축과 환경의 상호 작용을 고찰하며 조립과 공기로 가벼움의 건축을 실험하고 있다. 최근 활동으로는 『어셈블리 오브 에어』(팩토리2, 2021), 한국과학기술원과의 협업을 통해 선보인 ‘에어빔 파빌리온’,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된 ‘에어 빈’, 현대 모터스튜디오의 ‘에어 오브 블룸, 인해비팅 에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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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수성국제비엔날레
SUSEONG INTERNATIONAL BIENNALE
2024 수성국제비엔날레
관계성의 들판,
자연을 담고 문화를 누리다
2024 수성국제비엔날레(이하 수성비엔날레)가 지난 10월 15일부터 27일까지 대구시 수성구에서 열렸다. 수성비엔날레에는 모형, 영상, 패널 전시뿐 아니라 현장에 설치된 공공 건축, 조경 프로젝트가 포함됐다. 전시 주제어가 추상적 개념으로만 가닿지 않도록, 그 주제를 실현한 장소에서 실체를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주제의 ‘들판(feild)’이라는 표현은 현장성을 추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어휘이기도 하다.
현장성 추구가 수성비엔날레 자체의 목표라면, 대구 수성구가 비엔날레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바는 도시 경쟁력 확보와 주민들의 정주 여건 개선이다. 이를 위해 생각을 담는 정원, 신매시장 공영주차장·공원화 조성, 연호지구 개발(연호동과 이천동 일원, 약 90만m2 규모의 공공주택지구 조성), 대구대공원 조성 사업 등이 추진되는 중이다. 즉 수성비엔날레는 수성구의 도시계획과 궤를 같이하며 연동된 것이다.
수성비엔날레는 조경과 건축의 협업으로 인공과 야생, 자연이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는 장소를 조성하는 중이다. 본지는 수성못 수상공연장 및 수성브리지 공모의 당선작과 수상작, 망월지 생태교육관 & 야생초화원 공모의 당선작을 소개한다. 개막 행사와 수성아트피아에서 열린 실내 전시, 생각을담는길 힐링센터, 금호강 생태전망대, 네 개의 파빌리온의 내용은 ‘수성국제비엔날레 둘러보기’에 담았다. 수성비엔날레는 일회성 축제가 아닌 수성구의 도시, 건축, 조경을 진화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를 꿈꾸고 있다. 지속가능한 새로운 형식의 비엔날레를 꿈꾸며 펼친 건축적, 조경적 상상력을 수성비엔날레 조경감독을 맡은 김영민(서울시립대학교 교수)의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수성비엔날레의 주제를 담은 글을 옮긴다. “수성국제비엔날레의 출발점을 들판에서 찾고자 한다. 추상적인 개념이나 이상적인 문헌에서 벗어나, 확장된 들판 위에서 영역 간의 경계선을 지우고, 인간과 비인간의 간격을 넘어서는 다원적 관계를 맺고자 한다. 그 과정을 통해 미래의 건축, 조경, 예술의 혼종적 성향을 실현한 결과물을 최종적으로 선보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전시보다 실현을 앞세우는 수성국제비엔날레에서 들판은 현장성을 가상적으로 선보이는 단순한 전시 주제어가 아닌 구체적인 실천의 판이다. 단순히 사례를 찾아 간접적인 시각 매체를 통해 전시하거나 먼저 들판에 나아간 자들의 경험담을 듣는 후향적 전시가 아닌 직접 만들고 짓는, 실현된 장소에서 실제를 경험하는 현장 전시를 목표로 한다.
들판 위에서 찾으려는 현장성은 크게 세 종류로 분류된다. 먼저, 현장 지식은 이론과 실체, 이상과 현실, 그리고 현재와 미래를 이어준다. 둘째, 현장에서 사귄 동료, 여정에서 만난 동행자의 범위는 이제 새로운 포스트 휴먼 세계관을 통해 확장된다. 마지막으로 조경과 건축의 얽힘을 통한 협업으로 확장된 창작 영역 속에서 인공과 야생, 자연과 사물이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는 새로운 유형의 장소들이 조성된다.
들판 위에서, 또는 현장의 경험을 통해 얻는 현장 지식(field knowledge)이 건축에서는 시공을 통해 확증되는 개념의 실현성을 사전에 인지하는 능력을 배양한다면 조경에서는 자연과 인간의 의지가 시간의 흐름과 함께 균형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조율을 가능하게 한다. 현장 경험에서 오는 지혜는 책이나 토론을 통한 지식과 차원과 영역이 다른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갖고 있다.
들판 위에서, 탐험과 여정을 함께하는 동행자(field companion)의 영역이 이제 인간과 비인간 동물을 넘어 식물과 사물까지 포함하는 포스트 휴먼 세계관은 기후변화의 위기와 인공지능의 확장 속에서 인간이 갖추어야 할 새로운 세계관이다. 이제 더 이상 건조 환경은 인간만이 주체적 사용자가 될 수 없고 인간의 건축 행위는 비인간 동물과 식물, 미생물, 그리고 잔존하는 사물을 아우르는 범주체성의 장이 되어야 한다.
그 관계의 첫 맺음은 예술을 통한 건축과 조경의 결합이다. 건축은 이제 중심에서 벗어나 배경이 되고 인위적인 구축을 최소화하여 자연과 비인간 동물의 영역을 존중하는, 다원적인 주체들의 공생을 목표로 삼아야한다. 조경은 인간 중심의 경관 조성이 아닌 생태적 지속성을 목표로 삼고 그 수단으로 식물, 미생물, 그리고 건축물을 폭넓게 활용하는 환경 조율의 영역이다. 두 분야의 직능적 경계를 지우고 유기적인 협업을 통해 조성되는 장소들 속에서 진정한 공간의 예술성을 찾을 수 있다.” 진행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 자료제공 수성국제비엔날레, 공모 수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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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못 수상공연장
당선작 물 위의 언덕_오피스박김(PARKKIM)
2등작 플로팅 랜턴(Floating Lantern)_제임스 카펜터 디자인 어소시에이츠(James Carpenter Design Associates)
3등작 플로팅 스테이지(Floating Stage)_페르난도 메니스(Fernando Menis)
수성못 수성브리지
당선작 새로운 들안로_준야 이시가미+어소시에이츠(Junya.Ishigami+Associates)
2등작 지붕이 춤추는 다리_웨스트 8(West 8)
3등작 수성수로(壽城水路)_디림건축사사무소
망월지 생태교육관 & 야생초화원 당선작
공존의 풍경_김봉찬+김건철
수성국제비엔날레 둘러보기_편집부
관계성의 들판에 서서_김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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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최 대구광역시 수성구
위 치 수성아트피아(개막 행사 및 전시), 대구광역시 수성구 전역(프로젝트)
주 제 관계성의 들판, 자연을 담고 문화를 누리다
프로젝트 수성못 수상공연장
수성못 수성브리지
망월지 생태교육관 & 야생초화원
생각을담는길 힐링센터(대구광역시 수성구 고모동 1-1번지 외 1필지)
금호강 생태전망대(대구광역시 수성구 매호동 28-1번지 일원)
수성 파빌리온(대구광역시 대덕지, 내관지, 대진지, 매호천)
일 시 2024. 10. 15. ~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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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못 수상공연장 조성 국제지명 설계공모
위 치 대구광역시 수성구 두산동 516 일대 수성못 일원
규 모
수상 무대: 주무대(450~500m2)+백업 공간
무대 방식: 부유형 혹은 고정형
객석: 1,200~1,600석 규모
예정공사비 28,658백만원
설계용역비 1,341백만원
수성못 수성브리지 조성 국제지명 설계공모
위 치 대구광역시 수성구 두산동 431-5 일대 수성못 일원
규 모 160m 정도의 보행자용 교량 및 연관 시설
갤러리, 카페 등 문화 시설과 UAM 착륙장 등 기타 제안 시설 포함
예정공사비 14,092,110천원
설계용역비 907,890천원
망월지 생태교육관(생물자원보전시설) 건립 및 생태축 복원(야생초화원)사업 기본 및 실시설계 지명공모
위 치 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 410번지 일대
대 지 면 적 생태교육관 3,298m2, 생태축 복원 7,134m2
규 모
층수: 지상 4층 이하
연면적: 1,400m2(±10%이내)
주차 대수: 법적 주차 대수 이상
예정공사비 9,315백만원
생태교육관, 주차장: 6,615백만원
생태축 복원사업(야생초화원 등): 2,700백만원
예정설계비 566,360천원
생태교육관, 주차장: 345,360천원
생태축 복원사업(야생초화원 등): 221백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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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국제비엔날레] 물 위의 언덕
수성못 수상공연장 설계공모 당선작
도시의 냉각수
도시화와 근대화를 거치며 세계 주요 도시의 못들은 메워지거나 지하화됐다. 한때 풍부한 하천과 강 덕분에 물의 도시라 불리던 대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재 대구의 무더운 여름을 생각하면 아쉬운 일이다. 만약 이 모든 못이 여전히 지표 위에 남아서 달아오른 땅과 대기를 식혀줬다면 어떻게 됐을까. 저수지를 잘 보존해서 물가에 오픈스페이스를 더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이 두 가지 물음이 설계의 단초가 됐다.
대구의 도시 열섬 지도를 보면서 우리의 질문은 ‘도시의 냉각수로서의 못’이란 아이디어로 이어졌다. 주변 미기후를 분석하며 수성못 서북쪽 모퉁이가 바람골 영향을 받는다는 걸 발견했다. 이곳은 인근 고산골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가장 먼저 도달하며, 남동풍이 부는 여름철에 대상지에서 가장 시원했다. 이를 토대로 가장 시원한 곳에 무대를 계획하고, 겨울철 주된 바람인 서풍을 막아주는 디자인을 고민했다. 또한 지형으로 바람을 끌어들이고 식재를 풍성히 했을 때 3도 이상 더 시원해진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값을 얻었다.
둥지섬과 문화적 짝
새로운 수상공연장은 주변의 산세를 담은 지형과 수면에 수평적인 구조로 이루어지며, 수성못 북서쪽 모퉁이에 위치한다. 이곳은 못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며 여름철 미기후 상 바람이 가장 많이 불어오는 곳이기도 하다. 둥지섬이 신천과 범어천을 징검다리처럼 잇는 수성못의 생태적 허브라면, ‘물 위의 언덕’은 섬과 문화적 짝을 이루며 수면 너머 산을 향해 길고 입체적인 시야를 만들어낸다. 경사와 방향이 다양한 여덟 개 둔덕으로 구성된 물 위의 언덕은 시민들이 여름철 불어오는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기존 제방길을 따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공 장소로 거듭날 것이다.
언덕들의 지형
기존 제방과 바로 연결된 두 개의 언덕 진입로는 무장애 동선을 위해 제방과 같은 높이에서 시작된다. 언덕의 가장자리는 무장애 보행자 동선 역할을 하며 무대 자체를 더 잘 볼 수 있도록 언덕의 경사도를 8~12%로 했다. 가변형 수변 무대와 주 무대는 10cm의 단차가 있어 물의 효과를 더욱 깊고 극적으로 만든다. 제방으로부터 못을 향해 뻗어나간 지형 끝에 무대가 위치하는데, 이 모습은 주변 산으로부터 내려온 언덕들이 마치 물 위에 뜬 꽃잎처럼 모여 있는 형태로 보이게 한다.
자연과 조화를 꾀하는 객석과 무대
무대는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주 무대와 바로 한 단 아래 가변형 수변 무대로 구성되며 다양한 공연 연출을 할 수 있다. 수성못과 수평으로 놓인 주 무대에서는 주변의 경관을 끌어들임으로써 수변과 산세에 어울리는 무대 디자인 연출이 가능하다. 물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낮은 높이의 수변 무대와 언덕의 단차는 더 극적인 공연 연출 효과를 자아낸다.
객석은 두 가지 유형으로 디자인했다. 하나는 1,200석의 고정형 객석으로 무대를 정확히 향하고 있다. 다른 유형으로는 탱글우드 뮤직 페스티벌(Tanglewood Music Festival)의 잔디밭 좌석과 같이 음악과 함께 보다 자유로운 쉼을 원하는 시민들을 위한 공원석을 마련했다. 언덕들은 조금씩 다른 경사를 가지고 물과 만나며, 방문객들은 같은 지형 안에서도 앉는 의자에 따라 각기 다른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무대를 등지고 앉는다면 보다 위요된 작은 스케일의 휴식을 누리게 되며, 상대적으로 나무가 더 우거진 공원석에 앉으면 원경의 산 경관과 함께 마치 숲속에 있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친수와 휴식의 공간
기존 수성못에 부족했던 친수의 기회를 마련하고자 했다. 물의 양을 조절할 수 있는 가변형 수변 무대는 수심이 얕아 안전한 물놀이가 가능하며, 이용객이 없을 경우 반사연못으로 활용된다. 물순환 관리 시스템을 통해 관수 비용을 최소화하고 기존 수성못 수체계에 부담을 덜게 했다. 안개 노즐은 여름철 공원의 온도를 낮추고, 2% 구배의 경사진 벤치는 강우 시 배수로가 된다.
또한 잠시 멈춰서 풍경을 즐기며 쉴 수 있게 했다. 자연과 문화를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물을 향한 사면 계획과 더불어 친수 식재로 구성한 휴식 공간을 만들었다. 다만 공연 시 무대로의 시선을 가로막지 않게 고정 객석에는 식재를 최소화하고 높은 지하고의 수종을 선택했으며, 시선과 바람의 개방성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는 바람 난간을 디자인했다. 여러 방향으로 꺾인 벤치는 그늘, 햇볕, 바람과 함께 사색에 잠길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물 위의 자연을 받치다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구조로 만들기 위해 하이브리드 슬래브 파일 공법을 활용했다. 부유형에 비해 환경성과 시공성이 뛰어나고, 특히 대규모의 공연 중 발생할 수 있는 집중 하중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도 견딜 수 있는 안정성이 장점이다. 또한 캔틸레버 경계는 수면과 지형이 최대한 가깝게 만나게 해 언덕이 물에 뜬 것 같은 친밀감을 느끼게 한다. 콘크리트 슬래브는 FRP 재료로 코팅되어 구조를 강화할 뿐만 아니라 수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결로 등을 방지하고 유지·관리를 용이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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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국제비엔날레] 플로팅 랜턴
수성못 수상공연장 설계공모 2등작
수성못의 생태적 잠재력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확장한 새로운 문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수변과 가까운 거리에서 교감할 수 있는 수성못 동쪽의 수변길과 둥지섬의 독특한 생태적 환경에서 영감을 얻어 기존 자연 경관을 확장하고 개선하는 디자인을 시도했다.
플로팅 랜턴
기존 수변길을 녹지와 함께 확장하며 자연을 품은 새로운 공연장과 연결하고자 했다. 이는 대상지의 생태적 잠재력을 높이고 수변길에 대한 접근성을 향상시킨다. 수성못 북동쪽 역사적 유적지, 두산동 등 인근 지역의 녹지와 대상지를 연결하고 기존 레크리에이션 구역과 제방에 더 많은 녹지를 계획했다. 특히 제방과 시각적으로 연결되며 탁 트인 풍경을 제공하는 새로운 수상 공연장 ‘플로팅 랜턴(Floating Lantern)’을 조성하고자 했다.
자연과 조화를 꾀하는 숲
떠 있는 풍등이란 뜻이 담긴 플로팅 랜턴은 빛을 중심으로 자연과의 조화를 꾀한다. 이곳은 무대인 동시에 사색의 공간으로 기능한다.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가진 주변의 산, 변화와 반성의 심상을 불러일으키는 석양과 조화를 꾀하는 디자인을 통해 방문객에게 사색의 기회를 제공한다. 저녁엔 콘(cone) 구조의 좌석 사이에 은은한 조명이 켜져 랜턴처럼 빛나는데, 호수 표면에 반사된 조명 불빛이 반짝이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호수에 비치는 하늘과 산으로 둘러싸인 플로팅 랜턴은 사계절 다채로운 경관과 시원하고 아늑한 그늘을 제공한다. 나무로 둘러싸인 숲을 연출하기 위해 공연장의 객석과 무대를 원통형 루버 프레임 안에 배치했다. 가벼운 목재 루버 사이로 여과되는 빛과 아른거리는 그림자, 그늘이 조화를 이루며 공간에 아늑한 분위기를 더한다.
*환경과조경439호(2024년 11월호)수록본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