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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폴리 Ⅴ, 순환폴리] 이코한옥
Eco Hanok
건물은 고립된 섬이 아니다
광주 도심, 버려진 한옥과 동네 마당을 복구해 작지만 특별한 공간을 지역 친환경 자원으로 만들고자 했다. 1965년 지어져 폐가가 된 한옥을 리노베이션했다. 구성 재료의 추출, 가공, 제작 과정에서 세 가지 생태적 원칙을 따랐다. 첫째, 폐기물이나 저평가된 자원을 건축 자재로 사용해 채취, 가공, 사용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한다. 둘째, 토착 지식과 현대 기술을 결합해 저에너지, 저비용으로 품질을 극대화한다. 셋째, 전문 지식, 노동, 자원, 지역의 네트워크 속에서 건축 생산의 역할을 설정한다. 건물은 고립된 섬이 아니다. 어떤 건축물도 그 주변과 지역의 맥락에서 분리될 수 없다. 아무리 신중하게 기획한 프로젝트라도 환경 파괴 문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한옥 리노베이션
너무 낡아 개보수가 불가능한 작은 문간채는 해체했다. 그 잔해에서 다시 쓸 수 있는 요소를 분리해 본채 개보수에 활용했다. 부서진 얇은 콘크리트 포장은 일부 걷어내 식물이 뿌리내릴 수 있는 흙바닥으로 되돌렸다. 각종 폐자재를 재활용해 새 자재의 사용을 줄였다. 지역의 사회적 기업이 입주할 공간과 상시 개방된 정원으로 한옥을 리노베이션했다.
한옥 도편수가 건물 상태를 조사한 결과, 목재가 흰개미 피해로 손상된 것을 발견했다. 지붕, 벽체, 바닥을 우선 걷어내고, 3D 스캔을 기반으로 목재 요소의 크기와 위치를 정확히 파악했다. 낡은 지붕을 걷어내면서 수십 년간 짊어지고 있던 하중이 사라지자 부재들이 조금씩 느슨해졌다. 새 기와를 얹고 적정한 하중을 가해 부재의 수직, 수평을 다시 맞췄다. 취약한 부분을 보강해 한옥 목구조의 안정을 되찾았다.
목구조에 경량 흙 채움 공사를 하고 시멘트로 마감했다. 불규칙한 집의 형태와 전통 기술을 현대적으로 적용한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시스템화한 패널 마감재 사용은 지양했다. 지붕 단열재로는 한옥에 흔히 쓰는 흙 혼합물 대신 왕겨를 태워 만든 훈탄을 사용했다. 내외부 벽 마감에 쓴 회반죽은 유럽에서 제작한 샘플과 테스트 패널을 바탕으로 현장과 주변 지역 재료를 활용해 개발한 것이다.
마당과 담
땅을 정리해 아래 흙을 드러낸 뒤, 걷어낸 단단한 포장재는 재사용을 위해 보관했다. 한편의 정원에는 유지·관리가 편하고 회복력이 좋은 식물을 심었다. 시간이 지나면 식물이 무성하게 자라고 잘 다듬으면 단정한 정원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화단 가장자리는 부분적으로 수리하고 즉흥적으로 고치기도 했다. 어찌 보면 구멍난 옷을 기우는 작업처럼 보이겠지만 아름다운 방식이었다. 지역의 커뮤니티 공간이 되는 곳이라는 점을 고려해 설계했고, 최소한의 작업으로 최대 효과를 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대지와 골목 사이에 새로 세운 담은 한옥과 마당을 에워싸인 느낌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장식적 스크린 역할을 하는 담은 집의 경계를 명확히 하면서도 주변의 단단하고 폐쇄적인 풍경과 대비된다. 담의 재료는 패각 석회와 흙을 혼합해 만든 블록이다.
재료 연구와 개발
한국을 처음 방문한 2022년, 흙 건축, 밀 생산, 시장 상인, 양식 해조류, 전통 옻칠 공예와 관련된 단체와 전문가를 찾고 워크숍을 진행했다. 더불어 지역 산업의 기술과 공예 지식을 결합해 밀짚, 조개껍데기, 건조된 해초 등 지역 자원을 건축 자재로 가공하는 방법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패각 석회와 골재 혼합물을 시멘트 블록 제작 기계를 사용해 블록으로 만들고, 열과 압축력만으로 해초 패널을 제작하고, 현장에서 발생한 흙을 전통적인 도자기 타일에 바르는 유약으로 만들었다.
지역 자원 조사, 네트워크 구축, 프로토타이핑(prototyping), 재료 실험을 거쳐 최종 생산과 현장 적용이 이루어졌다. 다양한 배경과 전문 지식을 가진 전문가가 이 과정을 함께했다. 패각류와 해조류의 경우, 프랑스에서도 재료 연구가 진행됐다. 대륙과 해양을 넘나드는 자재, 학습, 지식 교류로 이코한옥을 완성했다.
2023년 11월 패각류와 폐골재를 배합해 야외 벤치를 만드는 워크숍을 진행했다. 기존 창고를 철거하며 나온 콘크리트, 시멘트 벽돌, 기와, 지붕의 흙, 폐목재를 마당 한편에 차곡차곡 모아 두었다. 워크숍에서 조선대학교와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으로 구성된 팀과 함께 콘크리트 덩어리와 시멘트 벽돌을 망치로 깨 골재로 만들었다. 생석회를 일정 시간 물과 반응시켜 만든 핫라임과 모래알 크기로 분쇄한 굴 패각을 혼합했다. 벤치의 판을 만드는 작업은 다짐 흙벽과 유사하게 거푸집에 혼합물을 넣어 손다짐 달구로 다진다. 굴패각과 현장에서 수집한 재료가 문양으로 벤치의 문양처럼 켜켜이 드러났다. 워크숍은 재료 실험이자 지역 사회와 소통하는 플랫폼의 역할을 했다.
이코한옥의 의미
이코한옥은 전통 지식과 현대 도구를 결합하는 방식의 유용성과 지혜를 보여주면서, 전통 공예 기술로 소규모 유지·보수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자원과 물질의 흐름을 지역 산업과 연결해 기존의 풍경, 기계 장치, 인프라를 토대로 새로운 경제 가치를 창출한다. 새로운 기술과 자재가 기성 건축 문화를 어떻게 바꿀지 막연히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건설 산업에 종사해온 사람들이 보유한 기술과 경험을 최대한 활용한다.
실험실(개발)에서 공장(반복)으로, 그리고 현장(최종 실행)에 이르기까지 수평적 지식과 문화 양식, 즉 세심하고 회복 가능한 생태적 생산 방식을 중시했다. 이러한 방법론은 지역의 문화적, 물질적 자원을 깊이 이해하는 여러 협력자에게 의존한다. 공동의 접근과 이해는 작은 프로젝트가 더 큰 가능성을 내포할 수 있게 해주었고, 지역의 산업·생산자·시공자가 수용할 수 있는 가치를 만들어냈다. 정리 김모아
순환폴리의 조경
순환폴리에서는 광주폴리 둘레길과 함께 폴리 대상지의 조경설계를 중요하게 여겼다. 과거 폴리 프로젝트의 오브젝트적 성격을 넘어, 폴리가 도시 조직의 일부가 되어 시민들에게 활용되게 하고자 함이다. 이를 위해 Vnh와 안팎은 ‘이코한옥’과 ‘옻칠 집’의 조경설계 및 시공, 시민 참여 조경 프로그램의 기획과 운영을 담당했다.
공공의 마당
한옥만의 사적 마당이 아닌 공공의 마당이자 정원을 제공하고자 했다. 버려진 한옥이 단일 입구를 통해 오가는 구조였다면, 이제는 담장의 일부를 터 동네 안쪽의 좁은 골목과 연결함으로써 통과할 수 있는 구조로 전환되어 동네 골목 커뮤니티의 일부가 되었다. 인접한 골목을 걸으면서부터 정원의 식재들을 엿볼 수 있고, 작지만 풍요로운 마당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된다. 마당에는 작가와의 협업으로 만든 화덕과 우물이 배치되어 있다. 마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코한옥의 툇마루에 앉아 조경을 즐기기도 하고, 우물에서 손을 씻는 등 이 공간에 잠시 참여했다 지나간다.
순환 재료 시스템과 디자인
재생과 순환이라는 프로젝트 주제에 어떻게 동조할 수 있을 것인가에서 설계를 시작했다. 이코한옥의 건축은 광주와 호남 지역 등 광역적 순환 자원의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했다. Vnh은 조경에서 두 가지 방식으로 대상지 내에서의 순환 재료, 순환 자원 시스템을 구현했다. 이를 통해 대상지의 맥락과 자원의 생명력을 연장하고자 했다.
흔적을 존중하는 디자인: 버려진 한옥의 마당에서 대상지의 시간을 기억하고 정체성을 보존할 수 있는 흔적이 무엇일지 고민했고, 마당 콘크리트 바닥의 일부를 존치하기로 했다. 콘크리트는 오래되어 낡고 얼룩진 질감, 오염, 크고 작은 균열을 갖고 있었다. 틈새로 잡초가 자라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단단한 바닥을 이루고 있어 사람들이 모이는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문간방, 화단, 정화조 및 파이프 등 폐한옥을 재건축하며 반드시 철거되어야 하는 부분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충격으로 콘크리트는 파손된다. 철거 중 기존 균열을 따라 자연스럽게 깨어진 콘크리트의 형태를 그대로 따랐다. 마당 중심에 위치한 이 콘크리트는 이코한옥을 방문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밟는 곳이며 새로운 플랫폼이 되었다.
재료의 수집과 새로운 적용: 한옥과 대상지에서 나온 각종 재료를 수집해 새로운 방식으로 배치하고 활용했다. 외부에서 새롭게 반입하는 재료를 최소화했고, 실제로 각 조경 요소를 매개하는 잡석 포장 외에는 새 재료를 도입하지 않았다. 일종의 재활용이자 자급자족의 방식이다.
틈틈이 현장을 탐색하며 활용할 수 있는 재료를 수집했다. 한옥 철거 과정에서 나온 재료에는 바닥 콘크리트와 구들장, 화단의 조경석이 있었다. 구들장은 마당의 디딤석으로 재활용했다. 전통 난방 방식인 구들장에 사용된 판석들은 그 형태와 크기가 디딤석으로 쓰기에 매우 적절했다. 과거 건축 내부에서 마감재 안에 가려져 있던 재료가, 이코한옥에서는 마당으로 옮겨지고 노출되어 사람들이 직접 만질 수 있는 요소로 적용됐다. 화단 경계석으로사용됐던 다양한 크기의 돌은 마당과 골목을 이어주는 계단으로 재탄생했다.
한옥 건축 중 여분으로 남거나 파손되어 사용하지 못한 재료는 기와, 꼬막 패각류, 라임벽돌이 있었다. 독특한 색감과 질감, 곡선의 모듈을 평면적 패턴으로 배치하거나 입면적으로 쌓아올려서 사용했다. 암키와는 마당의 중요 요소인 화덕과 우물을 강조하는 악센트 포장재로 사용했다. 표면에 노출된 기와 단면을 이용해 다양한 패턴 조합을 실험해 결정했다. 기와 패널 사이의 채움재로 꼬막 패각을 썼다. 건축이 개발한 라임벽돌에 사용한 꼬막 패각과 같은 것으로, 파쇄되기 전에 가져와 둥글고 거친 입자와 질감을 느낄 수 있게 활용했다. 또한 기존 담장의 콘크리트 기초 때문에 식재 토심 확보가 어려워 단이 있는 화단을 만들어야 했는데, 상대적으로 반경이 작고 높은 수키와를 쌓아올려 마당의 수직적, 입면적 조경 요소로서 배치했다. 따뜻하고 색다른 색감과 질감을 가진 기와를 다양하게 사용함으로써 조경의 조형적 아름다움을 구현할 뿐 아니라 건물과의 재료 연계성을 강화할 수 있었다.
이코한옥 조경의 설계와 공사에서 가장 큰 특징은 ‘불확실성’이었다. 콘크리트 플랫폼의 형태나 구들장 및 조경석의 형태, 크기, 개수는 책상에서의 예상 도면과 일치하지 않았다. 재료의 양도 한정되어 있었다. 예측해 치수화하기 적합하지 않은 부분이 많기에, 현장에서 다양한 테스트와 시행착오가 이루어졌다. 도면의 형식으로 캐드가 아닌 스케치를 선택한 이유도 이러한 불확실성에 즉각적이고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불확실성은 오히려 설계에 대한 신선한 감각과 역동성을 깨우는 즐거움을 주었다.
시민들의 참여, 조경 식재를 통한 도시재생 워크숍
수집해 재배치한 조경 요소들은 디자인 콘셉트의 특성상 다양한 재료를 마당에 콜라주한 것 같은 모습을 연출한다. 이러한 여러 요소를 하나로 아우르는 것이 식재의 역할이다. 키가 큰 사초류에 들꽃 같은 초화류를 더해 자연스러운 색감이 섞인, 소박하지만 풍요로운 정원을 조성하고자 했다. 기존 마당에 동백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는데, 이를 그대로 두어 새로운 입구에서 사람들을 맞이하는 요소로 사용했다.
식재는 시민들이 식물을 직접 심고 가꾸며 공간 조성에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좋은 매개체다. 공공 마당의 역할을 정원 조성의 과정에서부터 부여하고자 대중과 전문가를 대상으로 2회의 시민 참여 조경 워크숍을 기획해 실행했다.
일반 시민 대상 워크숍의 전반부는 ‘흔적을 통한 조경설계와 도시재생’을 주제로 진행됐다. 현대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폐기물을 활용한 조경 프로젝트와 이코한옥의 조경설계의 목표와 진행 과정을 소개했다. 후반부에는 이코한옥 현장에서 식물 심기 체험을 진행했다.
전문가 대상 워크숍은 근 미래에 조경가로 성장해 지역 조경 문화를 이끌어갈 조경 전공 학생들을 초대했다. 조경 식재에 대한 전문 지식을 교육하고 그 내용을 몸소 체험해볼 수 있도록 식재 현장 실습을 진행했다.
워크숍은 아이 동반 참가자 등 다양한 성격의 시민들에게 지역 사회와 도시재생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내가 함께 만든 공공의 자원’은 시민들의 주인의식을 높이고 프로젝트의 공공성을 확장시켰다.
완공 후 세 달이 지난 지금, 현장을 방문할 때마다 동네 주민들의 소소한 참여의 흔적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지난번에는 우리가 심지 않은 새로운 꽃을 발견했고, 어디선가 무의 씨앗이 날아와 자라고 있다. 이곳이 지속적으로 그리고 역동적으로 사람들과 관계 맺는 공공의 마당이자 정원이 되기를 기대한다. 글 신다영 진행 김모아 디자인 팽선민
건축과 R&D 어셈블+BC 아키텍츠+아틀리에 루마
R&D 윤정원(건축생산 큐레이터, 서울시립대학교), 김형기(조선대학교 건설재료연구실), 서울시립대학교 TAD Lab
제작 지원 드림라임, 클레이맥스, 고령기와, 세진플러스, 홍익휴먼스
시공과 설계 지원 스튜가하우스+어반소사이어티+송련재+일신공예사+현진건축+한옥사랑
조경 이상훈(전남대학교)+신다영(Vnh)+안팎
공예 김시월공예연구소, 장지방, 가라지가게, 스튜디오 오유경
3D 스캔&모델링 테크캡슐
위치 광주시 동구 동명동 209-106
어셈블(Assemble)은 런던을 기반으로 건축, 예술, 디자인 분야를 넘나들며 활동한다. 기존 자원을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인프라로 활용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고 그에 맞는 조직을 세우기도 한다. 제임스 비닝(James Binning)과 마크 게비건(Mark Gavigan)이 참여했다.
BC 아키텍츠(BC Architects)는 건축, 연구, 재료 혁신의 교차점에서 활동하는 하이브리드 조직으로, 벨기에를 기반으로 지역 자원과 공예를 현대적 설계 관행에 통합하는 데 집중한다. 로렌스 베케만(Laurens Bekemans)과 요한 우베르(Yohann Hubert)가 건축 서사와 설계 실행을 이끌었다.
아틀리에 루마(Atelier LUMA)는 생태 지역적 접근법을 개척한 팀이다. 특정 지역을 구성하는 문화적, 환경적 층위를 조사·분석하고, 디자인을 통해 저평가된 자원에 새 용도를 부여한다. 농부와 건축가, 장인과 대학 실험실 사이를 전에 없던 방식으로 연결하기도 한다. 다니엘 벨(Daniel Bell), 헤나 버니(Henna Burney), 산드라 레부엘타 알베로(Sandra Revuelta Albero)가 함께했다.
Vnh는 현시대와 근 미래에 필요한 도시의 공공 영역과 조경설계를 탐구하는 조경설계사무소다. 뉴욕에서 12년간 필드 오퍼레이션스(Field Operations)에서 도시, 건축, 조경 기반의 폭넓은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력을 바탕으로 신다영 대표와 이상훈 디렉터가 2024년에 설립했다. 대규모 도시설계 프로젝트부터섬세한 디테일을 요구하는 소규모 디자인까지 다양한 작업을 수행한다. 땅 본연이 주는 자원과 영감을바탕으로 사람을 위한 생기 있는 공간을 디자인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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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폴리 Ⅴ, 순환폴리] 옻칠 집
Urushi Shell
옻칠, 자연 소재의 재평가
옻칠은 한반도, 중국, 일본에서 오랫동안 쓰여 온 전통 자연 재료다. 일본에서 우루시urushi라고 불리는 옻칠은 옻나무 수액에서 추출해 내구성이 뛰어난 천연 도료이자 접착제다. 그릇, 냄비, 활, 농어업 기구 등 다양한 용도로 쓰여 온 옻칠은 생산 가공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으며 산림 자원의 업사이클링에 기여한다.
애정의 건축
옻의 전통 기술을 보존하는 데 장인 정신도 중요하지만, 옻을 현시대의 우수한 재료와 기술로서 인식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현대 기술과 융합해 현대 생활에 맞게 옻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자연 옻을 가구와 인테리어 제품, 옻칠 집의 셸처럼 건축 구조 재료로 사용함으로써 옻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고, 전통적인 장인 정신을 뛰어넘어 일본 특유의 제조 능력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자 한다.
고대 불상에서 영감을 받은 옻칠 집은 세계 최초로 옻을 구조적 건축 재료로 활용했다. UV 및 수분 저항, 구조적 형태 제작 능력에 대한 철저한 연구바탕으로 자연 재료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계획, 설계, 건축, 운영, 개조, 철거에 이르는 모든 단계에서 환경을 고려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발전할 것이다. 근대 이전에는 고장난 물건을 버리기보다 수리해서 오랫동안 유용하게 사용했다. 옻칠이 햇빛에 노출되어 차츰 퇴색될 때 적절한 유지·보수가 필요하다. 옻칠 집은 만드는 과정에 공예를 만드는 것 같은 정성이 들어간 만큼 관리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면 처음 모습 그대로 수십 년 동안 지속될 수 있다. 옻칠 집은 지역과 시민의 애정을 전제로 하는 건축 작업이자 미래 세대를 위한 유산이다.
*환경과조경440호(2024년 12월호)수록본 일부
건축 이토 도요 건축사무소
디자인 협업 가나다 미쓰히로, 도키 겐지, 도쿄예술대학, 미야기대학
구조 가나다 미쓰히로, 도쿄예술대학, 에이럽
생산 캐탈리스트, 고 시젠 고보, 스튜디오 아르케
옻칠 도키 겐지, 미야기대학+사토 가즈아, 시젠코보
조경 Vnh+안팎
진행 리쉬이야기
협업 아사히 빌딩월, 테이진, 쯔쭈미 아사키치 우루시
위치 광주시 동구 동명동 38-7
1941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토 도요(Ito Toyo)는 도쿄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기쿠타케 기요노리 건축사무소에서 일한 후 1971년에 어반 로봇을 세웠고, 이후 1979년 도요 이토 & 어소시에이츠를 설립했다. 세계를 무대로 새로운 건축의 최전선에서 혁신적이면서도 편안한 공간을 실현하는 건축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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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폴리 Ⅴ, 순환폴리] 에어 폴리
Air Folly
에어 폴리는 산업 부산물과 해양 폐기물을 활용해 생태계의 선순환을 이뤄가기 위한 재활용 건축물이자 비닐하우스를 재해석한 것이다. 해조류를 기반으로 한 환경 친화적 생분해성 비닐로 건축 구조물을 제작했다. 바다 쓰레기가 되었을 미역 줄기로 만든 해조류 필름은 쓸모를 다한 후 토양 또는 해양 생태계에 쉽게 흡수될 수 있어 폐비닐 대체재로 쓰일 수 있다. 해조류 원단 사이 공기층을 만들어 내구성이 있도록 구조적으로 보완하면 가구, 제품, 의류로 쓰임을 확장할 수 있다.
조립, 해체, 이동이 자유로운 모듈 방식의 공간 구조는 재생의 관점에서도 중요하다. 이 같은 순환 시스템을 통해 재료를 버리지 않고 다른 쓰임으로 연결할 수 있다. 유동적인 현대의 삶을 반영하는 공간과 구조는 바래가 지속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에어 폴리의 제작, 사용, 분해 과정을 통해 토양과 바다에서 도심의 식탁과 공간으로, 그 후 다시 땅과 물로 돌아가는 해조류 비닐의 새로운 생애주기를 살펴본다.
해조 필름
전라남도 고흥 미역 양식장 인근에 있는 비닐 공장에서 농업용 멀칭 비닐 해조류 컴파운드를 기반으로 생분해성 해조 비닐의 두께, 폭, 색상을 테스트했다. 이곳은 종량제 봉투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필름을 넓은 폭으로 대량 생산할 수는 있지만 필름 두께와 표면 균일도에 문제가 있었다. 정성오 교수에게 농업에 사용되는 멀칭 필름에 대해 자문을 받아 두께를 조정했다. 에어 폴리에 사용하는 필름은 옷의 원단에 사용하는 멀칭 필름 두께보다 더 두꺼워야 공기를 가두고 어느 정도 힘을 견딜 수 있다.
*환경과조경440호(2024년 12월호)수록본 일부
건축과 R&D 바래(전진홍+최윤희)
협력 기획 이경미
디자인 권서현, 이인애, 장성하, 조예진, 허해인
자문 박문길, 정성오
제작 정광우, 함지연
영상 스튜디오딥로드
패션 배여리
그래픽 김민재
프로그램 정림건축문화재단(건축학교)
설치 홍민희
식물 이주연
특별감사 강나래, 강지성, 곽소연, 곽성현, 김인환, 박동준, 얄루, 유명제, 이재선, 장미현, 장승환, 정진욱, 카밀라최, 황현진, 대학생건축과 연합회, 라인시스템
위치 광주시 동구 동계로 16-15 쿡폴리 콩집
바래는 전진홍과 최윤희가 2014년에 설립한 건축 스튜디오다. 역동적인 도시 환경과 시간에 조응하는 사물의 생산과 순환에 관심을 두고 리서치 기반의 건축 작업을 한다. 재료 분류 수집 로봇에서부터 키네틱 파빌리온, 장소 조건에 적응하며 형태를 달리하는 입체 미디어 설치 등 다양한 작업을 해왔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2015),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2017),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2018)에서 작업을 선보였다. 건축과 환경의 상호 작용을 고찰하며 조립과 공기로 가벼움의 건축을 실험하고 있다. 최근 활동으로는 『어셈블리 오브 에어』(팩토리2, 2021), 한국과학기술원과의 협업을 통해 선보인 ‘에어빔 파빌리온’,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된 ‘에어 빈’, 현대 모터스튜디오의 ‘에어 오브 블룸, 인해비팅 에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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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수성국제비엔날레
SUSEONG INTERNATIONAL BIENNALE
2024 수성국제비엔날레
관계성의 들판,
자연을 담고 문화를 누리다
2024 수성국제비엔날레(이하 수성비엔날레)가 지난 10월 15일부터 27일까지 대구시 수성구에서 열렸다. 수성비엔날레에는 모형, 영상, 패널 전시뿐 아니라 현장에 설치된 공공 건축, 조경 프로젝트가 포함됐다. 전시 주제어가 추상적 개념으로만 가닿지 않도록, 그 주제를 실현한 장소에서 실체를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주제의 ‘들판(feild)’이라는 표현은 현장성을 추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어휘이기도 하다.
현장성 추구가 수성비엔날레 자체의 목표라면, 대구 수성구가 비엔날레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바는 도시 경쟁력 확보와 주민들의 정주 여건 개선이다. 이를 위해 생각을 담는 정원, 신매시장 공영주차장·공원화 조성, 연호지구 개발(연호동과 이천동 일원, 약 90만m2 규모의 공공주택지구 조성), 대구대공원 조성 사업 등이 추진되는 중이다. 즉 수성비엔날레는 수성구의 도시계획과 궤를 같이하며 연동된 것이다.
수성비엔날레는 조경과 건축의 협업으로 인공과 야생, 자연이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는 장소를 조성하는 중이다. 본지는 수성못 수상공연장 및 수성브리지 공모의 당선작과 수상작, 망월지 생태교육관 & 야생초화원 공모의 당선작을 소개한다. 개막 행사와 수성아트피아에서 열린 실내 전시, 생각을담는길 힐링센터, 금호강 생태전망대, 네 개의 파빌리온의 내용은 ‘수성국제비엔날레 둘러보기’에 담았다. 수성비엔날레는 일회성 축제가 아닌 수성구의 도시, 건축, 조경을 진화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를 꿈꾸고 있다. 지속가능한 새로운 형식의 비엔날레를 꿈꾸며 펼친 건축적, 조경적 상상력을 수성비엔날레 조경감독을 맡은 김영민(서울시립대학교 교수)의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수성비엔날레의 주제를 담은 글을 옮긴다. “수성국제비엔날레의 출발점을 들판에서 찾고자 한다. 추상적인 개념이나 이상적인 문헌에서 벗어나, 확장된 들판 위에서 영역 간의 경계선을 지우고, 인간과 비인간의 간격을 넘어서는 다원적 관계를 맺고자 한다. 그 과정을 통해 미래의 건축, 조경, 예술의 혼종적 성향을 실현한 결과물을 최종적으로 선보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전시보다 실현을 앞세우는 수성국제비엔날레에서 들판은 현장성을 가상적으로 선보이는 단순한 전시 주제어가 아닌 구체적인 실천의 판이다. 단순히 사례를 찾아 간접적인 시각 매체를 통해 전시하거나 먼저 들판에 나아간 자들의 경험담을 듣는 후향적 전시가 아닌 직접 만들고 짓는, 실현된 장소에서 실제를 경험하는 현장 전시를 목표로 한다.
들판 위에서 찾으려는 현장성은 크게 세 종류로 분류된다. 먼저, 현장 지식은 이론과 실체, 이상과 현실, 그리고 현재와 미래를 이어준다. 둘째, 현장에서 사귄 동료, 여정에서 만난 동행자의 범위는 이제 새로운 포스트 휴먼 세계관을 통해 확장된다. 마지막으로 조경과 건축의 얽힘을 통한 협업으로 확장된 창작 영역 속에서 인공과 야생, 자연과 사물이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는 새로운 유형의 장소들이 조성된다.
들판 위에서, 또는 현장의 경험을 통해 얻는 현장 지식(field knowledge)이 건축에서는 시공을 통해 확증되는 개념의 실현성을 사전에 인지하는 능력을 배양한다면 조경에서는 자연과 인간의 의지가 시간의 흐름과 함께 균형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조율을 가능하게 한다. 현장 경험에서 오는 지혜는 책이나 토론을 통한 지식과 차원과 영역이 다른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갖고 있다.
들판 위에서, 탐험과 여정을 함께하는 동행자(field companion)의 영역이 이제 인간과 비인간 동물을 넘어 식물과 사물까지 포함하는 포스트 휴먼 세계관은 기후변화의 위기와 인공지능의 확장 속에서 인간이 갖추어야 할 새로운 세계관이다. 이제 더 이상 건조 환경은 인간만이 주체적 사용자가 될 수 없고 인간의 건축 행위는 비인간 동물과 식물, 미생물, 그리고 잔존하는 사물을 아우르는 범주체성의 장이 되어야 한다.
그 관계의 첫 맺음은 예술을 통한 건축과 조경의 결합이다. 건축은 이제 중심에서 벗어나 배경이 되고 인위적인 구축을 최소화하여 자연과 비인간 동물의 영역을 존중하는, 다원적인 주체들의 공생을 목표로 삼아야한다. 조경은 인간 중심의 경관 조성이 아닌 생태적 지속성을 목표로 삼고 그 수단으로 식물, 미생물, 그리고 건축물을 폭넓게 활용하는 환경 조율의 영역이다. 두 분야의 직능적 경계를 지우고 유기적인 협업을 통해 조성되는 장소들 속에서 진정한 공간의 예술성을 찾을 수 있다.” 진행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 자료제공 수성국제비엔날레, 공모 수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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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못 수상공연장
당선작 물 위의 언덕_오피스박김(PARKKIM)
2등작 플로팅 랜턴(Floating Lantern)_제임스 카펜터 디자인 어소시에이츠(James Carpenter Design Associates)
3등작 플로팅 스테이지(Floating Stage)_페르난도 메니스(Fernando Menis)
수성못 수성브리지
당선작 새로운 들안로_준야 이시가미+어소시에이츠(Junya.Ishigami+Associates)
2등작 지붕이 춤추는 다리_웨스트 8(West 8)
3등작 수성수로(壽城水路)_디림건축사사무소
망월지 생태교육관 & 야생초화원 당선작
공존의 풍경_김봉찬+김건철
수성국제비엔날레 둘러보기_편집부
관계성의 들판에 서서_김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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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최 대구광역시 수성구
위 치 수성아트피아(개막 행사 및 전시), 대구광역시 수성구 전역(프로젝트)
주 제 관계성의 들판, 자연을 담고 문화를 누리다
프로젝트 수성못 수상공연장
수성못 수성브리지
망월지 생태교육관 & 야생초화원
생각을담는길 힐링센터(대구광역시 수성구 고모동 1-1번지 외 1필지)
금호강 생태전망대(대구광역시 수성구 매호동 28-1번지 일원)
수성 파빌리온(대구광역시 대덕지, 내관지, 대진지, 매호천)
일 시 2024. 10. 15. ~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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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못 수상공연장 조성 국제지명 설계공모
위 치 대구광역시 수성구 두산동 516 일대 수성못 일원
규 모
수상 무대: 주무대(450~500m2)+백업 공간
무대 방식: 부유형 혹은 고정형
객석: 1,200~1,600석 규모
예정공사비 28,658백만원
설계용역비 1,341백만원
수성못 수성브리지 조성 국제지명 설계공모
위 치 대구광역시 수성구 두산동 431-5 일대 수성못 일원
규 모 160m 정도의 보행자용 교량 및 연관 시설
갤러리, 카페 등 문화 시설과 UAM 착륙장 등 기타 제안 시설 포함
예정공사비 14,092,110천원
설계용역비 907,890천원
망월지 생태교육관(생물자원보전시설) 건립 및 생태축 복원(야생초화원)사업 기본 및 실시설계 지명공모
위 치 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 410번지 일대
대 지 면 적 생태교육관 3,298m2, 생태축 복원 7,134m2
규 모
층수: 지상 4층 이하
연면적: 1,400m2(±10%이내)
주차 대수: 법적 주차 대수 이상
예정공사비 9,315백만원
생태교육관, 주차장: 6,615백만원
생태축 복원사업(야생초화원 등): 2,700백만원
예정설계비 566,360천원
생태교육관, 주차장: 345,360천원
생태축 복원사업(야생초화원 등): 221백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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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국제비엔날레] 물 위의 언덕
수성못 수상공연장 설계공모 당선작
도시의 냉각수
도시화와 근대화를 거치며 세계 주요 도시의 못들은 메워지거나 지하화됐다. 한때 풍부한 하천과 강 덕분에 물의 도시라 불리던 대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재 대구의 무더운 여름을 생각하면 아쉬운 일이다. 만약 이 모든 못이 여전히 지표 위에 남아서 달아오른 땅과 대기를 식혀줬다면 어떻게 됐을까. 저수지를 잘 보존해서 물가에 오픈스페이스를 더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이 두 가지 물음이 설계의 단초가 됐다.
대구의 도시 열섬 지도를 보면서 우리의 질문은 ‘도시의 냉각수로서의 못’이란 아이디어로 이어졌다. 주변 미기후를 분석하며 수성못 서북쪽 모퉁이가 바람골 영향을 받는다는 걸 발견했다. 이곳은 인근 고산골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가장 먼저 도달하며, 남동풍이 부는 여름철에 대상지에서 가장 시원했다. 이를 토대로 가장 시원한 곳에 무대를 계획하고, 겨울철 주된 바람인 서풍을 막아주는 디자인을 고민했다. 또한 지형으로 바람을 끌어들이고 식재를 풍성히 했을 때 3도 이상 더 시원해진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값을 얻었다.
둥지섬과 문화적 짝
새로운 수상공연장은 주변의 산세를 담은 지형과 수면에 수평적인 구조로 이루어지며, 수성못 북서쪽 모퉁이에 위치한다. 이곳은 못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며 여름철 미기후 상 바람이 가장 많이 불어오는 곳이기도 하다. 둥지섬이 신천과 범어천을 징검다리처럼 잇는 수성못의 생태적 허브라면, ‘물 위의 언덕’은 섬과 문화적 짝을 이루며 수면 너머 산을 향해 길고 입체적인 시야를 만들어낸다. 경사와 방향이 다양한 여덟 개 둔덕으로 구성된 물 위의 언덕은 시민들이 여름철 불어오는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기존 제방길을 따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공 장소로 거듭날 것이다.
언덕들의 지형
기존 제방과 바로 연결된 두 개의 언덕 진입로는 무장애 동선을 위해 제방과 같은 높이에서 시작된다. 언덕의 가장자리는 무장애 보행자 동선 역할을 하며 무대 자체를 더 잘 볼 수 있도록 언덕의 경사도를 8~12%로 했다. 가변형 수변 무대와 주 무대는 10cm의 단차가 있어 물의 효과를 더욱 깊고 극적으로 만든다. 제방으로부터 못을 향해 뻗어나간 지형 끝에 무대가 위치하는데, 이 모습은 주변 산으로부터 내려온 언덕들이 마치 물 위에 뜬 꽃잎처럼 모여 있는 형태로 보이게 한다.
자연과 조화를 꾀하는 객석과 무대
무대는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주 무대와 바로 한 단 아래 가변형 수변 무대로 구성되며 다양한 공연 연출을 할 수 있다. 수성못과 수평으로 놓인 주 무대에서는 주변의 경관을 끌어들임으로써 수변과 산세에 어울리는 무대 디자인 연출이 가능하다. 물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낮은 높이의 수변 무대와 언덕의 단차는 더 극적인 공연 연출 효과를 자아낸다.
객석은 두 가지 유형으로 디자인했다. 하나는 1,200석의 고정형 객석으로 무대를 정확히 향하고 있다. 다른 유형으로는 탱글우드 뮤직 페스티벌(Tanglewood Music Festival)의 잔디밭 좌석과 같이 음악과 함께 보다 자유로운 쉼을 원하는 시민들을 위한 공원석을 마련했다. 언덕들은 조금씩 다른 경사를 가지고 물과 만나며, 방문객들은 같은 지형 안에서도 앉는 의자에 따라 각기 다른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무대를 등지고 앉는다면 보다 위요된 작은 스케일의 휴식을 누리게 되며, 상대적으로 나무가 더 우거진 공원석에 앉으면 원경의 산 경관과 함께 마치 숲속에 있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친수와 휴식의 공간
기존 수성못에 부족했던 친수의 기회를 마련하고자 했다. 물의 양을 조절할 수 있는 가변형 수변 무대는 수심이 얕아 안전한 물놀이가 가능하며, 이용객이 없을 경우 반사연못으로 활용된다. 물순환 관리 시스템을 통해 관수 비용을 최소화하고 기존 수성못 수체계에 부담을 덜게 했다. 안개 노즐은 여름철 공원의 온도를 낮추고, 2% 구배의 경사진 벤치는 강우 시 배수로가 된다.
또한 잠시 멈춰서 풍경을 즐기며 쉴 수 있게 했다. 자연과 문화를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물을 향한 사면 계획과 더불어 친수 식재로 구성한 휴식 공간을 만들었다. 다만 공연 시 무대로의 시선을 가로막지 않게 고정 객석에는 식재를 최소화하고 높은 지하고의 수종을 선택했으며, 시선과 바람의 개방성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는 바람 난간을 디자인했다. 여러 방향으로 꺾인 벤치는 그늘, 햇볕, 바람과 함께 사색에 잠길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물 위의 자연을 받치다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구조로 만들기 위해 하이브리드 슬래브 파일 공법을 활용했다. 부유형에 비해 환경성과 시공성이 뛰어나고, 특히 대규모의 공연 중 발생할 수 있는 집중 하중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도 견딜 수 있는 안정성이 장점이다. 또한 캔틸레버 경계는 수면과 지형이 최대한 가깝게 만나게 해 언덕이 물에 뜬 것 같은 친밀감을 느끼게 한다. 콘크리트 슬래브는 FRP 재료로 코팅되어 구조를 강화할 뿐만 아니라 수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결로 등을 방지하고 유지·관리를 용이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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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국제비엔날레] 플로팅 랜턴
수성못 수상공연장 설계공모 2등작
수성못의 생태적 잠재력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확장한 새로운 문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수변과 가까운 거리에서 교감할 수 있는 수성못 동쪽의 수변길과 둥지섬의 독특한 생태적 환경에서 영감을 얻어 기존 자연 경관을 확장하고 개선하는 디자인을 시도했다.
플로팅 랜턴
기존 수변길을 녹지와 함께 확장하며 자연을 품은 새로운 공연장과 연결하고자 했다. 이는 대상지의 생태적 잠재력을 높이고 수변길에 대한 접근성을 향상시킨다. 수성못 북동쪽 역사적 유적지, 두산동 등 인근 지역의 녹지와 대상지를 연결하고 기존 레크리에이션 구역과 제방에 더 많은 녹지를 계획했다. 특히 제방과 시각적으로 연결되며 탁 트인 풍경을 제공하는 새로운 수상 공연장 ‘플로팅 랜턴(Floating Lantern)’을 조성하고자 했다.
자연과 조화를 꾀하는 숲
떠 있는 풍등이란 뜻이 담긴 플로팅 랜턴은 빛을 중심으로 자연과의 조화를 꾀한다. 이곳은 무대인 동시에 사색의 공간으로 기능한다.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가진 주변의 산, 변화와 반성의 심상을 불러일으키는 석양과 조화를 꾀하는 디자인을 통해 방문객에게 사색의 기회를 제공한다. 저녁엔 콘(cone) 구조의 좌석 사이에 은은한 조명이 켜져 랜턴처럼 빛나는데, 호수 표면에 반사된 조명 불빛이 반짝이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호수에 비치는 하늘과 산으로 둘러싸인 플로팅 랜턴은 사계절 다채로운 경관과 시원하고 아늑한 그늘을 제공한다. 나무로 둘러싸인 숲을 연출하기 위해 공연장의 객석과 무대를 원통형 루버 프레임 안에 배치했다. 가벼운 목재 루버 사이로 여과되는 빛과 아른거리는 그림자, 그늘이 조화를 이루며 공간에 아늑한 분위기를 더한다.
*환경과조경439호(2024년 11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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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국제비엔날레] 플로팅 스테이지
수성못 수상공연장 설계공모 3등작
수성못은 시민들을 위한 아름다운 자연의 피난처 역할을 하는 도심의 오아시스다. 깨끗한 물과 수변의 우거진 수목들은 교향곡의 고요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을 시도할 수 있는 자연의 도화지와 같았다. 이 도화지에 그리는 새로운 수상공연장을 통해 문화적 활동의 활성화를 꾀하고자 했다. 예술과 자연을 결합해 음악이 호수의 잔잔함과 조화를 이루고, 시민들이 야외 문화 활동을 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을 계획했다.
절제된 개입
새로운 공연장을 수성못 북동쪽에 배치해 시각적 인지도를 높이고, 인근 공공 공간은 수상공연장 지원 시설이나 주차장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또한 이곳은 주변 산과 수성못 경관을 조망하기 좋은 자리이기도 하다. 기존 요소를 보존하되 녹지를 통해 도심에서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자 했다. 시민들의 일상적인 이용과 호수의 중요성을 고려해 기존의 산책로를 변경하지 않고 보완하는 등 절제된 방식의 디자인을 시도했다. 기존 산책로를 확장해 새로운 수상공연장과 연결하고 수상 활동을 위한 도크, 카페 등 기존 공간의 리노베이션을 진행했다. 주변 경관과 조화를 꾀하며 수상공연장 인근에 호수를 정화하는 자생종으로 구성한 부유하는 수중 식물섬을 계획했다.
세 개의 객체
거북선과 중세 유럽의 극장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목재 바닥을 통해 부력을 얻고 날카로운 철재 덮개로 침입자를 완벽히 방어했던 거북선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철과 적층 대나무를 활용해 90도로 세운 거북선을 연상시키는 세 개의 구조물을 만들었다. 또한 중정 무대를 3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스페인의 코미디 극장인 코랄레스 데 코메디아스(corrales de comedias)에서 영감을 얻어 세 개의 구조물을 활용한 객석과 무대를 마련했다.
객석과 무대가 배치된 세 개의 구조물은 독립된 객체로서 존재한다. 그리드 패턴 구조의 발코니는 각 구조물에 독특한 개성을 불어넣는다. 발코니는 구조적 안정성과 함께 무대를 향해 열려 있어 관객들에게 최적의 전망을 선사한다. 외벽으로 사용한 허니콤 패널은 은은한 불빛으로 사물을 밝히는 한국의 등불에서 영감을 얻었다. 구릿빛이 감도는 벌집 구조의 이중 허니콤 패널은 빛을 반사하고, 외부로 전달되는 음향을 줄이며 시설물을 보호한다. 해가 지면 공연장은 은은한 빛을 내는 등불을 연상시키며 호수와 조화를 이룬다.
*환경과조경439호(2024년 11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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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국제비엔날레] 새로운 들안로
수성못 수성브리지 설계공모 당선작
브리지의 기능을 뛰어넘어 도시 구조의 일부로 자리매김할 공공시설을 계획하고자 한다. 수성브리지가 놓인 수성못은 도시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게 될 것이다. 수성구를 관통하는 들안로와 수성못을 통해 도시에서의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안한다. 수성브리지를 수성구의 간결하고 아름다운 상징으로 만들고자 들안로의 끝부분을 확장한다. 이는 들안로의 연장선에서 보이는 산의 경관을 가리지 않고 부각해, 이 도로 자체의 가치와 위상을 높일 것이다.
수성구의 비전
수성구민들은 새로운 문화, 예술, 관광 시설과 수성못의 랜드마크화를 원하고 있다. 이러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 수성구는 ‘행복한 삶이 있는 미래도시’라는 비전을 세워 실천해 나가고 있다. 이에 부응해 다양한 기능을 수용할 수 있는 브리지를 설계했다. 교육, 음악-예술, 강연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브리지는 무학로 양측을 연결할 뿐 아니라 경관을 초월해 도시와 수성못을 잇는다. 다리를 넘어 하나의 건축물로 설계된 수성브리지는 장소를 연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마을과 수성못, 사람과 도시를 잇는 상징적 다리가 될 것이다.
계획
차량이 브리지에서 조금 떨어진 지점에서 5% 경사로를 따라 내려간 뒤 들안길 삼거리를 따라 올라오도록 설계했다. 이로써 보행자는 지상 1층 레벨에서 편히 수성브리지로 들어설 수 있게 된다. 완만한 계단식 공원으로 수성못과 무학로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경관을 연출한다. 브리지의 기능을 특별하게 고정하지 않고, 건물 전체 옥상에서 큰 규모의 이벤트를 개최하는 등 필요에 따라 평면이 달라지도록 계획했다. 옥상의 경우 도심항공교통(UAM)이 착륙할 수 있는 공간도 고려했다.브리지 양쪽에 설치한 엘리베이터를 통해 교차로에서 브리지 내부와 옥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다리를 따라 걸어가면 수성못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다리의 끝에는 들안로로 이어지는 출입구를 마련했다. 호수까지 도로를 확장해 브리지를 문화 도시의 중심 거점으로 만들고 수성구의 구조를 새롭게 정의하고자 했다. 6차선인 들안로를 7차선으로 늘리되 무학로 위의 브리지는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도로 혼잡을 방지하고 보행자는 더 넓은 도로를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유연한 사용
들안로에서 브리지를 따라 오르면 안내소에 도착한다. 이어 다양한 책을 공유함으로써 사람들의 소통을 도모하는 책 공유 공간과 다양한 주제의 강의가 이루어지는 강연장이 나타난다. 무학로 바로 위 도시정보센터에서 출발해 걸어가면 대구와 수성못의 기념품을 파는 마켓이 있다. 마지막 도착지는 보트 선착장으로, 아름다운 수성못의 풍경이 펼쳐진다.
브리지 지붕은 음식을 먹으며 도시 풍경과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파노라마처럼 감상하는 푸드 페스티벌에 활용할 수 있다. 예술 전시회를 열 경우, 브리지를 넘어 도시로 전시 영역을 확장해 색다른 방식으로 다리와 도시를 연결한다. 브리지 끝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면 호수에서 보트를 타고 영화를 볼 수 있다. 이는 브리지와 호수를 연결하는 효과를 낼 것이다.
구조
최대한 긴 스팬을 구축하고 대규모 구조물을 저렴한 비용으로 계획하기 위해 I형 단면 구조물을 제안한다. 50m에 이르는 브리지의 구조 프레임은 철근 콘크리트로 만든다. 브리지 중앙을 관통해 연속되는 아치를 따라 이어지는 하부 슬래브와 상부 슬래브는 I형강 플랜지로 구성되며, 층고는 6m다. 브리지의 상하부 바닥면을 구성하는 슬래브는 발포폴리스티렌으로 충전된 보이드 슬래브다. 7m의 캔틸레버 슬래브는 경량 철근 콘크리트로 제작할 수 있다. 기둥은 원통형으로 만들어 각 스팬마다 하나씩 배치해 시공성을 높이고 지진 저항력을 갖추게 한다.
브리지 본체는 거대한 I형강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일반적인 브리지는 빔의 윗부분만 사람이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제안하는 브리지는 거대한 I형강 가운데 공간의 높이를 충분히 확보해 사람이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이를 위해 양쪽에 유리를 삽입해 브리지 내부 공간을 조성했다. 이는 수성브리지를 단순한 다리를 넘어 수성구의 새로운 시민 시설로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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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국제비엔날레] 지붕이 춤추는 다리
수성못 수성브리지 설계공모 2등작
호수와 사람을 연결하다
대구 중심에 위치한 수성못은 앞산, 범이산, 동막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매년 9월 수성못 페스티벌이 열려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수성못으로 오려면 들안로와 무학로를 지나야 하는데, 수성못에 도착해 처음 마주하게 되는 풍경은 교차하는 두 도로와 그 뒤로 펼쳐진 녹지다. 호수의 풍경을 바로 발견하기 어렵다. 도시에서 호수로 급작스럽게 변환되는 풍경은 이곳에 처음 방문하는 관광객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종합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계획을 통해 수성못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자 한다. 무학로를 가로지르는 다리는 수성못 주변의 녹지 공간을 연결함으로써 도착 경험을 풍성하게 하고, 대구를 대표하는 관광지이자 지역 문화와 주변 자연을 통합하는 새로운 자연 환경으로 만들 것이다.
지붕이 춤추는 다리
천연 목재로 만든 A형 프레임 트러스가 반복적으로 맞물리는 다리는 보행자와 자전거를 탄 사람에게 색다른 이동 경험을 제공한다. 비틀어진 듯한 느낌을 주는 구불구불한 다리 모양은 수성못으로 향하는 여정에 재미를 더한다. 다리 지붕 위에 도착하면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소음이 줄어들고 트러스 구조물 틈 사이로 산과 호수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다양한 교통수단을 수용할 수 있는 다리는 여러 가지 동선을 제공한다. 이 중 가장 넓은 길은 자전거 전용 도로며, 나머지 두 보행로는 방문객들이 원하는 코스로 다닐 수 있게 한다. 보행로에서는 자연에 둘러싸인 수성못과 대구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다양한 동선은 수성못 페스티벌과 수상공연장에서 공연이 진행될 때도 많은 사람을 수용하며, 사람이 많이 몰리더라도 방문객에게 친밀하고 몰입감 있는 경험을 선사한다. 다리 사이 작은 계단에서는 사람들이 만나거나 주변 산의 전망을 즐길 수 있다.
*환경과조경439호(2024년 11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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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국제비엔날레] 수성수로
수성못 수성브리지 설계공모 3등작
세종실록 경상도지리지에 수성못의 원형이었던 자연 호수 둔동제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현재 수성못의 형태는 1927년 일본인 미즈사키 린타로에 의해 완성됐고 그의 묘지가 수성못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안장되어 있다. 역설적이지만 일제강점기 대표 저항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배경이 수성들이다. 하지만 역사의 아이러니와는 무관하게 수성못과 수성들의 관계는 공생적이었다. 수성못으로부터 물을 공급받은 수성들은 항상 비옥했기에 수성들(들안로 주변)이 현재까지 번성할 수 있었다. 우리는 수성수로(壽城水路)를 통한 수성못과 수성들의 관계 복원을 제안한다. 물을 매개로 문화와 휴식 공간을 조성하고 도시와 자연을 다시 연결하고자 한다.
이질적인 구성
도시와 자연으로 대비되는 들안로와 수성못의 흐름은 내부와 외부가 서로 다른 성격과 모양을 가진 이질적인 구성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실핏줄처럼 퍼져 대지에 물을 공급하던 옛 수로는 수성못과 연결된 수성수로를 통해 도시까지 확장시킨다. 다리의 장스팬을 지지하는 높이 4.2m의 외벽(구조보)은 단순하지만 색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이 벽을 따라 위아래로 파도치듯 움직이는 바닥은 새로운 실내 공간을 만든다. 이 공간은 아이들의 놀이 공간이자 도시를 내려다보는 전망대가 된다. 보행교 중앙을 가로지르는 얕고 좁은 수로는 도시와 수성못이 만나는 끝에서 넓은 물길로 바뀌면서 시민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푸른 하늘과 푸른 물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숲길을 따라
수성수로에 만들어진 내부와 외부 공간은 들안로와 수성못의 단절된 흐름을 연결한다. 외부 공간에서는 단순한 수평선으로 만들어낸 새로운 도시 풍경을 볼 수 있다. 높이 3m 구조 벽으로 상업가의 풍경을 가리고 교통 소음을 차단했다. 내부 공간에서 수성못과 법이산으로 이어지는 자연을 조용히 바라볼 수 있다. 저항 시인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의 구절처럼, “푸른 하늘과 푸른 물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숲길을 따라” 걸으며 들안로 공방에서 제작된 다양한 전시물을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도시에서 자연으로 변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환경과조경439호(2024년 11월호)수록본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