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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전 세계적으로 급격한 도시화는 커뮤니티 해체와 지역성 상실의 사회적 문제, 녹지 훼손과 파편화로 대표되는 자연환경적 문제, 낙후지역과 빈부격차의 경제적 문제들을 발생시켰다. 도시는 기존 커뮤니티와 지역성, 자연환경의 기반 등이 유지되어 있는 농촌과 기반환경이 다르다. 따라서 도시재생에서부터 마을만들기 등 참여형 사업을 통한 새로운 도시공동체의 회복과 건강한 도시환경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 중 도시녹화운동은 도시환경의 회복탄력성을 증가시키고, 소규모 녹지 조성과 연결성 확보를 통한 녹지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운동이다. 도시녹지의 창출과 관리가 중요한 사항으로 고려되고 있으며, 심신의 안정과 여가활동 증진 등 생태계 서비스 제공으로 사람들의 삶의 질 향상에 큰 도움을 준다. 서울시의 경우 도시녹화운동의 변화과정은 <그림1>과 같다. 과거에는 경제적 변화와 경제 개발에 대한 사회적, 문화적 요소의 잠재적 역할을 거의 인지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신자본주의 경제학자들은 개발에 대해 1인당 소득의 단순한 증가가 아니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으로서, 근본적인 사회 및 문화 시스템에 대한 동등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사회 문화적 가치 체계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행동을 형성하고 간접적인 여러 경로를 통해 개발에 영향을 준다. 따라서 성공적 경제 발전이란 사회 및 정치적 변수를 포괄해야한다. 1990년대에 사회적 자본의 개념을 수용하는 경제 발전의 결정 요인에 대한 새로운 생각들이 나타났으며, 신뢰, 네트워크 및 제도에 대한 규범, 가치 및 신념의 차별적 영향은 사회적 자본의 기초가 된다. ‘사회적 자본’의 개념은 1916년 리다 하니판(Lyda J. Hanifan)에 의해 학교 성과 향상에 있어서 지역 사회 참여의 중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처음으로 제기되었다. 이 개념이 오랫동안 사라진 후 사회적 상호 작용 이론을 연구한 호먼스(Homans)과 제이콥스(Jacobs), 도시 생활과 이웃을 논하면서 소득 분포를 연구하는 루리(Loury)에 의해 소셜 네트워크의 가치와 보존에 대한 주장이 대두되었다. 사회적 자본은 시민참여 사업의 효율성과 지속가능성을 위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보다 서로를 신뢰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적이며 실질적인 자본으로서 필수적이다. 또한 사회조직인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공동의 목표, 발전과 행동 촉진, 상호작용 등의 성과를 달성하기 위한 사회적 집단 자산으로서의 관계자본(Relational Capital)이다. 소진광은 사회자본의 개념요소를 5개로 구분하고, 신뢰, 참여, 연계망(네트워크), 제도 및 규범, 이타주의 다섯 개념요소 각각의 표현인자를 제시하고 있다. 위와 같이 사회적 자본의 중요한 요소에는 사회적 네트워크(가족, 친구, 지역 사회), 자발적 상호 규범(규범, 가치관 및 행동 공유), 신뢰(사람 및 기관) 등이 있다. 또한 사회 자본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첫째, 연결과 결합 둘째, 강하고 약한 관계 셋째, 수평 및 수직관계로 구분할 수 있다. 참여형 재생사업에 대한 사회적 자본의 연구를 살펴보면, 협력적 계획과정과 리더십 그리고 프로그램이 참여만족도를 매개로 하여 사회적 자본 형성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참여주체별 인식에 있어서는 도시재생사업의 계획단계에서 전문가와 공공에 비해 주민들은 거버넌스에 대한 인식과 형성 수준이 낮고, 이는 사회적 자본의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주거지재생사업의 비교연구에서 상향식 접근방식이 하향식 접근방식에 비해 신뢰도가 높았으며, 일상생활을 통한 주민간의 친밀도가 사회적 자본 형성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미국 커뮤니티가든 6곳의 도시농업시설과 교류 프로그램은 물리적․경제적 자본 창출 외에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는 교류 공간과 운영 프로그램이 연계되어 있었다. 내 집 앞 가꾸기 사업을 통한 주민참여 수준과 만족도 증가는 사회적 자본에 긍정적 역할을 하며, 만족도는 사회적 자본 형성에 매개 역할을 하였다. 지금까지의 시민참여와 사회적 자본의 연계는 초기단계이며, 주로 대규모 재생사업이나 계획단계에서의 정책연구, 전문가 설문 대상의 고찰에 그치고 있다. 전국적으로 재생사업이나 지역 활성화 사업이 매년 급속한 양과 예산으로 시행되고 있으나 사업시행과 예산지출에 급급하고 있다. 도시와 마을단위 주민과 활동가들의 사회적 자본 형성 과정이나, 공동체 사회의 활성화 및 지속가능성에 대한 모니터링과 질적인 연구가 뒤따르지 못하는 실정이다. 2018년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도시재생 뉴딜정책은 대상지역의 절반 이상이 우리 동네 살리기 모델로 진행되고 있다. 정부 부처마다 도시숲, 마을정원 조성사업에서 지역이나 마을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커뮤니티 활동을 유도하고자 한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와 요구를 볼 때, 더 늦기 전에 참여주체간의 관계자본이자 집단자본인 사회적 자본의 이해와 구체적인 실천전략에 대한 연구와 실천 노력이 뒤따라야 할 때이다. 이애란 청주대학교 교수
- 이애란 교수[email protected]
- 2018-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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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담배 피우세요.” 지난 주말에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는데 땀을 흘리며 나에게 나가온 한 아이가 있었다. 두 손에는 판자 위에 올려진 휜 색 종이가 보였다. 담배를 피우면 왼쪽에, 아니면 오른쪽에 작은 스티커를 붙이라고 한다. “선생님이 주제를 주셨니?” “아이요. 우리들이 토론해서 정했어요!” “그래 수고해” 초등학교 4학년 학생과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마을을 가꾸어가는 일은 특정한 대상자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온 동네 사람 모두가 참여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하는 일이다. 마을이라 그렇다. 마을은 지금까지도 누군가의 헌신과 꿈을 통해서 채워지고 가꾸어져 왔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들의 한 쪽 일을 이어받아 정원을 통해서 마을을 가꾸어 보려고 한다. 이런 마을을 꿈꾸고 가꾸는 시간이 좋은 추억으로 새겨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오늘은 마을을 둘러보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마을산책을 나가기 전에 선행돼야 할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마을정원사들이 정원에 흠뻑 젖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지난주 이른 아침부터 수목원에 다녀왔다. 수목원에서 천천히 정원을 느끼고 한옥 마루에 앉아 여름의 시원한 바람과 함께 마을사람들이 가기고 있는 정원에 대한 이야기를 천천히 들어 주었다. 이렇게 충분히 정원을 느끼고 돌아와서 마을산책을 나갔다. 평소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지났던 길이 새롭게 읽히기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마을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야와 생각들을 스스로 발전시키고 있었다. 역시 중요한 것은 “정원에 흠뻑 젖어보기”다. 마을을 돌아보면서 우리가 만난 사람들이 있다. 평소 만나기 어려웠던 파출소장과 청소년문화센터 관장이다. 정원에 대한 파출소장의 생각을 들어 보았다. 그는 이번 마을만들기에 파출소도 꼭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담을 일부 허물고 정원을 만들어 파출소의 일부 공간을 마을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그렇다. 파출소도 정원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그들도 마을의 구성원이었다. 하지만 마을사람과는 한걸음 떨어진 제3자로 느껴지고, 일부 안전이나 보안 관련 교육을 위해 방문할 뿐 실제 마을 활동에 지역의 구성원으로서 깊이 참여하는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마을산책을 통해 ‘마을’에서 만나고 진솔한 대화를 나누면서 이들도 ‘마을사람’이란 것을 몸소 깨닫게 된다. 마을산책은 마을정원을 만들기 위한 준비 과정을 통해서 숨어있던 마을사람들을 찾는 시간이 된다. 새롭게 마을에 활기를 넣는 시간이 되고 있다. 다시 장소를 이동해서 공간을 살펴본다. 평소 마을을 사용하면서 불편했던 점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눈다. 꼭 그렇지는 않지만 정원을 만들다 보면 지역민들의 어려운 점을 해결해 주는 환경개선사업 측면에서도 마을정원이 감당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을사람들과 “정원수다”란 주제로 모임을 갖기도 했다. 그래서 특별한 공간을 계획했다. 마을사람이 버리는 유리컵에 수경식물을 심어 여름정원을 만들어 테이블을 장식하고, 작은 축제처럼 공간을 예쁘게 채웠다. 정원사가 내리는 핸드드립 냉커피 향과 음악으로 공간을 채운다. 그저 정원을 마을사람들과 함께 놀아보려고 한다. 마을정원은 모일 때마다 즐거웠으면 해서다. 마을정원은 마을의 놀거리와 일거리 그리고 지역의 색깔을 좀 더 ‘격’ 있게 만들어 가는 경험과 시간이다. 마을정원을 통해서 지역의 일거리를 만들고 이를 통해서 마을 일에 참여하고 주도하는 마을사람이 늘어나기를 기대한다. 이를 통해 성장하는 지역경제공동체도 함께 경험해 보고 싶다.
- 이성현 푸르네 대표 정원사[email protected]
- 2018-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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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그린유토피아는 녹색이 충만한 이상적 도시·사회를 말한다”고 정의할 때 일차적으로는 녹색이 충만한, 녹시율 100%의 이상적인 도시 모습을 의미하며, 이차적으로는 성숙하고 행복한 녹색시민이 주인인 이상적 도시커뮤니티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물리적으로 완벽한 녹색이상도시를 만들었다고 해도, 건강하고 행복한 도시사회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녹색도시의 시민들이 도시커뮤니티 활동에 자율적으로 참여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물리적, 사회적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하며, 동시에 일상에서 녹색생활양식이 지속적으로 실천돼야 한다. 이러한 녹색활동에 대한 자율적 시민참여와 친환경적 생활양식의 실천을 위해서는, 녹색이상도시의 시민들이 친환경, 친지구적 패러다임을 공유해야함은 물론이다. 최근의 도시개발 및 관리는 전문가 혹은 행정 주도에서 도시의 주인으로서 ‘시민참여,’ 더 나아가 ‘시민주도’로 바뀌어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은 시민주도로 가는 과도기라고 할 수 있다. 시민참여란, 한정된 예산범위 내에서 도로를 더 만들 것인지, 공원을 더 만들 것인지, 혹은 방범등을 더 설치할 것인지 등을 시민들의 의견을 물어 결정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시민주도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시민그룹을 만들어 특정 목적을 위한 입법과 사업을 주도하는 것을 말하며, 부산에서 100만평공원조성을 주도하고 있는 ‘100만평문화공원조성범시민협의회’가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대의 물리적 사회적 환경변화 속에서 이와 같은 시민주도 혹은 시민참여가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시민단체 혹은 마을커뮤니티에 적극 참여해 의견을 개진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와 같은 성숙된 도시행정을 위해 전문가와 행정에서도 가만히 앉아 참여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교육, 워크샵, 홍보 등을 통해 시민들의 참여의식 향상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린유토피아는 종착점이 아니라, 시민참여를 통해 지속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이상적 도시에 살기 위한 출발점으로 이해돼야 한다. 그린유토피아는 녹색만 충만하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일상생활에서 시민 모두가 친환경 녹색생활을 실천함으로써 비로소 달성될 수 있다. ‘소비는 미덕이다’라는 문구는 그린유토피아에서는 가장 경계해야할 말이다. 지구는 한정된 공간이고, 자원 또한 한정적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한정된 지구 자원을 후속 세대와 함께 공유하기 위해 우리의 소비생활을 가능한 검소하게 유지해야 한다. 이는 자원 절약뿐 아니라 쓰레기 배출 감소로 이어져 환경보존 및 오염 저감에도 큰 도움이 되며, 궁극적으로는 그린유토피아 달성에 긍정적 효과를 미치게 된다. 이시형 박사의 “물질적으로 좀 부족해도 맑게 살겠다는 청빈의 정신, 명예를 중히 여기는 고매한 인격, 나누고 베품에 극진한 선비정신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귀감이 된다.”는 말은 환경위기 극복을 지향하는 그린유토피아인들도 귀감으로 삼아야할 것이다. 그린유토피아 달성과 유지를 위한 시민 참여와 그린지향적 일상생활의 실천을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시민들의 가치관과 사고의 방향성이 친환경, 생태적이어야 한다. 오늘날 인류가 환경재앙에 직면하고 있는 것은 인간을 자연보다 우위에 두고 인간만을 고려하는(anthropocentrism) 서구의 전통적 가치관에 뿌리를 둔 물질문명의 과도한 발달에 따른 부정적 영향에 기인한다. 아리스토텔레스(BC384∼322)는 인간만이 이성을 소유한다며 인간의 우월성을 강조했으며, 토마스 아퀴나스(1224∼1274)는 인간만이 영혼을 지니고 있다고 했고, 데카르트(1596∼1650)는 동물에게는 의식이 없다고 하여 역시 인간의 우월성을 강조했다. 산업혁명 이후 서구에서는 자연을 단순히 생산의 대상으로 이해해 생산성이 있는 경우에 자연은 가치를 가지며, 생산성이 없는 경우에 그 자연은 가치가 없거나 적다고 여겼다. 이러한 인간중심, 경제성 중심의 경향으로 인해 인간이외의 동물이나 자연을 인간을 위한 도구로 사용함에 있어서 아무런 거리낌이나 죄의식이 없었으므로, 오늘날 환경파괴의 근저에 이러한 가치관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다. 환경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포함한 전 지구적 생태환경을 배려하는 새로운 개념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소비’로의 방향전환이 요구된다.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응용생물학이라 할 수 있는 생태학이 등장(1866)했으며 이어서 환경생태학까지 등장했는데, 생태학에서는 인간이 다른 동물, 무생물과 더불어 자연을 구성하는 일원이며, 이들 모두가 동일한 ‘내재적 가치’를 지닌다고 보았다. 내재적 가치라 함은 모든 생명체가 인간과 동일한 생명가치를 지니며, 무생물 역시 생물과 동등한 고유한 존재가치를 지닌다고 보는 것이다. 즉 생태계의 건강성 유지를 위해는 생물, 무생물 구별 없이 모든 구성요소가 상호 의존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다른 동물, 식물, 무생물을 도구적으로 사용할 수 없으며, 건강한 자연을 위해 상호 존중하고 공동으로 협력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주장의 한 예로 제임스 러브록은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로 바라보는 가이아(Gaia) 가설을 제시한 바 있다. 이상과 같이 인간, 동물, 식물, 무생물 모두가 자연생태계의 일원으로 동등한 중요성을 지니고 있으며 상호의존적이라는 사고는 동양에서는 이미 2500년 전부터 노장사상, 신선사상, 불교사상 등에서 공통으로 제시되고 있는 중요한 개념이다. 환경위기 시대를 맞이해 동양의 전통적 사상이 환경문제 대응을 위한 주류적 가치관으로 등장하고 있음은, 동양권인 한국에 생태적 그린 유토피아 구현을 위한 정신적 바탕이 이미 마련돼 있다고 볼 수 있으며, 따라서 그린유토피아 구현을 선도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잠재력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해방 후 개발과 경제성장 과정에서 서양의 겉모습 베끼기에 몰두해 우리가 지닌 고유한 내재적 자산을 잊고 주로 밖으로만 시선을 열고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우리 고유의 정신적 자산을 소중히 여기고 이를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린유토피아의 구현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 돼야 한다.
- 임승빈 원장[email protected]
- 2018-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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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나창호 기자] 땡볕 무더위가 기승이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으로 최근 나흘간 온열질환자가 280여 명이 넘게 발생했다고 한다. 그중에는 제주에서 조경작업을 하던 인부도 있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있다. 이렇게 타는 듯한 불볕더위에서는 햇볕을 가려주는 나무 한 그루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아스팔트의 뜨거운 열기를 온몸으로 받으며 도시에 녹색 숨통을 틔워주는 이 나무들이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교통섬 나무 그늘은 평균 4.5℃, 가로수는 평균 2.3℃에서 2.7℃의 온도저감 효과가 있다. 국립환경과학원의 연구에 따르면 그린인프라가 많을수록 여름 일수도 감소한다. 미국조경가협회는 토론토 시내 건물 옥상의 50%만 녹화해도 도시 전체의 온도를 최대 0.8도까지 낮출 수 있다고 했다. 공원녹지는 도시의 천연 에어컨이다. 하지만 현실의 공원녹지는 천덕꾸러기 신세다. 얼마 전 제주시는 아파트 밀집 지역에 있는 완충녹지 3600㎡를 해제하고 공용주차장으로 밀어버리려다가 주민과 지역 언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조경 직제가 신설된 이래 공원녹지 담당 조경직 공무원을 단 1명도 뽑지 않은 제주시가 민낯을 드러냈다. 진짜 문제는 공원일몰제다. 전국에 산재한 403.9㎢의 장기미집행 도시공원이 2년 후면 도시계획시설에서 해제돼 공원 지위를 상실하면서 각종 개발 사업으로부터 무방비로 노출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마저도 유명무실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국토부는 공원 매입에 필요한 직접 예산은 단 한 푼도 쓰지 않으면서, 지자체가 공원부지 매입에 지방채를 발행하면 이자의 50%를 5년간 깎아주는 식에 책임 떠넘기기를 하고 있다. 조경기준도 문제다. 조경기준은 용적률, 높이제한과 동류로 묶이면서, 각종 개발사업의 완화 대상이 되어왔다. 정부가 빈집 및 소규모주택정비를 활성화한다는 명목으로 조경기준을 최대 50%까지 완화시킨 것도 그 중 하나다. 도시에 필요한 최소한의 녹색 실핏줄을 간과한 정부와 지자체 건축 정책의 씁쓸한 단면이다. 지난 16일 스마트폰으로 폭염에 유의하라는 문자가 왔다. 미세먼지 경보를 받은 지 3개월 만에 도착한 안전 안내 문자였다. 하지만 미세먼지와 폭염을 줄일 수 있는 공원녹지 축소에 위기감을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서울환경운동연합이 최근 설문에서도 서울시민의 84.8%가 공원일몰제를 모른다고 했다. 2016년 기준 국민 1인당 도시공원 결정면적은 19.8㎡, 이대로라면 2년 후 1인당 도시공원 결정면적은 반 토막(9.2㎡)이 난다. 정부는 눈앞의 열매 따기에 급급해 번져가는 산불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더 뜨겁고, 더 탁해진 도시를 원하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
- 나창호[email protected]
- 2018-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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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曰 “그래 마음대로 실컷 가지고 놀아라!” 푸르른 6월 일요일 오후의 도서관 정원은 달콤하다. 누구는 책을 읽고, 누구는 신록을 감상하는지 눈을 감고 있고, 누구는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고. 그렇게 달콤한 적막함을 유지하는 게 일요일 오후의 예의일 것 같은데 ‘까르르 까르르’ 경쾌한 웃음소리가 어디에선가 흘러나온다. 오래된 분수대에서다. 아직 분수는 가동을 하지 않고 수조도 비어 있다. 대신 아이들이 빈 분수대를 꽉 채우고 있다. 분수대는 놀이터가 되었다. 분수대 주변으로 몰려든 아이들은 먼저 폭이 50cm 정도 되는 분수대의 경계에 주목했다. 경계의 바깥쪽은 길이고 안쪽은 70cm 아래의 수조. 누구는 그 위를 걸었고 누구는 그 위에 엎드렸다. 경계 위를 걷던 한 아이가 바닥으로 뛰어 내려 경계 위 다른 아이의 발목을 잡아 아래로 당겼다. 아이들은 경계 위에서 이리저리 피하다 도저히 피할 수가 없으면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일순간 바닥 부분은 술래의 공간이 되고 경계 위는 피하는 자의 공간이 되었다.그렇게 한참을 놀던 아이들이 어느새 안 보여 모두 집으로 갔나 했는데, 두 여자아이가 다시 나타나 경계석을 의자 삼아 앉아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한 남자아이가 여자아이 뒤로 몰래 몰래 다가간다. 멀리서 훔쳐보는 나까지 가슴이 쿵덕거렸다. 성공할 것인가? 거의 등 뒤로 다가갔고 이제 ‘어흥’하고 놀라게 하기만 하면 되는데, 그만 들켜버렸다. 분수대가 말을 할 수 있다면, 허허 웃으며 “그래 마음대로 실컷 가지고 놀아라. 대신 원래 있던 대로만 둬!”라고 할 것 같다. 분수대는 0000라는 활동을 지원한다(afford)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분수의 본래적 기능이나 의미에 연연하지 않고 분수가 주는 조형적 형태를 직관적으로 활용했다고 할 수 있고, 분수대의 입장에서는 분수대의 어떤 물리적 성질이 아이들의 활동을 지원했다고 할 수 있다. 분수대의 경계는 선으로서 균형 잡기를 지원했고,분수대의 경계는 면으로서 엎드리기를 지원했고,지면보다 낮은 분수대의 바닥은 뛰어내리기를 지원했고,지면보다 높은 분수대의 경계는 앉기를 지원했고,지면보다 낮은 분수대의 하부는 숨기를 지원했고… 이러한 상호작용 덕분에 분수대 일대는 순간 좋은 놀이터가 되었다. 이러한 현상을 ‘어포던스(affordance)’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우리나라 말로 ‘지원성’, ’행태 지원성’, ‘행동유도성’ 등으로 번역할 수 있는 ‘어포던스’라는 단어가 생태심리학의 중요 개념이 된 것은 깁슨(James J. Gibson)이라는 사람 덕택이다. 그는 1979년 「The ecological approaches to visual perception」에서 어포던스를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제공하고 자극하는 모든 것’으로 정의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환경의 어포던스를 지각하며, 어포던스를 지각하는 것은 우리가 환경과 어떻게 상호작용할 것인가를 지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은 ‘놀이’라는 측면에서 환경이 가지고 있는 어포던스를 지각하고 현실화시킨다. 어른들은 분수대의 경계에서 앉는 정도만의 어포던스를 현실화시키지만 아이들은 다르다. ‘걷기’와 ‘뛰어내리기’, ‘눕기’라는 잠재적 어포던스를 몸으로 현실화시킨다. 분수대의 경계는 아이들의 추상적 사고 능력과 결합되면서 잡기놀이, 술래잡기 같은 역할놀이를 지원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한 요소의 어포던스는 다른 요소와의 관계를 맺으며 그 폭을 넓히고, 아이들의 상상력과 결합하면서 끝없이 확장돼 나간다. 그러므로 당연히 놀이터 디자인에서는 어포던스가 중요하다. 어떤 사물이, 구조물이, 공간이, 지형이 어떤 활동을 지원(afford)할지 머릿속에서 끝없이 시연하면서 디자인을 해야 한다. 물론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아이들의 놀이는 항상 우리의 예측을 넘어서 감탄을 자아내니까. “어떻게 저기서 저렇게 놀 수 있지?” 그렇다고 아이들의 기발함을 핑계 삼아서는 안 된다. 예측할 수 있는 만큼 해야 하고 예측능력을 키워야 한다. 아이들의 놀이 관찰, 대화는 가장 좋은 훈련이 된다. 이 삼각뿔은 어떤 활동을 지원할까? 그럼 응용력을 키우는 셈치고 이 삼각뿔이 어떤 활동을 지원하는지 상상해보자. 아이들이 어떻게 이를 가지고 노는지는 다음 글에서 보여드리도록 하겠다. “모두들 어린 시절로 돌아가. 머릿속에서나마 몸을 움직여보자. 내 앞에는 삼각뿔이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어른들은 분수대의 경계에서 앉는 정도만의 어포던스를 현실화시키지만 아이들은 다르다. ‘걷기’와 ‘뛰어내리기’, ‘눕기’라는 잠재적 어포던스를 몸으로 현실화시킨다. 놀이터 디자인에서는 어포던스가 중요하다. 어떤 사물이, 구조물이, 공간이, 지형이 어떤 활동을 지원(afford)할지 머릿속에서 끝없이 시연하면서 디자인을 해야 한다.
- 김연금 조경작업소 울 소장 [email protected]
- 2018-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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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박광윤 뉴스팀장] 내달 초, 산림청과 조경단체와의 실무 간담회가 열릴 계획이라고 한다. 이 자리에는 산림청에서 도시숲경관과장과 도시숲·정원정책을 담당하는사무관 및 주무관이 참석하고, 조경단체에서 한국조경학회, 한국조경협회, 대한건설협회, 대한전문건설협회, 대한환경조경단체총연합의 실무자들이 참석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날 회의는 언론에 비공개로 진행한다는 방침을 산림청으로부터 통보받았다. 산림청만의 생각인지 조경단체도 동의한 것인지는 모른다. 이날 다루는 주제가 조경인들의 알권리가 우선되어야 하는 문제인데, 마치 밀실협상이라도 하려는지 굳이 비공개라니 어이 없다. 이 날 주요 의제는 ‘도시숲법 제정’이다. 그간 수년간 조경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산림청이 끈질기게 추진해온 법으로, 이번에는 ‘도시숲관리법’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지난 3월 열린 ‘산림청장과 조경분야 단체장 간담회’에서 산림청은 앞으로의 ‘도시숲법’ 제정 계획을 밝히며, 조경계의 협조를 부탁한 바 있다. 조경분야는 우려를 표시하면서도 ‘상생’이라는 키워드에 방점을 찍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도시숲법’은 몇몇 조경단체장과 실무자들이 쉽게 합의해 줄 문제가 아니라 조경계의 여론을 충분히 살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간 조경인들은 산림청이 도시숲법을 졸속 처리하려고 할 때마다 격한 분노를 표출해 왔다. 산림청은 ‘공원’과 개념 차이도 명확치 않은 ‘도시숲’이라는 개념을 굳이 만들어서 법까지 추진하며 대립을 자초해 왔다. 물론 최근 몇 년 사이 산림청에 대한 조경계 여론이 많이 완화된 측면은 있다. 실제 “도시숲 사업의 주체로 조경인들이 나선다면 법 제정을 반대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대세적인 여론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도시숲법’에 대한 반론이 적지 않다. 최근 ‘도시숲’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하지만, 이 단어가 ‘도시공원’과 어떤 관계적인 정의를 가지는지 잘 아는 사람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도시숲과 공원의 차이에 대해 개념을 정립하거나 합의를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국가기관인 산림청이 산림사업에서 벗어나 도시그린인프라 조성사업을 하기 위해 국토부나 조경계 등 관련 분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격다짐으로 추진해온 사업이다보니 개념에 대한 합의를 이룰 수도 없었다. 대한민국 국토를 푸르게 만들기 위한 노력은 지속되어야 하지만, 다른 기관도 아닌 국가기관이 독단적인 사업 추진을 통해 국가의 도시녹지 정책을 혼란스럽게 한 잘못은 지적받아야 한다. “선의(善意)라고 해서 꼭 선(善)은 아니다.” 기재부가 돈을 만지고, 환경부가 수질을 관리하듯이 산림청이 산을 가꾸고, 국토부가 도시를 책임져 왔다. 더욱이 ‘도시숲법’ 제정으로 도시의 공원·녹지 담당 부처가 난립하게 된다면 훗날 더 많은 갈등이 야기될 수도 있다. 도시숲법 제정은 적어도 도시녹지 분야 전문가들인 조경가들의 여론을 수렴해추진되길 바란다. 아직 도시숲법을 반대하는 ‘조경단체’도 엄연한 상황에서 비공개적인 협상은 불필요한 오해를 줄 수 있다. 또다시 밀실을 택한 산림청, 광장으로 나와 공개적으로 논의하라.
- 박광윤[email protected]
- 2018-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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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원이든 정원에 대한 구상과 정원을 구성하는 요소가 중요하다. 어디서부터 정원의 이야기를 시작할지 고민을 많이 한다. 특히 마을정원을 시작하려는 시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다. 바로 사람이다. 마을정원을 조성할 때는 특히 사람에 대한 다양한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 지난주에는 새로운 마을정원 조성을 위해 마을을 대표하는 협의체 사람들과 첫 미팅을 가졌다. 회의에는 마을 일을 진행하고 있는 각 단체의 구성원과 기관단체 실무자들 그리고 주민센터 실무자가 함께 했다. 우리는 마을정원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으며 마을정원의 필요성에 대한 생각을 나눴고 파출소, 어린이놀이터, 청소년센터 주변의 가용지를 찾아 다녔다. 대상지와 관련된 구성원의 특성에 따라 정원의 사용방법이 달라질 수 있기에 마을정원의 다양한 모습을 그리며 즐거운 상상을 했다. 사람에 집중하는 이유는 마을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앞으로의 이야기를 정원에 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당장은 마을사람들에게 불편한 요소를 좀 더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역할로 정원이 만들어지는 부분도 있지만 마을정원은 그 이상의 것을 꿈꾸고 있다. 정원과 연계한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 경제 공동체를 만들어 발전시킬 수 있다. 사회가 변화하면서 지역경제의 필요성도 함께 생각할 시점이 되었다. 마을정원을 통해서 그 일을 시작하려고 한다. 개인적으로 작은 정원마을을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겉모습은 작은 주택 단지로 보일 수 있지만 이 마을은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는 것을 꿈꾸고 있다. 마을이 담당하는 작은 지역 경제가 옆 마을로 이어지고 그것이 마을의 새로운 색깔을 만들고 이 마을을 찾는 이유가 될 것이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지역 경제 공동체라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지역 경제’와 이를 이루는 ‘공동체’를 이 마을정원의 핵심요소로 보고 있다. 마을정원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구심점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지고, 멋진 공간이 태어난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마을정원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무엇인가를 준비해야 한다. 그것이 마을정원의 핵심이 되어야 하고 마을정원의 리더들이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처음부터 거창한 것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방향을 꾸준히 유지한다면 분명 좋은 위치에 서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정원의 모델로 생각하며 관심을 가지는 곳이 ‘남해원예예술촌’이다. 나는 이곳과 아주 가까운 인연이 있다. 이 마을은 모든 입장객이 나가고 나면 저녁이 있는 마을 사람들만의 공간으로 바뀐다. 평상시 마을에 대한 다양한 실험과 도전 그리고 여행을 통해서 꾸준히 마을의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마을정원을 가지고 지역 경제 공동체를 만들어 낸 좋은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모델을 적용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우리 마을만의 색깔을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에 충분하다. 누가 이것을 보고 발전시킬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곳에 머물지 말고, 다양한 세계 사람들과 만나야 한다. 성숙해져 있는 그들의 마을 이야기 속으로 걸어가 봐야 한다. 마을정원에서 사람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는 것이 이러한 이유다. 아직까지 우리의 실력으로는 어려울 수 있지만 우리는 이미 충분한 기회와 멋진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마을정원을 표현하는 공간이 정해지면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보자. 그리고 그들이 어떠한 장점과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지 상상해보자. 딱딱한 회의실을 벗어나 이른 아침 마을길을 함께 걸어도 좋다. 작은 이야기부터 시작하다보면 어느새 우리는 몇 년 뒤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지도 모른다. 첫 시작은 마을사람들의 요구사항을 읽어낼 수 있는 접근방법이 필요하다. 가장 시급한 것부터 무엇인지 살펴보는 시간이 되면서 마을사람들의 유입을 이끌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리고 미래 마을사람들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이를 통해 개인의 잠재적 능력을 찾고 발전시켜 마을의 전체 색깔을 채우게 된다. 마을정원은 마을을 구성하는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우리는 그 마을사람들을 마을정원으로 초대하기 위해 다음 주에는 작은 이벤트를 시작한다.
- 이성현 푸르네 대표 정원사[email protected]
- 2018-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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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곤충들은 잎을 갉아먹을 때 잎맥은 먹지 않는다. 다시 잎이 나도록하기 위함이다. 우리 선조들이 만든 대동여지도와 해동여지도에는 산줄기, 강줄기, 길 그리고 객사 정도로 표현을 했다. 지도에 맥이 표현되어 생활사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배고픔을 구하는 고구마는 줄기만 심으면 저절로 잘 자란다. 줄기세포는 아픈 인류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맥(脈)을 잘 읽어야 한다. 좋은 집안을 뼈대 있는 집안이라고 한다. 사람은 피가 잘 통해야 건강하다. 점과 면도 중요하지만 선도 중요하다. 우리 강산의 강줄기와 산줄기는 기와 에너지가 흐르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국토의 맥이다. 산줄기는 산의 정상부를 연결하는 선이다. 산맥과 산줄기는 다르다. 우리나라 산맥은 일본 지리학자 고토분지로가 1901년부터 1902년까지 2년 간 조사를 해서 만든 것이다(조선산악론, 1903). 산맥의 형성원인 즉, 땅 밑 구조에 초점을 두었다. 조선의 신경준은 산경표를 만들어 우리나라 산줄기를 만들었다. 백두대간이 할아버지, 정간은 작은 할아버지 정맥은 아버지, 지맥은 나 이런 식으로 족보론에 의해 정립하였다. 자연을 사회학으로 해석해 정리하여 참으로 흥미롭고 위대하다. 통일신라후기 도선의 옥룡기에는 ‘백두에서 일어나 지리에 이른다’고 국토를 한 그루의 나무에 비유하였다. 조선 1763년 이익의 성호사설에는 백두산이 국토의 조종(祖宗)이라 하고 백두대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1913년 산경표에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우리나라 산줄기 체계가 정립되었다. 기본 이론은 산자분수령-산이 곧 물을 가르다-이다. 이 소중한 책이 인사동 고서점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고 한다. 우리 선조들은 아름다운 이 국토를 금수강산이라고 했다. 자연 상태에서 산줄기와 물줄기는 교차하지 않으며 산줄기와 산줄기 사이가 자연스럽게 강 유역이 된다. 이것은 통합유역관리 개념에 그대로 사용될 수 있다. 산줄기를 보면 우리 국토를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산줄기의 의미를 이해하면 각종 국토계획 수립에 좋은 기초가 된다. 백두대간을 알면 한반도의 윤곽을, 13정맥을 알면 국토의 큰 권역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한북정맥과 한남정맥 사이가 바로 한강유역이 된다. 특히 산줄기는 녹지축의 근간이 되며 그 위상도 알 수 있다. 우리 국토가 금수강산인데 우리는 왜 회색도시에 살지? 독일 사람들은 국토의 80%를 이용한다고 한다. 우리는 산지만 해도 64%이다. 그런데 왜 독일 사람들은 녹색 속에 살고 우리는 회색도시에 살지? 참으로 신기한 현상이다. 녹색 속에 살려면 개발지역이라는 물고기를 녹색 그물망으로 잡아야 한다. 그래서 녹색의 망(네트워크)이 중요하다. 그물망은 Lining과 Lining이다. 그런데 우리의 국토이용의 근간은 Zoning이다. 풍수가 무엇인가? 장풍득수이다. 배산임수도 다 같은 말이다. 산줄기를 보고, 바람을 막고, 물을 얻어, 집을 짓고 농사를 짓고 산다. 울타리를 치고 생산할 곳과 쉴 곳을 정하여 만드는 서양과는 다르게 우리는 자연을 살펴 그 속에 삶터를 앉힌 것이다. 이런 고단수의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읽지 못한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표현이 정확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여기서 말하는 Lining의 뜻은 강줄기와 산줄기를 잘 살피자는 것이다. 일제가 우리의 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산정에 대못을 박았다고 난리를 쳤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 정맥에다 도시를 지었고 고속도로 교차로를 얹었고 그것도 모자라 아예 물이 산을 넘게 했다. 山自分水嶺(산자분수령)? 김포! 지금 육지인가? 지표수만 마시고 사는 국가가 얼마나 되나? 우리는 국토로부터 참으로 큰 복을 받은 민족이다. 강줄기 산줄기가 뚜렷하고 잘 발달되어 있다. 줄기를 살리고 그 중에서 중요한 것은 또 면(zone)으로 확대하고 필요한 개발지역 역시도 줄기 사이에 면과 선으로 잘 배치하면 얼마든지 녹색 속에 살 수 있다. 회복탄력성이 좋아지는 것은 더 말 할 필요도 없겠다.
- 이양주 선임연구위원
- 2018-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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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협정을 준비하며 비무장 지대에도 봄이 온다. 충돌 방지를 위한 완충지대이니 이 안팎에서는 어떠한 군사 행위도 없어야 한다. 그러지 못한 세월 때문인지, 봄날에 대한 염원 때문인지 여기를 어찌하면 좋을지 다시금 이슈가 되고 있다.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목소리도 커지기 마련이겠지만 최근의 하나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비무장 지대에 “절대 마땅치 않은 공원”이라는 단정이 펜을 들게 한다(‘월간 참여사회’ 2018년 6월호, ‘특집3: 비무장지대를 상상하다’ 중 “10년 후의 비무장지대”). 우리는 수많은 선입견 속에 살아간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것 자체가 우리와 각자를 구별해주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지나친 선입견(preconception)은 흔히 편견(bias)이라 불리고 그것에는 편파적이고 공정하지 못하다는 의미가 동반된다. 본래 편견(prejudice)은 선입견, 선판단 등 ‘먼저 이루어진 견해’라는 뜻이지만, 편견이 먼저 느껴지는 경우 우리는 그것의 공정치 못한 입장(bias)에 어리둥절할 경우가 많다. 비무장 지대에 공원이 안 된다니 이 무슨 봉창소리 같은 편견인가? 방치되었나 자생하였나 거기에는 아마도 그간의 관습적 개발논리와 담론에 대한 경종의 의미가 먼저 있었을 것이다. 일견 수긍되다가도 이야기가 이상하다. 공원은 안 된다면서 공간은 된다는 것이니까 말이다. 공원의 공(公)은 공적인 의미를, 공간의 공(空)은 사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다른 어원의 낱말인데 비무장 지대를 사유화 하자는 것인가? 지나치게 단순화한 요약이겠지만 뭔가 단단히 편향되었음은 분명해진다. 편견은 새로운 편견으로 오해를 깊게 할 뿐 담론을 풍성하게 하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이를 계기로 일방적이고 편향된 담론을 경계하기 위해서라도 문제를 바로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흔히 분단의 상징 비무장 지대에 대해 생태계의 보고로서 세계적 가치를 깊이 있게 고민하지 않고 이해한다. 직접 가서 확인할 수 없고 확인한들 그 가치에 대해서 모두가 동일하게 평가하기도 어렵다. 그것이 큰 문제일 수는 없지만 사실 제대로 된 생태계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비무장 지대에 대해 막연하게 자연적 천이의 가치를 높게 보는 입장은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생각의 여지가 많다. 우리가 흔히 놓치지만 나무들끼리의 ‘수줍음의 틈’은 처절한 경쟁의 산물이어서 낭만적으로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비무장 지대의 그것도 인공적으로, 강제적으로 형성되었고 생각보다는 의도적으로 관리되었기 때문이다. 지뢰는 그 대표적인 사례고 초소와 사계청소, 병해충도 생각해야 한다. 물론 그렇더라도 거기에서만 볼 수 있는 새로운 자연과 생태가 형성되었으니 그 가치는 충분히 따져볼 수 있다. 다만 생태계만 볼 것이 아니라는 것이고, 그렇게 자연적이지만도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본래적으로 인공적일 수밖에 없음을 따져보자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여기를 또 어떻게 ‘인공(human work, artificiality)’으로 의미 있게 다룰 것인가 고민하는 것은 더 이상 고려하지 말자.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해야 되거나 말거나의 문제로서가 아니라 비무장 지대는 낭만적으로 접근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고, 선악 없는 자연과 생태는 그렇게 천연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한 세기 가까운 자생성(wild)이 그리 호락호락할 리 만무함을 이제 천착하자는 것이다. 생태적인가 인공적인가 따라서 비무장 지대는 우선 현황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필수다. 요구(demand)와 욕망(needs)은 그 다음의 문제라서 순차적인 담론화는 필요하지만 최소한 여기에 무엇을 하자거나 말자거나 단정하는 것은 무지이거나 강요이거나 자만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런 사례를 충분히 겪어보았다. 수차례의 연구와 국제적 설계공모에, 분명한 장소까지 있지만 현장 이해가 제각각이어서 갈피 없는 용산공원만 보더라도 현황이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고 생각마저 각자인 곳이 얼마나 어려운지 체감케 한다. 모두의 염원이 담긴 곳을 그렇다고 청계천처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또한 장소와 무관한 생각은 얼마든지 다양하다. 거기에 변화(transformation)와 전문성(deep ecology)도 무시할 수 없다. 보는 눈이 많아서 갈피를 쉽게 잡기 어려운 것도 자명하다. 그런 만큼 우리는 비무장 지대를 낭만적 친자연의 생태계로만 단정하여 볼 수 없는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오해를 걷어내고 이해를 넓혀야 현황을 그나마 분명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생각과 담론은 그 다음이라도 늦지 않다. 간간이 축적해온 자료와 생각들은 그 단서일 뿐 현황의 증거가 될 수 없음도 인정해야 한다. 비무장 지대(demilitarized zone)는 무력 충돌 방지나 교통로 확보 등을 위해 설치된다. 말 그대로 군대 주둔이나 무기 배치, 군시설 등이 금지되고 내부나 내부를 향해서 어떤 군사행위가 있어서도 안 된다. 우리의 경우는 “정전협정”에 따라 당시 군대의 접촉선(육상 군사분계선) 기준 남북으로 각각 2㎞씩, 4㎞ 폭에 동서 248㎞ 길이의 크고 넓은 띠로 설정되었다. 남북 대치라는 특수 상황에서의 완충지대 역할이었지만 실상은 여전히 무력이 집중된 아이러니를 가진 곳이다. 정전협정에 휴전협정, 상호불가침 서약을 넘어 평화협정으로 단계를 거듭하며 위상이 바뀌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휴전선이 가운데 놓인 인위적 배타지역일 뿐 본래부터 전쟁의 상흔 가득한 인공적인 곳이었고 시간에 따라 독특한 생태계가 형성되었다고는 하나 그것을 몇 차례 답사하며 축적한 일부 자료로 모두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작 당사자인 장소에 대해서 우리는 기록과 기억이 불충분하고 직접 경험조차 미미한 것이다. 요지는 우리의 비무장 지대를 바깥의 시선으로 낭만적으로 보아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지나온 과오의 시대를 투영하거나 미술관 그림처럼 관조하거나 경험 없는 선무당이 되어서는 곤란한 제멋대로의 자연과 생태계라는 것이며, 버려진 듯 보이지만 실상은 켜켜이 쌓인 상흔과 언제든 살상이 가능한 인공적인 대립의 축적소라는 것이다. 더욱이 비무장 지대는 한 쪽 면만의 요란한 생태계가 전부일 수 없고 꽃씨와 새들은 거기에만 갇혀 살지도 않아 한반도와 북반구를 오간다. 이런 생각이야 처음이 아니지만 너무도 쉽게 잊혀지곤 한다. 게다가 이번엔 긍정적 분위기에 극단적 주장이 쐐기처럼 날아들기까지 한 것이다. 공간인가 공원인가 우리가 만든 최근의 공원 하나만 살펴보자. 선유도공원은 세계적인 조경상을 수상한 바 있는 대표적인 한국의 현대 공원이다. 이곳은 본래 선유정수장이라는 30년 가까이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없었던 한강 내부의 기억 없는 섬이었다. 가보았다면 알겠지만 벌써 개장 20년이 되어가면서 공원은 지난 시대와 지금의 여기가 뒤섞이며 한층 깊고 새로운 기억을 쌓아가고 있다. 사람들 기억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장소가 이제는 많은 시민들에게 추억의 장소로 체험되며 성장한다. 세계적으로도 알려져 있고 타 공원의 모범이 되기도 한다. 우리의 공원을 만드는 생각과 기술은 이처럼 이미 형식적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내용적 아름다움까지 세계적 수준을 상회한다. 공원은 이제 단순히 도심의 여분 공간(park)이 아니며 현대 공원은 그렇게 형식이 아니라 내용에서부터 알차게 사람들의 생활과 기억에 중요한 요소가 되어 있다. 뿐만 아니다. 우리나라의 특수 상황은 전국 곳곳에 국립공원, 도립공원, 군립공원과 같이 법적으로 이름을 가진 공원과, 이름은 공원이 아닐지라도 활용은 그와 같은 수많은 명승지와 녹지, 산책로들이 즐비하게 하였다. 생활권으로만 보더라도 이미 많은 주거단지들은 공원 같은 옥외환경과 완충지대를 자랑한다. 다시 말해 이미 우리는 공간의 바깥에 수많은 공원을 둘러두고 자연과 함께 살고 있다. 부동산 개발의 대명사인 양, 인조 공간들의 간판인 양, 도심에나 가능한 것인 양 매도되어서는 곤란한 것이다. 공간(built environment)이 그 자체로 인간 없이 불가하다면 공원(public park, public garden)은 인간과 함께도 인간이 없어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공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연과 생태에 무엇을 우리가 공유하고 펼쳐 놓느냐 이지 그것을 어디에 두느냐는 이미 문제가 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먼저 비무장 지대의 가치와 위상을 따져보며 생각의 실마리를 공유하고 보다 좋은 방향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것이 먼저여야 할 것이다.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법이고 켜켜이 쌓인 가치를 재발견하고 그 가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 뭔가 특단의 성찰도 있어야 한다. 공원이 안 된다는 단정에도 그런 사고가 바탕에 있었으리라 생각하지만 그 방향이 옳지 못한 것은 관성적 개발 최소화와 무슨 무슨 공간이면 된다는 그 얄팍함 때문이리라. 물론 여러 생각거리를 모아보자는 측면에서 그런 발언이라도 없는 것 보다는 낫겠다 싶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오해와 편향은 진정한 성찰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오해는 혼란은 될 수 있어도 담론이 되지도 시대적 철학이 되지도 못한다.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금만 둘러보면 비무장 지대를 어째야 할지 생각할 때 인간의 의지는 잠시 뒤로 두는 접근이 적어도 우리 모두에게 공유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빡빡한 개발로 채워지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들은 이미 열린 생각이자 공론으로 보편화되었다. 대표적 공유 장소인 공원은 쓰임이든 만듦이든 기본적으로 열린 장소이다. 공원은 공간처럼 물체로 규정되거나 한정되지 않는 공론의 장이며 특별한 의미의 공간들을 포용한다. 그것이 공원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공간이 물체로서 나타난다면 공원은 모두의 의지로서 나타난다. 공원은 그래서 시끄러운 것이고 응당 그래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비무장 지대는 이미 공원으로서 손색없는 장소이다. 그러니 이전의 아이디어들이 그러했던 것이며 여전히 우리가 생각을 모아야 할 이유인 것, 오해를 쌓고 담론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공공재인가 공유재인가 더 나은 아이디어와 생각의 공유를 위해서 우리는 사실 우리의 시점과 시각이 어떠한지 먼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난 세기 급격한 발전은 강력한 자신감과 폭넓은 사고력(생각의 물리성)을 보편화 해주었다. 향상된 삶의 질은 결국 모두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었고 둘러보고 뒤돌아볼 수 있는 우리를 일러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많았고 우리는 각자 원하는 것도 달랐다. 그 사이 삶터는 이미 옴짝달싹하기 어려운 물리적 도시물(space)로 채워지게 되었다. 태도에도 관성이 있기에 비무장 지대를 보는 우리의 시각에도 그런 관성이 작용하고 있는지 살펴볼 때이다. 우리가 해야 할 성찰의 핵심은 바로 그 지점, 생각의 ‘그리드락(gridlock)’에 있다, 관성이 붙은 ‘자신감과 사고력’이 우리를 어디로 몰아가고 있는지 말이다. 비무장 지대는 반세기 넘도록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못한 것이 아니다. 개발의 그리드락이 유례없이 작용하지 못한 곳이고 분단과 대립이 저만의 길을 가버린 곳이다. 말 그대로 무력이 해제된 곳이기도 하지만 일견 이미 접경지역까지 시끄럽다는 자본의 위력이 해체된 곳이기도 하다. 습지와 산지가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사실 거기에 있다고 냉정하게 보아야 한다. 관성화된 개발 논리와 얄팍한 경험지식으로 무엇을 어쩌자는 식의 구체적인 논의는 그러므로 솔직하지 못하고 부족한 성찰을 드러낸다. 그런 점에서 어떤 식으로든 교통을 추가하며 진행되는 비무장 지대 개발의 논리는 최소든, 최대든 아직은 불편할 수밖에 없고, 관성이 붙은 ‘자신감과 사고력’이 비무장 지대를 모두의 공공재이자 공유재인 양 살피지만 실상은 딴 속이 그대로 읽힐 때도 있다. 그러니 우리가 지금 비무장 지대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보려고 하는지, 또 어떻게 보아 왔는지 소통과 담론화가 먼저 필요한 것이다. 지난 시대처럼, 저 만의 길을 가고 있는 야생을 자본의 무장 지대로 몰고 가서는 곤란하다. 우리의 비무장 지대는 공공재도, 공유재도 아닌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무엇(他者)’이기 때문이다. 여물위춘(與物爲春), 타자와 더불어 봄이 된다 일견과 달리 장자의 호접몽 이야기는 우리에게 나비일 때 나비여야, 장주일 때 장주여야 함을 강조한다. 둘 사이에 확실한 구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그러한 구분은 선입견과 오만, 자의식 등을 벗어난 나일 때 가능한 것이고 그래야만 타자와 소통할 수 있음을 서사적으로 풀어놓은 것이다. 발언도 습관이라 장자의 깊이 있는 생각은 거기에도 묻어난다. 비무장 지대는 협정에 의한 인공적 장소이다. 그것은 물리적으로 지면(自然)에 설정되었지만 실상은 지형과 무관하게 지도(思考) 위에서 합의된 것이다. 처음부터 거기의 생물이나 자원은 누구도 검토하지 않았다. 이제부터라도 인위적 방치가 기반이 된 환경에, 시간이 쌓이며 형성된 야생을,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도래할 그것으로 타자로서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를 벗어난 세월과 진화가 거기에 있음을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 생각과 공론에 이미 충분한 기술을 더해 관성이 붙은 지금여기의 가벼운 지식들을 되묻고 구별해야 한다. 지혜는 그러할 때 창발할 수 있다. ‘봄이 온다’는 사실 적시가 아니라 봄이 오길 간절히 바라는 진심의 표현이다. 거기에 담긴 진정성은 당사자 내외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울림을 주었다. 이제 염원을 현실화 하려면 우리는 진심도 필요하지만 원하는 것을 받아 안을 수 있는 성찰과 냉정도 일깨워야 한다. 봄은 타자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아니 ‘타자와 더불어 봄이 되기’(與物爲春, 『장자』, 「德充符」) 때문이다.
- 안명준 조경평론가[email protected]
- 2018-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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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외국에 있다는 이런 놀이터를 만들어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소환해 ‘아무 것도 없이 아이들은 잘 논다’라는 주장을 펼치는 분들과 함께, 스마트폰으로 검색한 이미지를 보여주시면서 “외국의 이런 놀이터를 우리도 지어요” 혹은 “외국의 이런 시설을 우리도 도입해요”라고 하시는 분들도 놀이터 디자인을 논의하는 자리에 꼭 계신다. 참여자들 간에 친분이 있을 경우에는 SNS에서 공유도 하고 온다. 물론 좋은 아이디어도 있지만 적용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이유는 다양하다. 실내 환경에 적합한 재료로 만들어진 놀이시설물이라 외부에 설치하기 어려울 수도 있고, 공사비가 턱 없이 모자란 경우도 있고, 지형의 형태나 크기가 제안하신 놀이터와 전혀 다를 때도 있다. 국내 안전기준 때문에 설치하기 어려운 시설도 있다. 하지만 차라리 이런 이유라면 수용하기 어려운 이유를 설명하기 쉽지만, 어린이들의 놀이 방식, 지역 주민들의 반응이 이유일 때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경험에서 얻게 된 이유이기 때문이다. 가끔은 스스로도 머리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어린이대공원에 장애 아동과 비장애 아동이 함께 놀 수 있는 통합놀이터를 디자인 할 때이다. 시민단체와 여러 전문가 조직으로 결합된 통합놀이터만들기네트워크는 우리나라에 만들어지는 첫 번째 통합놀이터인 만큼 휠체어를 탄 채 이용할 수 있는 시설물 설치가 상징적으로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휠체어 이용자가 원심력으로 밖으로 튕겨져 나가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했고, 독일 답사를 하며 여러 놀이터에서 보았던 비고정적 안전바를 장착한 회전 무대를 검토했다. 휠체어 이용자가 타는 동안에는 안전바를 위로 올렸다가 탄 이후에는 등 뒤로 내리도록 하는 디자인이다. 그런데 관리자와 시설물제조사는 고정되지 않는 안전바가 적용된 디자인을 극구 반대했다. 아이들은 분명 안전바에 올라갈 것이고, 아이들이 올라간 상태에서 안전바가 움직인다면 낙상 사고가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납득하기 어려웠다. 독일에서는 여러 놀이터에서 보았는데, 왜 우리는 안 된다는 거지? 의문은 이내 ‘독일 아이들은 올라가지 않는 것일까? 독일에서는 올라가도 문제로 삼지 않는 것일까? 우리 아이들만 올라간다면 왜 올라갈까? 더 극성스러운가?’로 발전됐다. 납득이 되지 않았지만 결국 현장 경험이 많은 이들의 말을 따라 디자인을 변경했고, ‘우리 아이들은 에너지를 발산할 충분한 환경을 갖고 있지 않아 시설을 보다 적극적이고 모험적으로 활용한다’고 스스로를 이해시켰다. 그리고 바구니그네. 바구니그네는 어린이대공원에서 인기가 높다. 주말이면 바구니그네 앞에 늘어선 긴 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한 어린이는 이 바구니그네에 반해서 지역 국회의원에게 자기네 동네에도 바구니그네를 설치해달라고 편지를 보낸 적도 있다. 그런데 최근 여러 놀이터에서 이미 설치된 바구니그네를 없애는 일이 나타나고 있다. 아이들이 여러 명 한꺼번에 올라타는 바람에 고장이 나서, 그네 앞을 무심히 지나는 어린이와 둔탁한 그네가 부딪혀서, 위험해 보여서, 이유는 여러가지이다. 가장 안타까운 이유는 아이들 여럿이 이 바구니그네를 타며 내지르는 소리가 시끄럽다는 민원으로 없앤 경우다. 놀이시설물이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도 없어져야 되는 이유가 된다. “외국의 이런 놀이터를 우리도 지어요”라고 하시는 분들 꼭 계신다. 좋은 아이디어도 있지만 적용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어린이들의 놀이 방식, 지역 주민들의 반응 등 경험에서 얻게 된 이유는 스스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놀이터 톺아 짓기 동네 놀이터를 멋지게 조성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검색까지 해 오는 열의는 무척이나 감사하다. 그러나 시선이 ‘여기’가 아닌 ‘저기’에 있어서는 좋은 디자인을 끌어내기 쉽지 않다. 간혹 SNS를 타고 유통되는 외국 놀이터의 이미지가, 외국 디자이너의 인터뷰가 흥미롭지만 아쉬운 까닭이기도 하다. 워크숍에서 만난 그들의, 우리 사회의 시선과 관심을 ‘여기’로 유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 여기’에 대한 이해가 우선된다면 해외 놀이터와 놀이시설물을 벤치마킹 하는가 안하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놀이터를 둘러싼 ‘여기’의 환경은 매우 중층적이라, 놀이터 디자인은 쉽지 않다. 아주 까다롭다. 고려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멋진 디자인, 재미있는 놀이시설물만으로 놀이터 디자인을 말할 수 없다. 놀이터가 어디에 놓이는지, 아이들이 원하는 놀이 활동은 무엇인지, 아이들에게 부족한 놀이 공간은 무엇인지, 지역 주민들의 놀이와 놀이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또 뭘 원하는지 등을 세심하게 검토해야한다. 또 놀이터는 지역 사회에서 가장 가깝게, 쉽게 만나는 공공공간이다 보니 사람들의 요구가 많다. 요구를 조정하는 섬세한 논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완성된 후 주민들의 반응이 항상 긍정적인 것도 아니다. 글과 그림으로 만나는 놀이터와 직접 눈으로 보는 놀이터는 다를 수밖에 없고, 내 삶에 영향을 주기 시작하면 그때서야 없었던 의견이 생기기도 하니까 말이다. 완성 후에도 주민들의 반응을 잘 살피며 대응해야 한다. 즉 놀이터를 샅샅이 뒤지며 지어야 하고 관리해야 하는 이유, 놀이터를 톺아 지어야 하고 톺아 관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놀이터를 둘러싼 ‘여기’의 환경은 매우 중층적이라, 놀이터 디자인은 쉽지 않다. 아주 까다롭다. 고려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멋진 디자인, 재미있는 놀이시설물만으로 놀이터 디자인을 말할 수 없다.
- 김연금 조경작업소 울 소장[email protected]
- 2018-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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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속의 마을정원 요즘 정원이란 단어는 과거와 달리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게 다가와 있다. 큰 소나무가 없어도 되고, 넓은 잔디공간이 아니어도 될 만큼 정원은 일상의 한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생활권 주변에 버려진 공간을 찾아 화단을 만들던 때를 지나 이제는 아이들의 놀이공간과 쉼터 주변에 정원을 만들고 즐기는 적극적인 참여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 마을정원, 공동체정원 등의 다양한 이름의 정원이 만들어지고 있다. 마을정원이란 개념이 아니어도 예부터 마을에는 늘 정원이 있었다. 학교 교정에 핀 사루비아와 아카시아 꽃(아까시나무)은 우리에게 늘 달콤한 꿀을 선사해 주었고, 겨울철 호주머니 속에는 해바라기 씨를 간식거리로 넣어두었다. 봄이면 여린 쑥으로 떡을 만들어 주시던 할머니에 대한 기억도 있다. 분꽃과 채송화, 코스모스길은 진한 향기로 누구에게나 기억에 남아있는 정원이었다. 이처럼 우리는 늘 꽃, 식물을 가까이 두고 즐기며 살았다. 그러던 정원이 도시화에 밀려 우리 주변에서 멀리 사라지게 됐다. 식물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던 마을의 색깔과 특징도 사라졌다.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던 고향의 따뜻한 기억이 넓은 도로와 커다란 건축물에 밀려 사라진 것이다. 우리는 정원이 아니라 다시 고향을 만들고 있는지 모른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꽃삽을 들고 마을 구석구석을 누비며 꽃을 심고 있다. “작은 꽃 하나가 무슨 일을 하겠어?”라고 말하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마을에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마을에 꽃이 다시 피고 있다. 마을이 정원이다 몇 년 전부터 나에게 마을정원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마을정원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어떤 순서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던 시절이 생각난다. 마을정원은 마을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에 따라 각자 다른 방법과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우리 사회는 매우 복잡다단하고 사람들의 경험치도 저마다 다르며, 사회적 수요도 지역마다 다르다. 때문에 아직 더 많은 경험을 필요로 한다는 생각이다. 마을정원을 한마디로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무엇을 마을정원이라고 정리해야 할까? 마을 자체가 정원이 될 수 있고 또 그 모두가 정원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마을정원을 만들기 시작했다. 몇 송이의 꽃이 마을정원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이 품고 있는 인문학적, 물리적 환경을 포함한 모든 요소가 정원의 요소가 될 수 있었다. 그것이 마을 사람들의 생활이고 표현이 되기 때문이다. 함께 만들어가는 마을정원 지난주에는 지난해 정원을 만든 마을에서 드디어 장미꽃이 피기 시작했다며 꼭 놀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약속을 한 것은 아니지만 꽃이 피면 다시 만나야겠다는 이야기를 나눈 터다. 나는 그 마을과 긴 인연을 준비하고 있는지 모른다. 꽃은 내년에도 또 필 것이기에. 마을정원은 짧은 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변해가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에 맞추어서 함께 변화해 가고 있기 때문에 완성이라고 하기보다는 계속해서 가꾸어져 가야하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마을정원은 행정안전부, 서울시, 경기도, 산림청 등에서 마을정원만들기, 공동체정원만들기 등을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조성되고 있다. 주체의 다양성만큼 지역적 특성을 잘 발전·성장시키는 사업으로 지속되기를 기대한다. 몇 번의 글을 통해서 마을이 정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경험담을 근거로 마을정원을 기록하려고 한다. 마을 사람들로 시작해 마을정원을 찾아가는 방법, 역할 그리고 마을정원의 식물과 디자인, 공간적 요소까지 다루려고 한다. 이어서 마을정원사와 마을정원축제까지 기록하고 나면 마을정원에 대한 큰 줄거리를 정리할 예정이다. 앞으로 원고를 준비하고 쓰는 시간은 나에게 마을정원을 여행하는 시간이 될 것 같다. 다음 원고를 준비하기까지 다시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그러면서 뼈대로 준비한 원고에 살을 붙이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마을정원사 당신의 이야기도 듣고 싶어진다. 언제든지 이메일을 통해 이야기를 보내주길 바란다. 그 이야기를 사례로 더 재미있고 읽을거리가 있는 원고를 준비하도록 하겠다. 다시 활력 있고 생명력이 넘치는 고향 같은 마을을 만들어 다음 세대로 이어지게 하고 싶다는 꿈을 꾼다. 그 일에 여러분이 정원사의 친구로서 함께 해 주기를 바란다.
- 이성현 푸르네 대표 정원사[email protected]
- 2018-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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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공원녹지는 정말 필요하고 좋은 것인데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자꾸만 밀려난다. 4차 혁명과 도시재생의 시대, 공원 조성의 필요성과 근거 비전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하며, 도시재생형 스마트시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공원녹지가 도시열섬대책에서 핵심적 요소로 다루어져야 한다. 도시개발을 성장이라 지칭하며 행정 중심의 도시계획에 가치를 두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공간과 문화를 주민과 함께 해석하고 지역의 발전으로 연계하여 도시를 활성화하자는 것이 도시재생이라면, 첨단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해 도시의 공공기능을 네트워크한 미래형 첨단도시를 스마트도시라 하겠다. 전혀 다른 감성으로 다가오는 두 정책사업이지만 최근 발표된 도시재생 로드맵에서는 주민들 참여를 통해 도출한 도시문제를 체감형 스마트 기술을 활용하여 해결하는 ‘스마트 시티형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매년 5곳 이상 지정하여 추진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유비쿼터스 도시(U-city)에서 진화한 스마트 도시의 발생 배경을 살펴보면 도시재생 +스마트시티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에너지와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이다. 유럽연합(EU)은 2008년 이래 ‘에너지 및 기후변화 패키지’를 채택하고 2020년까지 유럽연합 에너지 및 기후정책 목표를 설정하여 1990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 최소 20% 감축, 에너지 효율성 20% 향상, 총에너지 소비 중 신재생에너지 사용 비중 20%라는 20-20-20 목표를 설정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은 구체적인 에너지 계획을 수립하여 실천하고 있으며, 심각한 도시문제에 대해 대응하고 있다. UN의 인구통계에 따르면 1980년까지는 세계인구의 약 60%가 지방에 거주했으나, 이후 인구감소에도 불구하고 도시인구는 계속 증가하여 2010년 도시인구 36억, 지방인구 약 34억 인으로 역전됐으며, 2050년에는 전체 인구의 67%에 상당하는 63억 인이 도시인구로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도시인구 증가는 단순히 거주공간 부족뿐만 아니라 상하수도, 교통, 의료, 교육, 치안 등 공적 생활서비스 수요를 증대시킬 수밖에 없다.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스마트한 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스마트 시티를 지지하는 산업이 제4차 산업시대의 기간산업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가 매우 크다. 환경 에너지 분야를 중심으로 도시의 스마트화와 관련된 세계시장은 2011년부터 2030년까지 누계 약 4경에 이른다고 전망(日経BP그린테크연구소, 2011)되고 있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스마트 시티 관련 산업이 새로운 기간산업이 될 것이라는 전망 하에 관련 산업 육성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지구온난화 및 에너지 문제, 도시로의 인구집중을 극복하기 위한 해결방안 그리고 4차산업혁명을 대비한 기간산업 성장에 대한 기대로 스마트 시티는 주요 프로젝트만으로도 이미 전 세계 2000개소 이상에서 400여 개가 진행 중이다. 각 프로젝트의 비전과 사업내용은 다르지만 실제 움직임을 드려다 보면 ▲새로운 지역에 신도시를 건설하는 ‘신도시형’과 ▲기존도시를 개조하는 ‘재생형’으로 구분된다. 실제 인구와 특히 노동인구 감소 등에 따른 축소도시 개념과 젠트리피케이션 등의 사회문제 최소화 등 포용과 배려가 강조되는 현시점을 감안한다면 도시재생정책과의 접목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라 할 수 있다. 온도 차이는 분명히 있지만 분명한 것은 구도심에서 연계사업을 융복합하여 사람이 살기 좋은 일자리가 창출되는 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살기 좋은 도시에 꼭 필요한 공원과 녹지는 재생사업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국민들 모두가 좋아하지만 우선순위에서는 밀리고, 정책사업에서는 누락되는 공원녹지가 정책사업화되기 위해 어떤 접근이 필요할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스마트도시의 배경인 기후변화와 에너지, 도시문제, 신산업과 일자리에 집중해 보면, 도시 열섬현상에 최적화된 공원녹지 조성과 신기술 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공원이 도시생태계와 국민여가생활을 위한 기반이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기후변화 적응력을 높이고 도시열섬대책에 가장 핵심적인 요소임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이를 적극 홍보해야 한다. 이와 함께 우리의 핵심영역을 공원과 함께 공개공지를 비롯한 가로로 확장하자. 일본 동경도의 경우 스마트 시티 구축을 위한 제2과제가 열섬대책이며 그 중 핵심과제가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가로(띠녹지, 보수성 포장 정비 등)와 공원 확충이다. 일본 정부의 열섬현상 해소대책을 위한 대강(ヒートアイランド現象の解消対策に係る大綱)에서도 주요 5개 과제 중 지표면 피복개선, 물과 녹지의 네트워크 구축을 포함한 도시공간 개선이 포함되어 있다. 2018년 CES는 가전·로봇·자동차·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 등 전 분야 기술을 통해 실시간으로 자연재해 가능성을 알려주고 기후를 측정해주는 기술을 등장시켜 스마트시티의 미래를 보여 준 바 있다. 이제 조경분야도 기존의 LED 공원 조명, 조경수 관리 등에서 진일보하여 정보의 수집과 전달 그리고 실현과 관리까지 일체화되는 기술로 발전된다면 지금의 조경수 관리 등에서 머물지 않고 높은 조성비는 물론 고관리 비용으로 인하여 공급이 어려웠던 수목원, 동물원 등의 운용이 용이해질 것이며 여름과 겨울이 길어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낮은 공원 이용률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들은 미세먼지 농도 등 실외 상태, 본인의 컨디션, 욕구에 최적화된 장소, 활동을 선택하여 즐길 수 있게 된다면 공원의 수요와 만족도는 증가할 것이며, 국민의 행복지수 증가는 자연스럽게 미집행도시공원 해결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 김현 교수[email protected]
- 2018-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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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아무 것도 없어도 잘 놀아요(?) 몇 개월에 걸쳐 발전시킨 놀이터 디자인을 주민들에게 선보이는 주민 설명회 자리. 이렇게 공간을 구분하는 게 타당한지, 이러한 시설이 적절한지, 크기는 좀 더 키우는 게 좋을지 혹은 줄이는 게 좋을지, 인근 거주민에게 피해가 갈 여지는 없을지 논의가 뜨거워질 즈음, 저 쪽에서 한 분이 손을 드신다. 어떤 놀이터를 지으면 좋을지 찬찬히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간의 워크숍에는 나오지 않던 분이다. 발언할 기회를 드리니 결연하게 말씀하신다. “아이들은 아무 것도 없는 골목길이나 공터에서도 잘 놉니다.” 세세하게 파고들던 논의는 멈칫한다. 이유 없이 열정적으로 대화를 나누었던 건 아닌가 하는 무안함도 찾아온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주장을 뒷받침하는 경험이 뒤 따른다. “우리 어릴 때는 골목길에 뭐가 있었겠어요? 미끄럼틀도, 그네도, 아무 것도 없었지만 신나게 놀았습니다.” 경우에 따라서 추억의 공간은 산이나 들판이 된다. “산이나 들판에 아무 것도 없었지만 신나게 놀았습니다”. 놀이터를 논하는 자리에서 흔한 일이다. 과도한 시설은 피하자라는 발언의 의도는 십분 이해하지만 놀이터를 디자인하는 입장에서는 당혹스럽다. 분명 ‘우리 어릴 때 놀던 골목이나 산과 들판’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조합놀이대는 물론이고 미끄럼대도 그네도 없었다. 나의 경험도 다르지 않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금호동, 옥수동 골목길에는 정말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도 신났었다. 넒은 길에서는 바닥에 분필도 아닌 석필로 줄을 긋고 오징어 놀이를 했고 골목 한 쪽에서는 공기놀이를 했다. 그냥 빈 바닥만 있으면 되었다. 그런데 과연 아무 것도 없었을까? 물리적으로는 아무 시설도 없었지만, 우리는 놀지 않을 수 없었다. 포장되지 않은 골목길의 흙, 적치된 생활용품은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응용력을 이끌어내었다. 산과 들에는 쫓아다니기만 해도 몇 시간을 재밌게 보낼 수 있는 나비와 곤충도 많았고. 소위 말해서 놀이를 유도하는 환경의 ‘affordance(행동 유도성)’가 높았다. 그리고 친구. 친구만 있으면 놀이는 쉽게 시작된다. 별 이유 없이 한 명이 뛰기 시작하고 다른 아이가 따라 뛰면 바로 잡기 놀이가 된다. 그냥 뛰기 심심하면 술래잡기를 하고, 그것도 싱거우면 ’무궁화꽃이 피웠습니다‘를 한다. 또 어른이 되어 소꿉놀이를 했다. 나는 엄마 너는 아기, 나는 선생님 너희는 학생들, 너는 의사 선생님 나는 환자. 무엇보다 그 곳에는 엄청난 시간이 있었다. 지루할 정도였다. 남아도는 시간은 여러 꿍꿍이짓을 하게 했고, 놀이의 난이도를 높였다. 공기놀이는 수천가지 방식으로 응용되었고, 서커스 하듯이 고난이도의 고무줄놀이를 할 수 있었다. 매일 매일 공기놀이와 고무줄놀이를 했어도 즐거운 이유다. 어제의 공기놀이와 오늘의 공기놀이는 다르니까. 또 긴긴 시간 속에서 상상력도 끝을 모르고 확장되었다. 친구들과의 소꿉놀이는 회를 거듭하면서 단막극에서 주말극이 되었다가 일일 드라마가 되었다. 스토리는 강화되었고 역할은 분명해졌다. 당연히 혼자 하는 인형놀이도 시간 속에서 넓어지고 깊어졌다. 오늘의 인형놀이는 어제의 놀이를 디딤돌 삼아 발전한다. <몬스터(Monsters)>의 작가 이재호는 어린 시절 내성적이고 사교성이 부족해서 혼자 그 많은 시간을 장난감이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만화영화, 잡지 등의 이미지와 보냈다. 어린 시절 친구가 되었던 이미지는 성장 후에도 영향력을 행사해 작품의 소재가 되었고. 어린 시절의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 그의 작업이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어릴 때 놀던 골목이나 산과 들판’에는조합놀이대는 물론이고 미끄럼대도 그네도 없었다. 그런데 과연 아무 것도 없었을까? 포장되지 않은 골목길의 흙, 적치된 생활용품은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산과 들에는 몇 시간을 재밌게 보낼 수 있는 나비와 곤충도 많았다. ‘지금 여기’의 놀이터 톺아보기 ‘지금 여기’에는 미끄럼, 시소는 있지만 놀이를 가능하게 하는 많은 것이 부족하다. 깔끔하게 포장되고 정돈된 길은 아이들의 놀이 본능을 그리 자극하지 않는다. 혹여 놀고 싶은 마음이 일더라도 마음 놓고 놀 수 없다. 쌩쌩 달리는 자동차와 오토바이 때문이다. 언제 어떻게 어떤 사고를 당할지 알 수 없으니까. 친구도 많지 않다. 친구를 만나리라는 기대를 품고 놀이터에 나가지만 함께 놀 친구가 없는 경우가 많다. 친구들이 올 때까지 혼자 미끄럼틀을 타거나 그네를 타며 시간을 보내다 마음 맞는 친구를 만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쓸쓸히 돌아서야 한다. 그러고 보면 그네나 미끄럼틀은 혼자 놀이터에 있어도 되는 빌미를 준다. 그 마저도 없다면 얼마나 민망한 일인가? 그리고 시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학교에서 학원으로 가는 길에 잠깐, 학원과 학원 사이에 잠깐 놀이터에 들러 후루룩 몇 개 시설을 타고는 다른 곳으로 급히 향해야 한다. 놀이를 응용하거나 고난이도의 놀이가 주는 즐거움을 위해 숙련도를 높일 여유가 없다. ‘월화수목금토일’을 부르며 단순하게 줄을 넘는 고무줄놀이에서 ‘금강산 찾아가자..…’를 부르며 고무줄을 넘는 고난이도의 고무줄놀이까지. 그 사이에는 엄청난 시간이 있지 않던가. 이렇게 당신의 유년 시절과 지금 아이들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아이들은 아무 것도 없는 공터에서도 잘 논다”라는 말은 ‘그 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리다’. 우리 모두의 유년시절은 아름답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이다. ‘지금 여기’에 적용하는 건 그리 올바른 태도는 아니다. 어릴 적 가졌던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열린 태도로 ‘나’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의 아이들의 놀이를, 놀이터를, 놀이 환경을 톱아 봐야 한다. 무형의 놀이터를 가능하게 했던 많은 조건이 지금에는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되뇌면서. “아이들은 아무 것도 없는 공터에서도 잘 논다”라는 말은 ‘그 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리다’. 우리 모두의 유년시절은 아름답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이다.
- 김연금 조경작업소 울 소장[email protected]
- 2018-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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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국토교통부가 도시재생 뉴딜정책 지원사업 활성화 세미나를 권역별로 나누어 열고 있는데, 분야별 융복합형 통합지원센터 운영방향을 주제로 발표하느라 요 며칠 동안 대구의 대구경북디자인센터, 광명KTX역사 회의실,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를 연이어 찾았다. 행사장마다 200여 명 안팎의 도시재생 관련 행정공무원, 중간지원조직 직원, 활동가들이 모여들었다. 특히, 사회적경제 중간지원조직과 주체들이 매우 많이 참여하고 있는데, 환경조경인을 만나지 못해 아쉽다. 모두가 알다시피 문재인 정부는 도시재생 뉴딜을 주요 국정과제의 하나로 펼치고 있다. 지난 해 4월 대통령선거공약의 하나로 발표한 뒤 많은 관계기관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서 9월에 2018년 도시재생 뉴딜사업 공모 계획을 발표했으며, 12월에 68개의 사업을 지원 대상으로 최종 선정 발표한 바 있다. 그리고 2019년의 공모사업안을 준비하면서 행정공무원, 중간지원조직, 활동가 등의 다양한 의견을 모으고 있는 중이다. 아마 이번 4월에는 공모계획을 발표하고 가을이면 100여 개의 사업을 지원 대상으로 선정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조경인의 관심은 여전히 탐색 단계로 보여진다. 필자는 대한주택공사에서 일하던 2005년에 노무현 정부의 살고싶은도시만들기 기획에 참여했고 그 뒤 도시만들기지원센터를 운영했으며, 뒤이은 이명박 정부에서도 도시활력증진지역개발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공모사업을 주관하고 지원한 바 있다. 이 후 박근혜 정부에서는 도시재생 지원사업으로 발전했다가, 현재는 도시재생 뉴딜사업이라는 이름으로 확대 개편됐으며 중간지원조직에서도시재생사업을 집행하고 있다. 조경가로서도 살고싶은도시만들기나 도시활력증진지역개발사업 등의 도시재생사업이 환경조경분야와 다르지 않기 때문에 환경조경계에 해당 정책의 동향을 설명하고 주체적 참여를 촉구해 왔지만 환경조경계 차원의 대응에는 아쉬움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의 인구는 1950년대부터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1960년 2500만 명, 1970년 3220만 명, 1980년 3810만 명, 1990년 4290만 명, 2000년 4700만 명, 2010년 4960만 명으로 연 평균 50만 명씩 인구가 늘어났고, 인구가 늘면서 도시화와 택지개발과 주택의 건설이 일상화됐으며, 환경조경산업의 제도화와 확장 그리고 대형화도 이러한 인구증가와 함께 진행됐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태어나는 아기는 매년 감소하는 반면 인구 구조가 노령화되었다. 2030년 약 5290만 명을 정점으로 우리나라의 총인구는 급감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2040년 5220만 명, 2050년 4940만 명, 2060년 4520만 명, 2070년 4070만 명, 2080년 3630만 명, 2090년 3210만 명, 2100년 2800만 명으로 추계되고 있다. 1년 신생아수는 1957년부터 1971년까지 15년 동안 100만 명을 넘어섰지만 이후 매년 1만 명이상씩 감소하면서 급기야 지난해에는 30만 명대까지 줄어들어 총인구 감소를 이끌고 있다. 수도권의 인구 집중과 더불어 수도권과 충청권 그리고 광역시를 제외하면 전국의 모든 도시 인구가 줄어들고 있으며, 특히 지방중소도시와 농촌도시는 도시 쇠퇴 현상마저 보이고 있다. 2000년대 이후의 국가균형발전정책과 도시재생정책의 제도화 그리고 도시재생사업에 대한 정부 지원 강화는 이러한 인구 감소에 따른 지방도시의 쇠퇴 현상을 개선하려는 정책 흐름임으로 이해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성장 과정은 광복에 이어진 6․25전쟁에서 살아남은 부모세대의 출산 흐름과 깊게 연결돼 있다. 일반적인 50대와 마찬가지로 필자도 1951~1966년에 태어난 일곱 형제자매가 있다. 1차 베이비붐(1955년~1963년)세대 715만 명(연 평균 80만 명)이 결혼하고 취업하던 시기인 1990년대를 전후로 부동산 시장을 발전시켰고, 50대에 들선 2010년을 전후로 문화와 서비스 산업을 이끌고 있으며, 현역에서 은퇴하고 건강을 돌보아야 할 2025년을 앞두고 건강과 취미산업이 떠오르고 있다. 환경조경인들에게 익숙해진 택지개발사업과 신도시사업과 공동주택건설 사업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대형 조경공사 그리고 경관과 디자인 중시 흐름은 이제 다시 오기 어려운 과거의 풍경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 대신에 환경조경인들이 제대로 눈길을 주지 않고 있는 마을만들기와 주민참여예산제를 활용한 주민공모사업 그리고 도시재생사업이 쇠퇴하는 지방도시를 가꾸어가는 모습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단일형 대규모 대형공사에 비해 품이 많이 들고 복잡한 주민참여의 협치형 산업이 환경조경인들의 자존심과 전문성을 그리고 사업성을 떨어트린다고 생각하겠지만 앞서 설명한 우리나라 인구사회 변화의 흐름에 비추어 보면 지극히 정상적인 패러다임의 변화이다.이에 2005년 살고싶은도시만들기에서부터 도시재생 뉴딜에 이르기까지의 정책사업을 발굴·기획·운영·지원하고 2018년 현재 집행하고 있는 경험을 바탕으로 몇 가지 제언하고자 한다. 하나, 조경산업을 바라보는 환경조경인의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 과거의 틀에 안주하기보다 다가오는 미래사회의 틀로 조경산업을 다시 짜야 한다. 특히, 미래사회를 이끌어가 젊은 환경조경인들이 홀로보다 여럿이 함께, 비싼 것보다 싸면서도 주민이 좋아하는 것, 만드는 것보다 운영하는 것, 설계보다는 기획 등 낯선 작업에 투자하고 전문가 집단으로서의 힘을 모아가야 한다. 둘, 조경산업의 든든한 공적재원을 잘 살피고 행정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힘을 모아 대한환경조경단체총연합회 속에 환경조경 도시재생지원단(정책지원팀, 사업지원팀, 협치지원팀 등)을 꾸려 각각 중앙정부·지방정부, 지방정부·공기업·중간지원조직·주민조직, 중간지원조직·관련 학회·시민사회단체·주민조직을 지원해야 한다. 셋, 지방정부의 환경조경 행정주체와 도시재생 중간지원조직을 지역 환경조경네트워크가 앞장서서 지원해야 한다. 지자체의 도시재생 뉴딜 사업계획서 준비과정에서 장기미집행 도시공원 문제의 해소, 미세먼지 문제와 도시열섬현상 완화를 위한 공원녹지 확충, 빗물침투시설 강화, 옥상녹화·벽면녹화·녹화스크린과 텃밭 등 환경조경 세부사업을 적극적으로 제안해야 한다. 앞으로 도시쇠퇴와 도시소멸 현상이 더욱 뚜렷해질 것이다. 주민참여를 기반으로 한 협치형 소규모 다품종 산업의 틀로 조경산업이 변화되고, 그러한 틀에서 공원과 녹지가 만들어지고 관리되는 날이 올 것이다.
- 안상욱 이사장 [email protected]
- 2018-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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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이형주 기자] 환경에 대한 권리와 도시공원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지 않는 주거복지 정책은 ‘반쪽짜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주거복지 로드맵’에 따르면 주택공급 정책의 방향은 청년·신혼·고령가구에 지원을 집중하고 무주택 서민 등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주거복지 로드맵’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주택보급률은 2010년에 이미 100%를 넘긴 상황이다. 이에 따라 로드맵은 양적 공급보다는 공공성을 강화해 무주택 서민·실수요자들이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해 주거안정성을 확보하겠다는 방향을 세웠다. 이러한 계획에 따라 추진되는 주택공급 정책이 정작 쾌적한 주거환경의 질을 제공하는 도시공원 등의 환경적 측면은 간과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토부 관계자에 따르면 정부가 5년간 공급할 계획인 주택 100만호 중 75%는 LH가 사업을 맡게 된다. 하지만 LH의 주택공급 현황과 예산을 살펴보면 취약계층에게 제대로 된 ‘주거복지’를 제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임종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LH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 6월 기준, 1년 이상 빈 집으로 방치된 곳은 5417가구에 이른다. 이 중 3년 넘게 입주자를 구하지 못한 임대주택은 1380가구나 됐다. 서울 관악구에는 13년가량 방치된 곳도 있었다. 그 이유는 주거취약계층조차 입주를 꺼릴 만큼 거주여건이 열악하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이 있고 그곳에 들어갈 여건이 된다 해도 아무 곳에서나 살 수는 없다. 취약계층이라도 쾌적한 주거환경을 누릴 권리가 있다. 경제적 여건에서만 공공성을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도시공원에서도 공공성을 찾을 수 있다. 누구나 쾌적한 환경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제공하는 도시공원이 가진 공공성은 다른 가치에 비해 결코 작지 않다. 연구에 따르면 고령자와 저소득 집단의 도시공원 이용 빈도는 다른 집단에 비해 훨씬 높게 나타난다. 취약계층일수록 도시공원 환경에 대한 이용 욕구가 높고, 사회적 관계 회복을 위한 사회적 장소로서 도시공원에 대한 기대감도 높다. 특히 쇠퇴지역 거주민들은 삶의 질 향상을 위한 환경으로 도시공원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실제 환경 인프라는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실정이다(구나은, "쇠퇴지역 거주민의 도시공원 환경에 대한 의식과 요구", 석사학위논문, 2012).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가 올해 발주 예정인 공사‧용역 물량은 총 10조2000억 원 규모다. 지난 2월 발표한 금액보다 1조 원가량 늘었다. 운영계획 확정 과정에서 ‘주거복지 로드맵’ 등 정부정책을 반영하기 위해 청년주택, 신혼희망타운, 공공실버주택 등 수요자 맞춤형 주택공급을 확대하면서 건설사업 규모가 6조3000억 원에서 7조3000억 원으로 증가한 것이 그 이유다. 하지만 이 중 조경 공사·용역비는 약 5000억 원으로 전체 물량의 약 5%에 불과하며 종전과 차이도 없다. 도시공원에 대한 고려가 없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도시공원은 여러 가지 혜택을 통해 사람들의 복지 향상에 기여한다. 도시공원이 도시 열섬현상과 탄소를 저감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은 여러 연구를 통해 증명됐다. 도시공원은 야생동물 서식처 제공, 홍수 저감 및 도시 물 순환 관리에도 미치는 영향이 크다. 신체적 활동을 증진시켜 건강상의 문제를 예방할 수 있으며,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우울증과 불안감 해소에도 도움을 준다. 자연과의 접촉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도 완화시켜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시공원이 증가할수록 범죄율이 낮게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2010년 ‘Environmental Science & Technology’ 저널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5분간 공원, 숲 등을 돌아다니는 것만으로 자존감이 향상될 수 있다. 공원 주변에 사는 노인들의 사망률이 더 낮게 나타났다는 일본의 연구도 있다. 주거는 일정한 곳에 머물러 사는 것 또는 그 집을 말한다. 복지는 행복한 삶을 의미한다. 주거복지란 결국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주거 혜택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추진하는 주거복지 정책에는 ‘녹색’이 빠져 있다. 진정한 ‘주거복지’ 정책이라면 쾌적한 환경에서 거주할 수 있는 기회 또한 함께 제공해야 한다. 도시공원이 없는 주거복지 정책은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 이형주[email protected]
- 2018-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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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나창호 기자] 지난 1월 산림청이 나무 의사 자격 제도를 신설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의료계가 용어사용 문제를 제기하며 성명서를 발표했다. '의사' 용어의 무분별한 사용은의료분야의 공신력에 해악을 끼치기 때문에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의료계의 이런 움직임과 달리 조경계 일각에서는 도시숲과 자연마당을도시공원 안마당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환경부는 자연환경보전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으로 ‘도시공원’ 속 '자연마당'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산림청은 '도시공원'을 '도시숲' 대상지로 활용하는 방안이 논의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경계 일부에서는 도시공원 사업에서 조경기술자와 업체의 참여를 보장한다면 도시숲이든 자연마당이든 환영이라는 반응이다. 국비 지원의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시공원에 산림 및 환경복원 분야의 진입을 허용하는 것에 대해선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 조경건설업계에 미칠 파장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현재 조경공사업, 조경식재·시설물설치공사업을 합친 조경건설사업체는 8300여 개에 달한다. 사업규모과 취업자를 봐도 조경건설업은 조경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도시공원 사업으로 영업 활동을 하고 있다. 이에 도시공원 정책을 담당하는 국토부 녹색도시과는 자연환경보전법 하위법령 개정안에 대해 환경부에 반대의견을 전했다고 3월과 4월 두 차례에 걸쳐 말했다. 일부 조경단체도 반대의견서를 준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환경부와 산림청이 조경업계의 참여를 보장한다고 약속만 한다면 문제가 없다는 분위기도 있다. 그러나 조경업계의 참여 보장은 제도적 장치를 통해 명문화하지 않는 이상 반드시 지켜질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설령 법률에 의해 참여 보장이 명문화되더라도 환경부와 산림청이 도시공원에 상응하는 영역을 조경건설 분야에 개방하는 것이 공평하다. 문을 연다면 양쪽 모두가 드나들 수 있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조경계 내부적으론 정부 기관과 친밀하게 지내면서 반대 의견을 자제하자는 분위기이지만, 확장을 위한 전략적 반대는 필요하다"며 "생각의 다름을 인정하는 분위기 속에서 이것을 조율할 수 있는 통합적 리더십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의료계가 '의사'라는 용어의 무분별한 사용에 발끈했던 원인은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과연 조경계는 '도시공원'에 얼마만큼의 자부심과 애착을 가졌는지 궁금하다. 도시공원이 도시숲과 자연마당으로 불려도 정말 괜찮은 것일까?
- 나창호[email protected]
- 2018-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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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아프리카의 속담에서 유래했지만 마을공동체 활동이나 교육에서 자주 인용하는 구절 중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표현이 있다. 이때 마을의 의미는 놀이터처럼 아이들의 상상력과 모험심을 키워 줄 수 있는 그런 공간환경을 포함한다. 아이들이 밝고 건강하게 자라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그 아이의 성장을 돕는 사회적 공간, 그래서 아이들의 인생을 보조하는 공간이 필요한데, 그것이 놀이터이다. 우리가 놀이터를 마을과 연계해서 바라보는 것은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다양한 인생을 보조하는 공간에 구분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놀이터가 마을에 열려 있고, 아이들의 놀이의 상상이 놀이터에서 마을의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아야 아이들에게 마을이 온통 놀이터가 될 수도 있고, 또 놀이터가 아이들이 생각하는 커다란 세상 모두가 될 수 있다. 독일의 놀이터 디자이너 귄터 벨치히의 ‘놀이터 생각‘의 맨 앞 장에 보면 “어린이 놀이터를 더 인간적으로 만들고자 애쓰는 모든 이들에게 바칩니다”라는 서문이 쓰여 있다. 어린이 놀이터가 더 인간적이란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단순한 참여와 일방적인 배려를 넘어서서 놀이터를 꿈꾸고 만들고 이용하는 모든 과정에서 놀이의 주체인 어린이들이 중심에 설 때 인간의 공간은 실현될 수 있다. 놀이터는 ‘놀이’와 ‘터’로 구성되어 있고 놀이와 터는 놀이를 하는 아이들에 의해 연결된다. 놀이터가 놀이를 하는 터, 즉 노는 장소를 의미한다면 놀이를 담는 그릇으로서의 터를 디자인하는 일은 우선 놀이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놀이는 문화와 삶의 양식에 따라 다르고, 나이와 성별, 그리고 성격에 따라서도 다르다. ‘혼자 놀 때의 놀이’와 ‘함께 어울려 놀 때의 놀이’ 역시 다르다. 놀이는 자신의 능력을 실험하고 한계를 경험하여 향후 살아갈 삶의 지지대가 될 수 있는 도전정신을 키워줌과 동시에, 다른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노는 집단 놀이를 통해 리더십을 키우고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익히고 협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치에 대해 경험하게 한다. 우리는 이런 놀이터를 갖고 있는가? 우리 아이들은 이런 놀이터에서 맘껏 뛰어 노는가? 안타깝게도 우리가 이상적으로 그리는 이런 놀이터를 발견하기는커녕 시설 안전기준에 미달되어 용도 폐기된 채 방치된 놀이터들이 많다. 우리는 통상 놀이터를 놀 수 있는 기구가 있는 곳으로 인식한다. 즉 놀이터를 놀이시설물과 동일하게 여긴다. 그러다보니 놀이터가 놀이시설물에 의해 그 기능이 제한되고, 아이들의 놀이가 시설물의 기능에 의해 획일적으로 규정되는 한계를 갖는다. 놀이터가 놀이를 담는 터가 아니라 놀이시설물을 담는 터로 전락한 것이다. 아이들이 선호하는 미끄럼틀과 그네 등의 주요 놀이시설물은 기능이 매우 한정적이다. 또한 안전기준에 맞춘 주요 놀이시설물의 디자인의 폭 역시 매우 제한적이다. 그러다보니 전국 곳곳에 비슷한 놀이터가 마구잡이로 양산되었다. 옛 기억을 더듬어보자, 무엇이 우리의 어린 시절을 지배한 놀이였는지. 골목 하나만으로도 온갖 놀이가 가능하지 않았나? 그렇다. 골목이 놀이터였던 시절이 있었다. 골목에서 놀던 아이들에게 놀이는 자유를 의미했고 놀이 원정대처럼 몰려다니던 동네 개구쟁이들에게 온 마을이 그들의 세상이었다. 이런 골목의 경험을 지금의 놀이터에서 살릴 수 없을까? 그래서 놀이터를 좀 더 열린 시각으로 바라볼 수는 없을까? 놀이기구에 의해 아이들의 행위를 미리 규정하지 않고 사용자에 따라, 욕망에 따라, 그 날의 기분에 따라 놀이가 아이들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지려면 어디에서 출발해야할까? 놀이기구에 의존하지 않는 창의적 놀이공간을 출발점으로 디자인할 때 기존 놀이터가 갖는 경직성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놀이터를 조성할 때 아이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귀 기울여 듣고, 실제 아이들이 노는 걸 보면서 행동패턴이나 어울려 노는 방식 등을 관찰하고, 아이들이 원하는 놀이터 공간을 디자인 언어로 바꾸는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아이들이 만들어진 놀이터를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는 일이다.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는 유엔아동권리협약 제12조가 다음과 같이 정한 기본권을 지키는 것이기도 하다. “아동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결정할 때 의견을 말할 권리가 있습니다. 어른들은 아동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찍어내듯 천편일률적인 놀이터를 아이들이 진짜 원하는 놀이터로 바꿔 주기 위해서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절대 필요하다. 놀이터를 디자인하면서 아이들의 놀이를 관찰해보면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만으로 담을 수 없는 무한상상의 세상이 있음을 알게 된다. 놀이를 통해 아이들의 무한세상이 펼쳐지는 놀이터에서 관찰된 아이들의 유형은 무척 다양하다. 처음 본 아이들이 즉석에서 친해지는가 하면, 서로 특정한 놀이기구를 먼저 차지하려고 심각하게 다투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 스스로 규칙을 정하기도 하고, 기존의 놀이기구를 묶어서 훨씬 더 큰 놀이를 상상해 어울려 놀기도 한다. 이렇듯 다양한 관계와 경험이 쌓이는 곳이 놀이터이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다양한 관계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가능성은 놀이터 사업에 참여하는 전문가들이 아이들과 함께 하는 정도를 디자인의 전 과정을 통해 얼마나 열어 두느냐에 달려 있다. 공간을 통한 놀이의 순환구조를 만들고, 어린 아이와 엄마가 함께 놀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해주고, 영유아들이 커가면서 놀이의 발전단계를 경험할 수 있는 영역도 만들어주고, 놀이기구를 단순한 기능의 단계에서 사회적 놀이의 단계로 전환시키는 일은 아이들의 놀 권리를 확장시키는 작업이며 이 일은 디자이너의 상상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놀이터는 아이들의 놀 권리를 보장하는 공간을 만들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이 공간이 우리 것이다’라는 주인의식은 아이들과 함께 하지 않고서는 결코 생기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영국의 놀이정책을 담당하는 플레이 잉글랜드(Play England)에서 펴낸 놀이 활동가 사례 연구 보고서인 『사람이 놀이를 만든다(People Make Play)』는 제목만으로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하겠다. 아이들이 함께 한다는 것은 결국 좋은 놀이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좋은 놀이터는 아이들이 놀면서 완성시켜가는 놀이터이며, 아이들이 놀면서 여기는 ‘내 놀이터’라고 생각하는 그런 놀이터일 것이다. 모두가 내 놀이터라고 생각할 때 놀이터는 세상을 향해 무한히 커지는 온 마을이 될 수 있다.
- 이영범 교수
- 2018-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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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나창호 기자] '정원과 공원, 어느 것이 더 생태적일까요?' 전문가들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왠 갑자기 선문답이냐'며 눈을 동그랗게 뜨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울산에 환경단체가 ‘정원’이 더 인공적이라고 해서요“라 말하니, ‘이건 또 무슨 소리?’냐고 묻는다. 울산환경운동연합이 지난달 22일 울산시의 태화강 정원박람회와 국가정원 추진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에서 “정원이 공원보다 훨씬 더 많은 인공적인 시설이 전시·배치된다”고 주장했다. 근거는 정원의 법적 정의다. 법에서는 정원을 ‘식물, 토석, 시설물 등을 전시·배치하거나 재배·가꾸기 등을 통하여 지속적인 관리가 이루어지는 공간’이라고 말한다. 인공물이 본질인 정원이 공원보다 훨씬 더 많은 인공적인 시설물이 배치되기 때문에 생태자원의 안정성을 훼손한다는 논리다. 전문가들은 울산환경운동 주장이 ‘당연히’ 잘못됐다고 했다. 대상지마다 조성할 수 있는 정원 성격도 각양각색인데 흑과 백처럼 정원의 성격을 인공과 생태로 나누려는 접근 방식이 상식적으로 맞느냐고 했다. 굳이 꼬집으려면 방법을 문제 삼아야지 장르(정원)에 주홍글씨를 씌우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박상길 가천대학교 조경식물생태연구실 연구원은 “정원의 법적 정의에서 ‘토석’은 사실상 자연지형물을 말하는데, 환경단체는 토석의 의미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고 단순히 인공물로만 인식하고 있다”고 했다. ‘지구는 커다란 정원이다’란 질 끌레망의 말을 굳이 빌려오지 않아도 정원은 다양한 유형으로 생활주변 곳곳에서 숨을 쉰다. 이러한 유형 가운데 생태적 환경만을 특정하더라도 나비와 벌을 불러오는 비오톱 정원이 있다. 종 다양성을 지키고 야생 동·식물 피난처를 위한 생태정원 연구와 관련 사례도 많다. 단순히 인공시설로 치부하기엔 정원은 넓고 깊다. 하지만 이런 오해의 책임을 환경단체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 정원분야 스스로가 자초한 자업자득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한 전문가는 “지금까지 정원박람회 등 대중적으로 알려진 정원 다수가 조형적 시설에 집중해 오지 않았느냐”며 “다양한 스펙트럼을 펼칠 판도 부족했다”고 꼬집었다. ‘한국형 정원에서는 담장과 누각, 인공연못은 필수’라는 울산환경운동연합의 글에서도 정원에 대한 인식이 그대로 묻어나온다. 울산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정원에 갖가지 이름을 붙일 수 있지만 정원의 본질적 개념과 생태하천을 지향하는 태화강의 정체성과는 배치된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상상가능한 정원이라면 한국정원이 빠질 수 없을 것이고, 누각, 담장이 들어갈 텐데 그것이 하천구역에 설치하는 것이 맞느냐”고 반문했다. 전문가들은 환경단체의 주장이 일리는 있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태화강’만의 특징을 살릴 새로운 정원박람회를 만들 기회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 연구원은 “단순히 인공적인 손길을 배척하는 것이 생태적이라고 하면 ‘그건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다만 하천변은 수질정화를 하는 곳이기 때문에 물을 정화할 수 있고, 침수돼도 살 수 있는 식물 선정이 필요할 것이다. 하천 범람에 대비해 정원과 대상지에 저류지를 마련하면 오히려 강의 범람을 억제할 수 있다”며 "인위적인 손길이 하천환경에 나쁘다는 이분법적 사고는 잘못됐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논란이 정원에 대한 오해에서 출발한다면, 생태, 환경, 생명 등과의 결합으로 미래지향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봉찬 더가든 대표는 “지금까지의 정원과 정원박람회들이 청사진을 내놓지 못해왔기 때문에 시민들의 인식 폭도 좁아졌다”며 “사회적 요구도에 대응해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과 생명까지 정원 속에 어떻게 담아야 할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이번 논란은 비단 울산시만의 것이 아닌 듯 하다. 제주국가정원 기본계획안은 제주와 주변의 자연환경을 충실히 담아내지 못해 시민과 언론에 뭇매를 맞고 있다. 공공정원이 왜 필요하며, 무엇을 어떻게 담아야 할지 더 깊은 논의가 호출되는 지점 앞에 당도한 것이다. 이제 처음의 질문을 고쳐서 다시 던져본다. ‘우리가 정원으로 담아오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로
- 나창호[email protected]
- 2018-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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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처음 의뢰받은 미래포럼의 원고를 뭘 쓸까 고민하다가 우리 조경계의 미래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았다. 기술적인 측면, 교육적인 측면, 제도·법률적 측면, 홍보의 측면 등 다양하겠지만, 가장 선행해야 할 것 중에 하나가 연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맥락에서 작은 생각들을 풀어보았다.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에 공자 선생은 일생을 회고하면서 자신의 학문 수양의 발전 과정에 대해 “40세가 되어서는 미혹하지 않았고(四十而不惑)”라는 말을 남겼다. 그래서 흔히 40대를 불혹의 시기라고 한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로 짧은 글을 시작하는 것은 현대 조경의 나이도 대략 40년이 넘었기 때문이다. 한국조경학회가 1972년에 설립됐고, 조경학과의 첫 학번이 73학번이다. 참고로 필자는 74년생이다. 나이 불혹의 시기를 지나고 있으니, 조경이나 필자나 여러 유혹에 흔들리지 않아야 할 때이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기 위해서는 나름 굳은 철학과 방향이 확고해야 하리라. 공자께서도 15세는 지우학(志于學)으로 학문에 뜻을 둔 시기다고 했고(吾十有五而志于學), 서른 살 때는 이립(而立)으로 학문의 기초를 확립하고 마음을 확고히 하여 뜻을 세우는 나이라 하였다(三十而立). 곧, 불혹을 위해서는 지학과 이립의 단계를 거쳐야 했으리라. 우리 조경이나 필자의 나이가 40을 넘은 상태인데, 지학과 이립은 잘 된 것인지 필자로선 가늠하기 어렵다. 한편, 필자가 지난 해 말에 읽었던 책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유시민 작가의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이제 나이 마흔의 중반을 맞으면서 여러 가지 고민이 많았던 필자로선 더욱 기억에 남는 책이었다. 유시민 작가가 제시하는 어떻게 살 것인가의 핵심은 “일하고 놀고 사랑하고 연대하라”로 압축된다. 사족을 붙이면 길가메쉬(기원전 2천 6백 년 경 인류 최초의 도시라고 불렸던 우루크를 다스렸던 실존인물)의 서사시에서도 유사한 문구가 나온다(EBS 특별기획 통찰 제작팀, 2017, 통찰). “인생의 처음과 끝은 정해져 있으니 의미있는 일을 하고 놀고 사랑을 나누는 것이 인생의 정답이다.” 유시민 작가는 여기에 더해서 '연대'라는 키워드를 더한 것이다. 물론 유시민 작가가 길가메쉬 서사시를 인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는 연대를 “공감을 바탕으로 사회적 공동선을 이루어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필자도 이 글에서 언급하고자 하는 핵심은 연대이다. 유 작가처럼 연대를 정의할 때 사용한 ‘공동선’이라는 거창한 것은 아니더라도 조경이라는 한 분야 내에서의 연대를 꿈꾼다. 특정 집단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연합이 아니라 범조경계의 전반적인 발전을 위한 연대였으면 한다. 범조경 분야 내부에서의 연대, 그리고 외부 유관 단체나 전혀 다른 새로운 분야(예를 들어, 철학 등)와의 연대가 필요하다. 그 동안의 여러 노력으로 어느 정도 체계는 갖추어져 있다. 보완할 것도 있지만, 더 긴밀한 유대가 필요하다고 본다. 원래 조경의 한 분야로 여겼던 생태복원은 새로운 업역으로 정착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 정착이라는 노력이 한쪽으로 보면 독립이라고도 할 수 있고, 다른 한쪽으로 보면 큰 범주 안에서 함께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제각각의 속사정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자연환경복원 즉, 생태복원협회와 한국조경사회가 결별한지 10년이 훌쩍 넘어버렸다.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은 분업화, 전문화에서 보면 나쁜 것은 아닐 것이지만, 계속 연대하지 못하는 듯한 느낌은 지울 수 없다. 다시 두 단체를 합칠 것도 아니겠고, 이미 연대를 위한 총연합회 성격의 단체도 있지만 삐끗거리는 소리도 들려오고, 개별적인 단체들마다 제 목소리를 내기에 바쁘기도 하는 듯하다. 한편, 외부 유관 단체와의 연대, 새로운 분야와의 연대, 미개척 분야로의 영역도 확장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련된 것은 너무나도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토목이 생태학을 만난 지 오래고, 인문학과 자연학의 통섭을 강조한 지도 오래됐다. 건축과 예술과는 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럼 조경은 다른 분야들과 어떻게 연대해 나갈 것인가? 공자는 50세를 지천명(五十而知天命)이라 했다. 하늘의 뜻을 알게 되는 나이였으니, 우리 조경이 어떤 사명으로 이 세상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조경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다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다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수단이 나무를 비롯한 자연 생명 소재를 많이 이용하고, 타 분야에서는 할 수 없는 다채로운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본다. 더 친환경적인 공간, 인간의 편의와 영감을 제공할 수 있는 공간들을 만들어 내는 것. 조경이라는 학문에 대한 하늘의 뜻은 아닐런지 새삼 되새겨보았다. 미래학자 브렌다 쿠퍼(Brenda Cooper)는 2100년이 되면 인간은 자연환경의 관리자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후 변화 등으로 지구를 야생의 공간으로 남겨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인류는 글로벌 가든으로서의 자연을 관리하는 법을 배울 것이라는 의미이다. 시간이 갈수록 환경조경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될 것이다. 기후변화가 이슈가 된 것은 오래된 이야기이고, 최근 우리는 미세먼지, 초미세먼지와도 싸워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들 중에 조경의 역할을 매우 중요하다. 나무·식물을 활용한 방법들은 이미 검증되고 있는 상태이다. 특히, 실내공간에서는 더욱 더 그러하다. 실내 공간의 경우에는 국립원예특작과학원에서 다양한 연구를 통해서 실내 정원 식물이 상당량의 미세먼지를 흡수해 제거한다고 발표했다. 조경이라는 학문이 지천명을 알기까지 우리 분야 내부와 외연의 확장을 위한 진정한 연대나 협업은 어떤 길들이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분야의 리더들이 큰 그릇의 성격으로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조동길 대표[email protected]
- 2018-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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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2018년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국회 본회의를 통해 의결된 19조 원으로 2017년 대비 3조1000억 원이 삭감되었다. 국가재정 운용계획안에 따르면 2021년에는 연 7.5% 감축된 16조 원대로 조정이 예상된다. 향후 건설업과 연계된 조경산업에 대한 여파와 더불어 전 산업영역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이해와 대응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다위니즘 매년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최되는 세계경제포럼(WEF)의 2016년 주제는 “4차 산업혁명의 이해(Mastering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로 많은 이슈를 남겼다. 특히, 미국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와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이 발간한 “일자리의 미래(The Future of Jobs)” 보고서는 향후 미래사회의 급격한 노동시장변화를 예견하였다. 보고서는 전 세계 65%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주요 15개국의 9개 산업분야 내에서 최대 710만 개가 사라지고, 200만 개가 창출되어 결과적으로 약 510만 개의 단순 노동력을 요구하는 일자리가 구조조정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리고, 전 산업분야에서 급격한 발전에 따른 직업군별 기술 요구조건 또한 변화하여 근로자가 습득한 기존 기술수명이 단축되고, 오히려 전략적 전문 직군에 대한 인재선발 경쟁은 심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2012년 미국 3대 경제잡지에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기업가”로 선정된 세일즈포스의 마크 베니오프(Marc Benioff)는 디지털 다위니즘(Digital Darwinism)으로 정의하고 있다. “디지털 적자생존시대에서 속도는 곧 생존을 의미한다”고 역설하고, 기업과 개인 모두에게 디지털 고도화에 적응할 것을 조언하고 있다. 공유경제와 사물인터넷 지속적인 SOC예산 축소를 담고 있는 국가재정 운용계획안에 따르면 대표적인 실물경제형 산업구조를 지닌 조경산업의 조정국면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여진다. 이와 달리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경제성장 둔화, 1인가구 증가, 가속되는 노령화 등의 사회변화에 따라 자원공유의 새로운 수익모델을 제공하는 공유경제(Sharing Economy)가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다. 현재 공유경제규모를 공식적으로 집계한 자료는 없으나,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2014)에서 2025년 세계 공유경제 기업 수익을 2013년 대비 22배 증가한 3350억 달러로 추산하고 있다. 공유경제 플랫폼의 확산은 ICT 기술에 의한 효율적 거래비용으로 수요자에게는 경제성, 편의성, 선택 유연성 등이 제공되고, 공급자에게는 서비스 진입장벽을 완화시킴으로써 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 기술적·경제적 관점의 고찰이 요구된다. 우선, 기술적 관점에서 센싱, 스마트 디바이스, 네트워크와 서비스 인터페이스로 구현되는 사물인터넷(IoT)의 발전을 들 수 있다. 사물인터넷은 1999년 프록터앤갬블(P&G) 브랜드 매니저였던 케빈 애슈턴(Kevin Ashton)에 의해 제안된 개념인데, RFID를 모든 사물에 부탁하여 상호 소통할 수 있는 기술적 방안을 구상한 것이었다. 주로 숙박, 차량, 금융, 공간, 재능 등 다양한 유·무형 자산을 온라인 상에서 거래하고, 오프라인 상에서 서비스하는 공유경제체제에서 사물인터넷은 현실과 가상공간을 상호연계하는 새로운 개념의 인프라 기술로 이해할 수 있다. 케즘 극복을 위한 산업적 방안 경제·산업변화에 따른 경제적 관점의 고찰도 요구된다. 비즈니스 컨설턴트인 제프리 무어(Geoffrey Moore)는 저서 “캐즘 마케팅(Crossing the Chasm, 1991)”에서 어베렛 로저스(Everett M. Rogers, 1962)가 “혁신의 확산(Diffusion of Innovation)”을 통해 제시한 기술수용주기모델(Technology Adaption Life Cycle)을 마케팅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다. 그는 5가지 유형의 소비자집단의 기술수용경향을 바탕으로 첨단기업의 혁신적 기술서비스가 실용성을 중요시하는 주류 소비시장에서 발생하는 급격한 매출감소현상을 지질학적 용어인 캐즘(Chasm)으로 설명하였다. 여기서 기술적 선도계층인 혁신수용자(Innovator), 선각수용자(Early Adaptor) 등에게 기술측면에서 수용된 제품·서비스라도 특히 버즈마케팅(Buzz Marketing)을 담당하는 선각수용자에게 효용성을 제공하지 못할 경우에 주류시장 진입은 어려워지게 된다. 대부분의 혁신적 기술서비스 분야가 동일한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데 이중 주목할 만한 성공사례를 정밀농업에서 찾을 수 있다. 구글 출신의 데이빗 프리드버그(David Friedberg)는 The Climate Corporation(2006)을 설립하고, 기상정보가 사업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산업분야를 대상으로 일종의 보험서비스 출시하게 된다. 그러나, 큰 호응을 얻지 못했는데 날씨에 대한 높은 산업적 관심이 보험상품으로 직결되기에는 경제적 효용성이 부족한 것이었다. 고심 끝에 그는 작은 기후변화가 경제적으로 직결되는 산업을 발견하게 된다. 아이오와 주의 농업이었다. 그는 미국 농무부와 기상청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물별 수확량에 대한 세부지역별 자체 알고리즘을 개발하여 기상시나리오를 제공하여, 이용료 대비 높은 수확량을 제공하였다. 또한, 일일기온이 36도 이상의 경우 열압박일로 구분하여 보험료가 가입농부에게 자동 입금되는 종합기후보험(Total Weather Insurance)을 출시하여 크게 성공하게 된다. 결국 이 기후서비스 기업은 2013년 미국 거대 농업기업인 몬산토(Monsanto)에 11억 달러에 인수되어 스타트업계의 잭팟을 기록하게 된다. 사이버물리시스템(CPS)과 스마트조경 4차 산업혁명의 초연결인프라 핵심기술인 사물인터넷은 공간을 다루는 조경분야에서 특히 주목해야할 부분이다. 공유경제의 공간 자산은 도심 내 다양한 실내·외 공간유형에서 유발되며, 현실과 가상공간을 연결하여 데이터활용 가치사슬(Data Value Chain)에 의한 새로운 수익모델과 산업적 발전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세계는 사물인터넷 기술 기반의 사이버물리시스템(Cyber Physical System)으로 도시서비스와 산업을 융합하는 스마트시티(Smart City)에 주목하고 있다. 스마트시티는 2010년을 전후로 하여 선진국은 물론 중동 산유국, 중국, 인도 등 개발도상국에서도 활발히 진행 중에 있다. 관련 시장규모는 2020년까지 플로스트 앤 설리번(Frost&Sullivan)과 그랜드 뷰 리서치(Grand View Research)에서 1.4~1.5조 달러 규모로 예측하고 있는데, 이와 더불어 2·3차 경제적 파급효과로 인한 국가경쟁력 제고가 예상되는 산업이다. 스마트시티는 물리적·사회적 관점에서 저비용 도시와 고도화된 사회인프라를 통해 인적자원 및 생산체계를 구조적으로 제고하는 것이다. 즉, 스마트시티가 추구하는 새로운 도시는 ICT 기술을 통한 SOC 개념을 개편하여, 과거 도시커뮤니티의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지능형 도시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우수한 스마트시티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지만, 데이터의 실질적인 활용과 서비스 및 제도에 취약한 국내 관련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공간 이용프로그램 연계를 통한 조경관점의 다양한 가치사슬 창출은 산업견인에 주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블록체인(Block Chain) 기반의 암호화 화폐가 기존 금융시장에 급속한 영향력을 미치는 등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변화들이 최근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상황에서 조경산업의 미래를 앞서 살펴본 공유경제, 사물인터넷, 케즘이론 등으로 예단하기는 어렵다. 앨고어(Albert Arnold “Al” Gore, Jr) 전 미 부통령의 수석 연설문 작성자이기도 했던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Daniel Pink)는 저서 “새로운 미래가 온다(A Whole New Mind, 2006)”에서 미래사회를 견인하는 2가지 핵심 요소를 하이컨셉(High Concept)과 하이터치(High Touch)로 제시하고 있다. 하이컨셉은 분야 간 통섭을 통해 기술적인 해결방안을 도출하는 창조적 능력을 의미하고, 하이터치는 기술에 대한 인간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감성적 역량을 의미한다. 조경산업이 기존 기술적 선도계층에 국한될 수 있는 실물경제형 산업구조에서 미래의 또 다른 수익모델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이 하이컨셉과 하이터치 관점의 문제접근방법이 주요해 보인다. 점차 심화되는 도심 내 사회·환경적 난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고, 초연결 도시인프라 시대에서 도시민에게 생태적 기능은 물론 정량화된 효용성과 경제성을 제공할 수 있는 “High Performance Green Infrastructure” 구현은 4차 산업혁명시대의 새로운 조경발전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 김태한 교수[email protected]
- 2018-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