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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이형주 기자]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나약한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게 된 것은 집단을 묶는 다양한 스토리를 끊임없이 만든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스토리란 신화, 전설, 민담, 영웅전 등 다양한 서사를 포괄하며, 어떤 집단의 종교, 역사, 문화의 근간이 된다. 이 스토리를 공유함으로써 공동체 의식이 생성돼 협력과 협조가 쉬워진다. 결국 인류를 지구에서 가장 위대한 종으로 만든 것은 스토리의 힘이라는 것이 그의 평가다. 이러한 맥락에서 몇 년 전부터 국내에서도 역사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정부는 2017년 수능부터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했다. 역사교육이 부재했던 동안의 청소년 역사인식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전국 초중고생의 41%가 삼일절의 의미를 제대로 모른다는 여론조사가 2011년에 나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 뒤 역사 교육 부실 논란이 커지자 정부와 민간의 공동 노력으로 한국사는 수능 필수과목이 됐다. 역사교육은 실리적 측면에서도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 중국은 동북공정 프로젝트로 현 중국 국경 안의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 하고, 일본은 교과서를 비롯한 수많은 역사 왜곡으로 독도를 일본 영토라 주장하는 등 역사적 침탈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이에 대해 역사적 근거를 찾아 맞서왔다. 이와 같이 역사는 방어의 수단이 되기도 하고 침략의 명분으로도 쓰인다. 조경 분야에서도 업역 침탈의 방어 수단으로 조경사를 활용했다. 산림청이 ‘정원’ 분야를 법과 제도 신설을 통해 독자적인 사업 영역으로 끌어들이려 할 때 조경 분야에서는 “정원의 역사가 조경의 역사”라는 논리로 맞설 수 있었다. 이외에도 토론이나 발표 자리에서 조경사가 근거나 사례로 제시되는 건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조경사의 역할은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문화재청은 궁궐과 능원을 총괄하는 궁능유적본부를 신설했다. 그 안에는 복원정비과 인원의 절반을 차지하는 ‘조경계’도 들어있다. 한국전통조경학회는 본부의 전신인 궁능문화재과에 속해 있었다. 궁궐과 능원에 대한 많은 연구 결과물을 도출하면서 조경 분야의 필요성을 어필하고 인지시킨 결과가 반영됐다는 것이 문화재청 한 관계자의 증언이다. 물론 조경을 특수 분야로 국한시켰다는 지적도 있지만, ‘조경’ 명칭으로 정부 산하 기관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조경기사 시험에서 조경사 과목 폐지란 해묵은 논란이 국가기술자격 개편 흐름을 타고 다시 부상했다. 역사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며 한국사가 필수 과목으로 선정된 사회적 흐름과 대조적이다. 실무에서 역사를 배제하는 정부의 NCS 체계와 조경사를 없애려는 어떤 조경 전문가군(자격 개편 관련 산업인력공단과 조경학회·협회 간에는 어떤 협의도 없었다)의 선택은 과연 사회적 흐름과 조경의 발전에 부합되는 것일까. 자격증 과목에서 빠지면 대학 교과목에서도 빠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학생들이 수강신청을 할 때 그 중요성을 낮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조경학과의 교과목에서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역사적 가치와 효용성은 정체성 확립에 매우 중요하다. 자체적인 역사가 없는 민족이나 국가는 없다. 그렇다면 독자적인 역사가 없는 조경학과, 과연 존립할 수 있을까? 도시공원을 휘하에 두려는 도시숲처럼, 조경을 휘하에 두려는 분야가 생기면 어떻게 대항할 수 있을까? 기사시험 합격률을 높여보겠다고 조경사 과목을 없애는 것은 빈대 잡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이다. 합격률이 문제라면 난이도만 조절하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조경기사 시험에서 보편성이 결여된 지엽적 사실을 묻는 문항이 과거에 종종 문제가 됐다. 영화 슈퍼맨의 ‘크립토나이트’의 성질을 묻는 것과 비슷한 문제가 나온 적도 있다. 이와 같은 문제가 조경실무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묻고 싶다. 조경사 과목을 폐지하려는 황당한 생각에 앞서 조경사 과목의 출제진 구성부터 재점검하길 권하고 싶다. 결국 문제는 조경기사 시험문제 개발인데, 왜 엉뚱하게 조경사 과목 자체를 건드리는 것일까? 관계기관의 현명한 판단을 요구한다.
- 이형주[email protected]
- 2019-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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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얼마 전 원로 조경가와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가졌다. 그분은 한국 조경계가 처한 상황을 걱정하며, 조경의 정체성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졌다. 지방으로 가는 항공기 좌석 안에서 대화를 나누었는데, 항공기 창에 비친 겹겹이 펼쳐지는 우리 산하의 모습은 유난히 아름다웠다. 옛 선조부터 물려받은 금수강산, 잘 보존하고 관리하는 일이 조경가가 담당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우리 현실에서는 조경이라는 이름 아래 많은 프로젝트가 공간 개발과 관련된 화장술 역할에 그치고 있다. 그날 그분은 국토환경을 보존하고 관리하는 조경계획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원로 조경가의 절절한 당부는 깊은 고민거리를 던져 주었다. 이 글은 선배 조경가가 던져준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기위한 시도이다. 필자가 조경 공부를 하면서 느낀 매력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안 맥하그의 「Design with Nature(1969)」를 읽으면서, 지구 환경을 보존하고 관리하기 위해 지녀야 하는 생태적 가치를 존중하는 관점과 여러 학문 영역을 융합하는 종합화라는 속성에 이끌렸다. 다른 하나는 동서양 정원예술의 전통에서부터 오늘날 조경설계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독창적이고 풍부한 스토리를 담는 디자인에 매료됐다. 이 둘의 갈래는 유사하면서도 서로 상이한 사고와 관점, 그리고 태도를 지닌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유학 시절 읽은 앤 스펀의 「Seeing and Making the Landscape Whole」이라는 짧은 글은 필자가 느꼈던 두 가지 다른 세계의 간극을 잘 표현하고 있다. "현대 조경은 생태와 예술이라는 두 축에서 발전하고 진화하여 왔다. 이 둘은 과정과 형태 중 무엇을 중시하는지, 지역스케일과 정원 스케일 중 어디에 주목하는가에 따라 구별된다. 이 두 축은 다른 특성을 보이며 때로는 갈등하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오히려 서로 건강한 긴장 관계를 유지할 때 조경은 사회적으로 존립 근거와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실천 행위로서 조경 계획의 전통이 미약하다. 국토환경의 보존과 관리라는 테제(These)는 조경학의 정의부터 등장하지만, 이를 위한 실천적인 처방을 고민하는 데는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광역적인 스케일의 지역계획은 대부분 맥하그식 환경분석 방법에 근거하고 있지만, 이에 관여하는 조경가의 역할은 지극히 한정적이다. 오히려 한국조경 초기 정착기에 1970년대 초반 한국조경공사에서 수행했던 경주보문관광단지, 설악산국립공원 등이 광역조경계획의 대표적이며 성공적인 사례이다. 이후에는 레거시(Legacy)가 될 만한 조경계획 프로젝트가 눈에 잘 띄지는 않는다. 전반적으로 조경 리더십에 의한 광역적 스케일의 조경계획이 위축되고 있는 상황이다.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는 단지 센트럴파크만을 설계한 것이 아니라, 요세미트 국립공원 계획과 나이아가라 폭포 경관계획에도 참여하였다. 보스턴 환상형 공원녹지체계와 버펄로 광역녹지체계 등의 계획을 통하여 도시 그린 인프라를 구축하였다. 이러한 조경계획의 전통은 전후 영국에서는 이어진다. 브렌다 콜빈은 「Land and Landscape(1948)」에서 전후 영국의 전원 경관 등의 보존과 관리계획의 방향을 제시하였는데, 이 책의 기본 생각은 향후 영국 농촌 보존의 근간이 되었다. 이후 브라이언 하켓과 실비아 크로우는 여러 저작에서 토지를 합리적 활용을 위하여 생태적 지식에 기반한 조경계획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이러한 선구적 논의는 영국의 경관 관리 관련 법과 제도를 구축하는 데 든든한 기반을 제공하였다. 이러한 주장과 계획 방법은 이안 맥하그에 의해 미국을 중심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곧 전 세계로 이론과 방법이 확산되게 되었다. 중국의 콩지안 유는 생태계획의 중요성을 중국의 정치지도자와 시장들에게 설득하여 대도시와 성, 국가 차원에서 적용하였다. 그가 주도한 ‘중국 국가생태보안계획(2007~2008)’은 과학적 지식에 기반한 국가 규모의 생태적 조경 계획이다. 최근에 천명된 시진핑의 생태문명건설에 대한 선언은 개발 패러다임에서 생태보존 패러다임으로 전격적인 전환을 예고하면서, 광역적 차원의 경관 및 생태계획이 자리를 잡는데 보다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정원박람회 등 정원문화가 확산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나, 국토경관을 보존하고 관리하는 분야로서 계획분야의 영역 확장이 답보하는 현실은 안타깝다. 조경계획 분야의 아카데미아는 존재하나, 실천 영역의 활동은 빈곤한 상황이다. 조경 분야는 실천을 전제로 하는 실용학문이기에 실무분야의 발전이 없는 아카데미아의 담론은 공허하다. 현재 국토환경을 다루는 광역적 차원에서 다루는 생태계획 및 조경계획의 실무영역이 매우 취약한 상황인데, 이를 제도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네덜란드의 경우 국토의 기본골격이 되는 인프라적인 차원에서의 조경이 공간계획이라는 영역으로 실무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또한 국가 차원의 조경정책을 총괄 자문하는 'National Landscape Advisor 제도'가 있다는 것도 주목할 지점이다. 우리나라도 조경가가 농촌계획을 총괄한 사례와 복합적인 공간계획을 리드한 좋은 사례들도 있다. 이러한 성과를 알리고 공유할 필요가 있다. 이제 미래 한국 조경 역량을 국토 환경을 잘 관리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의 일반인들의 조경에 대한 인식은 그리 호의적이지 못하다는 것도 인정해야 할 현실이다. 화장술이나 장식적 처방이라는 부정적 관념이 조경이라는 개념 속에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거나, 생태적 가치를 구현하는 것인 조경이 지향하는 바와는 거리가 멀다고 느끼는 사람도 허다하다. 대사회적인 차원에서 조경이 지향하는 가치를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2013년 한국조경학회가 주도하여 제정한 한국조경헌장도 그러한 노력이 일환이다. 헌장의 본문에서도 조경의 가치를 자연적 가치, 사회적 가치, 문화적 가치로 구분하여 천명하고 있다. 조경의 영역에서도 정책, 계획을 설계보다 앞선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커뮤니케이션 활동뿐만 아니라 조경의 근원적인 개념을 바꾸는 보다 대담한 변화가 필요하다. 필자가 제안하는 대담한 변화는 ‘조경’이라는 분야의 명칭을 고치는 것이다. 현재의 ‘조경(造景)’은 ‘경관을 만든다’라는 함의가 지나치게 강하게 담겨있다. 지을 조(造)가 지닌 창조라는 개념을 긍정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지만, 인위적이거나 장식적인 측면을 강조하면서 땅의 장소성과 자연의 생명 가치를 거스를 수 있는 여지도 또한 존재한다. 'Landscape Architecture'라는 명명에 대한 불만도 꽤 오래되었다. 옴스테드도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라는 비극적 명명 때문에 괴롭다 하였고, 지오프리 젤리코도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는 분명히 잘못된 명명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경관과 건축을 묶는 영어 명칭은 일정 부문을 건축과 유사하면서도 구별되면서, 단지 식물이나 가드닝의 영역을 극복하는 차원에서 선택되었지만,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프랑스의 전문 직능을 나타내는 독립적인 표현으로서 원래 풍경화와 풍경건축의 뜻에서 나온 페이자지스트(paysagiste)이라는 명칭이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 동아시아 3국의 경우도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쳐를 번역은 서로 다르다. 중국은 원림, 일본은 조원, 한국의 조경이다. 일본의 경우가 가장 보수적인 방식으로 번역하여 랜드스케이프 가드닝에 가까운 번역이다. 중국의 경우는 영어보다 포괄적으로 외연으로 확대한 것으로 이해된다. 얼마 전 한중일 조경 심포지엄으로 방문한 중국 조경학자는 서울의 조경사무실에서 설계 작품을 설명을 들으며, 한국에서는 조경과 경관프로젝트를 구분하고 있다는 점에 놀랐다고 했다. 중국에서는 모든 경관프로젝트가 조경의 영역에 포함되어 있다고 지적하였다. 아마도 원림이라는 명명이 조경이라는 명칭보다는 더욱 넓은 영역을 포괄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조경이라는 명칭의 적실성을 함께 깊이 있게 논의해 볼 시점이다. 2022년은 한국조경학회 50년을 맞이한다. 이제부터 한국조경의 50년을 되돌아보고 그간의 성과를 점검하고 미래의 방향을 논의해야 할 것이다. 조경의 명칭을 바꾸는 문제가 그 논의의 첫걸음이 되기를 희망한다. 조경진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교수
- 조경진 교수
- 2019-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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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나창호 기자] 우리가 세 번째 국가정원을 보는 날은 3년, 아니 5년 이후가 될 공산이 크다. 경쟁 구도로 굳어진 지자체 국가정원 선언은 대부분 공허한 메아리로 소산될 가능성이 높다. 장밋빛 청사진을 내놓았던 지자체들은 이제 긴 호흡으로 옷매무새를 정돈해야 한다. 국가정원 지정 요건에 ‘운영실적’을 포함하는 수목원‧정원법 개정안이 1월에 공포된다. 개정된 법률은 공포되고 6개월 이후부터 시행된다. 산림청 정원 담당자는 운영실적에 필요한 기간은 ‘3년 이상’이 될 것으로 봤다. 지방정원이 준공되고 나서 최소한 3년을 기다려야 국가정원 지정 신청이 가능해진다는 이야기다. 지자체는 까다로워졌고, 국가정원은 ‘격’이 높아졌다. 국가정원에 지정받겠다는 곳은 10곳 정도로 ▲강원도 영월군(동서강) ▲경기도(세계정원 경기가든) ▲경북도(도청 신도시) ▲전남 구례군(지리산정원) ▲전남 담양군(죽녹원) ▲전남 장성군(황룡강) ▲제주도(물영아리오름) ▲울산시(태화강) ▲충남도(가로림만) ▲충북 옥천군(장계) 등이 있다. 국가정원을 선언한 대부분의 지자체는 관광자원 확보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일자리 창출에 추진 당위성을 입혔다. 중앙정부로부터 지원받는 운영비도 군침이 당기는 요소다. 하지만 선언과 효과에 묻혀 정작 강조돼야 할 정원의 특색은 보이지 않는다. 지역 고유의 자연‧문화 유산과 접목하는 지자체 입장에선 억울하겠지만, 국민 눈높이에선 국가정원 추진 이유가 ‘그들만의 목적성 사업’으로 비춰질 수 있다. 타이틀도 국가정원 아닌가. 이러한 생각은 비단 기자 혼자의 것이 아니다. 산림청 정원 담당자도 “지금의 지방정원 형태를 보면 국가정원으로 지정받을 곳이 없다”고 냉정하게 말했다. 큰 규모이면서 정원의 수준도 높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담당자의 말을 빌리면 작금의 국가정원 경쟁은 100% 거품이다. 서두에서 기자가 제3호 국가정원 지정이 5년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한 것은 조성기간과 실적기간을 합쳐서 그렇다. 바꿔 말하면 태화강정원을 제외한 다른 지방정원의 국가정원 지정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뜻이다. 2호가 아니라 3호라 했던 것은 올 7월까지 태화강정원의 국가정원 지정 가능성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국가정원을 중앙정부가 조성하거나 비용을 지원해 주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있다. 물론 산림청이 지자체 지방정원에 국비를 지원할 수는 있다. 하지만 국가정원은 아니다. 지정 후 관리비가 지원되는 것이다. 산림청 담당자는 “규모와 수준으로 봤을 때, 지방정원에서 국가정원으로 가기 위해선 지자체 스스로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며 자구 노력 없이는 국가정원도 힘들다고 했다. 국가정원을 준비하는 지자체는 순천만국가정원의 경제적 효과만 보지말고, 그 시작이 되는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의 출발점을 복습하길 바란다. 정책결정권자의 순천만 보전의지, 지역 조경학과 교수의 열정, 조경가의 참여가 집중됐던 박람회장 마스터플랜 공모 그리고 순천시민의 열망이 그 속에 있다. 결국 '진정성'이다. 가치를 살리면 값어치도 덩달아 오른다. 정성으로 키운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가 더 맛있는 법이다.
- 나창호[email protected]
- 2019-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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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는 “조경인이 주인공으로 나서자”는 바람이 많다. 법제도적 개선에도 트렌드의 변화와 이웃 분야와의 소통에도 적극적인 대안 제시와 리드를 통해 조경의 미래를 조경인 스스로가 만들어 가야 한다는 목소리이다. 2019년 기해년을 열며 조경 분야 각계의 소망을 담아 봤다. 문화리더 역할…조경 ‘브랜드’가 필요하다 최재혁(35)스튜디오 오픈니스 대표 / 디자인 그룹 자연감각 소장 얼마 전 한 브랜드의 상점 앞을 지나는데, 제작원가의 수 배는 됨직한 가격으로 판매되는 가방을 사기 위해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는 걸 보았다.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바로 ‘브랜드’이다. 브랜드의 어원은 ‘화인(火印)하다’는 뜻의 노르웨이 고어 ‘brandr’에서 유래됐다. 소나 말과 같은 가축의 소유권을 나타내기 위해 불에 달군 쇠로 가축에 낙관을 찍는 것을 뜻하던 용어인데, 이후 단순히 소유권을 나타내는 것뿐만 아니라 품질 보증의 의미를 갖게 됐다. 현대사회에서 브랜드의 의미는 더 확장돼, 어떤 문화를 향유하고, 어떤 정체성을 갖는지를 나타내는 표현수단이 됐다. 어떤 상품이 문화적 가치를 가질 때 발생하는 부가가치는 일반적인 기준을 훨씬 뛰어 넘는다. 조경은 어떠한가? 일반 대중들이 폭 넓게 인지하고 공유하는 브랜드가 있는가? 애석하지만 아직 그런 조경 브랜드는 없는 듯하다. 단순히 유명하다고 브랜드라고 할 수는 없다. 브랜드란 대중에게 일관된 철학을 전달하고, 신뢰를 주고, 무엇보다 공감대를 형성해서 하나의 문화를 만드는 유무형의 인격체이다. 최근 조경업의 질적 향상을 위해 설계대가기준과 표준품셈을 정비하는 등 제도개선을 위한 노력이 있다. 물론 이런 노력이 중요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조경은 제도적 틀을 깨고 나가야한다. 조경업을 연구나 건설업의 일종 또는 예술작품 활동으로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서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조율하는 문화산업으로 이해하고 조경을 브랜드화(化)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단순히 연구 또는 설계를 잘하는 조경가보다 사람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 조율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과 문화를 제안하는 문화리더로서 조경가가 필요하다. 끊임없는 정책 제안…“조경이 하는 일에 한정 없애야” 송군호(48)생각연구소 기획실장 및 공간작가협회 이사장 2018년은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나라는 평화의 분위기가 싹트기 시작했고, 조경계는 새로운 시도들을 준비했다. 개인적으로는 도시의 정책을 기획하면서 광범위한 분야의 여러 단체들을 만나는 일을 했다.조경의 일들이 전 산업 분야에 광범위하게 연관돼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다. 앞으로 우리의 확고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그 영향력을 더욱 넓히고 키워서 “다양한 연관 산업 분야의 주변인이 아닌, 당당한 주도자로 인식돼야 한다”는 것은 억지스런 설정이 아닐 것이다.아름다운 경관을 조성하며, 미세먼지를 저감할 수 있고, 쇠퇴하는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으며, 한반도 평화를 상징할 멋진 공간 조성으로 남북의 화해와 협력이라는 역사를 견인할 수 있고, 세계로 뻗는 한류, K-Culture의 기반을 제공할 수 있다. 침체되고 우울한 국가의 분위기를 바꿀, 신성장동력의 스타트키를 조경이 쥐고 있을 수도 있다. 자신감과 자긍심을 갖고, 국가와 지자체에 좀 더 적극적인 제안과 시도를 아끼지 말아야 겠다.조경인들은 준비가 돼있다. 국가와 지자체에 우리의 생각과 좋은 정책을 끊임없이 제안하고, 스스로 마련한 많은 사업들을 성취해서, 나아가 조경계가 활기찬 분야로 거듭나는 의미 있는 2019년이 되길 기원한다. 설계와 시공의 혼연일체, “내실 있는 설계 넘쳐나길” 오현주(36)안마당더랩 소장 조경 실무자로서 일한 지 12년이 지나고 있다. 12년간 단 한 해도 쉰 적 없이 달려오다 보니 2018년은 약간의 과부하가 생긴 해이기도 하다. 운이 좋게도 두 곳의 정원박람회에서 상을 탔지만, 정작 내실에는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한다. 안마당더랩을 운영하면서 함께 일하는 이범수 소장과 늘 고민하는 부분이 ‘내실’에 관한 것이다. 설계가 종이에 그려진 예쁜 그림으로 끝날 것인지, 아니면 현장에 그대로 녹아들어 설계와 시공이 혼연일체를 이루게 될 것인지는 늘 우리의 고민이자 논쟁거리였다. 최근 정원 문화가 대중적으로 확산되면서 클라이언트들의 변화가 조금 감지된다. 이제는 고객들도 설계와 시공이 서로 박자가 잘 맞아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으며, 그 과정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한 변화에 대처하고 적응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소통과 고민을 통해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것이야 말로 ‘내실 있는 설계’가 아닌가 생각한다. 업계 전반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좀 더 내실 있는 설계들이 쏟아져서 많은 인풋(Input)을 할 수 있는 2019년 한 해가 되길 바래본다. ‘당선안과 낙선안의 대화’ 필요…“공정한 공모 심사 토대될 것” 이해인(38)HLD 소장 최근 심사위원장의 사퇴로 시작된 한 건축 공모전 심사의 공정성에 대한 이슈가 연말을 뜨겁게 달궜다. 얼마 전에는 규정을 위반한 작품이 당선안으로 발표돼 비판과 반성의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다. 이 오랜 관행에 대한 근본적이고 확실한 해결책을 찾는 과정이 필요할 듯하다. 하지만 그 해결책이라는 것이 과연 실현가능할지, 또 이를 피해갈 방법이 생겨서 같은 문제가 계속 대두될지는 모를 일이다. 공정한 심사를 원하는 사람과 판을 혼탁하게 만드는 권력을 가진 자들이 서로 달라서 단순히 비판이나 성토하는 것만으로는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문제를 논의할 기회가 만들어진 것은 반길만한 일이다. 그냥 “안된다”며 포기하기보다는 2019년 설계가들이 할 수 있는 노력이 뭐가 있을까 고민해봤다. 공모전의 심사결과, 심사평, 당선안과 다른 제출안을 가지고 공개적인 토론의 자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토론은 당선안이 왜 당선돼야 했는가에 대한 설득의 과정이 될 수도 있다. 설득이 되지 않더라도 이런 양성화를 통해 공정한 심사의 토대를 마련해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모전 제출안은 엄청난 고민과 노력을 담고 있고, 직접 참여한 사람이 아니고는 한 눈에 그 생각들을 다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당선안과 다른 제출안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해보는 과정은 설계의 발전을 위해서 중요하고, 발주기관이나 참여설계자가 엄청난 비용을 쏟아 부은 것이 헛되이 쓰이지 않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할 것이다.아무 근거도 없이 심증만으로 로비 여부를 의심하거나, 심사의원을 탓하거나, 실적을 요구하는 심사지침을 비판만 하고 있어서는 발전이 없다. 2019년에는 공모 심사결과에 대해 토론하는 다양한 자리가 있기를 기대해본다. 사후 피드백 부족 ‘아쉬워’…“지난해에 대한피드백으로 새해 시작하겠다” 이호영(43)HLD 소장 한 해를 돌아볼 때면 늘 정신없이 살아온 듯 느껴지긴 하지만, 특히 2018년은 여러 가지로 많은 일이 일어난 해였다. 회사는 새로운 디자이너들이 합류해 규모가 두 배정도로 커졌고, 그 만큼 더 많은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회사 서버의 폴더를 보면서 여섯 번의 크고 작은 현상설계를 포함해 십여 개의 프로젝트를 마쳤거나 여전히 진행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새삼 ‘올해도 미친 듯이 설계를 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프로젝트를 마칠 때마다항상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후 피드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너무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지만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 다시는 보지 않을 것처럼 그 프로젝트는 마음에서 사라져버린다. 짧게는 몇 주에서 길게는 일 년 넘게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붓는 것에 비한다면 프로젝트가 끝난 후 디자인이나 수행과정, 결과 등에 대한 피드백을 하는 것은사실 너무나 쉬운 일이다. 하지만 이 피드백 과정이 있고 없고는 설계와 업무 효율성 개선 측면에서 너무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나 스스로도 프로젝트마다 가장 적합한 설계 결과물을 만들어 냈는지 자기반성이 필요하고, 회사 내부에서도 디자이너 간의 충분한 토론과 소통으로 의미있는 작업이 이루어졌는지 등을 피드백해 봐야 한다. 현상설계의 경우는 결과와는 상관없이 치열하게 경쟁했던 다른 회사들의 콘셉트와 설계과정 등에 대해서 서로 토론할 수 있다면, 디자이너 개개인, 회사, 그리고 조경설계 전체가 다같이 성장할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될 것이다. 다행히 젊은 조경가들이 중심이 된 ‘조경이상’ 모임에서는 한 해 동안 의미 있었던 설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2019년의 1월은 더 늦어지기 전에 2018년에 대한피드백으로 시작해보려고 한다.
- 박광윤[email protected]
- 2019-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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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조경인이 주인공으로 나서자”는 바람이 많다. 법제도적 개선에도 트렌드의 변화와 이웃 분야와의 소통에도 적극적인 대안 제시와 리드를 통해 조경의 미래를 조경인 스스로가 만들어 가야 한다는 목소리이다. 2019년 기해년을 열며 조경 분야 각계의 소망을 담아 봤다. “대국민 서비스의 중심축으로 사랑받는 조경, 조경인이 되길” 김주열(56)산림청 도시숲경관과장 2018년, 30년간 조경인으로서 현장에서 생활하다가 산림청 공무원으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 지 1년! 미세먼지가 일상이 되고 유례없는 폭염이 온 도시를 달군 한 해를 보내면서 다시 한 번 조경과 조경인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된 한 해였다.며칠 전 보도된 동아일보-고려대 정부학 연구소에서 평가한 2018년 정부정책 평가에서 도시숲 조성 정책이 ‘시민들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좋은 정책’으로 40개 정부정책 중 3위에 선정됐다. 시민들은 삶의 질을 높이는 대표적인 생활밀착형 사업으로 숲 조성의 긍정 효과를 평가했다. 그동안의 조경인들의 노력이 국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는 의미 있는 성과가 아닐까 생각한다.새해에는 도시 문제의 부작용 없는 해결책으로서 도시숲의 역할이 더욱 부각되고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미세먼지 차단숲, 도시바람길숲 등 신규 사업 확대가 그것이다. 이에 따라 조경의 사회적 역할도 더욱 중요질 전망이다. 소통과 참여 과정을 통해 조경의 경쟁력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전환적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위해서는 좀더 적극적이고 열린 마음으로 정부정책 수립과 제도 개선에 참여하고 시민들과의 소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건축·토목·생태복원·정원 등 모든 유관분야에서 축적된 경쟁력을 발휘함으로써 질 높은 대국민 서비스 확대의 중심축으로 사랑받는 조경, 조경인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란다. “기념비적 ‘4.16생명안전공원’ 추진, 조경가가 나서자” 김도훈(40)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박사 수료 민관협력을 통해 공원을 만들고 시민이 운영관리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하이라인 프렌즈, 센트럴파크 컨서번시, 영국 케이브 사례를 우리는 동경해 왔다. 어둡고 불편한 테마이지만 그 의미를 승화시켜 만든 상징적 공간 다이애나 메모리얼 파운틴, 911 메모리얼 그라운드제로, 베를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등 세계적으로 명소화된 공원을 우리는 왜 가질 수 없는지 푸념만 했다. 하지만 새해 2019년엔 우리가 그동안 시도하지 못했던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먼발치에서나 바라보던 이상적인 공원으로서가 아니라 기념비적인 공원 조성에 우리 모두가 직접 참여하는 기회가 주어질 듯하다. 바로 전국민의 지지와 염원을 담고 갈등과 상처를 치유하는 상징적인 공간인 ‘4.16생명안전공원’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을 기억하고 생명가치의 의미를 전하는 4.16생명안전공원(세월호 추모공원)이 안산시 화랑유원지 한 켠에 만들어진다. 타당성조사 및 기본계획이 마무리되는 대로 세계적 명소로 탄생시키고자 국제현상설계가 진행될 예정이다. 하지만, 도심 한가운데 만들어지는 추모공원이기 때문에 기존의 관념과 선입견을 넘어서야 하는 큰 숙제가 남아 있다. 추모공원 조성을 둘러싸고 일부에서 혐오시설로 폄하하거나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덧씌워 오해와 불신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이에 갈등을 해소하고 진정한 기념비적 공간을 조성하기 위한 전문가적 해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왕이면 그 역할을 조경가들이 했으면 좋겠다. 전국민의 마음이 담긴 공간을 만드는 일이고, 세월호 참사의 사회적 의미를 알리는 역할을 공원에서부터 시작해야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엄숙하고 경건한 추모공원이자, 많은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일상 속 생활공원을 상상하고 있다. 이미 ‘4.16공원친구들’이 조직돼 전국민이 공원을 함께 만들어간다는 의미를 실천해가고 있으며, 조경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 더욱 큰 힘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공원 조성 후 운영관리를 책임질 ‘4.16재단’은 민간에서 공원을 운영하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조언이 절실하다. 조경인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공원’, ‘모두를 위한 공원의 새로운 모델’이 ‘4.16생명안전공원’에 시작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9년,조경건설업 내리막길 시작…“조경지원센터, 공동의 역량 결집하길” 박준호(48)현대건설건축조경팀장 현대건설조경팀에게 지난2018년은많은열매와결실을 이룬 한 해였다. 대한민국조경대상,인공지반녹화대상,GoodDesignAward등조경분야에서만장관상을4개나수상함으로써 현대건설의조경디자인과품질이 외부에서도인정받는뿌듯한 해를 보냈다.또한 팀원들과함께기술력을집중해 2017년에특허 출원한 ‘조경설계를통한미기후최적화’가2018년에최종 등록됐으며, 2018년에는 새롭게‘경사면잔디식재방안’에대한특허를출원했다.현장 업무에 있어서도 2018년은공동주택입주물량이 평년대비 많이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시공마지막공종으로서의어려움을이겨내고계획대로 전현장에서준공을이뤄냈다.이모두가함께힘을모아준본사/현장의조경직원들과협력업체분들의노고와열정 덕분이다.하지만2019년의전망은그리밝지만은않다.각건설사별입주물량도2018년을정점으로 줄어들고,일반건축물,관공사의물량도축소돼조경설계 및 시공업계의전체매출이줄어들것으로예상되고있다.이러한어려움은이미2~3년전부터예견돼왔지만 조경계에서는 별다른 준비를 하지 못한 듯하다.회사마다각자 어려움을이겨내는것도중요하지만,이럴때일수록학계·업계·관계가서로의지혜를모아역량을결집할 필요가 있다.특히2019년부터새로시작되는한국조경학회의‘조경지원센터’역할에큰기대를건다.하나의기관이모든것을해결할수는없지만,논의의장(場)을열고이를촉매로더큰결실을거두길기대해본다. “기후변화 대응 그린 인프라 조성, 조경인이 주도적 역할해야” 제상우(53)(주)한국그린인프라연구소 부사장 2018년은 연일 지속된 폭염으로 잠들기 어려웠던 날이 많았다. 그 전 해에는 한파로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기후변화! 이것이 우리의 생활을 힘들게 하고 있다는 확신은 점점 더 강해진다. 한국그린인프라연구소는 이러한 기후변화 시대에서 조경인이 주도적인 대응 역할을 해 보고자 7년 전에 설립됐다. 도심에 빗물을 좀 더 오래 머물게 하여 증발산량이 많아지게 하면 기화열로 인해 도시가 시원해지는 효과가 있다. 지하수 충전으로 땅속은 더 건강해지고 도시 내 생물다양성은 높아지게 된다. 또한 미세먼지와 비점오염원이 걸러져서 더 쾌적한 환경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일이야 말로 조경인이 주도적으로 해야 할 일이 아닐까.실제로 저영향개발(LID: Low Impact Developement) 계획의 최종 결과물은 대부분 조경에서 다루는 소재들로 이루어져 있다. 빗물정원, 옥상녹화, 식생수로, 식생여과대, 침투도랑 등등. 물론 새로운 분야는 과거의 방식보다 좀 더 기술적인 능력을 요구한다. 하지만 조경인들이 빗물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사이 물순환 및 저영향개발 분야가 점점 토목환경 및 우·오수 엔지니어의 몫이 돼 가고 있다. 최근 물순환과 저영향개발에 대한 정부의 움직임이 발 빠르다. 5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약 2000억 원의 예산으로 도시 내에서 물순환 회복사업을 시행하고 있고, ‘저영향개발을 통한 물순환 회복 및 촉진에 관한 법률안’이 지난해 1월에 국회에서 발의됐으며, 이미 서울을 비롯한 10여 곳의 자자체에는 관련 조례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내년에는 건설경기가 더 어렵다고 한다. 이러한 어려운 시기에 대의도 찾고 새로운 먹거리도 찾을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을 수 없지 않겠는가! 2019년은 기후변화에 대비하고, 도심을 보다 인간다운 공간을 만드는 일에 조경인이 주인공이 되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 박광윤[email protected]
- 2019-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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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민과 환희가 교차했던 2018년, 한 해의 모든 일을 새해의 희망으로 만들어가고자 각 분야의 조경인들에게 한 해를 정리하는 내용의 뜻깊은 원고를 부탁했습니다. “올 한 해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한국조경협회 2년, 지나온 세 가지 이야기…“새해 새로운 바람 기대하며” 최종필(60)한국조경협회 회장 지난 2년간 한국조경협회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나름 열심히 뛰어다녔지만, 특별히 내놓을만한 공적이 별로 없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래도 몇 가지 일을 회고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대한환경조경단체총연합’의 시작이다. 조경계의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비전을 생각하는 여러 지인들이 모여서 수차례 회의를 하면서 내린 결론이 “법과 정책 그리고 조직이 만들어져야 우리 분야가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정책을 제시하고, 그 정책이 실현될 수 있도록 조경계 전체가 하나로 힘을 모아야만 살 수 있다고 보았다. 때마침 대통령선거가 진행되면서 최고의 적기라고 판단돼 ‘대한환경조경단체총연합’이라는 단체를 서둘러 만들고 정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1992년 세계조경가대회(IFLA)를 치룬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라 매우 가슴이 설레었고, 그만큼 집중했다.두 번째는 한국조경사회가 한국조경협회로 단체명이 변화된 것이다. 조경기술사와 조경기사들의 모임으로 시작된 한국조경사회이지만, 많은 여건이 변화된 현재에 이르러서는 단체명이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이 대두됐다. 7년 전에도 단체명 변경이 시도됐지만, 몇몇 단체들의 반대로 무산된 적이 있다. 이번에는 회장단 회의를 통한 많은 준비와 관련단체장을 설득하는 노력으로 2018년 5월 28일부로 국토교통부의 승인을 얻어 ‘한국조경협회’로 재탄생하게 됐다. 세 번째는 ‘조경문화제’를 부활시킨 것이다. 연합회 탄생과 함께 “조경계 전체를 아우르는 행사를 만들자”는 생각으로 한동안 맥이 끊긴 ‘조경문화제’를 부활시키자는 의견이 모아졌었다. 우선 단체장 회의를 통해 본인이 조직위원장으로 선출됐고, 모든 단체가 참여할 수 있도록 각 단체에서 추천을 받아 조직위원회를 구성했다. 처음에는 여러 단체들이 모여서 진행하다보니 진행방식에서도 이견이 많았고, 특히 예산문제에서 어려움이 많았다. 초기에는 대정부, 대국민, 대조경인 행사로 진행하자고 많은 프로그램들을 기획했지만, 여건상 많은 것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무사히 행사를 마칠 수 있었지만, 아쉬움도 많이 남는다. 이런 일들을 하면서 느낀 것은 ▲국토교통부 내에서 조경의 입지 찾기 ▲조경계 내부의 갈등 해소를 통한 조경의 대승적 비전 찾기 ▲타 분야와의 법제적 상생관계 모색 등 우리 조경분야가 해결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한환경조경단체총연합의 조직을 정비하고 장·단기적으로 해결과제를 정해서 대승적 시각으로 조경계가 움직여야 하며, 과감한 선택적 결단이 필요할 때도 반드시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밝아오는 새해에는 우리 조경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를 기대하며, 모든 조경인들의 건승을 기원한다. 조경기사 시험 ‘조경사’ 사라진다니…“역사를 모르고 계획할 수 있는가?” 김수진(41)고려대학교 환경계획 및 조경학전공 박사 / 목포대학교 외래교수 백운동 원림이 2018년 12월 17일 명승으로 지정예고 됐다. 이에 공을 세웠다면서 이번 <이슈트리> 코너의 원고 요청을 받게 됐지만, 사실 공을 받을 만큼 내가 크게 기여한 것보다는 해당 관청 담당 학예연구사의 기질과 문화재청 명승 담당자의 길잡이가 좋은 방향으로 안내돼 명승이라는 목적지에 정착됐을 뿐이다. 감사하고 기쁘게 생각한다.그런데 최근에 마음이 불편한 소식을 하나 접했다. 일부 전문가들의 아집으로 조경사 과목이 몇 해 뒤 조경기사 시험에서 제외된다는 불행한 소식이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나는 학생 때 국내 학생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아 가장 큰 상금인 2000만 원을 받은 적도 있고, 대학원을 다니면서 모 중견 조경설계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과장 역할로 건축사사무소와 협업을 한 적도 여럿 있었다. 학위를 받은 뒤에는 대기업 건설회사에서 공사와 공무 그리고 현장소장 대리를 하면서 100억 이상의 조경공종을 책임지기도 했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상대방을 이해시키거나 설득시키는 데는 조경사의 이해가 가장 요긴했던 것 같다. 언뜻 공감되지는 않겠지만 조경사를 배우는 것은 조경이라는 큰 분야의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조경사를 배우는 것을 단지 이집트 합셉수트여왕의 장제신전이나 외우고, 조선시대 조성된 정원이나 외우는 것이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정원을 만들었던 자연환경과 문화, 사상, 경제, 그리고 주변의 정치적 맥락까지도 고민하고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 땅을 이해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땅의 역사를 모르고 어떻게 계획을 할 수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뉴욕의 센트럴파크도 비록 160년 전에 만들었지만, 동시대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차원의 고민과 연구가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것은 이러한 맥락일 것이다. 근래에 가장 핫 했던 뉴욕 하이라인에서 제임스 코너의 설계전략과 피에트 우돌프의 자연주의 식재설계만 알아서는 하이라인의 큰 모습을 이해할 수 없다. 하이라인이 겪었던 과거의 역사와 주변의 이해 그리고 하이라인친구들이라는 시민단체의 노력 등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나는 이 모든 조합을 이해하고 고민하는 것이 조경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우리가 대학에서 처음 배웠던 총체적인 계획과 설계가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하이라인 공모전 PT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나무는 공간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막막할 때 건축가가 설계도에 넣는 겁니다.” 이것이 건축가가 생각하는 조경의 현실이다. 당신도 이렇게 생각하는가? 조경현장의 Up & Down, “업역 전환기, 새 영역 확장 계기가 되길” 정재혁(42)롯데건설 주택공사부문 조경파트 수석 2018년은 단군 이래 가장 많은 아파트 공급(입주)이 이뤄진 해였던 만큼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현장에서는 굴곡이 많은 한 해였다. 상승과 확대의 국면과 하향과 축소의 상황이 현장을 준공할 때마다 거듭되며 기대와 우려 속에 한 해가 지나갔다. 상승을 견인한 건 무엇보다 인건비와 재료비다. 조경 식재 및 시설물의 숙련된 전문 기능공의 공급이 현장의 수요 대비 절대 부족한 상황에서 인건비는 계속 상승했고 조경의 주요 재료인 수목은 갑자기 증가된 아파트 현장에 충분히 공급하기 어려워 규격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웃돈을 주고 사와야 하는 현실이었다. 반면 식재공사의 아주 일부였던 초화는 정원과 가든 박람회의 풍년만큼이나 수량과 수종이 확대되면서 새로운 기회를 보여준 시장이었다.반면 건설사의 조경팀은 대부분 통폐합되거나 축소되고 인원은 주택사업의 매출 성장만큼 증가하지 못하고 정체되거나 오히려 축소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시기에 조경직의 역할을 단순히 “조경 식재/시설물 공종”에 국한할 것이 아니라 경관(Landscape)과 관련된 전반적인 영역까지 확대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절실히 체감하고 있다.지금이 업역과 시장의 전환기 또는 조정기임은 분명한 것 같다. 이 시기가 지나면 분명 새로운 업역과 시장이 창출될 것이며 그 때 조경이 새로운 이름으로 새로운 영역에서 활동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경계 허물기’ 전에 ‘경계 짓기’ 반성해야…“정원을 자유롭게 하라” 김종보(44)삼성물산 리조트사업부 조경사업팀 책임 Close-over, Combination, Connection, Convergence, Co-XXX … 계절에 따라 옷을 갈아 입 듯 “경계를 허물거나 합쳐간다”는 의미로 쓰는 단어는 유행처럼 배턴을 이어왔고 이제는 HYPER-, SUPER- 까지 붙여가며(Hyper-connectivity, Super-intelligence…) 시대의 화두이니 그 속도까지 느끼라 강요하고 있다. 사실 시대의 흐름이 늘 그래왔다는 건 헤겔의 변증법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최근 오래된 감성을 소환시킨 그룹 퀸(QUEEN)의 음악이 그랬고, 요즘 힙하다는 을지로 뒷골목의 클럽들이 그렇다. 나에게 레트로(Retro)가 다음 세대에게는 난생 처음의 뉴트로(New-tro)가 되어 버린 시대, 우린 이미 이종교합을 통해 섹시한 문화를 만들어 오고 있었다. 조경가는 행운스럽게도 함께 쓰면 자연스럽고 인간적으로 변하는 만능 공간 ‘-garden’도 다룬다. 경계와 규모가 모호하고 구성요소를 감히 특정할 수 없어 더욱 매력적인 이 분야를 우린 얼마나 가로 세로를 재가며 자유도를 낮춰왔는지 돌아볼 볼 때가 됐다. 특히 조경계 인사들에게 혹평을 받은 황지해 작가의 ‘슈즈트리’가 급하게 머릿속을 지나간다. 왜 그리도 엄혹히 대했을까? 초연결/초지능의 시대에 도시공간을 주제로 한 대학생 설계공모전, ‘Everscape Award 2018’을 진행하며, 전공을 막론하고 경계를 허무는 사고의 어려움을 확인했다. 더불어 지금까지 선배들이 얼마나 틀에 짜인 사고를 나눠왔는지 반성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래도 희망스러운 건 설명하면 기대 이상으로 따라잡는다는 것. Hyper- 까지는 아니더라도 해가 갈수록 속도가 붙지 않을까?2018년, 잠시 회사에 쉬며 준비한 작품이 해외에서 좋은 상을 받았고, 연이어 진행한 현상설계도 당선됐다. 2019년에도 드라마틱한 장면을 상상해 본다. 식물의 무한한 매력 알아가는 중…“삶의 피로 덜어내는 정원 만들고파” 김인선(29)팀펄리가든 Garden Designer 올해 진행한 개인 프로젝트로 ‘매주 식물원 산책하기’가 있었다. 소박해 보이지만 내게는 커다란 배움을 선사한 프로젝트로, 집 근처에 있는 식물원 한 곳을 선정해 매주 둘러보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식재설계를 잘해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마음속에 싹을 틔워오다가, “그래,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2013년도부터 약 5년간 이 프로젝트를 실천하면서 식물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물론 수차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식물들의 변화무쌍한, 그래서 매번 볼 때마다 다른 다양한 모습들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고, 그 속에서 식물들의 무한에 가까운 매력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이 소중한 경험 속에서 올해 대상을 수상한 서울정원박람회의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었고, 앞으로도 매주 식물원 산책을 통해 정원디자이너로서의 자양분을 받게 되리라 확신한다.서울정원박람회가 끝난 지금까지도 내게는 따뜻한 여운이 맴돈다. 박람회가 진행되는 동안 ‘피크닉을 즐기는 N가지 방법’에 대해 많은 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특히 크나큰 감동을 준 한 분의 말씀이 떠오른다. “이 정원은 정원 자체만이 주인공이 되는 정원이 아닌, 시민들 모두에게 자신의 자리를 기꺼이 내어주고, 그래서 모든 시민들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정원이네요.” 평소 ‘좋은 정원이란 어떤 정원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해왔고, 아직 명확한 해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나름의 내 생각을 조심스럽게 말해보자면, “좋은 정원이란 바라보기만 하는 정원이 아닌 실속이 있는 정원,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삶의 피로를 조금이나마 떨쳐낼 수 있는 정원”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좋은 정원은 eye-shopping용 정원이 아닌 mind-healing용 정원이다” 앞으로도 많은 분들이 좋은 정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할 것을 한 해를 보내며 새삼 다짐해 본다. “공모전 통해 조경 협업 중요성 배워”…대학교육, 협업기회 부족 정서린(25)경희대학교 환경조경디자인학과 지난 4년간 대학에서 조경을 배우면서 느낀 것은 ‘조경’은 시간이 정말 오래 걸리는 작업이고 많은 사람들의 소통과 협업을 배워야하는 직업이라는 것이다. 학교 수업과 수많은 공모전에서 친구들과 함께하면서 협업을 조금이나마 배웠지만, 졸업하면서 한 가지 아쉬움이 남는 것이 있다. 바로 전혀 다른 분야와 협업을 할 수 있는 수업을 듣지 못한 것이다. 실무에선 건축, 토목, 시설물 등 수많은 분야와 협업이 이루어지는데도 학교를 다니면서는 같은 과 친구들하고만 수업을 진행하다보니 서로 모르는 것은 같이 모르고 아는 것도 같이 알고 설계에 한계에 부딪힐 때가 있었다. 환경조경대전을 진행하면서도 팀원 모두 아쉬워했던 것은 도시재생 이라는 분야에 대한 풀이를 완벽하게 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앞으론 학교 내에서 조경을 배우면서 다른 학과와의 적극적인 협업이 이루어지는 경험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무게와 열정 사이, “첫 회”라는 무게와 “젊음”의 열정 김호윤(40)조경설계 호원 소장 설계사무소 설립 3주년, 불안과 안정의 칼날 위에 서 있는 12월에 ‘젊은 조경가상’이라는 큰 선물을 받고, 1회 수상이라는 무게감이 나를 고민 속에 빠져들게 하고 있다. 하루하루 머릿속에 드는 수없이 많은 생각들. 오랜 시간 가져왔던 국내 조경에 대한 생각과 앞으로 변화돼야 한다는 무게감에 2018년 12월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1년. 10년, 20년에 대한 생각들로 채워졌다.창립 3주년의 선물, 무겁다. 회사의 안정과 미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사무실을 운영해야 겠다는 혼잣말과 그동안 지내온 시간들 속에서 나와 동료 그리고 이제는 국내 조경계의 미래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하지만 조경가의 앞머리에 ‘젊은’이라는 열정과 폐기 그리고 도전이 떠오르는 사랑스러운 단어가 있지 않는가. 다행이다. 나의 젊음이 이렇게 열정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불씨가 돼주어 감사하다.누군가 말한다. “만45세 이하 정말 젊은 것인지?” 이 말이 가지는 조경계의 현재 모습을 모두 이해했으면 한다.오늘부터 기성세대라는 용어를 되도록 쓰지 않을 생각이다. 연령과 개인의 사고방식으로 한정 짓는 기성세대, 용어에 내재된 부정적 이미지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 구분 짓지 말라. 한정 짓지 말라. 그리고 모든 조경인들이 젊은이라는 용어를 자신의 용어라 생각하라. 그리고 나또한 앞으로 그렇게 이 일을 해나갈 것이다. “젊은 조경을 위해!”
- 박광윤[email protected]
- 2018-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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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보다 마을정원이 성장한 한 해 같다. 마을정원을 시작한 곳도 많고, 마을정원사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마을정원사도 많이 배출됐다. 우리나라에서 정원이라는 키워드가 세상에 본격적으로 나오고 이렇게 큰 성장의 배경을 맞이한 적이 있었던가 자문해본다. 마을정원은 꼭 정답이 있다고 볼 수 없다. 큰 줄기는 가지고 있지만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가는 정원이다 보니 그 다양성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하지만 마을정원 만들기가 잘 성장해 가려면 몇 가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이번 마지막 원고에서는 그 점을 상기해보려 한다. 우선 마을정원을 만들기 위해서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단순하게 마을 골목길에 꽃을 심고 가꾸는 일에 멈추지 말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마을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어떤 변화를 줄 수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직접적으로 일자리를 만들거나 작게는 마을 일에 관심을 갖게 하는 폭 넓은 변화까지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두 번째는 각자의 위치에서 할 역할을 찾는 것이다. 마을리더와 행정 그리고 전문가 그룹은 저마다의 역할을 잘 준비해야 한다. 그 역할을 잘못 인식하게 되면 마을정원은 정말 어렵게 진행될 수 있다. 직접 참여하는 마을사람들의 동참을 이끌어 내기 위한 동기부여가 가장 큰 핵심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는 숨어있는 자원을 잘 찾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마을 그 자체가 정원의 요소이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공간부터 개인의 장점까지 이끌어 내어 마을정원의 요소가 되도록 하는 것이 마을정원을 이끌고 가는 사람들이 꼭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마을이 정원이기 때문에 그렇다. 나는 이러한 일을 미리 준비하는 차원에서 마을정원 리더 그룹을 준비시키는 일을 이번 겨울동안 준비하고 있다. 물론 여러 가지 여건이 맞아야 하지만 이 겨울은 분명 내년도 마을정원을 좀 더 긍정적으로 성장시키는 데 큰 힘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원이 성장하는 데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모여지고 있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소식을 접하게 된다. 정말 즐겁고 흥분되는 일이다. 이 정원은 성장해 갈 것이다. 여러 이야기를 안고, 문제를 발견해 가면서 성장할 것이다. 부족하지만 우리의 실력만큼 성장할 것이기에 묵묵히 저마다의 위치에서 정원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어 행복한 한 해가 되었다. 마을정원을 통해 정원을 생활의 한 부분으로 여기고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다. 어디를 가든 골목마다 풍성한 정원이 있는 거리를 거닐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이 거리를 거닐 다음 세대에게 멋진 문화가 있는 공간으로 돌려 줄 수 있게 때문에 정원과 마을정원은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아직 마을정원은 시작 단계에 있다. 행정부터 참여자 그리고 기획자까지 모두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있고 현장에서 배우며 익히는 일도 많다. 그래서 한 해 모두 수고가 많았다. 기회가 되면 함께 마을정원을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통해서 마을정원의 내일을 함께 고민해 보자. 몇 번의 마을정원 원고를 통해서 독자들 만나 기쁘다. 원래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기에 부담도 있었지만 생생한 마을정원의 이야기를 담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채워갔다. 부족한 부분이 많았던 글이지만 마을정원을 발전시키는 데 작은 거름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면을 허락해준 e-환경과조경과 매번 잘 챙겨준 이형주 기자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정원을 가꾸는 한 사람의 정원사로서 정원이 잘 성장해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친다. 이성현 푸르네 대표 정원사
- 이성현 푸르네 대표 정원사[email protected]
- 2018-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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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놀이대, 잠재적 어포던스의 집약체 “어포던스의 관점에서 놀이시설물 4종 세트(그네, 시소, 미끄럼, 조합놀이대)가 가지는 문제점을 논하시오!” 해외 답사로, 국제 심포지움으로 미뤄왔던 질문에 대한 답을 시작해야겠다. 이번 글에서는 4종 세트 중에서 먼저 조합놀이대를 다뤄 보겠다. 조합놀이대는 뻔한 놀이터의 주범으로 주목된다. 그런데 어포던스(affordance)의 관점에서 보면 잠재적 어포던스의 집약체이다. 걸어서 오르기, 기어서 오르기, 매달리기, 뛰어내리기, 미끄러지기 등등 아이들이 중력과 놀 수 있도록 지원한다. 아이들이 구조물의 곳곳에 숨어들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무엇보다 공간을 위로 확장해 주어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도록 해 준다. 싱가포르의 한 놀이터는 ‘잠재적 어포던스의 집약체’로서 조합놀이대의 장점을 잘 보여준다. 놀이터에 도착한 아이들은 일단 조합놀이대가 직접적으로 유도하는 방식에 따라 놀며 워밍업의 시간을 갖는다. 그러다 점차 조합놀이대를 중심에 두고 잡기 놀이를 시작한다. 어느 순간 아이들은 신발까지 벗고 무작정 도망가고 무작정 쫓아다닌다. 조합놀이대의 계단, 미끄럼, 기둥으로 쫓고 쫓기는 놀이는 더 흥미로워진다.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조합놀이대 놀이터 답사를 다니다보면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조합놀이대를 만날 수 있다. 서울 시내에서 코끼리 형태의 조합놀이대가 설치된 놀이터를 두 곳 볼 수 있었는데, 두 곳 모두 아이들이 좋아했다. 이 조합놀이대는 내부가 상당히 복잡해서 제일 높은 곳으로 오르는 경로가 다양하다. 누구는 직선거리를 선택할 수 있고 누구는 지그재그로 경로를 선택할 수 있어 응용의 범위가 넓다. 한 겨울날 이 시설이 설치된 놀이터를 방문했을 때 밖은 조용한데 내부는 왁자지껄했다. 들여다보니 아이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코끼리 뱃속을 종횡무진 누비며 놀고 있었다. 그런데 지역 주민들은 이 시설물이 폐쇄적이라며 싫어한다. 벌집 모양의 조합놀이대도 아이들한테 인기가 있다. 멀리서 보면 그냥 비어 있어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셀 하나하나에 아이들이 있다. 아이들은 사부작사부작 위아래로 옮겨 다니며 놀기도 하고 셀 하나에 자리 잡고 앉아 친구와 수다를 떨거나 오락을 하기도 한다. 이 벌집 모양 조합놀이대의 원형은 정글짐이라 할 수 있는데, 정글짐은 구름다리와 함께 아이들이 선호하는 기본 아이템이다. 최근에는 많이 설치되고 있지 않아 아쉽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아래 사진과 같은 형태의 조합놀이대도 아이들한테 인기가 있다. 시각적으로는 그리 멋지지 않지만 말이다. 이 조합놀이대의 장점은 이동 동선이 수직적으로, 수평적으로 연결된다는 데에 있다. 아이들은 끊어짐 없이 계단으로, 철봉으로, 구름사다리로, 좁은 다리로 옮겨 다니며 놀 수 있다. 경험이 길게 이어지기를 원하는 아이들의 놀이 욕구에 적합하다. 폐쇄적이지 않아 어느 곳에서나 오르고 내릴 수 있는 것도 장점이 된다. 이런 구조는 지탈(지옥탈출)을 하며 놀기에 좋다. 술래는 바닥(지옥 밖)에서 다른 친구들이 시설물(지옥)에서 탈출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놀이시설물 주변이 넓게 트여 있어 술래가 거침없이 놀이시설물 주변을 뛰어다닐 수 있는 것도 다행이다. 놀이대가 아니라 놀이를 디자인하기 그렇다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공원에 설치된 조합놀이대는 어떨까? 이 시설물은 멋진 놀이시설물의 하나로 인터넷에서 쉽게 검색이 된다. 그래서 “형태는 멋지지만 놀이시설물로서는 별로다”라고 말하기 쉽지가 않다. 하지만 경험상 아이들이 쉽게 지루함을 느낄 구조라고 평가하고 싶다. 통로는 하나뿐이고 사면이 막혀 있어서 아이들 스스로 동선을 구성하며 놀 수 없고, 기능도 기어오르기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한번 놀이시설물에 들어간 아이는 폐쇄된 통로를 따라 기어오르고 내리며 끝까지 완주해야 한다. 디자이너의 강력한 의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조합놀이대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재미없는 조합놀이대가 문제이고, 조합놀이대를 놓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의 놀이를 어떻게 지원할지 고민하지 않은 것이 문제다. 또 조합놀이대 디자인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어야 할 것은 외형이 아니라 어포던스이다. 우리나라처럼 어린이 놀이터로 주어지는 면적이 작고 밀도가 높은 곳에서는 조합놀이대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된다. 그렇다면 좋은 조합놀이대는 무엇이고 어떻게 잘 놓을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조합놀이대는 뻔한 놀이터의 주범으로 주목되지만, 잠재적 어포던스의 집약체이다. 걸어서 오르기, 기어서 오르기, 매달리기, 뛰어내리기, 미끄러지기 등등조합놀이대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재미없는 조합놀이대가 문제이다.우리나라처럼 놀이터 면적이 작은 곳에서는 조합놀이대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된다.좋은 조합놀이대는 무엇이고 어떻게 잘 놓을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김연금 조경작업소 울 소장
- 김연금 조경작업소 울 소장[email protected]
- 2018-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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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시아의 고대 국가 프리기아(Phrygia)의 왕 고르디아스는 자신의 전차에 아주 복잡한 매듭을 묶어두고 그 매듭을 푸는 자가 훗날 아시아를 정복하게 되리라는 예언을 했다. 많은 사람이 매듭을 풀기 위해 애썼지만 아무도 복잡하게 묶인 매듭을 풀지 못했다. 페르시아를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이 이 소문을 듣고 달려왔다. 그는 칼을 꺼내 전차에 묶인 매듭을 단숨에 잘라 버렸다. 그렇게 매듭은 전차에서 풀리게 되었고, 고르디아스의 예언처럼 훗날 알렉산더는 동방을 정복했다. 난해하고 복잡한 일 앞에서 우리는 차근차근 하나씩 풀어나가는 정공법만을 고집하곤 한다. 그러나 풀리지 않는 매듭을 칼로 잘라 버린 알렉산더처럼 때로는 근본부터 뒤집는 발상의 전환이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되기도 한다. 올 한 해도 조경계는 대내외적으로 많은 시련을 겪었다. 산림청은 나무의사 제도를 도입하면서 조경업체들이 해 온 방제 사업에 제동을 걸었다. 정원품셈 개발로 정원을 획일화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또 수목원, 정원, 도시림, 생활림 등을 설계·감리하는 산림기술용역업에 ‘녹지조경업’을 신설해 산림 분야가 조경에 진출하는 길을 열었다. 조경 기술자도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상호 간의 문을 여는 듯 했지만, ‘산림휴양업’ 등에서 조경이 산림 분야에 진입하는 데는 여전히 제약을 두어 “말로만 상생”을 이어간다는 비난을 받았다. 자연휴양림을 공원 시설로 추가하는 국토교통부의 ‘공원녹지법 시행규칙’ 개정안에 대한 논란도 컸다. 현행법에서 자연휴양림은 산림 사업으로 분류돼 산림사업법인만 조성할 수 있다. 따라서 도시 공원 조성은 엄연히 조경의 업역임에도 도시 공원 내에 조성되는 자연휴양림에 조경 업체가 참여할 수 없게 된다. 조경의 권익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 국토교통부 녹색도시과에 조경계가 불만을 가지는 이유다. 환경부도 도시생태 복원사업 대상지에 도시 공원과 녹지를 추가하는 ‘자연환경보전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지만, 조경 업계는 전통적으로 조경 공사업의 영역인 도시 공원에 도시생태 복원사업이 진입하는 것에 반대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환경부와 산림청이 각각 자연마당, 생태놀이터 등 도시생태 복원사업과 도시숲 및 정원 사업 대상지를 도시 공원으로 확대하는 전략으로 조경계에 타격을 주고 있다면, 건축 분야는 최근 서울시가 발주하는 외부 공간 설계에 건축가를 대거 투입시키면서 조경 설계 업체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서울로 7017’의 연계 사업인 이른바 ‘서울로 2단계 연결길 조성 사업’에 조경가가 아닌 공공 건축가 일색의 ‘골목건축가’ 방식을 도입하면서 조경 업계에 실망을 안겼다. 또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을 위한 국제 설계공모’에서는 당연히 조경 설계의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광장 디자인에 도시, 건축, 도로, 교통 등의 분야에도 동일한 참가 자격을 부여했다. 뿐만아니라 일곱 명의 심사위원회에 단 두 명의 조경가만을 참여시켜 이번에도 역시 ‘그들’을 위한 잔치에 조경을 들러리 세우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했다. 한국은 2018년 현재 전국의 54개 대학에 조경학과(유사 학과 포함)가 설치된 상태다. 우리보다 국토가 훨씬 넓은 미국과 중국과 비교할 때 대단히 많은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다. 외형적 수치만 본다면 굉장한 수준이지만 조경계 내부를 들여다보면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조경학과를 졸업하는 학생 대다수는 조경 분야로 진출하기를 주저하고 있다. 설계, 시공, 자재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조경 업체가 불황을 겪고 있다. 조경 업계가 과거의 성장을 이어가고 새로운 비전을 가지려면 학회가 중심이 되어 교수들은 선구적인 연구 개발로 기틀을 다지고, 관련 단체들은 분야의 안정적인 미래를 위한 제도적 틀을 마련해야 하며, 업계는 우수한 인재가 조경업을 계승할 수 있도록 후학들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최근 우리 분야 안팎의 여러 난관에 대한 조경 단체들의 대응은 여전히 구심점을 찾지 못해 조경 분야 전체의 생태계가 심각한 침체에 빠질 위기에 처해 있다. 타성에 젖은 조경 업계가 현실에 안주하면서 자초한 측면이 크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조경 분야의 목소리를 대변할 중앙 부처가 없다는 데 있다. 현재 조경 단체들의 소속 주관부서를 보자. 우선 한국조경학회, 한국경관학회, 한국조경협회, 대한건설협회 조경위원회, 대한전문건설협회 조경식재·시설물설치공사업협의회, 그리고 새로 창립한 대한환경조경단체총연합은 국토교통부 소속이다. 한국전통조경학회와 한국정원디자인학회는 문화체육관광부 소속이며, 환경부 소속으로는 환경조경발전재단과 한국생태복원협회가 있다.놀이시설·조경자재협회는 산업통상자원부 소속이고, 한국조경수협회는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기관인 산림청 소속이다. 매년 여러 조경 단체의 행사에 참석해 본 사람이라면 각기 다른 행사인데도 놀라울 정도로 매번 똑같은 사람들이 참석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조경은 확실히 보호해 줄 ‘아비’를 갖지 못하고 정부 부처 여기저기에서 서얼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국토교통부가 그래도 ‘아비’라고 철석같이 믿으며 보살펴 달라고 애원하지만 돌아오는 건 언제나 쉰밥 몇 알과 풀떼기가 고작이었다. 기존의 틀과 방식으로는 이제 위기를 극복할 가능성이 낮다. 고착된 사고의 틀과 고정 관념을 깨고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존의 판을 바꾸는 일이다. 국토교통부의 일개 녹색도시과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는 조경을 넘어 산림청과 환경부, 그리고 여러 부처에 흩어져 있는 관련 사업을 모두 아우르고 나아가 통일 한국의 전 국토를 우리 손으로 푸르게 가꿀 수 있는 강력한 녹색 정부 부처가 필요하다. 이름을 생각해 보았다. 국토녹색처? 국토환경부는 어떤가. 산림청보다 한 단계 높은 장관급의 중앙부서. 아무리 열심히 발버둥 쳐도 넘지 못할 장벽에 갇힌 조경의 미래를 위해 이제는 우리 스스로가 새 판을 짜야 한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걸 모두가 너무나 잘 알지만 복잡한 일을 목전에 두고 지나치게 좌고우면하면 오히려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많다. 이른바 장고 끝에 악수를 두는 격이다. 너무 단순해서 당연히 접어 둔 방법이 복잡한 일을 가장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묘수가 될 수도 있다.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단숨에 잘라버린 알렉산더 대왕처럼 조경계도 이제 과감한 결단을 내릴 용기가 필요한 때다. 박명권 환경과조경 발행인
- 박명권 환경과조경 발행인[email protected]
- 2018-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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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저지른 우리 문화재에 대한 만행은 끝이 없다. 대표적인 것이 미륵사지 석탑과 석굴암인데, 무너져가는 미륵사지석탑 한쪽을 시멘트 콘크리트로 발라 놓았고 석굴암은 원형을 알 수 없게 졸속 복원해 놓은 것이다. 심하게 훼손된 미륵사지석탑은 무려 20년 동안의 보수작업을 통해 겨우 원형을 찾았으며 석굴암의 경우 현재로선 원형복원의 가능성조차 없어 보인다. 문화재는 원형의 유지가 가장 중요하며 혹여 훼손이 있을 경우를 대비해 원형에 대한 정보를 되도록 상세하게 기록해 놓는 것이 기본 중 기본이다. 여기에 더해 본래의 모습을 확인하기 어렵다면 더 이상의 훼손이 진행되지 않도록 조치하는 것이다. 법에서도 원형유지를 기본원칙으로 명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아픔을 겪으면서 많은 문화유산들이 원형을 잃거나 사라졌다. 여기에 더해 현대화라는 이름을 빙자, 과거의 문화유산을 낡았다는 명목으로 상당부분 없애버렸다. 짧은 시간 막대한 훼손에도 불구하고, 유구한 역사를 바탕으로 쌓여온 수많은 역사문화유산이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역사적 부침이 많았던 우리나라의 특성상 문화유산의 관리가 쉽지 않은 것은 당연했으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어려운 문화재 관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화재의 보호와 복원을 포함하여 전문적이며 적극적인 관리를 위한 전담기관인 문화재청이 국가부서로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일부 문화유산 관리에 있어 문화재청은 실로 한심한 관리를 지금까지도 진행하고 있는 상태다. 무지에서 오는 것은 아닐 터인데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다. 일제강점기 때 훼손한 것보다 심각한 훼손이 21세기를 사는 지금 일제가 아닌, 우리 정부에서 자행하고 있는 것이라면 믿을 수 있을까?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는 수많은 역사문화재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 문화유산이라는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사라지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문화유산이 도처에 있다 한들 20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문화재는 손에 꼽는다. 이 중 대표적인 문화재가 문화재보호법 제정 이듬해인 1963년에 사적 제19호로 지정된 경주 계림이다. 김알지의 탄생설화로 잘 알려진 이곳은 신라의 건국 당시에도, 문화재로 지정될 당시에도 숲이었고 지금도 조그맣게나마 숲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이 문화재는 문화재로 지정한 이후 오히려 원형을 파악할 수조차 없게 더욱 심각하게 훼손된 독특한 사례다. 현재로선 문화재로서의 가장 기본원칙인 원형의 보존은커녕 원형이 무엇인지 알 길조차 없으며,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곳이 문화재로 지정된 이유는 역사적 탄생설화를 간직한 신성한 숲이라는 데 있다. 이미 신라시대 때부터 신성한 숲으로 보호되어 왔으니 그 보호역사는 가히 우리나라에서 최고라 할 것이다. 아마 가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2000년 이상 이곳이 온전히 보전되어온 오래된 숲이리라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문화재에 대해 원형이나 지정당시의 상태는커녕 현재도 제대로 된 정보 없이 훼손되어가고 있다. 계림은 신성한 숲이다. 숲에 대한 원형정보는 그곳에 사는 나무들에 대한 정보일 것이다. 살아있는 생명이니 2000년 동안 그대로 있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최소한 당시의 후대목이나 숲이 온전하게 이어지도록 하여 이곳을 최대한 신성한 원시림의 상태로 유지·보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곳을 문화재로 지정했을 것이다. 이 문화재의 근간이 되는 나무들에 대한 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문헌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조선의 임수(1938)인데, 만약 1963년 사적으로 지정할 당시 이들 정보화 당시의 수목에 대한 정보를 종합하여 원형을 유추하려 했다면 충분히 신성한 숲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 판단된다. 그러나 1990년대 말에 들어서야 개별 연구자들에 의해 조금씩 정보가 조사되기 시작한 게 전부이고, 아직까지도 이곳에 대한 정보는 어떤 나무들이 있다 정도의 개괄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 문화재 관리의 기본인 정보기록은 일체 없었지만 반대로 문화재 지정이후 이곳에서 발생한 명백한 사실은 급격한 훼손이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문화재 지정 이전 자연환경적 특성에 의해 자연스럽게 자리했었던 숲이, 즉 역사적으로 신성한 숲으로 유지되던 곳이 문화재 지정이후 환경적 특성과 무관한 외래종의 인위적 도입으로 문화재적 가치 및 역사적 장소성이 훼손되었다는 것이다. 이건 마치 경복궁의 지붕이 기와로 되어 있는 집이니 좀 더 아름답고 알록달록하게 스페인식 기와나 일본식 기와를 덕지덕지 덧붙인 것과 같은 상황이다. 그것도 원형과 관련한 아무런 정보를 기록하지 않은 채. 더 심각한 것은 숲이라는 문화재에 대한 인식 없이 숲의 터전인 토양과 물길을 훼손한 것이다. 물길을 인위적으로 돌리기 위해 수로를 만들고 원형의 늪지대 숲을 성토해서 본디 식물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 자체를 파괴해 버린 것이다. 신성한 숲의 원형 자체를 확인할 길이 없도록 한 실로 심각한 문화재 훼손이라 하겠다. 일제의 석굴암 복원 시 자연적 제습이치를 확인하지 않은 채 엉터리 복원을 실시한 것보다 훨씬 심각하게 문화재의 원형을 훼손한 사례다. 꾸준하고 지속적인 훼손이 문화재 보호를 기본 목적으로 하는 문화재청에 의해 자행되었다는 것은 실로 이해 불가다. 그리고 원형은커녕 현황자료도 없다? 2008년 대한민국 국보 1호가 소실되었을 때 아무 건축재료나 가져다가 집을 짓는 것을 인정했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해당 복원에 사용된 소나무가 생물학적으로 전혀 구분되지 않는 동일종, 즉 같은 나무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산인지 러시아산인지를 놓고 수년 동안 논란이 있었던 것을 떠올려 봤을 때 문화재의 원형복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숭례문의 복원은 다행히도 소실되기 이전 첨단 기술을 통해 정밀하게 측정한 정보자료가 있었기 때문에 소실에도 원형에 가깝게 복원될 수 있었다. 만약 원형자료가 없었더라도 아무렇게나 숭례문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문화재에 있어 원형정보는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함부로 할 수 없는 그런 것 아닌가? 이런 기본쯤이야 문화재를 전공하지 않은 나보다 문화재를 아끼고 사랑하는 수많은 전문가들이 훨씬 잘 알 것이다. 그런데 아무런 자료가 없다? 계림에 대한 구체적 정보는 정말 없어서인지, 일급기밀이라 정보를 안 주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조사된 정보가 없어 2015년 11월 개인적으로 계림의 수목을 측량하여 전수조사 한 바 있다. 아마도 이 기록이 2000년의 역사를 가진 계림의 정보를 이제야 처음으로 기록한 것이 아닌가 한다. 지형도 측량하였는데, 이미 훼손된 지형이기 때문에 큰 가치는 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현재의 훼손된 아픈 기록이기에 남겨두어야만 할 것 같았다. 조사결과 수고 2m 이상의 수목은 총 25종, 510주가 자라고 있었는데 이 숲에서 자연적으로 자라났을 것으로 판단되는 종이 14종이었고, 외부에서 도입된 수종이 14종이었다. 느티나무를 포함해서 4종은 자연적으로 자란 개체와 도입된 개체가 혼재하는 것으로 판단되고 가죽나무는 식재가 아닌 자연적으로 유입된 외래식물이다. 그런데 자연이입된 외래식물 또한 인위적인 수로의 조성과 성토로 인한 토양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큰 원인으로 판단되었다. 이렇게 보면 신성한 계림에 현재 살고 있는 수목 중 절반이 외부에서 인위적으로 들여온 수목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조선시대에 들여온 것으로 판단되는 회화나무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외래수목 도입이 문화재 지정 이후 최근에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숲이 문화재인데, 숲을 구성하는 수목을 역사적 고증 없이 아무것이나 마음 내키는 대로 가져다 심은 것으로밖에는 볼 수 없다. 명백히 전통적인, 신성한 숲과는 관계가 없을 것으로 판단되는, 외부에서 도입한 식물이 차지하는 개체의 비중이 36%를 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원형의 보전과는 무관하게 조경용 식재수목을 식재한 지역인 이곳을 과연 우리나라 역사의 핵심을 차지하는 신라의 건국신화와 직결한 신성한 숲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마치 전통 한옥의 일부만 남겨두고 한옥의 구성형태와는 상관없이 겉보기에 괜찮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재료를 모아 새롭게 지은 집을 과연 문화재라 볼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계림의 과거 지형자료와 현재 성토된 곳을 확인할 수 있는 일부를 바탕으로 원형을 유추해보면 이 숲은 소규모 계곡이 지속적으로 범람하면서 형성된 저지대 충적층에 형성된 숲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하천의 침식, 운반, 퇴적기능에서 퇴적이 이루어지는 지역에 해당한다. 따라서 토양 내 양분이 풍부하고 알갱이가 작은 점질토가 주를 이루는 공간인 것이다. 이러한 지형은 지속적 퇴적을 통해 식물이 이용할 수 있는 토심이 매우 깊고 양분도 풍부하며, 지속적으로 수분공급이 이루어져 수목이 자라기에 최적의 환경을 이룬다. 90년대 말 일부 연구자들은 이 숲을 조성된 숲으로 판단하였는데, 2000년을 이어온 신성한 숲이라는 측면에서 조성된 숲이라는 논리는 이치가 맞지 않는다. 2006년 이선 교수, 2011년 김종원 교수는 숲의 지형적 특징을 바탕으로 이 숲은 인간 간섭이 없다면 수면 가까이로는 왕버들, 조금 떨어진 곳으로는 느티나무와 팽나무가 우점하는 구조의 숲으로 판단하였다. 당연히 자연적으로 형성된 숲임을 강조하였다. 개인적으로는 느티나무가 계곡의 상류부, 즉 침식이 일어나는 계류부에서 주로 군락을 형성하는 수종임을 감안하면 느티나무의 경우 대부분 식재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느티나무는 조선시대부터 식재되었을 것으로 판단되는데 성리학의 상징수목인 회화나무 대신 느티나무가 동일한 수목으로 간주되어 식재되는 문화변용에 의한 식재로 판단된다. 종합해보면 계림의 지형적 특성과 대경목 수종 및 분포특성을 살펴봤을 때 충적저지대의 우점군락인 왕버들과 유교적 관점에서 식재된 것으로 판단되는 느티나무와 회화나무가 균형을 이루며, 생육하는 생태-문화적 숲으로 정의하는 것이 적합하다. 그러나 계림이 지닌 이러한 역사적·생태적 측면에서의 원형 보존을 위한 관리가 아닌 인위적인 성토와 배수를 위한 암거의 설치 등은 왕버들군락을 급격히 쇠퇴시키는 원인이 되었고 이제 다시는 어린 왕버들이 씨앗을 틔우지 못하는 역사숲의 단절을 가져온 것이다. 조금 지나면 왕버들 노거수가 스러질 것이며 후대목은 외부에서 공수한 조경수목이 차지할 처지에 있는 것이다. 2000년간 이어온 신성한 숲이 문화재 관리의 최고기관인 문화재청에 의해 이렇게 변한 것이다. 계림을 생태-문화가 복합된 역사문화재로서 원형유지를 관리의 기본원칙으로 판단한다면, 동측 비각을 중심으로 한 주변 지역은 생태적 관점에서의 팽나무나 느릅나무, 유교문화적 관점에서의 회화나무와 느티나무가 공존하는 숲이 원형에 가까울 것이며, 나머지 대부분 지역은 왕버들 우점군락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가장 우선적으로는 자연적으로 이러한 숲이 지속될 수 있도록 환경을 원형에 가깝게 복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서측에 광범위하게 식재된 신성한 숲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수목의 제거와 함께 성토된 토양을 걷어내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서측 대부분 지역의 성토현황은 계류에 합류되는 암거가 최근에 묻힌 것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계림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전체적인 조사를 통해 문화재 지정 이후 원형에 관계없이 성토된 토양을 정밀하게 확인한 후 제거작업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홍석환 등, 2017). 문화재를 지정한 이후 원형을 훼손하는 행위를 관리행위라 하는 경우는 없다. 이런 의미에서 현재 문화재청에서 관리하고 있는 역사적으로 신성시 되는 숲인 계림은 문화재로서 관리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비단 계림만이 아니라 수많은 자연문화재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재의 상황이다. 문화재청이 자연문화재의 지정을 확대하고 있는 시점에서 자연문화재 관리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할 때다.
- 홍석환 부산대학교 조경학과 교수[email protected]
- 2018-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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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해충학, 농약학, 잡초방제학, 병해충 감별, 수목외과수술…35년 전통의 국가기술자격증인 식물보호기사를 따기 위해 필요한 시험과목이다. 산림보호학과 수목병리학, 수목해충학, 수목생리학은 민간자격증인 수목보호기술자 자격증을 따는데 필요한 시험과목이다. 산림청이 올해부터 도입한 나무의사 자격을 따는데 필요한 과목은 수목병리학, 수목해충학, 수목생리학, 산림토양학, 수목관리학이다. 식물보호기사나 수목보호기술자 시험과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산림청은 기존에 나무병원을 하던 식물보호기사와 수목보호기술자를 모두 인정하지 않고 새로 도입된 나무의사 자격증을 따라고 한다. 시험에 응시하는 것도 편하지 않다. 나무의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전국에 10개밖에 없는 양성기관에서 200만 원에 가까운 수강료를 내고 150시간 이상 강의를 들어야 한다. 하지만 이 수업을 듣는다고 자격증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시험에 응시할 자격만 생긴다. ‘진짜 시험’은 이 수업을 모두 듣고 한국임업진흥원에 가서 치른다. 전국에 한국임업진흥원 단 한 곳이다. 전국에서 성업중인 나무병원이 600여 곳이고, 여기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을 감안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숫자다.돈과 시간만 필요한 게 아니다. 운까지 필요하다. 권역별로 한두 곳만 양성기관으로 지정된 탓에 수요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수상신청이 어려운 탓이다. 줄을 서는 것은 기본이고 수강생을 추첨으로 뽑는 양성기관도 있다. 대중교통이 발달한 서울은 그나마 수월한 편이다. 지방에서 강의를 듣기 위해서는 1~2시간 차를 타고 이동해야 된다. 양성기관이 전무한 제주도에는 무조건 육지로 나가야 된다. 인구가 1000만 명이 넘는 경기도에 있는 양성기관도 신구대학교 단 한 곳이다. 이동시간과 강의시간을 감안하면 수업이 있는 날은 영업에 큰 차질이 빚어지는 셈이다. 혹자는 일주일에 하루 이틀 문을 닫는 게 무슨 큰일이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다. 지자체에서 발주한 소규모 공공입찰로 생업을 이어가고 있는 보통의 나무병원 입장에서는 어렵다. 그런데도 산림청은 태연하다. 5년간의 유예기간을 줬으니 그 사이에 강의를 듣고 시험을 보라고 한다. 이론적으로 틀리진 않다. 산림청은 현재 나무병원 종사자 전원이 수강을 신청하고 여기에 추가 수요가 있더라도 2020년이면 전담교육기관에서 모두 강의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대부분의 종사자들은 생업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한다. 그 불안감 속에서 수강신청을 해야 되고 운 좋게 수강에 성공하더라도 매출 감소를 감수하고서 수업을 들어야 한다. 이 제도가 도입돼 가장 웃는 곳은 양성기관이다. 가만히 있어도 수많은 수강신청자가 몰리니 돈방석에 앉는 것은 시간 문제다. 상아탑을 지향하는 대학교에서 들으면 팔짝 뛸지 모르나 이건 부인할 수 없는 팩트다. 산림청이 나무의사 제도를 도입한 기본 배경은 무허가·무자격 업체들의 무분별한 방역이었다. 기존 나무병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양성기관에 돈벌이를 시켜줄 목적도 아니었다.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기존 나무병원을 인정하면 된다. 큰 차이도 없는 제도로 기존 시장을 흔들지 말고 혼돈을 줄이면서 효과를 극대화할 방향을 찾길 바란다. 현재 인천에서 나무병원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나무병원을 운영하려고 2015년 국가기술자격인 식물보호산업기사를 취득하여 나무병원 운영을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현장 경험 부족으로 나무병원 운영에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김씨가 생업인 나무병원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가족들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이기 때문이다.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선배 기술자들을 찾아다니며 기술을 익혔고, 나무 수술을 위하여 큰 나무에 올라갔다가 떨어져 죽을 뻔한 것도 여러 번이다. 또한 각종 수목관련 교육에 참석하여 공부하였고 이제는 국가기술자격인 식물보호기사로서 실력이 부족하지 않은 기술자로서 수목병해충 진단과 처방은 물론 강의도 가능한 기술 수준에 올랐다. 국민들에게 생소하였던 나무병원의 명함을 들고 학교 관공서 회사 등 나무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가서 나무병원을 홍보하고 수목의 중요성과 농약의 오남용을 홍보하여 거래처를 확보했다. 그러던 중 나무의사가 아닌 식물의사를 하겠다는 신념을 가지게 됐고 국가기술자격인 식물보호기사를 취득하였다. 나무의 진단 처방 진료를 위하여 식물보호산업기사 수목편을 선택하여 합격하고 다음으로 수목은 물론 잔디, 꽃 농작물의 처방 진단을 위하여 식물보호기사 시험에 합격하여 식물병원을 개원하고자 하는 이때에 정부에서는 나무의사 제도를 도입하고 나무병원의 운영자와 종사자에게 나무병원 운영을 5년으로 제한하는 산림보호법을 제정하여 그들의 삶을 무참하게 파괴하고 있다. 선처를 요구하는 기존의 식물보호기사 기술자에게 5년 동안 한시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며 생색을 내고 5년 안에 시험에 합격하라는 산림청의 행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젊은 사람들은 시험에 합격할 수도 있겠지만 60살이 넘은 기존의 기술자들이 생업에 종사하면서 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까. 만약 합격할 수 있다면 나무의사나 식물보호기사가 실력에서 무슨 차이가 있는가. 양성기관의 돈벌이를 위하여 나무의사 제도를 도입한 것이 아닌가. 비정규직도 정규직화여 삶의 질을 높이고 직업의 안정성을 높이고 있는 이때에 정식으로 국가에서 시행한 국가기술자격자를 누가 실력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인가. 시험에서 부정행위로 취득했다는 것인가. 과연 나무의사 시험 시 산림청 산하 기관에서 시험 문제는 공정하게 출제되었다고 믿을 수 있을까. 나무의사 제도 도입으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가정이 파괴되고 노숙자로 전락되어도 괜찮은가. 관계기관에 묻고 싶다. 성시융 대표 / 예송조경 * 기고문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성시융 예송조경 대표[email protected]
- 2018-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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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정원이 대중화돼가고 있다. 매달 여러 지역에서 새롭게 올라오는 마을정원 소식을 보면서 그것을 확인한다. 마을마다 저마다의 색깔을 내고자 고민한 흔적들을 보고, 골목마다 웃음꽃이 피는 마을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즐거움이 크다. 처음 마을정원 원고를 부탁받고 여러 생각을 하게 됐다. 많은 경험은 아니었지만 현장을 진행할 때마다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주어진 조건에서 배우는 것도 많았다. 역시 현장에서 배우고 느끼는 것이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동안 마을정원의 중심은 사람에서 출발하며 공간을 찾고 만드는 방법에서, 정원 프로그램에 이어 생활복지까지 이어지는 마을정원 이야기를 공유해 왔다. 이번 원고는 마을정원 브랜드 이야기다. 우리는 마을정원을 만드는 과정에서 왜 마을정원 브랜드를 만들어야 하는지, 어떻게 만들고 활용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처음 브랜드를 만들려고 했던 것은 마을정원이 환경 개선을 넘어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발전시키기 위해서였다. 마을정원 브랜드 기획을 시작하면서 이미 만들어져 있던 마을계획이 큰 도움이 됐다. 마을의 색깔을 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이미 마을에 대한 깊은 고민들이 계획안에 잘 담겨 있었다. 마을정원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마을계획이 필요하다. 마을의 큰 계획에 마을정원이 하나의 요소가 된다. 마을계획과 연계한 마을정원 브랜드 계획이어야 한다. 마을계획을 실천하는 방법에 정원이라는 요소가 때로는 마중물 사업과 같은 역할을 하고, 때로는 마을계획의 중심이 되는 역할도 동시에 하기 때문에 그렇다. 마을정원 브랜드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마을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보여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의 마을은 어떤 색상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확인하며 브랜드에 담고 싶었다. 정감 있고 자연환경이 좋은 마을 이미지를 브랜드 안에 담기 시작했다. 이 작업을 돕기 위해 별도의 전문가 그룹을 초대했다. 경제와 마케팅 전문가다. 마을정원 브랜드가 가지는 의미가 마을경제 공동체와 연계되고 그 정신을 공유할 수 있는 실험 모델 사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각적으로 잘 정리된 이미지도 필요했다. 마을사람들이 모여 그동안 작업한 결과물을 마주했다. 결정을 해야 할 때인데, 어딘지 모르게 모두 망설이고 있었다. 어느 구석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두의 마음에 쏙 들지 않았다. 다시 열띤 토론을 시작했다. 결국 다음에 결정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우리 모두 긴장했다. 브랜드 개발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그동안 기다리고 나눈 시간을 생각하면 더 시간을 들인다고 해서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상상하기 시작했다. 맞고 틀린 답을 찾기 보다는 그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단어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 때 누군가의 입에서 ‘톡톡’이라는 말이 흘러나오자 모두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이렇게 태어난 것이 마을정원 브랜드의 첫 시작이 됐다. 지금은 시범 모델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씨앗은행 및 모종사업, 정기적인 실내·외 정원관리 상담소 운영, 정원관리 공구 임대, 엄마정원사 양육을 통한 정원프로그램 개발 등을 기획하고 있다. 또한 마을 상점가 사람들과의 연계도 고려하고 있다. 마을의 많은 유·무형의 자원을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지가 지속가능성에 있어 핵심이 되기 때문이다. 마을정원 브랜드의 가치에 동참하는 상점은 주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마을정원 브랜드로 자리 할 수 있는 작은 서비스 공간이 된다. 마을정원 브랜드를 달고 있는 상점은 마을과 공동의 약속을 한다. 개인의 사업으로 머물기 보다는 마을과 함께 참여하고 성장하는 계기를 만드는 데 동참하는 작은 공동체로서 참여한다는 약속이다. 얼마 전에는 몇 개의 마을정원 관계자들이 모여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를 가졌다 물론 공식적인 모임은 아니지만, 한 마을의 고민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고민하고 성장하는 기회를 만들기 위한 자리였다. 그동안의 사업에 대해 나누고,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정원이 개인의 일상적인 공간을 넘어 사회로 나왔다. 그리고 그 시작점에서 마을정원이 한 부분으로 시작을 알리고 있다고 본다. 마을에 사람을 남기고 정원문화를 꽃피울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고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급하게 서둘러 성과를 보려고 하지 말고 천천히 모든 과정 그 자체에 의미를 두고 갔으면 한다. 앞으로 더 많은 마을과 또는 마을정원을 준비하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그 영역을 만들고 성숙한 정원문화로 나가게 될 것이다.
- 이성현 푸르네 대표 정원사[email protected]
- 2018-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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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여 명이 찾은 서울 어린이놀이터 국제심포지엄 이전 글과 이번 글의 사이에, ‘놀고 싶은 서울, 놀이터의 미래를 말하다’라는 제목으로 서울 어린이놀이터 국제심포지엄이 있었다. 나는 조직위원회의 일원으로 기획부터 행사 진행까지 전 과정을 함께 하며 좋은 경험을 했다. 정책부터 실행까지 다양한 분야의 분들을 모시기 위해 각종 문헌과 인터넷 사이트를 훑었고, 설레는 마음으로 생면부지의 외국인한테 초대의 뜻을 전하는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어렵게 보낸 초대의 이메일에 응하는 답변을 받을 때는 짜릿한 즐거움이 있었으나 상대방의 질문에 답하며 의견을 조율하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 현장을 객관적 언어로 정리하는 일은 그 자체로 좋은 배움이었다. 서울시에 따르면 심포지엄 당일 760여 명이 등록했다고 한다. 참석자들은 넓은 강당의 좌석과 계단까지 모두 채워 앉았다. 어린이 놀이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었다. 더불어 교육, 복지, 도시, 놀이터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원, 공무원, 활동가 등 다양한 역할의 사람들이 참석해 놀이터는 그야말로 융합적 주제라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심포지엄에서는 여러 나라의 정책 구조에서부터 만들고 관리하는 작업까지를 짧지만 밀도 있게 볼 수 있었다. 웨일스의 놀이 정책에서는 국가 단위에서의 비전과 정책의 필요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독일의 볼프스부르크 시 사례에서는 ‘아동 친화적 도시’ 이행계획이 문건으로 머물지 않고 놀이터의 개념과 조성 방식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볼 수 있었다. 마커스 베르만(Marcus Veerman)의 발표에서는 오스트리아의 다양한 일상적 공간에서 나타나는 아이들의 놀이에 대한 사회적 태도를 볼 수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학교 공간의 변화, 일본의 놀이 활동가들의 역할은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여러 활동이 보다 성숙해지는데 도움이 될 듯 했다. 한국 발표자들의 발표 내용에는 최근 한국에서의 왕성한 연구와 실험이 잘 담겨져 있었다. 그들 고유의 방식 네덜란드의 레넛 코르탈스 알터스(Renet KORTHALS ALTES)와 호주의 마커스 베르만은 좀 더 머물며 심포지엄에서 다 보여주지 못한 자신의 경험을 공유해 주었다. 레넛 코르탈스 알터스는 심포지엄 다음 날 서울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 강의를 했고, 마커스 베르만은 심포지엄 다음 날부터 이틀간 문화비축기지에서 10여 명의 국내 놀이 및 놀이터 디자인 전문가들과 워크숍을 진행했다. 나는 운이 좋게도 두 개의 행사에 모두 참여할 수 있었다. 공공영역의 놀이터는 지역사회가 교류하는 장인만큼 다양한 이들의 논의가 필요하고, 놀이터 이용 당사자인 아이들의 참여는 매우 중요하다. 이에 실천가들이나 디자이너들은 효과적으로 과정을 이끌기 위한 자신만의 방식을 개발해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장에서 직접 놀이터를 만드는 이 두 사람도 자신만의 철학이 담긴 고유의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건축가이면서 초등학교 교사 자격을 가지고 있는 레넛 코르탈스 알터스는 자신이 개발한 ‘문제에 대한 공동의 주인의식, 대화, 협력설계, 협력 시공’이라는 과정을 심도 있게 설명해 주었다. 어떤 시설을 원하는지 묻기 보다는 느낌을 물어보면서 아이들이 원하는 디자인을 이끌어내는 그녀의 소통 기법은 나중에 따라하게 될 듯하다. 어른들과의 워크숍 경험을 설명하면서는 ‘angry citizen’이라는 표현을 써서 주민들이 행정에 불만이 많은 건 우리나라와 다르지 않다 싶었다. 마커스 베르만은 동남아, 아프리카 등지에서 지역에서 발견한 값 싼 재료로 현지인들과 놀이터를 짓는 경험이 담긴 디자인 워크숍 방식을 공유해 주었다. 참여한 사람들의 어린 시절 기억에서 놀이터 디자인의 요소를 찾아내는 참여 디자인 기법은 흥미로워 이 또한 이후 따라하게 될 것 같고, 여러 명의 디자인을 하나로 모으는 역량은 부러웠다. 선진 사례를 듣는 자리가 아닌 교류의 자리 외국에서 온 발표자들은 심포지엄 이후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한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여러 실험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그들은 한국은 서구에서 겪었던 시행착오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보였고, 앞으로는 자신들이 오히려 한국에서 연구하고 활동하는 분들을 모셔서 한 수 배워야 할 것 같다는 덕담을 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이번 심포지엄의 가장 큰 성과는 벤치마킹할 수 있는 외국의 선진 사례를 보았다기보다는,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이 틀리지 않다는 것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는 데 있지 않나 싶다. 우리가 그들에게 한 수 배우는 장이라기보다는 우리의 활동을 알리고, 공통분모와 차이를 공유하는 교류의 장. 더불어 앞으로 나아가야 방향을 함께 모색해보는 장. 이제까지 우리는 불안한 시선으로 주변을 흘깃거리며 급히 달려왔다면, 앞으로는 우리의 현장에 시선을 두고 천천히 나아가야 할 듯하다. 너무 쉽게 실망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이번 국제심포지엄의 성과는 외국의 선진 사례를 보았다기보다우리가 걷고 있는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가진 것에 있다.이제까지 우리는 주변을 흘깃거리며 불안하게 달려왔지만 앞으로의 우리는 현장에 시선을 두고 너무 쉽게 실망하지 않으면서 나아가야 한다. 김연금 조경작업소 울 소장
- 김연금 조경작업소 울 소장[email protected]
- 2018-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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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사람이 없다고들 한다. 조경학과를 졸업하는 이들이 한 해 수백 명에 달하지만, 조경설계사무소는 늘 구인난에 허덕인다. 한때 조경학과 졸업생들에게 설계사무소가 취업 희망 1순위였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은 잊힌 지 오래다. 일간지 사회면을 장식하는 일자리가 없다는 아우성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설계 잘하는 학생 = 공부 잘하는 학생’의 등식도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우리 때는 공부 잘하는 학생, 그러니까 설계 잘하는 상위권 아이들 몇 명만 설계사무소에 취업할 수 있었어. 설계사무소가 많지 않았거든. 설계를 하고 싶은 학생은 많은데 자리가 많지 않으니까, 결국 상위권 아이들만 설계사무소에 들어갈 수 있었지. 공무원, 공사, 건설사는 설계사무소에 취업 못한 친구들의 차선책이었어.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게 믿겨?”얼마 전, 직원을 새로 뽑지 못해 걱정이라던 어느 설계사무소 소장이 들려준 오래 전 이야기다. “조경설계사무소가 꽤 늘었다. 불과 몇 년 사이의 급증이다. 공동주택단지와 턴키 프로젝트 조경설계 물량이 증가한 덕분이다. 혹자는 조경설계의 특성상 조직의 대형화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연차가 찬 실장급의 독립이 신생 조경설계사무소의 등장을 견인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 설계사무소를 새로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욕망하는 것은 무엇일까? 불가피하게 독립할 수밖에 없는 여건에 내몰린 이도 있을 것이고, 주판알을 꼼꼼하게 튕겨본 결과 창업을 결심한 이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자기만의 설계를 해보고 싶은 열망이 홀로서기라는 선택으로 연결된 경우가 많을 것이다.” 10년 전에 썼던 글의 일부다. 30명, 50명, 100명 이상의 조경설계사무소가 등장한 시기였다. 한국 조경의 미래가 장밋빛으로 빛나던 시절이었다. 조경설계사무소만 참여할 수 있는 굵직한 공모전도 꽤 열렸고, 사회적으로 주목 받는 대형 공원 프로젝트도 연이어 추진되었다. 그러나 그 기세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굳이 설계사무소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지금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연봉 격차가 너무 커졌어. 근무 환경도 천양지차고. 한쪽에서는 주 52시간 근무제를 이야기하는데, 조경설계사무소는 ‘그래도 예전처럼 철야는 안 한다’는 걸 내세울 수밖에 없어. 설계비가 예전 그대로이니 어쩔 수 없는 거지. 이러니 뛰어난 친구들을 뽑을 수 있겠어?” “모두가 연봉이나 근무 환경 때문에 직업을 택하지는 안잖아? 일이 좋아서 직업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지 않나?” “그건 정말 극소수지. 뭐랄까, 요즘 설계 스튜디오는 설계하고 싶은 학생들이 없으니 ‘교양 설계’ 같은 느낌이야. 공무원이나 공사나 건설사에 들어가더라도 설계를 좀 알아야 한다고 학생들에게 읍소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어.” “일의 매력이 아니라 직업으로서의 조경설계의 장점은 없을까?” “정년이 없다는 점이 장점이지. 건설사는 정년까지 근무하기가 쉽지 않잖아. 설계는 본인만 잘하면 일흔 넘어서도 할 수 있고.” 이 이야기를 들려주던 그의 표정은 대화 내용만큼 어둡지는 않았다. 여기에 옮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설계를 재미있어하는 씩씩한 아이들이 있다’며 그 아이들에 대한 칭찬에 눈이 빛나기도 했다. 자신을 포함한 교수들의 잘못도 크다며 학생들이 ‘즐겁게 설계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지 못한 점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사명감? 글쎄’라고 말한다. 대신 디자인 자체의 즐거움에 대해 말한다. 단가 높고 좋은 프로젝트가 많지 않은 이 때, 각자가 나름의 즐거움을 찾아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를 만난 건 토요일 오후 그의 사무실이었는데 그는 홀로 설계를 하고 있었고, 그 시간처럼 혼자 사무실에 앉아 연필을 사각거리며 디자인할 때가 즐겁다고 한다. 무언가를 생산해 내는 즐거움. 그래서 그가 직원들한테 조언하는 건 스스로의 포트폴리오를 차근차근 만들어가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회사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알 수 없지만 각자의 포트폴리오는 지속되지 않겠냐고 한다. … 그는 자기 생각을 실현할 수 있는 직업이 얼마나 있겠냐며, 조경이 그래서 좋다고 한다. 이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계속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보기 때문에 방학마다 인턴을 꼭 받는다고 한다.” 환경과조경이 올해 처음으로 제정한 ‘젊은 조경가’ 공모의 취지문을 작성할 때 읽은 글(김연금, ‘요즘 애들은… 그런데 당신은?’, 『조경이 그리는 미래』, 도서출판 한숲)이다. 글쓴이의 양해를 구해, 홈페이지에 게재한 공모 안내문에도 실었다. 두 가지가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각자가 즐거움을 찾아야 하지 않겠냐”는 대목과 “이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계속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한국 조경의 어두운 미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져가는 이 때, 스스로의 작업을 즐거워하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이들보다 소중한 자산이 있을까? “조경 설계에 몸담으며, 조경을 삶으로 여긴지 16년이 되었습니다. 조경을 함에 있어 득과 실을 따지기보다, 설계에 대한 개인의 무모한 욕심에 기대어 지금까지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 젊은 조경가들의 약진이 필요한 때입니다. 변화의 시작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제1회 젊은 조경가 공모에 지원한 어느 조경가의 자기소개서 중 일부다. 스스로가 좋아서 자신의 길을 개척해가는 이들의 오늘을, 그들의 작업을 응원한다. 누군가의 말처럼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법이니까. 하지만, 조경의 매력만으로는 역부족일 것이다. 길의 입구에서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다른 길을 찾아 떠나는 이들이 대다수라면 말이다. 조금이라도 그 길을 걸어보아야 계속 걸을만한 길인지 판단할 수 있을 테니까. ‘그동안 새로운 길을 내는 데에만 골몰한 나머지, 이미 지나 온 길이 얼마나 탄탄한지 꼼꼼히 살피지 못한 탓일까?’ ‘변화의 시작은 결국 사람일 텐데, 길의 입구에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의 발걸음을 어떻게 돌릴 수 있을까?’ 물음표만 남긴 채 글을 닫는다. 그래도 다행이다 싶다. 아직 가야할 길이 남아 있으니까, 함께 걷는 이들이 아직은 있으니까… 남기준 / 환경과조경 편집장
- 남기준 편집장 [email protected]
- 2018-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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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일찍이 공자는 옛것을 읽히고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자세의 중요성을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러한 자세는 세상이 디지털화가 되어 가는 현재에도 여전히 필요하다. 주변에서 옛것을 읽히고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이다. 대동여지도는 고산자(古山子) 김정호가 1861년에 제작한 한반도의 지도이다. 이 지도는 산줄기와 물줄기가 표시되고, 그 위에 도읍과 주요 도로를 표시하여 도읍간 거리를 알 수 있도록 했다. 즉 현대 지형도가 도로나 건물 등 인공구조물을 중심으로 도시를 표현하고 있다면, 대동여지도는 산줄기와 물줄기의 자연경계로 도읍을 표시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 훌륭한 고지도가 전시의 대상이나 책에만 머물러야 하는 것은 매우 아쉽다. 대동여지도의 자연경계를 중심에 두고 도읍을 표시하는 거시적 시각이 필요한 부분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현대 사회가 나누고 분해해서 정교화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지만 반대로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해결되는 문제가 의외로 많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나라 산지의 보전과 이용을 정하는 산지구분이다. 산지구분은 해당 필지의 경사도와 임목밀도를 이용하여 보전과 이용을 구분한다. 이러한 이유로 산정상부 또는 능선부에 완만한 지역이 개발이 가능한 준보전산지가 되고, 오히려 산자락 하단부가 보전산지가 되는 역전현상이 발생한다. 이것은 부분만 보고 전체를 못 보는 맥락적 이해가 부족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맥락적 이해를 한 상태에서도 이를 구체적으로 표현해줄 수단이 없으면 실제 적용할 수가 없다. 만약 대동여지도가 산지구분에 사용되었다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대동여지도는 조선시대의 고지도로, 현대적인 측량에 기반을 두지 않고 제작되어 현재의 산줄기·물줄기와 불일치한 부분이 많다. 이러한 이유로 대동여지도는 실생활에서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전시용이나 교과서에서만 존재하고 있다. 다행인 것은 최근 한반도의 산줄기·물줄기를 체계적으로 재조명하는 기초 연구가 산림청 R&D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이 연구를 통해서 한반도의 기초적인 산수체계를 확인했다. 이를 토대로 산줄기 표준화 및 명명 등의 후속 연구를 통해서 조선시대의 대동여지도를 21세기의 디지털 대동여지도가 제작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향후 디지털 대동여지도가 제작되면 실제 공간계획 단계에서 하나의 필지와 사면을 뛰어넘어 산, 집수구, 유역, 한반도 등의 거시적 공간스케일에서 맥락적 이해가 가능해질 것이다. 기후변화에 대응한 회복탄력성이 높은 산지관리뿐만 아니라 통일 이후 북한의 지속가능한 개발에도 거시적 통찰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손학기 박사 / 한국농촌경제연구원
- 손학기 박사
- 2018-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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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개월간 전국 곳곳에서 마을정원 조성과 축제가 이어졌다. 인터넷 기사 검색을 해보니 전국 곳곳에서 마을정원, 공동체정원 등 다양한 명칭으로 마을정원이 조성되고 있었다. 각 지역의 특성을 잘 살리려는 노력이 숨어있어 고맙다. 물론 아직까지도 기초를 잡지 못하고 있거나 과거의 방법을 따라가는 곳도 보이지만 마을정원이 잘 성장해 가는 것으로 보인다. 주민이 정원사가 되는 톤즈행복마을 정원축제, 우리의 손주들을 위한 그랜드 마마 정원축제, 공룡나라 두레-팜 그리고 농진청이 주관하는 전주시 중노소동 문화1길 꽃-장(부제 사람이 묻고 꽃이 답하다) 도시농업 인문전시관이 그렇다. 생활 속에 쉽고 깊이 자리할 수 있는 마을정원도 있었다. ‘정원을 만나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마을정원 축제, 마을정원 관람하며 이웃과 소통하고 정(情)을 담아 가는 마을정원, 생활 속 정원문화 확산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경기정원문화박람회’와 ‘꽃 피는 서울상’이 그렇다. 파주시는 아름다운 정원을 둘러보는 정원투어링을 소개했고, 종교건축물도 교회의 문턱을 낮춘 치유공간도 공동체 정원의 다양한 사례가 되고 있다. 정말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있는 마을정원이 펼쳐진 가을이다. 대부분의 마을정원이 환경개선과 더불어 이웃 간의 소통을 중요시 여기고 마을의 유·무형의 자산을 활용한 마을정원으로 방향을 잡고 진행됐다. 이제 마을정원은 더 넓고 깊게 마을 안으로 들어가 시민들과 접촉할 것이라 기대한다. 이런 시점에 나는 마을정원이 마을의 환경 개선과 소통을 넘어설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는 상상을 해본다. 정원이 가지는 고유의 역할을 넘어 복지와 산업, 문화와 접목해 생활복지를 이루는 것이다. 생활복지는 마을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지속가능한 복지를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 마을정원은 지금의 환경 개선을 넘어서는 계획과 준비가 필요하다. 마을정원을 좀 더 총체적인 관점에서 기획할 필요가 있다. 마을의 유·무형 자원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고 발전시킬 수 있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마을사람의 생활복지에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도 깊이 고민해야 한다. 이 고민을 시작하면서 두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먼저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마을정원협의체를 구성하는 일이다. 아직 마을정원에 대한 협의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지속가능한 정원을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하는지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의 현장에서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 협의체는 서로의 장점을 배우고 공유하며 발전시키는 동력이 될 것이다.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고, 높은 수준의 정원을 완성하는 것으로 마을정원이 잘 되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을정원은 우리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생활복지를 누릴 수 있는 장이 되어야 할 것이란 생각이다. 두 번째는 마을정원 리더그룹을 양성하는 것이다. 마을정원의 주인은 그 마을사람이다. 마을에 거주하며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스스로가 마을의 자원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리더그룹이 잘 훈련돼야 한다. 회의 테이블에서만 마을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길거리에 서서 또는 마주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들으며 그들의 마음을 읽고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 리더그룹 없이 마을정원이 조성되면 자칫 핵심은 없이 겉만 화려한 정원이 만들어질 우려가 있다. 얼마 전 마을정원 조성 후 시청으로 민원이 접수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이 민원을 접하고 고민에 빠졌다. 건조한 민원으로 받아들이거나 단순하게 해결하지 않았으면 해서다. 의견을 제시한 사람의 입장에서 좀 더 생각하고 공동체 의식으로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싶었다. 그래서 즉각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기보다는 의견을 제시한 사람의 이야기를 깊이 들어주고 이해하려 했다. 이에 그 주민과 충분히 토론하며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지 함께 찾아가는 중이다. 아직 해결책을 완벽하게 찾지는 못했지만 함께 고민하는 계기를 만들어 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지금은 마을 리더들이 문제해결 능력에 근육을 붙이는 훈련을 받고 있다. 마을정원은 생활복지로 이어지기 때문에 마을정원리더 그룹을 양성하는 것이 더욱 절실한 시점이다. 앞으로 이들은 마을의 진단과 계획 그리고 기획과 운영을 맡게 된다. 마을마다 정원을 깊이 이해하고 경험한 리더그룹이 있다면 마을정원은 문화로 꽃피리라 기대한다. 그 꽃이 피는 데는 사람들을 깊이 만나는 연대와 훈련된 리더그룹을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정원사에게 겨울은 충분히 상상하며 준비하는 시간이 된다. 다가오는 겨울은 마을정원 리더그룹 성장의 기회를 마련해보고자 한다.
- 이성현 푸르네 대표 정원사[email protected]
- 2018-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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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글과 이번 글 사이에, 네덜란드의 놀이터를 답사하고 왔다. 특정 시간에, 특정 지점에서, 특정 각도로 찍힌,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멋진 해외 사례’ 이미지의 실제 안과 밖을 볼 수 있었다. 이미지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재료와 규격을 보았고, 이미지 속 놀이시설물이 놓인 놀이터와 놀이터가 위치한 지역사회를 보았다. 그리고 시간! 놀이터에 새겨진 시간, 놀이터가 만드는 시간도 잠깐이나마 보았다. 이미지에 덧붙여지는 ‘조성 의도’ 이후의 현재도 읽을 수 있었다. 특별한 놀이터 이미지의 안과 밖 보기 어떤 놀이터에서는 시설물의 디테일에 감탄했다. 비록 작은 규모의 시설물이었으나 아이들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요소요소가 세심하게 디자인돼 있었다. 이 놀이시설물에 한번 올라간 아이는 땅에 발을 내려놓지 않을 듯했다. 또 다른 놀이터는 달리고, 오르고, 미끄럼 타고자 하는 아이들의 놀이 욕구를 아주 잘 담아내고 있어 아이들의 정신을 쏙 빼놓고 있었다. 어느 곳의 그물 터널은 높기도 높지만 다이내믹하게 휘어 있어 어른인 내가 타도 아찔했다. 물론 실망스러운 놀이터도 꽤 있었다. 어떤 곳은 관리를 게을리 하고 있는지 뜯겨진 고무칩 포장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조형성 자체는 훌륭하지만 놀이 활동을 제대로 제공하고 있지 않아 조각품인지 놀이시설물인지 구별되지 않는 놀이시설물도 있었다. 또 어떤 놀이터는 이미지에서 상상한 것 보다 규모가 작아 책에 나열된 조성 의도와 예상 활동을 모두 수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였다. 보편적 놀이터에서 읽는 놀이터 조성의 조건 특별한 놀이터를 찾아가는 길에서 만난 보편적 놀이터는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뻔한 놀이터의 주범으로 이야기되는 4종 세트로 조성된 놀이터가 주를 이루었고 디자인은 단순했다. 조합놀이대는 규모가 작았고, 놀이 제공에 있어서는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조합놀이대보다 제한적인 경우가 많았다. 네덜란드에서도 포장의 대부분은 고무칩이나 인조잔디였다. 관리 상태도 그리 좋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전반적인 놀이 환경은 우리나라보다 나아 보였다. 이전 글에서 언급한 우리나라의 놀이터 조성 조건과 비교해 본다면, 먼저 도시 내의 풍부한 오픈 스페이스가 있어서 굳이 작은 어린이 공원에서 모든 주민의 야외 활동 욕구를 해결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러니 공간을 둘러싼 세대 간 갈등도 없지 않을까 싶다. 비록 하나의 조합놀이대만 놓인 작은 규모이지만 도시 곳곳에 놀이터가 있어서 아이들은 어디에서든 놀 수 있을 듯했다. 우리나라처럼 하나의 작은 놀이터에서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아이들 놀이 활동을 모두 수용할 필요도 없어 보였다. 한 쪽에 축구장이나 공을 찰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이 마련된 공원이나, 연령대별로 놀이 공간을 구분해 놓은 공원도 꽤 볼 수 있었다. 물론 관련 법규며 정책을 살펴봐야 보다 정확한 비교가 가능할 것이다. 네덜란드에서 만난 보편적 놀이터는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도시 내 풍부한 오픈 스페이스가 있어서 굳이 작은 어린이 공원에서 모든 주민의 야외 활동 욕구를 해결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비록 하나의 조합놀이대만 놓인 작은 규모이지만 도시 곳곳에 놀이터가 있어서 아이들은 어디에서든 놀 수 있을 듯했다. 놀이에 대한 허용성 특별히 디자인된 놀이터건 보편적 놀이터건, 실제 인상적인 놀이터로 기억에 남는 곳은 아이들이 놀면서 내지르는 소리가 가득한 곳이었다. 구글 지도를 보며 놀이터를 찾다가, 멀리서 아이들의 소리가 들려 달려간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놀이터에서 만난 아이들과 나눈 짧은 교감도 답사의 즐거움이었다. 한 아이는 “이 놀이터를 좋아하냐?”는 낯선 이의 질문에, “매우 좋아한다”는 답과 함께 “놀이터가 만들어진 지는 5년 되었다”는 정보를 주면서 놀이시설물 이용 방법을 시연해주었다. 또 까만 머리와 까만 눈의 동양 아이는 자신과 닮은 외모가 반가웠는지, 내 손을 잡고 놀이터 한 쪽으로 가서는 죽은 나무에서 자라고 있는 버섯을 보여주었다. 비밀을 공유해준 것이다. 어느 오후, 한 주택단지 내부의 광장에서 만난 풍경도 인상에 남는다. 네댓 명의 아이들이 바닥 전체를 스케치북 삼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한 아이는 네덜란드의 국기를 수줍게 그려 환영의 뜻을 전해주기도 했다. 그 아이의 할머니는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아이와 끊임없이 큰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고, 우리에게도 잘 가라는 인사를 했다. 우리가 떠난 후 할머니는 저녁밥 먹으라고 아이를 부르지 않았을까? 그 곳 이외에도 많은 곳에서 아이들의 낙서를, 아이들이 논 흔적을 볼 수 있었다. 바닥 어느 곳에서건 그림을 그려도 된다는 허용성. 주변 눈치 보지 않고 바닥에 철퍼덕 앉아 그림을 천진하게 그리는 아이들, 그 풍경이 무엇보다 부러웠다. 김연금 조경작업소 울 소장
- 김연금 조경작업소 울 소장[email protected]
- 2018-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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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장식 : 조경에 대한 선입견 과거 건축, 도시, 토목 등 관련 분야와 함께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험이 있다. 이 때 조경의 역할은 ‘장식’이었다. 이런 선입견은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여전히 비전문가들은 조경에게 한정된 역할만을 요구하고 있다. 알다시피 현대 조경의 시작은, 옴스테드(F. L. Olmsted)의 센트럴파크(Central Park)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중요한 화두는 급속한 도시 개발에 따른 도시 환경문제의 해결이었다. 즉, 조경의 목적과 역할은 개발에 따른 도시 환경문제의 해결에 있다는 것이다. 도시 환경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자원의 효율적 관리, 에너지 절감, 기후 조절 등이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들을 슬기롭게 해쳐나갈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조경분야의 역할이다. 나아가 인류의 일상적 삶의 영역인 문화 형성은 도시 사회 문제 해결에도 기여할 것이다. 따라서 조경의 사회적 역할은 환경문제라는 거대한 담론을 통해 형성되어 온 것이며,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것이 조경분야라는 인식의 확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생태 : 조경의 기본철학 생태학은 생물 상호간의 관계 및 생물과 환경과의 관계를 연구하여 밝혀내고자 하는 데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생태계를 생물과 관련된 자연환경에 한정해서 생각하기보다 인간도 자연 생태계의 일원으로 간주한다면, 생태계는 자연환경과 인간사회를 총칭하는 의미로 확장된다. 모든 물질들이 기계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서로 얽혀 있는 가운데, 흙, 물, 나무, 동물, 그리고 인간이 포함된 모든 존재는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런 관계를 ‘생태계’라고 할 수 있으며, 인간의 존재 가치가 다른 생물체와 유사하다고 보는 관점을 ‘생태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따라서 조경이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추구하는 분야라면 생태적 사고는 조경의 기본이다. 생물환경의 보전과 함께 물질 순환과 에너지 흐름에 바탕을 둔 자연자원의 합리적인 이용 관리는 생태학 분야의 주요 과제이며,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고체계이다. 환경 : 조경의 대상 현대의 환경문제는 근본적으로 생태계의 중요한 요소인 물질 순환과 에너지 흐름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는 산업혁명으로 인한 지구 자원의 남용에 따른 결과로 알려져 있다. 조경의 기본 목표는 생태계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긴밀한 상호작용을 돕고, 엔트로피의 조절을 통하여 원활한 에너지의 흐름을 확보하는데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지구의 환경문제를 개선하는 데 있다. 하지만 이러한 조경분야의 필요성은 일반인들에게 직접적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조경의 면적의 확대가 가져오는 환경적, 사회적 이점들을 인식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조경분야가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 노력의 결과는 실제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의 데이터가 필요하다. 현대 환경의 중요 화두는 급속하게 변하는 기후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이다. 특히 금년과 같은 무더위의 원인은 거시적으로는 지구온난화와 미시적으로는 도시열섬현상의 합작품으로 볼 수 있다. 인간은 지면 피복을 변화시켜 중요한 기후학적 인자를 변화시킬 수 있다. 조경 면적의 확대는 이러한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이다. 조경 면적이 1㎡ 증가될 때, 생태적인 관점에서 물질 순환에 기여하는 수준이나, 에너지 사용량의 감소 효과는 얼마나 될까? 어떤 연구에서는 한여름 도시 내 식재지와 도로 위의 기온을 비교해 보면 최소 2~6℃ 이상의 기온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일견 당연한 연구결과로 보이겠지만, 이를 통해 외기 온도가 1℃ 낮아질 때 여름의 냉방을 위한 에너지 사용을 줄임으로써, 전체 에너지 사용량의 감소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국내 조경분야의 환경 조절과 같은 데이터 축적량은 아직 시작 단계이며, 이를 활용한 조경 공사와 관련된 친환경기술은 여전히 미비한 수준이다. 몇 해 전 조사해 본 바에 의하면, 국내에 등록된 건설분야 친환경기술 특허 중에서 조경분야 특허가 매우 낮은 수치를 보이는 것은,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당연한 결과이다.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정보의 축적과 이를 활용한 친환경 기술은 향후 조경분야의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경관 : 조경의 결과물 경관은 조경 활동의 결과물이다. 경관이 형성되는 과정을 문화의 과정으로 이해한다면, 인간이 자연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문화를 만든다는 의미이다. 경관을 개념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개념은 아름다움(美)이다. 하지만 겉모습만 아름다운 경관은 조경의 궁극적인 기능에 비추어 볼 때 한계에 다다를 수밖에 없으며, 서두에서 언급했던 장식이라는 선입견을 깨기 어렵다. 그러면 경관을 어떠한 관점으로 볼 것인가? 인간이 자연과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은 자연을 지배적인 입장에서 본다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입장에서 바람직한 상호 작용을 의미한다. 자연을 지배적인 입장에서 바라볼 때 인류는 얼마나 많은 환경문제를 일으켜 왔는가? 인간이 자연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문화를 바람직하게 만든다는 것은 조경의 대상인 환경에 대한 올바른 태도에서 비롯된다. 여기서 올바른 태도는 2000년대 이후 미국조경가협회(ASLA)의 조경 정의에 포함된 스튜워드십(Stewardship)의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다. 스튜워드십은 계획과 자원관리적 측면에서의 윤리를 의미하며, 이는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름다운 경관을 만든다는 것은 ‘예쁘게’ 만든다는 것보다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움과 건강함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즉 아름다운 경관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생태적 관점에서 바람직하게 다루어질 때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조경의 기본은 곧 우리의 미래 유난히 더운 여름이 지났다. 지구온난화와 같은 환경문제는 인류의 생존까지도 위협하고 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성어를 자주 쓴다. 이 말은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안다는 뜻이다. 옛것이란 과거로부터 이어 온 전통, 새것은 앞으로 만들어가야 할 미래라면 전통과 역사가 바탕이 된 후에 새로운 지식이 습득되어야 제대로 된 앎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조경의 본래의 목적을 탄탄하게 한다는 것은 곧 미래 조경이 지향해야할 바를 보여 주는 것이라 할 것이다. 미래의 8대 산업 중에 환경, 도시가 포함되어 있다. 도시문제의 해결이 현대 조경의 시작이고, 환경은 조경의 목적이라면, 이를 바람직하게 활용하고자 하는 조경의 노력은 곧 미래 사회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생태적 사고에 기반을 둔 조경의 확장성은 경이로운 수준이다. 자, 이제 조경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신지훈 단국대학교 녹지조경학과 교수
- 신지훈 교수
- 2018-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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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글에서는 “어포던스(affordance)의 관점에서 그네, 시소, 미끄럼, 조합놀이대 등 놀이시설물 4종 세트가 가지는 문제점을 논하시오!”라는 문제를 던졌었다. 이 문제를 풀기 전에 이 문제의 전제인 “왜 거의 모든 놀이터에는 놀이시설물 4종 세트가 있을까?”를 논하는 게 필요하다 싶다. 과연 왜 그럴까? 놀이터의 조성 주체인 지방정부나 놀이터 디자이너의 한계 때문일까? 성급히 결론을 내리기 전에 먼저 놀이터가 만들어지는 여러 조건을 차근차근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규모가 작은 도시공원으로서의 놀이터 우리가 도시에서 일상적으로 만나는 놀이터는 법적으로는 도시공원의 어린이공원이다. 도시공원 중에서도 생활권 공원의 범주에 속한다. 어린이공원에 대한 최소 요구 면적은 150㎡로 넓지 않다. ‘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어린이공원 전체 면적의 40%는 녹지여야 한다. 어린이공원과 다른 유형의 생활권 공원에서는 녹지율이 60%이다. 활동 공간을 많이 확보해야 하는 만큼 어린이공원에서는 녹지율이 작다. 서울의 어린이공원 면적의 평균을 내보니 대략 1500㎡ 정도가 된다. 여기에 녹지율 40%를 적용하면 놀이공간으로 쓸 수 있는 공간은 900㎡이다. 그런데 공원으로 들어가는 길도 내야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화장실도 놓아야 한다. 그러다보면 아이들의 놀이를 위한 공간으로 쓸 수 있는 면적은 더 줄어든다. 다양한 요구가 모이는 마을 유일의 오픈스페이스 그렇다고 나머지 공간 모두를 아이들의 놀이를 위한 공간으로 쓸 수 있을까? 지역마다 다르긴 하지만 많은 경우 어린이공원은 주민들이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오픈스페이스가 된다. 집 근처에서 돈을 내지 않고도 앉아 있을 수 있는 곳, 무언가를 사지 않고 몇 시간을 앉아 있어도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곳이 유일하게 어린이공원이란 거다. 그렇기 때문에 주민들의 요구는 다양하다. 당연히 벤치나 햇빛를 피하는 퍼걸러는 필요하고 좌식생활이 익숙한 사람들은 평상을 놓아달라고 요구한다. 최근에는 동네마다 요가나 필라테스를 할 수 있는 곳, 피트니스센터처럼 운동을 할 수 있는 곳이 많지만 그런 곳에 드나드는 게 익숙하지 않거나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사람들은 가능한 많은 운동시설과 긴 산책로를 확보해 달라고 요구한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열려 있기 어려운 공공공간 마을 유일의 오픈스페이스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원칙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현실적으로는 그러기 쉽지 않다. 보이는, 보이지 않는 경계가 있다. 모든 사람과 모든 시간에 열려 있다는 것은 그로 인한 불편함도 모두에게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불편함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역사회는 암암리에 이용 시간과 이용자의 한계를 긋고 싶어 하고 실행되기도 한다. 어느 지역에서는 일정 시간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이용하지 못하도록 공원 입구에 문을 다는 경우도 있다. 이 한계 짓기는 아이들의 놀이에도 적용된다. 아이들이 놀면서 내는 소리는 소음이 되고, 아이들의 사고 방지와 놀이를 위해 바닥에 깔리는 모래는 먼지가 된다. 아이들의 모험심을 자극하는 놀이시설물은 위험 요소로, 숨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한 공간은 청소년들의 우범공간으로 인식된다. 주민들은 이러한 불편을 줄일 수 있는 디자인을 요구한다. 이는 아래에서 이야기 할 스펙트럼 넓은 아이들의 놀이 욕구와도 직접적으로 대치된다. 스펙트럼 넓은 아이들의 놀이 욕구를 충족해야 하는 우리 동네 놀이터 아이들의 발달 정도에 따라 놀이에 대한 욕구와 놀이 내용은 다르다. 당연히 아이들의 성향에 따라서도 놀이 욕구와 방식은 다르다. 철봉과 정글짐에 오르는 걸 좋아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있다.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하늘을 보며 느끼는 해방감과 정글짐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느끼는 자유로움을 느끼기에는 겁이 많고 겁을 이겨낼 만큼의 날렵함을 가지지 못한 아이들도 있다. 그런데도 하나의 작은 놀이터에 나이 불문, 취향 불문하고 모든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를 만들어야 한다. 그네는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 안전거리까지 확보해야 하니 작은 놀이터를 설계할 때는 그네를 잘 놓지 않는다. 그럼 놀이터를 방문할 때마다 시달린다. 아이들은 “왜 우리 놀이터에는 그네가 없어요? 그네를 놔 주세요”라며 쫓아다니며 불만을 표출한다. 흔들 말이 없으면 유아를 둔 엄마들이 불만을 터트린다. 아이를 태울 기구가 없어 아이를 데리고 놀기 어렵다는 거다. 이외에도 지방정부의 관리 및 운영 시스템, 놀이와 놀이터에 대한 인식 등등이 있다. 쓰다 보니 “지방정부나 설계자가 놀이를 유도하는 잠재적 어포던스의 집합체이면서 무난한 4종 세트를 놓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겠죠?”라는 변명 같다. 핑계의 나열 같다. 그래도 다음 글까지는 놀이터가 만들어지는 조건을 좀 더 살펴보려 한다. 상황 해석이 정밀해야 해결방안도 정치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마을 유일의 오픈스페이스에는 보이는, 보이지 않는 경계가 있다. 이 한계 짓기는 아이들의 놀이에도 적용된다. 아이들이 놀면서 내는 소리는 소음이 되고, 바닥에 깔리는 모래는 먼지가 된다. 모험심을 자극하는 놀이시설물은 위험 요소로, 숨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한 공간은 우범공간으로 인식된다. 주민들은 이러한 불편을 줄일 수 있는 디자인을 요구한다. 김연금 조경작업소 울 소장
- 김연금 조경작업소 울 소장[email protected]
- 2018-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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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 ‘삼각뿔은 어떤 활동을 지원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어떤 독자가 상상력을 발휘해 주었다. ① 삼각뿔을 안과 밖으로 나누어 놀이하기. 이쪽은 해방된 공간 저쪽은 감옥.② 삼각뿔의 뾰족한 모서리를 따라 걸어 올라가다 정상에서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과 만나면 손바닥 치기로 상대방 넘어뜨리기③ 삼각뿔 꼭짓점에 서서 제자리 멀리 뛰기④ 술래잡기를 할 때 숨는 용도로 활용하기 삼각뿔이 있는 놀이터로 달려가 그의 상상대로 놀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어쩌면 아이들도 이렇게 놀 수 있겠다. 다만 내가 현장에서 만난 장면은 다음과 같다. ① 삼각뿔에 기대어 마주보고 웃기② 삼각뿔에 기대어 오락하기③ 삼각뿔을 뛰어 넘기④ 삼각뿔의 모서리에 몸의 중심을 맞추어 앉기 삼각뿔을 보고 많은 사람이 물었다. “저건 뭔가요?” “글쎄요”가 나의 답이었다. 이러저러한 놀이를 지원할 것이라고 나름대로 계산은 해두었지만 잠재적 어포던스(affordance)이기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었다. 대신 아이들이 많은 답을 찾아 줄 거라는 기대가 있었고, 여지없이 아이들은 나의 상상을 넘어 다양한 방식으로 잠재적 어포던스를 활성화시켜 주었다. 뭐에 쓰는 물건인가요? 이렇게 놀면 되죠. 이렇게 놀이터를 디자인하면서 뭐라 딱히 이름붙일 수 없는 장치를 둘 때가 있다. 어린이 대공원 꿈틀꿈틀 놀이터를 디자인하면서는 기존의 그네 틀, 조합놀이대의 바닥과 기둥을 재활용해 특정한 이름을 붙이기 어려운 구조물을 만들었다. 기존의 시설물이 아까우나 그대로 다시 쓸 수는 없어서였다. 공사가 완료된 후 이번에도 ‘저 시설물은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 때도 답은 ‘글쎄요’였고 아이들은 몸으로 ‘저 시설물은 이런 겁니다’를 보여주었다. 아이들은 구조물 위에서 뛰거나 바닥으로 뛰어내렸고, 앉아서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시설물 아래 쌓인 모래는 아이들이 모래 공간의 모래를 이곳까지 옮겨와 바닥의 구멍으로 흘려보내며 놀았음을 보여준다. 문화비축기지 개장 당시 박찬국 예술가가 임시적으로 설치한 모래 놀이 공간은 어떻게 하면 간단한 장치만으로도 아이들을 신나게 놀 수 있게 하는지 보여준다. 높게 쌓인 모래밭, 커다란 파이프가 전부지만 아이들은 이 공간의 놀이 가치를 증명해냈다. 파이프를 통과하는 아이, 올라타는 아이, 구멍으로 모래를 넣는 아이, 파이프 내부를 달리는 아이, 파이프 아래의 모래를 파내는 아이. 고정되지 않은 파이프는 아이들의 놀이로 위치가 조금씩 변했고, 이는 다시 다른 놀이를 유발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긴 시간을 보내며 놀이를 점점 진화시켰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놀이터란 만화나 동화 속의 장면을 모방해 놓은 곳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놀이터를 디자인하면서 딱히 이름붙일 수 없는 장치를 둘 때가 있다.‘저 시설물은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지만 답은 ‘글쎄요’였다. 아이들은 구조물 위를 뛰거나 뛰어내리고 휴식을 취하면서‘저 시설물은 이런 겁니다’를 몸으로 보여주었다. 그들은 나의 상상을 넘어 다양한 방식으로 잠재적 어포던스를 활성화시켜 준다. 아이들이 내가 머릿속으로 시연한 대로 노는 모습을 보면 무척 반갑다. 내가 숨겼지만 나도 잊고 있었던 보물을 찾아준 것 같다. 물론 실패할 때도 있다. 또 내가 숨겨 놓은 장치가 놀이 지원을 넘어 위해요소(hazards)가 될 때도 있다. 뛰어놀기를 상상하며 만든 놀이언덕에서 자전거를 타며 가속을 즐기는 아이들을 보고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있다. 놀이터를 디자인 할 때 잠재적 어포던스를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시연하는 것은 아이들의 즐거운 놀이뿐만 아니라 위해요소를 줄이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놀이시설물 4종 세트의 문제점은? 그렇다면 이쯤에서 ‘그네, 시소, 미끄럼, 조합놀이대’라는 4종 세트로 구성된 놀이터가 가지는 문제점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 4종 세트는 뻔한 놀이터,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지 못하는 놀이터의 주범이라고 비판을 받는다. 그런데 모든 놀이터에 있다고 안 좋은가? 나무와 벤치는 모든 공원에 있지 않던가? 문제는 이 시설물들이 제공하는 어포던스에 있다. 만약 ‘놀이터학 개론’ 같은 과목이 있다면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에 다음과 같은 시험 문제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어포던스의 관점에서 놀이시설물 4종 세트(그네, 시소, 미끄럼, 조합놀이대)가 가지는 문제점을 논하시오!” 김연금 조경작업소 울 소장
- 김연금 조경작업소 울 소장 [email protected]
- 2018-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