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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정원, 그리고 꽃과 나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우리는 꽃과 나무를 공기와 마찬가지로 당연히 우리 곁에 있는 것으로 생각해서 그 중요성에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최근 도시환경이 극도로 인공화되고, 도시열섬현상과 미세먼지 등으로 인해 도시에 자연을 도입할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자연스럽게 꽃과 나무의 중요성에 주목하게 된다. 한 도시 내에서도 생활환경의 질은 위치에 따라 상당한 편차를 보이고 있는데, 모두가 행복한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시민 누구나 평등하게 높은 생활환경의 질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생활환경의 질적 개선을 위해서는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중에도 녹화를 통한 개선이 매우 효과적이다. 생활환경에서 꽃과 나무의 긍정적 역할은 잘 알려져 있는데, 환경적 측면에서는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미세먼지 감소 등 공기정화와 습도 및 온도 조절, 임상적 측면에서는 빠른 치유, 심리적 측면에서는 정서순화와 집중력 증대, 경제적 측면에서는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가상승 등의 효과이다. 미국 버지니아주의 한 커뮤니티가든 게시판에는 If you want to be happy for a lifetime, plant a garden.(평생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정원에 나무를 심으세요.)'라는 글이 쓰여 있는데 이는 식물의 다양한 긍정적 효과를 한 줄로 잘 표현한 말이라 할 수 있다. 즉 정원처럼 잘 가꾸어진 골목길이나 도시에서 산다면 평생 행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꽃과 나무의 양에 관한 여러 지표가 있는데 보행자가 실제로 느끼는 식물의 양에 초점을 맞출 경우에는 녹시율(시야에서 눈에 보이는 녹색의 면적 비율)이 사용된다. 녹시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녹색식물이 많아야 되는데, 도시에는 꽃과 나무를 심을 공간이 부족하므로 우선적으로 자투리땅을 찾아 녹화하여야 한다. 그동안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쌈지공원, 마을마당, 한평공원 등을 만들어왔는데 앞으로도 이러한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겠다. 자투리 땅의 녹화와 더불어 최근에는 벽면녹화 혹은 수직정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도시에서 평면적 녹지의 확대가 한계에 이르면서 건축물, 교량 등 구조물의 수직면을 녹화하려는 시도가 많아지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 하겠다. 수직면의 녹화는 녹시율을 높이는 데 있어서 바닥면 녹화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즉 동일한 면적이라 할지라도 보행자의 시야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수직면이 바닥면보다 일반적으로 서너배 높은데, 다만 수분공급과 겨울철 관리에 어려움이 따른다. 따라서 도시에서는 식물관리를 고려한 수직면 녹화가 활성화되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를 통하여 녹시율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옥상녹화는 녹시율을 높일 뿐 아니라 빌딩의 냉난방 에너지를 줄이고 도시의 자연성을 높일 수 있는 효율적 방안이다. 고층건물이 많아지면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기회가 많아지고 있는데 옥상을 녹화하면 고층에서 내려다보는 조감경관의 녹시율이 높아져 도시의 친환경 및 녹색 이미지가 향상될 뿐 아니라, 옥상활동 시의 녹시율 또한 높아지게 된다. 이와 같이 보행자 눈높이에서 바닥면과 수직면이 녹화되고 옥상마저 녹화된다면 녹시율이 거의 100%에 이르게 되어 도시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게 되고 행복한 도시에 이르는 중요한 조건 하나가 달성될 수 있다. 최근에는 실내녹화에도 관심이 높아져 실내에 녹색 식물을 도입하려는 노력이 증대되고 있다. 실내에 소규모 정원, 상자 텃밭, 벽면 녹화 등은 물론이고, 지하철역 등 햇빛이 없는 지하에도 광섬유, LED를 이용한 지하정원, 지하 텃밭 등도 만들어지고 있다. 이제는 실내, 실외를 불문하고 식물을 키울 수 있게 되어 인간이 거주하는 곳이라면 실내·외, 지상·지하 구분 없이 녹시율을 현저하게 높일 수 있는 시대가 돼, 그만큼 녹시율 100%의 녹색 이상도시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와 같은 녹화 기술의 발전 추세에도 불구하고 소외계층이 모여 있는 주거지의 골목길 혹은 가로의 녹시율이 타지보다 현저하게 낮은 것을 저소득층 주택가를 다녀본 사람은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소외계층의 다수 거주자는 수목이 많은 자연환경으로의 방문기회도 상대적으로 적으며, 따라서 소외계층이 많은 주거지일수록 더 높은 녹시율을 유지하여야 평등한 녹색복지를 누릴 수 있게 된다. 모두가 행복한 포용적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꽃과 나무를 많이 심되 전체적으로는 지역별 균형을 이루도록 하여야 한다. 즉 소외계층 주거지 생활환경의 질은 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 일반적이므로, 낙후된 주거지에 우선적으로 녹지를 공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는 그동안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위해 국민 모두가 뒤돌아볼 여유 없이 앞으로만 달려왔다. 지난 1996년에 29번째 OECD회원국이 되었으며, 2018년에는 인구 5천만 명 이상이면서 일인당 국민소득(GNI)이 3만 불을 넘어서는 소위 ‘3050’클럽에 7번째로 가입하였다. 이와 같은 세계 7위라는 괄목할만한 경제적 성취에 비한다면 국민 대다수가 느끼는 행복지수는 이에 못 미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일인당 국민소득과 같은 국가의 평균적 순위를 높이는데 만 관심을 가져왔다면, 앞으로는 평균적 순위와 함께 국민의 개인간 상대적 격차를 좁혀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국민행복지수를 국력에 맞게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소외계층의 무력감, 박탈감을 회복시키기 위한 국가적 노력이 필수적이며, 이에 발맞추어 도시환경분야에서도 꽃과 나무심기를 통한 포용적 세상 만들기에 동참해야 한다. 포용적 세상은 국가나 일부 복지단체의 시혜적 노력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 개개인 모두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많거나 적거나 상관없이 한마음으로 참여해서 만들어야 지속가능하고 진정한 의미의 포용적 세상이 만들어질 수 있다. 지속가능한 포용적 세상을 위하여는 창문 밖에 화분하나 더 놓기, 골목길 담장에 덩굴식물 올리기, 자투리땅에 꽃과 나무심기와 더불어 잡초 뽑고 물주기 등 국민 개개인이 각자의 소득 수준을 불문하고 생활공간에서 나름대로 녹색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와 더불어 전문가 및 시민단체의 기술적 지원, 그리고 행정에서의 지역간 형평성을 고려한 녹시율 확대정책이 필수적이다. 이와 같이 만드는 포용적 세상은 ‘모두가 누리기만 하는 세상’이 아니라 ‘모두가 참여해서 함께 만드는’ 포용적 세상이며, 이를 통하여 모든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 그린유토피아가 만들어질 수 있다.
  • 07. 정원이 말하는 파리공원/영등포공원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것들은 사소한 것들입니다. 대상 자체가 보잘것없는 것일 수도 있고, 큰 사건에 담긴 미미한 측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소한 것들은 우리가 사소하게 대할 뿐 사소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관심을 받을 가치가 있으며 진지한 사고의 대상이 될 자격이 있습니다. 그들이 곧 ‘삶의 정곡’일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본디 과녁의 한가운데는 작은 점일 뿐입니다.” _ 김용석, 『사소한 것들의 구원』(천년의상상, 2019), p.4. 아이는 이제 아침이면 “앗치임!!”을 외치며 밖으로 나가자 조를 정도로 컸다. 엄마, 아빠가 환한 창밖에도 반응하지 않으면 한참을 혼자 기다리다가 얼굴을 만지고 손을 잡아끌며 기침을 재촉한다. 그리고 26개월의 아이는 말이 부쩍 늘었다. 이제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물론이고 몇 가지 자신의 감정까지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사고 친 후(?) 건네는 조심스런 “이안해~!”를 들으면 아이는, 사람은 동물이 될 수 없음을 다시금 일깨우게 된다. 이뿐일까, 사소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아이의 말들은 앞으로 더 늘어갈 것이다. 요즈음 공원과 놀이터에 빠진 아이는 나무마다 조막손으로 다독이며 “안녕~” 인사한다. 마치 저보다 먼저 온 생에 기쁨을 표하는 듯 큰 나무마다 재미 붙여 반복한다. 작은 사건이 큰일을 부를 때 우리는 이것을 트리거라 말하곤 한다. 티핑포인트, 터닝포인트라는 말로도 부르곤 한다. 우리 공원녹지사에서도 이런 일이 몇 가지 있었다. 특히 생활공간에 필요한 공원을 성찰하게 하는 계기로 돌아보아야 할 사례가 있다. 영등포공원과 파리공원은 그 대표 주자이다. 한 때 우리 공원에는 정원을 만들 수 없었다. 이름이야 얼마든지 붙여두고 공간을 구분하곤 하였지만 공식적으로 정원은 공원시설이 될 수 없었다. 공원에 정원이 공식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게 된 것은 채 10년이 되지 않는다. 자연에 대한 욕구는 법을 뛰어 넘는 일이어서 법제가 갖추어지지 않았더라도 정원은 이미 공원과 녹지, 조경공간 어디에서든 생활을 채우는 요소로 기능하고 있었다. 근대 도시계획으로 생성된 해외의 많은 대도시에서는 포켓파크가 공원이자 정원의 역할을 하였고 우리에게도 그런 틀이 쌈지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도입되기는 하였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정원은 “저 푸른 초원 위” 이상적인 소유 공간이어서 공원에 그것을 명징하게 두는 것은 우리 사정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세기 말을 지나며 정원과 가드닝에 대한 편견이 많이 사라지게 되자 드디어 자연을 체험하고 체감하려는 욕구가 요구가 되었고 공감이 형성되며 도시농업공원이라든지 수목원법이라든지 하는 과감한 명칭의 법제가 갖추어지기 시작하였다. 여기 바탕에는 우리 사회는 그만큼 민주화 되었고 각 개인의 의사를 존중하는 체계가 되었던 듯 작고 사소한 일상의 무엇보다는 크게 합의하고 동의할 수 있는 이름부터 기준으로 정했던 것이다. 아직 세세한 기준이나 지원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도 어쩌면 거기에서 문제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영등포공원 한편에 가꾸어졌던 텃밭은 그런 저간의 사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근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별도로 공공의 정원으로서 가드닝 활동의 공간을 공원에 부수적으로 조성해 수요(요구)에 대응한 것이다. 이 공원에서 이런 사건이 있었다는 점은 많은 시사점을 갖는다. 여기가 어떤 곳이었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이곳이 선유도공원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생각해 본다면 더욱 그러하다. 영등포공원은 영등포역과 연결되는 공간적 특성을 가진 곳이었다. 우리 산업의 중심지였던 일대를 철도로 연결하던 중요한 곳이었던 만큼 역사적인 도시공간임에 틀림없다. 이 공원은 이전엔 맥주공장이 있던 곳이었다. 전국으로 무게가 상당한 맥주 원료와 제품을 실어 나르기에 이곳만한 위치가 없었을 것이다. 맥주를 담그던 그 육중한 시설들은 공장 이전에 따라 모두 철거되었고 이 장소는 공원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맥주공장이었던 장소의 기억은 지금 호리병 같은 조형물의 커다란 맥주 담금솥으로 남아 있다. 바닥에는 서울을 상징하는 조형의 광장이 있고 벽천과 잔디밭, 계류 등 숲속 풍경 같은 공원의 모습도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 맥주의 발상지라 할 수 있는 OB맥주 영등포공장(영등포구영등포동582)이 설립된 지 64년 만에 철거된다. OB맥주는 지난해 말 공원용지로 서울시에 매각한 영등포공장을 지난달 10일부터 가동중단 상태에서 3일부터 시설철거 작업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부지면적이 1만9천4백91평인 OB맥주 영등포공장은 1천1백39억 원에 매각됐는데, OB측에서 이 달 말까지 시설철거 작업을 완료하면 서울시에서 녹지확충 5개년계획에 따라 공원으로 조성하게 된다. 철거되는 OB맥주 공장은 일제강점기인 1933년 12월 일본 기린맥주가 설립한 ‘소화기린맥주'가 전신. 이보다 4개월 앞서 대일본맥주가 설립한 조선맥주와 함께 양사체제로 국내 맥주산업을 이끌어 오다 45년 해방과 함께 한국인 주주인 두산그룹의 초대회장 박두병(朴斗竝)씨에게 경영권이 인계됐다. 이에 따라 48년 2월 회사이름도 동양맥주로 바뀌고 상표도 OB맥주로 바뀌었다.” _ “OB영등포공장 64년 榮辱 마감-서울시서 공원 조성,” 중앙일보 1997년 2월 4일 기사 중 수줍게 남겨진 대형 솥과 너른 광장 바닥에 방향별로 놓인 상징적인 조형은 우리 공원이 또 다른 차원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고 그러한 태도와 방법은 선유도공원에 적극 반영되어 세계적인 공원이 탄생하게까지 하였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 공원은 시대 변화에 따라 장소의 특성과 쓰임이 크게 변화하는 중요한 지점이었고 텃밭정원이 들어설 만큼 최신의 경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세월이 녹아 있고 역사와 산업의 기억이 거쳐 간 곳이라는 점은 두고두고 보아야 할 점이다. 이러한 공원 조성의 태도 변화 이면에는 공간시설로 도시의 한 구성요소로 제작되었던 이전의 태도를 돌아보게 한다. 또한 돌아보아야 함을 지적해준다. 우리 공원 역사에 대한 성찰의 지점이 되는 것이다. 예민하지 않더라도 조경공간의 진화와 지속적인 생활화를 고민하는 우리들이라면, 도시의 생활공간화가 주인공들의 욕구와 요구에 반응해야 함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다. 도심의 수많은 근린공원들이 그저 눈에 보기 좋은 녹색의 공간으로 물체처럼 놓여있지 않도록 우리가 성찰할 지점도 여기에 있다. 우리 도시에 공원이 공급되기 시작하던 시절은 올림픽공원이나 아시아공원 같이 정부 주도의 대형공원이 주를 이루었다. 동시에 쌈지공원이라 부르며 생활권 소규모 공원이 공급되기도 하였다. 이는 신도시 개발로 통칭되는 도시개발 시대의 일면이기도 하다. 그중 영등포공원에 녹아 있는 상징적 공원 만들기의 전신이자 대표적인 공원으로 파리공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한불수교를 기념한다는 국가적 위상과 목동 신시가지 개발이라는 일상적 위상이 동시에 만나는 특이한 사례이기도 하다. 더불어 공간시설로 본격적으로 도심에 자리하게 되는 우리식 공원의 표준적인 설계방법을 보여준 사례라고도 할 수 있다. 파리공원은 비교적 작은 공원이었지만 생활권 공원으로서는 과하다 싶을 만큼 기본계획부터 기본설계, 실시설계가 전문적으로 진행되었다. ‘한불수교와 기념공원조성’, ‘목동 신시가지의 근린공원조성’ 이 두 가지가 배경이자 목적이었고, 그러니 국가적 상징성이 강하게 작용하고 형태나 배치도 그에 따랐다. 대상지는 새로 개발되는 신시가지의 평지였고 예산도 부족하지 않았다. 수공간을 중부에 대규모로 적용할 수 있었던 데에는 적잖은 자신감도 있었을 것이다. 색상과 형태 같은 디테일에도 세심한 접근이 가능했다. 무엇보다 기본구상의 이념이 형태적으로 그대로 연결되는 과정은 두고두고 살펴야 할 부분이라는 점에서 우리 조경설계의 교과서라 할 만큼 과감하였다. 흔히 설계의 난제 중 하나인 상징의 형상화는 형태와 형식을 압도하는 결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흔히 보는 주변 건물이나 공원에서 짐작은 되지만 의아한 느낌이 든다면 그런 경우가 대개 맞는다고 할 수 있다. ‘파리광장, 한불마당, 서울광장, 잔디광장, 휴게녹지, 총림, 영지, 중앙도로, 산책로, 정문, 야외 전시장, 주차장, 관리사무실’로 나뉜 파리공원은 국가적 의미를 바탕에 두고 상징과 생활을 연계하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드러나지만, 시대적 분위기와도 무관치 않은 기본구상은 이후 이름만 큰 조경공간이라는 대개의 조경공간에 대한 비판의 시초가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되돌아보면 ‘이용자의 욕구와 행태’를 정형화한 설계 접근은 ‘행동양식’과 ‘환경장치’ 사이의 가교를 ‘해석’하고 ‘심화’하는 일반화될 수 없는 조경설계의 방법론이자 사례로서 예시가 되어주었다. 한 가지는 분명하게 된 것이다. 뭔가를 다듬고 만들고 가시화하는 것은 이제 충분히 기술과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 그러니 세계적인 조경상을 수상할 능력, 또는 수준을 이때부터 우리도 가지게 되었다는 말이다. 다시 한 번 돌아보면, 그렇게 제도화된 방법론은 이제 조경설계의 관성이 되어 대부분은 여전히 ‘삶의 정곡’을 찌르는 사소한 것들을 구상에 담지 못한다는 것이다. 영등포공원의 텃밭정원은 조경가의 작품일 리가 없는 것이다. 공원이 도시민의 정원이 된 지금을 구상하지 못하는 것이다. 파리공원은 신도시의 핵심 공간에 생활 요소로 기획되고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우리 공원사의 한 장면을 보여준다. 영등포공원은 오랜 장소의 핵심 기억을 공간 요소로 기획하고 적용하였다는 점에서 우리 조경설계사의 한 장면을 보여준다. 충분히 새로운 형식을 보여준 것이고 전시한 것이라 할 만하다. 한때 목동신시가지의 생활문화가 우리 서울의 어떤 이상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이는 더욱 중요한 지점이 된다. 그러니 충분한 시간과 반향을 거친 지금 우리는 이 공원을 유적으로만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루이스 멈포드의 다음과 같은 언명은 되돌아봄의 단초가 될 수 있다. “지역계획(regional planning)은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 즉, 대지를 개발부지로, 자원으로 구조물로 사용하는 것 등 모든 활동을 종합적으로 통합(collective integration)하는 것이며, 의식적으로 유도(conscious direction)하는 것이다.” _ Lewis Mumford(『조경학(Landscape Architecture)』(안동만 역, 3판, 2008, 보문당), p.337, 재인용)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의 그것이 서구의 그것과는 달랐다는 점이고 세인트루이스의 그런 사태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반 만 년의 역사를 들먹이던 시절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본능으로 흐르는 뭔가가 그 다름의 기저가 되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우리는 타인의 눈에는 아파트공화국으로 불리는 우리만의 민주주의를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바깥의 눈이 아닌 내부의 눈, 뒤이어 태어난 아이의 눈이 먼저가 될 시대를 지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의 핵심에 직접 가꾸고 돌보려는 본능의 공감이 있다는 점은 곱씹어야 할 부분이다. 한 때 새로운 도시 삶터였던 목동은 벌써 도시재생과 도시신생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낡은 시설물과 포장은 이미 몇 차례 보수가 있었던 모양이다. 큰 틀의 공간 구성은 유지하고 있지만 세부 요소들은 처음과는 다소 다른 모습이다. 재료의 문제일 수도, 공법의 문제일 수도, 관리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일상공간의 하나로 자리하지 못하였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면 좋겠다. 달라진 ‘공원 욕구’를 여전히 너무 큰 의미가 압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되돌아보면 좋겠다. 참여하고 가꾸며 함께 성장하는 공원이었는지 되돌아보면 좋겠다. 그 성과가 영등포공원에 어떻게 전수되었는지 짚어보면 좋겠다. 또 영등포공원의 그것이 다시 다른 공원으로 어떻게 확산되었는지도.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정원은 본질적으로 생활이자 산업이었던 만큼 너무나도 당연하고 본질인 것으로 받아들였는지 모른다. 언제든 아무 때나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런 것으로 말이다. 그만큼 본능적인 활동이라 우리는 특별한 제도로 생활권에 구별짓기 어려웠는지 모른다. 본질적이고 기본적인 것들이 하나 둘 생활의 반경에서 멀어져 있는 지금, 우리는 가까이에서부터 어쩌다 여기까지 와있는지 돌아볼 때가 되었다. 날로 심해지는 지구의 몸부림은 더 다른 이유를 부르지 않는다. 아이는 아이시절 만큼은 나무마다 인사를 건넬 것이다, 자기도 모르게 사소한 것들로부터 끊임없이 아비와 어미를 졸졸 따르며 성찰을 이끌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성찰이란 다름 아니다. 창의와 창발의 다른 이름이자 형식일 뿐이다. 성찰을 재성찰하는 것은 메타인지의 실천일 뿐이다. 우리는 그렇게 사소한 생활에서 공원과 도시를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결국 우리의 생활이자 기억이고 미래이기 때문이다. 가드닝(care)은 말뿐이 아닌 현실이고 우리 공원에 대한 메타인지이기 때문이다. Park 06. 정원이 말하는 공원들, “산물인 공원과 직업인 조경” 정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언제였는가? 혹은 잘 가꿔진 정원이 아름답고 보기 좋다고 느끼는 경우가 얼마나 되는가? “저 푸른 초원 위 그림 같은 집”을 꿈꾸며 층층이 쌓인 아파트 거실 밖 풍경을 내려 보며 또 한 계절이 가는구나 싶은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한 눈에 들어오는 모두가 같이 보는 건물 밖 풍경들, 작은 정원들은 그렇게 공유된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모두가 같은 꿈을 꾸고 있다고나 할까, 초원 위 그림 같은 집은 어떠면 지금을 유예하기 위한 핑계는 아닐까? 지금이 좋다, 나쁘다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모르는 사이 우리는 거실 밖 풍경에 현재를 투영하며 우리시대에 적응한 것이 아닌가 돌아보자는 것이다. 시대별로 진화한 아파트단지의 풍경은 그것을 단적으로 대변한다. 함께 사는 것에 익숙한 우리이기에 켜켜이 쌓인 지금들은 지속적으로 우리들, 그러니까 각자 개인들의 꿈과 미래를 공동으로(one and all) 미루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말이다. 여기에 성찰을 요구하는 도시의 물체들이, 공간들이, 여러 사건사고로 부각된 벌써 노후화된 우리 도시의 그것들이 있다. 공원과 녹지는 우리에게 계절을 대변하며 세월을 돌아보라 말하는 듯하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몇 가지 크고 작은 주제들을 살펴본다. 1. 환원주의와 반환원주의 – 자본과 경제의 인프라화, AI의 사고 기준 근현대의 실험은 생각의 진화에 필요한 자료 축적의 과정이었을 뿐이다. 이성적인 것 같지만 논리적이지 못한 양자역학적 AI의 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현실 세계의 단자화(개념화, 정보화, 물체화)였던 셈이다. X-AI(Explainable AI, 설명가능 인공지능)가 연구된다고 하지만, 결국 결정은 사람 손에 의한 것이라 하지만, 수천 년의 역사를 피의 눈물을 한갓 숫자와 텍스트로 단순화한 바탕 위에 다음의 결과를 묻는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가상적(virtual, 실효적)이지 못하다. 아무리 투명한 딥러닝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환원된 세계의 매트릭스일 뿐이다. 기계의 창의성을 논하는 모든 논의의 최종적, 근원적 문제는 언제나 이 점에 있을 수밖에 없다. 명심해야 할 부분임에 틀림없다. 조경은 가상을 실천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환원된 사고(의사결정)의 놀음에 매몰되어서는 곤란한 전문분야이다. 언제나 현실과 현장을 일깨우고 되돌아보게 하는 윤리성의 실천분야인 것이다. 과학적 방법론이 필요하던 시절의 환원주의적 조경은 시대적 필요에 따른 것이고 무의미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맥하그로 대표되는 환원주의적 발상의 한계는 이미 그 스스로 지적된 바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조경은 건축이나 토목, 도시와 달리 그렇게 반환원주의적 입장에 기반함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따라서 시류에 편승한 일시적 테마들이 자연을 실효적으로 대변하지 못하였음을 명심한 명징한 조경은 반환원주의적 사고에서 출발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쉬운 작업이 아님을 잘 안다. 조경의 실행 본질이 거기에 있음을 잊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 2. 국소주의와 분산주의 – 신기능주의의 새로운 세계 만들기 언젠가 ‘형식(form)과 내용(meaning)’을 말하며 신기능주의를 논한 적이 있다. 환원적 사고는 결국 기능주의로 귀결되는데, 형식과 형태가 먼저이고 중심적으로 다루어진다는 점에서 근대적 사고의 귀결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소위 포스트모던을 한참 말하던 시대의 그것도 결국 그 틀의 하나라는 점을 지적하였던 것이고, 그것을 새로운 기능주의의 출발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중심 없이 분산되고 분업화된 사고(전문성)를 통합할 수 있는 전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융복합이 아니라 통합을 심도 깊게 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거기에 뿌리를 두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기능주의적 관점은 21세기 들어 새로운 전환을 맞고 있는데, 가히 연결주의(connectionism)라 할 만큼 기능들의 네트워크와 연결성(Connectivism)이 새로운 창발과 상보성을 이룬다는 생각이 보편화 된 것이다. 뇌과학자들이 말하는 “뉴런은 섬이 아니다”라는 언명은 결국 국소적 기능들이 연결되어 이루는 전반적인 상황에 우리가 주의를 두어야 함을 보여준다. 이는 그저 이념이나 이론인 것이 아니라 실제 우리 뇌에서 이루어지는 현실이다. 이것을 통칭하여 신기능주의로 볼 수 있다는 생각은 국소와 분산의 연결성 구축이 결국 현상을 타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이기도 하다. 과거 우리가 ‘전체와 부분’으로 나누었던 생각의 방식은 ‘국소와 분산’으로 이제 바꾸어 보아야 한다. 주의, 이념으로 통칭할 수 없는 하나의 흐름이자 패러다임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이다. 통합은 그런 방법론의 최적화 양상이고 현 단계 우리에게 필요한 방식이다. 신기능주의는 그렇게 되살아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의 전체는 “국소와 분산”을 아우르는 기저의 전반(전체, 기반)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일 테다. 자연을 다루는 조경은 자연의 이러한 속성을 이제라도 핵심에 두어야 할 것이다.
  •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국가도시공원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 조경계의 미래비전, 최고의 일자리 창출이 기대되는 사업이 아니던가. 매년 4억 달러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해내며, 4천 개에 가까운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는 센트럴파크가 얼핏 떠오른다. 최근 몇 년간 조경계의 도시공원과 관련된 인터넷동향을 살펴보면 도시공원일몰제, 미집행공원, 지자체공원, 도시숲, 가든, 국가정원 이야기가 많고, 국가도시공원은 극히 드물다. 조경업계나 학계, 행정도 거의 관심이 없어 국가도시공원이 실종된 것은 아닌가 싶다. 국가도시공원의 미래지향적 가치를 재확인하기 위해서 국가도시공원법 개정안 통과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동안 이 법의 국회 본회의 통과까지에는 너무나도 많은 노력과 진통이 있었다. 국가도시공원을 제도화하기 위하여 한국조경학회가 앞장서서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초안을 만들었다. 이를 토대로 2011년 9월, 제18대 국회에서 ‘국가도시공원’의 내용을 넣은 ‘공원 및 녹지에 관한 법률’개정안(이하, 국가도시공원법)을 상정하였으나, 당시의 정치적인 혼동 속에서 이 법안은 자동폐기 되었다. 이어 19대 국회에서 2012년 8월 이 법안을 재발의 하였지만 국회 국토교통상임위원회에서 국가재원부담을 이유로 반대해 계류되었다. 이후 2015년 12월 3일 여야 합의로 국토교통위 법안소위를 간신히 통과했지만, 12월 21일 열린 법사위에서 석연치 않은 이유로 보류되었다. 이후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가 의견을 조율한 수정법률안이 2016년 2월 16일 법사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 2월 26일에는 법사위 전체회의를 천신만고 끝에 통과, 2016년 3월3일 새벽, 국가도시공원제도를 담은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개정안’(일명 국가도시공원법)이 5년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처절했던 이 법의 통과과정은 마치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그동안 시민들도 국가도시공원 추진을 위한 범국민적 여론 조성을 위해 ‘100만평문화공원범시민협의회’가 중심이 되어, 2010년 5월에 ‘국가도시공원 100만 명 서명운동본부’ 를 구성하고, 2012년 11월 국가도시공원 100만 명의 서명을 달성하였다. 뿐만 아니라 민·관·학이 하나가 되어 ‘국가도시공원전국민관네트워크’를 구성하고, 국가도시공원의 법제화를 위해 발로 뛰었다. 여기에 더해 한국조경학회와 전국시도공원녹지협의회와 함께 2010년부터 2014년 까지 17차례의 국가도시공원 심포지엄을 전국 각지에서 개최하는 등 국가도시공원법을 통과시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모여 국가도시공원법 통과의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국가도시공원법의 원 취지는 도시공원의 유형에 “국가도시공원을 신설”하고 이를 국가가 직접 설치할 수 있도록 “대규모 도시공원의 조성을 용이하게 하고, 도시민에 대한 공원녹지의 제공을 원활하게하려는 것”으로 출발하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국회 법사위의 심사과정에서 법안 15조는 “지자체가 설치 관리하는 기존의 도시공원 중에서 국가가 지정” 가능하도록 대폭 수정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시행령 개정 시, 국토부는 일방적으로 국가도시공원의 지정요건으로 ‘300만㎡ 이상의 도시공원’ 중 ‘지자체가 부지매입을 완료(지자체부담매입계획)’한 경우로 한정하였는데, 이러한 조건이라면 전국 어느 지자체도 추진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도시공원법 통과로 공원법 체계에 ‘국가도시공원’이라는 새로운 도시공원의 유형이 생겨 국가가 ‘국가도시공원’을 지정할 수 있게 되어 국가도시공원의 골격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큰 의미를 둘 수 있다. 국가가 대규모공원에 예산을 지원할 수 있도록 도시공원법 위상이 새롭게 재편된 것이다. 회색 인프라에 대한 국토교통부 예산이 줄고 있는 현 시점에서, 국가도시공원법 개정은 이를 계기로 국가정책이 향후 회색 인프라에서 대규모 녹색인프라로 패러다임을 전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국가도시공원은 앞으로 대한민국의 환경복지문제를 해결하고 지역균형발전을 유도할 수 있는 대규모 녹색거점이다. 뿐만 아니라 미래세대를 위한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녹색인프라이며, 대규모 생태문화거점으로 21세기의 중요한 녹색패러다임으로 부각될 것을 예측해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국토부는 아직도 미래에 대비한 이런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국가도시공원이 지금 필요한 이유는 작은 공원처럼 행정이 마음만 먹으면 장소와 예산을 확보하여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공원의 규모가 커서 위치선정이 어렵고, 조성과 관리에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주민참여와 합의를 통해 오랜 기간 동안 준비하지 않으면 조성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의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국가도시공원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국가에서 알아서 국가도시공원법을 우리 입맛에 맞게 수정해 줄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고 있을 것인지, 아니면 적극적으로 법안의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고, 제도를 개선하여 16개의 광역시도마다 1개소씩 국가도시공원을 조성할 수 있도록 하는 실천적인 법안으로 개정해서 우리의 미래비전으로 만들 것인지를 심각히 고민해야 될 시점이다. 국가도시공원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100만평공원 운동에서 비롯된다. 100만평문화공원 운동은 ‘100만평 규모(큰 공원이라는 상징적 숫자임)’의 멋진 공원의 꿈을 미래 우리 아이들에게 남겨주기 위한 비전운동으로 시작되었다. 많은 시민들이 공감하였고, 모은 기금으로 공원조성을 위한 부지를 매입하여 부산시에도 기부하였지만, 아직 본격적인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래도 이 운동은 20년간 가까이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옴스테드의 랜드스케이프를 성취하기까지의 40년 세월이 생각난다. 100만평공원 사람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행동을 이끌어내고 있다. 조경계에서 잊어버리고 있는 국가도시공원의 비전을 살리기 위해 2020년을 앞두고 국가와 행정의 설득에 다시 한 번 나서고 있다. 시민들의 꿈은 과연 이루어질까. 조경계와 조경학회에서도 이제 다시 한 번(again) 국가도시공원의 비전을 가시화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국민과 행정을 설득해나갈 것인가를 생각해야 할 때다.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경제적 구조를 갖춘 공원, 영화관보다도 재미있는 멀티플렉스 공원, 우리 아이들의 공원, 공유플랫폼인 미래도시공원의 모습인 국가도시공원, 100년을 내다본 조경계의 비전 국가도시공원을 만들어가기 위해 조경계가 머리를 맞대고 힘을 모아가기를 기대해 본다. 김승환 / 국가도시공원 전국민관네트워크 상임대표, 동아대학교 조경학과 명예교수, 100만평문화공원 범시민협의회 운영위원장, 낙동강하구생태경영협의회 의장
    • 김승환 국가도시공원 전국민관네트워크 상임대표[email protected]
    • 2020-01-02
  • 그들은 이미 놀기 좋은 도시를 만들고 있었다. 지난 10월 중순 ‘놀기 좋은 도시 만들기’ 사례를 수집하기 위해 벨기에의 앤트워프(Antwerp)와 네덜란드의 로테르담(Rotterdam)을 비롯해 유럽의 몇몇 도시를 다니며 공무원, 연구자, 계획가, 설계자를 만났다. 우리나라에서 ‘놀기 좋은 동네, 놀기 좋은 도시 만들기’를 제기하면, “필요한 주제이긴 하지만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런데 이번에 방문한 도시들에서는이 주제는 이미 오래된 주제였고, 실행전략은 정책적 시행착오를 겪으며 발전되고 있었다. 여러 도시의 정책에서 어린이들의 놀이를 비롯해 어린이가 중심이 되는 이유는 다양했다. 이민자의 증가와 함께 늘어난 어린이 인구의 비율, 도시 확장으로 인한 어린이의 증가, 도시가 어린이한테 위험한 곳이 되고 있는 현상, 어린이들의 줄어드는 야외활동에 대한 우려 등등 저마다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지향점은 ‘어린이가 행복한 도시’로 수렴되었고, 실천 방식의 구체적 내용은 달라도 ‘어린이들이 동네의 곳곳을 활보할 수 있도록 도시를 재구성하기’, ‘어린이들이 동네 어디서든지 즐거이 놀 수 있도록 공간을 확보하기’, ‘어린이들과 함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기획하기’로 모아졌다. 벨기에 플란더스(Flanders) 지방의 여덟 가지 비전 여러 도시 중 벨기에 사례만을 간단히 소개해보도록 하겠다. 2009년 벨기에 네덜란드어권인 플란더스(Flanders) 지방에서는 어린이들의 놀이가 위협받는 현상을 우려하여 청소년 네트워크, 놀이터 관련 종사자, 각종 어린이 및 청소년 단체들이 모여 ‘잘 노는’이라는 이름의 네트워크 조직을 꾸렸고, 여덟 가지 선언을 담은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 선언문을 나침반 삼아 앤트워프를 비롯한 플란더스 지방의 도시들은 구체적 목표와 정책을 수립하고 도시를 바꿔나가고 있다. ‘여덟 가지 선언’은 다음과 같다. 1. 어린이들은 모든 공공공간에서 놀 수 있다. 2. 어린이들은 모든 녹지 공간에서 놀 수 있다. 3. 어린이의 놀이는 골칫거리가 아니다. 4. 어린이에게 의미 있는 공간(학교, 방과후 교실) 간에는 안전한 연결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다. 5. 청소년들을 위한 놀이 공간도 충분히 있다. 6. 어린이 놀이를 장려하는 지역 정책을 만든다. 7. 정책이 놀이 기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되면 어린이들이 직접 의견을 전달할 통로가 있다. 8. 어린이와 함께 공공공간을 만들어 나간다. “1. 어린이들은 모든 공공공간에서 놀 수 있다”의 구체적 내용은, 어린이들은 단지 놀이터나 공원뿐만 아니라 도로나 광장에서도 놀 수 있으므로 모든 공공공간이 안전한 놀이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영구적 시설 설치가 어렵다면 간헐적이라도 차량 통행을 막고 팝업 놀이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앤트워프에서는 구체적 목표를 ‘어린이들이 머물 수 있고, 놀 수 있고, 만남이 일어날 수 있는 공공공간’으로 설정하고, 차량동선 변경 등을 통해 안전한 공간을 확보하고 활동 촉진을 위한 휴식 시설물과 놀이시설물을 설치하고 있다. 지면 관계상 짧게 소개해 아쉽지만 앤트워프에서는 이 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그리고 아주 적극적으로 어린이들이 놀기 좋은 도시의 물리적 조건을 만들고 있었다. “3. 어린이의 놀이는 골칫거리가 아니다”라는 선언은 어린이들이 놀 때 소음이 발생하더라도 경찰 신고 같은 공식적인 항의를 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놀이터에서 어린이들이 노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민원을 넣거나, 놀이터에 버젓이 몇 시 이후로는 놀지 말 것을 경고하는 플랜카드를 붙이는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주목해야 대목이다. 7번째 선언인 “정책이 놀이 기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되면 어린이들이 직접 의견을 전달할 통로가 있다”도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크다. 구체적으로는 새로운 정책을 도입할 때마다 ‘아동과 청소년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평가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어른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어린이 관련 정책은 매번 뒤로 밀리는 우리의 상황과 비교된다. “8.어린이와 함께 공공공간을 만들어 나간다”의 경우 말로만 남지 않도록 각각의 도시는 고유의 방식을 개발하고 있다. 앤트워프 시정부는 효과적인 의견 수렴을 위해 ‘OOR’이라는 디지털 참여 도구를 개발했다. 놀기 좋은 놀이터에서 놀기 좋은 동네로 놀이터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는 추세 속에서, ‘좋은 놀이터와 좋은 놀이터를 만드는 방법’을 많은 이들과 고민하고 싶어서 ‘놀이터 톺아보기, 톺아짓기’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놀이터를 넘어서”를 주제로 연재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동네에 적합한 놀이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놀이터가 놓인 동네까지 봐야했고, 그러다보니 동네 단위에서의 어린이들의 놀 권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른으로서, 물리적 환경을 다루는 이로서 놀이터 짓는 걸로 해야 할 일을 다 했다고 위안삼은 건 아닌가하는 회의감도 이러한 변화의 이유가 된다. 최근 진행하고 있는 놀기 좋은 도시 관련 연구 때문에 많은 어린이들에게 ‘놀기 좋은 도시란 무엇인가’라고 물어보고 있다. 그들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멋진 답을 주고 있다. 그 중에서 되새길 필요가 있는 답으로 18회까지 이어진 긴 연재의 마지막을 장식하려 한다. 그 동안 읽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의 말을 전한다. - 학원 없는 도시, 놀이터가 깨끗하고, 부서진 것이 없는 도시 - 공원과 놀이터가 있고, 나무와 풀이 많은 곳 - 어른의 보호를 받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도시 - 온라인과 게임중독에 빠지지 않도록 PC방을 줄이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게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가 잘 되어 있는 곳 - 저녁에 늦게 학원에서 오는 날에도 부모님과 내가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도시 - 어린이를 위한 충분한 놀이장소가 있고, 무엇보다도 어린이가 범죄와 사고의 위험에서 가장 보호받을 수 있는 도시, 또한 어린이의 인권이 보장되는 도시 - 차 사고가 많이 안나고, 낯선 사람이 안 따라오고, 학업이 인생을 차지하지는 않는 도시, 큰 놀이터나 숲이 가까운 도시 -유괴, 차사고 등이 나지 않는 안전한 도시, 소음공해가 없고 자동차 매연이 없는 도시, 어린이를 위한 시설이 많은 도시 김연금 / 조경작업소 울 소장
  • 김도영 감독의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장안의 화제다. 개봉한 지 한 달도 안 되어 누적 관객 300만 명을 기록했고 할리우드 액션 대작인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와 예매율 순위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내용 때문에, 여성들은 요즘 말로 젠더 감수성이라 불리는 성 인지성에 대한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며 연인에게 원망스런 시선을 보내고, 남성들은 오히려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애교스러운 저항(?) 운동을 벌여 소소한 다툼이 일어나기도 했다. 영화의 원작은 2016년 10월 발간된 조남주 작가의 장편 소설로, 스크린의 흥행 바람을 타고 2019년 11월 누적 판매 부수 120만 부를 돌파했다. 1982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지영(그해에 태어난 여성의 이름 중 가장 많은 이름)이 대학을 졸업하고 홍보대행사에서 근무하다 서른한 살에 결혼해 딸을 낳아 키우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한국 사회의 여성들이 보편적으로 겪는 일과 육아 사이의 일상적 차별, 구조적 불평등에 대한 갈등을 섬세한 시각으로 그리고 있다. 어렸을 적 오빠와 남동생과 비교당하고 차별당한 이야기, 늦은 시간 누가 따라오면 불안했던 이야기, 결혼 후 시월드에서 겪어야 했던 일, 그리고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까지 동시대를 살아 온 여성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을 듯하다. 어느 날 김지영은 출산과 육아 후유증에 따른 치매와 빙의 현상 같은 이상 증세를 보이면서 상담 치료를 받게 되고, 왜 그런 증상을 보이는지 과거를 되짚으며 돌아본다. 영화의 결말은 조금은 희망적이고 해피엔딩을 향하고 있지만, 소설의 결말은 다시 냉정한 현실을 이어간다. 김지영을 상담한 정신과 의사는 간호사가 결혼 때문에 회사를 그만둔다고 하니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며 위선적 태도를 보인다. 씁쓸하고 개운치 않은 슬픈 결말이다. 조경설계사무소에 다니던 82년생 김지영을 떠올려보았다. 김지영이 태어난 1982년은 우연히도 월간 「환경과조경」이 창간된 해이고 한국조경연합회가 세계조경가협회(IFLA)에 가입한 해이기도 하다. 또 종합조경면허가 개방되고 11개 업체가 면허를 취득해 본격적으로 한국에 조경 시대의 서막이 열린 때다. 김지영이 대학에 들어간 2002년에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월드컵이 열렸고 한국조경학회는 창립 서른 돌을 맞이해 조경의 날을 선포했다. 그해 선유도공원과 월드컵공원도 개장했다. 그녀가 첫 직장에 입사했을 무렵인 2005년에는 서울숲과 청계천이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왔고 서울시에는 푸른도시국이 신설됐다. 김지영이 일을 시작한 시기에 한국 조경 업계에는 최고의 전성기라고 할 만큼 많은 일이 벌어졌고, 또 그만큼 많은 인력이 조경설계사무소로 쏟아져 들어왔다. 특히 상대적으로 여학생 비율이 높았던 조경학과의 특성상 많은 김지영들이 조경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당시의 조경설계사무소의 근무 여건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야근과 철야가 일상이었고 주말은 반납하기 일쑤고 편히 쉬는 날이 드물 정도였다. 그녀들은 결혼 적령기가 되면 더 이상 회사에서 버티기 힘들어졌고, 간혹 어렵게 남았더라도 아이가 생기면 퇴사하는 게 당연시됐다. 조경가로서의 능력보다 야근과 철야를 밥 먹듯 해낼 수 있는 강인한 체력의 남자 직원을 더 선호하는 것도 물론이었다. 그렇게 많은 김지영들이 하나둘 조경계를 떠나 육아와 함께 경력 단절의 길을 걸었다. 김지영이 회사를 그만둔 2014년, 대한민국 기혼여성 다섯 중 한 명은 결혼, 임신, 출산, 어린 자녀의 육아와 교육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었고, 통계청과 여성가족부의 “2019년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의하면 2018년 경력 단절 여성은 184만7000명으로 1년 전보다 1만6000명(0.8%) 늘었다. 조경계가 위기라는 요즘, 조경설계사무소들은 사람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아우성이다. 돌이켜보건대 그 많던 김지영이 회사를 떠나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그들이 용기 낼 수 있도록 응원했더라면 어땠을까? 물론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지금까지 굳건히 조경계에 남아 있는 용감한 김지영도 많다. 지난 11월 초에 조경 실무 현장에서 당당하게 커리어를 쌓아가는 여성 조경가들이 예비·사회초년 여성 조경가에게 자신들의 경험을 토대로 강연과 조언을 하는 자리가 있었다. 여성 조경가 그룹 ‘랜드걸스(Landgirls)’가 주최한 강연회 ‘여성 조경가, 그들의 이야기를 말하다’에서 한 여성 조경가는 “내 인생을 살아갈 권리를 가져야 한다. 결혼 후 주변에서 많은 우려의 말을 듣게 되는데, 결혼과 육아 때문에 꿈을 포기하지 말고 원하는 것을 요구해 모두 성취했으면 한다”며 조경을 전공한 여학생들이 조경 실무자로 나설 수 있도록 용기를 주었다. 또 “설계하면서 육아를 하는 여성 조경가가 많이 없어 외로움을 느낀다. 많은 사람이 있어야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듯이 다 같이 설계, 결혼, 육아를 해낼 수 있길 바란다”며 여성 조경가의 연대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영화에서 김지영의 엄마 미숙은 남편이 딸에게 “시집이나 가라”고 구박하자 지영에게 “얌전히 있지 마, 막 나대! 너 하고 싶은 것 해”라며 딸을 응원하는 연대의 목소리를 낸다. 침묵하던 김지영은 영화 후반부에 “맘충” 소리를 듣자 “당신이 날 아냐고? 내가 왜 벌레냐”고 자신의 목소리로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시작한다. 비슷한 처지의 여성 조경가들이 함께 돕고 연대한다면 서로에게 힘이 되고 큰 위로가 될 것이다. 최선을 다한 용감한 조경가 김지영들에게 정당한 보상과 응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조경계의 현업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그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조경계를 떠난 김지영을 생각해본다. “자꾸만 김지영 씨가 진짜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변의 여자 친구들, 선후배들, 그리고 저의 모습과도 많이 닮았기 때문일 겁니다”라는 작가의 글처럼 나도 자꾸만 조경가 김지영이 어딘가에서 다시 일할 기회를 찾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육아와 가사에 지쳐있을 그들이 경력 단절의 사슬을 끊고 다시 현업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해본다. 조금이나마 다행인 것은 그들이 직장을 그만두고 떠날 때와 비교하면 조경사무소의 근무여건이 훨씬 나아졌다는 점이다. 워라밸을 중시하는 시대인 만큼 요즘 웬만한 회사는 야근도 적고 파트타임 제도를 운영하는 등 시간의 제약이 덜한 편이다. 강연회에서 들려온 어느 여성 조경가의 외침이 뇌리를 떠나지 않고 계속 맴돈다. “이루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심장이 뛴다. 여러분도 심장 뛰는 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또 그 일을 찾았을 때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야 한다.” 돌아오라 조경가 김지영! 박명권 환경과조경 발행인
  • 부지불식간에 닥친 일들이 있다. 크고작은 공간에서 어떤 대상에게 스스로 사진을 어떻게 찍고 있는지 풀어놓아야 하는 일이 그렇다. 강연 제의를 받을 때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지 난감함을 감추기가 쉽지 않다. 우선은 가르치는 일보다는 무엇을 가리키는 일이라 생각되기에 어렵다. 무엇으로 인도해야 하는 선지자가 되라는 것도 아닌 단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말하면 될 일인데도 초롱한 눈망울을 마주하는 데에는 적잖은 용기가 필요하다.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반응은 그때그때 다르다. 일종의 쇼맨쉽을 발휘하여 그럴듯한 이야기로 포장하는 것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풀어놓을 때 사람들은 더욱 흥미를 느낀다. 포장지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에 대한 궁금증 그것을 향한 마음인가 하고 짐작한다. 기다려 주지 않는 기상상태와 비일비재한 현장의 돌발여건, 멀쩡했던 장비가 갑자기 말을 듣지 않는 등 일종의 에피소드 -정작 본인에게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지만- 를 풀어놓는 것이 흥행이 되기도 한다. 설명하는 일은 때로는 설명한 것을 다시 역으로 설명 된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본 것을 설명하기 위해 담아낸 것이 결과로 설명되는 일이다. 이런 역치환의 일들은 긴장을 동반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누군가 보고있는 듯한 긴장은 자신의 관점과 더불어 한단계 더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곤 한다. 물론 어쩌면 다른이의 시선을 신경쓴다는 것은 영 성가신 일이지만 사진은 결국 누군가의 감응으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역시 좋아!’ 상업이든 아마추어든 예술이든 사진을 찍는 사람에게 최고의 찬사는 ‘역시’라는 감탄사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반전을 주었다는 쾌감이기도 하다. 혹은 그 전에 가졌던 편견에 대한 오해의 불식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동감의 표현에 대한 감사함이랄까. 설명하는 사진, 해석되는 사진 사진을 찍는 것은 두 가지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현장을 무덤덤히 담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더 나아가 현장의 의도를 과장한다. 특정 사건이 단서가 된다. 포인트를 잡아내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이때 전제조건이 필요한데 결과에 대한 가상의 결론이 머릿속에 있어야 한다. 준비하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어떤사람은 글로 쓰고 어떤사람은 그림을 그리고 어떤사람은 몸으로 표현하고 어떤사람은 그저 생각한다. 또 어떤사람은 수 많은 단서가 될 사진을 찍는다. 모두 몸으로 직접 수행해야하는 육체가 겪어야 하는 단계다. 두 목적 모두 도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장비들이 좋아서 찍으면 나오는 사진이지만 이것은 복잡한 메커니즘을 통한 산물이다. 그저 ‘자동’인 것이다. 종이위에 그리는 펜 한자루처럼 이리 가라면 이리가고 저리 가라면 저리가지 않는다. 수 많은 변수를 익혀야 결과를 예측하고 알 수 있다. 그래서 ‘사진 잘찍는 법’은 도구인 사진기에 대한 이해를 전제한다. 간혹 어떻게 찍어야 좋은지 모르겠다는 질문을 받게 되는데 그 질문에 어떻게 설명해 주어야 하는가 하고 안절부절하게 된다. ‘어떻게’는 ‘왜’나 ‘무엇’을 동반해야 하는데 오로지 ‘어떻게’가 중요한 듯한 질문인 것이다. 어떤 카메라를 사면 잘나오는가와 다름 아니다. 요즘은 어떤 어플을 사용해야 하느냐는 말로 대신된다. 모든 이들이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 펜이 어떻게 제작되는지 알 필요 없다. 펜의 구조를 굳이 알 필요도 없다. 어떤 영화의 주인공처럼 몽당연필로 애써 글을 써 나가는 비운의 주인공이 될 필요는 없다. 도구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당장 ‘무엇’을 찍고 싶으냐가 중요하다. 그렇게 하고나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도구에 대한 욕구는 필요에 의한 것이 되어야한다. 펜이 종이와 닿을 때 역사는 이루어 진다. 유성인지 수성인지 가늘은지 굵은지 잉크는 어떤 종이와 만나는 것이 좋은지는 알아야 다음 단계를 나간다. 사진도 이와 같다. 그래서 어떻게 찍느냐는 질문은 어렵다. 내게 질문한 사람이 펜을 쥐는 것부터 물어보는지 펜의 종류를 물어보는지 선긋기를 물어보는지 컬러의 조합을 묻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선긋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도구가 말하는 방식을 이해해야한다. 이쯤되면 설명되고 설명하는 사진에 관한 이야기는 어디가고 기초 이야기만 하느냐는 질문을 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어떻게 찍냐고요?’라는 질문 할지도 모른다. 정작 카메라를 잡는 것을 일로 받아들이면서 말이다. 잘 찍은 사진을 원한다면 권하고 싶다. 핸드폰이던 카메라이던 한달동안 찍은 사진을 들여다 보시라. 그 중에서 자신이 찍고 싶은 사진이 담겨 있는지 살펴보시길 바란다. 찍었던 그때를 떠올릴 수 있는지 묻는 것이다. 혹은 좋은 순간을 놓쳤다면 이유를 스스로에게 되묻는 것이다. 수 많은 사진이 본인을 설명하고 있는지 먼저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설명하려고 하는 것보다 어떻게 설명되는지 수없이 타자화시키는 일이 필요하다. 모든 순간은 예고없이 찾아온다. 찰나는 능동적이지 않아 단지 누군가 일으키는 기다림으로 잡아낼 뿐이다. 유청오 / 조경사진가
  • 06. 빗물이 말하는 일산호수공원 “사람이 있으니 사랑이 있다. 아무러한 시대 아무러한 제도 속에서도 사람들은 삶의 증명처럼 사랑한다.” _ 김별아, 『도시를 걷는 시간』, 해냄, 2018, p.99. 일산호수공원은 생각의 방식을 바꿔준 독특한 위상의 ‘한국적 공원’이다. 특히 이곳하면 떠오르는 넓은 수면은 갑작스런 변화의 충격을 대비하고 흡수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충격을 흡수한 것만이 아니라 그 충격을 현대 도시가 주는 우리 식의 감성으로 소화하기까지 하였다. 그렇게 체현된 감각은 여러 방식으로 전파되어 하나의 전형처럼 자리 잡고 있다. 여기소(汝其沼, ‘너의 그 사랑이 잠긴 못’) 터에서 끌어온 작가의 서술이 일산호수공원을 보며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더 말할 필요도 없이 물은 생명의 기본이다. 흔히 보는 땅 위의 물은 대개 빗물에서 시작되고 이것은 그 위의 생명과 직결된다. 물이 새로 자리하면(내리면) 숨어있던 생태계가 한 번에 펼쳐지곤 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있다. 저 먼 사막에 비가 오면 윤회하듯 생로병사를 담은 생명들이 그 짧은 시간에 가득 차오르는 것은 대표적이다. 그러니 물은 볕만큼 중요한, 어쩌면 더 중요한 살아있는 것들(생태)의 기반이자 어머니(모태)다. 삶의 총아인 도시도 마치 살아 있는 것인 양 그것을 따른다. 일산신도시는 도시의 다단함보다 거대한 호수공원으로 먼저 기억된다. 논밭이었던 한강 옆의 들에 마치 센트럴파크마냥 하나하나 파내고 덮고 채워서 만든 대표적인 호수이기도 하다. 듣기로 물을 채우는 데에만 10개월이 걸린다니 그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마을 이름으로 나뉘는 도시의 장소들(일테면 아파트 단지별 이름)은 유치함을 벗어난 지 오래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도시도 공원도 빈티지 풍이 나는 제법 역사를 가진 삶터가 되었다. 그런데 이런 규모의 수면은 처음 하는 시도여서 시행착오가 많았다. 1990년대 한창 공사 막바지인 현장에 수업의 답사로 교수님의 설명을 들으며 돌아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까만 방수포와 자갈을 깔았고 한강물을 채워 이미 수질 관리에 매진하던 때이기도 했다. 호수 주변은 긴 조깅코스와 전통조경, 현대조경이 테마별로 이어졌고 한 번에 다 둘러볼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규모는 완전히 새로운 공원의 모습이기도 했다. 이후 이제는 어지간한 신도시에 호수든 분수든 벽천이든 물과 관련된 조경공간은 필수요소가 되었다.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물은 가만히 두어도, 쏘아 올려도, 흘려내려도 모두가 좋아한다. 심미적인 기능만이 아니라 열섬 완화, 생태계 지원, 미세기후 조절 등 도시적 보완 기능까지 생각한다면 보편화된 옥외공간 물 사용은 규모가 작든 크든 효과적이라 할 수 있다. 일산호수공원은 그러나 문제가 많았다. 가둬놓은 물이 스스로 깨끗해질리 만무, 수년간의 시도에도 적절한 수질관리 방법은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지식이었다. 역시 듣기로 수많은 방법을 사용해 보았지만 제일 효과적인 방법은 지금 사용하는 것으로 물 밑에서 공기를 불어 올리는 것이라고 한다. 역시 자연물은 자연의 법칙을 따를 때 최적화 되는 법, 여러 화학물질보다 자연의 신선한 공기가 지금 호수공원 수질 유지의 핵심이다. 호수에 가본다면 한번 꼼꼼히 찾아보기를 권한다. 수질문제를 해결할 경험적 지식을 습득하는 사이 공원은 말할 수 없을 만큼 변화되었다. 곳곳의 정원과 조경이 자리 잡아 마치 원래부터 있었던 곳인 양 가히 환골탈태한 것이다. 물이 많아지며 이 지역의 미세기후까지 바뀌었고 사람들이 많아지며 방생하는 생물들과 절로 나타난 생물들이 뒤섞이며 새로운 생태계가 형성되기도 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이곳이 이제 대한민국 국토의 측면에서 새로운 지리적 특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택리지를 수정해야 할 만큼 도시와 호수가 터를 바꾸어놓고 그 기법은 국토 여러 곳에 전파되어 수정할 부분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일산신도시와 일산호수공원이 우리 도시와 조경에 던져준 의미를 요약해보면 이렇다. “물의 테크놀로지 시험장, 신도시 마을실험의 전시장,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운동장, 축적된 조경미학의 집합장.” 하나하나 설명하지 않더라도 그 의미를 알 수 있으리라. 기회가 된다면 이에 대해서는 상세히 다시 설명하기로 한다. 무엇보다 대규모 공사를 필요로 하는 거대한 기획과 새로운 설계로 진행되었다는 점은 두고두고 곱씹어야 할 사항이고, 지속적인 보완으로 세대가 쌓이는 신도시로 거듭나고 있다는 점, 다른 기획된 신도시의 벤치마킹 사례가 되었다는 점은 살아있는 반면교사로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호수공원은 일산신도시 택지개발사업과 연계하여 조성한 근린공원으로서 국내 최대의 인공호수를 만들어 도시인이 접할 수 없는 자연생태계를 재현하고 다양한 주변경관 및 호수를 이용한 레크리에이션 공간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특히 호수를 중심으로 한 4.7km의 자전거도로와 메타세쿼이아길 등 9.1km의 산책로는 시민들이 특별히 좋아하는 장소이며, 그 밖에 생태자연학습장, 조형예술품, 선인장전시관 등이 다양한 생태문화시설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또한 매년 고양국제꽃박람회, 가을꽃축제, 호수꽃빛축제 등이 개최되는 등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명소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공원입니다.” _ 일산호수공원 안내문 설명에서처럼 공원은 세계적인 명소라 해도 손색이 없다. 이런 성과에도 ‘여기소’에서의 감성이 여전히 겹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메워진 연못과 그 기억을 끌어와 비석으로 흔적을 되살리는 그 의지는 이 공원에서 가능할까? 생각해보면 이 공원에는 그런 이야기가 보이지 않는다.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의 배경으로 지금도 꾸준히 우리 곁에 보이는 심적으로는 가까운 공원이지만 그만큼 자연의 날씨와 빗물처럼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 버린 탓일까? 긍정적으로 보자면 일산호수공원은 특별함보다 이미 일상의 배경이 된 셈이다. 사실 이때부터 중요하다. 여기소가 담은 정치, 경제, 시대를 뛰어넘어 지속되는 사랑(이야기)은 의심이 필요 없는 공리(公理)라는 듯 장소의 혼처럼 남아 있다. 그 배경에 물의 기운이 깔려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여기소’는 아마도 여건이 되었다면 비석만 놓는 것이 아니라 연못의 원형을 찾아 복원하려 했을 것이다. 여건이 된다면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한강(잠실 수중보 상류) → 유입수로 자연정화(부들, 부레옥잠) → 유입수처리시설 2500㎡/일 응집침전법 → 청평지 4000㎡ → 일산호 인공호수(지역1,2) → 자연호수 자연생태재현 → 방류 한강하류 그런 점에서 일산호수공원은 이제 새로운 영역에 도전해야 할 때가 되었다. 빗물의 공원이 이야기의 공원이 되었으면 한다 할까, 이벤트로 기억되는 공원이 아니라 생의 의미가, 삶의 가치가, 이야기의 성찰이 드넓은 공원 전체를 고루 적시는 빗물처럼 여기저기서 피어났으면 하는 것이다. 물론 드러나지 않았을 뿐 공원은 이미 많은 이야기가 쌓여있을 것이다. 이제 그것들이 문화가 되고 문명이 되어 비석 하나로 기억될 그때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물길은 어디든 그 길을 만든다. 생태적이고 자연적이다. 일산호수공원은 그 큰물을 모아 담고 새로운 물길을 유도하는 희망의 도시를 꿈꾸었다. 세대가 지나고 시간이 흐르며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담긴 도시는 이제 본래부터 그런 것 같은 “세월의 도시”가 되었다. 난센스 같은 공원은 이미 자연스런 일상이 되었다. 이제 희망의 도시는 “삶의 질에서 삶의 신선도”(철학자 김용석의 말)를 바라는 행복의 도시를 꿈꾸고 있는 것. 우리는 이제 그것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시대를 지나고 있다. 결국 이 정도면 이 공원이 ‘생각의 방식을 바꾸는 일’에서 시작되었음을 충분히 짐작하고 인정할 만하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실무진들의 노력만으로는 해낼 수 없는 일이라는 것도. 이것은 도시와 공원이 물을 매개로 어떻게 진화할 수 있는지 어쩌면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내놓은 답안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그런 면에서 이 빈티지 공원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별아 작가가 본 ‘너의 그 사랑이 잠긴 못’은, 물을 두고 만나는 사람은, 물에 두고 만나는 사랑은 그 밖의 아무러한 상황에서도 삶이 되고 각자(삶)의 증명이 된다는 표지였을 것이다. 이야기는 물처럼 남아 사람과 사람 사이를 돌고 돌며 사람과 사랑을 끌어당긴다. 어느 시대든 물을 우리가 사랑하는 이유 하나는 이것으로 자명해진다. 사람과 사랑이 춤추는 물의 공원은 계절에 따라 적절히 내리는 빗물 같은 것이다. ‘너라는 집으로 지금 다시 way back home ~’(SHAUN 곡, ‘Way Back Home’ 중) 우리는 난센스 같은 희망의 도시가 아니라 이제 이야기 가득한 행복의 도시를 꿈꾸어야 할 때이다. Park 05. 빗물이 말하는 공원들, “자연과 인공의 대립 또는 문화적 공생(제3의 자연)” 물이 도시와 성장해야 하는 것은 지난 시대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여전할 우리의 과제이자 필수 문제이다. 이수와 치수가 고도화된 지금이라지만 여전히 우리는 1990년대 서울의 대홍수를 트라우마로 가지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 들려오는 허리케인 피해도 여전하고 새로운 기법과 기술로 통합적인 체계에다가 대심도 침수지 같은 확대되는 실천에도 여전히 우리는 시행착오를 거칠 수밖에 없다. 빗물은 자연 그 자체이기에 축적되고 지속되며 새로운 대응책과 대비책에도 우리는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시대의 빗물은 더 이상 자연스럽지 않다. 마치 주변의 나무들이 온전히 자연스럽지만은 않은 것처럼 도시의 자연은 그저 천연스레 자연스럽지만은 않은 것이다. 도시의 야생성은 순치(馴致)된 그것 같아서 그 위로 쏟아지는 빗물도 허락된 야생성에 기반 한다. 다시 말해 해답은 여러모로 이미 가지고 있다는 말이고 문제는 의지와 결정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그 문제, 의지와 결정, 즉 모두의 생각이 쉽게 통합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 셈이다. 그런 변화의 근원을 지난 편에 이어 더 정리해 본다. 충분히 설명하지는 못하였고 또 이번에도 그렇지 못하더라도 눈 밝게 읽는다면 그 순서와 의미가 이해될 것으로 믿는다. 생각이 많아지길 바라는 바도 소통되길 바라본다, 함께 고민하길 고대하는 것이다. 3. 행동(activity)과 기술들(technical skills), 실천을 분별하기 우리는 혼합의 시대를 살고 있다. 다방면의 기능과 물체들이 모르는 사이 뒤섞여 새로운 무언가로 쉽게 주어지는 시대라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한 우물만 파며 평생을 보내는 일은 이제 스스로 고립을 자처하는 일이 되기 쉽다. 물론 모든 일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어느 분야든 첨단을 달리는 위치에서는 넓이보다는 깊이가 더욱 중요할 테니 말이다. 그렇더라도 이미 우리의 생활양식은 생각이든 행동이든 제작이든 편이나 길을 나누어서는 곤란한 시대를 지나고 있음은 분명하다. 여기서 뒤섞이는 것이 혼합이라지만 마구잡이로 그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러할 때 앞길을 짐작하고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난무하는 융복합이니 통섭이니 다중지성이니 하이브리드니 하는 말들 사이에서 길 잃지 않고 앞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혼합이 대세라지만 혼탁하고 혼미한 생각으로는 제대로 된 섞임도 창의도, 또한 의사결정도 오히려 어려워질 것이라는 점 분명히 짚을 필요가 있다. 건축, 도시, 조경 등 어떤 식으로든 1회성 작업을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는 분야라면 이런 융복합이라는 개념의 사용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기술이 명확하게 위상을 갖지 못한다고 하여 그 본질적 작업의 개념조차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하여 필자는 지속적으로 융합, 융복합이라는 말의 비민주성을 주장한 바 있다. 밑에 도사린 패권주의가 결국 제대로 된 혼합을 이루어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쓸데없는 다툼과 낭비를 가져와 사회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온당치 못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다루기로 하고, 혼합을 주장하는 말들에 비민주적이고 패권주의적인 태도가 도사리고 있다는 정도만은 기억해 두자. 그렇다면 무엇이 그렇게 만든다는 말인가. 우리는 근대를 지나며 저마다의 전문 분야 지식과 실천을 바로 인접 분야에서조처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독특한 지점까지 발전시켜놓고 있다. 그 한계에 이르자 나타나는 현상이 이제 좀 주변을 둘러보며 서로 갈린 지식과 실천을 묶어 새로운 결과와 새로운 영역을 구축해보자는 것이 이러한 경향의 배경이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융복합을 이야기하는 태도는 여러 지식과 실천의 혼합을 요청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각자의 방식과 시각을 구축해둔 여러 전문 영역들이 쉽게 혼합되기는 쉽지 않을 터. 그러니 지금까지 여러 시도가 있었어도 그 결과가 신통치 않았던 것이고 현장에 대입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융합하자고 나서는 목소리가 있다. 융복합하자고 떠드는 목소리가 크다. 왜 일까? 그래야 새로운 것을 만들고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계가 명확하니 그렇게라도 돌파해보자는 것이다. 혼합의 과정은 우리가 잘 모르지만 크게 네 단계의 특성을 가지게 되는데 이를 무시한 혼합은 결국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으며, 1회성 작업을 해야 하는 분야로서는 그야말로 탁상공론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짧게만 얘기한다. 혼합은 단자화 된 단순 기능의 배치와 연계의 ‘조합’과 단자화 되었으나 자체 기능 조절로 유동적으로 엮여진 ‘통합’, 본래의 기능 우선권을 잃고 큰 틀의 목적에 따라 분해되고 배치되며 섞인 ‘융합’, 그리고 큰 틀에서 물리적인 대상을 다루지 않는 지식의 혼합으로서의 ‘통섭’(이 말은 설명을 위해 차용함) 등 4 가지의 위상으로 나뉠 수 있다. 이 중 전통적인 방식의 혼합이 조합이고, 산업제품과 같이 대량 복제와 생산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 융합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통합은 좀 다른 성격을 가진다. 각자의 전통적이고 고유한 기능은 유지한 채 주변 상황에 따라 그 성능과 범위를 자율적으로 조절하고 적응하는 방식의 혼합을 말하기 때문이다. 쉽게 보면 인체의 여러 장기들이 컨디션에 따라 그 기능을 스스로 조절하는 것을 떠올려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융합 또는 융복합은 기존 체계와 지식을 어느 하나의 의지에 따라 깡그리 뒤섞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산업제품의 생산에는 이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창의적은 제품 생산이 가능할 것이다. 허나 어떤 작업이든, 설령 동일한 도면으로 같은 건물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결코 같은 것이 될 수 없는 1회성 전문 분야에서 이것은 기존 전문 분야에 대한 폭거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융합의 시대가 아니라 통합이 먼저 고민되어야 하는 시대이다. 서로를 존중하고 각자의 역할을 조율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 누구 하나의 마스터플랜으로 세세한 전문기술 영역을 통제하거나 혼합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명심할 일이다. 4. 지속성과 회복성을 위한 철학하기 조경은 고도의 철학성과 윤리성이 요청되는 실천학이다. 근대를 지나오며 조경이 전문적 사회서비스로, 다시 말해 프로페셔널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러나 이러한 부분은 크게 주목받지 못하였다. 공중의 안전과 안정을 위해 시작된 공원 만들기였지만 전문화의 과정은 그 자체로 업역을 둘러치는 일이었고 타 업역과의 차별성을 형성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안 맥하그가 주목받는 이유도 그런 배경이 있다. 조경은 근대를 거치며 그렇게 나름의 객관화 작업을 통해 굳건한 위상을 구축하게 된 것이다. 이분법적 사고가 팽배했던 당시 풍토를 생각한다면 그러한 과정에서 고군분투하며 구축한 조경실천의 방법론들은 가히 경이롭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에서야 너무도 흔하게 보편화된 방법론일지 모르겠으나 교과서 없이 자연과 직면해야 했던 당시로서는 단순히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 작업이었을 것이다. 한 분야의 전문성은 이처럼 몇몇 선구자에 의해 갖춰지기 마련이고 이런 틀에서 새로운 방법론과 가치가 추가되고 보완되며 현재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나 그 성과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 하나에만 집중한 노력은 대체로 생각을 단순화하고 시야를 좁고 깊게 만들게 된다. 이안 맥하그만 하더라도 그의 방법론이 몇 차례 수정되며 진화하였지만 여전히 보완이 필요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런 점에서 거의 모든 분야가 전문성의 깊이에만 몰두하던 근대적 시야에서 벗어나야 할 시점에 와있다. 근대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이라 통칭되는 경향이 해체라는 과정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도 그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환경문제는 모두에게 닥친 시급한 문제임이 공감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전문성의 분화라는 경향에도 변화가 필요하게 되었다. 통합이 논의되고 융복합적 사고가 강조되는 배경에는 이러한 추세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처럼 실천이 중요한 것이 사실이기는 하나 우리는 우리가 가진 사고 체계를 돌아볼 필요도 있다. 어쩌면 우리는 그런 작업에서는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예를 들어 환경을 다룬다는 점에서 조경의, 조경가의 윤리는 의사들의 생명윤리 못지않게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함에도 그것이 당연하다 생각할 뿐 제대로 된 반성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때 철학자 김용석은 중요한 시사를 던져주었다. 조경이든 도시든 우리는 이것을 심도 있게 논의할 때라고 본다. 그것을 차용하여 생각의 단서를 찾아보자. 조경은 무엇보다 환경의 지속가능성과 회복탄력성을 목표이자 대상으로 하는 분야이다. 그것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여러 이론과 실천, 행위가 뒤따르고 그 결과에 대한 반성과 그 피드백으로 전문성을 다시 도약시키곤 한다. 조경의 이론학, 실천학, 윤리학은 그런 점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각이다. 설리, 즉 이야기 철학은 여기에 새로운 관점을 더해준다. 철학이 크게 원리, 윤리, 진리에 몰두하며 발전해왔다면 이제는 인간의 서사가 만들어낸 결과물들을 통해 새로운 철학의 분야를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말은 “인간의 가상적 경험의 이야기가 내재적 논리성을 갖고 있는지 탐구하는 것”이자 “그 논리성은 인간 존재의 본질에 이르는 통로가 될 것”이라며 철학을 구체화하며 이미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을 통해 “인간의 인공적 산물에 대해서도 철학적 연구”를 했다고 강조한다. 다시 말해 ‘설(說)을 풀어내는 인간의 작업이 철학의 연구 대상’이 되었다는 것, 이 설(넓게 보아 텍스트)에 이치가 있음을 밝히는 작업으로서 설리(說理)라는 새로운 철학적 탐구의 영역이 간과되었었다는 것이다. 이제 와서 보니 설리의 탐구가 진리의 탐구와 크게 다르지 않더라는 것이다. 여기서 그 내용을 모두 살필 수는 없으니 역작 『서사철학 : 이야기 탐구의 아이리스』(휴머니스트, 2009)을 직접 읽어보기 권한다. 조경이 환경을 다룬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또한 설계를 통해 대상지의 텍스트와 컨텍스트를 재조정한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우리는 근대 과학적 시각에 입각한 원리와 진리 중심의 사고에서 시야를 확장하여 윤리와 설리를 실천의 중심에 불러들여 조경철학의 부족함을 메워야 할 것이다. 철학이 부족했음은 성찰이 부족했음을 말하며, 끊임없이 고군분투했음에도 성찰이 부족했음은 원리, 윤리, 진리, 설리 중 어느 한 둘에만 매몰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일 테다. 깊이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고개 돌려 주변을 살피며 동반 성찰하는 새로운 통합적 지혜가 지구정원에 필요한 시점이다.
  •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조경분야의 장기 발전전략 도출을 위한 거대 담론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본 고에서는 소소한 일화를 통해 조경의 지난 날을 돌아보고자 한다. 과거 경험에 기초한 미래지향적 제안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경험은 1970년대 말 시작된 대학생활로 거슬러 올라간다.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 같은 희망을 안고 ‘조경’이라는 세상에 첫발을 디딘 신입생이 기억하는 선배님의 고민은 기대와 호기심으로 가득했던 신출내기의 고민과 다른 양상을 띠었다. “기껏 공부해서 대학 나와 부잣집 정원이나 만드는 거 아닌가?”, “시작 단계인 조경업이 지지 부진하니 그냥 반짝하고 나타났다 사라지는 산업은 아닌가?” 등의 고민이었다. 하지만 그 선배들은 당시의 치열했던 고민만큼 열심히 ‘조경’을 했기 때문에 아직도 일선에서 건실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열정' 두 번째는 1980년대 초반 원예학 수업시간 교수님 말씀이 기억난다. 조경산업 태동기라 조경학과 학생들에게 의욕을 불어넣기 위한 발언으로 기억된다. 당시 원예, 조경, 라면 시장의 한해 사업(매출) 규모가 2000억 원 정도로 비슷했는데교수님은 해외 유학 시절 선진국의 사례를 소개하며 "조경분야가 앞으로 크게 성장할 것이니 모두들 의욕을 가지고 열심히 학업에 매진하라"고 권면했다. 시간이 흘러 학생을 가르치는 입장이 되고나서도 조경분야의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야기하며 학생들에게 자긍심과 동기를 부여했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 내용과 정도는 다르지만 지나온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낙관론이 지배적이지는 않다. 학생들은 "조경의 여러 영역에서 느끼는 위기감은 실제로 도래할 것인가?"라고 묻는다. 작금의 건설경기 불황과 인접분야와의 업역 갈등은 조경산업의 미래와 정체성 측면에서 기성세대는 물론 미래세대인 학생에게도 불안감을 키우고, 학습의욕을 떨어뜨리지 않을까 우려된다. 감상적인 낙관론에 의지하기 보다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조경’의 정체성을 재정비하고, 상충되는 인접 분야와의 상생 발전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상생' 세 번째, 지난 대학시절 누군가가 ‘넌 장래에 꿈이 뭐냐?’고 물으면 대답은 항상 ‘흰머리 수북한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도 제도판에 앉아서 골몰하며 도면을 그리고 있는 게 꿈’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이제 젊은 세대(학생)는 제도판에서 도면을 그리지 않는다. 시대가 변하면서 내 연구실의 제도판까지 사라졌다. 주변의 선배, 동료, 후배들도 현역에서 은퇴하는 시점이 되다보니 여러 생각과 감정이 교차한다. 세계화 시대에는 효율과 속도, 결과가 중요한 가치였지만 이제는 과정과 질이 더 중요시 되는 시대가 되었다. 조경시설물도 대부분 기성제품을 선택하다 보니 차별화되고 개성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은 현실이 되었다. 흰머리 수북해서도 삶의 공간을 매만지는 일을 하겠다던 그들의 검은 머리 무성했던 시절의 열정을 소환해보자. 쟁쟁했던 그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적극 활용한다면 도시재생과 같이 지역의 역사와 특성을 살리는 섬세한 과정이 중요시 되는 일들에는 훨씬 좋은 성과를 내지 않겠는가. 보수나 일자리 다툼의 영역을 넘어서는 사회 발전 차원에서의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다. '동참' 네 번째는 최근의 일이다. 모 지자체 기술심의에서 방음벽 디자인과 안전펜스의 설계자 제안이 시설 설치 목적 달성에 미치지 못해 재검토를 요청했다. 돌아온 제안자의 답변은 "검토한 내용으로 바꾸고 싶지만 앞선 경관심의 내용을 번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문분야 기술자 발견된 문제를 고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라고 재협의를 요청하니, 며칠 후 제안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행히 검토한 내용으로 문제가 잘 정리가 되었다면서, 문제를 미루지 않고 부딪혀해결하고 나니 깔끔하게 일이 정리되고 명쾌해서 좋았다는 말도 함께 건넨다. 조경의 영역이 갈수록 넓고 다양해지고 있다. 경관, 디자인, 생태 등 유관 분야의 협의·조정 능력 발휘가 요청되는 시점이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양한 분야의 조정 경험이 적을 수밖에 없는 젊은 조경분야 기술자들이 이런 관문을 통과하기가 쉽지 않은게 현실이다. 문제해결을 위해 산·학이 연계하여 전문가들과 함께하는 캡스톤디자인, 진로지도, 현장실습 등 여러 다양한 시도로 서로 손을 맞잡고 헤쳐나가고 있지만, 넓고 다양해진 조경산업 후속세대인 학생들의 필요와 요구에 더 많은 관심과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관심과 협력' 모두가 만족스럽고 행복한 유토피아를 꿈꾼다. '그런 이상향이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었지만, 그래도 지난 50년 세월처럼 희망과 기대를 가지고 손에 손을 잡고 연대하며 뚜벅뚜벅 새로운 위기와 어려움을 극복해 나간다면 나아진 ‘조경’의 미래가 반드시 올 것이라 믿는다. 김대수 / 대전과학기술대학교 도시환경조경과 교수
    • 김대수 대전과학기술대 도시환경조경과 교수[email protected]
    • 2019-10-22
  •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IPCC)가 발간한 5차 평가보고서(AR5)는 인간의 산업 활동으로 인한 기후변화가 인류와 자연 생태계에 새로운 위험을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우리나라의 평균기온은 1912년 이후 1.5℃ 상승하였고, 이외에도 태풍 및 가뭄과 같은 자연재해 증가, 생태계 변화,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연안 침수 등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실제 관측되고 있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기후변화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2100년까지 2800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한다. 따라서 기후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완화정책뿐만 아니라 자연계와 인간사회가 직면한 기후변화위험을 최소화하는 적응정책이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부터 기후변화 적응의 필요성을 인식하였고, 기후변화 영향평가 및 적응대책을 추진하였다. 이에 2010년부터 시행된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 제48조 및 시행령 제38조에 근거하여 ‘기후변화 적응대책’ 수립·시행을 의무화함에 따라 모든 광역 및 기초 지방자치단체는 5년마다 기후변화 적응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적응계획이 얼마나 원활하게 이행되었는지 그리고 실제 기후변화 영향저감효과가 어느 정도인지를 평가할 수 있는 지표와 방법론이 없어 적응계획의 실효성을 판단하기 어렵다. 특히 기초 지자체는 현실적으로 예산과 전문성이 부족하여 기후변화 적응대책기술에 대한 평가를 자체적으로 수행하기 어려우므로 이들을 위한 의사결정 지원도구가 필요하다. 즉, 기후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적응계획을 수립·이행하기 위해서 개별 적응대책기술의 효과를 평가하는 지원시스템이 요구된다. 이러한 지원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환경부 산하기관인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기후변화대응 R&D 사업의 하나로 “기후변화 적응정책 선정을 위한 통합평가 의사결정지원 도구개발 및 실증화·고도화”를 제안하였고, 이를 본 연구진이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진행한다. 필자는 총괄 연구책임자를 맡아 협동기관인 연세대학교,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과 공동으로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조경학, 도시계획학, 경제학, 정치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연구진을 통해 여러 측면에서 기후변화 적응방안을 살펴본다. 연구과제의 목표는 국가와 광역 및 기초 지자체가 기후변화 적응계획을 원활하게 수립할 수 있도록 의사결정 지원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다. 지원시스템은 단기 및 중·장기 기후변화 적응계획을 마련하는 데 필요한 기후정보와 적응대책에 대한 정성적·정량적 평가방법론과 결과를 제공한다. 필자는 2016년 월간 『에코스케이프』(환경과조경사 발행)에 기고한 “기후변화 적응대책으로서의 그린인프라의 가능성: 기후변화, 조경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그린인프라가 기후변화를 완화하고, 기후변화에 대한 단기 및 중·장기 피해를 줄이는 적응효과가 있다고 하였다. 그린인프라의 기후변화 영향저감효과는 기후변화로 인해 증가한 폭염을 예방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미세먼지 감축이나 효율적인 물관리 등 다양하다. 그러나 그린인프라를 통한 기후변화 적응효과에 관한 연구 대부분이 다양한 부문에 미치는 영향을 복합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있다. 이에 연구진은 기후변화로 인한 다양한 부문의 피해를 동시에 고려하기 위해 환경성, 안전성, 건강성 측면에서 그린인프라를 포함한 여러 적응대책기술의 영향저감효과를 평가한다. 개별 결과는 화폐 가치로 환산하여 통합되며, 이후 적응계획에 대한 주기별 적응경로가 제안된다. 더불어 적응대책기술이 지역 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분석하여 지자체가 산업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한다. 현재까지 연구결과에 따르면, 그린인프라는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효과가 있으며, 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증가한다. 또한, 그린인프라를 적용하지 않은 적응계획과 비교하여 그린인프라를 적용한 대안은 구조물의 내구성이 떨어지지 않아 유지관리비용이 저렴하여 경제적으로도 이득인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그린인프라에 기반을 둔 기후변화 적응계획은 사회경제적 혜택을 가져오고 인간과 자연 생태계의 질을 높일 수 있다. 본 연구진이 개발한 지원시스템을 통해 생태 가치를 보전하면서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그린인프라의 가치가 다시 한 번 입증되었다. 그린인프라 조성을 통해 우리 사회가 지속 가능한 사회로 한 걸음 나아갈 기회가 되리라 기대한다. * 이동근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경대학교 녹지조경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통합적인 기후변화 영향평가, 도시 열섬 저감 기술을 비롯한 여러 R&D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환경영향평가론』, 『경관생태학』, 『환경계획학』 등 다수의 공저를 포함하여 국내외 논문 200여 편 이상을 발표하였다. 현재 한국기후변화학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국회기후변화포럼 운영위원장, 『Landscape and Ecological Engineering』 편집위원장, 환경부 자체평가위원 겸 중앙환경정책위원, 한국환경영향평가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이동근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이동근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email protected]
    • 2019-10-18
  • 긴 여름이 갔다. 열어둔 창문이 절로 닫힐 정도로 온도가 변해있다. 녹음은 제자리를 잡기도 전에 누런 빛으로 변해간다. 길에는 긴 옷을 걸친 사람들, 빛은 길어지고 차분한 공기가 길에 깔려있다. 지나는 날씨가 차창에 기웃거릴 때 문득 옛 생각이 났다. 대도시로의 시대, 그 때 흔한 부모는 고향에 생긴 일들을 위해 귀경을 하곤했다. 따라나선 아이들은 긴 여행이 지루할 뿐 무슨 생각이 있을 수 있었겠는가. 그저 위안은 외부로 열려있는 차창을 바라보는 일 따위다. 차창 밖 풍경은 영상이 되고 사진이 되기도 했다. 멀미를 최대한 늦출 수 있는 임시방편이기도 했다. 결국은 비닐봉지를 귀에 걸고 메스꺼움을 견딜 수 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한참을 차창밖 바라보던 형은 느닷없이 깔깔대며 말했다. "저것봐, 나무가 오줌을 누고 있어." 세상에 어떤 나무가 오줌을 싼단 말인가. 나는 쉽사리 동의하지 못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그것이 어떤 뜻인지 해석할 수 있었다. 스치는 나무의 잔상, 곧게 하늘로 뻗은 나무의 고정적 이미지가 아니라 슬로우 셔터 속에서 벌어지는 나무의 휘어짐처럼 대상을 보고 말한 것이었다. 이제와서 지나는 가로수를 보고 있자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싶다. 나무가 소변을 보는 것에 공감이라니 얼마나 대단한 발견인가!(정작 본인은 그 말을 기억하지 못한다. 세월의 아이러니 일까) 오랫동안 보았던 차창밖 풍경은 이제 다르지만 가끔씩 ‘어떤감성’에 젖게 한다. 요즘의 대중교통 차창 안을 이리저리 살펴본다. 이제는 익숙한 온통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모습이 있다. 그 안의 세상이 궁금해진다. 힐끗, 넘겨본 그들의 세상에는 대부분 게임 아니면 SNS어플이 열려있다. 참 많은 글과 이미지들이 펼쳐진다. 사람들은 낯 모르는 대중 속 유일한 혼자만의 시간, 작은 기기로 낯모르는 사람으로 통한다. 수 많은 이성으로 만들어진 모바일 기기가 수 많은 감성의 도구가 되는 것은 아이러니다. 관조하고 평가가 그 안에 있고 사람들은 누군가의 감성에 공감한다. 감히 감성과 공감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진을 찍는 행위도 비슷하다. 이성으로 가득찬 차가운 카메라는 그저 작동할 뿐이다. 보는 행위가 있어야 한다. 해석이나 읽기의 능동적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성과 논리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감성으로 보면 달리 보인다. 그런 과정을 통해 찍힌 사진은 더욱 열려있게 된다. 찍는 사람에게 열려있는 사진이 보는 사람에게도 열려있다. 한 장의 사진은 감성으로 읽으면 달라질 수 있다. 누군가에게 그냥 한 그루의 나무가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소년의 시절로 순간 회귀하는 환상을 겪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는 사진 안에는 공감과 이유가 있다. 고백하자면 아직도 오줌을 누고있는 나무가 보이지 않는다. 감성이 부족한 걸까하고 반문해 보기도 한다. 요즘을 돌이켜본다. 내가 생각하는 나무의 감성은 무엇일까 자문한다. 여러분의 나무는 무엇으로 어떻게 담길지 궁금하다. 문득, SNS를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유청오 / 조경사진가
  • 동네 중심에 있는 놀이터를 디자인하면서,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놀이터를 알아보기 위한 워크숍을 진행했었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놀이터를 분석해서 그 결과를 놀이터 디자인에 활용하는 게 원래 목적이었는데, 의도치 않은 성과를 얻었다. 오늘은 ‘동네’ 어디서 무엇을 하며 놀 것인가? 우리가 다루는 놀이터를 중심에 놓고 일반적으로 보행권이라 이야기되는 반경 500m내 놀이터를 표시한 지도를 가운데 두고 ‘어느 놀이터에서 주로 노는지, 어느 놀이터가 좋은지’에 대해 어린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처음엔 어린이들과 소통이 되지 않았다. 어린이들은 “저는 코뿔소 놀이터가 좋아요”라고 하는데 그 놀이터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우리가 적어간 공식적인 놀이터 이름과 아이들이 부르는 이름이 달랐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은 동네 놀이터에 나름의 이름을 붙이고 있었고, 어른인 우리는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특성을 파악하게 됐다. 어디는 시설물은 없지만 넓어서 좋다고 했고 어떤 놀이터는 목재 가벽에 싱크대 같은 주방 모습이 표현돼서 소꿉놀이하기에 좋다고 했다. 또 자신들한테는 재미없지만 동생들은 좋아할만한 놀이터라 높이 평가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어린이들은 그날의 일정과 일정에 따른 동선, 시간적 여유, 날씨, 자신의 기분에 따라 놀이터를 선택하고 있었다. 일정이 바쁜 날은 좀 시시한 놀이터라도 학교 근처 놀이터에서 놀고, 시간적 여유가 있는 날은 좀 더 멀더라도 시설물이 크고 넓은 놀이터로 원정을 나가기도 했다. 또 어떤 놀이터는 자신들보다 고학년 언니들이 자주 모이기 때문에 피한다고도 했다. 어린이들이 놀 곳을 찾는 방식은 어른들이 놀 곳을 찾는 방식과 다르지 않았다. 어른들도 퇴근 후 한 잔 할 곳을 찾을 때, 동선, 시간적 여유, 그날의 기분, 날씨를 고려하지 않던가? 바쁜 날은 좀 시시하더라도 학교 근처 놀이터에서 놀고 여유가 있는 날은 좀 멀더라도 크고 넓은 놀이터로 원정을 가며 어떤 놀이터는 고학년 언니들이 자주 모이기 때문에 피한다. 어린이들이 놀 곳을 찾는 방식은 어른들의 방식과 다르지 않았다. 어른들도 동선, 시간, 그날의 기분, 날씨를 고려하지 않던가? 동네 단위에서의 놀이 환경 진단 지표 이 워크숍 이후 놀이터에서 동네로 시선을 확장하게 됐다. 놀이터 디자인을 의뢰받으면, 대상지 일대 동네에서의 어린이들의 동선을 검토하고 주변의 놀이터를 조사한다. 어린이들이 일상적으로 찾는 동네 놀이터와 동네에서 떨어져 있어 가끔 찾는 놀이터는 구성이 달라야 한다. 어린이들은 동네 놀이터에서는 반복적으로 시설물을 이용하면서 친구들과 놀이를 발전시키기 때문에 시설물 구성이 단순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가끔 찾는 놀이터, 특히 부모나 보호자와 찾는 놀이터에서는 친구들과 발전시킨 놀이도 없고, 친구조차도 없을 수 있으므로 시설물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고 이는 디자인에 반영돼야 한다. 또 대상지 주변 동네 놀이터가 주로 초등학교 입학 전 어린이들이 놀기에 좋다면, 대상지는 초등학생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조성해야 한다. 즉, 주변 놀이터와의 관계 속에서 동네에서 충족되지 않는 놀이 활동을 제공해야 한다. 이렇게 이 워크숍 덕분으로 디자인 접근 방식에 변화가 있었지만, ‘동네 단위의 놀이 환경’에도 관심을 갖게 됐고 현황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싶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한 벤처 기부(Venture Philanthropy) 펀드인 C프로그램의 지원으로 2017년 봄부터 1년간 ‘동네 놀이환경 진단도구 개발’이라는 연구를 진행했고, 세 가지 진단 지표로 ‘바깥놀이장소의 향유’, ‘놀이장소의 질’, ‘연결성’을 도출했다. 세 가지 진단 지표의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해 이 연구를 함께 진행했던 최이명 박사(현 두리공간연구소)와 강현미 박사(현 건축도시공간연구소)가 그간 발전시켜온 연구 방법을 사용했다. 어린이들의 일주일 동안의 동선을 GPS로 기록하는 방법으로, 세 가지 진단 지표의 타당성을 검토하는데 유용했을 뿐만 아니라 지도로 드러난 어린이들의 일상은 그 자체로도 흥미로웠다 일반적으로 아이들이 잘 놀 수 있는 조건으로는 시간, 공간, 사회적 허용성 등등을 말한다. 그런데 하나의 놀이터를 멋들어지게 만들어준다고 공간의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집에서 나와 많이 걷지 않아도 되는 거리에 놀이공간이 있어야 하고, 집과 학교 가는 도중에 혹은 학교에서 학원 가는 도중에도 안전하게 놀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또한 각각의 놀이공간으로 가는 길도 안전해야 한다. 그러므로 동네 단위로 놀이 환경을 본다는 것은 아동들의 일상을 염두에 두고 놀이 환경을 본다는 것을 의미하며, 아이들의 일상에 놀이가 깃들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 자료: 김연금, 최이명 외 2인(2018) 동네 놀이환경 진단도구 개발(Playable Neighborhood Index), C 프로그램. 김연금 / 조경작업소 울 소장
  •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최근 미세먼지와 폭염 등의 기상피해는 어린이들이 학교와 학교 밖에서 맘 놓고 숨 쉬지도 뛰어놀지도 못하게 하고 있다. 미세먼지와 폭염 등에 취약한 학생들을 위해 더욱 풍성한 학교숲이 필요하다. 학교숲은 학교의 자연으로 공기청정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학교숲은 국민의 30%이상을 차지하는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일상생활의 절반 이상을 보내는 생활공간이자 야외교실이다. '가르칠 수 있는 순간(teachable moment)'에 활용할 수 있는 환경교육의 장(場)이다. 이미 1999년부터 생명의숲, 산림청, 서울시, 유한킴벌리 등 다양한 주체들이 학교숲을 꾸준히 조성하여 3000여 개에 이르는 학교숲이 조성되었으며, 환경적, 교육적, 사회적 성과를 내고 있다. 20년 동안의 학교숲 운동은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지만 절반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성된 학교숲은 제대로 관리되지 못했고, 강당, 체육관, 식당 등 건물 신축을 위해 흔적도 없이 사라진 학교숲도 있다. 조성과정의 주체, 사후 관리, 교육적 활용 등 다양한 개선 과제들이 남아있다. 우리들은 여전히 학교운동장이라는 신화(神話)에 갇혀있다. 학교운동장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모호하지만 일제 강점기 군사훈련을 했던 연병장에서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떠하든 우리는 운동장이 없는 학교를 상상하지 못하고 있고, 한동안 인조잔디 운동장 광풍이 불기도 했지만 유해하다고 평가되어 사라져 가고 있다. 천연잔디 운동장은 관리의 어려움으로 논의만 무성하고 성공사례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아직 학교운동장은 맨땅인 마사토 운동장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미세먼지와 폭염 등의 환경재난으로 학교숲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새롭게 학교숲 운동의 비전을 모색해야 할 상황이다. 이제 학교숲은 학교 내 공간을 중심으로 운동장주변, 학교자투리에 숲을 조성하는 소극적이고 협의적 개념에서 적극적이고 광의적 개념인 '숲속 학교'를 꿈꿔야 한다. '숲속 학교'는 학교운동장을 최대한 숲으로 조성하고, 건물의 벽면, 옥상, 실내에 조성되는 다양한 녹화(벽면녹화, 옥상녹화, 실내녹화 등)를 포괄해야 한다. 특히, 학교공간을 넘어서 건강하고 안전한 학생들의 통학로 확보를 위한 '통학로 숲'까지 확장할 필요가 있다. 2018년 경기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경기도 학생 1인당 학교숲 면적은 2.0㎡이고, 신설학교의 학생 1인당 학교숲 면적은 2.59㎡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국제기구(WHO/FAO)가 권장하고 있는 1인당 9㎡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숲속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최소한 1인당 6㎡의 학교숲을 돌려주려는 목표가 필요하다. 그래야 학생이 실감할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숨쉬기 편하고 쾌적한 환경을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녹색기반을 제공할 수 있다. 우선, 기존 학교숲의 훼손녹지를 복구하고 학교운동장 절반을 학교숲으로 조성한다. 학교경계숲, 학교건축물 녹화(벽면, 옥상, 실내) 등 다각적인 노력을 통해 학생 1인당 3㎡의 학교숲을 추가 확보할 수 있다. 그러면, 어느 정도 온도도 낮추고 미세먼지도 저감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출산율 저하로 도시 내 학교는 통폐합과 함께 도시형 폐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2개 학교가 1개교로 통폐합되면 남은 학교운동장은 의미있는 알짜배기 땅이다. 학교숲과 마을정원 융합모델도 꿈꿀 수 있고, 공동체의 거점 공간으로 만들 수도 있다. 학교운동장 전체를 녹화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이렇듯, 학교숲에서 '숲속 학교'로 양적인 확대가 진일보해야 한다. 이와 함께 학교숲의 질적인 발전과 개선도 필요하다. 해외 학교숲 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온 사례들을 본다면 시사점은 7가지 특징으로 정리할 수 있다. 우선, 학생 중심의 절차와 과정을 중요시한다. 장기적 관점에서 학교구성원과 지역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한다. 둘째로 전문성의 확보와 일자리 창출에도 관심을 가진다. 다양한 조직과 전문가가 네트워크를 이루고, 전문성을 반영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지역의 일자리와도 연계된다. 셋째로 교육과정과 연계하여 학교숲에서 다양한 교육적 경험을 얻도록 하고 있다. 넷째로 인증제도를 통해 학교숲에 대한 인지도를 향상시키고 있다. 다섯째로 지역사회와 학교, 중앙정부와 지자체, 교육청, 전문가, NGO 등의 네트워크로 구성된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이를 통해 프로그램, 연구, 자문, 자금, 자료 등을 지원받는다. 여섯째로 연구와 효과 검증을 통해 사회적 신뢰성을 확보하고 있다. 지역의 대학 및 연구소와 연계되어 지속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을 포함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홍보와 확산을 위해 SNS, 유튜브 등 시대에 걸맞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러한 특징들은 우리나라 학교숲 운동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경기도교육청은 「미세먼지 저감을 통한 안전하고 건강한 교육환경 조성」을 정책과제로 설정하고 세부 추진과제로 학교숲을 조성하겠다고 선포하였다. 학교가 학교숲 조성을 주도하고 외부에서 지원하는 조성 주체의 변화가 예상된다. 또한 서울시는 올해부터 초록빛 꿈꾸는 통학로 프로젝트를 실시하는데, 학교 안에서 머물던 학교숲이 학교주변으로 확대되는 '숲속 학교'의 좋은 사례이다. 학교숲은 조성도 중요하지만 지역주민, 학생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배려를 통한 유지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야 학교숲의 복리이자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앞으로는 관리하지 않아 훼손되고 사리지는 학교숲은 없어야 한다. 학교숲은 다른 어떤 숲보다 교육적인 자산이다. 꿈꾸고 만들고 가꾸는 것이 교육과정과 연계될 수 있고 학생들의 참여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래서 학교숲 계획과 조성과정은 참여형 설계, 시공과정과 연계되어야 한다. 우리의 미래인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에서 교육받을 권리는 보장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자투리에 숲을 조성하는 학교숲에서 '숲속 학교'로의 과감한 인식 전환과 실천이 요구된다. 김인호 / 신구대학교 환경조경과 교수
  • 우리 도시의 옥외공간은 이제 수십 년 자란 수목들을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일부는 여름 한낮인데도 가로등 불빛이 필요할 정도로 빽빽한 수관에 시원함과 상쾌함을 자랑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가로를 정원으로 삼아 보기 좋은 조경공간들이 민간의 손길로 가득 채워진 거리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미 한국 조경은 그 만큼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전문업으로 새로운 지평을 가시화하고 있다. 지난 7월 24일 이와 관련한 심포지엄을 개최한 바 있다. 업계의 현황을 반영하듯 부실한 홍보에도 많은 청중이 참여하여 열띤 관심과 의견을 교류한 자리였다. 개인적 소회보다도 행사 이후의 관심과 격려에 한국 조경의 현실이 여전함을 다시 한 번 깨닫는 계기이기도 했다. 그것은 도시의 조경은 변화를 요청하고 있는데 그것에 대응하는 업무 환경(전문업)은 고루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조경유지관리에 대한 제도 개선을 모색했던 계기였던 만큼 여기에 집중해 보자면, 건설의 한 종류로 한정된 채 사회적 서비스로 지속되기에는 새로운 활동 반경이 시급하게 필요한 시기라는 진단으로 요약된다. 개선의 방향이야 다방면으로 많은 논의와 소통이 기본일 터, 관심과 담론이 이어지길 기대하며 여기에서는 그 동안 제쳐두었던 기본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우리 도시의 조경공간과 조경관리 90년대 이후 현대 조경이 장소의 재활용과 단계적 성장 전략을 보편화하며 신규 조성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온 동안 기존 조경공간은 도시에 누적되며 스스로 성장하고 지속해왔다. 가히 제3의 자연으로 진화하며 이제는 도시인지 자연인지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기까지 하다. 그런 세월은 새로 만들고 채우는데 급급한 조경에 마치 되돌아보며 걸어온 길을 살펴달라는 듯 관심과 관리를 요청하고 있다. 이것은 현대 조경이 지금여기의 위상을 점검할 때 필수적인 새로운 위치이자 또 하나의 지평이다. 도시재생이라는 큰 흐름에 가려 경제적, 사회적 지속성이 도시의 중요한 활성화 주제로 부각되었다지만, 낡은 아파트 단지에 아름드리로 자란 나무들은 재생의 대상으로 우선시되지 못하는 현실이 단적이다. 민간 영역이라 치부하기에는 그 역할이 달라져 이제는 생활인프라로서 이런 수목들은 도시적 기능을 충분히 하고 있지만 관리 사무에 있어 골칫거리 취급을 받기도 하고 새로운 개발의 저해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런 한편에서 미세먼지 등으로 공동의 관심사이자 문제가 된 기후변화의 해결사로 조경공간이 주목받는 추세임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새로 만들어 채울 공간과 그에 따르는 예산은 부족하고 제대로 눈길 주지 못해 제멋대로인 나무들 사이에서 조경유지관리의 필요성이 아이러니하게 부각되고 있는 셈이다. 살펴보면 해방 이후 우리 국토의 대부분에는 넉넉한 조경공간들이 산재하며 채워져 왔고 조경공간뿐만 아니라 다양한 유형의 녹지공간과 조경시설이 도시의 활력 그 자체로서 자리 잡게 되었다. 이제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수령이 제법 되어 크기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거대한 나무들이 어렵지 않게 가득하다. 오래된 조경공간을 건물과 경쟁하며 커버린 나무들이 제 역할 다할 수 있도록 살펴봐 달라는 시기가 된 것이다. 커지는 재해 위험과 안전 요청, 재건축과 재개발 등은 대형목들에게는 생사여탈을 조경에 묻고 있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어떤 면에서 이것은 현대 조경에 처음 있는 상황이다. 조경관리인가? 조경유지관리인가? 그에 비해 조경공간에 대한 ‘조경의 관리’는 모호한 편이다. 생태복원, 산림경관, 자연환경, 녹색인프라 등 새로운 조경공간의 조성에 제법 기술을 축적하게 되었을지 모르지만 지난 세월 동안 조경관리는 그 기술이나 체계를 고도화(체계화)하지 못한 채 여전히 미약한 경험지식에 의존하고 있다. 단적으로 고품격의 조경수목관리는 소수의 최고 전문가들만이 활동한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관련 교과서의 부실함은 인적 자원 또는 경험지식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카더라식 조경유지관리는 차치하더라도 신규 조경시공에 적용되는 방법을 그대로 여기저기 활용하는 것은 지금의 조경공간 현실에 적합하지 않다. 게다가 다변화된 조경시설물로 인해 다양한 재료가 활용된 조경공간들은 제대로 된 유지관리가 흔치 않아 흉물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 특히 목재를 활용한 시설물은 미관뿐만 아니라 안전에도 심각한 우려를 주는 경우가 많다. 관성처럼 신규로 누적되는 조경공간이 고도화되고 보편화된 결과일 것이나, 그 관리가 어떠한지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식재든 시설물이든 ‘조경의 관리’ 문제가 이뿐만이 아님은 조경가라면 쉽게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 근원은 조경관리와 조경유지관리의 모호함에서 그 첫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개념의 부정확과 혼란이 가져오는 결과들은 단순히 이해와 오해라는 인식의 간극을 뛰어넘는다. 한국 조경은 아직 이러한 이해와 오해의 간극에 천착해보지 못하였다. 단언하듯 말할 수 있는 것은 새로 채워 만드는데 치중해온 세월과 거기에 최적화된 업계의 현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논의가 필요하다. 7월의 심포지엄은 그런 문제의식의 표출이기도 했다. 조경유지관리는 어떻게? 먼저 중요한 것은 이것이 처음 맞는 상황이고 예상되었던 새로운 지평이라는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다. 무엇에서부터 어떻게 대응하고 준비해야 하는지는 적절한 질문에서 시작한 적합한 해답에서 이끌어낼 수 있다. 자료를 보니 벌써 10여 년도 전에 이러한 논의는 수차례 있었다. 몇 가지 답안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좀 더 근원적 해답이라기보다는 닥친 현실에 시급히 대응하기 위한 임시적 해법이라는 인상이다. 각론이 우선이었고 개론이 두루뭉술했던 것이다. 우리가 흔히 잊듯 서론이나 문제의식은 단순히 형식적 도입부가 아니며 전체를 경계 짓고 방향을 지시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가지는데, 수십 년의 학생 시절을 거친 대부분의 우리는 교과서의 앞부분에 그리 집중하지 않는 경향이 있고 또는 당연히 잘 안다는 착각을 가지기도 한다. 심포지엄은 그런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했다. 따라서 지금 우리는 무엇보다 본성에서 시작하는 접근이 필요한데 몇 가지를 화두로 제시한 바 있다. 우리는 조경(造景)을 행위 개념으로 이해하고 정의하지만 그 결과물은 다양하고 그 경계도 불명확하다. 조경의 결과물이 하나로 지칭되거나 인식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동안은 문제가 아니었을지라도 이제는 사용되는 어휘와 빈도, 관련된 개념이 일반어(보통명사)처럼 통용되고 있어 그 전문성이 희석되어 가는 양상이다. 그 대표격이 “조경공간”이라는 전문어이다. 조경설계기준이나 조경공사표준시방서에 흔하게 사용되고 또한 NCS와 같은 표준 교재에서도 너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말이지만 전문어로서의 정의나 개념은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은 다시 말해 조경의 관리, 조경유지관리를 위한 대상이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며 그것이 지금까지의 조경관리와 조경유지관리를 어렵게 실행해야 했던 이유 중 하나가 된다. 많은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특히 조경을 고전적으로 폭넓게 광의로 이해해야 한다는 입장에서라면 더욱 어려운 일일 수 있다. 그렇더라도 문제의 원인 하나로는 충분히 곱씹어볼만 하고 이 글에서도 여러 어휘가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눈치 챈 조경가가 많다면 조경유지관리의 ‘어떻게’가 충분히 조경의 새로운 지평이 될 수 있다는 방증이 될 것이다. 조경이 관리의 시대로 넘어왔다는 지적은 이미 이십여 년 전부터 들려왔다. 그 사이 조경은 어떤 변화와 대응을 해왔는지 따져 묻고 되돌아보자는 것이 아니다. 현장과 현실은 언제나 생각과는 달랐고 조경은 그 특성상 눈앞의 문제에 우선 집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눈앞에 이제 답을 요청하는 새로운 역할이 놓여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그저 말뿐인 것이 아니라 현실이다. 새로운 조경의 지평이기도 하다. 조경유지관리는 즉 시급히 필요한 현대 조경의 현실이다. ‘아파트 조경’에서는 이미 그 전문성 미지원으로 인한 문제들이 가시화하고 확대되고 있다. 조경의 전문성이 이러한 현장에 하루 빨리 제대로 역할 할 필요가 있다. 그러지 못함으로서 나타나는 문제는 단지 관리되지 못하는 대형목, 조경시설물 등의 문제를 벗어나고, 조경유지관리의 기술과 품질 문제를 벗어나, 조경의 전문성에까지 타격을 주고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물론 지식을 체계화하는 것은 최우선의 과제일 터. 그리고 조심스럽게 우리는 조경관리업의 설정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조경의 새로운 공공성은 숨어 있는 고수들의 지식과 지혜에 기반해야 한다. 조경유지관리는 지난 시절처럼 지식을 수입하여 활용하던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내재적 경험지식에 권위를 부여하고 현대화 된 기술체계로 그것을 해석,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시간이 녹아야 스며나는 현장지식은 조경유지관리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이미 세월은 충분히 흘렀고 우리 현실에 적합한 경험도 충분하다. 현대 조경은 그 공과를 부여안고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가야 한다. 안명준 조경평론가
  • 올해는 비가 풍년이다. 해가 다르게 날이 다르니 가늠이 잘되지 않는다. 패턴을 파악할만하면 변수가 생겨 촬영 일정을 몇 번 망치고 나니 비가 원망스럽다. 감히 안다고 말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이리라 짐작해 본다. 무엇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다가오는 가을에 맞춰 감상적인 질문을 던져 본다. "취미 하면서 일하고 좋구먼" 집중을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누군가 다가와 처음 내뱉는 말에 무장해제 되어버린다는 것은 어떻게 반응할지도 생각하기도 전에 눈만 껌뻑이는 바보가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그 경험은 유쾌하지도 불쾌하지도 않은 어떤 감정이다. 마무리가 다 되어가는 현장을 다니다 보면 일꾼들은 한창때보다는 걸음이 길다. 긴 걸음 사이 그들은 하릴없이 주렁주렁 카메라를 메고 다니는 신기한 누군가에게 거침없이 한마디씩 던질 뿐이다. 대답할 쯤 그는 이미 멀리 가버렸다. 처음에는 대답을 듣고 싶어 저런 것인지 아니면 혼잣말에 과민반응한 것인지 생각했다. 지금은 생각해보면 그저 안 보이던 누군가의 행색이 신기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각양각색의 현장 사람들을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가 아닌 관찰자의 시점으로 보게 되는 일종의 각성 시야를 갖게 될 때가 있다. 그들은 짧게는 며칠에서 몇 년에 걸쳐 한 곳에 있었고 심지어 그곳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을 보아왔을 것이다. 단 며칠로 그들보다 그곳을 잘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기록으로서 사진의 한계가 실제 경험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져본다. "죽은 나무 찍으러 왔어요? 아니면 뭐를 찍으러 왔데?" 준공이 끝난 현장에서의 상황은 더욱 복잡하다. 공간을 단순히 점유하기보다 이용하면서 겪는 누군가의 경험을 듣는 것은 하자에서 시작해 하자로 끝날 때도 있다. 물론 호평 일색의 설명도 있다. 공간의 소유와 소비 혹은 점유하는 누군가의 관점은 감상을 넘어 보고 싶지 않은 것과 그러한 것으로 나뉘기도 한다. ‘저 나무’ 때문에 ‘이 사진’이 싫은 경우도 있다. 이미 사진 미학은 저 너머에 있다. 그들보다 그곳을 잘 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어떤 대답을 위해 허공에 사진기를 위치하고 있어야 할까. 한 장의 사진은 누군가의 물음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다. 때로는 기술적 필요에 의해서, 때로는 아름다움을 위해 대답해야 한다. 어떤 사진은 모든 사람을 위해, 어떤 사진은 일부에 의해 만들어진다. 수많은 변수 틈에서 한 장의 사진은 기록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록은 수많은 사건의 바탕이 될 상상을 해본다. 무한한 바탕이 되어 사진은 무한한 사건들을 품는다. 이쯤에서 사진은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조경을 품은 사진에 대해 상상을 해보는 것이다. 일어났고 일어날 수많은 일들을 감히 안다고 하지 않겠다. 다만 짐작하며 담아낼 뿐이다. 수많은 사건들이 일어날 자리를 담아내는 것, 그것이 조경사진의 역할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한낱 기억의 파편이 될지라도 말이다. 유청오 / 조경사진가
  • 이전 글에서 언급했던 오픈 자문회의 이후, 어린이 참여에 대한 의심은 옆으로 밀쳐놓고 경험과 함께 축적된 편견은 의심하면서 어린이 참여에 접근하고 있다. 운이 좋게도 시간을 가지고 어린이 참여디자인을 차근차근 진행해볼 수 있는 기회도 여러 번 갖게 되었다. 경험을 되새김질하며 매회 워크숍 계획을 신중하게 짰고, 워크숍이 끝난 후에는 계획한 대로 워크숍이 진행됐는지, 기대했던 결과물을 얻었는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유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토론했다. 또 2018년 가을부터 2019년 봄 사이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후원으로 ‘아동참여 놀이터조성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작성하면서는 많은 관련 연구도 살펴보았다. 그러면서 나나 조경작업소 울 구성원들은 편견을 갖게 된 원인을 파악했고 이는 우리의 노하우가 되었다. ‘연령별로 참여 방식이 달라야 한다. 참여의 목적이 명확해야 한다. 아이들은 철사 사용을 힘들어 하고 사용 자체에 많은 시간을 소요하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아이들이 유독 좋아하는 점토는 어느 회사의 00점토이다. 워크숍 진행시 각 팀은 4~5명을 넘지 않는 게 좋다. 각 테이블마다 보조 진행자가 있어야 한다. 보조 진행자는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한다. 크루아상은 부스러지기 쉬워 간식으로 좋지 않다. 유제품을 못 먹는 어린이들을 미리 확인하고 간식을 준비해야 한다’ 등등이다. 이번 글에서는 이 중 세 가지 노하우를 공유하려 한다. “목적을 명확히 해야 한다” 언젠가 한 어린이 관련 시민단체에서 어떻게 어린이 감리단을 운영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자문을 구하는 연락을 해왔다. 감리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작업인데 어떻게 어린이들이 할 수 있냐고 역으로 질문했더니 난감해하면서, 다른 지역에서도 하고 있어 별 의심 없이 자신들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감리’라는 단어를 사전 그대로 적용하기 보다는 ‘어린이들이 공사 과정에 참여한다’라는 의미로 보고 어린이들이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공사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지를 근본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두 가지 목적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어린이들과 공사의 과정을 공유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린이들의 시선에서 위험요소(hazard)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 속에서 세 번의 워크숍을 기획할 수 있다. 공사 시작 시점에서는 어린이들한테 도면이나 조감도 상의 공간이 어떻게 대상지에 구현되는지를 설명해주면서 디자인의 추상성을 구체화시켜주는 것이다. 공사 중간 단계에서는 현재 어떤 공정이 이루어지고 있고 이 공정에서는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공사가 마무리될 무렵에는 어린이들과 현장을 돌며 위험요소와 불편 요소를 어린이들의 시선에서 점검하는 것이다. “점진적 의사 결정을 원칙으로 두고 과정을 디자인해야 한다”만약 어린이들과 총 다섯 번의 워크숍을 한다고 했을 때, 첫날 만나자마자 어린이들한테 “여러분들이 원하는 놀이터가 무엇이에요?”라고 물으면 테마파크에서나 볼 법한 시설물을 그려놓기 쉽다. 말만으로는 우리가 다루어야할 대상지가 동네 놀이터임을 인식시키기가 쉽지 않다. 반면 먼저 동네 놀이터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원하는 놀이터를 그리게 하면 아이들은 자연스레 동네 놀이터를 대상으로 생각을 펼친다. 이렇게 실행 속에서 어린이들이 프로젝트의 맥락에 들어오고 사고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과정을 디자인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문제 인식의 공유, 방향성 설정, 디자인 발전이라는 디자인의 점진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아무리 열심히 과정을 디자인해도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 있다. 과감하게 순서를 바꿔야 할 때도 있다. 즉 순환적인 과정이어야 한다. “연령별로 어린이 참여의 접근 방식이 달라야 한다” 어린이 참여디자인 과정을 디자인하고 워크숍 기법을 선정할 때 여러 가지 변수를 고려한다. 대상지가 어린이집 앞마당인지, 학교 운동장인지 아니면 어린이공원인지도 하나의 변수이고 몇 회의 워크숍이 가능한지도 염두에 둔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변수는 연령이다. 일례로 조경작업소 울은 디자이너와의 상호작용이 필요한 디자인 워크숍은 보통 초등학교 4, 5학년과 함께 한다. 저학년과는 상호소통을 통한 디자인 발전이 쉽지 않고 6학년은 이미 놀이터에 대한 관심이 줄어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편견인지 아니면 일반화할 수 있는 경험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문헌을 찾아보니 이미 여러 연구자들이 연령별로 참여 기법을 달리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린이 참여 연구의 권위자인 Hart(1997) 또한 다음과 같이 말했다.“7~10세의 어린이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점의 차이를 인식할 수 있게 된다. 또 10세 이상이 되면 다른 사람들의 다양하고 엇갈린 감정을 인식하기 시작하고, 10~12세의 아동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관점을 보는 방식에 대해서도 인식하기 시작하게 된다. 그러므로 보다 높은 수준의 참여가 가능하다.” 어린이 참여는 쉽지 않다. 할수록 어렵다. 잘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반화가 어렵기 때문이다. 어느 지역의 어린이들은 색종이를 잘 사용했는데 다른 곳에서는 그렇지 않거나, 어떤 질문이 어디에서는 효과적으로 전달되는데 또 어디에서는 그렇지 않다. 스스로 세운 가이드라인과 원칙을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지속적이고 반성적으로 경험을 축적하는 게 어려움을 최소화하는 최선일 것이다. 물론 각자가 자신이 축적한 경험을 공유하고 논하는 자리도 필요하다. 첫날 만나자마자 어린이들한테 “여러분들이 원하는 놀이터가 무엇이에요?”라고 물으면 테마파크에서나 볼 법한 시설물을 그려놓는다.먼저 동네 놀이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원하는 놀이터를 그리게 하면 아이들은 자연스레 동네 놀이터를 대상으로 생각을 펼친다. 어린이 참여디자인은 어린이들이 프로젝트의 맥락에 먼저 들어오고 점차 사고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과정을 디자인해야 한다. ‘아동참여 놀이터 디자인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분은 조경작업소 울([email protected])로 문의하면 된다. 김연금 / 조경작업소 울 소장
  •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우리 사회는 전후 세대의 폭발적 인구 성장시대를 지나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다. 1960년 2500만 명이던 인구는 2012년 5000만 명으로 증가하여 불과 50년 만에 2배로 성장했다. 그리고 2031년 5300만 명을 정점으로 감소세로 접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인구성장에 맞춰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택지개발촉진법이 1980년 제정되었다. 이 법은 도시지역의 시급한 주택난 해소를 위하여 주택건설에 필요한 택지의 취득·개발·공급 및 관리 등에 관한 특례를 규정하였다. 1989년 성남시 분당, 고양시 일산 등 5개의 1기 신도시 건설계획으로 1992년 117만명이 거주하는 대단위 주거타운이 탄생했다. 2003년에는 경기 김포(한강), 화성 동탄1·2 등 수도권 10개 지역을 포함한 12개 2기 신도시 계획이 발표되었다. 하지만 2014년 국회에서 발의된 택지개발촉진법 폐지 법률안은 주택부족 문제가 크게 개선되어 법 실익이 떨어진다고 전했다. 공공택지의 안정적 공급과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는 향후 택지 개발의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이것은 도시계획시설로서 공급되던 도시공원의 양적 성장에 기여를 해온 신도시 시대의 폐막을 의미한다. 현재 전국에 2만 1500개의 도시공원이 조성되어있다. 도시공원 문제와 시민참여 그동안 열악한 도시환경에서 공원은 양적인 확대가 가장 큰 과제였다. 도시인구의 급속한 증가와 더불어 도시공원의 기능은 계획 목적과 다양한 활동 요구에 따라 세분화되어 왔다. 하지만 도시공원은 대부분 시설을 중심으로 설계가 이루어졌고 조성 이후 운영과 관리에 대한 고려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했다. 최일홍 박사는 2002년 ‘공원녹지 특성화를 위한 이용프로그램 개발 및 계획지침 작성 연구’에서 기존 공원의 문제점으로 설계자 위주의 계획, 법규적 디자인, 공원의 위계적 규모 및 균등적 배치기준의 문제, 과정적 가치의 부재로 인한 주민참여 미흡을 들었다. 공원은 미술관의 전시품이 아니라 지역주민들이 실제 이용하는 하나의 공공재로서 변화된 사회적 요구와 계층별 이용자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요소로 구성돼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1995년 지방자치시대가 개막되어 도시행정에서 시민참여의 목소리가 높아져 갔으며 일부 도시공원에서는 훌륭한 수용체 역할을 하였다. 김인호 신구대 교수는 2011년 한일 도시공원정책 세미나에서 "시민사회로의 성숙과 함께 참여민주주의로 발돋움하고 있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도시공원 정책은 환경개선을 의미하는 단선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제반 사회문제들과 연계되어 검토되어야 한다"며, "이미 선진국에서 성공사례로 소개되고 있는 성숙한 주민의식을 바탕으로 한 시민참여형 공원관리는 선진 행정으로 발돋움하는 중요한 요체"라고 강조했다. 시민참여와 도시공원의 변화 양상 도시공원은 도시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도시의 필수시설로서 점차 다양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3만 불 소득, 주 52시간 근무, 평생교육 등 사회적 변화에 적응하며 지역 공동체의 중심으로서 녹색복지와 일자리 창출 등에 기여해왔다. 이와 같은 도시공원의 역할 다양화와 더불어 도시공원의 패러다임은 다음과 같은 변화양상을 보이고 있다. 첫째, 도시공원의 설계, 조성과 이용에 시민참여를 적극 수용하고 있다. 도시공원 조성 단계별로 시민참여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둘째, 참여 프로그램 중심의 공원 이용과 리모델링이 늘어나고 있다. 2013년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에 도시농업공원이 포함되고, 숲유치원, 자연체험 학습장 등 시민들의 활동과 참여 이용 프로그램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셋째, 공공 주도의 공원 운영에서 기업, 시민단체와의 협업과 타 공공기관의 적극적인 운영 참여가 이루어지고 있다. 도시공원의 이용과 운영의 효율성 증대를 위해 시민참여와 파트너십이 나타나고 있고 도시공원의 접근성과 지역자원에 부응하는 다양한 형태의 공원 운영이 시도되고 있다. 다양한 시민 이용프로그램 제공 도시공원은 도심에서 자연환경을 기반으로 시민 모두에게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고 활용되고 있다. 특히 시민들의 도시공원 이용 활성화를 위해서는 방문 동기를 높일 수 있는 이용 참여프로그램의 제공이 필요하며 다음의 4가지 프로그램의 유형을 제시할 수 있다. 첫째, 환경·생태 프로그램이다. 근린공원에서 많이 시행 중인 환경체험‧교육 프로그램은 시민들이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자연환경의 의미와 가치를 경험하고 환경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학습할 수 있다. 둘째, 문화·예술 프로그램이다. 도시공원의 문화·예술 프로그램 및 시설은 지역의 문화적인 활력소가 된다. 최근에는 문화행사를 할 수 있는 주제공원을 조성하여 도시 정체성을 살리고 있다. 셋째, 건강·체육 프로그램이다. 도시에서 공원녹지는 육체적 활동공간으로서 건강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치유 환경의 기반이다. 넷째, 도시농업 프로그램이다. 공원형 도시농업의 유형은 공원 내 텃밭 조성과 주제공원인 도시농업공원으로 구분된다. 도시농업공원은 농업이 중심이 되어 농업·농촌과 관련한 공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관리방식의 다각화와 사업모델의 창출 도시공원의 관리주체인 지자체는 전문 인력의 부족과 전문성 결여로 공원관리와 운영의 어려움을 호소해 왔다. 도시공원의 관리는 주로 공원관리청인 지방자치단체에서 직접 운영·관리하는 직영관리나 시설관리공단이나 공원관리공단 등 준정부기관을 통한 간접관리 방식을 채택해 왔다. 하지만 향후 공원관리는 정부의 팽창을 방지하고 시설투자의 비용 감소, 노무관리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공원의 일부 및 전체 관리를 공기업, 민간업체, 시민단체 등에 위탁하는 민간위탁 방식으로 확대될 것이다. 특히 공기업은 특수성격의 공원을 총괄관리하고 민간업체는 단위시설 경영관리와 녹지 및 조경시설 유지관리, 시민단체는 이용자나 프로그램, 시민참여 관리 등에 참여기회가 증대되고 있다. 그동안 조경분야는 인구성장에 따른 도시의 확장과 신도시 건설시대를 지나며 공동주택 조경이나 도시공원의 계획‧설계와 시공에 주력해 왔다. 하지만 지금 우리 국토는 건설에서 관리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어 여건 변화에 따른 탄력적 대응이 필요하다. 조경계는 현실과 미래의 여건 변화를 직시하고 조성 시설의 운영·관리에 대한 관심과 역량 배양을 해야 한다. 특히 도시공원의 질적 향상을 위한 기술개발과 집중을 통해 선진 도시공원의 면모를 갖추고 조경산업의 발전을 도모하도록 해야 한다. 대학에서는 시민사회와의 교류와 교과목 개발을 통한 선도적 역할이 필요하며 업계는 기존 도시공원에 대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운영·관리에 대한 경쟁력을 확보하는 새로운 사업모델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저성장시대에 있으며 인구 성장의 저하와 성장 동력의 부재로 새로운 가치 창출을 통한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사회적 요구가 증대되고 있다. 부동산 경기의 침체, SOC 투자 감소 등 건설 산업의 저조는 해외진출이나 대북사업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하지만 현실은 요원한 상황이다. 따라서 대내외적 상황을 고려한 외연 확장의 기초는 다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 도시공원을 기반으로 한 이용프로그램을 확충하는 동시에 시설 리모델링을 병행하는 사업모델 창출이 필요하다. 안승홍 / 한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 안승홍 한경대 조경학과 교수
    • 2019-08-22
  • 05. 집들이 춤추는 선유도공원 아래의 나무를 먼저 보자. 나무는 사연을 가지고 있다. 설명하지 않더라도 그 모습만으로도 세월의 풍파가 느껴진다. 나무는 이곳에 자리 잡기 전 새로운 개발로 베어 없어질 위기에 놓인 적이 있다. 기회가 있어 이 나무만은 터의 주인공으로 남겨 달라 부탁 아닌 부탁을 했었다. 다행히 나무는 터를 바꾸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기회가 되면 이곳에 들러 그 세월의 흔적을 나무와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선유도공원은 본래 공원 전체가 이 나무와 비슷했다. 지워 없애고 진한 화장의 산뜻한 현대 도시공간으로 흔적 없이 변모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다행히 장소는 재활용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처음의 낯설면서 새로웠던 ‘문화적 충격’을 소화한 듯 ‘인문학적 공원’으로 진화하고 있다. 마셜 맥루한이 말했다든가 “구텐베르크가 모든 사람을 독자로 만들었듯”. 선유도공원은 드디어 우리에게 공원을 생활(lifestyle)로 선물하고 있다. 알다시피 선유도공원은 정수시설이었다. 산업시설이자 보안시설이었던 셈이다. 우리에게 예전 그곳 모습이 좋든 싫든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도시에, 저 너머 강 가운데 있지만 가볼 수 없는 미지의 공간이자 너머의 장소였던 것이다. 장소의 기억과 이미지는 그렇게 통제되기도 한다. 시설물의 특성이 그렇듯 활용이 달라지고 마침 2000년대로 들어선 시대와도 맞물려 용도를 바꾸어야 했다. ‘일방적이지 않은 의사결정(bottom-up decision making)’이 보편화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곳이 공모를 통해 ‘작품’인 설계안을 선정하여 공원으로 만들어진 배경이다. 이후 여러 상을 휩쓸다시피 하고 그 전략이 다른 공원에도 이식되며 하나의 문화적 트렌드이자 대표성(특이점)을 가지게도 된다. 선유도공원은 그렇게 탄생한 우리 역사 최초의 ‘본격 장소 재활용 공원’이다. 공원을 걷다보면 이제는 과하게 느껴질 만큼 장소의 역사와 흔적이 빼곡하게 꽉 차 있다. 시간이 흘러 새로 자리 잡은 자연물이 그 강렬함을 새로운 차원으로, 새로운 인식으로 이끌어 간다. 아류보다 진품이 깊이가 있다는 것은 공원에서도 예외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런 만큼 선유도공원은 여전히 시대적 화두처럼 문화의 한 시점(viewpoint)으로 작용하고 있다. 21세기의 5분의 1이 지나는 시점에 시간도 시간이지만 그 만큼의 ‘경험과 생활’(文化)이 쌓였다면 이제 새로운 성찰과 통찰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한다. 선유도공원이 준 문화적 충격은 어떤 의미였고 새로운 논의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무엇을 우리에게 남겼는지 생각의 깊이를 더해야 할 때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는 공원을 살펴보기 보다는 몇 가지를 돌아보면 어떨까 한다. 앞 편에서 얘기했듯 공원이 우리에게 이식된 문화의 하나임을 잊지 않으면서 말이다. 첫 번째로 선유도공원은 조경이 만든 공간이다.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조경이 딱딱하고 무거운 도시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경관과 풍경을 다루는 전문가가 도시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 수 있는지 세계적으로 보여준 대표적인 공원이기도 하다. 혹자는 건축물로 오해하곤 하는데, 그렇지 않다. 조경공간이다. 조경공간에 건축물과 구조물이 집처럼 뒤섞여 있는 것이다. 공원이 도시기반시설이라고는 하지만 그 전에 조경공간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건축물로 착각하는 배경에는 건축이라는 개념의 포괄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인가 물리적으로 만들고 경계 짓는 것에 익숙한 태도 때문이기도 하다. 내외부 풍경이 보이고 보여지며 만들어지는 독특한 공원의 풍경은 기존의 낡은 구조물과 공간들로 인해 은연중 경계가 생기며 다채로우면서도 독립적인 공간 특성을 두드러지게 한다. 당시의 설계는 그것이 중요했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성장한 공원은 그런 경계진 공간들이 저마다 각각의 개성을 보여주고 있다. 공간들이 도시의 집처럼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는 장소로 성장한 것이다. “공원은 삶을 반영한다. 공원은 삶이 나아가야 할 방향, 다시 말해 기품과 공간, 선택, 전망을 보여준다… 우리는 변하고 나이 들고 머물렀다 떠나가고 종국에는 죽는다. 하지만 공원은 이 모든 것을 견뎌낸다. 언제나 그것에 있을 공원이 슬픈 우리의 영혼을 가만히 어루만진다.” _ 케이티 머론 저, 오현아 역, 『도시의 공원』, 마음산책, 2015. 그런 점에서 선유도공원은 여전히 화두가 된다. 공원이 살아 있는 도시공간으로 성장해갈 것이라는 점은 처음부터 고려되었을 것이고 그런 점에서 공원은 도시의 삶으로 성장하고 진화할 숙명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조경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을 옥외환경에 조성하는 역할만 해서는 안 된다. 조경은 특히 경계 없는 식물 공간을 주 무기로 한다는 점에서 여타 전문분야와 차별되는 독특한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분야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조경전문가의 사회문화적 기능과 가치를 획기적으로 보여준 사례는 국내에서 많지 않다. 여러 면에서 선유도공원은 그 첫 사례로 평가받아 마땅할 것이다. 한국 조경에서의 아방가르드(the vanguard)라 해도 무방하다. 기획, 계획, 설계, 시공, 관리 모든 측면에서 말이다. 보다 섬세한 접근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두 번째로 한국에서 장소의 역사를 제대로 활용한 대표적인 곳이 선유도공원이다. 맥주 담금솥 하나로 수줍게 장소를 기억하던 시도(영등포공원)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여기처럼 터의 이야기를 과감하게 주인공으로 삼은 공원은 우리에게 이전에는 없었다. 환경 재생 공원, 장소 재활용 공원 등의 레토릭은 실은 이를 모두 표현할 수 없는 설명이다. 이곳의 역사와 문화가 외부와 직접 연결된 특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공원에 펼쳐놓았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이것은 장소의 특수성이 아니라 시대의 특수성, 시대적 공통감을 먼저 활용했다고 보는 것이 우선이다. 여기에는 터에 담긴 이야기를 뽑아 버릴 수 없는 무엇으로 보는 시각을 모두에게 인식시켰다는 성과가 있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잊고 있지만 그렇게 되살아난 이야기는 우리에게 감성으로 복기되며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준다는 점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선유도공원은 한강과 위아래 강 너머 풍경, 산업시설과 최신 문화시설, 생태환경과 자연공원 등이 새로운 감성이자 본성으로 체득되었을 것이다. 공사판 같았던 도시 풍경과 빽빽한 철문 사이의 골목길 풍경의 우리들 낡은 도시 기억이 아니라 그들만의 새로운 도시 풍경이 ‘그리운 옛 기억’으로 이미 자리 잡은 것이다. 선유도공원의 가치는 이런 점에서 심도 있게 재탐구 될 필요가 있다. 20여 년의 시간이 지나며 새로운 세대에게 기억되는 서울을 기성세대의 그것과 비교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공원을 생활의 하나로 즐기며 성장한 그들과 행락을 특별한 무엇으로 여겨야만 했던 우리들의 도시 이미지가 선유도공원을 통해 만나고 겹쳐지며 새로워지기를 꿈꾸어 보자. 세 번째로 선유도공원에는 우리 도시의 본성이 그대로 담겨 있다. 도시는 집들이 춤추는 터이다. 근대 도시계획은 단단한 공간들로 우리의 일상을 꽉 차게 구축한 바 있다. 그래서 도시는 딱딱하고 무겁고 힘들다. 게다가 생산이 멈춘 도시는 이제 시민들이 뛰노는 것이 아니라 길을 잃은 정보(IT)가 유목민도 못된 채 그 사이를 날아다닌다. 사유의 실로(失路)가 보편화된 시대에 선유도공원은 옛 구축물로 꽉 채워진 산업시설의 바탕 위에 연하고 하늘거리는 생명이 가득 들어차 묘한 대조의 미, 숭고의 미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본래 모습임을 강조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선유도공원을 통해서 서울만의 독특한 ‘단자화 된 사람들, 무리로 사는 인간’을 볼 기회를 가진다. 선유도공원은 그런 점에서 인문(학)적이고 감성적인 공원이자 장소인 것이다. 수많은 집들과 공간들이 시간까지 얽어가며 섞인 이 공원은 그런 점에서 다시 보고 다시 보아야 할 고전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도시의 모습을 단순히 축소한 것이 아니라 도시의 감성을 다각도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모든 것을 지을 수 있지만 사는 일을 강요할 수 없다는 아래와 같은 반성은 공원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누구나 건축가다. 모든 것이 건축이다. All are architects. Everything is architecture.(한스 홀라인, Hans Hollein, 오스트리아 건축가)… 건축은 삶을 담는 그릇이 아니다… 사람의 삶은 건축보다 훨씬 중요하고 또 어려워서, 아무리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삶이라 할지라도 건축이 그 사람의 삶을 결정한다거나 디자인할 수는 없다. 건축가에게는 사는 이의 생활을 강요할 권리가 없다.” _ 김광현, 『건축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 뜨인돌출판사, 2018, pp.68~71. 그런 흔적은 선유도공원에 담겨 있다. 선유정으로 대표되는 본능처럼 작용한 한국성이라는 화두는 그렇게 집들 사이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상징적 전통이 오브제처럼 놓여 있지만 이름이든 공간이든, 의도였든 강요였든 이것은 이제 새롭게 해석되어야 할 지점이다. 불편하고 어색하다는 처음의 목소리가 어떻게 변화했으며 특히 공원을 생활로 즐기는 우리에게 어떤 목소리를 내게 하는지 장소의 관점에서 시계열적 분석이 필요한 것이다. 거기에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본성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녹아 있다고 믿는다. 네 번째로 선유도공원은 생활공간의 예술화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간간이 들리는 공공예술의 문제와는 달리 작품으로서의 공원은 전혀 다른 위상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선유도공원은 그 중에서도 아방가르드적이라 할 만큼 커다란 공원미학적 충격을 주었다. 우리 사회는 그러나 그 충격을 재치 있게 소화하였다. 선유정은 그 표징이다. 그것을 염두에 두고 마크 로스코의 예술관에서 새로운 힌트를 찾아보자. 그는 표현보다 소통에 중점을 둔 것으로 유명한 작가이고 “소통을 위한 표현성은 자신만이 아니라 타인도 울릴 수 있는 나름의 보편성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는 기본적으로 인간적인 감정들(human emotions), 즉 비극(tragedy)과 환희(ecstasy), 그리고 숙명(doom)과 같은 감정들을 표현하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 그림과 직면했을 때 주저앉아 운다는 사실은, 제가 그런 기본적이고 인간적인 감정들을 ‘소통시켰다(communicate).’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자기표현(self-expression)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른 누군가에게 행해지는, 즉 세계에 대한 소통(communication)입니다. 이러한 소통이 있은 후 세계가 납득된다면, 우리 세계는 변하게 될 것입니다. 피카소나 미로가 있은 후의 이 세계는 결코 과거와 동일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그림은 사물을 보는 우리의 시선을 변형시켜 주는 세계관이기 때문입니다.” _ 강신주, 『마크 로스코(Mark Rothko)(VOL.2:TEXT)』, 민음사, 2015, pp.85~87. 그런 점에서 선유도공원은 조경을 공공을 위한 예술의 하나라고 할 때 무엇을 남겨주었고 보편화하였나, 형태만 좆는 아류 설계 또는 이전 시대 이름만 커다란 설계에 어떤 성찰을 주었나 돌아보게 한다. 아니다, 이제는 무엇을 남겼고 어떻게 진화했는지 꼭 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앙리 마티스의 이야기는 예술을 추구하는 모든 이에게 조언이 될 수 있고 선유도공원을 예술로 다룬 모든 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모든 예술가에게는 시대의 각인이 찍혀 있다. 위대한 예술가는 그러한 각인이 가장 깊이 새겨져 있는 사람이다. 좋아하건 싫어하건 설사 우리가 스스로를 고집스레 유배자라고 부를지라도 시대와 우리는 단단한 끈으로 묶여 있으며 어떤 작가도 그 끈에서 풀려날 수 없다.” 앙리 마티스, “어느 화가의 노트” 중(이광래, 『미술 철학사』 3권, 미메시스, 2016, p.4) 집들이 들어앉아 이제 제 안방인 양 춤추는 공원의 모습을 우리는 인문(人文)으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집들이 여기에 들어앉았는지 체험하고 체현하며 새로움은 언제나 낡음으로부터 진화된 것임을 또 하나의 사례로 되새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할 때 우리에게 이식된 근대 공원은 생활로 소화되었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집은 인간의 가장 작은 생활의 단위, 진화의 단위이다. 오늘날 새 시대의 선유도공원은 어떤 집들이 춤추고 있는지 직접 보고, 자주 보고, 돌아보며 즐기고 느끼는 인문 공원으로 재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인류를 분별하는 새로운 시점이라는 성찰로 기억될 수 있어야 한다. Park 04. 집들이 춤추는 공원들, “확장하는 도시와 공원, 그리고 재생” 우리 사회는 이제 좀 인문학 열풍이 수그러든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어느 정도 사람과 인간에 대한 생각들이 생활로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그것이 수평적 보편화가 아니라 수직적 특수화(개성화)로 깊이를 달리할 것이다. 이때는 경제로 치환되지 않는 역사와 문화, 공동체성이 깊게 작용한다. 문명이 나뉜 것도 그 때문이다. 인문의 보편화는 진화의 초석이고 새로운 문명의 시점이다. 어떤 면에서는 이미 그것이 시작되기도 하였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빨리빨리와 모두가 함께 라는 동질화가 작용하고 있다. 유행이라지만 몸에 밴 상호작용이라 낙관할 부분이라고 본다. 그리니 우리 사회의 공동체성은 얼마든지 인류의 새로운 가능성이라고 할 만한 것이다. 선유도공원은 그 트리거였다. 월드컵공원도 그러하였다. 하늘공원, 서울숲, 북서울꿈의숲 등 대형공원들도 그러하였다. 우리의 인문(人文)은 그렇게 집들과 공간들 사이를 오가고 있는 셈이다. 공원이 인문이 되고 있는 것이다. 공원은 언젠가 “도시의 문양”(都市文)으로 기억되고 활용될 것이다. 이번 기회에 그런 개인적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경공환장’ 시리즈의 핵심이라고 할 만 하다. 우리는 집을 중심으로 사고하기 마련인데 그것에 대한 평소의 생각이 여기에 압축되어 있다. 기술사(史)가 아닌 문화사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만 강연을 통해서 틈틈이 설명해오던 요약 같은 결론만 몇 가지로 도표화하였다. 이는 공원과 조경을 이해하는 좀 더 넓은 시야를 획득하기 위함이다. 앞 편에서 우리는 공원과 산책 사이의 관계를 조경 개념을 매개로 이해해보고자 하였다. 보기에 따라 무리함이 있고 다소 긴 내용이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모두 이해할 필요는 없더라도 한 번의 일별을 권유한 것은 그것을 바탕으로 확장되는 우리 도시와 삶터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시야를 위해서였다. 한 번으로 이해되지 않는 이것을 이번에는 밑그림 식으로 전체를 보고자 하는 것이며, 차차 이것들을 하나씩 심도 있게 살펴보기를 기대한다. 물론 그것은 공원을 통해서이다. 1. 자연(origin)과 파생어들(originality), 본연을 구분짓기 우리 문명에 대해서는 수많은 설명이 있지만 자연으로부터 분리된 인류가 물리적 공간과 일상적 활동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우는 많지 않다. 쉽게 말해 현대 도시는 공간과 삶이 분리된 채 물리적으로 채우는데 급급한 도시로 성장하였다는 것이고 이제는 그렇게 분리된 두 가지가 장소라는 개념을 통해 본능으로 남아 있는 삶터에 대한 욕구를 되살리려 하는 중이라는 것이다. 장소성은 그런 맥락을 통틀어 부르는 가벼운 이름일 뿐이다. 여러 사례들이 전문가의 손을 거치지 않고 도시 생활공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본능의 측면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다음 그림은 이런 생각을 요약적으로 보여준다. 학자들이 말하는 혁명적 사건의 발생에 따라 도시공간과 인간활동은 점점 더 거리를 두며 멀어지게 되었다. 거기에 적응하는 인류의 노력은 여러 문화적 현상으로 뒤따르기는 하였으나 그 힘이 결국에는 우리 도시의 미래를 새롭게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본연이라 할 수 있는 자연이 어떻게 이해되고 분해되느냐에 따라 많은 전문분야가 파생되었고, 심지어는 의도적인 구분짓기를 통해 개념을 강화하고 새로운 사고의 방향성을 발명처럼 내놓기도 하였다. 그러나 결국은 그런 모든 것이 공간과 활동의 새로운 통합을 지향하고 있음은 부인하기 어려운 시점이다. 우리는 나누고 구분하고 분석하며 보낸 20세기를 그렇게 반성할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2. 실천(practice)과 실행들(making), 지식을 구별하기 도시가 복잡해지면서 그에 따르는 행위도 복잡해졌다. 그러나 행위의 표현과 소통은 해당 행위 이전에 만들어진 개념과 사고를 통해 이루어진다. 쉽게 말해, 말을 통해 행위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느끼지만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으면 행위가 의도와는 다르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언어의 세계는 수학이 아니어서 말이 하나의 행위에 하나의 어휘로 대입되지 않기 때문에 말은 저마다 다른 뜻을 내포한 채 새롭게 필요로 하는 행위에 따라 조합되어 사용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각자가 공통으로 공유하고 있는 같은 어휘라 하더라도 저마다의 경험과 사고에 따라 다르게 이해되곤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언어는 본성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도시는 항상 탈이 많을 수밖에 없다. 도시는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며 많은 일들이 이루어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같은 언어라도 위계를 두고 체계를 두어 곤란해질 수 있는 행위들에 기준을 세워두었다. 대체로 “일상어, 전문어, 법률어”로 나뉘는데 사용하는 문자가 다른 것이 아니어서 우리는 경우에 따라 아주 복잡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전문어와 법률어를 모두 우리가 알고 구별하며 사용할 수는 없다. 우리는 대부분 일상생활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일상을 살기도 하지만 우리는 모두 또는 대부분 직업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직업이 아니더라도 저마다의 전문 분야에 몸담고 저마다의 생산활동으로 삶을 영위한다. 이 생활과 저 생활을 오가는 이때 우리의 일상어와 전문어는 뒤섞이곤 한다. 그런 날들이 많아지면 그 경계는 더욱 흐릿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들 대부분은 그 사람의 말투에 따라 그가 어디에 더 방점을 두고 사는지 알 수 있다. 일상에서야 이런 상황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전문 분야에서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동일한 어휘를 사용하고 충분히 소통하였다고 생각하였는데 최종 결과물이 엉뚱한 경우를 대부분 한두 번씩 경험한 적 있을 것이다. 현장에서 지속적인 회의와 지난한 협의가 반복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래 말들은 그 대표적인 것들을 모아본 것이다. 특별히 범주를 구분하지 않았으나 비슷한 유형으로 보이는 것들은 묶어보았다. 어떤가, 일상적으로는 충분히 이해되고 구별되는 어휘이지 않은가? - 조경, 건축, 도시, 엔지니어링, 경관, 건물, 공간, 환경, 장소, 풍경, 지리, 문화, 유산, 복합, 융합, 통합, 융복합, 생활, 시야, 시선, 시점, 아름다움, 운치, 천연, 인공, 유적, 전원, 조망, 조망점, 진화, 축, 차경 - 토지, 지반, 기반, 대지, 경치, 통경, 풍치, 하천, 마을, 생태, 자연, 시설물, 구조물, 건축물, 문화재, 정원, 공원, 유원지 - 계획, 설계, 구조, 기능, 배치, 설치, 공간구조, 생활권, 주변, 기능, 용도, 도시, 지역, 지방, 지구, 구역, 용도, 기반시설, 공간시설, 공급시설, 교통시설, 광역시설, 공공시설, 공작물, 생활인프라, 생활환경, 자연환경, 야생생물, 습지, 생태계 - 설치, 정비, 개량, 개발, 보수, 제공, 향상, 인가, 허가, 승인, 협의, 의견, 처리, 검사, 지정, 경우, 처분, 행위, 조치, 촉진, 지정, 점용, 분할, 공유, 개발행위, 보전, 활용, 복원, 제공, 공급, 평가, 관리, 변경, 조정, 검사, 안녕, 건전, 양호, 미관, 공동번영, 균형발전, 협력 전문어로서는 그렇다면 어떤가? 그 의미와 용도를 잘 구별할 수 있을까? “개발, 정비, 개량, 보수, 조치, 조정, 변경” 이것들은 각각 무슨 의미이고 어떻게 구분하여 사용해야 할까? 전문성은 거기에서 발휘되는 것이다. 전문가라면 최소한 일상어와 전문어는 구별하여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법률어로 본다면 또 다른 이해가 필요해 진다. 그러나 근래 수십 년간 여러 분야들이 뒤섞이는 과정에서 전문어로 이해되고 구별되어야 할 개념과 사고가 경계 없이 뒤섞이는 경우는 많이 보아왔다. 혹자는 창의적이라 보았고 혹자는 영역의 확장이라고 보았다. 또는 여러 가지가 혼합되는 시대적 흐름이 반영된 것이라 보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이러한 평가는 전문어에 담긴 역사성과 전문성을 무시하고 그로 인한 기술적, 문화적 깊이를 지워버리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었다. 여러 영역을 넘나들며 새로운 깊이를 모색하는 것이 중요해진 시대이기는 하지만 겉핥기식 개념어 혼합은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 식으로 말하면 키치(kitsch)의 양산일 뿐이다. 단순히 저속한 작품을 양산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원본성 또는 전문성을 무시한 채 익숙한(일상적) 겉모양만 베껴 활용한다는 의미이다. 그런 점에서 전문가라면 최소한 해당 전문 영역의 개념에 대해서는 물론이거니와 인접 분야 전문어에 대해서 최소한의 이해가 필수인 시대를 지나고 있는 셈이다. 다음의 그림은 그런 용어들 중에서 중요하게 구별하고 활용해야 하는 것들을 요약해 놓은 것이다. 대상물을 지칭하는 말들과 실천행위를 지칭하는 말들은 결국 분야의 전문성과 깊이를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소통할 때 오해 없는 실천이 가능할 것이다.
  • 최근에는 어린이들의 참여를 통한 놀이터 디자인을 중요하게 여기는 듯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어린이 참여를 하자고 클라이언트한테 제안하면 “뭐 그렇게까지”라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말이다. 그들이 달가워하지 않은 이유를 질문 형식으로 거칠게 정리하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 텐데 써 먹을 게 나올까요?” “애들이 뭘 알까요?”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어린이 참여를 놀이터 디자인의 핵심이라고 보는 이들이 늘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는 일이 종종 있다. “어린이들의 의견이 (직접적으로) 반영된 건 무엇인가요?” “어린이들이 디자인뿐만 아니라 공사 감리까지 해야 하지 않나요?” 어린이 참여 써 먹을 게 나올까요? 회의적인 입장과 어린이 참여를 만능으로 보는 입장, 이러한 극과 극의 입장 사이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다. 초기 어린이들과 했던 워크숍이나 여러 활동은 즐거웠으나 반복될수록 ‘어린이 참여라는 게 필요한가?’, ‘형식적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라는 의심이 생겼다. 원하는 놀이터를 그려달라는 요구에 어린이들은 매번 놀이동산에서나 봄직한 놀이터를 그렸고, 설문조사 결과는 진부했다. 또한 설계안을 보여주었을 때 어린이들은 신기해했지만 피드백은 그리 신선하지 않았다. 나의 의심이 정당한가를 확인하고 싶어서 2017년 6월 22일 ‘오픈 자문’이라는 형태로 어린이 참여에 관심과 경험이 많은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정우 EUS+건축 대표, 정수진 서울시정연구원 박사, 주신하 서울여자대학교 교수가 함께 했었다. 그 때 나눈 이야기를 토대로 어린이 참여에 대해 스스로 가졌던 질문, 타인들이 내게 던지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정리해보았다. 어른이라고 다른가! 자문회의에서 지정우 대표는 이 멋진 말로 ‘어린이들은 미숙하다’는 편견에 뿌리를 두는 나의 의심을 간단히 해결해주었다. Driskell(2001)은 어린이들의 참여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이유를 ‘어린이들은 지식적 및 기술적 배경이 없다. 실수를 한다.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장기적인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자주 마음을 바꾸고 판단력이 부족해서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로 정리한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이러한 문제제기에 조목조목 반박하는데 핵심은 “어른이라고 다른가”이다. 많은 워크숍에서 만난 어른들도 전문적 지식이 부족하고 미래를 전망하며 결정하는 걸 어려워했다. 그런데 나는 이를 잊고 있었다. 창의적 아이디어, 창의적 질문 영국의 놀이터 컨설팅 조직인 ‘PLAYLINK’의 사이트에서는 “어린이들한테 원하는 놀이터를 그리라고 하면 알고 있는 것을 그린다. 어른들이 좋아할 것을 그린다”는 어린이 참여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을 언급하면서 어린이 참여의 필요성을 근본적으로 생각해보자는 메시지를 던졌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어린이들의 한계를 탓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나의 한계였다. 질문이 뻔했기 때문에 대답도 뻔했던 것이다. 지정우 대표와 정수진 박사는 이를 피하기 위해 추상화와 한계를 두기, 스토리텔링 등 자신들만의 독특한 방식을 개발하고 있었다. 받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함께 그리는 것 어린이들과 함께 디자인을 했다고 하면, 누군가는 결과물에서 어린이들의 아이디어를 구분해 내기를 원하고 디자이너가 최소한으로 개입해야 진정한 어린이 참여라고 주장한다. 정수진 박사는 “어린이들의 아이디어를 구분해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 디자이너의 개입이 무슨 문제냐”고 반문했다. 소통의 과정 속에서 디자이너도 어린이들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겠냐는 것이다. 주신하 교수는 그러므로 참여하는 디자이너와 퍼실리테이터의 역할과 태도가 중요하다는 의견을 주었다. 참여디자인은 단순히 디자이너가 참여자인 어린이의 의견을 들어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협업이기 때문이다. 과정을 잘 디자인해야 한다. 여러 가지 조건 때문에 어린이들과 한두번 정도만 만나며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면, ‘우리’로 칭하게 되는 관계로 진입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디자이너와 어린이들은 서로의 언어와 사고 체계에 친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 ‘서로 탐색하기’, ‘주어진 이슈의 가장자리를 돌기’, ‘아이디어를 교환하기’,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과정을 평가하기’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우리’가 되어 앞에서 말한 ‘함께 그리기’가 가능해진다. 결국은 정당성의 문제 어린이들과의 소통 과정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고, 디자이너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짚어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린이 참여의 의의는 결과물보다는 정당성에 있다. 내가 어린이 참여 디자인을 의심했던 건 결국은 ‘결과물’에 대한 집착이었다. 어린이들의 아이디어가 그리 대단하지 않더라도 그 공간의 주인인 그들에게 물어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차근차근 그들의 바람과 욕구를 끌어내는 것은 어른의 책임인데 말이다. 더불어 참여디자인은 그 자체로 어린이들에게 세상에 대한 새로운 탐색의 문을 열어주는 일이기도 한데 말이다. 어린이들과의 워크숍이 반복될수록 ‘어린이 참여라는 게 필요한가?’라는 의심이 생겼다.어린이들은 매번 놀이동산에서나 봄직한 놀이터를 그렸고, 설문조사 결과는 진부했다.그런데 한 자문회의에서 지정우 대표는 어린이 참여를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한다. 핵심은 “어른이라고 다른가”이다,많은 워크숍에서 만난 어른들도 전문적 지식이 부족하고 미래를 전망하며 결정하는 걸 어려워했다. 나는 이를 잊고 있었다. 김연금 / 조경작업소 울 소장
  • 수많은 것들이 있다. 눈에 띄는 것이 있고 배경이 되는 것이 있다. 어느 것도 빠질 수 없는 요소다. 대상에 대한 관찰과 솎아내는 작업은 새로운 도전이다. 마치 어지럽혀진 방을 치우는 기분이랄까. 대지 위에 깔리고 솟아있는 대상을 찍는 작업은 보이는 것에서 숨어있는 것까지 긁어내야 한다. 때로는 관찰자가 되고 때로는 경험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 비평가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소박한 소비자가 되기도 한다. 다만 한가지 어쩌지 못하는 것이 있는데, 날씨가 그렇다. 하늘을 움직일 수 없는 노릇이니 요즘 같은 흐림의 연속에는 무심하게 하늘을 바라볼 뿐이다. 사계절 뚜렷한 한국에서 사진가를 택한 나의 숙명이라 하면 거창한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장마를 보내는 사진가는 이렇게 만감이 교차한다. 하늘만 볼 수는 없다. 여전히 대상을 관찰하고 인입하고 내면화하는 과정의 작업, 하지만 결국 손가락 하나에 종결되는 작업은 일어날 일이다. 조경 사진은 결국 ‘누군가’의 작품을 재정의하는 과정이 된다. 대상의 크기나 규모는 중요하지 않다. 무엇이 그들이 그것을 만들게 했는가를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작업이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바람이 되는 ’이쁘게 찍기'를 늘 한 켠에 담아둔다. 사진은 선택의 작업이다. 대상을, 일정을, 장비를, 날씨를, 대상지를, 클라이언트의 욕구를, 나의 욕구를, 프레임을, 데이터를, 결과물을 미리 선택한다. 그리고는 결과물 중에서 골라 디지털 현상을 한다. 마음대로 되는 것은 오로지 한순간, 현장에서 꿈틀거리는 하나의 손가락만이 내가 할 수 있는 행위다. 그것이 다른 선택으로 선순환하니 타노스의 핑거 스냅과 맞먹는 것일지도. 장마가 끝나간다. 긴 더위가 시작하면 잎들을 위해 한낮은 비워두어야 한다. 배롱을 위해 이른 아침은 담아두어야 한다. 이슬을 위해 새벽을 남겨두어야 한다. 쉬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일몰 시간은 서성일 것이다. 늦은 일몰에 날벌레가 렌즈에 등장하는지 노심초사할 것이다. 장마가 끝나면 또 다른 선택을 위해 바닥을 끌고 다닐 것이다. 유청오 조경사진가
  •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근대건축의 거장 프랭크로이드 라이트를 모델로 했다는 소설 마천루에는 주인공이 대략 다음과 같은 대사를 외치는 장면이 나온다. “철근콘크리트란 공법이 나왔습니다. 새롭고 혁신적인 '유리'라는 소재가 나왔습니다. 이제 이것들을 사용하면, 대규모의 건물을, 빠른 시간 내에, 그것도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지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우리는 아직도 기둥과 기둥사이가 폭이 좁아야만 하는, 석조건물의 모델을, 다시 말해, 파르테논신전의 모사품을 만들고 있어야 합니까?” 당대의 기준으로 보면 주인공은 신식의 문물(?)을 주장하는 열정 가득한 야심가로 여겨지기도 한다. 특히 주인공과 늘 다투는 상대편 진영의 고고한 어떤 인물께서 등장하셔서 ‘전통이란 말일세... 진정성을 가지고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하나의 중요 양식이며, 우리가 지켜야만 할 것이며...’라는 투의 입장일 때 그러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이 근대건축운동(movement)의 거대한 광풍조차도 시간이 흘러 이제는 하나의 양식(orders)이나 스타일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세월이 흘러 이제 근대 '양식'을 옹호하는 건축가는 노출콘크리트의 재료적인 미학을 이야기하며 시간과 철학을 읇조린다. 여기에 변혁은 없다. 오히려 변혁을 외치는 쪽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근대 '양식'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시 '진정성'을 이야기 한다. 100년 전의 그들에게 사용한 단어들이 그렇게 서로 뒤바뀌어 있다. 아방가르드가 아리에가르드가 된 상황이다. 문제는 우리가 시대라는 맥락에서 무엇을 이야기하는가이다. 시대는 변한다. 진정성이란 단어 조차도 이제 그것이 처한 위치나 발화자의 입장에 따라서도 말의 뜻과 범위가 이렇게 달라지고 있다. ‘조경을 넘어’라는 전혀 앞으로 넘어갈 것 같지 않은 오래된 주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이 시대라는 맥락을 읽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외국의 저명한 어느 조경가의 새로운 디자인이론, 신문물, 신사조만을 끊임없이 업데이트하는 것이 변화의 동력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변화라기보단 수동적 답습에 가까울 뿐,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알아야 하고, 그것은 현재 우리가 처한 시대를 면밀히 살펴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트렌드따위에 영합한..."이란 말을 하는 그 누군가가 있을 수도 있다. 그대가 그토록 이 용어를 거북스러워 한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서로 대립하는 생각을 동시에 아우르며 목표에 이르는 길을 찾는 능력을 사전에서는 '지능'이라 한다. 여기에 '시대'라는 단어를 조합한다. '시대지능', 다시 말해 우리가 유의미한 변화를 이루어나가기 위해서는 현시점의 시대를 보고 거기에 반응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젠트리피케이션이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하자. 그것을 이야기하고, 그것의 문제점에 대해 논하면서 오직 ‘진정성’ 있는 개발만을 이야기 한다면, 소위 말해 다시 그 모든 사회현상의 대항점을 '진정성'에만 두고 만다면, 시대의 오독이며 자가당착이며 학습하지 않는 자의 게으름에 불과하다. 당장 스스로 답을 만들기 어렵다면 그것에 반응하는 타분야의 공간개발사업에서는 과연 이런 문제가 어떤 양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가, 사회문제가 어떤 해법으로 다시 사회에 투사 적용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유학파들의 어학연수 비자 시절의 그럴싸한 향수만을 골라 젊은 부자동네에 기획한 공간 '슈퍼막셰' ▲오랫동안 수집한 기품있는 사물들로 뮤지엄과 점포사이의 중간영역 소비자들을 정확히 타겟팅한 성수동 '오르에르'나 잠원동 '파운드로컬' ▲자연을 벗삼으려면 자연이 주최가 아니라 자연이 제공하지 못하는 따스한 환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남양주의 '비루개' 등 요즘의 공간추세는 '덜하고', '엣지있게', '디자인이 아닌 간지'라는 추세를 만들어 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중심은 주인이 나가라고 할 때 금방 핵심집기만을 들고 나갈 수 있도록 가능하게 공간을 기획하는 바에 있다. 비단 젠트리피케이션을 주제로 놓고 보아도 이렇게 간접적으로나마 학습할 재료들은 동시대의 세상에 넘쳐나고 이런 학습이 쌓여서 세상을 이겨내는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렇게 놓고 보면, 앞으로 중요한 것은 디자인이 아니다. 비용이 발생하는 디자인보다는 가치를 재편하는 디자인 이전 단계 기획의 영역이 훨씬 중요해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조경의 무기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서비스디자인, 경험디자인이라는, '디자인' 앞에 붙는 새로운 신조어의 조합 영역들이 출현하는 이유 역시도 이제는 더 이상 공간디자인 만으로는 그 어떠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없음에 기인한다. 변화를 원하는가 세상을 보라. 알렉산드로 미켈레, 수년 전 구찌(Gucci)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취임하면서 그가 주장한 것은 '맥시멀리즘'이다. 미니멀리즘, 예를 들어 흰색과 검은색, 톤앤매너의 일치를 꾀하는 생각은 이미 안드로메다 저편으로 보내버린다. 그가 디렉팅한 화보와 스테이지 공간들에서는 동물원과 우주인이 나오고 털복숭이 낙타같은 기괴한 생명체가 등장한다. 우리는 주변의 크리에이터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반응하는가, 나에게 스스로 늘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미니·맥시멀리즘의 사례에서도 그러하듯 늘 같은 습관적 사고 안에, 혹은 '조경은 자연과 인간의 교감이다'라는 식의 허울 좋은 인문학적인 명제 속에 스스로에 매몰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는 변한다. 끊임없는 진행형이다. 나 역시 그러해야 한다. 페이팔의 창립자 피터틸이 설립한 '틸장학금'이란 것이 있다. 미국의 우수한 IT전공의 학부·대학원 인재에게 매년 수여되는 장학금이다. 단일 장학금으로 무시 못 할 액수를 자랑하는 이 장학금은 수여자의 선정도 까다롭지만, 정작 수여를 하기위해 내세우는 조건이 파격적이다. 장학금으로 학업을 지속하는 것이 아니라 학업을 중단하고 창업을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당신 같은 인재는 학교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으니 이 자금으로 창업을 하라'는 이야기이다. 전통적 교육 방법으로는 혁신과 변화를 따라가기가 어려움을 모두들 알기 때문에 이런 조건이 환영받고 있는 시대이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유승종 / 라이브스케이프 대표
    • 유승종 라이브스케이프 대표
    • 2019-07-25
1세대 조경가 정영선, ‘유퀴즈’ 출연… “국토 자체가 하나의 정원입니다”
[환경과조경신유정기자]1세대조경가정영선이tvN‘유퀴즈온더블럭’(이하유퀴즈)에출연한다. 오는5월1일오후8시45분에방송되는‘유퀴즈’는▲여행유튜버빠니보틀▲한국최초여성조경가정영선▲배우박성훈이출연한다. 정영선조경가는한국1호국토개발기술사(조경)획득한최초의여성기술사다.다채로운작업을통해대통령국민포장,세계조경가협회(IFLA)상,미국조경가협회상(ASLA),한국건축가협회상,김수근문화상등유수의상들을수상했으며,지난해에는한국인최초로세계조경가협회(IFLA)가수여하는조경계의최고영예상인‘제프리젤리코상’수상자로선정되며세계적으로인정을받았다. 한국에서조경에대한사회적위상이낮았던시기에,아시아선수아파트단지(1984),예술의전당(1984),올림픽선수아파트단지(1985),희원정원,호암미술관(1997-1998),인천국제공항(1999),서울올림픽미술관과조각공원(1999),청계천복원(2002-2005),광화문광장(2007),경춘선재생공원(2014),서울식물원(2014)과같은주요프로젝트를통해조경의중요성과가치를알리는역할을했다. 땅을향한철학과내일의숲을위해현재까지도활동하고있는정영선조경가가유재석,조세호를만나어떤이야기를나눌지기대가되고있다. 한편정영선조경가의사계절을담은다큐멘터리‘땅에쓰는시’가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등에서상영중이며,국립현대미술관서울에서는오는9월22일까지‘정영선:이땅에숨쉬는모든것을위하여’를주제로조경활동을총망라하는전시를개최하고있다.
창작 활동에 나쁜 선례 우려…“조경가 창작·저작권 위해 적극 행동”
[환경과조경정승환기자]한국조경가협회는24일골프장창작성부적판결(본지관련기사3월11일자‘골프코스설계,창작성없다?!’)에대한입장을밝혔다. 안계동한국조경가협회회장은입장문을통해“이번판결에서‘지형,식생,조경시설등자연물의조합인골프장에는창작성이없다’는판결은골프코스설계와조경에대한무지에서나온판결”이라고강한유감을표명했다. 안회장은“조경분야가설계및시공에관여하여만들어진대표적시설”이라며“골프경기를위한코스와지형변화,연못배치,식재등아름다운경관을조성하는창조성적산물이며골프장마다개성이다른경관이연출됐다”고했다. 또한,“조경은인간과환경의조화를통한환경의질향상을목적으로환경에대한생태적·기술적이해와심미적·정서적접근을통해인간에게휴식과안정,아름다움을제공하는전문분야다”라면서“공원이나골프장은지형,식생,조경시설등을단순히기능적나열이아닌전문조경가의구체적의도와목적에따라새롭게배치,조합,배열된창조적공간”이라고강조했다. 안회장은“2심법원판결은조경의순기능과역할에대한이해부족으로기인한것”이라며“조경을넘어건설,문화등창작활동이필요한분야전반에매우부정적이고나쁜선례를남길수있다.이는미래사회가치인‘환경’과‘문화’라는시대적사명과도배치되며세계적으로주목을받는K컬쳐발전에도걸림돌이될수있다”고우려를나타냈다. 마지막으로“우리협회는이순간에도창작활동을위해시간과노력을기울이는조경가의창작활동과저작권이보호받아한국조경문화발전과인간삶의질향상에이바지할수있도록적극행동할것”이라고밝혔다. 이번사건은스크린골프업체인골프존에서국내골프장을그대로재현한시뮬레이션영상을제작해사용하면서저작권비용을지불하지않은데서시작됐다. 지난2월1일서울고법민사5부는골프코스설계업체인오렌지엔지니어링등이골프존을상대로낸저작권침해금지와손해배상청구소송2심에서원고일부승소판결한1심을파기하고패소판결했다. 골프장의창작성부정판결에대한한국조경가협회입장문 2024.2.1.서울고등법원은원고골프코스설계사와피고스크린골프업체간의저작권침해손해배상항소심판결에서1심판결을완전히뒤집고,골프장이저작물의대상이긴하나창작성이없는기능적저작물에해당하므로저작권침해가해당하지않는다고판결하였다. 특히이번판결중‘지형,식생,조경시설등자연물의조합인골프장에는창작성이없다’라는내용은골프코스설계뿐만아니라조경에대한무지에서나온판결로서한국조경가협회는이에대해매우엄중한유감의뜻을밝힌다. 골프장은조경분야가설계및시공에관여하여만들어진대표적시설로서,골프경기의전략적목적을위한다양한코스형태와지형변화,연못배치뿐만아니라식재를통한아름답고인상적인경관조성을위해심혈을기울여만들어진창조적산물이다. 그리하여골프장마다각각다른개성있고매력적인경관이연출되어있다. 조경은인간과환경의조화를통한환경의질향상을목적으로하며궁극적으로삶의질향상을도모한다.환경에대한생태적·기술적이해뿐만아니라심미적·정서적접근을통하여인간에게휴식과안정,아름다움을제공하는전문분야이다. 그러므로조경이땅위에만드는공간인공원이나골프장은지형,식생,조경시설등을단순히기능적으로나열하는것이아니라전문조경가의구체적의도와목적에따라새롭게배치,조합,배열된창조적공간이다. 2심법원의이번판결은이러한조경의순기능과역할에대한이해가부족한데기인한것으로서,조경뿐만아니라나아가건설,문화등창작활동이필요한분야전반에매우부정적이고나쁜선례를남길수있다. 이는미래사회의가장중요한가치인‘환경’과‘문화’라는시대적사명과도배치되며세계적으로주목을받는K컬쳐발전에도걸림돌이될수있다. 우리협회는지금,이순간에도창작활동을위해시간과노력을기울이고있는조경가의창작활동과저작권이보호받아한국조경문화발전과인간삶의질향상에이바지할수있도록적극행동할것이다.끝. 한국조경가협회회장안계동
정영선 다큐멘터리 영화 ‘땅에 쓰는 시’ 오늘 개봉
[환경과조경신유정기자]땅을향한철학과내일의숲을위해현재까지도활동하고있는국내1세대정영선조경가의사계절을담은다큐멘터리‘땅에쓰는시’가오늘개봉한다. ‘땅에쓰는시’는선유도공원,여의도샛강생태공원,경춘선숲길,서울아산병원등모두를위한정원을만들어온정영선조경가의땅을향한철학과내일의숲을위해현재까지도활동하고있는정영선조경가의사계절을담은다큐멘터리다. 정영선조경가는한국1호국토개발기술사(조경)획득한최초의여성기술사다.다채로운작업을통해대통령국민포장,세계조경가협회(IFLA)상,미국조경가협회상(ASLA),한국건축가협회상,김수근문화상등유수의상들을수상했으며,지난해에는한국인최초로세계조경가협회(IFLA)가수여하는조경계의최고영예상인‘제프리젤리코상’수상자로선정되며세계적으로인정을받았다. 영화는모든생명이싹트는봄과생동하는녹음으로가득찬여름,무르익은색채너머휴식을기다리는가을그리고모든아름다움을준비하는겨울까지‘사계절’을중심테마로구성해다채롭고도풍성한볼거리를전한다.5년간야생화가만개한정영선조경가의양평집앞마당부터남녀노소모두가즐기는대규모공원과신비로움을간직한개인정원등다양한장소를누비며각계절이지닌고유한경치를온전히담아냈다. 언제나사람과자연의관점에서치열하게고민해온‘땅의연결사’정영선조경가의궤적을따라가며,관객들에게일상의위로를건네는공원의아름다움은물론,‘조화’를잃지않는삶의태도로써공원의의미에대해생각하게만든다. 특히미나리아재비,개쑥부쟁이등우리국토의매력을즐길수있는각양각색의야생화와제주를비롯한전국의금수강산을포착하며,한국적경관의현대적완성을빚어낸정영선조경가가그려온자연스럽고도감각적인풍경들을담아냈다.땅이간직한고유의맥락을읽어시를그리듯공간에생명력을불어넣는1세대조경가의진심어린철학을전하며새로운배움으로관객들에게다가간다. 이영화는국내작품으로는최초로제20회EBS국제다큐영화제개막작으로선정됐으며,남도영화제시즌1순천개막작선정및제49회서울독립영화제장편쇼케이스부문에공식초청되는등작품성을인정받았다. 한편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은지난5일부터정조경가의작품세계를돌아보는전시‘정영선:땅에숨쉬는모든것을위하여’(9월22일까지)를열고있다.
서울시, ‘푸른도시여가국’에서 ‘정원도시국’으로 ‘졸속’ 추진…4일간 입법예고
[환경과조경박광윤기자]서울시가푸른도시여가국을정원도시국으로명칭변경을추진하면서관련분야의충분한의견을수렴하지않아서졸속추진이라는비판이제기됐다. 서울시는이달5일시정추진력강화를위한조직개편을위해‘서울특별시행정기구설치조례일부개정조례안’을시의회에상정했다. 개정안의주요내용은▲기구개편및소관사무조정▲주요실국의통솔범위조정▲자율신설기구일반기구화▲한시기구정비및존속기한연장▲기구명칭변경등이다. 이에따르면푸른도시여가국을정원도시국으로변경하고,올해7월까지한시적으로운영할예정이었던한강사업추진단을3년더연장해존속시키는내용이포함됐다. 이중‘푸른도시여가국(이하푸도국)’을‘정원도시국’으로변경하는것에대해기존업무를포괄하는이름으로적합하지않다는지적이일고있다. 현재푸도국은▲공원정책▲공원조성▲조경▲정원▲자연환경▲생태계▲산림▲동물보호▲공원여가▲산사태사방사업등을담당하고있다. 게다가이번개정안은지난달29일부터이달2일까지단4일동안의견을수렴해부랴부랴추진하는모양새여서졸속추진이라는비판까지받고있다. 보통입법예고는40일,지자체법규는20일로정하고있으며,서울시의경우에도“입법예고기간을20일미만으로하려는경우에는법무담당관과미리협의하여야한다”고정해놓았다. 하지만이번개정안은입법예고가충분히되지못해시민들은물론관련학계등전문가들도알지도못한사이에‘정원도시국’으로바뀔수있는상황이다. 개칭부정적,“기후변화등다양한패러다임고려”“조직위상축소”등 안승홍한경대학교조경학과교수는“서울시가정원도시기조에맞춰서조직명칭을변경하는상황”으로생각되지만,“정원도시국이라는이름은기존푸른도시여가국에비해똑같은기능을하더라도조직이협소해지는느낌이든다”고말했다. 그는“정원에서발달된개념이공원이다.공원은정원에비해공간적으로크고,이용자측면에서도공공공간으로훨씬범위가넓은데,산림청에서정원법이통과되면서혼란한시기를거치고있다”며특히정원도시국이라는이름아래공원관련부서가위치한다는것은“배보다배꼽이더큰상황”이라고말했다. 하지만경기도에정원산업과가신설되는등지자체조직에정원이라는이름이들어가는것은최근추세라고진단했다.또한정부부처에서공원업무를담당하는국토교통부녹색도시과는법·정책만관리하고있지만,산림청은국가정원이나지방정원조성등을통해직접사업에관여하고지자체에매칭예산을주고있어서앞으로지자체부서이름에‘정원’을사용하는비율이더늘어날것이라고전망했다. 실제2022년말경기도에서도‘산림과’와‘공원녹지과’를각각‘산림녹지과’와‘정원산업과’로명칭을변경한바있다.하지만당시‘정원산업과’신설은산림공원정원을포괄하는상위부서의명칭이아니라,부서간업무조정성격이강했다. 오순환조경지원센터본부장은“푸른도시여가국이더좋은것같다”며“기후변화,리질리언스등현재여러가지패러다임이존재하는데,정원으로만접근하는게맞는건지논의가필요하다”고말했다. 또한오본부장은“기존공원녹지관리사업소를공원여가센터로친근감있게바꾼건좋은데,일반사람들에게‘정원도시’가더친근한가?‘푸른도시’는안그런가?”라며정원도시국이더친근감이있는이름은확실하냐고반문했다. 무엇보다정원은가장작은단위의조경이므로,생태공원산림자연등을총괄하는부서이름으로는축소되는느낌이든다며“푸른도시여가국에서많은정원을조성하면되는데,여러불편과행정비용까지감수하면서이름까지바꿀타당성이있는지모르겠다”고말했다. 특히4일밖에입법예고가안된것은“왜4일만했는지이해할수없다”며“좀더논의의장을마련할필요가있다”고말했다. 개칭긍정적,“공원녹지포함한큰개념”“구체화”등 ‘푸른도시국’보다‘정원도시국’이더낫다는의견도있다. 안명준조경시공연구소느티대표는오히려“기존푸른도시국은지향점이상당히모호했다”며“정원도시국은정원이라는구체적인대상이지칭되니까개인적으로훨씬낫다고생각한다”고말했다. 그는이번논란에대해“정원을어디까지로보느냐에따라달라질것”이라며,‘정원도시국’을가드닝개념의좁은의미의정원으로사용한것이라면논란이있겠지만,공원녹지를포함한큰개념의정원으로보는것이기때문에“서울시가정원도시정책을펼치고있는상황에서정원도시국으로가도문제가없을것”이라고말했다.다만“아직까지정원이도시적인차원에서이해되지않으니까조금이른감이있다”며일반시민들이가진정원에대한편견을극복하기위해“홍보가필요하다”고말했다. ‘졸속추진’논란에대해서는,이번개정안이입법예고를짧게거쳐도될사안은아니라는입장을보였다.“국단위명칭이바뀌는이유가제대로설명이안되고있는것같다”며,국의명칭이변경되면서하위부서에대한세심한계획안이공고되지않은것은시정철학이반영되지않은채“일단명칭부터질러놓고보자”는것에불과하다며,숙의할기간이필요하다고말했다. 한갑수한국전통조경학회회장은“‘푸른도시’가워낙넓은개념인데반해‘정원도시’가좀더구체적이라는점에서좋은것같다”고말했다.하지만“이름을정원으로하면업무범위가축소될것이라는염려도있을것같다”며조경내에서도다양한분야가있어서논란의여지가있을수있으므로“관련분야의견을참조했다면더좋겠다”며졸속추진논란에“아쉬운점”이라고평가했다. 한편서울시는이외에도“경제정책실,복지정책실,도시교통실”을“경제실,복지실,교통실”로,“시민건강국”을“시민건강국,민생노동국,디지털도시국”으로,“재난안전관리실,주택정책실”을“민생사법경찰국,재난안전실,주택실”로변경한다는방침을개정안에담았다.
[조경논단] 요즘 공원
은퇴하신회사선배들과이야기나눌기회가있었는데,‘건강,돈,친구’가제일중요하다고반복해강조하셨다.‘돈’이야어렵겠으나,‘건강’과‘친구’라면그래도공원이제법커버할수있겠다싶었다.기실공원의발단이1832년영국런던의콜레라대유행과연관이클정도로공원과건강은한몸이나다름없다.공원에서산책과달리기등운동을통한시민의건강뿐아니라,맑은공기와생태계조절등도시의건강까지연관되기때문이다.이런건강측면으로요즘공원에서유의미한움직임이라면‘맨발걷기붐’과‘야외체육시설의진화’가손꼽힌다. 점점흙이없는도시가되니외려흙길을찾는것인지,맨발걷기는현재공원에서가장핫한이슈다.어찌보면건강의영역을벗어나신화의영역에다다를정도.거친산길을맨발로걷는건기행에가까웠는데,2006년대전계족산황톳길(14㎞)을시작으로2020년서울양천구안양천황톳길(570m)과강남구양재천황톳길(600m)조성등을통해맨발걷기용흙길이공원제도권으로진입했다.물론맨발공원으로불리던지압보도도있었다.밀레니엄전후로주요공원마다자갈,사고석등의재질로지압로가조성돼선풍적인기를끌었고현재도일부남아있지만,이젠이용률이극히저조해지며사라져간다.영원히변하지않을것같은공원도개별시설마다끊임없이경쟁하고흥망성쇠를겪는걸보여주는대표적사례다. 공원으로진출한황톳길에서수년간경험이쌓이고민간단체가태동하고몇몇언론보도를통해맨발걷기의장점이증폭되는과정을거치며,2022년부터는공원내흙길조성요구가본격적으로대두됐다.작년부터양천구는현황조사를거쳐총20개소3.7㎞의맨발흙길기본계획을수립·추진중이고,전국주요공원마다황톳길등맨발흙길조성이쇄도한다.신규조성뿐아니라자연발생적으로활성화된공원내흙길을정비하는방식도활발하고,시설측면에서도황톳길과마사토길,건식흙길과습식흙길로의분화와배수를위한황토배합비조절,이용편의를위한세족장,신발장,비닐하우스,방수포설치등다방면으로진화중이다. 건강측면에서요즘공원의또다른이슈는야외체육시설의진화다.2000년대초반공원에처음도입된야외체육시설은종목확대와내구성·디자인개선수준에머무르다,팬데믹을거치며폭발적으로진화했다.초기집합금지와거리두기로인해인기를끌며공스장(공원+헬스장),산스장(산+헬스장)같은유행어를만들더니,팬데믹이지속되며높아진수요는난이도높은근력운동과맨손복합운동기구로는물론,난이도낮은어르신을위한감각운동기구로까지확대시켰다.비가림시설과조합해일상성도높였고에너지생성까지스마트하게뻗어나가면서,상대적으로배제되었던청년과여성까지폭넓게포용하는중이다. 두번째주제인‘친구’로넘어가기전에소개하고픈중첩된사례가도심공원과거리에서자주만나는러닝크루(RunningCrew)다.주로평일이나일요일저녁,젊은직장인이나학생그룹이깔끔한복장으로줄지어달린다.건강을챙기면서도느슨한팀워크를구축해안전성과참여도를높이는데,볼때마다흐뭇하다.이런낮은단계의관계망은‘혼자’를강조했던팬데믹을거친이후도시에서자주볼수있는트렌드이기도하다. ‘친구’라표현했지만‘관계’로해석하는것이조금더정확할것이다.공원은혼자찾는사람도많고또그만큼다양한관계망이동반되기도한다.가족이나연인과피크닉을위해찾는경우도,친구와함께운동을즐기는경우도,반려견등반려동물과동반하는경우도있다.특히전국에600만명(命)정도로추산되는반려견은요즘공원의주이용객으로서큰변화를이끈다. 2004년최초로서울능동어린이대공원에반려견놀이터가생긴후,여러노력에도불구하고번번이지역주민들의완강한반대를넘어서지못한경우가많았다.하나인구4명에1명꼴,약1300만명까지반려인구가늘면서상황은역전됐다.특히팬데믹을지나며반려동물입양률이연간20%가까이증가하니,반대목소리를드높이시던어르신들의데시벨이크게낮아졌다.현재서울시공원내에만반려견놀이터23개가운영중이며,그중양천구도7개로30%를차지한다.특히,내달양천구목동IC남측녹지대에개장하는‘목동반려숲’은녹지공간전체를반려견테마로꾸몄다.앞으로모든공원에다양한형식의반려견놀이터가도입될뿐아니라,교육기관,보호소,보건소,캠핑장등반려동물테마시설도확대될것이다. 반려동물뿐인가?팬데믹은반려식물에대한관심도키웠다.즉각적반응이특징인반려견과스마트폰에대응하는‘느린관계맺기’다.집에서의반려식물은공원에서의텃밭과정원으로확장되는데,모두가드닝의영역이다.요즘공원에서식물관련최대이슈는‘정원’으로,전국적인정원도시트렌드와맞물리며도시의공원과거리를다채로운정원으로바꾸는중이다.서울시는작년5월정원도시선언에이어올해봄에만1000개의매력정원을조성한다고발표했다.양천구도도시곳곳에25개의매력정원을일구는상황.우리는왜이렇게공원과거리에정원을만들려노력할까?정원이갖는아름다움과계절감과색과향기와질감의매력도그이유겠지만,근본적으로는복잡한도시속에서인간이자연과더밀착된관계를맺고싶은욕망일것이다.그런측면에선모두‘반려’식물인셈.집에서의반려식물도공원내정원의확산도불안하고외로운도시의삶에대한대응이며,이노력들로인해공원과거리는더많은가드너들이함께가드닝하는정원도시로향해있다. 반려동물·반려식물에서확장된생태적관계망또한중요하다.기후위기의신호로받아들이는꿀벌의실종등작은곤충류의생멸(生滅)부터숲에서마주치는너구리,강에서살아가는새와물고기와수달까지서로연결되며큰위기에함께대응한다.공원에서생물다양성에진력해야하는이유다.최근몇년새시민과학자들의노력으로안양천철새보호구역에새들이조금씩늘어나는결과를얻었다.지속적인조사데이터를바탕으로겨울철공사자제나갈대군락지관리등에목소리를내주신덕분이다.올해부턴양천구에서활동하는자원봉사자‘에코친구’도함께참여한다.결국공원을중심으로사람과사람뿐아니라도시와자연까지서로함께‘관계’맺음으로써우리도도시도지구도더안전해진다. 해방과한국전쟁이후70여년간경제발전과민주주의라는목표를향해모든분야마다부지런히달려왔지만,세계최고의자살률과세계최저의출산율을성적표로받았다.물론괄목할만한경제성장을거뒀고민주주의도지속적으로향상시켜왔지만,결국우리사회는자식을가지길거부하는또스스로삶을소거하는마음이가장강한나라가된셈이다.출산율의추락은젊은세대가불암감에휩싸여미래를비관하는것이고자살률의상승은어르신세대가외로움에휩싸여현재를비관하는것으로분석할수도있겠지만,결국생명의관점에선가장본능적욕구인생존과번식을선택적으로포기하는‘불임사회’에돌입했고또돌진해갈태세인셈이다. 도시는더심각하다.2023년우리나라합계출산율0.72명에비해서울은0.55명수준이다.도시에사는젊은세대들이도시에서의삶을,도시의미래를더비관적으로본다는얘기다.불안감과외로움이지배하는불임사회의이엄중한현실에대해도시와공원과시민은어떻게대응해야할까?큰틀에서는포용도시일것이고자연에대해서는생태도시일것이며공공공간과개인의영역에선정원도시일것이다.건강하게서로관계맺고진화를통해위기에대응하는것이요즘공원에요구되는핵심과제다. 온수진양천구청공원녹지과장/공원주의자저자
[2024 아파트 조경 ④ 끝-롯데건설] 이지영 수석 “아파트 조경에 MZ세대를 담다”
[환경과조경박광윤기자]“MZ세대의마음에드는조경을위해과감한소재발굴에노력하고있다.우리는새로운것을도전할때반짝반짝한다” 최근아파트조경에서가장큰변화를보이고있는건설사는단연롯데건설이다.롯데는지난2022년조경에차별성을두고자조경독자브랜드인‘그린바이그루브(GREENXGROOVE)’를선보이며,오랫동안각인되어오던중세시대‘캐슬’의이미지를벗어났다는평가를받는다.실제최근준공된현장은매우현대적인감각과트렌드에접근하고있음을확인할수있다. 하지만롯데건설이지영수석은“롯데건설의조경은이미점진적인변화를거쳐왔다”며“갑작스럽게다이나믹한변신을했다”는것은외부적인시선일뿐이라고말했다.왜롯데캐슬의조경이큰폭의변화로다가오는지최근아파트조경에서주력하고있는컨텐츠를통해알아봤다. 롯데조경의새로운도전“그린바이그루브” 사실롯데아파트조경이‘캐슬’콘셉트를벗어난것은아주최근일은아니다.이미2019년에롯데캐슬3.0을선보이면서‘여행같은삶의공간’을테마로조경전략이대폭업그레이드됐다.당시전략은그냥바라보는조경이아닌경험하고즐기는조경을만든다는전략으로,자연을좀더가까이에서체험하는설계를적용했다.오히려그린바이그루브는이러한전략을강화한것으로전혀새로운전략은아니라는설명이다. 2022년에조경을브랜드화한‘그린바이그루브’는자연을연상시키는’Green’과리듬과활력을뜻하는‘Groove’를조화시킨다는의미를담았다.중앙의‘X(바이)’는다양한분야와의콜라보레이션을뜻하며,일상속에서삶의영감을전달하는‘InspiringAround’공간이라는콘셉트아래취향을다채롭게담는조경공간을구현하고자했다. ‘그린바이그루브’는현재롯데아파트조경의콘셉트이자목표이다.이를어떻게설계와실물로서구현해낼것인지는아직도적전인과제이며현재진행형이다. “조경의본질을나타내는‘자연’안에입주자개개인의취향을적극적으로콜라보해서표현함으로써입주자들에게만족감을느낄수있도록하는것이목표이다.이미지적으로는자연에가깝게표현을해보자는의도도있고,설계나시공에서풀어낼때는조금더자연소재를많이쓰는개념으로볼수도있다.” 인공적인소재와자연적인소재의콜라보속에서조금더자연소재를많이적용하는전략이라는설명이다.하지만이것은“자연그대로”라는뜻과는거리가좀멀다.“자연적이지만인공적인세련미”를표현하자는것에더가깝다. ‘자연그대로’보다‘자연소재콜라보’가전략 조경공간에자연소재를많이사용한다고하면‘식재밀도를높이는것’으로생각할수있지만,‘그린바이그루브’는식재중심콘셉트에서탈피하고있다.자연상태의돌에서가공된석재까지,나무그대로에서가공목재까지다양한형태의자연소재를시각적으로보다많이노출하면서도현대적인아름다움을구현하기위해고민하고있으며,실제현장에서좋은사례들이많이발굴되고있다. “식재밀도가높지않더라도따뜻한공간이될수있도록기본적인자연소재를많이사용하면서도심플하게만드는것에집중하고있다.이것이콜라보와조화라는그린바이그루브의콘셉트에도어울리는접근이라고생각한다.” 시설물의경우도차가운느낌의스틸소재를중심으로따듯한자연소재가어우러지는표준디자인을구현하기위해고민해왔고,실제최근에는스틸에자연소재를접목한티하우스나파고라등의표준디자인이개발돼현장적용을앞두고있다. “예전에는스틸로된시설물에목재가일부적용되는정도였다면,최근표준디자인은스틸에석재까지붙여서공간안에서더다양한자연감성을느낄수있도록구현하고있다.” 아파트조경에‘한남동MZ세대’를담아보았나? 현장마다타겟층이달라서조경트렌드에접근하는방식이달라지지만,공통적으로최근아파트조경의트렌드를“MZ세대”가이끌고있다는점은부인하기힘들다.무엇보다롯데건설만큼MZ세대트렌드를조경에담기위해고민하는사례도드물어보인다. “최근MZ세대들은모든소재를굉장히심플하게접근하고있어서,내부적으로그런성향을좀더많이담아낼수있도록고민하고있다.” 조경에MZ세대의취향을담아낸다는것도매우시사적인이슈로생각되는데,이를위해새로운트렌드와신소재를발굴하는것이‘조경’에중요한일이되고있다는것은롯데만의차별점이아닐까싶다.게다가같은MZ세대라고해도지역마다다른성향을담아야한다니생각보다더많은공부가필요한분야이다. 예를들어한남동MZ세대는심플하지만매우고급스러움에집중한다는차이가있다.‘올드머니룩’이라는말이있듯,조금은올드해도괜찮고컬러가많이들어가도괜찮지만고비용적인특성을가지고있다.고급소재에는텍스처가뿜어내는아우라가있기때문에한눈에알아차린다.이런분위기의다름을조경에서도구현해낸다고하니매우도전적이고색다른작업이아닌가. 물론아파트조경도투자를많이하면더고급스런결과가나온다는것은대부분진리로받아들여진다.하지만고비용이라고해서무조건좋은결과가나오는것은아니다.그래서필요한것이디자인적인언어이다. “나무를심을때도한줄만심을것인지풍성하게심을것인지적재적소에대한고민을많이한다.그런세심한고민들이차이를만들어낸다.최근에는소재에대한고민을많이하고있다.소재는거짓말을할수가없지만,물량투입이많다고해서모두좋은결과가나오는것도아니다.역시세심한고민이필요하다.” 기후변화대응,아파트조성기준달라질것 이지영수석에게롯데와다른건설사아파트조경의차이가무엇인지묻자“그건좀말하기어렵다”며손사래를쳤다. “각자노력하고있는포인트들이있는데함부로말할수없다”는이유도있지만,차별점이라고이야기하기엔주거지조경의고민이대동소이하기때문이다.다만‘기후변화’는어느현장이나공감할수있는매우심각한이슈로떠오르고있다고진단했다. 최근몇년사이나타난‘기후변화’에대해현장에서는꽤심각하게보고있다.폭우와폭서가반복적으로길어지면서설계및시공기준을변경할필요성이제기됐다.계획․설계적인측면에서는빗물저류조및레인가든설치나배수시설에대한규격들이달라지고있고,공사쪽에서는자재수급이나실제시공연출에많은어려움을겪고있다. 지난여름에는여러건설사현장에서폭우로배수시설의상태를점검한사례가많았다.롯데건설에서설계를담당하고있는‘기술연구부서’도유속이나유량등을재검토할필요가있다고판단해서기준개정을확인하고있다. “기후가너무급변하고있다.지난해에는6월말부터8월초까지45일동안연속으로비가왔다.100년간통계의최상치에이른것으로이런우수량을극복하지못한지역들이많다.관로의관경이라든가구배라든가설치개수등현장의토목기준들을손보고있다” 이참에미기후에대한연구를통해총체적인재검토가진행되고있다.바람세기에따라멀칭재적용여부를결정하고,미기후에의한회오리로쓰레기분리수거장설치방식을고민는등세심한대응에노력하고있다. <인터뷰> “시간에따라변화되는조경,한번더고민하자” ‘그린바이그루브’콘셉트를반영한시설물표준디자인작업에대해설명을부탁드린다. 시설물에있어서그린바이그루브의중요한전략은자연소재의다양한감성을전달하는데에있다.예를들어메인광장에티하우스와더불어자갈층의물결을만들어주고드라이한느낌의그라스류를심고대표수목을적용해포인트식재한풍경을떠올려보면된다.식재밀도는떨어지지만구성요소는대부분자연소재라는점이그린바이그루브의지향을잘그리고있다. 최근하얀색으로도색된스틸을중심으로벽면에석재를적용한티하우스가표준디자인으로만들어졌다.다양한형태의자연소재를적용한것이특징이다.하지만그린바이그루브는시설물만이아닌전체공간에대한이야기를포함하고있으며,공간에정돈된자연성을구현하는개념으로이해해야한다. 조경소재차별화에공을많이들이고있다는데,어떤노력들이이뤄지는가. 개인적으로2023년6월준공한‘자양롯데캐슬리버파크현장’의특화공간을진행하면서다양한소재에대해많이고민했다.그중하나가내후성강판이다.주로건축에서사용하는자재로스타벅스매장의마감재로많이사용하고있었다.단가는매우비싸지만실내는물론이고외부에서도사용할수있는자재이다.타공간이나공종에서사용하는소재라고하더라도사후관리와시공이효과적이라면적극적으로발굴해서조경공간에적용하고자노력하고있다. ‘나인원한남현장’에서는그당시흔히적용하지않았던‘프리캐스트콘크리트’로만들어진플랜터를단지곳곳에적용했다.콘크리트소재가적나라하게노출되는방식으로인천공항안에서는대형플랜터로만사용된적이있고,건축에서는대단위면적에적용하며최근들어각광받고있는자재이다. 최근건설사에서는식재에있어서수종이단순해지는것을걱정하고있는데실제수급이어렵고하자이슈가있을수있어다양한연출이미흡한현실이다.다만상대적으로쉽게접근할수있는초화는이미다양한연출을하고있다.우리특화현장의경우에는대관목에조금더집중해소재개발과연출을시도하고있다. 여러가지소재를발굴하고시도하는것이공간의질을높이는효과를보여주기때문에현장에서도적극적으로시도할것을요구해왔다.작업진도도고려하면서소재에대한고민도함께해야하니조금힘들수도있지만,오히려그런일을할때흥미가발산되는것같다.실제팀장들도이런고민을할때반짝반짝한모습들을보인다. 건설사조경인들에게한마디 조경은삶의바탕이기도하지만하나의오브제이기도하다.심지어시계열적인변화를수반하기때문에그것에초점을맞추어조성하는것을큰특징으로이해하고있다.그래서항상어떻게하면연출을잘하고,또그것을구성하고있는요소간에관계성을잘맺어줄것인가를중요하게생각해야만한다.당장에보이는것만할것이아니라,앞으로어떻게변화해갈것인가,또어떤영향을미칠것인가를곱씹어야한다.예전에는잘했다고생각했는데좀지나보면‘이렇게하지말걸’하고후회하는일들이많다.그래서무언가결정을할때는좀더시간의변화와주변과의관계성에대해고민을하자는이야기를동료후배들한테남기고싶다. 이지영수석과의인터뷰를통해최근롯데건설의조경이많이달라보였던이유를알수있었다.새롭고도전적인작업을통해성취감을느낀다면누구나반짝반짝할것이다.아파트조경을통한다양한시도들이확장된다면조경인들의무한한역량들도따라서빛이날것이라고기대해본다.
[미래포럼] 밤양갱과 헤어질 결심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미래포럼연재 조경인이그리는미래 요즘밤양갱이때아닌인기를누린다고한다.가수비비의‘밤양갱’이란노래덕분이다.밤양갱의가사를들어보면헤어지는남녀간의평범한노랫말인데가사나리듬은달고단밤양갱보다더달콤하다.별거아닌것같으면서매력적이고,익숙한것같은데처음처럼신선하다.사랑과이별,너무나익숙한스토리이지만이노래가우리에게처음처럼다가서는이유가뭘까?이노래를듣다순간오버랩되는이미지가박찬욱감독의영화‘헤어질결심’이다.사랑과이별을다른시선으로이야기한이영화의마지막장면을떠올려보자.박해일의바다그리고안개가자욱한미장센의순간을영원히각인시키려는듯영화의OST가흘러나온다.“나홀로걸어가는안개만이자욱한이거리….”,1967년세상에처음선보인정훈희의‘안개’가2023년‘헤어질결심’에서함춘호의기타와송창식과의듀엣으로다시태어났다. 처음처럼,익숙하지만낯설게.그렇게우리는처음처럼대하는것에매력을느낀다.술자리에서우리가소맥으로말아즐겨마시는‘처음처럼’의의미를작고하신신영복선생은서화에세이집「처음처럼」에서‘산다는것은수많은처음을만들어가는끊임없는시작입니다’라고소개한다.흔히세상에존재하는것중새로운것은아무것도없다고한다.새로운것들은어쩌면다시태어나는것일지도모르기때문이다.아재들의라떼에나등장할법한양갱이MZ세대들덕분에때아닌호사를누리는것처럼. 변화에대한도전은늘두렵다.하지만도전은그자체로서희망이기에많은이들이젊은이들에게늘도전하라고권유한다.사람들은미래를위한새로운도전을위해변화와혁신을이야기한다.하지만변화하는미래에도변하지않아야하는소중한가치가있을것이다.비비의밤양갱이나정훈희의안개가그렇듯,존재하지않는새로운것에대해서만고집할것이아니라변화하지않는삶의방식과전통,그리고축적된삶의가치와문화가미래에어떻게투영될것인지를고민하는것도새로운변화를위해서는매우의미있는일이다. 도시,건축,조경등의삶을담는공간을다루는영역에서처음처럼변화를꾀하고새로운것에대해도전할때놓쳐서는안되는변화하지않는가치는아마도공간의공동체성과공공성일것이다.우리가사는삶터에서너와나,그리고우리가함께사는공동체성을향한도전의한걸음한걸음은공간에서의더나은삶,더나은행복을추구하기위한노력이다.뭔가를처음처럼도전해보기위해서는먼저내가어느순간늘해왔던방식에익숙해져버린건아닌지,변화를향한도전을꿈꾸는것마저도내가처한상황에서는지극히사치스러운일이라고치부하진않는지,내가하는일을통해세상을향해무슨말을하고싶은지도모른채그저습관처럼일에매달려있지나않는지돌아보는일이우선되어야한다.최근주목할만한공원과광장,그리고공공건축등의사례에서엿볼수있는익숙하지만새로운공동체성과공공성의공간언어에는변화하지않아야할공간의공공성과공동체성의가치를구현한더불어숲의지혜와미래를향한새로운도전정신이담겨져있다. 최근지식사회에서화제의중심이된이슈가챗지피티(ChatGPT)이다.생성인공지능이만들어내는경이로운지식의재창조이다.하지만미래의초정보화시대가펼쳐지더라도우리는지식의한계에대한도전,존재하지않는것에대한끝없는상상,그리고동시대를사는인간과공동체에대한존중과신뢰의끈을놓아서는안될것이다.인공지능이인간의지식노동을능가하는현실에서인간은어떻게스스로의미래를꿈꿀수있을까?공간을상상하고공간적상상력을통해세상을변화시키는체인지메이커로서의역할은여전히인간만이누릴수있는권리이자의무이다. 미래도시에서공동체성이란개념과가치는여전히유효하다.보편적으로도시공간에서지속적으로공동체성이란근본가치를찾아나서는이유는앞에서도언급한초개인화로인해내가중심이된세상,디지털공간에서마저사유(私有)가지배하는환경에서공동체성이인간이과연인간다움으로존중되고있는가를묻는화두이기때문일것이다.미래도시에서우리가꿈꾸는희망의공간을만든다는것은온라인이거나오프라인이거나마찬가지로결국삶과터의관계를디자인하는것을의미한다. 우리가삶터로서의공간을디자인하는것은개인의삶의만족도와더불어함께사는삶의기쁨을누릴수있게하는일이다.동시에인간다운삶을가능하게하는장소와공간을디자인하는일,함께사는삶의가능성을열어주는일,공유할수있는가치를만드는장소와공간을디자인하는일이다.미래도시에서도현실공간과가상공간이구분되지않고이둘이서로엮여서한몸이되어삶과터의관계망을잘엮어낸다면삶이터를,동시에터가삶을서로보듬어미래의우리의삶터가공유와공존의숲으로성장하게될것이다. 이영범/건축공간연구원원장
환경과조경 40기 통신원, 조경 소통창구 ‘활짝’
[환경과조경신유정기자]지역의조경소식을발빠르게전달하고조경학과학생들의소통창구를열어갈환경과조경40기통신원이본격활동을시작한다. 지난6일그룹한빌딩6층그룹한갤러리에서‘환경과조경40기통신원간담회’가개최됐다. 환경과조경통신원은지난1985년부터40년간이어져온전국최대규모의조경관련대학생네트워크로,각대학소식및지역정보를전달하는역할은물론박람회등조경관련행사에서서포터즈활동을통해다양한프로젝트에참여해왔다. 환경과조경은매년통신원임기를시작하면서활발한활동을독려하기위해통신원들간만남을주선하고오리엔테이션을겸하는자리로간담회를개최하고있다. 특히올해간담회는오랜역사를지닌통신원제도를시행한지40주년을맞이해40기통신원을맞이하는데더욱뜻깊다. 이날간담회는1부공식행사와2부선배와함께하는커리어데이행사로이뤄졌다. 1부는▲임직원소개▲박명권발행인축사▲환경과조경회사소개▲임명장·기자증·우수통신원상수여▲기자교육▲온라인기사업로드교육▲1분자기소개▲기장선출순으로진행됐다. 박명권환경과조경발행인은축사영상을통해“올해통신원은환경과조경의가장소중한친구이자동반자로서조경업계와학계를연결하는중요한소통창구의역할을하고있다.조경의새로운영역과쟁점을발굴하고그경계를확장해나가는데통신원의참여가무엇보다소중한밑거름이될것”라며활발한활동을당부했다. 이번40기통신원은총27개학교에서41명의학생이선발됐으며,전국기장에는▲김경미공주대학교조경학과통신원과▲정세희순천대학교조경학과통신원이선출됐다. 김경미통신원은“별명에‘역마살’이들어갈정도로여행을좋아한다.앞으로조경분야의여행을함께할동료들을얻게돼기쁘다.떠나야만알수있는것들을위해앞장서서걷겠다”는의지를밝혔다. 정세희통신원은“전국기장으로선출돼영광스럽다.조경에열정을가지고전국학교에서모인통신원들과의소중한교류를통해조경분야에서의지식과경험을더욱풍부하게쌓겠다”며“특히선배님들과의만남을통해학교에서는배울수없는다양한경험과노하우를얻고싶다.앞으로통신원들과협력해조경문화발전에기여할수있도록노력하겠다”는포부를밝혔다. 지역기장에는▲서울·경기·강원지역에심규연건국대학교산림조경학과통신원과김솔서울여자대학교원예생명조경학과통신원이▲경기·충청지역에양경미단국대학교조경학과통신원과조휘리공주대학교조경학과통신원이▲영남지역에백진규경북대학교조경학과통신원과임시은경북대학교조경학과통신원이▲호남지역에이지현전북대학교조경학과통신원과박지혜순천대학교조경학과통신원이각각선출됐다. 간담회에서는39기우수통신원시상식이진행됐다.우수통신원은윤민영서울여자대학교원예생명조경학과통신원,서유석서울대학교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통신원이선정됐다. 2부에서는이형주23기통신원(조경하다열음)의사회로▲아라리소개및활동내용공유▲이성민21기통신원(텍사스A&M대학교교수)축사▲30기선배통신원경험공유및멘토링등선배통신원들과함께하는‘커리어데이’행사가진행됐다. 이성민21기통신원은축사영상을통해“20년전똑같은마음으로조경에대한기대와설렘,관심을가지고시작했다.통신원활동이선후배간소통창구역할을하는만큼많이듣고이야기했으면좋겠다.졸업후어떤진로를선택하든지간에제일중요한건‘소통’인것같다.앞으로다양한활동을통해마음껏즐기길바란다”고말했다. ‘커리어데이’는조경분야는물론사회각계계층에서활약하고있는선배통신원이후배통신원에게취업관련지식과경험을전해주는프로그램이다. 이번간담회에서는계획·설계·행정·특별등네분야로나눠▲계획분야에서락원30기통신원(어반플레이선임PD)이,▲설계분야에이향지30기통신원(얼라이브어스실장)이,▲행정분야에한지연30기통신원(서울시푸른도시여가국주무관)등이멘토로참가했다. 한편신임통신원의임기는이달1일부터내년3월31일까지1년간이며,앞으로조경매체중유일한네이버제휴매체인e-환경과조경을통해대학소식과지역정보를전달할예정이다.
[정영선 전시②-전시관] 국립현대미술관 가득 메운 조경가적 삶과 작품
[환경과조경박광윤기자]국립현대미술관서울에서는오는9월22일까지약6개월에걸쳐“정영선:이땅에숨쉬는모든것을위하여”를주제로한국1세대조경가정영선의조경활동을총망라하는전시를개최한다. 이전시는그가태어난1941년부터의삶의여정을되짚어보고1970년대대학원생시절부터지금까지반세기동안진행된60여개의크고작은프로젝트에대한조경작품아카이브로마련됐다.대부분최초로공개되는파스텔,연필,수채화그림,청사진,설계도면,모형,사진,영상등각종기록자료500여점을통해조경가로서의삶의궤적을깊이있게들여다볼수있다. 또한주제별로대표작을엄선해선보임으로써도시공간속자연적환경이설계된맥락과고민,예술적노력을드러내고,이러한사유와철학을조경건축의직능을넘어자연과더불 어사는삶을추구하는우리모두의이야기로환원하고자한다. 전시제목‘이땅에숨쉬는모든것을위하여’는정영선이좋아하는신경림의시에서착안했다.정영선에게조경은미생물부터우주까지생동하는모든것을재료로삼는종합과학예술이다.삼천리금수강산의아름다운경관을있는그대로그리고자했던겸재정선의진경산수화처럼,정영선은50여년의조경인생동안우리땅의이야기에귀를기울이고고유자생종의생물다양성을보전하기위한노력을해왔다.전시는정영선의작품세계를국가주도의공공프로젝트와민간기업이의뢰한정원과리조트,역사쓰기의방법론으로서기념비적조경과식물을연구하고보존하는수목원과식물원등작업의주제와성격에따라재구성했다.연대기적서사를지양한이러한접근방식은경제부흥과민주화과정이동시적으로발현된한국현대사의특징과도맥을같이한다.동시에수많은유형의작업들이공통적으로정영선이강조하는“지사(地史)적맥락”에기반을두고있음을나타내기도한다. 7개묶음전시,조경직능넘어서는삶의울림 전시는크게7개의‘묶음’으로나뉜다.정영선의조경이그러하듯경계가느슨한최소한의구획을통해관람객이서있는자리에서각프로젝트의맥락을스스로찾아갈수있도록했다.마치자연주의정원속을거닐듯서로배타적이지않은주제들의우연한마주함과포개어짐을의도했다. 첫번째묶음‘패러다임의전환,지속가능한역사쓰기’에서는‘장소만들기’의현장이된조경의사례를살펴본다.한국최초의근대공원인<탑골공원>개선사업(2002)과‘비움의미’를강조한<광화문광장>재정비(2009),일제강점기철길중유일하게조선인의자체자본으로건설된경춘선을공원화한<경춘선숲길>(2015~2017)등수직에서수평으로,채움에서비움으로인식을전환하고공간의정체성을형성하는주요한방법론으로서조경의역할이드러난프로젝트를확인할수있다. 두번째묶음‘세계화시대,한국의도시경관’은주요국제행사개최와더불어한국을찾는세계인에게선진화된도시경관의인상을주기위해동원된사업을다룬다.<아시아선수촌아파트및아시아공원>(1986),<올림픽선수촌아파트>(1988),<대전엑스포>(1993)등한국의경제,문화,기술적도약의기회였던대형국가주도프로젝트들을통해조경가가어떻게발전된도시모습의비전을제시함과동시에인공적인개발사업에땅의논리를연결했는지살펴볼수있다. 세번째묶음‘자연과예술,그리고여가생활’은경제성장이동반한생활양식의변화로수요가생긴가족단위여가활동의장소들을소개한다.정영선은예술,교육,체육,관광등각문화기관과레저시설의기능과목적에충실하면서도우리고유의지형과땅의맥락을살리는데많은노력을기울였다.종합문화예술단지<예술의전당>(1988)의조경구상도와모형사진,스포츠중심의휴양리조트<휘닉스파크>(1995)의식재계획도와피칭자료등이공개되며이는1980~90년대당시디자이너의소통방식을엿보게한다.또한현재진행중인프로젝트로인문학레지던시<두내원>(2025예정)도소개되는데,마르틴하이데거의『숲길』에서영감을받은산책로의개념스케치가공개된다. 네번째묶음‘정원의재발견’은선조로부터향유되어온우리고유의식재와경관,공간구성방식을적극적으로도입한정원을들여다본다.전통정원요소를자유롭게구사할수있는무대가된호암미술관의<희원>(1997)으로시작해경기도와중국광저우사이의교류정원으로조성된광동성월수공원의<해동경기원>(2005),바다가보이는언덕의개인정원<포항별서정원>(2008)등땅의생김새와성격에부합하면서‘깊은주름’의지형을만들어점진적으로경관을볼수있게만드는“전통정원의내적원리를재현”한사례를만날수있다. 다섯번째묶음‘조경과건축의대화’는건축과의유기적인협업을통해탄생한조경작업을살펴본다.제주오설록(2011,2023)의<티뮤지엄>,<티테라스>,<티스톤>,<이니스프리>건축물사이조성한제주특유의지형을살린개인주택인<모헌>(2011)의중정정원에담긴깊은숲의풍경,남해<사우스케이프>(2013)의건물사이바다를향한시야를가로막던돌언덕을마치원래그러했던것같은형태로깎아연출한방식등땅의조건을읽고이를중심으로경관이조성되는과정속에서조경가와건축가의내밀한상생작용을확인할수있다. 여섯번째묶음‘하천풍경과생태의회복’은강이흐르는곳에자연적으로발생한습지를보호하고도심속물의중요성을환기시키는작업을다룬다.정영선은<여의도샛강생태공원>(1997,2007),<선유도공원>(2001),<파주출판단지>(2012,2014)등콘크리트로뒤덮인도시기반시설에수공간을삽입했다.습지를복원하고하천환경을개선해인간을포함한다양한생명체들의보금자리를제공하기위한그의노력이소개된다. 일곱번째묶음‘식물,삶의토양’은다양한식생을수집하고연구하며교육하는수목원과식물원,자연의치유적속성이강조된명상과사색의장소들을조명한다.식물을가까이하는삶을통해자연과조화롭게사는방식을배울수있는곳들이다.광릉수목원으로불리던한국최초의<국립수목원>(1987)의설계청사진과남해의독특한기후대의식생을담은<완도식물원>(1991)의조감도,미국뉴욕주북부의허드슨강상류에자리한원불교명상원인<원다르마센터>(2011)를구상한수채그림,대지와식생현황도등이공개된다. ‘신작정원공개’기대…연계학술행사‘정영선읽기’ 서울관의야외종친부마당과전시마당에는이번전시를위한새로운정원이조성된다.석산인인왕산의아름다움을미술관내·외부에재현하고계절감을더하는한국고유의자생식물을식재하여관람객에게휴식처를제공함과동시에조경가의작품을오감으로체험할수있는기회가될것이다.또한실내전시에소개되는500여점의조경디자인기록자료의다차원적인연출을위해조경의‘시간성’에주목한정다운감독의영상과사진작가정지현,양해남,김용관,신경섭등의경관사진도함께소개된다. 또한전시기간에는다양한행사들이함께열린다.▲정영선의대표작<선유도공원>(2002)의봄,여름,가을,겨울을기록한영상‘선유도의사계’가이달10일부터28일까지상영되며▲5월17일에는14시영화감독정다운의조경가정영선에대한다큐멘터리‘땅에쓰는시’상영및감독과의대화시간이마련된다.▲7월3일에는‘정영선이만든땅을읽다’를주제로학술행사도개최된다.이날행사는‘조경가정영선을읽다’,‘정영선의작업을읽다’,‘정영선과의대화’로구성되며,조경진서울대학교환경대학원교수,배정한서울대학교교수,김아연서울시립대학교교수,배형민서울시립대학교건축학과교수와박승진디자인스튜디오loci소장,전은정조경포레소장,이호영HLD소장,조용준CA소장,백규리현대엔지니어링조경건축매니저등이참여할예정이다. 한편,이번전시에는배우한예리가오디오가이드에목소리를재능기부했다.차분하면서도울림있는목소리의한예리는작품에담긴의미를부드럽게전달했다.녹음을마친후“반세기에걸친작가의대표작이우리모두의일상속에서아름답게숨쉬고있어놀랐다”며전시에대한기대감을나타냈다. 김성희국립현대미술관장은“이번전시는한국을대표하는조경가정영선이평생일군작품세계중엄선한60여개의작업과서울관에특화된2개의신작정원을선보이는특별한전시”라며,“그의조경작품에서나타나는‘꾸미지않은듯한꾸밈’이있기까지의각고의분투와설득,구현과정의이야기를통해정영선의조경철학을깊이있게만나는계기가될것”이라고밝혔다.
[정영선 전시①-개막식] “땅을 돌보는 방법을 잊어버리는 것은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것”
[환경과조경박광윤기자]1세대조경가정영선의삶과작품이종로구소격동에위치한‘국립현대미술관서울’을가득메웠다. 국립현대미술관서울은4일“정영선:이땅에숨쉬는모든것을위하여”전시의개막식을개최했다. 이날행사에서김성희국립현대미술관장은“이번전시가살아있는재료를삼아서평생생물을디자인해온존경받는조경가의예술을감상할수있는기회가될것으로기대한다”며,엄청난국토개발시기속에서도“정영선선생님의조경작업은일찍이자연그대로의모습을놔두자는아주독특한철학이녹아있다”고말했다.“한국현대사의중요한지점에서작가의손길이어떻게담겨져있고또어떤방식으로표현돼있는지방대한양의그림과설계도,사진,영상,모형등다양한매체를통해작품을이해하는데큰도움이될것으로믿는다”며,아울러“전시장을한번방문해서는선생님의작업세계를충분히보시지못할것같다”며“여러차례방문해달라”고부탁했다. 현대사중요한건축조경들,선생님작업이었다니“놀랍다” 전병극문화체육관광부제1차관은축사에서“전시회개막행사에외부인들이이렇게많이온경우는제기억으로는없는것같다”며전시를둘러보니“현대사를지나며중요한랜드마크적인건축물들이많았는데,그건축물의관심받는조경들이선생님의작품이었구나라는생각에놀라웠다”며본받아야할분이라고칭송했다.“인문학적인성찰을기반으로담백하면서도아름다운우리의삶과우리들의정체성을살리고역사적공간을현대적으로재구성해낸상상력이집약된전시”라며“우리삶을쾌적하게해주는공간이면에조경설계자의세심한노력이있었다는것을오늘새삼스럽게깨닫게됐다”고말했다. 이날개막식에는오휘영한양대학교도시대학원명예교수의축사도전달됐다.축사는최자호라펜트이사가대독했다. 오휘영교수는축사를통해,불과반세기전에정영선조경가가언론사기자에서조경분야로뛰어들었던당시에는우리나라가조경의불모지였다며,처음에는“대학에서연구와후학양성에몰두하더니어느새조경설계회사를차려굵직한프로젝트들을거침없이수행해왔다.도전을거듭하는자세는작품에도그대로담겨져늘새로운발상으로시대의정신을잘보여주고있다”고도전정신을치하하며“정영선조경가의발자취는하나하나나이테가되어한국조경의깊이를더하고있다.그의손길이깃든공간들은이땅에많은이들에게편안함과새로운힘을줄것이다”라고찬사를보냈다. “땅을돌보는방법을잊어버리는것은스스로를잃어버리는것” 이어진작가인사말에서정영선조경가는오휘영교수의축사에“은사님의노고는멋진열매가되고싹이되어서조국강산이나날이좋아질것”이라고화답했다. 정영선조경가는“원래우리나라는아득한백제시대때부터정원을소중히여겼고,심지어일본에정원을만들어주기위해전문가가나가기도했다”며일제강점기,6.25등나라가심한고통에시달리다가국가를새롭게세우는과정에서‘조경’이새로운학문으로도입돼당시서울대학교환경대학원을통해지도자들이양성되고수많은일을직접하게됐다고지난조경의역사를회고했다.덧붙여“땅을돌보는방법을잊어버리는것은스스로를잃어버리는것과같다”는간디의말로인사를마쳤다. 이번전시는한국1세대조경가정영선의조경활동을총망라하는전시로,4월5일부터오는9월22일까지이어진다.
‘공간·사람·자연 연결사’ 정영선 조경가의 궤적을 담다
[환경과조경신유정기자]공간과사람그리고자연을연결하는조경을바탕으로한정영선조경가의궤적을담은다큐멘터리영화가개봉을앞두고있다. ‘영화사진진’은지난2일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오는17일개봉예정인영화‘땅에쓰는시’시사회및기자간담회를개최했다. ‘땅에쓰는시’는선유도공원,여의도샛강생태공원,경춘선숲길,서울아산병원등모두를위한정원을만들어온정영선조경가의땅을향한철학과내일의숲을위해현재까지도활동하고있는정영선조경가의사계절을담은다큐멘터리다. 정영선조경가는한국1호국토개발기술사(조경)획득한최초의여성기술사다.다채로운작업을통해대통령국민포장,세계조경가협회(IFLA)상,미국조경가협회상(ASLA),한국건축가협회상,김수근문화상등유수의상들을수상했으며,지난해에는한국인최초로세계조경가협회(IFLA)가수여하는조경계의최고영예상인‘제프리젤리코상’수상자로선정되며세계적으로인정을받았다. 한국에서조경에대한사회적위상이낮았던시기에,아시아선수아파트단지(1984),예술의전당(1984),올림픽선수아파트단지(1985),희원정원,호암미술관(1997-1998),인천국제공항(1999),서울올림픽미술관과조각공원(1999),청계천복원(2002-2005),광화문광장(2007),경춘선재생공원(2014),서울식물원(2014)과같은주요프로젝트를통해조경의중요성과가치를알리는역할을했다. 영화는모든생명이싹트는봄과생동하는녹음으로가득찬여름,무르익은색채너머휴식을기다리는가을그리고모든아름다움을준비하는겨울까지‘사계절’을중심테마로구성해다채롭고도풍성한볼거리를전한다.5년간야생화가만개한정영선조경가의양평집앞마당부터남녀노소모두가즐기는대규모공원과신비로움을간직한개인정원등다양한장소를누비며각계절이지닌고유한경치를온전히담아냈다. 언제나사람과자연의관점에서치열하게고민해온‘땅의연결사’정영선조경가의궤적을따라가며,관객들에게일상의위로를건네는공원의아름다움은물론,‘조화’를잃지않는삶의태도로써공원의의미에대해생각하게만든다. 특히미나리아재비,개쑥부쟁이등우리국토의매력을즐길수있는각양각색의야생화와제주를비롯한전국의금수강산을포착하며,한국적경관의현대적완성을빚어낸정영선조경가가그려온자연스럽고도감각적인풍경들을담아냈다.땅이간직한고유의맥락을읽어시를그리듯공간에생명력을불어넣는1세대조경가의진심어린철학을전하며새로운배움으로관객들에게다가간다. 이영화는국내작품으로는최초로제20회EBS국제다큐영화제개막작으로선정됐으며,남도영화제시즌1순천개막작선정및제49회서울독립영화제장편쇼케이스부문에공식초청되는등작품성을인정받았다. 이날기자간담회에는정영선조경가,기린그림의정다운감독과김종신피디가참석해영화에담긴메시지와영화가만들어지기까지의자세한뒷이야기를들려줬다. 정다운감독은간담회에서“건축과도시를자연과의관계성안에서탐구하는과정을거치며그사이를연결하는‘조경’의중요성을자연스레인지하게됐다.선유도공원,양재천,예술의전당등내인생속의수많은중요한공간들이정영선조경가의손길에의해만들어졌다는사실은운명과도같았다.오랫동안품고있던질문인자연복원과치유에대한희망을풀어나가고자결심한후자연과공간의관계성안에서가장중요한역할을하는조경가의이야기를전하고싶었다”며영화제작의도에대해말했다. 정영선조경가는“1세대조경가라는자격은나혼자잘해서가아닌내주변모든사람들의도움이있어가능했다.그감사함에보답하려다보니지금의내가있는것같다”며“정원을만드는것은단순히꽃을심고나무를기르는것이아닌치유와회복의장이자자연을보살피고서로소통하는장으로만드는것이다.우리가간직하고있는기존의것을더욱아름답게번영시켜자손에게물려주는것이조경가의역할”이라고강조했다. 한편기린그림은정다운감독과김종신피디가2012년에함께설립한건축전문영화영상제작사다.정감독은케임브리지대학에서‘건축과영상’을공부했고,김피디는골드스미스대학에서영화연출을공부했다.
배정한 서울대학교 교수, 차기 한국조경학회장 당선
[환경과조경신유정기자]한국조경학회제27대회장에배정한서울대학교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교수가당선됐다. 한국조경학회는지난29일청주대학교비즈니스대학B동에서‘2024년정기총회및춘계학술대회’를개최하고,제27대회장단선거를진행했다. 차기임원선거는투표를통해진행됐으며선거결과▲회장에배정한서울대학교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교수▲수석부회장에안승홍한경국립대학교교수가당선됐다. 배정한차기회장은“당선된만큼책임감을갖고발표한공약을실천하기위해최선을다하겠다”며“회원개개인의다양한목소리에성실히귀기울이고학회를넘어업계,시민사회,언론,정부·자자체,관련분야등다양한주체와연대하겠다.여러분의많은도움과협조,애정어린질책을많이부탁드린다”는당선소감을밝혔다. 안승홍차기수석부회장은“그동안의경험을바탕으로회원교류증진,학술기능강화,조경교육방향정립,관련학회협력등신임회장님잘도와서회원들의권익신장에노력하겠다.많은협조를부탁드린다”고말했다. 이날정기총회는▲2023년도사업및결산보고▲2024년도사업계획및예산심의▲제27대회장및수석부회장등차기회장단선거▲오웅성홍익대학교건축공학부교수의‘월드스킬&조경가드닝:국력,국격,직업의길’특별강연이진행됐다. 김태경한국조경학회장인사말을통해“청주대학교조경학과창립50주년을기념하는날정기총회및학술대회를개최하게돼뜻깊다.얼마전까지만해도코로나팬데믹속에서벗어나기만기다렸는데,이제는인구절벽을마주하고있다.조경을가르치고,후학을양성하는입장에서가만히있을수는없다.학회를통해보다양질의교육그리고시대에특화된교육을준비하겠다”고약속했다. 홍상표청주대학교공과대학장은축사에서“이번행사를청주대학교에서개최하게돼기쁘게생각한다.우리가살고있는현재는전례없는기후위기와환경문제에직면해있다.해수면상승이상기후,대기오염등이러한문제들에대한해결책을모색하는과정에서조경의역할이어느때보다도중요해졌다”며“도시와자연의조화,지속가능한환경조성을위한혁신적인해결책을찾는것이바로조경분야의과제라고생각된다”고말했다. 조경학회는이날▲서주환경희대학교교수▲이민우공주대학교교수▲이경진공주대학교교수▲박재철우석대학교교수▲조동범전남대학교교수▲변무섭전북대학교교수에게정년퇴임공로상을수여했다. 우수논문상은▲하지아본시구도기업부설연구소장·박재민청주대학교교수의‘탄소저감설계지원을위한수목탄소계산기개발및적용’▲곽윤신가천대학교교수의‘융합도시모델링을통한그린인프라수요예측및지오디자인적용’이수상했다. 우수저술상은▲배정한서울대학교교수의‘공원의위로’▲김순기순천대학교교수·김한배서울시립대학교교수·이상우건국대학교교수·이재호서울시립대학교교수·임의제경상국립대학교교수·최정민순천대학교교수의‘조경개념사전’이받았고,우수번역상은▲황주영서울대학교환경계획연구소박사의‘조경’이선정됐다. 우수졸업생은▲김지연강원대학교▲최수민경북대학교▲민세린경희대학교▲김은주계명대학교▲김유겸고려대학교▲임은혜동국대학교▲권미리동아대학교▲이민서배재대학교▲김소담강릉원주대학교▲이주혁건국대학교▲김하림경남정보대학교▲곽동현경상국립대학교▲이지선공주대학교▲윤영두나주대학교▲김소영단국대학교▲김정재대구가톨릭대학교▲황희진대구대학교▲장지웅상명대학교▲백주희서울여자대학교▲정유진영남대학교▲김태영우석대학교▲송해림전북대학교▲양영백청주대학교▲김지수한국전통문화대학교▲김혜리목포대학교▲이종현서울대학교▲윤예진서울시립대학교▲황서현성균관대학교▲임선영순천대학교▲홍규빈신구대학교▲이현주원광대학교▲김혜교전남대학교▲서현진한경국립대학교▲한승희호남대학교등34명이수상했다. 춘계학술대회는4개분과로▲1분과조경설계·조경이론·조경사▲2분과조경계획·조경시공·조경관리▲3분과경관계획·도시결계▲4분과조경수목·생태계관리순으로진행됐다.
  • 환경과조경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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