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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여기 공원미학] 춤추는 나무, 숨쉬는 도시 ⑧ 산들이 말하는 북서울꿈의숲
    ⑧ 산들이 말하는 북서울꿈의숲 공원이, 녹지공간이, 저 너머 언덕이 힐링이자 치유로 이해되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 날 수식어처럼 들리던 힐링과 치유가 요즈음에는 생활이자 일상으로 들리곤 한다. 저 용산공원 설계안에 깔린 최신식 치유 개념이 채 실현되기도 전에 녹색공간의 치유 기능이 일상적이고 보편적으로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전염병으로 촉발된 상황이라지만 길게 보면 지속가능성 또는 회복탄력성으로 요약된 채 수십 년 동안 우리 도시에 가득했던 생각이다, 언어이기도 하다. 치유는 이미 오래도록 고민해온 주제이다. 자연이 도시의 치유였다는 점은 이미 근대 도시공원 전략으로 확인된다. 서구에서 도시공원은 그렇게 확산된 역사가 있었으나 수입된 개념인 공원(park, public park)이 우리의 일상이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한 번 자리 잡고 관성이 생기자 거기서 그친 것이 아니어서 이제는 세계적으로 모범이 되는 공원들까지 즐비하다. 잘 보면 문제가 무엇이든 결국 사람의 일로 귀결되기 때문인 듯, 치유를 조언하는 대부분의 경우 환경이나 주변 조건보다는 사람을 전제로, 대상으로 한다. 북서울꿈의숲은 충분히 주변부나 공원이 아니라 그런 보편성(universality)으로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치유이자 자연(산)으로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지위그(WYSIWYG; What You See Is What You Get), 무엇을 보았는가 『조경설계론』(한국조경학회 편, 기문당, 1999, p.3) 서론에서는 천명한다. “이 시대는 그 어떤 때보다도 우리 조경의 설계언어가 절실하다.” 언어는 생각을 교류하는 기본이기 때문에 조경뿐만 아니라 어떤 전문분야도 역할이 사회적으로 중요해지면 그만큼의 언어가 필요해지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우리가 언제 언어 없이 교류한 적이 있었던가? 조경이 정원사를 한 축으로 수 천 년을 이어왔다면 그 교류의 기본인 언어가 절실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을까? 여기서 말하는 설계언어는 그런 점에서 보자면 우리 시대의 조경을 담아내고 교류할 수 있는 낡은 언어가 아닌 현시대의 언어가 있어야 한다는 성찰의 표현으로만 읽어야 함이 자명하다. 그렇더라도 어쩐지 그 발언이 그닥 와 닿지는 않는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고도화 된 전문업(professional)은 대체로 그들만의 방법론(언어)을 가지게 된다. 우리가 언어학의 그것과 생물학의 그것을 직접 비교할 수 없는 것도 그 때문이고 같은 글자의 단어라도 이해하는 바가 달라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전문성(specialty)이란 사회적으로 요청되고 소통되는 전문성(profession)이라고 하더라도 그러할 수밖에 없다. 조경은 인간의 일상공간을 직접 다루기 때문에 그런 측면에서 일정 부분 “언어의 목마름”은 용인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크게 보아 그렇다는 것이고 실상 그것은 대표적인 성찰 부재의 증거가 될 뿐이다. 이는 조경뿐만이 아니다. 살펴보면 우리 지식의 전문분야 대부분이 이런 미성찰의 치기가 자주 목격된다. 시간이 된다면 서점의 전문분야별 개론서들을 한 번 보시길 권한다. 눈밝게 본다면 분야에 상관없이 일정한 경향성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떤 때보다”, “설계언어가 절실하다”는 그 표현으로 돌아가 보자. 조경설계론의 개진에 있어 “이 시대”를 담아낼 “우리 조경”이 없다는 말로도 읽히는 이 표현은, 그렇다, 문제가 많다. 설계 방법론의 객관성을 말한다고 해도, 조경설계의 예술성 또는 창의성을 말한다고 해도, 또는 그것을 벗어난 자연과학적, 문화예술적 기법을 말한다고 해도 문제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들이 보았고 그들이 필요하다 강변한 것이 과연 언어였을까? 그들이 보려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 전에 그들은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아파트 공화국(Apartment Republic)”, 산(山)을 모르는 시대 한국의 조경에서 2000년대 초반은 1990년대와는 또 다른 양상에서 축복의 시기였다. 공원녹지로 대표되는 조경의 사회적 역할이 재화의 측면뿐만 아니라 일상과 문화의 측면에서도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일반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살펴보면 우리 근현대조경사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최신의 대형공원들이 이즈음에 집중적이다시피 등장하였다. 일반화 된 설계공모 형식이라든지 대상지별 특성에 집중한 설계안들의 개성이라든지 분명 우리는 새로운 국면의 공원사를 접하게 된다. 기존 공간의 재활용이라는 흐름을 패션화한 것은 따로 읽을 필요도 있다. 그 10년의 말미에 조경가 최신현의 작품 “북서울꿈의숲”과 “서서울호수공원”이 개장하였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공원이, 조경이 하나의 예술 장르라고 할 때 여러 여건과 조건이 통합되어 두 곳의 탄생을 지원한 셈이기 때문이다. 앞서의 공원들과 차별되면서도 앞서의 성취를 안고 가는 두 공원의 독특함은 단순히 설계의 기법이라든가 설계의 언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서서울호수공원으로는 세계적인 조경상까지 수상하였으니 그 의미는 더하다. 이즈음의 우리 사회는 발레리 줄레조의 지적처럼 “아파트 공화국”의 면모를 온 도시에 가득 채우고 있었고 재화로 치환된 삶터는 이미 숫자로 회자되며 어려운 경제여건이라면서도 거품 같은 건물들이 최신식 기술로 대체되고 있었다. 쪼개진 녹지는 그 사이로 겨우 연명하는 셈이었으니 대형공원에 대한 열망은 어쩌면 풍선효과였는지도 모른다. 이때의 특징이라면 개발의 관성이 남아 공원이든 녹지든 화려하고 크게, 도시에 기능하도록 한다는 미명하에 그렇게 건설되었다는 점이다. 그런 관성은 소위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을 형성하며 또 하나의 담론이 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서도 북서울꿈의숲은 온전히 산(자연)을 배경으로 한다. 이때의 산은 우리의 지난 역사가 남아 있는 터전이자 생태이다. 산을 모르는 시대에 산을 안고 펼치는 설계안은 산을 이기려 들었던 지난 세기를 되돌아보게 한다. 이때의 산은 “이 시대” “우리 조경”을 대표하는 자연이다. 또 이 산은 해외의 산과는 달리 생활이자 풍경인 우리 전통의 도심 생태계를 말한다. 그것은 도시이면서 자연이자 전통이기도 한 것이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고 할까, 설계자가 보는 눈이 거기까지에 이르렀으니 설계안은 기존의 언어로는 다 담기에 부족함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도면과 현장의 간극은 그것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촉박한 일정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전체적으로 생각(설계)과 현실(공원)이 표현된 설명서보다 훌륭함은 부인할 수 없다. 치유를 위한 공원과 치유가 된 공원 형태적으로만 보아도 이 공원은 산과 함께 춤춘다. 건물은 그 흥에 사위를 맞춘다. 광장은 낮게 누워 모두를 포용한다. 수면은 하늘까지 끌어들이며 사색을 부른다. 입구든 산책로든, 쉼터든 어디든 필요에 의한 조경공간들은 지형과 밀착해 있다. 또 여행가이드처럼 조경공간의 이름들은 공원의 사용법인양 이름만으로 모든 것을 보여준다. 북서울꿈의숲은 과정을 떠나 결과물만으로도 이미 도시공원의 새로운 경지(境界)에 이르렀고, 과정을 보더라도 욕망과 역사에 조경이 어떠한 처방으로 치유를 유도하는 지까지 보여주었다. 그렇게 공원은 “본능이 춤추는 산경(山景), 산과 함께 살아온 산야(山野)”를 시대보다 약간 앞서 되살려 놓았다. 지형(산야)의 활용은 설계 측면에서만 본다면 가히 예술적 성취의 그것과 견줄 만하다. 반복해서 찾을 때마다 온전히 재발견되는 공원은 세계 어디에서도 이 만큼을 찾기 어렵다. 무엇보다 계절과 산야가 본능으로 깔린 공원은 그 자체가 치유임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센트럴파크가 성취하지 못한 경지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시대의 대형공원들에서는 “산의 도시 서울, 자연에 뒤섞인 인공, 생태에 담긴 행태로서의 한국성” 등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리고 환경적으로 성찰해야 할 주제들을 발견할 수 있다. 성찰은 다름 아니다. 지난 것을 진실 되게 되돌아봄이며, 잘잘못에 대한 진솔함이고 앞으로에 대한 긍정과 다짐일 뿐이다. 우리의 공원 미학은 치유가 재부각되며 대형공원을 꿈꾸고 브라운필드를 고민하며 도시재생을 모색하는 것보다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우리가 걸어온 길과 세계가 가보지 못한 길을 공원이라는 렌즈로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시시각각 “생산”되는 세대별 어휘와 단어보다는 그 흐름이 이루는 우리의 걸음걸음을 쌓아가야 진정한 성찰이 되는 것이다. 공원은 그렇게 수입품만이 아니게 된 것이다. “떼르자 나뚜라(제3의 자연, Terza Natura)”, 적정 자연(Appropriate Technology)과 치유 공원 한때 우리에게도 회자되었던 제3의 자연을 곱씹어야 한다. 자연도 인공도 아닌 어정쩡한 타협의 제3의 그것을 우리는 자연으로 먼저 보았던 점, 그러니까 인공의 아류쯤을 먼저 보았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의 객체화, 개념화(대상화)가 어쩌면 실패하였음도 인정하여야 한다. 성찰에 이르지 못한 개념은 그렇게 사장될 뿐 지속성을 가지지 못한다. 하나의 수사로 남은 그것이 현실에, 현장에 어떠한 역할도 할 수 없음은 더욱 슬픈 일일 것이다. 한 가지 배워야 할 점은 그것이 결국 지금여기에 적합한 적정 자연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라는 점. 그리고 그것이 결국 센트럴파크가 보여주었던 치유의 새로운 버전이었다는 점이다. 단순히 수사로만 보고 잊어버릴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너무 앞서가는 것인지 모르나, 북서울꿈의숲은 그런 지혜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 자체로 외관상의 새로운 뭔가로만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도하지 않고 모자라지 않으며 낡지도 오래되지도, 그렇다고 아주 멀리 있는 새로움도 아닌 적정함은 이 공원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기 때문이다. 또 있다. 자세히 보면 고집과 억지도 담겨 있고 하이테크와 스카이라인도 담겨 있는 아주 복합적인 경관들이 통합적 풍경을 형성한다는 점도 중요하게 보아야 한다. 마이크로 랜드스케이프(micro-landscape), 매크로 랜드스케이프(macro-landscape) 할 것 없이 시점에 따라 변화하는 풍경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또 각 위치마다 적정하게 펼쳐진다. 의미가 필요한 곳엔 의미의 경관이, 놀라움이 필요한 곳엔 시각적 충격이, 그리고 뛰고 놀며 시끄러워야 할 공간엔 딱 그만큼의 자유로움이 적당하게 펼쳐져 있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모든 상황이 누구에게도 불편하지 않다는 점 지난 시대, 우리가 천연과 인공으로 나누어 보았던 우리 일상의 주변을 이분법을 뛰어 넘고 만들어진 공원 하나가 다시 보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공원은 철학적이고 이미 새로운 설계언어이며 생각하는 이들에게 성찰을 부르는 장소가 된다. 그뿐인가, 조경을 중심으로 하는 통합설계가 어떠해야 하는지 교과서적으로 보여준 사례로서도 세계적인 수준이다. 조경비평이 답해야 할 곳이다. 공원이 먼저 부르는 “조경비평(조경비평가)” 플라톤은 『파이드로스』에서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합니다. “파이드로스여, 누군가를 지혜 있다고 일컫는 것은, 내가 보기엔 너무 높이 올라간 것 같고 그런 말은 신에게나 적용하면 적절한 것 같네. 그러나 지혜를 사랑하는 자(philosophos) 또는 그 비슷한 말로 일컫는다면, 그 자신도 차라리 동의할 것이고, 보다 더 합당할 것 같네.” 그러니까 사람들이 흔히 (잘못) 짐작하는 것처럼 ‘철학’이라는 분과가 먼저가 아니라, 오히려 ‘지혜를 사랑하는 자’ 또는 ‘지혜의 친구’가 먼저 있었고 그 후에 그의 활동(필로소페인, philosophein, 철학함)을 가리키는 명사로서 필로소피아(philosophia)가 생겨난 것입니다. _ 김재인, 『생각의 싸움 – 인류의 진보를 이끈 15가지 철학의 멋진 장면들』(동아시아, 2019), p.204. 어디선가 살펴보았듯 조경도 조경가가 있고난 후에 있었지 조경이 인정되고 난 후 조경가가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조경철학도 그런 점에서 조경철학자(그렇게 불러도 된다면)가 있은 후에야 가능할지 모른다. 누군가 이런 것이다 하고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예시할 수 없는 것이고 조경가 누군가가 그의 행동과 결과로서 그것의 개념화를 이끌어야 하는 셈이다. 개념은 사고의 속도를 현격하게 높여준다. 개념은 철학을 고도화 해준다. 조경의 철학은 그런 누군가의 진정성 있는 개별 성과로 인해 창발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과정의 결과들을 언어라 부른다. 조경가 최신현은 그런 면에서 조경철학을 몸소 실천하는 프로페셔널이다. 단순 기능인이 아니라 우리가 또 어디선가 살펴보았듯 테크네를 통합적으로 실천하는 조경실천의 한 축이다. 그를 우상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의 작품이 스스로 그를 그렇게 이끌고 있음을 강변하는 것이다. 여기에 조경비평의 역할이 있다. 비평은 예술을 제도화(institutionalization)하는 것만이 아니다. 비평은 필요한 성찰에 불을 댕기기도 해야 하는 것이다. Park 07. 산들이 말하는 공원들, “보존/보전의 토지, 공원(그린인프라)” 2020년의 우리에게 정원은 이미 쉽게 눈에 들어오는 일상 요소가 되었다. 취미와 취향의 여부를 떠나 정원은 별개의 자연으로 도심에 꼭 필요한 무엇이 되었다. 사정이 다르긴 하지만 여건이 된다면 정원은 도심에서가 아니라 근교에 그림 같은 집과 공존하는 꿈이 아닌 일상이 되기도 한다. 그만큼 정원이, 가드닝이 쉬워진 시대를 우리는 지나고 있다. 그 와중에 우리 곁에 있던 공원과 산들도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고 자주 봐야 알 수 있다고 하지만 공기처럼 흔하고 필수적인 것들은 그렇지 않은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그랬던 산과 강, 공원과 하늘이 이제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원은 우리에게 성찰을 요청하는 것이다. 단순히 복잡해지고 소외하는 도시에 대한 반성만이 아닌 그것은 당연하다 여기던 것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처음이 아닌 이것이 지금은 다른 이유는 어떻게 돌아봐야 하는지를 되묻게 한다는 것 때문이다. 앞의 두 가지 측면에 더해 그 되묻게 하는 것 나머지는 다음의 두 가지가 더 있다. 생각의 힘은 “무엇을(what)”을 밝히는 데 있지 않고 “어떻게(how-what)”를 분명하게 하는데서 나온다. 산과 자연에 둘려 살아온 우리는 지구정원의 특별한 축복 속에 아웅다웅하고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해 보면 좋겠다. 3. 성찰의 성찰(재성찰) - 조경의 메타인지(meta-cognition) 설계언어란 성찰의 다름이 아니다. 조경에 그것이 절실하다는 것은 생각 없음과 같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나아가면 그 동안의 그것은 생각이 없었다는 자책이라 보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그러했는가 따져볼 일이다. 생각 없는 설계란 그대로 불가하고 모순일 수밖에 없다. 이런 언급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깊이 있게 따져봐야 하는 문제가 앞서 드러나게 된다. 이렇게 장황하게 따지고 서술하는 이유는 첫마디 언급 “성찰”의 의미를 되새겨보기 위함이다. 생각이 생각을 이끌며 깊이를 더해가는 생각이 일정 수준과 보편성을 가지게 되면 우리는 그것을 성찰이라고 할 수 있고, 그것이 쌓이면 개념이 되고 철학이 된다. 문화가 되고 역사가 되면서부터는 지구적, 인류사적 의미를 가지는 재성찰이 쌓이며 문명의 하나로까지 부를 수 있는 의미를 가진다. 작은 생각이 모인 큰 흐름과 삶을 가진 존재에 대한 가치라는 측면에서 성찰은 그렇게 수단이 되고 기술이 된다. 조경은 어떠한가?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지는 않았는가? 작은 생각들을 무시하지는 않았는가? 소위 “설계 언어”가 없다며 일원화 또는 획일화를 강요하는 것은 아닌가? 조경의 메타인지가 시급한 시점이다.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조경이 되도록 도약이 필요한 시점이다. 조경뿐만이 아니라 그만큼 우리 사회가 성장하며 도시에도 다층 다양한 메타인지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도시가 사람이 모여 사는 삶의 가치 실현의 장이라고 할 때 우리는 이미 그 의미를 생활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도시는 만들고 채우고 체계를 갖추는 시대를 넘어 새로운 도시를 고민하는 시대인 것이다. 르꼬르뷔제가 생각하던 도시가 실험된 바 있고, 하워드가 생각하던 삶터가 만들어진 바도 있다. 그렇게 도시는 끊임없이 말하고 소통하려 하며 바이오스피어1에 기생하며 진화하는 것이다. 경관을 다시 보고 재설정하려는 것은 다행스런 현상이다. 조경에서의 메타인지, 나아가 성찰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진행과 교류, 담론화가 더디고 추진력 없다는 점은 문제다. 조경 내적이든 외적이든 인지와 메타인지가 필요함을 먼저 생각해 보자. 적당한 설계언어는 과연 지금 우리에게 없는가? 4. 도시의 주기율과 주기율표 – 도시의 적폐들, 장소의 주기들 도시에서 재생은 이미 문제가 되고 있다. 성급한 사업화로 인한 문제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필요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그것이 개념상의 한계를 노출하는 과정이자 깨달음임을 말하고자 함이다. 추억에 쌓인 되살림은 실제는 진화나 진보를 담는 변화라기보다는 옛것을 되끌어오는 미련이나 그리움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생보다는 신생(vitalization)을 개념의 중심으로 보아야 함을 필자는 주장하곤 한다. 새로운 여건과 모두가 처음 겪는 이 지구를 새롭다 보아야 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도시와 도시에서의 주거 또한 그렇게 새로워져야 함은 명백하다고 하겠다. 혹자는 그렇지 않은 적 있었나 할지 모르겠다. 모든 역사가 그러하듯 돌고 돌면서도 성장하고 새로워진 것은 뉴노멀을 얘기하는 작금에도 불변하는 진리일 터. 되돌림에 시점을 두기보다 새살림에 먼저 가치 두자함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런 점에서 도시는 일정한 주기를 가지게 된다. 그 주기율을 이해하는 것이 지식이고 지혜이기도 하다. 특히 장소는 그것을 이해하게 도와주는 핵심의 채널이나 매체가 된다. 지난 시대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것을 우월한 그래픽(용어, 컨셉)으로 가려두지는 않았나 반성해야 한다. 경관으로 대표되어 소통되는 많은 담론들이 결국 그러한 주기율에 다름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재생이 보여준 한계는 이제 신생으로 보완하며 뭔지 아직 모를 또 다른 새로움을 후대에게 요청해야 한다. 삶터에 대한 메타인지는 그렇게 주변의 적폐를 걷어내고 새로운 주거를 형성할 테니 말이다.
    • 안명준 조경평론가eirene95@naver.com
    • 2020-09-16
  • [조경논단] 이제는 환경교육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세계 경제는 빠르게 안정됐고, 1970년대의 한국 경제는 연평균 9%라는 고속 성장을 이뤘다. 산업 발전과 경제 성장으로 인류의 삶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급속한 인구증가와 경제성장으로 인한 환경오염과 자연생태계의 훼손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1972년 로마클럽은 「성장의 한계」라는 보고서를 통해 현재의 경제성장 방법과 추세가 변하지 않는 한 100년 후 인류의 성장은 한계에 도달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국제기구 등에서 환경문제의 심각성이 논의됐고, 환경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을 같이 하게 됐다. 물질적인 풍요를 위해 우리는 경제논리를 앞세워 무분별하게 개발하고 화석연료를 사용하며 그로 인해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과 미세먼지, 한파, 폭우와 강력한 태풍, 코로나19등 이상기후 때문에 우리의 삶은 위협받고 있으며, 이 모든 것이 결국 기후변화가 원인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한다. 스웨덴 소녀 그레타 툰베리는 “학교에 가는 것보다 기후변화를 멈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며 매주 금요일 등교 대신 거리로 나왔고, 이는 영국·벨기에·프랑스·독일·호주·한국 등 40여개 국가로 퍼져나갔다. 2020년 환경의 날 전국 226개 기초지방정부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대한민국 기초지방정부 기후위기 비상선언선포식’을 했다. 지난 7월 9일에는 전국 17개 시도교육감들이 ‘기후위기・환경재난시대 학교 환경교육 비상선언’을 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기후위기·환경재난 시대에 대응하고 미래를 위해 변화를 이끄는 지속가능한 학교환경교육을 실천할 것을 선언했다. 이에 앞서 서울시는 지난 2017년 5월 광화문광장에서 서울환경학습도시선언을 시민사회와 함께 서울시장이 직접 발표했다. “서울시는 천만시민과 함께 서울을 지속가능한 삶의 터전으로 가꾸어 갈 것입니다. 그 바탕에는 환경에 대한 배움과 이해가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천만 서울시민과 함께 서울을 ‘환경학습도시’로 변화시킬 것을 선언합니다.” _ 서울환경학습도시선언문(2017년 5월 27일 발표) 이러한 선언문 속은 지금 처해있는 기후위기상황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에서 시작됐다. 에너지 자급율이 2%밖에 되지 않지만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는 도시로서 반성적 성찰이 필요했다. 지금 처해있는 비정상을 바로잡기 위한 정의로운 전환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선언만 있고 끝내 아무런 담대한 실천과 구체적인 정책이 없었다. 환경문제의 해법은 기술개발 및 법과 제도의 개선을 통해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고 근본이 되는 방법은 교육을 통한 것이다. 사람의 생각이 바뀌어야 환경을 위한 기술과 제도를 선택할 수 있고, 실제 행동을 통해서 변화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환경문제를 해결하고 지속가능한 삶을 이끄는 가장 중요한 해법은 환경교육이라 할 수 있다. 「환경교육진흥법」 제16조(환경교육센터의 지정), 「서울특별시 환경교육진흥지원조례」 제9조(환경교육센터 설치운영)에 의하면 법적근거에 의해 시민환경교육실시와 환경정책수립 등을 위해 서울시환경교육센터를 지정·설치해 가장 근본적인 교육을 통해 환경문제에 대응하고 거점공간으로 적극적으로 활용돼야 한다. 서울시는 현재까지 지역환경교육센터(광역)를 설치·운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올해 3월 서울시 지역환경교육센터(기초) 지정공고를 하고 6월 10일 마포구를 비롯한 5개의 지역환경교육센터를 지정했다. 지정하고 나서도 별다른 계획과 협의가 없이 지금에 이르렀다. 환경교육진흥법과 서울시환경교육지원조례에 따르면 시장은 환경교육센터에게 환경교육의 실시를 위탁할 수 있고 운영 및 사업에 필요한 예산의 전부 또는 일부를 예산의 범위 내에서 지원할 수 있다고 적시돼 있다. 서울시는 2020년 지역환경교육센터에 운영을 위해 지정서를 발송한 것 외에는 아무런 계획과 예산을 전혀 수립하지 않았던 것이 현실이다. 서울시는 지금이라도 향후 환경교육센터 운영과 관련된 명확한 답변과 성의 있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그동안 시민사회와 논의했던 민관협력 환경교육사업들이 모두 캐비닛 속에 잠들어 있지 않은지 궁금하다. 서울시 환경교육정책이 기후위기와 코로나19라는 전 지구적인 재앙을 가져오고 있는데 시의회와 시의 집행부에서는 소독약과 마스크만을 지급하거나 지원하기보다는, 예방적 차원에서 기후위기와 환경재난에 대한 헌법에서 보장한 생명권과 행복추구권, 정상적인 환경에서 살아갈 환경권을 보장받기 위해 환경학습을 전면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본인이 센터장으로 있는 마포구환경교육센터는 서울시와 마포구의 지원 없이 현재 시민모금과 기업의 후원으로 작지만 소중한 학습장을 마련하고 학습기반을 조성해 8월 19일 개소했다. 아직은 작고 보잘것없는 공간이지만 마을마다 이런 공간들이 생기면 좋겠다는 것이 센터를 방문한 분들의 한결같은 의견들이었다. 지금이라도 환경도시를 향한 여러 정책과 선언들이 공염불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말이나 선언보다는 행동할 때이다. 법 제정 이후 타 시도에 비해 환경교육센터를 12년간 지정과 설치를 하지 않고 지정 이후에도 무관심 속에서 시민의 환경학습권을 박탈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코로나19보다 더 심한 팬데믹을 가져올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서울시, 이제는 환경교육이다. 오창길 / 자연의벗연구소 대표
    • 오창길 자연의벗연구소 대표doyosae88@daum.net
    • 2020-08-30
  • [유청오의 핀테스트] 관객과 관계
    마스크의 시대다. 결국 한때가 될 것을 기대하지만 돌풍의 한 가운데인 요즘 심란한 소식에 연일 어지럽다. 어느 공원 한 가운데에는 하릴없이 뛰노는 마스크 속 아이들과 걱정스런 눈으로 쫒기 바쁜 부모들의 실랑이가 멀리서도 마냥 정겨워 보이지만은 않는다. 서로 간의 거리가 필요한 요즘, 서로의 간극은 필요한 만큼의 여백이 아닌 생을 위한 공백이 되었다. 누군가 사진구도에 대해서 물으면 공백이 아닌 여백을 강조하곤 한다. 스스로 지어낸 방법이다. 맥락을 벗어난 빈 공간은 공백으로, 잘 그린 수묵화의 빈 곳처럼 여운이나 내용의 맥락을 이어나가는 비어있지만 내용을 이어주는 곳은 여백이 된다. 여백은 구도 안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여백은 비어있지만 어떤 대상을 서로 잇는다. 대상(피사체)과 사진가, 사진과 사진가, 사진과 관객, 사진가와 관객 안에서 서로가 공명하는 한 여백은 비워져 있다. 한편으로는 채워져 있다. 어쩌면 채우는 것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니 서로를 이어줌으로써 무엇으로 될 수 있다고 여기는 편이다. 그러니 무엇이 되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단지 두 가지 이상의 주체가 서로를 잇는 가운데의 빈 공간이 있으면 된다. 사진촬영의 과정에 빗대 보자면 거대한 미술관에서 관람하던 작은 사진집으로 혹은 모니터나 휴대폰 화면으로 관람하던 작자와 관객의 관계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진다. 전파를 타고 관객과 사진가는 여백을 두어 이어져 있는 것은 아닐까. 수단이 혹은 도구가 정작 방향을 좌우하는 경우도 있다. 좋은 카메라가 좋은 사진을 만들지는 않지만(물론 좋은 카메라가 좋은 사진을 찍기에 유리한 점이 있으므로 너무 깊게 이야기 하지 않겠다. 가벼운 비유라고 생각해 주시길) 중요하게 여기는 경우도 있다. 카메라의 기종을 살피기 이전에 사진가가 무엇을 찍었는가가 더 중요하다. 경험으로 판단하기도 하고 혹자는 나이로 판단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것이 구도 안으로 치고 들어오는 것, 이것을 나는 이것을 공백이라고 부른다. 물론 배후의 이야기는 중요하다. 여기에서 말하는 관계없음은 작가가 내용이라고 부르는 것과 도구의 관계로 한정한다. 창조적인 작업에서 작가와 관객의 사이를 잇던 많은 것들이 허물어져가고 있다. 붓을 쓰지 않는 화가, 펜으로 쓰지 않는 작가, 종이에 드로잉을 하지 않는 설계가가 많아지고 있다. 붓으로 그리지 않았더라도 화가의 그림은 그대로다. 마찬가지로 글이, 도면이 무의미해지지 않듯 작가와 관객 사이 방식이 달라졌을 뿐 그들은 서로 공명하는 방식을 끊임없이 찾아내고 있다. 반드시 붓이나 펜과 같은 것에 짐을 지워낼 필요는 없다. 물론 아날로그의 도구들이 떠난 자리는 공허함을 남기겠지만 그래도 작가와 관객의 공명은 이루어지고 있다. 빈자리, 공명을 위한 곳을 여백이라고 부르고 싶다. 사진은 카메라로 찍는다. 작든 크든지 카메라라고 부르고 렌즈라고 부른다. 실상을 담아내어 가공하고 비추어 주는 각각의 단계는 디지털이라는 이름 아래 있지만 역시 카메라로 담아내야 한다. 방식을 보면 구식이다. 사진가 역시 카메라로 담아내어 보여주려 애쓴다. 사진가 역시 구식이다. 현장을 가야하고 찍어야 하고 (디지털)암실 작업을 해야 하고 인화 또는 (인터넷)게시 혹은 전시를 해야 한다. 절반의 진화를 하고 있는 것은 사진가 자신이 아닐까. 무엇으로 공명하고 있을까. 무엇이 관객을 감동하게 하는 것일까. 여러 질문이 앞선다. 정해진 공간을 3일 동안 공사해야 하는 프로젝트가 서울에서 매년 진행된다. 소외된 시유지에 변화가 일었다. 학생들이 주로 참가하는데 마무리 되었을 때 참가했던 학생에게 무엇이 기억에 남는지 궁금해 물었다. 그는 “누군가 문득 저 자리에 앉게 되었을 때의 짜릿함”에 관해 상기된 얼굴로 답했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작은 시설물 하나가 특별해지는 순간에 굳이 ‘좋다’고 말하지 않아도 됐던 걸까. 새롭게 시작하는 조경가의 시작은 단순히 누군가 그곳에 앉는 것에서 이루어졌던 것은 아닐까. 길이를 알 수 없는 작가와 관객과의 거리는 말하지 않은 일종의 유대관계 속에서 ‘앉아 쉬는’ 행위 위에 이루어지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곳에는 누군가 다시 앉아 쉴 것이다. 카메라 속 그 빈자리는 공명하는 여백처럼 다가왔다. 연결하는 방식은 최초에 어땠는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최초인지도 모르거니와 설사 최초의 부분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속한 큰 줄기의 최후, 끝단이 어디인지 모른다면 아직도 최초의 변화의 와중에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변화하는 방식들은 한낱 잔물결일지 모른다. 다만 무엇이 그것을 있게 했는가에 대한 물음은 계속될 것이기에 보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남기고 다시 생각하는 과정은 무한히 성장할 수 있는 알 수 없는 함수가 있다는 단서다. 마스크의 시대다. 약간씩 떨어져 대면하는 우리는 마스크라는 막으로 한 겹 속에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 간극에서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는 방법을 찾게 될 것이라는 바람을 조심스레 가져본다. 부디 마무리되어 긴 시간 뒤 잠시 여백의 한 순간으로 반추되기를 끊임없이 되뇐다. 유청오 / 조경사진가
    • 유청오 조경사진가blueophoto@naver.com
    • 2020-08-27
  • [미래포럼] 포용도시 시대, 전문가 조경인의 사회적 역할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우리 사회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고령화, 인구·경제 저성장, 기후변화, 신종 바이러스 등으로 생존이 위협을 받고 지식기반산업의 발달로 새로운 4차 산업혁명의 기회가 공존하기도 한다. 기술이 변화하고 시장이 변화하고 소비자의 기호가 변화하고 있다. 전문가의 사회적 역할은 시대정신에 부합하면서 바람직한 미래의 정책을 개발해 제안하고 실현되도록 시민들과 함께 행동하는 것이다. 최근 파리시장 안 이달고(Anne Hidalgo)의 공약을 좋은 사례로 들 수 있다. 안 이달고 파리시장은 최근 ’불평등과 기후, 생태계‘를 연결하는 혁신적인 공약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그녀의 혁신적인 대표 공약 8가지 중 ▲파리 전역 운행속도 30km/h 제한 ▲3대 건설 계획 백지화 및 제3의 숲 조성 ▲주차장 면적 절반 축소 후 정원화 ▲생태기후적 지역도시계획 ▲공공건물 옥상을 파리시민의 식량 농장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새로운 공동체 연대 등 6개의 공약이 조경의 영역이었다. 시대정신에 부합하면서 바람직한 미래의 정책을 제안하고 실현되도록 시민들과 함께 행동하는 파리시장과 시민들이 오히려 전문가 조경인들에게 많은 고민을 주는 사례이다. 이같이 전문가의 사회적 역할 측면에서 조경인들이 주목할 도시정책은 현 정부의 정책 이념이자 가치인 포용도시(The Inclusive City)이다. 포용도시란 우리가 살아갈 도시가 모두가 어떠한 차별도 없이 물리적·정치적·사회적 공간을 공유하고 적절한 도시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모두를 위한 도시’를 의미한다. 그동안 성장사회에서 발생한 양극화·고령화·불평등을 포용도시의 가치와 이념으로 해소하고자 하는 것이다. 포용도시 측면에서 현 정부가 추진하거나 추진할 도시정책들은 ▲그린뉴딜 ▲스마트시티 ▲생활SOC ▲디지털 뉴딜 ▲생물다양성 ▲청년·신혼·저소득층 주택 ▲건강하고 안전한 도시 ▲거버넌스 ▲공동체 주인의 공유자산 ▲도시재생뉴딜 정책 등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이 중에서 전문가로서 조경인은 ▲그린뉴딜 ▲스마트시티 ▲생활SOC ▲도시재생뉴딜 ▲거버넌스 등의 5개 정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그린뉴딜’로 한국사회의 당면과제인 기후변화와 경제적 불평등,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국형 뉴딜의 핵심축으로 추진하는 정책이다. 오는 2025년까지 총 73조4000억 원을 투자해 65만9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1229만 톤의 온실가스 감축을 기대하는 정책이다. 두 번째는 ‘스마트시티’로 도시를 운영하고 서비스하는 데 있어서 효율성을 최대화하고자 사물인터넷이나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공모사업을 비롯한 다양한 사업들을 추진하는 정책이다. 세 번째는 ’생활SOC‘로 일상생활에 필요한 보육시설, 노인복지시설, 응급의료시설, 일반병원, 보건시설, 공공도서관, 체육시설, 공원, 문화시설, 교통시설 등을 복합화해 향후 3년간 30조 원을 투자하는 정책이다. 네 번째는 ‘도시재생뉴딜’로 쇠퇴한 도시를 활성화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고자 5년간 500곳에 50조 원의 재정사업을 투자하는 정책이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는 ‘거버넌스’로 다양한 이해를 갖는 시민들의 협력을 통해 합리적으로 도시를 경영하는 정책으로, 시대 변화에 대응해 반드시 준비할 가장 중요한 정책이다. 이와 같은 포용도시 도시정책에 전문가로서 조경인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예를 들면 ▲시민욕구 파악 및 아카데미 구축 ▲관련 전문가들과 컬레버레이션 및 파트너십 구축 ▲프로그램 개발과 커뮤니티 디자이너 역할 ▲특화공간 제안과 모형 개발 ▲협동조합·사회적경제 등 스타트업 창업 등의 다양한 역할을 찾을 수 있다. 특히 파리의 ‘프롬나드 플랑테’, 뉴욕의 ‘하이라인’, 서울의 ‘서울로7017’ 사례와 같이 시민들이 참여하는 공공 조경 사례를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참여하는 전문가로서의 열정과 지혜가 필요하다. 이재준 / 스마트 포용도시포럼 상임대표
    • 이재준 스마트 포용도시포럼 상임대표
    • 2020-08-25
  • [이슈트리] 감염도시, 조경가의 공원사용법
    코로나19 장기화로 공원의 가치와 역할이 재발견되고 있다. 공원은 19세기 인구 과밀에 따른 위생, 여가 등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개발됐는데, 개발논리에 밀려 도시 인프라로서 우선순위가 밀려 있었다. 그러다 코로나19의 전 세계 확산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본격화되면서 국내외 여러 매체들을 통해 공원의 가치가 재조명됐다. 코로나 이후의 도시를 주제로 다양한 온라인 세미나가 진행되면서 도시 공간구조를 재편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꾸준히 나오는 상황이다. 도시 공간구조 개편과 관련해 다양한 전략이 제시되는 가운데, 생태백신으로서 공원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면 공원은 신체와 정신 건강을 치유해주는 도시 내 유일한 공간이 된다. 집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나마 숨통을 틔어주던 공원마저 폐쇄되면 우울감은 더욱 커질 것이란 우려도 있을 정도다. 뿐만 아니라 공원은 전염병 전파력을 저감하는 완충공간으로서 역할을 한다. 공원을 통해 도시 정화 기능이 올라가고 생태계서비스가 증가하면 전염병 발생을 줄이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선형공원이 전염병 전파력을 저감하는 공간구조로서 유리한 측면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처럼 공원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기, 공원을 만드는 조경가들은 공원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어떻게 이용하는지 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감염된 도시에서 새로운 공원사용법이 하나씩 마련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하면서. “공간과 시간에 머물기” 김연금(50세) 조경작업소 울 소장 5월 긴 연휴가 있기 전, 약수동 동네 친구와 카톡으로 안부를 주고받다 연휴의 하루 동네 공원인 매봉산에서 점심 먹자는 약속을 잡았다. 코로나19가 아니면 여행 약속을 잡았을 게다. 점심으로 먹을 샌드위치와 책 한권을 준비했고, 동네 친구는 자신만의 아지트로 나를 안내했다. 샌드위치를 먹고, 책을 읽고, 주변을 거닐고, 수다를 떨고, 친구의 친구를 만나 또 수다를 떨며, 그곳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머무는 동안 바람의 결, 햇살의 방향, 새 소리가 변화하는 걸 느낄 수 있었고 공간의 작은 부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할 수 있는 것과 감탄할 게 많아 지루하지 않았다. 긴 시간이 공간의 깊이를 더해주고 확장시켜 준 셈이다. 올 봄 코로나19로 많은 이들이 멋진 곳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내던 여행의 관성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장보기 어려울 때 냉장고를 파먹듯 동네를, 동네에 있는 공원을 파먹었을 수밖에 없었고 예상치 못한 공원 이용 레시피를 발견했다. 레시피의 주 재료는 ‘시간’이었다. 여러 공간을 이동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공간에서 시간을 즐기는 방법을 찾았다. 공간과 시간에 머물며 깊이를 갖기, 그게 어떠한 깊이이건 간에.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공원을 대하는 태도이지 않을까 싶다. “자연과 똑같이 대하기” 김지환(37세) 조경작업장 라디오 소장 공원은 인간 활동을 위해 만들어진 공유된 자연이라고 할 수 있다. 공원을 현명하게 이용하는 방법은 우리가 자연을 현명하게 이용하는 방법과 다르지 않다. 다른 것이 하나 있다면 공원은 착하지만, 자연은 늘 착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자연은 가끔 무섭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자연보다는 착하다고 할 수 있는 공원을 아껴야 한다. 공원을 현명하게 이용하는 방법은 자연을 아끼는 실천방안과 같다. 꽃과 나무 꺾지 않기, 쓰레기 버리지 않기, 담배꽁초 버리지 않기, 눈살 찌푸리는 행동하지 않기, 반려동물 관리 잘 하기, 술 마시지 않기, 노상방뇨 금지,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분리수거 잘 하기, 물 아껴 쓰기. “복합용도로 사용하기” 김호윤(42세) 조경설계 호원 대표 포스트 코로나 시대와 함께하는 공원은 이전의 공원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서울과 같은 인구 1000만 이상의 메가시티에 존재하는 공원은 코로나 시대 이전과 이후를 구분하기 어렵다. 도시가 가지는 공원이라는 땅에 대한 개발욕구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으며, 그 양상이 좀 더 세분화되며 집약적으로 변화할 뿐이다. 공간, 땅에 대한 개발욕구는 지속될 것이다. 서울과 같은 도시에서 공원을 공원 하나만의 단일기능으로 이용하는 것에 대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그 기준이 애매하다. 설계가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도시의 모든 대지는 2가지 이상의 복합용도지구로서 이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지상과 지하를 구분해 용도를 한정짓기에는 어려울 수 있으나, 그 기준과 용도에서 공원의 기능이 단순히 바이러스를 피해 사회적 거리를 두기 위한 환기가 잘되는 외부환경으로서 이용되는 것은 이용자가 찾아낸 궁여지책에 불과하다. 기존의 건축물과 구조체 위주의 도시 프레임에 녹지를 인입하고자 부단히 노력했다면, 반대의 시각으로 공원에 자연공원의 구조와 순기능을 최대한 유지하며 지하와 지상을 함께 복합개발 한다면, 지금까지 도시공원이 가지는 몇 가지 기능에 무수히 많은 파생기능과 경관이 발생될 수 있을 듯하다. 공원이 중심문화지구가 되면, 이로 인한 도시구조의 여파는 상당하지 않을까? “집중과 이완 오가는 ‘일상의 문’ 드나들기” 박경탁(42세)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 서울에 소재한 공원은 무려 1400개소가 넘는다. 이 공원들의 반의반에 반도 가보질 못했고 잘 알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수많은 공원들 중 어떤 곳을 가면 좋을지 고민이 되는 사람들에게 알려줄만한 뻔하고 당연한, 하지만 확실히 도움 될 만한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온라인 아이쇼핑을 하듯이 자신이 거주한 지역에 있는 공원에서 예정중인 공원 행사나 프로그램, 이벤트 등을 살피는 것이다. 대부분의 공원들은 불완전한 상태로 세상에 나와서 동시대의 사람들과 그들의 문화에 의해 채워지고 진화해 나간다. 그렇게 살아서 움직이고 변화하는 공간을 사용할 때는 그 공간에 대한 최신의 정보를 미리 잘 살펴볼수록 잘 사용할 수 있는데, 우리는 이미 그러한 정보들을 인터넷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둘째, 온라인 아이쇼핑을 해도 막상 어떤 공원을 가는 것이 좋을지 고민된다면 대형 공원을 우선 찾아보길 권한다. 대형공원에는 그 크기만큼 중소형 공원에 비해 많은 운영·관리 예산이 배정되고 그만큼 많은 볼거리가 있다. 서울의 경우 서울숲, 월드컵공원, 중랑캠핑숲, 북서울꿈의숲, 서서울호수공원, 어린이대공원 등 많은 대형공원이 있다. 그중 주도적인 시민·민간 참여를 위해 구성된 서울숲 컨서번시가 운영하는 서울숲은 특히 볼거리, 즐길거리가 많은 서울의 대표 대형공원 중 하나다. 셋째, 좀 더 풍성한 녹음을 원한다면 대형공원 중에서도 조성된 지 15년 이상 된 오래된 공원을 찾아보라. 공원의 큰 나무와 성숙한 숲은 그 나이만큼 우리들의 일상을 깊이 치유해준다. 넷째, 좀 더 다양한 콘텐츠나 기획 프로그램을 보고 싶다면 비교적 최근에 조성된 복합문화공간들을 살펴보는 것이 좋다. 인터넷에 “서울을 대표하는 잘 생긴 명소, 잘 생겼다 서울”을 검색하면 문화비축기지나 서소문역사공원 등 지난 5년간 서울 곳곳에 문을 연 새로운 명소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다섯째, 요즘처럼 햇볕이 뜨거운 여름이면 한낮보다는 오후 늦게 공원을 이용하는 것이 좋은데, 해질녘 노을은 한강의 공원들에서 가장 멋진 모습으로 감상할 수 있다. 한강과 인접한 어느 공원에서나 한강의 스케일이 주는 개방감과 저녁노을의 아름다움을 함께 느낄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중에서도 노들섬의 서측 잔디마당에서 한강철교의 모습과 함께 바라보는 여의도의 노을 풍경이 한강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장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4월에서 10월 사이라면, 노을을 본 후 여의도한강공원이나 반포한강공원에 있는 서울밤도깨비야시장을 가보는 것도 빼 놓을 수 없다. 공원을 사용하는 행위는 도시 안에서의 우리 삶을 더 도시적으로 만들기도 하고, 때론 도시적 삶에서 우리를 분리시키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명하게 공원을 사용한다는 것은 우리 삶의 집중과 이완을 오가는 ‘일상의 문’을 현명하게 드나드는 행위일 것이다. “도시 내 생태계 연결고리 강화하기” 신준호(39세) 더가든 부장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인간의 활동이 줄어들자 야생동물들이 도심 내 서식지로 돌아오거나 대기환경이 개선되고 있다는 뉴스가 종종 들린다. 이를 두고 코로나19를 ‘자연의 역습’으로 규정하며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긴 하지만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팬데믹을 환경변화의 방법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들은 우리의 도시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의 경험을 교훈으로 삼아 도시 안에 보다 다양한 생물들이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는 생태적인 공간들을 늘려나가야 한다. 특히 소공원, 어린이공원, 근린공원과 같은 생활권공원들은 인간만을 위한 시설의 비중을 줄이고 다양한 생물들의 활동들을 담아낼 수 있는 서식처를 제공함으로써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자연을 느끼고 관찰하며 편안히 사색하고 휴식하는 과정을 통해 치유 받을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가로녹지 또한 녹음 제공을 위한 가로수 식재나 치장을 위한 화단 조성과 같은 단순 기능 위주의 공간에서 벗어나 도시 내 생태계의 연결고리로서 제대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생태적으로 조성된 공간들은 제초나 전정 등의 유지관리를 위해 한 번에 많은 인력을 투입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이용자뿐만 아니라 관리자들의 안전까지 고려한 공간이 될 수 있다. “혼공원족 되기” 이형석(44세) 본시구도 소장 코로나19의 피난처로서 공원의 역할에 대해선 고민이 많은 부분이기도 하다. 전국 각종 야외축제들이 취소되고 있다. 의료전문가에 의하면, 조깅 등의 운동 시에 기존 1m에서 3~4m까지 늘어나는 비말 전파 거리를 감안해 최소 4m 이상 거리 두기 등이 필요하다고 한다. 집단 감염을 막기 위한 고뇌가 보인다. 전파경로에 대한 아직 명확한 연구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조경가가 공원을 적극적으로 누리라고 말을 하기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실내보단 야외에서 생활 속 거리두기를 지키면서 활동한다면 상식선에서 조금 낫지 않겠나 하는 전망을 할 수 있다. 공원에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은 많지만, 무엇보다 안전이 우선이기에 감염된 도시에서 공원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시공간적으로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 가지 않기, 사람과 사람 사이 거리두기, 소독된 공원시설 이용하기 등을 고려하면, 사실상 조용한 공원에서 가급적 홀로 즐기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이른 새벽 한적한 산책로의 조깅이나 자전거타기, 야외운동기구 등을 활용한 체육활동 등이 있을 수 있겠다.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혼밥, 혼술, 혼행 등 1인 문화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코로나 시대의 공원은 혼공원족(?)이 유행하지 않을까 싶다. 공원에서 홀로 즐기는 방법을 터득하기가 지금 이 시기에서 제일 필요하다. 홀로 즐기되 마음은 따뜻하게 공원을 거니는 사람에게 따뜻한 눈웃음으로 소통해보자. 혼자 뭔가를 즐기는 것이 어색한 사람에겐 여간 곤욕이 아닐 수 없다. 어서 빨리 혼자하든 함께하든 모두가 함께 즐기던 공원으로 되돌아가길 바랄 뿐이다. “다기능의 작은 방으로 쪼개기” 정성희(32세) 식물공방 대표 공원을 구성하는 물리적, 기능적 요소들은 대부분 ‘공유되어 사용된다’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진다. 동선에서부터 휴식, 운동, 놀이를 위한 공간들, 공중화장실, 편의시설 등의 기능은 공간에 할당되고, 그 공간들이 모여 하나의 공원 공간이 완성된다. 즉 같은 기능을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공간 공유는 필연적이다. 감염된 도시에서의 공원 사용을 위해 중요한 것은 세 가지로 보인다. 동시에 공유되는 공간의 최소화, 거리 두기가 가능한 개인 공간의 확보, 동선 분리와 동선에서의 거리감 확보가 그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요소들을 우선시해서 공원의 공간을 구성하면 어떤 모습일까? 공유되는 공원의 넓은 공간(single large space)에서 벗어나 감염된 도시에서의 개인적 공간(Several small space)이 확보되는 공원에 대해 가볍게 상상해 보았다. 현재의 공원은 하나의 넓은 공간이 동시에 공유되고 있다. 그 공간을 여러 개로 작게 쪼개 공유되는 공간을 최소로 하고 개인, 혹은 한 팀이 돌아가며 공간을 향유할 수 있는 방법이다. 브루클린의 도미노공원에서 한정된 원형띠 안에서 각자의 공간을 향유하듯 개인, 또는 한 팀이 머무르는 공간, 그 주변의 버퍼존, 그리고 동선으로 구성되며 1평 남짓한 ‘방’ 공간에서는 휴식, 피크닉, 장기두기, 운동 등 원하는 프로그램으로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 방을 둘러싼 버퍼존은 1.5m 남짓한 폭으로 아이들이 뛰어놀거나, 스케이트 타기, 러닝 등 활동적인 기능을 수용할 수 있다. 공유를 전제로 만들어진 큰 공간이 소수를 위한 다기능의 작은 공간 여러 개로 분할되는 것이다. 벽과 천장은 없지만, 공원의 부분들이 마치 ‘방’ 개념으로 이용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시간차로, 거리두고, 개인소품 사용하기” 조용준(41세) CA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공원은 어떻게 변할까? 기존의 공원과 많이 다를까? 도심에서의 오픈스페이스의 중요성이 늘어나겠지만, 기존 공원의 모습과 크게 달라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 유행 이전에도 뉴욕의 센트럴 파크나(Central park), 브라이언트 파크(Bryant park) 그 외 많은 공공장소에서는 적절한 사회적 거리를 두고 사용해 왔다. 사회적 거리에 대한 이야기는 1960년대 환경심리학에서 제시되어 공원계획에 있어 주요한 인자 중에 하나로 여겨져 왔다. 따라서 코로나 19에 대한 대응으로 공원의 새로운 디자인을 제시하기 보다는, 현재 조성된 공원을 모두가 안전하고 재미있게 사용할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는 공원 운영 및 사용의 문제이며, 시민들의 자율에 맡겨진 몇 가지 규칙일 수 있다. 이용객이 붐비는 시간대를 피해 이른 새벽, 또는 늦은 저녁에 공원을 이용해보자. 늦은 오후 이미 꽉 들어찬 공원 카페, 잔디마당 내 그늘진 자리, 놀이터와 북적거리는 공원화장실은 ‘서울의 공원이 여기 밖에 없나’ 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 시간대 어느 공원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다른 시간대에 공원을 방문한다면, 같은 장소라도 다른 풍경을 경험할 수 있으며, 다른 방식으로 공원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한낮에 그늘을 피해 쉼터로 사용했던 공원은 이른 새벽 조깅과 산책코스로, 한밤의 야경 데이트 코스로 사용될 수 있다. 시간대를 달리 해 공원을 즐겨보자. 모든 사람이 거리에 대한 척도에 익숙하지는 않다. 공간에 대한 감각이 떨어지는 이들에게 거리두기는 까다로운 이야기일지 모른다. 2m 안전거리 띠를 만들어 공원관리소에서 제공하는 것은 어떨까? ‘너와 나의 연결고리가 아닌, 너와 나의 안전거리’와 같은 힙한 문구도 한번 넣어보자. 또는 공원 홍보, 캠페인 문구로도 활용할 수 있다. 재미있게 디자인 된다면, 아이들에게는 놀이와 교육의 아이템이 될 것이다. 잔디밭에 누워 키 재기, 멀리뛰기, 2m 간격으로 앉아 안전띠 돌리기, 2m 거리 맞추기, 안전띠 줄다리기 등. 공원 내 이동형 의자와 테이블을 적극적으로 보급 활용하자. 뉴욕의 브라이언트 파크는 자기가 원하는 곳에 의자와 테이블을 세팅할 수 있다. 적정한 거리를 두며 개인의 사적공간을 이용자가 직접 만든다. 그래서 이용자들의 휴식 패턴이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이 또한 재미있는 볼거리가 된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누군가가 사용했던 공원의 철봉을 사용하기 겁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공원 내에는 철봉, 허리 돌리기 등 다양한 운동기구 외에도 아이들이 사용하는 놀이시설, 앉아서 쉴 수 있는 여러 휴게시설들이 있다. 모처럼 나온 야외에서 안전하게 즐기고 싶다면, 개인 장갑을 휴대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마스크와 장갑으로 안전한 공원 패션을 만들어보자.
    • 이형주jeremy28@naver.com
    • 2020-08-22
  • [미래포럼] 조경산업계, 믿음 없는 시장에 과연 미래가 있는가?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올해 초 돌발적으로 발생한 코로나 사태, 그 이전부터 계속된 국내 건설경기 부진 등 어찌할 수 없는 여러 문제들이 쌓였다. 당장 우리 손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외부 환경을 제외하고 과연 우리 조경산업계가 미래에도 성장할 수 있는 방향성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 조경자재나 토목자재 시장은 오로지 가격으로만 승부하는 행태가 10년 전부터 만연해 오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오랜 시간동안 새로운 시장 및 트렌드를 구축한 시장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 오직 가격을 만족시키기 위한 저급품의 자재들만 살아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이에 몸담고 있는 발주처, 설계사, 감리 등 전문가 단체들의 방임 및 무시에서 기인함이다. 이 글이 우리 조경산업계의 어두운 부분을 밝혀 반성하고, 미래지향적인 선진형 환경을 구축하는 작은 등불이 되길 바란다. 문제의 원인 문제의 원인은 시장의 변화를 법과 제도가 충분히 따라오지 못하고 또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전문성과 경험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필요로 하는 제품의 품질을 잘 모른 채 가격 정보에 의존해 물건을 구입한다. 이것은 자재 시장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조경을 위해 자재를 선택할 때 사람들은 그 조경자재에 관해 충분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 여러 제품을 취급해야하기 때문에 가격을 기준으로 삼게 될 수밖에 없다. 이런 가격이 주는 정보 외에 품질에 관한 신뢰를 줄 수 있는 것이 인증제도다. 하지만 현재 자재시장은 KS, 환경, 신기술 등 제반 인증에 따른 기준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기준대로 제조되지 않아서 문제가 많다. 신호등이 도로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전해주는 것처럼 법과 제도의 산물인 인증제도 역시 마찬가지로 자재시장 참여자에게 올바른 정보를 전해주도록 해야 한다. 선진국은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도로에서도 빨간불이 들어서면 반드시 차량이 선다. 그렇기에 보행자가 안전하게 신호등만 믿고 도로를 건널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자재시장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시장에 참여하는 모든 기업들은 경쟁이 아무리 치열해도 각국의 국가기준을 준수한다. 하지만 우리 자재 시장에서는 가격경쟁이 치열하다는 이유로 기준조차 만족하지 못하는 제품들이 시장에 공급된다. 그러다보니 당장에는 선택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시장에서 퇴출당하게 되고 나아가 그런 불신이 기 형성된 시장을 고사시키며 다른 자재로 대체되는 결과로 나아가게 된다. 과거의 예를 보면 콘크리트 경계석이 동파 등 품질불량으로 인해 시장에서 퇴출되고 석재 경계석으로 대체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사실상 불량제품을 걸러주는 인증시스템이 마비된 상황이다. 선진국과 우리는 무엇이 다른가 “태산은 한줌의 흙도 사양하지 않고 바다는 작은 물줄기라도 가리지 않는다”[泰山不辭土壤(태산불사토양) 河海不擇細流(하해불택세류)]라는 유명한 고사성어가 있다. 이 말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으니 무조건 다 받아들이기만 하면 크고 높아질 수 있다는 말로 자주 오용된다. 실제로는 전혀 다른 말이다. 선진국의 경우 법과 제도가 사람들이 지킬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것으로 구성된다. 인증도 마찬가지여서 이것이 일단 만들어지면 선진국의 기업들은 그것을 어떤 상황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지킨다. 그렇게 검증과정과 인증을 쌓아 올렸기에 선진국이 태산이 되고 황하가 된 것이다. 우리의 기업들은 인증제도를 통과만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에게 중요한 것은 인증이 아니다. 그 인증의 신뢰가 중요한 것이다. 제도를 악용하고 기준을 중시하지 않은 채 인증만 잔뜩 받아 그것을 영업으로 활용하는 지금, 소비자가 우리를 믿을 수 있는가? 믿음이 없는 시장에 과연 미래가 있는가? 높은 기준에 맞춰 멀리 봐야 현재 정책에 반영되고 있는 여론을 살펴보면 국민들은 이미 친환경자재, 기능성자재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만큼 생태환경과 기능성 등에 대한 수준이 높아졌다는 뜻이다. 자재시장의 기준과 수준도 그런 눈높이를 따라 가야하는데 가격에만 집중하다보니 기술이나 노하우가 축적되지 못하고 눈속임과 요령만 난무하고 있다. 미래를 바라보기 위해 인증제도를 손보고 시장 질서를 바로 잡아야 한다. 현재의 인증제도 중 일부 분야는 인증이 너무 많으니 제대로 검증할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처음 인증을 통과하느냐 마느냐에 중심을 둘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인증을 받는 회사들도 그 점을 악용해 1회성 통과에만 목을 매고 통과한 뒤에는 이전으로 돌아가기 일쑤다. 187개의 법정인증제도와 민간인증제도가 수없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좀처럼 선진화되지 못하고 있다. 시장참여자들이 중심이 돼 불필요하고 중복된 인증은 없애고 꼭 필요한 인증은 계속해서 검증을 받는 쪽으로 개선해 나가야 한다. ISO인증이 왜 표준의 대명사가 되었는가. 1회성 표준이 아니라 계속해서 검증하고 재인증하고 그 기준을 준수하는지 확인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살아있는 시장의 인증이 된 것이고 작동하는 신호등이 되는 것이다. 조경산업 관련 인증제도도 높은 기준으로 1회성 통과에 중점을 둘 것이 아니라 지속될 수 있는 인증제도를 중점으로 시장을 개선해나가야 한다. 우리는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알지만 비록 유한한 삶일지라도 무한한 세상에 보다 특별한 가치를 남기길 바란다. 그런 무한한 가치를 기업도 꿈꾸고 국가도 꿈꾸고 심지어는 하루살이도 그런 꿈을 꾼다. 비록 나라는 한 사람은 죽을지 몰라도 그 뜻을 이어 세상을 보다 가치있게 할 사람이 계속해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조경산업계도 앞서 그런 꿈을 꾼 사람들의 노력과 헌신으로 이런 가치와 기술이 축적돼 시장이 형성돼왔다. 이런 현실에서 과연 조경산업계는 앞으로도 축적이 지속돼 시장이 확장될 수 있을 것인가? 조경산업계도 품질을 높여야 한다. 그래야만 선택받을 수 있고 미래가 있을 수 있다. 한용택 / 이노블록 대표이사
    • 한용택 대표hanyt49@inoblock.com
    • 2020-08-16
  • [유청오의 핀테스트] 라면과 사진
    나는 맛은 잘 본다. 말 그대로 싱거운지 조미료가 많은지 비린지 텁텁한지 시큼한지 누릿한지를 들어간 재료와 함께 곧잘 알아맞힌다. 평생 차려진 밥상을 먹어온 탓인데 이쯤 되면 온갖 비난이 쏟아져도 도리가 없다. 그래도 아주 가끔은 도전정신을 발휘해 몇 가지 차려 먹는다. 하지만 말 그대로인 도전은 쟁취하기 쉽지 않다. 어설픈 손놀림으로 벌여진 것들(?)을 버리기 아까워 꾸역꾸역 삼키게 된다. 누군가의 말대로 입이 아니라 받아먹는 ‘주둥이’다. 혼자 있을 때 만만한 것이 인스턴트식품이라 이것저것 해봐도 역시 라면만한 것이 없다. 대파가 약간 있으면 좋고 계란은 더욱 좋다. 물은 눈대중으로 조절하는데 너무 적다고 판단되는 정도가 적당하다. 자박하게 밥을 말아 먹을 생각이다. 인스턴트는 짜고 단맛이 좀 과해야 맛있다. 특히 배고플 때는. 그 이후의 과정은 모두 적당하게 하면 된다. 적당히 끓었을 때 스프와 면을 넣고 적당히 보글거리다가 면 색이 밀가루 빛을 살짝 잃었을 때 불을 끄고 먹으면 된다. 덜어서 먹든지 냄비채로 먹던지 상관없다. 야외에서 일을 보다가 출출하면 생각나는 것이 라면이다. 입맛은 없는데 끼니를 위한 의무감이 들었을 때 라면과 밥 한 공기는 아주 적절하다. 다만 늘 분식집 라면은 왜 내가 끓인 것과 다른 맛이 나는가에 대한 의문은 남아있었다. 재료가 다른 것일까. 아니면 불 맛이 다른 것일까. 아니면 분식집 인테리어가 달라서 그럴까. 비밀의 열쇠는 끝내 얻지 못했다. 사람 손으로 비슷한 용기에 같은 재료를 넣은 라면의 맛이 왜 다른가 말이다. 미스터리다. “사진은 별것 없잖아요. 그냥 누르면 되니” 별안간 들은 이 말에 엉뚱하게도 라면이 생각났다. 말 그대로 조리예시 대로 끓이면 되는 라면처럼 정해진 대로 누르면 찍히는 사진 아니냐는 소리다. 한편으로는 맞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른 음식은 한 번도 맛본 적 없이 한평생 라면만 먹어온 사람과 대화하는 듯한 답답함은 반박의 의지를 지워버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사진을 찍는다. 카메라가 가리키는 대로 찍기도 하고 터치 몇 번으로 변하는 컬러에 질감에 감탄하기도 하고 확대 했다가 드넓게 파노라마로 찍기도 한다. 그것은 분명 자신의 사진이다. ‘내’가 찍은 사진이니까. 그러니 본인이 끓인 라면이 가장 맛있다고 하면 대놓고 할 말이 없다. “제가 가본 분식집 라면은 드셔보셨어요?” 라고 되묻고 싶지만 속으로 삼킬 뿐이다. 분명 -내가 느꼈던 분식집 라면처럼- 프로 사진가는 사진의 다른 맛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사진을 업으로 하는 사람의 몫일지도 모른다. 입맛에 맞도록 조리예시 대로 찍을 수도 있고 자극적인 맛으로 승부할 수도 있다. 맛있는 요리는 맛뿐만 아니라 분위기처럼 숨은 이야기가 있다. 사진도 한 장에 이야기가 존재해야 한다. 이야기가 있는 사진 한 장에서 사람들은 공감하고 감동하고 소통한다. 때로는 정성들인 사진일지라도 보는 이에게 별것 아닐 수도 있다. 음식점의 음식을 평가할 때 냄비며 각종 조리도구는 무엇을 썼는지 가게 인테리어는 어떤 재료와 테마를 적용했는지로 평가할 수도 있고 플레이팅으로 혹은 주방장의 생김새로 평가할 수도 있다. 다만 “입에 들어가는게 다 똑같지 뭐”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설득의 여지가 없다. 조경사진 촬영에서도 마찬가지다. 식물의 생김은 어떠한지 설계 시공자의 생각은 어땠는지, 시설물의 생김은 어떤지, 빛의 방향은 어떤지, 바닥의 패턴은 어떤지, 그리고 촬영해야 하는 포인트는 어떤지 등 무수히 많은 판단과정을 거쳐서 그저 ‘누르는’ 것이다. 음식재료를 고르듯 카메라의 기종을 선택하고 탁월한 맛을 내기 위해 렌즈를 선택하고 나아가 필터를 덧댄다. 그리고는 끓여내듯이 셔터스피드와 조리개를 정성스럽게 조절하다보면 음식이 익어가듯 셔터버튼을 누르는 것이다. 단지 누른다고 끝나지 않는다. 플레이팅을 하듯이 암실작업으로 하나하나 골라 밝혀내고 지워내고 컬러를 덧대어야 완성으로 나아간다. 얼마나 큰 크기의 접시에 담을지 고민 하듯이 내어 걸을 곳을 감안해서 출력한다. 오직 사진을 맛보고 음미할 누군가를 위한 한 장의 사진을 위한 과정이다. 손님을 모시듯 모든 과정에서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쉬운 음식은 라면이라는 등식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누구나 끓일 수 있다. 그러나 누가 끓이느냐 어디에서 끓이느냐 무엇으로 끓이느냐에 달려있지 않을까. 그러나 오해하지 마시라. 사진가는 라면이 아니라 요리를 만드는 사람이다. 유청오 / 조경사진가
    • 유청오 조경사진가blueophoto@naver.com
    • 2020-08-05
  • [미래포럼] 조경, 참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대학에서는 매년 겨울 어김없이 신입생 면접시험이 치러진다. 초보 교수는 약 10분의 면접에 차출되어 간다. 얼마 전 면접자였던 초보 교수는 면접원이 되어 면접장으로 들어선다. 서류를 살펴보던 중 교복 차림의 학생이 들어온다. 무릎 위 가지런히 올린 떨리는 손을 바라보며, 동병상련의 유대감을 느낀 초보 교수는 ‘가벼운’ 질문을 던진다. “조경학과는 어떻게 선택하게 되었어요?” 예상했던 질문에 밝아진 얼굴의 학생은 준비해온 ‘정답’을 말하고, 초보 교수는 곧 혼란에 빠진다. 내가 알고 있는 조경과 그들의 조경, 내가 배워온 조경과 그들이 배우고 싶은 조경, 내가 바라는 조경과 그들이 바라는 조경이 너무나 다르기에. 반나절 그들과 어울리다 착잡한 마음을 달래려 즐겨찾기에 갈무리된 웹페이지에서 ‘조경’을 검색한다. 모니터 위로 조경나라 언어의 향연이 펼쳐진다. ‘아름답고 유용하고 건강한 환경을 형성하기 위해 인문적·과학적 지식을 응용하여 토지와 경관을 계획·설계·조성·관리하는 문화적 행위’라는 조경에 반나절 잠시 ‘비전문가’의 마음이 되어봤던 초보 교수는 현기증을 느낀다. 신입생을 대하는 초보 교수만 느끼는 감정일까? 각종 심의에서 그래도 조경을 이해한다 생각했던 인접분야 전문가들의 “위원님은 조경이나 말하세요!”에 황망함을 느낀다. 그럼 조경이 뭐예요? 누구나 고급 정보에 접근이 가능해지면서 지식을 특권화 했던 전문가의 권위가 실종되고, 추락한 전문가에게 미디어 시장은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대중이 필요로 하는 전문 지식의 참 의미를 선별하여 전달하는 ‘지식 소매상’, 어려운 지식을 일상의 언어로 지식과 대중을 잇는 ‘지식 커뮤니케이터’의 역할이다. 권위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기존보다 쉽고 재미있게 정보를 전달하는 전문가들이 예능형 교양 방송에 얼굴을 자주 내비치고 있다. 덕분에 얼마 전만 해도 외계어였던 뇌과학, 양자역학, 범죄심리학은 이제 다소 친근감마저 느껴진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어떤 분야보다 대중에게 많이 노출된, 친 대중적이어야 할 조경은 현재의 교양 프로그램의 콘텐츠로 소비되지 못하고 있다. 공원과 정원을 좋아하고 요구하는 대중의 목소리에 비해, 그것이 조경가의 손을 거친 것임을 알고 있는 사람은 우리 기대만큼 되지 않는다. 조경 알리기 운동이 몇 년 전부터 이어졌음에도, 아직 조경 대중화는 우리 안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유튜브에 조경을 검색하면 알고리즘은 곧 ‘극한직업! 전원주택 조경’과 ‘조경으로 월 4천만 원 버는 조경의 달인’을 추천한다. 팽수가 소개하는 ‘꿈의 조경’은 2% 아쉽고, 국내 최초 가드닝 예능을 표방한 <가드닝 프로젝트, 꽃밭에서>는 조경계의 큰 기대와 달리 6회로 종영하였다. 그렇다고 깜짝 스타, 혹은 동방의 귀인이 등장하여 조경 알리기를 이끌어주길 바라는 것도 요원하다. 인접 분야인 건축과 도시를 바라본다. 그들은 출판하면 베스트셀러, 출연하면 시청률 보장인 친 대중적 지식인을 어떻게 가지게 되었을까? 공공의 영역과 대중을 대하면서 나름의 영역확보를 위해 오랜 기간 시행착오를 통해 생산된 결과물이 아닐까 한다. 도시공원일몰제, 도시숲법, 한국판 뉴딜 등, 시대는 조경의 영역과 역할에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국민 여론이 정책의 최종 잣대가 되는 대의민주주의 국가 한국에서 아직은 서툰 조경의 친 대중 행보는 아쉽기만 하다. ‘참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라는 광고 속 사장님처럼, 발만 동동 구를 일은 아니다. 우리의 좋은 점, 그 문화적 행위를 대중을 향한 안목과 언어로 훈련이 된 ‘지식 소매상’ 조경가가 필요하다. 전문가의 지위에서 비전문가 대중을 일상에서 만나기는 힘들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찾아갈 수 있는 자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학교, 지자체 문화원, 도서관, 박물관, 백화점 문화센터 등, ‘교양’ 강좌는 조경을 알리려, 또는 훈련을 위한 좋은 시작이 될 수 있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대학에 현재 개설된 조경 관련 교양강좌는 필자가 5학기째 강의 중인 ‘도시환경과 조경’이 유일하다. 반면 세계도시건축의이해, 영화로보는도시건축, 현대건축명작의이해, 글로벌도시와창의적리더, 커뮤니티디자인 등 인접 전문분야에서는 다양하고 재미있는 주제로 교양강좌가 개설되고 있다. 물론 타학과 학생, 비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교양강좌에 생각지도 못한 어려움이 따르기도 한다. 먼저 우리 안에 당연한 것을 그들의 언어로 풀어내야 한다. 그렇다고 교과서로 삼을만한 조경 대중서는 찾기 힘들다. 강의 내용은 단상 앞의 학생들에게 노골적으로 전달이 되고, 그들의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뼈아픈 강의평이 실시간 게시된다. 그렇기에 더욱 대학 교양강의는 조경 지식 커뮤니케이터 양성의 유격훈련장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현재 약 50여 개의 4년 및 2년제 조경학과가 전국에 분포한다. 각 대학마다 조경 교양강좌가 개설되고, 매 학기 40-50명의 학생이 수강한다면, 어림잡아 매년 2,000여 명 정도의 조경 우군이 생기는 것은 덤이라 하겠다. 해를 거듭하면서 예약이 조기에 마감될 정도로 반응이 뜨거운 서울시의 ‘어린이 조경학교’와 ‘시민조경아카데미’, 전국 지자체의 ‘시민정원사’ 등 교양으로서 조경의 가능성은 어느 정도 증명되었다. 작년 첫 번째 시즌이 종료된 젊은 조경가들이 만들어간 팟캐스트 <꽃길사이>, 조금씩 증가하는 조경 관련 유튜브 채널 등 공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뉴미디어에서도 교양있는 조경의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 모두 조경의 저변 확대는 물론, 대중과 공감대를 나누는 조경가, 조경 지식 커뮤니케이터 양성의 좋은 토양이 될 것이다. 최근 학령인구 감소로 소위 비인기학과의 통폐합 소식이 줄을 잇고 있다. 이들 중 다수의 학과가 자연소멸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조경이 소멸되지 않기 위해서, 조경이 대중에게 지지받는 전문분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조경지식 커뮤니케이터로서의 조경전문가가 필요하다. 정해준 / 계명대학교 교수
    • 정해준 교수 hj.jung@kmu.ac.kr
    • 2020-07-28
  • [조경논단] 안과 밖의 경계, 발코니 이야기
    2020년 ‘COVID-19’의 등장은 우리의 일상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비대면, 비접촉’의 이슈가 사회 시스템 전반에 걸쳐 적용되고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이 이어지면서, 사람들은 그 전보다 늘어난 여가 시간에 외부 공간으로 더 많이 나가게 됐다. 그러다 보니 공원, 녹지를 포함한 도시 내 공공 외부 공간에 대한 가치도 이전보다 더 크게 조명받고 있고, 동시에 베란다, 발코니, 테라스, 옥상과 같은 개인 주거 공간에서의 외부 공간에 대한 인식과 그러한 공간의 소비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특히 발코니는 전 세계적으로 이러한 변화의 최전선에서 코로나 전쟁을 밝고 쾌활하게 변화시키는 무대가 되고 있다. 2020년 발코니 풍경 코로나 확산세가 심각했던 이탈리아에서는 지난 3월 9일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가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4월 3일까지 보름간 전국에 이동 제한령이라는 특단의 대책을 내놨었다. 그러자 집 안에만 갇혀있던 이탈리아 시민들이 발코니로 나와 소통을 시작했다. 아파트 이웃들끼리 식사 전, 또는 아침 시간에 발코니에 서서 차례로 노래하거나 프라이팬과 같은 식기를 두드리고 함성을 지르는 등의 플래시 몹을 통해 서로를 격려했다. 이러한 모습은 유튜브 동영상 등을 통해 세계로 퍼졌고, 한국에서도 곳곳에서 지역주민들의 주도하에 ‘발코니 음악회’가 열렸다. 이러한 유행을 반영하듯 지난 6월 20일 JTBC ‘비긴어게인 코리아’에서는 버스킹 멤버들이 베란다 버스킹에 도전하는 모습이 방송되기도 했다. 발코니는 이 외에도 코로나가 바꾸어 놓은 여러 가지 새로운 도시풍경들의 주 무대가 되고 있다. 독일, 브라질, 프랑스를 비롯한 몇몇 나라들에서는 거의 모든 영화관이 문을 닫은 가운데, 공동주택 앞 오픈스페이스에 대형스크린을 설치하고 발코니에서 영화를 감상할 수 있게 하는, 이른바 ‘발코니 영화관‘이 등장했고, 이동통제령이 내려진 미국 스페인, 이스라엘, 레바논 등에선 밀폐된 실내 결혼식장이 아닌 발코니, 옥상 등에서 진행하는 ‘발코니 결혼식’이 각광받고 있다. 마르코 로시라는 밀라노의 한 엔지니어는 발코니에서 탱고를 추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올려 유명해지기도 했다. 바야흐로 발코니 풍경이 새롭고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해서 우리의 삶 속으로 귀환한 것이다. 한국에서의 발코니 한국에서는 1960년대에 처음 발코니가 선보였고, 2000년대 초반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초기의 발코니는 실내가 아니라 건물의 돌출된 야외 공간이었는데, 단열공사도 발코니 안쪽 벽을 기준으로 이뤄져서 발코니와 외부를 경계짓는 외벽에는 단열공사가 안 돼 있었다. 하지만 단독부터 아파트까지 섀시를 씌워서 실내 공간을 확장하는 것이 유행하면서, 공동주택이라는 주거공간에서 유일한 외부 공간이었던 발코니는 실내로 편입됐고, 빨래를 널거나 삼겹살을 굽고 너저분한 잡동사니를 감추는 보조 공간으로 사용됐다. 아파트가 생기기 전 한옥이나 양옥에서 생활할 때 이용됐던 마당이나 뒤뜰, 부뚜막, 창고 등의 역할이 발코니로 옮겨간 것이다. 우리가 흔히 베란다라고 부르는 공간이 사실은 이 발코니인데 베란다와 발코니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발코니는 ‘거실을 연장하기 위해 밖으로 돌출시켜 만든 공간’을 말한다. 일반 아파트나 빌라의 거실에 붙어 있는 공간은 모두 발코니인 것이다. 반면 베란다는 아래층과 위층의 면적 차이로 생긴 공간을 뜻한다. 위층 면적이 아래층보다 작으면 아래층의 지붕 위가 위층의 베란다가 되는 셈이다. 2층짜리 단독주택에서는 흔히 베란다를 볼 수 있지만 일반 아파트는 계단형으로 설계되지 않는 이상 베란다 공간을 만들 수 없다. 우리가 가끔 발코니나 베란다와 혼동해서 사용하는 단어인 테라스는 또 다른 공간이다. 테라스는 실내 바닥 높이보다 20cm 가량 낮은 곳에 전용정원 형태로 만든 공간으로, 지붕이 없이 일반 땅 위에 조성해야 한다. 발코니의 귀환 바깥을 내려다보는 삶의 여유를 표방하며 현대화된 서구식 생활양식이자 외부 공간의 한 형태로 아파트에 처음 도입됐던 발코니는 한때 건축물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완충공간이자 창고의 개념으로 사용됐다가 발코니 확장을 하는 세대가 많아지면서 근래에는 그 모습을 볼 수 있는 경우가 드물어졌다. 하지만 발코니를 거실로 활용하면 생활공간을 더 넓게 쓸 수 있는 장점은 있지만, 단열에 취약할 수 있고 주거공간에 적용이 가능한 다양한 외부 공간 프로그램들을 도입할 기회가 사라지는 단점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에는 발코니 확장 대신에 폴딩도어를 설치해 발코니를 다른 공간으로 활용하는 집들도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발코니 쪽의 뷰가 좋은 경우에는 뷰를 감상할 수 있도록 티 테이블과 의자를 배치하고 화분이나 기타 악세사리 등의 소품을 두어 홈카페를 만들기도 하고, 하얗게 칠한 발코니 벽에 투사할 빔 프로젝트를 설치하고 푹신한 빈백(bean bag)을 두어 저녁 시간에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홈 시네마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 발코니 쪽의 뷰가 좋지 않은 경우에는 좋지 않은 뷰를 가리면서 동시에 식물을 가꾸고 감상할 수 있는 발코니 정원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이 밖에도 발코니 캠핑장, 발코니 텃밭 등 발코니를 다양한 공간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이러한 변화의 이유는 좀 더 나은 삶의 질과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발코니가 – 주변 경관을 조망할 수 있고, 자연광을 받을 수 있으며, 동시에 실내 공간과 연결돼 있는 – 주거공간 내에서의 유일한 준외부 공간(semi-outdoor space)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코로나가 바꾸어 놓은 일상 속에서 발코니가 소통의 무대로 등장하며 재조명받게 된 것도 발코니가 가진 이러한 태생적 구조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진행형인 발코니의 귀환은 우리가 살고 있는 주거 공간 내에서의 외부 공간에 대한 인식과 그러한 공간의 소비방식에 대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고, 나아가 앞으로 변화할 주거 및 도시공간구조에 대한 고민의 필요성을 알리고 있다. Y씨의 1제곱미터 발코니 정원 이야기 성수동에 살고 있는 Y씨의 1제곱미터 발코니 정원은 발코니 공간의 개인적 활용을 넘어 이웃과 동네에 기분 좋은 변화를 가져다 준 의미 있는 사례이다. Y씨가 처음 이곳으로 이사 왔을 때 6층의 발코니 밖으로 보이는 동네의 모습은 다세대 주택 옥상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삭막한 모습이었고 Y씨는 남편과 함께 발코니에 정원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폭 0.4m 길이 2.5m 인 넓이 1제곱미터 발코니 공간은 작지만 오히려 풍성한 정원을 만들기에 충분한 공간이었다. 상대적으로 키가 큰 꽃사과, 블루베리, 남천 등이 시각적 프레임을 만들고 그 아래로 만병초, 모란, 수국, 치자 등의 꽃나무와 억새, 부처꽃, 기린초, 돌단풍, 무스카리 등의 지피 초화가 다층의 정원 모습을 만들어 냈고, 동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 작은 발코니 정원을 올려다보는 일이 잦아졌다. 어느 날 아침, 한 참새 가족이 이 정원을 방문하면서 1제곱미터 발코니 정원에도 변화가 시작됐다. Y씨는 참새들을 위한 먹이와 간식 그리고 새집을 정성스레 마련했고, 블루베리가 열매를 맺으면서 참새 외에도 박새, 맷비둘기, 직박구리 등 더 많은 새들이 몰려들었다. Y씨는 새들 중에서도 특히 참새가족을 사랑했다. 새벽부터 찾아와 해가 질 때까지 놀다 가는 참새들을 위해 음악을 틀어주고 물을 마실 수 있게 태양열 분수를 준비했다. 하지만 참새가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위험도 찾아왔다. 몰려있는 참새들을 발견하고 맹금류인 황조롱이가 사냥을 한 것이다. Y씨는 참새들을 위해 정원의 식재 구조를 바꾸었다. 발코니의 난간 살 사이로 참새들은 들어올 수 있게 하되 덩치가 큰 황조롱이나 다른 맹금류들이 하늘에서 바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키 작은 백송으로 가시보호막을 만들고 참새들이 숨기 좋도록 밀도가 높은 상록성 식물들을 추가했다. 그 이후 또 다시 사냥을 하러온 황조롱이가 정원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발코니 끝에 앉아서 거실에 있던 Y씨를 향해 한참을 노려보다 갔었던 일을 Y씨는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 1제곱미터 남짓한 발코니 정원은 Y씨의 정성과 함께 어느새 그야말로 참새들을 위한 테마파크로 변신했다. 동네에는 새소리가 울려 퍼졌고 언제가부터는 삭막해 보였던 다세대 주택 옥상과 골목길에 하나 둘 정원과 화분이 생기기 시작했다. 1제곱미터의 작은 발코니 정원이 새들을 불러오고, 동네의 모습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새들은 동네 곳곳에 만들어진 정원들을 오가며 즐거워했고, 사람들도 그렇게 변화하고 있는 동네의 모습을 반가워하며 정원관리를 위해 옥상을 오르내리는 일이 잦아졌다. 작은 발코니 공간이 변화시킨 것은 눈에 보이는 동네의 모습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박경탁 /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
    • 박경탁 소장gyoungtakpark@gmail.com
    • 2020-07-07
  • [유청오의 핀테스트] 첫 번째 대화
    낯선 클라이언트와 마주한 낯선 공간에 공명하는 소리가 있다. “이곳은 이렇습니다. 아시겠죠? 잘 부탁드립니다.” 낯선 소리다.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원망하고 있지만 때는 늦었다. 돌아선 발걸음이 심란함에 타박이다 울렁인다.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일정 수준의 정보만으로 낯선 공간을 마주할 때, 제아무리 수많은 곳을 찍어온 사진가라고 해도 선뜻 셔터가 눌러지지 않는다. 이것은 흡사 관상쟁이와 마주한 어떤 이가 자신의 인생을 단번에 맞출 심산으로 기대를 갖는 것과 같다. 하지만 마주한 낯설음은 단박에 익숙함으로 변하지 않는다. 응답해야 한다. 이번에는 이처럼 맞닥뜨린 공간과 공감하기 위해 거치는 일들에 관해 말해보려 한다. 세상에 같은 공간은 없다. 공간이 장소로 바뀌기 위해서는 주어진 정보로 만들어 내는 머릿속 상상의 나래와 그 뒤에 펼쳐지는 공명에 응답해야 한다. 거창한 것은 아니다. 처음 만남에서 익숙함으로 변하기 위해 각자 하는 처세와 비슷하다. 다만 공간은 누군가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라 나만의 혹은 누군가의 환영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그 이미지를 머릿속에 한참을 그리고 나서 셔터를 누르는 일이 장소를 촬영하는 일이다. 늘 다른 것을 마주한다는 것은 비슷한 방식은 있어도 같은 곳은 없다는 내면의 응답을 끌어내야 하는 압박이다. 이것이 사진촬영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일정한 형태로서 대상이 아닌 무작위 형태의 군집을 찍어야 하는 조경사진은 공간을 잘게 쪼개는 작업에서 시작한다. 다른 형태와 질감을 구분하기 전에 큰 덩어리로 구분하는 것이다. 크게는 클라이언트에게 받은 자료 조사를 통해서 공간을 분류하고 등위를 매겨 순위를 정한다. 그것은 우열을 가리는 것이 아닌 촬영의 순서를 정하는 것이다. 평면도와 그래픽 자료 그리고 텍스트를 통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가면서 공간을 입체적으로 상상해 낸다. 그런 다음 또 다시 공간을 잘게 쪼개어 둔다. 이것은 흡사 다면체를 무한히 얇게 편을 내는 일과 같다. 다만 기준점을 정해야 현장에서 헷갈리지 않는데, 골격이 되는 거대한 수목이나 길 혹은 건축적인 요소들이 적당하다. 공간을 쪼개어 놓고 머릿속에 어디에 서있을지-촬영해야 하므로 위치가 필요하다- 정했다면 그곳에서 보이는 장면을 상상한다. 예를 들면 와이드렌즈로 파노라믹으로 펼쳐져야 할지 망원렌즈로 압축시켜야 할지에 대한 고민인데 이것은 도구에 대한 고민이다. 하루라는 시간에서 공간에 비치는 일조방향은 촬영자를 기다리지 않기에 시간에 따른 변화도 고려대상이다. 아시겠지만 조경사진은 대부분 야외다. 이렇게 머릿속으로 시간대와 대상 그리고 도구에 대한 설정을 하고 가상 촬영을 진행해 보는 것이다. 도면은 중요한 요소다. 설계자가 모든 것을 기록해 놓은 언어이기에 대화하듯 뜯어본다. 도면이 머릿속에 익숙해지면 입체적으로 환기한다. 기존에 촬영했던 경험에 대입해 보기도 하고 새롭게 시도해 볼 구도나 기법을 상상해 본다. 여기까지 왔다면 촬영 전 스터디는 마무리 된다. 사진을 취미로 하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다른 사람이 촬영한 것, 홈페이지 자료 등 대상에 대한 인터넷 자료를 충분히 참고하시라고 권해드린다. 다만 현장 촬영 전 타인이 촬영한 것에 대한 섣부른 비평은 권하지 않는 편인데, 선입견으로 본인의 사진을 망치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상으로 일단락한 공간의 모습은 현장에서 산산조각이 날 수도 있다. 자료와 전혀 다른 경우도 있고 컬러가 다르든지 수목이나 초화가 도면과 다르고 날씨가 상상한 것과 다르게 맞지 않거나 정한 위치에서 촬영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현장에서 작업하던 작가가 즉흥적으로 더 나은 대안을 위해 자료와 전혀 다르게 발전시키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자료로서 현장은 시그니처가 될 장면 위주로 머릿속에 구성하고 정해 놓는다. 넓은 것을 더 넓게, 좁은 것을 작게 찍는 일로 좁은 곳을 비집고 들어가거나 들어가지 말라는 곳을 들어가게 될지도 모른다. 공간은 촬영을 위한 세트장이 아니기에 촬영자의 위치는 현장에서 수정 보완이 필요한 순간이 잦다. 이때 개인적으로 추천하고자 하는 것은 ‘선입견을 벗어나’ 촬영하는 것이다. 직선의 공간을 곡선으로 만들고 곡선을 직선으로 만드는 혹은 밝은 곳을 대비가 명확한 곳으로 만드는 등 사진으로 가능한 다양한 방향을 구상해 보는 것이다. 이때 역시 필요한 것이 공간에 대한 인식, 공간감이다. 카메라(자신)가 어디에 있고 대상은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뻔한 사진이 나올 수 있다. 뻔한 사진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위치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다보면 스스로를 수없이 달래주는 과정을 거쳐야 할 수도 있다. 낯모르던 사람과 친해져가는 모습을 상상한다. 누군가의 SNS를 수없이 뚫어져라 본다 한들 우리는 그것을 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안다고 한들 그것은 어쩌면 선입견에 가까운 어떤 가상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마주하고 표정과 행동 말투를 보며 대상을 차츰 알아가듯이 공간을 마주하고 그 안에서 느껴야 공감이 생기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진 촬영은 어쩌면 일방적인 행위라 여겨지기도 한다. 들이대고 누르면 찍힌다. 하지만 미리 조사하고 상상해서 현장에 나가 대입해보고 다시 상상하면서 공간과 대면해 본다면 껍질만이 아닌 내용이 보일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지만 촬영은 흡사 대화의 과정 같다. 조경사진은 많은 생물이 존재하기에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픽쳐레스크(picturesque) 사진이어도 좋고 합성을 해도 좋다. 다만 공간의 의도를 파악하고 나서야 가능하다. 배려와 인내로 대상에게 무엇이건 시도해 보는 것이 모든 공감의 시작이 아닐까. 유청오 / 조경사진가
    • 유청오 조경사진가blueophoto@naver.com
    • 2020-06-30
  • [미래포럼] 코로나19가 일깨운 포용적 인간사회와 지구환경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최근 코로나19가 전 지구를 뒤흔들어 세계 각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고, 사회활동이 정지되면서 경제가 추락하고, 실업자가 속출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사람 간의 대면 접촉이 제한돼 학교는 대부분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되고 있으며, 더구나 이러한 상황이 언제 끝날지를 예측하기도 어렵다. 이와 같이 코로나19가 우리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는 가운데에도 일부 긍정적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직접 대면 접촉은 줄어들었으나, 간접 비대면 접촉이 활성화되면서 오히려 전국적, 국제적 네트워킹은 더욱 활성화되고 있다. 필자가 참여하고 있는 봉사단체에서는 ‘대학생녹색나눔봉사단’ 발대식에 매년 50% 정도의 참석율을 보였는데 온라인으로 진행된 금년도 2020년 발대식은 초유의 98%를 기록했다. 전국 대학에 퍼져있는 대학생봉사단원들이 동시에 한자리로 모이는 것은 이동시간과 비용을 생각하면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을 쉽게 할 수 있다. 그런데 단지 핸드폰이나 컴퓨터를 켜는 것으로 참석이 가능하게 되니 거의 전원이 참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한 예를 들면 제사, 생일 등의 가족행사를 온라인으로 진행하니 전국에 퍼져있는 사촌 등 친척은 물론 해외에 거주하는 자녀들까지 참석하게 돼 전국적, 세계적 네트워크가 활성화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요즘 하버드대학의 행복연구가 관심을 끌고 있다. 최근 젊은 사람들의 삶의 목표는 ‘부와 명예’라고 조사된 바 있으나, 724명에 대해 75년에 걸친 추적조사 결과 내린 진정한 행복의 조건에 대한 결론은 ‘좋은 관계’가 좋은 삶을 만든다는 것이다. 사회적 연결, 즉 가족과, 친구와, 공동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행복한 삶을 사는데 첫째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은 독불장군으로 살 수 없으며, 주위 사람과의 소통을 통해서 행복해지고 건강해질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좋은 관계’란 단지 사람 간의 관계에 한정된 것인지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사람 간의 관계만 좋아서는 반쪽의 행복일 수 있다. 즉 인간은 땅 위에 발을 딛고 햇빛을 받으며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존재이므로 자연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면 절대로 행복할 수 없는 것이다. 한 예로 우리는 가족들과 함께 식사할 때 즐겁고 행복함을 느끼는데, 만약 기름진 땅과 따뜻한 햇빛이 없다면, 즉 땅과 자연이 인간에게 우호적이지 않다면 좋은 식재료를 얻을 수 없고, 따라서 식사의 즐거움은 물론 건강도 지키기 어렵게 된다.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사람간의 ‘좋은 관계’뿐 아니라 자연과의 ‘좋은 관계’, 건강한 관계가 뒷받침돼야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땅과 햇빛뿐 아니라 물과 공기 등 자연과의 좋은 관계가 바탕이 돼야 인간 생존이 가능해지고 그 후에야 행복을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과 좋은 관계 유지를 위해서는 자연을 인간에 종속된 관계로 볼 것이 아니라 인간도 자연의 한 구성요소에 지나지 않음을 인정하고, 자연을 포용하는 겸손한 자세로 사고 및 일상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자연을 포용한다는 의미는 자연의 자정능력을 넘지 않도록 과도한 쓰레기 및 오수 배출을 줄이는 소비활동, 난개발로 땅과 녹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저영향(LID) 친환경 개발 등을 의미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간을 괴롭히려고 호흡기관을 감염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기 위해서, 원래 숙주인 박쥐를 인간이 먹어 없애 살 곳이 없어져 인간에게 옮겨온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인간이 무차별적으로 자연의 동식물을 해치게 되면 결국은 인간 자신에게 그 피해가 돌아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인간 중심적이고 이기적 생산 소비의 산물인 비위생적 가축사육장, 쓰레기 대란, 과도한 탄소배출 등 갈수록 악화되는 지구환경으로 인한 피해는 전염병 팬데믹, 이상기후, 사막화 및 황사, 대형 산불 등으로 결국 인간 자신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 이러한 심각한 상황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가 공동으로 다각적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으나, 그중에서도 그동안 각종 개발로 훼손된 자연녹지를 복구하고, 인공화된 도시를 녹화해 도시 내에 자연을 최대한 도입함으로써 인간과 자연의 ‘좋은 관계’ ‘평등한 관계’를 회복하고, 각종 재난에 대비한 대피 및 치유 녹지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것이 필수적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이 없는 ‘포용적 인간사회’, 그리고 인간을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생물과 무생물이 동등한 존재 가치를 갖는 ‘포용적 지구환경’의 필요성을 일깨우는 기회가 되고 있다. 임승빈 / 환경조경나눔연구원장
    • 임승빈 환경조경나눔연구원장seungbin@snu.ac.kr
    • 2020-06-29
  • [조경논단] 우리가 등한시 해왔던 일들
    조경은 아무리 잘 그린 도면이라도 시공을 통해 구현되지 않으면 의미가 퇴색된다. 공사로 공간이 완성되어야만 그 효과가 발휘되고 많은 사람들이 그 결과를 향유하게 된다. 그러한 조경시공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시공비는 조경식재공사만 예로 들어 보면 금액은 대체로 ▲수목이 60~65% ▲인건비가 15~20% ▲장비비가 5% 내외 ▲경비가 10~20% 정도로 구성된다. 여기서 주요항목에 해당하는 수목, 기능 인력, 장비 및 기타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점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식재공사의 주 자재가 되는 수목의 비중은 전체 공사비의 50%가 넘는다. 그런데 조경가들은 그동안 조경수의 생산에 대하여 약간은 등한시 하지 않았나 싶다. 조경수를 키우는 조경수협회는 산림청 소속 단체로 활동하면서 산림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조경수협회가 조경분야 주요 단체와 교류하는 모습은 별로 보지 못했다. 소위 말하는 조경의 주요 6개 단체에도 속하지 못하고, 조경의 여러 단체의 총회에 초청되는 것도 별로 보지 못했다. 그러니 당연히 조경수 생산, 수종 개발, 품질 개선 등의 논의도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몇 년 전 조경진흥법이 통과되어 조경진흥단지의 조성을 위한 발판이 마련되었다. 하지만 정작 조경수를 재배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예는 별로 없었다. 조경수 생산자들과의 긴밀한 유대와 소통이 조경식재공사 발전의 관건이 된다. 조경을 전공한 사람들이 먼저 다가가야 한다. 특히 조경 관련 단체의 장들이 서로 교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너무나 오랜 기간 동안 대화가 없었으므로 물꼬를 트는 데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 것이다. 그러나 서로의 진심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발전을 위하여 허심탄회하게 한발 한발 다가서야 한다. 그 다음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인건비다. 조경기능공이 노쇠하여 업계에서는 큰일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정작 누구하나 이런 해결책이 있으니 시행하자는 사람이 없다. 높은 기능역량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둘 은퇴하여 손끝에서 나오는 기술의 전수는 날로 사라져가고 있다. 두 사람 이상이 짝이 되어 무거운 물건을 얽어맨 몽둥이를 어깨에 지고 옮기는 걸 목도라 한다. 요즘 이처럼 무거운 물건을 목도로 옮기는 조경인은 거의 없다. 예전에 철도 침목을 나를 때 철도기능인과 조경기능인들이 누가 더 목도를 잘 하느냐 내기를 하기도 했다. 경복궁 근정전을 복원할 때 조선의 내로라하는 목도꾼 300여 명이 모여 근정전 기둥을 목도로 져다 날랐다는 이야기는 전설이 된 지 오래다. 어떤 관목이 주어지더라도 군식을 하고 나면 전정을 할 필요가 없는 군식을 하는 기능인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거짓말 같다 여겨진다. 이러한 말들이 모두 까마득한 옛이야기로 와 닫는다. 일각에서는 조경기능올림픽 예선 개최 등을 통해 기능인력을 자체 조달하려 하고 있다. 조경기능인 육성 시스템을 재건하고 확충하자는 일각의 움직임은 아주 고무적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미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된 지금 시대에 고된 육체노동을 하려는 자는 많지 않다. 그렇다고 무한정으로 인건비를 많이 줄 수도 없다. 모든 선진국의 고뇌가 그러하듯 우리도 조경기능공의 상당 부분을 외국인 근로자에게 의존하고 있는 현실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합법적인 정식 절차를 거쳐 조경기능인을 수입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상선이나 고기잡이 어선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매년 일정량의 인원을 정식으로 들어오게 하여 인원을 보충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개별적으로 늙어가는 기능인 문제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조경업계 차원에서 힘든 일을 할 사람을 확보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큰 숙제이다. 인원이 부족하고 힘든 일을 기피하다 보니 장비의 역할이 날로 많아지고 있다. 공사비에서 장비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데, 조경에 적합한 장비 발전은 유독 우리나라에서 더디게 발전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대단위 토목공사에 적합한 장비는 조경공사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외국의 경우에는 조금만 개선하면 효율이 극대화될 수 있는 장비를 많이 볼 수 있는데, 우리는 유독 무관심해 왔던 것이 현실이다. 볏짚을 감는 기계, 농업용 트랙터 등은 한국의 농업에 맞게 많은 발전을 해 왔다. 그런데 나무를 심는 기계 및 굴취기계, 수목을 다루는 기계, 조경공사가 끝난 현장에 농약을 살포하는 기계, 관수를 유효 적절히 할 수 있는 장치 등 아쉬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과수원에서 사용하는 농약 살포 기계를 사용해보니 농약의 손실이 너무 많다는 걸 경험했다. 식재공사가 1년에 4조 원 정도 금액이라면, 조경업계에서 사용하는 장비비는 2000억 원 정도 된다. 이 정도 금액이 장비업계에는 별로 크지 않을 수 있지만, 조경설계에 지출되는 비용과 비슷할 정도로 조경업계에서는 큰 금액이다. 그래서 조경용 장비 개발을 위하여 조경용도에 맞는 장비에 대해 설명하고 그들에게 협조를 구해야 한다. 이 정도 금액이면 충분히 틈새시장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금액이라고 생각된다. 모든 조경학술대회에서 장비 설명회를 갖고, 조경박람회에서는 반드시 신형장비의 전시 부스를 마련해야 한다. 장비업체가 우리와 함께 할 때 조경공사가 발전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경비 절약은 제도 개선이 가장 중요하다. 설계에서 공사발주, 시공, 유지관리까지 기계화, 자동화 및 제도화가 되도록 해야 절약과 품질 향상이 이루어질 수 있다. 매년 시공 후 무수히 많은 나무들이 죽어나간다. 이처럼 반복되는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하려면 관수를 고려한 설계가 뒷받침돼야 한다. 관수나 농약, 비료를 주는 것도 경비가 많이 들어가면 실행하기 힘들다. 조경수는 심으면 으레 몇 % 하자가 나는 게 아니다. 공사를 한 사람이면 왜 하자가 나는지 잘 안다. 설계에서 내역이 빠지면 이후에 보완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라는 사실은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냥 유지관리비만 잡아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규정에 의하여 체계적으로 방법을 만들어 놓고 비숙련인이라도(관리업체의 그 누구라도) 매뉴얼에 의해 따르기만 하면 되게끔 해 놓으면 경비부분에서 많은 개선이 이루어지리라 확신한다. 우리나라는 자고로 금수강산이라고 칭하면서 너무 풍광이 좋은 곳이 많아서인지 오래된 수목을 다루는 데 너무 무심하다. 개발이 정해지면 나무의 보존은 중요한 아젠다가 아니고 항상 뒤로 밀리는 것을 느낀다. 프랑스에서는 세잔이 그린 소나무를 보존하기 위해 고속도로의 노선도 바꾸었다지 않은가? 잠실아파트 단지의 아름다웠던 벚나무, 한국전력 앞에서 훌륭한 경관을 자랑하던 소나무들은 개발과 동시에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왜 우리는 유럽에서 보던 몇 백년 된 숲이 많지 않은가? 왜 우리는 훌륭한 조경공간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기껏 양산보가 조성한 소쇄원을 전부로 내세운다. 손대지 않는 것이 아름답다? 자연스러움이 우리의 오천년 아름다움이자 우리의 정서다? 글쎄다. 조경이란 무엇인가? 뜻 그대로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경관을 만드는 것이다. 물론 많은 조경인들은 이 견해에 찬성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만들지 않고 어떻게, 보존하지 않고 어떻게, 사람이 복작거리는 이 좁은 국토에서 좋은 풍광이, 환경이 보존되기를 바라겠는가?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조성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조경수를 생산하는 사람, 조경기능을 가지고 실현하는 사람, 장비로 조경을 만들어 가는 기술자들, 제도를 정비하는 이들이 함께 해야 한다. 그러할 때 조경이 진보하리라 생각한다. 신경준 / 장원조경 대표
    • 신경준 장원조경 대표shin2460@hanmail.net
    • 2020-06-08
  • [유청오의 핀테스트] 위로하는 사진_사진가의 새벽단상
    새벽바람에 길을 나섰다. 하늘은 파랗게 멍이 들어있었다. 몇 시간 뒤면 새빨간 상처 떠올라 지워질 흔적이지만 수족관 물처럼 온통 파랗게 물든 거리를 걸었다. 이토록 극적인 변화가 일상에 녹아있다는 평범함에 대한 감사를 하게 되는 그리고 예찬하게 되는 시간에는 낮밤의 간극에서 문득 관조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코로나19로 비정상적인 일상의 연속에서 정상적인 일상 혹은 보통의 생활이라는 것이 그리워질 때, 늘 그래왔던 것처럼 고요한 공기에 녹아들기 위해 자신을 깨워낸다. 그리고는 아직 돌아갈 보통의 호흡이 남아있다는 희망 섞인 감성에 젖는 사치를 느껴본다. 남색보다는 맑은_청색공기 얕은 바람 흔들림 사이로 새소리가 들린다. 비처럼 날린 벚꽃의 흔적 위에서 새들이 부지런히 오르내린다. 늘어진 꽃에 빨아먹을 것이 남아 있는지 가지 사이로 직박구리는 소리가 낭랑하다. 가지 아래 산책로 사방에는 마스크를 낀 사람들의 서성임으로 듬성듬성 채워있다. 새벽공기가 마스크를 파랗게 물들여 자못 으스스하다. 알 수 없는 공포는 이렇게 새벽의 청명함도 생각을 달리하게 만든다. 어쩌면 사람들은 저녁과 아침의 사이를 새벽으로 명명함으로써 일출의 충격에서 벗어나려고 했는지 모른다. 타오르는 여명의 빛을 받아야 살아갈 수 있다는 간절함은 암흑의 순간을 다시 기다려야 한다는 순환의 숙명을 그 사이에 새벽을 갖다 놓음으로 환희의 전주 혹은 혼란의 극적인 단계에서 사뭇 침착하게 받아들이려는 이성적인 생각이 들어가 있는지도 모른다. 밤 혹은 저녁이라는 암흑의 세계에서 이동한 시간의 완충지대 새벽은 빛으로 서로를 다른 사물로 구분 짓는 시작점이자 실루엣인 동시에 충격의 전조이지 않을까. 동이 트기 전 시공간의 변화는 빛이라는 존재가 만들어내는 입체적 폭로가 된다. 암흑에서 산책하던 한 개인은 이러한 단순한 기상의 변화가 보여주는 일상의 한 가운데 있다는 자각일 수도 있다. 일생의 단 한번일지 모르는 이 찰나는 일상을 드라마로 변하게 만들 수도 있다. 새벽에 느끼는 극히 주관적인 몽상 이상의 어떤 것을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이 된다.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다.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 속에서 수많은 나무와 꽃들을 일컬어 초목이라고 했던가. 어쩌면 하찮을-무엇에 기준을 두고 일컫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생명들에게 잠시 기대어 보고 싶은 순간에 찾게 되는 곳이 공원이다. 도심이라는 삭막한 공간에서 한적함을 짊어지고 싶은 욕구로 사람들은 하염없이 걷고 쉰다. 파란 공기가 내려 잠시라도 일상이라는 외피를 다른 빛으로 변화시키는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행위란 카메라를 들어 하염없이 남겨두는 일 따위다. 순간순간 뒤바뀌는 외피 색의 변화에 따라 속성을 유추하며 다른 이야기를 들추어내는 이야기꾼 같은 극의 연출가가 되는 듯한 착각을 하면서 말이다. 이 모든 것은 일단 혼자만의 생각이 되니 낯모르는 누군가가 그 모습을 본다면 살짝 정신 나간 사람으로 볼지도 모른다. 단순히 밝아지는 어떤 빛을 관찰하는 행위 이상의 어떤 -잡아두고 싶은- 욕구를 발현하는 것은 다양한 방식으로 할 수 있을 테다. 다만 기억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각색되어 그 순간을 도리어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러니를 간직한다. 이상적이기를 바라는 생각의 과정을 거치다보면 오히려 순간의 목적을 곡해하는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기도 한다. 역시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들어 스스로에게 기가 막힌(?) 한 장의 사진 혹은 장면일지라도 모두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도 있다. 계속될 것의 기록 반복되는 새벽은 시간의 흐름에서 다시 올 수 없기 때문에 유일하고 영속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최근 우리가 겪고 있는 일들에서-전염병과 관련한 일련의 사건들- 염원하는 일상으로의 회귀는 어쩌면 그래서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어제의 새벽으로 돌아갈 수 없는 슬픔에서 극복 불가능을 찾기보다 지금과 내일의 새벽을 대비해야 할 것이다. 다만 사진가는 내일 남을 순간을 위해 지금 찍어두는 것이다. 효용의 가치는 현재가 발휘하는 모습이 가치가 있을 때 발휘된다. 내일 있을지 모르는 가치를 위하여 아무도 인식하지 못하는 장면을 담아두는 일이기 때문에 사진이 소위 쓸모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닐까. 일출 새벽을 붙잡을 수 없어 하염없이 차오르는 상처와 같은 빛덩어리의 산란을 임의로라도 받아들이게 되는 것처럼 우리의 일상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시간을 수초분의 일로 쪼개어 담아내는 고성능의 카메라일지라도 잡아 낼 수 없는 자포자기에서 영상이라는 흐름의 매체를 통해 더욱 찾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흐름은 맥락을 이해하는 것으로써 기능하게 되고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로 프레임 밖의 존재에 대한 욕구로 이동한다. 이동하지 않는 영상은 그래서 지루하고 때로는 무한히 빠져든다. 요즘 우리는 영원할 것 같은 새벽을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맞닥뜨려 있다. 전염병과 그 너머에 무엇이 우리를 더욱 흔들어 놓을 것인가 하는 미지와의 싸움이 새벽너머 동이 틀 때 우리에게 현실이라는 세계로 던져놓을 것이다. 한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건 글 한 자락 없는 이미지를 남기는 일이다. 정성스럽게 담아놓은 사진 한 장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속내가 가 닫기를 염원한다. 동이 트고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상처가 사라지기를. 비록 그 아침이 어제와 같지 않더라도 순간의 아름다움일 수 있기를 바란다. 유청오 / 조경사진가
    • 유청오 조경사진가blueophoto@naver.com
    • 2020-05-26
  • [미래포럼] 조경의 미래, 조경학의 미래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업역의 조경과 학문으로서의 조경학. 우리는 조경과 조경학이 같은 미래를 꿈꾸고 있다고 믿어왔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조경학은 실용 학문이다. 조경학은 법적으로 규정된 조경이라는 업역을 전제로 한다. 모든 학문이 그러하지는 않다. 이는 조경학이 순수한 학문적 목적을 추구하기보다는 특정한 실천의 업역을 위한 지식의 체계라는 것을 의미한다. 옴스테드가 조경가라는 타이틀을 처음 쓴 것이 1863년, 조경가들의 협회인 ASLA가 설립된 것이 1899년, 최초의 조경학과가 미국에서 설립된 것이 1900년이니, 조경은 학문보다 업역이 먼저 확립된 분야이다. 최초의 공식 조경가이자, 여전히 최고의 조경가로 추앙받는 옴스테드가 죽을 때가 되어서야 조경학이 출발했으니, 조경의 업,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설계라는 실천은 조경학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조경학은 조경의 업이 필요했던가? 조경이 처음으로 제도화된 미국의 경우 업을 뒷받침하기 위해 학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겠지만,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1973년 조경학과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건축학, 임학, 원예학 등 다양한 조경의 인접 분야의 전문가들이 조경학의 기초를 세웠다. 지금도 조경학은 건축학과 농림학의 접근에 뿌리를 두고 있다. 건축의 토대는 예술적 스튜디오 교육과 사회학적 공간 연구의 방식으로 발전하였고, 임학과 원예의 토대는 자연과학적 연구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오늘날 수많은 학문의 가치를 동일하게 평가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대부분의 학문은 논문의 수와 인용지수라는 같은 기준으로 평가받는다. 조경학도 예외일 수 없다. 결국 인용이 많이 되는 국제 학술지에 논문을 많이 실을수록 좋은 연구자이다. 그리고 수준 높은 논문을 쓸 수 있는 대학원생을 많이 길러낸 교수가 좋은 교육자이다. 물론 학과의 입장에서는 수업의 질과 학생들의 취업률도 중요하지만, 학문의 발전과 직접적 연관은 없다. 굳이 학문이 업의 직접 혜택을 받을 일은 없다. 그래서 조경의 업과 학문의 괴리는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며 최근의 문제도 아니다. 업에서는 대학이 실무에서 필요한 능력을 갖춘 학생들을 배출하지 못해 결국 다시 교육을 해야 한다고 불평한다. 실무적 감각도 경험도 없는 학자들이 감투를 쓰고 자문으로 들어와 오히려 업의 발목을 잡는 역할을 한다고 비판한다. 한편 학에서는 업이 타성에 빠져 늘 하던 방식대로 일한다고 생각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학문과 기술의 발전을 업은 알지도 못하며, 알 의지도 없어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럴 바에는 아예 건축처럼 건축학과 건축공학을 나누어 설계의 업과 학문, 공학의 업과 학문을 분리하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나 조경의 상황은 건축과 다르다. 전국 대학의 건축 관련 학과 입학생 수는 조경의 10배다. 산업의 규모는 그것보다 더 크다. 조경을 다시 쪼개기에는 조경의 업도 학문도 독립적으로 유지되기 어렵다. 그렇다면 업은 업으로, 학은 학으로 별개로 본다면 어떨까? 일본은 이러한 길을 택했다. 한때 우리 선배들의 책꽂이를 차지하고 있던 일본의 조경 사례들은 잊힌 지 오래고, 일본에는 조원학과를 유지하는 대학이 거의 없다. 조경학은 원예, 산림, 건축, 도시, 디자인의 일부로 흡수되어 버렸다. 혹자는 이를 저성장 시대의 대안이라고, 학문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모델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조경의 소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다른 대안으로 어떤 이들은 미국처럼 업이 중심이 되는 학문의 모델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한국의 상황에서 이미 그런 모델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하버드 GSD로 대표되는 미국식 모델을 그대로 수입한 서울대 환경대학원은 이미 GSD와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업과 학문의 관계와 구조, 그리고 규모가 아예 다른 미국식 모델은 한국에서 성공하기 어렵다. 한국에서 조경의 업과 학은 불편한 공존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실상 생각하는 미래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어느 하나의 미래를 강권할 수도, 분리할 수도 없다면 우리에게 남은 대안은 무엇인가? 나는 유일한 대안은 서로 다른 미래 사이에 공유지대를 만드는 데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조경의 업은 설계안이 가져올 수많은 효과를 역설하면서 이를 증명할 시도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정말 좋은 설계안은 생태적 다양성을 높이고, 열섬효과를 줄이며, 아이들이 더 좋아하는 공간을 만드는가? 반면, 학문은 현상을 검증하고 정교하게 예측하려 했지, 창작의 영역이 가져오는 효과를 연구의 대상으로 간주한 적은 거의 없다. 그러나 현상에 대한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다면 가상의 대안에 대한 시뮬레이션도 가능하다. 우리는 조경은 예술이며 과학이라고 배워왔다. 이는 예술로서의 조경, 과학으로서의 조경, 두 개의 분리된 조경이 있는 것이 아니라, 조경은 예술이면서 동시에 과학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예술이 과학을 추구해야 하고 과학이 예술을 추구해야 한다는 말과는 다르다. 예술은 예술의 길을, 과학은 과학의 길을 걸어도 된다. 다만, 과학이 개입할 예술의 측면을, 예술을 파악할 수 있는 과학의 방식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대학원에서 미국 경관 생태학의 아버지라 칭송받는 리차드 포먼 교수의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수업 시간에 그에게 물었었다. 왜 당신은 더 많은 연구 업적을 낼 수 있는 학교를 떠나 연구진도 구할 수 없는 디자인 대학원에 왔냐고. 그가 대답하기를, 자신이 생태학을 연구했던 이유는 생태학을 통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연구를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조경가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고. 조경의 업과 학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미래를 준비할 공유지대를 함께 만들어야 한다. 김영민 /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 김영민 교수klam@chol.com
    • 2020-05-19
  • [조경논단] 103호 노인의 아파트 정원 가꾸기
    103호 노인에 대해 그는 1943년 생으로 올해 78세이다. 그는 7년 전에 나와 같은 아파트로 이사를 와서 1층에 살다가 작년에 어딘가로 떠났다. 이 글은 내가 그 노인과 1년 가까이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 녹취록의 아주 일부에 해당한다. 그는 당뇨를 앓고 있어서 건강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조경에 관심을 가지고 꽃과 나무를 가꾸는 활동을 한 것도 이 병을 다스리기 위한 활동의 일환이다. 그는 처음에 아파트 주변의 공원을 산책하고 등산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자기 마당과 아파트 공간에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는데, 그게 등산이나 산책 못지않게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느끼고 정원 가꾸기에 집중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조경을 공부하거나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농촌에서 자랐고 식물(작물)을 심고 키워왔기 때문에 식물을 죽이지 않고 가꾸는 데는 자신이 있다고 했다. 그의 진술에 따르면 군대에서는 해마다 환경미화 및 조경 경진대회를 했고, 오랜 기간에 걸쳐 부대에 나무를 심거나 화단을 가꾸는 일에 관심을 가져왔다. 예를 들어, 어느 해에는 부대 조경 경진대회가 있었는데 필요한 나무를 구할 수 없어서 인근의 고속도로 건설 현장에서 이미 심어진 꽃과 나무를 캐왔다고 한다. 그 사실이 건설 업체에 알려져서 문제가 됐는데, 회사에서는 자신들에게 필요한 잔디를 제공해 주면 문제 삼지 않겠다고 해, 비행장 활주로 주변에 광대하게 조성된 잔디밭의 일부를 떼어가도록 했다고 한다. 사건의 발단 그는 햇빛이 건강한 생활에 중요한 요소라고 믿기 때문에 집 안과 마당에는 늘 햇빛이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창문을 가리는 수목은 건강을 해치는 나쁜 것이어서 제거돼야 한다. 그는 실제로 창문 바로 앞에 심어진 나무 몇 그루를 강하게 전정해 버렸고, 창문을 타고 올라온 넝쿨식물들도 완전히 없애버렸다. 창문에서 꽤 떨어진 나무들도 2층 이상으로 자라면 그늘지게 하고 이끼가 낄만큼 습한 환경을 만들기 때문에 제거해야 할 대상이다. 그는 어느 날 산책을 하다가 맨드라미 정원을 발견하고 주인에게 부탁해서 다섯 포기를 얻어다 심는다. 그의 화단에 심을 식물을 구하기 위해 주변 지역의 식물을 가져온 첫 번째 사건이었다. 나중에 원래 맨드라미 정원의 주인은 이 노인에게서 맨드라미 씨앗을 다시 얻어 갔다. 그가 자신의 집 마당에 나무와 넝쿨식물을 베어내고 화단을 가꾸기 시작하면서 옆집 사람과 만날 기회가 많아졌고, 그의 손길은 102호와 104호 마당으로 확장된다. 이 시기에 노인의 관심은 자기 집 정원에서 아파트 정원으로 번져갔다. 그는 자기보다 조금 어린 노인을 포섭해 조금씩 일을 크게 벌이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공적인 문제가 하나둘 생겨났다. 그는 화단을 가꾸기 위해 아파트 여기저기 비어있는 땅을 계속 찾았고, 마침내 아파트 지하주차장 위의 빈터에 자리를 잡고 허브 식물을 심었다. 그러나 그의 첫 번째 실험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고, 모두의 무관심 속에 없던 일이 됐다. 군인정신에 투철한 그는 포기하지 않고 아파트 정원의 한복판에 자신만의 화단을 만들고, 벤치 가득히 화분을 늘어놓았다. 그제서야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지만, 누구도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방치된 아파트 정원에 누군가 화단을 가꾼다는 것이 그리 나쁠 것도 없고, 괜히 문제제기를 했다가 갈등이 생기면 서로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자신감이 생긴 노인은 직접 전정톱을 사고 후배 노인을 시켜 대략 벚나무 다섯 그루의 목을 잘랐다. 그 과정에서 관리사무소와 아무런 협의를 하지도 않았고 마을 회의의 공식적인 절차를 밟지도 않았다. 이 순간 그는 군대의 지휘관에 빙의했던 것 같다. 목이 잘린 나무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화를 내기 시작한다. 자기가 무슨 권리로 공원이라고 할 수 있는 아파트의 나무를 함부로 이렇게 베어내는가? 관리사무소와 부녀회 등에서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때부터 아파트 정원의 관리 기준이나 지침이 중요한 판단 근거로 등장하기 시작했으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관리사무소는 그 노인이 베어낸 나무들을 구상나무로 교체하고 그 비용을 청구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런데 관리사무소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 노인은 관리사무소에게 당신들이 나에게 구상권을 청구해도 그 1/3인 1000만 원도 받아내기 어렵고, 결국 당신들은 2000만 원을 날리게 될 것이라고 되받아쳤고, 관리사무소는 항복했다. 며칠 뒤 술자리를 통해 노인과 관리사무소 사이의 관계는 공생적, 협력적 모드로 바뀌었다. 그는 이제 날개를 달았고, 그해 여름 아파트 정원에는 더 다양한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사건에 대한 해석 아파트 마당은 정원인가 공원인가? 우리는 그런 어중간한 조경공간을 조성하거나 관리하기 위한 매뉴얼을 가지고 있는가? 이어령 장관 시절 쌈지공원이 그랬듯이 간간이 그런 중간 공간이 등장했더라도 흔히 죽(정원)도 밥(공원)도 아니게 끝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 조성 취지와는 정반대로 예산은 예산대로 날리고 동네 주민들 사이의 갈등만 증폭시킨 채 사라진 경우도 없지 않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공동체와 마을마당이라는 명분과 당위만 앞세울 뿐, 그들의 마음 상태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한 채 섣불리 도면 작업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요즘은 벌어지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조경 활동의 결과인 경관은 그것이 정원이든 공원이든 건축 활동의 결과인 구조물과 달리 유연하고 상호작용적인 돌봄이 필요한다. 변기는 변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고, 아기는 잘 변하도록 돌보는 것이다. 그 노인은 아파트 단지에 인접해 있는 학교의 울타리에 심긴 꽃 해바라기가 맘에 들었지만 캐올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다음 해에 심기 위해서 학교 울타리를 넘어온 씨앗을 모았다. 그리고 정말 다음 해에 그의 정원에서는 꽃 해바라기가 피어났다. 나이 50을 넘어서 내 생각이 바뀐 것이 있다면 건축과 비교할 때, 조경의 전문성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분야는 설계가 아니라 ‘관리’인 것 같다. 당뇨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그가 죽는다면, 이제 겨우 꽃피기 시작한 우리의 정원 혹은 나의 공원은 어떻게 될까? 아마도 그의 죽음과 함께 사이공간성(inter-spaceness)을 잃고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사이를 채워가는 것이 103호 노인과 같은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라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 자리에서 죽도 밥도 아니지만 제법 맛도 있고 건강에도 좋은 새로운 음식이 탄생하지 말란 법도 없지 않을까. 그리고 끝으로 종합과학예술임을 자랑하는 조경 교육이 학생들에게 정말 통합적 관점을 길러주고 싶다면, 이론이 아니라 사건을 깊이 탐구하도록 돕기를 권한다. 이재영 / 공주대학교 환경교육과
    • 이재영 공주대학교 환경교육과 교수kongju8815@hanmail.net
    • 2020-05-07
  • [미래포럼] 부당한 조경감리규정과 입찰자격 제한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국토교통부의 착각 최근 국토교통부 주택건설공급과에서 주택건설공사 감리자 지정기준 일부개정안을 고시했다. 이유인즉슨 시공역량이 부족하거나 안전사고 발생 전력이 있는 사업주체, 시공사가 주택건설공사를 하는 경우 현 기준에 따라 산정한 감리인원으로는 철저한 품질관리·안전관리가 어려운 실정이므로 추가 감리원 배치를 통해 보완하고, 공동주택은 일반건축물과 달리 별도의 하자판정기준 등이 마련돼 있는 것과 같이 하자가 구체적이고 상세하므로 주택건설공사를 감리·감독해 본 경력자를 배치하도록 하고 분야별 감리원 평가인원도 늘려 양질의 공동주택이 건설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감리자의 사업수행능력 세부평가기준 제8조 (8) 적격여부에서 ‘1500세대 이상인 경우에는 조경공사기간 동안 조경분야 자격을 가진 감리원을 배치해야 하며, 해당공사 착수시 배치계획서에 명시된 등급의 동등이상에 해당하는 조경분야 감리원을 배치해야 한다’고 개정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건설기술진흥법 시행령 제55조에는 300세대 이상의 공동주택(공사비 200억 원 이상)에 감리원을 배치하도록 돼 있음에도 1500세대 이상 배치규정은 감리제도의 도입취지와 맞지 않는다. 또한 현재의 대부분 공동주택 등 주택건설공사시 주차장이 지하로 배치돼 건축물을 제외한 지상 면적의 대부분과 기부체납 되는 공원 등 조경면적이 과거에 비해 3~4배 증가해 조경기술자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더욱이 민간주택 건설공사의 93%가 1,500세대 미만이어서 현재의 지침대로라면 토목이나 건축담당의 비전문가가 감리업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어서 조경 품질저하는 물론이고 부실공사에 따른 사회·경제적 손실은 누구의 부담으로 돌아갈 것인가? 따라서 분야별 감리원수를 주택건설공사 규모에 따라 최소한 300세대 이상 2000세대 미만까지는 조경 감리자 1명과 2000세대 이상은 조경 감리자를 2명 이상 두어야 할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시대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고 시민사회의 요구 수준은 점점 높아져 가고 있음을 인식하고 조경을 누구나 감리해도 된다는 착각에서 하루빨리 깨어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산림청의 고집 산림청은 도시지역 내 열섬현상, 미세먼지 등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도시 숲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으나, 현행 다양한 법·제도 규정으로 일원화되지 않았다는 사유를 들어 도시 숲을 체계적으로 조성할 수 있는 법이라는 미명하에 법 제정을 추진해 왔으나, 사업시행 분야의 조경업계 배제 조항에 따른 한국조경학회를 비롯한 산·학계의 반발로 현재 국회에 계류 중에 있다. 또한 대한전문건설협회에서 건의한 도시 숲 조성 시공자격 관련 개선 건의안에 대해 ‘도시 바람길 숲, 미세먼지 차단 숲은 산림사업으로 산림자원법령의 적용을 받으므로 산림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24조에 따라 산림사업 법인으로 등록해야 하며, 2020년 도시 바람길 숲 및 미세먼지 저감 도시 숲 사업 실시와 관련해 해당사업을 추진하는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산림사업으로 예산 신청 및 보조금으로 교부된 사업이므로 조경 식재업 또는 조경 공사업은 시공 시 입찰 참가자격이 없으며 설계·시공·감리 사업에 대해 산림관련 법령입찰 참가자격을 철저히 준수해 줄 것’을 통보했다. 또한 산림청은 금년 상반기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집행 점검에서 위 준수사항이 이행되지 않아 적발될 경우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대해서는 보조금 반환, 보조금 교부 결정 취소 등의 조치를 취할 예정이니 관련 규정을 철저히 준수하라는 공문서를 일선 시도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했다. 이와 같은 대규모의 도시 바람길 숲이나 미세먼지 저감 도시 숲 조성에서 재정상태가 열악한 지방자치단체를 보조금을 가지고 마음대로 흔들 수 있다는 생각은 마치 아이들의 사탕놀이와 같다고 보여진다. 또한 지난 2009년 산림자원법 시행령에 명시된 도시림, 생활림, 가로수 조성·관리 사업에서 조경공사업과 조경식재공사업으로 시행하는 사업은 제외한다고 한 문구에 대한 법제처 법령해석 ‘수목원·공원 및 숲 등의 조성공사와 업역이 중복되고 그 내용에서 별개로 구분되는 사업이라고 하기 어렵다’고 해석했다. 이상과 같은 일련의 도시숲법 개정안 및 입찰제한 등을 볼 때 도시 숲 조성을 내 밥그릇 챙기기로만 고집부리지 말고 서로 상생하는 방안을 시급히 찾아야 할 것이다. 문길동 / 서울시 푸른도시국 조경과 과장
    • 문길동 과장klam@chol.com
    • 2020-04-14
  • [유청오의 핀테스트] 어쩌면, 작은 것들에 감사해야 할 때
    연일 이어지는 매스컴의 소식이 어지럽다. 헤아릴 수 없는 숫자들이 오르내린다. 마치 스포츠 중계하듯 내뿜는 매체의 언어들은 과하게 침착하여 스스로를 가라앉게 만든다. 어딘가에서 소리없이 삭아들어갈 생명에 간절한 바람을 숨죽여 외치는 행위의 소용에 대한 자괴감은 우울감으로 달음질 하게 된다. 단순한 숫자 하나로 매김되어질지 알았을까. 그 숫자 하나가 자신이 될지 모른다는 무기력함은 공포와 다름아니다. 보이지 않는 공포는 타인과 멀어져야 한다는 외로움과 다름 아니다. 어쩌면 작은 숫자에 불과한 개인이 할 일이란 것이 스스로 무엇인가 되돌아보는 일련의 성찰 과정에서 주변의 소소한 것들을 찾게 되는 부산함을 떨게 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모든 것들과 일정간격을 떨어져 있을 것이 아니라 -단지 또 다른 어떤 작은 개인과의 거리를 두는 일이기에- 타인이 아닌 주변의 작은 것들을 돌이켜 보는 것이다. 그간 지키지 못했던 자신과의 약속을 돌이켜 보게 되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는 일 따위 말이다. 핸드폰과 모니터가 아닌 멍하니 주변을 응시하는 일은 어느덧 가까이 와 있는 수많은 것들 혹은 사건들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돌이켜 보는 사색의 순간을 즐기도록 나름의 방식을 고안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지 않을까. 또 어쩌면 가까운 순간의 매력을 감내해야(?) 하는 시간이 도래했는지도 모른다. 타인과의 간극을 비워낸 공극에 무엇이건 채우는 방법에 대한 생각에 골몰해 볼 수도 있다. 타인이 떠난 공극 - 이를테면 손을 뻗어 닿는 물건과의 간극-에 채워진 칙칙한 공기가 나를 둘러싸고 있었음을, 그것이 어쩌면 바이러스를 막아내는 방어막일지도 모르는 에테르(Aether)일지도 모른다는 망상을 하는 일 따위가 있을 수도 있겠다. 정신나간듯이 들릴지 모르겠으나 별다른 에너지가 소모되지 않는 일련의 공상 혹은 상상들을 하면서 쉼없이 돌아가던 신체의 일부를 잠시 멈추게 만드는 일이 그동안 역으로 신체의 극히 일부인 손가락과 눈동자 따위의 말단의 구조만을 혹사시키고 있었음을 자각하게 되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세계가 멈추어 버린 것 같다. 혈관의 혈구처럼 오가던 항공과 선편의 수많은 왕래가 잦아들고 나서야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주고바도 있었는가를 자각하게 되는 아이러니를 목격하게 된 것이다. 어쩌면 지금이 지상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은 인간도 한 개인이 되고 나서야 단순히 하나의 숫자일 뿐이라는 새삼스러운 자각을 단 한번에 전 세계가 공유하게 되는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작아드는 자신과 주변의 변화에 민감해지는 요즘 서로에게 혹은 스스로에게 차분한 위로를 대뜸 던져보는 것은 어떨까. 잘 견디고 있다고 하는 위로와 감사가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단 하나의 변화 없이 산수유가 노란 꽃을 틔웠다. 목련이 이불을 걷어찬다. 매화가 입을 벌리고 진달래는 이미 청초하다. 아직 먼 산등성이는 누렇게 잠들어 있지만 초록 빛 가득할 봄처럼 서로를 위로하고 감사하는 마음 교환하기를 바란다. 이 순간 작은 꽃들과 새싹이 서로 멀찍이 떨어진 인간에게 위로하는 듯하다. 하는 일이 사진 찍는 일이라 가까워져도 무방한 어떤 것들을 한 장 씩 담아내는 것을 조심스럽게 추천해본다. 감사하는 마음도 함께 담아내 보면 좋겠다. 녹음과 꽃이 온세상을 덮어도 상처는 남을 것이다. 상처를 나누고 극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작은 숫자에 불과한 이들에게 힘을 주는 이들에게 감사하는 일도 잊지 않기를. 유청오 / 조경사진가
    • 유청오 조경사진가soulguitar@naver.com
    • 2020-04-07
  • [조경논단] 총선 정책공약과 후보자를 통해 ‘조경’을 가늠한다
    4·15 총선 선거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정당의 정책대결 이슈가 실종되고 후보자 공천을 둘러싼 구태정치가 반복돼 국민들에게 많은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처음으로 시행되는 이번 선거에서 비례(위성)정당을 둘러싼 꼼수정치도 난무하고 있다. 비례대표 투표용지에는 기호 1·2번이 없는 35개의 정당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아찔한 상황이다. 어찌 됐던 대한민국 국회의원 300명을 국민들이 뽑는 선거이다. 무릇 선거에서 정당은 표를 얻기 위해 유권자들의 마음을 가지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 과정에 시대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지점이 정당의 정책공약과 후보자 라인업일 것이다. 그곳에서 ‘조경’을 살펴봤다. 헌정 사상 지금까지 조경계를 대표하는 정치인은 없었다.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당선된 김광진 의원이 조경학과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조경계에서는 조경 전공 국회의원 첫 탄생이라는 축화와 기대를 했다. 그러나 김광진 의원은 군 적폐청산 등 국방분야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청년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재선에서 아쉽게 낙선했지만, 현재 청와대 정무비서관으로 발탁돼 재임하고 있는 장래가 촉망되는 정치인이다. 그의 행보에서 ‘조경’을 기대할 수 있을까? ‘조경’이 국민적 관심거리가 되고 사회문제 해결의 정치로 수단화되면 가능할까? 수원시 초대 제2부시장을 역임한 이재준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 초빙교수는 이번 총선에 수원시갑(장안구)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로 출마했다가 최종 경선에서 아쉽게 고배를 마셨다. 그는 엄연히 조경계에서 배출한 인사다. 이번 공약에서도 110만 평 국가공원 유치, 최저입찰제 발주 개선, 거버넌스 제도화로 건설시장 구조 개선, 공원 리모델링을 통한 효율 극대화, 인공지반녹화 국가 지원 법안 지원, 조경진흥법 개정 등을 주장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당원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그가 다음 선거에 다시 출마할까? ‘조경’을 더 강화해서 아니면 ‘조경’을 지워버리고? 얼마 전 한국건설인협회는 82만 건설기 술인을 대변할 국회 비례대표 후보 3명을 확정하고 각 정당에 추천했다. 16개 건설관련 단체 공동명의 추천을 받아 15명의 후보자를 대상으로 엄정한 심사를 거친 끝에 3명의 기술인을 최종 선정했다. 부창렬 건축 전문가는 미래한국당에, 임소영 토목 전문가는 더불어민주당에, 김재권 토목 전문가는 제3당에 추천됐다. 결과적으로 이들 3명은 각 정당의 비례대표로 선택받지 못했다. 전문건설기술인의 사회적 활동 측면의 한계일 것이다. 그런데 조경 기술인은 이런 논의와 공모과정에 과연 존재나 했던 것인가? 아니면 조경을 무시하는 건축·토목계에서 추천한 이가 비례대표로 선정되지 않은 결과를 오히려 좋아하고 안심해야 하는 상황일까? 더불어민주당의 또 다른 위성정당 논란이 일고 있는 열린민주당은 비례대표 1순위으로 김진애 전 국회의원을 간판으로 내세웠다. 김진애는 정치인뿐만 아니라 도시건축가로서 대중적으로 유명하고 인기가 많다. 17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출마하여 정치적 내공과 근육도 상당하다. 그는 18대 국회에서 조경기본법 제정을 반대하고 건축의 하위분야로 조경을 분류해 조경계에서는 그를 ‘조경말살’ 국회의원으로 지목해 성토했고, 지금도 비토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이변이 없는 한 그는 이번에 국회의원에 당선될 것이고, 아마 이번에도 ‘조경’을 제대로 대접해 주지 않을 것 같다. 김진애 의원은 이명박 정부 시절 4대강사업국민심판특위 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국민적 지지층이 더욱 더 두터워졌다. 조경계는 당시 정부가 추진하는 4대강 사업에 결과적으로 구색 맞추기 역할을 자행했다. 과연 국민은 누구 손을 들어줄 것인가? 조경인은 열린민주당에 표를 주지 말아야 하나? 위성정당이어서? 아니면 ‘조경말살’ 김진애라서? 선거에 나서는 주요 정당의 정책공약을 살펴보았다. 지금까지 ‘조경’은 환경보전과 지속가능한 국가발전의 중요한 요소이면서도 토건개발 일부처럼 취급되면서 뒷전으로 밀려나기도 하고 구색 갖추기의 배려가 되는 수준이었다. 이번 선거에서도 ‘조경’의 위상과 자리매김은 변하지 않았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정책공약에는 ‘조경’의 영역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254쪽까지의 5대 핵심가치에 해당하는 주요 정책에 단 두 줄만 언급돼 있다. 미세먼지 없는 스마트 클린도시 시범사업의 세부내용에 미세먼지 정화숲 조성, 공원과 분수대 조성, 이끼벽 조성 정도이다. 광역지자체별 지역공약에는 대규모 개발사업이 주를 이룬다. ‘조경’과 관련된 공약으로는 대구에 생태정원·도시농업테마파크 조성, 경기도에 미세먼지 걱정을 없애는 학교숲 조성, 충청북도에 미호천 생태·휴양 친수복합공원 조성, 충천남도에 부남호 하구복원, 경상북도에 국립 독립운동 역사공원 조성 정도다. 야당인 미래통합당이 내세우는 151개 실천과제에는 세부내용을 아무리 보아도 ‘조경’을 찾을 수 없다. 흔하고 단골 메뉴인 미세먼지 공약조차도 ‘도시숲’이 없을 정도로 씁쓸하다. 그래도 유권자 민심을 고려해 지역 공약에는 대표 공약이 있다. 인천에 소래습지생태공원 국가정원화 추진, 대전에 도심 곳곳 자연친화적 생태공원 조성, 울산에 태화강 국가정원 활용·연계 관광상품 개발(정원박람회 개최, 각종 테마시설 조성), 대왕암공원 해양·힐링파크 조성, 세종에 중앙공원 일대를 ‘국가도시공원’ 지정 추진 등이 있다. 민생당의 대표 지역 출마자인 정동영 후보(전주 병)는 1호 공약으로 조선월드파크 1조 원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조선 태조 정원 조성, 세종 빛 테마 정원 조성, 조선 전주성 4대문 복원 및 전주정신문화관 조성, 조선문화 정원 조성, 조선문화 체험 밸리 조성 등이다. 정원도시를 표방하는 전주시에 맞게 ‘조선’과 ‘정원’을 컨셉으로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를 내걸었다. 1조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대규모 개발사업이라 여러 우려할만한 요소가 있다. ‘조경’의 영역과 브랜드가 도시의 미래 비전으로 설정되고, 시민의 선택을 받아 잘 추진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정의당은 ‘그린뉴딜’을 전면에 내세웠고 ‘조경’ 관련 여러 야심찬 공약이 수록돼 있다. 200만호 그린 리모델링(마을녹색전환운동) 사업 추진, 개발중심의 토건사업 감독기능 강화, 장기미집행 도시공원 실효 대책 마련, 새만금 해수 유통 및 낙동강·금강·영산강 하구 복원, 4대강 재자연화 추진, 비무장지대 국립공원화 추진 등이다. 지역 공약으로 광주에 초고층 밀집 대규모 아파트 건설 규제, 습지 보존 및 도시공원 단계적 매입, 세종에는 금강 세종보 철거, 람사르 습지 등록, 충북에는 대규모 아파트단지 추가 공급 중단, 도시공원 100% 보전, 대구에는 ‘기적의 생태 놀이터’ 조성 등이다. 정당의 정책공약과 지역 공약에서 ‘조경’을 일부 찾아볼 수 있어도, 전체적으로 보면 ‘조경’ 분야의 시대정신과 사회적 요구가 담긴 정책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선거판에서 정책은 사회문제와 국민관심에서 비롯된다. ‘조경’이 살아남기 위해 건축·토목·산림 분야와 힘겨루기 하며 ‘조경업’을 사수하는 방식에 골몰해서는 안 된다. 국민에게 또 다른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질 뿐이며, 국민으로부터 폭넓은 지지와 사랑을 받을 수 없다. 이제 ‘조경’은 전문 기술자 영역을 넘어서서 기후위기와 환경문제, 사회불평등과 공동체 붕괴, 인권과 사회평화를 위해 그에 걸맞은 해법을 내놓아야 하고, 사회적으로 희망찬 메시지를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일상에서 적극적으로 시민들과 소통해야 하고 시민사회단체 및 정치인들과 협력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래야 정책이 되고 후보자가 나오고, 국민들이 지지하는 ‘조경’이 될 수 있다. 최진우 / 에코 액티비스트 리서처 박사
    • 최진우 에코액티비스트리서처 박사jinunechoi@gmail.com
    • 2020-04-03
  • [미래포럼] 바람도, 소리도 조경이다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바람이 만드는 풍경 한적한 남도 시골길, 왕대나무 숲 가장자리 길을 따라 걷다가 문득 산들바람이 스쳐지나는 소리를 듣는다. 댓잎들의 재잘대는 소리가 있고, 좀 더 센바람이 지나갈라치면 솨-아- 하고 대숲에서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물오른 능수버들 가지 사이를 비켜가는 꽃바람은 잠자는 버들강아지를 흔들어 깨운다. 소리는 없고 오직 흔들림이 있을 따름이다. 봄빛 따사로운 어느 한낮, 뜰 앞에 피어난 흰 목련꽃을 장난스레 건드려 한 장 꽃잎을 떨어뜨려 놓고 지나가는 것은 심술쟁이 봄바람이다. 마치 프로포즈에 대꾸를 아니해 심술을 부리는 것처럼 보인다. 큰 솔밭 사이를 지나노라면 솔잎 사이를 스치는 바람 소리가 들린다. 동네 총각이 이웃집 처녀를 불러내는 휘파람소리 같다. 폭넓은 강나루에서 흰 돛단배를 밀어주는 것도 바람이다. 한가로운 풍경 그 자체가 한 폭의 그림이자 아름다운 경관이다. 노을이 질 무렵 산사, 대웅전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은 실바람이 스치면서 소리를 낸다. 적막함을 알리는 바람의 그림자다. 늦은 봄 전라도 고창의 청보리밭은 싱그러운 초록 바탕이다. 여기에 바람이라도 보태질라치면 서해바다 파도가 넘실대는 듯한 초록 물결이 일렁인다. 역동적인 풍경의 파노라마다. 또한 한적한 시골길 냇가 물억새 꽃무리의 나부낌은 가을바람임을 일깨워준다. 그런가 하면 진눈개비 흩날리는 어두운 밤, 천리포 바닷가 산언저리에 있는 뇌성목의 마른 잎이 바스락대면 한겨울의 삭풍임을 말해주고 있다. 바람은 소리를 만드는 마술사이자 소리는 바람의 친구이다. 이러한 정경들은 바람과 소리가 만들어낸 소소한 경관들이다. 조경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아름다운 경관요소들이 아닌가 싶다. 자연의 바람과 소리를 정원에 도입할 수 있는 방법을 한 번쯤은 생각해 볼 만하다. 바람이 있는 도시 요즈음처럼 공기 질이 열악하고 미세먼지로 아우성인 도시환경 속에서 조경분야에서는 어떤 일을 생각해 볼 수가 있을까? 우선적으로 바람의 역할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바람은 공기의 흐름이다. 겨울철 한냉한 시베리아의 북서기류가 미세먼지를 한반도 밖으로 밀어내고 차고 깨끗한 공기를 가져다주는 메신져임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반면에 따뜻한 남서기류나 편서풍은 중국의 지독한 미세먼지를 우리나라에 몰아다 준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우리나라 미세먼지의 발생이 계절적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은 바람 때문이다. 이는 인위적으로 조절이 불가능한 자연적인 문제다. 하지만 도심에서 미세한 바람의 흐름을 조정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해법은 도심의 미세환경을 바꾸어주는 것이다. 도심을 흐르는 개천이나 하천 그리고 강은 공기의 흐름을 주도하는 요인이자 곧 도시의 바람길이기 때문에 많이 만들어 주자는 것이다. 도시 내부를 통과하는 숲길 또한 바람길이다. 따라서 계절적 요인을 고려한 도시의 바람길을 어떻게 조성해야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가능한 한 바람길을 많이 만들어 주고 막혔던 바람길은 터주는 것이 중요하다. 바람길 앞에 나무를 심어 흐름을 차단시킨다거나 숲을 만들어 분지가 형성되게 하는 일은 삼가야 할 것이다. 자칫 오염된 공기를 침체시키거나 미세먼지 포켓을 만들어 주게 되는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의 조경은 수목의 식재 수량이나 종류, 디자인에만 집중할 일이 아니라 미기상 데이터를 활용한 바람길 조성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바람에 관한 한 가정의 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바람이 잘 통하는 정원은 식물들도 건강하게 잘 자란다. 통풍이 잘 된다는 것은 곧 주거 환경이 양호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소리로 만드는 정원 봄비 내리는 날 초가지붕 처마끝 토방 언저리에서 똑- 똑-하고 떨어지는 소리는 뭘까? 이것은 분명히 낙숫물 소리다. 여유롭고 한적한 옛 시골 풍경이다. 산중에서 정오에 둥-둥- 두두둑 둥-둥-하고 나는 북 소리는 무엇일까? 산사에서 정오를 알리는 법고 소리다. 적막한 산중의 한 풍경이다. 칠월 칠석이 지나고 입추 무렵에 귀뚤-귀뚤- 하고 들리는 울음소리는 무엇일까? 정령코 귀뜨라미의 가을맞이 소리일 것이다. 달 밝은 가을밤에 끼륵-끼륵-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는 무엇일까? 예컨대, 가을이 깊어감을 알리는 기러기 소리가 틀림없다. 모두가 농촌과 산촌 풍경을 연상케 하는 소리들이다. 계절에 따른 각종 새소리, 물소리, 풍경소리, 바람소리 등 여러 가지 소리들을 조경소재로 도입한다면 근사한 경관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향기가 좋은 방향성 식물들만을 모아서 만든 향기정원은 가끔씩 본 적이 있지만 소리를 정원에 도입해 만든 소리 정원은 아직 경험한 바가 없다. 자연이 그리운 도시인들에게는 정서적으로 필요한 소재가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소리와 관련해 음악을 상징하는 오선지나 높은음자리표, 샵 모양 등을 본뜬 정원 디자인에 수양버들처럼 바람결에 흔들림이 있거나 소리가 있는 소재들을 배치해 음악 정원을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 고전음악이나 현대음악에서 빗소리 한 가지만을 형상화한 명곡들이 얼마나 많은가? 조경에서도 바람의 세기에 따라서 달리 소리를 내는 풍경이나 크기와 형태가 다른 방울, 윈드차임, 윈드실로폰 등 각종 기구들을 재료로 이용해 조성하는 소리정원을 한번쯤은 생각해 볼일이다. 이종석 / 서울여자대학교 명예교수
    • 이종석 서울예술대학교 명예교수klam@chol.com
    • 2020-03-29
  • [기고] 산림청과 그 도시숲경관과에 묻다, 그 자리의 무게를 아시는가?
    “변화의 시대, ‘도시숲법’으로 새로운 기회와 도약을”(e-환경과조경 2020년 3월 19일자 기고) 허망한 저 제목을 좀 보자. “도시숲법이 새로운 기회와 도약”이 될 수 있다고 보잔다. “변화의 시대”이니 좀 변화해야 하지 않겠냐는 강요로도 읽힌다. 어디에나 붙일 수 있을 법한 단순 레토릭이지만 “니들도 좀 변해야 하지 않겠니?” 하는 우회적 오만함을 본다면 무리일까? 얼마 전 조경계와 전면전을 선언하듯 ‘도시숲 사업에 대한 조경 참여 배제’(“산림청, 도시숲 사업서 ‘조경업체 배제’ 공문 발송 논란”, e-환경과조경 2020년 2월 28일자 기사) 취지의 공문을 지자체에 하달한 산림청의 조언이기에 저의는 물론이고 표피적으로만 보기에도 민망하지 않을 수 없다. 조경계와 산림청의 해묵은 갈등이 최근 몇 년 행복한 동거가 되는 듯하더니 결국 여전한 야욕을 확인하게 되는 결말로 치닫는 것 같다. 2011년 당시 재단 사무국장으로서 역할 한 전력 때문인지 지금의 상황이 전혀 낯설지 않다. 일종의 트라우마로 안고 있는 법제 관련 사항은 산림청 입장에서는 언제나 사활을 논할 주제가 되기 일쑤였고, 실무자 반응과 대외 공표 사항의 이중적 태도가 알만 한 사람들에게는 공분을 사온 지도 오래다. 이번 일련의 사건들은 그런 본성적 특성에서 보자면 명확하게 이해된다. 조금 달라진 점은 해묵은 문제 해결에 이이제이 식으로 외부에서 영입한 조경 출신의 인사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소위 민간 스카우트 방식으로 그 자리의 무게와 방향을 일신하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그간 그 자리를 거쳐 간 내부 공무원들의 성과를 되돌아본다면 이런 변화의 목적은 명백하게 이해될 수 있다. 상생을 내세우며 지자체에 업무를 다잡는 이중적 행태도 이런 맥락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스스로는 변하지 않으면서 외부에는 변화하라 앞뒤 다르게 전략적인 셈이다. 변치 않은 산림청, 2011년과 2020년 산림청의 그 태도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2011년에도 지금처럼 장광설을 풀어놓으며 논점을 흐리고 허위와 무지를 섞어 발언하였다. 2011년 대전 산림청에 항의로 방문한 조경계 인사들에게 마치 어린아이 가르치듯 이미 공개된 내용을 하나하나 지루하게 읽으며 능욕 아닌 능욕을 보인 것이다.(“범조경계, 산림청에 도시숲법 공식입장 ‘유감’” 라펜트 2011년 11월 17일자 기사 참조) 그런 행태에 분연히 항의하고 그 행태와 불합리에 우리의 뜻을 분명히 전달하였음에도 그들은 항의 방문을 소위 “협의”로 뭉개며 입맛대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김경윤 이사장의 예시는 그런 수많은 모욕과 능욕의 일부일 뿐이다.(“도시숲법 제정에 대한 소고”, e-환경과조경 2020년 3월 19일자 특별기고 참조) 2020년 도시숲과장의 기고문은 그런 태도가 하나도 변하지 않았음을 그대로 드러내 준다. 일단 핵심을 잘 보이지 않게 하면서 읽는 사람이 지치게 하는 하나마나한 장광설이 기본 프레임이다. 사실 관계조차 잘못 파악하거나 호도하는 사항들을 교묘하다 싶을 만큼 녹여 놓고 있다. 공무에 임하는 자의 실력이라거나 국가 기관의 전략이라고 하기에는 치졸하고 옹졸하다. 지자체 하달 공문에 시끄러워지자(“산림청, 시민을 볼모로 정치질을 하려는가”, e-환경과조경 2020년 3월 10일자 기사 참조) 이처럼 툭 던지듯 기고문이라고 조경계에 내놓는 태도는 2011년의 산림청과 전혀 다르지 않다. 과연 누구에게 변화의 시대란 말인가? 미래와 변화에 그렇게도 중요하다며 도시숲이라는 주제를 다룬다는 산림청이 기막힌 그 하달 공문과 최근의 그 기고문에 한두 가지 문제만 내포한 것이 아니라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사실 관계나 현황 분석이 기초부터 잘못되었고 유리한 사실만 글쓴이의 시각에서 짜깁기한 면피 전략이 녹아 보여 2011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새로운 기회와 도약”이라는 그 설명만 잠시 보더라도 1) “정부 차원의 대책과 법률적 뒷받침”은 국토계획이나 도시계획, 도시공원녹지법 등 이미 관련 법제가 갖추어져 있고 도시든 산지든 농지든 조경공간을 설계하고 시공하는 조경분야에서 이미 업무로서 실행하고 있다. 관련 부서의 미약한 지원과 관심이 문제일 뿐 법제 미비가 문제는 아닌 것이다. 10만에 가까운 조경인들이 그간 법제도 없이 녹색공간, 녹지공간을 임의로 만들 수 있었겠는가? 2) 도시숲 “법률안 확정”은 산림청 입장일 뿐 알다시피 중요 사항에 대한 논의가 지속되는 와중에 일방적으로 의원입법(소위 “청부입법”)을 통해 국회 상정이 이루어졌다. 무엇이 “서로에 대한 신뢰 부족”을 이끌었는지 말하기에도 부끄럽다. 산림 법령 곳곳에 숨겨진 제한 사항들은 “다만”, “하지만”으로 부기된 내용들에서도 확인되지 않는가? 3) “우선 제정, 후속 개정”이라는 허울은 그간 산림청이 보여준 태도만으로도 정답이 뻔하다. 게다가 청장의 거취에 따라 상황이 바뀌고 담당자의 변경에 따라 실무의 단절이 발생해온 경험들은 지금의 장담에 어떠한 신뢰도 갖기 어렵게 한다. 도시공원 사무를 산림청에 이관하려는 시도까지 있었는데 이런 반응의 조경계가 문제라는 말인가? 4) “상생·보완·경쟁”이 지금도 어려운데 법령이 산림업계를 대변하는 입장에서 가능한 일이겠는가? 하청에 재하청으로 품질 문제가 지적되는 현실에서, 실력이나 기술이 없어 결국 조경계에서 해오던 현장 업무에 새로운 기회와 도약이 된다고 보는가? 그렇다면 공정 경쟁을 강화하고 국토부와 같은 직접 관련 부서에서 입법 또는 개정하도록 하는 것은 어떤가? “산림업계의 반발”이 없는 정말 순수하게 국민을 위한 사항이라면 기존 법제를 보완하는 것이 훨씬 간단하고 쉬운 일 아닐까? 도시숲을 국토부에서 조성하고 관리하게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지 않을까? 이미 관련 법제와 기술기준, 운영 노하우가 충분한데 말이다. 간단하게만 보아도 이렇다. 앵무새 같은 장광설에 업계 간 갈등을 염두에 둔 발언 등은 과연 ‘변화와 새로운 기회’로 ‘도약’하자는 그 정부조직, 그 부서에서 조경계에 할 수 있는 말일까? 문제가 과연 그것뿐일까? 물 나올 때까지 우물을 파겠다는 듯 10여 년이 넘게 지속되는 도시숲법에 대한 조경계 우롱의 작태는 그들의 트라우마를 넘어 공무의 폭거에 가깝다. 그들이 말하는 상생이 허울뿐임도 수차례 경험했다. 물량과 예산으로 몰아치듯 패권으로 이끄는 지금의 상황은 단적이다. 지자체 담당자의 파리 목숨에 덫을 놓는 공문이란 또 얼마나 무지막지한 일인가. 그러면서도 대안 없이 “건설 관련 사업은 조경계가 산림 관련 사업은 산자법에 따라”하면 된다며 조경계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는 웃지 못 할 답변을 태연히 하고 있으니 유체이탈 화법이라 아니할 수 없다.(“산림청, 도시숲 사업서 ‘조경업체 배제’ 공문 발송 논란”, e-환경과조경 2020년 2월 28일자 기사 참조) 같은 주제로 잠시 문제가 있었던 농진청의 경우를 보자. 정원을 소위 “무주공산”으로 보고 서로의 업역이라 다투던 산림청과 농진청은 실제 업무의 내용이나 목적에도 불구하고 훨씬 전문성이 높은 농진청 소관에서 산림청 업무로 고착되었다. 수목원이 정원보다 큰 개념이라는 억지 주장이 법제화 되는 모순도 산림청의 작품이었다. 이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느끼는 사항은 최소한 농진청은 약속을 지키고 신의를 기본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나 실무자들의 현장 중심 노력은 도시공원녹지법에 도시농업공원 유형이 신설되게 하는 등 문제없이 제도화 되는 데 일조하기도 하였다. 산림청은 왜 이렇게 하지 못하는 것일까? 어쩌면 재론할 필요도 없으리라. 그들이 생각하는 상생이 일반 상식이 통하는 상생이 아닌 것이다. 그 점 이번에 더욱 명확해졌다, 이제는 대화조차, 희망조차 가질 수 없을 만큼 말이다. 그런 상생은 없다, 그런 상생이라면 더욱 필요 없다!! 건전한 상식의 시민이라면 일방이 우선되는 상생이란 어불성설임을 누구나 알 수 있다. 패권을 바탕에 두는 그런 상생은 없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그런 기회는 있지도 않고 되지도 않는다. 어설픈 레토릭은 눈가림이자 현실 호도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어디 한 번 해보시지 식의 작태로 읽히는 일련의 사건들은 그 증거이다. 또한 그런 식의 상생이라면 국민과 미래세대에 오히려 독이 될 것이다. 필요 없다. 성찰하기를 바란다. 그간 벽에 대고 얘기하는 듯한 상황이 지속되었다. 다행히 최근 몇 년 동안 대화가 되는구나, 이야기가 가능하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런 배경에는 먼저 달라진 산림청의 변화와 그 과정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기대가 없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바뀌지는 않고 전략만 고도화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 것이 어떻게 상생일 수 있을까? 전임 청장과의 대화, 약속이 벌써 헌신짝이 아닌가? 표제로 돌아가 본다면, 공무로서의 그 자리는 말로만 상생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좌석이 아니다. 그간의 논의와 숙의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현장 변화를 이끄는 공무의 위치인 것이다. 게다가 해묵은 반목과 오해도 있어 단순한 교두보의 역할일 수 없는 위상이다. 또한 기본적으로 국민과 국가에 복무하는 공적 업무를 기본으로 담당하여야 하는 자리이다. 기회가 된다면 이번 하달 공문 사건과 같은 앞뒤 없는 행정엔 책임이 따라야 하는 등 신중한 외연, 소통의 경계에 태도 중심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무엇보다 상생이 아니라 공생의 중심 역할을 고민하고 소통해야 한다. 그러니 그 자리의 무게를 다시 묻는 것이다. 왕관은 피바람 위에 놓였을 지라도 새로운 피바람을 불러서는 곤란하다. 수많은 힘들이 교차하며 평형을 이룬 무게 중심 위에서나 지속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외연이 창발하고 새로움이 피어난다. 허망한 레토릭으로 변화와 기회를 가르치는 정도로는 매우 곤란하다. 모른다면 지금부터라도 성찰하고 책임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기고문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안명준 조경평론가, 한국조경학회 조경시공연구회장eirene95@naver.com
    • 2020-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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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경과조경 2020년 9월
  • 2021 최신판 CONQUEST 조경기사·조경산업기사 필기정복
  • 부동산투자론
공모전
  • LA+CREATURE This design competition—the third in the LA+ international series—asks whether we can live with animals in new ways, whether we can transcend the dualism of decimation on the one hand and protection on the other, and how we can use design to open our cities, our landscapes, and our minds to a more symbiotic existence with other creatures. BRIEF The LA+ CREATURE design ideas competition asks entrants to do three things: First, choose a nonhuman creature as your client (any species, any size, anywhere) and identify its needs (energy, shelter, procreation, movement, interaction, environment, etc.). Second, design (or redesign) a place, structure, thing, system, and/or process that improves your client’s life. Third, your design must, in some way, increase human awareness of and empathy towards your client’s existence. For jury panel, submission requirements, competition conditions, and Q+A, see menu tabs above. AWARDS US $10,000 total prize money 5 winners to receive US$2,000, a certificate, and publication in the LA+ CREATURE issue. 10 honorable mentions to receive a certificate and publication in the LA+ CREATURE issue. ENTRY PLATFORM OPENS August 1, 2020 SUBMISSION DEADLINE October 20, 2020 at 11.59 EDT (Philadelphia, USA time) WINNERS ANNOUNCED December 8, 2020 WINNERS + SELECTED ENTRIES PUBLISHED The LA+ CREATURE issue will be published in Fall 2021 SUGGESTED READINGS Jennifer Wolch & Marcus Owens, “Animals in Contemporary Architecture and Design,” Humanimalia: a journal of human/animal interface studies 8, no. 2 (Spring 2017) 1–26. Jennifer Wolch, “Zoopolis” in Jennifer Wolch & Jody Emel, Animal Geographies: Place, Politics, and Identity in the Nature-Culture Borderlands (Verso, 1998) 119–138. Ursula Heise, Imagining Extinction: The Cultural Meanings of Endangered Species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16). Timothy Morton, Humankind: Solidarity with Nonhuman People (Verso, 2017). Richard Weller, Zuzanna Drozdz & Sara Padgett Kjaersgaard, “Hotspot Cities: Identifying Peri-Urban Conflict Zones in the World’s Biodiversity Hotspots,” no. 1 (2019) JoLA: Journal of Landscape Architecture (2019), 36–47. John Beardsley, Designing Wildlife Habitats: Dumbarton Oaks Colloquium on the History of Landscape architecture XXXIV (Dumbarton Oaks, 2013). Chris Reed & Nina-Marie Lister, Projective Ecologies (Actar, 2014). Peter Atkins, Animal Cities: Beastly Urban Histories (Routledge, 2016). Donna Haraway, When Species Meet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08). Lori Gruen (ed), Critical Terms for Animal Studies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18). Richard Weller, “The Garden of Intelligence,” Transition: Discourses on Architecture 59 (1998) 114–132. (text) Caspar Henderson, The Book of Barely Imagined Beings: A 21st Century Bestiary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13). Animal Series (Reaktion Books, UK). Richard Weller, Claire Hoch & Chieh Huang, Atlas for the End of the World. LA+ WILD, LA+ Interdisciplinary Journal of Landscape Architecture, no. 1 (2015).
  • 2020 DSD삼호 조경나눔공모전 주거단지 보행공간 디자인 학생 아이디어 공모전 1. 주제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다비드 르 브르통) 도시의 주거와 일상생활에서 걷는 것만큼 소중하고 건강한 경험은 없다 걷는 사람은 전신의 감각을 열고 매순간발밑에 밟히는 땅을 느끼며 환경을 경험하고 기억한다 우리에게는 고밀한 고층 아파트단지에서도 편안하고 즐겁게 걸으며 풍성하고 아름다운 환경을 경험할 권리가 있다. 이번 공모전의 대상지는 수도권 교외 도시 외곽의 평범한 주거단지다 대한민국 어디서나볼 수 있는 고층 아파트 단지다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주거단지에서 삶의 질은 결국 보행공간의 디자인에 달려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마음껏 걷고 앉고 쉬며 일상을 풍요롭게할 수 있는 중심보행가로와 거점 공간 디자인에 조경 건축 도시 분야 학생들의 슬기로운 아이디어를 초대한다. 2. 공모전 일정 ○ 참가신청 : 2020년 9월 28일(월) 17시까지 ○ 작품접수 : 2020년 11월 2일(월) ~ 4일(수) 17시까지 ○ 작품심사 : 2020년 11월 10일(화) ○ 결과발표 : 2020년 11월 13일(금) ○ 작품전시 : 2020년 11월 16일(월) ~ 11월 23일(월) ○ 시 상 식 : 2020년 11월 20일(금) ○ 공모전 진행 참가신청부터 작품전시까지 전 과정을 온라인으로 진행함 3. 시상 ○ 대상 1작품 / 디에스디삼호 회장상: 상금 300만원, 상장, 상품(환경과조경 1년 구독권) ○ 최우수상 2작품 / 환경조경나눔연구원 원장상: 상금 100만원, 상장, 상품(환경과조경 1년 구독권) ○ 우수상 3작품 / 환경과조경 발행인상:상금 50만원, 상장,상품(환경과조경 1년 구독권) ○ 가작 5작품 이내 / 상장, 상품(환경과조경 1년 구독권) 4. 대상지 개요 ○ 아파트단지: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내리545번지 일원 5. 설계 내용 중심보행가로와 주변 공간의 디자인 + 주요 거점 디자인  단지(A1, A2블럭) 내 중심보행가로와 주변 공간의 디자인(A1블럭과 A2블럭 연결보행로 포함)  주요 거점(예: 광장, 학교 주변 등)의 공간 디자인  주민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는 보행 환경 고려  풍부한 경험을 제공하는 다양한 프로그램 제안  스마트한 공간 및 시설 제안 6. 문의처 환경조경나눔연구원 전화 02-585-4251 / 팩스 02-585-4240 / 이메일 lwi2020@naver.com
  • 서울역 폐쇄램프 재생 활성화 아이디어 공모 서울역은 한양도성의 관문, 최초의 철도환승역으로 도시화ㆍ 산업화를 이끈 교통의 중심지로 하루30만명 이상이 이용하는 대한민국의 대표적 철도역이며, 최근 서울역 일대는 서울로 7017을 중심으로 다양한 도시재생활성화사업 추진으로 서울역 동부와 서부가 하나의 도보 생활권으로 이어진 도심의 대표적인 공간입니다. 아울러, 서울역 공공성 강화사업 일환으로 서울로와 서울역사를 연결하는 보행로와 구서울역사 옥상 주차장을 대규모 휴게공간으로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이와 더불어 20여 년간 방치된 구서울역사의 폐쇄램프는 도심에 보기 드문 특색있는 공간으로 서울로와 서울역을 찾는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재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폐쇄램프를 어떤 공간으로 활용하면 좋을지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창의적 아이디어를 발굴하여 사업에 적극 반영하고자 공모를 추진하오니 많은 분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1. 공 모 명 : 서울역 폐쇄램프 재생 활성화 아이디어 공모 2. 공모내용 : 서울역 일대 공공성 강화를 위해 구서울역사에 20여 년간 방치된 폐쇄 램프를 다양한 도심활력공간으로 활용 할 수 있는 아이디어 공모 3. 공모기간 : 2020. 08. 06. (목) ~ 2020. 09. 14. (월) 4. 공모일정(안) - 공모기간 : 2020. 08. 06. (목) ~ 2020. 09. 14. (월) - 현장설명회 : 1회차 - 2020. 08. 13. (목) 14:002회차 – 추후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장소 : 공모 대상지(자세한 위치 홈페이지 공지) - 공모접수 : 2020. 09. 14(월) 17:00까지 제출 - 발표일자 : 2020. 09. 21(월) 중 /심사결과 및 당선작은 공모 홈페이지 공개 및 개인통보 예정 - 시상식 및 당선작 전시 : 2020. 10. 07(수) ~ 18(일) /시상식・전시 일시, 장소 등은 향후 안내 5. 참가자격 : 서울로에 관심있는 개인, 단체(팀) 누구나팀 당 최대 3인으로 제한(팀장포함) 6. 제출물 및 제출방법 - 신청서 및 동의서:이름, 생년월일, 주소, 연락처 입력 (양식제공) - 제출물 작품패널 : A1 (594×841㎜) 1매 / 10㎜ 폼보드 위 부착 작품설명서 : A4 (297×210㎜, 양식제공) USB : 작품패널 파일, 작품설명서 파일, 신청서 및 동의서 스캔본 - 현장제출 제출기간 : 2020년 09월 14일(월) 10:00 ~ 17:00까지 제출장소 : 서울시청사 본관1층 로비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110)※ 장소변경시 홈페이지 공고 7. 선정혜택 - 상금 및 상장 : 총 5작품에 총 시상금 1천 5백만원 1등작(1개팀):500만원 2등작(1개팀): 400만원 3등작(1개팀):300만원 4등작(1개팀):200만원 5등작(1개팀):100만원 - 표창훈격 : 서울특별시장 - 혜 택 : 현상설계 공모시 최종심사 작품으로 참여권 부여 - 시 상 식 : 2020년 10월 7일(수) 예정 ※ 접수 결과 및 심사 결과에 따라 시상 내역은 조정 될 수 있음. ※ 제세공과금은 담청자 부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