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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토리얼] 행복한 조경가
    주말의 소중한 늦잠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6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한 손에 감기는 크기와 가벼운 무게, 정교하면서도 감각적인 누드 제본,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표지, 자유분방함과 치밀함의 경계를 달리는 편집 디자인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서로 엮여 독자의 숨 쉴 틈을 허락하지 않는다. 첫 장을 열면 단숨에 읽어 내릴 수밖에 없는 따끈따끈한 신간 『도큐멘테이션Documentation』, 이 책은 오랜 수련과 실무를 거친 후 자신의 설계사무소 디자인 스튜디오 로사이design studio loci로 독립해 10년을 채우고 1년을 더 보낸 박승진 소장의 작업 기록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아모레퍼시픽 사옥에 이르는 그간의 역작을 모은 작품집이 아니다. 그동안 발표해 온 주옥같은 에세이와 논평을 모은 책도 아니다. “일과 일상이 자연스럽게 교차”한 10년의 기록을 펴내며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작업은 늘 조심스럽고 흥미진진하다. 모든 작업은 결국 땅 위에 구축되지만, 거기에 이르기까지 좌뇌와 우뇌, 양팔과 양손 그리고 두 다리의 끊임없는 구동을 요구한다. 긴장과 이완의 지속적인 반복, 불안과 안도의 이상한 동거, 진척과 되새김이 만들어내는 시간의 역행은 설계 작업자의 숙명이다. … 찢어진 메모지에, 혹은 값비싼 몰스킨에, 옐로페이퍼의 구겨진 한 모서리에도 그 흔적은 남는다. 이제는 휴대장치가 만들어내는 고해상도 이미지까지 가세하므로 기록들은 차고 넘친다.” 그는 기록의 “정리라는 행위는 가끔 무의미한 과장과 무책임한 소거를 동반하기 때문”에 특별한 구분과 정리 없이 10년의 일과 일상을 뒤섞어 묶었다고 변명하지만, 이 멋스러운 책에서 독자는 오히려 일과 일상의 행복한 만남을, 일과 일상을 가로지르는 섬세한 삶을 마주하게 된다. 책을 덮으며 마지막 장에 침대 맡 연필을 “압인기”(449, 453쪽) 삼아 꾹꾹 눌러 이렇게 적었다. 행복한 조경가. 일과 일상의 즐거운 동거는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이 일치할 때 가능하다. 이 둘이 일치하는 삶만큼 부러운 게 또 있을까.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 사람만큼 행복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행복 연구로 이름난 최인철 교수(서울대학교 심리학과)는 한 칼럼에서 최근의 연구를 소개하며 이런 질문을 던진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일치하지 않는 실존의 비극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까? 그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회의, 대화, 운동과 같은 일상적 경험을 하고 있는 그 순간순간의 즐거움과 의미는 그 일을 잘한다고 느끼는 정도보다 그 일을 좋아한다고 느끼는 정도에 의해서 훨씬 크게 좌우”된다고 한다. 일상에서 좀 더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잘하는 일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에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다. 『도큐멘테이션』에서 볼 수 있는 일과 일상의 행복한 만남, 그 열쇠는 ‘좋아하는 일 하기’가 아닐까. 주변의 여러 조경가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다보면 비단 박승진 소장뿐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서 행복감을 발견할 수 있다. 아마도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일 테다. 누군가 지금 조경이라는 두 글자를 앞에 두고 진로를 고민하고 있다면, 조경 일의 전망과 연봉, 조경의 가치와 조경가의 지위 같은 잣대를 잠시 뒤로 물리고 우선 조경이 내가 좋아하는 일인지 스스로 묻고 답해 보기를 권한다. 최인철 교수의 조언을 옮긴다.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수 없다는 ‘어른스러운’ 조언이 들려올 때마다, 늘 잘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도 없다는 자기만의 주문을 외워야 한다. 그것이 자기다움의 삶과 행복한 삶을 사는 비결이기 때문이다.” 이 달에는 호주를 대표하는 조경설계사무소 TCLTaylor Cullity Lethlean의 작업, 에세이, 인터뷰에 거의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했다. 독일의 토포텍 1Topotek 1(2015년 2월호), 프랑스의 아장스 테르Agence Ter(2016년 11월호) 이후 세 번째 조경가/설계사무소 특집인 셈이다. 대규모 정원과 수목원부터, 습지, 도시 광장, 부두와 항만, 탈산업 경관, 워터프런트, 공항에 이르는 TCL의 다양한 설계 작업에서 조경, 건축, 도시설계를 가로지르는 다층의 지혜와 다각의 디자인 문법을 만날 수 있다. 우리의 시선을 머물게 하는 TCL 작품의 더 큰 특징은 ‘호주 경관의 재해석’이라는 설계 태도일 것이다. 유럽이나 아메리카 대륙과 다른 호주 고유의 지질, 지형, 기후, 식생, 도시 문화를 재해석하는 시도가 프로젝트의 성격과 스케일에 따라 다양하게 전개된다. 그들의 ‘호주성’ 재현 해법은 ‘한국성’의 그것과 무엇이 같고 또 다를까. 김정은 편집팀장과 김모아 기자는 TCL의 작품 사진, 텍스트, 이미지 패키지를 지난 두 달간 검토하고 편집하면서 그들의 작품뿐 아니라 설계 방식과 작업 환경에서 어떤 “따뜻함”과 “편안함”을 느꼈다고 한다. 박승진 소장의 『도큐멘테이션』에 담긴 일과 일상의 행복한 만남과 비슷한 어떤 것이 아니었을까.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의 역동적 이중주. 본문의 인터뷰에서 TCL은 프로젝트 선택 기준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우리가 전문가로서 관심 있는 분야인지, 우리를 흥분하게 만드는 무엇이 있는지”가 잣대다. 개인적으로는 오클랜드 워터프런트를 다룬 지면에서 묘한 행복감을 느꼈다. 몇 해 전 IFLA 학술대회에 참가했을 때 잠시 틈을 내 산책했던 곳이다. 낯선 도시의 청명한 오후 풍경이 지면에서 다시 살아난다. 이번 TCL 특집 기획과 구성에는 이홍인 호주 리포터의 공이 아주 크다. 국내에서 조경 교육을 받고 호주에서 활동해 온 이채로운 경력의 조경가인 그는, 지난 몇 달간 TCL과 본지를 매개하며 열정적으로 기획을 이끌었을 뿐 아니라 네 편의 인터뷰 원고까지 맡았다. 깊이 감사드린다. 2017년 1월호부터 연재된 재미 조경가 안동혁(JCFO)의 ‘가까이 보기, 다시 읽기’가 이번 호로 막을 내린다. 16회에 걸친 긴 연재의 수고,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지면이 넘쳐 ‘그들이 설계하는 법’과 최이규 교수의 연재 ‘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을 다음 달로 넘긴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한다.
    • 배정한jhannpae@snu.ac.kr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가까이 보기, 다시 읽기] 세대에서 세대로, 공원의 성숙
    자연스럽고 이상적인 경관의 공원 산책로다. 수풀과 나무가 빽빽이 우거지고 완만한 구릉을 따라 커다란 암석이 솟아올라 있다. 아스팔트 포장과 콘크리트 경계석, 금속 펜스와 가로등과 같은 인공물이 아니었다면 숲 속 경관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의도적으로 주변 도시와 동떨어진 자연을 부지에 도입하려고 했던 ‘조경가’1의 설계 의도에 부합한다. 모암층인 맨해튼 편암Manhattan schist이 지면에 노출되었는데, 이 암석을 뚫고 자라난 식생이 자연스러움을 더한다. 공간의 이상적 이미지인 ‘야생’을 ‘공원’으로 만들어주는 인공물에 눈을 돌려 보자. 공원의 주요 산책로와 도로는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다. 관습적인 아스팔트 포장과 같이 포장 단면의 중앙을 약간 높게 들어 올리고 양쪽 가장자리를 낮게 계획해 길 양옆으로 빗물이 흐르도록 계획했다. 배수로 역할을 하는 아스팔트 포장의 양쪽 가장자리의 경계에는 약 5cm 높게 콘크리트로 경계석을 두어 빗물이나 이물질이 플랜터 안팎으로 섞이는 것을 방지했다. 아스팔트는 흔히 자동차 도로에 사용하는 재료로 여겨 보행로에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는 경향이 있지만, 내구성이 좋고 특히 열에 강한 장점이 있다. 이 때문에 보행로를 콘크리트로 포장할 때 필요한 균열 조절 줄눈control joint 없이 매끈한 포장면을 제공할 수 있는 재료다. 다만 오랜 시간 풍화와 마모에 따라 작은 균열이나 재료의 벗겨짐 현상이 생겨 포장 재료를 부분적으로 때우는 유지ㆍ관리 작업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공원의 주요 보행로와 광장에서는 아스팔트가 아닌 특별한 재료로 포장한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사진의 사례에서는 육각형 모듈의 콘크리트 블록으로 보행로를 포장했는데, 이는 이 공원이 위치한 뉴욕 시의 광장이나 공원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포장 재료다. 정형화된 모듈로 제조, 설치, 유지ㆍ보수를 비교적 간단히 할 수 있는 한편, 블록끼리 단단하게 맞물리는 구조로 포장면의 내구성이 높기 때문이다. 공원의 일부 구간에는 이용자와 서포터가 이 육각형 포장석을 기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기부자의 이름이나 기념하고 싶은 문구를 새긴 육각형 모듈의 화강석 포장석을 콘크리트 블록 사이사이에 끼워 넣는 방식이다. 1980년에 설립된 민간단체인 공원 관리위원회는 이와 같은 기부를 통해 공원 유지·관리 예산의 75%를 확보하고 있다고 한다. ...(중략)... 안동혁은 뉴욕에 위치한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에서 활동하고 있는 펜실베이니아 주 등록 미국 공인 조경가(RLA)다.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현재 회사에 8년째 근무하면서 Philadelphia Race Street Pier, 부산시민공원, London Queen Elizabeth Olympic Park, Hong Kong Tsim Sha Tsui Waterfront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다. * 환경과조경 360호(2018년 4월호) 수록본 일부
    • 안동혁dahn@fieldoperations.net /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
  • [명사의 정원 생활] 안평대군 이용의 정원 심리적 거루去累를 위한 방편, 혹은 순연하고 바른 성정을 위한 환경 조건
    안평대군, 조선 최고의 문예가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1418~1453)은 성군 세종의 셋째 아들이다. 시, 그림, 글씨에 모두 능해 삼절三絶로 불리기도 한 그는 서예에 특별히 뛰어나 중국에까지 명필가로 이름을 날렸다. 시문뿐 아니라 그림 그리기와 거문고 연주에도 일가를 이루었을 정도로 예술가적 면모를 두루 겸비한 인물이다. 탁월한 예술적 안목을 바탕으로 중국 역대 왕조와 일본 그리고 조선의 이름난 글씨와 그림 수백 점을 수집하여 조선 초기 문화 예술의 최고 후원자로 평가되기도 한다. 호방하고 활달한 성품을 지닌 그는 집현전 학자를 중심으로 한 당대의 문인과 예술가는 물론 종교인, 중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폭넓게 교류하면서 문예적 소양을 자유분방하게 발휘했다. 타고난 재능과 총명함으로 학문과 예술을 사랑했고, 선한 심성에 덕과 배포가 있어 뭇사람들이 믿고 따랐다. 세종을 도와 왕실 주도의 시회를 위시한 문학 모임과 연회, 서적 편찬, 경전 번역, 한글 창제 등에 적극 참여한 안평대군은 조선 초기의 문예 부흥을 이끈 핵심 주역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친형 수양대군(세조)에 의해 역적으로 몰려 36세 젊은 나이에 죽임을 당했다. 활짝 개화하기 시작하던 조선의 문예 활동도 함께 시들었고, 그와 관련된 흔적들도 철저히 파괴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정원가로 안평대군 읽기 안평대군은 왕자로서, 그리고 대군으로서 화려하고 풍족한 삶을 살았지만 친형에게 죽임을 당한 비극적 삶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36년이라는 길지 않은 생애였지만 정원 생활과 관련해 그가 남긴 족적은 뚜렷하다. 그가 직접 조영하거나 일정 기간 이상 살며 즐긴 정원은 다음과 같다. 수성궁: 안평대군은 13세에 혼인한 직후 궁궐에서 나와 인왕산 자락의 수성궁水聲宮에서 살기 시작했다. 인왕산 계곡 수성동은 그윽한 골짜기 안에 기암괴석이 여기저기 솟아나 있는 가운데 암반 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소리로 유명한 한양의 경승지였다. 그는 있는 자연에 다채로운 정원 요소를 갖추어 놓고서 안팎의 경관과 경물을 골라 48경이라 이름 짓고 그림을 그려 즐겼다. 그림을 보면서 먼저 자신이 제화시題畵詩를 짓고 노래했다. 그런 후에 최항, 신숙주, 성삼문, 이개, 김수온, 이현로, 서거정, 이승윤, 임원준 등 당대 최고 문인 학자들을 초대해 48경을 구경시키고 그 감흥을 시로 짓도록 요청해 받았다. 당시의 시를 모은 ‘비해당48영匪懈堂四十八詠’에는 온갖 경물을 다채롭게 갖춘 수성궁 정원의 호사로운 면모가 잘 묘사되어 있다. 시에 언급된 36종 식물 중에는 귤, 치자, 석류, 파초 등의 남부 수종은 물론 일본철쭉까지 있어 당시로서는 최고 수준의 식물 수집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정원은 다양하고 특색 있는 유형의 건축물과 소정원 그리고 수공간이 계류와 지형을 따라 분화되어 있었다. 왕족의 부와 권력을 바탕으로 안평대군의 관심과 취향이 한껏 구현된 고급 정원인 셈이다. ...(중략)... 성종상은 서울대학교에서 조경을 공부한 이래 줄곧 조경가의 길을 걷고 있으며, 지금은 대학에서 조경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선유도공원 계획 및 설계, 용산공원 기본구상,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 마스터플랜, 천리포수목원 입구정원 설계 등이 있다. 최근에는 한국 풍토 속 장소와 풍경의 의미를 읽어내고 그것을 토대로 풍요롭고 건강한 삶을 위한 조건으로서 조경 공간이 지닌 가능성과 효용을 실현하려 애쓰고 있다. *환경과조경360호(2018년 4월호)수록본 일부
    • 성종상jssung@snu.ac.kr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 [이미지 스케이프] 다르게 보기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보는 세상은 실제 세상과 조금 다른 느낌입니다. 프레임으로 주변이 모두 가려져 제한된 대상만 보게 되어 생기는 현상이겠지요. 아주 잘 만든 가상 현실을 보는 느낌이랄까요. 아니면 여행객이 되어 우리가 사는 모습을 구경한다는 착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한발 물러서서 세상을 보는 그런 느낌이 듭니다. 거창하게 얘기하자면, 세계를 객체화된 대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작년 늦가을이었습니다. 회의가 있어 안산시에 갔다가 경기도미술관에 잠깐 들렀습니다. 미술관에 도착하니 막 문을 닫을 시간이었습니다. 겨우 입장을 해서 작품들을 서둘러 둘러봤습니다. 좀 일찍 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생각하며 출구 쪽으로 향하는 바로 그때, 창밖으로 아주 멋진 세상이 펼쳐졌습니다. 하늘을 품은 얕은 수반과 세로로 줄긋기를 한 듯한 검은 기둥들의 실루엣, 거기에 이런 풍경을 배경으로 걸어가는 사람들까지. 마치 커다란 스크린을 통해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이 페이지를 펼칠 때 배경 음악이 나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얼른 카메라를 꺼내 들었습니다. 뭔가 새로운 느낌이 들 때마다 자동으로 나오는 반응이지요. 그리고는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저쪽 끝에서 어떤 분이 걸어오시네요. 조형물과 겹칠 때를 기다렸다 셔터를 살짝 눌렀습니다. 이번 사진은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사진을 찍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요. 또 사람마다 그 이유가 조금씩 다를 겁니다. 그럼 내가 사진을 찍는 이유는? 기본적으로는 기록이 목적이지만, 다른 이유를 찾자면 사진을 통해 세상을 좀 다르게 보고 싶어서인 것 같습니다. 익숙한 모습을 다르게 볼 때가 참 흥미롭거든요. 세상을 뭔가 다르게 찍는 게 재미있습니다. 뷰파인더로 보는 세상, 그래서 즐겁습니다.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동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 도시건축 소도 등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분야의 실무를 담당한 바 있으며, 신구대학 환경조경과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로 조경 계획 및 경관 계획 분야에 학문적 관심을 가지고 있다.
    • 주신하sinhajoo@gmail.com /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
  • [시네마 스케이프]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갇힌 물, 흐르는 물, 춤추는 물
    1960년대의 미국은 백인 남성이 주도하는 시대였다. 천재 여성 수학자의 실화를 다룬 ‘히든 피겨스’는 차별과 편견을 딛고 성공한 당대 흑인 여성들을 그린다. 흑인 전용 화장실에 가기 위해 구두를 신고 먼 거리를 뛰어다니는 그들의 상황이 애처롭다. 식당이나 버스에서도 좌석을 분리한 인종 차별의 시대였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의 시대 배경도 1960년대다. 장애를 가진 여성, 흑인 여성, 노인 게이, 소련 스파이, 심지어 괴생물체가 주요 등장인물이다. 말 못하는 여자 사람과 반은 사람이고 반은 물고기인 생물체의 사랑을 그린 19금 영화다. 논리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서사지만 영화를 보는 중에 나도 모르게 왜 눈에서 물이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주인공 엘라이자(샐리 호킨스 분)는 강에서 버려진 채 발견되어 고아원에서 자랐다. 말을 알아듣지만 하지는 못한다. 그녀의 직업은 비밀 우주 연구소의 청소부다. 밤 아홉 시에 일어나 자정에 출근해서 동틀 무렵 퇴근한다. 허름한 극장 건물 위층에서 혼자 살지만 외롭지는 않다. 옆방에 사는 화가인 노인 자일스(리차드 젠킨스 분)와 텔레비전을 함께 보며 식사를 하고 고민을 들어주는 일상을 공유한다. 그는 다니던 회사에서 쫓겨났고 단골 파이 가게의 남자 점원을 짝사랑한다. 따뜻한 심성의 직장 동료 젤다(옥타비아 스펜서 분)는 가부장적인 남편 험담으로 시작해 일하는 내내 말하기를 쉬지 않는다. 그들은 사회와 가정 모두에서 핍박 받는 소수자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0호(2018년 4월호) 수록본 일부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국가 권력과 정의 사이에서 고민하는 「워싱턴 포스트」 여성 발행인의 내면을 다룬 영화 ‘더 포스트’는 울림을 준다. 남자들에 둘러싸여 힘든 결단을 해야 하는 그순간, 메릴 스트립의 떨리는 목소리를 잊을 수 없다.
    • 서영애youngaiseo@gmail.com / 기술사사무소 이수 소장
  • [에디토리얼] 절제와 진정성
    새봄을 알리는 화창한 표지로 시작하는 이번 3월호에는 스웨덴을 대표하는 조경가이자 유럽 조경계의 지성으로 이름난 토르비에른 안데르손Thorbjörn Andersson의 근작 세 점과 에세이 한 편을 싣는다. 스웨덴과 미국에서 미술사, 건축, 조경을 전공하고 1980년대 초부터 조경가로 활동해 온 안데르손은 지난 30여 년간 조경 설계를 통해 도시 공공 공간의 사회적 역할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펼쳐왔다. 특히 그의 작업에는 북유럽 디자인 특유의 검박하고 섬세한 디테일, 단순과 절제의 미덕, 실용적 기능성이 도시 공간을 통해 구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케아IKEA와 에이치앤엠H&M의 고향 스웨덴만큼 자연 환경이 디자인 문화에 영향을 미친 나라는 없을 것이다. 스웨덴의 넓지만 척박한 토지, 제약이 많은 기후와 지형은 사회민주주의 정신과 결합되어 패션과 가구, 음악과 영화, 제품 디자인과 건축은 물론 도시설계와 조경에서도 “더 아름다운 실용”을 지향하는 “굿 디자인”의 전통을 낳았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전 세계적으로 식지 않는 북유럽 디자인 열풍의 핵심은 화려한 장식이 아니라 군더더기 없는 디테일, 늘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 자연스러움이다. 너무나 당연한 것 같은 이런 가치를 일상에서 실천한 문화적 토양이 곧 스웨덴 디자인의 열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토르비에른 안데르손의 조경 작업은 스웨덴 디자인 정신의 도시 공간적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이번 호 지면에 소개하는 그의 캠퍼스, 묘지공원, 기업 정원은 서로 다른 성격의 도시 공간이지만, 우리는 그 차이를 가로지르는 절제와 실용의 미학을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다. 안데르손은 『환경과조경』이 많은 지면을 할애해 특집 격으로 다루고 싶은 ‘위시 리스트’ 조경가 중 한 명이었는데, 이번에는 우연한 기회에 다소 급하게 섭외되어 그의 작업 전체를 깊이 있게 다루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홈페이지http://thorbjorn-andersson.com에 공개된 포트폴리오를 통해서라도 그가 지향하는 절제thrift와 진정성authenticity의 도시 조경 전반을 살펴보시길 권한다. 조경가에 의해 생산되고 있는 동시대의 많은 외부 공간이 얼마나 과장과 허위로 가득 차 있는지 반성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안데르손의 조경가로서 이력 중 특이한 점은 30년 이상 북유럽의 대표적 조경가로 활약해 왔음에도 자신의 설계사무소를 경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한 사무실에 적을 두고 있지만 독립적으로 작업하며 때로는 다른 조경가, 건축가, 도시계획가와 유연하게 협력하는 이채로운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독립 조경가, 프리랜서, 1인 오피스 등 여러 가지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 그의 작업 방식이 어떤 장점과 한계를 지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면밀한 토론이 필요하다. 그러나 안데르손의 방식은 최근 국내외의 젊은 세대 조경가들 사이에서 시도되고 있는 1인 또는 소규모 작업 집단 경향과 관련해서 참고할 부분이 적지 않다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토르비에른 안데르손을 작품보다 글로 먼저 만났다. 그는 실무 조경가로서는 드물게 여러 책과 잡지를 통해 적지 않은 글을 발표해 왔다. 조경 작품 못지않게 검박하고 단순한 그의 글에는 현대 조경이 도시 공공 공간의 형성과 회복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지향해야 하는가에 대한 주장이 군더더기 없는 정제된 논리로 담겨 있다. 이를테면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vs. 조경 설계”에서 그는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이 옴스테드나 맥하그의 접근 방식과는 달리 “건축 중심의 블록이 아니라 공공의 공간”을 출발점 삼아 도시의 생존과 회복을 꾀하는 시대정신이라고 해석하면서 동시대 조경 설계의 역할을 강조한 바 있다(Topos 71, 2010). 이번 『환경과조경』 3월호를 위해 그가 보내 온 에세이 “설계 방법으로서 자연”은 짧고 간소한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현대 도시에 자연의 진정성을 제공하는 조경의 가치를 담담히 웅변하고 있다. “우리는 도시 교외 지역들이 상상 속에만 존재할 법한 고풍스러운 작은 마을을 흉내 내는 모습을 목도하고 있으며, 에어컨이 가동되는 쇼핑몰들은 전 세계 이국적인 명소를 보여주는 환상의 테마 상업 시설로 설계되고 있다. 이는 가공된 환경일 뿐 진정성과는 동떨어져 있다. 조경은 이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 자연,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연스러움은 진정성 넘치는 경험을 제공한다. … 이러한 경험은 … 자연과 도시 사이에 개념적 연결고리를 형성한다. 자연에 대한 경험은 예측 불가능한 개방적 성격을 띠며 변화의 여지를 갖고 있다. … 자연은 현대 도시의 특성을 반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연은 나무, 식물, 바위 그리고 개울 같은 대상이 아니라 변화의 양상을 품은 여러 과정의 집합체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길고 추웠던 겨울이 다시 찾아온 봄에 길을 내주고 있다. 이번 3월호가 독자 여러분의 봄기운 가득한 친구가 되길 소망한다. 이번 호에는 자르뎅 드 바빌론(Jardins de Babylone)의 도전적 작업들도 소개한다. 진취적 실험을 펼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마인드도 갖춘 이 젊은 조경가 그룹의 대표 아모리 갈롱(Amaury Gallon)과의 인터뷰를 본지 프랑스 리포터 박연미 씨가 담당해 주었다. 작품 섭외와 인터뷰를 진행해 준 수고에 감사드린다. 집적경관, 축조경관, 절충경관으로 이어진 최영준 소장(Laboratory D+H)의 ‘그들이 설계하는 법’ 연재가 이번 호로 막을 내린다. 그간의 노고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얼마 전 로스앤젤레스에서 서울로 옮긴 그의 베이스캠프가 ‘전진경관’의 새로운 기지가 되기를 기대한다.
    • 배정한jhannpae@snu.ac.kr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이미지 스케이프] 빛, 창, 공간
    새 달이 시작되면 어김없이 『환경과조경』이 도착합니다. 반가운 마음에 책을 받아 들고 어떤 글들이 실렸나 살펴봅니다. 생각, 사진 그리고 소식이 적당히 섞인 『환경과조경』, 그야말로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책을 보다 정신이 번쩍 듭니다. ‘아, 벌써 원고 마감할 때구나. 이번엔 어떤 사진으로 글을 쓰나?’ 사진 폴더를 뒤적입니다. 그 달에 찍은 신선한(?) 사진들이 별로 마음에 안 들면 오래된 사진들까지도 들춰 봅니다. 추억이 담긴 음악이 옛 시간을 연상시키는 것처럼 예전 사진을 볼 때면 사진을 찍던 순간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에겐 사진이 일종의 기억 저장 매체이기도 합니다. 다행히 이번 사진은 며칠 전 답사한 당진 아미미술관의 전시실 모습입니다. 아미미술관은 폐교된 초등학교를 미술가 부부가 전시 공간으로 새롭게 꾸민 곳인데, SNS를 통해 사진들이 소개되면서 최근 부쩍 유명해지고 있습니다. 전시실 한쪽 면을 넓게 차지하는 창문들과 마룻바닥을 통해 예전 교실의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지더군요. 창문을 통해 빛이 들어오니 전시실의 작품들이 또 새롭게 보입니다. 전시실 흰 벽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전시물과 어우러져 또 하나의 작품이 됩니다. 역시 공간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것은 빛인가 봅니다. 조경에 비해 건축은 훨씬 더 치열하게 빛을 고민하던데, 조경가도 빛에 대해 조금 더 신경을 쓰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미미술관. 따뜻한 빛이 가득한 전시실 내부도 좋았지만 기다란 복도와 운동장에서 느껴지는 작은 시골 학교의 느낌도 참 좋았습니다. 조금 더 따뜻해지면 다시 한 번 가고 싶은 곳입니다.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동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 도시건축 소도 등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분야의 실무를 담당한 바 있으며, 신구대학 환경조경과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로 조경 계획 및 경관 계획 분야에 학문적 관심을 가지고 있다.
    • 주신하sinhajoo@gmail.com /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
  • [그들이 설계하는 법] 절충경관
    잠시 자고 일어나 시계를 보니 3시 34분. 알람을 못 들었는데 눈이 떠졌다. 상하이의 밤은 아직 컴컴하다. 이제 3박째. 첫 이틀 동안 클라이언트 그룹과 설왕설래하며 잡아놓은 방향대로 수정하려 막상 도면을 펴니 생경하게 다가온다. 내일 있을 보고에서 옥상 정원의 계획안을 확정 짓지 못하면 공사 일정에 차질이 생기거나 실시 설계팀이 무너지게 된다. 폴더를 뒤적여 라이노 파일을 찾는다. SHCL001_6F_Rooftop_16.3dm, 16번째 수정본이다. 그간 전반적인 변화가 있는 대규모 변경이 서너 번 있었다. 어제 오후 조경부 부장이 지켜보다시피 하는 상황에서 태블릿으로 그린 평면을 클라우드로 보내 3차원 모델의 바닥에 깔아보는데, 모퉁이에 그려놓은 입면의 비율이 틀렸음을 깨달으며 식은땀이 나려 했다. 다행히 높이 값을 주어보니 그다지 나쁘진 않다. 어서 재질을 입혀 루미온으로 익스포트. 캐드에서 가장 멍청하면서도 스마트한 명령어는 ‘해치넣기’다. 많은 경우 캐드를 멈추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복잡한 영역에 대한 면적을 쉽게 알려준다. 수십여 번의 해치 끝에 나온 제곱미터 값, 아니 헤베 값을 넣고 엑셀의 수식을 돌린다. 항목별 총량이 나오고 채팅창에 받아 놓은 단가를 다음 열에 넣기 시작한다. 합계를 돌려보기 무섭지만 AutoSum 기능은 이미 매우 높은 첫자리 숫자를 보여주고 있다. 실수는 안 했는지 다시 면적을 구해보지만 고작 수십만 원의 오류를 찾았을 뿐 아직도 3백만 원 이상이 초과된 숫자가 맨 아래에 보인다. 물론 이것은 이윤이 전혀 없는 실행가에 가깝다. 이걸 어찌해야 하나. 결국 다시 스케치하기 위해 펜을 잡는다. 인천공항에 내리기 두 시간 남짓 남았다는 방송이 나온다. 노파심에 좌석 사이 전원에 랩톱을 다시금 연결해 본다. 불이 켜지지 않는, 배터리가 다 된 랩톱을 탓해도 소용없다. 항공기 좌석의 전압이 너무 낮다. 공원심의위원회에 재심의 요청을 결정한 어제 저녁, 분명하지 않은 변경 사항에 최대한 대응한 수정안을 머릿속에 계속 그려보며 준비한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심의에 상정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12시간 안에 시 담당 부서에 접수해야 하는데, 인천공항에 체류하는 14시간 동안 수정하고 변경해야 하는 80장 분량의 파워포인트와 조서들을 생각하면 눈앞이 깜깜하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전원이 구비된 커피숍을 찾지만, 아직 문도 열지 않은 새벽 5시. 조건부 가결이라도 되어야 올해 예산으로 집행될 텐데…. 작은 기도를 읊조리며 작은 의자에 앉아 11시간을 줄곧 작업해 제출하고, 다시 태평양을 건너는 비행기에 오른다. ...(중략)... 최영준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설계 대학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의 SWA 그룹(SWA Group)에서 다양한 성격의 설계 및 계획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미국조경가협회상(ALSA Honer Award), 아키프리 인터내셔널(Archiprix International) 본상, 뉴욕 신진건축가공모 대상, 제4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대상 등을 수상했다. 2014년에 로스앤젤레스 기반의 설계사무소 Laboratory D+H를 공동 설립하고 L.A., 센젠, 상하이에 이어 서울 오피스를 꾸려 나가는 중이다. * 환경과조경 359호(2018년 3월호) 수록본 일부
    • 최영준choiyjoon@gmail.com / Laboratory D+H 소장
  • [가까이 보기, 다시 읽기] 불완전함과 시간이 빚은 자연스러움
    알록달록한 색상의 포장석을 켜켜이 쌓아 만든 독특한 디테일의 포장이다. 검은색, 흰색 그리고 붉은색과 노란색까지 다양한 색상의 화강석 판석을 세워 쌓듯이 바닥에 깔아놓았다. 각각의 판석은 대략 230mm 너비에 30mm 폭의 좁고 긴 모양으로, 100mm 깊이로 땅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 포장의 레이아웃에는 길이쌓기running bond 같은 정형적인 포장 패턴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포장 줄눈의 배열에 어느 정도 규칙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를 철저하게 따르고 있지는 않다. 포장 숙련공의 손재주와 판단에 따라, 하나하나 다른 색상의 돌을 고르고, 전체와 조화를 이루도록 쌓아나간 것으로 보인다. 포장석의 이음매는 오픈 조인트open joint였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흙이 그 틈을 메우고 군데군데 잡풀이 자라고 있다. 조인트에 흙이 채워지면서 불규칙한 폭의 이음매가 드러난다. 그렇지만 이것이 불완전한 디테일이나 시공상의 실수로 보이기보다는, 마치 손 스케치처럼 자연스럽고 따듯하게 느껴진다. 포장석을 재단한 모양 또한 반듯하고 정확한 형태의 직사각형이 아닌, 모서리가 닳고 이지러진 모양으로 자연스러움을 더한다. 색상의 다양함과 석재를 재단한 모양의 불규칙함, 그리고 줄눈의 불완전함으로 연출되는 자연스러움은 설계가가 하나하나 완벽하게 도면에 명시하여 컨트롤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솜씨 좋은 시공과 함께, 시간에 따른 자연의 레이어가 추가되어 완성된 디테일이다. 이 포장석 길은 2004년 완공 당시에는 원래 흙다짐 포장이었지만, 이는 5년도 지나지 않아 풍화 작용으로 인하여 휠체어 사용이 불가능할 정도로 울퉁불퉁하게 망가져버렸다. 견고한 새 포장 방법의 모색 끝에, 부엌의 조리대countertop를 시공하고 남은 화강석 조각을 모아 포장 재료로 재생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포장 재료의 알록달록한 색상은 자투리 재료를 사용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결과다. ...(중략)... 안동혁은 뉴욕에 위치한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에서 활동하고 있는 펜실베이니아 주 등록 미국 공인 조경가(RLA)다.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현재 회사에 8년째 근무하면서 Philadelphia Race Street Pier, 부산시민공원, London Queen Elizabeth Olympic Park, Hong Kong Tsim Sha Tsui Waterfront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9호(2018년 3월호) 수록본 일부
    • 안동혁dahn@fieldoperations.net /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
  • [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 차명호 섬이정원 대표 섬이 곧 정원이다
    남쪽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안온한 계곡은 바람도 잠잠했다. 태양을 받아안듯 팔을 벌린 초겨울의 남해, 정원 산책은 한마디로 행복감이었다. 다랑이논이라는 지형 위에 다양한 형식의 컨템퍼러리 가든을 제시한 섬이정원. 수백 년 전에 조성된 둠벙과 농업용 수로라는 문화재급 경관을 그대로 살리면서 우리식으로 귀화한 유럽 스타일과 노하우를 접목시켰다. 외래종과 토종이 서로 어울려 자라고 반딧불과 논의 생물이 번성하는 곳. 우리 국토는 하나의 큰 정원이라는 깨우침을 주는 곳이다. 발아래 펼쳐진 남해 바다와 다도해 섬들의 풍광은 ‘섬이 곧 정원이다’라는 뚜렷한 철학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오르락내리락 높낮이가 다른 다랑이논은 누군가 오래 전에 쌓은 돌담으로 지탱된다. 그렇다, 오래됐다는 것이 핵심이다. 거기에 열한 개의 작은 정원이 각각의 방처럼 다른 주제를 선보이며, 때로는 이태리처럼, 때로는 캘리포니아스럽게 펼쳐진다. 다랑이논은 산 위의 바다 같다. 정원이 물 위에 섬처럼 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초겨울이라 모든 것이 말라 있을 법한 계절이었지만, 섬이정원의 곳곳은 물길과 연못으로 가득했다. 한겨울에도 풍성함과 생동감을 주는 물소리는 반도의 남쪽 끝을 실감케 한다. 정원이란 해 보기 전엔 결코 모르는 것이다. 엄청난 노동이다. 불확실성과 비예측성이 지배하는 정원을 혼자의 힘으로 가꾼다는 것은 더욱 상상하기 어렵다. 그래서 섬이정원은 빼어나다. 무엇보다 정원 자체에 집중하는 사람, 차명호 대표 개인의 취향과 안목이 차분하고 짙게 반영된 곳이라 더욱 값지다. 철저하게 나만의 정원인데, 역설적이게도 그 어느 곳보다 공감되는 정원이기 때문이다. 50톤의 자갈을 수레로 깔았다. 나무 한 그루, 바닥 한 뼘에도 큐레이터로서 그의 판단과 손길이 속속들이 채워져 있다. 어쩌면 채우는 것은 돈으로 가능하지만, 비우는 것은 안목일 수밖에 없다. ...(중략)...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 저서 『시티오브뉴욕』을 펴냈고,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 및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가졌다.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에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며 울산 원도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9호(2018년 3월호) 수록본 일부
    • 최이규yichoe2013@gmail.com / 계명대학교 도시학부 생태조경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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