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윤, 신유정, 박형석 ([email protected])
올해는 한국조경이 역사 50년을 맞이하고, 30년만에 세계조경가대회를 개최하는 등 기념비적인 행사들이 줄을 이었다. 기념은 박제화된 의미가 아닌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역동적인 동기가 되어야 한다. 올 한 해를 축제로 기억하는 동시에 새로운 도약의 한 해로 만들기 위한 조경계의 노력들이 올해 10대뉴스에 담겼다.
-편집자주
‘광주 IFLA’ 성공적 개최, 한국조경 위상 드높이다
올해는 한국조경의 발전된 위상을 전세계에 알린 해가 됐다. ‘제58차 IFLA 세계조경가대회’가 올해 8월 31일부터 9월 2일까지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됐다. 한국이 세계조경가대회를 개최한 것은 1992년 서울, 경주, 무주 개최 이후 30년 만의 일이다.
세계조경가협회(이하 IFLA)와 광주시가 주최하고,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 조직위원회, 한국조경학회, 한국조경협회가 공동으로 주관한 이번 대회는, ‘리:퍼블릭(RE:PUBLIC)’을 주제로 우리 도시가 직면하고 있는 감염병·기후위기·인구감소·도시재생 등의 복합적 난제를 풀어갈 수 있는 사회적 좌표가 공공성의 회복에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진행됐다. ▲조경의 공공 리더십을 되찾기 위해 현재까지 전문적이고 학문적인 실행들을 되짚어보고(re:visit) ▲새로운 담론과 기술을 통해 지구를 재구성(re:shape)하고 ▲더 건강하고 활기찬 방식으로 일상생활을 되살림(re:vive)으로써 ▲마침내 자연과 다시 연결(re:connect)된다는 것을 소주제로 정했다.
대회에는 40여 개국 약 1500명의 조경가가 모여 동시대 도시가 직면하고 있는 기후변화, 환경위기, 팬데믹, 도시쇠퇴 등의 난제를 풀어갈 해법을 논의했다.
‘문화재’에서 ‘국가유산’으로 변경…“전통조경, 달라지는 위상”
60년간 쓰여온 ‘문화재’라는 명칭이 ‘국가유산’으로 바뀔 전망이다. 올해 9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는 기존 재화 개념의 ‘문화재’라는 명칭이 역사와 정신까지 포함하는 ‘국가유산’으로 확장하는 등 국가유산 체제로 전환을 위한 총 13개의 법률 재·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번에 문화재 명칭과 분류체계 개선을 추진하게 된 배경은 현재 대내외적으로 사용 중인 ‘문화재’라는 용어가 가지는 의미상의 한계를 극복하고 유네스코 등 국제기준과의 정합성을 맞추는 등 문화재 정책 범위의 확장과 시대변화·미래가치를 반영한 체계 수정이 필요하다는 요구에 따른 것이다. 현행 문화재보호법은 일본의 문화재보호법을 대부분 원용해 제정된 것으로, 기존 ‘문화재’라는 용어로는 확장된 문화재 정책 범위를 포괄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특히 이번에 ‘자연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안’ 제정을 추진하면서 ‘전통조경’의 정의와 함께 ‘문화재청장이 전통조경의 보급 및 육성을 위해 전통조경 조사·연구, 전문 인력 양성·지원, 전통 수종의 보급·양성 등의 시책을 추진하도록 한다’는 의무사항을 명시했으며, 전통조경 기본계획 수립 등을 통해 ‘전통조경과’ 신설을 위한 기반이 다져질 것으로 기대된다.
조경설계, 품질 향상·권익 개선 ‘스텝 바이 스텝’
지난해 조경설계표준품셈이 제정된 이래 조경설계업 분야의 권익 개선을 위한 행보가 지속적인 성과를 보였다.
국토교통부 녹색도시과는 ‘조경설계 공모제’를 추진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미 건축설계는 공모제도가 시행되고 있어서 그간 조경업계에서도 조경설계 공모제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국토부는 조경진흥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근거를 마련할 계획으로, 제도가 시행되면 조경산업표준품셈 적용을 강제화할 예정이어서 조경설계 단가의 현실화 및 신진 조경가들의 공공부문 진입 장벽이 대폭 완화될 전망이다.
한국조경설계업협의회는 지난 6월 불공정한 계약과 불합리한 설계대가에 따른 피해를 막고자 ‘조경설계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공표했다. 이번 조경설계 표준계약서는 조경설계자 입장에서 작성된 것으로 비록 법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는 문서는 아니지만, 계약에 있어서 설계자에게 유리한 부분과 불리한 부분을 파악하여 스스로의 권리를 찾고 상대방의 요청에 방어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LH는 단지조경 설계발주시 과업 내용에 디자인 감리를 반영하는 ‘조경디자인 감리제’를 시행한다. 공사감독과 시공사가 설계를 변경할 시에는 디자인 전문가가 협업하여 지원하는 체제로 전환되는 내용이다.
한국은 지금 ‘자연주의 정원’…‘피트 아우돌프 정원’ 관심 집중
‘자연주의 정원’이 국내 정원의 중요한 흐름으로 나서고 있다. 식물이 태어나서 죽고 사라지는 모든 과정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한 계절만 볼 수 있는 정원이 아닌 사계절 내내 변화하는 ‘자연주의 정원’에 대해 배우고 실천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
이미 국내 작가로는 2012년 황지해 작가가 첼시플라워쇼에서 DMZ의 유일한 생태자산을 통해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자연의 힘과 재생력을 정원으로 선보였던 ‘DMZ: 금지된 정원’이라는 작품이 심사위원으로부터 “자연주의라는 새로운 시대 흐름이 창조되는 터닝포인트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그리고 올해는 자연주의 정원의 대가 피트 아우돌프(Piet Oudolf)가 울산에 ‘자연주의 정원’을 조성하고 있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는 울산시민의 관심과 열정으로 5급수의 죽은 강을 1급수의 생태계가 살아있는 생명의 강으로 변화시킨 태화강의 스토리에 반해서 아시아 최초로 태화강 국가정원 부지 1만 8000㎡에 정원을 조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초·중등 학교환경교육 ‘의무화’ 시행…학교 교육 ‘생태적’ 전환
‘환경교육의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지난 5월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초·중등학교에서의 환경교육이 의무화되고, 어린이집에도 유치원과 동일하게 환경교육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가 마련됐다. 이번 개정은 미래세대가 기후·환경교육을 필수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마련됐으며, 정부는 앞으로 학교 교육의 생태적 전환과 교육 전반에 걸쳐 기후변화 대응 교육을 선도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이로써 2023학년도부터 초·중학교는 학교환경교육을 반드시 실시해야 한다. 다만 ‘환경’ 과목을 필수 교과목으로 개설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일정 시간 이상을 학생들에게 교육시키도록 했다. 일선 교육기관에서는 교육 준비을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럽다는 반응도 있으나, 지방교육청에서는 내년 3월 교육과정 준비에 맞춰 교재 개발, 지역연계 기관 발굴, 교사 연수 등의 교육기반 마련에 나서며 교육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산림청 숲가꾸기가 숲을 죽인다” 격론
산림청이 산불을 핑계로 숲가꾸기와 토목사업 예산을 늘리려 한다는 규탄의 목소리가 높았다. 환경운동연합은 산림청이 불에 잘 타는 소나무에만 집착하고 산불에 강한 낙엽활엽수를 잡목으로 베어내는 생태 역행적인 ‘숲가꾸기 사업’을 진행해 산불이 오히려 확산됐다며 산불피해지의 산림복구 및 숲관리 전환에 대한 공론화를 촉구했다. 산불로 훼손된 산림생태계를 어떻게 복구할 것인지, 산불에 강한 숲으로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숲의 관리목표와 방식을 어떻게 전환할 것인지에 대해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산림청은 지난 3월 ‘2022년 경북·강원 대형 산불 시사점 분석 및 개선대책’을 통해 ‘산불예방 숲가꾸기’를 2배 가량 확대하고, 내화수림대를 연간 350ha 규모로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숲가꾸기를 하지 않으면 숲이 황폐화되고 죽은 나뭇가지가 쌓여 산불에 취약해진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환경운동연합은 “산불에 강한 숲은 물을 많이 품고 있는 자연숲이다. 대형산불 재난을 예방한다며 시행하는 숲가꾸기, 내화수림대, 임도, 사방댐 사업을 확대하면, 숲생태계의 건강성과 회복력을 훼손시켜 산불에 취약한 숲을 만들게 된다”고 주장하며 “숲관리 전환을 통해 산림의 회복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우선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탄소중립’ 실천, 커지는 ‘조경’ 역할
탄소중립 실현에 국가, 지자체, 기업, 개인이 모두 나서고 있다. 탄소중립은 개인, 회사, 단체 등에서 배출한 이산화탄소를 다시 흡수해 실질적인 배출량을 0(Zero)으로 만드는 것을 말하며, 나무를 심거나, 풍력·태양력 발전과 같은 청정에너지 분야를 통해 온실가스 및 이산화탄소를 상쇄시키는 것을 말한다. 세계 각국의 탄소중립 선언과 감축목표 상향 등으로 국가 주도의 탄소중립 정책 및 사업 지원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또한 최근 기업의 ESG 공시 의무화가 전세계적인 움직임인 가운데, 우리나라도 2030년까지 모든 상장사를 대상으로 ESG 공시가 의무화되면서 기업 경영에서 ‘친환경’ 바람이 거세다.
탄소중립, ESG 등 변화에 맞춰 조경의 사회적 역할이 더욱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 많은 기업들이 탄소중립 도시숲 조성 등 사회공헌을 위한 조경사업에 나서고 있으며, 조경분야에서도 탄소중립을 위한 정원 모델 개발 및 탄소저감 가드닝 캠페인 등을 통해 탄소중립 실천에 앞장서고 있다.
국가정원 꿈꾸는 지방하천, 다양한 욕망 ‘꿈틀’
전국 지자체들이 하천에 국가정원·지방정원 조성을 추진하면서, 이를 두고 찬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안양천은 의왕시에서 군포시, 안양시, 광명시, 서울 금천구, 구로구, 양천구, 영등포구에 걸쳐 있는 지방하천이다. 2000년만 해도 생물이 살 수 없을 정도로 오염된 곳이었지만 생태하천복원사업을 통해 시민들의 사랑받는 장소로 거듭났으며, 지난해에는 8개 지자체들이 모여 안양천을 국가정원으로 지정하기 위해 힘을 모으기로 협약식을 진행했다. 올해는 안양천을 국가정원으로 지정하기에 앞서 지방정원으로 조성하기 위한 시민 공청회를 합동으로 열고 정원조성계획을 발표했으나, 환경단체들이 “인간 중심적인 반생태적 개발”이라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
안양천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국의 많은 지자체들이 하천에 정원 조성을 추진중이다. 올해 개장했던 성남시 탄천 공공정원의 경우도 지방정원 조성 비전을 가지고 추진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유래 없는 폭우로 대부분의 식물들이 쓸려나가면서 많은 비판에 직면했다.
반론도 적지 않다. 하천변에 홍수에 강한 꽃들을 식재해 정원을 조성하는 것이 다른 방안에 비해 과연 반생태적인가, 혹은 장마로 인한 보식 비용으로 연중 시민들에게 쉼터를 제공하는 것은 소비성 축제 예산과 비교하면 오히려 경제적이라는 주장도 있어서 ‘하천의 정원조성 사업’은 앞으로도 논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원박람회, 신진 작가들 ‘바람’
국내 정원작가들의 세대교체 바람이 거세다. 신진 정원작가들의 등용문이 되고 있는 국내 정원박람회에서 신세대 출전 작가들이 두드러지는 성과를 내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다는 평가다.
올해는 국내 모든 정원박람회들이 정상적인 개장으로 시민들을 맞이했다. 몇 년간 코로나 팬데믹으로 공원이나 정원의 사회적 가치가 재고된 데 반해, 집합 행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서 정상적인 정원박람회를 관람할 수 없었던 점이 아쉬웠다.
하지만 올해 정원박람회의 정상화로 지난 몇 년간 조명받지 못했던 박람회 수상 작가들이 새삼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특히 지난 몇 년간의 다수의 수상 실적으로 실력을 인정받는 작가들이 이름을 올리면서 세대교체가 진행되고 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올해 서울정원박람회는 금상에 구영미·박지연 작가, 은상에 최윤정·김동민 작가가 수상했으며, 경기정원박람회에서는 대상에 유충헌 작가, 최우수상에 김명윤·유창현 작가가, 제3회 LH가든쇼에서는 대상에 김단비 작가, 금상에 오태현 작가가 수상했다. 이들은 대부분 최근 2~3년 사이 두각을 나타낸 작가들로 박람회 초창기 유명 작가들과는 구분되는 새로운 세대로 평가받고 있다.
50년 맞은 한국조경, 새 도약 다짐
한국 현대 조경의 역사가 올해로 50년이라는 기념비적 해를 맞았다. 이에 반백 년 조경의 역사를 기념하고 더 나은 도약을 다짐하기 위한 굵직한 행사들이 줄을 이었다.
1972년 한국조경학회가 창립한 것을 기점으로 올해 50년을 기록했다. 한국조경학회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 12월 9일부터 22일까지 선유도공원 이야기관에서 ‘한국 조경 50년 기념전, IFLA 한국 개최 성과전’을 열었다. 올해 광주에서 개최된 ‘제58차 IFLA 세계조경가대회’도 한국조경의 50년을 기념하기 위한 한국조경학회와 한국조경협회의 역점 사업 중 하나였다. 또한 2013년 제정된 한국조경헌장 내용을 현재 사회의 요구에 맞춰 개정하는 작업을 진행해, 조경을 재정의하고 새로운 좌표를 제시했다.
환경조경발전재단은 12월 9일 그랜드서울 워커힐 컨벤션센터에서 ‘한국조경, 화합과 미래를 향한 도약’을 주제로 조경계 원로 등을 대거 초청한 가운데 ‘한국조경 50년 기념행사’를 성대하게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한국조경 50주년을 뜻깊게 기념하고자 참석자 233명에게 공로상을 수여하고, “국토와 도시를 아름답고 푸른 녹색 인프라로 구축해 국민의 삶의 질을 더 높이는 데 조경인이 힘써가자”는 다짐을 슬로건에 담아 새로운 미래를 기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