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윤, 이수정, 신유정 기자 ([email protected])
영광은 계속된다. 정영선 소장의 ‘제프리 젤리코 상’ 수상이 올해 한국조경의 가장 큰 영광이었음을 꼽는데 주저할 조경인은 없을 것이다. 시대는 변화한다. 새로운 미래를 위한 발상 전환과 달라지는 시대적 과제들이 올해 10대 뉴스에 담겼다.
-편집자주
조경가 정영선, 한국인 최초 ‘제프리 젤리코 상’ 수상
국내 1세대 조경가 ’정영선’ 씨가 한국인 최초로 세계 조경계에서 가장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제프리 젤리코 상’을 수상했다.
세계조경가협회(IFLA)는 지난 9월 스웨덴 스톡홀름과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제59차 IFLA 세계대회’에서 정영선 소장에게 ‘제프리 젤리코 상’을 수여했다. 제프리 젤리코 상은 조경계획 및 설계, 관리, 교육 등 조경 전분야를 대상으로 세계적인 수준의 업적이나 활동을 펼친 조경가를 수상자로 선정하고 있으며, 2004년에 시작되어 처음에는 4년에 한 번씩 선정하다가 2011년부터는 매년 수여되고 있다. 피터워커, 캐서린 구스타프슨, 아드리안 허즈 등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조경가들이 수상한 바 있으며, 정영선 씨는 이번에 15번째 주인공이 됐다.
심사위원단은 정영선 씨가 서양에서 유래된 낯선 개념의 조경술을 한국적 상황에 맞게 번역하는 등 초창기 한국 조경의 설계 분야를 개척하고 이끌어 온 공로가 크다고 평가했다. 또한 청계천 복원과 선유도 공원 등 자연과 도시의 조화를 추구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사람이 조성하는 환경에 자연적 과정을 통합하고, 과거의 산업적 흔적을 지우기보다 새로운 디자인의 일부로 만드는 세계적 트렌드를 예측했다고 소개했다.
한편 지난 8월에는 조경가 정영선의 아름다운 정원과 공간에 대한 철학을 담은 다큐멘터리 ‘땅에 쓰는 시’가 EBS 국제다큐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돼 정영선 소장의 작품들이 대중적인 조명을 받기도 했다.
천연기념물 보호 위한 자연유산법 국회 통과
반세기 이상 유지된 ‘문화재’ 체제가 ‘국가유산보호’ 체제로 전환함에 따라 전통조경의 위상을 강화하는 ‘자연유산법’이 지난 3월 제정됐다.
이번 자연유산법 제정은 자연유산의 유형별 특성을 고려한 보존·관리의 기본 원칙과 제도를 수립해 자연유산의 체계적·미래지향적 보존 기반을 공고히 하는 데 의의가 있다.
자연유산을 ‘자연물, 또는 자연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 조성된 문화적 유산으로 역사적·경관적·학술적 가치가 큰 동물, 식물, 지형·지질, 천연보호구역, 자연 및 역사문화경관’으로 정의함으로써 다양한 자연물에 대한 유형별 관리와 지정되지 않은 자연물 등을 포함한 자연유산에 대한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보존·관리·활용이 가능해진 것이다.
또한 궁궐, 서원·향교, 사찰, 민가 등의 전통조경에 대한 표준설계를 보급하는 등 전통조경의 육성을 위한 국가적 지원의 법적 토대가 마련됐다는 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천연기념물 식물의 상시관리를 위한 관리자를 선정하도록 했으며, 명승 정비계획 수립과 재해로 인한 피해 발생 시 신고도 의무화했다. 아울러 자연유산의 보존·관리를 위한 연구·조사 및 전시·홍보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인 ‘국립자연유산원’의 설치운영 근거를 마련함으로써 자연유산 조사·연구·보존·전시·교육 등을 전담하는 국내 유일의 자연유산 전문기관에 대해 명시했다.
이번에 자연유산법이 제정됨에 따라 전통조경의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확립하고, 천연기념물·명승 활용사업 추진 및 규제대상자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통해 자연유산 향유 기회가 확대되어 국민 삶의 질 향상에도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BF 인증 의무화, 조경계 “쉽지 않네”… “제도 보완 필요” 공감대 확산
지난 해 12월부터 신규 설치되는 공원에도 ‘장애물없는 생활환경 인증제도(이하 BF 인증)’가 의무화된 가운데, 인증기관 별 상이한 기준 적용과 인증 과정에서 여러 가지 현실적인 어려움들이 나타나면서 인증제도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BF 인증은 예비인증과 본인증을 거치는데, 예비인증은 설계 단계에서, 본인증은 준공 전 도면을 기반으로 시공을 점검하면서 이뤄진다. 2020년까지 약 6000건의 인증사례를 살펴보면 예비인증이나 본인증 시 보완이 거의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인증 과정에서 컨설팅 및 재설계, 인증 지연 등으로 인한 비용 발생과 창의적인 디자인 침해 등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원 BF 인증이 의무화되고 올해 처음으로 인증 과정을 거치고 있는 여러 조경설계사무소들도 서류 제출과 보완 과정을 반복적으로 거치면서 늘어나는 시간과 비용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특히 조경설계 심의를 마쳤음에도 BF 인증 심의에서 다시 설계가 바뀌거나 BF 인증을 통과하기 위해서 창의적인 설계를 포기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은 제도의 취지와 무관한 역효과이므로 이를 바로잡기 위한 분야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조경 전문성 높여 줄 “조경사 제도”, 조경 현안 ‘부각’
조경 전문성 강화를 위해 “조경사 제도”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고시된 제2차 조경진흥기본계획에 따라 ‘조경사’ 자격제도 신설 가능성이 커지면서 조경계에서도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온 조경사 제도 도입에 대한 논의가 공식화되는 한 해였다.
‘조경사’ 제도란 조경설계를 할 수 있는 면허제도로서, 건축사의 경우에는 이미 자격증이 있어야만 건축사사무소를 개설‧신고해 운영할 수 있다. 반면 조경설계는 조경사라는 자격제도가 없기 때문에 누구나 조경설계를 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대지 안의 조경’의 경우 건축사무소가 조경설계사무소로 하도급을 주거나 알바에게 맡겨서 처리하는 사례들이 비일비재하고, 결과적으로 조경공간의 품질을 저하시키는 원인이 된다.
‘조경사’ 제도가 신설되면 조경설계에 대한 최종 책임자가 생기는 것으로, 조경설계자의 투명한 자격 관리, 공정한 사업 참여 기회 제공, 국제적 인증이 가능한 전문가 양성 기반 마련 등 조경가의 위상도 높아지고, 궁극적으로 조경공간의 품질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조경사 자격 제도 신설은 많은 난관이 예상되는 만큼 다양한 공론화 장도 필요하고, 무엇보다 조경 분야의 적극적인 협조를 끌어내는 것이 가장 큰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도시 패러다임 변화, 전국 지자체 “정원도시” 표방
“정원도시”를 표방하는 지자체가 급격히 많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정원의 관점으로 도시를 만드는 전략도 다양해져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전국에 지방정원 조성이 붐이다. 코로나를 벗어나면서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정원 조성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모습이다.
산림청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는 국가정원이 2곳, 지방정원 5곳, 민간정원 88곳이 지정·등록돼 있다. 이미 지방정원 조성이 한창인 지자체는 40곳이 넘는다. 이들 지방정원 조성 사업 중 상당수는 국가정원 지정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정원도시”를 표방하는 지자체에게는 국가정원 뿐만 아니라 정원박람회 개최도 필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서울도 구 단위에서 박람회 개최가 논의되고 있고, 경기도도 기존 경기정원박람회와 별도로 시 단위에서 정원박람회를 개최할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순천은 10년만에 국제정원박람회를 개최했고, 서울정원박람회도 국제정원박람회로 탈바꿈하면서 정원박람회는 전국적으로 더욱 확산되고 국제화될 전망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드닝을 넘어서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도시 패러다임으로서 “정원도시” 운동은 ‘에코시티’나 ‘친환경도시’ 등의 개념을 모두 아우르는 유연한 전략과 시대의 요구를 담아 공유되고 실천될 때 더욱 확장되고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세계를 홀린 ‘K-정원’…황지해 작가, 첼시플라워쇼 금상 수상
올해 황지해, 안성연, 김단비 등 국내 작가들이 해외 가든쇼 수상 소식을 연이어 전해하면 한국 정원의 위력을 다시 한번 확인시킨 한 해였다.
황지해 작가는 올해 5월 영국 첼시플라워쇼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2011년 2012년에 이어 3관왕의 위업을 달성했다. 황 작가는 지리산 동남쪽 약초 군락을 모티브로 아침 햇살 속 약초들이 자라고 있는 산자락을 구현한 작품 ‘지리산 산약초 : 백만년 전 온 편지’를 조성해 한국적 정서를 세계적 수준의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또한 앞선 4월에는 황지해 작가와 LH 가든쇼 금상 수상자인 안성연 작가가 콜라보한 작품 ‘나비춤(Butterfly Dance)’이 중국 그레이터베이(GBA) 플라워 쇼 가든 부문에서 골드메달을 수상했다. 그리고 7월에는 제3회 LH가든쇼에서 작가정원 ‘대상’을 수상한 김단비 작가의 ‘Korea LH Garden_Garden with Land’가 2023년 영국 햄프턴코트 팰리스 가든 페스티벌에서 은메달을 수상했다.
임도, ‘산사태 원인’ 논란…반환경·세금낭비 이슈로 확대
임도가 산사태를 악화시키는 원인이라는 지적이 큰 논란이 됐다. 올해 여름 전국을 휩쓸고 간 폭우로 인해 산사태가 다발하면서 사망 실종자 등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인명 피해를 낸 주요 산사태 현장들이 임도나 유사 개발이 진행된 곳이라는 지적이 있었으며, 특히 창원 쌀재터널에서 발생한 산사태의 경우 현장조사를 한 전문가 간에 산사태가 “임도 때문이다”와 “임도 때문이 아니다”라는 찬반 논란이 이어지면서 경남도의회에서 토론회가 열리는 등 사회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이후 논란의 불씨는 산림청의 임도 정책 전반으로 옮겨붙었다. 환경연합은 임도의 위험성은 물론 임도가 산불 확산의 길이 되고 있으며, 잘못된 임도 밀도 계산 기준으로 과도한 임도 개설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미국 산림청의 예를 들며 “임도 조성을 중단하고 복원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산림청 임도 정책을 전환하라고 촉구했다.
하천에 정원을 許하라?!…도시하천 이용 방안 모색 ‘활발’
도시하천을 활용해 정원을 조성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안양천이 지나는 안양시와 광명시, 군포시, 의왕시 등 4개 시에서는 ‘안양천 지방 정원 조성을 위한 기본 협약’을 맺고 하천에 정원을 조성하는 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외에도 여러 지자체에서 하천에 정원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하천변은 오래 전부터 ‘물의 흐름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나무 심기도 자유롭지 않은, 치수가 우선되는 공간으로 인식되어 왔으며, 산업화 과정에서 오염된 수질을 정화하기 위해 자연형 하천 복원을 진행하면서 생태적 공간이라는 인식도 깊게 자리했다. 그러다 보니 하천 활용에 대한 반감이 존재하고 정원 조성에 대해서도 찬반으로 논란이다.
하지만 최근 하천 개발이 과거 패러다임을 벗어나 새로운 국면을 맞이 하고 있다. 하천 개발에 보수적이던 수자원공사가 그간의 관리 데이터와 시뮬레이션을 통해 하천 개발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게 됐으며, 단순 수질 및 유역관리에서 벗어나 통합관리를 선언하며 적극적인 하천 활용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하천 생태 보전을 위해 개발을 반대하는 신중론 속에서도 하천 활용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상상이 힘을 얻고 있다.
한국조경가협회, 산·학과 세대 아우르는 ‘재창립’…‘친목’ 넘어 ‘권익’ 활동
한국조경가협회가 올해 5월 공식적으로 재창립했다. 산학을 넘어 세대를 아우르는 조경설계 분야 역대 최대 규모의 모임이 결성된 것이다.
한국조경가협회는 기존 한국조경가협회와 한국조경설계업협의회, 조경이상을 하나의 단체로 통합하여, 새로운 비전과 방향을 모색하려는 조경설계가들의 모임을 취지로 새출발을 선언했다.
협회 회원은 조경 창작활동을 주도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조경설계사무소의 대표와 임원, 대학에서 조경계획 및 설계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수, 정원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정원디자이너 등으로 폭넓게 구성했으며, 앞으로 우리나라 조경가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힘쓰고, 교류와 친목을 통한 조경 분야의 발전, 조경가의 자질 향상과 후진 양성에도 힘쓸 계획이다.
지난 12월 1일에는 정례 포럼을 통해 ‘조경가 정영선 젤리코 어워드 수상기념 특별강연’과 조경설계 분야의 현안인 ‘조경사 자격제도’ ‘도시공원 BF 인증’을 주제로 발표와 토론을 진행하며 공식적인 행보의 첫 발을 내딛었다.
자발적 오픈 모임 ‘조수다’, 새로운 조경 커뮤니티 시대 “활짝”
오픈 커뮤니티의 위력이 조경계를 덥쳤다. 카카오톡 오픈 모임 ‘조경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수다방’이 온·오프를 넘어 다채로운 활동을 이어가면서 새로운 조경 커뮤니티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조경 분야 커뮤니티는 그간 협회 및 단체와 그 산하 소모임들을 중심으로 권익·공익의 다양한 활동들을 펼쳐왔다. 하지만 기존 협단체가 전문화·분산화되면서 구심력을 잃어가고 새로운 세대의 요구를 담아내는 데 능동적으로 대체하지 못하면서 협단체 활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여론이 높아져 왔다.
업종별 친목 모임이나 정원 및 도시 답사 등 반오픈 형태의 커뮤니티 활동들이 도드라지기는 했지만, 가입 제한이나 활동 규정 등으로 불특정 개인을 담아내기에는 낮지 않은 진입 장벽이 존재했다.
하지만 ‘조수다’는 자격 제한 없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오픈 모임으로서 ‘카카오톡’을 이용한 낮은 진입 장벽과 특별한 조건 없는 자유로운 활동을 하면서도,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모임에도 적지 않은 회원들의 참가를 이끌어내고 있다. 게다가 친목만이 아닌 권익 공익적 활동을 모두 담아내고 있는 점은 폐쇄적 운영으로 지적받는 일부 협단체들에게 좋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는 평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