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윤, 이형주, 신유정 ([email protected])
2021년은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코로나 위기가 지속된 한 해였다. 우리는 위험한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일상을 회복하기 위한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내딛었다. 다시 찾은 일상을 되돌리고 싶지 않은 것은 모두가 같은 마음이며, 다시 엄중한 상황에 직면하더라도 일상으로의 복귀를 위한 노력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한 해 조경계의 발자취도 마찬가지이다. 내년으로 성큼 다가온 IFLA 세계대회에 만반의 준비를 하는 모습, 일상 속 식물과 정원 문화의 확산, 나무와 경관의 가치에 대한 치열한 논쟁 등. 중요하고 다양한 조경의 가치들이 논의되었으며, 그 어느 해에 못지 않은 묵직한 이슈들이 올해 10대 뉴스를 채웠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이러한 논의들이 구체적인 결실을 이루는 한 해가 되길 기대해 본다. - 편집자주
조경 배제한 ‘전통조경’ 입찰 논란, 뒷짐 진 문화재청 태도 ‘도마’
전라남도 내에서 ‘보수단청업’으로 자격을 제한한 조경공사 입찰이 진행돼 논란이 일었다. 강진군은 지난 9월 14일, 고흥군은 지난 9월 29일 각각 ‘강진 정약용 유적 탐방로 정비사업’과 ‘존심당 역사문화공원 조성사업’ 입찰 낙찰자를 선정했다. 두 사업 모두 수차례 참가 자격을 변경하면서 전통조경업체의 참여를 배제한 채 진행됐다.
‘문화재수리표준시방서(2021)’에서 “조경공사라 함은 기반조성, 정자, 화계, 연못, 조산, 포장, 수목식재 및 관리, 괴석 등을 설치”하는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으며, “이 시방에 기재되지 않은 일반적인 사항은 ‘국토교통부 제정 조경공사 표준시방서’에 준한다”고 정했다. ‘조경공사 표준시방서(2019)’를 보면 “조경포장, 친환경흙포장, 조경포장경계, 부지조성 및 대지조형, 식재, 시설물”이 명시돼 있는데, 이 같은 내역의 공사를 진행하면서 조경업을 배제해 조경분야의 공분을 샀다.
특히 강진의 경우 설계승인 내용대로 공사를 시행하면 나무가 고사할 우려가 있음에도, 지자체 소관이라며 선을 긋고 뒷짐 진 문화재청 수리기술과의 태도가 문제로 지적되기도 했다.
선조들의 사상이 담긴 전통공간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전문업역을 배제한 채 특정 분야에서 설계·시공을 독식하는 문화재수리 제도와 구조를 개선하는 게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조경설계, 일한만큼 받자”… 표준품셈 제정
조경설계의 적정대가를 산출하기 위한 ‘조경설계 표준품셈’이 제정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엔지니어링산업의 공정한 대가지급 환경 조성을 위한 엔지니어링 품셈 8건을 올해 1월 4일 공표했다.
이를 통해 신설된 ‘조경설계 표준품셈’은 조경설계 대가 산정의 최우선 기준이 된다. ‘엔지니어링산업진흥법’에 따라 발주청이 조경의 ▲기본설계 ▲실시설계 ▲기본 및 실시설계를 발주하는 경우 관계법령에 따른 대가의 고시, 기타 특별한 상황 등에 따른 예외사항을 제외하고는 본 표준품셈을 적용해 실비정액가산방식에 따라 대가를 산정해야 한다. 대규모 단지개발 등 다양한 성격의 조경사업이 복합적으로 적용되는 설계는 별도의 대가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
조경설계 표준품셈은 목적, 적용 범위, 용어의 정의, 투입 인원수 산정 및 조정, 세부시행기준 등을 담고 있다. 특히 ▲기본설계 ▲실시설계 ▲기본 및 실시설계를 구분해 업무별 주요 내용, 투입 인원수 산정기준, 사업 면적을 고려한 환산계수와 대상지 성격 및 업무 난이도에 따른 보정계수를 마련한 것이 특징이다.
“학교, 탄소중립 거점이 되다”…환경교육도 의무화
학교가 숲과 정원을 품은 탄소중립 거점으로 거듭난다. 교육부는 지난 2월 3일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종합추진계획을 발표했다.
미래학교 사업은 2021년부터 2025년까지 18조 5000억 원을 들여 약 1400개 학교 공간을 리모델링하는 프로젝트다. 한국판 뉴딜 10대 대표사업이자, 2021년 교육부 핵심정책 사업 중 하나다.
외부 공간은 학교의 일상에서 탄소중립을 실천하기 위한 생태교육 공간으로 전환된다. 텃밭, 정원, 연못 등 다양한 생태환경을 조성하고, 건물 사이 미활용 공간, 광장, 운동장 등 기존 시설과 정원을 연계한 입체적 공간을 만든다. 공기정화식물과 기계식 장치를 더한 바이오월도 도입된다.
이와 함께 지난 8월 30일 국회에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환경교육 시책 수립과 시행을 의무화하는 ‘교육기본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미래학교 사업 이후에도 학교 공간의 생태적 전환이 지속될 전망이다.
산림청 해체론까지 이어진 ‘늙은 나무’ 프레임 논란
산림청이 늙은 나무를 베고 어린 나무를 심는 ‘2050 탄소중립 산림부문 추진전략’을 추진하면서 산림의 다양한 가치를 고려하지 못했다는 논란이 이어졌다. 산림청은 지난 1월 20일 ‘30년간 30억 그루’의 나무를 심어 연간 3400만 톤의 탄소를 저감한다는 내용 등이 담긴 ‘2050 탄소중립 산림부문 추진전략안’을 발표했다.
나무를 심어 이산화탄소를 줄인다는 취지이지만, 불과 20~30년 수령의 나무를 늙은 나무로 규정하고 이 나무들을 베는 대규모 벌목계획이 포함되면서 논란이 됐다. 산림의 탄소흡수기능 이외에 재해예방, 생태계 보호 등 산림의 다양한 가치를 고려하지 못했다면서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산림청 해체론이 제기되는 등 거센 저항에 직면했다.
이에 산림청은 민관협의회를 구성해 지난 7월 8일부터 약 3개월간 총 22회의 회의를 거쳐, 산림분야 탄소중립 전략안을 수정했다. 민관협의회는 전략안의 ‘30억 그루 나무심기’ 목표를 산림의 다양한 가치를 고려해 ‘산림의 순환경영과 보전·복원’으로 변경하고, 20~30년마다 나무를 벨 수 있게 벌기령을 완화하는 내용을 삭제했다.
가로수 지키기 운동, 광범위 시민 활동에 정치권도 반응
무자비한 가지치기로부터 가로수를 지키기 위한 시민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정치권에서도 관련 제도 개선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대부분의 지자체는 비용과 시간이 적게 소요되는 강전정 방식으로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 ‘가로수 조성 및 관리 규정’이 있으나, 병충해 피해가 있거나 쇠약한 가지를 대상으로 한다는 규정만 있을 뿐 가지치기 방식에 대한 기준이 없어 문제라는 지적이다. 윤재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매년 무분별한 가지치기로 인해 죽는 가로수는 1만6000그루에 달한다.
이에 강득구, 강준현, 김성환, 맹성규, 윤준병 국회의원은 지난 6월 16일 가로수를 비롯한 상가·학교·아파트 나무에 관행적으로 자행해 온 무자비한 가지치기 근절을 위한 제도개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의원들은 이날 토론회에서 가로수 보호 및 환경 개선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이와 관련 윤재갑 의원은 지난 10월 12일 산림청에 무분별한 가지치기를 제한할 법적 근거와 가이드라인 마련을 주문했다. 같은 달 19일 강득구 의원은 대학캠퍼스의 무분별한 수목관리 행태를 지적하며, 교육부에 관련 지침 마련을 주문하기도 했다.
용산공원, 개발 욕망 ‘폭주’에 국민 비난도 ‘폭주’
용산미군기지 반환 본체 부지의 온전한 공원 조성을 희망하는 국민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여당 최고위원을 비롯한 일부 의원들이 부지 내 주택을 공급하는 법안을 발의해 논란이 됐다.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등 여당 의원 15명은 용산공원 부지 일부를 택지로 조성토록 하는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 개정안을 지난 8월 3일 공동으로 발의했다. 용산공원 부지 주택개발 주장은 종종 제기됐지만 법안 발의까지 진행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생태·역사·문화 공원으로서의 정체성 보전과 ‘온전한 공원’ 조성을 희망하는 국민제안문이 채택된 직후라 비난 여론은 더욱 커졌다. 전문가들은 용산기지 반환, 반환부지 오염정화 등 아직도 산적한 과제들이 많아 당장 코앞의 문제인 주택 공급을 해결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주택 공급 계획이 있던 캠프킴과 용산 정비창도 무산될 상황에서 주민 협의 없는 일방적인 공급책 제시는 반발만 일으키고, ‘특별법’의 근간을 뒤흔드는 내용이기에 국가 정책에 대한 신뢰마저 흔든다는 지적이다.
이에 입법예고 기간 동안 국회 입법예고 시스템 홈페이지에는 반대 의견이 폭증했으며, 최종 1만1000건이 넘는 의견이 게시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김포 장릉 아파트 공사 재개, 세계유산 취소 ‘기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경관 훼손 문제로 공사 중지 명령을 받은 김포 장릉 인근 아파트 공사가 재개돼 문화재청과 건설사들의 법정 다툼이 장기화될 전망이다. 지난 12월 13일 서울고법 행정10부는 건설사들이 제기한 검단신도시 아파트 공사 중지 명령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했다.
김포 장릉은 파주 장릉과 계양산을 잇는 일직선 상에 위치해 파주 장릉-김포 장릉-계양산으로 이어지는 조경이 특징이다. 김포 장릉과 계양산 가운데 아파트가 들어서면 경관을 저해하고 문화유산의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아파트 건설이 강행되거나 유의미한 수준의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세계유산 등재가 취소될 수 있는 상황이다.
세계유산 등재 취소는 국제적 망신일 뿐 아니라 차후 세계유산 등재도 어려워져 한중일 문화 대결에서 불리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해당 아파트 철거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지난 10월 17일 기준 21만 명의 동의를 얻었다.
반려식물 ‘붐업’… 플랜테리어 전성시대
식물, 화분을 소품으로 활용해 인테리어에 포인트를 주는 ‘플랜테리어’ 시장이 붐이다.
일상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실내 공간의 쾌적성 향상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확산된 코로나19로 인한 라이프 스타일과 소비 트렌드 변화로 식물을 보다 가까이 두고자 하는 욕구가 증가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농촌진흥청은 지난 11월 23일 코로나19 확산 이후 소비자 10명 중 5명이 반려식물에 관심을 더 갖게 됐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과학 저널 ‘어반 포레스트리 앤드 어반 그리닝(urban forestry and gareening)’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록다운 기간 동안 가정의 실내식물은 긍정적인 감정을 높이고, 부정적인 감정을 줄이는 역할을 했다. 통증, 두려움, 불행, 공격성에 대한 인식과 스트레스 감소에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코로나 장기화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된 요즘 SNS에서 회자되는 핫플레이스 대부분은 식물이 채워진 공간으로 조성되고, 대기업에서도 플랜테리어 시장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관련 제품을 출시하는 모습이다.
나무의사 “부족” 현장 ‘불만’ 고조…제도 개선 논란 ‘현재진행형’
지난 2018년 나무의사 제도가 시행됐지만, 최종 배출된 나무의사 수가 부족해 식재된 나무의 진료 및 방제 업무를 진행해야 하는 조경현장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기존 조경업체들은 2018년 나무의사 제도가 시행 이후 5년 안에 나무의사를 확보하지 않으면 방제 등의 업무를 할 수 없게 된다. 나무의사 제도는 모든 수목진료 활동을 ‘나무의사’만 할 수 있고, 그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나무병원’을 등록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오는 2023년 6월 27일까지 나무의사 확보를 비롯한 새로운 등록기준을 맞추어야 하는데, 그간 교육과 시험을 통해 배출된 나무의사 수가 조경업체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 뒤늦게 불편을 호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영세한 조경업체들은 대부분 나무의사 확보를 포기할 것으로 예상돼 실질적으로 업역을 뺏겼다는 지적도 있으며, 무엇보다 하자 관리 기간의 방제업무를 조경업체가 할 수 없게 된 것에 대해 부당하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나무의사 부족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해결될 것으로 보이지만, 조경업체들은 하자기간 방제 업무는 기존 조경업체가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앞으로 제도 개선에 대한 논란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서울시장 선거, ‘수직정원도시’ 공약 이슈…범조경계 ‘지지 선언’
지난 4월 치러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의 ‘수직정원도시’ 공약이 조경분야의 주목을 받으며 범조경계의 공개적인 지지 선언으로 이어졌다.
‘수직정원도시’ 공약은 건물의 입체적인 녹화를 통해 도시의 경관과 환경문제를 개선하겠다는 취지로서 이미 세계의 많은 도시에서 시도하고 있는 조경정책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하지만 정치적 공방 속에 찬성을 위한 찬성, 반대를 위한 반대가 주를 이루면서 공약의 핵심 가치를 놓치고 있다는 아쉬움이 조경전문가들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이에 선거 운동이 한창인 3월 16일 박영선 후보 선거사무소가 있는 안국빌딩 4층에서 범조경계의 ‘수직정원도시’ 공약 지지선언식이 열렸다. 지지선언문에서는 “수직정원도시 개념은 그린인프라스트럭처를 통한 도시개발의 세계적인 지향점이자, 서울의 새로운 공간전략으로 반드시 실현돼야 할 시의적절한 목표”라고 명시했다. 그간 정치 선거에 집단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조경계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또한 누가 시장이 되더라도 ‘2050년 탄소중립선언’에 도달하기 위한 해결책으로서 수직정원도시가 필연적인 방향임을 알리는 관련 전문가들의 기고가 여러 매체에 이어지기도 했다.
한편 국내 벽면녹화는 가든월, 수직정원 등의 이름을 통해 시장을 확대해 나가고 있는 추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