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인 브이아이랜드 소장 ([email protected])
유엔은 고령인구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5년 고령화사회를 거쳐, 2017년 고령사회에 진입했고, 2026년 초고령사회에 도달할 것이다. 급속한 고령화로 인해 노인인구가 증가하고, 노인가구가 증가하며, 치매발병률도 증가하고 있다. 노인 “10명 중 1명”이 치매라고 할 만큼 치매인구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치매는 노년층에서 암보다 무섭고, 환자, 가족, 사회까지도 고통과 부담을 주는 질병으로, 여러 분야와 지자체에서 치매예방을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과연 경관, 도시, 조경, 건축 등의 분야에서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우리가 노인이나 치매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데에는 노인이나 치매의 경험이 없거나 적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러니 노인, 치매 등을 데이터나 사회현상의 하나로만 받아들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노인의 인지기능은 신체기능과 밀접하여, 외부활동이 위축되기 시작하면 인지능력도 감퇴되고, 치매의 진행이 빨라지게 된다. 얼마 전 서울에 있는 한 영구임대 아파트의 관리소장으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코로나로 인해 노인들의 외출과 외부활동이 줄어들면서 치매 어르신이 급격히 증가했고, 치매 진행도 빨라졌다는 것. 그것도 불과 1년 만에 경로당이 폐쇄되면서 발생되었다고 한다.
이런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일까? 뭔가 특별한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노인의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 자극을 유도하여 일상생활수행능력(ADL, Activities of daily living)을 향상하고, 어르신들이 거주하던 곳에서 잔존능력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AIC(Aging in Community)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공공환경은 어르신들의 외부활동과 행동반경이 점점 줄어들게 만들어 외부와 단절시키고 있다.
치매 어르신과의 인터뷰에서 “집에 돌아오는 길을 몰라서 외출을 할 수 없어요. 그래서 내가 사는 107동 주변만 다녀요”, “토마토와 꽃 피는 화분을 키워요”, “거동이 불편해서 운동을 못해요”, “시간을 잘 몰라요”라는 응답을 쉽게 들을 수 있다. 노인을 위한 환경 조성의 기본은 노인의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 특성을 아는 것에서 출발한다. 노인이 되면 신체적으로 운동능력, 인지능력, 감각 능력 등이 둔화된다. 보행이 힘들고 자주 쉬어주어야 한다. 정서적으로 우울감이 증가하고 타인과 만나는 것을 기피하며 내향적이 되어간다. 사회적으로 상실감과 무력감을 느끼며 사회적 관계망이 약해지면서 고독감을 느낀다.
하버드 메디컬스쿨 연구자료에 따르면 산책을 통해 걷기운동을 하면 건강수명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아파트 단지를 도는 산책로(약 1,000m)를 만들고 안전을 위해 건널목에 안전구역(횡단보도 등)을 설치하고 집에 나와서 집으로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산책로 주변에 노인의 신체특성에 맞는 저활동성 운동기구를 운동강도와 운동부위를 고려하여 설치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야외운동기구는 활동성이 떨어지는 노인들에게는 무리가 될 수 있다.
벤치가 없어서 외출을 두려워하는 어르신들도 있기에 산책로나 보도를 따라 벤치를 설치하고 노인의 이동가능거리를 고려하여 최대 100m 이내에 배치해야 한다. 어르신들의 신체 특성상 등받이와 팔걸이도 필요하다. 벤치는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거나 대화를 유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 방향을 보는 형태보다는 마주 보면서 대화할 수 있는 형태로 배치하고, ㅁ자 보다는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ㄷ자 형태로 해야 한다.
오감을 자극하는데 꽃이나 나무만 한 것이 없다. 추억을 회상하는 수종(감나무, 능소화 등), 새를 부르는 수종(남천, 주목 등), 향기가 나는 수종(명자나무, 칠자화, 수수꽃다리 등), 식용열매가 있는 수종(꽃사과, 앵두나무 등), 수피의 촉감이 다른 수종(배롱나무, 화살나무 등)은 노인 뇌의 비활성화된 영역을 자극하여 치매예방에 효과 있다고 한다.
서울시가 어르신의 신체, 정서, 사회적 특성을 반영한 인지건강 디자인을 아파트 단지에 적용해 효과성을 분석한 결과, 주민의 인지장애가 30.8% 감소하고, 안전사고도 24.4% 줄어들고, 외출빈도가 39.9%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 우리 주변의 환경이 과연 노인에게 적합한 환경인가, 노인을 고려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는가를 돌아볼 때이다. 우리나라가 초고령사회로 진입함에 즈음하여, 노인건강복지 증진과 의료비용 저감을 위한 노인맞춤 환경디자인을 본격적으로 도입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