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윤 ([email protected])
[환경과조경 박광윤 기자] “자연스럽게 만든다고 해서 진짜 자연이 될 순 없지 않은가. 다만 바이오필릭을 향한 사람의 마음을 계속적으로 불러내서 자연에 가깝게 만들어 가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포스코이앤씨의 아파트 브랜드 더샵에 대해 사람들에게 설문조사를 해보면 첫 번째로 꼽는 것이 ‘아파트가 튼튼하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포스코 조경의 전략도 “백년명원”이다. 백년을 가는 튼튼한 조경을 말하는 것일까.
‘백년명원’에 대해 백 년을 내다보고 만든 조경 매뉴얼이라고 자평하는 포스코이앤씨의 심안용, 이인효 부장은, 아파트 조경이 트렌드에 급급하지 않고 긴 호흡을 가진 전략을 가져야 한다며 “백년명원”은 단순히 ‘튼튼한 조경’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조경’에서 ‘정원’으로
아파트 조경은 2000년대 초반까지도 지상 주차장을 단순히 차폐하는 역할을 했다. 이후 신도시를 중심으로 주차장이 지하화하면서 각 건설사마다 ‘지상부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큰 화두로 떠올랐다.
2010년대 초중반에는 잔디밭 같은 넓은 녹지를 두고 큰 소나무들을 심거나 관목을 빽빽하게 심는 것이 유행했다. 하지만 5~6년 정도 살아보니 단지가 전체적으로 어두워지고 유지관리비만 많이 들어가서 아파트 단지에 큰 나무들을 심는 것이 좋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후에는 지피·초화를 활용해 아기자기한 조경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억새 갈대 등 글라스류를 심은 지피가든이 뜨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지자체 중심의 정원박람회 열풍이 한몫했다.
“황지해 작가가 영국 첼시 플라워쇼에서 1등하고 지자체마다 정원박람회가 유행하면서 아파트에도 정원을 조성하는 것이 큰 트렌드가 됐다.”
회사마다 다르지만 보통 3년에서 5년을 주기로 트렌드 조사를 통해 조경 매뉴얼을 만들고 있다. 새로운 매뉴얼이 만들어지는 것을 계기로 트렌드가 조금씩 바뀌는 경향을 보여왔는데, 요즘은 해마다 달라지는 느낌을 받는단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일까.
‘MZ세대’, 트렌드를 이끌다
최근 아파트 트렌드가 급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인구 구조 변화에 있다. 집을 구매하는 소비자층 대부분을 MZ세대가 차지하고 있는데, MZ세대들은 혼자 사는 경우도 많고, 결혼을 해도 아기를 낳지 않는 경우도 많으며, 반려동물을 키우는 등 생활 트렌드도 많이 다르다 보니 공동주택 트렌드도 달라지고 있다. 특히 1인 세대에 대한 고민이 커지고 있다.
“예전에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집을 20평대에서 30평대로 옮겨가는 식의 루틴화된 것이 있었지만 요즘은 이런 공식이 깨지고 있다. 요즘은 40~50평대 아파트가 거의 없다. 이런 추세는 2010년대부터 나타났는데, 최근에는 단독 거주형의 아파트도 많이 생기고 있다.”
하지만 MZ세대, 독립 세대, 고령화라는 사회적 변화 속에서 포스코만이 가진 조경 콘셉트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니 특별한 게 없었단다. 변화된 트렌드에 맞는 새로운 조경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최근 건설사들이 내놓는 조경 전략 변화들이 큰 의미가 없다는 데에 점점 더 많은 건설사 조경인들이 공감하고 있다.
“‘이런 시설물이 제일이고 이런 식재 방식이 유행이야’하면서 그동안 트렌드를 쫓아왔는데 지나고 보니 크게 의미가 없더라. 포스코 조경 브랜드인 ‘백년명원’은 어떤 추세나 유행을 쫓지 않고 더 먼 미래를 위해 어떤 조경을 해야하는지를 담기 위해서 론칭됐다.”
‘백년명원’과 ‘바이오필릭’
많은 건설사들이 ‘명품 조경’을 강조했을 때, 포스코는 ‘조경’이 아닌 ‘정원’이라는 개념을 쓰기로 했다. 정원에서의 명품이라고 하면 명원이 아닌가. 그래서 백 년 천 년 된 오래된 정원들이 즐비한 유럽, 일본, 중국을 가서 사례 조사를 했다. 해외 유명 정원을 찾아보고 ‘어떤 요소와 매력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인가’를 샘플링을 하고 시뮬레이션을 하여 매뉴얼화시키는 작업이 진행됐다.
“지금까지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찾아보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세계적인 명원들을 직접 찾아가 조사를 해서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정리했고, 이 과정에서 트렌드를 쫓을 필요가 없다는 확신을 했다”
‘백년명원’을 구체적으로 실현시키는 것은 바이오필릭 디자인(Biophilic Design)이다. 바이오필릭은 생명(bio)을 사랑(philia)한다는 뜻의 ‘바이오 필라’에서 확장된 말로,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연을 사랑하게 돼 있다는 의미이다.
“본능적이라는 것은 새 소리를 들으면 좋고,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으면 편안해지고, 녹색을 보면 행복감을 느끼는데, 그 이유가 다른 어딘가에서 온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내재돼 있다는 의미이다.”
사실 바이오필릭 디자인은 이미 20~30년 전 미국에서 생체모방을 의미하는 바이오미미크리(biomimicry) 디자인이나 바이오모픽(biomorphic) 디자인으로 존재한 개념이다. 수영 선수들의 수영복을 상어의 피부처럼 만들어 물의 저항을 없앤다든지 각종 자연이나 생물의 형태를 모방해서 만들면 형태뿐만 아니라 기능적으로도 적합하게 작동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지속가능한 식재, 심플한 시설물
‘백년명원’이 추구하는 식재는 ‘자연과 정원 본연의 모습에 집중하는 식재’로 요약할 수 있다. 기후와 토양에 맞는 식물을 적용해 지속가능한 생육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자연에서 자라고 있는 형태 그대로를 가지고 와서 심으면 세월이 지나면서 더 자연스럽게 성장해 갈 것이라는 생각이고, 그것이야말로 ‘생태적’이라는 판단이다. 기존에 크고 조형적 가치가 높은 수목을 식재하던 것과 대비된다.
그래서인지 포스코 센터에 최근 심어놓은 교목에는 다간형이 많다. 정형적인 수목에 대한 기준을 과감하게 버리고 산나무 같은 자연적인 모습들이 오히려 호평을 받고 있다.
“자연적인 식재가 사실은 매우 어렵다. 보통 제주도면 제주도, 강원도면 강원도 등 지역적으로만 정립되어 있고, 실제 우리가 사는 공동주택의 환경은 너무 다양하다.”
아파트와 같은 인공지반에 지속가능성을 만든다는 것은 애초에 쉽지 않은 일이다. 포스코는 현재 많은 전문가들가 함께 다양한 실험과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이를 통해 ‘생태’라는 큰 지향을 내재화시킨 고유 기술을 만들어 가고 있다.
‘백년명원’이 추구하는 시설물 디자인은 단기적으로는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자연형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외관과 기능, 소재에서 자연 유기체의 오가닉 바이오미미크리 디자인(Organic&Biomimicry Design)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단순하지만 오래 지나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시설물을 찾아가고 있다.
이러한 시설물 콘셉트를 실현하는 데에 최근 주목 받고 있는 것이 3D프린팅 기술이다. 직사각 형태의 거푸집으로 형태를 만드는 데는 디자인적인 한계가 있고, 그렇다고 금형을 떠서 만드는 것은 비용적으로 힘든 일이다 보니 자연의 형태를 선호하는 조경시설물 분야에서 활용도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대형 시설물을 만들 만한 3D프린터가 보급되지 않아서 아직은 소형 구조물 제작만 가능하다. 지금은 작은 스툴나 테이블 등에 한정해서 재활용 플라스틱 등을 활용해서 제작하고 있다.”
재활용 소재를 활용한 업사이클링․리사이클링은 아파트 조경에서는 최신 트렌드이다. 폐플라스틱, 폐섬유, 폐콘크리트를 활용한 제품들은 바닥포장, 구조물, 시설물 등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다.
“예전 같으면 ‘폐’라는 접두사가 붙으면 입주자들의 불만이 있을 것 같아 많이 걱정을 했는데 요즘 MZ세대들은 업사이클링한 시설물에 대해서 거부감이 없다. 실제 적용된 현장의 입주자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긍정적이었으며, 디자인을 더 발전시키면 오히려 더 좋아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백년명원, 10%의 실험
“백년명원”은 가까운 트렌드가 아니라 먼 미래를 내다보고 만든 조경 전략이라니 실험적일 수밖에 없다. 나아가 선도적인라는 느낌도 든다. 시공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도 궁금하지만 입주자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가 더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아직도 많은 입주자들은 키 큰 소나무를 원하지 않을까. 이에 대해 ‘10%의 실험’이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선도한다는 것만큼 무섭고 정말 건방진 말이 없는 것 같다. 우리가 실험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많아 봤자 10% 정도이다.”
조경도 하나의 문화가 됐다. 국민 수준에 따라서 정치가 가고 문화가 가듯이, 조경도 입주자라는 소비자들에 맞춰 가야 한다. 너무 빨리 가서도 안 되고 너무 느리게 가서도 안 되고 적절하게 템포를 가져야 한다. 약 반발자국 정도만 앞서도 성공적이라는 생각이다.
다만 20대부터 40대 초반까지의 입주자들은 어릴 때부터 교육을 많이 받아서 지구 환경에 대한 관심이 윗 세대와는 남다른 면이 있다. 이들 세대는 “소나무 안 심으면 조경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세대가 아니다. 오히려 낯설고 새로운 것이라도 좋다고 판단되면 더 열광하는 열린 세대이다.
“조경은 사람들의 내면 욕구를 반영하고 다시 조경이 사람들의 마음에 어떤 심상을 불러 일으킨다. 공간과 사람이 상호 선순환하는 원리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요구하는 것이다. 바이오필릭을 향한 마음을 계속적으로 불러내서 진짜 환경을 생각하고 진짜 자연에 맞게 만들어 가자는 것이 본질이고, 이것이 포스코 조경이 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변화의 세대들을 맞아 본능적으로 좋은 조경에 대한 열망을 한껏 불어 넣을 수 있는 다양한 실험들이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인터뷰>
언제까지 흉내 내기만 할 것인가!
최신 아파트 조경 트렌드에 있어서 포스코 조경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슈는 무엇인가?
요즘은 정원과 조경이라는 용어를 혼용하면서 각각 정의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 개인적으로 정원은 휴먼 스케일로 지근에서의 디테일한 경관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기술과 감각이 필요하고, 조경은 그보다는 좀 큰 스케일로 구분하고, 그러한 구분을 서로 인정을 해주는 것 같다.
플랜테리어 산업이 커지고 있는 것도 주목하는 변화이다. 우리가 볼 때는 정원도 비전공인자에게 열린 분야라고 생각하는데, 플렌테리어는 식물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에게도 열린 영역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조경의 영역이라는 점에서 업역이 넓어지고 다양화되고 있고, 한편으로 경계가 모호해지기도 한다.
조경 분야가 이런 변화를 보듬어 안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필요한 분야들은 새로 생기고 있고, 그런 트렌드가 고스란히 공동주택에도 반영되고 있다.
최근에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이나 웰컴존에 플랜테리어를 적용해달라는 요구도 있다. 그런데 그곳에서 식물을 키우려면 빛이나 온습도 등을 제어하는 유지관리 기법이라든지 토양, 관수, 배수 등의 문제를 해결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것은 플랜테리어의 한계를 벗어나는 일이다. 이것이 조경이 해야 될 역할이다.
포스코 조경이 추구하는 바이오필릭 디자인은 실내 플랜테리어의 기법도 적극적으로 차용해 수용한다. 업역이 더 넓어지고 그만큼 역량도 확장되어야 하는데 낯설다고 배척만 할 것이 아니다. 플랜테리어의 어떤 점이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어필되었으며 어떤 부분이 부족한가를 고민하고, 관련된 모든 분야의 기술을 수용해서 실제 적용이 가능한 현장의 시공 기술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건설사 조경인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사회와 기술의 변화에 따라 사람들의 요구 사항이 달라지고 있다. 하지만 조경은 새로운 것에 대해 좀 배타적이고 거부감도 많다. 기득권적인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 좀 더 넓게 수용하며 좀 더 깨어 있는 생각을 가져야 오래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건설사조경협의회에서 여러 건설사들이 조경정보를 공유하는 세미나를 했는데, 예전에는 서로 공유 하는 것을 다소 꺼려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시대적 변화와 속도도 빨라지고 젋은 직원들의 깨어 있는 생각과 다양한 의견들이 반영되면서 예전처럼 한 번 전략을 세워서 몇 년씩 우려먹던 시대는 끝났다. 꼭꼭 숨기고 내 것만 좋은거야 라고 고집피우다가는 도태되기 딱 좋은 시대가 된 것이다. 정보는 교류와 오픈을 통해 보다 나은 발전된 지식 자산이 된다. 그야말로 집단지성과 풍부한 데이터를 확보하면 저절로 좋은 결과가 도출되는 AI 시대인 것이다. 좋은 것은 공유해서 발전시키고 안 좋은 것은 빨리 배제시켜서 같이 상생해 나가길 기대한다.
“지금까지 흉내 내는 것은 많이 해왔지 않은가. 트렌드를 쫓아서 급급하게 흉내만 내는 조경이 너무 지겹고, 그 과정에서 버려지는 자원이 너무 많아서 죄스럽다. 세상은 수준이 높아졌는데 더 이상 흉내 내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본질적인 걸 좀 더 찾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