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연금 조경작업소 울 대표
상혁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놀이터에서 누군가 미끄럼을 타고 있으면 재빨리 쫓아가 바로 뒤에서 미끄럼을 탔다. 그러고는 ‘꽝’하고 앞의 친구와 부딪쳤다. 친구한테 장난을 걸거나 괴롭히려는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 감각을 즐겨서였다. 그럴 때마다 매번 미연 씨는 아들 상혁이에게 주의를 시켰지만, 모든 아이가 그러듯이 상혁이도 잊을 때가 잦았다. 서로서로 잘 아는 동네 놀이터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동네를 벗어난 놀이터에서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화를 크게 내는 상대 어린이의 부모에게 미연 씨는 사과하고 열심히 설명했지만 그들의 이해를 끌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런 상황과 부닥치고 싶지 않은 연희 씨는 초등 1학년인 해빈과 함께 가능한 한 넓으면서도 한적한 놀이터를 찾는다. 그녀는 해빈이 같은 또래의 친구들로 북적이는 놀이터를 좋아하는 걸 알지만, 해빈의 행동에 보내지는 눈빛이 불편해 어쩔 수 없다. 가끔은 발달장애 아동만을 위한 놀이터가 있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한다. 당장 불편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 한적한 놀이터를 찾지만, 놀이터에서 친구들을 사귀고 어울려 놀았으면 하는 바람이 없는 건 아니다. 더 욕심을 내자면 많은 어린이가 놀이터에서라도 장애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다름의 하나라는 것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지영 씨는 이러한 바람을 적극적으로 실현하고 있다. 특수학교와 작업치료실 등에서 만난 다른 엄마 네 명과 함께 2018년 4월부터 동네 놀이터 범어3호 어린이공원 ’슬기로운 놀이터 생활’을 시작했다. 담배꽁초와 소주병, 쓰레기만 있던 어린이공원이었지만 놀만했다. 쓰레기를 줍는 것도, 돌멩이를 쌓는 것도 놀이가 되었다. 제대로 된 시설이 없다 보니 어릴 적 기억을 되살려 비석치기, 고무줄놀이, 술래잡기 등 늘 새로운 놀이를 시도했고 늘 즐거웠다.
놀이는 갈수록 규모가 커졌다. 낮 동안 혼자 있어야 하는, 돌봄에서 벗어난 어린이들도 참여하기 시작했다. 놀이터는 그야말로 장애아와 비장애아가 함께 노는 통합놀이터가 되었고 돌봄의 공간이 되었다. 어린이들의 수만 늘어난 건 아니다. 활동도 확장되었다. 지영 씨를 비롯한 부모들은 놀이터에서 놀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사는 ‘통합마을’의 가능성을 보았고, 자신감도 얻었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뭐든 학교’를 시작했다. 뭐든 학교는 통합 교육을 목적으로 한다. 학교라고 하지만 뭐 그리 거창한 건 아니다. 함께 빵을 굽고, 바느질하고, 밀랍초를 만든다. 뭐든 학교는 2023년 2월 사회적 협동조합의 형태로 공식화했다.
이들의 활동은 미래로도 뻗어 나갔다. 지영 씨는 다른 발달장애아 부모들과 함께 베이킹과 바리스타에 한정된 발달장애인의 직업의 폭을 넓히고자 ‘비컴프렌즈’(BEECOMM FRIENDS)’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발달장애인들이 도시양봉을 업으로 삼아 꿀을 생산하고, 그 꿀을 이용한 가공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도시 양봉을 배우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는 순환의 고리를 만드는 게 주 사업내용이다. 또 자신이 짓고 있던 집의 설계를 변경해 마을 사람들이 모여 교류하고 ’뭐든 학교’를 운영할 수 있는 ‘오봉 살롱’이라는 커뮤니티 공간과 도시 양봉 체험을 위해 마을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독채의 오봉 스테이를 건물에 끼워 넣었다. ‘슬기로운 놀이터 생활’부터 모든 활동을 함께 해왔던 유미 씨는 ‘호호가’라는 이름으로 커뮤니티 공간, 문화공간, 뭐든 학교 선생님 입주공간으로 채워질 건물을 근처에 짓고 있다.
지영 씨와 유미 씨는 오봉 살롱과 호호가를 통해서 그들의 활동이 마을에 스며들기를, 마을은 카페를 통해서 그들의 활동에 스며들기를 기대해본다. 그 기대가 기대로 끝날지 현실화될지 아직 판단하기 어렵지만, 조용히 지켜보던 마을 주민들은 아이들의 안부를 물어보기 시작했고 전직 과학 선생님이었던 분은 수업을 해주겠다고 나셔주셨다. 오봉초등학교는 양봉할 수 있도록 옥상을 내주었다.
‘아이들은 함께 어울려 놀면서 서로를 배우고 자라야 한다.’는 당위를 실현하기 위한 활동은 아이러니하게도 고유한 이름 없이 ‘범어3호 어린이공원’이라 불리는 동네 놀이터에서 시작되었다. 공원의 풍경도 이름만큼 특별할 게 없었다. 그러나 지영 씨와 그녀의 동료들은 깔깔 웃음을 나누면서 세 그루 아름드리 느티나무 그늘이 주는 매력을 찾아냈다. 관계 속에서 자신의 고유함을 인정받고, 고유함이 다시 관계를 풍요롭게 할 것이라는 그들의 바람이 공원에도 적용된 셈이다.

김연금 / 조경작업소 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