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민 ([email protected])
은상
Before Sunset
김수린 작가

김수린 작가는 “BEFORE SUNSET”을 통해 1860년대 저녁, 노을빛에 붉게 물들었던 갯벌과 파도소리가 들리는 바다가 어우러진 해지기 전 ‘검단’의 풍경을 담아내고자 했다.
서울 광화문을 기준으로 정동 방향에는 강릉이, 정서 방향에는 인천이 있다. 인천은 매년 해넘이 축제가 열릴 만큼 석양이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갯벌과 갯벌 사이사이를 흐르는 바닷물이 붉은 노을빛을 반사시키며 만들어내는 낭만적인 경관이 가히 일품이다.
1861년에 제작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보면 예전의 검단은 바다와 맞닿아 있다. “BEFORE SUNSET”에는 대대적 간척 사업으로 인해 사라진 검단 바다의 파도 소리와 노을진 해변의 풍경이 담겨있다. 바다와 갯벌이 만나는 자연의 지형을 구현하기 위해 콜라주 기법을 활용했다. 갯벌은 녹지로, 바닷물은 포장으로 표현했다.
바닥은 선형의 화강석 판석으로 구성되는데, 각 판석의 한 면은 비스듬히 깎여있는 형태다. 이로써 해가 서쪽으로 지는 것처럼, 정원을 서쪽으로 바라볼 때만 경사면에 닿는 햇빛이 반사되도록 했다. 경사면은 윤광마감으로, 다른 면은 버너마감으로 처리해 반사되는 부분과 그렇지 않는 부분을 구분했다. 윤광마감으로 된 바닥을 밟으면 기러기 우는 소리처럼 소리가 나 잠시 바다에 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정원 끝에 설치된 불투명 소재의 기울어진 벽은 검단의 하늘을 담고 있다. 벽의 바닥을 따라 조명을 설치하고, 스폿 조명으로 벽 가운데를 비추도록 해 해질녘 석양의 모습을 보여준다.
식재는 바다와 갯벌, 갯벌과 육지 중간에 주로 억새가 심어진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꽃이 아름다운 식물보다는 다양한 품종의 그라스류로 식재했다. 그라스의 높이차로 인해 풍성하고 입체감 있는 정원이 만들어졌다.
<인터뷰>
“기술과 조경을 접목하는 디자이너 되고파”
- LH가든쇼에 참여한 계기는 무엇인가?
실험적인 디자인을 해보고 싶어 참여했다. CA조경설계사무소에서 근무한 지 5년 정도 됐는데, 발주처와의 관계, 건축법상의 관계, 자문위원단과의 관계 등 디자이너가 자신의 소신을 밀고 나가기에는 수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복잡한 관계들과 무거운 짐을 던져버리고 머릿속 상상들을 세상에 마음껏 펼쳐보고 싶었다.
- 정원 주요 콘셉트는 무엇이고, 주제와 어떤 관련성이 있나?
LH가든쇼의 주제는 “대지의 주름, 자연의 물결”이다. 주제를 설명하는 짧은 글 안에는 ‘갯벌’이라는 단어만 5번이나 나온다. 궁금증이 생겨 검단의 역사를 찾아보았다.
약 2만 년전, 땅으로 이어져 있던 한국과 중국의 해수면이 상승해 수심이 얕은 바다가 만들어졌고 그 결과 넓은 갯벌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1861년 제작된 ‘대동여지도’를 보면 예전의 검단은 바다와 맞닿아 있었다. 1960년도에는 조금씩 간척 사업이 일어나더니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예전 갯벌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그래서 갯벌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떤 갯벌을 만들어야 할까. 단순히 갯벌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그날의 분위기가 떠오르는 추억 속의 공간, 낭만적 갯벌을 만들고 싶었다. 알다시피 인천은 대한민국 서쪽에 위치해 있다. 해가 뜨는 것보다 해가 지는 풍경이 익숙한 지역이기도 하다. 예전 검단에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도 이런 풍경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도출해 낸 정원의 콘셉트는 ‘BEFORE SUNSET’이다.
- 정원 감상 포인트나 조성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특히 주력했던 점은?
주력했던 점은 두 가지다. 첫째, 바닥 포장을 통해 거울처럼 반사시키는 물을 표현하고 싶었다. 모든 방향에서 이 풍경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동쪽에서 서쪽을 바라보았을 때만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싶었다. 포장에 빛을 닿았을 때 한쪽으로만 빛이 반사되도록 경사를 만들어 빛의 방향성을 만들어줬다. 바닥에 경사가 생겨 동쪽을 바라볼 때는 빛을 반사시키지 않지만, 서쪽을 바라보았을 때는 물이 차있는 것 같은 모습을 볼 수 있도록 60도로 기울어진 면에 빛을 반사시키는 재질을 적용했다.
둘째, 검단이 갯벌이었을 때 자랐던 식물을 정원에 구현해보고 싶었다. 옛날 인천 검단의 갯벌의 식생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곳을 찾고자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결국 찾아낸 곳이 ‘인천 강화군 삼산면’인데, 그 곳에서 새빨간 염생식물인 칠면초를 만났다. 낮게 깔리는 빨간색 칠면초의 군락을 시작으로 갈색 풀 군락과, 노란색의 띠와 갈대의 군락이 다양한 높이로 넓게 펼쳐지면서 일정한 높이차로 각기 다른 색의 층을 이루는 경관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넓은 초원에서 발견한 매력적 경관을 저의 작은 정원에서도 느낄 수 있도록 식물을 선별하였고, 각기 다른 색의 층을 느낄 수 있도록 군락으로 배치했다.
- 정원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이나 재밌었던 점 등 기억에 남는 비하인드 스토리는 무엇인가?
IoT(Internet of Things)를 활용한 정원을 만드는 것이 구현하기 어려웠던 점이자 재미있었던 점이다. LH가든쇼를 통해 나라는 사람은 어떤 설계를 좋아하는지 세상에 알리는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내가 사람들에게 어떤 설계가로 비춰지길 바라는지 고민했고, 사람들이 저를 ‘기술과 조경을 접목하는 디자이너’로 생각해주길 바랬다. 그래서 IoT정원을 기획했다.
정원에 스피커를 설치해 인천 바다의 실시간 소리를 들려드리고 싶었다. 정원을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소리만 듣고도 지금 바다가 만조인지 간조인지, 지금 땅이랑 바다가 얼마나 가까운지 체감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다. 현장 여건으로 실시간 데이터를 가져오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음력 데이터값을 이용하여 인천 바다의 만조와 간조를 맞출 수 있었다.
- “나의 정원은 OOO이다” 자기 작품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BEFORE, SUNSET’은 해질녁 검단을 노래한 시다. 이번 정원을 만들면서 혼자 끄적거린 자작 시가 있는데, 이 시의 한 구절로 정원을 표현하고자 한다. “해가 져야 해가 뜨고, 물이 빠져야 물이 찬다. 모든 것은 음과 양이 있고, 그 사이에 생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