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군호 이소플랜 이사
거대도시가 된 서울시는 각종 개발사업에 따라 점차 녹지가 부족해지고, 시민에게 제공될 쉼터의 확보가 어려워진 현실에 접해있다.
다행히, 친환경 정책이나 시민 편익을 위한 정책들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공원과 녹지에 대한 인식이 전환되고 있지만, 시민에게 쾌적한 생활환경을 제공할 가장 핵심적인 문제인 녹지공간의 확보에 좀 더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방법들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수직정원도시’ 도입을 내세운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공약에 대해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부족한 녹지를 평면의 바닥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고, 수직적인 건축물과 함께 녹지 역시 입체화한다는 개념인데, 이를 두고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하니, 참고삼아 입체적 녹지 공간 확보에 대해 알아보았다.
사실, 도시 녹지의 확보 측면에서 건축물 녹화는 세계적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고민해왔고, 현재 성공적으로 자리잡아가는 방식이며, 우리나라도 점차 일반화 되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시의 녹지공간에 대한 정책 역시, 입체 공간을 활용해야 한다는 필연적 방향성이 생겼음을 감안한다면, ‘수직정원도시’ 개념의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도시계획 전문가와 조경 전문가의 의견들을 참고하여 좀 더 검토해 보았다.
세계 대도시에서 수직정원은 대세
1960년대 조경분야의 걸출한 학자였던 이안 맥하그(Ian McHarg)는 도시가 성장하면서 자연이 사라져가는 모습을 개탄했다. 그는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도시에 자연이 들어갈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도시에서 자연의 중요성에 대해 관심을 환기시켰고, 그의 비전과 신념이 전 세계 곳곳에서 실현되었다. 이안 맥하그의 생각이 21세기 세계적인 대도시들에서는 새로운 모습으로 꽃 피우고 있다. 건물의 옥상을 녹화하고, 건물안에 정원을 가꾸고, 자연적인 순환이 가능한 친환경 건물을 만드는 그린빌딩 운동(Green Building Movement)이 현재 유럽, 북미대륙, 그리고 아시아 대도시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유럽 옥상정원협회(European Federation of Green Roof Associations)에 따르면, 최근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에서 10개가 넘는 옥상정원 관련협회나 연구단체가 생겼다고 한다. 그린빌딩 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전개된 독일에서는, 2000년대 후반에만 매년 1350만㎡의 옥상정원이 생겨났다. 미국에서도 한창이다. 2010년에 그린빌딩 관련 산업이 전년대비 28.5% 성장했고 2011년에는 115% 성장했다고 하니, 도시환경에 기여하면서 많은 일자리도 창출한 셈이다. 유럽보다는 덜하지만, 40만㎡의 옥상정원도 완성되었다.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가 선두주자다. 싱가포르는 도시국가다. 영토가 작고 배후지가 없는 한계가 명확하다. 500만 인구가 거주하는 고밀도시에 대규모 공원같은 녹색단지를 조성하기는 힘들다. 시민들에게 고루 자연의 혜택을 나눠주기 위해서는, 건물에 자연을 도입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싱가포르에서는 고층빌딩의 옥상정원뿐만 아니라, 플랜터(화분)을 설치하고, 건물 중앙을 파내 정원을 만들고(스카이 테라스라 불린다), 그린 월(Green Wall)을 세우는 등 건물 곳곳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연을 스며들게 한다. 그야 말로 도시내 ‘수직정원’이라 할 수 있다.
싱가포르에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정부가 강력한 인센티브로 수직정원을 장려한다는 점이다. 유럽과 미국의 그린빌딩 운동에서도 정부의 역할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주로 공동체에서 자생적으로 시작되었거나 산업계에서 이끌었다. 싱가포르 정부는 1980~90년대부터 자연을 도입하는 민간 건물에 용적률 보너스를 부여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용적률 인센티브를 제대로 적용하기 위해 구체적인 규정과 매뉴얼도 만들었다. 도심지에서 초고층 건물에 대한 반감이 적은 싱가포르에서, 도시와 자연이 공존하는 수직정원을 정부 주도로 키워냈다.
서울은 어떠한가? 곳곳에 옥상녹화가 되었고, 한 두 군데 건물에서는 스카이 테라스도 보인다. 하지만 서울은 기본적으로 아파트 숲이요, 빌딩 정글이다. 거기에 미세먼지까지 합세하면 ‘서울살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동네 생활권에서만 보아도, 서울시민에게는 자연이 절실하다. 서울시민 한 명이 10분동안 걸어서 만날 수 있는 녹지면적은 4.4㎡다 런던(27㎡)의 6분의 1이고, 뉴욕(23㎡)의 5분의 1 수준이다.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인 9m2에는 절반에도 못 미친다. (출처: 중앙일보, 서울 1인당 숲, 런던의 6분의 1 … 도시숲 조성땐 열사병 줄여주죠, 2015.7.28.)
생활녹지가 이렇게 턱없이 부족해도, 지가가 높은 ‘비싼’ 서울에서는 쌈지공원 하나 만들 땅 찾기도 힘들다. 결국 싱가포르처럼 기존 건물과 신축 건물, 그리고 공동주택에 수직정원을 도입하고 친환경 빌딩으로 설계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싱가포르처럼 서울시가 나서야 한다. 세계적으로 오래동안 진행되어온 그린빌딩 운동이 서울에서는 크게 반향을 얻지 못했는데, 갑자기 민간 건물주가 나설리 없기 때문이다. 수직정원은 단순히 건물에 친환경적 요소를 도입하고, 도시경관을 아름답게 하는 것 말고도 시민들에게 다양한 혜택이 있다. 그럼 수직정원은 어떤 이점이 있는지 다음 칼럼에서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수직정원이 어떤 혜택을 줄 수 있을까?
코로나의 확산으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진 요즘, 서울시민들은 자연을 더 그리워하게 된 것 같다. 만약 집안에 자연이 살아있다면? 내가 사는 공동주택에서 공원까지 가지 않아도 풀과 나무가 반겨준다면? 이러한 생각이 꼬리를 물면, 수직정원이 주는 혜택을 어렵지 않게 상상해볼 수 있다. 그러면 수직정원에는 무슨 혜택이 있을까?
1) 환경적 측면
건물은 교통수단이 내뿜는 오염물질보다도 도시환경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그 효과가 눈에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건물은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며 열을 발산하는 거대한 덩어리다. 이런 덩어리들이 도심에 밀집되면 분명히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무엇보다도 도시열섬화 현상이 가속된다. 또한 건물로 인해 빗물이 투과되지 않는 포장 지면이 늘어나면, 그만큼 하수체계에 부담이 커져 홍수 위험이 높아진다. 2011년 오세훈 후보가 서울시장이던 때, 광화문에서 경험했던 일이다.
스카이 테라스와 옥상정원이 빗물을 흡수해서 건물내에 순환시켜 활용하는 친환경 시스템을 설계할 수도 있다. 물론 용산공원이나 서울숲 같은 녹색지대와 비교하긴 힘들지만, 수직정원은 건물의 생태발자국을 낮추어 환경파괴를 줄이고 에너지를 절감하는 효과가 있다. 건물에 도입된 자연요소들은 건물에서 발산하는 열을 줄이고, 여름에도 냉방을 위한 에너지를 경감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환경적 측면도 있다. 도시에도 생태계가 있고, 동물/식물군을 아우르는 생태계는 다양성을 갖는 게 매우 중요하다. 건물에 다양한 식물들을 들여오면, 도시 생태계가 다양해진다. 물론 어떤 식물군을 활용해야 하는지는 도시에 따라, 주변 환경에 따라 다르다. 조경분야의 전문가들이 심도있게 논의한다면 충분히 도시의 생물종 다양성을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 수 있다.
대기오염도 줄일 수 있다. 나뭇잎은 미세먼지를 흡착하여 공기를 정화하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가로수가 미세먼지를 흡착하여 도로변 공기를 맑게 하는데 기여한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는 바람이 지나는 길을 따라 도시숲을 조성하여 대기오염이 실제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미세먼지를 감소시킬 수 있는 수목의 잠재성을 인식하고 있다. 현재도 아파트 단지 주변환경 녹화, 그린 월 설치 등 미세먼지 절감을 위한 사업이 수행되고 있다. 이러한 계획과 더불어, 서울시 곳곳에 수직정원이 만들어진다면 미세먼지 저감효과를 배가시킬 수 있을 것이다.
2) 사회/문화적 측면
자연이 살아있는 공공공간은 공동체 형성에 중요한 역할은 한다. 서울과 같이 여가활동을 위한 공간이 부족한 도시에서 수직정원은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만나 교류하는 장소가 될 수 있다.
그 밖에도 수직정원의 사회적 역할은 많다. 전지구적으로 환경이 오염되면서,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도시에서 식량을 확보하는 것이 이슈로 대두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충분한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건물내 도시농장을 장려하고 있다. 이런 추세에 따라 온도, 습도 등을 통제할 수 있는 스마트팜(Smart Farm)이 최근 급격히 늘어났다. 농업시설이 포함된 수직정원에 공공주택이 들어선다면, 건물내에서 먹거리를 해결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서울에서 전면유리로 만들어진, 밋밋한 고층건물들은 한때 경제개발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나름대로 첨단 설계기법이 적용된 것이었지만, 이제는 전혀 낯설지 않다. 시민들은 이제 아름다운 도시경관을 원한다. 녹색으로 뒤덮인 수직정원은 그 자체로 매력적인 건축물이고, 주변과 잘 어우러진다면 아름다운 도시경관을 창출 할 수 있다.
서울시의 녹지 확보에 대한 방법론
다양한 상황과 여건 그리고, 필요성에 따라, 서울시가 추구해야 할 도시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면, 이제 도시의 입체화는 미룰 수 없는 시점에 왔다.
건축적 필요에 의해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서 도시가 평면적 2차원에서 입체적 3차원으로 변화된 현재의 상황에 따라, 녹지조성도 3차원 공간을 활용해야 함은 세계적 추세이고 효율성이 검증된 현실적 방식이다.
‘땅이 부족해 녹지 확보가 어렵다’라는 말은 이제 변명에 지나지 않다. ‘수직정원도시’ 개념처럼, 부족한 대상지를 3차원 구조를 통해 창출해 내는 창의적 공간조성 방식들의 적용을 통해, 서울시가 세계적인 도시들에 뒤처지지 않길 바라는 바이다.
송군호 / 이소플랜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