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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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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거진 가격 11,000
잡지 가격 22,000

기사리스트

[에디토리얼] 조경설계사무소 탐구
분주했던 2024년이 저물어간다. 이번 12월호에는 지난 3년간 이어온 기획 지면 ‘어떤 디자인 오피스’의 마지막 편을 싣는다. 2022년 1월호(405호)에 문을 연 ‘어떤 디자인 오피스’는 한 조경설계사무소의 대표작과 근작을 둘러싼 뒷이야기, 사무소 경영과 생활 등에 얽힌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은 지면이었다. 한국 현대 조경의 역사를 이끌어온 중견 설계사무소뿐 아니라 새롭게 부상하며 활발한 작업 성과를 펼치고 있는 설계사무소, 신생 아틀리에형 스튜디오를 포함한 이 기획에 총 34개 설계 조직이 참여했다. 서른네 편의 ‘어떤 디자인 오피스’ 지면이 훗날 2020년대 한국 조경의 지형과 풍경을 탐구할 수 있는 생생한 자료로 쓰이기를 기대한다. 한국 조경사 50주년을 맞았던 2022년에는 조경하다 열음(윤호준)의 첫 편에 이어 안마당더랩(이범수+오현주), 본시구도(이형석), 오픈니스 스튜디오(최재혁), 엘피스케이프(박경의+이윤주), 조경설계 디원(최철호), 얼라이브어스(김태경+강한솔), 안팎(반형진+정주영), 조경그룹 이작(양태진), CAT 조경설계사무소(김성완+김용희), 조경사무소 사람과나무(오화식)의 이야기를 담았다. 2023년에는 바이런(이남진), 스튜디오 테라(김아연+안형주), HEA(백종현),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안계동), 가원조경설계사무소(안세헌), 디자인 엘(박준서), 듀송플레이스(송이슬+김민호), 공간이오(이주은+오태현), 디멘션조경설계사무소(이동화), CA조경기술사사무소(진양교), JWL(정욱주+원종호)이 ‘어떤 디자인 오피스’ 지면을 꾸렸다. 2024년의 문을 연 디자인 오피스는 기술사사무소 예당(오두환)이었다. 이어서 조경설계호원(김호윤), 라이브스케이프(유승종), 조경작업소 울(김연금), 스튜디오일공일(김현민), HLD(이호영+이해인), Lab D+H(최영준), MDL(송민원), 인터조경기술사사무소(김수연), 우리엔디자인펌(강연주), 서도(홍광호)를 지면에 초대했다. ‘어떤 디자인 오피스’의 마지막 편(440호)은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은 그룹한어소시에이트(박명권) 이야기다. 3년간의 ‘어떤 디자인 오피스’는 34개 조경설계사무소의 작업과 경영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정보 전달형 지면이었지만, 더 나아가 한국 조경계의 내면을 관찰하고 기록한 일종의 아카이브이기도 했다. 조경설계에 관심 있는 이에게는 조경설계사무소의 구체적 현황을, 잠재적 클라이언트에게는 후보 조경가 리스트를, 조경가를 꿈꾸는 학생에게는 각 설계사무소 특유의 스타일과 직장 환경을 탐색하는 기회가 되었기를 바란다. 본지 편집부가 지면에 초대한 설계 회사는 훨씬 더 많았지만, 여러 계기를 통해 이미 잘 알려진 설계사무소 중 일부는 참여를 고사하거나 다른 사무소들에 지면을 양보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어떤 디자인 오피스’에 담지 못한 여러 조경설계사무소의 경영 현황과 대표 작품이 궁금하다면, 『환경과조경』 2019년 7월호(375호)의 특집 ‘2019 대한민국 조경설계사무소 리포트’를 참고할 수 있다. 이 지면에는 총 88개 설계사무소의 현황과 정보를 모은 바 있다. 다시 한 해를 통과한다. 『환경과조경』의 친구가 되어준 독자들과 필자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2025년에도 『환경과조경』은 조경 저널리즘의 최전선에서 조경 담론과 문화를 생산하는 역동적 공론장을 꾸려갈 것이다.
[풍경 감각] Hey DJ play me a song to make me smile(각주 1)
#1 라디오 방송을 마치고 수색역에서 중앙선을 타면 새벽 6시였다. 그 시간에도 앉을 자리가 없어서 한쪽에 선 채로 휴대폰을 꺼냈다. 라디오 앱을 켜고 방송 중 읽지 못한 청취자 문자를 읽는다. ‘새벽 출근을 하며 듣고 있는데 덕분에 힘이 납니다’, ‘제 최애 코너예요’, ‘이번 주말에는 소개해주신 곳으로 꽃구경 다녀올게요.’ 초반에는 지루하다는 평을 받거나 메시지가 몇 통뿐인 날도 있었지만, 댓글 창에는 대체로 반가운 말들이 가득했다. 한아름 선물을 받아가는 기분.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는 사이 열차는 공덕역에 도착하고, 열차를 가득 메우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방금 전까지 누군가 머물던 자리에 앉아 라디오에 귀를 기울인다. “오늘 어떻게 시작하고 계신가요? 오늘 일단 출발!” DJ의 목소리가 들리면 전철이 지하 구간을 빠져나온다. 창밖으로 건물들이 스쳐가는 동안 노래가 몇 곡 더 흘러나오고, 버드나무 사이로 반짝이는 한강이 보일 때에는 게스트 아나운서가 짤막한 뉴스를 전했다. 노란 큰금계국이 한들거리는 철로를 지난 뒤 내일도 놀러 오라는 클로징 멘트가 들리면 역에 내릴 시간이었다. #2 작년 11월, 라디오에서 하차했다. 개편은 당연한 일이다. 매년 봄가을이면 수많은 프로그램과 코너가 생기고 사라진다. 그러나 개편이 내 일이 되자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열심히 준비하고 웃으며 진행했던 코너가 개편을 피해가기 어려울 정도로 한참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어 괴로웠다. 이런 생각과 기분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 작업실에 늘 틀어두었던 라디오를 치웠다. 그렇게 일 년을 보냈다. 이제 다시 라디오를 꺼내려고 한다.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DJ의 목소리와 여러 프로그램으로 흩어진 PD, 작가님들이 꾸리고 있는 방송이 궁금해서다. 다만 걱정이다. 토도독. 버튼을 돌려 익숙한 주파수에 맞추면 작업실 창가의 빨간 벽돌 건물이 조금씩 뒤로 움직일 것 같다. 꽃이 핀 철도변과 아침의 한강과 건물 숲, 그리고 어두운 지하를 지나 수색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새벽에 가닿을 때까지. 시간이 약이라는 표현은 아무래도 틀린 말인 듯하다. **각주 정리 1. 제목은 이소라의 노래 ‘신청곡’ 가사에서 가져왔다. “이봐요 디제이, 나를 웃게 해줄 노래를 틀어주세요.”
제27회 올해의 조경인
제27회 올해의 조경인 심왕섭 환경조경발전재단 이사장 본지는 한 해 동안 조경 분야의 발전에 공헌한 이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난 1998년부터 ‘올해의 조경인’을 발굴·선정해왔다. 올해의 조경인은 홈페이지를 통해 공고 후 이메일, 팩스 등을 통해 독자와 관련 단체, 기관, 업체로부터 후보 추천을 받고, 별도의 ‘올해의 조경인 선정위원회’에서 주요 공적을 토대로 수상자를 선정한다. 학술·산업·정책·특별상 등 4개 부문에서 부문별 1인을 뽑아 총 4인의 올해의 조경인을 선정해왔으며, 2018년부터는 공적을 더욱 뜻깊게 기리고자 단 한 명의 올해의 조경인을 선정하는 방식으로 변화를 꾀했다. 지난 10월 8일부터 11월 4일까지 후보 추천을 받고, 11월 7일 역대 올해의 조경인 수상자로 구성된 ‘올해의 조경인 선정위원회’를 개최해 심왕섭 이사장(환경조경발전재단)을 최종 수상자로 선정했다. 송년호 특집으로 수상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간의 주요 공적과 수상 소감을 들어보았다.진행 편집부 사진 유청오 디자인 팽선민
[제27회 올해의 조경인] 심왕섭
“조경계에 훌륭한 인재가 많은데, 올해의 조경인 상을 받으니 쑥스러우면서도 책임감을 더 갖게 된다. 공로로 인정 받은 일들은 모두 홀로 이뤄낼 수 없는 일이었다” 심왕섭 이사장은 여섯 개의 조경 단체장과 재단 회원들에게 감사함을 표하며 수상 소감을 전했다. 2021년부터 환경조경발전재단 이사장으로 부임한 그는 환경부에 국한됐던 환경조경발전재단 주무관청에 국토교통부를 추가해 2개 부처로 확대했다. 2023년 재단이 공식 조경지원센터로 지정된 후 ‘조경수 거래가격 조사공표 방안연구’, ‘2024년 제14회 대한민국 조경대상’ 주관 등 여러 사업을 추진하며 조경 전문 싱크탱크 기반 조성에 이바지했다. ‘조경인 신례교례회’, ‘조경의 날 기념식’, ‘조경지원센터 간담회’를 추진해 조경인의 소통을 도모했다. 환경조경발전재단 주무관청 확대, 적극적인 소통의 기틀을 마련하다 1992년 제29차 세계조경가대회IFLA 이후 장기적 비전과 정교한 계획을 바탕으로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조경의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고, 조경의 사회 기여도가 커지면서 재단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됐다. 조경 산학 여섯 단체(한국조경학회, 한국조경사회, 한국환경계획조성협회, 대한건설협회 조경위원회, 대한전문건설협회 조경식재·시설물설치공사업 협의회)가 연합해 2004년, 한국 조경이 도약할 수 있는 발판 구축과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환경조경발전재단을 설립했다. 설립 당시 환경부가 재단의 주무관청이었는데, 조경 정책과 사업 확대의 필요성이 커지고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2022년부터 정관에 국토교통부를 주무관청으로 변경 및 추가하는 일을 추진했다. “조경에서 필요한 대부분 법이 국토교통부 소관이다. 건설산업기본법과 건설기술진흥법에 명시된 조경은 국토교통부에 뿌리박고 있을 뿐 아니라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공원녹지법)과 2015년 제정된 조경진흥법은 국토교통부가 담당한다. 조경 정책과 사업의 확대와 변화에도 불구하고 환경조경발전재단은 환경부 1개 부처만 주무관청으로 두고 있어 한계에 부딪히게 됐다. 이에 비영리법인 관련 전문가에게 자문을 받고, 법무부의 업무 편람에 적시한 절차에 따라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고, 재단 이사회 의결을 거쳐 환경부와 국토교통부에 정관 변경 허가 승인 신청서를 제출했다. 검토와 협의의 과정을 통해 환경부와 국토교통부 2개 부처로부터 정관 변경 허가 승인을 받게 됐다.” 심 이사장은 주무관청 변경을 위해 새로운 재단 법인을 설립할 수 있을 정도로 방대한 양의 서류를 준비했고 절차 이행, 심의, 협의까지 6개월이란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오랜 시간 준비한 만큼 다양한 사업 진행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국토교통부가 재단 주무관청으로 추가된 후 재단과 정부 간의 소통이 이전보다 강화되고 있어 녹색도시과와 직접적인 협력이 늘어나고 있다. 지속적인 소통 덕분에 조경에서 필요한 부분에 대한 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이뿐 아니라 그는 재단 정관의 목적 및 사업에 공원녹지법, 조경진흥법과 관련된 사업을 추가했다. “공원녹지법과 조경진흥법은 조경 산업 육성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조경 정책 연구, 사업 발굴을 통해 조경의 진흥을 도모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다. 재단 정관에 이와 관련된 사업을 추가함으로써 국토교통부와 긴밀한 소통과 협조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동력이 생겼다. 조경 분야에서 제안하는 건의 사항이나 법률 개정에서 조경의 영역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환경과조경440호(2024년 12월호)수록본 일부
제7회 젊은 조경가
제7회젊은 조경가 원종호 제이더블유랜드스케이프 소장 본지는 한국 조경의 내일을 설계하는 젊은 조경가를 발굴하고 그들의 작품과 생각을 널리 알리고자 지난 2018년 ‘젊은 조경가’ 공모를 제정했다. 참가 대상은 만 45세 이하의 조경가로 공모를 통해 선정한다. 본지 홈페이지를 통해 공고 후 10월 8일부터 11월 4일까지 지원서, 자기소개서, 포트폴리오를 접수했다. 이를 바탕으로 11월 8일 ‘젊은 조경가 선정위원회’를 개최해 원종호(제이더블유랜드스케이프 소장)를 ‘제7회 젊은 조경가’로 선정했다. 수상자의 수상 소감과 인터뷰, 설계 철학, 주요 작품 등은 2025년 1월호 특집 지면에서 조명할 예정이다. 진행 편집부 사진 유청오 디자인 팽선민
[제7회 젊은 조경가] 원종호
원 종 호 제이더블유랜드스케이프 소장 보이지 않는 조경가의 보이지 않는 조경 *『환경과조경』 2025년 1월호에 ‘조경가 원종호’ 특집을 꾸립니다. 원종호는 서울대학교에서 조경학을 전공했다. KnL환경디자인스튜디오와 현대건설에서 설계와 시공 실무를 경험한 뒤 2017년부터 제이더블유랜드스케이프JWL에서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다. 크고 화려하며 눈에 띄는 조경보다는 보이지 않는 조경, 하지 않은 듯한 조경, 원래 있던 듯한 조경을 통해 완성도 높은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조용하지만 묵직하고 내공 있는 조경가로 기억되고자 한다.
광주폴리 Ⅴ, 순환폴리
순환폴리, 연결된 세계의 집 짓기_배형민 순환 자원_편집부 숨쉬는 폴리_조남호 이코한옥_어셈블+BC 아키텍츠+아틀리에 루마 옻칠 집_이토 도요 에어 폴리_바래 광주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조형물을 마주치게 된다. 이 용도를 알 수 없는 작은 건축물은 쓰임새를 다한 뒤 방치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쩌면 이곳에서 내가 모르는 이벤트가 펼쳐질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심기도 한다. 무표정한 도시의 평범한 일상 공간에 새로운 이야기를 입히는 이것의 정체는 ‘광주폴리’다. 폴리는 서양의 정원에 짓던 장식용 건축물에서 유래했다. 본래도 비를 피하거나 잠깐 휴식하며 머무르는 정도로 쓰이는 실용성이 없는 공간이었지만, 건축가 베르나르 추미(Bernard Tschumi)가 라빌레트 공원에서 색다른 시도를 하며 폴리는 새로운 역할을 갖게 된다. 추미는 라빌레트 공원 전역에 120m 간격으로 35개의 폴리를 배치했다. 기능과는 무관한 다양한 형태의 폴리는 자율적인 오브제로 배치되어 기존 건축의 형식을 해체했다. 이후 폴리는 실용적이지 않아도 문화·예술적 특성을 지닌 공공 시설물이라는 의미를 획득했고, 세계 곳곳의 도시와 공원에 폴리가 세워지기 시작했다. 광주폴리는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일환으로 시작된 프로젝트다. 광주폴리 Ⅰ은 역사적 복원을 주제로, 낙후된 도심에 활력을 불어넣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2년 뒤, 광주폴리 Ⅱ는 광주비엔날레에서 독자적으로 추진하는 도시재생 프로젝트로 바뀌었다. 광주폴리는 공공 공간이 가진 공간·정치적 질서를 탐구했고(2013), 새로운 대중성을 만들고자 ‘맛과 멋’이라는 보편적인 개념에 집중했으며(2017), ‘광주다움’을 주제로 광주 톨게이트를 탈바꿈시켰다(2020). 광주 전역에 설치된 30여 개의 폴리는 회색 도시에 다양한 색과 활기를 입힐 것이라 기대됐다. 하지만 쓸모가 불분명한 폴리가 갖는 단점도 있다. 아무도 폴리가 지닌 잠재력을 발굴하려 들지 않으면 폴리는 그저 덩그러니 선 조형물에 불과하게 된다. 방치되어 낡아가는 폴리는 안전문제를 일으키기도 했고 시민 사회와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박양우 대표이사(광주비엔날레)는 “광주폴리는 그간 홍보와 활용 측면보다는 만들어가는 과정에 집중해왔다. 그 결과 국제적 주목을 받았고 해외에서 폴리를 보러 찾아오는 사람은 많은 반면, 광주 시민에게는 인지도가 낮은 편이다. 폴리의 활용도를 높이고 지역 시민이 찾는 명소로 만들기 위해, 제5차 광주폴리의 주제를 정하는 데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 답을 찾고자 배형민 감독(제5차 광주폴리,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은 도시 속 폴리의 역할이 무엇인지 골몰했다. 그는 “누정은 과거 한국의 커뮤니티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예술에 대해 논했고 사회에 대해 깊이 토론했다”며 광주폴리가 한국 전통 건축물인 누정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새로운 형태의 누정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오가야 할까. 광주폴리는 그 주제로 문명사적 과제인 기후변화를 제시했다. “광주폴리의 쓰임과 기후변화라는 맥락에서 ‘순환’이라는 주제를 떠올렸다. 에너지 절약 차원의 수동적인 제스처가 아니라 자원 차원에서 시작해 건축을 짓는 일 자체에서 순환의 원리를 모색했다.” 순환폴리에서 가장 눈을 끈 건 폴리 조성을 넘어 R&D를 함께 진행했다는 점이다. 디자인, 재료, 공법, 시민 활동을 창조적인 순환 과정으로 구현하는 이번 프로젝트에는 재료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했다. 광주와 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다양한 영역의 연구자, 장인, 기업의 협업 시스템을 구축했다. 전문가뿐 아니라 시민을 대상으로 한 워크숍도 진행했다. 배형민은 “광주폴리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프로젝트다. 건축과 공예, 디자인의 미래를 제시했고 시대의 과제에 부응했다는 측면에서 굉장히 자랑스럽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의 여정은 광주비엔날레가 펼친 도록 두 권에 담겨 있다. 『자원과 과정』, 『사람과 장소』라는 제목에서 순환폴리가 중요하게 여긴 가치가 무엇인지 읽어낼 수 있다. 그 지난한 발걸음을 모두 담을 순 없지만 도록 내용의 일부를 요약해 소개한다. 진행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 자료제공 광주비엔날레재단 주최 광주광역시 주관 광주비엔날레재단 총감독 배형민(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건축생산 큐레이터 윤정원(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도시 큐레이터 강동영(건축사사무소 라움 대표), 이영미(집합도시 대표) 공예·디자인 큐레이터 차정욱(아넥스 공동대표) 시민프로그램 큐레이터 이혜원(대진대학교 미술만화게임학부 교수) 미디어 큐레이터 김그린(아넥스 공동대표) 주제 순환
[광주폴리 Ⅴ, 순환폴리] 순환폴리, 연결된 세계의 집짓기
기후변화의 시대, 건축의 역할은 무엇인가? 시민과 함께 기후위기를 풀어가는 건축은 어떤 모습일까? 2022년 봄에서 2024년 가을까지, 2년 6개월 동안 제5차 광주폴리의 총감독으로 제기한 질문들이다. ‘순환폴리’의 기치를 내걸며 구현된 네 개 프로젝트는 그 해답을 ‘순환경제’에서 찾았다. 자원의 탐사와 발굴, 연구 개발, 디자인, 공법, 시민 활동 모두 창조적이고 실험적인 순환 과정으로 구현됐다. 지금 세계 곳곳의 크고 작은 기관, 기업, 정부, 연구자, 디자이너가 모든 분야에서 순환의 세계를 향해 매진하고 있다. 건설과 재료 산업의 경우 탈시멘트, 탈플라스틱 아젠다를 중심으로 순환 자원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다만, 대부분이 실험실의 성과로 한정되어 있다. 순환폴리가 특별한 것은 친환경 자원, 재활용 건축에 대한 탐색이 연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용되는 도시 공간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일상 건축 환경을 이루는 새로운 자재와 공법의 성능을 모니터링해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기획이며 순환의 건축이 실용적이고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 200년간 선형적인 경제 사회 체제가 지배했다. 에너지, 쓰레기,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대량 생산이 소비를 거쳐 대량 폐기로 직행한다. 환경에 대한 악영향과 관계없이 우리의 의식주는 이윤의 논리로 결정되었다. 환경 파괴와 탄소 배출의 피해를 사회 전체가 떠안았던 시대의 논리다. 그 결과 지구적 스케일에서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고 기후변화라는 문명사적 위기를 직면하고 있다. 지역 농수산업의 부산물이 쓰레기로 버려지고 있는 동안, 같은 재료를 확보하기 위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수입하고 산수가 파괴된다. 이런 생산-소비-폐기의 경로가 방대한 산업 체제로 고착되어 “신진대사의 균열”이라는 현대 문명의 위기를 초래했다. 견고하게 굳어진 산업들이 바뀌어야 하기에 순환 체제로의 전환은 연구와 실험, 탐색과 시행착오를 거칠 수밖에 없다. 기후변화의 시대에는 사물을 만드는 방법, 사물에 대한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전환의 과정은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모든 것을 버려야 하는 것도 아니다. 화석 연료에서 벗어나 재생 에너지로 전환하듯이 집을 짓는 방식, 도시 공간을 만드는 방식을 바꿔 나가야 한다. 지역의 협업 순환 이런 순환폴리의 정신에 따라 다양한 배경의 건축팀을 선정했다. 영국의 어셈블(Assemble), 벨기에의 BC 아키텍츠(Architects), 남프랑스의 아틀리에 루마(Atelier Luma)로 구성된 팀, 일본의 이토 도요Ito Toyo, 그리고 한국팀은 전진홍과 최윤희가 이끄는 바래, 조남호가 이끄는 솔토지빈건축사사무소, 모두 네 개 팀을 선정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재료와 구법에 실험적인 자세로 접근하는 건축가들이다. *환경과조경440호(2024년 12월호)수록본 일부 배형민은 건축역사가이자 비평가이며 큐레이터다. 생각과 글, 이미지 공간, 설치 등을 엮어 대중과 소통하고 다양한 사람과 협업하는 전시 기획의 재미에 푹 빠져있다. 2008년, 2014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큐레이터로 참여해 2014년에는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총감독, 광주디자인 비엔날레 수석 큐레이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협력 감독, 삼성미술관 플라토 초대 큐레이터 등 전시 현장에서 활동해왔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환경대학원에서 학·석사, MIT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다. 『한국건축개념사전』을 공동 저술·편집했고, 『포트폴리오와 다이어그램(The Portfolio and the Diagram)』, 『감각의 단면』, 『아모레퍼시픽의 건축』 등을 저술했다.
[광주폴리 Ⅴ, 순환폴리] 순환 자원
순환자원지도 순환 자원에는 지역의 자연 자원, 폐자원, 공예 기술 등 인적 자원, 가공 및 제작이 가능한 기업과 연구 시설의 인프라 자원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된다. 한국은 유럽이나 미국보다 지역 범위가 국소적일 수밖에 없으며 기술 및 인프라 확보가 지역 안에서만 이루어지기 어렵다. 순환폴리의 지역을 정의하는 데 자연소재 및 폐자원 등은 광주를 중심으로 약 100km 이내 범위, 전남 및 전북 일부를 중심으로 살폈다. 2차 가공 및 건축 재료 공급을 위한 연구 제조 시설은 네트워킹과 협력 의지에 따라 주체들이 설정됐다. 자원은 가능한 한 지역 기반으로 하되 지식, 연구, 디자인 역량은 국내외를 넓게 포섭한다는 것이 순환폴리의 정신이자 방법론이다. 미역 이코한옥과 에어 폴리팀은 호남 일대 답사와 프로젝트 리서치를 하며 미역이란 자원에 주목했다. 완도와 고흥의 해조류 양식장과 가공 공장을 방문해 미역, 다시마, 김의 채취, 가공, 유통 현장을 탐사했고, 이는 해조류를 프로젝트의 주재료로 삼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두 팀 모두 바다에 버려지는 미역 줄기를 수거하는 기업과 협업해 해조류를 원료로 한 바이오 플라스틱, 내장재 패널, 기와 유약, 한지, 미장재를 개발해 폴리에 사용했다. 패각 수산물 중 패각류는 채취, 가공, 유통 과정에서 폐기물이 유난히 많이 발생한다. 그래서 패각 재활용은 건강한 땅과 바다를 보호하는 자원 순환의 핵심이다. 패각에서 추출되는 석회는 쓰임새가 다양하다. 지금도 시멘트의 필수 재료로 쓰이지만, 국내에서는 대부분 석회암 산지에서 자연을 훼손하며 생산된다. 서구에서는 고대부터 사용해 온 건축 재료지만, 강한 초기 강도와 반 투수성을 요구하는 현대의 기준에 반한다. 이코한옥팀은 패각류 석회를 벽돌, 미장, 유약 등의 재료로 다양하게 활용했다. 밀 국내산 밀 부산물 재활용에 관심을 두고 지역 생산자와 협업을 도모했다. 하지만 수확 시기에 맞추어 밀 부산물을 수거, 보전할 수 있는 방도를 찾지 못해 밀을 활용한 자재 개발은 무산됐다. 이코한옥팀은 밀 대신 왕겨를 지붕과 벽의 단열재로, 볏단을 벽체 틀로 사용하는 전통적인 방법을 택했다. 해충이나 부패 방지를 위해 왕겨를 태워 훈탄을 만드는데, 볏짚에 비해 변형이 덜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코한옥 조성 시 천연 안료와 배합 촉진제 등 훈탄의 기능적 가능성을 살펴볼 수 있는 재료 실험을 시도했다. 옻칠 옻칠은 옻나무에서 채취한 수액으로 만든 천연 수지다. 중국 대륙과 히말라야 지역, 한반도와 일본이 주요 산지지만, 실용적으로 옻칠을 채취하는 지역은 한정된다. 과거 옻나무가 국내에 산재했으나 현재 국산 옻칠은 원주에서만 채취된다. 국산 옻칠은 문화재 보수 등 극히 한정적인 곳에만 쓰인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현재 고급 옻칠을 포함해 대부분의 옻칠 제품은 중국산과 동남아산 옻칠을 원료로 사용한다. *환경과조경440호(2024년 12월호)수록본 일부
[광주폴리 Ⅴ, 순환폴리] 숨쉬는 폴리
지속가능성의 의미 전 세계가 경험하고 있는 기후 재난은 우리의 삶이 근대적 질서에 더 이상 머물 수 없는 새로운 세계라는 걸 비극적으로 확인해 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코로나19 팬데믹도 근본적인 전환의 한 양상이었다. 역사적으로 전염병은 위기이자 기회였다. 14세기 유럽인들은 서유럽의 흑사병 이후 신을 향한 기도보다 위생 검역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는 신권에서 왕권으로 변화되는 권력 이동의 계기가 됐고, 인본주의 르네상스의 토양이 됐다고 한다. 21세기 인류는 과학, 의학이 발전된 환경에서 코로나와 같은 전염병에 잘 대처한 듯이 보이지만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과 마찬가지로 근본적으로 미약하다. 기후변화가 문명사적 위기임에 틀림없지만 기회일 수 있을까. 건축은 기후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탄소 배출량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건설 분야에서 ‘지속가능성’은 해묵은 주제라고 할 수 있다. 건축의 대응은 생산의 근원을 그대로 둔 채 재생 에너지 기술을 덧대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재생 에너지를 위한 노력을 무의미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윤리적 차원을 포함한 건축 생산의 근원적인 변화를 전제하지 않는다면 입버릇처럼 말하는 지속가능성은 기술적 도구에 의존하는 수단에 머물 수밖에 없다. 단열과 밀폐에 의해 단절된 공간에 에어컨, 열 교환 시스템을 설치한 패시브하우스는 인간을 ‘사이존재’가 아닌 환경과의 교감을 상실한 고립된 객체로 전제하는 것이다. 생태환경미학 숨쉬는 폴리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실천으로 친환경 소재를 활용하고 광주폴리를 하나로 연결하는 의미를 담았다. 외피의 성능과 인상, 공기의 흐름을 만드는 공간의 형태, 설비 시스템 등 그동안 조남호 소장이 다른 프로젝트에서 시도했던 숨쉬는 건축의 형식을 세부 기술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생태환경미학의 건축에 다가가는 하나의 분명한 발걸음이었다. 특히 목재라는 소재는 기후변화의 주범인 탄소를 저장할 수 있으며 구축되는 시스템에 따라 건축물의 수명이 다한 후에도 계속해서 사용될 수 있어 탄소 배출량이 매우 적다. *환경과조경440호(2024년 12월호)수록본 일부 건축 솔토지빈건축사사무소(조남호) 친환경 컨설턴트 이병호(한국부동산원) 시공 제작 수피아건축 태양광 패널 고호솔라 위치 광주시 동구 동명동 92-9 솔토지빈건축사사무소는 조남호 대표가 이끄는 건축사사무소다. 역사의 선례로부터 지혜를 얻고, 새로운 건축을 만들어 가는 조직으로서 공동의 지향점과 구성원 각자의 고유성을 존중하는 집단으로 정착해가고 있다. 생태환경미학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숨쉬는 폴리를 구상하고 만들었다.
[광주폴리 Ⅴ, 순환폴리] 이코한옥
건물은 고립된 섬이 아니다 광주 도심, 버려진 한옥과 동네 마당을 복구해 작지만 특별한 공간을 지역 친환경 자원으로 만들고자 했다. 1965년 지어져 폐가가 된 한옥을 리노베이션했다. 구성 재료의 추출, 가공, 제작 과정에서 세 가지 생태적 원칙을 따랐다. 첫째, 폐기물이나 저평가된 자원을 건축 자재로 사용해 채취, 가공, 사용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한다. 둘째, 토착 지식과 현대 기술을 결합해 저에너지, 저비용으로 품질을 극대화한다. 셋째, 전문 지식, 노동, 자원, 지역의 네트워크 속에서 건축 생산의 역할을 설정한다. 건물은 고립된 섬이 아니다. 어떤 건축물도 그 주변과 지역의 맥락에서 분리될 수 없다. 아무리 신중하게 기획한 프로젝트라도 환경 파괴 문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한옥 리노베이션 너무 낡아 개보수가 불가능한 작은 문간채는 해체했다. 그 잔해에서 다시 쓸 수 있는 요소를 분리해 본채 개보수에 활용했다. 부서진 얇은 콘크리트 포장은 일부 걷어내 식물이 뿌리내릴 수 있는 흙바닥으로 되돌렸다. 각종 폐자재를 재활용해 새 자재의 사용을 줄였다. 지역의 사회적 기업이 입주할 공간과 상시 개방된 정원으로 한옥을 리노베이션했다. 한옥 도편수가 건물 상태를 조사한 결과, 목재가 흰개미 피해로 손상된 것을 발견했다. 지붕, 벽체, 바닥을 우선 걷어내고, 3D 스캔을 기반으로 목재 요소의 크기와 위치를 정확히 파악했다. 낡은 지붕을 걷어내면서 수십 년간 짊어지고 있던 하중이 사라지자 부재들이 조금씩 느슨해졌다. 새 기와를 얹고 적정한 하중을 가해 부재의 수직, 수평을 다시 맞췄다. 취약한 부분을 보강해 한옥 목구조의 안정을 되찾았다. 목구조에 경량 흙 채움 공사를 하고 시멘트로 마감했다. 불규칙한 집의 형태와 전통 기술을 현대적으로 적용한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시스템화한 패널 마감재 사용은 지양했다. 지붕 단열재로는 한옥에 흔히 쓰는 흙 혼합물 대신 왕겨를 태워 만든 훈탄을 사용했다. 내외부 벽 마감에 쓴 회반죽은 유럽에서 제작한 샘플과 테스트 패널을 바탕으로 현장과 주변 지역 재료를 활용해 개발한 것이다. *환경과조경440호(2024년 12월호)수록본 일부 건축과 R&D 어셈블+BC 아키텍츠+아틀리에 루마 R&D 윤정원(건축생산 큐레이터, 서울시립대학교), 김형기(조선대학교 건설재료연구실), 서울시립대학교 TAD Lab 제작 지원 드림라임, 클레이맥스, 고령기와, 세진플러스, 홍익휴먼스 시공과 설계 지원 스튜가하우스+어반소사이어티+송련재+일신공예사+현진건축+한옥사랑 조경 이상훈(전남대학교)+신다영(Vnh)+안팎 공예 김시월공예연구소, 장지방, 가라지가게, 스튜디오 오유경 3D 스캔&모델링 테크캡슐 위치 광주시 동구 동명동 209-106 어셈블(Assemble)은 런던을 기반으로 건축, 예술, 디자인 분야를 넘나들며 활동한다. 기존 자원을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인프라로 활용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고 그에 맞는 조직을 세우기도 한다. 제임스 비닝(James Binning)과 마크 게비건(Mark Gavigan)이 참여했다. BC 아키텍츠(BC Architects)는 건축, 연구, 재료 혁신의 교차점에서 활동하는 하이브리드 조직으로, 벨기에를 기반으로 지역 자원과 공예를 현대적 설계 관행에 통합하는 데 집중한다. 로렌스 베케만(Laurens Bekemans)과 요한 우베르(Yohann Hubert)가 건축 서사와 설계 실행을 이끌었다. 아틀리에 루마(Atelier LUMA)는 생태 지역적 접근법을 개척한 팀이다. 특정 지역을 구성하는 문화적, 환경적 층위를 조사·분석하고, 디자인을 통해 저평가된 자원에 새 용도를 부여한다. 농부와 건축가, 장인과 대학 실험실 사이를 전에 없던 방식으로 연결하기도 한다. 다니엘 벨(Daniel Bell), 헤나 버니(Henna Burney), 산드라 레부엘타 알베로(Sandra Revuelta Albero)가 함께했다.
[광주폴리 Ⅴ, 순환폴리] 옻칠 집
옻칠, 자연 소재의 재평가 옻칠은 한반도, 중국, 일본에서 오랫동안 쓰여 온 전통 자연 재료다. 일본에서 우루시urushi라고 불리는 옻칠은 옻나무 수액에서 추출해 내구성이 뛰어난 천연 도료이자 접착제다. 그릇, 냄비, 활, 농어업 기구 등 다양한 용도로 쓰여 온 옻칠은 생산 가공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으며 산림 자원의 업사이클링에 기여한다. 애정의 건축 옻의 전통 기술을 보존하는 데 장인 정신도 중요하지만, 옻을 현시대의 우수한 재료와 기술로서 인식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현대 기술과 융합해 현대 생활에 맞게 옻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자연 옻을 가구와 인테리어 제품, 옻칠 집의 셸처럼 건축 구조 재료로 사용함으로써 옻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고, 전통적인 장인 정신을 뛰어넘어 일본 특유의 제조 능력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자 한다. 고대 불상에서 영감을 받은 옻칠 집은 세계 최초로 옻을 구조적 건축 재료로 활용했다. UV 및 수분 저항, 구조적 형태 제작 능력에 대한 철저한 연구바탕으로 자연 재료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계획, 설계, 건축, 운영, 개조, 철거에 이르는 모든 단계에서 환경을 고려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발전할 것이다. 근대 이전에는 고장난 물건을 버리기보다 수리해서 오랫동안 유용하게 사용했다. 옻칠이 햇빛에 노출되어 차츰 퇴색될 때 적절한 유지·보수가 필요하다. 옻칠 집은 만드는 과정에 공예를 만드는 것 같은 정성이 들어간 만큼 관리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면 처음 모습 그대로 수십 년 동안 지속될 수 있다. 옻칠 집은 지역과 시민의 애정을 전제로 하는 건축 작업이자 미래 세대를 위한 유산이다. *환경과조경440호(2024년 12월호)수록본 일부 건축 이토 도요 건축사무소 디자인 협업 가나다 미쓰히로, 도키 겐지, 도쿄예술대학, 미야기대학 구조 가나다 미쓰히로, 도쿄예술대학, 에이럽 생산 캐탈리스트, 고 시젠 고보, 스튜디오 아르케 옻칠 도키 겐지, 미야기대학+사토 가즈아, 시젠코보 조경 Vnh+안팎 진행 리쉬이야기 협업 아사히 빌딩월, 테이진, 쯔쭈미 아사키치 우루시 위치 광주시 동구 동명동 38-7 1941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토 도요(Ito Toyo)는 도쿄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기쿠타케 기요노리 건축사무소에서 일한 후 1971년에 어반 로봇을 세웠고, 이후 1979년 도요 이토 & 어소시에이츠를 설립했다. 세계를 무대로 새로운 건축의 최전선에서 혁신적이면서도 편안한 공간을 실현하는 건축을 해왔다.
[광주폴리 Ⅴ, 순환폴리] 에어 폴리
에어 폴리는 산업 부산물과 해양 폐기물을 활용해 생태계의 선순환을 이뤄가기 위한 재활용 건축물이자 비닐하우스를 재해석한 것이다. 해조류를 기반으로 한 환경 친화적 생분해성 비닐로 건축 구조물을 제작했다. 바다 쓰레기가 되었을 미역 줄기로 만든 해조류 필름은 쓸모를 다한 후 토양 또는 해양 생태계에 쉽게 흡수될 수 있어 폐비닐 대체재로 쓰일 수 있다. 해조류 원단 사이 공기층을 만들어 내구성이 있도록 구조적으로 보완하면 가구, 제품, 의류로 쓰임을 확장할 수 있다. 조립, 해체, 이동이 자유로운 모듈 방식의 공간 구조는 재생의 관점에서도 중요하다. 이 같은 순환 시스템을 통해 재료를 버리지 않고 다른 쓰임으로 연결할 수 있다. 유동적인 현대의 삶을 반영하는 공간과 구조는 바래가 지속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에어 폴리의 제작, 사용, 분해 과정을 통해 토양과 바다에서 도심의 식탁과 공간으로, 그 후 다시 땅과 물로 돌아가는 해조류 비닐의 새로운 생애주기를 살펴본다. 해조 필름 전라남도 고흥 미역 양식장 인근에 있는 비닐 공장에서 농업용 멀칭 비닐 해조류 컴파운드를 기반으로 생분해성 해조 비닐의 두께, 폭, 색상을 테스트했다. 이곳은 종량제 봉투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필름을 넓은 폭으로 대량 생산할 수는 있지만 필름 두께와 표면 균일도에 문제가 있었다. 정성오 교수에게 농업에 사용되는 멀칭 필름에 대해 자문을 받아 두께를 조정했다. 에어 폴리에 사용하는 필름은 옷의 원단에 사용하는 멀칭 필름 두께보다 더 두꺼워야 공기를 가두고 어느 정도 힘을 견딜 수 있다. *환경과조경440호(2024년 12월호)수록본 일부 건축과 R&D 바래(전진홍+최윤희) 협력 기획 이경미 디자인 권서현, 이인애, 장성하, 조예진, 허해인 자문 박문길, 정성오 제작 정광우, 함지연 영상 스튜디오딥로드 패션 배여리 그래픽 김민재 프로그램 정림건축문화재단(건축학교) 설치 홍민희 식물 이주연 특별감사 강나래, 강지성, 곽소연, 곽성현, 김인환, 박동준, 얄루, 유명제, 이재선, 장미현, 장승환, 정진욱, 카밀라최, 황현진, 대학생건축과 연합회, 라인시스템 위치 광주시 동구 동계로 16-15 쿡폴리 콩집 바래는 전진홍과 최윤희가 2014년에 설립한 건축 스튜디오다. 역동적인 도시 환경과 시간에 조응하는 사물의 생산과 순환에 관심을 두고 리서치 기반의 건축 작업을 한다. 재료 분류 수집 로봇에서부터 키네틱 파빌리온, 장소 조건에 적응하며 형태를 달리하는 입체 미디어 설치 등 다양한 작업을 해왔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2015),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2017),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2018)에서 작업을 선보였다. 건축과 환경의 상호 작용을 고찰하며 조립과 공기로 가벼움의 건축을 실험하고 있다. 최근 활동으로는 『어셈블리 오브 에어』(팩토리2, 2021), 한국과학기술원과의 협업을 통해 선보인 ‘에어빔 파빌리온’,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된 ‘에어 빈’, 현대 모터스튜디오의 ‘에어 오브 블룸, 인해비팅 에어’가 있다.
올림픽파크 포레온
최대 규모 재건축 단지 재개발 추진부터 준공까지, 부동산 뉴스에 등장하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이슈가 가득하고 관심을 많이 받은 올림픽파크 포레온은 둔촌주공아파트 143개동 5,930세대를 85개동 12,032세대로 재건축한 단지다. 약 17만m2 녹지에 교목 1만 6천 주, 관목 15만 5천 주, 초화 100만 본이 식재됐다. 티하우스와 퍼걸러 60여 개, 수경 시설 16개, 어린이 놀이터 18개(물놀이터 6개), 주민 운동 시설 12개소, 휴게 정원 30여 개소가 설치됐고, 옥상 녹화 면적은 약 2만2천5백m2에 달한다. 4개 시공사와 4개 설계 본부가 1년에 걸쳐 조경 특화설계를 진행하고, 시공을 하면서 현장 상황과 요청에 맞추어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의 결과를 위해 함께 설계를 조율했다. 올림픽파크 포레온은 단일 공동 주택 단지로는 가장 크고, 가장 많은 조경 공사비는 물론 역대 최대의 설계·시공 전문가를 투입해 완성한 단지다. 올림픽파크 포레온 올림픽공원은 서울에서 손꼽히는 대형 공원이며 강동구 주민의 생활권 공원이다. 단지명인 올림픽파크 포레온은 “올림픽공원과 푸른 자연 위에 자리한 따뜻하고 평온한 곳”이라는 의미로, 올림픽공원을 향한 둔촌주공아파트 주민의 각별한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이에 주목해 올림픽공원의 랜드마크를 단지의 조경 공간에 옮겨 담아 단지와 공원의 관계성을 높이고 고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을 설계 목표로 삼았다. 넓은 단지의 장점을 활용해 다양한 자연의 경관을 담는 ‘메가 네이처 파크Mega Nature Park’라는 콘셉트로 조경 계획을 진행했다. 단지를 일곱 개 선형 공간으로 나눈 뒤 세부 공간을 계획했다. 단지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중심 클러스터는 메가 포레스트와 메가 그린필드로 구성된다. 단지를 동서 방향으로 관통하는 축인 포레스트웨이와 스트림웨이는 자연 그대로의 녹음을 단지 내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레벨 차가 있는 곳에는 선형 마당인 스케이프라인과 비스타라인을, 올림픽공원과 단지를 연결하는 대형 보행로에는 아티스틱 애비뉴를 조성했다. *환경과조경440호(2024년 12월호)수록본 일부 글 그룹한어소시에이트, 시공사 컨소시엄 사진 유청오 기본설계 서인조경 조경 특화설계 그룹한어소시에이트 시공 현대건설, 대우건설, HDC현대산업개발, 롯데건설 조경 시공 유일종합조경, 다원, 미담, HDC랩스, 동영조경, 아세아종합건설 휴게 시설 아르디온, 원앤티에스, 드림월드, 플레이잼 놀이 시설 스페이스톡, 아르디온, 플레이잼, 원앤티에스, 드림월드 석가산 미담, 수림원, 아세아종합건설 위치 서울시 강동구 둔촌1동 170-1 일대 규모 12,032세대 대지 면적 462,793.3m2 조경 면적 170,691.72m2 준공 2024. 11.
[해륙순환 도시주의] 다시 쌓는 불턱
“시끄럽다! 저리가라!” 삼양 3동에 남아있는 할망(할머니) 불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이씨 삼춘(삼촌의 제주 방언)이 소리쳤다. 그가 애기 해녀였던 시절, 뭘 물어보려 불턱에 찾아가면 할망들에게 시끄럽다고 쫓겨나기 일쑤였다. 우영팟에서 검질매고(김매고) 나온 잡초들을 불턱에 가져와 불을 피워두던 애기 해녀는 이제 노년의 잠수회장이 되었고, 할망 불턱도 옆집에서 창고를 지으며 반쯤 허물어져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 지 오래.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쉬는 사적인 공간이자, 하루의 물질부터 마을의 대소사까지 중요한 일들을 의논하는 공적인 자리였던 불턱은 해녀 공동체의 건축적 상징이다. 하지만 해녀 인구의 고령화와 감소로 인해 이러한 공간들도 사라져가고 있다. 답사 중 스러져가는 탈의장이나 불턱을 볼 때마다, 나는 삼춘들이 떠난 뒤의 바당밭의 미래를 고민하고는 했다. 소멸해가는 것들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내가 선택한 첫 번째 방법은 기록이었다. 기록은 문화의 증거가 된다. 답사를 다니며 측량한 여러 불턱과 잠수탈의장을 이번 글에서 살펴보겠다. 두 번째 방법은 변화다. 앞선 글에서는 바다와 땅을 오가는 영양분을 섬과 바당밭 풍경의 스케일에서 살펴보고 지속가능한 순환을 그려봤다. 깨끗한 물을 끌어와 화학 비료와 육상 양식장 배출수, 축산 폐수 등으로 오염시켜 바다에 방류해왔던 근대적 착취에서 벗어나, 돼지 분뇨를 이용해서 지렁이를 키우고, 광어 양식장에서 나오는 유기물로 해조류를 키워 소라나 전복을 먹이는 통합 다중 영양 양식(Integrated Multi-Trophic Aquaculture)을 상상해봤다. 버려지는 소라 껍데기는 해녀들이 오가는 조간대 길의 재료가 되어 검은 현무암 지대를 수놓으면 그 길에서 해녀 공동체가 다른 이들과 함께 걷는 일도 가능할 것이었다. 이번 글에서는 건축적 스케일에서 삼양 3동 할망 불턱을 다양한 세대가 만나는 공간으로 변화시켜본 과정을 다뤄보겠다. “또똣ᄒᆞᆫ디 이리로 오라(따뜻한 여기로 와라)” 불턱은 해녀 건축의 원형이다. 불턱은 크게 자연형과 인공형으로 나뉜다. 자연형 불턱은 자연 지형을 이용해 바람을 막아 불을 피워 사용한 형태를 지칭한다. 종달리에 위치한 돌청산 불턱이 대표적 예다.(각주 1) 현무암이 고르게 퍼져 있던 암반 지대가 마치 입을 벌리듯 갑자기 움푹 내려앉으며 바다로 이어지는 돌청산 불턱은 양옆으로 솟은 작은 현무암 절벽이 차가운 바닷바람을 막아주었다. 또한 이 골짜기는 해녀들이 바다로 드나드는 자연스러운 길이 되기도 했다. 자연 지형이 바람을 막아주지 못하는 경우 옛날 해녀들은 직접 돌담을 쌓아서 불턱을 만들었다. 이를 인공형 불턱으로 분류한다. 일례로 하도리에 위치한 보시코지 불턱이 있다. 해안도로변에서 마주하는 보시코지 불턱은 성인 허리께 높이의 약 동서 12m, 남북 6m의 직사각형 돌담으로, 그 단아한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담장 주변을 수놓은 문주란과 함께 담 위쪽에 덧발린 백색 모르타르가 눈길을 끄는데, 이는 인근 무두개의 산호모래로 만든 시멘트 모르타르다. 초기에는 오직 돌을 쌓아서 만드는 구조였으나, 제주에 시멘트가 보급되면서 해녀들은 이 모르타르로 돌담 틈새를 메워 바람을 차단하기도 했다. 그마저도 시멘트가 귀했던 초기에는 가장 바람에 많이 노출되고 구조적으로 취약한 위쪽에만 시멘트를 덧발랐다. 보시코지 불턱 입구로 들어서면 낮은 중간 담을 두어 내부를 두 개의 공간으로 구분한 구조가 드러나는데, 여기에 해녀 사회의 위계가 반영되어 있다. 서쪽의 높은 지대는 하군 해녀들이, 동쪽 낮은 지대는 상군 해녀들이 사용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보통 물리적으로 높은 자리에 사회적 위치가 높은 사람이 앉는 것과 달리, 낮은 지대에 사회적 위치가 더 높은 상군 해녀들이 앉았다는 것이다. 이유는 불턱에 앉아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소란스러운 풍경이 뒤로 물러나고, 사나운 바람과 파도 소리는 돌담을 거치며 온화해진다. 묵묵한 돌담 위로 하늘은 지나가고. *환경과조경440호(2024년 12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청산은 성산일출봉과 비슷하게 생긴 바위를 주민들이 일컫는 말이다. 강준호는 존재와 제도가 만든 풍경을 읽는 건축가다. UCLA에서 건축과 미술사를 복수전공한 뒤 하버드 디자인 대학원(GSD)에서 건축학 석사를 마쳤다. 이후 게럿 도허티(Gareth Doherty) 교수의 비평적 조경 디자인 연구소(Critical Landscapes Design Lab)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해안 지역의 기후 변화 인식을 조사했다. 현재 건축가와 정원사로 일하며 조경과 건축을 함께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다. @junho_s_kang
[어떤 디자인 오피스] 그룹한어소시에이트
30년, 한국 조경의 역사와 함께 1994년 창립한 그룹한어소시에이트(이하 그룹한)는 2024년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하는 조경설계사무소다. 현재 계열사 7개에 150여 명의 전문 인력이 근무하고 있다. 대형 공원과 주거 공간 설계에 강점을 두고 도시설계부터 정원까지 다양한 스케일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조직화된 시스템과 노하우를 통해 변화하는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창의적 비전으로 미래에 도전하고 있다. 지금까지 전 세계 20여 국가에서 매년 100개가 넘는 국내외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세계조경가협회(이하 IFLA) 대상 3회 수상, 대한민국 조경대상 대통령상 등 200개가 넘는 상을 수상했다. 자연과의 동거를 꿈꾸며 그룹한은 조경설계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이원화를 극복하고 일상에서 자연과 문화의 접점을 찾아 역동적이고 생동하는 자연성을 디자인하고 있다. 2016년에 준공된 배곧생명공원은 인간에 의한 개발로 훼손된 해안 매립지를 다시 자연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생명공원으로 탈바꿈시켰다. 대상지의 핵심인 중앙공원은 서해에서 급격하게 나타나는 조수 간만 차를 이용해 바닷물을 공원 내로 끌어들이고 자연 에너지만으로 담수와 기수, 해수가 만나는 복합적 생태계를 구성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경관을 연출하고 다양한 연안 생물이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배곧한울공원은 사라진 해안선을 되살리고 바다의 기억을 회복하고자 갯벌, 바람 등 여덟 가지 바다의 기억을 테마로 설정하고, 매립에 의해 직선화된 6km의 호안을 굴곡진 12km의 역동적 호안으로 새롭게 바꾸었다. 미완의 작품이지만 송도 G5 블록 공원 현상설계에서는 서해안의 대표적 원경관인 갯골과 해식 절벽을 디자인 모티브로 지형을 만드는 바람의 흐름을 따라 바닷물을 대지 내로 끌어들여 새로운 물길과 대지의 모양새를 만들어 냈다. 2013년 개관한 국립생태원은 습지 생태계의 특징을 관찰할 수 있는 금구리구역, 한국의 기후대별 삼림 식생을 재현한 하다람구역 등으로 구성했다. 기존 대상지의 식생과 수문을 면밀히 분석하여 훼손을 최소화하고 자연적인 수순환 체계 확립과 종 다양성 증진을 위한 최적의 서식지 조성으로 박제된 자연이 아닌 살아있는 생태계를 구현했다. 천안삼거리공원은 능수버들의 유래와 흥타령을 간직해온 대상지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 흥이 넘치는 삼남길을 재현하고 광활한 습지와 능수버들 군락이 춤추는 자연마당을 조성해 문화와 자연이 어우러진 역동적인 작용들을 끌어내고자 했다. 이러한 디자인은 겉모습의 자연에 대한 동경을 넘어 변화하고 역동적인 자연, 문화적인 자연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다. 과학과 예술의 경계를 넘어 예술적 또는 과학적 설계 방법론을 지향하는 상반된 디자인 경향을 융합해 나가면서 조경 디자인의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나가고 있다. 자연의 생태계와 인간의 예술적 감성을 통합적 안목에서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자연의 생태적 과정에 디자인의 상상력과 의미를 결합하는 조경설계를 궁극적으로 추구한다. 우리의 작품 중 예술 지향적인 작품으로 일산자이에 설치한 조형 퍼걸러는 꽃잎을 확대하고 스케일을 과장해 만든 크고 작은 구멍들이 그늘을 제공한다. 퍼걸러 바닥에는 햇볕의 방향에 따라 변화하는 그림자가 장관을 이룬다. 근린공원의 수경 시설은 친수 공간과 환경 조각품을 결합한 스토리텔링으로 조경과 미술이 통합된 예술 장식품을 구현했다. 양평 현대그룹 연수원의 평면은 기하학적 추상화를 연상하게 하고, 수원 SK 스카이뷰에 설치한 소나무 환경 조각품은 진입로 좌우로 식재된 소나무 군락과 통합된 조형미를 구현한다. 개포 래미안 포레스트, 수원센트럴아이파크자이에 설치한 조형 수경 시설과 제주 신화역사공원 조경설계공모 당선작, 화성 봉담 프라이드시티의 수공간은 땅의 융기와 용암의 팽창, 등고선 지형의 복원 등을 표현한 대지 예술에서 영감을 받았다.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 명지지구 조경설계공모 당선작은 과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한 생태학적 환경 이론과 대지 예술의 구현이라는 예술 지향적 조경설계를 결합해 완성했다. 쓰레기 매립지였던 대상지에 철새의 먹이인 새섬매자기 군락을 복원하고, 강 하구의 습지, 사구, 물골의 수문학적, 지형적 특성을 디자인에 반영해 자연과 인간이 함께 상생하고 치유되는 공원을 목표로 삼았다. 미사강변센트럴자이의 외부 공간 설계는 ‘디자인 위드 워터Design with Water’란 메인 콘셉트를 중심으로 물 관리와 함께 수공간을 디자인하는 과정을 통해 주민들의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 그리고 생명이 살아있는 지속가능한 환경을 만들고자 했다. 동탄목동공원(재난안전공원)은 전 지구적으로 심각한 재난과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을 중심으로 설계했다. 권역 안에서 수용할 수 있는 안전 및 대피 시설의 규모를 과학적으로 산정하고 도시 재해 시에 임시 거처로 활용할 수 있는 피난 광장과 관리 시설을 평상시 놀이 체험 및 교육 시설과 연계하며 조형미를 드러낼 수 있게 디자인했다. 렛츠런파크 영천은 경마공원에 머무르지 않고 부지 전체를 대지 예술로 승화시켜 정원 중심의 테마파크를 제공하는 지역문화형 공원으로 계획했다. 영천시의 지역 사회 발전을 위한 다양한 이벤트 프로그램을 통해 관광객과 문화가 함께 어우러지는 공원을 지향한다. 행정중심복합도시 5-1생활권 스마트 조경 설계공모 당선작은 지속가능한 스마트 공원을 활성화하기 위해 자연·인문 자원이 가진 지역성과 정체성을 기반으로 스마트 과학 기술을 접목해 도시와 시민이 협력해 도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능동적 시스템을 구축한다. 성남 복정 1, 2 공공주택지구 조경설계공모 당선작은 기후위기 영향을 줄이기 위한 탄소중립 공원으로 계획했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따라 녹색 공간의 지표를 제안하고, 자연 기반 탄소 흡수 및 저장량을 현재까지의 연구를 기반으로 정량화해 대상지 설계안에 탄소중립을 위한 생활의 실천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도시를 건축하는 조경 조경의 전통적인 반도시적 가치 지향에서 벗어나 도시 속에서도 그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다. 조경과 건축과 도시가 혼합된 하이브리드 영역에서 조경가로서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며 영역 간의 네트워크를 조절하는 지휘자로서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관점의 프로젝트를 다수 수행했다. 가덕도 개발개념 현상설계안은 도로와 방파제 같은 회색 인프라가 아닌, 실개천과 조류의 흐름에 따라 경관과 그린 인프라가 우선적으로 고려된 경관 중심적 계획의 프로세스를 제시한다. 3기 신도시 공원의 첫 주자인 인천 계양 테크노밸리 공공주택지구 조경설계공모 당선작은 기존 대형 중앙공원 중심의 1, 2기 신도시 공원 계획의 패러다임을 탈피한 휴먼 스케일의 선형공원을 도입했다. 입주민의 일상 깊숙한 곳까지 공원ㆍ녹지가 자리 잡는 것을 지향하고 지역 경관을 담은 디자인 모티브, 입체적 선형공원, 도시와 상호 작용하는 일상의 공원을 추구한다.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을 추구했지만 미완의 작품으로 남은 대형 프로젝트로는 용산공원, 서남권 국회대로 상부공원, 서울국제교류복합지구 등이 있다. 일산 식사지구 도시 개발 프로젝트는 초기 단계부터 조경가가 참여해 전체 마스터플랜 계획 과정에서 회색 인프라가 아닌 녹지 원형으로부터 그린 DNA를 추출하고자 했다. 새로운 도시 녹지 체계를 재생하고 그린 인프라스트럭처를 구축하는 전략으로 생태적 관점으로 도시 골격을 구성한 프로젝트의 좋은 예시다. 이와 같이 대규모 주거 단지 개발에서 그룹한이 주도적 역할을 해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을 실천한 프로젝트들이 있다. 군부대 이전 부지에 대규모 중앙공원으로 녹색 축을 만들고 ‘조경이 만드는 도시’를 추구한 창원 중동유니시티와 산수풍경에서 영감을 받아 봉우리와 계곡을 주제로 친환경 단지를 구현한 화성 봉담 프라이드시티, 지형의 선형이 살아있는 대지 예술로 단지를 가로지르는 중앙 공간과 대자연을 품은 생활 공간을 계획한 디에이치 아너힐즈, 한강으로의 경관 축을 따라 대규모 오픈스페이스가 설계된 잠실5단지, 메가 네이처 파크(Mega Nature Park)를 콘셉트로 올림픽공원의 자연을 담은 올림픽파크 포레온 등이 있다. 그룹한은 대지 예술로부터 영감을 얻어 독립적인 건축을 미적, 철학적 토대를 기반으로 하나의 흐름을 일관성 있게 완성하고자 하는 건축가들과 협업해 왔다. 세종시 정부 청사, LH 사옥, 부산현대미술관, 인천항 국제여객터미널, 울산전시컨벤션센터(UECO), 판교 알파돔, 동탄 롯데백화점 복합몰, 마곡 원웨스트 서울, 송도 롯데몰, 제주중문리조트 등 조경, 건축, 도시가 혼합된 영역에서 조경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전통의 계승과 한국적 조경을 위하여 다양한 설계 방법을 통해 전통 조경을 계승하고 한국적 조경의 정체성을 찾아가기 위한 시도를 이어왔다. 꽃담의 아름다움을 현대적 수경 시설인 벽천에 도입한 수지 LG빌리지와 전통을 재현한 부여 백제문화단지는 초창기 작품에서 시도된 형태 모방에 그치지 않고 전통 마을을 이루는 조성 방식인 풍수사상 등을 재해석해 실개천과 비보숲 등 산수 조성 기법을 현대적인 공간 조성 방식으로 구현했다. 양주자이의 실개천은 풍수사상을 접목해 천보산맥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실개천을 단지 내로 끌어들여 녹지와 수계가 유지되도록 생태와 문화의 그린 네트워크를 구현했다. 강남 도심 속 대규모 주거 단지인 반포자이는 한강으로부터 단지를 관통하는 두 갈래의 실개천을 도입해 다양한 휴게 공간과 오픈스페이스, 놀이 공간과 운동 시설 등을 배치하고 자연스럽게 물길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도록 설계했다. 서울대학교 행정관 광장은 차경과 비움의 전통적 조영 원리를 계승한 작품으로 전통 한옥 마당이 가진 비움의 미학에서 영감을 얻어 채우는 대신 비움을 통해 실용의 미를 실천했다. 청계중앙공원은 숲(山經)과 개울(水經), 그리고 길(修己)이 만드는 한국 전통 마을의 구성 원리를 차용하고 자연과 상생하는 음양오행 사상을 도입한 전통 조경의 재해석을 통해 한국적 도시 공원의 모델을 제시했다. 세계로 향한 발걸음 그룹한은 2007년부터 매년 IFLA 학생설계공모전의 공식 후원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2009년에는 미국 뉴욕 맨해튼 지사를 설립해 세계화의 초석을 다졌다. 일산자이 제로가든(2011), 배곧생명공원(2014) 등 으로 IFLA 작품 대상을 받는 등 국제 무대에서 한국 조경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동안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생명의 강(River of Life)(2011), 부르나이 케다야강 워터프런트(Kedaya Eco-corridor Waterfront)(2014), 아제르바이젠 바쿠 올림픽 경기장(Baku Olympic Stadium)(2014), 이란 아틀라스 플라자(Atlass Pars)(2016), 필리핀 클락 더 샵 힐즈 리조트(The Sarp Hills Resort)(2016),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토이테파 신도시(Toytepa Newtown)(2017), 미얀마양곤 한타와디국제공항(Hanthawaddy International Airport)(2019)등 전 세계 20여 개 국가에서 다양한 국제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오피스 구성과 문화 그룹한은 휴게 및 놀이 시설 설계·시공, LID 등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친환경 기술을 연구, 개발하는 자매 회사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공유하며 성장 중이다. 가이아글로벌은 ‘아이들의 꿈이 현실이 됩니다’라는 비전을 토대로 2002년에 설립한 친환경 놀이 시설물 브랜드다. 화학적 방부 처리가 필요 없는 유럽산 1등급 아까시 원목과 무독성 천연 안료를 사용해 창의적이고 모험적인 생태 놀이터를 만든다. 한국그린인프라연구소는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도시, 자연과 미래 세대를 위한 그린인프라 기술과 제품의 개발 및 보급을 목표로 2011년 설립됐다.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도시 환경을 만들기 위한 연구 개발에 앞장서고 있다. 토인 디자인은 자연과 하나가 되어 도시에서 예술성과 기능성을 겸비한 새로운 조경 시설물 개발을 위해 2014년에 설립됐다. 도심 속의 녹색 안식처를 지향하며 자연을 담고, 자연을 닮은 자연 감성의 미래형 야외 조경 시설물 연구 및 개발을 하고 있다. 또한 조경계의 유일한 전문지인 월간 『환경과조경』과 「한국조경신문」을 발간하며 ‘조경문화발전소’로서 조경계의 역사를 꾸준히 아카이브하고 조경 분야의 소통과 발전을 지원하고 있다. 회사 행사 매년 임직원들과 함께 다양한 사내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매년 봄마다 사옥 옥상에서 진행하는 스프링파밍데이는 채소와 과일들을 함께 심고 가꾸는 이벤트로 구성원들에게 사무실에서 벗어나 자연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했다. 가평의 그룹한 연수원 포레하우스를 통해 계열사 워크숍과 직원 가족들을 위한 무료 힐링 여행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임원 해외 워크숍과 전 직원 국내 및 해외 답사, 우수 사원 해외 답사 프로그램 등도 진행하고, 환경조경나눔연구원과 함께 가평 꽃동네, 한사랑마을 등에서 나눔과 봉사활동도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소장들의 소회 그룹한의 의미 그룹한 30주년을 기념해서 지난날의 사진과 추억들을 열어보았다. 막상 선명한 기억이 떠오르지는 않지만 내가 한 프로젝트, 나와 함께한 사람들 모두에게 그룹한이 어떻게 기억될지 궁금해졌다. 신입 공채 입사 동기 13명 중 이제 3명이 남았다. 신입부터 대리, 과장, 차장까지 직급이 올라갈 때마다 세우게 되는 목표와 미래에 대한 생각들이 있었지만 지금 얼만큼 이루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룹한은 내게 사회생활의 시작이었고, 힘든 직장 생활의 과정이었으며, 함께한 사람들과의 추억이었다고 정의하고 싶다. (전략 1본부, 김원대 소장) 내일의 꿈 “꿈을 먹고 사는 조경가 오태호입니다.” 2021년 겨울이 시작될 즈음, 그룹한 빌딩 6층 면접장에서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했다. 어린 시절, 독일 뷔르츠부르크 레지덴츠 궁전의 정원을 처음 마주했을 때 느낀 깊은 감동은 나를 조경의 길로 이끌었다. 그때 눈에 담았던 그림 같은 풍경을 내 손으로 만들고자 하는 열망은 지금도 변함없다. 조경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언젠가 국내 최고의 설계사무소에서 일하고 싶다’라는 다소 막연한 꿈을 꾸었고 내게 그룹한은 동경이자 꿈이었다. 그룹한에게 소망하는 바가 있다면, 어제의 내가 그랬듯 내일의 누군가에게 동경이자 꿈이 되어주길 바란다. (전략 2본부 , 오태호 소장) 다음 30년을 그리며 2024년은 그룹한이 30주년을 맞이한 해고, 그룹한과 함께한 지도 만 25년이 지났다. 누군가는 내게 한 회사에 어찌 그렇게 오래 다닐 수 있는지 묻는다. 돌이켜보면 정말 이 일이 좋아서 즐기며 했지만, 누구나 그러하듯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부딪히고 힘든 순간도 많았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를 굳이 꼽자면 조경에 대한 각별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대표님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과 나와 함께 걸어가며 서로의 힘듦을 공감할 수 있는 동료들이 아니었을까. 그룹한은 30주년을 넘어, 앞으로의 30년을 더해도 거뜬하게 조경계를 이끌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설계 1본부, 김애경 소장) 한계를 넘는 새로운 도전 “그룹한에서는 항상 예상을 뛰어넘는 도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입사 면접에서 전임 소장으로부터 들은 말의 의미를 지금 팀을 이끌며 깊이 이해하게 됐다. 주로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만큼 새로운 접근을 시도해야 한다. 최근 진행 중인 군포대야미 공원 프로젝트에서는 기후 최적화 분석을 적용해 여름철에도 쾌적한 공원을 목표로 설계를 진행하고 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그늘을 만들고, 바람이 흐르는 공간을 구상해 여름에도 시원한 공원이 되도록 계획하고 있다. 어떻게 더 새롭고 창의적인 해답을 제시할 수 있을까. 프로젝트를 하며 늘 하는 고민이지만, 매 프로젝트에서 한계를 넘어서는 해결책을 고민해온 것, 그것이 그룹한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설계 2본부, 강이주 소장) 지난 20년을 돌아보며 20년 전 내 기억 속의 그룹한은 이전 회사에서 저녁 시간 잠시 빠져나와 경력직 면접을 보러온 것이 처음이었다. 유난히도 반짝이던 엘리베이터, 숨이 약간 찰 정도로 언덕을 올라야 하는 방배동 제일 높은 곳의 빌딩. 젊은 조경 그룹. 그때만 해도 20년을 근무할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다. 힘들었지만 우리는 늘 작은 성공을 할 수 있어 자신감이 넘쳤고 최고의 회사 일원이라는 자부심도 있었다. 동료 간의 우정과 경쟁, 선후배 간의 끈끈한 연대와 더불어 그때의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 한결 수월하게 내가 원하는 설계를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20년을 그룹한과 함께했으며 우리는 같이 성장해왔다. 앞으로 더욱 성장할 그룹한과 나의 20년을 기대해본다. (설계 3본부, 주세훈 소장) 다채로운 가능성과 기회 그룹한은 나에게 많은 기회와 경험을 선사해 주었다. 평생 가보지 못할 남극부터 앞으로도 살아보지 못할 아파트, 살면서 가서는 안 되는 공공 청사들까지 프로젝트로 다가오는 20년간의 만남이 있었다. 정기 워크숍은 평소 숨쉬기 운동밖에 모르던 나에게 겨울에는 보드를, 여름에는 래프팅과 서바이벌 게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선사했다. 아마 100명의 사람과 뭉친 해외 패키지를 떠나는 경험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하루를 그럭저럭 살아가던 나에게 다채로운 가능성과 기회를 준 그룹한에 감사한다. (설계 4본부, 정미혜 소장) 유유자적의 삶을 꿈꾸며 유유자적한 삶을 사는 조경가는 실재할 수 있는가. 조경설계를 하던 동료들과 이 주제로 늦은 술자리에서 자주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어린 시절에는 일이 바빠져 예약해 둔 휴가를 취소할 때 상사들을 탓하곤 했는데, 입사 6년차이자 소장인 지금은 모든 것이 내 탓이다. 지금 이 글은 연말까지 꼼짝없이 특근을 하며 고생해야 하는 우리 팀원들을 위한 고백문이다. 글을 쓰는 지금은 만추의 절경이 펼쳐진 10월 말, 마음은 저기 어딘가 시원한 바람 부는 벤치에 앉아 카페라테를 마시고 있지만 몸은 컴퓨터 앞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대들이여, 빼앗긴 들에도 기필코 봄은 오고 우리는 곧 도서에 도장 쾅쾅 찍어서 납품을 하고야 말지어니. 함께 지금 이 역경을 묵묵히 함께 버텨내주어 몹시 감사하다. 오늘 유유자적한 삶을 살지는 못해도 내일 유유자적한 삶을 꿈꾸는 조경가 배상. (설계 5본부, 송시내 소장) 30년의 타임라인 입사 후 얼마 되지 않아 그룹한은 10주년을 맞이했다. 내가 기억하는 10주년의 그룹한은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는 인재와 희망이 넘치던 곳이었다. 입사 10년차, 20주년을 맞이한 그룹한은 성장의 정점을 달렸다. 부산과 뉴욕 지소가 설립됐고, 계열사가 늘어났고 해외 설계사들과의 무수한 교류와 조경설계에 대한 다양한 고민과 실험이 시도됐다. 30주년을 맞이한 그룹한은 조경 분야의 많은 사람들과 ‘관계’가 연결된 곳이 됐다. 수많은 사람이 그룹한을 통해 인연을 맺었으며 업계 내 외부의 다양한 공간으로 진출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오랜만에 만난 그들에게 그룹한은 고향과 같은 곳이었다. 30년의 시간은 그룹한을 단순한 직장을 넘어 인연을 맺은 수많은 사람의 마음 한구석에 보관해야 할 중요한 의미가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그룹한과 인연을 맺고 있는 이들이 가진 기억이 소멸하지 않도록 지속되길 바란다. (그룹한 김기천 본부장) 주니어 디자이너와의 대화(각주 1) 창립 당시와 현재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당시 조경 분야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 조경설계사무소는 극소수에 불과했고 건축이나 토목 분야와 비교했을 때 역할과 위상이 너무 낮아 비전을 갖기 힘들었다. 그때부터 제대로 된 조경설계사무소를 만들어서 우리 사회에 조경에 대한 인식을 뿌리내리고, 후배들에게 조경설계에 대한 확실한 비전을 심어주고 싶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조경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많이 나아졌다. 특히 야근과 철야를 밥 먹듯하던 당시와 비교할 때 워라밸 관점에서는 괄목할 만한 변화가 있다. 사라졌거나 현재도 남아 있는 비공식적 전통 혹은 재밌는 관습이 있나 다양한 사내 행사 중에서도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에 진행하는 해피아워가 있다. 모든 부서별로 지난 한 달간의 프로젝트를 모든 사원들이 돌아가며 발표를 하고 함께 소통하는 시간으로 매달 새로운 활력을 불러 일으킨다. 또 과거에는 직원들의 동기 부여를 위한 독특한 인사 시스템으로 일명 로터리(lottery) 제도를 시행했다. 능력 있는 직원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누구든 PM에 지원할 수 있게 하고 직원들을 상대로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자율적으로 팀을 만들어 가는 전통이다. 회사에서 가장 특별했던 순간 직원들과 수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지만 함께 일했던 순간보다 사실 여행가고 놀던 기억이 더 그립다. 사회에 작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직원들과 주말에 시간을 쪼개 봉사활동을 다녔던 기억들이 특별하다. 환경조경나눔연구원과 함께 조성한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정원은 역사의 아픈 상처로 고통 받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조경이 선물한 따뜻한 마음이었다. 손수 삽을 들고 기념식수를 했던 생전의 김복동 할머니께서 기뻐하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가평 꽃동네에서 예쁘게 조성된 정원을 보고 하루 동안의 기적이라며 좋아하던 수녀님의 환한 미소도 여태껏 기억에 남아있다. 또 2007년부터 IFLA 학생설계공모전의 공식 후원사로 참여해 지금까지 전 세계의 조경 학생들이 참가하는 국제 행사에 우리 회사가 기여하고 있다는 것도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룹한이 지향하는 지속가능한 조경 디자인을 위한 중요한 원칙이 있을 것 같다 과거에는 조경이 그냥 건축이나 도시 분야의 일부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조경이 만드는 도시’가 세계적인 흐름이 되었다. 기존 대상지가 가진 생태적, 역사적 문화적 자원을 잘 보전하고, 이를 바탕으로 도시가 만들어져야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도시가 된다는 것이다. 자연과 인간 그리고 문화가 공존하며 서로 상생의 길로 나갈 수 있는 대안을 찾는 것이 우리의 디자인 원칙이다. 30년이라는 세월 속에서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이었나 지나온 여정은 파란만장했고 앞으로 가야할 길도 결코 만만치 않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만, 어떠한 어려움도 함께 극복해왔던 것처럼 나와 그룹한 가족 모두가 멋지게 해내리라 믿는다. 우리에겐 조경을 위해 청춘을 불사르는 용광로와도 같은 열정이 있었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꺼지지 않는 혁신의 에너지가 있었다. 우리는 언제나 당당하게 정도경영의 바른길을 걸어 갈 용기가 있다.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보다 지난 30년간 함께 동고동락했던 가족과도 같은 우리 동료들이다. 가장 기억에 남거나 아쉬웠던 프로젝트 수많은 공모전에서 당선됐지만 오히려 낙선했던 작품들에 아쉬움이 크다. 광교호수공원 국제설계공모에서 아쉽게도 우승을 놓치고 실망에 잠겼을 때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제임스 코너가 “이제 지는 법을 배워야 할 때이고, 전쟁에서 많이 져본 자만이 이길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거야”라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당시 이미 세계적인 조경설계의 대가인 그도 수많은 공모전에서 낙선한 작품이 더 많았다고 했다. 스타 조경가로부터 지는 법을 배우고 다시 새로운 용기가 생겼고 더 많은 공모전에 도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30주년을 맞이한 감회가 어떤지 궁금하다 10주년을 맞이할 때는 회사가 급속한 성장기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에 파묻혀 있었다. 사원이 50명이 넘은 뒤 조직 관리의 어려움을 느끼고 체계적인 경영 공부를 위해 미국 와튼스쿨 최고경영자 과정을 이수했다. 디자이너라고 생각했던 내 자신을 경영자라는 마인드로 바꾸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20주년 즈음 회사가 안정기에 접어들었고 국내 시장에서 벗어나 세계를 향한 도전을 시작했다.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 GSD 객원교수로 근무하면서 뉴욕 맨해튼에 그룹한 미국 지사를 세웠고, 조지 하그리브스, 제임스 코너, 사사키 등 세계적인 조경가들과 많은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국제적인 조경설계사무소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30주년이란 시간이 너무도 빠르게 흘러 이제 다시 미래를 준비할 때가 온 것 같다. 앞으로도 그룹한은 인류와 지구의 미래를 위해 생명의 원천인 자연을 경외하고,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디자인, 실험적이고 창조적인 미적 가치를 끊임없이 탐구해 나갈 것이다. 더불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며 건강한 사회와 이웃의 행복한 삶의 기반을 만들기 위한 노력에 더욱 힘쓸 것이다. 조경에 한이 맺혀 그룹'한'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얼핏 들었다. 지금 어느 정도는 그때의 한이 풀렸는지 궁금하다 1994년 11명의 젊은 디자이너를 모아 작은 조경설계사무소를 창업했다. 당시에 조경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해 우리가 앞장서서 조경의 한을 풀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한’을 사명에 새기고 크게 된다는 의미와 한국을 대표한다는 의미의 한자 클 한(韓)으로 의미를 더했다. 또 1인이 아닌 팀으로 하나가 된다는 의미와 장차 큰 기업으로의 성장을 염원하는 뜻으로 그룹을 사명에 넣어 그룹한을 완성했다. 창업한 지 30년이란 세월이 흘러 강산이 세 번 바뀌었다. 한국 조경설계 분야의 성장과 역사를 함께 한 짧지 않은 시간 동안 500명에 가까운 인재가 그룹한의 문지방을 넘나 들었다. 한때 100명이 넘는 인원으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기도 했고 IMF와 리먼 사태와 같은 국내외의 숱한 위기의 파도를 넘어오면서 그룹한은 조경설계를 바탕으로 친환경 놀이터, 조경 시설, 자재 개발, 조경 미디어 등 글로벌 조경 그룹으로 성장해 나가고 있다. **각주 정리 1. 그룹한 30주년을 맞이하며 입사 1~3년차 주니어 디자이너들(민연주, 강다운, 김민지, 임민부, 이민정, 이다솔, 김혜지, 김채송)로부터 그룹한의 과거와 현재, 비전 등에 대한 궁금한 점을 질문 받았고 이에 대한 답변을 인터뷰 형식으로 정리했다. 그룹한어소시에이트는 인간과 자연의 상생, 미적 가치와 효용성의 극대화,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환경을 위해 창의적이고 선한 디자인을 실천하고 있다. 인류와 지구의 미래를 위해 생명의 원천인 자연을 경외하고, 생물종 다양성과 전 지구적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생태적으로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디자인을 지향한다.
[밀레니얼의 도시공원 이야기] 파도 파도 끝이 없는 남산-공원
서울의 길에서는 (남)산이 보인다(각주 1) 조경과 도시를 키워드로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 관한 연구를 하다 보면 몇 번이고 마주치게 되는 남산 혹은 남산공원. 서울시 공원 홈페이지는 남산을 “서울의 중심부에 위치한 서울의 상징”이라고 소개한다. 실제로 서울 시민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게 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남산과 얽힌 기억 한두 가지는 있기 마련이다. 물론 남산-공원에 쌓인 복잡한 역사적 켜와 정치·사회적 맥락으로 인해 화자의 연령대, 시기, 취향에 따라 남산의 경험은 크게 갈리게 된다. 남산을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선조의 발자취로 볼 것인가? 한양도성이라는 걸출한 문화유산이 그 형태를 뽐내는 유산의 위치로 볼 것인가? 대도시 서울 속 자연의 재현으로 볼 수도 있는가? 김종성 건축가가 설계한 힐튼호텔부터 케이블카와 말 많고 탈도 많은 남산돈까스까지, 20세기 중후반 서울의 대중문화 속에 새겨진 장소 기억으로 볼 것인가? 그도 아니면 바라보는 곳, 즉 대상으로서 남산에 무게를 더 둘 것인가? 에피소드 1. 만화의 집 일상에서 남산을 어떤 공간으로 인지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를 훌쩍 졸업하고 난 뒤 신도시로 이사 갔음에도 ‘일부러’ 남산을 오고 갔기 때문. 2000년대 초반의 여름 주말, 연신 ‘더워’와 ‘왜 이렇게 먼 거야’를 중얼거리며 경사진 좁은 보행로를 걸어 올랐다. 언덕이라면 질색팔색 하는 중학생이 자발적으로 남산을 오른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기 마련. 현재는 문을 닫은 ‘만화의 집’이 그 이유였다. 서울에서 만화 좀 봤다는 20세기 소년, 소녀라면 열에 일고여덟은 ‘서울애니메이션센터’를 들어보지 않았을까. 최근 몇 년간 재건축으로 인해 회현역 근처로 자리를 옮겨 운영했지만, 원래 서울애니메이션센터는 현재 남산예장공원이라고 알려진 곳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사실 담론화가 부족할 뿐 이 부지의 역사도 한 굴곡한다. 1950년대 KBS 사옥으로 완공됐다가 1970년대 중반부터는 국토통일원 청사, 1980년대에는 안기부, 1999년(Y2K!)부터 서울경제진흥원이 운영하는 서울애니메이션센터의 자리로 유지되고 있다. 그 이전에는 통감부 자리였고, 일제강점기 중반부터 한동안은 과학관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남산의 유구한 역사와 비슷한 결을 지닌 부지다. 그렇다면 왜 만화의 집에 가야 했는가? 답은 간단하다. 온종일 무료로 (당시만 하더라도) 국내에서 손꼽히는 만화책 컬렉션을 볼 수 있는 시영 만화방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동네 만화방보다 깨끗하고 만화책 관리도 잘 되어 있어서 이쪽 계열 학생들이 시내 곳곳에서 모여드는 핫플이기도 했다. 다만 다들 만화책 읽기 바빠서 사랑방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 *환경과조경440호(2024년 12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2024년 10월에 출간된 건축가이자 조경가이며 도시경관기록자로도 잘 알려진 김인수의 책에서 따온 소제목이다. 김인수, 『서울의 골목길에서는 산이 보인다: 오래된 골목길에서 바라본 서울, 그 30여 년의 기록』, 목수책방, 2024. 신명진은 뉴욕대학교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뒤 서울대학교 대학원 생태조경학과와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석사와 박사를 마친 문어발 도시 연구자다. 현재 예술, 경험, 진정성 등 손에 잡히지 않는 도시의 차원에 관심을 두고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의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도시경관 매거진 『ULC』의 편집진이기도 하며, 종종 갤러리와 미술관을 오가며 온갖 세상만사에 관심을 두고 있다. @jin.everywhere
안과 밖이 만나는 접점, 누정
누(樓)와 정자를 뜻하는 정亭을 합쳐 이르는 누정은 인간이 잠시 자연 속에 머무르며 풍광을 감상하는 공간이었으며, 정신을 수양하고 후학을 교육하고 문학과 예술에 대해 논하는 장소였다. “대저, 누정은 높고 광활한 데나 그윽하고 깊은 곳이 둔다. 저기가 싫증나면 여기가 그립고 이곳이 지겨우면 저곳이 생각나니, 이는 한결같은 사람의 마음이다”(안축, 『취운정기』 중 『동문선』 제68권)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 누정은 수많은 건축 유형 가운데 관찬지리서의 중심 항목으로 당당히 하나의 자리했을 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사랑받으며 곳곳에 설치되고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다. 지난 11월 15일 한양대학교박물관에서 열린 ‘조선시대 누정 로망’ 전시는 조선시대 누정에 함축된 의미와 가치를 재조명한다. 조선왕조 500년 전반에 걸쳐 등장하고 변화했던 누정이 지난 역사와 사회, 문화를 대변하는 응축된 결정체임을 드러내고자 기획됐다. 누정의 경영주와 주변 인물, 입지와 환경, 묵적의 필체와 내용, 건축 형태와 구조 등 관련 자료를 엮어 전시했다. 전시장에 들어선 관객의 시선을 가장 먼저 사로잡는 건 실내에 들어선 거대한 누정이다. 전시 콘셉트에 맞춰 마련한 휴식 공간이겠거니 생각하며 지나치려 하는데 네 기둥 아래에 달린 바퀴가 눈길을 끈다. 이 누정의 정체는 문자로만 남아 있는 ‘사륜정’을 전라남도 무형유산 대목장인 김영성 선생과 제자가 실물 크기로 재현한 것이다. 사륜정은 고려시대 이규보가 창안한 이동식 누정이다. 당시 실제로 제작되지는 않았지만 이규보의 문집인 『동국이상국집』에 기획 의도, 구조, 치수, 쓰임에 관한 상세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종이에 남겨진 기록에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도록 실체화된 사륜정은 우리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고 누정에 관한 새로운 논의를 불러일으킨다. *환경과조경440호(2024년 12월호)수록본 일부
2024 디에스디삼호 조경나눔공모전
지난 11월 8일 환경조경나눔연구원이 주최 및 주관하고 디에스디삼호와 월간 『환경과조경』이 후원한 ‘시니어 레지던스 외부 공간 프로그램 디자인 학생 아이디어 공모(2024 디에스디삼호 조경나눔공모전)’ 심사 결과가 발표됐다. 이번 공모의 설계 목표는 실버 세대의 건강한 일상, 라이프 스타일과 취미, 연대와 협력, 자연 경험 등을 외부 공간 디자인에 담아내는 것이었다. 대상지는 경기도 가평군 호명산 일대의 시니어 레지던스 타운으로 건너편에는 시니어 요양원과 병원이 계획됐다. 주변은 산악 지형과 경관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케이블카, 집라인, 캠핑장 등을 갖춘 종합 레저 타운으로 개발될 예정이다. 참가자들은 이러한 도시적 맥락을 고려해 대상지의 활성화를 도모해야 했다. 총 45개 팀이 참가 신청했고, 30개 팀이 작품을 제출했다. 대상은 김소진·빙유진·우현·이시은(경희대학교)의 더 리지(The Ridge)가 차지했다. 대상작은 물에 둘러싸인 호명산 능선 사이를 연결하는 산책로와 전망대를 통해 시니어들이 노인이 아닌 한 개인으로 조명 받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느끼게 하고 이를 통해 연대와 화합을 꿈꿀 수 있도록 공간을 계획했다. 완만한 경사도와 다양한 코스로 구성된 산책로를 통해 사색의 시간을 제공하고, 물의 흐름을 감상하거나 차를 마시며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는 명상을 즐기며 마음을 치유하고 휴식할 기회를 제공한다. 최우수상은 박송·윤여령(경희대학교)의 디웰(D-well), 이주하·김세나·박지연·이지연·진주희(단국대학교)의 톤피케이션(Tonfication)이 선정됐다. 우수상은 유채원·김수경·조서연(서울여자대학교)의 아-하! 올 타임 해피 플레이그라운드(A-Ha!: All Time Happy Playground), 황세은·김세원·배유진(서울여자대학교)의 어셈블 인디비주얼(Assemble Individual), 박찬영·김예연·이동주·정상혁·홍재환(한경국립대학교)의 포레지어(Foresier).포레지어가 수상했다. 가작은 임채진·이재영·전진아(서울여자대학교)의 루트 앤 루트(Roots & Routes), 이지영·김고은·김서진·변지혜·이지현(단국대학교)의 오감악소(五感樂所), 이임주·김강희·윤지상·이정주·정시인(단국대학교)의 풀-필Ful-Fill, 김가현·남나영·이유빈(경희대학교)의 라너지(Lanergy)가 선정됐다. *환경과조경440호(2024년 12월호)수록본 일부
[기웃거리는 편집자] 기쁨이와 불안이
갓난아이가 부모를 보고 웃는다. 아이 머릿속에 있는 감정 컨트롤 본부에 입장한 첫 감정은 기쁨이(joy). 기쁨이가 본부에 들어온 지 33초 만에 감정이 바뀐다. 슬픔이(sad)가 감정 컨트롤 버튼을 누르며 등장한다. 기쁨이와 슬픔이에 뒤이어 소심이(fear), 까칠이(disgust), 버럭이(anger)가 본부에 입장한다. 감정 컨트롤 본부의 리더는 기쁨이. 기쁨이는 다섯 개의 핵심 기억 구슬 색깔이 기쁨의 상징색인 노란 색으로 유지될 수 있게 노력한다. 이 구슬들은 아이의 성격을 형성해 주는 다섯 섬(엉뚱 섬, 하키 섬, 정직섬, 우정 섬, 가족 섬)과도 연결되어 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2015)의 주인공 소녀 라일리의 감정 컨트롤 본부 이야기다. 영화는 라일리 아빠가 직장을 옮기면서 정든 도시를 떠나 새 도시에 정착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이사 간 집과 도시, 전학 간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던 찰나, 기쁨이와 슬픔이가 장기 기억 파이프에 빨려 들어가 감정 컨트롤 본부에서 사라지게 된다. 라일리는 감정 조절하는 법을 잊어버린다. 이 정도 배경 지식을 갖추고 나면 영화가 어떻게 펼쳐질지 예상할 수도 있다. 위기를 이겨내면서 싸웠던 주인공들이 화해하고, 왜 갈등이 빚어졌는지 깨닫게 되는 디즈니 영화 특유의 클리셰. 맞다, 이 영화도 생각한 대로 흘러간다. 하지만 이 영화가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는 라일리의 이야기가 나도 겪은 과정일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내 머릿속에도 열일하고 있는 감정 컨트롤 본부와 장기 기억 저장소, 꿈 제작소, 기억 처리반이 있을 것 같다고 상상하게 해서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기쁨이는 기쁨만이 라일리를 행복하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힘들다고 솔직하게 울 수 있게 도와주는 슬픔이와 함께 모든 감정이 라일리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노란색으로만 칠해졌던 핵심 기억 구슬은 여러 감정의 색이 섞이고 무너졌던 성격 섬은 더 단단해진다. 새로운 도시와 학교에 적응한 라일리는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고 끝날 것 같던 영화는 새로운 막을 예고한다. 13살이 된 라일리는 우수상을 받을 만큼 공부를 잘하고 친구들에게 친절하며, 여전히 아이스하키도 잘하고 키가 훌쩍 컸다. 그녀의 성격 섬 중 가족 섬은 다른 섬에 비해 많이 작아졌고 우정 섬이 매우 커졌다. 라일리가 성장하면서 모인 여러 신념이 만든 ‘난 좋은 사람이야’ 자아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친구를 도와주고, 친구들과 우정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자아는 ‘인사이드 아웃 2’(2024)의 새로운 장치다. 2015년에 개봉한 시즌 1에 이어 9년 만에 개봉한 시즌 2. 시즌 2는 사춘기에 접어든 라일리의 자아 정착기를 담았다. 사춘기에 들어선 라일리의 감정 컨트롤 본부에 이유 모를 사이렌이 울리고 기존 감정들에게 예고도 없이 새 단장이 시작된다. 그렇게 등장한 새 감정들, 불안이(anxiety), 당황이(embarrassment), 따분이(ennui), 부럽이(envy). 네 개 감정이 더 추가됐고, 감정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라일리의 감정이 요동친다. 아이스하키 시합에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해야 하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라일리는 불안이 가득한 자아에 지배되면서 ‘난 아직 부족해(I’m not good enough)’란 말이 반복해서 들리고, 불안이의 컨트롤 제어가 안 된다. 폭주하는 불안이를 막은 건 기쁨이의 한 마디. “라일리가 어떤 사람이 될지는 네가 정하는 게 아냐, 이제 라일리를 놔줘(You don't get to choose who Riley is. You need to let her go).” 불안이의 폭풍이 잠재워지고 부정과 긍정이 섞인 여러 자아가 형성된다. 감정들은 자아를 컨트롤할 수 있는 건 라일리 본인이라는 걸 깨달으며 영화가 끝난다. 영화 중간에 나온 라일리 부모의 감정 컨트롤 본부 리더는 버럭이와 슬픔이. 부모도 라일리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감정 컨트롤러가 기쁨이에서 버럭이와 슬픔이로 바뀐 듯하다. (요즘) 나의 감정 컨트롤 본부의 리더는 불안이다. 나이 앞자리 숫자가 바뀌기 직전이라 불안이가 리더가 된 것 같다. 소문 무성한 30대의 여정을 견뎌낼 체력이 있는가, 아픈 곳은 없는가, 이 정도의 통장 잔고와 관리면 잘하고 있는지, 지금까지 잘 걸어온건지 등등 불안이 가득한 연말이다. 그래도 이 지면만 채우면 이번 달 잡지도 마감이다. 마감해서 신난 기쁨이와 싱숭생숭한 불안이가 감정 컨트롤 버튼을 동시에 누르고 있다.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내 속에 있는 그 의심을 확인하는 게 무서워서 도망친 거야
이건 비밀인데, 횡단보도에 서는 족족 신호등에 초록불이 들어오더니 어두운 집 앞 골목길에 발을 내딛는 순간 가로등이 켜졌던 날 어쩌면 신이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냥 좀 지쳤던 날이었다. 꾸역꾸역 써내려간 특집 기획안은 오류로 날려 먹고 점심시간에 기분 전환 겸 맛있는 커피라도 마시려고 멀리까지 걸어갔더니 휴무라는 글자가 카페에 걸려 있던 날. 축 처진 내게 찾아온 좋은 우연의 연속은 날 유치한 상상에 빠트렸다. 짐 캐리의 얼굴을 한 신(영화 ‘브루스 올마이티’ 때문이다)이 “너 오늘 하루 고됐구나, 내가 좋은 일 몇 개 좀 주마”라며 훌훌 웃는 모습을. 이때의 기억이 강렬해서인지 그 뒤로 우연이 겹칠 때면 짐 캐리 얼굴이 떠올라 웃게 됐다. 이번 달에도 몇 번 그의 얼굴을 마주했는데, 운 좋게 본 영화와 흥미진진하게 본방 사수했던 드라마가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괴물’(고레에다 히로카즈)은 예매를 미루다가 관람 시기를 놓쳤던 영화다. 꼭 영화관 큰 스크린으로 보고 싶었던 터라 아쉬워하던 중, 기적처럼 들려온 재개봉 소식에 일정 조정이고 뭐고 예매부터 해버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이름에 걸맞은 영상미와 음악, 연출, 그리고 그와 상반되는 명치 아래를 꽉 오그라트리는 묵직하고 참혹한 이야기. 러닝 타임이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 생각했다. ‘제목이 완전 덫인 영화구나, 어쩜 이렇게 잘 지었지. 그런 점까지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MBC)랑 닮았다. 연출이 과하다고 느낄 정도로 아름답다는 점까지도.’ 두 작품은 제목을 일종의 장치로 사용한다. 보고 있으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꾸 괴물은 누구인지, 배신자는 누구인지 끊임없이 추리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괴물은 아이들이 흥얼거리는 노랫말을 통해 노골적으로 묻기까지 한다. “괴물은 누구게.” 던져진 올가미를 가뿐히 피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미련한 나는 그 미끼를 덥석 물고 괴물이 누구인지 끊임없이 의심하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진짜 괴물은 계속해서 탓할 사람을 찾고 증거로 치기에는 뜨뜻미지근하게 조각난 장면들을 가지고 남에게 함부로 혐의를 씌운 나라는 걸.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속 여러 인물이 던진 질문들은 드라마 속 인물을 넘어 시청자에게 보내는 물음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해?” “확신해? 그 확신부터 의심해.” 그 말에 찔려 잠깐 가동을 멈추었던 내 사고 체계는 5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추론을 시작한다. 작은 꼬투리를 잡고 멋대로 상상을 키워가며 함께 드라마를 보던 엄마에게 쟤 이상하다고 속삭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전부가 내 망상이었음을 확인하는 순간, 또 다른 등장인물의 대사로 변명을 하고 싶어진다.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울까요”, “누군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싶은데 그것이 안 될 때는 의심하게 되더라고요.” 괴물과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가 전달하려는 진정한 의미는 관람객과 시청자의 반응을 포함할 때 완벽해질 것이다. 영화를 본 시점이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가 한참 방영되고 있을 때였다. 드라마를 보면서 계속해서 우연의 중첩이 주는 짜릿함을 마주했다. 마지막 회, 갈등이 고조됐을 때 등장인물이 나누는 대화가 그 심리적 자극을 극대화했다. “내가 괴물이라서 버린 거잖아”, “버린 게 아니라 도망쳤어. 내 속에 있는 그 의심을 확인하는 게 무서워서 도망친거야.” 친밀한 배신자 역시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이 지면을 읽고 있는 독자들은 이번 호에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라 우기고 싶은 우연이 숨겨져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연결고리는 광주폴리다. 광주폴리를 처음 본 건 아니지만, 이번 순환폴리는 내게 색다른 감각을 안겼다. 폴리를 짓는 것을 넘어 그 재료와 짓는 방식을 연구하고 개발한 것,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과 협력했다는 사실을 현장과 도록에서 읽어낼 수 있었다. 이들이 주목한 재료 중 하나가 다양한 패각인데, 신기하게도 ‘해륙순환 도시주의’의 강준호도 제주 해녀 활동 공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라 껍데기와 전복 껍데기를 재활용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순환폴리의 또 다른 특징은 폴리가 누정과 같은 도시 속 새로운 커뮤니티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는 점이다. 누정이 어떤 공간인지 궁금하다면 책장을 다섯 쪽 앞으로 넘기면 된다. 이 우연을 발견한 사람들의 표정이 어떨까. 궁금해진다
[PRODUCT] 하늘과 자연을 담는 원더루프
야외 시설물인 퍼걸러는 오브제 역할을 하는 가구로 여겨진다. 하지만 퍼걸러를 통해 새로운 공간 경험과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휴게 시설물 브랜드 엠페오(MFEO)는 시스템 퍼걸러 디자인을 통해 사람과 공간, 환경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한다. 원더루프(Wonderoof) 시리즈는 전형적인 퍼걸러 디자인에서 벗어나 높은 기술력과 안전성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시리즈는 전동형 시스템 퍼걸러 ARES와 수동형 퍼걸러 스카이무드(Skymood)로 구성된다. ARES의 리모콘을 조작하면 퍼걸러 지붕 개폐 정도가 조절되어 자유자재로 하늘을 감상할 수 있다. 방수 기능이 뛰어나 장마철에도 유용하며, 강풍과 대설 등 악천후와 안전 사고를 대비해 120kg/m2 이상의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했다. 프레임을 따라 설치된 LED 조명은 단순한 밝기 조절을 넘어 RGB 색상으로 변경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다양한 야경을 연출한다. 스카이무드는 수동형 손잡이로 지붕 개폐가 가능하며, 최대 120도까지 회전하는 틸팅 방식을 통해 지붕의 미세한 각도를 조절한다. 알루미늄과 스테인리스 스틸을 사용해 내구성을 높였으며, 루버가 회전할 때 낙엽이나 먼지가 내부로 유입되는 것을 막아 관리가 용이하다. 원더루프 시리즈의 장점은 맞춤형 옵션으로 다양한 공간을 연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픽스 창, 폴딩 도어, 글라스 슬라이딩 도어 등 10가지 이상의 측면 옵션을 제공한다. 퍼걸러의 네 면을 서로 다르게 구성할 수 있어 설치 환경에 따른 최적의 조합이 가능하다. 이처럼 실내외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형식의 원더루프는 앞으로 새로운 공간 경험과 분위기를 제공하는 퍼걸러로 거듭날 것이다. TEL. 02-2659-1772 WEB. www.mfe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