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태식 한국정원협회 부회장 ([email protected])
흰 꽃과 빨간 열매
우리나라에서는 남쪽을 제외한 모든 지방에서 볼 수 있는 나무이며, 토질을 크게 가리지 않고 잘 자라나 병충해 피해가 많이 생기는 편이다. 추운 지방에서 잘 자라 화력이 좋아 장작으로 많이 쓰이며 목재에 탄력이 있어 다양한 가구의 목재로 사용한다. 한국의 평안도 지방이나 중국에서는 산사나무 가시가 귀신을 쫓아낸다는 민속신앙이 있어서 울타리로 많이 심었다고 한다.
산사나무는 일조량이 풍부해야 잘 자란다. 음지에서는 성장이 더디다. 햇빛을 좋아해 능선이나 숲 가장자리의 양지바른 곳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소교목이며 나무껍질은 회색이고 가지에 가시가 난다. 잎은 어긋나고 가장자리가 깃처럼 갈라지고 밑 부분은 더욱 깊게 갈라진다. 장미과인 산사나무는 5월에 흰색 꽃이 산방꽃차례로 탐스럽게 피어난다. 순백색의 꽃이 눈송이처럼 봄에 피어나고 가을에는 빨간 열매가 많이 달리는데 흰색 반점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산사나무는 약 1천여 종에 있다. 미국산사나무(Crataegus scabrida)는 미국에서 들어온 낙엽관목으로서 산사나무와 비슷하지만 잎에 결각이 없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으며 열매는 매끈하며 줄기에 길고 날카로운 가시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서양산사나무(Crataegus monogyna)는 가시가 드물게 나고 열매 표면이 매끄럽고 광택이 난다. 오랫동안 유럽에서 식용과 의약용으로 사용한 나무이다. 우리나라 산사나무와 마찬가지로 서양산사나무는 잎가장자리가 들쑥날쑥한 모양인 결각이 뚜렷하다.

가시나무
나무는 스스로를 잘 지키기 위하여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는데 줄기에 가시를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다. 가시가 있는 식물은 약용식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줄기에 돋는 가시의 종류는 경침(thorn), 엽침(spine), 피침(cortical spine)으로 구분할 수 있다. 경침은 줄기가 변하여 가시가 생기는데 탱자나무, 주엽나무, 석류 그리고 산사나무가 있다. 줄기에 붙어있는 가시는 줄기의 역할을 하기에 길이가 자라거나 잎이 자라기도 한다. 경침은 줄기와 한 몸이라 나무에서 잘 떨어지지 않는다.
엽침은 탁엽이 가시로 발달하는데 초피나무, 대추나무, 산초나무나 아까시나무가 이에 속한다. 엽침은 규칙적으로 가시가 달리는데 줄기나 곁가지가 굵어지면서 상대적으로 가시는 작아진다. 엽침은 잎이 나무에서 떨어지듯 나무에서 잘 분리된다. 어린이들은 아까시나무 가시를 떼어 손 등에 붙여 장난 치곤했다.
피침은 나무껍질 층이 가시로 변한 경우인데 장미과 식물에 많다. 장미, 해당화, 두릅나무, 음나무 등이 있다. 가시는 불규칙하게 돋아난다. 나무껍질이 가시로 변한 것이어서 경침보다는 잘 떨어지고 엽침보다는 안 떨어진다.
산이나 들로 다니다 보면 식물 가시에 찔리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가시에 찔리거나 긁히면 상처가 나고 쓰리다. 가시는 수분을 조절하거나 초식동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역할을 한다. 가시가 달린 식물은 독은 없다고 하여 초봄에 나는 새순을 따서 나물로 먹기도 한다. 겨울이 되어 무성한 잎들이 모두 떨어지면 억센 가시가 달린 나무가 더 눈에 띈다. 아이러니하게도 남부지방에서 살고 있는 참나무과의 ‘가시나무(Quercus myrsinaefolia)’ 줄기에는 가시가 없다.

탕후루와 산사춘
중국요리 가운데 꿀이나 설탕에 절인 산사나무 열매를 후식으로 먹는데, 이를 ‘탕후루’라고 하는데 주로 고기를 먹고 난 다음 먹는다. 탕후루는 산사나무 열매뿐만 아니라 다양한 과일을 잘게 만들어 꼬치에 꿴 뒤 설탕과 물엿을 입혀 만드는 중국식 과자이다. 말리지 않고 얼려서 만드는 빙탕후루 방식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산사나무 열매로 산사주를 담그고, 차로 마시기도 한다. 전통적인 약재로 써서 위를 튼튼히 하고 소화를 도우며 장의 기능을 바르게 한다고 한다. 겨울철 들판에 먹을 게 부족할 때는 새들이 즐겨 먹는다. 한때 산사나무 열매로 만든 전통주가 옅은 분홍색 과일주로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겨우 산사나무 열매 0.85%를 함유한 제품이지만 톡톡 튀는 광고 카피로 젊은 사람들이 즐겨 찾았다. 담금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각종 나무 열매로 과일주를 직접 만들어 마신다. 매실, 오미자, 마가목 그리고 산사나무 열매인 산사자가 발효주로 많이 쓰인다.

May flower 또는 Winter King
‘산사나무’의 영어 이름은 5월의 시작과 함께 꽃이 피기 때문에 ‘May Flower’로 부른다. 20세기 프랑스 노동절 시위 현장에서 18살의 여성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당시 그녀는 산사나무 꽃을 안고 걸었다고 한다. 이후로 산사나무는 신성한 노동의 가치를 기념하는 노동절인 May Day를 상징하게 되었다. 또한 17세기 유럽의 청교도들이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건너갈 때 타고 갔던 배의 이름을 ‘메이플라워호’로 지었다. 재난을 막아주는 신성한 나무인 메이플라워(산사나무)가 희망의 땅으로 가는 험난한 여정을 보호해 줄 거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산사나무는 희망을 상징하는 나무였다. 지금도 5월 1일이면 산사나무 꽃으로 꽃다발을 만들어 문에 매달아 두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로마에서는 산사나무 가지가 마귀를 쫓아낸다고 생각하여 아기 요람에 얹어두기도 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의 가시면류관은 산사나무로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전설이 전해지고, 성모마리아에게도 봉헌된 이 나무는 결코 번개를 맞는 일이 없었다고 믿었다. 예수의 머리에 닿았던 나무이기 때문에 사탄이 벼락으로도 건드릴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2017년 방미한 문재인 대통령이 버지니아주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찾아 산사나무를 기념 식수했다. 문 대통령은 산사나무가 ‘겨울의 왕(Winter King)’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며 6·25전쟁 당시 매서운 혹한을 이겨낸 장진호 참전용사들의 투혼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강조했다.
서울 봉은사에는 다양한 수종의 고목 가운데 산사나무가 있다. 봉은사 자문위원회 공식 명칭을 ‘산사나무 아래서’로 지었다. 봉은사를 상징하는 산사나무처럼 세상에 맑은 향기를 퍼트리고 이로운 열매를 매달아 나눠주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이처럼 흰색 꽃, 억센 가시 그리고 빨간 열매까지 산사나무는 버릴 게 하나 없는 나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