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윤, 신유정, 임정우 기자 ([email protected])
지난 한 해 조경의 다양한 영역에서 눈에 띄는 성취를 이루거나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한 노력으로 분야 발전에 기여한 ‘2024년을 빛낸 조경인’들로부터 신년 메시지 “2025년에 바란다”를 들어봤다.
- 편집자주
대한민국 조경,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길
심왕섭
환경조경발전재단 이사장
푸른 용의 해를 맞아 계획했던 많은 일들 중, 잘 이뤄진 일들과 이뤄지지 못한 일들이 있었다. 이제는 그를 모두 뒤로 한 채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다. 국토부에서 발주된 조경수 가격 조사에 대한 용역은 환경조경발전재단의 조경지원센터에서 수주해 2025년 4월 결과가 공표될 예정으로, 순조롭게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재수에 삼수를 거듭하고 있는 조경지원센터 정부보조금 신청은 혼란한 국정 속, 이번에도 신규사업으로 분류돼 통과 여부가 미궁에 빠져 안타까울 뿐이다.
오로지 환경조경발전재단의 일에 매달려 “어떻게 하면 반석 위에 올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만 하고 있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세상 일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늘 느끼고 있다.
푸른 뱀의 해 2025년은 대한민국 조경이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가는 힘찬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또다시 기후위기 대처와 미세먼지 대책 등 조경이 해야 할 많은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려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겠다는 다짐도 해 본다. 2025년도에는 대한민국 조경인들이 건승하길 바란다.
조경도 일상의 평화도 "봄을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
원종호
JWL 소장
개인적으로 2024년은 큰 의미가 있는 해였다. JWL이 10번째 생일을 맞이하며, 비로소 건실한 청년과 같이 설계사무소로서의 역량과 틀을 갖추게 됐다. 엔지니어링 활동주체로서 처음 도전했던 제부도 근린공원 현상공모에서 당선됐고, 그간의 작업을 정리해 도전했던 ‘제7회 젊은 조경가’에 선정되는 등 즐겁고 소중한 기억이 많았다. 좋은 환경에서 좋은 동료들과 함께 꾸준히 작업을 해왔다는 단순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한 한 해였다.
조경업계 전반적으로는 2024년이 그리 즐거운 해가 아니었다. 건설경기가 좋지 않은 관계로 산업 내에서도 그리 큰 파이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조경인들에게는 쉽지 않은 한 해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가오는 2025년도 그리 좋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언젠가 다가올 봄을 기다리며 농기구와 씨앗을 다듬는 농부의 마음으로, 내실을 다지며 이 긴 터널을 함께 견뎠으면 한다.
우리 사회 전반에 있어 2024년은 암흑 같은 한 해였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일상의 평화가 짐짓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됐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고,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릴 수 있다는 한강 작가의 말처럼, 넓은 강과 같이 도도히 흘러온 우리네 삶과 일상, 그리고 민주주의가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고 지속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모든 조경인 그리고 그 가족 여러분에게도 건강하고 행복한 일상이 깃들 2025년이길 바란다.
아파트 조경, 대중의 삶에서 더욱 섬세하게 빛나길
최연길
현대건설 조경팀장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공동주택단지’. 올림픽파크 포레온(구)둔촌주공 재건축) 현장을 말하는 가장 적확한 표현이다. 한편으로는 너무 쉽게 회자되는 말인지라 사분사분 걷자면 두어 시간을 족히 걸리는 단지의 실제 규모를 체감하기에는 현실성이 부족하기도 하다. 아무튼, 착공부터 중단, 재개와 준공까지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올림픽파크 포레온이 2024년 가을 완성되었고, 감사하게도 4개 건설사의 주관사 조경 팀장으로 이 과정에 참여할 수 있었다.
올림픽파크 포레온의 조경은 명성에 걸맞게 각 건설사의 특화 상품과 기술이 아쉬움 없이 구현됐다. 대규모의 광장과 아기자기한 정원, 특별한 수목과 독보적인 디자인의 시설물까지 공동주택 조경에서 생각할 수 있는 혹은 그 범위를 넘어서는 다양한 공간이 조성되었다. 특히, 미디어아트 및 미술대학과의 협업 등의 예술적 시도는 입주민들의 좋은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새로운 작업이었다.
비슷한 풍경들이 수없이 반복되는 아파트 조경에 무엇 새로운 것이 있을까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특별하고 희귀한 나무를 어디서 심어볼 수 있는지, 규모 있게 계획된 도시 숲과 작가의 섬세한 감성 정원을 어느 주민의 마당에 조성할 수 있는지, 다양한 모양의 수경시설과 건축 영역을 넘나드는 시설물이 어느 가정집 앞에 설치될 수 있는지, 그리고 신진-기성 예술가가 제안하는 여러 협업 작품이 어느 시민의 일상에서 누려질 수 있는지 생각하면, 아파트 조경은 사실 이미 충분히 의미 있는 작업이 아닐까 한다.
건설 경기의 암울한 전망으로 시작하는 2025년이지만, 대중의 삶에서 마주치는 첫 조경으로서 아파트 조경이 더욱 섬세하게 빛나기를 바란다.
수고했고, 고마웠어
박승진
디자인스튜디오 loci 대표
밤에 자다가 깨기를 반복한다. 피곤이 쉽게 풀리지 않는다. 워낙 기막힌 일을 겪어서일까, 밤새 뒤척이다가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일이 잦아졌다. 또 무슨 어이없는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겠지, 마음이 무겁다.
이번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라는 예보가 있던 날, 공원의 하늘은 투명했다. 바람이 멈춘 때문인지 볕은 따스해서 양지바른 자리는 앉을 만했다. 한적하다. 아직 땅으로 떨구지 못한 이파리들이 위태롭게 달려있다. 잘 마시지 않는 커피를 받아 들고 공원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는다. 찬 공기 사이로 퍼지는 커피 향이 좋다. 아이들이 농구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동네 어르신들은 오늘 하루 쉬시는 모양이다. 텅 빈 자리들. 공원은 봄과 여름, 가을을 지내는 동안 참 수고 많이 했다. 누구를 위로하고 누구를 품어 주었으리라. 어떤 이의 친구가 되어 주었고, 용기 내게 해 주었다. 우리가 함께 즐기는 것이 즐거운 일이라고 말해 주었다. 고독의 시간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고맙다고 말해야겠다.
좋은 말을 듣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쑥스럽기는 하나, 오목공원을 칭찬해주고 꽃다발을 주고 상장도 주고 어디서는 트로피까지 주다니, 감사할 일이다. ‘디자인’ 앞의 두 글자, ‘공공’에 묵직한 책임감을 느낀다. 잘할 수 있을까.
바람이 분다. 이제 일어나서 집에 가야겠다. 새해를 목전에 두고 희망을 말해야 하는데, 걱정이 앞선다. 다시 마음을 다잡아본다. 2025년, 춥지 않기를 바란다. 다같이, 진짜, 춥지 않기를, 모두가 잘 견뎌 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