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명준 조경평론가 ([email protected])
02. 나무가 춤추는 올림픽공원
화면 가득 녹색이 펼쳐진다. 하늘은 그야말로 파아란 하늘색이다. 그 사이를 사람들이 즐겁게 거닐지만, 하얀 토끼와 초록 거북은 숨이 차다. 배우들은 분장을 하고 종일 뛰어다니며 술래잡기하듯 재미를 이어간다. 시대를 풍미했던 TV쇼 「무한도전」 속 장면이다. 배우들이 종일 뛰어다닌 너른 잔디밭과 파아란 하늘, 갖가지 푸른 잎의 나무들은 올림픽공원에 있다.
공원은 원래 이런 곳이다. 한적한 시골 풍경의 낮게 깔린 녹색 자연을 숨죽이며 감상하기도 하지만, 뛰어놀며 시끄럽게 저마다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곳이기도 하다. 현대 도시에서 공원은 자연을 가둬놓은 모습이지만 최소한 그 안에서는 도시를 벗어나 자연에만 집중할 수 있다. 시야를 열어주고 계절을 숨 쉬도록 하며 같은 모습을 즐기는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리듬처럼 듣게 한다.
우리가 이렇게 뛰놀 수 있었던 것은 언제였던가? 우리가 푸른 자연을 이렇게 맘 놓고 즐길 수 있는 것은 또 언제였던가? 이곳은 그런 점에서 여러 의미 층위가 중첩된 한국 공원의 역사적 장소이면서 일상적 공원이다. 다행히도 국가적 관심이자 국제적 행사 장소였던 이곳은 이제 사람들이 즐기는 도시의 거대한 녹색 공간으로 지속되고 있다.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개최를 기념해 조성된 올림픽공원은 지난 1986년 45만여 평의 부지에 완공되었다. 공원 중심부에는 몽촌토성이 복원되어 도심에서 만나기 어려운 독특한 경관을 자랑하고 있고, 이 몽촌토성을 중심으로 5개의 경기장이 반원형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평화의 광장, 몽촌해자, 수변무대, 올림픽 미술관, 몽촌토성, 88호수, 만남의 광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_ 월간 환경과조경 편집부, 『PARK SCAPE』, 도서출판 조경, 2016, p.48.
넓은 도시 공간이 필요한 기능별로 구획되고 그 사이를 동선으로 이어가며 기존의 것과 새로운 것이 입체적인 짜임을 만들었다. 이만한 곳도 없었을 것이다. 그 사이 성장 궤도의 경제와 강남 지역의 개발이 맞물려 자본 축적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국제적으로 이목이 집중되는 이벤트로 성과를 보이려는 열망이 우리 공원 역사의 중요한 단면을 형성했다. 그것이 이제는 올림픽공원의 개성으로 성장하였다.
커다란 잔디 언덕이 하늘과 직접 만나는 풍경들이 곳곳에 등장한다는 점이 올림픽공원의 가장 큰 특징인데 이는 그렇게 형성된 것이다. 구획된 공간들은 또 길들이 나무를 따라 연결된다. 나무가 길을 따라가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푸른 잔디가 수평면을 통일해주면 그 사이로 나무들이 길을 안내하는 식이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나무들도 저마다의 크기와 모양으로 자라나 마치 공원이 본래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것처럼 느끼게도 한다. 그런 특징은 이 땅 자체의 역사성도 한 몫 한다.
“올림픽공원이 있는 땅은 백제 초기 토성이었던 몽촌토성(夢村土城)이 있던 자리입니다. 바로 북쪽 위의 풍납토성(風納土城)과 하나의 지역을 이룹니다. 풍납토성이 북성(北城)이라면 몽촌토성은 남쪽에 있다 해서 남성(南城)이라 불렀습니다. 두 토성 사이를 흘러서 한강으로 들어가는 천이 성내천(城內川)이에요. 토‘성 안을 흐르는 물’이라는 뜻입니다.” _ 조성룡·심세중, 『조성룡 건축과 풍화: 우리가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수류산방, 2018, p.59.
우리는 도시의 공원이 그런 역사 위에 놓인다는 점을 쉽게 놓친다. 국제적 행사를 배경으로 새롭게 개발되는 땅에 역사를 바탕에 두고 세계적 이목이 집중되도록 건물 배치마저 한 눈에 들어오게 하며 촉박한 시간에도 기지를 모아 너른 공원을 모범처럼 만들어낸 것이지만, 그 땅은 이미 수천 년의 도시 발자국이 거름으로 남아 있었다. 빨리빨리 문화가 우리 사이에 정착하고 산업화가 한강의 기적이라는 드라마를 펼치는 와중에 어리둥절 옮겨 심어진 나무들도 저마다 여기가 내 자리네 열심히 뿌리내렸고 그 결과가 지금의 모습을 이뤘다.
“올림픽공원은 아주 조형적인 폼(form)을 빚었어요. 성의 구릉으로 탁 펼쳐진 잔디밭을 오르락내리락 산책하죠. 그 공원의 가장 중심축에 김중업 선생이 설계한 <평화의 문>(1988년)이 우뚝 서 있고, 그 너머에 남한산성을 향해서 방사상의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1988년 준공)가 펼쳐집니다. 성내천과 남한산성 사이의 땅에 1980년대가 올림픽이라는 사건을 기념하면서 그려 낸 거대한 상징입니다. 아, 드라마틱하지요. 그런데 이 형상이 너무나 강해서 보기에 따라서는 남한산성과 몽촌토성을 짓누르는 듯도 합니다. 그 오래된 토성의 구릉이 마치 공원의 폼을 위한 것처럼 보이는 겁니다.” _ 조성룡·심세중, 앞의 책, p.73.
그렇게 올림픽공원은 바닥면과 하늘면, 그리고 수면이 조화를 이루는 특별한 공간으로 빚어진 것이다. 기념물과 예술이 현대적 의미로서 가미되며 공원은 일상적이지만 세계적인 가치를 지향하게 된다. 처음에는 압도하는 인공적 풍경이 공원을 휘감았지만, 이제는 공원이 그대로 뛰놀고 산책하는 일상의 풍경이 되었다. 그것은 단적으로 말하면 시간과 함께 멋대로 자라난 나무 때문이다, 공원을 사랑한 시민들 때문이다. 이곳의 특징은 무엇보다 초록색과 나무들에 있는 것이다. 초록의 바닥면에 한껏 제 멋대로 형태를 자랑하는 나무들이 계절을 보여주고 자연을 느끼게 해준다. 그런 점에서 올림픽공원은 언덕이 만들어놓은 터의 형상부터 나무가 뛰노는 사이로 도시민들이 함께 자연을 만들어가는 곳이다.
이러한 풍경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고 땅이 자리를 잡아야 가능하다. 나무는 처음 심어 놓은 그대로보다 자리 잡고 뿌리내린 후가 아름답기 마련이고, 몇 차례의 계절을 거치며 축적된 시간은 많을수록 우리에게 전해오는 감성도 깊이 있고 다양하게 한다. 올림픽공원이 좋은 점은 소나무 일색의 이념의 수림(樹林)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나무가 저마다 넉넉한 공간을 가지며 서로 섞이고 어울리며 원로(園路, garden pathway)마다 저마다의 풍경을 만드는데 있다. 그리고 잘 가꾸었기 때문이다. 이런 공원은 세계적으로 흔치 않다.
그러나 이 공원은 개발이 만들어낸 도시의 새로운 기능 공간이라는 본래의 한계가 있다. 대대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배경이 있다. 거대한 문주형 조각과 야외 예술작품, 수변공간과 무대, 주변의 방사형 아파트 등은 본래의 공원이 지향하는 어떤 것을 먼저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다. 근대 이후 우리에게 공원이 어떤 것이었는지 그 태도가 그대로 묻어난다는 점은 이후 만들어진 대형공원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다행히도 공원은 생명을 품는 공간이어서 언제나 그대로인 것 같은 공원일지라도 쌓이는 시간 앞에 장사 없고 자라는 나무 앞에 손길 주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30여 년이 지난 공원은 나무와 잔디가 주인공이 되어 있다. 나무들은 풍경에 따라 크기든 모양이든 그늘이든 저마다 기분 좋게 뿌리내린 모습이다. 올림픽공원이 점점 더 사랑받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공원은 그러니까 강력한 구조물이나 건축물로 성장하고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땅과 계절에 적응하며 정착한 나무들이 춤추고, 계절과 꽃향기를 즐길 줄 아는 시민들에 의해 성장하고 지속되는 것이다.
나무가 춤추면 공원이 들썩인다. 공원이 들썩이면 도시는 춤추기 시작한다. 뉴욕의 센트럴파크가 그랬고 베를린의 티어가르텐이 그랬다. 런던의 하이드파크, 파리의 볼로뉴숲은 또 어떤가? 나무는 도시에 간섭하기도 도시를 북돋기도 하며 도시가 춤추게 한다. 이곳은 그 대표 격이다. 그런 공원을 느끼고 즐겨 보자. 춤은 흥에 겨워 절로 흐르기도 하지만 인내와 슬픔을 승화하며 영혼이 담긴 몸짓이 되기도 한다는 점을 되돌아보면서.
짧게 보자면 우리 도시에서 공원은 서구와는 달리 자생성이 강한 장소로 성장한 측면이 있다. 이것은 억세고 다부진 밀림과 야생의 공원이 아니라 언제나 포근하고 누구나 포용하는 숲과 자연의 공원이라는 의미이다. 자생성보다는 생태성이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우리 시대, 우리식의 도시 공원은 그런 하늘하늘한 춤사위의 나무와 땅으로 연결되는 풍경으로 누구든 자유롭게 맞이하는 오픈스페이스라는 것이다. 올림픽공원은 그렇게 “꽉 찬 춤추는 빈 터”라는 것이다.
Park 01. 공원에서 춤추는 나무들 - 자연에서 태어난 공원
어느 공원이든 나무가 없는 경우는 없다. 햇볕이 다르고 빗물이 다르더라도 공원이라면 어떤 공원이든 나무가 중요하지 않은 곳은 없다. 공원은 태생부터 자연의 일부였고 그 기능을 간직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나무를 별도로 배우지 않으면 잘 모른다. 길마다 다른 가로수는 단풍철 정도가 아니면 그다지 눈길을 잡지 못한다. 별도로 공부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환경문제가 피부에 와 닿는 요즈음에 몇 가지는 알아두면 좋겠다.
이 나무와 초화만은 꼭 알아두자
요즈음의 공원은 친절하여 나무마다 명찰을 달고 있는 경우가 많다. 진귀한 초화류와 정원에는 친절하게 별도의 안내판이 놓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정보가 많지 않고 용어가 낯설기 일쑤이며, 잎이 없으면 그나마 그 나무가 그 나무로 보이기 마련이다. 또한 공원에 모든 나무와 초화가 있을 수는 없기에 지역마다 위치마다 볼 수 있는 나무들이 다를 수밖에 없어 개인의 취향에 적합한 나무가 언제나 가득한 것도 아니다. 조금만 나무에 대해 알고 있다면 아쉬움을 달랠 수 있을 것, 모두 알고 있을 필요는 없겠지만 몇 가지 나무들은 알아두면 비교하며 즐길 수 있으리라.
식물은 주로 잎의 모양으로 구분된다. 공원에 사용되는 나무와 초화는 지역의 기후에 따라 다르지만 200여 가지 정도가 주로 쓰인다. 많지는 않지만 수목학을 공부하듯 나무를 구분하고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으므로 우리가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관심 있는 경우라면 모를까 침엽인지 활엽인지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렇더라도 공원에 가득한 나무들이 건네는 이야기와 치유의 손길을 모른 척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만의 방식으로 몇 가지만은 읽어두고 알아두도록 하자.
1. 소나무 잎은 몇 가닥일까요? - 소나무/잣나무/섬잣나무/스트로브잣나무/리기다소나무/반송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침엽수는 소나무와 잣나무이다. 소나무과에 속하는데, 크기와 모양에 따라 다양한 수종이 있다. 대체로 잎의 수와 줄기 모양으로 구분한다. 먼저 바늘 같은 잎의 숫자로 구분이 되는데, 2개인 경우 소나무, 반송, 곰솔, 3개인 경우 리기다소나무, 백송, 5개인 경우 잣나무, 섬잣나무, 스트로브잣나무 등이 있다. 대체로 2개인 경우는 소나무고 5개인 경우는 잣나무다.
2. 벚나무는 어떻게 생겼을까요? - 왕벚나무/산벚나무/수양벚나무/겹벚나무
봄에 화사하게 꽃피우고, 여름에 그늘을 만들어주며, 가을에 단풍을 주는 대표적인 나무가 벚나무다. 벚나무는 큰 크기와 달리 장미과에 속하는데, 꽃 모양보다는 나무의 전체적인 모양으로 구분한다. 연분홍의 꽃이 가지 전체에 매달리듯 피는데, 원래 나무 모양이 둥그런 것이 왕벚나무와 산벚나무이고, 가지가 축 늘어져 바람에 날리는 것이 수양벚나무다. 마치 연분홍의 카네이션이 달린 듯, 가지 곳곳에 겹이 있는 꽃이 달리는 것이 겹벚나무다. 아름다운 꽃이 피는 장미과 나무로는 모과나무, 사과나무, 아그배나무, 살구나무, 매실나무, 복숭아나무, 자두나무, 앵두나무, 해당화, 조팝나무, 장미 등이 있다.
3. 목련꽃의 색깔을 아시나요? - 목련/자목련/백목련/일본목련/산목련
목련꽃은 4월부터 피기 시작한다. 한 겨울에도 아름다운 가지를 유지하고 있다가 봄이 되면 봉우리를 올리는데, 꽃이 피기 전까지는 그 색을 알기 쉽지 않다. 대체로 잎이 얼굴만 하게 크고 꽃도 거기에 맞추어 크면서 흰 것은 일본목련이다. 잎도 작고 꽃 크기도 작은 것이 그 밖의 목련들이며, 색깔에 따라 흰색은 목련, 백목련, 보라색은 자목련으로 구분한다. 하나의 줄기를 가지는 이런 목련과 달리 지면에서부터 가지가 여러 갈래로 자라는 산목련(함박꽃나무)도 있다.
4. 단풍나무는 몇 가지나 있을까요? - 단풍나무/홍단풍/청단풍/중국단풍/신나무/고로쇠나무 등
단풍나무는 독특한 잎 모양과 아름다운 단풍으로 사랑받는다. 잎이 크게 갈라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그 잎의 갈래로 구분하는데, 세 갈래인 것이 중국단풍, 신나무, 다섯에서 일곱 갈래인 것이 고로쇠나무, 단풍나무, 일곱에서 아홉 갈래인 것이 홍단풍, 아홉에서 열한 갈래인 것이 당단풍이다.
5. 참나무는 몇 종류? - 갈참나무/굴참나무/졸참나무/떡갈나무/신갈나무/상수리나무/밤나무 등
우리나라는 국토 전체에 걸쳐 다양한 참나무가 자라고 있다. 대표적인 활엽수 종류로 밤이나 도토리와 같이 이로운 열매가 열린다. 잎의 모양도 그 수만큼 다양한데, 그림을 보고 구분해보자. 아래 그림의 나무들을 모두 참나무라고 부른다.
6. 길가의 빽빽한 작은 나무는 무엇일까요? - 쥐똥나무/조팝나무/회양목/옥향
커다란 줄기로 자라는 나무가 교목이라면, 작은 크기로 가는 줄기가 한 곳에서 많이 올라와 자라는 것이 관목이다. 손가락보다 가는 굵기로 아주 작은 잎들을 빽빽하게 달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다 보니 울타리나 경계부에 쓰이는 경우가 많고, 모양을 내거나 장소를 꾸밀 때도 쓰인다. 쥐똥 같은 까만 열매가 달리는 쥐똥나무, 좁쌀로 지은 밥처럼 작고 하얀 꽃이 피는 조팝나무, 둥그런 공처럼 자라고 추위와 전정에 강해 모양을 내기 좋은 회양목, 회양목처럼 생겼지만 잎이 막대처럼 생긴 엄연한 향나무 옥향 등이 있다.
7. 화려한 꽃과 모양을 지닌 나무는? - 백일홍/박태기나무/자귀나무/안개나무/계수나무
모양보다 꽃이 화려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나무도 많다. 한번 꽃이 피면 백 일 동안 피고 지고 한다는 백일홍이 대표적이다. 진한 분홍색의 꽃과 얼룩 같고 부드러워 보이는 줄기가 아주 인상적이다. 백일홍보다 더 진한 분홍색을 띠는 꽃도 있는데, 가는 가지가 곧게 자라는 박태기나무가 그렇다. 4월 말에 잎보다 먼저 줄기를 따라 빼곡하게 진분홍의 꽃이 달리는데, 나중에는 콩깍지 같은 열매가 달린다. 우아한 자태를 지닌 자귀나무는 흰색과 분홍색이 섞인 밤송이 같은 꽃이 피는데, 가지가 층을 만들고 그 위에 분홍색 눈이 쌓인 것처럼 보이면서 오묘한 색상을 자랑한다. 잎은 잔잎이 아카시아 잎처럼 열을 지어 달리는데 건드리면 오므라들기도 한다. 자귀나무와 비슷하지만 층이 없고 솜사탕 같은 꽃이 달리는 것으로 안개나무가 있다. 계수나무는 옥토끼를 떠오르게 하는 친근한 이름이지만 주변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는데, 최근에 조경수로 많이 사용한다. 그만큼 귀한 나무인데, 잎이 하트 모양으로 친근함이 들고 가지가 위로 솟으면서도 벌어지지 않아 잎이 진 겨울에도 보기 좋은 나무이다. 특히 가을에 노랗게 물든 잎이 하나 둘 천천히 떨어지는 모습이 아주 아름답다.
8. 휴게 공간을 만들어주는 녹음수 - 느티나무/느릅나무/회화나무/팽나무/튤립나무
그늘을 만들어주는 나무들도 많은데, 사람들에게 쉼터가 되는 넓은 공간을 주기 때문에 마을을 대표하는 정자나무로 심곤 했다. 대표적인 것이 느티나무로 수백 년을 자라 줄기의 굵기만도 몇 미터를 넘기기도 한다. 비슷한 나무로 잔잎이 가득한 느릅나무가 있다. 그 밖에도 전통적으로 많이 쓰인 나무는 잎이 양쪽으로 줄지어 나는 회화나무, 가지가 울퉁불퉁하고 꼬불꼬불한 팽나무가 있다. 잎이 튤립 꽃처럼 생긴 튤립나무도 많이 쓰인다. 잘 자라고 크게 자라면서 커다란 잎으로 그늘을 충분히 만든다.
9. 몇 가지 가로수 - 메타세쿼이아/플라타너스/은행나무
최근 들어 가로수로 많이 쓰이는 나무로 메타세쿼이아가 있다. 뾰족한 삼각형 모양으로 자라는데 아주 크게 자라고 잘 자라기 때문에 가로수로 쓰기 좋다. 담양에서는 이 메타세쿼이아로 수목 터널을 만들어 유명해지기도 했다. 낙우송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가격이 싸 가로수와 경계부에 많이 쓰인다. 플라타너스(양버즘나무)와 은행나무는 흔하게 가로수로 쓰이는데 잘 자라고 공해에도 잘 견디는 나무다.
10. “꽃보다 아름다운 잎”(권순식·노회은 외 4명, 『꽃보다 아름다운 잎』, 도서출판 한숲, 2016)
“잎처럼 다양한 개성과 아름다움을 지닌 사람들에게 꽃보다 아름다운 잎을 소개합니다.” 잎이 이미 꽃이라는 이 책 앞부분에 쓰인 문구이다. 식물은 흔히 꽃이 먼저 화려하게 다가오지만 잎은 꽃만으로 보여주지 못하는 부분을 보여준다. 잎은 계절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나무만의 개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11. 계절별 색다른 초본류
관목과 초화류는 손쉽게 정원을 만들 수 있어 좋다. 최근에는 관목과 초화류를 조화롭게 잘 활용하는 사례를 쉽게 볼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식물의 키이다. 초본류는 다 자랐을 때의 키를 기준으로 작은 것은 앞에 큰 것은 뒤에 배치하여 심는 것이 좋다. 목본류가 다 자랐을 때 나무끼리의 간격이 중요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또한 초화류는 계절별로 성장하고 변화하는 색상도 중요하다. 특히 그 종류와 식재 방법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설계의 중요성을 느끼게 해주며, 판매장에서 선택하는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모두 다 살필 수는 없고 전반적으로 무난한 초본류를 꽃피는 계절 중심으로 나열해 본다. 그러나 초본류는 꽃만 아니라 잎과 줄기의 모습 그 자체로도 아름답다.
봄: 가우라류, 괭이눈, 꼬리풀류, 금꿩의다리, 금낭화, 깽깽이풀, 노랑꽃창포, 노루귀, 돌나물, 돌단풍, 동의나물, 둥굴레, 매발톱꽃, 무크카리류, 바위취, 붓꽃, 상록패랭이, 아주가, 애기똥풀, 앵초, 양지꽃, 얼레지, 은방울꽃, 천남성, 할미꽃
여름: 가시연꽃, 꽃잔디, 금매화, 금불초, 기린초, 꼬리풀, 꽃창포, 꿀풀, 노루오줌, 도라지, 동자꽃, 백리향, 벌개미취, 범부채, 부처꽃, 분홍바늘꽃, 비비추, 산수국, 삼백초, 상사화, 수련, 어리연류, 엉겅퀴, 옥잠화, 원추리, 참나리, 참좁쌀풀, 창포, 초롱꽃, 패랭이꽃
가을: 감국, 구절초, 꽃향유, 둥근잎꿩의비름, 벌개미취, 부들, 산솜방망이, 수크령, 쑥부쟁이, 아스타류, 아이비, 용담, 참억새, 참취, 투구꽃, 큰꿩의비름, 해국, 꽃무릇
겨울: 맥문동, 복수초, 수선화, 수호초, 왕개쑥부쟁이, 털머위
도심에서 자란 현대인들은 대개 나무를 잘 모른다. 가로수로 보고 자란 은행나무나 교과서에서 볼 수 있는 나무들을 이름이나마 기억하는 것도 대단하다. 나이가 들수록 그 수는 많아지지만 이 또한 관심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개 미미한 수준이다. 북한산, 관악산처럼 도심의 주요 산지에 자라는 나무들은 그나마도 잘 알지 못한다. 그래도 좋다. 녹색의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굳이 그렇게 이해하려 들지 않아도 충분하다. 다만 조금만 관심을 둔다면 나무들은 우리가 모르고 있던 이야기와 신화를 들려줄 것이고 지금의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지 일러주며 아름다움 너머의 치유와 의미를 알게 해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뭐 꼭 그렇게 나무를 공부하듯 알아가라는 것은 아니다, 꼭 알아두라 했지만 말이다.
안명준 조경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