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이것이 최선입니까?"
- 박광윤 ([email protected])
[환경과조경 박광윤 뉴스팀장] 서울로 7017에 대해 물었다.
“무엇을 만들어 놓았어도 좋았을 것이다” 서울로 7017을 철거하지 않고 보행로로 재생하겠다는 서울시의 판단은 대체로 호평이었다. 하지만 “왜 이렇게 밖에 만들지 못했느냐”며 조경전문가들의 평가는 대체로 냉담했다.
개장일에만 15만 명이 다녀갈 정도로 ‘서울로 7017’은 흥행에 성공을 거둔 모습이다. 시민들은 도심의 공중을 가로지르며 다이내믹한 경관을 경험했다. 물론 많은 불만도 쏟아져 나왔지만 큰 논란 없이 연착륙하는 모습이다. 서울시 입장에서는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조경분야는 당분간, 아니 오랫동안 ‘서울로 7017’을 아쉬워 할 듯하다. 프로세스, 디자인, 생태 등 다양한 틀에서 불만과 지적이 제기됐다.
많은 지적이 나오자 일부에서는 애써 의견을 밝히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도 읽힌다. 하지만 조금 피로하더라도 우리는 ‘서울로 7017’에 대해 물어야 했다. 지금이야말로 전문가들의 평가와 조언이 필요한 때라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정중히 사양하며 사실상 평가를 유보하는 전문가들이 많아서 ‘서울로 7017’이 공개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밝히기에는 의외로 용기가 필요한 주제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에 기꺼이 용기를 내준 7명의 필자에게 감사드린다.
“자연성 회복 없이 감동도 없다. 아쉽지만 높은 점수 아냐”
김봉찬(53)
더가든 대표
개장 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서울로 7017’을 방문한 후 드는 생각을 몇 자 적어보고자 한다.
우선 대도시인 서울의 중심지를 가로지르며 차들만 가득했던 고가 ‘도로’를 사람이 다닐 수 있는 ‘보행로’로 탈바꿈시킨 점은 도시재생의 측면에서 매우 훌륭한 시도라 할 수 있다. 특히 물리적으로 단절됐던 지역들 간의 연계를 통해 소외되고 쇠퇴했던 지역에 경제적으로 활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싶다.
하지만 고가도로를 공원화하겠다는 서울시의 최초 발표나 공중정원으로 만들겠다는 현상공모 당선안의 아이디어는 난데없이 사라지고 보행로라는 기능만 강조되는 점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박원순 시장이 직접 뉴욕의 하이라인을 방문해 공원화를 발표했을 때 시민들은 당연히 우리도 그러한 수준의 공원을 갖게 되리라는 기대를 가졌을 것이다. 이후 현상공모에서 ‘서울수목원’이란 제목으로 당선된 해외 유명건축가의 안을 보며 상상했던 모습도 단순히 공중 위에 떠있는 보행로가 아니라 잘 만들어진 공중정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서울로 7017을 하이라인처럼 만들고 싶지 않았다는 비니 마스의 최근 인터뷰를 보며 그는 하이라인에서 무엇을 보았기에 그 결과가 콘크리트 화분에 가나다순으로 심겨진 나무들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뉴욕의 하이라인은 눈에 보이는 디자인도 훌륭했지만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도시 내에 회복된 자연성’이었다. 이미 잃어버리고 잊어버려 도시에서 다시는 만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자연이 고층빌딩 사이 버려졌던 철길 위에 그대로 구현돼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동이었으며, 그 속에서 반짝이는 사람들의 눈동자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이렇듯 도시재생을 통해 돌려놓아야 하는 것은 단순히 그 기능이나 효율뿐만이 아니라 도시 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감동할 수 있는 무엇이며, 나는 그것이 자연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아쉽게도 지금의 서울로 7017에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다.
“비니 마스의 강한 설계 철학, 조언이 소용 없었다“
김진수(56)
(주)랜드아키생태조경 대표
아쉽지만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서울로 7017은 대중이 원하는 디자인은 분명 아니다. 조경인으로 특히 몇 번의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고, 고가산책단을 통해 가까이에서 지켜본 입장에서 보면 더욱 아쉽다. 녹지면적을 더 확보하고 콘크리트화분을 녹화를 통해 멋지게 가릴 수 있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설계자인 비니 마스의 설계철학이 워낙 강하고 서울역고가를 공원이 아닌 확장된 길로 의도한 설계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조언이 소용없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서울에는 지금까지 이정도의 의미를 지닌 녹색공간은 존재하지 않았었다. 산모의 고통을 통해 소중하게 낳은 아기처럼 이제부터 이 공간을 잘 가꾸고 변화시켜나가고 훌륭하게 이용할 때, 그리고 그것을 통해 더 나은 녹색 프로젝트들이 많아질 때 서울로 7017은 그 역할을 충분히 다 하는 것이다. 그리고 발전하는 것이다.
“개장 후에도 완성되지 않은 시설물들에 눈살 지푸렸다”
김연재(22)
단국대학교 녹지조경학과 학생
개장하자마자 고가 위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나무를 보며 산책을 즐기는 여유로운 모습이다. 하지만 걸으면 걸을수록 미완성된 모습들이 위태롭다. 아직 덜 지어진 엘리베이터와 이곳저곳에 널려있는 날카로운 자재들이 휠체어를 탄 이용자나 어린 아이들에게 많이 위험해 보인다.
서울역 고가도로가 보행로로 바뀐 후 남대문 시장 상인들의 상권이 침체되고 주위 주민들이 피해를 받을 수 있다고 하니 마냥 마음 편하게 볼 수는 없었다. 또한 퇴계로의 교통 혼잡 등 서울로가 생김으로써 피해를 보게 된 사람들과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가 앞으로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부자연스웠던 보행 연결 해소, 이것이야 말로 근사한 재생이다”
김현(49)
소사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 센터장, 단국대학교 녹지조경학과 교수
사람들의 움직임과는 상관없이 존재하던 고가가 도심 속 연결공간으로 변화됐다. 푸르른 선형공간 안에서의 여유로운 산책 또한 반갑지만 17개의 출입구를 통해 서울의 중심지역을 도보로 접근할 수 있는 “엮임”이 이루어 진 것은 진정한 그리고 근사한 “재생”이다.
남대문시장, 명동, 남산, 서울역, 만리동 등을 도보로 접근하려면 부자연스러운 횡단보도와 보도의 연결로 우회하기 일쑤였으며 지하도 이용은 필수조건이었던 불친절함이 드디어 해소돼 서울의 풍요로운 문화역사를 누구라도 만끽할 수 있다.
그리고 서울로 7017의 미래 역사 또한 함께하는 공간이길 기대한다. 현재 모습에서 '멈춤'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aging)되는 경관, 건강해지는 생태, 풍요로워지는 프로그램과 편익시설을 기대하고 결국에는 이루어내는 관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곱게 치장한 젊은 서울로 7017이 서울의 시간을 함께 하면서 풍요롭고 아름다운 장소가 되길 기대한다.
“철거냐 아니냐는 전문가의 역할 아니다”
문정석(43)
빅바이스몰 공동대표, 도시연대 커뮤니티디자인센터장
‘없앴어야 했다’, ‘공원이 아니다’, ‘소통과 진행 과정에 문제가 있다’ 서울로 7017에 대해 오고 가는 전문가들의 말 중 일부이다. 그중에서도 역사적, 사회학적 시선에서 철거했어야 옳다고 말하는 주장에 대한 생각을 밝히고 싶다.
도시의 문제를 입장과 의식의 틀에서 바라보는 것은 조경과 건축, 도시 전문가에게도 당연한 것이다. 추구하는 가치의 입장에서 현재를 이해하고 해석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다른 지점에서, 이들 전문가는 정치가나 여론의 대변인이 아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를 둘러싼 공간들에 대한 존재의 생사여부같은 거대담론에 조경가, 건축가, 도시계획가 같은 전문가 집단이 지나치게 몰입하는 것이 과연 필요한가에 대한 고민이 있다. 은행이 자동입출금기와 인터넷 은행의 등장으로 인해 온라인화되고 공간적으로 소멸해가고 있다 해서 건축가가 은행업의 미래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고민해야 하는 지점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했으면 한다. 우리는 다만 남겨진 공간에 대해, 그것이 남겨놓은 사회적 잉여의 방향에 대해 고민할 뿐이다. 시간과 역사의 한 귀퉁이에 흔적으로 남겨진 공간, 비록 잘못 태어났다 해도 이미 사람들의 삶과 얽혀 일상의 감정과 협착됐을 공간의 이야기를 어떻게 담아내고 무엇과 연결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전문가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서울 훔쳐보기, 관음증적 상술이 시민을 녹이다
이대영(48)
조경설계사무소 스튜디오 엘 소장
요즘 텔레비전 예능프로그램의 가장 핫한 주제는 역시 ‘훔쳐보기’일 것이다. 수 십대의 카메라를 설치하고 출연하는 연기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담아 시청자들의 은밀한 관음증적 쾌감을 만족시키고 있다. 자주 보는 편은 아니지만 아내가 좋아해서 가끔씩 보게 되는데, 한참을 보다가 왜 이런 쓸데없는 걸 보고 있냐는 듯 한심한 표정을 보내기라도 하면 그 날은 결국 전쟁으로 끝나고 만다. 일상의 우리 삶은 이미 알게 모르게 이런 관음증적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예능 프로그램들은 파악했고 그 장삿술에 우리는 녹아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어둠의 시선을 아주 공적인 자리에 만든 물건이 하나 나타났다. ‘서울로’다! 그 길은 아주 공개적으로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서울을 몰래 살펴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덕분에 숨 가쁜 카타르시스도 느낄 수 있다. TV로 만족할 수 없었던 뭔가 아쉬웠던 나의 변태적 욕구가 그 길 위에서 약간 해소된 거 같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나무는 그냥 거드는 존재이다. 공간의 중심에는 ‘길’이 있고 또 자연스럽게 볼 수밖에 없는 ‘바라보기’가 있다. 아주 개인적으로 혼자 걸으며 또는 같이 걷더라도 은밀하게 훑어보는 시간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몹시 끈적거리는 시선으로 서울의 속살을 바라보라! 쉽게 접근할 수 없었거나 혹은 인간의 시선으로는 불가능한 곳을 신의 영역에서 볼 수 있다. 극도의 만족감은 덤이다! 장사꾼인 서울시 때문에 녹아버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어둠의 시선을 아주 공적인 자리에 만든 물건이 하나 나타났다. ‘서울로’다! 그 길은 아주 공개적으로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서울을 몰래 살펴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덕분에 숨 가쁜 카타르시스도 느낄 수 있다. TV로 만족할 수 없었던 뭔가 아쉬웠던 나의 변태적 욕구가 그 길 위에서 약간 해소된 거 같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나무는 그냥 거드는 존재이다. 공간의 중심에는 ‘길’이 있고 또 자연스럽게 볼 수밖에 없는 ‘바라보기’가 있다. 아주 개인적으로 혼자 걸으며 또는 같이 걷더라도 은밀하게 훑어보는 시간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몹시 끈적거리는 시선으로 서울의 속살을 바라보라! 쉽게 접근할 수 없었거나 혹은 인간의 시선으로는 불가능한 곳을 신의 영역에서 볼 수 있다. 극도의 만족감은 덤이다! 장사꾼인 서울시 때문에 녹아버릴지도 모른다.
“협치는 실패했다. 하지만 실패 속에도 서울로는 자랄 것이다”
온수진(46)
서울시 조경과 서울로총괄기획팀
2010년 6월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를 제안했다. 그리고 한동안 처박혀 있다가 2014년 상반기 우여곡절 끝에 굴러가기 시작한 롤러코스터에 눈을 딱 감고 올라탔다. 그 후 서울역고가 위를 만 3년간 행복하게 또 애타게 달려왔다. 조금 걸어왔어야 했는데 너무 내쳐 달려와서일까?
‘소셜브릿지’는 동심원 이남진 실장이 이야기했다. 서울역고가를 통해 다음 시대로 ‘건너가자’는 얘기에 정태춘의 ‘건너간다’를 오랜 기간 흥얼거렸다. 그리고 초기에 조반장을 만났고 의기투합했다. 조반장은 이 프로젝트에서 주어진 내 역할의 거의 전부였다. 현상공모에서 심사위원들은 비니 마스의 디자인을 택했고, 그 디자인은 거의 대부분 구현됐다. 고스라니 구현된 것에 가장 당황한 분들은 정작 심사위원분들이 아닐까?
오준식 디자이너를 만난 것도 기억할만한 지점이다. 우연에서 이어진 인연은 공사가림막을 시작으로 네이밍, 기념품으로 이어졌고, 이 과정서도 조반장의 역할이 컸다. 결국 이름이 된 ‘서울로’는 정태춘의 ‘얘기2’에 연유한다.
자원봉사그룹인 초록산책단과 노숙인정원사를 배출한 생명의숲을 비롯해 수많은 관계맺음이 있었지만, 돌아보니 조반장을 중심으로 한 고가산책단, (사)서울산책의 노력에 기댄 것들이 많다. 다만 그 과정은, 그리고 우리가 흔히 협치라 말하는 그 과정을 담당했던 나는 실패했다. 작금의 많은 방문객수로 가려질 순 없다. 다만 이 실패 속에도 서울로는 계속 자랄 것이다, 하늘을 찌를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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