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형주 ([email protected])
다사다난했던 2019년 조경인들의 희노애락을 돌아보고, 2020년 경자년 새해를 맞이하는 조경인들의 꿈과 소망을 들어 봤다.
2020년, 조경 관·산·학 상생하는 해가 되길
문길동(59세)
서울특별시 푸른도시국 조경과장
2020년은 그동안 흐지부지 되었던 서울시와 조경업계와의 상생을 위한 새로운 출발의 해가 되기를 바란다. 몇 년 전 조경업체의 애로사항을 듣기 위해 운영한 상생포럼에서 문제인식의 차이가 매우 크다는 것을 느껴, 격차를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중 포럼 자체가 흐지부지 되는 아픔을 겪은바 있다.
이제는 포럼의 위상을 격상시켜 새롭게 구성한 후 현안문제에 대하여 머리를 맞대고 풀어나가야 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법과 제도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관행의 문제는 서로의 혜안을 짜내어 대안을 만들고 이를 개선하는 데 공동으로 발맞추어 나가길 바란다.
사실 조경계의 해묵은 법적 제도적 과제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발 벗고 나서기가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은가?
당연히 쉽지 않을 것이고 노력에 비해 성과가 매우 미진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지 않은가. 관·산·학의 상생포럼을 통하여 끊임없이 두들기면 문은 반드시 열릴 것으로 확신한다. 2020년을 그 출발의 해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모두 동참하여.
꿈의 놀이터를 만들자!
오창길(51)
서울놀이터네트워크 공동대표 / (사)자연의벗연구소 소장
자연의벗연구소는 최근 몇 년 동안 우리 마을의 놀이터활성화 운동에 참여해왔다. 최근 한국 사회에 놀이터를 만들고 관리하는 것과 관련하여 다양한 움직임이 있다. 놀이는 어린 시절 내내 어린이의 일상생활과 경험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놀이의 기본이 되는 놀이터라는 공간은 도시와 자본을 넘어 아이들에게는 삶을 가꾸는 소중한 공공의 공간이다.
놀이터는 어린이뿐만 아니라 학부모, 보호자, 그리고 더 넓은 공동체를 위한 중요한 사회적 장소가 되어야 한다. 놀이터의 시설 개선과 혁신만으로는 어린이의 행복과 건강한 발달을 위한 자유로운 놀이의 부족을 치유할 수 없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놀 권리 장애요인에 대한 보고서는 놀 권리 장애요인으로 위험한 주변 환경, 안전만을 강조하는 것, 자연을 접할 기회의 제한, 학업스트레스와 구조화된 프로그램, 놀이 마케팅과 상품화 등을 지적했다.
서울시의 어린이놀이시설은 9845곳이 있고 도시공원에는 1540곳, 학교에 619곳 등이 설치되어 있다. 양적으로는 증가했지만 놀이공간이 비슷비슷한 시설 위주로 조성되거나 정해진 놀이방식이 있는 시설들로 조합되어 어린이가 흥미를 갖고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자유로운 놀이공간은 부족하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놀이터를 조성하고 개선하는 데 많은 관심과 예산을 들였다. 앞으로는 훌륭하게 만든 놀이터가 진정으로 아이들이 사랑하는 공간으로 지속될 수 있도록 마을에서 돌보고 함께 지켜낼 수 있는 정책에 조금 더 한 발짝 나아가기를 바란다.
골목에 활기 가득… ‘상생하는 동네정원’
김명윤(34)
보타니컬 스튜디오 삼 / 가든 어스 소장
정부가 지속해서 홍보하고 있는 것이 상생이다. 상생이라는 목표로 모두가 함께 잘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해 오고 있다. 즐겨보는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는 죽어가는 골목상권을 되살려 상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예능적인 요소로 식당 주인을 빌런으로 비추기도 하지만, 그들이 다시 일어서게끔 도와주며 초심을 찾고 진정성이 있는 모습으로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청자에게 즐거움을 준다. 백종원이 찾아간 골목은 사람들로 가득 차 활기가 넘친다.
지난해 도시재생을 목표로 한 서울정원박람회에 동네정원 작가로 참여해, 해방촌 골목길의 관리가 되지 않는 공간을 정원으로 바꾸었다. 그곳에서 이뤄지는 정원 활동을 통해 주민들이 상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게 됐다.
조성과정에서는 단순히 정원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동네 주민들이 쓰레기를 버리고 불법주차를 일삼던 무관심한 공간을 가능성을 가진 공간으로 보게끔 이해시키고, 이 공간이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면서 애착을 가지게 해주었다. 주민들은 공간이 정원으로 바뀌는 과정을 바라보면서 즐거워했다. 정원사들이 찾아간 해방촌에는 활기가 흘렀다.
올해도 마을 안으로, 동네 안으로 정원이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전문정원사들, 시민정원사들, 마을정원사들이 만들어 내는 정원들이, 모두 함께 잘 살아갈 힘을 주는 상생하는 정원이 되기를 바란다.
도시재생, 농촌중심지활성화가 아닌 ‘지역 활성화, 더 나아가 지역 경영으로’
박진욱(42)
대구가톨릭대학교 조경학과 조교수
약 5년 동안 활동한 거창읍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이 지난달 공식적으로 끝이 났다. 주민과 함께 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새로운 것을 배운, 주민과 함께 성장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농촌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조경의 영역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농촌은 조경인에게 아직은 낯선 이방인 같은 존재인 것 같다. 농촌지역 주민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조경가가 농촌지역 활성화를 한다고? 조경가는 공원 만드는 사람들 아닌가? 이런 이야기를 종종 듣곤 했다. 우리는 그 지역의 특성이 아닌 고정관념의 틀 속에서 도시와 농촌을 구분 짓고 있는 것 같다. 농촌과 도시라는 개념은 지역의 특성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조경학의 특징 중 하나는 지역의 특성을 파악하여 가장 적합한 기능이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계획하고 운영하는 능력일 것이다. 더욱이, 조경학은 부분이 아닌 전체를 바라보는 힘과 소통 능력을 가지고 있다. 농촌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늘 지역이라는 관점에서 공간을 바라보았다. 그 지역의 특성이 무엇인가? 어떠한 공간구조를 가지고 있는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가? 어떻게 하면 이 지역이 건강하게 될까? 주민과 어떻게 이야기할까? 이러한 고민과 해결방안을 찾아가는 일련의 과정은 조경학의 학문적 특성과 매우 유사한 것 같다.
전국의 많은 지역들이 인구 감소 등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 조경인들이 도시에서 나아가 각 지역이 직면한 문제와 진지하게 마주해야하는 시기인 것 같다. 수많은 지역들이 조경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2020년에는 더 많은 조경인들이 ‘지역 활성화’, 나아가 ‘지역경영’이라는 관점에서 지역의 문제를 주민과 함께 해결하는 모습을 기대한다.
수평적 거버넌스를 위한 2020 새로운 광화문 광장
조용준(41)
(주)CA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
2019년 1월 18일 새로운 광화문 공모전에 당선 되었다. 기쁨도 잠시, 수없는 보고일정과 협의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현상안의 개념과 디자인을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설득의 과정을 거쳤다. 그렇게 몇 개월을 쉬지 않고 달려왔을 때, ‘서울시의 무리한 추진’이라는 기사들과 함께 광화문 광장사업은 새로운 국면으로 흘렀다. 80% 시민반대였던 청계천 사업을 사례로 광화문 광장사업을 밀고 나가겠다던 박원순 시장은 시민과의 소통을 다시 꺼내 들었다. 시민, 지역주민, 전문가를 대상으로 2개월 동안 총 14회의 다양한 방식의 토론회가 열렸다.
2009년부터 있던 다양한 논의를 포함해, 단일 사업 중에 광화문 광장사업 만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시민들이 참여하고, 또한 오랜 시간 논의한 프로젝트가 있었을까? 이 과정을 통해 광장이라는 도시공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각자가 생각하는 광장의 모습과 의미, 나아가 어떤 문화를 담을지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까지 이어졌다. 기존의 공모방식이 전문가의 이상적인 설계를 찾는 과정이었다면, 광화문 광장사업으로 4년 전부터 시행했던 광화문포럼과 현재 시도하고 있는 시민참여 방식은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의 갈등관계를 파악하고, 이해하며, 소통을 통해 접점을 찾아나가는 협력적 설계의 과정이다.
2020년 광화문 광장은, 설계공모 당선작 deep surface 개념을 넘어, 시민들의 의견을 담아, 일상의 열린 광장으로 계획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광화문 광장 사업을 교훈으로, 창의적인 설계공모, 합리적인 설계과정 그리고 성숙된 토론과 시민참여 문화의 시스템을 만들어 가야 한다.
변화의 과정에서 성장하는 경자년 기대
배석희(48)
(주)디자인파크개발 본부장
2019년 8월 말. 개인적으로 11년을 몸담았던 한국조경신문을 퇴사했다. 2008년 창간 즈음 합류해 조경의 현장에서 역사적인 순간을 지면으로 전달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사명감 그리고 다양한 경험은 조경인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
2019년 10월. 조경시설물업체인 디자인파크개발에서 제2의 조경인의 삶을 시작했다. 두 달하고 열흘이 지난 지금도 업계의 낯선 환경과 익숙하지 않은 일에 버벅(?)거리며, 11년간의 익숙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에 적응해가고 있다.
그동안 해왔던 기자로서의 일과 앞으로 해야 할 업체에서의 업무는 조경이라는 테두리 안에 있지만 많이 상이하다. 그래서겠지만 디자인파크개발로 자리를 옮겼다고 명함을 건네주면 상대방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린다. 한쪽에서는 “왜?” 라는 강한 부정과 의문 속에 걱정과 우려의 눈초리를 보내는 반면, “그래 잘 선택했다. 열심히 해 봐”라는 격려와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사실 걱정이든 격려든 그 자체가 나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기 모두에게 감사할 일이다. 이제 나의 역할은 관심을 표현했던 그들에게 걱정과 우려를 불식시키고 변화의 과정에서 꿋끗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침체된 조경업계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시장을 리딩하고, 영역확대를 위해 도전하는 것. 2020년 경자년 나에게 주어진 과제이며, 이는 삶의 변화를 선택하며 가졌던 목표이기도 하다.
모쪼록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변화와 혁신으로 새로움에 도전하며, 조경의 현장에서 땀 흘리는 모든 분들에게 경자년 새해 건승을 기원한다.
‘조경’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 ‘조경학과’… 이대로 괜찮을까?
김선미(23)
공주대학교 조경학과
2020년 4학년이 되는 나에게 가장 큰 고민은 ‘미래’다. 방학 때 많은 생각들을 펼쳐보지만, 학기가 시작되면 대부분은 학교생활에 매몰되면서 연장선을 긋지 못하고 사장된다. 지난 3년간 교과서에 있는 글조차 다 읽어보지 못한 적이 많았고, 매일 과제 속에 찌들어 같은 일상을 반복했다. 미래를 그려볼 시간이 없었다.
학교에서 듣는 내용, 자격기준, NCS 등을 보면 조경은 설계, 시공, 관리, 감리가 전부인 것처럼 여겨진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보고 들은 것을 가지고 사회로 나간다. 그래서인지 “조경은 아닌 것 같아”, “탈조경 하자”고 말하는 학생들이 많다. 다양한 활동과 만남을 통해 느낀 것은 그게 전부가 아닌 것 같지만, 학교교육에서는 그러한 조경을 알 수도, 볼 수도 없다. 조경이란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다. 환경과조경 통신원을 하면서 전국의 조경학과 학생들과 만나보니, 이러한 고민이 특정 학교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지난 3년 조경학과를 다녔지만 조경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잘 대답하지 못하겠다. 조경이란 무엇일까? 언제쯤 나의 미래를, 교육의 미래를, 조경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