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형주 ([email protected])
2020년은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가 긴장 속에 한 해를 보내게 됐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조경계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고 나름대로 치열하게 각자의 길을 달려온 이들이 있다. 다사다난했던 조경인들의 희로애락을 돌아보고, 2021년 신축년 새해를 맞이하는 조경인들의 꿈과 소망을 들어 봤다. 독자들이 각계 조경인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올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에 대한 희망을 꿈꾸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
세 번째 단계의 삶을 시작하면서
권영휴
국립한국농수산대학 조경학과 교수
2020년은 뜻 깊은 한 해였다. 조경 분야에 몸담은 42년을 정리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정리라기보다는 삶의 세 번째 단계를 시작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삶의 첫 번째 단계는 건설회사, 두 번째 단계는 학교로 정확하게 반으로 나뉜다. 대우건설 부장으로 퇴직한 후 학교에서의 생활은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다. 젊음과 꿈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어서 좋았다. 조경인으로 지나온 날들을 반추해보니 몇 가지 의미 있는 일들이 있었다. 대우건설에서 Hanoi신도시사업팀장으로 6년간 일하면서 개발전문가로서의 업무능력을 인정받았다. 1990년대만 해도 조경직의 위상이 그리 높지 않았다. 2500만 평 규모의 대단위 도시개발사업이었기 때문에 조경직의 신도시사업팀장 발령 자체가 큰 이슈가 되기도 했다.
대학에서는 조경 생산 분야에 대한 강의와 연구를 주로 해왔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조경수 생산과 관련된 조경학과를 만든 것도 뜻있는 일이었다. 전통적인 농업을 중시하는 대학에서 조경은 농업 분야로 인식되지 않았다. 보수적인 특성을 가진 구성원들의 틀을 깨고 조경학과를 새롭게 만드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나라 조경학과의 교육방향과 연구들은 많은 부분이 계획과 설계에 치중되어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7년간 농촌진흥청의 연구비를 지원 받아 조경수 생산과 유지관리, 조경수 컨테이너재배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다. 조경수에 대한 연구비 지원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기초연구를 위해 지원해 준 농촌진흥청에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 조경학과가 만들어진 지 48년이 되었지만 조경의 중요한 영역 중의 하나인 생산과 유지관리 분야에 대한 연구는 지금도 걸음마 단계에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조경배식학은 1977년, 조경식물번식학은 1981년에 만들어진 책이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대학 교재로 쓸 수 있는 새로운 번식학 책이 없다. 그동안 조경수 번식기술과 수목배식기술 등의 연구가 없다는 반증이다. 조경산업에서 조경수가 가장 중요한 조경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생산기술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최근 농업에도 4차산업의 바람이 불고 있다. 4차산업은 인공지능과 로봇기술, 생명과학이 주도하는 차세대 산업혁명을 말한다. 조경수 생산기술은 농업분야에서도 가장 기술이 뒤떨어져 있다. 4차산업혁명의 새로운 시대를 맞아 조경수 생산용 농기계 및 로봇기술, 컨테이너재배기술, 조경수 유지관리 등에 관한 빅데이터를 구축하고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을 융합하는 기술개발에 투자하여 조경산업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
2021년은 세 번째 단계의 삶이 새롭게 시작되는 해이다. 지금까지의 작은 경험들을 모아 조경분야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계획하고자 한다. 우리 조경인 모두 행복한 새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언택트 시대 규제혁신 제1호, 1인용 벤치 MAS 허용 ‘성과’
노영일
한국공원시설업협동조합 이사장
2020년 코로나19 국가재난을 겪으면서 경험해 보지 못한 생활을 하고 있다.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경제적으로도 큰 충격이 있는 상황이며, 전통산업이 생계위협을 많이 받고 있다. 지금의 위기는 IMF 금융위기보다 더 많은 변화를 재촉하고 있다. 지난 경제위기를 돌이켜보면 위기가 촉매제가 되어 혁신성장으로 성공 도약의 기회가 되었다. 조경산업 분야 또한 변화의 중심에서 뼈를 깎는 심정으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2021년 언택트 시대에 ▲우리의 경쟁력, 준비가 되어 있는가? ▲스마트 기술과 협업이 가능한가? ▲신성장 산업으로 진입할 수 있는가? 란 화두를 던져본다. 이는 2021년 우리 조합이 전사적으로 해결해야 할 목표다.
지난 12월 22일, 김정우 조달청장과 간담회를 가졌다. 현재 2인 이상의 벤치만 다수공급자 계약(MAS)을 체결하고 있다. 이에 조합은 간담회에서 언택트 시대의 규제혁신 제1호로 1인용까지 구매 확대를 요청하였고 조달청은 이를 수용했다. 이는 우리 조합이 주도적 생태계 구축을 위해 노력한 결과다.
4차산업 스마트 지원사업이 혁신성장 동력이 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신사업 분야를 확대하겠다. 지나친 가격경쟁, 과다경쟁을 탈피하고 특화된 기술과 브랜드로 시장변화에 살아남아야 할 것이다. 2021년 ‘또 다른 기회’로 인사드리겠다.
조경디자인의 ‘보랏빛 소’를 찾는 끊임없는 노력
류홍선
플레이가든스 대표
좋아하는 세스 고딘의 여러 히트작 중 『보랏빛 소가 온다』(도서출판재인, 2004)에서 언급되는 ‘보랏빛 소’(purple cow)라는 의미는 벌판에서 보이는 일반적인 누런 소가 아니다. 노란 소들 사이 ‘보랏빛 소’처럼,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특정한 것을 의미한다. 우리들이 만드는 상품은 리마커블(remarkable)해야 하며 주목할 만 한 가치가 있고, 예외적이고, 새롭고, 흥미진진한 것이어야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른바 조경 공간 속에서 늘 ‘보랏빛 소’를 만들어 내고 있다고 잠깐, 아니 오랜 시간 동안 착각했었다. 돌아보니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누런 소를 가져다가 디자인 돌려막기를 하고 있는 게 내 자신이었을 수도 있었겠다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찰나, 때마침 처음 도전한 2020년 제8회 경기정원문화박람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한살이라도 덜 먹었을 때 도전해 보고자 하는 노력이 결실을 맺게 된 뜻 깊은 한 해였다.
이번 대상 수상을 통해 나의 디자인이 ‘보랏빛 소’를 넘어 더 멋진 다양한 빛깔의 소를 만드는 계기가 되도록 노력해야 겠다 마음먹었다. 다른 디자인을 하는 모든 이들도 2021년에는 리마커블한 과정과 결과물이 함께 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LH 아파트 외부공간, 가치를 높이다
신명옥
LH 주택조경부 부장
학부를 졸업한 이후 지난 30여 년간을 돌아보면 2020년만큼 아파트 외부공간에 대한 관심을 쏟은 적이 있었나 싶다. 연초 주택조경부장으로 부임하고 나서 했던 가장 큰 고민 중의 하나는 어떻게 하면 LH 아파트 조경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까 였다. 자연스레 민간건설사에서 개발한 우수 단지들로 눈을 돌리게 되었고 시간이 나는 대로 답사도 해보고 건설에 직접 참여했던 분들을 초청해 강연도 들었다.
그러나 공공부문은 공사발주 제도, 조달구매 시스템 등으로 인해 트렌드를 선도하는 민간의 뛰어난 기획력과 유연한 대처에 미치지 못하는 한계가 내재되어 있다. 결국 LH 임대아파트에 대한 인식이 LH 이미지를 고착화시키고 그 영향으로 LH 분양아파트의 이미지마저 연계되어 평가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그렇다면 우선적으로 임대아파트의 체질 개선이 중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주요 업무 방향을 설정했고 노력한 결과가 최근의 노령화, 1인 가구 증대 등 인구구조변화를 고려한 공간과 공간의 기능을 통합하여 분양대비 적은 녹지면적을 활용하여 효율적인 토지이용을 도모하고자 한 것과 외부공간의 풍성하고 다채로운 경관 조성을 위해 수목의 식재밀도와 규격을 상향한 것이다.
또한 새롭게 론칭하는 LH 분양아파트 브랜드인 안단테와 궤를 같이하여 지난 10년간 조성해온 LH 아파트 외부공간의 여러 풍경들과 전문가, 주민 인터뷰 등을 담은 사진과 글을 책으로 엮어 배포할 계획으로 일반 수요층을 대상으로 LH 아파트에 대한 이해와 호감도를 높이고자 하였다.
마지막으로 LH 아파트 외부공간이 추구해야 할 보편타당한 가치와 디자인 전략수립을 위해 고심 중에 있는데, 이 과제가 끝나는 2021년이 되면 LH 아파트 조경의 발전에 조금이라도 기여한 바가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2021 조경 with COVID-19
이지영
롯데건설 주택공사부문 수석
2020년 초 코로나19의 발발은 평이하게 흐르던 일상의 삶의 방식을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하는 전환의 일침을 안겨준 엄청난 사건이었다. 아파트 건설현장에도 미친 영향이 적지 않아 짧게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중국발 감염에 의한 사태는 건설현장의 인력과 자재 조달을 꽁꽁 얼게 했다. 우리 아파트 내 보통인부 및 가공 자재의 경우 중국인과 중국생산품이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어 양국 간 통행과 각 국내 이동을 제한하는 시점의 국내 현장들은 공사마비 상태까지 겪어야만 했다. 준공이 임박한 현장들은 그야말로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향후 재발에 대비하는 극복 방안으로 예컨대 4차 산업혁명의 기술력을 조경현장에서도 십분 활용하고, 수입 의존 자재의 적용에 대해서도 숙고하여 적용해야 한다. 조경 전공자들의 시공에 대한 관심 및 내국인 조경공의 증가도 필요하다.
코로나19는 재택근무와 홈스테이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하여 생활공간 내 조경에 대한 중요성과 인식 변화에 대한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조경이야말로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책임지는 삶의 바탕이고 필수요소로 다시 한 번 부각되었고, 작은 규모의 정원에서부터 단지 내 공원으로까지 기대하게 하고 있다. 따라서 좀 더 환경적 가치가 높고 자연회복력(Resilience)이 우수한 공간 조성과 소재를 설계에 반영하고 시공해야 한다.
2020년은 코로나19 전염과 유래 없는 긴 장마, 계절 상실 등과 같은 기상이변 등 빅 리스크가 많았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2021년 조경은 최근 발표한 탄소중립 선언과 같은 녹색전환에 궤를 같이하여 지속가능하고 환경 적응 실천에 더욱 깊은 고민을 할 것으로 기대해본다.
코로나19 속 도전의 연속, 올해는 선물만 가득하길
최영준
랩디에이치(Lab D+H) 조경설계사무소 소장
지구인들에게 2020년은 코로나19의 해로 기억될 한 해였다. 하지만 나와 우리 팀에게는 흥부네의 해와 석남녹지의 해로 기억될 한 해였다. 한국에서 정식으로 랩디에이치 사무실을 운영한 지 이번 달로 이제 만 3년차가 된다. 아직은 젊은 우리 팀에게 5.6㎞의 한강변 보행네트워크와 2만 평의 공원과 같은 녹지를 동시에 기본, 실시설계 및 각종 심의와 인가단계까지 밟아가는 일은 한 해 내내 도전의 연속이었다.
한강변 보행네트워크는 다양한 발주처, 심의주체, 엔지니어링 협력사 그리고 7개사와의 협업이 있었기에 그 어느 때 보다도 많은 협의와 발표를 진행하고 많은 전화와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인천 석남녹지는 녹지내부에 커뮤니티센터를 묻고, 스마트에코의 아이디어를 녹여내야 하는 임무가 추가되면서 두 차례 포럼이 열리기도 하였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이 생활의 일부가 된 올해동안 어쩌면, 거리두기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가장 폭넓은 사회적 소통을 경험한 아이러니의 2020년이기도 했다.
경험이 적은 탓에 팀 내부에서나 외부적으로도 많은 부족함이 있었지만, 그 많은 도전적인 상황과 어려움을 어떻게든 통과하고 나니, 결국에는 갑/을, 관리자/용역사, 소장/직원의 모든 관계에서 과업의 추진을 위해 협력해나가는 조력자이자 때로는 난관을 함께 극복하는 전우와 같은 관계로 승화되고 격식을 넘어 많은 감정의 교류도 느꼈던 뿌듯한 한 해였다.
2021년에도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도전과 그에 뒤따르는 실패와 성취, 그리고 역설적 반전과 전이가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그렇게 우리를 기다릴 새해는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전해줄 것이라 굳게 믿는다. 물론 전염병의 종식까지도.
함께 해요 ‘오마이가든’
현재성
KBS제주 PD
심신이 다소 지쳐 있던 나는 우연히, 어느 정원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작은 꽃, 풀, 가지의 흔들거림, 시간이 흐르면서 움직이는 빛과 그림자, 그늘과 이끼, 물기와 소리를 보고 들었다. 누가 날 ‘조경인’이라고 부르면 마치 ‘우주인’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매우 낯설 터. 하지만 분명한 건 이 모든 것이 그날 오후(2019년 6월) 눈부시게 빛나던 제주 서귀포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2020년 1월 UHD다큐멘터리 <오마이가든>이 KBS를 통해 전국에 방송되었다. 많은 분들이 뜨겁게 호응해 주셨고, KBS제주방송총국은 같은 해 4월 10일 위클리 정원프로그램 <정원의 발견>을 론칭했다. 정원과 사람, 가드닝에 대한 다양한 이슈를 다루며 2020년 12월 말 현재 33편을 방송했다. 상황은 점점 더 뜨거워(?)졌고, 그 와중에 한걸음 더 나아갔다.
2020년 10월10일 지상파 채널로는 처음 시도되는 정원전문유튜브채널 <오마이가든>이 문을 열었다. 아직 구독자수나 여러 가지로 모자라지만 약 150만 이상의 누적조회수에 많은 분들이 “예상외다”라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더 중요한 건 수많은 분들이 제작진의 정신을 번쩍 뜨이게 하는 고품질 댓글을 남겨주신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를 넘어 구독자끼리 서로 묻고 답하는 등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할까?/말까?’를 보통 ‘될까?/안될까?’로 판단하는 요즘이다. 하지만 얼마 전, 취재 중에 만난 어떤 분이 보낸 문자를 가끔 꺼내보며 난 ‘해야 한다. 쭉!’으로 생각을 굳히고 있다.
“피디님이 행복을 전파하시니 하시는 일 모두 잘되실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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