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형주 ([email protected])
[환경과조경 이형주 기자] 조경학과 학생들이 조경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 망설이는 상황을 진단하고, 조경가로서의 비전과 길을 제시해주기 위한 고민 상담과 정보 공유의 장이 마련됐다.
자연에서공부하는정원모임(자공정모), 환경과조경, 환경과조경 통신원그룹 아라리는 지난 28일 서울숲 공원 인근에 위치한 동심원갤러리에서 ‘조경 꿈나무캠프’를 개최했다.
‘정원, 너도 할 수 있어!’란 제목의 이번 행사는 조경학과 학생들이 전공과 다른 일을 선택하는 이유를 짚어보고,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조경가로서의 비전과 길을 제시해주기 위해 마련됐으며, 하루 일정으로 1부 주제 발표, 2부 가든 콘서트, 3부 서울숲 공원 투어 순으로 진행됐다.
1부에서는 기획에 참여한 김선미 환경과조경 34기 통신원이 ‘내 꿈은 조경가, 꿈이 있던 당신에게’란 제목으로 행사 취지 설명과 조경가를 꿈꾸는 본인의 생각을 공유하는 것으로 캠프의 막을 열었다.
김선미 통신원은 “조경가를 목표로 하지 않는 학생들과 조경가를 목표로 하는 학생 모두에게 조경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디자인의 첫 걸음을 도와주기 위해 이번 자리를 마련했다”며 “정원이 조경의 전부는 아니지만 조경의 업역으로서 정원이 있다는 것을 알고 가는 것만으로도 이 자리는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대외활동을 하기 전에는 설계, 시공, 관리, 생태 분야만 알았는데, 조경의 업역은 굉장히 넓고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학교에서 얻는 정보만으로는 갈증이 해소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결론조차 내리지 못했다”는 생각을 드러냈다.
아울러 “이 자리에 참석한 제 또래 친구들도 조경가를 꿈으로 생각하고 오기보다는 정원이란 무엇인지, 내가 해도 괜찮을지 등 자신의 미래에 대한 생각과 더불어 현실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으로 참석했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부끄러움을 내려놓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꼭 고민을 타파하고 갔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어 안건희 환경과조경 34기 통신원의 사회로 ▲박상길 가천대학교 조경식물생태연구실 외래연구원의 ‘사회적 가드닝의 역사’ ▲김봉찬 더가든 대표의 ‘자연에서 배우는 정원 디자인’ ▲유승종 라이브스케이프 대표의 ‘조경을 넘어’ 특강이 펼쳐졌다.
2부에서는 주신하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의 사회로 ▲신준호 더가든 과장 ▲조원희 더가든 과장 ▲최재혁 오픈니스 대표의 ‘젊은 조경가가 사는 법’과 발표자 모두가 멘토로서 나선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토크쇼가 진행됐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시간은 캠프 참가자들이 발표와 관련된 내용이나 평상시 궁금했던 점, 고민, 하고 싶은 말 등을 포스트잇에 적어 칠판에 붙여놓은 후, 사회자의 진행으로 발표자들이 멘토가 되어 답변하는 방식으로 꾸려졌다.
3부에서는 서울숲 공원을 설계한 안계동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 대표의 해설을 들으며 공원을 산책하는 투어 프로그램을 끝으로 행사를 마쳤다.
이날 행사 참석자 중 조경과 사회학을 복수전공하는 학생은 “인터넷이 발달해 정보가 넘쳐나지만, 나에게 맞는 정보와 길을 알려줄 멘토와 커뮤니티가 없어 어려움을 겪던 차에 이번 행사에 참여하게 됐다”며 “그에 대한 아쉬움을 풀 수 있는 자리가 되어 좋았다. 짧더라도 정기적으로 이런 자리가 있길 바란다”는 소감을 밝혔다.
“공모전 참여를 해야 하나요? 방학 때 뭘 해야 하나요? 입상경력이 어떻게 도움이 되나요?”
최재혁 대표는 “비교적 공모전에 많이 참여한 편이다. 설계공모전이나 정원박람회에 많이 참여했는데 학생 때 그걸 한 이유는 스스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험난한 디자인 판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테스트 해 볼 수 있는 게 공모전이다”며 “정말 설계가 하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아이디어가 있어서라기 보단 자신을 시험하고 싶은 게 더 컸다. 결과적으로는 큰 의미가 있는 것들은 아닌데 그게 쌓이다 보니 가랑비에 옷 젖듯이 영향을 주었다. 꾸준히 하다 보면 알게 모르게 인정을 받는 순간이 올 것”이라고 조언했다.
조원희 과장은 “한뼘정원 박람회가 있었는데 부지들을 보면서 디자인을 하는 것이다. 미대를 나왔으니까 생산력은 손이 빨라서 낼 수 있다. 시공능력이 없었지만 공모전을 통해 아이디어를 실현해 볼 수 있었다. 동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은 정원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라는 현실적인 느낌도 받았다”고 답변했다.
신준호 과장은 “남들 한다고 따라 할 필요는 없다. 비교적 다른 학생들에 비해 공모전을 일찍 시작한 편이다. 선배들에게 같이 해 보고 싶다고 해서 참여했다. 한 번 하고 나니까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배움과 동시에 부족함을 알게 됐다. 팀 작업이라 그때그때 내 역할이 달라진다. 2학년 때는 자료조사 정도를 했다면 3~4학년 때는 또 역할이 달라졌다. 포지션을 바꿔가면서 경험을 했던 게 나중에 회사 생활을 하면서 도움이 된 것 같다. 단순히 공모전에 수상하고 이름을 알리는 걸 떠나서 나한테 어떻게 도움이 될지를 생각해서 자발적으로 하는 게 좋은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
“대학원 진학이 도움이 되나요?”
신준호 과장은 “많은 도움이 된다. 대학원을 가자마자 휴학을 하고 실무를 한 뒤 복학했다. 실무와 학업을 병행하면서 설계사무소를 가기 중간 단계로 대학원에 진학했다. 논문이 내 책을 한 권 쓰는 것이니 글쓰기도 경험하고, 이외에도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 2년이 매우 짧게 느껴졌다”는 생각을 전했다.
조원희 과장은 “환경대학원에서 외국인 교수의 지도를 받았다. 네덜란드인으로 200년 후 식생은 어떨지에 대한 내용과 같이 굉장히 미래적인 설계를 하던 분이다. 지금 정원 일을 하는 것이 대학원 때 배웠던 미래적인 부분과 연결돼 있다”고 술회했다.
최재혁 대표는 “대학원이 실무적으로 많이 연관이 돼 있다. 야구에서 타자가 배트를 치는 것에 비유해 볼 수 있다. 학부 때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고 일단 배트를 휘두르게 한다. 대학원은 배트를 휘두르는 법을 배운다. 자세부터 그런 걸 기초로 하니까 실무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안정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학부 때는 약간 아마추어적인 게 있고 대학원에서는 아마추어보다는 발전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경 외 다른 분야에 대한 접근이 조경에 도움이 되나요?”
최재혁 대표는 “조경이 메인이긴 한데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도 많다. 특히 콘텐츠 쪽에 관심이 많다. 기본적으로 설계하는 업 자체가 건설업에 속해있다. 그러다 보니까 물리적인 제약을 많이 받는다. 콘텐츠는 시간과 물리적인 조건을 다 뛰어넘는다. 구체적으로 영상 제작이나 이벤트와 같은 것들이다. 기회가 된다면 그런 일을 많이 하고 싶다”는 소회를 밝혔다.
조원희 과장은 “다른 분야 중에 스포츠에 관심이 많아서 제주도에서 레저를 많이 즐긴다. 특히 승마랑 다이빙을 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승마는 앞으로 10년 안에 활성화가 될 것이라 본다. 더가든에서 승마 관련 분야와 같이 일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생각보다 스포츠, 레저 이런 것들이 조경과 금방 연결이 되기도 한다”며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이 실무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신준호 과장은 “사당에 작업실을 만들어서 틈새정원이란 회사를 운영했었다. 평일에는 인테리어를 하고 주말에는 바를 운영했다. 요리하는 게 재밌어서 했는데 아무 생각 없이 즉흥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서 했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런 건 아니라서 취미생활로 하고 있다”는 본인의 사례를 소개했다.
이어 “인테리어는 다른 일이라기보다는 디자인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발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했던 부분이다. 진짜 디자인의 본질이 뭔지 고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디자인의 원리를 찾으려고 인테리어 작업을 했던 것 같다”며 다른 분야로 생각할 수 있는 일들도 연결고리가 있음을 시사했다.
유승종 대표는 “건축을 하다가 조경으로 넘어왔는데 그게 콤플렉스였다. 그래서 건축을 내 몸에서 떼어내려고 했는데, 사실 건축을 전공하고 조경 일을 하는 게 차별화된 강점이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지 하고 생각이 좁혀진 것 같다”며 “학생들은 내가 뭘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데 이런 고민들을 한다. 조경에도 꽃들이 다 다른 것처럼 학생들도 가지고 있는 것들이 다 다르다. 다양한 걸 시도해도 자기라는 걸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경이니 이것저것 하려는 사람이 많은데, 그 중심이 자기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조경을 해도 자기 색깔을 계속 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조언했다.
“조경에 그림이 꼭 필요한가요? 시대 흐름에 따라 컴퓨터가 발달하는데 그림을 못 그리면 어떻게 대응하나요?”
토크쇼에서는 그림과 관련된 질문도 나왔는데, 멘토들 모두 공통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건 필요하지만 매우 잘 그리지는 않아도 된다고 입을 모았다.
조원희 과장은 “그림을 잘 그리면 실무적으로 편하다. 그렇지만 일이 몰릴 때도 있으니, 조절을 잘해야 한다. 그림이 필수는 아니다. 공간원리에 대한 훈련만 된다면 컴퓨터로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 그림은 수정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효율성면에서는 확실히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설득하는 데 이용하는 도구로 생각하면 된다. 그림은 시간 날때마다 연습하면 금방 는다”고 말했다.
김봉찬 대표는 “미술시간이 공포의 시간이었다. 굉장히 어렵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림을 그리는 재능과 디자인의 재능은 다르다는 생각으로 접근하고 있다. 물론 두 가지를 잘하는 사람도 있고, 따로따로 잘하는 사람도 있다. 열심히 하다 보면 그림 실력이 는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경관에 대한 아이디어가 빨리 나온다. 경관은 시점에 따라 다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림을 잘 그리면 그림이 아까우니까 다른 사람들 의견이 잘 안 들어온다. 그래서 잘 그리면 좋지만 못 그려도 된다”고 말했다.
유승종 대표는 “그림은 생각을 잘 전달하는 수단이다. 내 생각을 말로 하는 것보다 그림을 보여주는 게 훨씬 낫다. 그러려면 보여주는 걸 빨리 할 수 있는 훈련이 되어야 한다. 굉장히 좋은 공간이나 디자인이 있으면 그걸 열 번 이상 손으로 그렸다. 그러다 보면 디자인이 바로 손으로 나온다. 디자인은 결국 손으로 하는 부분이 많다. 이게 쌓이면 무시 못 할 어휘력이 된다. 단어를 알아야 시를 쓰는 것과 비슷하다. 잘 그려야 한다는 부담보다는 내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표현할 수 있고 그 아이디어가 부드럽게 느껴질 정도로 연습하면 된다”고 말했다.
박상길 연구원은 “스케치는 디자인에서 감수성을 향상시킨다. 그리다 보면 잘 하게 되어 있다. 관찰은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것이다. 관찰을 한다는 것과 스케치를 한다는 것은 시간을 많이 걸리는 일이다. 그 시간 동안 생각을 하게 된다. 생각 속에서 예전에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게 된다. 처음에 감성이 부족하더라도 스케치하면 감성이 늘고 관찰력이 늘고 생각이 는다. 시간 날 때마다 그림을 그리면 도움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최재혁 대표는 “그림은 설계하는 사람이라면 평생 같이 가야 하는 친구다. 계속 그림을 그리면서 스케치를 모아가다 보면, 확실히 예전보다 그림 실력이 늘었음을 느낀다. 공간작업을 하다보면 한참 안 그려도 느는데, 그게 되게 재밌는 경험이고 스스로도 신기하다. 그림과 친해지지 않아도 좋은 걸 많이 보면 실력이 늘 것이다”고 말했다.
“설계적인 영감을 어디서 받나요?”
김봉찬 대표는 “평상시에 자연에서 배운다. 밖으로 나가면 그냥 자연이다. 거기서 배운다. 지하상가 가도 다 공부다. 그런 관계성을 계속 찾다 보면 내가 만드는 공간에 적용하게 된다. 거기에 꼭 맞는 아이디어가 생긴다. 모방이라기 보단 경험을 가지고 새로운 경험을 만드는 것이다. 단순히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그걸 바로 이용하면 맞지 않다. 그걸 분석하고 생각한 다음에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상길 연구원은 “이건 디자인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다. 디자인은 뭔가 만드는 것이다. 자연을 모방하는 게 사실 제일 어렵다. 해 보지도 않았으면서 자연을 모방하는 게 제일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맞지 않는 표현이다. 자연에 대한 어마어마한 지식을 쌓아야 가능하다. 결국 영감의 원천은 평소에 관찰하고 생각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설계 영감을 받기 위해서는 자연에 대한 지식을 쌓아야 한다. 식재 디자인은 과학적 지식이 없으면 안 된다”며 김봉찬 대표의 말에 힘을 보탰다.
유승종 대표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공간을 쫒는 편이다. 세상에 사람들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를 보는 것이다. 그런 공부가 재밌고 게을리 하지 않는다. 나는 기획자가 되려고 하는데 기획은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그래서 평소에 사람들로부터 영감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최재혁 대표는 “많이 놀고 많이 돌아다니는 게 제일 좋다. 영감이라는 단어는 예술이라는 단어랑 관련이 있다. 영감을 기술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하면 개인에 대한 특성에 따라 많은 영감이 나오기 어렵다. 많이 놀러가고 여행하고 영화 보고 연애도 많이 하면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브레인스토밍으로 짜내서 나오는 건 한계가 있고, 브레인샤워를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들이 많아질 것이다”고 말했다.
“정말 조경이 나한테 맞는 분야일까 고민한 적이 있었나요? 있었다면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김봉찬 대표는 “나는 조경을 전공하지 않았다. 조경이 굉장히 폭이 넓어서 사실 안 맞는 사람이 있을까 싶긴 하다. 조경이 앞으로도 더 넓어질 것이다. 고민하지 말고 그중에 하나를 골라서 칼을 갈아서 연마하길 바란다. 다 잘 할 수는 없으니 내가 잘 할 수 있는 걸 가지고 그 길을 여는 것이 중요하다”고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을 격려했다.
신준호 과장은 “학생 때 너무 안정된 길만 가면 큰 위기가 왔을 때 극복하기 힘들 수도 있다. 조금 더 많은 경험을 해 보라는 게 단순히 많은 걸 해 보는 게 아니라 다양한 상황에 자신을 던져 놓고 그 경험을 가지고 어떤 가치를 얻어서 대비하는지를 키울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란 것이다. 조경이 좋다면 다른 것과 비교하지 말고 계속 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박상길 연구원은 “그런 회의감이 생기는 근본적은 원인은 조경의 정체성이 확립되어 있는가와 연관된다. 조경이 정확히 뭔지는 모르지만 그냥 그런 거지라고 쭉 진행된 것 같다. 대학에서 학문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조경에 대한 경험을 실무에서 찾으려고 하는데 그건 오래 가지 못한다. 연구가 오래 간다. 조경의 분야는 넓지만 그걸 학생 혼자 찾기에는 무리가 있다. 조경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진실로 찾아야 할 것”이라며 학계에 메시지를 던졌다.
유승종 대표도 “요즘 트렌드는 훨씬 빨리 앞서가는데, 학교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데서 그러한 고민들이 생기는 것 같다”며 대학 교육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