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태식 수프로 부사장 ([email protected])
산수유는 갈잎 엑스트라를 배경으로 한 원탑 주인공이다
산수유는 원산지인 중국에서 도입되어 전국에 살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올라가는 3월 중순경이면 나뭇가지를 뒤덮으며 노란색 꽃을 피운다. 특히 도시지역에서는 다른 나무들보다 먼저 꽃을 피워서 봄꽃을 상징하게 되었다. 꽃은 잎이 나기 전에 피어 보름간 계속되며 가을에 진한 주홍색으로 익는 열매가 겨우내 매달려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산수유꽃은 짧은 가지 끝에 우산모양으로 20~30개의 노란색 꽃이 둥글게 모여있다. 식물학에서 ‘산형화서’라고 하는데 우산살처럼 짧은 꽃자루들이 한곳에서 많은 수로 퍼져 나가는 형태의 꽃차례를 말한다. 작은 꽃이 모여 우산을 펼친 것과 비슷한 모양이다.
층층나무속(Cornus)으로 산딸나무, 층층나무, 흰말채나무와 잎이 비슷하다. 속명 코르누스(Cornus)는 ‘뿔’이라는 뜻이며, 나무의 재질이 무겁고 단단하다는 뜻이다. 자세히 보면 꽃이 피기 전의 꽃봉오리 모습이 뿔 모양을 가지고 있다. 종명 오피시날리스(officinalis)는 ‘약효가 있다’는 뜻이다. 가지에 달린 열매는 겉으로는 색감이 좋고 맛있어 보이지만 매우 쓰기 때문에 가공해야 먹을 수 있다. 긴 타원형의 크기가 작은 열매가 많이 열리며 독성이 있는 씨를 제거한 후 말려서 먹거나 산수유주를 담가서 먹는다.
어떤 나무를 만나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사람마다 다른 느낌으로 남는다고 한다. 어떤 시인은 이른 봄날의 황량한 숲속에서 산수유가 꽃피우는 모습에 탄성과 생명의 부활을 이야기했다. 김종길 시인은 성탄제라는 시에서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라며 아버지의 자식 사랑을 산수유 열매로 표현했다. 또 다른 작가도 “산수유는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 중량감 없이 파스텔처럼 산야에 번져 있다. 그래서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라는 글을 남겼다.
봄에는 왜 노란색 꽃이 많이 필까?
산수유, 생강나무, 히어리, 영춘화, 개나리, 복수초, 꽃다지, 민들레, 유채꽃 등 초봄에 피는 이 꽃 대부분은 노란색이다. 노란 꽃이 화사하게 피어난 모습을 보면 겨울이 가고 봄이 온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초봄에 노란 꽃이 많은 것처럼 초여름에는 이팝나무, 때죽나무, 쪽동백, 함박꽃나무같이 흰 꽃이 많이 피고, 초가을에는 용담, 금강초롱꽃, 투구꽃, 벌개미취, 쑥부쟁이 등 보라색 꽃이 많이 피는 경향이 있다. 왜 봄꽃은 노란색 꽃이 많을까?

식물이 꽃을 피우는 것은 사람들의 선호도와 무관하게 곤충을 유인해 꽃가루를 운반하게 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초봄에 노란색 꽃이 많은 것은 꽃가루받이를 하는 곤충의 습성과 관련이 깊을 수밖에 없다. 노란색에 잘 반응하는 등에라는 곤충은 벌과 비슷하지만 파리에 가까운 곤충인데, 기온이 낮은 초봄에 활동하여 노란색 꽃이 피는 식물의 꿀을 먹으며 꽃가루받이를 도와준다.
꿀벌처럼 영리한 곤충은 한 종류의 꽃만 찾지만 등에는 벌보다 하등동물이라 꽃을 구분하지 않고 날아다닌다. 꽃가루를 다른 식물의 꽃으로 옮기면 꽃가루받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초봄에 피는 꽃들은 무리를 지어 피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한군데 모여서 피어 있으면 등에가 마구잡이로 옮겨 다녀도 같은 종류의 꽃에 꽃가루를 옮긴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지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론으로는 이른 봄철 부족한 영양분 때문에 에너지를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 노란색 꽃을 피게 한다는 것으로 설명한다. 봄의 노란 꽃은 힘겹게 겨울을 보낸 식물들이 자신을 지키면서도 종족을 번식시켜야 하는 최고의 방법을 선택한 것이라고 본다.
초봄 도시에 노란 꽃이 많은 이유에 대해 “사람들이 노란 꽃이 피는 식물을 많이 심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그럴듯하다. 유채꽃, 영춘화, 산수유, 개나리 등은 자연적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사람이 심은 것이다. 히어리나 복수초 등도 자생지가 있지만, 도시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녹지나 공원에 심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낙엽활엽수가 꽃을 피우고 신록이 우거지기 시작하는 4월 중순 전에 도시에 봄을 알리기 위하여 대부분 노란 꽃을 피우는 식물을 심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식물이 곤충의 습성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는데, 오늘날에는 육종기술에 의해 인간의 기호에 맞는 꽃을 대량생산하고 있어 꽃 색깔도 인간이 선택하고 있다. 다행히 우리 산과 들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나무와 풀은 아직 야생 상태를 유지하면서 봄꽃을 피우고 있다. 노란 산수유꽃이 그렇다.
남자한테 정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구례군 산동면은 산수유마을로 유명하다. 마을 이름이 ‘산동’으로 된 계기는, 천년 전 중국 산동성의 처녀가 구례로 시집올 때 고향을 잊지 않기 위해 산수유 씨앗을 가지고 와 심었다고 한다. 그때 심었던 나무가 우리나라 산수유의 어미목인 셈이다. 지리산 아래 산골 마을의 척박한 토양에서 유일하게 잘 자라는 작물로 조선시대에는 마을의 특산품으로 인정받을 정도로 산동마을에 많이 심어 가꿨다고 한다. 구례 산수유에 대한 기록은 조선시대 문헌에도 자주 나온다.
산림경제 등에는 구례에서 공납을 위해 산수유를 지역에서 재배하여 한약재로 쓰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동의보감에는 보신강장 효과가 있어 원기를 돕는다고 적혀있다. 예전에 “남자한테 정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라는 광고 카피가 널리 알려져 건강보조식품의 대명사로 유명해졌다.

1970년대 들어 농가 소득을 높이기 위하여 산수유 묘목을 농가에 무상 보급하여 마을 빈 땅이나 휴경지에 확대 재배하기 시작했다. 산동면의 경지 면적의 10%를 차지하면서 벼농사보다 더 수익이 높은 산수유나무는 자녀들의 대학 등록금을 댈 수 있는 ‘대학나무’로 불렀다. 섬진강 주변에는 우리나라에서 봄이 가장 일찍 찾아오는 곳으로 큰 규모의 매실 과수원과 산수유마을이 많이 있다. 해마다 매화와 산수유꽃을 보려는 봄맞이 손님들로 북적이곤 한다. 산수유와 함께 성장하고 마을을 가꿔온 사람들의 노력이 쌓여서 구례의 산수유나무는 국가 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전통과 문화를 상징하는 나무숲이 되었다.
도시에 봄이 왔다고 선언하다
봄기운을 느끼며 도시 근교산 등산로 입구에 일행을 기다리다 보면 산자락에 노란색 꽃이 핀 나무가 보인다. 잘난 척 잘하는 사람은 “산수유꽃이 일찍 피었네” 하며 아는 체를 한다. 그러나 산자락에 피어있는 노란색 꽃은 거의 다 생강나무로 볼 수 있다. 공원이나 아파트에 심어진 것이 산수유이고 산자락에 보일락 말락 새초롬히 꽃 핀 나무는 생강나무이다.
꽃 자체 모양이 비슷하고 피는 시기가 같아서 혼동하기 쉬운 나무들이다. 꽃자루가 길게 뻗은 것은 산수유, 꽃자루가 없이 공처럼 뭉쳐있는 것은 생강나무고 수피가 지저분하면 산수유라고 일러줘도 뒤돌아서면 잊어버리곤 한다. 고심 끝에 한글을 이용해서 시각적으로 구분해서 설명한다. 산수유는 ‘아’ 모음처럼 가지 끝에 꽃이 달리고, 생강나무는 가지와 붙어서 꽃이 핀다고 그림을 그려서 알려주니 잘 기억한다. 가을 산행 때 낮은 산 등산로 옆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노란색 단풍이 든 키 작은 나무가 바로 생강나무이다.

꽃 모양만 비슷하지 생강나무는 녹나무과이고 산수유는 층층나무과 집안이다. 예전 생강이 귀하던 강원도 산골에선 나뭇가지나 잎을 꺾으면 생강 냄새가 난다고 해서 생강나무로 불렀다고 한다. 또한 동백기름을 구하지 못한 아낙네들이 잘 익은 검은색 생강나무 열매를 짜서 머리에 바르면서 산동백이라고 부르던 나무가 생강나무이다.
산수유를 심는 위치로는 북풍을 피할 수 있는 양지바른 곳이 좋으며, 토심이 깊고 비옥한 사질양토로서 배수가 양호한 곳이 좋다. 산수유 뿌리는 깊게 들어가지 않고 넓게 퍼지는 편이다. 강한 바람에 넘어지기도 하는데, 주변에 나지막한 돌담이나 가벽을 세워 바람을 막아 주는 것이 좋다. 대체로 비옥한 산간계곡, 산록부, 논둑, 밭둑의 공한지 등에서 생육이 양호하다.
산수유는 추위에 강하고 성장이 빠른 편이다. 중국단풍나무 줄기처럼 나무껍질이 많이 갈라져 지저분해진다. 배롱나무, 노각나무, 모과나무처럼 나무껍질이 아름다운데 15년 이상 지나야 매끈하고 무늬가 있는 나무껍질을 갖게 된다고 하는데 쉽게 만날 수 없었다. 산수유는 정원의 틀을 만들고 봄을 제일 먼저 느낄 수 있도록 해주어 정원수로 많이 쓰인다. 특히 가지가 치밀하게 자라고 오래 살아 널리 사랑받고 있다.
봄의 노란색 꽃, 여름의 주홍색 열매, 가을의 분홍색 단풍잎 그리고 겨울 눈에 덮인 가지까지 일 년 내내 기쁨을 준다. 동백이나 매화는 추위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라서 봄꽃이라는 상징이 부족한 편이다. 동백이나 매화를 쉽게 만날 수 없는 중부지역 도시에서 봄을 알리는 대표적인 꽃나무이다. 산수유 꽃은 겨울이 끝나고 봄이 왔다고 선언하는 셈이다.
홍태식 / 수프로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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