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유정 ([email protected])
[환경과조경 신유정 기자] 도봉구 ‘너랑내랑 흙놀이터’는 흙이 풍부한 대상지 여건을 활용해 흙에서 뒹굴고 미끄러지며 자유롭게 놀 수 있는 놀이터다.
구조물을 만들지 않고 온전한 흙을 쌓아올려 미끄럼틀을 만들었고, 흙수영장과 풀장을 더해 변화무쌍한 놀이가 가능토록 했다.
마포구 I·놀2터는 월드컵공원 내 평화의공원에서 운영된 꿈의 놀이터다. 적극적인 관리가 이뤄지는 곳이다 보니 자연친화적인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음에도 자유로운 놀이 활동을 위한 거점으로서 제약이 많았다.
그럼에도 공원 관리자들의 지원과 놀이터활동가, 아이들의 협력으로 놀이 활동은 잘 이뤄질 수 있었다. 아이들 스스로 자치단을 형성해 규칙을 만들고 갈등관리에 나서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 도봉구 너랑내랑 흙놀이터
위치 _ 서울 도봉구 창동 368
운영단체 _ 숲에서 놀자
‘너랑내랑 흙놀이터’는 숲해설가로 구성된 비영리단체 ‘숲에서 놀자’가 운영하는 자연친화적인 놀이터다. 처음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는 주민과의 네트워크가 부족해 먼저 사람들을 모으기 위한 전략으로 몇차례 작은 놀이축제를 운영하면서꿈의 놀이터를 알렸다.
‘숲에서 놀자’는 도봉구 주민과의 네트워크가 없었기 때문에 우선 시선을 끌어 사람들을 모아가려는 전략을 세웠다. 몇 차례 작은 놀이축제를 운영하면서 사람들을 모으고 활동을 알렸다. 어린이꿈놀이단을 모집하는 것도 이런 축제를 활용해 놀러온 아이들과 보호자들에게 설명해 한두 명씩 가입을 받았다.
이병율 놀이터활동가(숲에서 놀자 대표)는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꿈의 놀이터 활동 취지가 사람들에게 잘 전달이 안 되는 느낌을 받았다. 활동가 내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만들어가는 놀이터에 대한 모호함, 주민들을 모아나가고 우리 활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난관에 봉착했다.
활동가들은 관습적으로 평소 해오듯이 유아숲체험장처럼 ‘프로그램’을 운영하려고 했다. 밧줄을 묶고 숲을 활용해 놀이감을 만들어주는 등 언 듯 보면 지금의 꿈의 놀이터와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이게 바로 우리가 하려는 꿈의 놀이터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활동가 안에도 없었다고.
특히나 코로나19로 인한 제약은 활동을 더욱 어렵게 했다. 고민이 있다 해도 끊임없이 이것저것 시도하다보면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더 빨리 찾아왔을 텐데, 코로나로 인해 활동이 중단되기 일쑤여서 다시 시작할 때는 고민들을 처음부터 다시 하는 과정이 반복됐다.
8월이 지날 무렵 코로나가 조금씩 잦아들고, 활동이 본격화 되면서 어린이와 이야기한 여러 가지 아이템들 중 흙이라는 재료를 떠올렸다. 이에 초안산근린공원에는 흙이 많다. 풍부한 흙, 어린이들이 한 번 만지면 몇 시간이고 빠져드는 흙놀이로 꿈의 놀이터를 추진해보기로 했다.
장소도 흙놀이에 적합한 곳으로 약간 이동해서 어린이들과 진흙미끄럼틀을 만들기로 했다. 미끄럼틀을 만들 때 구조물을 만들지 않고 흙을 포대에 담아 구조물 대신 쌓아올리고 제일 핵심이 미끄럼틀과 외관을 진흙으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 어린이들이 함께 참여했는데 많이 참여하지는 않았다. 물에 젖고 옷이 더러워지는 과정이었던 터다. 그러나 참여하는 어린이들은 열광적이었다. 진흙미끄럼틀을 만들고 나니 문제는 어떻게 해야 잘 미끄러질까였다. 활동가들은 공원 안 수도를 이용해 물을 나르며 미끄럼틀에 쏟아 부었다. 물과 흙이 만나 미끄럼틀이 완성됐다.
이 과정에서 진흙으로 된 외관이 물에 젖고 마르기를 반복했다. 활동가들과 어린이들은 활동 시작 전 진흙미끄럼틀의 갈라진 사이를 다시 흙과 물을 개어 만든 반죽으로 메꾸고 보강공사를 했다. 많은 수의 어린이들은 아니었지만 흙놀이터에 열광적인 매니아들이 생겨났다. 매주 찾아오는 부모와 아이들 몇 그룹이 생겼다.
놀이터만들기 워크숍을 통해 흙놀이터를 더욱 빛내줄 흙수영장과 미끄럼틀 아래에 작은 풀장을 만들고 위쪽에는 나무 오두막을 지었다. 그리고 어린이들이 흙으로 낙서할 수 있도록 흰 천을 매달았다. 약간의 경사가 있는 곳을 이용해 큰 파이프관도 미끄럼틀과 오름으로 활용하도록 설치해놓았다.
이병율 활동가는 “놀이터활동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환경 조성이 무엇인지, 놀이터 만들기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1년이 지나고 보니 그간 고민하고 난관에 봉착했던 시간들이 더해져 하나의 선명함으로 다가왔다”며 “우리가 그간 운영했던 프로그램과 지금의 꿈의 놀이터는 확실히 다르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은 놀이의 주인공이다. 특별히 놀이를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잘 놀줄 아는 놀이 천재들이다. 단지 그런 놀이터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 것이다.”
아이들의 놀이를 자극할 수 있는 변화무쌍한 환경, 어린이 손이 닿으면 변하는 놀이재료들, 그것들은 주로 자연물이었다. 때로는 생활속의 다양한 생활용품들도 어린이 손에서는 장난감이 된다. 놀이방식을 정해주지 않고 놀수있도록 다양한 재료들을 제공하고 어린이들과 이야기하고 관찰하며, 놀이할 수 있는 재료를 준비해주는 과정이 놀이터활동가들의 일이다.
이병율 활동가는 “안전한 놀이터는 재미가 없다. 그러나 어린이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위험요소들은 스스로 힘을 조절하고 동선을 조절하며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훈련이 될 수 있다”며 자율성이 중요함을 역설했다.
하지만 “어딘가 뾰족하게 돌출되어있거나 못이 튀어나와있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들은 어린이들에게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옆에서 도와주는 놀이터활동가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놀이터활동가들은 이번 꿈의 놀이터를 통해 많은 고민을 했고 서서히 답을 찾아가는 과정, 그리고 어린이들이 큰 소리로 웃고 떠들며 노는 모습에 그간의 모든 것을 보상받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부모들이 앞으로도 계속 이런 활동 이어가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을 받았다.
이병율 활동가는 “꿈의 놀이터는 참여해보면 누구나 말한다. 우리도 할 수 있겠다. 우리도 하고 싶다. 우리 마을에도 있었으면 좋겠다. 이것이 올해 꿈의 놀이터의 결과다. 이런 꿈의 놀이터의 씨앗을 사람들에게 심어 내년, 내후년 마을 곳곳에 꿈의 놀이터가 각양각색으로 시도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마포구 I·놀2터
위치 _ 마포구 성산동 390-1, 마포구 하늘공원로 108-1
운영단체 _ 자연의벗연구소, 노을공원시민모임
평화의공원은 월드컵공원 안에 위치한 5개의 공원 중 하나다. ‘I·놀2터’는 평화의공원 안에서도 아람반이라는 낮은 대나무울타리가 있는 30평 남짓의 유치원체험활동 공간이다. 놀이터활동가들은 서부공원녹지사업소 관계자들과 평화의공원을 거닐며 ‘꿈의 놀이터’ 활동 장소를 물색했다. 접근성이 높고 주변으로 작은 숲과 잔디밭이 조성돼 있어 어린이들이 울타리 안팎으로 활동하기에 좋아 이곳을 놀이터 기지로 삼았다.
평화의공원 놀이터활동가는 김규승, 이정환 두 사람으로 일주일에 2회, 보통 주말에 2~4시간 정도 탄력적으로 ‘꿈의 놀이터’를 운영했다. 평화의공원은 자연을 활용하는 데 제약이 많았다. 자연친화적인 환경은 좋았으나 땅을 파거나 나무를 자유롭게 활용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다 보니 놀이 활동에 한계가 있었다. 이에 활동가들은 놀이 활동을 확장할 수 있도록 울타리 개보수작업을 진행했다.
무언가 표현하려는 어린이 특성을 살려 칠판을 두고 맘껏 사용하도록 했다. 어린이들은 놀면서 드는 생각들, 활동가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도 남기고 친구들과 수다도 남기고 그냥 낙서처럼 그림도 남긴다. 또한 투명칠판은 울타리 밖과 안을 이어주어서 이 자체로 놀잇감이 된다.
또 하나 만들어진 것은 창고다. 공원 안에서 쓸 수 있는 게 워낙 없다보니 목재, 삽, 망치, 톱, 줄, 천 컬러펜, 종이, 가위, 칼 등을 준비해 창고에 비치해두었다. 놀이터활동가들의 옷이나 활동 시 필요한 물품도 보관하고 어린이꿈놀이단 명찰, 손소독제, 열체온계 등도 보관했다. 열면 창고, 닫으면 어린이들이 타고 오르는 나무오름이 된다.
나무오름에는 줄이 매달려 있다. 어린이들은 울타리 밖에서 타고 올라서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는 놀이를 즐긴다. 울타리 안에서는 뛰어서 나무오름에 올라탄다. 그리고 놀다가 나무오름에 나란히 앉아 쉬기도 한다. 어린이들이 작업할 수 있도록 큰 나무테이블을 작업대로 만들어놓았다. 뭔가를 쓰고 그리고 만들고 할 때 어린이들이 활용하는 곳이다. 활동가들이 앉아서 회의하거나 준비활동에도 사용된다.
20여 명으로 구성된 어린이꿈놀이단을 중심으로 놀이 활동이 전개됐는데, 정해진 프로그램은 없었다. 대신 운영계획을 만들어 두고 이를 기반으로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토록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어린이꿈놀이단을 모으고 발대식을 하고 무얼 만들지 의논하는 워크숍을 하고 뭔가를 만들기 전에 공구부터 다루는 법을 알려줬다.
놀이 활동이 진행되면서 어린이들을 관찰하고 어린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때그때 재료가 추가됐다. 놀이터활동가들은 주로 재료들을 찾고 배치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프로그램은 어린이가 주도성을 갖도록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이고 어린이들 스스로 공간을 자기 것으로 여길 수 있도록 하는 활동을 해나갔다.
어린이들이 만든 놀이터 간판은 I·놀2터, 나의 놀이터라는 개념이다. 꿈놀이단의 학부모들은 “어린이들이 간판을 만들고서부터 부쩍 놀이터에 대한 애착을 더 갖게 됐다”고 말한다. 직접 참여함으로써 자기 공간이라고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인터넷 카페를 보면 평화의공원을 애용하는 어린이와 부모들의 후기가 종종 올라온다. 아무것도 안 하고 한두 시간 내내 망치질만 했는데도 아이가 너무 재밌었다며, 밤잠을 설렐 정도로 놀이터를 기다린다는 후기도 있었다. 삽질만 한 시간 내내 하면서 땀을 흘리는 데도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활동 중 사소한 의견 차이나 상처받는 일이 생기면 꿈놀이단 아동자치회 기구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이는 누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꿈놀이단 어린이 윤아가 직접 제안해 만들어진 기구다.
김규승 놀이터활동가는 “돌이켜보면 활동가로서 한 일은 크게 없었다. 가장 큰 역할은 꿈놀이단과의 소통이었다. 꿈놀이단이 원하는 방향을 잡아나갈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지고 구체화 할 수 있게 지원하거나 힘이 부치는 일을 도와준 정도다. 그리고 꿈놀이단 이외에도 참여하고 싶어 하는 가족과 어린이들의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는 소회를 밝혔다.
또한 “어떤 부분에서 보면 코로나 상황이었기 때문에 활동에 제약이 있었지만, 이를 계기로 이곳 I·놀2터가 더 많은 주목을 받을 수 있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활동가의 조건은 활동에 대해 잘 알고 이끌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린이의 시선에서 뭘 원하는지 파악하고 각각의 시점에서 방향을 잡아주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관계에 대한 이해다. ‘너와 내’가 아닌 ‘나와 나’로 볼 줄 아는 배려와 이해가 중요하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이곳 I·놀2터가 가변성을 띈 형태의 모험놀이터로 계속 유지되는 것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