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형주 ([email protected])
[환경과조경 이형주 기자] 내게 4월은 특별하다. 태어난 날과 자란 장소가 만나는 매개점이란 부분이다. 4월 16일에 태어나, 걸음마를 시작하고부터 고등학교까지 제주에서 자랐다. 그런 내가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출발한 배를 타고 제주로 가던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비보를 접했다. 누군가의 상실감에 측은지심이 생기는 건 인간으로서 당연한 감정이겠지만, 내가 태어난 날 내 고향 제주로 가던 304명의 생명이 불의의 사고로 별이 된 사건은 더욱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일로 기억 속에 저장됐다. ‘4.16생명안전공원’ 조성에 관심을 가진 배경이다.
‘4.16생명안전공원’은 ‘4·16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희생자들의 추모와 해상 안전사고 예방교육을 위해 안산 화랑유원지 일부에 조성하는 공원이다. 진상규명을 위한 현안 과제들과 입지 선정을 둘러싼 안산 지역 내 갈등으로 사건 발생 5년이 지나서야 공원 건립이 본격화됐다.
공원 건립이 본격화됨에 따라 4.16재단은 지난 11월 27일부터 29일까지 2박 3일간 제주4.3사건 비극적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는 다크투어를 진행했다. ‘4.16생명안전공원’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취지였다. 두 사건은 규모와 맥락상 차이가 있지만,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게 하려는 의지로 기억을 공간에 남겨놓을 다양한 방법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접점을 찾을 수 있었다.
다크투어는 ‘세월호 제주기억관’을 시작으로 제주4.3평화공원, 북촌 너븐숭이 4.3 위령성지, 선흘리 동백동산, 새별오름, 알뜨르비행장 일대 일제 군사시설 및 예비검속 섯알오름 학살터, ‘수상한 집’을 돌아보는 일정으로 꾸려졌다.
화해와 상생을 위한 제주4.3의 기록
투어 첫날 비가 내려 부득이 실내 일정으로 계획을 조정하면서 ‘세월호 제주기억관’을 먼저 찾게 됐다. ‘세월호 제주기억관’은 세월호 가족협의회가 직접 운영하고 평화쉼터에서 위탁 관리하는 기억관이다. 이곳은 고통 받는 사회적 약자들이 몸과 마음의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다. 장기투쟁을 진행하는 해고자들, 억울하게 복역한 장기수들, 사회적 참사 희생자 유족들과 수많은 활동가들이 언제든 머물며 기운을 충전할 수 있도록 3명의 활동가들이 전 재산을 모아 42개월 동안 직접 지었다.
‘세월호 제주기억관’은 4.16 참사에 대한 감정과 생각들을 잠시 4.3 사건 현장으로 옮겨오는 매개체가 되어주었다. 작은 공간이지만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겪은 이들을 기억하고 치유해주려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공간의 의미는 크게 다가왔다.
참가자들은 기억관에서 차를 마시며 서로 인사를 나눈 후 인접한 ‘제주4.3평화공원’으로 자리를 옮겼고, 이때부터 투어 안내를 맡은 이성권 평화여행사 해설사가 본격적으로 해설을 이어나갔다.
‘제주4.3평화공원’은 4.3으로 발생한 민간인 학살과 당시 제주도민의 처절했던 삶을 기억하고 추념하며 화해와 상생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평화·인권 공원이다. 제주4.3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경찰과 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당시 제주도민의 1/10 수준인 3만 여명이 이 사건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후 생존자들은 공포감에 오랜 시간 침묵을 지켜오다 소설가 현기영의 『순이 삼촌』 발간을 계기로 4.3진상규명운동을 시작했고, 노무현 대통령 때 들어 특별법 제정과 진상조사, 유해발굴 등의 작업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게 됐다. 제주4·3사건에 대한 공동체적 보상 차원에서 제주4·3평화공원이 조성돼 4.3의 역사를 담고 희생자 영령을 위로하는 기념물을 담았다.
‘제주4.3평화공원’ 뿐만 아니라 제주에는 4.3사건을 기억하기 위한 많은 흔적과 기록들이 있다. 제주도는 이를 이어주는 4.3길을 개발했다. 4.3길은 4.3 당시 사람들의 두려움의 기억과 생존을 위한 흔적이 남아 있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길이다. 화해와 상생으로 4.3 해결을 위해 노력해 온 제주인의 의지를 알리기 위함이다.
아픔 서린 아름다운 제주 풍경
둘째 날에는 북촌 너븐숭이를 방문했다. 참가자들은 이곳에 방문했을 때 그 슬픔의 무게를 견디기 어려웠는지 눈시울이 붉어졌다. 4.3 당시 단일 사건으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동시에 아이들이 희생된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북촌에서는 1949년 1월 17일 한 마을의 남녀노소 300여 명이 한 날 한 시에 희생됐다. 주민들은 이 같은 액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하며 방사탑을 세웠고,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아이들의 돌무덤 10여 기를 보존하고 있다. 너븐숭이 일원에는 기념관과 위령비, 야외시설물 등이 있고, 잃어버린 기억을 되살리기 위한 투쟁의 계기가 된 『순이 삼촌』의 문학비가 세워져 있다.
너븐숭이는 널찍한 돌밭이라는 의미의 제주방언이다. 용암이 흐르다 굳어 독특한 지형경관을 형성하고 있고, 해안과 경작지가 어우러진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경치 좋은 곳이다. 적당히 우거진 그늘로 지역주민들이 농사짓다 쉬어가는 곳이기도 하다. 발아래는 슬픈 역사와 아픔이 서려 있는데 눈앞에는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한 참가자는 이곳에서 “제주도를 휴양지로만 보다가 그 이면에 학살이라는 굉장히 아픈 역사가 있다는 걸 알게 된 데서 큰 느낌을 받게 됐다. 기록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됐고, 우리가 아픈 사건들을 기억하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다음으로 향한 선흘리 동백동산과 새별오름도 아름다운 경관과 생태적인 가치를 가진 관광지로만 알려져 있는데, 이곳에도 4.3사건의 아픔이 서려 있었다. 새별오름은 4.3사건 당시 남로당 무장대의 거점 가운데 하나로 무장대의 군사 훈련이 이뤄진 곳이다.
동백동산이 있는 제주 선흘1리는 제주의 숲 곶자왈과 그 안에 습지를 품고 있는 마을이다. 환경부에서 2010년에 자연생태우수마을, 2013년에 생태관광지역으로 지정했으며, 2011년 제주기념물 제10호인 동백동산이 람사르습지로 등록됐고, 2014년에는 세계지질공원 대표명소로 지정됐다. 다양한 생태문화자원을 보유하고 주민이 마을의 방향성을 스스로 논의하고 만들어 나감으로써 적극적으로 마을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곳은 사실 4.3 당시 주민들을 효율적으로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략촌이다. 1949년 봄 해안 마을로 피난 갔거나 감금됐던 주민들을 강제 동원해 쌓은 성의 원형이 아직까지 잘 보존돼 있다. 반못굴, 도틀굴, 목시물굴, 대섭이굴 등의 용암동굴은 4.3 당시 주민들이 몸을 숨겼던 피난처로서 기능을 했다.
마을 노인들은 거동이 쉽지 않은 나이임에도 이러한 역사를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방문객들이 찾아오면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함께 오름길에 올랐다. 이날 투어에도 지역주민이 함께 했다.
둘째 날 마지막 일정은 알뜨르비행장 일대 일제 군사시설 다크투어리즘 코스였다. 알뜨르비행장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대정읍 상모리 아래 너른 벌판에 건설한 군용 비행장이다. 이곳에서는 4.3사건 외에도 그 당시 제주에서 다양한 학살이 일어났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예비검속 섯알오름 학살이 대표적인 사건이다.
예비검속 섯알오름 학살은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내무부치안국의 지시에 따라 모슬포경찰서 관내에서 예비검속한 344명 중 계엄사령부에 송치된 252명을 같은 해 7월 16일과 8월 20일 법적절차 없이 모슬포 주둔군에 의해 집단학살 암매장한 사건이다.
투어 참가자들은 이날 현장에서 양천익 예비검속 섯알오름 학살 희생자 명예회복 추진위원장을 만날 수 있었다. 학생 시절 예비검속 섯알오름 학살로 형들을 모두 잃은 양천익 선생은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평생을 바쳐왔고 지금도 살아있는 가해자들과 고군분투를 벌이고 있다.
아픔을 따뜻한 치유의 마음으로
마지막 날 오전 숙소에서는 제주다크투어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간담회 자리가 마련됐다.
세월호가 침몰한 해 암 수술을 한 안산시민 김화숙 씨는 처음에는 세월호를 외면했지만, 본인이 아픈 원인과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배경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고 관심을 가져 적극적으로 활동에 참여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김 씨는 “암은 병든 몸의 사인이고 빙산의 일각으로 압축된다. 암 덩어리만 제거한다 해서 몸이 새로워지는 게 아니라 암이 생길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야 건강해지는 것이다. 이걸 직시하고 나서야 건강을 찾을 수 있었다”고 술회했다.
아울러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대한민국의 구조가 암의 메시지로 받아들여졌다. 불편했다. 암을 치료하기 위해 내 몸을 바꾸어야 하는 것처럼, 모든 메시지와 지표를 보지 않으면 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참여하고 있다”며 앞서서 싸워주고 용기와 메시지를 주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정부자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추모사업부서장은 “평범한 안산시민이었다. 내 가족만 잘 꾸리면 대한민국이 잘 굴러갈 것으로 생각하고 아이에게 튀지 말라는 방식으로 교육했다. 나한테는 그런 일이 없을 줄 알았다”고 회고했다.
이어 “울기만 하면 우리 아이가 싫어할 것이라 생각해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기로 마음먹고 희망적인 도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파만 하면 다른 참사처럼 시간만 흘러간다. 아이가 살았던 아픈 도시가 이제는 희망적인 도시가 되면 좋겠다. 대한민국의 안전이 다시 시작되면 좋겠다. 희망의 안산을 만든다면 우리 안산을 찾아와서 배울 것이다”며 4.16생명안전공원의 성공적인 건립을 기원했다.
제주를 떠나기 직전 방문한 ‘수상한 집’에서는 깊은 상처를 받은 과거를 외면하지 않고, 자신의 아픔을 타인의 고통을 감싸 안아주는 따스한 마음으로 승화시키려는 노력을 볼 수 있었다.
‘수상한 집’은 조작 간첩 사건으로 억울하게 여러 해를 감옥에서 지낸 강광보 선생이 국가배상금을 털어 지은 집이다. 누군가를 원망하기보다 폭력과 불법으로 인한 인권침해가 다른 이에겐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의 집을 피해자들에게 안전한 쉼터(수상한 집)로 만들어 제공하고 있었다. 이곳에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기 위한 전시관도 마련돼 있다.
강광보 선생은 “억울한 옥살이를 한 사람들의 피해자 모임이 있었다. 아픔을 서로 다독여주면서 이야기를 했는데 모임을 하고 나면 한참을 모이기 어려웠다. 그래서 국가권력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찾아와 지난날의 아픔을 공유하면서 서로 달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면서 집을 지었다”고 설명했다.
이와 같은 사례들을 둘러보고 투어에 참가한 극단신세계의 하재성 씨는 “왜 여기 살인자들의 이름이 없지? 피해를 받은 사람들의 이름만 기억을 해야 하지? 정확히 살인자들의 이름이 적시되고 그 후손들이 대대로 창피해야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며 “피해를 받은 사람들의 이름뿐만 아니라 가해자의 이름을 같이 기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