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필 부사장 ([email protected])
대학 입시를 치를 때까지도 나는 조경학과가 있는 줄을 몰랐다. 모 대학교 건축과에 합격해 입학금까지 내놓은 상황에서 고등학교 친구들과 모임을 갖게 됐는데, 그날 한 친구(영남대학교 조경학과 78학번 김준오)가 “야, 종필아! 너 조경학과에 와라. 매일 그림만 그린다. 너는 미술부 출신이니까 딱이다”라고 던진 말에 솔깃해서 조경학과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됐다. 결국 등록금까지 낸 건축과를 포기하고 다시 조경학과에 지원하게 됐고, 그렇게 조경과의 만남이 시작됐다.
조경과의 운명적인 만남, 한국조경사회를 알게 되고!
한국조경사회(한국조경협회 예전 이름)에 처음 참여하게 된 것은 조경인 친선 체육대회부터인 것 같다. 1991년 도화종합기술공사(현 도화 엔지니어링) 과장으로 재직하던 때, 바로 옆에 위치했던 한국종합기술공사(현 한국종합기술, 이하 한종)와 자주 교류를 했었는데, 어느 날 친목도모를 위해 막걸리 내기 족구를 한판 하게 됐다. 그 당시 한종 조경부는 인원도 많았고, 운동도 상당한 수준이어서 우리가 형편없이 졌던 걸로 기억한다.
이듬해에는 도화종합기술공사,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는 물론 나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던 삼안기술공사, 동명기술공단, 한림환경ENG, 서인ENG 등 6개 회사가 모여 행사를 가지게 됐다. 운동장을 섭외하지 못해 고민하던 차에 먼저 오는 순으로 사용이 가능했던 서울시립대학교 운동장을 선점하기로 했는데, 당시 서울시립대 출신 도화 직원이었던 최영철 대리가 친구들을 불러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운동장을 차지해 행사를 치렀던 추억이 생각난다. 그 다음 해에는 제7대 권오준 회장과 장대수 사무국장의 요청으로 한국조경사회의 공식행사로 자리잡으며 제1회 체육대회가 열리게 됐고, 나는 이를 통해 한국조경사회와 만나게 됐다.
1992년 IFLA 세계대회(서울·경주)에 참석하면서 조경사회에 좀더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됐다. 이때 조경단체의 역할을 처음으로 경험하게 되면서 더욱더 애착을 가지게 된 것 같다. 1992년 10월 말쯤에는 용평리조트에서 1박 2일로 조경사회 최초 추계 심포지엄이 진행됐는데, 아직도 신선하고 대단했다는 느낌이 남아있다. 한종(KEcc) 직원들을 총동원해 준비하는 열정과 모습이 너무 좋았다. 특히 “21세기를 향한 한국 조경계의 당면과제”라는 제목이 나로 해금 기대감을 갖게 했으며, 어렴풋이나마 조경의 흐름을 알게 해준 발표와 토론이 진행됐다. 저녁 늦게까지 이어진 만찬, 다음날 월정사 탐방 등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였으며, 이것이 나를 조경사회로의 참여를 이끌게 된 동기가 된 것 같다.
조경사회에서 참여한 많은 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17년 YTN 방송국과 같이 개최한 ‘LANDEX 조경박람회’다. 당시 박람회는 일산 KINTEX에서 열렸으며 나는 기획위원장으로 참여하게 됐다. 처음으로 하는 큰 행사다 보니 조금 어설픈 점도 있었던 것 같고 방송 인터뷰를 하는데 너무 떨려서 여러 번 NG를 내기도 했다. 인천 송도 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된 ‘2009 IFLA APR 대회’에서는 조경사회 기획위원장 자격으로 행사 홍보위원장을 맡았는데, 1992 IFLA 대회 때 기억을 더듬으며 열심히 일했다. 많은 외국인과 함께 진행했던 행사라서 흥분도 되고 뿌듯하기도 했다. 거기다 미모의 아나운서(영어 통역)와 함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만찬사회를 보았던 것도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2016년 말에는 조경사회 정보지 역할을 하는 『조경사』 회보 100호를 발간하게 됐다. 『조경사』 회보는 조경계 전체의 변화와 발전의 모습을 찾을 수 있는 기록지이다. 그중 특집 ‘100번째의 만남’을 정리하는 ‘조경사회보 100호를 돌아보며’라는 기사를 쓰면서 조경사회의 역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조경의 역사를 이해하고 배우는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1981년 ‘조경사협회’ 탄생 초기의 열악한 환경에서 시작해 발간 횟수와 지면의 숫자가 줄었다 늘었다 중단됐다 하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꾸준히 이어온 것에 대해 선배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제19대 회장을 맡으며 집중한 세 가지
회장을 맡게 된 시기는 사회적․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었기 때문에 ‘무슨 일을 어떻게 잘할 수 있을까?’ ‘그동안 선배들이 열심히 해 왔던 노력에 누가 되지나 않을까’하는 고민이 앞섰다. 하지만 조경사회를 처음 만나고 참여했던 지난 날들을 되돌아보며 ‘몇 가지 일들에 집중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회장직을 수행했다.
첫째는 지난 2016년 초부터 준비해 왔던 조경단체 전체를 아우르는 총연합과 함께 조경계 전체가 하나 돼 큰 힘을 발휘하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해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었다.
2010년을 고비로 조경 분야가 매우 힘든 시기로 접어들었다. 몸집을 줄이고 회사를 정리하는 우울한 상황이었고, 이를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2016년 초 조경계의 미래를 걱정하는 몇몇 분들, 당시 조세환 한양대학교 도시대학원 교수, 서주환 차기 한국조경학회장, 조정일 대한전문건설협회 조경시설물설치공사업협의회장, 이창환 한국전통조경학회 회장, 홍광표 한국정원디자인학회 회장, 정주현 한국조경사회 명예회장, 진승범 한국조경학회 부회장, 안승홍 한경대학교 교수과 함께 조경계의 비전을 고민했다. 2017년 말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 초점을 맞추어 조경정책을 개발하고, 대선 공약에 반영될 수 있도록 준비를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인맥과 힘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르게 됐고, 조경단체들이 모두 힘을 모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오랜 준비과정을 거쳐 조경단체 총연합의 역할은 조경의 대국민/대정부 홍보, 조경정책 및 전략 개발, 조경의 인적네트워크 확대 등으로 설정했다. 이러한 조직을 만들기로 하고 2017년 3월 3일 ‘대한환경조경단체총연합’이 탄생하게 됐다. 이는 우리나라 조경단체를 하나로 모으는 최초의 사건이라고 생각된다. 빠른 시간 안에 정책을 개발하고, 최대한의 인적네트워크를 동원해 2017년 9월쯤 전국 조경인이 잠실운동장에 모여 단체행사를 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많은 정치인들을 초청해 조경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시켜 대선캠프에 조경정책을 전달하는 시나리오를 그렸다.
그런데 갑자기 12월에 예정됐던 대선이 5월 9일로 당겨지는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갑작스러웠지만 많은 사람들을 동원해 바쁘게 조경정책을 마련하는 등 동분서주했다. 역할을 나누어 각각의 대선캠프를 찾아가서 지지선언을 하고 정책집을 전달하는 등 최선의 노력을 했지만 기대만큼의 성과는 얻지는 못했다. 그때 나는 모 정당의 조경 분야 특별보좌관으로 위촉을 받아서 활동했다.
절대적으로 준비 시간이 부족했다. 때문에 정책에 직접 반영할만한 충분한 준비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조경단체가 그렇게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대한환경조경단체총연합’이라는 구심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금도 총연합이 활성화되지 않는 것은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총연합이 유명무실해지면 다시는 조경계가 하나로 뭉치는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어떤 형태로든 지속되기를 희망한다.
둘째, 한국조경사회가 일반인과 조경인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는 단체가 되고, 많이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동안 조경사회 활동을 하면서 ‘한국조경사회’라는 단체가 있는지, 무엇을 하는 단체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조경사가 뭐냐?’ ‘조경기술사나 조경기사들만의 단체냐?’ 등등 조경을 하는 사람조차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명칭을 변경하면서 조경사회를 쉽게 알리고 이해시켜 위상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조경사회는 설계, 시공, 자재, 감리 등 조경의 모든 분야의 사람들이 회원으로 있는 단체이므로 이에 걸맞는 명칭이 필요했다.
우선 고문들의 의견을 모았는데 모두 좋다고 했다. 자료를 조사하다 보니 제16대 이민우 회장 재임 시 조경협회 또는 조경가협회로 명칭 변경을 진행하다가 다른 단체의 반대로 무산된 일이 있었던 것을 알게 됐다. 회장단의 의견을 정리해 명칭을 한국조경협회(KSLA)로 정하고, 사전에 관련 단체장님들의 양해를 구하고 국토교통부에 서류를 제출했다. 약 한 달여의 시간이 흐른 뒤, 드디어 2018년 5월 28일 국토교통부로부터 명칭 변경 승인을 받았다.
당시 개인적으로는 우리 협회가 조경업계의 실질적인 대표 단체로서 거듭나고 많은 역할을 주도적으로 수행하기를 기대하는 욕심을 가지기도 했다. 이번 기회에 명칭 변경에 공감하고 같이 고민해 준 고문들과 19대 회장단에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또한 같이 뛰어다니고 부족한 자료를 찾아 서류를 준비하느라 고생한 당시 제상호 수석부회장과 이주연 사무국장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한편으로는 조경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찾았다. 조경협회가 지속적으로 추진해오던 행사 중 ‘조경인 체육대회’와 ‘대한민국 조경·정원박람회’는 조경계의 친목과 단합 그리고 대외홍보를 기대할 수 있는 가장 큰 행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2014~2016년까지 중단됐던 박람회를 부활시키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리해 리드엑스포와 함께 2017년 5월 18~21일 박람회를 개최했다. 또한 많은 조경인들이 새로운 분야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시재생과 조경가의 역할(2017, 2018)’, ‘조경과 IOT와의 만남(2017)’, ‘가뭄에 따를 조경 식재하자 실태 및 대응 방안 연구(2017)’, ‘해안 간척지 및 매립지 조경식재 워크샵(2018)’,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신기술 신공법 신소재 세미나(2018)’ 등 현실적인 주제를 다루고, 정보·기술 제공을 위해 힘썼다. 유재호 감리위원장과 함께 우리의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감리 제도 개선을 모색하고, 이를 관철시키기 위한 국민청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대하는 결과는 얻지 못했다.
셋째는 여러 단체와 공조해 타 분야와의 상생의 틀을 마련하는 등 현실적인 문제들에 집중하려 했다.
도시숲 및 정원 정책에 대한 향후 추진 방향을 공유하고 산림 및 조경 분야 상생협력 방안 모색을 위한 ‘산림청과 조경 분야 단체와의 간담회(2018. 3. 13)’, 서울숲, 한강시민공원, 청계천 등 사례답사 및 조경 설계가와의 만남을 가진 ‘중국 산동성 동영시 도시 관리국 및 원림국 인사 방한 간담회’, 정책제안 및 자문을 목적으로 ‘생각연구소와 MOU 체결(2018. 12. 17.)’, ‘한국 산림기술인회 창립총회(2018. 12. 20) 참여 등 다양한 분야 단체 및 기관과 함께 교류했다.
그중 특히 산림청에서 ‘산림기술진흥법’ 하위법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조경계의 의견을 들어 추진하라는 산림청장의 요청으로 나와 이재욱 당시 환경조경발전재단 외부법제대응위원장이 참여하게 됐다. 회의실에는 약 40~50명 정도의 사람이 있었는데, 그중 조경 분야는 단 둘이었다. 사회자 진행으로 자기소개를 하는 순서였다. 내 차례가 와서 ”한국조경협회 최종필 회장입니다”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한쪽에서 “아니 조경이 왜 여기 왔어, 무엇을 더 뺏어 먹을 게 있다고” 하면서 회의실에서 나가라는 소리가 나왔다. 너무 황당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망설이고 있는데 회의를 주재하는 산림청 목재생산과장이 “청장님이 조경계의 의견을 수렴하라 해 특별히 모신 분들입니다” 하면서 정리를 해주었다. 하지만 자리가 너무나 불편해 빨리 빠져나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조경 분야가 산림사업에 참여하려면 법령에 조경기술자가 있어야 하는데, 당시 법에는 산림기술자는 ‘산림공학기술자’와 ‘산림경영기술자’ 밖에 없던 터였다. 몇 번의 회의를 거치면서 산림분야 사람들을 설득해 간신히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에 끼워 넣어 ‘녹지조경기술자’를 산림기술자에 추가하게 됐다. 그 후로도 ‘기술자 배치기준’, ‘자격요건 및 업무 범위’ 등 매 조항마다 이견이 있어서 새벽까지 토론하고 목소리 높여 싸움도 했다. 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여러 산림 관련 단체를 대적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하지만 나름 최선을 다해서 조경의 영역을 확보하려 노력했다. 어떤 산림기술자는 “산림 관련 법령에 조경기술자를 넣어 준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양보를 한 것이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보니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게 법령이 만들어지자 산림청 산하 산림 관련 단체들이 모여 ‘산림기술진흥법’을 근간으로 사업실적, 자격, 교육 등의 관리와 기술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산림기술인회’ 창립을 준비했고, 그 과정에 조경 분야의 참여를 요청했다. 나는 조경협회장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하게 됐다. 내용을 파악해보니 녹지조경기술자도 만들어진 상태였고, 도시숲법 제정과의 관계에서도 적극 참여해 조경 분야가 불리해지지 않도록 조율하는 역할을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사업실적 증명, 기술자 보유 증명 등 일부 기능을 협회에서 하게 되면 안정적으로 우리협회 회원 확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한환경조경단체총연합’ 이사회의에서 ‘산림기술인회’ 창립 준비에 참여하자고 제안했으나 대부분의 단체들이 참여의사가 없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렇다면 우리 조경협회만이라도 참여하겠다고 결정해 ‘산림기술인회’ 창립준비위원회에 참석했다.
지금 우리 조경협회는 산림기술인회의 등재이사이자 업무분회 단체로 분류된다. 산림 관련 단체들과 함께 산림정책을 제안하고, 업역을 정리·조율하며, 사업대가 기준 마련, 품셈 개발 등에 참여하고 있다. 혹시나 장례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최대한 우리의 입장을 고려해 반영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숙제가 있다.
2018년 3월 13일 도시숲 및 정원 정책에 대한 향후 추진 방향을 공유하고 산림 및 조경 분야 상생협력방안 모색이라는 주제로 산림청과 조경단체 간 간담회가 마련됐다. 이 자리에는 조경 관련 10개 단체장, 산림청장, 산림복지국장, 도시숲경관과장, 산림환경보호과장이 참석했다. 그리고 얼마 후 ‘도시숲 조성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한 추진위원회가 꾸려지고, 조경 분야에서는 진승범 한국조경학회 부회장, 송병화 한국조경학회 총무이사, 이재욱 환경조경발전재단 외부법제대응위원장과 내가 선정돼 참여했다. 그러나 2018년 1년 동안 6차례 회의를 했으나 도시 숲의 범위에서부터 이견이 있어서 한발짝도 진척이 없었다.
조경계, 현명한 판단 다각적인 시도 필요
2019년이 되면서 환경조경발전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많은 단체장이 바뀌고, 어떤 이유에서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조경 분야 추진위원도 바뀌면서 도시숲법 제정이 다시 시작됐다. 하지만 산림청에서 준비한 도시숲법에 대해서 조경 분야 여러 단체에서 강하게 반대하면서 법 제정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그런 이유로 산림청에서는 조경 분야가 해오던 사업임에도 산림청 예산으로 발주하는 사업에는 조경공사업이 참여할 수 없도록 조치하기도 했다.
지금 우리 조경계는 진퇴양난의 어려운 상황에 봉착해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각적인 시도와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 관련 단체는 물론 우리 협회 내부(지회 포함)의 대안을 마련하는 데 주력하고, 한편으로는 산림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산림기술인회’와 같이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여러 방안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모쪼록 현명한 판단으로 잘 해결되기를 바라며, 미력하나마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려 한다.
“한국조경협회 40주년을 자축하며,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합니다. 그동안의 꾸준한 노력으로 협회를 키우고 지켜온 모든 조경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조경협회를 통해서 너무나 많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과 추억을 만들 수 있어서 행복했고, 앞으로도 행복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편집후 – 도시숲법은 조경계, 산림청, 국토부의 합의로 지난 2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이 원고는 도시숲법이 통과되기 이전에 송고되어 현재 상황과 일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독자분들의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