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형주 ([email protected])
[환경과조경 이형주 기자] 보행친화가 도시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기존 도시는 자동차를 중심으로 계획돼 왔다. 이에 따라 도시정책에서 보행은 주요 논의 대상이 아니었으나, 최근 보행정책이 도시정책의 주류시장으로 진입하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보행도시는 걷기 편한 도시라는 의미를 넘어 안전, 효율성, 건강, 경관성, 공동체 등 여러 가지 사회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비영리 보행자 옹호단체인 워크 보스턴(Walk Boston)에 따르면 보행환경을 개선하면 건강 증진에 도움이 된다. 걷기를 통해 심장, 폐, 근육의 기능이 증가하고, 체중과 에너지 조절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 단체의 설명이다.
메사추세츠는 성인의 54%와 어린이의 25%가 과체중 또는 비만인 것으로 조사됐는데, 이를 걷기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워크 보스턴의 설명이다. 이들이 걷기에 주목하는 이유 중 하나는 모든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안전하고 효과가 적은 운동이기 때문이다.
이 단체의 연구에 따르면 보행자의 90%는 40mph로 타격을 받으면 사망한다. 하지만 속도가 20mph로 줄면 사망률은 5%로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통량이 많고 속도가 빠르면 보행자 사망률이 높아진다. 이에 이들은 안전하고 쉬운 걷기 활동을 보장하기 우해 사람을 중심으로 도로, 보도, 교차로 및 횡단보도를 설계하도록 지원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이처럼 보행환경은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며 차근차근 개선되는 단계를 밟아왔다. 도시를 관리하는 기관들보다 이용자들이 도시의 문제를 먼저 발견하고 사회적 논의를 거치면서 캠페인과 인식 제고, 인프라 개선을 통해 보행친화도시로 한걸음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1990년대 초반부터 녹색교통, 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 등의 시민단체들이 보행환경 개선에 앞장서 왔다.
오성훈 연구위원은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에서 “보행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어디에 어떠한 시설사업을 할 것인가를 기획해서는 안 되며, 어디가 문제이며 기존의 공간이용 행태를 어떻게 변경, 개선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행환경 개선은 시설중심주의에서 벗어나 프로그램 중심주의로 예산의 효율성과 정책의 효과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 워크 보스턴(Walk Boston)
워크 보스턴은 매사추세츠 전역의 도시와 마을의 보행 상태를 개선하는 데 전념하는 비영리 보행자 옹호단체로 1990년에 설립됐다. 더 나은 건강을 위하고, 깨끗한 환경과 활기찬 지역 사회를 장려하기 위해 매사추세츠에서 보다 안전하고 편리하게 산책하는 것을 지향한다. 걷기 및 보행자 니즈를 교통 분야의 토론 주제로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주 전역의 106개 도시와 마을을 대표해 개인과 기업의 지원과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워크 보스턴이 하는 일은 ▲걷기가 주요 교통수단임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 ▲공무원과 만나 변화를 주도하는 것 ▲보행자 환경에 대해 전문가에게 조언을 얻는 것 ▲법안을 제정하고 지지하는 것 ▲교육 자료를 제작 ▲연중 지속적으로 흥미진진한 활동 프로그램과 캠페인 진행 ▲계속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하고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활동 등이다.
보행을 통해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들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 수 있다고 보스턴은 말한다. 주거지에서 보행자 활동은 이웃이 만날 기회를 늘려주고, 상업 지역을 활기차게 만들며 사업이 번창하는 데 기여한다는 것이 이 단체의 설명이다. 더불어 범죄를 감소하는 효과도 있다. 조사에 따르면 주택 구입자는 보행자 친화적인 지역사회에서 살기 위해 2만 달러의 보험료를 지불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들은 활동적인 시민들이 지역사회가 보행자 친화적인지 확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러한 보행 옹호자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보행 옹호자는 걷는 즐거움을 공유하고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이 걷도록 격려한다는 것이다. 지역의 지도자들과 공무원들에게 안전하지 않고 걷지 않는 보행 상태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걷기에 더 안전한 거리 만들기를 촉구한다.
워커 보스턴은 걷기를 격려하기 위한 연구 프로젝트를 직접 수행하기도 한다. 연구를 통해 업무를 개선하기 위해 설계된 새로운 도구 또는 기법을 개발하고 관련 실무자와 내용을 공유한다. 젊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공공기관 및 개발자와 함께 청소년들에게 지역 사회의 보행을 지원하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 자료 및 교과 과정을 개발했다. 또한 보도의 눈과 얼음을 제거하기 위한 7가지 기본 권장사항, 학교 안전 경로, 거주자와 방문객 모두를 위한 걷기 좋은 목적지를 개발해 제공했다.
이외에도 보행 안전을 위한 전략으로 행정적 집행, 교육을 통한 인식 개선, 인프라 개선을 위한 커뮤니티 등 3가지를 제안하고 ▲교차로 설계 개선 ▲보도 설계 ▲보행자 산책 의제 ▲신호 타이밍 수정 및 개선 ▲세그웨이 운행 제한 ▲눈 프로그램 개발 등의 걷기 중심의 프로젝트를 수행해 왔다.
◆ 워크 샌프란시스코(Walk San Francisco)
미국에서 가장 걷기 좋은 도시 중 하나로 알려져 있는 샌프란시스코는 ‘파크렛(parklet)’과 ‘선데이 스트리트(Sunday Street)’의 발상지다. 샌프란시스코는 83만7000명 이상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평일 16만2000명이 통근하고, 매년 165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도시를 걷는다. 워크 샌프란시스코(Walk San Francisco, 이하 워크 SF)는 이곳의 보행자 옹호단체다.
워크 SF는 거리를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안전한 공동공간으로 재생해 샌프란시스코를 보다 살기 좋고 걷기 좋은 도시로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 단체는 ▲더 안전하게 산책하기 ▲보행환경을 개선해 보행을 더욱 즐겁게 하기 ▲걷기를 선호하는 방법 모색을 목표로 ▲비전 제로(Vision Zero) ▲학교 안전 경로 ▲걷기 및 녹색 연결 등의 3가지 핵심 캠페인을 진행해 왔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매년 8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동차에 의해 사고를 당하고, 그중 100명이 중상을 입거나 사망한다. 워크 SF와 30개 이상의 지역사회단체연합은 2024년까지 교통사고로 발생하는 큰 부상을 없애기 위해 엔지니어링, 시행 및 교육 목표를 수립하도록 ‘비전 제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비전 제로 (Vision Zero)는 스웨덴에서 전략으로 시작됐지만, 이후 뉴욕시를 포함한 다른 주요 도시에서 채택됐다. 이 정책의 목표는 공학, 교육 및 집행의 다각적인 전략을 통해 모든 교통사고로 인한 치명적인 상해를 없애는 것이다. 워크 SF는 치명적인 모든 교통재해를 없애는 것을 목표로 기관과 기업에 ‘3대 E(engineering, enforcement, education)’를 구현하고, 이에 대한 자금을 지원할 것을 촉구했다.
3대 E는 ▲엔지니어링, 사람들이 상처를 입을 것으로 알려진 위험한 장소를 신속하게 현장에서 개선해 해결 ▲시행, 가장 위험한 5가지 행동으로, 문제가 있는 위치와 결점이 있는 운전자를 중심으로 교통 법규를 완전하고 공정하게 시행 ▲교육, 가장 치명적인 교통 행동을 목표로 하는 공공미디어 캠페인 및 도로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대형차량 운영자 및 전문운전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을 포함해 모든 도로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과 프로그램에 투자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외에도 ▲워킹 투 워크 데이 ▲샌프란시스코 전체 181개 학교 주변에 안전한 15mph 학교구역을 지정 ▲공원에 접근하기 위한 조용한 녹색 거리의 새로운 네트워크 ▲5000만 달러의 도로 채권을 포함해 도보 거리를 개선하는 자금 확보 ▲경찰과 지방검사의 관리 하에 걸을 때 안전을 지키는 법을 시행 ▲자동차 없는 ‘선데이 스트리트’를 시작해 거리를 공유공간으로서 개조하려는 소풍(활동 프로그램) 지원 ▲도시에서 가장 위험한 거리 안전 개선 ▲개발자가 자동차 교통의 실제 비용과 보행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비용으로 지불하도록 제도화 ▲보도를 막고 있는 자동차에 벌금을 부과하도록 하는 등의 운동을 실천했다.
◆ 녹색교통
녹색교통은 시민 교통권의 확보 및 녹색 삶터 만들기, 친환경 교통의 구축을 위한 다양한 활동으로 도시, 교통, 환경, 에너지, 복지 영역에서 안전, 형평, 생명, 평화의 가치를 실현하고 지속가능한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단체다.
추진사업은 ▲도시, 교통, 환경, 에너지, 복지 관련 문제 등에 대한 조사연구사업 ▲교통안전과 보행권, 대중교통 개선과 시민 교통권 신장을 위한 사업 ▲자전거 등 녹색교통수단 활성화와 환경, 에너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사업 ▲지속가능하고 아름다운 삶터로서의 국토, 도시, 마을 만들기 사업 ▲각종 법률 및 제도, 정책에 대한 모니터링과 개선사업 ▲교통사고 피해자 및 유가족에 대한 장학사업, 교육사업 및 기타 지원 사업 ▲각종 현안 및 과제에 대한 시민사회의 공론을 형성하고 조직화하는 사업 ▲각종자료의 수집, 가공, 생산 및 출판홍보사업 ▲국내외 관련 단체 등과의 연대 협력사업 ▲기타 제2조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사업의 10개 분야로 진행된다.
녹색교통은 환경을 생각하는 교통, 사람을 위한 교통을 위해 ▲보행권 확보 운동 ▲생활자전거 이용 활성화 ▲대중교통 이용 활성화 ▲교통안전과 관련된 활동 ▲환경 및 에너지 활동 ▲교통사고 유자녀 지원 등의 활동을 해오며 교통환경 개선에 많은 성과를 냈다. 또한 시민단체들과 함께 교통약자들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거리를 만들고, 쾌적한 대중교통 만들기에 힘쓰고 있다.
◆ 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
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이하 도시연대)는 도시에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오래 살아갈 수 있는 인간 환경을 회복함으로써 삶의 질을 개선하고 도시문화와 역사를 보존, 창조해 나가는 것을 활동목표로 삼고 있다. 도시연대는 보행권 확보 운동, 마을만들기 운동, 생활문화 운동을 주된 축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진정한 보행권 확보와 생활문화 존중을 위해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참여를 기본 전제로 한다.
도시연대는 도시를 마음 놓고 걷고 싶다는 것은 도시라는 삶터를 보다 친근하고 즐겁게 해보자는 생활적 욕구와 평범한 보통사람들의 존엄성을 소중히 여겨달라는 민주주의 실천을 외치는 인권적 욕구가 깃든 것이라고 말한다. 걷고 싶은 도시만들기 운동은 우리 삶터에 관해 시민의 생활과 인권의 존엄성을 소중히 하는 도시환경을 우리 손으로 가시화하는 작업이라는 설명이다.
도시연대는 ▲보행자를 존중하는 도시 만들기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도시 만들기 ▲생활문화와 역사가 살아 숨쉬는 도시 만들기 ▲사람과 자연이 공생하는 도시 만들기 ▲다양한 계층이 소통하며 어울려 사는 도시 만들기라는 4개의 기본의제와 ▲회원이 중심에 서는 운동 ▲대안을 중시하는 운동 ▲현장에 밀착하는 운동이란 3대 원칙을 근거로 활동한다.
이 단체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는 서울시에 세계 최초로 보행조례를 제정하도록 만든 것이다. 도시연대는 서울시 보행조례 제정의 필요성을 알리며, 1996년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한 ‘걷고싶은 서울만들기 운동본부’를 출범시켰다. 이 시민사회 연대체에서는 서울광장의 보행광장조성운동과 서울시보행조례제정을 주요 과제로 선정, 활동했으며 지난 1997년 1월 그 결실을 맺었다. 현재 서울시는 보행조례에 근거, 매 5년마다 서울시보행환경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있으며, 그 계획에 의거 보행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
이외에도 ▲서울광장 만들기 운동 ▲인사동 가꾸기 ▲주민참여 한평공원 만들기 ▲마을만들기교육 ▲커뮤니티디자인워크숍 ▲가게 앞 자전거 ▲주민참여형 어린이놀이터 리모델링 활동 ▲어린이 자전거 면허시험 및 안전교육 등의 활동을 하고 있으며 기관지, 사업보고서, 발표자료 등의 정보 구축 사업도 펼치고 있다.
◆ 서울산책
서울산책은 도시와 공간에서의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어가기 위한 의제를 발굴하고 아이디어를 모으며 실천의 장을 만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설립된 시민단체다. 생태적이고 보행친화적인 도시환경, 공동체성 회복을 위한 시민교류, 문화예술, 연구, 출판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산책하고 싶은 도시를 만드는 기획자 네트워크로서 협력적 참여를 끌어내는 데 주목하고 있으며, 서로 다른 주체들을 연계할 수 있는 생활형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서울산책은 차량 중심의 공간이 보행자 중심으로 전환됐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는 이벤트와 캠페인을 선보였다. 스토리가 있는 산책길을 발견하고 걸어보고 느껴봄으로써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구석구석을 사랑하고 서울을 걷고 싶은 도시로 만들어 보려 한 ‘산책버스’는 시민들의 호응을 끌어냈다. 무빙파크(Moving Park)는 회색 빛 도심 속 주차장, 가로변, 광장 등에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며 움직이는 공원을 통해 차가 줄어든 도시, 거리예술로 풍부해지는 길을 상상해보는 캠페인으로 보행권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던져 주었다. 더불어 걷는 도시의 선구자인 제인 제이콥스의 캠페인을 이어받아 1년에 하루라도 차를 이용하지 않고 도시를 걸어보는 ‘워킹 데이(Walking Day)’ 행사를 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서울역고가 운영전략 및 관리방안에 대한 연구도 진행했다. 서울의 한복판이자 서울역으로 단절된 서울역 일대에 조성되는 서울역고가를 서울산책 1번지로 만들기 위한 다양한 기획에 힘을 쏟았다.
현재 종로 일대 도로 공간 재편 계획에 따른 영향지역 자원조사 및 상생방안 수립을 위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대한민국 대표길이지만 늘어나는 차로 인해 교통체증이 심해지고 활기를 잃어버린 종로를 도로다이어트와 버스중앙차로 건설, 컬처 로드 사업을 통해 걷기 좋은 길로 재탄생시키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외에도 여의아이스파크, 서울力산책 등을 통해 공공공간 기획 및 운영을 통한 새로운 장소 발굴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지역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이를 다양한 출판물로 만들어 내는 작업을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