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연금 조경작업소 울 대표
누군가에게 공원은 절실하게 시간을 내어 찾는 공간
앞으로 새롭게 조성되거나 변경될 공원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투시도의 풍경은 평화롭다. 석양을 등지고 조깅을 즐기는 젊은 여성, 그 옆으로 풍선을 들고 달리는 어린이들, 느긋한 자세로 젊은이와 어린이를 향해 앉아 있는 노인. 그 뒤로 유모차를 끌고 천천히 산책하는 젊은 부부, 어린이의 손을 잡고 걷는 엄마, 아빠도 보인다.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가르는 이,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이, 책을 보며 산책을 하는 이도 보인다.
일과 공부로 빠듯한 일상에서 잠시 짬을 내 공원에서 여가 활동을 하는 이들의 모습, 흔히 평범한 일상, 평범한 공원 이용이라고 여겨지는 모습이다. 공원 이용 설문조사에서 공원 이용의 목적으로 흔히 제시되는 항목인 ‘1. 휴식 2. 산책 3. 놀이 4. 친구 만나기 5. 기타’에 해당한다. 일상을 영위하는 데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잉여의 활동. 투시도에서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지만, 잉여의 시간에 잉여의 공간인 공원에서 잉여의 활동을 하는 이들의 표정은 아마도 평온하고 즐거움을 드러낼 것이다.
남산공원 북측산책로에서 흰 지팡이로 점자블록을 짚으며 산책하는 시각장애인을 보면서, 장충단공원에서 잘 움직이지 않는 팔을 어색하게 흔들며 순환산책로를 반복해 걷는 노년의 여성을 보면서 다른 투시도를 머릿속에 그려본다. 질병으로 몸의 특정 기능이 상실되거나 훼손되어 재활의 목적으로 매일매일 특정 시간에 공원을 찾아 걷고 운동하는 이, 치매에 걸린 부모가 잠깐이나마 바깥바람 쐴 수 있도록 휠체어를 끌고 나온 이, 또 장애 자녀를 돌보는 빠듯한 일상 속에서 조각 시간을 내어 자신을 찾기 위해 공원을 찾는 이. 어린이들이 자연과 멀어지는 게 너무나 안타까워 동네 뒷산을 찾아 수업하는 이. 은퇴 후 밀려오는 삶의 허망함을 이기기 위해서 매일매일 공원을 걷는 이. 이들로 투시도를 채워보면 어떤 풍경이 될까?
여러 사회적 단위와 층위에서 ‘평범’, ‘정상’이라는 단어가 도전받고 있다. 이는 정상이라고 칭해지는 범위에서 벗어나면 배제되는 사회에 대한 도전이다. 결혼제도 안에서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핵가족을 정상가족으로 흔히 이야기하는데, 과연 그러한 가족은 얼마나 되는가? 그러한 가족의 형태에서 벗어나면 비정상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런데도 흔히 말하는 정상가족을 중심으로 사회 시스템이 꾸려져 있다. 청소년에게 ‘몇 학년’이냐고 물어보는 것도 청소년은 학교에 다니는 게 정상이라는 관념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장애인이라는 단어의 상대어로 정상인이 아니라 비장애인이라는 단어가 통용되고 있는 건, 우리 사회가 정상이라는 단어가 갖는 폭력성을 조금이나마 인정한 것이다.
누군가에게 공원은 잉여의 활동을 위해 잉여의 시간에 찾는 잉여의 공간이 아니다. 절실하게 시간을 내어서 절실하게 찾는 공간이다. 재활의 공간이고, 위로의 공간이고, 학습의 공간이고, 존재를 확인하는 공간이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앞에서 묘사한 이미지와는 다르겠지만, ‘긍정을 찾기 위해’라는 것에서는 별 차이 없을 것이다. 비록 오늘은 잘 안되더라도 말이다.
공원에서 붉은 물고기가 되어
「공원을 헤엄치는 붉은 물고기」라는 동화책은 공원 풍경을 담는 열두 개의 그림으로 채워져 있다. 그림은 모두 공원 곳곳을 헤엄치며 구경하는 붉은 물고기를 제외하면 흔한 공원의 풍경이다. 한쪽에서 어린이들은 공놀이하고 있고, 젊은 청년은 플롯을 연주하고 있고, 중년의 남자는 어깨가 축 처져진 채로 산책하고 있고, 소녀는 킥보드를 타고 있고 하늘에는 새들이 날고 지상의 강아지는 여기저기를 뛰어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열두 개의 그림은 모두 같아 보이지만, 사람에 주목해 쫓아가다 보면 다름을 볼 수 있고 다름 사이에 숨겨진 이야기를 발견하게 된다.
동화책에는 남편과는 사별하고 자식들은 모두 외지에 나가 있어 외로운 여성이 공원에서 자신을 짝사랑했던 이를 다시 만나는 이야기, 서툴게 마음을 주고받는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 영감을 찾는 젊은 시인과 현상의 본질을 찾는 꼬마 과학자가 교감을 나누는 이야기, 이주민인 할머니와 소년이 함께 작은 성취를 이루고 축하하는 이야기, 시각장애인 안내견과 고양이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 참새도 청중으로 존중하는 플루티스트의 자기 고백이 수록되어 있다. 다행히도 이야기는 모두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공원에 어울리는 결말이다.
이 동화에서처럼 사람들은 ‘1. 휴식 2. 산책 3. 놀이 4 친구 만나기 5. 기타’로만은 드러나지 않는 자신들만의 사연을 가지고 공원을 찾는다. 하나의 그림에서는 그 이야기가 포착되지 않지만, 우리의 일상처럼 비슷비슷하게 보이는 열두 개의 그림을 차분하게 들여다보면 밀도 높은 질감의 일상을 만나게 된다. 붉은 물고기는 무심히 공원을 헤엄치고 있는 듯하지만, 관찰자이다. 이 연재에서는 붉은 물고기가 되어 공원을 찾는 이들의 이야기, 특히 평범, 정상이라는 단어를 확장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보려 한다. 그래서 공원의 미래를 그리는 투시도의 풍경이 풍부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연재의 제목은 ‘공원에 간다’이다. 주어와 목적어가 빠져있다. 앞으로 이어지는 글에서 다양한 주어와 목적어를 대입할 것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