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창호 ([email protected])
지난 9월 22일부터 5일간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개최된 2017 서울정원박람회에서는 열두 개의 작가정원과 초청정원·기업정원이 선보였다.
올해 작가정원의 주제는 ‘너, 나, 우리의 정원’으로 정원박람회 개최지인 ‘여의도’의 옛 명칭 ‘너섬(너벌섬)’과 ‘나의섬(羅衣島의 우리말)’에서 너와 나를 추출했다.
참여작가 선정은, 국내외 전문가를 대상으로 일반(공개)공모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최종 심사는 정원 조성 이후 현장에서 이루어졌다. 심사 결과, “주제에 적합한 내용(스토리텔링)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작품으로 정원에 대한 이해 및 완성도가 높다. 다만, 아쉬운 점은 지속적인 관리를 위해 식재 계획·관리에 대한 별도계획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평가됐다.
2017 서울정원박람회는 막을 내렸지만, 여의도공원 잔디마당에 조성된 열두 개의 작가정원은 존치되어 서울시와 시민정원사가 관리할 예정이다. (사진 유청오)
[대상] 너를 담다
정은주·정성훈 제이제이가든스튜디오
‘너를 담다’는 ‘너를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의미와 ‘정원에 너를 담는다’는 뜻을 가진 중의적 표현이다.
정원 사이를 가로지르는 길 양옆으로 선큰 공간을 배치해 오롯이 담아낸다는 의미에 집중했다. 철근을 활용한 울타리, 날카롭게 꽂힌 슬레이트석은 타인에 대한 이질감을 나타낸다.
이와 대비되는 바람에 하늘거리는 풀숲, 햇빛에 반짝이는 야생화, 곳곳에 우거진 녹음,자연적인 소재를 활용한 시설물은 따뜻함을 자아낸다.
[금상] 험한 세상 버팀목, 아빠와 나
윤호준 반도이앤씨
고대웅 R3028
‘나(아빠)’라는 독립적인 존재가 ‘우리’라는 가정을 만들면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고래등처럼 넓고 푸른 그늘 쉼터를 만든다.
너와 나, 우리에게 아빠란 과연 어떤 존재일까. 서로가 지금껏 걸어온 길을 생각해보자.
지문은 손가락 끝마디 안쪽에 있는 살갗의 무늬다. 사람이 살아온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닳아버린 지문은 아빠의 삶의 흔적이다. 닳아버린 궤적이 마치 ‘우리’를 엮어주고 있는 것 같다.
표면은 거칠지만 그 사랑은 한없이 부드럽고 또 포근하다.
[은상] You and Me and Everyone
김지윤 리틀 칼리지(Writtle College)
너와 나 그리고 우리가 모두 함께할 수 있는 정원을 한국 전통 정원에서 찾았다.
방지원도형 연못을 새롭게 해석해 구조물과 바닥 포장재로 못을 표현하고 중앙의 원형 의자 구조물로 둥근 섬을 나타냈다.
수직 구조물에 벽돌 사이즈의 반투명 소재를 사용해 다양한 빛을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구조물의 높이와 폭 변화를 통해 공간감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은상] 삶의 풍경
원종호 JWL
우리는 끊임없이 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대부분의 시간을 직장이나 학교의 동료와 부대끼며 살다가도, 내 주변으로 돌아와 가족이나 친구들과 시간을 보낸다.
때로는 온전히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하다.
‘삶의 풍경’은 이런 우리 삶의 세 가지 층위를 각기 다른 정원의 물성을 통해 표현한다.
[은상] The Blue Garden
조윤철 PH6 DESIGN LAB
블루가든은 작지만 무한한 풍경을 만드는 정원이다.
정원은 물을 만날 수 있는 블루스페이스와 야생 초화류와 잔디 둔덕이 시각적 즐거움을 주는 그린스페이스로 구성된다.
블루스페이스는 20cm 깊이의 얕은 연못으로, 정원의 풍경과 그 너머의 풍경을 흡수하고 반사하며 공간을 확장한다.
하얀색 스투코 벽체는 정원의 경계이자 내부 공간에 집중하게 하는 장치다.
반대쪽에는 핑크뮬리 그라스로 경계를 만들어 관람객의 시선을 유도한다.
[동상] 따로 또 같이, 어울림
김미진 프리랜스 가든디자이너
숲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축소판이다. 다양한 존재가 모여 함께 살아가듯,
개성이 뚜렷한 작은 공간들을 대비시켜 숲 구성원들의 역할을 강조하고 다양성을 표현했다.
오솔길을 걸으면 그라스류로 가득한 ‘초록 물결의 초원’, 계절 초화가 피어있는 ‘꽃내음 일렁이는 언덕’, 나무와 지피 식물이 공생하는 ‘나무 아래 우거진 숲’, 그리고 정원 전체를 아우르는 모둠벤치가 있는 ‘숲속 어울림 쉼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동상] The Green Door
김민지 향림조경개발
푸른문이 열리면, 다채로운 식물로 가득한 정원 속을 어슬렁거리며 걷기도 하고,
편안한 집의 거실처럼 앉아서 쉬기도 하고, 누워서 하늘을 보기도 하며, 나만의 정원을 만들기도 한다.
푸른문이 닫히면, 더 내밀한 나만의 공간에서 휴식을 즐긴다.
너의 정원 문이 닫히면, 나는 너가 궁금하고, 너는 나를 기억하게 된다.
우리 정원의 문이 닫히면 너와 나는 더욱 친밀한 우리가 되어 언제나 정원 속에서 살고 싶어진다.
[동상] Let It Bee: Garden Americano
김지환 라디오
안기수 에이원
밀원 식물로 이뤄진 ‘Let It Bee: Garden Americano’는 저관리 정원으로 ‘그냥 두세요’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식물이 동물, 곤충과 상호 관계를 맺으며 변화하는 생태계의 흐름을 담고자 했다.
이 곳에는 한국양봉협회가 펴낸 『한국의 밀원식물』에 수록된 수종만 식재했다.
정원을 보는 사람뿐만 아니라 벌, 새, 나비와 같은 생물에게도 유용한 정원 모델이 될 수 있다.
이 정원은 우후죽순 생겨나는 카페의 공간 활용에 대한 제안이기도 하다.
[동상] 훈맹정원, 빛으로 인도하는 바른 정원
노회은·박건 제이드가든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 다가가는 정원은 또 다른 빛이 될 수 있을까?
미로는 공평하다. 막힌 길을 만나면 되돌아가고, 갈림길이 나오면 선택한다.
길을 찾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빛이 아니라 ‘약속’이다. 함께 한 약속은 곧 길을 찾는 ‘빛’이다.
나무와 바람의 잔잔한 울림은 오는 이의 발길을 붙잡고, 향기가 깃든 식물은 정원을 찾는 이도 향기롭게 한다.
지면의 요철은 갈림길에서 선택을 돕고, 기둥의 13자 자음은 정원의 처음과 끝을 안내하며, 길의 경계석은 올바른 길로 인도한다.
[동상] 여백의 정원, 우리가 머무는 빈자리
박종완 플레이스랩 기술사사무소
황신예 가든룸–가든디자인 스튜디오
공간과 공간이 맞닿은 자리에서 자연에 한편을 내어준 여백이 정원으로 채워진다.
전통 한옥의 중정에서 영감을 받아 따스한 햇살과 바람을 받아들이는 중정을 만들었다. 중정의 골격은 보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경관을 담을 수 있는 프레임으로 역할 한다.
쏟아지는 햇빛과 흩날리는 바람을 느낄 수 있는 바쁜 생활 속의 여백이 되는 정원은 방지의 풍성한 화단으로 재해석했다.
중도는 자연을 내 눈앞의 공간으로 끌어들여 품은 공간이다.
[동상] 다채원
조성희 조경설계사무소 온
녹지 광장을 사람들의 많은 생각이 담긴 정원이라 생각했다.
여러 소재의 멀칭으로 정원을 구성했고,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여러 의견과 행위를 펼치는 모습을 돌과 식물로 표현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각자만의 가치를 찾기 위해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가치의 나무’로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다양한 멀칭재와 나무가 어우러져 만들어진 복잡하고 질서감이 없는 다채원은
나와 또 다른 내가 만들어가는 우리의 존재를 의미한다.
[동상] 한강에 돌을 던지다
차용준 지오가든
김현민 스튜디오101
한강 물가에서의 추억을 갖고 있는 많은 서울 시민이 물수제비 형상을 통해 어린 시절 소중했던 시간을 떠올리고 다시 새로운 추억을 남길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빗방울이 떨어져 한강의 수면 위에 만들어내는 동그라미들을 단순화해 평면 배치를 하고, 물수제비가 날아가는 궤적을 상징하는 입면을 구성했다.